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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유선주의 TVIEW] 소품은 살아있는데…

<후지TV> 개국 50주년 드라마 <불모지대>(2010)는 일본군 장교였던 이키 다다시(가라사와 도시야키)가 종합상사에 발을 들이고 회사를 키우며 한발씩 위로 올라서는 일본 경제성장기 배경의 시대극이다. 일터의 풍경이나 양복, 헤어스타일의 변화는 이키가 유행을 좇는 캐릭터가 아니라 유난하지 않은 편인데 그가 일에 매달린 사이 출퇴근하는 집의 거실 풍경으로 세월이 흐른다. 빈궁한 살림에서 시작해 가장이 승진할 때마다 조금씩 살림이 피고 좌식에서 입식으로 가구들이며 생활 스타일이 바뀌는 이키네 가정. 남의 나라, 안 살아본 시절의 성공담을 망연하게 구경하는 와중에 깜짝 놀란 장면이 있다. 차분하게 내조하는 이키의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며 수편물을 잡고 있는 모습이 나온 뒤, 곧 온 집안이 손뜨개 레이스로 도배가 된 장면이다. 이것은 남편을 일터에 빼앗긴 일본 여성의 원념이 담긴 수편물인가! 농담이고, 내내 조용하던 이키의 부인이 공간을 장악한 순간이다. 일본의 수편물 유행은 시간차를 두고 레이스 교본이나 시집갈 때 하나씩 구비해 가던 <여성대백과사전>의 홈패션 항목으로 수입돼 한국에도 집집마다 레이스 광풍이 분 적이 있었다. 우리 집 역시 어머니의 폭풍 뜨개질로 커튼이며 식탁보, 가구 커버들이 모두 레이스로 덮였고 어머니는 그래도 코바늘을 놓지 않았다. 일본 거실이나 한국 거실이나 시간차는 있지만 어떤 시절을 관통한 전국적인 유행이 스몄던 거다. 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빛과 그림자>는 세트나 소품에 공을 들인 태가 역력하다. 1970년 지방 소도시의 극장을 물려받은 청년 강기태(안재욱)는 영화에 투자했다 사기당하고 쇼단을 유치해 위기를 모면하려 하나 그도 여의치 않다. 아직 인물들의 성격도 단선적이며 눈뜨고 당하는 사기장면도 긴장감이 부족해서 세트나 소품 구경하는 쪽이 재미가 더 크다. 극중 다양한 장소의 의자들을 비교해보면, 순양극장 좌석에는 극장이름과 자리번호가 프린트된 머리 커버가 씌워져 있고 공화당 후보의 응접실에는 가죽소파 머리와 팔걸이 부분에 흰 커버를 씌웠다. 보리수 다방의 소파는 두툼한 ‘비로도’ 천으로 감싼 소파에 나무 팔걸이, 다방이름과 전화번호를 프린트한 머리 커버, 여주인공 정혜네 미용실은 풀색 비닐 소재 소파에 테이블에도 비닐을 깔았다. 기태의 집으로 들어가면 노란 미송나무로 마감된 거실에 금성 텔레비전과 괘종시계며 문갑, 스탠드, 도자기와 분재가 여기저기 놓였다. 홈드레스를 입은 기태 엄마(박원숙)는 ‘양키 아줌마’가 가지고 온 미제 물건들을 늘어놓고 수다를 떨거나 자개장과 좌식 화장대가 놓인 안방에 누워 콜드크림 마사지를 받기도 한다. 식모를 부리는 부엌은 식탁이 놓인 곳보다 한단 낮고 조각 타일을 깔아뒀다. 가스레인지와 풍로를 함께 쓰는 것도 옛날식이다. 이제까지 봐왔던 시대극과 비교하자면 여기저기 공을 들인 게 분명한데 어쩐지 성에 차지 않는다. 저 집에 사는 것 같은 사람은 그나마 기태 엄마 하나뿐. 다양한 장소들, 가구와 소품들에 주연배우들이 녹아들지 못하는 건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이용하거나 인물이 장소를 장악하는 장면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싸한 부엌을 만들어두곤 다 차려놓은 식탁 장면만 쓰고 다방에 가서는 대화만, 풍전 나이트에선 춤만 추는 식이다. 아직 초반인데 괜한 걱정인가 싶어도 이 드라마는 70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의 긴 세월을 다룬다고 하고 기태네도 머잖아 몰락할 판이니 세트며 가구들이 아까워 죽겠다.

