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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국내뉴스] <지슬> <1999, 면회>를 아직 못 봤다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펀드(Asian Cinema Fund)가 서울에서 기획전 ‘ACF 쇼케이스 2013’을 연다. <지슬> <1999, 면회> <마이 라띠마> <텔레비전> <정원사>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에서> 등 극영화 6편과 <기억의 잔상>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 등 다큐멘터리 2편 등 한국과 아시아의 독립영화 총 8편이 상영된다. 부산국제영화제 홍효숙 프로그래머는 “극영화 6편은 ACF 펀드 장편독립영화 후반작업지원 선정작이고, 다큐멘터리 두편은 레바논(<기억의 잔상>)과 팔레스타인(<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 같은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아시아 국가의 다큐멘터리”라고 상영작을 소개했다. 그는 “특히 오멸 감독의 <지슬>과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는 곧 열리는 선댄스국제영화제와 로테르담국제영화의 초청작이기도 해서 지난해 챙겨보지 못한 관객에게는 이번 상영전이 두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덧붙였다. 상영이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 행사도 마련되어 있다. <텔레비전>의 모스타파 사르와르 파루키 감독과 <기억의 잔상>의 타마라 스테파니안 감독은 상영전 기간에 맞춰 내한한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정원사> 상영이 끝난 뒤 화상 통화로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할 계획이다. <지슬>의 오멸, <1999, 면회>의 김태곤, <마이 라띠마>의 유지태 등 세명의 한국영화 감독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할 예정이다. 홍효숙 프로그래머는 “모든 작품이 꼭 챙겨봐야 할 수작”이라며 “특히 <기억의 잔상>은 지난해 부산영화제 아시아 다큐멘터리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1999, 면회>는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인 남자배우상을 수상할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가 좋은 작품”이라고 추천했다. ACF 쇼케이스 2013은 1월10일부터 13일까지 인디플러스에서 열린다.

인생의 바닥에 내려갔다고 느낄 때 <프레셔스>

영화는 “모든 것은 우주로부터의 선물이다”라는 말로 시작되지만, 우주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소녀가 등장한다. 1987년, 할렘에 사는 16살 소녀 프레셔스는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고 여기지 않는다. 여느 아이들처럼 스타가 되어 멋진 모습으로 잡지에 나오는 상상을 하고 밝은 피부색을 가진 남자친구를 원하지만 현실의 그녀는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뚱뚱한 외톨이다. 제대로 읽고, 쓸 줄도 모르기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놀림감이다. 유일하게 프레셔스의 수학적 재능을 알아봐주는 수학선생님은 그녀의 짝사랑이다. 공상 속에서 수학선생님과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잠시 꿈꿔보기도 하나, 프레셔스가 처한 상황은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지경이다. 프레셔스는 엄마의 애인에게 성폭행당해 이미 한 아이를 출산했고, 지금은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 엄마는 아무 일도 안 하고 딸과 손녀에게 지급되는 정부보조금으로 생활하면서 딸에게 온갖 집안일을 시키는 것은 물론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다. 프레셔스가 처한 환경은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조심스러울 만큼 처참하다. 먹고, 텔레비전 보고, 먹고, 텔레비전 보는 것이 생활의 전부인 엄마는 딸에게 억지로 음식을 먹이고 뚱뚱하다고 욕설을 퍼붓는다. 엄마는 프레셔스가 부엌 바닥에서 첫아이를 낳을 때 돕기는커녕 발길질을 하였지만 그 덕에 생활보조금을 타서 생활한다. 엄마에게 딸은 내 남자를 유혹한 사악한 계집애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필요도 없는 학교를 때려치우고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끝없이 잔소리를 퍼붓는다. 독립할 만한 여건이 못되어 할 수 없이 모욕을 견디며 사는 프레셔스에게 교장선생님이 뜻밖의 제안을 하고 이것은 그녀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인생의 바닥에 내려갔다고 느낄 때, 주저앉는 사람도 있지만 마지막 주어진 기회를 간절하게 붙드는 사람도 있다. 프레셔스는 교장선생님이 추천해준 대안학교 ‘이치 원 티치 원’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후의 희망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용기를 내어 찾아간다. 그러나 선뜻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앉아 망설이는 그녀를 발견한 선생님은 “20초 뒤에 교실 문을 닫을 거야”라는 한마디를 건넨다. 다른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로 구성된 교실은 언뜻 보기에도 제멋대로다. 옷차림부터 말투까지 문제아들의 집합소라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자신의 이름을 블루 레인이라 소개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어디 출신이고, 무슨 색을 좋아하고, 자신은 무얼 잘하는지 소개하는 것부터 수업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프레셔스가 자신은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다고 대답하자, 선생님은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으니 잘 생각해보라고 권유한다. 알파벳도 잘 모르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선생님의 방식은 독특했다. 바로 일기쓰기다. 철자가 틀려도 좋고 무엇을 써도 좋으니 매일 쓰는 것만은 지키라는 지시다. 일기쓰기는 “회전문”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며, 누구는 안으로 들어가고 누구는 다시 돌아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프레셔스>는 어찌 보면 정말 어두운 영화다. 불과 16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소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내 책상 위의 천사>(감독 제인 캠피온, 1990)처럼 못 생기고 뚱뚱한 소녀가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 멋진 작가가 되는 결말 같은 것도 없다. 혹독한 현실을 날것으로 봐야 하는 고통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란 지속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는 걸 느끼게 한다. 더불어 ‘글쓰기’는 그것이 낙서든 일기든 소설이든 인간을 성찰하게 하고 한 걸음 나아갈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는 중요한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쓰기는 ‘프레셔스’한 존재가 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죽일 만큼 사랑해

