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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6]

굶주린 짐승처럼 영화를 탐식하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정성일의 칸영화제 오디세이, 그 마지막 장 칸=정성일/영화평론가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이미 수상결과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나는 수상결과에 관심이 없다. 그건 파트리스 셰로와 11명의 심사위원들의 생각이지 내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칸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따라서 칸에 관한 나의 이야기는 수상결과와 상관없는 것이다(상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그 영화가 좋아질 리 없으며 수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결과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는 없다. 우선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이 완전히 버림받은 것은 잘못이다. 만일 그가 <어둠 속의 댄서>에서 빈손으로 돌아갔다면, <도그빌>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미’ 인터뷰에서 “모든 결과로부터 홀가분하다!”고 대답했다. 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미스틱 리버>는 ‘아주 집중해야만’ 장점을 알 수 있는 영화이다. 느리고, 눈에 돋보이는 장면을 자제하고 있으며, 이야기는 평이한 척하면서도 그 안에 복잡한 심리적 관계가 얽히고 설킨다. 하지만 영화제는 소용돌이 같은 영화들이 우선권을 쥐게 마련이다. 물론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가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구스 반 산트는 새로운 경지에로 점핑했으며, <엘리펀트>는 단 한마디로 걸작(!)이다. 그러나 누리 빌게 세일란의 <우작>와 드니 아르캉의 <야만족의 침공>은 안일한 결과이다. 잘 짜여진 주제, 적당한 유머, 그리고 뻔한 휴머니즘, 여기에 몇몇 장면들이 번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순간적으로 번쩍(!)거리는 그 섬광같은 장면들이 일시적으로 그들을 눈멀게 만든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심사위원단은 한편에 두개씩의 상을 주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이들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물론 프랑수아 오종과 헥토르 바벤코, 클로드 밀레, (정말 의외이기는 했지만) 베르트랑 블리에가 빈손으로 돌아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알렉산더 소쿠로프, 가와세 나오미, 피터 그리너웨이, 구로사와 기요시에게 어떤 기회도 주지 않은 것은 통탄할 만한 일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내가 지지하는 영화들에 대한 보고서이며, 동시에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항의서한으로 읽혀야 한다. 나는 지금 칸와 맞장 뜨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한 가지 사과의 말씀. 나는 독자 여러분을 대신해서 정말 있는 힘을 다해서 보았다. 그래서 경쟁부문 전작과 주목할 만한 시선 전작, 그리고 감독주간 14편을 보았다. 하지만 역시 비평가 주간을 상영하는 극장은 내게 너무 멀었다. 미안하게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신인감독에게 주는 황금카메라는 비평가 주간에서 결정되었다. 그리고 나는 크리스토퍼 보에의 <재구성>을 보지 못했다…(비통한 어조로) 유감이다. 이 추접하고 음란한 늙은이야 <오고, 가며>(Vei e vem) 감독 호아오 세자르 몬테이로, 비경쟁 공식초청작 나는 호이오 세자르 몬테이로가 위대한 시네아스트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이상하게 그냥 찍으면 그 스스로 기적처럼 영화의 숭고한 순간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가 그런 사람이다. 또는 에릭 로메도 그러하다. 여기에 오타르 이오셀리아니를 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냥 솔직하게 하는 말인데 호이오 세자르 몬테이로는 추접한 늙은이이며, 허망한 망상에 젖어 있는 영감쟁이다. 그는 여성의 음모(陰毛)에 아주 깊은 관심이 있으며, 하루종일 섹스에 관한 생각에 몰두해 있으며, 젊은 여자만 나타나면 하여튼 잘 궁리만 한다. 얼마나 그러고 싶어하냐면 자기 영화에 자기가 직접 주연으로 나와서 젊은 여자들과 침대에서 뒹군다. 그러나 그건 그의 마음일 뿐이다. 정작 그 앞에 젊은 여자가 나타나서 발가벗고 그와 함께 눈이 시릴 만큼 하얀 시트 안에 들어가서 애무를 해도 그의 늙은 육신은 이미 발기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다. 그녀들의 아름다운 육체와 눈부신 피부 앞에서 이제 막 생명이 꺼져가는 주름투성이의 육체, 그 위에 내려앉은 죽음의 꽃이라는 검버섯들, 경련을 일으키는 손놀림, 그리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는 거의 꺼져가는 생명의 안타까움이다. 그래서 침대 위를 뒤져서 찾아낸 여성의 음모를 쥐고 그가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을 지을 때 거기서 보는 삶에 대한 애처로운 집착은 불현듯 기묘하게도 죽음의 문제를 피하고 싶은 가련하면서도 필연적인 순간에로 이끌고 간다. 몬테이로가 유치하게도 흡혈귀 노스페라투의 분장을 하고 종종 나타나는 까닭도 ‘하여튼’ 죽음과 싸우고 부활을 하고자 하는 그 안타깝고도 절망적인 몸부림이다. 몬테이로는 말 그대로 영화의 파우스트이며, 괴테적 비전과 보르헤스적인 구성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서 자기 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온 괴인(!)이다. 그런 그가, 영원히 죽음과 싸울 줄 알았던 그가, 그만 영화를 만들다가 지난 2월, 6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오고, 가며>는 그의 마지막 유작이다. 그것도 아주 위대한 레퀴엠이다. 칸에는 죽어서 사람이 오지 못하는 전통이 있다. 86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희생>이 칸에서 상영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2003년 우리는 호아오 세자르 몬테이로 없이 그의 영화 <오고, 가며>를 쓸쓸함을 참아가면서 보아야 한다. 그는 이미 병을 앓고 있었으며,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고 있었다. 닥쳐오는 죽음과 언제까지라도 마주 싸우면서, 우리를 대신하여 삶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신과의 내기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은 몬테이로가 세상과 작별한 것이다(이를테면 그의 <신곡>이나 <신의 결혼식>에서 보여준 저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상상력들이라니!). 그리고 그가 남긴 <오고, 가며>가 정말 위대한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걸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호세 부부(호아오 세자르 몬테이로 자신!)는 감옥에 간 아들만 빼고는 친척도 없이 큰 집에서 유유자적하게 혼자 산다. 그가 하는 일은 매일 100번 버스를 타고 그냥 동네 한 바퀴 돌고 난 다음 공원에 앉아 있다가 집에 오는 것이다. 집에 와보니 가정부 광고를 보고 한 여자가 찾아왔다. 호세 부부는 그녀를 공주처럼 떠받들면서 청소와 빨래는 자기가 하고, 오직 그녀를 즐겁게 해주는 일에만 몰두한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고, 새로운 여자가 온다. 그녀는 호세를 기쁘게 해줄 만한 이유가 있다. 바지를 벗으니 그녀의 음모는 앞뒤로 긴 머리처럼 치렁치렁하다. 호세는 항문섹스를 하다가 그만 상대가 그에게 너무 큰 딜도를 들이미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진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공원에 앉아 있다. 영화는 거기서 갑자기 끝난다. 에필로그는 호세의 부릅뜬 눈이 언제까지라도 감을 것 같지 않은 롱테이크이다. (<눈(眼) 이야기>를 쓴) 조르주 바타이유가 보았으면 뛸 듯이 좋아했을 마지막 장면. 물론 <오고, 가며>의 마지막 장면은 더 남아 있었지만, 몬테이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이럴 수가! 하지만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시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장점도 있다. 아무도 손 댈 수 없는 스타일의 몬테이로 영화답게 모든 장면은 롱 테이크로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래서 2시간57분에 이르는 이 영화는 고작 58숏에 불과하다(<오고, 가며>는 칸에서 단 한번 시사를 가졌으며, 이건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다시 복기한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한없이 반복될 것처럼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호세의 동네 여행길. 또는 녹색의 공원에 앉아서 하염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호세의 눈길. 의도적으로 카메라는 멈춰 서 있으며, 대부분의 장면들에서 호세는 그 중심에 앉아 있거나 상대와 마주보면서 대칭 구도로 바라본다. 실내에 들어오면 베르메르의 그림처럼 빛이 그 어딘가에서 실내로 스며들고, 그래서 세상의 또 다른 바깥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그 장소에서 언제까지라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백을 하거나, 철학적 담론을 펼치거나, 음담패설을 나눈다. 호세 부부는 빛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거나 때로 그림자 속에 죽어가는 자신의 육신을 숨긴다. 그러나 빛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세상에 형상을 일깨워준다. <오고, 가며>는 말 그대로 숏이 시작하는 순간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숏이 끝날 때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이 지나가는 것이다. 그 숭고한 세상에서 호세 부부는 가정부에게 경찰 옷을 입혀놓고는 그의 하인이라도 된 것처럼 오르간을 연주하면서 시를 낭송한다. 그때의 호세는 음유시인이 되는 것이며, 동시에 마조흐라도 된 것처럼 페티시즘에 심취한 채 언제라도 채찍에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노인이다. 또는 10분도 넘게 약이름을 낭송하듯이 암송하는 장면의 안쓰러움. 혹은 저 위대한 27번째 숏. 거기서 호세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공원을 맴도는 소녀의 자전거를 따라서 힘겹게 한 바퀴를 뛴다. 