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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하도다,고전적 우아함의 극치!<파 프롬 헤븐>

■ Story 1957년 코네티컷 하트포드. 이곳에서 모범적인 여성으로 평판이 높은 캐시(줄리언 무어)는 남편과 두 아이들과 함께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늦게까지 일하고 있는 남편 프랭크(데니스 퀘이드)를 위해 도시락을 싸들고 남편의 회사를 방문한 캐시는, 한 남자와 애무를 나누고 있는 남편을 발견하고는 충격에 빠진다. 프랭크는 캐시의 충고를 받아들여 정신과 치료에 응하기로 한다. 하지만 프랭크는 자신의 동성애적 욕망을 끝내 억제하지 못한다. 한편 캐시는 그녀의 집 정원사였던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정원을 가꾸고 있는 흑인 레이몬드(데니스 헤이스버트)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데, 이웃의 사람들은 캐시와 레이몬드의 관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악의적인 소문을 흘린다. ■ Review 다행스럽게도, 아주 가끔은 우리에게도 이런 영화와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 매우 지적이고 아름다운 영화 <파 프롬 헤븐>은, 의심의 여지없이 올해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이제까지 접할 수 있었던 모든 영화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더욱 풍성하고 황홀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단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인물들의 감정을 온전히 믿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 어쩌면 할리우드 고전기의 멜로드라마, 혹은 더글러스 서크(혹은 데틀레프 시에르크)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거나 그의 영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진술은 그저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 프롬 헤븐>은 표피적인 인용과 장르 뒤틀기를 통해 영화적 기억을 과시하고 비꼬는 듯한 웃음을 드러내 보이는 게 아니라, 매우 사려깊은 태도로 할리우드 고전장르의 미덕- 이를테면 표면적인 서사구조 뒤에 감춰진 불안과 히스테리를 배치하는 스타일상의 요소들- 을 소중히 받아들인다. 즉 외부로부터의 침투를 통해 장르를 파열시키는 대신, 안으로부터의 조심스러운 확장을 통해 고전기 장르의 무의식과 우리 동시대의 인식이 소통할 수 있는 미세한 구멍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파 프롬 헤븐>의 서사는 서크의 영화 가운데서도 특히 상류계층의 미망인과 정원사 아들과의 사랑을 그린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1955)- 과거에 <순정에 맺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개봉되었다- 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토드 헤인즈는 이를 상류계층 사교계의 여왕 캐시와 그녀의 흑인 정원사 레이몬드와의 로맨스로 변주함으로써 서크의 다른 영화 <슬픔은 그대 가슴에>(1959)에서의 인종문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가능케 한다(또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을 번안한 파스빈더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3)를 동시에 환기시킨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 가운데 하나는 캐시의 남편 프랭크인데, 그는 동성애적 욕망 때문에 그간 쌓아올린 명성과 자신의 가정이 위협받는 것에 대한 공포로 시달린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병’으로 해석하며 아내 캐시와 함께 정신과에 찾아가 치료를 부탁하기도 하는데, 아내와 관계를 갖는 데 실패한 그가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하는 부분에서 예기치 않게 (역시 더글러스 서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바람에 쓴 편지>(1956)의 재벌 2세 카일 해들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매우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토드 헤인즈는 서크의 영화에서 매우 모호하게 나타났던 게이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좀더 직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이것이 고전기 장르의 무의식 내에서 어떠한 균열을 만들어내는가를 차분히 응시한다. 물론 <파 프롬 헤븐>의 중심적 관계는 캐시와 레이몬드 사이에 놓여져 있는 것이라는 점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둘은 그들을 향한 하트포드 마을 공동체 성원들 각각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그물망, 혹은 시선의 감옥에 포획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시선들의 감시는 공동체의 암묵적 윤리를 두 연인에게 강요한다. 