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 검색결과

기사/뉴스(2003)

[people] 발견의 모험을 멈추지 않는다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에게 먼저 두루뭉술하게 물었다. 수석프로그래머로서 느끼는 올해 영화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무엇이 변했습니까. 그러자 “게스트들과 관련하여 한 가지 큰 변화가 있다”며 그가 본격적으로 운을 뗀다. “우리 영화제도 나름대로 게스트를 초청하는 기준이 있다. 오고 싶은 게스트를 다 맞이해서는 재정상 감당을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다보니 오고 싶어도 못 오는 게스트들이 매년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이들이 자비로 오겠다는 경우들이 부쩍 많아진 거다. 어떻게든 부산영화제는 한 번은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다. 농담이지만, 중요한 스타들이 너무 오래 있겠다고 해서 골치가 아플 정도다.(웃음)” 한마디로 부산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추측컨대 영화의 전당을 개관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고 AFA(Asian Film Academy), ACF(AsianCinema Fund) 등 지원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서서히 발휘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지나칠 수 없는 질문. 올해 동세대 아시아 영화의 경향과 특징은 또 어떨까. 그 경향과 특징은 어떻게 프로그래밍에 반영되었을까. “아시아 신인 감독들의 영화를 상영하는 뉴 커런츠 부문에 올해 처음으로 중국영화가 선정되지 않았다! 물론 중국영화의 플랫폼이 다양해졌다는 것이 큰 이유 중 하나가 되겠지만 뽑을 만한 영화가 없기도 했다. 다만 아시아 영화의 창에서 상영하는 <화부> <학과 함께 날다> <사랑의 대역> 같은 영화들은 눈여겨봐주면 좋겠다. 한 명의 훌륭한 제작자(쵸우 컹)가 이 영화를 만들어냈는데, 작품들이 전부 좋다. 한편 대만 영화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오랫동안 자국 시장 점유율 1퍼센트대에 주저앉아 있던 영화시장이 지난 2~3년 사이에 20퍼센트로 치고 올라왔고 많은 영화가 제작되고 있으며 동시에 재능있는 젊은 감독들이 대거 데뷔하고 있다. 그 때문에 뉴 커런츠 부문에 관해서라면, 중국영화가 없는 대신 대만영화가 두 편이나 된다. 그리고 인도의 예술영화가 활성화되고 있고 필리핀은 해마다 계속 좋은 독립 영화와 데뷔 감독들이 나오고 있다.” 그의 꼼꼼한 설명으로 우리는 올해 주목해야 할 새로운 감독의 이름과 각국의 경향을 이렇게 또 미리 알게 된 것이다. 새로운 재능들의 이야기를 하고 나니 거장들로 화제는 자연스럽게 옮겨 간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속죄>를 주목해주면 좋겠다. 텔레비전용 영화이지만 텔레비전 포맷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그리고… 모흐센 마흐말바프… 그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좀 알지 않나?(웃음). 사실 두 가지 걱정을 했다. 하나는 저 분이 반정부 활동을 벌이다 테러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저러다 창작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실험적인 영화 <정원사>를 만들어냈다. ACF 지원을 받아 서울에서 후반 작업도 거쳤다. 베니스영화제에 출품해도 괜찮다고 했는데도 부산에 내시겠다고….(웃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의외라고 생각했을 법한 폐막작 선정의 변까지 듣고 나면 이제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가 꿈꾸는 영화제의 상을 비로소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올해의 폐막작은 방글라데시의, 그것도 신예 감독 모스타파 사르와르 파루키의 영화다. “상영할 영화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니냐는 반응들? 물론 있을 거라고 봤다. 뭔가 펑크나서 갑자기 고른 거 아니냐는 식의. 하지만 이 영화를 폐막작으로 결정한 건 이미 7월이었다는 걸 꼭 말해 두고 싶다.” 말하자면 미지의 영화국가 그것도 신예 감독에게 거는 가능성이 올해의 폐막작을 고르는 절대 기준이었던 셈이다. “부산영화제가 지향하는 바에 대한 오해가 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확장 지향적이지도 않고 화려함을 지향하지도 않는다”는 말을 그는 잊지 않았다. 기존의 위상을 높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관계와 성취를 내실 있게 다지되 멈추지 않고 모험적으로 발견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가 꿈꾸는 영화제의 상이다.

