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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8년 후>의 감독 콜린 세로와 배우 마들렌 베송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의 18년 뒤, <그리고 18년 후> 들고 온 감독 콜린 세로와 배우 마들렌 베송 결혼이나 가족으로부터 구속받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세 남자가 한 아파트에 모여 산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집 앞에 여자아이가 담긴 바구니 하나가 달랑 놓여 있고, 세 남자 중에 한 사람을 아빠로 지목하며 몇달간 맡아달라는 아이 엄마의 메모가 첨부되어 있다. 아, 이런! 개인주의자 피에르, 자크, 미셸이 마리와 동거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삶의 형태가 부상하는 사회현실을 세밀하고 따뜻하게 포착한 1985년작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는 프랑스 내 박스오피스를 석권하며 세자르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골든글로브와 오스카의 주목 끝에 미국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재미난 프랑스영화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18년이 지났다. 콜린 세로 감독은 그때의 세 아빠와 마리의 18년 뒤를 보여주는 속편 <그리고 18년 후>(2001)를 만들었다. 세명의 남자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바구니 속에 들어 있던 꼬마배우까지 고스란히 출연했다. 이제 18살 숙녀가 된 마들렌 베송은 콜린 세로 감독의 친딸로 제3회 서울 프랑스영화제 참석차 감독 겸 어머니와 함께 내한했다. <그리고 18년 후>는 가장 오랜만에 나온 속편이 아닐까. 콜린 세로: 아마 그럴 것 같다. 두 영화 모두 기쁘게 촬영했지만 속편이 더 즐거웠다. 기획을 한 즉시 작업에 착수했는데, 세명의 남자배우들이 이 계획을 너무나 좋아해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자신들의 일정표를 막아놓고 준비에 들어갔다. 마리의 어머니, 약국 약사도 그대로 출연했고 스탭 중에서는 편집기사가 전편에 이어 속편도 함께했다. 느낌이 특별했을 것 같다. 콜린 세로: 그래도 어쨌든 나에게는 열 번째 영화라서 특별한 건 없었다. 영화 만든다는 일은 언제나 힘든 작업이다. 나에게 배우들이 있었다는 게 가장 중요한 같다. 당신의 영화는 코미디 장르의 특별한 힘을 생각하게 한다. 콜린 세로: 유머러스한 영화를 좋아하며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 영화에는 여러 가지 느낌과 장면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장르 혹은 카테고리에 넣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18년 후>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콜린 세로: 여러 가지 차이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다. 첫 번째는 서로 다른 아버지상이다. 영화에 나오는 미국인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지시하고 지배하기를 좋아하는 가부장적 아버지다. 반면 프랑스 아버지는 애정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자녀를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한다. 두명의 미국인 형제를 통해서 또 다른 차이를 말하고 싶었다. 잘난 형 잭은 아버지를 고스란히 닮아서 경쟁 지향적이다. 아버지는 결국 경쟁만 하다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았나. 동생 아더는 사랑에 대해 진솔하고 경쟁적인 것을 싫어한다. 우리 사회는 경쟁사회다. 빛난다고 해서 항상 가치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미국과 프랑스를 보는 정치적 시선이라고 해석해도 좋은가. 콜린 세로: 물론 미국을 통해서 경쟁사회를 묘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작은아들을 통해서 또 다른 미국의 모습을 그리기를 원했다. 아들은 미국의 미래를 나타낸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버지이고 그것이 현재의 미국사회다. 마들렌 베송: 아버지와 큰아들은 거의 똑같다. 반면 작은아들 아더는 보호와 간섭에 상관없이 독립적이고, 아버지가 정치적인 모임에 끼는 것을 싫어해도 스스로 참여한다. 물론 두 아들의 선택은 각자의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더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는 상대방과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휴가라는 상황을 설정한 이유는. 콜린 세로: 작은 사회를 만들어서 관찰하는 기회로 삼기 위해서였다. 중요한 것은 세 남자가 개인적으로 독립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서 일종의 부족처럼 산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삶의 양식은 아니지만 그들은 서로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 디지털을 택한 이유는. 콜린 세로: 이번이 두 번째 디지털 작업이다. 디지털은 편집에서 훨씬 용이하고 조명도 필요없어서 일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등장인물이 많았기 때문에 2, 3대의 카메라가 항상 동시에 사용되었는데 35mm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35mm로 상영하지만 머잖아 보는 것도 디지털로 하게 된다면 정말 굉장할 것이다. <그리고 18년 후>는 이 사회에서 내가 느끼는 생의 감각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 한국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라면 어떤 차이를 느끼지 않는가. 콜린 세로: 한국영화는 오래 전에 한편 본 적이 있고 이번에 전수일 감독의 <파괴>를 봤다. 절망적인 상황이 감명 깊게 묘사되어 있고 배우들의 연기 역시 피상적이지 않은, 깊은 감정을 전달했다. 한국사회 전체가 젊은 사람들에게는 막다른 골목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회가 정말로 그렇게 짧은 기간 안에 흔적도 없이 바뀌는가? 사람과의 관계나 의식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모든 것이 빨리 변화하고 기계나 문명은 최신 상태로 발달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그런 리듬으로 사는가? 프랑스는 생활의 리듬이나 변화의 속도가 늦다. 그런 게 어쩌면 한국 사람들이 프랑스라는 나라를 상상할 때 갖고 있는 이미지일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당신의 영화가 실제로는 중요하고 급격한 사회 변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음에도 내게는 마치 르누아르 그림을 보는 듯한, 벨 에포크(Belle Epoque)의 소극(笑劇) 한 토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콜린 세로: 흥미롭게 들린다.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려 하지만 체류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잘 알 수는 없다. 뭔가 있기는 한데… 어떤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마들렌 베송: 미국과 프랑스 사람들은 피상적인 데 반해 한국 사람들은 가식이 없고 진실에 가까운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프랑스는 차가운 사회다. 이 대목에서 어머니와 딸은 서로간의 의견을 짤막하게 교환했다. 프랑스어로 나누는 이야기인데다 굳이 통역을 요청할 만한 상황이 아닌지라 대화의 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이들이 평소에 서로의 의견을 즉각적으로 교환하면서 귀기울이는 모녀 관계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실 콜린 세로 감독과 마들렌 베송이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자기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언론 매체와 마주앉은 감독과 배우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어쩌면 퉁명스럽다고 여겨질 만큼 자신들의 관심사에 집중했고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화려한 언사를 굳이 피해갔으며 인터뷰어에게 질문하기를 좋아했다. 박스오피스를 석권한 여류 코미디 감독이라는 선입관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대화하고 스스로는 잘 웃지 않지만 남을 잘 웃길 수 있는 예리하고 진지한 페미니스트의 상이 들어섰다. 어느 쪽이든 보는 이에게는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배우 마들렌에 대해 말해달라. 콜린 세로: 사실 오랫동안 망설였다. 마리 역의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오디션도 많이 봤고 그중에는 정말 잘하는 배우도 있었다. 그러나 마들렌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움,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춤도 출 줄 아는 면모를 다른 배우에게서 찾기 힘들었다. 나는 영화인이면서 화가로서 딸의 얼굴을 매우 좋아한다. 딸이 나중에 음악가가 될 거라고 하니, 딸 자랑이나 홍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마들렌이 처음 영화를 만들도록 영감을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들렌은 연기 경력이 있는지. 마들렌 베송: 전혀 없다. 처음에는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니 멋진 경험이 될 것 같았고, 엄마가 아닌 감독으로서 이런 분과 일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만족스럽고 멋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마리 역은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라 많은 부분이 원래의 내 이미지다. 살사를 배운 지 3년 정도 되었는데 무척 좋아한다. 아더가 하는 다리 들어올리는 운동은 엄마가 아주 잘하는 운동이다. (‘그렇게 힘든 운동을?’ 하는 놀라는 듯한 시선을 보내자 감독은 ‘많이 연습하면 된다’며 정답을 알려주었다). 