인생이라는 사건의 가장 확실한 팩트는 생로병사다. 그것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것이 없다. 태어나기는 했지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여전히 모른다. 하물며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물론 읽고 들어 알고 있는 것들은 있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앎은 우리가 실감 혹은 절감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단테의 <신곡-지옥편>을 읽고 지옥을 알겠노라 말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래서 나는 모른다. 말년에 후두암에 걸려서 입에서 끔찍한 냄새가 나자 사랑하던 개조차도 더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않게 되었을 때 프로이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모르고,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아이리스 머독이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텔레토비가 나오는 프로그램에 넋을 놓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 존 베일리의 기분은 또 어땠을지를 모른다. 미하엘 하네케가 만든 이 영화 <아무르>(Amour, 2012)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안느(에마뉘엘 리바)와 그녀를 돌보며 고통스러워하는 조르주(장 루이 트랭티냥)를 지켜보는 일은 참혹했다. 나는 울었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죽어가는 자의 고독 방이라는 관 속에 죽어 누워 있는 안느의 모습을 보여준 뒤에 화면은 과거의 연주회장으로 이동한다. 프레임의 가운데 왼쪽쯤에 노부부가 앉아 있다. 연주가 시작되어도 카메라는 객석을 비추고만 있다. 조르주와 안느는 각기 그들 삶의 연주자였겠지만, 신이 죽음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그저 수많은 관객 중 한 사람이 될 뿐이다. 그들이 연주회장에 있는 동안 집에 도둑이 들었다. 조만간 죽음도 도둑처럼 찾아올 것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부부지만 이 죽음의 전조(前兆) 앞에서 두 사람의 반응은 다르다. 조르주는 범상하게 넘긴다. “도둑들은 그냥 아무 집이나 터는 거니까.” 안느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우리가 자고 있을 때 도둑이 들면 어쩌지? 생각만 해도 무서워.” 그래서 안느는 그날 밤 잠들지 못한다. 잠들면 뜯긴 문으로 다른 도둑이 들어올 테니까. 도입부의 이 에피소드는 두 가지를 넌지시 말한다. 죽음은 조르주가 아니라 안느에게 올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 영화에서 죽음은 ‘문’이라는 메타포를 통과할 것이어서, 문을 따고 들어온 도둑처럼 곧 열린 창문으로 비둘기도 한 마리 날아들 것이라는 것. 다음날 아침, 도둑이 뜯어놓은 문을 수리하기 위해 조르주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난 뒤에, 이 사람들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자신하자마자,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때, 안느의 예감은 실현되기 시작한다. 잠시 정신을 놓았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지만 방금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도둑이 뜯어놓은 문을 수리하기 전에 이미 죽음은 노부부의 집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최초의 암시 혹은 경고다. 랄프 왈도 에머슨에 따르면 이 암시와 경고는 한층 더 모욕적인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자연은 실로 모욕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암시하고 경고한다.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이빨을 뽑아놓고, 머리카락을 뭉텅뭉텅 뜯어놓고, 시력을 훔치고, 얼굴을 추악한 가면으로 바꿔놓고, 요컨대 온갖 모멸을 다 가한다. 게다가 좋은 용모를 유지하고자 하는 열망을 없애주지도 않고, 우리 주변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로운 형상들을 빚어냄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한층 격화시킨다.”(데이비드 실즈,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서 재인용) 안느에게 찾아온 죽음은 경동맥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성공률이 95%인 수술이었지만 그녀는 나머지 5% 안에 들었다. 수술 실패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는 상태이지만 안느는 장기 입원치료를 거부하고 귀가한다. 그리고 다시는 입원 따위는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한다. 85살에 출간한 <죽어가는 자의 고독>(1982)에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적었다. 서구사회가 문명화되면서 죽음이라는 불편한 사건은 격리되기 시작했다고, 그 격리의 공간인 병원에서는 “사람 자체에 대한 배려는 뒷전으로 밀리고 장기에 대한 배려가 우선시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고, 그런데 죽어가는 자에게 정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육체적 통증이 아니라 정서적 고립이라고. 안느는 그녀의 삶을 아직은 자신이 통제하길 원했고, 조르주는 다른 모든 이들의 회의와 반대를 예상하면서도 안느의 결정에 동의한다. 이제 그들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지만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는 그들도 모른다. 일단은 최선을 다해서 변화에 적응해보겠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안느가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때의 얘기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안느는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안느는 여전히 자기 자신이다. 그녀가 여전히 자기 자신인 한에서 그녀는 자신의 절망을 스스로 이겨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안느에게 진정으로 상황이 악화된다는 것은 그녀의 육체가 점점 파괴되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더이상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제자의 방문이 그랬다.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되어서 그녀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스승으로서 제자를 맞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느를 방문한 이후 보낸 엽서에서 제자는 스승의 모습이 착잡하다는 심경을 피력하고, 이에 안느는 외려 상처를 입고 제자가 보낸 CD를 꺼버린다. 제자에게 그녀는 이제 스승이라기보다는 환자일 뿐이다. 딸과 사위의 방문도 부담스럽다. 그들의 걱정과 염려는 안느가 이제는 예전의 안느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일이 될 뿐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안느가 말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말을 잃으면서 그녀는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마지막 버팀목을 잃는다. 그런 의미에서 안느가 사진첩을 보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언어능력에 고장이 난 이후 그녀는 거의 “엄마”(mere)와 “아파”(mal)라는 두개의 외마디 단어밖에 내뱉지 못한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으로 완성된 문장을 말하는 때가 바로 그 장면이다. 어렸을 때의 사진을 한장씩 넘겨보며 그녀는 말한다. “아름다워.” “뭐가?” “인생이.” “(…)” “참 긴 것 같아.” “(…)” “인생은 참 길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는 안느의 의중을 조르주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기는 관객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아름답다’와 ‘인생은 참 길다’라는, 언뜻 보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문장들을 안느는 동일한 표정과 어조로 말했다. 두 명제 사이에 안느는 어떤 접속사도 집어넣지 않았다. 이 마지막 말들은 무슨 암호처럼 조르주에게 건네진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후반부를 조르주가 떠맡는다. 그가 해야만하고 또 할 수밖에 없는 일은 안느의 마지막 두 명제에 기대어서 그녀의 비명(“엄마”와 “아파”)의 의미를 번역해내는 일이다. 자신이 번역한 대로, 그는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이다. 사랑하는 자의 결단 조르주를 위한 첫 번째 장면. 조르주는 안느에게 화를 낸 적이 없다. 그러다가 안느가 잡지에 있는 별자리 운세 따위를 소리내어 읽을 때 그는 화를 참는 데 처음으로 실패한다. 조르주가 장례식에 다녀온 날 안느가 이미 했던 얘기를 자꾸 반복할 때 그는 두번째로 실패한다. 그리고 제자가 다녀간 이후 안느가 스스로 몸을 움직이려다 침대에서 굴러떨어졌을 때 조르주는 세 번째로 실패한다. 이쯤 되면 이제 조르주를 두렵게 하는 것은 안느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도 할 것이다. 다가올 고난의 시간 속에서, 안느의 변화는 예상할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의 변화는 예상할 수 없어서 두려울 것이다. 그 두려움이 그로 하여금 악몽을 꾸게 했다. 그 꿈 역시 이 영화의 핵심 메타포인 문에서 출발한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 밖으로 나가보지만 아무도 없고 복도에는 물이 차 있으며 누군가가 조르주의 목을 조른다. 