딸의 댄스경연대회에 참석한 캐시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하트포드 여인들과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점숏은 이러한 주제를 시각적으로, 그것도 아주 소름끼치게 보여준다. <파 프롬 헤븐>이 서크의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과 크게 갈리는 것은 결말부에 가서이다. 캐시와 레이몬드에게는 서크의 연인들에게 마련되었던 것과 같은 모호한 재결합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딸이 린치를 당한 뒤 급기야 레이몬드는 하트포드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기차에 오른다. 승강장에 간 캐시는 살며시 손을 들어 작별을 고하는 레이몬드의 모습을 말없이 응시한다. 아마 여기서 느껴지는 아픔에 비견할 만한 것은 데이비드 린의 소품 걸작 <밀회>(1946)에서의 이별장면 이외에 달리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처음 발표되고 난 뒤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파 프롬 헤븐>은 서크의 영화가 보여주었던 테크니컬러의 질감, 음영과 색채의 효과를 극대화해 이루어낸 표현적 미장센 등을 고스란히 되살려내고 있다(게다가 엘머 번스타인의 사운드트랙 또한 영화에 맛을 더한다). 즉 우리가 이 영화에서 보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우리가 거의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전적인 우아함의 극치이다. 사실 <파 프롬 헤븐>을 처음 보게 될 때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그 시각적인 황홀함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예컨대 캐시의 머플러가 바람에 날려 사라진 자취를 따라 그대로 허공을 날아 비상하는 카메라를 눈앞에서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한번쯤 숨을 고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캐시 역을 맡은 줄리언 무어, 그녀의 남편 프랭크 역의 데니스 퀘이드, 그리고 레이몬드 역의 데니스 헤이스버트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덧붙이자면 <파 프롬 헤븐>은 2002년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되었으며, 미국 내의 평자들로부터는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제4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 상영되기도 했다. :: 멜로드라마의 장인 더글러스 서크불안한 해피 엔딩을 멜로 품안에 더글러스 서크는 본디 독일 태생으로 1930년대 후반 나치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오기까지 독일의 우파(UFA) 영화사에서 감독생활을 했다. 이후 그는 할리우드에서 다수의 멜로드라마들을 만들어냈는데, 특히 1950년대 그가 자신의 팀을 이끌고 유니버설사에서 만든 일련의 영화들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당대의 서크는 대중적으로 폭넓은 관객에게 인기를 끄는 이른바 ‘최루성 멜로드라마’를 만드는 상업영화감독으로 인식되었으며, 프랑스의 소수 지지자들을 제외하고는 미국 내 평자들 가운데 그에게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 이는 거의 없었다. 그는 1959년에 발표된 <슬픔은 그대 가슴에>를 끝으로 더이상 상업영화작업을 계속하지 않았지만, 이후 정신분석학적 영화연구 패러다임에 재발견되어 중요한 거장의 지위에 올라서게 된다. 그는 말년에는 독일로 돌아가 거기서 영화를 가르치기도 했다. 언뜻 평범한 줄거리를 지닌 그저 그런 멜로드라마처럼 보이는 서크의 영화들은 여러 평자들에 의해 지적되듯이 독특한 색채감각과 조명의 활용, 기묘하게 불안감을 유발하는 미장센과 카메라워크 등의 스타일적인 요소들에 의해 평범한 멜로드라마들과 구분된다. 토드 헤인즈의 <파 프롬 헤븐>이 환기시키는 서크 영화들은 대략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 <바람에 쓴 편지> 그리고 <슬픔은 그대 가슴에> 등이다(이 영화들은 최근엔 EBS를 통해 모두 방영되었다). 이들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다소간 모호한 불안을 감춘 ‘이상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데, 이는 오히려 그러한 결말을 낯선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의심하게끔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종종 지적된다. 그외 서크의 영화 가운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으로는 <마음의 등불>(1954),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8) 등이 있다. 서크의 영향을 받은, 그리고 그것을 공공연히 인정한 감독으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를 떠올릴 수 있다. 모더니스트적이고 실험적인 그의 영화들과 서크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몇몇 멜로드라마들은 분명히 양식상의 차이를 드러낸다. 파스빈더는 서크가 독일로 돌아와 영화를 가르칠 때 그를 직접 찾아가 만나보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낯선 형식의 체험,<아리랑>

