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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호러 <장화, 홍련> 대박 예감

개봉 전날 심야상영부터 매진 기록, <매트릭스2>와의 한판승부 기대 5월23일 개봉한 <매트릭스2 리로디드>가 3주째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킨 가운데, 한국 호러영화 <장화, 홍련>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개봉 3주차 주말에도 서울에서 10만명 가까운 관객을 끌어들이며 디즈니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를 제친 <매트릭스2>는 6월12일까지 서울 131만5천, 전국 322만3천명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급반전되고 있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바람을 몰고 있기 때문이다. <장화, 홍련>의 돌풍은 개봉일인 6월13일부터 현실화되고 있다. 금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후부터 서울극장과 시네코아, 대한, 메가박스 등에서 연이어 매진기록을 세웠고, 다른 극장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장화, 홍련>의 ‘대박’은 예매 현황에서 이미 감지됐던 일. 이 영화는 맥스무비, 티켓링크, 다음영화 등 영화예매 사이트에서 50% 가까운 예매점유율을 기록하며 다른 영화를 압도했다. 개봉 전날인 6월12일 MMC 2개관에서 열린 심야상영도 완전 매진을 기록했다. 전국 164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장화, 홍련>의 박스오피스 정상 등극은 확실해 보이며 주말 누적 전국 관객 수도 40만∼50만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이 영화의 개봉일은 ‘13일의 금요일’이어서 호러영화로서는 ‘길일’(吉日)임을 입증했다. 한편, 6월6일 개봉한 픽사와 디즈니의 합작품 <니모를 찾아서>는 6월12일까지 서울 18만9천, 전국 42만3천명의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얻은 이 영화는 방학시즌이 아님에도 비교적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4월25일 개봉한 <살인의 추억>은 6월12일까지 전국 관객 471만명을 기록하며 500만 고지에 한발 다가섰다. 6월20일 열릴 대종상영화제의 9개 부문 후보로 오른 이 영화는 수상 결과에 따라 최종스코어를 결정지을 전망이다. 문석

세계 애니메이션계에도 아시아 바람

꼬박 6일 밤낮, 세상 곳곳에서 날아온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을 원없이 만날 수 있는 2003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지난 6월7일 폐막했다. 해마다 여름 기운이 퍼지기 시작하는 6월, 스위스의 제네바와 국경을 맞댄 프랑스의 휴양도시 안시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축제. 히로시마, 오타와, 자그레브 등과 더불어 세계 4대 애니메이션페스티벌로 꼽히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 40여년의 전통을 지닌 애니메이션영화제로 올해 27회를 맞았다. 올해 단편부문에서 경쟁을 벌인 50편 중 그랑프리의 영광은 야마무라 고지의 <아타마 야마>에게 돌아갔다. 야마무라 고지는 프리랜스 애니메이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단편과 TV 광고 작업을 주로 해온 일본 감독. 직역하면 ‘머리 산’이라는 제목을 가진 <아타마 야마>(頭山)는, 머리에 벚나무가 자라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의 머리에 벚꽃놀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흥청망청거리던 그들이 쓰레기며 뜨거운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리고 가자 화가 난 남자는 나무를 뽑아버린다. 일본의 동명 전설에 바탕한 이 작품은 자연의 혜택을 누리기만 할 뿐 아낄 줄 모르는 인간들에 대한 풍자를 초현실주의적인 상상력과 펜선의 질감이 살아 있는 그림체로 보여주며 상영장에서부터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마리이야기>가 수상했던 장편 경쟁부문의 출품작 5편 중 역시 홍콩 감독인 토유엔의 <맥덜로서의 내 인생>(My Life as McDull)이 그랑프리를 차지하면서 올해 안시는 전례없는 아시아의 약진을 확인한 해로 기억될 만하다. <맥덜로서의 내 인생>은 90년대 초반부터 홍콩에서 인기를 누린 만화의 캐릭터인 아기 돼지 맥덜의 이야기. 디카프리오처럼 멋지고, 성공하는 사람이 되길 원했던 엄마의 바람대로 되진 못했지만 선량하게 살아가는 맥덜의 아기자기한 성장기다. 셀과 종이에 그린 그림, 사진과 3D 컴퓨터그래픽, 컷아웃 등 다양한 기법을 합성한 영상은 다국적 문화의 용광로 같은 홍콩이란 도시의 표정과 일상을 꼼꼼하게 담고 있으며, 아이들이 부른 노래를 곳곳에 삽입한 뮤지컬 스타일의 연출도 경쾌한 작품. 특히 서극 감독의 97년작 <천녀유혼>이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진 만큼 홍콩 장편애니메이션의 역사가 길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맥덜로서의 내 인생>의 수상은 괄목할 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머리가 좀 모자라고 지독하게 운이 없지만 끊임없이 소박한 생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남자의 일대기로 훈훈한 웃음을 선사하며 심사위원 특별상과 관객상 등 3개의 상을 받은 영국산 점토애니메이션 <하비 크럼펫>, 십대 마녀의 사춘기를 세밀한 삽화체와 파스텔톤의 색감으로 담아 TV부문 그랑프리를 차지한 프랑스 작품 <베르트>, TV 앞에서 졸던 할머니가 목숨을 거두기 위해 방문한 사신과 한바탕 전투를 벌인다는 내용으로 신인감독에게 주어지는 장 뤽 지베라상을 수상한 <죽음과 겨루는 법>, 상복은 없었지만 억지로 분리된 뒤 다시 합쳐지고 싶어하는 시암 쌍둥이의 욕망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풍의 기괴한 심리극으로 풀어낸 인형애니메이션 <세퍼레이션> 등 안시에서 얻은 ‘보상’을 열거하기엔 아무래도 지면이 모자란다. 아쉽지만, 귀가 따갑도록 휘파람을 불어젖히고, 상영 시작을 알리는 리더 필름 속의 토끼를 불러대며 종이비행기를 날리던 관객과 폴록의 액션페인팅 과정을 포착한 듯 물감의 군무를 찍기 위해 11년이나 작업했다는 <오이오>의 사이먼 굴레 같은 작가가 있었던 안시의 기억을 이만 줄일밖에. 그리고 사족이겠지만, 이번에 상영된 애니메이션의 발전사 100년에 대한 다큐멘터리 <애니메이티드 센추리>에서 “인비트위너(동화와 동화의 중간 연결장면을 그리는 작업) 공장”으로 언급된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도, 수상은 못했으나 질적 성장과 잠재력을 보여줬던 16편의 한국 출품작들과 함께 좀더 깊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런던에서 만난 <신밧드:7대양의 전설>의 사람들

일요일인 지난 6월8일, 런던의 유서 깊은 호텔 도체스터는 <신밧드: 7대양의 전설>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러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취재진들로 북적거렸다. 한국에서 온 취재진만 해도 영화주간지, 월간지, TV프로그램을 망라해 7명.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제작자인 제프리 카첸버그, 목소리 출연자인 조셉 파인즈, 브래드 피트 순으로 진행됐다. 여느 할리우드영화와 마찬가지로 기자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인터뷰할 대상이 한 사람씩 기자들이 모인 방으로 들어온다. 이날 인터뷰는 브래드 피트가 점심식사를 늦게 끝내는 바람에 1시간가량 지체됐다. “오후 3시가 다 됐는데 아직도 밥먹고 있네.”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의 국내 배급을 맡은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가 투덜거렸다. 브래드 피트를 만나러 몇 시간씩 비행기 타고 온 수백명 기자들이 비슷한 마음이었으리라. 이날 일정은 방송매체 인터뷰를 한 다음에 인쇄매체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는데 한참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먼저 인터뷰를 끝낸 <출발 비디오여행>의 차미연 아나운서가 상기된 표정으로 로비로 내려온다. “인터뷰 어땠어요?” 이구동성으로 묻자 “좋았어요”라고 말문을 연 차미연 아나운서가 브래드 피트랑 사진을 찍었다고 자랑한다. “사진 찍게 해줘요?” 펜을 든 기자들이 일제히 ‘브래드 피트와 사진을’이라는 말에 잠시 숨을 멈췄다. 까짓거 1시간을 기다리면 어떻고 2시간을 기다리면 어떠하리. 상대가 브래드 피트라면 그 정도 수고로움은 각오하겠다는 의지가 여성 기자들의 두눈에 이글거리는 듯 보였다. 그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순간 필자는 상대가 브래드 피트가 아니라 캐서린 제타 존스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탄식하긴 했지만(<신밧드: 7대양의 전설>의 목소리 출연자 중 한 사람인 캐서린 제타 존스는 뉴욕에서 인터뷰를 한다고 밝혔는데 배급사인 CJ는 캐서린 제타 존스 대신 브래드 피트를 택했다). 무료한 시간이 지나고 오후 5시가 넘었을 때, 이날 인터뷰의 첫 타자인 제프리 카첸버그가 들어왔다. 영리한 사업가이자 고집스런 애니메이션 제작자인 그는 머릿속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101가지 방법’을 펼쳐놓고 사는 듯하다. 카첸버그는 예민한 문제에 대해 짧게, 그리고 더이상 묻지 못하게 답한다.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의 개봉일이 <니모를 찾아서> 때문에 밀렸고 2004년 12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샤크 슬레이어>의 개봉일에 디즈니가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을 개봉하기로 했다던데 디즈니의 이런 방해공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다.