[동국대 전산원 영화영상학부]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지원하고 배려하다

◆ 입시가이드: 정시전형_연기학과와 영화영상제작학과 각각 50명씩 선발한다. 두 학과 모두 실기 40%+면접 40%+학업계획서 20%를 반영한다. 연기학과는 개인이 준비한 3분 이내의 개인 연기와 시험 당일 제시되는 상황을 연기하는 지정 연기를 각각 20%로 반영한다. 영화영상제작학과는 실기 당일 준비된 영상 10분가량을 보고 지정된 양식으로 작문을 한다. 105년 역사의 학교법인 동국대학교가 운영 중인 동국대학교 전산원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학점인정기관으로 인가받아 36년간 이어져 온 학사학위과정 교육기관이다. 유사한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에 비해 공신력이 높고, 우수한 수업 장비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학생들의 관리에도 책임감 있다. 일반 대학이 아닌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이라고 하면 대개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동국대학교 전산원으로 진학하는 것은 4년제 대학과 똑같이 학사학위 취득이 가능하고, 국내외 타 대학으로의 편입이나 취업활동이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측면에서 사실상 일반 대학보다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현재 컴퓨터공학과, 멀티미디어 콘텐츠학과, 경영학과, 국제통상학과, 관광경영학과, 사회복지학과, 연기학과, 영화영상제작학과 등 8개 학과가 운영 중인데, 수능성적이나 내신과는 무관하게 고등학교 졸업(예정)자 및 교육법령에 의해 동등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개인의 노력에 따라 4년제 교육과정을 빠르면 2년 만에 마무리하고 조기 졸업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빠르게 진행되는 교육과정에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도록 실기 위주의 효율적인 교육 방식과 이에 따른 시설 지원이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특히 이번부터는 주말 학위 과정이 신설되었다는 것이 이전과 크게 다르다. 동국대학교 전산원과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주말 경영학사 학위 취득과정은, 공부는 하고 싶은데 시간을 내기 힘든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일주일 중 토요일 단 하루만 꾸준히 출석해도 동국대학교 총장 명의의 경영학과 학사 학위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이수 기간은 4년이고 계절학기도 포함된다. 수업은 오전 9시부터 시작되어 밤 9시20분에 끝난다. 학위 취득을 위해 총 140학점을 이수해야 하며 여기에는 전공 60학점과 교양 30학점이 포함된다. 과정 이수 중 자산관리사(20학점), 물류관리사(20학점), 텔레마케팅관리사(18학점), 전산운용회계사(18학점), 행정관리사(3급은 14학점, 2급은 20학점) 등의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할 경우 학점으로 인정된다. 리허설은 공연처럼, 공연은 리허설처럼 동국대학교 전산원 영화영상학부 연기학과의 ‘기초연기Ⅱ’를 학생들과 함께 들었다. 연기연습실에 붙어 있는 “리허설은 공연처럼! 공연은 리허설처럼!”이라는 플래카드가 인상적이다. 인자한 미소의 김용규 교수는 간단한 인사 뒤 바로 혹독한 연기 수업에 들어갔다. 신체 각 부위를 이완하는 기본 스트레칭이 먼저였다. 스무명도 채 안되는 학생들은 개인용 매트에 누워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긴 호흡을 위해 복압을 강화하는 훈련이 이어지고, 발성훈련과 걷기훈련이 이어졌다. 널찍한 연기연습실은 몸속의 공명을 느끼며 낮은 소리로 발성 연습을 하는 학생들의 소리로 가득 찼다. 이어 학생들은 나란히 서서 몸에 힘을 빼고 걷기 시작했다. “힘 빼고 걸어! 마음 가는 대로, 남 따라하지 말고 자기 충동대로! 충동적으로 걸어!” 학생들의 걸음 걸음을 유심히 살펴보며 김용규 교수가 간간이 외쳤다. 가상의 공을 가지고 즉흥연기를 할 땐 연습실이 웃음소리로 넘쳤다. 정말 눈앞에 무겁고, 가볍고, 빠르고, 느린 공이 있는 것처럼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 공을 마음껏 굴리고 던졌다. “똑같은 동작 하지 말고! 항상 신선하게! 새로운 것!” 김용규 교수는 ‘충동적인 나만의 감정’을 특히 강조했다. 여기까지의 이 모든 과정은 매일 반복된다. 기본 신체 훈련을 마친 뒤 학생들이 분주하게 옷을 갈아입고 소도구를 챙긴다. 연극 <날 보러 와요>의 한 장면을 연기 실습하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자연스러운 표준어를 구사했던 한 남학생은 의상을 갈아입자마자 정말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것처럼 구성진 사투리 연기를 선보였다. 