■ Story 때는 일제시대. 경성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정신이상자가 되어 귀향한 영진(노익현)은 일본 순사나 그 앞잡이들만을 골라서 골탕먹이는 기행으로 소작농 아버지의 근심을 산다. 누이 영희(황신정)는 대학생 현구(이필모)와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악덕 지주의 아들 기호(최대원)가 치근대는 바람에 괴로워한다. 기호가 영희를 겁탈하려 하자 영진이 낫을 들어 살인을 저지른 뒤 정신이 돌아온다. ■ Review 나운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아리랑>을 리메이크한다…. 국가적인 기념 사업이라면 도리어 때늦었다 하겠지만 민간인 제작자(이철민)가 상업영화의 지형 안에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다소 어리둥절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관객 입장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무엇보다 <아리랑>이 지난 80여년 동안 항일 혹은 민족주의를 호소하려는 모든 드라마와 영화에 원형적인 내러티브를 제공해왔기 때문에 이야기성의 측면에서는 리메이크 <아리랑>이 관심을 끌기 어렵다. 그래서 이두용 감독이 택한 전략은 형식의 복원이다. 흑백이자 변사의 해설을 수반한 무성영화라는 기원적인 영화형식이 하이퍼 테크놀로지 시대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낯선(!) 형식이란 적절하게 사용되기만 한다면 새로운 재미의 원천이다. 초기 영화들은 오늘날과 같은 1초당 24프레임이 아니라 18프레임으로 찍혔다. 사람의 움직임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보이지 않고 툭툭 끊어지듯 다소 빠른 것은 이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기술적인 한계로 인한 결함이었겠지만 오늘날에는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에서 보듯이 무성영화의 독특한 느낌과 매혹을 상징하는 하나의 특징으로 여겨진다. 리메이크 <아리랑>은 초당 24프레임과 18프레임 두개의 버전으로 촬영되었지만 개봉되는 것은 18프레임짜리다. 이것은 이두용 감독이 내린 가장 중요한 결정인 것으로 보인다. 원작 <아리랑>은 “극장 안이 눈물바다가 되었고 모두가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는 구전과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비극이다. 그러나 리메이크 <아리랑>이 이런 식의 비극성을 계승하려 한다면 시대착오적이 될 우려가 크다. 반면 18프레임 영화는 오늘날의 관객에게 코미디의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그것은 우리가 주로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접하고 기억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18프레임 영화의 특성상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과 동작을 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내면 연기나 오밀조밀한 서사 대신 외적인 상황 중심으로 액션이 큰 연기를 하게 되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기에 과장된 연기를 하게 된다는 뜻이고, 곧 줄거리를 탁탁 토막 쳐 넘기면서 배우 액션이 거의 안무 수준으로 크고 코미디의 느낌을 적절하게 끌어들이는 시트콤 효과와 연결된다. 이두용 감독이 택한 전략은 형식의 복원이다. 흑백이자 변사의 해설을 수반한 무성영화라는 기원적인 영화형식이 하이퍼 테크놀로지 시대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기법은 필연적으로 타이트한 숏 대신 풀숏과 롱숏을 주로 사용하게 만든다. 이는 세트 촬영이 아닌 한옥 마을을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영화적 특성과 잘 어울리고, 사극의 베테랑인 감독의 연출력을 한껏 과시하는 효과를 수반하기도 한다. 원숙한 중견감독이 만들어내는 화면에는 신인감독들의 영화에서 얻기 어려운 어떤 쾌감이 있다. <아리랑>의 경우에도 카메라의 위치와 이동이 낳는 미장센이 유려하고 편집 리듬도 쾌적하다. 짤막짤막한 플래시백숏을 현재의 화면과 막바로 대응시키면서 이야기의 효율성을 높여가는 대목도 눈여겨보게 된다. 무성영화는 한번도 무성인 적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아리랑> 역시 엄청난 소리로 넘쳐나는 무성영화다. 과거의 무성영화가 자막과 변사의 해설을 교대로 사용하고 음악 반주를 곁들인 것과 유사하게, 여기서도 자막 대신 배우들의 목소리 일부를 후시녹음으로 집어넣었고 변사(최주봉)의 해설과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용했다. 변사와 음악은 배우들의 연기 톤을 정서적으로 보완할 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 해석을 지배한다. <아리랑>에서 가장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컬러 유성영화에 24프레임으로 전환한 마지막 시퀀스다. 