이 꿈속에서 그들 부부의 집은 땅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햇볕이 잘 드는 지상이 아니라 불길한 물이 고이는 지하 같다. 이 집은 이미 땅속에 묻혀 있는 관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집은 곧 안느의 관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장면. 조르주가 고용한 두 번째 간호사가 안느의 머리를 거칠게 빗기고 그녀에게 거울을 들이미는 장면과 조르주가 그녀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장면 사이에는 의미심장한 장면이 끼워져 있다. 열린 창으로 비둘기가 들어오고 조르주가 신속히 그것을 쫓아보내는 장면 말이다. 기독교 상징체계에서 비둘기가 성령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장면에서 그것은 그냥 죽음처럼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의 은유체계에서 죽음은 ‘문’으로 들어온다는 맥락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므로 이 비둘기는 빨리 내쫓겨야 했다. 그런데 비둘기는 왜 하필 이 순간에 나타났나. 이 장면에서 감독은 누군가가 부주의하게 열어놓은 창문으로 비둘기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후반부에서 비둘기가 다시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그것이 어디로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비교해볼 만하다.) 그 창문은 아마도 감독이 이 비둘기 장면 전후에 나오도록 편집해놓은 그 간호사가 열어놓았을 것이다. 그녀의 거친 태도가 안느의 죽음을 앞당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잘못 들어온 비둘기처럼, 내쫓겨야 했다. 세 번째 장면. 조르주가 딸 에바(이자벨 위페르)와 독대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에바가 방문하자 조르주는 안느가 누워 있는 침실의 문을 잠근다. 딸이 항의하자 아버지도 저항한다. 여기서 조르주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말을 한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이 부부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일 딸조차도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하게 된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장 아메리는 <자유 죽음>(1976)에서 이렇게 적었다. “너무도 완벽하게 유일해서 다른 것과는 헷갈리려야 헷갈릴 수 없는 자기만의 상황, 이른바 ‘인생 상황’(situation ve′cue)이라는 것은 무어라 말해도 절대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다. 바로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거나, 끊으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누구도 들춰볼 수 없는 장막이 가려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조르주와 안느의 ‘인생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들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딸에게 사과한다. 밖에서 문을 잠그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것은 마치 아내의 방을 관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이. 네 번째 장면. 모두가 불안해하며 예상했던 바로 그 장면이다. 조르주는 면도를 하다가 또 안느의 비명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그는 안느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십대 때의 어느 날 그는 어머니의 강요로 청소년 캠프에 갔었다. 하기 싫은 일과 먹기싫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그곳에서 그는 극심한 고독과 고통을 느껴야 했다. 그 와중에 디프테리아에 걸리기도 했다. 그는 격리되어야 했고, 어머니에게 고독과 고통을 호소하는 엽서를 보내야했다. 이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조르주는 바로 그 일을 결행한다. 이 장면은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조르주의 이야기와 관련해서는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의 조르주이지만, 지금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침대에 누워 있는 안느다. “엄마”와 “아파”를 번갈아 외치는 안느에게서 조르주는 고통 속에서 엄마를 간절히 그리워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는 마침내 안느의 비명을 번역하는 데 성공한다. 이것은 끔찍한 결론이지만 이 번역이 틀렸다고 단호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섯 번째 장면. 안느가 죽고 난 뒤 다시 비둘기가 날아든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이번에는 이 새가 어디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불을 켜야 할 정도로 컴컴했으니 모든 문이 다 닫혀 있었을 것이다. 안느가 죽었으니 이번에는 그 비둘기가 제때 제대로 들어온 것이다. 필연적인 방문이므로 그것은 닫힌 문으로도 들어올 수 있었다. 조르주의 반응도 다르다. 앞에서는 불결하고 불길한 것을 몰아내듯이 내쫓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담요로 덮어서 끌어안는다. 이것은 포획이 아니라 포옹이다. (잡고 나서 다시 풀어줬으니 잡는 게 목적이 아니라 안아보는 게 목적이었으리라.) 이 장면은 조르주가 조금 전에 안느에게 했던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 일인지를 상징적으로 복기한다. 비둘기가 처음 날아들었을 때 그는 안느를 죽음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두 번째 날아들었을 때의 그는 안느에게 죽음을 선물할 수 있는 자격과 용기를 갖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임을 깨닫고 그 일을 결행한 직후였다. 죽음을 내쫓는 일과 죽음을 끌어안는 일의 차이가 이와 같을 것이다. 사랑은 자체의 기준을 설정한다 인간의 내부에는 여러 마리의 짐승이 산다. 진화심리학은 그중 하나를 본능(instinct)이라 부르고, 프로이트는 다른 하나를 충동(drive)이라 부르며, 라캉은 또 다른 하나를 욕망(desire)이라 부른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본능과 충동과 욕망이 어떤 법칙을 갖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사랑에 대한 모든 정의는 시도되는 순간 실패한다. 사랑은 전칭명제로 규정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개별적인 사례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사랑은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며(나 역시 그 어리석은 사람들 중 하나다) 다만 ‘무엇도 사랑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오직 그 내부에 있을 것이다. “사랑은 자체의 기준을 설정한다. 따라서 사랑의 관계 안에서는 이것이 사랑인지 아닌지가 금방 분명해진다.”(슬라보예 지젝, <지젝이 만난 레닌>) 미하엘 하네케 감독은 이 영화에 ‘사랑’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이것도 사랑이다’라고 말하려 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죽을 만큼 사랑해’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죽일 만큼 사랑해’라고 말한다. 사랑에 관한 한, 이야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거기까지일 것이다. 왜 문학이라는 것이 필요한가. 이 세계에는 여러 종류의 판단체계들이 있다. 정치적 판단, 과학적 판단, 실용적 판단, 법률적 판단, 도덕적 판단 등등. 그러나 그 어떤 판단체계로도 포착할 수 없는 진실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런 진실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한 인간의 삶을 다시 살아볼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할 때에만 겨우 얻어질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외도를 하다 자살한 여자’라고 요약할 어떤 이의 진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톨스토이는 2천쪽이 넘는 소설을 썼다. 그것이 <안나 카레니나>다. 이런 작업을 ‘문학적 판단’이라 명명하면서 나는 이런 문장을 썼다. “어떤 조건하에서 80명이 오른쪽을 선택할 때, 문학은 왼쪽을 선택한 20명의 내면으로 들어가려 할 것이다. 그 20명에게서 어떤 경향성을 찾아내려고? 