[people] 혁신을 거듭하다

“주제나 목적의식만 강조한 게 아니라 만듦새까지 탄탄해지면서 전체적인 수준도 높아졌다.” 홍효숙 프로그래머는 올해 와이드 앵글 섹션의 경향에 대하여 말하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와이드 앵글 섹션부터 아시아영화펀드(이하 ACF)까지, 단순히 작품을 선정하는 프로그래머로서가 아니라 영화제 집행부 역할까지 해내는 그녀의 행보는 보통사람이라면 벌써 지쳤을 법한 스케줄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지치거나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와이드 앵글 섹션과 ACF가 보였던 성과 때문. 특히 올해 폐막작인 모스타파 사르와르 파루키 감독의 영화 <텔레비전>은 홍효숙 프로그래머에겐 가장 큰 성취다. “<텔레비전>은 2010 ACF 인큐베이팅펀드, 2012 ACF 후반작업지원펀드를 지원받았고 2010 APM 프로젝트 선정작이다. 이런 작품이 폐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우리가 6년간 해왔던 교육과 지원프로그램이 성과를 내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ACF는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카타르 대표위성채널 알자지라 잉글리시와 아시아 다큐멘터리 감독을 발굴하기 위한 ‘뷰파인더 아시아’ 워크숍을 연다.” 이렇듯 와이드 앵글은 더욱 넓게 ACF는 좀 더 다양한 혁신을 거듭하고 있었다.

[special] 중요한 회사들이 모이는 잔치 만든다

“부산의 아시아필름마켓이 가을 시즌을 대표하는 아시아의 마켓으로 확실히 자리잡는 분위기다.” 지난해가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의 전환점이 된 시기였다면, 올해는 변화로 인해 발생한 긍정적인 효과들을 발전시켜나가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아시아필름마켓은 행사장을 벡스코로 옮겼다. 세일즈, 미팅, 피칭, 포럼 등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니 시너지 효과가 컸다. 우선 마켓에 참가하는 세일즈부스의 수가 늘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7% 가량 세일즈부스가 많아졌고, 마켓 스크리닝 횟수는 30% 이상 늘었다. 지난해부터 독자적으로 개발해 선보인 온라인 스크리닝도 반응이 좋다.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실장은 “좋은 물건을 많이 파는 곳에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도 모이는법”이라 했다. 남동철 실장은 또 “올해 마켓에서 노력하는 부분은 중요한 회사들이 많이 참가하는 마켓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양적 성장과 더불어 질적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뜻이다. 아시아프로젝트마켓(이하 APM)은 올해 30편의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김태용, 연상호, 민규동 감독 등 한국영화도 7편 뽑혔다. 올해는 또 APM에서 배출한 감독들이 특히 두각을 드러낸 해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 에드윈 감독의 <동물원에서 온 엽서>, 허진호 감독의 <위험한 관계>, 폐막작인 모스타파 사르와르 파루키 감독의 <텔레비전> 등 APM을 통해 완성된 영화 8편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 아시아필름마켓이 올해 야심차게 준비한 행사도 있다. 출판사에서 영화로 만들 만한 원작을 소개해서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마음에 드는 원작과 만나게 하는 ‘북 투 필름’이 그것이다. “출판 산업과 영화 산업을 맺어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로 신설됐다. 이외에도 아시아필름마켓과 부산영상위원회와 함께 준비한 BFC(부산영상위원회) 피칭, 한국영화진흥위원회가 준비하는 KOFIC 인더스트리 포럼, 독립영화 제작지원을 하는 전세계 펀드를 소개하는 필름펀드토크 등의 행사가 마켓 기간 동안 마련된다. 올해 아시아필름마켓은 8일부터 11일까지 4일간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다.