앞부분이 답답하다고 느낀 사람에게는 “눈이 시원해지는” 변화겠지만, 앞부분이 흥미로운 영화적 성취라고 본 사람에게는 기가 탁 막히는 ‘악수’다. 고군분투했을 제작현장의 어려움이 컬러 화면을 통해 조악하게 드러날 뿐, 흑백 18프레임을 통해 관객의 정서를 좌지우지하던 앞부분에 비해 효과가 떨어진다. 오래된 양식이라고 해서 낡은 것이 아니고, 최근 것이라고 해서 현대적인 것이 아니다. 혹시 제작진 내부의 이견을 절충한 끝에 나온 산물이라면 재고를 요청하고 싶을 만큼 안타까운 일이다. 나운규의 <아리랑>과 변사영화가 불가능하다면 푸른 바다에 빠져 죽으리라! 리메이크 <아리랑>의 원작이 된 1926년작 <아리랑>(감독 나운규)은 초기 한국영화가 미학적, 산업적으로 성립되는 데에 일대 분수령이 된 작품이다. 어느 나라나 초기 영화사는 영화라는 완전히 낯선 매체를 양식적으로 개발하고 영화제작의 원형적인 이념이나 이야기성을 찾아나가는 데에 바쳐진다. 한국의 경우 식민지 상황에서 영화를 수용했기 때문에 이같은 과제는 선진 각국에서 수입되는 영화들을 흉내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나운규의 <아리랑>은 이처럼 지난한 문제를 해결한 전범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리랑> 같은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 당대의 화두였다), 항일 민족주의라는 절체절명의 사회적 과제를 돌파해낸 뛰어난 문화적 생산물이기도 했다. 철권 통치를 자랑하던 일제 당국이 이 영화의 확산을 저지할 수 없었던 괴력의 정체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운규는 십대 때 고향 회령을 떠나 청진에 머물면서 “엑조틱한 기분을 느낀다”고 일기에 적은 자유인이자, 한국 최초의 영화사인 부산키네마에 입사 시험을 치르면서 “영화 하나 때문에 가정의 정을 버리고 학업을 중지하고 이렇게 불타는 정열을 바치는데 입사가 불가능하다면 푸른 바다에 빠져 죽으리라”고 썼던 시네필이었다. 1937년에 만 35살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27편의 작품에 간여했던 나운규의 필모그래피는 문헌밖에 남아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춘사’라는 신화 속에 가둬두기에 갑갑한,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을 띠고 있다. 리메이크 <아리랑>의 흥미 요소 가운데 하나는 변사다. 변사는 한국에서 특히 오래 살아 남아 해방 이후까지 활동했는데, 이미지로 하여금 말과 내러티브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하며 영화의 해석을 감독의 의도로부터 떼어내어 순간적이고 다양한(localized) 해석에 일정 부분 내어 맡기는 기능을 했다. 이 영화의 경우 변사의 목소리가 이미 더빙되어 있기 때문에 변사의 해설이 곧 감독의 해석이라는 변용을 낳았다. 변사의 기능은 현대 영화감독들에게도 숙고해볼 만한 사안일 것 같다.

[인터뷰] <황산벌>의 박중훈

박중훈이 영화 <황산벌>(제작 씨네월드, 감독 이준익)로 국내 영화계에 돌아온다. <세이예스> 이후 2년여만의 충무로 복귀지만 주무대인 코미디 영화만 보면 관객들은 97년 <할렐루야> 이후 6년만에 그의 코믹 연기를 보게되는 셈. <황산벌>은 1천300여년 전 신라, 고구려, 백제 등 삼국이 지금처럼 사투리를 썼다는 가정 아래 황산벌 전투를 뒤집어보는 역사 코미디. 전라도 장수 계백역을 맡아 사투리 연기에 도전하는 그는 정진영(김유신), 오지명(의자왕), 김선아(계백 처), 이원종(연개소문) 등과 호흡을 맞춘다. 20일 영화의 제작발표회가 열린 충남 부여에서 만난 박중훈은 "전략이나 계략은 뒤떨어지지만 충성스럽고 우직하면서도 뚝심있는 역할"이라고 계백역을 설명했다. 그는 "최근 촬영을 시작한 후 이유없이 몸이 안 좋아지다가 촬영장에 들어오면 멀쩡해지는 이상한 경험을 하고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계백역에 흠뻑 빠져있다는 얘기. 게다가 관객들을 즐겁게 해야하는 코미디 영화이면서 역사적 인물이라는 '진실'을 연기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그에게 또 한 가지 새로운 도전은 바로 사투리 연기. 박중훈은 제작사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녹음해 CD로 만들어준 '사투리 교본'과 전라도 출신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 사투리를 '마스터'했다. 여덟살 난 아들과 각각 여섯살, 세살인 딸을 두고 있는 그는 지난 연말 <찰리의 진실>이 국내에서 개봉한 이후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다. 쉬는 동안 그는 주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고. "한창 바쁠 때는 아이들이 '아빠 또 놀러오세요'라며 어색해할 정도였거든요. 애들과 같이 시간 보낸게 제일 좋았어요. 요즘엔 될 수 있으면 주말에라도 아이들과 함께 지내려고 합니다" <세이예스>나 <아메리칸 드래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찰리의 진실> 등을 거쳐 오래간만에 코미디영화로 돌아온 그가 이번 영화에서의 연기 포인트는 '웃기려고 노력하지 말 것'. "사실 캐스팅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죠. 삼국시대에 전라도 사투리를 하는 계백장군이니까요. 제 이미지에 갑옷에 수염에… 이 이상으로 '오버'해서 웃기려고 해서는 오히려 안될 것 같아요. 