그 순간 세상 속의 한줌 같았던 호세를 주변으로 마치 예정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공원 안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프레임 안과 바깥으로 오가면서 제 자리에 제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고 빠져나가는 기적과도 같은 10여분, 그리고 벨라 차오의 오페라 아리아. 이 모든 장면에서 숏은 한번 시작하면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고, 카메라는 그렇게 힘겹다는 듯이 멈춰 선다. 몬테이로는 그 무엇이건 움직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움직임 속에서 행여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다. 이 신기한 영화. 그래서 누구라도 마지막 장면에서 조스캥 데 프레의 미사곡이 흘러나올 때 이제 우리 곁을 떠나간 저 음란하고도 추접한 늙은이 몬테이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아쉬워할 것이다. 왕가위와 차이밍량의 빈자리 <자줏빛 나비>(紫胡蝶, Purple Butterfly), 감독 로우예, 경쟁부문 <로빈슨 표류기>(魯賓遜漂流記, Robinson’s Crusoe), 감독 린청셩, 주목할 만한 시선 올해 칸에는 왕가위와 차이밍량이 오지 않았다. 그 대신 로우예와 린청셩이 왔다. 이건 이들을 비웃는 말이다. 왕가위와 차이밍량은 그들의 영화를 발명한 이름이다. 자기의 방법으로 사유하고, 자기의 스타일로 이미지를 창조하고, 자기의 화법으로 주제를 감싸안는다. 화어권영화들은 그들의 이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하지만 <자호접>과 <로빈슨 표류기>는 그 덫에 걸려들었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뛰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로우예는 포스트 ‘천안문’ 세대에서 지아장커의 반대 이름이다. 그는 스타일에 심취해 있으며(그의 두 번째 영화 <수쥬>의 첫 장면을 생각해 보라!), 장르영화 안에서 사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영화의 영토를 상하이라고 생각하는 시네아스트이다(그의 고향이 상하이다. 그는 전에 나와 인터뷰하면서 상하이를 다루는 중국영화들의 대부분은 가짜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상하이는 중국의 모든 시네아스트들이 결국에는 돌아가고 싶어하는 향수의 도시이다. 첸카이거의 <풍월>, 장이모의 <상하이 트라이어드>, 허우샤오시엔의 <해상화>. 화어권영화의 대가들은 거기서 추억과 역사를 말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로우예는 고향을 말하려고 하는 중이다. 그가 현대의 상하이에서 인어에 관한 동화를 히치콕(의 <현기증>)을 빌려 이중 삼중으로 뒤섞은 포스트누아르 <수쥬>에 이어 1930년대 상하이를 다룬 <자호접>으로 돌아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2003 칸 영화제 결산 [2]

별이 빛나는 칸에 니콜 키드먼부터 키아누 리브스까지, 칸 레드카펫을 빛낸 스타들 칸은 밤에 피어난다. 좀처럼 해가 기울지 않는 남프랑스의 바닷가에 슬그머니 어둠이 내리면, 빨간 주단 위로 별이 하나둘, 그리고 어느새 촘촘히 박히기 시작한다. 열이틀 동안 칸을 밝힌 그 스타들을, 여기 한자리에 불러모아본다. ♣ 꼭 보고 말 거야. 이른 저녁부터 레드카펫 위의 스타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뤼미에르 극장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룬다.(사진 왼쪽)♣ 눈이 부신 니콜 키드먼. “여우주연상은 내 차지라구”라고 말하는 듯 보무도 당당히 걸어가는 모습. 그러나 그녀를 유난히 사랑한 칸영화제도, 그 사랑을 상으로 증명해 보이진 않았다.(사진 오른쪽) ♣ “나, 집에 갈래.” 억지로 끌려나온 듯 심드렁한 모습의 키아누 리브스. 전용 이발사가 같이 못 온 모양이다. 레드카펫 입장 시간에도 지각해 <매트릭스2 리로디드> 팀의 애를 태웠다.(사진 왼쪽)♣ 아놀드 슈워제네거/ “나, 돌아왔어요!" 환갑의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터미네이터3> 홍보 행사 때문에 칸에 왔다. 남의 잔치 옆에서 굿판 벌린 슈워제네거를, 영화제는 달가워했을까.(사진 오른쪽) ♣ <미스틱 리버>의 감독으로 다시 칸에 온 클린트 이스트우드. 7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젊고 정력적인 모습이다. “왜 영화에 직접 출연하지 않았냐고? 내가 맡을 만큼 젊은 역이 없어서였지.”(사진 왼쪽)♣ 어머니와 아들? 웃는 입매가 닮은 두 사람은 잔 모로와 빔 벤더스. 앗, 그런데 빔 벤더스의 ‘옷이 날개’다. 혹시 차기작으로 <칸 천사의 시>를 구상하고 있는 건 아닐까.(음, 썰렁했다)(사진 오른쪽) ♣ 프랑스의 연인 에마뉘엘 베아르. <마농의 샘> 시절의 아리따운 모습이 ‘아직도 그대로’다. 경쟁 진출작인 앙드레 테시네의 영화에 출연했었다.(사진 왼쪽)♣ 베컴 머리를 하고 나타난 스팅. 칸엔 무슨 일이냐고?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다시 볼 것. 스팅은 엄연한 배우고, 유명 감독들의 친구다. 폐막식 시상자로 초대돼 아내와 레드 카펫을 오르는 중.(사진 오른쪽) ♣ 아직은 영화배우보다 모델로 더 익숙한 얼굴 엘리자베스 헐리. 폐막식 시상자로 초대된 그녀 옆에 휴 그랜트 아닌 다른 남자가… 어쩐지 낯설다.(사진 왼쪽)♣ 영화제만큼 좋은 홍보 기회는 없다. 시선을 잡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의상이든 어떤 행동이든 불사하는, 알뜰하고 용감한 홍보팀들.(사진 오른쪽) ♣ 개막식 사회자로서,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배우로서, 폐막식 사회자로서, 밤이면 밤마다 레드카펫을 뻔질나게 오르내린, 올해 칸의 ‘페스티벌 레이디’ 모니카 벨루치. 의상·헤어 담당자가 얼마나 바빴으려나.(사진 왼쪽)♣ 프랑스 남자들은 유난히 장쯔이를 사랑한다. <와호장룡>으로 스타가 된 장쯔이는 칸에서 <자주빛 나비>로 다시 한번 바람몰이를 했다. 아, 공리의 시대는 가는가.(사진 오른쪽)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3호선 버터플라이 남상아

그래도 난 꿈을 꿔 요즘도 가끔 버스정류장을 보면, 어설프게 담배를 물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한 채 <꿈꾸는 나비>를 흥얼거리던 전경이 어디쯤 앉아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나비야 두터운 니 과거의 슬픔을 뚫고, 가볍게 아주 가볍게 날아라, 깊은 밤길에 나앉은 여인의 눈물 자욱한 담배연기를 마시고 꿈을 꿔도 모든 걸 뒤엎을 순 없어 그래도 넌 꿈을 꿔….” <네 멋대로 해라>를 잔잔히 채웠던 몽환적이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의 당사자인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보컬 남상아씨. 칠흑같이 검은 머리 속에 예민하게 빛나는 눈, 그녀의 얼굴이 낯익다면 아마 영화 <질주> 때문일는지 모르겠습니다. 데뷔작을 위해 인디그룹 뮤지션을 찾고 있던 이상인 감독은 허클베리 핀에서 활동하던 남상아씨를 보게 됐고 99년 그녀는 엉겁결에 <질주>라는 영화 한편을 찍어낸 배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눈물 가득한 담배연기를 마시고 꿈을 꾸던’ 인디보컬 ‘바람’의 자유로운 이미지는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영화 이야기를 할 때면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졌다”는 마음은 이제 “색다른 추억”으로 편안하게 웃을 만큼 증발해버리기도 했습니다. 허클베리 핀을 거쳐 성기완, 김상우 등의 멤버와 결성한 3호선 버터플라이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전경의 ‘미완성 밴드’가 연주하는 곡들을 포함한 1집과 2집 까지 내고 순항 중입니다. 그러나 음악은 배고픈 직업이라 했던가요. 가끔 하는 공연만으로 이 젊은 뮤지션이 살아가기에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습니다. 하여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덕에 포스터 디자인 일도 하고 가끔 들어오는 영어번역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는 6월28일 정동극장에서 벌어지는 3호선 나비들이 야간비행을 마치고 나면 그렇게 조금씩 모은 돈으로 그는 유년의 추억을 묻었던 영국으로 짧은 여행길에 오를 거라고 합니다. 어쩌면, 여행에서 돌아온 뒤, 상아씨의 묘한 방황의 기운들은 조금 더 짙은 빛을 뿜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성숙을 눈보다 귀로 먼저 느끼게 될 겁니다. 글·사진 백은하 lucie@hani.co.kr

<파 프롬 헤븐>이 올해의 미국영화가 될 자격이 충분한 이유

더글러스 서크의 50년대 멜로드라마를 대단히 지적으로 훌륭하게 혼성모방해낸 토드 헤인즈의 <파 프롬 헤븐>은 서크의 <바람에 쓴 편지> <슬픔은 그대 가슴에>, 그리고 무엇보다 <순정에 맺은 사랑> 등을 원재료로 투영시켜 만든 시나리오를 통해 고귀했던 50년대를 돌아본다. 그리고 랩소디풍의 라흐마니노프 스타일 화음으로 이 감정의 혼란스런 소용돌이를 극적으로 묘사하는 엘머 번스타인의 음악 역시 이 영화에 큰 힘을 실어준다. <파 프롬 헤븐>은 1957년 금빛으로 반짝이는 가을, 코네티컷 하트포드의 고급 교외주택가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서 캐시(줄리언 무어)는 난평면 주택(1층과 2층 사이에 인접하는 중간 2층이 있는 호사스런 집 - 역자)의 안주인으로 성공적인 영업이사 남편과 두 아이들과 흑인 하녀와 2색조의 스테이션 왜건을 갖춘 채 완벽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웬 호감가는 외모의 청년- 흑인- 이 정원에 서서, 나무 한 그루를 응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일종의 부르주아판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랄 수 있는 서크의 <순정에 맺은 사랑>은 제인 와이먼이 연기하는 40대 부유한 과부와 그녀의 젊은 정원사 록 허드슨의 로맨스에 중점을 두었다. <파 프롬 헤븐>은 여기에 나이와 계급문제를 집어넣어 좀더 복잡하게 만든다. 허드슨 역할로 레이몬드라는 흑인 홀아비(데니스 헤이스버트)를 만들고, 캐시 역시, 실은 행복을 빼앗긴 특이한 종류의 부인으로 새롭게 다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캐시의 정원에서 타인은 레이몬드뿐만 아니다. 그녀의 남편 프랭크(데니스 퀘이드) 역시 자신의 비밀스런 삶을 가지고 있다. 그는 초록조명이 깔린 칵테일 라운지, 하트포드에서 유일한 게이바를 자주 찾는다. 영화에서 추상미술에 대한 인용 흔적은 뚜렷하다. 헤인즈는 대단히 지적인 감독이지만, 무어를 전면에 앞세운 전작 <세이프>에서와 마찬가지로 배우들을 대하는 그의 습관적인 뻣뻣함은 여기서도 역시, 오히려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파 프롬 헤븐>은 무엇보다도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욕망이 빚어내는 지옥에 관한 영화이며, 이것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눈길로 가장 잘 표현된다(때로 헤인즈는 <순정에 맺은 사랑>에 대한 R. W. 