김용규 교수는 이따금씩 수업 시간에 ‘자기화 과정’을 거친다고 소개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사회의 눈이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 절제하고 억압해온 내 안의 욕구를 연극적으로 장면화하는 과정입니다. 거칠게 욕을 하고, 매달리고, 울고, 소리지르고 하는 이 모든 표현들을 현실화하면서 억압된 감정을 긍정적으로 해소하는 거죠.” 영화영상제작학과의 스튜디오에서는 김훈광 교수의 ‘영화촬영Ⅱ’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어두컴컴한 스튜디오에서는 조명 테스트 수업을 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한쪽엔 대형 모니터가 있고, 스튜디오 한가운데에 핀 조명이 내리꽂힌다. 여러 종류의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학생들은 핀 조명을 빙 둘러싸고 카메라를 조절하면서 이리저리 비춰보고 있었다. 학생들이 찍고 있는 그림은 대형 모니터로 바로 확인됐다. “45% 나올 때까지 맞춰봐. 조금 뜨잖아. 45%가 안 나오는 이유가 뭐야? 조명이 부족하단 얘기야. 앞으로 조금만 나와볼까?” 김훈광 교수는 핀 조명 아래와 모니터 앞을 오가며 학생들의 조명을 꼼꼼히 살폈다. 이어지는 스피디하고 간결한, 그리고 정확한 지적. 지금 현재도 영화 현장에서 활동 중인 김훈광 교수는 현장 스탭을 대하듯 학생들을 지도했다. 학생들 역시 김훈광 교수의 속도에 지지 않고 빠르게 질문하고, 빠르게 답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스튜디오에 감도는 이 예민한 긴장감은 뭘까? “조리개를 조금 닫아봐. 맞춰야지. 그래. 그렇게.” 마침내 미세한 차이로 빛이 들어맞자 스튜디오를 옥죄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탁 하고 풀린다. 학생들의 사소한 동선까지 배려 동국대학교 전산원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장소는 활용도 높은 연습실도 아니고, 첨단 장비로 꽉 찬 스튜디오도 아니다. 교수실과 입시홍보팀, 학생복지 담당 부서가 모두 거대한 하나의 사무실을 공유하고 있는 학생지원센터다. 입시홍보팀 유정호 과장은 이 독특한 설계가 “학생들이 민원 처리를 할 때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긴 시간 수업을 안내한 김용규 교수는 학생들을 줄곧 ‘우리 애들’이라고 불렀다. 멀리 있어 지나쳐버려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학생들은 굳이 김용규 교수의 앞까지 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간다. 교수와 학생이라기보다도 아버지와 막내처럼 보이는 관계다. 그냥 아이도 아니고 막내다. 학생들의 사소한 동선까지 조금 먼저 생각하는 배려와 학생들을 ‘우리 애들’로 키우는 마음이 동국대학교 전산원의 힘이다. “아이들의 성장 눈에 보인다” 동국대학교 전산원 영화영상학부 김용규 교수 -동국대 전산원 영화영상학부만의 자랑거리를 소개한다면. =탄력적인 커리큘럼을 운영 중이다. 연출을 공부하다가도 연기로 옮길 수 있고, 연기를 하다가도 연출로 갈 수 있다. 한 분야에 대한 심화적인 공부도 가능하고 다방면의 공부를 자유롭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창작 공연도 30개 이상 올렸다. 무대연출부터 연기까지 학생들이 전부 한다. 학교에 오면 정신없이 공연 준비만 한다. 아이들에게 많은 무대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 -학생에 대한 지원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우리 애들에게 든든한 힘이 돼주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우선한다. 물질적 지원은 물론이고, 가장 안정된 상태로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현장에 계신 분들을 많이 모셔서 현장감 있는 수업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좋은 선생님들과 우리 애들을 맺어주고 싶다. -학교에서 원하는 인재상이라면. =문화계에 필요한 인재라면 누구나 환영이다. -지난해와 어떤 것이 달라졌나.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건 우리 아이들의 성장이다. 사회로 진출해서 자기 일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기도 하고, 무대에 올리는 공연 수준도 훨씬 높아졌다. 대학원에 진출한 아이도 있고, 독특하게 가요계로 들어가 가수가 된 아이도 있다. 지난번 제3회 노인영화제와 청소년영화제에서도 대상을 수상하는 등 꾸준히 영화를 찍고 있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극영화계에서 자신을 살아남게 하는 것은 결국 실력이다. 카메라로 클로즈업해서 얼굴 표정만 잡아봐도 안다. 외모나 스펙이 아무리 뛰어나도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랜 시간 버텨내기 힘들다. 개인의 포트폴리오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바쁘게 공연 준비도 하려면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 독선에 빠지지 말고 ‘어울리는 것’을 배우는 것도 필수다.