감독님의 주문도 '정극'처럼 집중해서 연기해달라는 것이고요" 그는 이번 영화에 출연하면서 총 촬영 기간과 하루 노동시간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하루 12시간 이상은 촬영하지 않으며 이후 12시간을 쉰 이후에 촬영을 속개할 것. 7월 15일 이전에 본인 출연분을 완료할 것 등이 그 내용. 별도로 시간계약을 하지 않는 충무로 관행을 비춰보면 신선한 변화다. "시간 계약은 프리프로덕션이나 시나리오의 완성도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고 결과적으로 제작시스템의 합리화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배우들 뿐 아니라 스태프들 전체의 환경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으면 하는 바람에서 '돌팔매'를 맞을 각오를 한 것이죠" 그는 올 연말께 할리우드 영화 <페퍼 팟>(Peper Pot)에 주인공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어댑테이션>의 제작자 피터 세라프와 <찰리의 진실>의 조너던 드미 감독이 제작을 맡는 영화로 내용은 동양 남자와 백인 여자 사이의 로맨틱 코미디. 현재 첫번째 시나리오가 나온 상태다. (서울=연합뉴스)

별은 관객의 시선에,서인석 <별> 미술감독

처음 <별> 시나리오가 나올 당시, 장현일 감독은 세트 제작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올 로케로 촬영을 마칠 예정이었다. 시나리오상 산속에 자리한 전화국 중계소야 팔도를 뒤지면 한적하고 조금 낭만적이기까지 한 적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메라 동선도 크지 않은 장면들이니 적당한 장소만 찾으면 현장에서 모든 촬영 스케줄을 감내할 수 있을 거라던 감독의 기대는 프리 프로덕션 1단계인 헌팅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강원도에서 시작된 산행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아우르다 결국 소백산 연화봉에 이르러서야 끝이 났다. 겨우 한달뿐인 준비기간을 헌팅에만 쏟아부은 셈이었다. 감독의 예상을 깨고, 산속 중계소는 호텔을 방불케 할 만큼 호화롭기 그지없었고, 낭만을 논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웅장했다. 게다가 전화국 중계소만 달랑 있는 경우는 드물고 각종 유선방송 중계국과 군사기지가 한데 어우러져 있기 일쑤였다. 소백산에 자리한 전화국 중계소를 찾아낸 것으로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다. 이야기 배경이 가을과 겨울인지라 계절을 좇아가는 일정이 녹록지 않았고, 특히 겨울 소백산의 일기가 너무나 불안정했기 때문에 촬영일정은 툭하면 좌절됐다. 결국 양수리촬영소에 세트를 짓기로 결정하고, 보통 내부촬영에만 쓰이는 세트가 아닌 중계소 안과 밖을 모두 재현한 세트가 지어졌다. 그런 과정에서 예산은 애초 금액을 훨씬 넘어섰고, 세트와 그 밖의 소품까지 담당했던 미술팀의 고충은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아파트 일대를 돌며 버려진 가구며 생활 소품들을 주워오는 것은 물론이고, 겨울의 세찬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 튼튼한 중계소 외부를 짓기 위해 가을 내내 소백산 연화봉 정상에 구슬땀을 묻었다. 눈이 자동차와 키를 나란히 할 땐 일일이 쓸며 정상 탈환을 해야 했는데, 등산객의 따가운 눈초리도 미술팀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고. 미술감독 서인석(34)씨와 다섯명의 미술팀원들은 함께 모인 기억이 드물 정도다. 영우(유오성)의 옥탑방 내부과 수연(박진희)의 동물병원 내부, 소백산 중계소 현장 세트와 영춘에 자리한 동물병원 외부를 마감하기 위해 모두 네팀으로 흩어져 활동했기 때문이다. 팀을 통솔해야 하는 서 감독의 경우 한곳이 마무리되는 것을 보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각각의 마감상황을 체크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주요 무대인 중계소 촬영 때문에 소백산을 제집 드나들 듯 오르내리기를 한달, 드디어 10월1일 크랭크인 일정에 맞출 수 있었다. 어렵게 연출한 세트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로선 배운 게 참 많은 현장이었다. 관객에게 인정받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현장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관객이 얼마나 세세한 부분까지 체크하는지, 영화에 요구되는 진정성이란 무엇인지, 남모르게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그로서는 자신의 영화가 가야 할 길이 대충 눈에 잡히는 중이다. 영화 찍겠다고 덤비는 후배들에게 “정말 잘할 자신 있으면 하라”고 넌지시 조언하는 그는 관객의 평만큼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은 없다고 믿게 됐다. 그의 믿음을 현실에서 알현할 순간을 기대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글 심지현·사진 조석환 프로필 1970년생·중앙대 조소학과 89학번한미르(‘god’편) CF를 비롯, 각종 방송광고 및 뮤직비디오 소품 제작 및 MBC, KBS 미술센터에서 활동<내츄럴시티>(민병천 감독), 단편 <박상병 파리 들어왔다> 미술·세트 제작<별>로 미술감독 입봉·현재 狂 영상미술 제작공장 운영(기획실장)

여전히 쿨한 그들,<트루 로맨스> SE