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디즈니에 대해 성토할 만도 한데 비즈니스맨다운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신밧드가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따온 캐릭터인데 최근 미국과 아랍의 관계가 영화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수십번 시사회를 했지만 아무도 그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문제를 제기한 건 당신이 처음이다”라며 말문을 가로막는다. 취재진은 <슈렉2>에 대해서도 “더 크고 더 못생긴 놈이 온다”는 홍보성 멘트 이상을 캐내지 못했다. “진정한 영웅은 엔터테인먼트 밖에” 곧이어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낯익은 조셉 파인즈는 들어오자마자 “여러분, 지치지 않았나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신밧드: 7대양의 전설>에서 신밧드의 친구 프로테우스의 목소리를 연기한 조셉 파인즈는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을 거쳐 영국에서 연극배우로 명성을 쌓은 인물.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랠프 파인즈가 그의 형이고, 누나 마사 파인즈는 영화감독, 아버지는 사진작가다. 그는 배우가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족이 다들 예술을 해서 창의성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문학,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따로 있다. 7살 때 학교에서 연극을 했는데 연극 제목이 <조셉>이었다. 내 이름과 같았는데 운이 좋아서 주인공 역을 맡게 됐다. 그 연극을 하면서 여기가 내가 있어야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질문이든 진지하고 심각하게 답하는 그는 극중 프로테우스가 약혼녀를 떠나보내는 장면에 대해서도 성심성의껏 자기 생각을 피력한다. “‘결코 여자를 떠나보내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는 사람의 선택을 통제할 수 없다. 난 ‘사랑하는 사람을 통제한다’는 발상을 싫어한다. 건강한 관계는 동등한 권리와 인격을 존중하는 데서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마음이 떠난 사람을 붙잡고 있는 건 더 힘든 일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기자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해진다. 역시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갈고 닦은 배우야, 하는 찬탄이 절로 우러난다. 조셉 파인즈 인터뷰의 절정은 “당신이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순간이었다. “영웅은 영화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몇주 전에 앙골라에 간 적이 있다. 한 어머니가 가족에게 먹일 물을 구하러 10마일을 걸어가서 물을 떠오는 걸 봤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를 보라. 거기엔 쓰러지고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서 모든 걸 용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진정한 영웅은 엔터테인먼트의 세계 밖에 있다.” 누군가 “아…(멋있어)” 하는 감탄사를 내뱉았다. 통역을 맡은 <씨네21>의 런던 통신원 이지연씨는 “역시 영국 배우들이 멋있죠”라고 말했고, 조셉 파인즈를 인터뷰해서 어디 쓸 데나 있겠어, 라고 여겼던 기자들도 “배우이기 전에 인간이 됐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곧 브래드 피트를 만난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어린 조카들이 볼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해보고 싶었다” 오후 7시가 넘었을 때, 마침내 브래드 피트가 들어왔다. 치렁치렁한 금발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채 모자를 눌러쓴 그는 지난주 내내 밤촬영을 했다면서도 에너지가 넘친다. 할리우드의 특급스타지만 인디영화의 배우처럼 천진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첫 질문은 머리를 기른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찍고 있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역사물 <트로이>에서 아킬레스 역을 맡아서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질문을 하다 ‘롱(Long) 헤어(긴 머리)’를 ‘롱(Wrong) 헤어(잘못된 머리)’로 발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브래드 피트는 “괜찮다”며 통역자의 실수를 안심시키고는 혼잣말로 “롱(Wrong) 헤어, 롱, 롱. 난 잘못된 머리를 갖고 있어” 하며 즐거워한다. 어떤 질문이든 심각하고 진지하게 답하는 조셉 파인즈와 정반대로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줄이고 엉뚱한 농담을 덧붙인다. 통역을 하고 있으면 한국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으면서 “Exactly”(정확히 통역했어요)라고 추임새를 넣는 식이다. 조셉 파인즈와 브래드 피트의 상반된 태도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프로테우스의 내면엔 깊은 갈등이 있다. 모험을 하고 거침없이 행동하고픈 욕망이 있는가 하면 규율과 명예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그건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다들 갖고 있는 갈등이다. 나는 프로테우스가 겪는 그런 갈등이 좋았다.” 조셉 파인즈는 연극의 정론에 입각한 해석을 내놓는 데 비해 브래드 피트는 그가 맡은 인물 신밧드에 대해 “감독, 제작자를 비롯 5천명이나 되는 애니메이터가 만든 것이다. 내가 맡은 일은 너무 조그마한 것이라 뭐라고 말할 게 없다”고 다소 싱겁게 대답한다. 그리고 “어린 조카들이 볼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일 뿐이다. 한 기자가 “당신은 모든 것을 이룬 ‘퍼펙트 액터’다. 아직 더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자 “퍼펙트 액터라고? 듣기 좋은 말이니 접수하지 뭐” 하며 한바탕 웃고는 “완전한 것은 없다. 할 일을 계속 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결국 농담 반 진담 반이 이어진 브래드 피트의 인터뷰는 15분 남짓하고 끝났다. 기자들은 그와 함께 사진을 찍었고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서도 브래드 피트는 환하게 웃음을 보였다. 오래 기다린 데 비해 턱없이 짧은 인터뷰지만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타라는 자의식이 없는 듯 장난기 넘치는 모습에 “잘생긴 데다 성격도 좋아”라는 칭찬이 쏟아져나왔다. 이튿날 런던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라탈 때까지 아무도 제프리 카첸버그나 조셉 파인즈를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브래드 피트가 편당 출연료를 1500만달러 이상 받는 이유일 것이다.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어떤 영화? 신화종합선물세트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지난해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스피릿>과 마찬가지로 2D와 3D를 합성해 만든 작품이다. 인물은 펜으로 그리고 배경이나 괴물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었다. 수작업으로만 가능한 섬세한 표현을 놓치지 않으면서 3D의 사실적인 특수효과를 더한다는 계산이다. 제작자인 제프리 카첸버그는 ‘트래디지털’이라는 신조어로 만들어 이런 기법의 장점을 선전했지만 첫 시도였던 <스피릿>은 흥행성적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4년 전 제작에 들어간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글래디에이터>의 각본가 존 로건과 <개미>의 감독 팀 존슨을 끌어들여 완성한 작품이다. 카첸버그는 존 로건에게 “<아라비안나이트>의 신밧드를 주인공으로 삼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몬과 피티아스’ 이야기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신화에 따르면 피티아스는 운명의 여신들이 짜놓은 계략에 빠져 왕자를 살해하려 했다는 혐의를 쓰게 된다. 친구 다몬은 피티아스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피티아스가 죽기 전에 부모님을 만나고 올 수 있도록 사흘간 말미를 달라고 요구한다. 피티아스 대신 다몬이 갇혀 있고, 피티아스가 돌아오지 않으면 다몬을 죽인다는 조건.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이 이야기를 신밧드와 친구 프로테우스의 것으로 변주한다. 신밧드가 혼돈의 여신 에리스의 모략으로 귀중한 보물인 ‘평화의 책’을 훔친 범인으로 몰리자 프로테우스가 신밧드를 대신해 감옥에 갇힌다. 신밧드가 평화의 책을 찾아오지 못하면 프로테우스가 대신 죽는 것이다. 신밧드는 처음엔 프로테우스가 어찌되건 도망칠 생각이었으나 프로테우스의 약혼녀 마리나가 동승하면서 평화의 책을 찾아나서는 모험에 뛰어든다. 이야기로 대충 짐작할 수 있듯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주인공의 이름이 신밧드라는 걸 제외하면 <아라비안나이트>와 아무 관련이 없다. 다른 캐릭터나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것이 대부분이며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가 아니라 지중해에 위치한 미지의 나라다. 바다 괴물, 사이렌 등과 싸우는 신밧드는 오디세이아를 연상시키는데 카첸버그는 “온갖 신화에서 흥미로운 건 무엇이든 끌어들였다”고 말한다.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목소리 출연진이 화려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브래드 피트가 신밧드, 조셉 파인즈가 프로테우스, 캐서린 제타 존스가 마리나, 미셸 파이퍼가 에리스를 맡았다.