[김영진의 인디라마] 노동의 당당함이 좋아

이성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오래된 인력거>는 초반과 끝 장면이 맞물려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샬림이 이제 더이상 촬영하지 말라고 역정을 내는 데서 시작한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샬림의 인력거꾼으로서의 삶의 연대기와 그의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 다음 초반부에 보여준 그 시점에 다다른다. 아내와 아이들이 병을 앓으면서 삼륜차를 사기 위해 모아둔 돈이 줄어들자 샬림은 절망한다. 자신의 꿈이 사라지고 있노라고 울먹이던 그는 더이상 자기 삶에 간섭하지 말라고 카메라를 거부한다. 그 장면에서 갑자기 감독 이성규가 카메라 앞으로 튀어나온다. 그는 파국에 이른 촬영현장에서, 카메라 앞에서 샬림에게 영어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기 시작한다. 거듭 사과하며 샬림을 껴안는다. 3세계를 바라보는 인습적인 시선 벗어나 연출자가 카메라 앞에 나서는 것은 다큐멘터리에서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다. 연출자가 화자가 되는 일도 흔하고 종종 카메라 앞에서 피사체인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곧잘 있다. <오래된 인력거>에선 그게 느닷없이 일어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임 쏘리, 아임 쏘리”라고 거듭 이성규 감독이 샬림에게 말할 때 영화를 보면서 은근히 품었던 의심이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해소되는 걸 느꼈다. 예를 들어 샬림이 자기 인생의 꿈이라고 말하는 삼륜차를 사는 일의 실현 여부에 관해 생각해보자. 인도의 가난한 최하층 계급 인력거꾼의 삶을 찍는, 부자는 아니겠지만 샬림보다 더 나은 형편의 삶을 살고 있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해 영화를 보는 우리는 민감하게 느끼게 된다. 우리 돈으로 800만원의 구입비용이 들고 등록비까지 합하면 1200만원가량이 든다는 샬림의 삼륜차 구입의 꿈은 솔직히 말해 누군가의 도움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꿈이다. 이런 형태의 자선이나 구조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아프리카에 가서 유명인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번듯한 집을 지어주는 것을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봤다). 불행에 빠진 대상을 촬영하면서 거리를 두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윤리적 갈등을 드러낸다. 이들을 찍을 돈으로 이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다. 혹은 이 사람들에게 출연료를 줘 도울 수도 있다. 아니면 그들의 가난을 촬영팀이 소재로 착취할 위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감독의 ‘미안하다’라는 화급한 마음의 표시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서 피사체를 상대할 때 맞닥뜨리는 모든 인간적 곤경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픽션으로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스크린이나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은 흔하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실제 불행을 겪는 사람들을 여하간 대상으로 삼는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인력거>는 이 지점에서는 솔직하다. 설령 그것조차 자신들의 윤리적 곤란을 드러냄으로써 정당화하려는 방편으로 삼는다고 비난한다면 할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는 보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보기로 선택한 관객에게도 그건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마음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는 우리는 도덕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우리는 세상의 어두운 그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불행을 소비하지만 그것에 대해 별다른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정면으로 그 불편함을 드러낸다. <오래된 인력거>에서 샬림의 삶을 보여주는 시각은 그의 가난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노동을 상술하려는 쪽에 있다. 그는 인력거를 끄는 노동을 하는데 이 일은 가장 저임금을 받는 일에 속하고 그 때문에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신발을 신고서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샬림은 늘 맨발로 인력거를 끈다. 다른 인력거꾼들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는 기교적으로 보일 만큼 다양한 앵글로 인력거를 끄는 샬림을 화면에 담는다. 이것이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동시에 노동하는 인간의 당당함을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할 것이다. 요컨대 샬림은 말로 자신의 곤궁을 카메라에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가 일을 할 때 그의 당당한 자존도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는 가난한 마초 가장이지만 자신이 건사하는 가족을 위해 초인적인 노동을 감내하는 데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 당당함이 제3세계 사람들의 삶을 구경거리화하는 대다수 인습적인 텔레비전 카메라의 굴레를 벗어나게 해준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관객의 시선에 대해 수평적으로 맞서면서 샬림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개별화하고 있다. 카메라로 그의 삶은 보편적 휴머니즘이라는 틀 안에, 공감과 연민과 위로의 틀로 가장한 수직적인 시선의 압제에 굴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란 미학적 테제를 벗어난 형식 이런 장점이 일관되게 이 영화에서 관철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성규 감독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오래 작업한 장인이고 그의 작업 관행은 어쩔 수 없이 능숙한 테크니션의 손길로 드러난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원하여 찍은 화면을 그는 자유자재로 섞고 시공간을 하나의 연대기로 편집하며 화면과 반응화면의 틀로 편집된 것들은 뚜렷한 극적 흐름을 띤다. 미로 스페이스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서 만난 그는 이 영화에 쓰인 숱한 편집효과의 실례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를테면 우기에 물에 잠긴 콜카타 시내에서 인력거를 몰며 일하는 샬림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반의 한 시퀀스는 하룻동안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여러 날 동안 찍은 숏들을 편집한 것이다. 샬림의 젊은 동료인 마노즈가 과거의 충격적인 상처를 털어놓는, 논란이 될 만한 영화 속 한 장면에서도 트릭이 쓰였다고 한다. 마노즈가 맨 정신에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고 주점에서 술에 취해야만 과거를 주절주절 얘기하는 걸 취재해놓은 상태에서 마노즈를 따로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한 화면을 샬림과 대화하는 장면에 끼워넣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런 장치들이 덜커덕 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뭔가 연출된 느낌, 혹시 이것이 현장에서 자연스레 포착된 것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것의 시연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논란이 될 뿐만 아니라 비판이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거론한 장면이 진실인가, 진실이 아닌가에 관해 그 경계를 묻게 되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마노즈가 상처를 갖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카메라 앞에서는 꺼내놓지 않는다. 샬림이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촬영 스탭은 그를 따로 설득해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을 찍었다. 그러고는 샬림과 얘기하는 대목에 붙였다. 나는 이 장면에서 처음과 끝이 맞물리는 장치와 비슷한 형식적 고려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일관된 극적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된 이런 트릭이 덜커덕거리는 이물감을 준다면 그것은 카메라 바깥에서 벌어지는 진실 유무의 판단 이전에 감성적으로도 걸리는 부분이다. 진실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중요하다. 어쩌면 그 형식을 존중하는 것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굳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고유의 가치는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현실은 편집되는 것이다, 라는 명제는 맞다. 편집은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왜곡이나 창작자의 주관적 수용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창작자의 주관적 수용을 관객에게 밝히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예의다. 이것이 현대 영화의 기본적인 미학적 테제였다면 <오래된 인력거>는 그것조차도 관객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상정하고 창작자의 주관적 편집이 용인될 수 있다는 믿음 끝에 나온 형식적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인력거>는 완성도가 뛰어난 다큐멘터리이며 그 뛰어난 완성도를 위해 희생한 것이 적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감독 이성규의 진심을 믿는 쪽이지만 다음에는 그가 더 뻔뻔스럽게 극적 완결성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현실 앞에 순응하며 카메라의 부분적인 무능을 드러내는 쪽으로 가는 것 중에 택일했으면 한다. 이런저런 미덕과 이물감이 공존하는데도 감독이 그가 찍는 대상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느끼는 애증과 신뢰가 적실하게 드러나고 그게 관객의 마음에 흔적을 낸다는 것이 <오래된 인력거>의 매력이다.