[에디토리얼] 부산, 영화가 익어간다

여기는 부산이다. 10월4일 개막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이다. 올해도 <씨네21>은 부산영화제 현장에서 데일리를 내고 있다. 이번 사무실은 영화의 전당 바로 옆에 있어서 개막식장에서 쏘아올린 화려한 불꽃을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나란히 앉은 문재인, 박근혜 후보는 그 불꽃을 보며 대망을 되새겼겠지만, 나는 ‘오늘도 무사히’를 되뇌었다. 영화제라는 곳이 워낙 상황이 급변하는 분위기다 보니 자칫하면 사고를 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오늘도 무사히, 올해도 무사히. 개막 전날인 3일 영화의 전당에 자리한 부산영화제 사무국을 들렀을 때 깜짝 놀랐더랬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프로그래머들이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개막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수영만의 컨테이너 건물을 우당탕 누비던 게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용관 위원장은 “그만큼 시스템이 갖춰졌고 실무자들이 일을 알아서 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부산영화제도 이제 17살이 된 만큼 철이 든 모양이다. 매주 쳇바퀴 돌리듯 허덕허덕 일하는 주간지 기자 입장에선 1년 단위로 일하는 영화제 일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렇게 일하게 된다면 매년 야심을 불어넣어 그야말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1년 단위로 일을 진행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듣다 보면 사람 일이라는 게 똑같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부산영화제 같은 경우는 매년 새로운 야심을 엿볼 수 있게 해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부산영화제 최고의 야심작은 세계적인 중국 배우 탕웨이를 개막식 사회자로 내세운 것일 터. 탕웨이가 안성기 선배의 한국어를 너무 잘 알아듣는 게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그냥 폼으로나마 귀에 리시버라도 꽂게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할리우드 리포터>의 분석처럼 “진정 글로벌 행사로 발돋움하려는” 부산영화제의 야심만큼은 잘 엿볼 수 있었다. 영화에 있어서 변방인 방글라데시의 <텔레비전>이 폐막작으로 선정된 것이나 영화제 기간을 하루 늘려 관객으로 하여금 두번의 주말을 맞을 수 있도록 한 점도 열일곱 내기의 관록과 패기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여러모로 어수선했던 영화의 전당도 정돈됐고 센텀시티의 부대시설도 잘 갖춰져(물가가 비싸다는 점만 빼고) 보다 편리해졌다. 프리뷰룸에서 여러 작품을 미리 접한 취재기자들에 따르면 상영작들도 예년만큼 고르고 좋단다. 미적대다 아직 출발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두 번째 주말까지 영화제가 열리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가볍게 짐을 싸서 부산으로 오시라. 영화티켓을 구하기 어렵다고? 어차피 영화제에서 영화는 옵션이 아니던가. 가을 햇살에 부서지는 해운대 앞바다의 광채만 즐겨도 본전은 뽑는 거다. 다만, 밤공기가 차가우니 두툼한 웃옷은 꼭 챙기시길. 자 그럼, 우리 부산에서 만나는 걸로!