이번 작업은 카메라 뒤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가까이서 본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영화와 음악이 서로 다른 언어를 가졌지만 둘 다 깊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감성(sensibility)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도 의미있었다. 다만 앞으로는 영화를 할 계획이 없다. 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이 얘기하지만 나에게는 그리 관심 끄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재즈를 비롯한 음악에 관심이 많다. 세명의 아빠와 사는 삶을 어떻게 느꼈나. 가장 그럴듯한 아빠는 누구였는지. 마들렌 베송: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아빠는 규칙대로 바른길로 인도하려 하고 진짜 아빠로 설정된 두 번째 아빠는 부드럽게 딸과 같이하려는 사람이고 세 번째 아빠는 재미있게 놀려는 사람이다. 셋이 합해서 한 사람 몫을 하는 것이니까 누구 한 사람을 선택하지는 않겠다. 감독으로서의 어머니에 대해 말한다면. 마들렌 베송: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잠시 생각하다) 엄마는 일을 많이 하고, 특히 멋진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두편의 영화로 포착한 프랑스사회의 변화를 요약한다면. 콜린 세로: 혼자 사는 사람이 급증했다. 특히 30대는 혼자 사는 사람이 아주 많다. 여기서는 여성들의 혁명이 있었는가? 독신 여성들이 많이 늘었지만 관행과 윤리, 제도의 측면에서는 새로운 합의가 생성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콜린 세로: 낙태가 법률로 인정되는가? 무료인가? 인정되지만 무료는 아니다. 당신은 프랑스의 지금을 어떻다고 보는가. 콜린 세로: 남자들은 천천히 진보하는 데 비해 여자들은 빨리 변한다. 유럽이 다른 사회에 비해 약간 더 진보한 상태이겠는데, 남자들은 자신이 누렸던 것을 잃어버리고 갈팡질팡하는 단계이고 여자들은 절대로 예전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들렌 베송: 여자들이 한편으로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살지 않겠다고 하는 반면 프랑스 어디서나 나체 광고를 본다. 이런 상황과 관련하여 당신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가. 콜린 세로: 변화가 이율배반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안에 대규모 이슬람 교도 집단이 살고 있다.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정당성 없는 전쟁을 하는 바람에 프랑스에 사는 알제리인들은 자신의 것을 유지하기 위해 이슬람교의 극단적인 면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여성들의 위치가 후진적이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들이 누리는 자유가 모든 면에서 늘어났지만 한쪽에서는 살기조차 힘들 만큼 지독한 가부장 제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 즉 프랑스가 진보하는 동시에 퇴보하는 면도 있다는 사실이다. 2001년에 만든 <카오스>에서 이런 문제를 다뤘다. 한국과 프랑스사회의 변화 상태로 볼 때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 <그리고 18년 후>에 묘사된 삶의 양식은 우리에게 다소 예언적이다. 같은 변화를 앞두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당신의 생각은. 콜린 세로: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생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생을 희생시키지 말라.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라. <그리고 18년 후>는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이 강한데. 콜린 세로: 그렇다.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마리와 아더의 모습대로 그들의 미래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육체적 사랑만이 아니라 둘이서 많은 일들을 함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로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주고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서로의 말에 귀기울이면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가정부 역의 부인이 돌을 잔뜩 지니고 다니다 버리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콜린 세로: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갖고 다니는 고통이 있다. 어느 날엔가는 다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세 남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중에 일부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콜린 세로: 나도 모른다. 어쨌거나 모두에게 자기 자리가 있는 사회니까. 딸의 친구 아모스가 이 집에 와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에서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는 6개월간 박스오피스에 올라 있었다고 들었다. 관객이 그렇게 특별한 반응을 보인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콜린 세로: 9개월이다. 사람들이 많이 웃으면서도 이면의 메시지를 보는 것 같아 기쁘다. 나뿐만 아니라 배우들도 애정어린 편지를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편지를 소개한다면. 콜린 세로: 할 수 없다. 나를 칭찬하는 게 되니까. 지금은 그런 일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자리다. (웃음) 콜린 세로: 그래도 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배경은 가부장 제도가 막을 내리는 마지막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좋은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리메이크된 <세 남자와 아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콜린 세로: (커다란 소리로 웃으며) 공식적으로는 아무것도 언급하고 싶지 않다. 나는 비평가가 아니니까 감독들에 대해서는 나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모든 영화는 아름답다. 리메이크를 원한다면 다시 허락할 것인가. 콜린 세로: 미국 사람은 절대로 안 하겠다. 문제될 게 없다. 생각조차 안 할 거니까. (웃음) 마들렌은 어떻게 느꼈나. 마들렌 베송: 어린 시절에 봤기 때문에 전부를 기억하지는 못하고 어떤 이미지들만 남아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들이 달랐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피상적(superficial)이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미국영화처럼. 어쨌거나 리메이크하기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원작만큼 최선의 상태가 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빠뜨리지 않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콜린 세로: 그런 건 따로 없다. 누구나 자기의 방식으로 보고 말할 자유가 있는 법이니까. 감동 깊은 점들이 있다면 관객에게도 전해지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남았다 <마녀에서 예술가로, 오노 요코>

비틀스의 미증유의 명반 에 <줄리아>라는 노래가 있다. 존 레넌은 “줄리아, 줄리아, 대양의 아이(…), 조가비 눈, 바람 같은 미소가 나를 부르네…”라고 노래한다. 이 아름다운 사랑노래의 주인공이 바로 대양의 아이(한자로는 洋子), 다시 말해 오노 요코다. 아무나 이런 사랑 노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나? 아니지. 오노 요코니까 주인공이지.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오노 요코는 그동안 이상하리만치 일종의 ‘점지된 공주’ 취급을 받아왔다. 이 점지 설화에는 서양 사람들의 의심과 오만이 깃들어 있다. 존 레넌의 애인이 동양 여인? 설마. 언젠가 꿈에서 깨어나 헌신짝처럼 버릴 거야…. 오노 요코는 사실 이런 분위기를 존 레넌의 애인이 되는 그 순간부터 참아야 했다는 것을 최근에 발행된 그녀에 대한 평전 <마녀에서 예술가로, 오노 요코>(클라우스 휘브너 지음/ 장혜경 옮김/ 솔 출판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요코는 말한다. “나에 대한 반감은 적어도 세 종류입니다. 반아시아, 반페미니즘, 반자본주의적 반감이지요. 다들 이렇게 말해요. 저 늙은 여자를 봐라. 저 돈 많은 과부를 봐라.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누가 뭐라 한들 오노 요코를 어찌 존 레넌과 분리해서 상상하랴. 그러한 ‘결합’이 불러일으켜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편견까지를 모두 포함하여, 오노 요코라는 ‘인물/현상’이 지닌 적어도 ‘사회적인’ 문제의식은 바로 그 결합에서 출발한다. 오노 요코는 영원히 존 레넌의 연인이다. 그것이 ‘오노 요코’라는 이름이 세계의 대중에게 각인되기 시작한 탄생설화에 담긴 아름다움이자 동시에 아픔이다. 그것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오노 요코의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존 레넌이 1970년대 접어들어 한때 요코에게 싫증을 느끼고 중국계 여인과 바람을 피웠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 일화 속에서 오노 요코는 강한 정신을 지닌 동양적 열녀로 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오노 요코는 존 레넌을 잃지 않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제 존 레넌이 죽은 지 20년이 넘었다. 요코의 나이 이제 일흔살이다. 사람들은 오노 요코를 서서히 존 레넌과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 플럭서스 열풍에 몸을 던졌던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가 재평가되고 있으며 온갖 사회적, 인종적 편견에 맞서 자기 자신을 지켜야만 했던 한 여성 오노 요코가 재발견된다. 앞서 언급한 평전 역시 오노 요코의 삶을 예술가적 관점과 여성의 자기정체성 확립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살피고 있다. 물론 요코의 예술세계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백남준의 그것처럼 첨예하게 미디어적 발상을 밀고 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요셉 보이스의 그것처럼 처절하게 몸뚱어리에 가까운 무엇을 드러내보인 것 같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하기가 조금 애매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지금 이 순간에도 편견을 견디고 이겨내어 꾸준히 자기 자신을 세워온, 서양 사람들 판에서 기죽지 않고 버텨온 동양인, 그것도 여자라는 점이다. 마침 오노 요코의 전시회(로댕 갤러리, 9월14일까지)가 국내에서 열리고 그녀가 직접 한국에 와서 인터뷰도 한다 하니 우연히 닥친 기회치고는 평전과 더불어 그녀를 이해하게 될 하나의 계기가 마련된 듯싶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장편 감독들,단편영화를 말하다 [2]