[이 사람] 데즈카 오사무는 유효한 키워드

1월13일부터 22일까지 씨네코드 선재에서 열리는 데즈카 오사무 애니메이션영화제를 기획한 이철주 프로듀서는 막힘이 없다. 데즈카 오사무뿐만 아니라 문화 기획 전반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두루 피력한다. 그는 자신을 ‘문화기획자’라고 소개한다. 2004년 야외 오페라 <아이다>, 캄보디아 국립박물관 내한전, 연극 <햄릿>, 북한 금강산 극단 내한공연, 북한 음악 관련 음반 시리즈 등이 그의 손을 거쳐 태어났다. 한해 전에는 국제만화예술축제를 출범시켰고 그 계기로 올해는 데즈카 오사무 영화제까지 성사시켰다. “만화와 순수미술의 경계가 거의 없어지는 상황 아닌가. 그에 가장 걸맞은 아티스트는 누굴까 생각해봤다. 오사무야말로 일관되게 생명의 소중함, 인권, 반전쟁, 평화에 관하여 일관된 예술가의 태도로 말해왔다. 지금의 한국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키워드라고 판단했다. 지난해에 마침 데즈카 오사무 프로덕션 대표를 만날 기회가 있어 제안을 했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데즈카 오사무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사실 남달랐다고 한다. 신동호 화백과도 각별한 친분을 맺고 있었고 한국쪽에 하청을 주기 시작한 것도 그였다고 한다.” 이철주 프로듀서는 이번 영화제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걸 잊지 않는다. “그동안 간간이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들을 볼 순 있었지만 몇편의 단편 정도였다. 이번 특별전에서 선보일 작품들은 그간에 소개되지 않았던 단편이 중심이고, 장편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버전과는 다른 처음 보는 버전일 거다. 대부분 해외 전시의 경우 데즈카 오사무 프로덕션이 작품 선정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우리쪽에서 기획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철주 프로듀서는 “82학번이다.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보며 성장한 세대다.” 그의 원체험이 비로소 그의 일이 된 셈이다. “문화기획자들의 주전공은 다 다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새로운 것을 선호한다”는 그의 모험심 덕분에 우리는 지금 데즈카 오사무의 영화를 제대로 만나게 된 것이다.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의 기획은 분야를 막론하고 다 즐겁다.

[베를린] 독일 영화사가 오롯이 이곳에

유럽 최대 영화스튜디오 바벨스베르크가 2월12일 100주년을 맞는다. 이로써 바벨스베르크는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최고령 영화세트장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바벨스베르크는 16개의 스튜디오와 15만6천㎡의 야외세트장을 갖춘 거대 영화세트장이다. 세계적인 실력을 가진 영화세트장 제작자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또 지척에 콘라드 볼프 영화학교, 필름파크, 브란덴부르크방송국, 포츠담영화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어 영화와 관련한 볼거리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바벨스베르크가 자리한 포츠담은 베를린 시내에서 전철로 30분 거리에 있다. 포츠담은 특히 프리드리히 대왕(1712∼86)이 지은 여름 별궁 상수시(Sans Soucci)로도 유명하다. 현재 프리드리히 대왕 탄생 200주년이라고 떠들썩한 포츠담은 왕이 베를린에서 정사를 돌보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물색한 물 좋고 공기 좋은 터다. 그래서 지금도 독일의 유명인사, 연예인들이 모여사는 고급 저택들이 즐비한 비싼 동네다. 가히 독일의 베벌리힐스라 할 만하다. 바벨스베르크는 독일 현대사의 풍파를 겪어낸 장소다. 스튜디오는 독일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제3제국, 동독 공산주의, 통일을 거치면서 살아남았다. 1912년 독일 첫 무성영화 <죽음의 춤>이 여기서 제작됐고, 1921년 독일 영화사 우파(UFA)가 이곳을 인수한 뒤 전성기를 누렸다. 1920년대엔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의 <마지막 사람>(1921),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 요세프 폰 슈테른베르크의 <푸른 천사>(1930) 등 독일 표현주의 걸작들이 이곳을 거쳤다. 나치시대의 프로파간다 영화들도 이곳에서 제작되었다. 제3제국 시대에 우파 25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뮌히하우젠>은 당시 650만마르크의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이다. 분단 시절엔 거대 영화 제작사 우파가 동독의 영화사 데파 소속으로 바뀌었지만, 무려 1240편의 영화와 텔레비전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동독 시절의 거장 콘라드 볼프 감독도 이곳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바벨스베르크 영화학교도 동독 시절 이름 그대로 콘라드 볼프 영화학교다. 과거의 명성만을 안고 사라져가던 바벨스베르크의 화려한 부활은 독일 통일과 함께 서서히 진행됐다. 통일 뒤 바벨스베르크는 민영화의 진통을 겪고 난 다음 거대 상업영화 제작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2001년 바벨스베르크 스튜디오에서는 장 자크 아노의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가 촬영됐다. 바벨스베르크의 부활은 또한 새로운 독일영화의 부흥에도 큰 힘을 얻었다. 2차대전 이후부터 70~80년대까지 서독의 폴커 슐뢴도르프, 빔 벤더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동독의 콘라드 볼프 등 몇몇 유명감독을 빼놓고는 전체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독일 영화계가 통일 직후인 1990년대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베를린파를 비롯한 일군의 젊은 감독들이 부상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영화뿐 아니라, <굿바이 레닌> <타인의 삶> 등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영화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바벨스베르크는 <작전명 발키리>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등 거대 자본이 오가는 할리우드영화 촬영을 유치하는 데도 성공을 거두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작가>(2009)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요즘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영화는 한해 300편 정도다. 베를린이 뜨는 만큼 베를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도 늘고 있다. 포츠담과 베를린은 바벨스베르크 100주년 축하행사로 벌써부터 분주하다. 포츠담시는 지난해부터 ‘포츠담 2011-영화 도시’라는 타이틀로 콘서트, 영화 상영, 전시회, 강연, 학술회의 등 다채로운 행사를 열고 있다. 베를린 도이체키네마티크도 바벨스베르크 관련 사진전을 열고 있다. 62회 베를린영화제의 기념행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베를린영화제는 시대별로 골고루 선정한 10편의 바벨스베르크표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바벨스베르크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밀레니엄] 두 주인공의 성정치성에 매료