파스빈더의 헌정작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특징적인 그 길고 비난하는 듯한 눈길을 인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슷하게, <파 프롬 헤븐>은 적잖은 양의 파토스를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풍선- 정신치료, 순응주의, 편견 등- 으로부터 끌어오는데 그것들은 불행한 커플의 머리 위로 먹구름처럼 몰려든다. 모든 것은 그저 다 기호(sign)이며, 소외란 사회적 사실주의의 한 형태일 따름이다. 서크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파 프롬 헤븐>은 의미가 미장센으로부터 파생되는 세계, 꾸밈이야말로 표현의 본질이며 파토스란 그저 매장되어버릴 그런 세계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대궐 같은 교외의 거실에 드리운 그림자는 인테리어 장식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르며, 자잘한 장신구들은 무색의 공기처럼 빛난다. 자연조차도 장식을 위해 축소되거나 혹은 더 과장돼 있다. 꽃들은 마치 장례식장의 조화 같고 나무들은 벽지 같은 풍경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가을 낙엽조차도 큐 사인이 떨어져야 비로소 바람에 날리는 것 같다. 공기도 찐득찐득할 정도로 고요하다. 분위기는 초현실주의적이라기보다 차라리 극사실주의적이다. 적어도 레이몬드가 캐시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갑자기 니그로들이 도처에 등장한다- 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회원 두명이 정말 캐시의 집 대문 앞에 나타난다. 서크의 세계에서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던 일들 중 하나다. 서크는 수많은 주해(註解)를 얻고 또 남들에게 주해를 다는 등 온갖 주해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서크식 텍스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헤인즈는(<록 허드슨 홈 무비>에서 마크 라파포트와 마찬가지로) 영화비평 한편을 영화로 담아내는 대단한 작업을 해낸 셈이다. 과장이나 풍자에 기대지 않고 헤인즈는(서크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의 수사(修辭)를 뭔가 폭로적이고 풍성하고 괴이한 어떤 것으로 변화시켰다. 서크의 작품들을 읽는 데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라면, <파 프롬 헤븐>은 더욱 놀라운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말해 이미 죽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떤 장르를, 온전한 몸을 가진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이것은 올해의 미국영화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연기자들, 줄줄이 영화감독 데뷔

'카메라 앞에선 감독, 카메라 뒤에서는 배우' 영화배우나 탤런트, 연극배우 등 연기자들의 영화 감독 데뷔가 잇따르고 있다. 현재 단편이나 장편 영화의 연출을 마쳤거나 기획중인 감독은 정우성(사진), 유지태, 김인권, 박광정, 장두이 등. 할리우드에서 배우의 감독 데뷔는 이미 흔한 일이다. 워런 비티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폴뉴먼, 케빈 코스트너, 숀펜, 로버트 레드포드, 조디 포스터 등이 배우 못지 않게 연출가로도 성공을 거뒀고, 최근에는 존 말코비치(위층의 댄서), 조지 클루니(고백), 니컬러스 케이지(소니), 덴젤 워싱턴(앤트윈 피셔) 등이 줄줄이 연출 데뷔작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우 그동안 영화 출연을 겸한 감독들은 여균동(박봉곤 가출사건), 류승완(오아시스), 배창호(개그맨) 등이 있지만 인기배우의 감독 '변신'은 1970년대 초반 '연애소설' 등 세 편의 영화를 연출했던 강신성일씨 정도만 눈에 띈다. 최근 감독으로 변신한 연기자 중 가장 먼저 장편영화를 선보인 스타는 <송어>, <박하사탕>, <아나키스트> 등의 영화와 TV드라마 '내 인생의 콩깍지'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김인권.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작품으로 만든 <쉬브스키>는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부문에 초청돼 <클래식>, <품행제로>, <역전에 산다> 등 상업영화와 함께 상영된다. '양아치' 태주라는 청년을 주인공으로 세상에 대한 열등감,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 등을 흑백을 넘나드는 화면과 핸드헬드 카메라로 표현한 영화. 김인권은 영화 <송어> 연출부로 일하던중 배우로 캐스팅된 이력이 있다. <비트>, <무사>의 인기스타 정우성의 장편 감독 데뷔작은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 `궁극적인 꿈은 감독'이라고 평소에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 만큼 정우성의 연출 수업은 꽤나 오래됐다. 지난해에는 그룹 god의 노래 세 편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LOVE b(플럿)」을 연출해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상영한 바 있다. 장편 데뷔작은 '장르성이 짙은 사랑이야기'로 직접 출연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이후 최근 영화 <역전에 산다>까지 개성있는 조연연기자로 인정받고 있는 박광정의 경우는 이미 연극 연출가로 이름을 알린 경우. 화 감독 데뷔작으로 하일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진술>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경찰서에 잡혀온 한 40대 대학교수의 진술을 통해 펼쳐지는 사랑이야기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다룬 영화로 문성근이 남자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한편,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연출한 단편영화 <자전거소년>도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호평을 받고 있다. 소녀에게 잘 보이려고 자전거타기 연습을 하는 순진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이달말 열리는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밖에 <깜보>, <뚫어야 산다> 등에 출연한 배우이자 연극연출가 장두이도 9월 촬영에 들어가는 '세븐택시'로 영화감독으로 명함을 내밀 계획이다. 연기자 출신 연출가는 출연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이끌어 낼 수 있고, 촬영장 분위기에도 익숙하다는 데서 장점을 찾을 수 있다. 영화 평론가 조희문씨는 "연기자들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직접 말하고 싶은 것을 연출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느끼는 것 같다"며 "'영역의 혼합'을 통해 연기와 연출의 폭이 각각 넓어진다는 점과 다양한 이력의 연출가가 등장한다는 데서 바람직한 현상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개그맨이나 만화가 등 연출 능력이 충분치 못한 감독이 연출한 몇몇 영화는 영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성공하지 못한 채 해프닝으로 끝난 바 있다"고 지적하며 "꾸준한 연출수업을 통해 제작 환경 전반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감독 데뷔만 서두른다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2003 화제의 뉴 프로젝트 11편 미리보기 [3]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 인간애와 평화의 감동을 Director's Story 만약 영화가 한 감독의 총체적인 인격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묻지마 패밀리> 중 <내 나이키>를 연출했던 박광현 감독을 ‘나쁜 남자’로 보긴 힘들 것이다. 공부 못하는 모범생, 싸움 못하는 깡패, 개인택시 없는 택시기사, 나이키 없는 소년 등 어딘가 삐걱거리는 비영웅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결국 소박한 행복의 의미를 전해주었던 <내 나이키>는 재기보다는 진심이 느껴졌던 데뷔작이다. 그가 기획했던 ‘선영아 사랑해’ 광고나 그가 연출했던 맥도날드 CF(‘신하균 버스’ 편, ‘박해일 수위실’ 편) 의 예까지 든다면 이는 확신으로 변할는지 모른다. “어떤 수준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집념보다는 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이 ‘69년생 소년’의 방부처리된 순수는 “바쁘신 부모님 때문에 4살 때부터 10살때까지 전라도 두메산골에서 할머니하고 둘이 살았던” 범상치 않은 개인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연극 <웰컴 투 동막골>의 연습에 몇번 따라갔던 박광현 감독에게, 장진 감독은 “이걸 영화로 했으면 하는데 당신이 제일 잘해낼 것 같다”는 제안을 했다. 세상에 전쟁이 일어난 것조차 모르는 산골마을, “처음엔 그런 마을이 있을까, 했는데 자료조사 중에 조선 중기 때 노장사상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했고 그들의 후손이 조금은 다른 가옥형태, 의상,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근거를 찾아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때야 할까, 는 상상력의 영역이었다. 결국 “이념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새로운 사람에 대한 공포가 있지만 사실 이야기를 듣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캐릭터가 속속들이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웰컴 투 동막골>은 오히려 전쟁과 등을 맞대고 누워 전혀 다른 세상을 응시하는 영화다. ”유명감독, 고제작비를 들이는 전쟁영화들 사이에서 초짜감독이 동일방식으로 경쟁하면 게임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비극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평화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연합군 사령부에서 계속 보내는 조사단은 평화로운 이곳이 언젠가 초토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조성하며 영화의 긴장을 유지하게 만든다. Behind Story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CF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답게 박 감독은 연극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이 낙원 같은 마을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데 욕심이 만만치 않다. 