`저 못된 놈!` 해주세요,<와일드카드> 배우 이동규

무서웠다. <수사반장>이 방영될 때 악랄한 범인으로 출연했던 배우들을 볼라치면 슬슬 피했다는 동네 할머니처럼, <와일드카드>에서 ‘휭휭휭’ 쇠다마를 날려 길가는 시민들을 ‘퍽치기’로 죽였던 이 배우를 만나기 전에 아찔한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퍽치기파 두목 ‘노재봉’은 그만큼 강렬한 역할이었다. 영화 홈페이지에 “때려죽일 ***”같은 감정섞인 글들이 올라오는 것도 무리가 아닐 만큼. 그러나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이동규를 보는 순간, 이 모든 생각들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리고 만다. 웃을 때 군데군데 골짜기를 만드는 사람 좋아 보이는 주름, 조용하고 나른한 말투, 좀체로 흐트러짐 없는 태도, 그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노재봉의 것’이라고 믿기 힘든 것이었다. “강한 인상이라 그런지 오히려 조금만 바뀌어도 많이 바뀌어 보이는 게 제 장점이에요.” (웃음)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반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우연히 동문극단의 조연배우가 사정이 생겨, 그를 대신해 공식적인 무대에 처음 오르게 되었다. “처음으로 무대가 큰 매력으로 다가온 순간이었어요.” 이후 야간자율학습도 빼먹고 저녁이면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깜깜해진 마로니에 공원의 빈 무대에서 혼자 가상의 청중 앞에서 연기를 해보였다. 그리고 이런 바람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의 입학으로 이어졌다. 사실 <와일드카드>에 앞서 그의 스크린 데뷔작은 김응수 감독의 <욕망>이다. 한 부부와 동시에 육체관계를 갖는 호스트바 남자 ‘레오’ 역할을 맡았던 그는 “6달 리허설에 2달 촬영”이라는 재미있는 프로덕션 과정을 거쳤다. “함께 공연한 안태건, 이수아씨 등과는 거의 합숙하듯 지냈어요. 한번은 밤새 열심히 술먹으면서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지금 감독님을 꼭 만나야 한다’며 새벽에 김응수 감독 집에 쳐들어갔다가 야단맞고 쫓겨난 기억도 있죠.” (웃음) <와일드카드>의 노재봉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도 전사(前史)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저 주민등록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하나의 단서를 가지고 나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상해보기도 했지만 오히려 연기 중에는 크게 괘념치 않았다. “노재봉은 그냥 나쁜 놈이에요. 감독님은 ‘너를 잡을 때 모두들 희열을 느껴야 한다’고 하셨고, 저 역시 괜한 연민을 느끼게 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역할이란 전체 영화를 표현하기 위해 잘 쓰여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인물에 몰입되기 위해 늘 ‘쇠다마’를 가지고 다닐 정도였다는 그는 촬영을 준비하는 내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사람들 뒤에 앉아 ‘이 순간 이 사람을 어떻게 쳐야지 한방에 죽을까?’ 같은 끔찍한 상상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늘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배우라서망정이지 정말 퍽치기 살인자라면 이 사람도 바로 죽을 수 있구나 하는….” 이제 겨우 78년생, <섬>이나 <브레이킹 더 웨이브>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 독특한 취향의 젊은이는 ‘내 연기의 원천은 즐거움이에요’라고 해맑게 웃는 또래 연기자들과 달리 “연기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그로토우스키의 <가난한 연극>에서 보면 ‘배우는 자신의 전 존재를 바치는 것이다’란 말이 있어요. 전 먹고살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연기하기 위해 먹고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고통 속에 한 배우가 자라나고,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연기라는 “보여주려는 연기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연기의 간극이 제로로 좁혀져가는 ” 그 순간, 아마 관객은 이 젊은이가 던지는 쇠다마 한방 같은 연기에 얼얼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누추한 세상의 귀한 것들,<강아지 똥>

지나가던 강아지가 무심코 누고 간 똥이었다. 자기가 누군지 깨닫기도 전에 멸시와 모욕에 익숙해진 존재였다. 누추하고 누추한 것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여겨지는 ‘강아지 똥’을 통해 깨달음을 주는 동화 <강아지 똥>.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영상으로 빚어낸 애니메이션 <강아지 똥>이 오는 6월20일 오후 6시30분 EBS 공사 개국 3주년 기념 특집으로 방영된다는 소식이다. 1969년 발표된 권정생의 <강아지 똥>은 이미 잘 알려진 단편.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강아지 똥’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아간다는 짧은 이야기를 30분의 영상으로 빚어낸 것은 스톱모션 전문 제작사 아이타스카 스튜디오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은데다가 서사구조보다 주인공의 독백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짧지 않은 영상으로 그려내기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제작진은 긴 시간의 공백을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원작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것으로 완벽하게 채워넣었다. 캐릭터 원안은 정승각이 동화책에 그린 삽화에서 가져왔지만, 그렇다고 애니메이션의 독창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뜻밖인 것은 사실적인 묘사다. 보통 클레이애니메이션하면 코믹하고 단순화된 캐릭터를 떠올리기 십상인데 배경부터 등장인물까지 사실적이기 그지없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부는 시골 풍경, 스산한 담벼락, 농부의 걸음걸이, 마차를 끄는 소, 닭, 병아리, 민들레… 모두 몇십년 전 시골에 그대로 있었을 법한 모습이다. 모두 클레이와 폼라텍스로 공들여 만들어졌다. 주인공인 강아지 똥의 모습에는 약간의 변형이 있다. 눈과 입, 팔다리가 있고 말도 한다. 그러나 섬세한 움직임과 표정 때문일까. 사실적인 배경 속에서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제작진은 1초의 영상을 위해 15번의 연출을 해냈다고 한다. 움직임이 많은 새의 경우는 1초를 위해 30번을 연출했을 정도다. 전체적인 색상은 또 어떤가. 고민 끝에 ‘한국적인 인상파’로 가닥을 잡았다는 권오성 감독의 말대로, 하늘과 태양 등 자연의 색이 강렬하다. 전체에서 부분, 다시 강아지 똥의 시선으로 움직이는 앵글을 위해서 35mm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가 함께 동원됐다.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지만 특수효과도 제법 들어갔다.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도쿄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이탈리아 카툰스온더베이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을 수상할 수 있었던 궁극의 이유는 역시 완성도에 있다. 원작의 감성을 살려낸 이루마의 음악과 정미숙, 유해무, 송도영 등의 목소리도 놓칠 수 없는 매력. 홈페이지(www.doggypoo.co.kr)에서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다. 사람을 장기 말처럼 다루는 부류가 판치는 세상이다. 모두들 더 화려하고 대단하게 보이고 싶어서 안달하는 세상이다. 인생을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스스로 ‘강아지 똥’의 마음으로, 길가의 작은 풀처럼 살아가고 있는 권정생 선생의 모습은 살아 있는 천사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흙덩이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이루어낼 소명이 있는 ‘쓸모’있는 인생들이다. 강아지 똥이 마침내 찾아낸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았듯, 자기 몸을 온전히 녹여 이루어낼 소명이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김일림/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illim@korea.com

고백할게.실은 나 이영화 좋아해,감독들의 커밍아웃 [4]