---장준환 나도 실험성 있는 영화를 봤는데, <기억, 발꿈치를 들다>라고. 한 여자가 2차대전 중 한 일본 군인이 보낸 소포를 현재 시점에 받는 이야기인데, 월경이라는 것의 의미도 부각되고 해서 좀 어려운 단편이었지만 완성도나 이미지가 모두 좋았다. 그리고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란 영화도 있는데, 아주 평범한 영화처럼 시작해서 갈수록 골때리는 상황에 빠진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내러티브 전개와 상상력을 갖춘 것 같다. 굉장한 반전도 있고. ---봉준호 그걸 만든 감독이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으로 지난해 미쟝센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신재인 감독이다. 언제든 충무로에 나올 수 있는…. ---장준환 그런가? (흥행에) 망한 감독 입장에서 조금만 자제하시면 좋을 듯…. (모두 웃음) <난청지역>이란 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얘기 같기도 하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 어떤 여자가 자기 딸을 괴롭히는 남자애를 자기 집 방 안에다 감금하고 폭력을 가한다. 아이의 몸에 쇠사슬 묶은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특히 좋았고…. (모두 웃음) ---일동 <지구를 지켜라!>를 만든 장 감독으로선 아주 좋았겠지. 오늘의 단편영화 04 너무 못 만든 영화 vs 너무 잘 만든 영화 ---이현승 액션쪽에선 재미있는 영화가 없었나. ---오승욱 기절할 정도로 좋았던 영화가 있다. <무떼>라고, 고등학생들이 만든 작품인데 이상하게 개인적으로 애착이 갔다. 사실, 지탄을 받을 만큼 영화가 길고, 정말 아무 개념없이 찍었지만, 너무 좋았다. 이소룡을 추종하고 실제로 무술도 조금 할 줄 아는 아이가 만든 건데, 자기가 무술을 하면서 생각한 것들을 디지털카메라로 나름대로의 컷을 운용해 보여준다. 관절기술도 나오고 대단하다. 특이한 점은 여기에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폭력학교가 배경인데 아이들이 다스리고, 어른은 있다 해도 힘이 없다. 그리고 <호소자>부터 시작해서 홍콩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무술 캐릭터들이 다 나온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유희의 느낌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무술 좋아하는 고등학생들이 모여서 우리 영화 찍자, 네가 악당해, 이렇게 시시덕거리면서 만든 것 같다.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다 쏟아부어서 놀이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만듦새는 정말 엉성했지만 영화라면 그래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이현승 제2의 류승완이 나오는 건 아닐까. ---장준환 그럴 수도 있겠다. 류승완 감독도 진짜 첫 단편영화는 만듦새가 엉성했으니까. (웃음) ---봉준호 류 감독 첫 영화인데, 준환이가 촬영하고 내가 편집한 이상한 영화가 하나 있다. <변질헤드>라고. 류 감독이 감독의 생명을 걸고 절대로 공개할 수 없다고 하는 영화다. 여기저기 나돌던 필름까지 다 회수했다더라. ---김대승 나도 정말 반가웠던 영화가 있다. <쥐구멍은 어디 있나>인데, 주인공이 성격도 그렇고 해서 남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여자인데, 어느 날부터 <지구를 지켜라!>처럼 머리에 이상한 걸 쓰고, 옷도 이상한 걸 입어 변신을 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된다. 굉장히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이더라. 낯 뜨거워서 잘 못할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반갑더라. 사실 완성도는 떨어져도 나는 좋았다. ---오승욱 <바람은 얼굴에 찔리운다>란 영화가 있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밑도 끝도 없이 두 사람이 격투를 벌이는 모습이 펼쳐지는데, 시도가 놀랍더라. 과감하더라. 사실은 완성도로 보면 좀 많이 떨어지긴 한다. 그래도 격투장면만을 통해서 감정까지 끌어내겠다는 의도가 좋았다. ---장준환 나는 <빨간 모자>!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은데,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 아쉽다. 같은 이름의 동화를 원작을 바탕으로 판타지도 있고 우리 현실에 관한 이야기도 있는 이야기로 바꾼 것도 신선했다. 빨간색을 너무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빨간색 모자로 그 아이를 꼬시는 남자의 관계가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마지막 부분에 내러티브가 잘 전달이 안 되는데, 거기의 엽기적인 장면이 좋았다. 남자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줄 알고 아이가 다가가는데, 그게 알고 보면 손톱에 칠한 게 아니라… 흐윽…. (모두 긴장) 그게 손톱이 빠진데다가… 그런 거더라. (모두 어우∼ 한다. 어디선가 “죽인다” 소리 들린다) 하여튼 캐릭터도 좋고 소재도 신선해서 좋았다. ---이현승 반면 너무 잘 만든 영화들도 있지 않았나. ---오승욱 <갈치괴담>이란 영화가 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잘 만들었다. 무성영화라는 구성이나 액션의 만듦새 이런 게 너무 뛰어나서 의심마저 가더라. 내가 아는 사람도 얼핏 비치는 것 같고. 이게 인육을 먹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그래도 굉장히 좋게 봤다. 너무 배고파서 사람을 잡아먹기까지를 굉장히 설득력 있게 보여주더라. 마지막 부분에 사람 눈깔을 파서 입으로 후루룩~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휴. (모두 웃음) ---장준환 <알버트>란 영화도 너무 잘 만들었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분이 만든 것 같은데, 하여튼 완성도가 굉장히 뛰어나다. 30년 세월 동안 교수형 당한 시체를 닦는, 염을 하는 사람의 얘기인데, 이게 아주 묘하다. 처음엔 무슨 공포영화처럼 시작한다. 인상도 더러운 아저씨가 시체를 닦는 것도 모자라, 이까지 뽑더라. 그걸 왜 뽑지? 하여튼 무서웠다. 그런데 뒷부분으로 가면서 아주 짧은 순간에 그 아저씨가 가진 슬픔의 판타지로 확 넘어가더라. 그 부분이 너무 좋았다. 이 영화도 너무 잘 만들어서 솔직히 의심의 눈길이 갈 정도였다. ---이현승 지금 허진호 감독과 통화가 연결됐다. ---허진호 <신동양 수-퍼맨>은 일단 연기 연출이 괜찮더라. 슈퍼맨 옷을 입은 사람이 나와 우왕좌왕하면서도,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름대로 풀어놓아서 마음에 들었다. <꽃시절>도 재밌었다. 아버지와 함께 살던 아이가 학교에 무단결석한 다음 엉겹결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조의금까지 받는다. 공돈으로 여자친구와 뭘 하려는데 일이 자꾸 꼬인다. 그런 상황이 너무 재밌었다. 오늘의 단편영화 05 디지털 VS 필름 ---이현승 단편영화들을 보면서 어떤 경향을 발견했나. ---장준환 디지털이 인상적이었다. 디지털이라는 매체가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김대승 디지털에는 분명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인공조명 안 써도 되고. 그런데 그런 장점들을 활용한 것이라기보다는 장편의 호흡을 따라가지만 이야기에선 특별히 남겨지는 것이 없으니까 길게만 느껴진다. ---장준환 맞다. 디지털이 필름의 텍스트를 흉내내려고 했던 건 아쉬운 점이다. ---이현승 이번에 개막작이 해외 초청작인데, 이라는 이름으로 5분 미만 단편 11편을 상영하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단편의 짧은 맛, 반전 등이 눈에 띈다. 외국에서는 그렇게 정말 짧은 단편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상당히 고무적이고 부럽다. 우리나라에서는 5분 미만 작품은 아마 만들 생각도 안 할 거다. ---봉준호 지난해 영화제에 나온 가 기억난다. 옛날 짝사랑했던 남자를 찾아간 감독이 그와 옛날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였는데, 시간도 짧고 굉장히 사적인 느낌이어서 디지털이라는 매체와 적합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현승 그걸 갖고 허진호 감독이 엄청 고민했었지. 좋긴 좋은데 상을 주기에는 좀 약소해 보이고 해서. ---봉준호 며칠 전에 청소년영상제 일로 어떤 부탁을 받고 EBS 방송사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영화를 만든 친구들이 모두 청소년들이라 돈도 없고 해서 90% 이상이 디지털로 찍은 작품들이었다. 그중 몇 작품은 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자기 집에서 엄마에 관해 찍는 식이었다. 오히려 그런 게 생동감이 넘쳤다. 왼쪽부터 <꽃시절><빨간모자> ---이현승 학교에서 가르치면서도 느낀다. 돈 안 들이고 길게 찍을 수 있으니까 학생들이 굳이 필름 작업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3학년부터는 무조건 필름으로 찍으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이란 매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가볍고 사적이며 부담없이 구사할 수 있다는 것 등이 디지털의 특성인데, 필름은 정교하게 한번씩 텐션을 가지고 숏을 찍어야 한다. 그런 필름의 특성을 훈련하지 못해서 디지털로 찍으면서도 마냥 늘어지는 속성이 있는 거다. ---김대승 앞으로 시간제한이 필요한 거 같다. 30분 정도로. ---이현승 호주에는 ‘1분영화제’라는 재미있는 행사가 있다, 1분이 넘으면 안 되는 게 규정이다. 딱 하룻동안 열리는데, 저녁 때부터 날 샐 때까지 1분짜리 영화들을 계속해서 상영한다. 쉬지도 않고. ---오승욱 사실, 이 영화제도 좀 재미가 있다. 좀 이상한 영화를 찍는 감독의 경우, 딴 데서는 어렵지만 이곳에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거다. ---이현승 후원기업인 미쟝센도 칭찬해줘야 한다. 사실 후원한 쪽은 늘 콩내놔라 팥내놔라 하면서 개입하게 마련인데, 여기는 우리가 알아서 끌고가게 한다. 다른 기업들도 마인드를 갖고 영화를 포함한 문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정리 문석 ssoony@hani.co.kr, 박혜명 na_mee@hani.co.kr사진 이혜정 socapi@hani.co.kr·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전지현에 대한 3가지 보고서 [3]