옥수수를 주식으로 해 드넓은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는 마을 초입에는 허수아비 400개가 쭉 늘어서 있는데 이는 동막골 사람들의 무덤이다. 모두 마을 바깥쪽 방향으로 서 있는 이 허수아비들은 ‘죽으면 저 멀리 이야기여행을 떠난다’고 믿는 마을사람들의 긍정성인 내세관을 보여준다. 육식을 안 해 돼지들이 오로지 퇴비를 만들기 위해 키워지는 ‘똥돼지’ 화장실’ 역시 2층짜리 원두막처럼 생긴 친근한 공간이다. 빨래터는 물레방아를 모로 뉘어 만든 ‘천연드럼세탁기’ 덕에 노동의 공간이 아니라 수다꽃이 피는 꽃밭이다. 아이들은 넓게 펼쳐진 초원에서 옥수수잎으로 만든 풀썰매를 타면서 ‘딱지 따먹기’가 아니라 ‘돼지 따먹기’ 놀이를 하며 새끼돼지들과 뛰논다. 오는 9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박광현 감독의 꿈은 몇백만명의 흥행이 아니다. 바로 “영화를 보고 난 관객에게 행복한 기운이 일주일 동안 유지되는 것”이다. “<아멜리에> 같은 영화는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그 세계 안에서는 완벽한 이해를 가져온다. 결국 허황된 판타지가 아니라 완벽히 짜여진 또 다른 세계 속에서 통용될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제일 공을 들였다” 는 그는 특히 세트 같은 인공적인 느낌이 아니라 오랫동안 손에 익어 반질반질해진, 흔히 볼 수 있지만 생각을 조금 달리한 ‘아이디어 상품’들이 등장시킬 것이라고. 군인들은 기성 연기자로, ‘미친년’ 이연을 비롯해 동막골 사람들은 “지금껏 한번도 본 적 없는 배우들”로 공개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할 예정이다. 글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 제작사 필름있수다 출연 | 미정 개봉예정 | 미정 S t o r y 강원도 오지에 위치해 웬만해선 찾기 힘든 어느 산골마을. 한국전쟁 당시, 혼란스러운 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유토피아 같은 이곳에 인천상륙작전 중 살아남은 인민군 장교 동치성, 한강다리를 폭파해 800명이라는 민간인 학살을 한 죄책감으로 탈영한 국군 소위 현철, 기체결함으로 불시착한 연합군 정찰기 사진사였던 스미스등 3명의 인민군과 2명의 남한군 그리고 1명의 연합군이 모여든다. 저마다 상처를 품고 들어온 이들은 아이처럼 순수한 마을사람들과 자연을 여과기 삼아 스스로의 핸티캡들을 치료해 나간다. 김지훈 감독의 <목포는 항구다> 앗따 느그들, 서울형사 매운맛 못봤재? Director's Story “그런 영화 찍어놓고 이제 남을 웃긴다고. 그러는 네가 더 웃긴다.” 김지훈(32) 감독이 <목포는 항구다>라는 영화를 준비한다고 하자 독립영화진영의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긴 그의 단편영화 <온실>을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목포는 항구다>가 형사와 조폭이 나오는 코미디인 반면 <온실>은 홀로 사는 할아버지의 일상을 담은 진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온실>에서 감독의 코미디 감각을 느끼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고민을 많이 했다. 작가로는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그 방면에서 내가 그들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상업영화를 하자고 결심했고 그렇게 생각하고나니까 전에 별로 흥미를 갖지 않았던 영화들이 재미있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 찍은 단편 하나로 감독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그의 갈등이 터무니없는 일은 아니다. 처음 장편영화를 찍는 감독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고민에 빠져들 것이다. 그가 영화의 달콤한 맛에 취한 계기는 중학교 때 몰래 본 <깊고 푸른 밤>이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였지만 그의 시선을 자극한 것은 에로티시즘이 아니었다. 김지훈은 이 영화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면 외국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은 영문과에 들어갔으나 1학기만 다니고 이듬해 한양대 영화과에 들어갔다. 스필버그 영화를 좋아하면 색안경을 쓰고 보던 당시 학교 분위기에 젖어 고다르와 타르코프스키에 심취했던 그는 3학년 때 찍은 단편영화 <온실>이 서울단편영화제에 진출하면서 일찍 주목을 받았다. “그때 절실했던 고민이 자연스럽게 묻어난 영화다. 상업영화를 시작하면서는 부담스러운 일이 됐지만. 균형감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98년 <여고괴담>, 99년 <질주>, 2000년 <비밀> 등 영화 3편의 연출부를 경험한 뒤 2년 전부터 <목포는 항구다>를 준비했다. Behind Story 김지훈 감독은 대구에서 나서 자랐다. 대학 때문에 서울에 올라온 그는 지방 사람이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겪는 문화적 충격을 기억한다. 서울 형사가 목포에 내려가 문화적 충격을 경험한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질 만하다. <목포는 항구다>는 <무간도>나 <도니 브래스코>처럼 형사가 조직에 잠입하는 이야기다. “기획시대에서 서울 형사의 목포 출장기를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직접 목포에 가보니까 서울과 목포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대구 출신인 내가 목포 사람들 정서를 흡수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목포는 항구다>는 서울 형사와 조폭 보스의 이야기기도 하다. 조폭 보스를 잡으러갔던 형사가 보스에게 인간적 매력을 느끼게 된다. “두 인간의 성장을 표현하고 싶다. 서울 형사가 목포 정서에 동화되고 인간적으로 성숙하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최근 흥행한 코미디물을 보면 웃기는 데만 애쓰는 게 아니라 드라마가 튼튼하다. <공공의 적>은 그중 최고다.” 이 영화는 서울 형사로 조재현, 목포의 조직보스로 차인표를 캐스팅했다. 조재현이 자신의 집에 감독의 작업실을 내줄 정도로 열성을 보이고 있고 차인표는 전라도 방언을 마스터하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고. 김지훈 감독은 “캐릭터, 시추에이션, 대사,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는 코미디”를 목표로 삼고 있다. 6월 말 첫 촬영을 시작해 9월까지 촬영을 마칠 계획이다.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 제작사 기획시대 출연 | 조재현, 차인표 개봉예정 | 연말 S t o r y 영리하지만 완력이 부족한 형사 이수철은 목포의 폭력조직에 위장잠입하게 된다. 백성기가 우두머리인 조직에 들어가 마약거래의 결정적 증거를 잡아내라는 임무. 하지만 조직에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성기가 감옥에 있을 때 함께 생활했던 보스의 이름을 팔아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뭇매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성기가 보물선 인양사업을 해보겠다며 인양사업 홍보를 위해 권투시합의 스폰서로 나서는 일이 벌어진다. 선수가 없어 권투시합이 취소될 상황이 생기고 이때 성기의 마음을 끌고자 시합에 나가겠다고 하는 수철, 그의 노력에 성기의 마음이 움직인다. 수철은 조금씩 조직의 중심에 접근하고 그 과정에서 성기의 인간미에 감화받는다. 이언희 감독의 <…ing> 소심녀와 쾌활남의 알콩달콩 에피소드 Director's Story 영상원 출신의 이언희 감독은 “영화사 입장에서 보면 이건 모험일 수도 있다”라는 말을 두어번 반복했다. 영화사에서 1년간 묵혔던 시나리오를 건네며 연출을 제안했을 때, 그는 3년 전 <행복한 장의사>의 연출부로 일했던 현장 경험의 중요성을 다시 상기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 제안이 반가웠지만, “이제 감독에 데뷔할 때가 된 것 같다”는 결심으로 당장 이어지진 않았다. 영상원 동기인 정재은 감독의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의 각색과 이건동 감독의 데뷔작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의 각색에 참여하면서 “이렇게 앉아서 글만 쓰고 있을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목표로 삼은 영화감독을 위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아직 서른살을 2년이나 남긴 76년생의 ‘어린’ ‘여성’감독 지망생이었다. 어디 내놔도 ‘감독 데뷔 자격 미달 사유’가 될 것 같았던 이 조건들은 그러나 “가능한 한 젊고 여성 감독이 연출하길” 바라던 영화사의 요구와 ‘운좋게’ 맞아떨어졌고 지난해 5월15일부터 1년여 동안의 각색작업을 거쳐 오는 7월1일 첫 촬영을 앞두게 됐다. 초고는 <미술관 옆 동물원> <서프라이즈>의 시나리오 각색에 참여했던 김진씨가 썼다.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로 데뷔할 거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그에게, 이 원고를 받아들었을 때 그 무게는 분명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니 “내 시나리오로 만들 시간과 기회가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걱정을 내비칠 수밖에. 하지만 “영화도 결국 상품이고 한두푼 들여서 만드는 것도 아닌데, 돈은 벌어야죠”라고 조심스런 다짐을 새기는 그의 표정엔, 무엇보다도 ‘감독 데뷔’에 대한 젊은이의 설렘과 기대가 가득해 보였다. Behind Story <…ing>는 엄마 외의 다른 사람들에겐 마음을 닫고 지내온 한 소녀의 로맨스다. 로맨스에선 그닥 새로울 것 없는 이 시나리오가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은 캐릭터였다. 주인공 민아는 말수가 적고 안으로만 곱아드는 성격의 인물. 주눅들진 않았어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듯 숨길 수 없는 그늘을 가졌다. “한국영화에선 보기 드문 캐릭터다. 이런 유형의 인물이 좋다”며, 감독은 민아에 대한 편애를 드러냈다. 그런 딸에게 “내가 친구가 돼줄게”라고 먼저 문턱을 낮춰온 이해심 많고 개방적인 엄마 미숙 역도 신선했다. 특히 이 두 캐릭터가 만들어낸 특이한 모녀관계, 그러니까 보통 이상으로 엄마에게 버릇없이 구는 딸과 그 딸보다도 더 유치한 언행을 주저하지 않는 엄마 사이의 관계는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래서 민아와 로맨스를 만드는 대학생 영재는 셋 중 가장 평범한 캐릭터지만, 어쩌다보니 빠진 사랑에 대해 순애보적이지도 그렇다고 식상한 바람기로 상대를 애태우지도 않는 그 흔한 방식이 오히려 매력이었다고 했다. 감독이 생각한 이 영화의 포인트는 캐릭터들의 매력을 살리는 것. 캐스팅이 당연히 중요했다. 가장 고민스러웠던 민아 역은 우연히 감독 눈에 띈 임수정의 스틸 사진으로 해결됐다. 그는 자신의 감을 확인하기 위해 <장화, 홍련>의 촬영장을 몇번이고 찾아가 임수정의 연기를 직접 보고 촬영장 사람들의 증언을 수집했다. 엄마 미숙은 (캐릭터의 이름이 말해주듯) 시나리오 단계서부터 이미숙으로 결정돼 있었고, 재미있는 구석이 서로 닮았다면서 감독은 김래원을 영재로 선택했다. <…ing>는 이 기본터 위에 세 사람의 관계를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게 그려나간다. 여기엔 물론 멜로 장르의 슬픔이 있고 드라마 장르의 이야기 굴곡이 있지만 감독에게 이 영화는 “딱 멜로라고 할 수 없으며, 그보다는 ‘어떠어떠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한동안 그는 이 영화의 컨셉을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햇빛이 너무 찬란해서 우울한 날이 있는데, 그런 우울함은 오히려 즐기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글 박혜명 na_mee@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 제작사 드림맥스 출연 | 이미숙, 임수정, 김래원 개봉예정 | 11월 경 S t o r y 공부에 별 관심없는 평범한 고등학생 민아는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단둘이 산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딱히 친구랄 만한 사람도 주변에 없는 그에게, 개방적이고 포용력 있는 엄마는 유일한 친구. 민아는 남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도 못하면서 언젠가 다가올 운명적인 사랑만 꿈꾸며 지내고, 그런 그의 눈앞에 정신사납도록 즐겁고 유쾌한 대학생 영재가 떡하니 등장한다. 온갖 사소한 걸 핑계삼아 자신과 가까워지려고 드는 영재를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민아, 그러나 곧 그 부산스러운 ‘작업’ 페이스에 말려들기 시작하고 엄마 미숙은 혼자 지내던 딸이 드디어 연애를 하게 됐다며 적극 후원하고 나선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2003 화제의 뉴 프로젝트 11편 미리보기 [2]