드라마틱한 삶의 중심 <서칭 포 슈가맨>

1970년대 미국 디트로이트의 부둣가 뒷골목, 담배 연기 가득한 한 술집에서 손님들을 등지고 노래하던 가수가 있었다. 그의 실력을 알아본 프로듀서가 그의 앨범 두개를 냈지만 미국에서는 이렇다 할 반향을 얻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시간과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신기한 일은 여기서부터다. 그의 첫 번째 앨범 ≪콜드 팩트≫(Cold Fact)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우연히 건너가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남아공은 극심한 인종차별정책과 함께 나치 독재의 부활이라고까지 여겨질 만큼 끔찍한 정치적 현실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주변에 스파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겁에 질려 있었고, 정부 정책을 비판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잡혀갔다. 어떠한 외국 공연도 허가되지 않았으며, 유통되는 모든 음반은 일일이 검열되어 폐기되었다. 이때, 앨범 제목처럼 ‘콜드 팩트’, 차가운 현실 앞에 등장한 로드리게즈의 노래들은 남아공에서 저항운동의 시작이자 탈출구로 여겨지게 되었다. 제때에 도착한 노래. 하지만 정작 로드리게즈 자신은 노래와 함께 도착하지 못했다. 그의 앨범은 남아공에서 비틀스의 ≪애비로드≫(Abbey Road) 와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만큼 많이 팔렸지만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무대 위에서 분신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신문에서는 로드리게즈를 찾아줄 ‘음악평론가 탐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콜드 팩트≫에 실려 있는 노래의 제목을 따서 지은 ‘슈가맨’이라는 애칭의 가수 로드리게즈를 찾아나서는 이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긴 배경 설명이 끝난 뒤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말릭 벤젤룰 감독은 스웨덴 텔레비전에서 엘튼 존이나 비욕 같은 팝스타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서칭 포 슈가맨>을 만들어냈다. ‘서칭 포’로 시작되는 다큐멘터리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영화는 슈가맨, 로드리게즈의 흔적을 쫓아가지만 결국 영화가 찾아낸 것은 로드리게즈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어긋남’이 이 다큐멘터리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때문에 사실 질문은 ‘그는 어디에 있는가?’라기보다 ‘우리는 왜 그를 찾지 못했는가?’가 될 것이다. 그는 남아공에서 엄청난 앨범 판매고를 올렸지만 ‘돈의 흐름’ 바깥에 있었고, 유명세와 전혀 무관한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드라마틱한 삶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정작 로드리게즈 자신은 그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때 다큐멘터리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그것이 드라마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로드리게즈를 찾는 과정과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그 삶의 드라마를 담는다. 여기에 그가 발표했던 많지 않은 노래들이 로드리게즈의 40여년 삶의 이야기와 함께 배치된다. 수평 트래킹으로 도시를 걷는 외로운 로드리게즈의 모습을 담은 이 장면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영화가 결정적으로 다른 ‘서칭 포’ 다큐멘터리들과 다른 점은 이 모든 이야기가 다 밝혀지고 난 다음 한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로드리게즈를 찾아나선 ‘탐정’들이 3년 만에 그를 찾아낸 것은 1997년이었으며, 그 다음해인 1998년, 로드리게즈는 남아공에서 성대한 ‘커밍 아웃’ 콘서트를 열었다. 말릭 벤젤룰이 아프리카 여행 도중 로드리게즈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이 그로부터 8년이나 지난 2006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차’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영화 속 어디쯤, 왜 이 이야기를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꺼내들었는지가 설명되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며 아쉬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로드리게즈의 또 한번의 때늦은 이 도착은 감동적이라기보다 어쩐지 서글프다.