아니다. 20명이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왼쪽을 선택했음을 20개의 이야기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도 정확히 동일한 상황에 처할 수는 없을 그런 상황을 창조하고, 오로지 그 상황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 이것이 문학이다.” 문학은 물론이려니와 영화 역시도 ‘이야기’라는 요소로 완전히 환원될 수는 없다는 것쯤은 안다. 그러나 저 문장이, 이야기라는 요소를 문학과 공유하고 있는 영화에도, 이야기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그 비율만큼은, 유효할 것이라고 나는 기대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옳다. 덧붙이거니와, 좋은 이야기는 그것이 끝나는 순간 삶 속에서 계속된다.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영화가 안느의 환영과 함께 돌아올 수 없는 외출을 하는 조르주가 현관문을 닫는 그 매혹적인 영화적 순간에 끝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닌 것 같다. 안느의 시체가 수습된 이후 그녀의 딸인 에바가 그 집을 다시 찾는 장면이 이어지는 것은 그럴 만하다. 그 장면에서는 모든 문들이 활짝 열려있다. 죽음이 이미 다녀갔으니 문을 잠글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에바는 거실로 간다. 늘 창가쪽 자리에 앉던 에바가 이번에는 그의 부모가 앉던 자리에 앉는다. 그런 그녀를 멀찍이 떨어진 채 지켜보던 카메라가 문득 꺼지면서 영화는 끝난다. 부모의 의자를 그녀가 물려받았다. 이제는 그녀에게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전시] 옛날 옛적엔 19금에도 풍류와 낭만이

기간: 2월24일까지 장소: 갤러리현대 본관, 두가헌 갤러리 문의: www.galleryhyundai.com 어젯밤 내가 본 <9시 뉴스>에서는 강추위를 알리는 화면에 이어 14세기 중반의 고려 불화가 등장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국립동양예술박물관에서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불화 한점이 발견된 것이다. 죽은 사람을 서방세계로 안내하고 있다는 기자의 멘트 뒤로 적의를 입고 온화한 표정을 한 아미타불 이미지가 등장했다. 몇초 만에 텔레비전 화면에서 사라진 아미타불은 나에게 시간대를 점프한 느낌 이상을 건네지 못했다. 과거와 옛사람은 ‘낯선 나라’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고려시대 사람이라면 저 불화에서 무엇을 읽었을까. 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는 고려 불화에 비하면 널리 알려진 장르다. 그림 속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2013년의 시점과 비교해보아도 통하는 장면이 많다. 밥그릇이 상당히 크기는 하지만 밥을 먹고 있거나, 지금 우리가 그러고 놀지는 않지만 두 동네가 모여 씨름을 한다거나 달 아래 한복을 입은 남녀가 애틋한 눈매를 주고받는다거나. 알 법한 그림들이다. 왕이나 선비의 냉랭한 얼굴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이들의 ‘생활’을 그린 장면은 친근하고 솔직하다. 인쇄매체를 통해 자주 보았던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다보면 그림 속 이들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하지만 다시 반문. 내가 그림 몇장을 통해 이들의 실체와 이들의 고민을 안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갤러리현대(두가헌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옛사람의 삶과 풍류’를 조명한다. 관아재 조영석, 공재 윤두서 등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그린 풍속화가 전시장의 입구라면 청소년들은 들어올 수 없는 ‘19금’ 공간에서는 전시의 핵심이라 할 ‘춘화’가 전시된다. 걸쭉한 농담과 디테일한 성적 묘사가 난무하는 그림들은 조선 후기 가장 뛰어난 춘화첩으로 해석되는 <운우도첩>과 <건곤일회첩>에 담긴 것이다. 전시는 또한 평민화가 김준근을 통해 당대 풍속화가 기록 및 유통되는 방식을 말한다. 김준근은 중앙 화단과는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조선 최초의 개항장인 원산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그림 실력과 재간으로 자신의 풍속화를 해외에 ‘수출’했다. 그의 그림에는 어린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무얼 하고 노는지, 무속의 세계나 처녀총각의 결혼식은 어떻게 하는지 외국인 여행가들이 궁금해했을 법한 장면들이 실감나게 담겨 있다. 전시 기간 중에는 유홍준(1월23일), 이태호(2월13일) 교수의 강의도 진행된다.

[충무로 도가니] 싸이의 기적을 영화에서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제목처럼 이번주 금요일에 미국에서 개봉하는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가 만일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다면….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차트 2위에 오르면서 그 뒤로 매주 목요일이 되면 설마 이러다가 1위에 오르는 거 아냐라는 상상을 하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이번에는 더 큰 핵폭탄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매우 긍정적이다. <블레어 윗치> <쏘우> 등을 배급한 라이온스 게이트는 2800개의 스크린에서 <라스트 스탠드>를 개봉한다. 같은 날 개봉하는 경쟁작은 마크 월버그, 러셀 크로 등이 나오는 범죄스릴러물 <브로큰 시티>와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그리고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 정도이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이번주 1위 영화는 세편 중 한편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일단 로튼토마토의 지수는 100%이다. “강하고 속도감있게 밀고 나가는 김지운 감독의 연출과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 모두들 신나게 한바탕 즐기고 있다”(<어소시에이티드 프레스>의 크리스티 르미르), “감독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서부영화와 액션영화 법칙을 따르면서도, 장르를 뛰어넘거나 벗어나지 않는 미덕을 갖춘 영화”(<슬랜트 매거진>의 칼럼 마시) 등. 영화에 대한 호평 일색이다. 물론 김지운 감독 이전에도 리안, 오우삼 감독 같은 중국 감독들이 할리우드에서 성공 스토리를 쓴 적은 있다. 그러나 <라스트 스탠드>는 앞의 두 감독과 다른 점이 있다. 많이 알려진 대로 충무로 출신인 김지용이 촬영을, 모그가 음악을 맡았다. 할리우드에서 첫 영화를 찍는 감독이 자신의 스탭을 데리고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감독에게 기대고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가 성공한다면 그건 감독 한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한국 스탭의 우수성도 함께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쓰다 보니 마치 무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예상하는 글이 되고 말았다. 제작한 영화도, 수입한 영화도 박스오피스 1위와 거리가 먼 영화만 한 사람이 아무 관계도 없는 영화의 미국 박스오피스 성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누가 만들었든 누가 수입을 했든 누가 돈을 벌든 그것과 상관없이 남들이 안될 것이라고 얘기한 일을 가능하게 한 데 대해 찬사를 보내고 싶다. 싸이의 노래를 지겹게 듣다가도 텔레비전에서 그가 세계적인 스타들과 친구처럼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그건 어쩌면 대리만족의 감정이 아닐까. 많은 영화인이 한국 감독의 첫 할리우드 박스오피스 1위 작품을 기대하고 있는 건 그만큼 지금 우리의 영화 환경이 척박하고 어렵다는 방증이다. 제발 올해 연말에는 영화판 곳곳에서 “누구누구는 떼돈 벌었네, 누구는 쫄딱 망했네”라는 얘기보다는 “모두가 먹고살 만했던 한해였다”라는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잡지가 나올 무렵이면 나의 예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결과가 나오겠지만,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김지운 감독님! 일찍이 한국 스탭이 할리우드영화에 참여한 사례는 많았다. 드림웍스 같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는 한국인 출신 애니메이터들이 많다. 그러나 충무로에서 인정받은 뒤 헤드 스탭으로 진출한 사례로 범위를 좁혀보면 몇 안된다. <라스트 스탠드>보다 일주일 뒤에 개봉하는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는 감독의 오랜 파트너인 정정훈 촬영감독이 촬영을 맡았다. 알려진 대로 정두홍 무술감독은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2009)에서 이병헌의 스턴트 더블로 참여한 뒤 <지.아이.조2>에서 액션 코디네이터를 맡았다.