장 진 -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감독 그 지독한 사랑의 라브레타 <러브레터> Love Letter | 감독 이와이 순지 | 출연 나카야마 미호 이런 고백은 정말 처음이다…. 아무도 모르게 흠모하고 있었던… 영화… 내가 이 영화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말하면… 난 무슨 명분으로 다음 영화들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말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몇몇 영화가 맴돌았다. 어린 시절 눈물 흘리며 성당에서 봤던 <쿼바디스>를 쓰려다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란 질문을 한 사람 이름이 안 떠올라 접었다. <인어공주>를 생각했다가 역시 세바스찬은 기억나는데 인어공주 볼에 아가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생각이 안 나 다시 접고 <박하사탕>을 쓰려니 권력에 기대보려는 수작 같아 다시 포기하고… 심지어는 <살인의 추억>이 떠올랐다가 아직 상영 중이라 막판 마케팅을 하려는 오해를 살 것 같아 맘속으로 삼켰다. 그렇다고 <킬러들의 수다>라고 말했다간 앞으로 이 영화지와는 연락이 두절될 것 같아 차마 못하겠다… 그러던 찰나, 생각이 났다. 조금은 독특한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미스터리 추리물 <러브레타>가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미스터리 추리물이란 말 때문에 어떤 영화였더라 고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알고 있는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가 그 <러브레타>가 맞다. 발음이 왜 그래, 라며 러브레터나 러브레러라고 얘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일본 사람들은 죄다 러부레따라고 말하더만…. 이 영화를 남자주인공의 사인을 주된 시점으로 쫓아가면 미스터리 추리물이란 표현에 공감하게 된다. 주인공 후지이 이츠키는 동명의 후지이 이츠키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녀와 똑같이 생긴 여자를 어른이 된 뒤 만난다. 하나 그녀와 연인이 되어 잊지 못한 사랑을 묻지 못하고 연장해보려 했지만 똑같이 생겼다고 해서 그녀가 자신이 사랑한 후지이 이츠키는 될 수 없었다. 산행을 갔다가 실족사했다고 영화 안에서 말하고 있는 후지이 이츠키의 심정을 생각하며 나는 그는 결국 자살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달 전 난 후지이 이츠키가 죽은 북해도 산자락엘 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깨달았다. 벚꽃이 만발한 5월, 그 산은 아직도 눈 속이었다. 그는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던 순간을 그 설원 속에서 정지시켰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진정한 ‘러브레타’ 는 그녀의 얼굴을 뒷면에 그려넣은 도서대출증이라는 것을 난 깨닫게 된다. 이 얼마나 독하고 진득한 사랑의 추리인가…. 후지이 이츠키는 자신의 사랑을 가슴에 간직한 채 지금도 그 산속 눈밭 얼음무덤에 부패되지도 변질되지도 않은 채 잠들어 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사랑의 지속이었고…그는 사랑한 채 죽었다. 영화 <러브레타>는 본받고 싶은 선택과 기교 넘치는 암시로 가득한 영화이며 이런 해석 때문에 내가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맘속에 묻고 있는 수작이다. 장 항 준 - <라이터를 켜라> 감독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당신의 미래입니다 <썸머 스토리> A Summer Story | 1988 | 감독 피에스 해가드 | 출연 이모겐 스텁스, 제임스 윌비 어렸을 적엔 우리집이 좀 살았던 것 같다. 동네가 논현동이었고, 비디오가 있었던 걸 보면. 공부엔 별 관심없던 내게 아버지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어느 대학은 얼마고, 어느 대학은 얼마라더라.” 사립대는 얼마고, 국립대는 얼마고 하는 등록금 이야기가 아니다. 아버지는 부정입학이라도 해서 아들놈 대학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어쨌든, 난 관심없었다. 중절모 쓰고, 바바리 입고, 권총 쏘는 갱영화에 홀딱 반해 있던 때였으니까. 그러던 1988년 겨울, 대입을 앞둔 고3 수험생이었던 난 경찰 아버지를 둔 친구 덕분에 공짜표를 얻어 허리우드극장에 가게 됐다. <썸머 스토리>라. 도통 모르는 배우만 나오는 영국산 멜로영화였다. 시골 처녀와 런던의 한 의대생이 눈이 맞아 야반도주하기로 하는데 결국 남자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둘은 헤어지게 된다는 이야기. 그렇고 그런 뻔할 뻔자 최루성 신파였다. 미리 털어놓자면, 난 좀처럼 울지 않는다. 아이 때도 동네 사람들이 나 보면 “안 우는 아이 왔나” 그랬을 정도였다. 영화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혀본 적은 더더구나 없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삼류 멜로영화에 난 맥없이 무너졌다. 나의 꼿꼿함과 오만이 순식간에 무너진 건 엔딩에서였다. 노년에 그 마을을 찾은 그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서 말을 건다.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남자는 멈칫한다. “당신이 서 계신 그곳이 그녀의 무덤입니다.” 서둘러 차를 타고 마을을 떠나는 그는 마을 어귀에서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자신과 닮은 목동을 발견한다. 자신의 혈육이었던 것이다. 목울대가 떨렸고, 가슴이 싸해진 건 그녀가 보여준 영원한 사랑에 감동해서? 아니다. 욕망을 선택하지 못해 빚어진 파국을 뒤늦게 확인하고 당혹해하는 남자에게서 참담한 내 미래의 어느 순간이 보였다. 당시 난 연극영화과로 진학하겠다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만큼 용기를 지니고 있지 못했다. <썸머 스토리>를 보고 난 뒤 탄 버스가 중앙극장 앞에서 갑자기 멈춰섰을 때, 내 지지부진한 삶도 또한 종지부를 찍었던 것 같다(혹시 해서 덧붙이는 말인데 난 대학을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갔다!). 정 재 은 - <고양이를 부탁해> 감독 아, 양조위의 소시지 입술이여 <동성서취> 東性西就 | 1992년 | 감독 유진위 | 출연 임청하, 장만옥, 장국영, 양조위, 유가령 영화 <동사서독>과 <동성서취>는 도저히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판이한 성격의 영화다.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고독의 내레이션을 읊조리던 <동사서독>과 동네 야산에서 촬영된 듯한 엎치락뒤치락 코믹무협물 <동성서취>는 여러모로 정반대의 영화다. 그러나 두편의 영화 사이에 묘하게 왕가위가 겹쳐 있다. 영화 <동성서취>는, 왕가위가 <동사서독>을 만들면서 ‘오늘은 뭘 찍을까?’ 결정하는 긴 제작기간 동안, <동사서독>에 출연 중인 배우들과 벌인 일종의 엽기 사기행각이다. 그가 직접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각본을 쓰고 제작기획을 했다. 인물들의 캐릭터는 두 영화 안에서 어떤 부분 겹쳐 있고, 또 어떤 부분은 제멋대로 각각 가버렸다. <동사서독>은 너무 멋지고, <동성서취>는 어처구니가 없다. 몰지각한 인도풍의 세트와 의상들, 유치원 아이마저 눈치챌 만큼 어설픈 와이어 액션과 인물에 대한 엉뚱한 설정들. 진짜로 가소롭게 웃기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 <동성서취>의 각본을 <동사서독>을 만들면서 왕가위가 썼다면 얘기는 자못 달라진다. 넓다!!! 그는 진짜 폭이 아주 넓은 감독인 것이다. 지금 이 시간, 나는 내가 만들 영화 속 인물을 좀더 멋지게 만들기 위해 각종 인과성을 부여하고 각(角)이 잡히게 하기 위해 처절하다. 때로는 나의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어쩌면 그렇게 멋진지 스스로 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멋진 세계를 손으로 마구 휘저어버리고 싶기도 하다. 걔는 코를 어떻게 파고, 걔의 남다르고 비상한 주접은 무엇일까를 혼자 연구하며 틈틈이 즐거워하고 있기도 하다. 동반되기 어려운 배반의 욕망이란 이런 것이리라…. 어떻게 하면 좀더 망가질 수 있을는지, 그리고 얼마나 남다르게 웃길 수 있는가로 권력의 서열을 매겨야 한다면 <동성서취>는 자진납세에 가까운 <개그콘서트>라고나 할까(뭔 소리야 대체…). 사실 이 영화를 사랑해야 하는 모든 이유 중 단연 으뜸은 양조위가 퉁퉁 부은 소시지 입술로 나와서 펼치는 코믹연기에 있다. 나는 그의 소시지 입술을 보며 그와 진정으로 교류했다고 할 수 있다. 주 경 중 - <동승> 감독 어린애들은 이렇게 자란다 <그로잉 업> Lemon Popsicle | 1979년 | 감독 보아스 데이비존 | 출연 아낫 아츠몬, 사비 골드리히 <팬티 속의 개미>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와 한국영화 <몽정기> <색즉시공>의 공통점이 있다면? 웃긴다. 야하다. 유치하다. 모두 고삐리나 청소년들의 섹스에 대한 유치한 환상이다. 골때리는 녀석들의 성적 호기심이다. 10대들의 금지된 섹스를 다룬 영화들의 원조격으로 이미 80년대에 <그로잉 업>이 있었다. 나는 70년대 중반 <고교얄개> 시리즈물과 함께 고교 시절을 보냈지만 섹스를 다루는 수준과 아이디어는 비교가 안 된다. <그로잉 업>은 1979년 이스라엘영화이다. 요즘 보면 내용은 진부하다. 여자 앞에서 내성적인 벤지, 꽃미남 바람둥이 바비, 이들과 어울리지 않지만 이들에게 꼭 있어야 할 뚱보 휴이. 이들 혈기 왕성한 청소년들의 우애와 사랑과 섹스에 눈떠가는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그렇듯이 이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성적인 호기심과 예쁜 여자애이다. 오락장에서 꼬신 여자애들과 무임으로 영화관에 들어갔다 쫓겨나기도 하고, 이웃집 유부녀와 침대에서 뒹굴다가 남편이 나타나 망신을 당한다. 