-당신의 흥미를 끈 요소는 연쇄살인보다 두 주인공간의 관계였다고. =어디서도 보지 못한 관계였다. 사람들이 소설에 그토록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두 사람이 보여주는 묘하고, 약간은 삐뚤어진, 과격한 우정 때문이지 않나 싶다.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의 관계가 평범했다면 스티그 라르손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스릴러로서도 흥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장면들은 재빨리 보여주고 지나가도 될 것 같았다. 그보다는 두 인물이 결합하는 방식, 그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 그녀가 그로 하여금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도록 내버려두는 방식 같은 것들에 더 관심이 갔다. 이건 어른들을 위한 영화다. 에이미 파스칼(소니픽처스 대표)도 시리즈물이라고 12세 관람가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영화를 맡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부분도 남녀간의 성정치적 측면이었다. -시리즈물이다 보니 제약이 많았을 텐데,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했나. =<에이리언3>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번에 내게 주어진 임무는 어디까지나 소설을 영화적 문법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스웨덴에서 미국으로 배경을 옮기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스웨덴에서 찍기로 결정했는데, 준비할 시간이 적었던데다 낮이 짧은 스웨덴 날씨 때문에 스케줄 조정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제작사가 매우 협조적이었다. 2편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원래 제작사들은 속편을 만들 의향이 있어도 말을 잘 듣는 감독인지 먼저 확인하기 위해 한편만 계약하니까. 다만 1편에 엮여 2편, 3편까지 계약하게 된 배우들에게는 책임감을 느낀다. -폭력에 대한 묘사 수위에 관해 말이 많은데 루니 마라와는 어떤 상의를 거쳤나. =두달 반 동안 강도 높은 오디션을 거치면서도 루니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리스베트의 자질 중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매우 단정하고 품위있는 사람이지만 리스베트가 되기 위해 자신의 원래 모습을 완전히 지워야 했다.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그녀에게는 엄청나게 소모적인 작업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성폭행 장면은 비록 연기라도 마음에 흉터가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약속했다. 그녀를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을 것이며, 어느 정도 노출되는지 알려주고, 캐릭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 피어싱을 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리스베트에 관한 권리는 전적으로 그녀에 게 있길 바랐다. -그녀에 비하면 미카엘은 선이 뚜렷한 인물이 아니다. =리스베트의 상대역으로 나설 남자배우가 없을까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대니얼 크레이그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한 배우였다. 웬만큼 훌륭한 성품이 아니고서야 그처럼 자신이 맡고 있는 다른 시리즈의 캐릭터(<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편집자)를 끌어와 농담거리로 삼기 힘들 것이다. -복수극이지만 썩 유쾌한 복수극은 아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즐거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속 성폭행 장면이 재밌어 보이면 안된다고, 혐오감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수가 답이 될 수도 없다. 샘 페킨파의 <어둠의 표적>이나 밥 포시의 <스타 80>을 보면 복수가 끝이 아닌 순간들이 있다. 그런 장면들에 감탄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 진짜 해결책은 관객이 그녀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보고 나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게 맞다. 타이틀 시퀀스에서도 타르나 탁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원초적인 이미지를 이용해 리스베트의 악몽을 그려내고 싶었다. 음악을 맡은 트렌트 레즈너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가 스웨덴에서 촬영하는 동안 18분 분량의 음악을 만들어 미리 보내주기도 했는데 편집 전에 음악을 먼저 들으며 작업해보긴 처음이었다. * 이 인터뷰는 <인디 와이어> <버라이어티> <텔레그래프>에서 발췌 요약한 것임을 밝 힙니다.

존 딕슨 카의 탐정들에게 기회를!