1997년의 어느 날 싸이더스HQ(당시 EBM) 정훈탁 대표는 강남의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의 맞은편에는 한 잡지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겼던 묘한 매력의 소녀 대신 선머슴 같은 16살 여자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앉아 있었던 것. 그 아이는 연예계 운운하는 정훈탁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몸을 배배 꼬며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질문에 “네?”라고 답하며 고개를 번뜩 쳐드는 소녀의 눈빛이 그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그의 머릿속에는 <레옹>의 마틸다가 떠올랐다. 어린데도 성숙한 여인 같은 느낌이 있고, 소년의 분위기까지 풍기는 복잡한 매력이 매니저로서 정훈탁의 본능을 자극했다. 아무리 극적으로 묘사한다한들 전지현의 발탁 과정은 여느 틴에이저 스타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리고 겉으로만 본다면, 그 이후 얼마 동안에 벌어진 일 또한 ‘보통 10대 스타’의 정규 코스와 비슷하다. 1주일에 몇번씩 연기수업을 받으며 데뷔를 준비해 1년 뒤 TV드라마에 출연했고, 쇼 프로그램 MC, CF 출연 등으로 이어지는 예정된 수순을 밟았으니까. <엽기적인 그녀>가 탄생하기까지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전지현은 처음부터 자기만의 코스를 세워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몇 갈림길에서 그녀는 평범한 아이돌의 노선 대신 연기자, 그것도 대형 연기자로 향하는 이정표를 택했다. 물론 당시 선택은 대부분 매니지먼트사의 장기 전략 속에서 세워졌다. 조연이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캐릭터인 <내 마음을 뺏어봐>의 가영 역할로 드라마에 데뷔한 것이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줍어하는 전지현의 성격을 ‘개조’하기 위해 의 MC를 맡았다가 ‘너무 오래 하면 성격이 되바라질까봐’ 수개월 만에 도중하차한 것, 스타로서의 신비감을 키우기 위해 TV출연과 매체 노출을 최소화한 것 모두가 ‘될성부른 나무’에 대한 배양수였다. 하지만 정훈탁 대표의 말대로 “만약 전지현이 그런 가능성을 안 보여줬거나 스타가 되기 위해 조바심을 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초기전략을 통해 나름의 입지를 굳힌 전지현이 발걸음을 옮긴 쪽은 당연히 영화였다. 분명 1999년의 <화이트 발렌타인>과 2000년의 <시월애>가 가장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지만, 당시 전지현의 어린 나이나 미숙한 연기력을 고려할 때 차선책일 수는 있었다. 사실, 두편의 영화출연은 확실히 영화 자체보다는 전지현쪽으로 열매를 남겼다. “그 이전까지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뭔지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 영화를 시작한 뒤 뭔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배우라는 자의식은 그녀 안에서 빠르게 성장했고, 프린터 광고로 완벽히 스타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그녀 자신은 “일개 CF모델로 안주할 생각이 없고 배우이기 때문에 ‘테크노의 여왕’이라는 칭호로부터 빨리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뭔가 부족했다. CF계에선 최고 스타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지만, 배우로서의 전지현은 “미모? 너무 예쁘지. 연기? 아직은…” 식의 반응을 얻는 정도였다. ‘배우 전지현’이 탄생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건 2001년 <엽기적인 그녀>였다. 물론 신씨네의 시의적절한 기획, 곽재용 감독의 노련한 연출, 차태현의 발랄한 연기가 없었다면 <엽기…>의 500만 신화도 불가능했겠지만, 전지현이 가담하지 않았다면 <엽기…> 자체가 아예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수차례 설문조사가 전지현이 적역이라는 결론이었다. 전지현이 아니라면 영화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당시 신씨네 마케팅 책임자 최수영 프로듀서의 말이 아니더라도 전지현은 외모와 내면 모든 면에서 <엽기…>의 ‘엽기녀’를 빼다박은 존재였다.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그녀가 이 영화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녔음은 우리 모두가 아는 이야기. <엽기…> 신드롬은 전지현을 ‘최정상급 스타’에서 ‘유일무이한 여신’급으로 격상시켰다. 특히 충무로는 전지현이라는 여신을 맹목적으로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엽기…> 이후 그녀에겐 “대한민국 시나리오의 80%가 들어왔”(싸이더스HQ 김상영 팀장)고, 아예 ‘전지현 아니면 안 됨’이라는 조항이 달린 시나리오도 상당수 접수됐다. CF계에서의 파워는 더욱 높아져 탄탄한 9개 업체와 전속계약을 맺고 있다. 지오다노의 광고를 대행하는 화이트커뮤니케이션과 ‘2% 부족할 때’의 광고대행사 대홍기획 관계자는 “특정 모델과 매출간의 연관은 파악이 어렵지만, 브랜드의 선호도, 호감도, 인지도 등에서는 ‘전지현 효과’가 확실하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이 광고 수입인 지난해 그녀의 매출은 50억원 선이었을 정도. <전지현 따라잡기>를 만드는 튜브픽쳐스가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PPL에서 조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도 전지현의 존재 덕분이다. 튜브픽쳐스 황우현 대표는 “영화 속 전지현의 광고 모습을 이용해 PPL을 유치할 계획이다. 전지현이 아닌 다른 누구였다면 이런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엽기…> 이후 전지현의 변화는 외형적 가치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전지현을 신인 시절부터 지켜봤던 나비픽처스 조민환 대표는 배우로서의 역량 또한 한껏 강화됐다고 평가한다. “지오다노 광고를 김성수 감독이 촬영해 스튜디오에 함께 갔었는데, 깜짝 놀랐다. 몸의 표현력 하며, 얼굴의 감정 하며 카메라 앞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더라. 한마디로 몸에 자신감이 가득하더라. <엽기…> 때보다 배우로서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게 틀림없다.” 의 제작자 영화사 봄 오정완 대표도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잘되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전지현의 현재를 평가함할 때도 물론이고 ‘미래가치’를 예측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해외시장이다. 해외시장이 전지현에게 주목하게 된 전환점은 당연히 <엽기…>였다. 이 영화는 홍콩에서 250만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며 바람을 일으켰고, 타이에서 30만달러, 싱가포르에서 27만달러의 수익을 내는 등 대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현재까지도 상영 중인 일본에서는 5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했을 것으로, 심의문제로 정식 극장 개봉을 못한 중국에서는 7천만장가량의 불법 VCD가 팔렸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고 이러한 돌풍의 핵에 전지현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훈탁 대표는 “<엽기…>를 계기로 최소한 중화권에서는 전지현이 확고한 스타로 자리잡았다”고 말한다. 조민환 대표는 “전지현은 아시아 시장에서 최소 100만달러를 해외 판권 수익으로 벌어들여올 수 있는 배우”라고 단정지어 말한다. 아시아 영화계에 지인이 많은 그는 전지현의 출연작이 미니멈 개런티 기준으로 일본에서 50만달러, 홍콩에서 30만달러, 중국에서 20만달러 정도를 너끈히 벌 수 있다고 내다본다. 이런 전망은 에서 들어맞고 있다. 아시아의 10여개 업체가 제작 발표 무렵부터 제작사에 때이른 구매 문의를 해왔고, 영화가 완성될 시점을 얼마 앞둔 현재는 더 많은 업체로부터 문의가 빈번해진 상태다. 의 아시아 지역 배급을 직접 담당할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는 “이미 홍콩에는 프리세일즈 형식으로 판매했고, 나머지 아시아 지역에서도 상당한 규모로 팔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처럼 전지현이 아시아권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유에 대해 정훈탁 대표는 “외국인이 전지현이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알아보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신 한국 배우로선 드물게도 몸의 선, 움직임, 표정 등이 매우 아름답다는 점이 통하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시네마서비스 문혜주 해외마케팅 담당 이사는 “아시아권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소비적이고 패션에 민감하며 트렌드를 앞서가는 것으로 인식되는데 전지현이 딱 그것을 체현하고 있는 듯하다”고 해석을 내린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시아를 향한 전지현의 본격적인 움직임도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 전지현은 올해 들어 중국에서 3개 업체의 CF를 찍었고, 사스 파동이 가라앉는 대로 몇편을 더 찍을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또 홍콩의 영화사와 감독으로부터 20여편의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중국의 몇몇 방송사에서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싸이더스HQ가 현재 추진 중인 <바람개비>(가제)는 전지현의 첫 아시아 프로젝트가 될 전망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곽재용 감독과 전지현의 재결합이나 <엽기…>와 비슷한 맥락의 로맨틱코미디 장르라는 것과 함께 홍콩의 프로듀서 빌 콩이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세계적 프로젝트 <와호장룡>과 <영웅>을 만들어낸 빌 콩이 이 영화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아시아와 미국 시장에서 그가 갖는 영향력으로 미뤄볼 때, 해외시장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대접을 받을 게 분명하다. 