큰 그림은 이제 시작이다

2012 연극 <리턴 투 햄릿> 연극 <서툰 사람들> 2012~2013 예능 2013 드라마 스페셜 <또 한번의 웨딩>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여의도 텔레토비>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지난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힐링 포인트 중 하나는 의 작은 콩트 ‘여의도 텔레토비’였다. 또, 문제니, 안쳤어 등 대선 후보와 대통령을 묘사하는 텔레토비 캐릭터를 앞세워 욕설도 불사한 정치 풍자를 선보인 ‘여의도 텔레토비’를 보면 박하사탕 하나를 입에 문 것처럼 속이 다 시원했었다. 특히 이렇게까지 표현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의 수위를 오가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묘사한 캐릭터 ‘또’를 맡았던 김슬기의 활약이 눈부셨다. “우리 아빠가 뭐!”라며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는 김슬기의 당돌함이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귀여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거침없는 표현 수위 때문에 욕설 논란에 시달리면서도 이토록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신인 여배우의 강단은 어딘가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다. 한편으론 부담이 될 수도 있었던 캐릭터 또에 대해 김슬기는 “부담보다는 즐거움으로 임했던 캐릭터예요. 저와 성격이 비슷하지 않은 면도 있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었어요. ‘또’가 돼서 소리를 지를 땐 스트레스까지 풀리더라고요”라며 웃어 보인다. 귀여움 속의 대범함, 김슬기의 매력은 거기에 있었다. 온화 시즌1부터 시즌3까지, 이 프로그램의 크루로 활약하며 김슬기는 더없이 즐거웠던 한편 고민거리도 하나 생겼다고 했다. “프로그램의 성격때문인지 저를 배우가 아니라 예능인이라 오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직까지는 여러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서겠죠. 그래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며 내실을 다지고 싶어요. 웃음을 주는 것도 좋지만 제 안에 다른 모습들이 더 많기 때문에 언젠가는 온화한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뮤지컬 차분하고 낯도 많이 가리는 성격이지만 춤과 노래, 연기가 좋아서 뮤지컬 배우를 꿈꿨다는 김슬기에게 무대는 색다른 에너지를 주는 곳이다. “무대,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까지 오면서 여러 생각을 많이 했어요. 무대는 무대대로 방송은 방송대로 각자 다른 매력을 지닌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무엇 하나만 딱 사랑할 수가 없어요. (웃음) 예전에 뮤지컬과 방송, 영화까지 점차 발전해나가는 큰 그림을 그렸었는데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장진 감독이 본 김슬기 욕심 숨기고 더 무심해지길 “언젠가 김슬기에게 배우가 경험할 수 있는 화려함은 화려함대로, 신인 배우가 겪는 어려움은 어려움대로 모두 체험하되 겸손한 배우가 되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배우의 아름다움은 외모의 치장과 협찬 의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만들어낸 개성과 소양에서 나온다. 함께 연극과 를 해오면서 느낀 것이지만 김슬기는 그 나이대에서 오랜만에 나타난 연기파 배우다. 그러니 부디 욕심을 들키지 마시고 더 무심해지시길.”

뽀통령으로 대동단결-친구들 모여라

울던 아기도 울음을 그친다는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가 10주년을 맞아 드디어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으로 제작되었다. 뽀로로를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는 한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들은 당연히 극장으로 발길을 향하겠지만 아이들이 왜 그토록 뽀로로를 좋아하는지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예의 아닐까. 이제 뽀로로도 10살이 되었으니 그간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때도 되었다. 10년간 번성한 뽀롱마을의 비밀을 한번 파헤쳐보자.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그 어떤 연예인보다도 인기가 좋다. 누군가에겐 고마운 육아도우미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아동용 애니메이션일 뿐이다. 혹자는 몸값이 수천억원에 달한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대한민국 아동 애니메이션 시장을 지배하고 계신 제정일치 절대왕정의 군주, 통칭 뽀통령, 또는 뽀느님 ‘뽀롱뽀롱 뽀로로’의 이야기다. 2003년 EBS에서 첫 방영될 당시만 해도 이 정도의 반응을 이끌어내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이 이등신의 동그란 펭귄 한 마리는 한국 유아 애니메이션 시장의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세계 거시적인 수치로만 봐도 비교 불가다. 2012년 기준 매출 누적액은 1조원이 넘었고 130여개국에 수출되었으며 브랜드 가치가 7천억원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나왔다(2009년 서울산업통상진흥원 기준으로는 3893억원이다). 미시적인 현상으로 보면 더하다. 뽀로로에 얽힌 수많은 간증의 경험담(그렇다. 간증이다. 서너살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서 터져나오는 증언들을 듣다보면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뽀느님’이라는 말 그대로 가히 종교의 영역이라 할 만하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날밤을 새워도 모자랄 지경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든 문화적인 관점에서든 뽀로로는 하나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그만큼 뽀로로를 잘 알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회의적이다. 뽀로로를 둘러싼 무수한 반응과 말들에도 불구하고 정작 뽀로로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뽀롱마을의 속사정을 아는 이는 별로 없어 보인다. 단편적인 뉴스로 접하는 숫자와 신드롬에 가까운 소문들을 듣고 그저 피상적으로 대단하다고 한수 접어두고 있는 건 아닌가. ‘대단하다’는 말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여기저기 토스 되고 있을 뿐, 그나마 뽀로로의 대단함을 논하는 근거들도 대부분 숫자에 기댄 까닭에 소위 콘텐츠‘산업’ 측면 또는 ‘신성장동력’이라는 매우 세속적인 기준에서 욕망과 기대가 뒤섞여 있다. 뽀로로를 찬양하는 말들이 ‘<쥬라기 공원> 한편이 자동차 몇대 분량의 수출효과’라며 호들갑 떨던 뉴스들과 겹쳐 보이는 건 지나친 우려일까. 보건소 소아과 벽에 스티커로 강림하시어 겁에 질린 수십명 어린이들의 눈물을 단번에 그치게 했다든지, 주전자에 엉덩이가 낀 세살짜리 아이를 꺼내려 119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는 동안 아이가 울지 않도록 뽀로로 영상으로 달랬다는 믿을 수 없는 간증 현장의 제보들과의 괴리가 그런 걱정을 더한다. 아이들의 뽀로로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초자연적이다.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는 현상을 목격했을 때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마치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양 적당한 이유를 갖다붙이든지, 아니면 이유 따윈 아예 생각지 않고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그 대단하다는 뽀로로를 제대로 설명하려는 이가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유아용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더욱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뽀로로도 어느덧 10살이 되었다. 