<트루 로맨스>는 꼭 10년 전에 개봉했다. 당시 한국 극장가에 걸렸던 <트루 로맨스>를 야단스럽게 수식했던 문구들은 ‘신세대와 MTV의 영화!’ 비슷한 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낯선 느낌은 그 홍보 문구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당혹스러움의 정체는 오히려 <트루 로맨스>에 충만한 일종의 난폭한 정서에서 비롯되었다. 그건 폭력이 난무한다는 의미에서의 물리적인 난폭함이 아니다. 처음 만나는 남자에게 “넌 나의 운명이야”라고 곧장 고백하고, 재수없는 포주를 곧장 처단하러 달려가고, 자신의 혈통을 조롱한 상대방의 머리에 곧장 총구를 들이대고, 친구의 행방을 묻는 악당에게 망설이지 않고 곧장 정답을 누설하며…. 그런 식의 ‘곧장’의 물결들. 직설적인 유머와 조롱의 기이한 랑데부, 잔혹한 죽음과 천진난만한 사랑의 맹세가 시침 뚝 떼고 나란히 연결되는 정서의 만화경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이제 2003년으로 넘어온다. “안녕하세요, 전 쿠엔틴 타란티노입니다. 자, 무슨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쿠엔틴 타란티노의 음성이 화면 위로 겹쳐지면서 이미 심장은 두 방망이질을 친다. <트루 로맨스>는 1980년대 중반 타란티노가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완성한 첫 시나리오다. ‘첫 번째’라는 단어가 으레 암시하듯이 그는 시나리오에 당시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아직 이루지 못했으나 언젠가 꼭 실현시키고 싶은 꿈을 투영시켰다. 타란티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뻔뻔스러울 만큼 낭만적인 연애, ‘할리우드는 모르지만 영화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남다른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는 용기, 남들 모두 좀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 하지만 타란티노는 결과물로서의 <트루 로맨스>가 토니 스콧의 영화라고 단언한다. “대본은 애인과 같죠. 옛날 대본은 옛날 애인이에요.” 6년 동안 제작자를 찾지 못했던 <트루 로맨스>는 타란티노가 이미 시나리오를 완성할 당시 품고 있던 내면의 동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토니 스콧에게 넘어갔고, <저수지의 개들>에 가까운 어두운 인디영화가 아닌 ‘때깔 좋게 근사한 홈무비’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토니 스콧은 진심으로 클레어런스와 앨라배마의 러브스토리에 매혹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두 마리 ‘상처받은 새’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원래 각본의 비극적 결말(클레어런스가 죽고 앨라배마가 비참한 심정으로 돈가방을 챙겨 고속도로를 달리며 혼잣말을 지껄이는 장면. 어쩐지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 바치는 타란티노의 오마주처럼 느껴진다)을 행복하고 낭만적인 그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타란티노가 끼어든다.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두 연인의 동화였어요. 토니는 그것을 한층 더 동화처럼 만들었죠. 토니의 영화에는 토니의 엔딩이 더 어울렸어요.” 잠깐, 거기에 한마디만 첨가해도 될까? <트루 로맨스>를 관람한 커플들이 주문처럼 되뇌었던 “You’re so cool”은 토니 스콧과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그대로 바치고 싶은 찬사라고. 기꺼이 오디오 코멘터리에 참여한 배우들이 고백하는, 단역 출연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영화의 일부가 되고 싶어했던 무수한 욕망을 듣고 있노라면 그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노라고. PS1: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옥에 티. 익스플로테이션영화를 ‘개척영화’로, 스파게티 웨스턴을 ‘웨스턴식 스파게티’로 번역한 자막은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PS2: 서플먼트에 수록된 삭제신의 놀라운 진실! 단 한컷 출연한 장면이 삭제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영영 영화에서 사라진 배우는 잭 블랙이다(<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바로 그 남자). 김용언 mayham@empal.com True Romance Special Edition, 1993년감독 토니 스콧 | 출연 크리스천 슬레이터, 패트리샤 아퀘트, 데니스 호퍼, 크리스토퍼 워컨장르 드라마, 액션 | 화면포맷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2.35:1, NTSC 오디오 dts & 돌비디지털 5.1 서라운드 & 2.0 스테레오출시사 스펙트럼 ▶▶▶ [구매하기]