윤제균 감독의 <낭만자객> 황당한 놈들이 떴다! 얼빵 자객들의 좌충우돌 Director's Story “그땐, 바보였죠.” <두사부일체>의 첫 촬영이 있던 날, 윤제균(34) 감독은 무척이나 버벅거렸다. 적절한 앵글 사이즈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레디 액션’ 하긴 했는데 언제 ‘컷’을 불러야 할지도 헷갈렸다. 광고회사를 다니던 시절 틈틈이 썼다가 “현상금에 눈이 멀어” 제출한 시나리오 <신혼여행>이 당선작으로 뽑힌 것이 그때까지 충무로 이력의 전부. 연출수업은 받은 적도 없던 낙하산(?) 감독을 스탭들은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뭐,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만 하니 스탭들도 황당했겠죠.” 광고회사를 나와 네티즌 펀드 사업체인 엔터펀드에서 일하던 시절, 그는 투자사였던 필름지쪽에서 “요즘 좋은 시나리오 없냐”고 묻자 슬쩍 자신이 쓴 <두사부일체> 시나리오를 밀어넣었고, 급기야 연출까지 맡게 됐다. “촬영하면서 거짓말은 안 했어요. 궁금한 게 있으면 엑스트라한테까지 달려가서 캐물었을 정도니까.” 감독은 “마스터가 아니라 디렉터”라는 지론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채 그는 데뷔작을 찍었고, ‘쌈마이 조폭코미디’라는 평단의 공격을 전국 350만명이라는 관객동원으로 가볍게 무마했다. 1년 뒤, 섹스코미디를 기치로 내건 <색즉시공>으로 42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2차 방어전을 KO승으로 이끈 그는 충무로부터 “적어도 관객을 웃길 줄 아는 이야기꾼”이라는 인증을 받아냈다. Behind Story 코믹무협물 <낭만자객>이 그의 뇌수에서 잉태되기까지는 2편의 영화가 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재수생 신분으로 부산 동보극장에서 보았던 “왕조현의 황홀한 자태가 눈부신” <천녀유혼>이 무협 장르로의 관심을 일깨웠다면, <사무라이 픽션>은 “무협에는 근엄하고 비장한 캐릭터가 등장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이 두편의 영화가 자극한 그의 창작욕은 현재 “얼빵하기 짝이 없는 자객들이 처녀 귀신들의 한을 대신 풀어주면서 겪게 되는 좌충우돌”로 정리가 된 상태. “조폭, 학교 가다”(<두사부일체>)라는 설정이나 “우리, 딱 한 시간만 쉬었다 가자”는 카피(<색즉시공>) 등 컨셉이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전작들과는 출발점이 다소 다르다. 그 또한 “전작들의 웃음이 개인적인 경험을 가공해서 관객과 나누는 것이었다면, 이번엔 전적으로 상상만으로 극을 끌고 가야 하니까 부담이 된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각종 찬조금을 내라고 하던 기억이 상문고 비리와 맞물린 것이나 젤이 없어 요구르트를 바르고 미팅에 나갔던 일화가 머리에 딸기잼을 발라 파리가 꼬이는 임창정의 에피소드로 이어져서 스토리를 만들던 때”와는 웃음을 캐내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그가 품고 있는 비장의 폭소 전략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은 망가진 캐릭터. “여기 나오는 덜떨어진 자객은 장검을 빼들고 고작해야 양파를 써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인간형이다.” 여기에 조선시대 주막형 나이트 주리아나 부킹 장소인 해우소 등 그가 상상으로 지어낸 공간들에서 벌어지는 풍경들을 삽입해 관객의 웃음보를 터트린다는 복안이다. “당시 선남선녀들이 어두워지면 그냥 집에서 잤을 것 같나. 모두들 물레방앗간에서만 만났을 것 같나. 그때라고 무도장이 없고, 사이키 조명이 없을 것 같나” 하는 의구심에 대한 해답을 쥐어짜서 고스란히 영화 속 설정으로 넣었다고. 자객 요이 역으로 김민종을 캐스팅하기 위해 “꽃단장하고 기다리겠습니다”는 애교(?) 섞인 문자메시지도 거리낌없이 보냈다는 윤 감독은 현재 콘티 작업이 끝나면 6월24일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색즉시공>의 최성국과 진재영도 자객단 두목과 처녀귀신으로 합류할 예정. 총제작비는 35억원으로, 9월까지 촬영을 끝내고 12월에 개봉한다. 매년 연말을 공략하는 이유가 뭐냐고 했더니 “깨지더라도 할리우드 직배영화와 겨루고 싶어서”라고 응답.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 제작사 두사부필름 출연 | 김민종, 최성국, 진재영 개봉예정 | 12월 S t o r y 혼돈의 시대. “돈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는 자객단은 소문과 달리 어수룩하기 그지없는 인간 군상들의 집합소다. 의뢰인의 청탁은 실수로 인해 물거품이 되기 일쑤다. 특히 뒷구멍으로 자객단에 들어온 요이(要利)는 이름과 달리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자객단은 의뢰를 받고서 정분이 난 김 대감의 첩과 박수무당을 납치하지만, 이번에도 숲속에서 길을 잃고 흉가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처지가 된다. 그러던 중 자객단의 일원이 처녀귀신들이 호리병에 모아놓은 999명의 눈물을 마시게 되고, 이로 인해 하늘로 오를 방법을 잃어버린 처녀귀신들은 대신 자신들의 원수인 청나라 최고의 검객 미룡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자객단에 부여한다. 정초신 감독의 <남남북녀> 남남 로미오와 북녀 줄리엣이 만났다? Director's Story ] 만약 누군가 정초신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면, 그건 현기증나는 일일 거다. 96년 이후 그는 <귀천도> <할렐루야> <미스터 콘돔> <엑스트라> 등에서 프로듀서를 맡았고 부천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더니, 2000년 <자카르타>에선 연출자로 변신했고, 지난해 감독한 <몽정기>는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원래 일을 안 하면 견디지 못하는 체질”이라는 본인의 설명처럼 그는 짧은 기간 동안 숱한 일을 벌여왔고, 지금도 사정은 비슷하다. <몽정기> 이후 <남남북녀>를 맡기까지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봐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몽정기> 후반편집을 하는 도중, 명동의 전설적인 건달 이야기를 그린 <명동 신상사>라는 시나리오를 썼다. <몽정기>를 끝낸 직후 준비에 들어갔지만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고, 그 와중에 그는 씨네월드 이준익 대표로부터 <황산벌>의 감독 자리를 제안받는다. 이 영화를 놓고 심각하게 고려하던 중, 정초신 감독은 스스로 쓴 또 다른 시나리오 <남남북녀>의 준비가 마무리됐다는 연락을 받는다. 게다가 CJ엔터테인먼트에서는 한국영화 제작관리 업무를 맡아달라고 그에게 정중히 요청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자 제작사 아시아라인의 대표이며 이 영화의 원안자 주종휘씨와의 친분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해 <남남북녀>를 선택했다. Behind Story <남남북녀>는 남한의 바람둥이 남자대학생과 북한의 모범적인 여자대학생 사이의 사랑을 그리는 로맨틱코미디. 어찌보면 억지스런 설정이지만 정초신 감독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삼각논리를 좋아하는데, 이건 사랑문제에선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삼각관계를 설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남녀 사이에 제3자 대신 엄청난 장애물을 만들었다.” 그 장애물이란 곧 분단체제를 가리킨다. 요즘 세상에 집안의 반대 때문에 남녀가 갈라진다면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남과 북이라는 상황이 덧붙여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 남한 남자의 아버지를 국가정보원장으로, 북한 여자의 아버지를 인민무력부장으로 설정한 것도 이러한 장애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 세워놓은 포석. “인간이 절대적으로 갈망하는 게 두 가지인데, 그건 사랑과 죽음이다. 죽도록 사랑하는 연인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호소력을 가지게 된다.” 그는 이 영화가 ‘셰익스피어에 대한 채무’와 관련이 깊다고 말한다. 즉 <남남북녀>는 한국이라는 곳과 현대라는 시간을 배경으로 삼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시종 진지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객을 맞이하는 첫 번째 지점은 코미디 요소들이다. “2003년 한국의 관객이 원하는 것은 웃음에서 비롯되는 위안이다”라고 단언하는 정초신 감독은 남북의 문화차이나 남녀의 귀여운 줄다리기 속에서 웃음을 뽑아내되, 결정적인 순간에는 절박한 사랑 이야기를 극적으로 보여줄 생각이다. 스스로를 ‘날가루 감독’이라며 낮춰 부르는 정초신 감독은 만듦새에서도 이번 영화가 전작보다 나을 것이라 전망한다. “연출부 경력 하나없이 <자카르타>를 만들었다. 지금 보니까 온통 실수투성이더라. 연출부 막내가 만든 영화 같더라. <몽정기>는 세컨이, <남남북녀>는 퍼스트가 만든 영화 정도가 될 거고, 아마 4번째 작품에선 내가 진짜 감독이 될 거다.” 4월28일 크랭크인해 한달가량 촬영을 마친 이 영화의 순제작비는 20억원 남짓. 32회차로 예정된 스케줄을 3회차 줄였고 얼마간 더 줄일 수 있을 듯해 거의 예산에 맞출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앞으로 옌볜 현지에서의 촬영이 남아 있지만, 사스가 재발되지 않는 한 7월 중순쯤 크랭크업해 가을에 개봉한다는 애초 계획은 지켜질 것으로 보인다. 