진리를 구하다 <사랑의 침묵>

언뜻 북소리처럼 들리는 규칙적인 사운드로 영화가 시작된다. 런던 노팅힐 가르멜 수도원의 수녀들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외부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병원이나 치과를 찾을 때를 제외하면 짧은 외출조차 허락되지 않으며,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현대의 문물들은 이곳에선 무용하다. 어쩌면 유물론 자체가 쓸데없어 보이는 공간, 영화 <사랑의 침묵>은 런던 한가운데 위치한 여자 수도원의 1년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계절이 변하고 새로 들어온 수련 수녀들이 무언가를 익혀가는 동안, 나이든 수녀는 세상을 떠난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소소한 변화들이 생겨난다. 영화는 우선 이 닫힌 세계의 개요를 보여준 뒤, 현대의 물질적 관념들을 토해내는 식으로 구성된다. 1878년 개관된 이후로 이곳 수도원은 줄곧 외부로부터 봉쇄된 채였다. 침묵은 그곳의 법칙이지만, 하루 단 두번의 휴식시간에 마치 구두점을 찍듯 나직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이들은 침묵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른다. 침묵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직시하게 되면, 이는 도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수녀가 된 것이 삶으로부터 도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연출자의 질문에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했다는 어느 수녀는 “신이 내 곁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간다. 이것이 도피다”라고 말한다. 극장에 앉은 어느 관객이라도, 심지어 신을 믿지 않는다 해도 뜨끔할 대답이다. 만약 이들의 말처럼 믿음이 견뎌내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세상을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자신조차 믿고 있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개개의 사건이 아니라, 수도자들이 행하는 전체적인 모습이나 행사 등을 통해 관객은 단순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진리를 구할 수 있다. 구원자, 그리고 인류에 대한 헌신이 가슴에 새겨진다. 부활절 전의 성주간(Holy Week)을 중심으로 영화는 수도원의 일상을 담지만, 사건의 의미에 관심을 둘 필요는 없다. 이 닫힌 세계로의 여정이 르포르타주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타 수도원을 담은 영상물과 다르게 <사랑의 침묵>은 수녀들의 직설적인 인터뷰가 담긴 것이 장점이다. 마이클 화이트 감독이 10년간 서신을 통해 설득한 덕분인지 인터뷰를 통해 수녀들의 진솔한 내면이 공개되었다. 그 내용은 영화의 외향과 일맥상통하는데, 사건보다는 하나의 전체, 기계적이진 않지만 규칙적인 리듬이 그들이 말하는 진리 속에 담겨 있다. 따라서 영화의 시작부에 들었던 종소리는 영화 말미에 마치 생활의 운율처럼 재해석된다. 고전주의 속에서 생명력을 느끼는 기분이 든다.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몇몇의 몽타주가 적나라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여타의 장점들이 이를 가린다. 간결하지만 압축적인 메시지와 수도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관객을 100여분 동안의 피정으로 인도한다.

[충무로 도가니] 바이어들이여 제3세계에도 관심을

언제부턴가 ‘부산국제영화제=티켓전쟁’이 공식처럼 돼버렸다. 어떤 영화는 몇초 안에 표가 매진되어버리니 틀린 말은 아닌 거 같다. 게시판에는 인기있는 영화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사연들이 구구절절하다. 3, 4회 정도로 제한된 상영횟수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인기 폭발인 영화들도 정식 개봉을 해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예 국내 수입조차 안되는 영화도 부지기수다. 나 역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가 제작하거나 수입한 영화를 뺀 다른 영화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티켓을 구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매일 밤 늦도록 벌어지는 술자리다. 예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외국 작품들 가운데 유명한 감독들의 작품이나 칸, 베를린, 베니스 등에서 상 받은 작품을 제외하곤 국내 수입사가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부산이나 부천, 제천, 전주에서 상영된 대부분의 화제작들이 이미 수입이 되었거나, 영화제 이후에 정식 수입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제는 아시아 국가 중 일본과 중국, 그리고 유럽에서는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영화들의 국내 정식 개봉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나의 부산국제영화제 관람 리스트에 있던 영화 가운데 아직도 주인을 못 찾은 영화는 필리핀이나 이라크, 터키, 페루 등 제3세계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미국영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영화가 국내 흥행이 힘든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가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프랑스, 인도영화 중 나름 의미있는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가 나오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제3세계 영화는 영화 바이어에겐 무관심의 대상이다. 오래전 <잔다라>라는 타이영화를 국내에 소개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영화가 한국에서 최초로 개봉된 타이영화일 것이다. 이후 <디 아이> 같은 흥행작도 있었지만 타이영화가 한국에서 소개되는 일은 드물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인도네시아영화 <동물원에서 온 엽서>는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보자마자 구매를 결정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관심이 간 영화는 필리핀영화였다. 아직 국내에 팔리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감독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구매의사를 전달했다. 개인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폐막작으로 방글라데시영화 <텔레비전>을 선정한 사실에 무한 찬사를 보낸다. 그 일이 방글라데시에서는 엄청난 뉴스였다는 사실을 듣고 2000년에 <춘향뎐>이 칸 경쟁작으로 선정되었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은 단일민족국가이지만, 이미 이 땅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한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즐거움과 동시에 그들의 모국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기쁨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 문화를 세계화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또 다른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작은 배려가 아닐까? <텔레비전>은 볼 수 있을까? <텔레비전>은 아직 수입되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을 이틀 앞둔 10월11일 현재까지 공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ACF인큐베이팅펀드와 ACF후반작업지원펀드를 통해 제작된 <텔레비전>은 이번 영화제를 통해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영화는 극단적 이슬람주의자가 지배하는 어느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현대 문명을 금지하는 지배층과 TV의 매력을 알게 된 사람들간의 갈등을 유머러스하게 펼쳐놓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방글라데시영화라는 선입견만 없으면 의외로 재밌는 작품으로 받아들일 것”이라 말했다. “수입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영화제로서는 적극적으로 영화를 알릴 것이다.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BIFF must list