예술영화의 진흥정책은 전액지원제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영화진흥사업 지원부문을 살펴보면 무려 25개 분야에 걸쳐서 진행된다. 이쯤 되면 영화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부문에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예전 영진위의 주먹구구식 진흥사업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며 영화진흥을 도모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속내를 비집고 들어가보면 답답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전히 나눠먹기 혹은 눈치보기식의 폼새를 걱정해야 하는 정책 아닌 정책의 무원칙이 이면에 숨어 있다. 일반적으로 정책이라 함은 장단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며, 단계적으로 실행해가면 그것에 따른 성과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모든 분야를 다 헤집어볼 수는 없지만, 영진위의 예술영화 진흥정책이 왜 성공할 수 없는지는 꼭 말하고 싶다. 영진위의 국내진흥사업 중 ‘저예산 예술영화 제작지원’ 부문이 있다. 순제작비 12억원 이하로 작품성과 예술성을 지향하는 극장상영용 영화에 한해 50% 내에서 최고 4억원까지 지원을 받는 제도다. 지원편수는 5편 내외다. 우선 순제작비를 12억원 이하로 제한하는 문제부터 살펴보자. 나름대로의 기준이 필요하겠지만, 이는 시장의 논리를 잣대로 한 기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업영화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으면 굳이 영진위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다. 예술영화는 왜 저예산이어야만 하는 것도 모순이지만 시장의 논리에 근거하면서 예술영화 운운하는 것은 더더욱 모순이다. 물론 예술영화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하며, 재생산이 가능하려면 투자한 제작비를 기본적으로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요는 이런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영화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작품성과 예술성이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계속해서 좋은 작품들이 제작될 수 있는 원천적인 토대가 마련되어야 하는 문제다. 예산의 문제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예술영화는 돈이 안 되니까 무조건 저예산이어야 하는 발상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상상력을 원초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결국 품질이 떨어지는 예술영화가 양산되고, 예술영화가 재생산될 수 있는 시장은 형성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영진위에서 현금 3억원 물품지원 1억원을 받았다고 치자. 나머지 제작비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일반 투자자들은 영진위에서 지원받았다는 사실을 알면, 그 작품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왜? 저예산 예술영화니까. 영진위의 지원은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마이너스다. 결과적으로 그 영화는 만들 수 없거나 기형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어 이상한(?) 작품이 되어버린다. 결국 예술영화의 품새만 차린 영화는 관객에게 외면당하고, 투자자들은 역시나 시장의 논리를 운운하며 자신들의 편견에 안주하게 된다. 이것은 예술영화를 지원하는 제도가 아니라 예술영화를 망치는 제도다. 사업의 목적이 ‘작품성과 예술성을 지향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면, 영진위는 제도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영진위가 이런 현실의 문제를 모르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정책 입안자들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문제다. 그런데, 왜? 사실 예술영화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것은 일반 상업영화처럼 한편의 기획에 승부를 거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한 사람의 감독을 만들어내야 하는 문제다. 그것은 곧 한편의 영화가 아니라 적어도 몇편의 영화를 통해 형성되는 기나긴 투쟁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위해서 예술영화도 필요하니까가 아니라 전략적인 지원과 현실가능한 방법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감독의 어떤 작품을 밀어줄 것인가. 이놈 저놈 눈치보면서 모두 다 입맛을 맞추려면, 지금의 제도를 계속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사업의 목적은 평생가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우선 도움도 안 되는 생색내기를 걷어치우고, 예술영화 전용펀드를 만들어서 과감하게 제작비 전액을 지원하라. 작품에 따라 예산의 규모를 평가하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전폭적으로 밀어주라. 그리고 결과를 엄격하게 평가하여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초기 투자비용을 시장에서 회수할 수 있다. 마지막 과제는 펀드를 운용하고 심사하는 주체의 ‘권위’의 문제다. 이것 역시 눈치보기를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확신과 소신을 갖고 집행할 수 있는 ‘주체’의 틀을 만들고, 성과에 따라 계속해서 권위를 가질 수 있도록 밀어준다면 반드시 좋은 감독, 좋은 영화가 나온다. 예술영화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영진위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이승재/ LJ필름 대표