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 제작사 아시아라인 출연 | 조인성, 김사랑 개봉예정 | 가을 S t o r y 소문난 바람둥이 철수(조인성)는 학교는 뒷전인 채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여자를 꼬셔대는 ‘작업왕’. 한편 북한의 명문 대학생인 영희(김사랑)는 예쁘고 똑똑하기로 소문난 모범생이다. 평생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던 두 남녀 사이의 인연은 옌볜에서 발견된 고구려 유적과 함께 시작된다. 본격적인 유적 발굴을 위해 남북한 학생발굴단이 구성되고, 각각 남북의 대표로 뽑힌 철수와 영희는 옌볜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이 시작되지만, 남한 국정원장 아들과 북한 인민무력부장 딸이 쉽게 결혼할 수 있겠는가.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기 위해 남북의 정보요원들이 파견되고, 두 사람은 쫓기는 신세가 된다. 임찬상 감독의 <효자동 이발사> 송강호 이발사가 전할 슬픈 코미디 Director's Story 1995년 임찬상(34)씨는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명칭이 바뀐 의료보험연합회의 신입직원이었다. 어느 정도 돈을 벌면서 개인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 선택한 일.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민예총이 주관하는 영화비평강좌를 들었고, 해가 바뀌어 지난해와 똑같은 업무를 다시 시작할 무렵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본격적으로 영화연출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1996년 그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김태용·민규동, <품행제로>의 조근식, 의 이수연 등과 더불어 영화아카데미 13기로 입학했다. 그러나 선뜻 영화아카데미를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가 영화비평강좌 때문은 아니었다. 영문학을 전공하던 그는 군대에 갔다 복학하면서 시네마테크에 드나들었다. 조악한 화질로 복사된 비디오테이프로 상영회를 갖던 씨앙씨에라는 공간에서 임찬상씨는 잉마르 베리만의 초기영화를 처음 만났고 거기서 영화의 또 다른 표현영역을 발견했다. “감독의 사고, 세계관이 드러나는 영화들을 보면서 저런 걸 다룰 수 있구나,하며 놀랐다. 지금은 영화에 대한 생각이 그때와 많이 달라졌지만 영화를 시작한 원동력이 됐던 영화였던 건 분명하다. ”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장편시나리오를 준비하느라 2년을 보낸 그는 지인의 소개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연출부로 충무로 현장을 경험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시나리오와 현장 경험이 그것이었다.” 연출부로 한 작품에 참여하고 올해 데뷔하게 됐으니 운이 좋은 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는 <효자동 이발사> 시나리오를 쓰기 전, 영화를 포기할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1년간 매달린 시나리오의 결말을 맺지 못해 스스로 좌절했던 것. “영상원 석사과정 시험을 본 적 있는데 그때 내가 할 영화가 어떤 것인지 쓰라는 문제가 있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썼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제대로 영화 한편 만들어본 적 없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썼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다. 영화에 대한 태도를 다시 정립할 기회가 됐다.” Behind Story 독재자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코미디로 풀어나갈 <효자동 이발사>는 2가지 다른 계기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TV프로그램에서 중국에서 성공한 어느 사업가의 인터뷰를 봤다. 그가 얘기를 하다가 누군가의 육성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틀었는데 그건 우리가 독재자로 알고 있는 대통령의 목소리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전 이분 목소리를 들으면서 힘을 냅니다. 좋지 않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세대의 어떤 단면이 스쳐지나갔고 <효자동 이발사>의 시초가 됐다. 다른 하나는 대학 다닐 때 봤던 민가협 부모님들 모습이다. 분명 처음부터 저렇게 의식있는 분이 아니었을 텐데, 자식들이 희생되는 걸 보면서 앞장서서 구호를 외치는 것이었다. 그분들의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오직 부모의 정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하여 영화의 주인공은 상반된 모습을 지닌 아버지가 됐다. 대통령은 좋은 사람이라고 무조건 믿고 따르던 아버지는 자식이 위험에 처한 순간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심각할 수도 있는 영화지만 <효자동 이발사>는 코미디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영화를 좋아하는 임찬상 감독은 <포레스트 검프>의 이야기 구조를 빌려 역사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려 한다. “전반적으로 밝은 분위기지만 코믹하기 때문에 비극적 순간이 관객에게 더 많이 다가갔으면 한다”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효자동 이발사>는 송강호가 주인공을 맡았다. 처음부터 송강호를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인 만큼 지금까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 8월 중 첫 촬영에 들어가 내년 초에 개봉할 계획이다.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이혜정 socapi@hani.co.kr ★ 제작사 청어람 출연 | 송강호 개봉예정 | 2004년 초 S t o r y 청와대 근처 효자동에서 이발사를 하는 성한모(송강호)는 동네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이 훌륭하다면 그냥 그런 줄 아는 순진한 사람이다. 때는 60년대, 이발소 아가씨와 사고쳐서 아들 하나를 얻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성한모의 이발소에 수상한 남자가 찾아온다. 바로 대통령의 경호실장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성한모는 대통령의 머리를 깎는 이발사가 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을 지켜볼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대통령의 머리깎는 것을 영광이라고 여겼던 그에게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자기 손으로 아들을 경찰에 신고해야 할 일이. 성한모는 자신의 아들이 고문으로 망가진 모습을 보며 눈물을 삼킨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2003 화제의 뉴 프로젝트 11편 미리보기 [1]

쉿, 이 영화에 주목하세요 촬영 초읽기에 들어간 화제의 뉴 프로젝트 11편 미리 보기 현상적으로 영화는 관객이 소비자이고 제작자나 감독이 생산자인 시장이다.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라오고 반대로 공급이 수요를 만들기도 한다.하지만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은 관객과 제작자의 의도대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충무로에서 스타급 배우는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다. 스타급 배우들이 한정된 상황에서 수많은 영화기획이 배우에게 간택받기 위해 줄을 선다.2003년 초여름의 충무로 풍경도 그렇다.캐스팅이 확정되면 제작자뿐 아니라 감독도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투자위축이 심각했던 올해지만 제작편수가 많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대신 준비하는 작품이 많은 만큼 캐스팅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 몇 가지 고비를 넘기고 조만간 첫 촬영에 들어갈 영화 11편을 모아봤다.이들 영화의 감독들이 전하는 이야기에서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영화의 모습을 그려보자. 편집자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 윤종찬 감독의 <청연>조선 최초 여류비행사의 꿈과 사랑 그리고… Director's Story “그렇게 지독한 인간은 처음 봤다. 다시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 <소름>에 참여했던 스탭 가운데 한 사람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이야기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살수차로 뿌리는 비에 그냥 눈을 뜨기도 힘든 상황인데 배우에게 눈을 위로 치켜뜨게 하면서 몇 시간씩 촬영하는 모습이 비인간적으로 보였던 탓이다. 하지만 그런 집요함이 만들어낸 화면은 훌륭했고 <소름>은 2001년에 나온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가 됐다. “현장에선 다시 안 볼 것처럼 했던 사람들이 좀 있다. 스탭이나 배우나 다들 힘들었으니까. 그렇게 작업해서 안 좋은 영화가 나오면 정말 다시는 나랑 일하지 않을 텐데 다행히 결과가 나쁘지 않아서 다시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현장에서 힘들고 말썽이 있더라도 인간적으로 미안해서 작품의 어떤 부분을 양보하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실제로 <소름>은 윤종찬(40) 감독 외에 배우 장진영, 김영민, 촬영감독 황서식 등의 경력에 큰 도움이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현장에서 보여준 비타협적인 면모는 <소름> 이후 대학 영화과 교수직을 그만둔 데서도 드러난다. 그가 “벼랑 끝에서 작업할 필요”를 느끼면서 <소름> 이후 1년간 매달린 작품은 씨앤필름에서 준비하던 <그녀의 아침>. 하지만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자 지난해 영화사를 씨네라인-투로 옮겨 <청연>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Behind Story 일제시대 최초의 여자비행사가 됐던 박경원의 삶을 다룬 <청연>(靑燕: ‘푸른 제비’라는 뜻으로 박경원이 일본에서 조선을 거쳐 만주로 가는 장거리 비행을 하기 위해 탔던 비행기의 이름)은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연출제의를 한 영화다. 대체 윤종찬 감독은 박경원이라는 생소한 이름에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영화라 처음엔 상당히 주저했다. 하지만 박경원의 삶을 떠올려보면서 마음이 움직였다. 