매춘굴에 들어갔다 와서는 세명 모두 성병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황하기도 한다. 벤지가 좋아하는 니키라는 여자애는 친구인 바비와 사귀는 애절한 삼각관계도 있다. 바람둥이 바비는 니키와 관계를 맺고 임신을 하자 그녀를 차버린다. 벤지는 니키를 위해 낙태수술을 도와주고 정성껏 뒷바라지를 한다. 벤지와 니키가 잠시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아지만 니키는 곧 벤지를 떠나 바비에게로 가버린다. 전체적으로 내용도 한번쯤은 어디선가 시도되어왔던 그런저런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로잉 업>은 상큼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 섹스를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가려낸 보아스 데이비존 감독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여자들도 10대 사춘기 남자의 성에 대한 환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춘기 사내를 둔 어머니나 남자친구의 성적 호기심이 궁금하다면 이 영화 속에서 상당 부분 해답을 들을 수도 있다. <볼륨을 높여라>가 청소년 자아형성의 과정을 기성세대와의 갈등을 통해 심각하고 치밀하고 그렸다면, <그로잉 업>은 10대 청소년의 원초적인 성을 깔끔하고 산뜻하게 그려냄으로써 이후에 나오는 많은 하이틴물의 또 다른 전형을 보여준다. <팬티 속의 개미>나 <아메리칸 파이>에 비한다면 다소 진부한 에피소드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이 세상 그 어떤 영화보다 50년대 록음악을 많이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엘비스 프레슬리, 제리리 루이스, 리틀 리처드, 밥 딜런 등의 음악들이 압권이다. 미리 그런 음악을 염두해 두고 촬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존의 음악을 사용하면서 편집의 흐름과 리듬을 거의 완벽하게 일치시킨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고백할게.실은 나 이영화 좋아해,감독들의 커밍아웃 [3]

변 영 주 - <낮은 목소리> <밀애> 감독 그녀들의 살아남기 <노는 계집: 창> 1997년 | 감독 임권택 | 출연 신은경 결국 편견과 지레짐작이 우리를 오해하게 만든다. 언젠가 우디 앨런의 아름다운 뮤지컬영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의 시사회에서 옆에 앉은 친구와 ‘우히히 우와와’를 연발하며 끝내 노래하고야마는 줄리아 로버츠를 경배하며 나오던 행복한 그 순간, “변… 영… 주… 감독님도 이런 영화 보러 다니세요?”라고 하던 어떤 남학생의 경우처럼 말이다. 도대체 <낮은 목소리> 삼부작을 만드는 사람은 여섯 살 때 오가와 신스케의 영화를 보고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을 거란 말이냐? 누군가는 ‘어머나’ 하고 놀라지만 나와 친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당근(^^) <오스틴 파워>의 숭배자임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스타워즈>의 새로운 시리즈에 실망하는 사람들에게 ‘신앙엔 의심이 없어야 한다’라며 신도들의 방황을 마음 아파하고 있으며, 어찌되었건 재키의 애크러배트 예술행위는 개봉날 즐겨야 한다고 믿고 있는 편이다. 언제였더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뒤풀이 장소에서였던 것 같다. 내 옆에 모여 앉은 언니들이 임권택 감독님의 <노는 계집: 창>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반여성주의적인 영화라고 울분을 토하던 그녀들을 뒤로 하고 나는 조용히 짐을 챙겨 그곳을 빠져나오며 마음속으로 한마디를 했었다. ‘나 그 영화 좋아한다….’ <낮은 목소리>를 만들며 만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중엔 일본군 장교와의 로맨스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계신 분들이 종종 있다. 그리고 난 그분들의 로맨스를 들을 때마다 그 어떤 할머니들의 증언보다 뼈가 시리도록 마음이 아프곤 했다.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할머니들의 생존의 의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역시 여성은 매매춘이란 없어. 모든 게 사랑이쥐’라고 주장하는 쥐뿔도 없는 쓰레기 남성우월주의자들에게 종종 이용당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살아야 한다’라고 다짐하는 순간의 열정을 언제나 사랑하고 있다. <노는 계집: 창>에서 영은(신은경)이 포주와의 질펀한 정사를 하던 어느 순간의 눈빛에서 난 할머니들을 느꼈던 것이다. 봉 준 호 -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감독 깊은 어둠, 짙은 공포 <에일리언 2020> Pitch Black | 2000년 | 감독 데이비드 투오히 | 출연 빈 디젤, 라다 미첼 엉겁결에 보게 된 영화였다. 만나기로 한 후배가 갑자기 늦어지는 바람에 시간이나 때울 겸, 멀티플렉스로 들어갔다. ‘<에일리언 2020>이라니 제목 참 허접하군… <에이리언> 아류작쯤 되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감독, 배우들 자막이 나오는데 죄다 처음 보는 이름이다. 시작부터 하품이 쩌∼억 하고 나오는데… 문득, 벌어진 입이 채 다물어지기도 전에 영화에 몰입되기 시작한다. 인물들이 생생해지고 긴장감이 조여온다. 근육질의 흑인 주인공도 점점 더 멋있게 느껴진다(지금은 <트리플X> 주인공으로 잘 나가는 빈 디젤도 그때는 무명이었다). ‘후까시 잡는’ 캐릭터를 죽도록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이 흑인 주인공의 똥폼은 왠지 귀여운 구석이 있다. 그러나 여러 장점들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건 이 영화의 기본 설정 또는 핵심 아이디어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혹성에 불시착한 사람들이 우여곡절 끝에 혹성을 탈출하는 스토리.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괴물들이 빛을 싫어해서 어둠 속에서만 활동하며 사람을 습격한다는 것. 어찌보면 싱겁고 단순한 이 설정은, 그러나 동시에, 매우 효과적이고 영화적인 컨셉이다. 우선 괴물들이 어둠 속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괴물이 안 보이는 장면들이 많아서 특수효과 비용이 대폭 절감된다. 대신 감독은 공들인 상황묘사와 심리연출, 사운드 효과 등으로 괴물이 안 보이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한다. 주인공들은 괴물 이전에 어둠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이다. 결국 ‘칠흑 같은 어둠’(즉 Pitch Black, 이 영화의 원제)이 공포를 유발하며 서스펜스의 폭과 깊이가 확장된다. 스튜디오가 만든 고무상어가 워낙 조악하여, 헤엄치는 상어의 시점화면으로 긴장감을 만들어낸 <죠스> 당시의 스필버그처럼, 산업적인 제약이 오히려 참신한 영화적 돌파구를 탄생시킨 경우랄까. 어쨌든 ‘빛과 어둠’이 생(生)과 사(死)를 결정짓는 설정이 원초적, 영화적인데 거기에 감독의 준수한 연출력이 더해지자 볼 만한 영화 한편이 탄생한다. 물론 이 영화가 빼어난 걸작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떼돈을 쏟아붓고 존 트래볼타도 개망신을 당한 <배틀 필드> 같은 메이저 대작 쓰레기 SF보다는 훨씬 괜찮다는 사실이다. 제목의 허접함에 이 영화를 피해갔던 모든 분들, 비디오와 DVD로 한번쯤 즐겨보시라. 송 일 곤 - <꽃섬> 감독 5x7짜리, 그녀의 푸른 등 <천녀유혼> 1987년 | 감독 정소동 | 출연 장국영, 왕조현 고등학생 시절 쉬는 시간에 왕조현의 사진을 팔던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로부터 500원을 주고 그 사진을 샀다. 왕조현이 천사 같은 옷을 입고 늘씬한 다리를 걷고 물 위를 걷는 장면으로 기억한다. 극장에서 상영 중인 <천녀유혼>을 직접 찍은 조악한 사진이었기 때문에 푸른색 톤의 사진은 포커스가 잘 맞지 않았지만 내겐 모든 것이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왕조현, <천녀유혼>의 귀신. 청순가련의 대명사. 87년 혹은 88년 고딩들의 마음과 혼을 빼앗아가버린 미녀 귀신. 당시 영동시장 변의 유일한 동시상영관인 강남극장에서는 <영웅본색>을 비롯해 <천녀유혼> 등의 홍콩영화와 함께, <어우동> 신드롬 이후의 사극에로물의 전성시대였다. 당시 우리 고딩들의 욕망은 여인의 육체였고, 그 육체를 탐미할 수 있는 매체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왜? 인터넷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동시상영관은 ‘우리들의 천국’이었다. 그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왕조현과 장국영의 키스신이었다. 그 영화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장국영을 사랑한 귀신 왕조현이 아버지에게 들켜서는 목숨을 보전치 못하는 장국영을 물속에 집어넣어 감추고 키스하는 장면이었다. 왕조현의 목욕장면이었고, 왕조현의 등이 보이는 장면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의 벗은 등! 당시 우리에게 왕조현의 벗은 등은 깨지 말아야 할 꿈이었고, 대학교 입학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었으며, 첫사랑의 두근거림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입시를 위해 새벽 두시까지 학교에서 도서관으로 도대체 뭘 위해 이 빛나는 청춘을 국·영·수에 허비하는지 몰라 방황하며 동시상영관을 들락거리던 시절, 왕조현의 <천녀유혼>은 일탈의 순간이었다. 