바퀴들아,우리 지하를 떠나거라∼ <죠의 아파트>

나는 사실 벌레를 보고 ‘끼야악’ 하는 소리를 지르거나 쥐를 보고 얼굴이 파래지는 스타일은 아니다. 벌레를 눌러 죽이지는(‘빠지직’ 하는 질감이 싫다) 않지만 책 같은 것에 파란 박스테이프를 양면으로 붙여 그 벌레 위로 ‘터억’ 하고 책을 던져서 ‘이힛 죽였다’ 하곤 한다. 그리곤 방치한다. 테이프에 붙은 동료 시체를 보고 벌레들이 긴장하겠지…. 줄곧 나에게 벌레박멸 퇴치용 책이 되었던 건 <보물섬>이었고 지금은 영화잡지들(^ ^;)이다. 한번은 한참 TV에서 ‘나도 발명가’풍의 프로를 할 때 동생들과 책에 테이프를 양면으로 붙여서 ‘당신마저 할 수 있는 벌레퇴치 발명품’이라고 우기면서 나가보자 하며 정말 잠시 망설이기까지 했다.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과 작업실로 지내던 곳이 전세 계약이 끝나 요즘은 모두 월세로 바꾸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새로운 전셋집을 찾기 시작했다. 회비제로 작업실을 운영하는 우리로선 월세는 부담이므로(사실 회비도 잘 안 걷힌다… 다들 돈이 없다) 우리가 가진 보증금으론 서울 하늘 밑에 지하밖에 없었다. 옥탑이라도 찾아볼까 했지만 어찌 그리 옥탑도 없는지 줄곧 우린 지하방을 돌아다니다가 지하철역에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덜컥 계약을 했다. 지난번 집도 사실 반지하였지만 남쪽으로는 지층과 맞닿아 있고 북쪽으로 지하여서 그럭저럭 쾌적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더더욱 땅속으로, 정확히 말해서 지난번보다 화장실과 방의 높이가 30cm 차이가 났다. 그런데 문제는 채광, 쾌적함 이런 우아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사들어 온 날 다소 수다스런, 전에 살던 학생의 아버지가 한 말 때문이었다. “밤에 불끄면 바퀴벌레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요.” 제길… 아무 말도 안 했으면 기분이라도 안 나쁠 텐데…. 바퀴벌레는 정말 미친 듯이 나왔다. 그 대답 잘해주기로 유명한 친절하신 세스코를 부르고 싶었지만 비쌀까봐 엄두도 못 내고 동네 방역아저씨를 부르고 철물점에서 방충망을 사다 갈아끼우는 정도로 환경을 바꾸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밤만 되면 우리의 작업실은 스멀스멀 몰려드는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에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화장실을 들어갈 땐 꼭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안에 사람이 있을까봐가 아니라 쥐와 바퀴에게 사람이 들어가기 때문에 나가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그렇지 않으면 문을 열자마자 쥐와 눈이 마주친 동료의 경험담을 되새기며 노크를 하는 것이다. 어느덧 우리의 작업실은 ‘죠의 아파트’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죠의 아파트>(JOE’S APARTMENT, 감독 존 페이슨, 1996), MTV에서 만든 바퀴벌레가 그야말로 떼거지로 나오는 코미디… 4만 마리의 바퀴떼… 변기 속에서 수중발레하는 고놈의 바퀴벌레들…. 촌놈 죠가 도시에 와 오래된 아파트에 기거하면서 그 아파트에 집단기거하는 ‘말하는 바퀴벌레’와 동거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고놈의 바퀴벌레들은 자기들보다 더 지저분한 죠의 생활방식이 마음에 들어 전폭적으로 지지해준다. 집주인을 쫓아주기도 하고 죠의 직장까지 쫓아가기도 하고…. 그런데 그만 죠의 여자친구에게도 좋은 일을 해준다는 게 그녀의 머리 위에 우르르르…. 바퀴의 선심이 사실 뻔하지 뭐… 그냥 변기 속에서 수중발레나 하며 노래나 부를 것이지 고것들 참…. 이 발칙하고 유쾌한 코미디는 사실 영화니까 즐거웠을 뿐이지 고놈의 바퀴벌레들이 그지없이 귀엽지만 현실은…. 변기 속에 고것들이 우글우글 모여 아무리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줘도 수중발레 할배라도 싫다…. 아니면 우리 모두 영화 속 죠처럼 벌레마저 좋아하는, 지저분하게 사는 사람처럼 될까 해도(난 될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지저분하기도 하다) 모두들 그렇게까지야 못하지…. 결국 우린 가로수, 벼룩시장 등을 열심히 보며 오늘도 지상으로의 귀환을 위해 다시 집을 알아보고 다닌다. 사실 노크 안 하고 들어갔다가 변기 속에서 수중발레하는 쥐와 눈이 마주치는 것은 더더욱 싫으니까…. 김정영/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프로듀서 sicksadworld@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