남자가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도 신기해하던 시절에 여자가 혼자 힘으로 온갖 불평등한 조건을 물리치고 비행사가 됐다는 것, 그리고 비행기를 몰고 현해탄을 건너다 조선에 이르지 못한 채 사고로 죽었다는 것, 전형적인 영웅이 아니라는 점에서 매력있는 캐릭터였다.” 현재 남아 있는 박경원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은데 윤종찬 감독은 그 점에 오히려 끌렸다. 전기영화지만 충분히 영화적 허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 엔딩의 비극이 정해진 상태에서 비극으로 가는 이야기 구조를 상상해내는 일은 온전히 감독의 몫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 윤종찬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복엽기가 하늘을 나는 장면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같은 영화를 보면 항공촬영을 해서 화면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투기가 날아다니며 싸우는 영화라면 안 했을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드는 화면을 만들고 싶다.” 그는 <청연>이 블록버스터급 영화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현재 예상하는 순제작비만 47억원. 복엽기를 동원한 항공촬영은 미국이나 호주의 전문가들을 동원할 예정이며 일제시대의 풍경은 중국의 세트장에서 찍을 예정이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큰 영화를 찍고 싶은 욕심이 들 거다. 최근 국내 블록버스터들이 실패하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감독으로서 책임감도 느낀다. 블록버스터의 주류가 볼거리라면 <청연>은 캐릭터와 디테일을 잊지 않으면서 볼거리를 결합하겠다는 생각이다. <소름>을 만들 때도 저 사람이 난데없이 왜 공포영화를 찍지, 그랬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청연>의 시나리오는 처음엔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가 썼고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박경원, 이정희, 한지혁이라는 세명의 중심인물이 만들어졌다. 영화는 박경원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하지만 중심부에 이들의 삼각관계가 들어간다. 주인공 박경원 역에 <소름>의 장진영이 출연할 예정이며 8월 말경 크랭크인해 2월까지 촬영을 끝낼 예정이다.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 제작사 씨네라인-투 출연 | 정진영 개봉예정 | 미정 S t o r y 1901년 4녀1남 중 넷째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 ‘원통’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박경원, 그녀는 비행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에 건너가 비행학교에 들어간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 택시기사로 돈을 벌어야 했던 박경원은 택시운전을 하다 한지혁이라는 남자를 알게 된다. 일본 비행학교의 또 다른 한국 여인 이정희의 배다른 오빠인 한지혁은 박경원에게 호감을 갖지만 둘의 사이가 가까워지자 오빠를 짝사랑하던 이정희는 박경원과 서먹해진다. 어느 날 한지혁과 박경원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 " 아뵤~ " 대학이 인생의 전부야? Director's Story 2002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10년여 만에 화려하게 충무로에 돌아온 유하 감독은 재기의 기쁨을 누릴 여유가 거의 없었다. <결혼은…>이 마무리되기 무섭게 신작 구상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현승 감독이 “싸이더스의 김기덕 감독”이라고 농을 던졌을 정도로 확실히 그의 행보는 예사롭지 않은 속도다. 유하 감독이 이처럼 숨가쁘게 몰아치는 것은 신작 <말죽거리 잔혹사>가 그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말죽거리 인근의 S고를 다니던 시절 우울하고 괴로움으로 가득했던 기억에 기반한 이 영화는, 그러니까 유하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90년대 중반,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에게 영화화를 제안했다가 “한마디로 거절당했”던 이 작품을 마침내 만들게 된 그의 표정에서 일종의 비장미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이 영화를 절실하게 느끼는 건 단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하는 이야기라서만이 아니다. 10대 시절 그의 아이콘이었고 현재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는 이소룡과 그의 무술 절권도의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소룡이 창시한 절권도는 오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무술이라는 점에서 폄하되기도 했지만, 품새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무술과 선을 그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혁신이었다.” 유하 감독이 보기에 절권도는 품새라는 유일무이한 가치에 대해 도전, 결국 이를 파괴했다. 결국 영화에서 주인공 현수가 대학 입학이라는 단일한 가치를 내세워 교사, 선후배, 동급생간의 폭력을 조장하거나 묵인하는 학교와 정면승부하는 것은 제도교육이라는 품새를 파괴하기 위한 절권도 정신의 구현인 셈이다. 시나리오 초고 제목이 <절권도의 길>이었던 것도 이같은 사정에서 비롯됐다. Behind Story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은 그가 1995년 산문집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무림일기>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등의 시집에서 엿보인 ‘키치 중독’의 근원을 스스로 찾기 위해 이 책을 쓰던 그는 이소룡이라는 궁극의 존재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에게 이소룡은 10대 시절 갑갑한 학교생활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소룡이라는 비상구를 통해 현실을 벗어난 뒤 그는 대중문화의 바다와 만났고, 이는 키치적인 정신으로 발전했다. 비슷할 때 읽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 도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나는 고교 시절 나에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은 정말로 소중한 것을 나에게서 빼앗아가버렸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등의 내용이 담긴 서문을 보며 진심으로 공감했던 그는 자신의 고교생활을 돌아보게 됐다. 그는 영화를 만듦에 있어서도 ‘절권도의 길’을 따를 생각이다. 즉, ‘모든 복잡을 뚫고 단숨에 핵심에 도달한다’는 절권도의 정신처럼 이야기의 굵은 선을 살리는 데 힘을 모을 계획이라는 것. 우스운 에피소드를 나열하거나 잡다한 수식 없이 정통 드라마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제작진이 생각하기에 이 영화의 관건은 30년이란 시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다. 일단 교육현장이 본질에선 크게 바뀐 게 없기에 요즘 아이들도 공감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이소룡의 존재조차 잘 알지 못한 신세대들과 호흡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유하 감독이 주인공 권상우 등에게 <이소룡에게…>와 이소룡 DVD 세트를 선물한 것도 젊은 연기자 스스로 감을 잡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순제작비 27억원을 들여 6월 중순부터 4개월 가량의 일정으로 촬영에 돌입하는 이 영화는 상당 부분이 군산에서 촬영된다. 70년대 서울 말죽거리를 연상케 할 공간이 흔치 않아 연출부롸 제작부가 꽤나 고생했다는 게 후문이다. 글 문석 ssoony@hani.co.kr ·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 제작사 싸이더스 출연 | 권상우, 이정진 개봉예정 | 12월 S t o r y 70년대 서울 말죽거리에 자리한 정문고등학교. 전학생 현수(권상우)가 나타난다. 전수학교에서 정규학교로 전환된 지 얼마 안 되는 이곳에선 교사들과 학생들의 폭력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학교에서 주먹으론 손에 꼽히는 우식(이정진), ‘포르노 장사꾼’ 햄버거 등과 친구가 된 현수는 어느 날 버스 안에서 인근 여학교의 유진(한가인)을 보고 바로 사랑의 열병에 빠진다. 이 사실을 모르는 우식은 유진과 사귀게 되고, 현수의 가슴은 미어진다. 갑갑한 학교 속에서 현수와 우식네 친구는 선도부원 종훈과 사사건건 부딪치고, 사소한 충돌이 잦아진다. 마침내 우식과 종훈은 정면충돌하고, 우식과 현수의 관계도 멀어지게 된다. 박흥식 감독의 <인어공주> 삶의 고비를 넘고 또 넘는 어머니의 자화상 Director's Story <그녀에게> <일 포스티노> <지중해> <파이란>, 아사다 지로의 소설. 다 박흥식(38) 감독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누군가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목표로 삼는 게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데뷔작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온기와 희망을 찾으려는 감독의 마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첫 영화로 박흥식 감독은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섬세한 디테일에 대한 찬사와 디테일에만 매몰됐다는 비판이 나란히 제기됐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빨리 잊으려고 했다.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 그게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빨리 다음 영화를 찍는 편이 좋았을 텐데 싶다.” 그는 <인어공주> 전에 일본 만화가 원작인 <최종병기 그녀>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비픽처스의 조민환 대표가 제안한 것으로 인간적이고 미니멀한 SF영화가 가능하겠다는 판단에서 수락한 프로젝트. 하지만 판권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3개월 만에 손을 떼게 됐고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찍기 전부터 제안이 있었던 <인어공주>에 착수하게 됐다. “<인어공주>는 6년 전 아이찜 시놉시스 공모에 당선된 것이었다. 그때 심사위원이었던 이창동 감독이 내가 연출하면 좋겠다고 말했고 <최종병기 그녀>를 그만두자 다시 제안을 했다. 이창동 감독이 보기엔 내가 세상을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걸로 보이나보다. 자긴 절대 그렇게 안 만들면서 말이다.” <인어공주>는 이창동 감독의 동생인 이준동씨가 대표인 나우필름의 창립작품이 될 예정이다. Behind Story <인어공주>는 현실과 판타지가 교차하는 이야기다. 