고전 추리소설을 각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명탐정이라는 인물들이 얼마나 정적인 사람들인지 생각해보라. 그들은 사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도 않고 육체적 액션도 많지 않다. 작가의 인기만 생각하고 접근했다간 낭패당하기 일쑤다. 셜록 홈스 영화가 그렇게 많은 건 그가 보통 명탐정들보다 훨씬 육체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의심난다면 애거사 크리스티 각색 영화들 중 성공한 작품들을 보라. <검찰측 증인>(Witness for the Prosecution, 1957)처럼 탐정이 나오지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이 더 잘 어울린다. 아마 예외가 있다면 토미와 터펜스 정도? 하긴 가장 먼저 각색된 크리스티 소설도 이들의 출연작이었다. 파일로 밴스, 엘러리 퀸, 드루리 레인도 각색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 여러분은 지금까지 나온 엘러리 퀸 영화들 중 한편이라도 아는 게 있는가? 이들의 작품을 제대로 살리려면 영화보다 어드벤처 게임을 만드는 게 낫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들은 사정이 낫지만, 그들은 이미 수없이 영화화되었다. 그래도 그들 중 괜찮은 작가는 누가 있을까. 난 일단 존 딕슨 카(카터 딕슨)를 뽑겠다. 일단 그는 퍼즐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가이니 자격이 충분하다. 그리고 이 작가의 작품 중 제대로 각색된 영화가 별로 없다. 그중 유명한 건 기데온 펠 단편 을 각색한 지닌 크레인 주연의 <위험한 횡단>(Dangerous Crossing, 1953) 정도인데, 여기엔 기데온 펠 캐릭터가 쏙 빠져 있다! 이해한다. 펠 박사가 위기에 빠진 여자주인공과 연애를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난 여전히 존 딕슨 카의 탐정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본다. 이들 중 상당수는 크리스티 소설처럼 영화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크리스티보다는 훨씬 시각적이다. 그리고 기데온 펠 정도라면 좋은 배우를 기용해 한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는 복잡하게 짜인 미스터리 속에서도 독자(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관객)를 지루하지 않게 할 정도로 신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전공인 밀실 미스터리는 소설보다 영화에서 더 효과적이다. 문제가 있다면 일반적인 시나리오작가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가 주연보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역할을 하는 조연에 가깝다는 건데… 그렇다면 그냥 조연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연속살인사건>은 어떤가? 충분히 스크루볼 코미디 재료로 쓸 수 있는 로맨스와 코미디가 있고 제2차 세계대전과 스코틀랜드 유령 전설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도 있다. 펠 박사의 비중은 비교적 적지만 그게 오히려 유리하다. 슬프게도. 펠 박사보다도 더 가능성이 있는 존 딕슨 카의 탐정은 파리의 예심판사인 앙리 방코랑이다. 우선 그는 메이저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영화적으로 각색할 수 있다. 기데온 펠과는 달리 그는 액션도 가능하며 그로테스크한 외모도 시선을 끈다. 그가 담당하는 사건들은 펠 박사의 사건보다 훨씬 멜로드라마틱하고 거창하며 더 영화적이다. 20세기 초반의 유럽 세팅은 향수와 로맨티시즘을 자극한다. 난 어렸을 때 <해골성>을 처음 읽은 뒤로 누가 이 말도 안되는 살인과 고문과 마술 이야기를 영화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요새는 이 책이 존재하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아쉽기 짝이 없다.

[타인의 취향] TV로 영화 보던 즐거움은 어디로

영국 출신의 피터 휴잇이라는 감독이 연출한 유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은 <메이든 헤이스트>(2009, 사진)라는 코미디영화가 있다. 취향에 미친 세 노인네에 관한 영화다.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는 로저(크리스토퍼 워컨)는 미술관에 걸려 있는 <외로운 여인>이라는 그림을 평생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걸 인생의 유일한 낙으로 삼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이 그림이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가게 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그즈음 그는 미술관의 다른 경비원 두 사람, 찰스(모건 프리먼)와 조지(윌리엄 H. 메이시)도 자신과 같은 심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찰스는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그림 한점을, 조지는 늠름한 남성의 나체 동상 한점을 평생 남몰래 애지중지해왔던 거다. 그들이 마침내 각자의 취향을 위해 합심하여 이 세 미술품을 탈취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코미디다. 세 사람의 나이를 대강 어림짐작으로 합할 때 200살은 넘어 보이니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최고령 ‘하이스트 무비’ 주인공들이자 가장 귀여운 좀도둑 영화에 속하는 것 같다. 얼마나 지난 뒤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우연찮게 별 생각 없이 어느 전시회에 들렀다가 20세기 초기에 활동한 그러나 나로서는 잘 알지 못하는 어느 미국 화가가 그린 1920년대 그림 한점을 보았다. 에드워드 호퍼 등 유명세 있는 화가들의 그림과 함께 걸려 있는데도 하필이면 그 그림만 눈을 찌르고 들어와 한참을 떠날 줄 모르고 그 앞에 서 있었다. 아주 가끔이나 그림을 보러 가는 무식한 처지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는데 평생 처음으로 얼마면 이 그림을 살 수 있을까 자문해보았고 실은 그 가격이 얼마이든 나의 가계로 그걸 해결할 순 없을 것이니 그럼 <메이든 헤이스트>의 살짝 정신 나간 노인들처럼 훔치는 건 어떠한가 하는 머릿속 농담에 이르렀던 기억이 난다. 그 그림의 내용과 제목을 말하고 싶진 않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그 그림이 돌연 없어진다면 그건 아마 저 영화의 노인들처럼 내가 훔쳤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헛소리를 하고 있나 싶어 돌이켜보니,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수년간 즐겨 봐왔으나 대략 몇년 전부터 부쩍 질적으로 저하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개인적으로 더이상 애정을 갖기 어려워진 EBS <세계의 명화>와 <일요시네마> 때문이다. 그림이면 목숨 걸고 훔치기나 하면 되지, 토요일 밤이나 일요일 낮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약간은 철지난 운치에 젖은 채 구식의 경로로 영화 보기를 즐기던 나의 취향은 요즘 사라졌다. 그런 취향을 만족시켜주던 그 프로그램들은 훔칠 수도 뺏을 수도 없는 그런 것 아니겠나 하는 생각 때문에 이런 헛소리가 나왔던 것 같다.