1. 부산에 또 오세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내년이면 또 다시 수많은 관객들의 발길이 이곳에 머물 것이다. 2. 70여 편의 영화가 팔렸어요 아시아필름마켓 2012 기간 동안 약 70여 편의 영화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11일 아시아필름마켓 측은 “CJ엔터테인먼트의 <광해> <연가시> <용의자 X> <오싹한 연애>, 쇼박스의 <도둑들> <회사원>, 미로비전의 <가족의 나라> <멜로> <줄탁동시>, 나이너스의 <네버 엔딩 스토리> <결정적 한방> 등이 판매계약을 맺었고 약 70여 편의 영화가 거래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미국의 CMG, 독일의 솔라 미디어와 베타시네마, 프랑스의 셀룰로이드 드림즈와 르 팍트 등의 영화사들도 아시아 여러 나라에 영화를 판매했다. 거래량과 참가자의 수를 볼 때, 올해도 아시아필름마켓의 성장세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전년 기록인 585개 업체, 1080명 대비 소폭 증가한 총 690개 회사, 1098명의 배지등록자 수(BIFCOM 포함)를 기록했다. 4일간의 일정이 마무리되면서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의 수상결과도 발표됐다. 부산시가 2만 달러를 지원하는 ’부산상’은 로이스톤 탄 감독의 <69>가 수상했다. 이 외에도 전재홍 감독(<마켓 플라워>)이 코닥상에, 양아체 감독(<중국의 붉은 피>)이 CJ엔터테인먼트 어워드를, 김태용 감독(<변사 프로젝트>(가제))이 롯데 어워드상 등에 선정됐다. 3. <남영동 1985> <가족의 나라> 마지막 상영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들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12일 오전 11시 CGV 센텀시티 6관에서 <남영동 1985>가 상영된다. 같은 날 오후 7시에는 CGV센텀시티 2관에서 <가족의 나라>가 상영될 예정이다. 지금이라도 예매해서 소문의 진원지를 확인하자. 4. 말.말.말 “방글라데시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을 길들인다. 통제를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재치를 가지고 사소한 것과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 <텔레비전>의 배우 누스랏 임로세 티샤 “<텔레비전>을 개막작으로도 고려했다. 이 영화는 낯선 듯하면서도 가깝다. 우리 사회에서도 필요한 것이 소통이고, 우리야말로 TV 왕국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을 역설적으로 풀어내준 영화다.” 이용관 집행위원장 “어떤 게 훌륭한 영화인지 가려낼 수 없어서 영화가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사실 전문가가 아니라 객석에 앉아 영화보기를 좋아할 뿐이다.” 소설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5. 방글라데시 영화를 어디서 보겠어? 방글라데시 영화는 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다. 방글라데시 영화 가운데서도 유머러스하고 감동도 있고, 주제의식도 있는데 완성도도 있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부산국제영화제 뿐이다. 폐막작인 <텔레비전>은 그처럼 흔치 않은 기회의 영화다. 13일 오후 7시에 열리는 폐막식에서 상영된다. 6. 한국과 할리우드, 시나리오에 대한 두 가지 관점 10월5일부터 6일까지 동서대학교 센텀 캠퍼스 6층 시사실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와 미국영화협회가 ‘영화 시나리오: 할리우드 관점 vs. 한국 관점’을 주제로 ‘영화 시나리오 필름 워크숍’을 열었다. 참가자 15명이 조별 멘토링, 강의, 공개 피칭 등의 프로그램으로 짜인 워크숍에 참여했다. 이들 중 공개피칭 우승자로 선정된 1등 김석영씨는 내년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를 직접 방문 자신의 시나리오를 직접 피칭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7. 송중기 박보영이 해운대에 스타들의 부산 방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2일 오후 6시에는 <늑대소년>의 송중기와 박보영이, 6시45분에는 <터치>의 유준상과 김지영이 비프빌리지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폐막 전날이라고 해서 영화제가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8. <강심장>만큼 재밌을 걸요 김기덕 감독의 토크쇼가 마련됐다. 12일 오후 7시30분, 비프빌리지에서 김기덕 감독의 오픈토크가 열린다. 김기덕 감독이 부산에서 관객과 만난 건, 상당히 오랜만이다. <이야기쇼 두드림>과 <강심장> 못지않은 재밌는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다.