딸은 돈만 밝히는 사나운 어머니를 혐오하지만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지금 모습과 상반된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삭막한 현실의 이면 혹은 과거에 존재하는 현실과 정반대되는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주고 싶었다. 어떤 사람을 볼 때 겉모습으로만 판단하게 되지만 과거에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걸 알게 된다고 현실의 모습이 바뀌진 않겠지만 그를 이해할 수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박흥식 감독은 이런 맥락에서 어머니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릴 생각이다. 딸은 어머니가 젊은 시절 해녀로 일하면서 집배원인 아버지를 사랑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이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어처럼 바다를 유영하는 해녀가 보이고 잠시 뒤 카메라가 물 밖으로 빠져나오면 수증기로 가득 찬 대중목욕탕 내부가 된다. 검은색 속옷을 입고 때를 밀어주는 여자, 살이 찌고 주름이 깊은 어머니가 거기 있다.” 박흥식 감독은 제주도에서 해녀가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경외감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물질을 하는 그 모습은 험한 세월을 살았던 어머니들의 거울처럼 보였던 것이다. <인어공주>는 여주인공이 1인2역을 해야 하는 영화다. 현실에선 딸로 나오고 판타지에선 딸과 어머니, 두 사람을 연기하게 된다. “한 화면에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들어오면 일반적으로는 소격효과를 일으키지만 이 영화에선 관객의 동화를 끌어내는 장치로 사용할 생각이다. 관객을 판타지에 몰입시키는 게 중요한 영화다.” 1인2역을 해야 하는 만큼 여주인공의 비중은 막대하다. 제작진은 현재 캐스팅을 최대 관건으로 여기고 있다.단편영화 <안다고 말하지 마라>로 널리 알려진 송혜진씨가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했으며 캐스팅이 확정되는 대로 촬영에 들어갈 계획.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 제작사 나우필름 출연 | 미정 개봉예정 | 미정 S t o r y 24살 처녀 나영은 부모의 불화가 지긋지긋하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목욕탕에서 때미는 일을 하는 어머니는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부부로 함께 살았는지 상상이 안 될 만큼 사이가 나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고 말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어머니는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음날 아버지는 집을 나간다. 뉴질랜드 견학을 눈앞에 두고 있던 나영은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찾으라고 설득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할 수 없이 직접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나선 나영은 외딴섬에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기이한 상황에 처한다. 지금 자기 모습과 똑같은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 것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텍스트의 섬세한 이해,<살인의 추억> O.S.T

추억의 한켠은 음악이 담당한다. 유제하의 <우울한 편지>는 살인의 전주곡이자 관객을 20년 전의 그 공간으로 데려가는 추억의 전주곡이기도 하다. 유제하의 노래는 스산한 살인의 느낌과 함께 추억의 공간에 관한 따뜻한 느낌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장치로 작동한다. 감독은 유제하의 노랫소리를 라디오나 녹음기 같은 장치를 통해서만 나오게 하고 있다. 소리도 빵빵한 스테레오 사운드보다는 모노필터를 입힌 코맹맹이 소리가 자주 선택된다. ‘과거’라는 시간대를 위한 사운드 선택이다. 약간의 공간감을 동반하여 어디선가 울리는 유제하의 우울하고 달콤한 멜로디는 그 역시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점까지를 상기시키며 살인의 추억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 추억의 한가운데에, 역시 그 멜로디처럼 우울하면서도 달콤하게 생긴 살인의 주인공이 존재한다. 그 아름다운 청년/변태 살인자가 자기 골방에 모로 누워 있다. 이 영화의 키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스코어를 담당한 사람은 이와시로 다로. 그는 히사이시 조와 더불어 일본 영화음악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대가다. 동북아시아 어린이들의 어린 시절을 사로잡았던 <플란더스의 개>(봉준호 감독의 동명 전작과는 별개. 이것도 인연?)나 <엄마찾아 삼만리>의 음악을 썼던 작곡가이다. <바람의 검심>의 스코어는 전설처럼 회자되는 작품. 또 <어나더 헤븐>을 비롯, 극영화의 스코어도 많이 썼다. 특히 <어나더 헤븐>은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재패니메이션의 신화 가운데 하나인 그의 음악은 장중한 스케일과 완성도의 측면에서 영화에 힘을 더하고 있다. 영화적 보편성이랄까, 그 비슷한 것이 있다면 다로의 음악이 <살인의 추억>으로 하여금 거기로 다가가도록 만드는 하나의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심리적 분열이나 불안감을 표현하는 날카로운 소음성의 스릴러적 요소는 장중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섬세하게 처리해야 할 대목에서 웅장한 스케일로 대충 뒤덮고 넘어가는 대목이 보이는 것은 시간이 부족했거나 작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가 한국말을 모른다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을지 모른다. 가령 송강호라는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시골 말단 형사의 말투는 저속하고 투박하며 스스럼없는, 특유의 어감이 살아 있는 말투다. 다로가 과연 그것을 붙들어냈을까? 내 생각에는 ‘아니오’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스케일 이외의 섬세하고 토속적인 어떤 것을 음악적으로 구상해내야 했을 텐데,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것들만 봐도 영화음악은 역시 텍스트적이다. 음악적인 텍스트뿐 아니라 배우의 말투까지도 참고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은 지엽적인 것이다. 이 영화는 그만큼 스케일과 섬세함을 두루 지닌 수작이다. 시골 들판을 내려다보는 큰 시선의 카메라가 바깥에 있다면 수사관들의 동선을 깊이 있게 따라다니며 이곳저곳을 헤집는 집요한 시선의 카메라가 경찰서 내부에 있다. 그 시선들 사이 어디엔가 ‘살인’이 있고 ‘추억’이 있다. 살인과 추억의 공간을 기묘하게 공존시키는 그와 같은 상반된 ‘눈’들을 통해 봉준호 감독은 범죄영화의 독특한 스타일리스트로 떠오르고 있다.성기완

대종상 홈페이지, 후보작 놓고 시끌

"대종상은 大관절 鐘잡을수없는 賞?"(네티즌'간관<諫官>') 제40회 대종상 영화제가 12일 막을 올린 가운데 후보작 선정을 둘러싼 네티즌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영화제 인터넷 홈페이지(www.daejongsang.com)에 게시판이 개설된 것은 지난 11일 오후. 이후 13일 오후 2시30분까지 490건의 글이 올라왔으며 이중 대부분은 후보작 선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게시물 중에는 몇몇 배우에 대한 인신공격성 글도 포함돼 있는 것이 사실. 하지만, 후보작 선정을 비판하는 어조의 글들은 상당부분 비슷한 내용이다. 네티즌들은 <오!해피데이>로 장나라가 여우주연상에 오른 반면, <지구를 지켜라>의 신하균이나 <살인의 추억>의 김상경, <클래식>의 조승우, <질투는 나의 힘>의 배종옥 등이 후보에서 제외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영화제 주최측이 이같은 비난을 사는 것은 예심 심사 과정이나 내용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은 탓이 크다. 한동안 대종상 영화제는 수상작 선정을 둘러싼 추문과 의혹에 시달려 왔고, 지난해에는 금품로비 의혹으로 심사위원들이 검찰에 소환되는 등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다. 이에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올해 처음으로 일반인 심사위원단을 구성해 100명의 일반인을 예심에 참여시켰다. 대종상 집행위원회는 지난 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반인 심사위원의 의견을 50% 가량 반영했다"며 "밀실에서 이뤄지던 기존 심사와는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게시판에 일반심사위원단에 참여했다고 밝힌 영화팬들이 "심사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고 밝히는 글들이 수차례 올라오면서 심사의 공정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일반심사위원'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일반(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사람들조차 예심이 어떤 과정으로 심사되는지 모르며 언제 어디서 누가 개표하는지 모른다"며 "일반심사위원의 참여가 그저 구색 맞추기였다면 대종상은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오승현(28)씨는 "50:50 비율로 일반심사위원의 의견이 들어간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라며 "심사결과가 취합되는 방식이나 개표에 참여하는 사람 등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 심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일반인들은 개별 영화에 대한 심사의견서와 전체 영화 상영 뒤 진행된 최종심사의견서를 통해 심사에 참여했다. 또 다른 참가자 우리라(19.여)씨는 "후보작 선정 결과를 보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의외라고 생각한 것으로 안다"며 "의견서만 제출했을 뿐 일반인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종상영화제 사무총장 김갑의씨는 "처음 참가했던 100명의 일반인들이 예심 후반부로 갈수록 참가자가 줄어드는 바람에 심사 반영 비율을 60(전문가):40(일반인)으로 수정했다"며 "20개 부문 중 두 부문을 제외한 18개 부문에서 이 비율을 지켰으며 몰이현상이나 역몰이현상이 보였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에서는 전문심사위원들의 의견을 주로 반영했다"고 밝혔다. 그는 "시상식이 끝나기 전에는 예심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