[design+] 치정과 불륜의 무대

늦게 퇴근한 모양이다. 4명의 가족이 모인 2층의 거실, 남자는 신문을 읽으며 혼자 저녁 식사를 하는 중이다. 탁자 위에는 탁자보가 씌워져 있고, 그 위에는 음식들이 간단하게 놓여 있다. 의자의 등받이는 서양인 체형에 맞춘 것인지 담벼락처럼 드높다. 여자는 남편과 마주 보지 않고 그의 뒤편 피아노 의자에 어정쩡하게 앉아서 바느질로 수를 놓는 데 열중하고 있다. 그녀의 뒤로는 음악선생인 남편이 이사 직전에 마련했던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고, 그 위에는 미니어처 인형들이 나란히 도열해 있다. 그 양편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모형이 그 인형들을 호위하고 있고, 바로 위의 벽면에는 두개의 탈바가지가 거실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편, 짙은 회색빛의 노출 벽면에는 원형의 금속 공예 장식물이 각각 두개의 노리개를 매단 채 걸려 있고, 커튼으로 감싼 듯 보이는 흰색 벽면에는 네개의 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피아노와 탁자가 함께 놓인 비좁은 공간에 벽면마저 산만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이들은 행복한 표정이다. 발코니 창 앞의 공간은 아이들 차지다. 두 남매는 그곳에 앉은뱅이 탁자를 놓고 실뜨기에 빠져 있다. 밤이 깊어지면, 이제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 것이며, 여자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1층 거실에서 재봉틀을 돌리며 남은 일거리를 마무리할 것이고, 남자는 2층에 남아 내일 수업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면 여자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가보자. 발을 내딛을 때마다 삐거덕대며 비명을 토해낼 것만 같은 나무계단이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달랑 세개의 백열전구로 복도를 밝히면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흥미롭게도 이 집에서 현관문을 제외한 모든 문은 여닫이문이 아니라 미닫이문이다. 문이 닫히면 밀실이 되지만 문이 열리면 열린 공간이 되는 입식 방들의 기묘한 구조. 이제 좀더 시간이 지나면, 1층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들어와 흑백의 거친 빛 입자를 분사하면서 금발의 팔등신 미인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며, 2층의 빈방에는 하녀가 들어와 집수리와 이사로 심약해진 여자를 도와서 가사를 돌볼 것이다. 이 가족 앞에는 4 . 19혁명과 5 . 16쿠데타 같은 정치적 격변이 기다리고 있지만, 청년기에 두번의 전쟁을 경험한 남자가 하녀와 정분나는 일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혹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자가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오는 젊은 여성들과 바람 피우는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그들은 낡은 건물이긴 하지만 새로 수리한 이층 양옥으로 이사해 중류 계층에 진입한 가족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취미로 유명했던 1919년생 감독이 1923년생 배우를 남자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에서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들의 유년기 기억에 남아 있던 일부다처제의 봉건 잔재는 이제 치정극의 내적인 동인으로 거듭날 것이며, 그들을 매혹할 젊은 여자들은 상행선 열차를 타고 계속 서울로, 서울로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 영화 잘 짓는 남자

말도 못하게 추운 날. 김중현 감독은 밤늦게까지 <가시>의 예고편을 편집 중이었다. <가시>는 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결과물인데, 다른 작품들과 함께 3월8일 국내 개봉이 확정됐다. 개봉하는 건 좋아도 얼른 손을 털고 새 작업에 매진하고 싶어 하는 눈치도 엿보인다. “일들이 뭔가 계속 진행 중이다. 그동안 차분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부족했다. 자잘한 일들이 많았다고 해야 하나.” 그럴 만도 했을 거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출품되어 주목받았고 올해 초에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 초청이 확정됐고 그 뒤로도 마이애미영화제, 홍콩영화제까지 아직 <가시>와 함께 갈 길이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족 때문에 돈의 수렁에 빠지고 악순환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젊은이를 그린 이 영화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삶의 고통이라는 문제를 건드렸나 보다. “내게는 과분한 평이지만 가슴이 아프다, 힘들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다. 아무래도 내 영화의 인물들이 극단의 빈곤에 있다 보니 그걸 리얼하게 받아들인 분들이 해준 말씀 같다. 나로서는 왜곡하지 말고 솔직하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평이나 감상이 감사할 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느껴주신 거니까.” 다만 스스로의 평가는 좀 야박하다. “가끔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보면 아쉽거나 답답하다. 여유를 더 가졌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동료들과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 같았던 촬영현장에서의 그날을 말할 때는 그도 자연스레 들뜬다. “어머니가 판타지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대책없이 도로에서 운전도 못하는 여배우에게 운전을 시켜가면서, 게다가 재촬영까지 하면서 찍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걸 찍었던 날, 다들 비슷한 느낌을 느꼈다는 걸 알게 됐다. 뭔가 같은 걸 본 느낌이라고 할까.” 영화제에서 관객과 함께 영화를 보면 좀더 예민해져서 안 보이던 것까지 보인다고 하니, 어쩌면 그의 이번 베를린행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다. “어떤 선생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밥맛은 아는데 밥은 지을 줄 모른다고 하신 적이 있다”며 그는 겸손하게 웃었는데, 그러니 그의 올해 계획은 이런 거 아닐까? 밥맛도 잘 알고 밥도 잘 짓는 감독. 맛있는 밥 기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