최수영 프로듀서는 “빌 콩이 먼저 전지현에게 러브콜을 했다고 알고 있으며, 불법복제 CD 방지 차원에서 중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하는 방법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지갯빛 미래는 전지현에게조차 항상 열쇠를 건네주지 않는다. 은 당장에 전지현이 뛰어넘어야 할 큰 벽이다. 관객에게 주로 상큼하고 발랄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그녀가 호러영화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아마도 장르를 바꿔갈 때마다, 세계시장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딛 때마다, 자신에게 고착된 이미지를 털어낼 때마다, 전지현은 어려운 시험에 빠져들 것이다. 때때로 자신감과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을 터. 이제 누구보다 전지현 자신의 능력이 중요해진 것이다. 하나 밝은 어제보다 더 환한 미래의 여신이 끝내 가지 못할 길이 어디 있으랴. 광고 속의 전지현그녀의 하루 “아침에 눈을 뜬 전지현, 쏟아지는 여름 햇살에 타고난 뽀얀 피부를 지키기 위해 자외선 차단제를 정성들여 바르고 외출준비를 한다.(‘폰즈 더블화이트’) 외출 직전의 전지현은 신세대의 필수품인 멤버십카드를 지갑에 챙긴다. 커피전문점에서 패밀리레스토랑까지 빼놓지 않고 할인받기 위해서다.(‘LG텔레콤’) 전지현은 압구정동에서 남자친구 지진희와 만나 내일 친구들과의 모임에 입고 나갈 지진희의 옷을 사주다 싸움을 벌이게 된다. 돈이 없는 지진희는 ‘나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는 게 창피하느냐’고 화를 내고 전지현은 ‘그럼 그 차림으로 입고 나올 거냐’며 맞받아친다. 남산계단에서 ‘가난하지만 이수일의 따뜻한 가슴이 사랑’이라는 지진희에게 ‘여자에겐 김중배의 다이아반지도 사랑’이라고 반박한 뒤 헤어진다.(‘2%부족할 때’) 지진희와 싸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전지현은 요즘 유행하는 복싱(‘지오다노’)과 검도(‘엘라스틴 샴푸’)로 땀을 뺀다. 취침 전 다시 나이트용 미백 화장품으로 피부를 손질한 뒤(‘나드리’) 잠자리에 든다. 주말로 예정된 다른 남자친구와의 그림 같은 제주도여행(‘LG카드’)을 미리 꿈꾸면서.” 이것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떠돌고 있는 ‘전지현의 하루’라는 글이다. 한때 ‘이영애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유포되던 유머글이 ‘전지현의 하루’로 바뀌어져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대중적 선호도가 냉정하게 어디로 기울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빅모델을 내세우는 광고는 기존 모델을 전지현으로 교체하면서 좀더 ‘젊은 전략’으로 나아가고, 새롭게 런칭하는 제품들은 전지현을 업고 이미지를 붐업시킨다. 부동의 CF스타와 전지현을 ‘투톱’으로 등장시키던 광고는 어느덧 전세가 역전되어 전지현의 독무대가 되어버린다. 그는 CF 속에서 뛰고 달리고 소리지르고 울먹인다. 때론 총을 쏘고, 때론 춤을 추며, 때론 강력한 어퍼컷을 날린다. 그렇게 그는 청순함이면 청순함, 섹시함이면 섹시함 등 보통 한 가지 이미지만으로 승부했던 기존의 CF스타들과는 달리 각 제품에 따라 청순함(‘프렌’)과 건강함(‘지오다노’), 우아함(‘엘라스틴’), 섹시함(‘삼성 마이젯’)을 자연스럽게 오고간다. 정작 본인은 “CF는 연기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전지현은 본인이 가진 기존 이미지를 광고에 가장 소모없이,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모델이라 볼 수 있다.

전지현에 대한 3가지 보고서 [2]

‘나쁜 여자’라 좋다 사실, 전지현은 ‘나쁜 여자’다. 그는 지하철에서 남자친구 따귀를 척척 때리는 ‘엽기녀’(<엽기적인 그녀>)이자, 가지 말라며 건물 난간에 매달린 남자(정우성)를 향해 “흔들리지마, 내게 사랑은 없어”라고 단호하게 얼굴을 돌리는 ‘냉정녀’다(‘2% 부족할 때 옥상편’). 그리고 “사랑을 하면서 돈이 없다는 건 참 불쌍한 일”이라며 “라면만 먹고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건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여자에겐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도 사랑이다”라고 말하는 ‘현실녀’(‘2% 부족할 때 자존심편’) 이다. 최근 20대 여성의 대표적인 성향들은 전지현을 통해 표현되면서 얄밉지 않고 솔직하게, 전세대에 어둡게 깔려져 있던 ‘착한 여자 콤플렉스’를 걷어낸다. <엽기적인 그녀>(후반의 신파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분명 있겠지만)가 제시한 전복적 여성캐릭터는 “전 아무것도 몰라요, 마음대로 하세요” 하던 수동적인 여성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 관객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전지현 본인에게 역시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 어떤 점에 대중이 열광하는지를 깨닫게 해준 절호의 기회였다. “<엽기적인 그녀> 이후 어떤 면에서 제 자신이 ‘엽기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껴요. 말도 행동도 그전보다 많이 밝아진 것도 사실이구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다음부터 잘해야 되는데, 이제부터 더 잘해야 되는데, 이미 다 와버린 것처럼 사람들이 대하니까 부담스럽더라구요. 결국 그 역시 다 엎어버리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심령스릴러 은 여러모로 위험한 선택처럼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미술관 옆 동물원>을 통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그러면서도 긍정적인 신여성상을 보여주었던 심은하가 <텔미썸딩>의 독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듯, 전지현 역시 <엽기적인 그녀>가 주는 가벼움을 벗어던지기 위해 몸에 안 맞는 무거운 옷을 입으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처음에 리딩할 때 박신양씨가 그랬어요. 도대체 여기 모인 사람들은 무슨 용기를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가 궁금하다구요. 저는 속으로 글쎄, 이게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저 역시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나리오가 완성도가 있었고, 그게 좋아 일단 결정하고 난 이후에 저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나 이 솔직한 배우는 이 결코 자신 앞에 떡하니 차려진, 소화 잘될 음식들로만 구성된 밥상이 아니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중3 때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햇수로 7년짼데, 슬럼프에 빠진 적이 지금까지는 없었어요. 그런데 아마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때가 슬럼프로 기억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연이란 역할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정해진, 맞춰놓은 틀 안에서 해야 하니까 벗어날 수 없었죠. 왜냐하면 제가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거라면 이렇게 보여줘도, 저렇게 조금 다르게 보여줘도, 어차피 나니까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여지가 있지만, 저를 벗어난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죠.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악이 되었다기보다는 큰 공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젠 뭐라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붙고요.” 걱정을 접으시라. 그녀의 다음 작품이 곽재용 감독의 로맨틱코미디 <바람개비>(가제)로 결정되었다는 풍문이 들려오고 그는 또다시 ‘엽기적인 여경’이 되어 우리에게 총을 들이밀 것이다. 결국, 따라잡고 싶게 만드는 배우로서 전지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몸에 맞는 옷이었던 <엽기적인 그녀>의 성공 역시 한편에서는 ‘연기자의 공이라기보다는 캐릭터의 승리’라는 의견도 나온다. 웅얼거리거나 아예 씹어버리는 발성은 여전히 전지현에겐 숙제다. 그러나 “감독이 요구한 것에 대해 그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하나 더 보여준다”는 그의 연기방식은 아직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했지만 감독들이나 현장 스탭들에게는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차태현은 뒤에서 연습하고 연습 안 한 척하는 데 선수고 전지현은 생각 안 하는 척하면서 깊이 생각해오는 데 선수다”라는 곽재용 감독의 말에 전지현은 손사래를 친다. “<엽기적인 그녀> 찍을 때 저한테 가장 큰 자극제는 바로 차태현씨였어요. 시나리오 자체가 엽기적인 ‘그녀’이고 남자 시선에서 바라본 여자이니까 제 역할은 당연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태현씨는 저를 잘 받쳐주는 한편 자신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게 보였어요. 물론 저도 가만있을 순 없었구요.” 