아직 10년밖에 안됐냐는 이도 있을 테고, 벌써 10년이라며 놀라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10주년을 맞이한 뽀로로가 극장 진출이라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상 아이들만 알고 있는 세계, 뽀로로 월드의 비밀을 파헤칠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유아용 애니메이션 전성시대 2003년 11월 뽀로로가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시장의 불모지, 아니 단순한 소비시장에 불과했다. 전세계적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캐릭터들, 예를 들어 ‘곰돌이 푸우’나 ‘꼬마기관차 토마스’ 등도 지속적인 애니메이션 채널을 확보하진 못한 상태였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아동용 채널의 수요를 확장시킨 것은 영국의 <꼬꼬마 텔레토비>다.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의 오랜 노하우를 지닌 영국 는 대상 아동의 연령, 취향, 방송 목적에 따른 다양한 프로그램을 세세하게 구분하고 있는데, 그중 특히 <꼬꼬마 텔레토비>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영유아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제작에 불이 붙기 시작했는데 그 선두주자가 바로 <뽀롱뽀롱 뽀로로>다. 2003년 당시만 해도 한국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모델을 벤치마킹하여 완구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중의 부정적 인식(교육에 유해한 콘텐츠라는 것과 질적으로 수준이 떨어진다는 오해)이 팽배해 있던 때라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위한 시간 편성은 전무했다. 뽀로로는 바로 그 점을 파고들었다. 뽀로로는 당시 애니메이션으로는 이례적인 전략적 접근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현재 오콘,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 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 EBS가 공동으로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뽀로로는 저작권의 구성원들이 증명하듯 시작 단계부터 철저히 필요에 의해 기획 구성된 프로젝트다. 아이코닉스가 기획을 하고, 오콘이 제작을 맡았으며, 교육방송인 EBS를 통해 배포함으로써 에듀테인먼트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였다. 여기에 콘텐츠가 필요했던 하나로텔레콤이 투자를 하며 밑그림이 완성되었다(당시 대북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하나로텔레콤의 영향으로 뽀로로 시즌1의 52편 가운데 22편은 북한의 삼천리총회사에서 담당했다). 그 결과 첫해 로열티로만 1억3천만원을 벌어들였고 2005년부터 본격적인 흥행가도에 돌입하여 현재는 2천여개의 관련 상품, 연간 5천억원대의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선물공룡 디보’ 인형을 들고, ‘로보카 폴리’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뽀로로 월드에 놀러가는 것이 그리 신기한 풍경이 아니지만 몇년 전만 해도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새롭고, 거대하며, 안정적인 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뽀로로가 이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노는 게 제일 좋은’ 눈높이 공감 뽀로로의 성공 요인에 대한 몇 가지 가설 중 설득력있는 몇몇 의견이 있다. 첫째로 동물을 의인화한 디자인이 아이들의 친밀감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곰돌이 푸우를 비롯한 디즈니의 대표적인 캐릭터들을 떠올려보면 일견 타당한 분석이다. 아이들이 동물 캐릭터를 좋아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실제로 이등신의 둥근 체형이나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디자인은 아이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요소다. 유아용 애니메이션 대다수가 디자인에서 비슷한 노선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꼭 동물이 아니라도 괜찮다. 요컨대 핵심은 친밀감과 의인화에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과는 다른 존재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고 아이들의 경우 이같은 욕망이 좀더 적극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뽀로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아의 행동패턴까지 공유하고 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감정이입할 수 있는 극도의 유사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등신의 캐릭터들이 뒤뚱거리며 걷는 모양새는 유아들의 걸음 그대로다. 뽀로로와 친구들의 각각의 성격 또한 아동집단에서 나타나는 성격들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크롱크롱’이란 말밖에 하지 못하는 아기공룡 크롱은 자신보다 어린 아이를 연상시키고, 작품 속 뽀로로는 실제로 형처럼 크롱을 챙긴다. 늘 수줍은 비버 루피, 듬직하고 조용한 백곰 포비 또한 어느 집단에서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뽀로로의 서사는 기본적으로 곰돌이 푸우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푸우 또한 각기 다른 개성의 친구들이 모여 서로의 다름을 깨닫고 어울리는 담백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제작진 역시 기획 단계에서 푸우를 어느 정도 염두에 뒀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른바 ‘아이들의 일상’이다. 뽀롱마을은 자신들만의 독립된 공동체이며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맞닥뜨리고 각자의 성격을 존중하여 어른들의 도움 없이 문제를 해결해내는 세계다. 그것은 대여섯살의 어린아이들이 실제로 겪을 법한 과정에 대한 체험이고, 이 지점이 공감의 직접적인 통로가 된다. 그렇게 아이들을 흉내내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세계를 고스란히 옮겨왔기에 뽀로로는 아이들의 욕망을 대변할 수도 있다. 이는 오프닝의 가사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뽀로로의 서사는 이것이 전부다. 여기에 더이상 무슨 의미와 분석을 더할 필요가 있는가. 좋은 게 좋은 것, 재미있으니까 재미있는 것. 그것이 놀이의 본질적인 요소다. 5분 내외로 완결되는 이야기 구조는 어른들의 눈높이에서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승전결이 있는 갈등해결의 서사다. 게다가 짧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비어 있어 그 자리는 아이들 스스로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메워야만 한다. 아이들끼리 해결하는 세계,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세계, 뽀로로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상이한 것들이 사이좋게 함께 놀 수 있는 곳이 뽀롱마을이고 아이들은 뽀로로를 통해 다른 존재와 교감하는 방법을 익힌다. 그곳에는 유아들의 생존과 성장의 드라마가 있다. 