[cine choice] <텔레비전> Television

<텔레비전> Television 모스타파 사르와르 파루키 | 방글라데시, 독일 | 2012년 | 106분 | 폐막작 OCT13 야외 19:00 <텔레비전>의 무대는 방글라데시의 작은 마을인 미타누프르다. 이곳에 들어오는 신문에는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곳의 촌장인 아민은 우상숭배를 인정하지 않는 코란의 율법에 따라 “생명이 없는” 일체의 이미지를 금지시키고 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안 되고, 핸드폰은 어른들만 쓸 수 있는데, 카메라폰은 쓸 수 없다. 당연히 TV 시청도 허락되지 않는다. <텔레비전>은 아민의 아들과 그의 연인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을의 규칙 때문에 이들은 21세기인 지금도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고 있다. 만약 핸드폰을 쓸 수 있다면, 컴퓨터로 화상채팅을 할 수 있다면, 이들은 전 세계 연인들처럼 언제나 대화하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 때문에 이미지를 갈구하게 된 연인은 결국 사람들 몰래 핸드폰과 컴퓨터를 구입한다. 마을에 스며들기 시작한 기술의 매혹은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속도로 퍼진다. <텔레비전>은 <배첼러>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 <제3의 인생>등을 연출한 모스타파 파루키 감독의 4번째 작품이다. 방글라데시에 사는 사람들의 사랑과 불안, 위선을 주제로 삼던 그는 <텔레비전>에서 그들의 가치관이 변하는 과정을 중계하고 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현대문명과 이를 막으려는 소동은 상당히 유머러스하다. 마을 청년들이 강을 건너 TV를 보러가자 촌장은 비자를 발급하려 들고, 마을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를 만들자는 생각에 TV 모양을 한 무대를 만들어 연극공연을 벌이기도 한다. 이러한 갈등을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펼쳐놓는 방식 또한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고민에서 나온 듯 보인다. 무엇보다 방글라데시의 영화 <텔레비전>이 방글라데시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은 종교의 차이와 세대 간의 불화, 현대문명과 전통문화의 충돌 등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이 작은 마을에 있다. 친숙하지 않은 나라의 영화라는 선입견만 지운다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Tip. 부산국제영화제의 ACF인큐베이팅펀드와 ACF후반작업지원펀드를 통해 제작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