여전히 자기 나이에 걸맞은 천진함이 살아 있지만 동시에 7년차 배우로서 “나는 연예인이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배우”라는 자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전지현. “매니지먼트를 통해 발탁되었고 어린 나이에 데뷔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습게 보는 것이 싫어 응석부리고 싶어도 많이 참았다”는 이 ‘속깊은 친구’는 결코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현재를 망치지 않는다. “연기는… 어떻게 해야지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여전히 어렵고 난해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다르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처음보다는 조금 잘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앞으로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어갈 거라는 기대, 스며들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이 들어요. 아무래도 인생경험이 쌓이면 조금 더 깊은 연기가 나오겠죠?” 아기의 얼굴과 소녀의 팔다리, 그리고 여인의 목선을 가진 이 배우는 아이처럼 뛰고, 소년처럼 웃으며, 사내처럼 이단옆차기를 날린다. 그렇게 ‘오! 지현’을 외치던 추종자들의 줄은 더욱 길어지고, ‘질투는 나의 힘’을 외치던 경쟁자들의 전의는 이내 상실되어, 결국 따라잡고 싶게끔 만든다. 저 눈부신 스물셋의 아름다움을, 저 파닥거리는 생명력을, 아니 지금 모습 그대로의 전지현을 박제해버리고 싶은 충동, 만약 그것을 죄라고 부른다면 당신들과 나, 우리 모두 유죄다. 오종록의 X-파일 왜 ‘全’지현이 되었는가 하면… <첫사랑 사수 궐기 대회>로 충무로에 데뷔하는 오종록 감독과 전지현은 특별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다. 드라마 PD 출신인 오 감독은 중학교 2학년인 우연히 손에 잡힌 전지현의 사진을 1년간 파일에 꽂아두었다. “선이 나타나지 않는 도화지 같은 아기 얼굴”에 그 당시 벌써 168cm의 키를 가진 이 기이한 소녀의 모습이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정훈탁 이전에 전지현이란 배우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았던” 감독은 <내 마음을 뺏어봐> <해피투게더>를 통해 이 배우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생중계했다. “은혜를 갚아야 할 때가 됐는데…”라며 사람좋게 웃는, 오종록 감독이 털어놓는 전지현에 관한 사소하고 정감어린 X-파일. 지현이 이름 연출하는 동안, 내가 성명을 정리해준 배우는 딱 두명이다. 한재석과 전지현. 재석이는 그의 모친이 성명 철학관에서 받아온 두개의 예명 가운데 선택한 이름이고, 지현이는 그녀의 부친이 속상하지 않겠끔 내가 변성을 시켜준 경우이다. 알다시피 全씨와 田씨 玉씨 등등은 모두 다 王씨의 변성이다. 고려가 망하자 王씨들은 목숨도 건지고, 씨족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할 요량으로 王씨 위에 삿갓을 씌우고, 옆을 막고, 점을 찍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삿갓 쓴 폼이 멋있었다. 그렇게 ‘王’지현은 ‘全’지현이 되었다. 지현이 다리 나는 치마 교복 입은 여고생이 자전거 타는 장면을 좋아한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를 보면, 여고생들이 떼거리로 영도다리 위를 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원조격이 <내 마음을 뺏어봐>에서 지현이 인천 홍예문을 질주하는 장면이다. 한겨울에 내리막길을 달리던 지현이가 자전거와 함께 자빠지고 말았다. “괜찮냐?” “예, 괜찮아요!” 지현이의 깨진 무릎을 본 건 그날 오후 자유공원 촬영에서였다. 그 추운 겨울에 살점이 보일 만큼 다쳤으면 꽤나 시리고 아팠을 텐데 한마디 말도 안 하고 꾹 참고 있었던 거다. 순간 이 아이가 보통 독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물론 나 역시 호들갑 떨며 여배우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이! 누구 크림 없냐? 지현이 무릎에 크림 좀 발라줘라!…” 지현이 코 지현이 코는 중간 부분이 약간 볼록하다. 한때 지현인 이게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수리’하고 싶어했다. “지현아! 사람이 미소를 지을 때, 입 주위의 50개가량의 근육이 동시에 움직인다고 해. 얼굴에 칼을 대면, 외관상 예쁘게 보일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이 근육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잘려 나가! 그래서 성형미인의 웃음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그러니까 생긴 대로 살아!” 지금껏 전지현의 코는 중학교 때 전지현의 코 그대로다. 아마 그때 코를 고쳤더라면 그녀 역시 흔한 성형미인들과 비슷한 웃음을 짓고 있을는지 모른다. 지현이 심장 “감독님! 나 인기가요 DJ 먹었어요!” 기뻐서 펄펄 뛰는 그녀에게 난 길길이 화를 냈다. “당장 그만두고 와!” 모름지기 배우로서 오래 살고 싶다면 대중에게 자신의 노출빈도를 줄여야 한다. 물론 우리 역시 매스미디어의 대중이 되는 순간, 배우의 모든 걸 알고 싶어하지만 배우는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절대 노출해서 안 된다. 배우는 대부분 카메라 앞에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처절하게 외로워야 한다. 이걸 못 견디는 배우는 반드시 망한다, 고 했다. 물론 한참 자신을 내보이고 싶었을 땐데, 지현이는 결국 외로움을 택했던 것 같다. 결국 그녀는 또래의 여배우들보다 월등히 노출빈도를 줄이면서 활동했고, 그 녀석의 심장은 지금 누구보다 단단해진 것 같다. * 추신 이 자그마한 가십들이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노출하는 글이 안 되기를! 오종록/ <첫사랑 사수 궐기 대회> 감독

한국영화산업 X-ray 7 - 해외시장 경쟁력 확보 방안 [1]

국가별 DB 구축·지역화 서둘러라 한국영화산업 진단시리즈 7편- 해외시장 경쟁력 확보 방안 우리에게 ‘해외’는 더이상 국제영화제가 전부가 아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이던 해외라는 신천지는 이제 구체적인 ‘시장’의 얼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1999년부터 시작된 해외시장 개척의 역사는 불과 5년 만에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면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마케팅’을 화두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 영화계가 함께 논의할 만한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 편집자 01. 해외무대를 ‘시장’으로 인식하라 “감개무량하다.”(이건상 영화진흥위원회 해외진흥부장) 15년간 한국영화의 해외 업무를 담당해온 관료가 토해내는 이같은 감탄은 듣는 이에게도 자못 감흥을 준다. 국제 무대의 한구석에서 쭈뼛거려온 한국 영화인들이 불과 몇년 사이에 무대의 중심에 진입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당연한 소회일 것이다. 우리에게 ‘해외’라고 하면 평론의 시선으로 영화제를 소개하는 것 정도가 익숙한 방식이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국제 활동의 본령은 제작, 판매, 영화제가 삼각축을 이룬다. 한국의 경험은 영화제 -> 판매 -> 제작 순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단계에서는 해외가 ‘시장’이라는 성격으로 급속하게 재규정 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미주, 혹은 이들 대륙 안에 올망졸망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여러 나라들이 추상적이고 막연한 한 덩어리의 해외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상이한 얼굴을 가진 시장들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우선 종사자들의 공로인데 그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국제적인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들은 1999년 이후 한국의 판매회사들이 얼마나 빠르게, 성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지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이제 협상력도 강해졌다. 최근 2∼3년간 국제적인 판매무대가 어려움을 겪었으나 한국은 성장세인 소수의 나라”(달시 파켓, 영국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한국 통신원)라는 평을 듣는다. 일방적인 영화 수입 국가이던 한국은 1999년을 기점으로 수출쪽이 급성장하여 2000년에 700만달러, 2001년에 1천만달러, 2002년에 1500만달러에 도달했다. 국내 박스오피스가 10∼20%씩 늘어나고 있다며 놀라는 마당에 해외 판매는 평균 30% 이상, 때로는 100%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분야의 1세대인 한 관계자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영화의 수출액이 우리나라의 김치 수출액과 비슷하다. ‘도대체 배추를 몇 포기나 내다 팔기에’ 하는 감탄이 나온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난 시간은 1단계도 아닌 척박하고 초기적인 개척기였을 뿐”(문혜주 시네마서비스 이사)라고 토로한다. 02. 국제영화제에 대한 시각과 접근법을 보완하라 시장이라는 프리즘으로 국제무대를 바라보면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인다. 예컨대 국제영화제는 마케팅의 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명예를 동반하는 형식을 거쳐 시장에 얼굴을 내밀고 좀더 높은 가격을 도모하는 검증 절차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영화제를 대하는 기존의 시각이나 접근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높다. 우선 영화제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바이어들이 영화제에 대해서 실용적인 차원으로 접근하는 데 비해 한국은 경제적, 인적 노력을 과도하게 기울이는 편이다. 영화진흥위원회를 예로 들자면 해외진흥 사업 가운데 영화제 참가 지원, 마켓 부스 지원, 한국영화주간 지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관련 실무는 몇 년간의 노력과 조율을 통해 매끄러워졌고 영진위가 해외 영화제에서 매번 주최하는 파티는 음식 맛있고 재미있기로 소문나서 외국인들이 좋아한다. 