지금 그 500원짜리 왕조현의 사진은 잃어버렸지만, 기억난다. 왕조현이 아슬하게 물 위를 날았던 혹은 걸었던 파란색의 5 x 7사이즈, 순간의 이미지 속의 세계. 그 세계는 아마도, 내가 당시 영화감독이 되길 꿈꾸던 마음의 작은 불씨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 장 준 환 - <지구를 지켜라!> 감독 그 훔쳐보기의 짜릿한 기억 <나인 하프 위크> 9 1/2 Weeks | 1986년 | 감독 에이드리언 라인 | 출연 미키 루크, 킴 베이싱어 중학교 때였다. 이미 그 영화에 대한 소문은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영화가 너무 야해서 전주 시내 최초로 입구에서 주민등록증 검사를 한다는 뉴스는 이제 막 2차 성징이 시작된 아이들의 호기심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단짝 친구와 극장가 오락실로 향하던 나에게 그 녹슨 철문이 보였다. 그 문으로 극장에 들어가다 붙잡힌 아이들은 간판 그리는 아저씨가 옷을 벗기고 고추에 페인트를 바른다는 둥 온몸에 페인트를 바른 어떤 아이는 피부가 숨을 못 쉬어서 숨을 거뒀다는 둥 별별 해괴한 괴소문으로 유명한, 하필 그 극장의 뒷문이, 너무나도 당당하게 입을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아찔한 망설임을 정리하기도 전에 문을 향해 뛰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안 돼!”를 외치며 친구를 잡으러 뛰어갔다. 정말 친구를 잡기 위해서였는데…. 어느새 나는 극장의 어둠 안에 들어와 있었다. 영화는 이미 상영 중이었다. 불안한 더듬거림으로 어둠에 적응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킴 베이싱어…. 눈부시게 흩어진 황금의 머리카락, 묘한 매력을 내뿜던 중성적인 턱선, 그 신비하고 깊어 보이는 눈빛….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불안한 심박 수는 더욱더 상승했다. 영화는 곧 기대했던 민망한 장면들로 이어졌다. 슬라이드를 보던 베이싱어가 갑자기 이상한 눈빛이 되더니 슬라이드가 막 넘어가는 장면(혹시 내가 <지구를 지켜라!>를 슬라이드로 시작한 건 이 영화의 영향이었을까? -,.-;;), 그 유명한 냉장고 앞에서의 엽기 음식 쇼, 미키 루크의 커다란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변태적 노예놀이, 쏟아지는 역광의 빗속에서 나누었던 두 연인의 너무나 관능적인 정사…. 그랬다. <나인 하프 위크>라는 영화는 그야말로 백주대낮에 아이들이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되는 그런 ‘나쁜 영화’였던 것이다. 영화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충격적이었고 아마도 그때 충격이 나의 이상성격을 형성하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악마의 유혹 같던 극장의 녹슨 철문과 훔쳐보기의 가슴 떨림…. 그리고 거기서 보았던,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너무도 아름다웠던 영화…. 그 짜릿했던 영화적 체험이 요즘엔 가끔씩…. 간절히 그리워진다. 음… 요즘 극장들도 어딘가에 뒷문이 있긴 있겠지?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특별기고] 또다시 불거진 스크린쿼터 축소 논쟁의 본질 - 유지나

할리우드를 위한 공정치 못한 게임의 법칙 다시 스크린쿼터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낯익은 논쟁, 같은 시나리오, 평행선을 달리는 인식의 차이는 단순명료한 해법을 오히려 복잡한 퍼즐판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이 익숙한 논쟁판은 사실여부 확인의 혼선 속에서 영화의 수혜자이자 창조자인 다중을 이용하는 동시에 정보 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소수 자본가를 뒤에 감춘 채 벌어진다. 심지어 쿼터축소 내지 폐지에 관한 심각한 언급을 인용하는 오보 해프닝까지 거듭돼 오해와 왜곡의 게임판으로 변질하기조차 한다(며칠 전 <문화일보>에 보도된 청와대 정책실장의 쿼터축소 필요성은 곧 오보로 밝혀졌다. 지난 4월25일 <내외경제신문>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쿼터제 폐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기사화하자 곧 공정위는 이 사실을 부인하는 해명자료를 냈다). 이건 이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쿼터 없애기 시나리오판이다. 그렇다고 섣부르게 누군가가 밝힐 수 없는 어떤 목적을 위해 일을 꾸민다는 음모론을 거론하고 싶진 않다. 그보다는 이제라도 사실관계 여부를 밝히고 그것이 오해되는 맥락을 짚어보자. 그러면 이 논쟁의 본질이 드러날 것이다. 그 속에서 쿼터제의 본질과 기능도 좀더 명확해질 것이고, 이 논쟁을 시작한 이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쿼터제를 축소하자는 이들의 경제정책과 경제철학, 영화를 뭐라고 보는지, 또 문화산업 정책이 뭔지, 이 모든 것을 안고 가는 이 나라가 뭐라고 생각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정책결정을 하는지를 독자이자 국민인 당신이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다. 국익론의 실체 쿼터축소 논란의 배경은 한-미투자협정 체결이다. 이 사안은 경제관료에겐 밀린 과제이다. 기억하는가? 국제통화기금(IMF) 상황에서 외자유치가 절실했던 DJ 정부는 미국에 먼저 한-미투자협정을 맺자고 요청했다. 미국의 극장업 투자자본이 들어오려면 시장장벽을 막는 쿼터제도를 축소/폐지해야 한다는 미국쪽 입장을 우리쪽 통상관료들이 수용해서 영화계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영화인과 시민사회단체, 여론의 힘으로 막아냈다. 그뒤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경제상황이 암울해지자, 일부 경제 엘리트들이 국익론을 내세우며 다시 쿼터제 축소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들은 한-미투자협정을 맺으면 경제가 좋아지고 우리 모두 잘살게 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이런 주장을 할 것이다. (투기자본까지 포함하여) 미국 자본, 근거를 밝히지 않는 40억달러 투자유치 효과가 거기서 나온다. 심지어 미국 자본이 한국에 많이 투자되면 이익을 챙기려는 자본가의 자기보전 욕망에 따라 한반도 전쟁 방지효과도 있다는 엽기적 주장까지 (경제관료 출신) 국회의원으로부터 나온다. 월드컵 유치효과로 국익을 계산해낸 경제관료들의 계산법은 이미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핑계는 있다. 이라크전, 사스 같은 대외적 여건 악화 같은 것. 그러나 국익을 책임질 경제정책가라면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최악, 차악까지도 포함한 몇 가지 계산을 하는 법이다. 복안도 있어야 하고. 아마 복안이 한-미투자협정이라면, 그걸 맺으려고 쿼터를 협상해서 더 큰 국익을 얻는다는 계산을 또 잘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협정에서 강자인 자본가의 나라 미국이 더 큰 이익을 취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경제시장론의 부작용은 이미 많은 경제학자들이 내놓았다. 아직도 IMF와 경제관료의 책임을 분리해서 보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5년간 미국 영화자본가 대행자들과 만나 쿼터제를 두고 이야기하다보면, 그들의 핵심은 ‘시장접근 용이성’임을 곧 알게 된다. 누구를 위한 시장접근인가, 물으면, 당연히 소수 자본가이다. 세계시장 80%를 차지하고도 더 미국영상시장을 확대해야 하는가, 라고 물으면 시장확대는 비즈니스의 메커니즘이라고 답한다. 이게 바로 여러 가지 경제논리 중 하나에 불과한 자본가 중심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의 정체이다. 스크린쿼터는 미국영화 독점 방지제도 쿼터제를 축소하자는 주장의 한가운데서 강력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영화의 활력과 경쟁력에 관한 것이다. 한국영화 국내시장 점유율도 40%를 넘어 50%에 다가가니 더이상 보호막이 필요없고, 또 보호막에 안주하면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교훈, 그에 곁들여 관객 선택권을 위해 쿼터제도를 없애자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 논리도 앞뒤가 안 맞는데다 영화산업 자체에 대한 오해에 근거한다. 한국영화가 최근 5년간 비약적 성장세를 보이며 40% 이상 시장점유율을 갖게 된 근거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배급-상영을 촉진시켜 제작편수의 안정적 물량을 확보하게 하는 쿼터제도이다. 그런데 이제 좀 잘되니 그 받침대를 빼내자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제 높은 데 좀 올라가려고 중간쯤 발을 놓았는데 갑자기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것과 같다. 게다가 그뒤에 붙어다니는 경고, 즉 한국영화가 쿼터란 보호막에 안주하면 경쟁력이 없어진다는 주장도 기이하다. 쿼터제도가 사다리든 보호막이든 그건 수사에 불과하나 무엇이 되었건 그 덕에 한국영화가 잘되고 있는 걸 보면 이건 경쟁력 제고의 조건이지 약체질을 만드는 보호막이 아니다. 