여기에 “왜 이렇게 아이들이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더해봤자 “뽀로로는 왜 나이를 먹지 않는가, 백곰이 왜 펭귄을 잡아먹지 않는가, 사막여우가 왜 극지방에 있는가”라는 질문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뽀로로의 전략적인 지점이 어른들을 향한다. 에듀테인먼트로서의 가치, 즉 교육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강박을 달래기 위해 플랫폼을 EBS로 선정했고 각 화에 짧은 교훈을 하나씩 넣어둔 것. 대개 아이들의 겉모습만을 흉내낸 애니메이션들이 교육적인 목적 위에 달콤하고 자극적인 재미를 덧씌웠다면 뽀로로는 반대로 어른들을 달래기 위한 ‘교육적’이라는 위안을 제공한다. 그야말로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의 대통령답다. 아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뽀로로가 극장판으로 나왔으니 흥행은 당연한 것처럼 보일 테지만 사실 문제가 그리 단순하진 않다. 무엇보다 유아 애니메이션 시장 자체가 굉장히 보수적이기에 플랫폼을 바꾼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3~4살의 유아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뽀로로의 경우 원래 TV시리즈로 제작되었기에 5분 내외의 짧은 작품이었던 것에 반해 극장판은 70분 넘게 아동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5분의 서사를 70분에 담아야 하니 이야기는 당연히 복잡해질 것이고 눈높이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극장판에 대한 우려와 가능성 다행히도 뽀로로 극장판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어려운 매듭을 풀려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통한다는 단순하고 간단한 진리. 디즈니의 <라이온 킹>의 흥행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뽀로로 극장판의 이야기 구성은 제법 높은 연령대에서 봐도 그리 밋밋하지 않다. 어른들은 어른들 나름대로 동심으로 돌아가 즐길 수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좋아할 요소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층이 두터운 이야기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3D의 완성도다. TV시리즈 뽀로로의 강점 중 하나도 3D 배경의 탁월한 묘사였다. 낯선 광경에 대한 신선함은 그걸로 충분한 스펙터클이다. 뽀로로 극장판에서는 그간 테마파크 등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공연했던 외전 격의 작품들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와 그 반응을 토대로 그야말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3D 화법을 시도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충분히 검증된 독자적인 기술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뽀로로 극장판의 성패가 중요한 건 단지 10주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곰돌이 푸우>나 <토마스와 친구들>의 사례에서 보듯 유아용 애니메이션 역시 그 최종 콘텐츠는 결국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은 브랜드가 다음 궤도에 접어들 수 있는가에 대한 중요한 척도가 될 작품이다. 언젠가 뽀로로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다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아와 뽀로로를 함께 관람할 그날을 향한 진짜 첫걸음이 시작됐다.

[영화제]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것

서울아트시네마는 3월5일부터 24일까지 20일 동안 작품성과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소외받은 영화들을 모아 특별전을 개최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부재를 단 이번 행사를 위해 각국의 수작 15편이 뭉쳤다. 유운성•이용철 영화평론가가 참여하는 비평가 좌담 행사(3월17일)를 비롯해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가 직접 진행하는 시네토크(3월9일)와 상영 전 영화 소개(3월16일) 등의 특별행사가 마련되어 있다.(www.cinematheque.seoul.kr 참조) 프로그램 중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4월 개봉예정작 <홀리 모터스>다. 지난해 칸영화제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진 이 작품은 새벽부터 한밤까지 한 남자의 하루를 뒤쫓아, 그가 연기하는 아홉 가지의 삶을 보여주며 진행되는 일종의 ‘영화에 대한 영화’다. <폴라X> 이후 레오스 카락스가 만든 13년 만의 복귀작. 드니 라방과는 21년 만에 다시 장편에서 조우했다. 루이스 브뉘엘의 <트리스타나>를 비롯해 장 콕도의 <오르페>, 조르주 프랑주의 <얼굴없는 눈> 그리고 감독 자신이 만든 <퐁네프의 연인> 등 다양한 영화들이 변주되어 오마주된다. 길고 거추장스러운 하얀색 리무진을 탄 <홀리 모터스>가 파리 시내 곳곳을 훑는 것에 달리 벨라 타르의 <런던에서 온 사나이>는 오직 한 도시에만 머무른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약 4년간 코르시카섬에서 촬영되었다는 이 영화는 ‘느린 플랑세캉스’와 ‘강한 콘트라스트의 흑백영상’이 주조를 이룬다. 1934년 조르주 심농이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은 1943년 앙리 드쿠앙의 영화 이후 세 번째로 각색됐다. 벨라 타르 특유의 시네마적 기법, 주인공의 심리에 맞춘 두 가지 종류의 라이트모티브 음악에 귀기울여 감상하길 권한다. 한편, 어느 평론가에 의해 ‘분류 불가능하고 이상야릇한 농촌코미디’라 명명된 알랭 기로디의 <도주왕>을 통해서는 프랑스 남서지방의 거친 풍경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르코 벨로키오의 <내 어머니의 미소>도 인상적이다. 조형적 아름다움을 특징으로 내세운 이 이탈리아영화는 ‘몽매주의와 타협, 무기력’을 키워드로 현대의 이탈리아 사회와 종교, 부르주아의 범주 등에 딴지를 걸고, 비난을 가한다. 2002년 칸영화제에서 기독교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이에 비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는 미국사회에 대한 관찰이 돋보인다. 감독은 주인공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통해, 감독 스스로의 미국에 대한 애증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세 번째 디지털 장편 <트윅스트>는 또 다른 미국의 문화적 유산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코폴라는 에드거 앨런 포와 자신을 직접 연계시키거나, 또 다른 거장 너새니얼 호손을 빌리는 식으로 극을 진행해가는데, <대부> 등 이전작에서 느끼지 못한 독특한 멜랑콜리의 감성이 영화를 일종의 벌레스크 소동극으로 완성시킨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트윅스트>가 지닌 바로크적 개방성은 의외의 수작과 조우했다는 만족감을 선사해줄 것이다. 아벨 페라라의 <4:44 지구 최후의 날> 역시 놓치기 아깝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이튿날 새벽 4시44분에 일어날 지구의 종말이 예견되고, 뉴욕 로어 이스트사이드에 사는 시스코와 스카이 커플은 이를 함께 준비해간다.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들과 구별되는 차분하고 엄숙한 논조가 특색인 작품. 상영 내내 주인공의 아파트에는 오라클을 예언하는 텔레비전 뉴스가 방영되고 있다. 감독은 디지털 화면 속 앨 고어나 달라이 라마 등 실존 인물의 입을 빌려 독특한 형식으로 세상의 종말을 고하고, 폼페이의 석화된 연인을 상기시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얼굴이 맞닿은 남녀의 클로즈업’을 통해 사랑의 생흔이야말로 지상 최상의 가치임을 다시금 강조한다.