그런데 “영진위가 잘하는 일이 파티뿐”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민간회사쪽에서도 “아예 현금으로 달라”는 식의 요구가 아니라 국가기구와 민간의 공조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있는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시아 비예술영화’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영화들은 영화제와 무관하게 제 갈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해둠직하다. 향후 중요한 이슈가 될 만한 것은 한국영화를 외국에 소개하는 안목문제다. 한국 제작사나 배급사가 내보내는 자료들은 대부분 국내용 홍보 자료이거나 자긍심 고취용일 뿐, 해외영화제나 마켓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힘을 발휘하는 세련된 접근법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국내외의 중론이다. “영어 제목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끄는 데에 첫 번째 요소임에도 그저 그렇거나 좋지 않은 제목을 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홍보 자료 또한 비전문적이다. 국내 보도자료를 단순히 영어로 번역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나라마다 서로 다른 양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달시 파켓) 경륜있는 외국 딜러들이 비평가 수준의 감식안과 시장이해력을 보여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엽기적인 그녀> 아시아 흥행 기록 국가 박스오피스 P & A 비용 개봉일 싱가포르 대만 타이 홍콩 일본 27만달러 21만달러 30만달러 250만달러 400만달러 7만5천달러 23만달러 15만달러 45만 달러 120만달러 2002. 4. 11 2002. 6. 22 2002. 5. 14 2002. 2. 21 2003. 2. 이 부분은 전문 필자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볼 만하다. 영화제나 마켓에 내보내는 자료들은 현장 비즈니스 종사자 아니면 외국인 인턴의 손으로 작성된다. 외국영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는 두루 익숙한 반면 자국영화를 외국에 소개하는 것에 대한 경험이나 문제의식은 빈약하다. 수입 일변도이던 시대를 반영하는 것일 터이다. 변화된 시대는 영화에 대한 식견과 현장 실무에 대한 이해를 겸비한 전문 인력을 요청하고 있다. 단지 “시놉시스 하나라도 제대로 쓰는” 차원을 넘어서서, 감독과 작품에 대한 이해를 외국영화제 프로그래머나 판매상의 눈과 논리에 내맡기지 않고 능동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해줄 때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국내외에서 이색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김기덕 감독과 LJ필름의 예다. <수취인불명>(2001)부터 시작된 공동작업에 앞서 제작사는 <김기덕: 악어에서 수취인불명까지>라는 자료집을 자체 제작해서 2년에 걸쳐 2천부를 체계적으로 살포했다. 국내 필자와 외국인 영화전문가의 꼼꼼한 공동작업을 거친 이 자료집은 외국인 전문가들로부터 ‘김기덕을 이해하는 바이블’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화제가 되었다. 이후 김기덕 감독은 해외에서 열린 회고전과 영화제 초청 통계를 영화진흥위원회가 따로 집계할 정도로 국제무대에서 선명하게 부각되었고 유럽 회사와 공동 제작·배급하는 단계까지 무난히 진입했다. 영화제와 관련하여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접근통로 문제다. 해외 업무 경험이 일천하던 시절에 한국영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외국 인사들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으나, 지금 현역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은 그와 같은 관계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일부 외국인이 안하무인격으로 행세하고 있고 한국쪽에서 제어하기는커녕 도리어 조장하고 키워주는 바람에 업무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원성이 높다. ‘유력한 인사의 추천과 커넥션’을 신봉하는 한국적 관행이 국제사회 일각에서 하나의 추문으로 떠돌고 있다. 제작단계의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도 해외 업무 담당자들의 주문 사항이다. 영화제와 배급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아직 우리가 본격적으로 공론화해본 적이 없지만 미묘하고도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유럽에서는 아시아영화를 기본적으로 아트영화로 분류하며 아트영화 시장 외에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국내외 경험자들로부터 “외국에서의 평판을 재생산의 동력으로 삼는 부류의 영화들이 해외 아트영화 시장을 주도하는 소수의 입맛에 종속되어가는 경향이 흔히 발견된다”는 고언이 나오고 있다. 외국 아트 관객을 염두에 두고 영화제를 지향하는 것은 감독 자신에게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03. 현지 시장 특성을 분석하라 한국영화가 상품으로서 딜 메모(deal memo)를 쓰는 새로운 접근법을 갖게 된 것은 1998년 미로비전이 등장하면서 본격화했다. 1999년은 한국 영화산업의 기념비적인 영화 <쉬리>가 탄생한 해로, 이때부터 수출액이 급증했고 해외 판매를 겨냥하는 시스템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몇년간 지속되고 있는 한국영화 붐과 함께 시장이 개척되고 다원화되었으며, 제작비가 급상승한 것도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다만 2001년까지는 영화제나 마켓에 작은 매점(booth)을 차리고 손님을 기다리는 절차를 배우고 소화하느라 바빴다고 할 수 있다. 2002년부터 마켓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고 거래가격 면에서 안정되었으며, 올해는 완성되지 않은 영화를 가지고 사전 판매를 성사시키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기획 중인 아이템을 입도선매하거나 리메이크 판권을 구매하려는 외국 업자들도 나타났다. 이 부분은 전세계에 걸쳐 조직적으로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할리우드의 아이템 사냥 습관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과대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어쨌든 계약이 성사되고 있다는 사실은 기록할 만하다. 그런데 지금 판매회사들 사이에 “좋던 시대가 가고 있다”는 뜻밖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몇편의 영화를 비싼 값에 팔았다며 자화자찬하는 동안, 무리한 수입가를 회수해야 하는 외국 배급사들이 자국 내에서 마케팅 비용을 과도하게 투자하고 흥행에 실패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도 지난해에 국내의 블록버스터 재앙과 흡사한 한국영화의 재앙이 있었다고 칭해진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친구>와 <조폭 마누라>의 후유증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부터 한국 판매 회사들은 바이어를 도망가게 만드는 장사는 결코 잘했다고 할 수 없으며 중장기적 안목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교훈을 공유하게 되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부산영화제 특별전] 에스키모와 사막의 영화들을 보러가자

10월2일부터 10일까지 개최되는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특별전 프로그램이 확정됐다. 올해 특별 상영 프로그램은 ‘뉴 이란 시네마의 누이, 파로허저드를 기억하며’, ‘무지개를 기다리며: 아프가니스탄과 영화’, ‘중국 독립영화 특별전’, ‘캐나다 특별전’, ‘한국영화 회고전 - 정창화, 한국 액션영화의 시작’ 등 5개로 예년에 비해 다양해졌다. 부산영화제의 위상과 넓어진 품을 반영하는 듯 더욱 강화된 올해의 특별전 프로그램을 미리 만나보자. 뉴 이란 시네마의 누이, 파로허저드를 기억하며 포루흐 파로허저드는 1967년 요절한 여류 시인이자 영화감독으로 이란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남성중심 사회인 이란에서 여성 중심적 담론을 펼친 그녀는 뉴 이란 시네마 작가들에게 절대적이라 할 만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그녀 시의 제목일 정도다. 이번 행사에서는 이란 최고의 다큐멘터리로 일컬어지는 파로허저드의 작품 <검은 집>과 그녀의 생애를 그린 나세르 사파리안 감독의 <거울과 영혼>을 상영할 예정이다. 또 파로허저드의 시가 전혀 소개되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 부산영화제는 그녀의 시집을 발간할 계획이며, 이벤트 차원에서 시 낭송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무지개를 기다리며: 아프가니스탄과 영화 아프가니스탄의 이미지는 가난과 전쟁, 그리고 테러다. 이 프로그램은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재건을 위해 버거운 움직임을 펼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영화를 통해 조명하기 위한 것이다. ‘탈레반 정권 수립 이후 최초의 아프가니스탄영화’라는 사디그 바르막 감독의 <오사마>가 올해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에서 특별 언급되면서 한층 높아진 아프가니스탄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은 장편 7편과 단편 5편으로, <오사마>를 비롯해 닐루파 파지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칸다하르로의 귀환>,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오후 5시>, 마이클 윈터보텀의 <인 디스 월드> 등 아프가니스탄 감독의 작품 또는 아프가니스탄을 소재로 다룬 다른 국가의 영화들이다. 한편 사디그 바르막과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참여하는 오픈토크도 열릴 예정이다. 중국 독립영화 특별전 5세대를 넘어서면서 등장한 중국의 독립영화 감독들의 작품에 집중적인 조명을 비추는 행사다. ‘오늘의 중국’ 또는 ‘자본주의 중국’에 초점을 맞춰 이전 세대와 상이한 영화미학을 구축하는 이들의 치열한 움직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이른바 6세대의 시발점으로 평가되는 장위안의 <마마>(1990)부터 왕빙 감독의 최신작 <티에시구(3)>(2003)까지 14편이 소개된다. 