실제로 쿼터제도가 자리잡고 지켜진 뒤 한국영화는 괄목할 성장을 보였고 해외진출도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 제도 덕에 한국은 프랑스와 함께 자국 문화정책을 가장 잘 지켜내 미국화에 불과한 세계화의 거센 바람 속에서 문화다양성을 구현하는 나라로 미국을 제외한 세계 여러 나라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이 제도의 축소를 위해 여론을 호도하는 이유 중에는 쿼터제도가 관객선택에 장애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생각해본 적 있는가? 한국에서, 또 세계에서 할리우드영화가 걸리는 날은 연간 며칠일까? 일단 쿼터제도 일수보다 훨씬 많은 날들이란 짐작이 들 것이다. 이건 할리우드가 영화를 잘 만들어서 관객이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가 아니다. 미국의 세계시장용 공격적 마케팅과 상영시스템 때문이다. 잘 만든 영화가 극장에 오랫동안 걸려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는 일은 작금의 영화배급과 상영체제 속에서 불가능하다. 그나마 쿼터제는 기형적 마케팅시스템으로부터 할리우드영화가 안 걸리는 날의 여지를 만들어 관객의 선택권을 좀더 챙겨주는 공적 기능을 갖는다. 그 속에서 쿼터제의 고민은 축소보다는 오히려 확대와 세련화된 전문성 보완에 놓여 있다. 독점방지와 다양성 확보란 취지에 맞도록 다른 마이너 영화들, 대안영화들,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제도화가 우리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선 오히려 쿼터일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불공정 게임의 법칙을 따라야 하나? 그런데 쿼터제가 있기에 성취한 시장점유율과 국내시장에서 막 생겨난 미국영화에 대한 경쟁력을 봐주기가 그렇게 불편한가? 더 솔직히 말하면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국제경쟁력이란, 말이 경쟁력이지 불공정 게임의 법칙일 뿐이다. 시청각 분야에서 이미 세계시장 80% 정도를 독점한 미국판이다. 게다가 영화는 경제적 산물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산물 아닌가. 그런데도 이런 영화산업을 두고 경제적 측면만 보자는 이들은 자신이 다루는 대상의 정체성조차 무시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왜 이래도 되나? 한국이 미국의 정치경제적 영향 밑에서 세계를 미국으로 보고, 세계화를 미국화로 그대로 수용하는 기이한 관습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고 국익을 계산해내고 국민에게 혼란스런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을 국가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모셔야 하는 게 우리의 비극적 현실이다. 영화는 자본과 노동, 기술과 정신이 만나는 종합적 산물이며, 지역문화와 언어, 삶의 환희와 고뇌가 담긴 산물이다. 게다가 영화는 방송, 비디오, CD, 음반, 여타 시청각 산업으로 연결된 핵심 아이디어가 담긴 영상산업의 총아이다. 최근 10년간 시청각 콘텐츠산업의 성장률은 영화의 활성화와 더불어 성장세를 보여준다. 근거없는 40억달러 때문에, 그 결과가 불투명한 한-미투자협정 때문에, 미래산업이며 아시아 문화권의 한 부분, 한국어가 담긴 문화적 산물을 내주자는 것은 이 나라 정신문화의 산업화를 포기하는 일이다. 쿼터제도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해서 수출해야 할 제도이며, 실제로 그런 요청이 미국 압박으로 쿼터를 포기한 여러 국가들로부터 들어오고 있다. 지난 6월17일 있었던 쿼터제 지지 프랑스 영화인들은 말한다. 당신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우린 지난 50년간 미국과 이 싸움을 하며 영화와 문화를 지켰고, 우린 포기하지 않는다, 라고. 2005년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 문화다양성 협약은 세계무역기구(WTO)에 맞서 각 나라, 각 지역의 문화정책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문화다양성이란 차이의 가치하에서 문화산업을 교류하고 시장을 확대해가는 공존의 문화세상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서 문화권은 삶의 질을 위한 인권이다. 이런 국제사회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미국만을 외국, 세계로 보며 영화산업을 할리우드식 시장법칙으로만 파악하는 이들은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거래해버렸기에 국민을 위한 계산법, 다중의 이익을 위한 계산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유지나/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조화’ 와 ‘절제’의 망각,<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 Story 경남고의 문제아 태일(차태현)은 학교 생물선생님 영달(유동근)의 딸 일매(손예진)와 결혼하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녀석이다.어느 날 영달은 이런 태일의 혈기를 거꾸로 이용할 잔꾀를 떠올린다. 자신의 딸만큼 공부를 잘하면 결혼하게 해주겠다는.태일은 영달의 말만 믿고 코피를 쏟아가며 공부해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다.드디어 결혼하게 됐다고 좋아하는 태일,하지만 영달은 다시 일매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요구한다.순진한 태일은 영달의 뜻에 따라 대학 4년간 남자들의 손길로부터 일매를 지키지만 마침내 사법고시 1차시험에 합격한 그날,일매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태일이가 아니에요”라는 말이다. ■ Review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의 주인공 태일은 ‘엽기적인 그놈’이다. <엽기적인 그녀>의 일편단심 청년 차태현의 새로운 버전인 이 녀석은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영한사전을 통째로 외우고 씹어먹는다.수백명 학생이 보고 있는데 영도다리 아래에서 아랫도리를 벗는 용기를 내는가 하면 전국 30만등에서 시작해 전국 3천등 안에 드는 불굴의 의지도 보여준다.<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나 <국화꽃향기>의 승우도 태일에 비하면 감내할 고통이 그리 크지 않았다.<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태일의 수난기를 코미디로 변주한다. 처음엔 태일의 사랑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분명하다.바로 일매의 아버지 영달.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와 상대하는 코미디라면 <신부의 아버지>에서 <미트 페어런츠>까지 꽤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영달이 태일의 선생님이라는 설정을 덧붙인다.선생님으로서,딸의 아버지로서 일석이조를 꾀할 방법은 무엇인가? 태일을 바람직한 제자로,사윗감으로 만들기 위한 영달의 계략은 성공한다.태일은 서울대 법대를 들어가서 4년간 손 한번 잡지 못한 채 일매의 곁을 지키며 마침내 사법시험에도 합격한다.그런데 여기서 끝인 줄 알았던 태일의 고난은 멈추지 않는다.영달의 마음을 얻고 기뻐하는 사이 이번엔 일매의 마음이 달아나고,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동은 제동장치가 풀린 기관차처럼 질주한다.갈수록 태산인 태일의 좌충우돌이 웃음의 뇌관이라면 여기에 불꽃에 일으키는 건 찰진 부산 사투리다.심각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구석구석 단디 가리고 나온나”, “비 맞은 중 맹키로 뭐라고 씨부리쌌노?” 같은 대사는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반전의 묘미가 있다.<가문의 영광>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활용한 것과 같은 전략이다.하지만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의 사투리 구사는 같은 지방에서 출생한 <친구>처럼 유창한 수준은 못 된다. 다소 어색한 억양인데다 같은 부산 사람인데도 유독 일매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아름다운 그녀가 사투리로 말하는 건 ‘깬다’고 생각한 탓일까? 아무튼 사투리 구사가 문제가 되는 건 일매가 예외라는 점에 국한되지 않는다.이 영화는 ‘사투리=코미디의 언어’라는 등식에 입각해 목소리톤을 계속 높인다.한번쯤 멈춰 호흡을 가다듬을 여유가 없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코미디 효과는 반감되고 과장된 연기는 두드러진다.처음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에게 장편영화의 리듬감까지 기대하는 게 무리였을까? 알려진 대로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드라마 <해피 투게더> <줄리엣의 남자> <피아노> 등을 연출한 오종록 PD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데뷔작이다.<피아노>의 조재현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서 영달과 태일이 조재현과 다르지 않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니는 점점 예뻐지는데 내는 추잡어지고오,치다도 못 볼 데로 니는 가고 있는데 내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엄꼬오”, “지금부터 내는 니가 숨을 쉬라 카모 쉬고,멈추라 카모 멈춘다” 등 과거 시청자의 눈물을 뽑았던,순정으로 똘똘 뭉친 대사는 그 증거다. 의사(疑寫)부자관계인 영달과 태일이 서로 업어주는 장면 역시 <피아노>에서 조재현과 고수가 보여줬던 것이다.