지아장커의 <소무>, 왕차오의 <안양의 고아>, 장밍의 <무산의 비구름> 등 이름난 작품 외에 로우예의 <주말연인>, 우웬광의 <농부와 함께 춤을>, 왕샤오솨이의 <극도한랭> 등이 소개된다. ‘지하전영’(地下電影)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 정부의 심한 통제를 받는 이들 6세대 작품들을 들여올 수 있는 데는 지아장커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 특별전 한국-캐나다 수교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캐나다영화를 대표하는 작품 12편이 상영된다. 가장 눈길이 가는 작품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과 시나리오상을 받은 드니 아르캉 감독의 <야만족의 침략>이다. 칸의 일반 관객으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는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작품은 자하리아스 크눅의 <패스트 러너>다. 흔히 에스키모라 불리는 알래스카 이누크족의 신비로운 삶을 그려 2001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완벽히 새로운 영화문법의 창조’라는 찬사를 얻었던 작품이다. 아톰 에고이얀의 걸작으로 꼽히는 <패밀리 뷰잉> <어저스터>도 관심을 끈다. 행사 기간에는 캐나다의 감독, 배우, 제작자 등이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한국영화 회고전 - 정창화, 한국 액션영화의 시작 1950년대부터 다양한 장르실험을 통해 나름의 성과를 보였으며, 60년대 말 홍콩으로 진출해 자신만의 액션영화 세계를 이끌었던 정창화 감독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정 감독은 60년대 초부터 독특한 스타일의 액션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68년에는 홍콩 쇼 브러더스와 전속 계약을 맺게 된다. 그는 홍콩 진출 이후, 유럽에 수출된 첫 홍콩영화 <천면마녀>, 미국에 수출된 최초의 홍콩영화 <죽음의 다섯 손가락> 등 16편을 만들며 신화에 가까운 업적을 이뤘다. 이번에 상영되는 작품은 60년대 한국서 만든 대표작들과 홍콩서 찍은 2편의 영화다. 금광을 배경으로 한 산악액션영화 <노다지>, 장희빈과 장희재의 이야기를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해석한 <황혼의 검객>, 신성일과 트위스트 김, 문희가 등장하는 청춘 액션영화 <위험한 청춘>, 홍콩 시절 대표작 <죽음의 다섯 손가락> 등이다.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첫 조연급 백인

"너 죽을래? 낫(Not) 반말, 아름다운 밤이에요." 장혁, 이나영 주연의 영화 <영어 완전 정복>(감독 김성수, 제작 나비픽쳐스)에는 파란 눈의 서양인이 비중있는 역으로 출연한다. 호주 출신 연기자 안젤라 켈리(27.여.Angela Kelly)가 그 주인공. 그동안 장쯔이(무사), 장백지(파이란) 혹은 나카무라 도오루(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 중국이나 일본 출신 동양배우가 한국 영화에 출연한 적은 있었지만 노란 머리의 백인이 조연급으로 출연하기는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영어 완전정복>은 부족한 영어실력을 향상시키려는 두 남녀, 문수(장혁)와 영주(이나영)의 사랑이야기. 안젤라 켈리가 맡은 캐시는 극중 '바람둥이' 문수의 작업 대상이 되는 미모의 영어 강사로 문수를 좋아하는 영주로부터 시샘을 받는다. '낫 반말'식의 콩글리쉬부터 '아름다운 밤이에요' 같은 꽤나 긴 어려운 문장까지 그동안 익힌 한국 말을 '자랑'하는 안젤라 켈리를 6월 29일 밤 영화 촬영이 진행중인 경북 예산에서 만났다. 시골의 전통 한옥에 마련된 촬영장에서 그는 두 주연배우 못지 않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쭉쭉 뻗은 몸매나 예쁜 외모 못지 않게 스태프들을 사로잡은 것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라는 사실. 'Hello'나 'STAR', 'Mosquito(모기)'식의 간단한 영어 단어부터 말은 한국말이면서 액션만 영어식인 '바디 잉글리시'까지 현장의 스태프들은 자신들의 영어가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흐뭇해 하고 있었다. "대부분 스태프들이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은 것은 사실이거든요. 하지만 신기한 것은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던 분들도 몇주 같이 지내다 보니 같이 농담을 주고 받게 되더란 것이죠." 그가 한국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은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이 영화의 오디션에 응하면서다. <무사>의 후반작업을 호주에서 진행하며 시드니와 인연을 맺은 김성수 감독은 연기력을 갖춘 외국인 배우를 찾기 위해 현지에서 오디션을 열었고 춤이나 노래, 연기 등 모든 면에서 장점을 갖고 있던 켈리를 캐스팅했다. 일주일 가까이 진행중인 시골 촬영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자 "전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저도 시골 출신이거든요. 산이나 벌레나 모두 익숙하죠. 화장실이요? 호주에도 비슷한 화장실 있어요. 땅 위에 구멍있는 게 '기본적으로는' 비슷하게 생겼죠." 그가 평가하는 두 주연 배우들의 영어실력은? 결과는 이나영의 판정승. 그는 "같이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발음도 좋고 어휘도 많이 안다"며 이나영의 영어 실력을 칭찬했다. 한편, 장혁에 대해서는 "매우 섹시하다(So sexy)"는 답이 과장된 '액션'과 함께 돌아왔다. "처음에는 그저 잘 생긴 남자(Nice Looking boy) 정도로 봤는데 같이 지내보니 너무나도 매력적인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젠틀하고 스마트하고, 열정도 넘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섹시하고…." 뮤지컬 '애니', '레미제라블'과 'TV드라마 '오스트레일리안 엣 워', '밤발루' 등에 출연하 바 있는 그는 현지에서는 꽤 알려진 주연급 여배우. 하지만 장편 영화로는 <영어 완전 정복>이 처음이다. 이유는 호주 영화산업이 한국처럼 활발하지 않기 때문. "호주가 한국보다 인구는 3배 정도 많지만 영화 제작이 한국처럼 활발하지는 않아요. 미국 영화가 돈도 더 많이 투자했고 경쟁력도 더 좋으니 상대적으로 호주영화의 설 자리가 없는 편이죠." 한국은 물론 아시아 방문도 처음이라는 그는 11주째라는 한국 생활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간장 공장 공장장은 장 공장장이다" 정도는 거뜬히 해내며 '한국어 완전 정복'에도 재미를 보고 있고 스태프들이나 배우들과도 잔뜩 정이 들어 있었다. "시사회 무렵 다시 한국에 올 생각입니다. 계속 한국말 공부도 하고 싶고요. 다른 한국 영화요? 기회가 되면 당연히 출연해야죠." 안젤라 켈리는 12일 호주로 돌아갈 예정이다. (예천=연합뉴스)

[인터뷰] <영어완전정복>의 장혁

귀엽고 달콤한 바람둥이가 진짜 바람둥이죠 "바람기요? 바람이 뭐예요?" '명랑소녀 성공기', '대망'의 장혁이 <영어 완전정복>에서 바람둥이 '문수'로 출연한다. <영어 완전정복>(제작 나비픽쳐스)은 부족한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려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비트>, <무사>의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네 멋대로 해라'의 이나영이 장혁의 상대역 '영주'로 출연한다. 해외로 입양간 동생과 만나기 위해 영어 공부를 시작한 문수의 직업은 백화점 숙녀화 매장 직원. 여성의 각선미를 감상할 수 있는 직업 덕분인지 문수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 바람둥이다. 6월 29일 밤 경북 예천의 촬영장에서 만난 그는 "바람둥이의 '바람'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며 말문을 열었다. 그가 소개하는 바람둥이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징그럽지 않을 것'."징그러우면 누가 좋아해요. 귀엽고 달콤한 바람둥이가 진짜 바람둥이죠. 바람기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잖아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정감이 있는 바람둥이로 표현해 내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배역에 대해 "다른 영화의 아웃사이더들이 쓰라린 소주 한 잔으로 고독을 즐기는 식이라면 문수는 많은 사람들과 떠들면서 마음 한 켠에서는 고독을 느끼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문수는 겉으로는 활발한 바람둥이지만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 속의 벽을 쌓아요. 결국 나중에는 허물어지지만 처음 영주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죠." 자신의 경험으로나 영화의 줄거리로나 <영어 완전정복>의 비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막상 (영어로) 말해보면 되는데 벽이 생겨서 표현할 용기를 갖지 못했지만 영화에 출연하는 외국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영어로 얘기하기가 편해졌다"며 "마음 속의 벽을 허무는 것이 사랑이나 영어나 정복하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했다. '나이스 투 미트 유(Nice to meet you)' 정도는 가볍게 튀어나오는 수준으로 영어 실력이 향상됐다는 것이 그의 귀띔. 장혁이 김성수 감독과 같이 작업을 하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김 감독은 2000년 장혁의 프로젝트 음반 'TJ프로젝트'의 수록곡 중 '헤이 걸'과 '일월지애'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김 감독님의 종전 영화들이 액션이 많이 들어가는 영화잖아요. 처음 영화 제목과 김성수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만 보고 호주나 미국에서 영어를 공부하려는 갱스터들의 이야기 정도인 줄 알았어요. 시나리오도 재미있었지만 같이 일하면 (감독과의) 사적인 재미가 많을 것 같아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가수 활동 계획에 대해 "가수라는 느낌은 아직 없다"며 고개를 젓는 그가 앞으로 연기해 보고 싶은 역은 뜻밖에 '밝은 표정의 뇌성마비 장애인' 같은 역할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해도 밝게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제 이미지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지만 이런 모습들도 먹혀들 수 있도록 관객들에게 신뢰가 얻어진 후라면 이런 모습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약 80% 정도 촬영이 진행중인 <영어 완전정복>은 10월 초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