그들은 평생 한 여자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남자들이고 대중은 그런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누구나 소망해봤지만 이뤄본 적 없는 사랑의 이상향,그것을 오종록 감독은 ‘아사다 지로(<철도원> <파이란>의 원작자)식 판타지’라 불렀다.그는 <피아노>에서 성공을 거둔 이런 전략을 영화에 그대로 차용하지만 TV만큼 잘하지는 못했다. 철저한 멜로드라마였던 <피아노>와 코미디가 강조된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의 차이이기도 하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표면적으로 차태현,유동근,손예진 세 배우의 영화이지만 코미디와 드라마의 큰 흐름을 끌고가는 것은 차태현과 손예진이 아니라 차태현과 유동근이다.<피아노>의 조재현을 연상한다면 유동근의 비중이 막대한데 실제 영화는 차태현 혼자 고군분투하는 인상이 강하다.마음의 짐을 안고 사는 유동근의 아픔이 좀처럼 전해지지 않고,속내를 숨기는 손예진의 사연은 끝까지 석연치 않다.차태현의 코믹연기가 시종 유쾌하게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불균형 탓이 클 것이다.<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여러 가지 흥행코드를 갖췄지만, ‘조화’와 ‘절제’라는 기본 항목은 깜빡 잊고 말았다. :: 오종록 감독 인터뷰“울리면서 웃기고,웃기면서 울리는 게 좋다” 영화를 구상한 계기는. 고등학교를 밀양에서 나왔는데 그 시절 개인적인 경험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다.평소에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이상적인 선생님 상을 그려보자는 생각도 있었다.아무런 비전없이 사는 아이들이 많은데 걔들한테 교육적 동기를 제공하는 건 전교조로도 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영화에서 영달은 고등학교 다닐 때 불량학생이었지만 여자가 아이를 낳고 죽자 마음을 잡은 인물이다.그런 자기 경험 때문에 애들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사정없이 때리지만 그만큼 아이들한테 애정을 준다.그런 선생님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별한 여인을 잊지 못하는 남자, 영달은 <피아노>의 조재현을 연상시킨다 실질적으로 같다.<피아노>를 만들 때 ‘아사다 지로식 판타지’라는 부제를 붙였다.2년을 같이 살다 죽은 여자를 잊지 못해 온갖 박해를 견디는 인물,그것은 아사다 지로의 소설이 그리고 있는 세계과 비슷하다.영달 역시 죽은 여인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이고 태일의 지금 모습은 영달의 젊은 날과 같다.사랑이 존재의 이유가 되는 사람들이다.그걸 만화처럼 동화처럼 그리고 싶었다. 심각하고 진지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코미디로 풀었다.그게 <피아노>와 다른 점인데. <피아노>도 초반엔 코미디가 많았다.내가 86년부터 드라마 조연출을 했는데 80년대엔 다들 엄숙하고 장중한 드라마를 좋아했다.별것 아닌 것도 폼잡고 연출하는 식이었다.하지만 90년대로 넘어가면서 가벼운 드라마들이 쏟아졌다.92년에 입봉을 했는데 94년 무렵부터는 무거운 이야기가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그때부터 스타일을 바꿔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고 경쾌하게 풀어갔다.코미디가 당의정으로 진지한 멜로드라마를 감싸고 가는 식이다.목욕탕 가서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면 혈액순환에 좋다고 하지 않나? 울리면서 웃기고,웃기면서 울리는 그런 장면을 좋아한다. 영화는 처음인데 드라마 연출할 때와 많이 달랐나. 많이 다르더라.드라마 PD를 할 때는 전체의 관리자였는데 영화감독은 시스템의 일원일 뿐이더라.촬영도 많이 다르다.화면이 워낙 크니까 액션과 리액션을 따로 잡을 필요가 없더라.때문에 원래 980컷으로 예상했던 영화가 800컷 조금 넘는 것으로 정리됐다.이야기가 한 화면 안에 다 들어오기 때문에 굳이 나눠 찍을 이유가 없다.다음에 영화할 때는 연구를 더 해야겠더라. 시나리오 쓸 때 배우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나. 차태현은 처음부터 염두에 뒀다.차태현과 세 번째 같이 하는데 차태현의 스타성에 도움을 받아보자는 생각도 있었고,워낙 연기를 잘한다.어디서 배운 것도 아닐 텐데 연기를 본능적으로 잘하는 배우라 신기하다.

글쎄, 사랑도 변하더라니까, <봄날은 간다>

사실 그날 밤 우리가 왜 다퉜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대개의 부부싸움이 그렇듯이 싸우다보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말다툼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각자의 공간에서 마음속에 높은 담을 쌓은 채 누군가가 먼저 말 걸어주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화풀이 상대로 고른 텔레비전만 뚫어지게 보다가 혹시 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촉각을 곤두세워봐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말 한마디만 하면 나도 모른 척 넘어갈 텐데, 미안하다고 말할 텐데…. 1분 1초가 흐르는 것조차 셀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가는 시간 앞에 헛기침 한번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가 잠들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갑자기 밀려오는 무력감과 허탈감. ‘나는 속상해서 죽을 지경인데 잠이 오나?’ 정말 야속하다. <봄날은 간다>를 토요일 밤. 하필이면 남편과 싸운 그날 밤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쌩하니 아리다. 특히 상우가 은수에게 했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혼잣말 같은 이 말은 큰소리가 되어 한참을 머릿속에 뱅뱅 돈다. 결혼하기 전 어느 해인가 많은 눈이 내렸던 12월31일. 그는 한해의 마지막날에 내 얼굴 한번 보겠다며 연휴 근무를 선배와 바꾸고 목포에서 서울까지 길이 얼어 차가 빙빙 돌고 갓길로 처박히는 무시무시한 고속도로로 차를 끌고 온 적이 있었다. 서울에 도착해 그가 열심히 내게 삐삐(비퍼)를 치는 그 시간에 나는 입사 동기들과 종로거리를 헤매느라 그가 온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다. 그가 다시는 나를 만나지 않겠다며 그날 밤 목포로 돌아가버린 사실을 이튿날 알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는 연락 한번 없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다 잡은 물고기(?)라고 이럴 수가 있나? 누구든 그랬겠지만 적어도 내 사랑은 남들과 다르다고 믿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우리의 사랑은 처음 그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되도록 백년해로하자고 마음먹었는데, 아니 그것도 모자라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우리 또 결혼하자고 했었는데 다 철없을 때의 이야기인가? 그날 밤 내린 결론, ‘그래 우리의 사랑도 변했다!’ 그렇게 영화는 완전한 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 사랑이 변하면 끝장나는 거야. 난 상우의 열병 같은 첫사랑을 담담하게 군더더기 없이 그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대나무숲에서 들리는 소소하지만 부드러운 바람소리가 좋았다. 초등학교 다닐 적 해남 외갓집 담에는 하늘처럼 높은 대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댓잎을 꺾어 조리를 만들고 입으로 피리를 불어봤지만 풀풀거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또 외할아버지 제사 때마다 일가친척이 다 모여 하얀 쌀떡을 조청에 찍어 먹던 기억과 깨끗한 적삼저고리를 입고 은비녀를 꽂은 외할머니의 단아한 모습이 생각난다. 지금은 여든을 훌쩍 넘기신 외할머니가 세월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간혹 정신을 놓으신다는 엄마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들었었지. 내 봄날은 영화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사랑이 지나가버린 기억 속의 봄날이지만 나는 끝나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흘러 내 감정도 내 일상도 봄을 지나 소나기가 내리는 여름날 어느 하루쯤에 와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누가 먼저 변했는지 알 수 없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변한 것 같다. 다음날 회사에서 방송을 준비할 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그의 목소리. “영아야. 지금 나 출근하는데 비가 내리네. 우산 안 가지고 왔지? 회사 앞에 나 와 있어. 지금 바로 내려와.” 퉁명스럽던 내 목소리가 자꾸만 작아지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하룻밤 뒤척이면서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연분홍 치마처럼 휙… 하니 날아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