악(惡)은 어디에 있는가?

<허트 로커>에 이은 캐스린 비글로의 전쟁영화 <제로 다크 서티>가 3월7일 개봉한다. 주인공이 누군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던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12월 북미 개봉한 뒤에도 비밀스러운 제작 과정 때문에 여전히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9.11 이후 10여년간 음침한 수용소와 무미건조한 사무실을 오가며, 서류더미에 파묻혀 서방세계 ‘악의 축’ 오사마 빈 라덴에 다가갔던 미국 첩보국의 실체가 어떻게 재구성됐는지 그 제작기를 소개한다. 이름하여 <제로 다크 서티>를 위한 26가지 보고서다. A 아보타바드 Abbottabad 2011년 5월2일 새벽, 수십발의 총성이 파키스탄의 평화로운 북부도시 아보타바드의 하늘을 갈랐다. 이윽고 덥수룩하게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쓰러졌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고 부르던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의 습격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9.11 테러의 주범이 아프가니스탄의 동굴이 아니라 파키스탄의 풍요로운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은 전세계인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 아보타바드의 총격전이 바꿔놓은 건 미국의 운명뿐만이 아니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토라보라 산악지대에서 벌어졌던 미군의 실패한 빈 라덴 암살 작전을 토대로 신작 촬영 준비에 한창이었던 캐스린 비글로 감독과 시나리오작가 마크 볼은 3년간 구상해왔던 시나리오를 과감히 엎고, 아보타바드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빈 라덴을 암살했다는) 역사적 사건이 구상하던 영화 시나리오의 규모를 넘어서버렸”(마크 볼)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화 <제로 다크 서티>의 출발점이다. B 블랙사이트 Black Site 블랙사이트는 CIA의 해외 비밀 감옥을 일컫는 용어다. 2001년 9월11일, 뉴욕의 심장부에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비행기가 날아들어 꽂힌 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해외 곳곳에 블랙사이트를 설치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시설의 운영 방식이다. 테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용의자에 가하는 각종 고문과 비인간적인 행위가 블랙사이트 내부에 만연했고, 빈 라덴을 추적하는 CIA 요원들을 조명하는 <제로 다크 서티>는 이러한 장면들을 피해가지 않는다. “도서관에 가서 허가된 사진을 보고 영화를 만들려면 2년 정도는 걸릴 거다. 하지만 요즘 군인들의 개인 웹사이트에 어떤 사진이 올라오는지 보면 깜짝 놀랄 거다.” 블랙사이트 고문 장면을 준비한 프로덕션 디자이너 제레미 힌들의 말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09년 블랙사이트 폐쇄를 명했으나, CIA 해외 비밀 감옥의 실상을 유추할 수 있는 수많은 이미지들은 망령처럼 구글에 넘실댄다. C 미 중앙정보국 CIA 빈 라덴의 머리를 저격한 건 미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이었지만 9.11 이후 10여년 만에 그의 거처를 알아낸 장본인은 미국 정보기관 CIA였다. <제로 다크 서티>는 “현장 요원, 케이스 분석가, 스파이”(캐스린 비글로) 등으로 구성된 CIA 요원들의 임무 수행 과정을 묘사하는 데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그 중심에는 ‘워싱턴의 킬러’라고 불리는 젊은 CIA 여성 요원 마야(제시카 채스테인)가 있다. 그녀는 블랙사이트에 수감된 알 카에다 조직원에게 아부 아흐메드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에 대해 들은 뒤, 그가 빈 라덴의 최측근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시나리오작가 마크 볼은 “모든 캐릭터는 실존 인물에 기반했다”며, “빈 라덴의 은신처를 습격하던 날, 현장에 파견됐던 CIA 여성 요원”이 마야의 모델이 되었음을 밝혔다. 영화가 지난해 12월 북미 개봉한 뒤, 미국 언론은 마야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을 찾는 데 혈안이 됐지만 CIA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여성 요원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D 논쟁 Debate 물고문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죄수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목줄을 채워 개처럼 끌고 다니고, 죄수를 상자에 집어넣는 등 <제로 다크 서티>가 묘사한 CIA 요원들의 고문 장면은 미국 전역에 격렬한 찬반 논쟁을 일으켰다. 고문 장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고문 뒤에 수감자로부터 정보를 얻고 빈 라덴에게 보다 가까워지는 과정을 묘사해 영화가 마치 고문을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 문제다. <가디언>은 이 작품이 “더럽고 추한 비즈니스가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관점을 보여준다”고 비판했고, 평론가 프랭크 브루니는 <제로 다크 서티>가 “물고문 없이는 빈 라덴도 없다”고 주장하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최악의 평가는 페미니스트 나오미 울프에게서 나왔다. “비글로는 나치의 선동가 레니 리펜슈탈과 다를 바 없다. 리펜슈탈처럼 비글로는 훌륭한 예술가다. 하지만 지금부터 그녀는 고문의 시녀로 영원히 기억될 거다.” 반면 작가 앤드루 설리번처럼 이 영화가 “고문에 대한 폭로”라며, “7년간 전범들이 미국을 그런 식으로 이끌어왔다는 의혹을 제거해준다”고 옹호하는 입장도 있다. 고문 장면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감독 캐스린 비글로는 “나도 고문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현실에는 고문이 존재했다”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영화에 반영하고자 했음을 밝혔다. E 선거 Election <제로 다크 서티>를 둘러싼 논쟁은 그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재선에 도전하는 오바마의 임기 중 가장 큰 업적이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했다는 점이다. 빈 라덴의 은신처 습격을 다룬 이 영화가 민주당 후보 오바마에 맞서는 공화당의 집중포격을 받은 건 당연해 보인다. 공화당 의원 피터 킹과 공화당 사법감시단은 오바마 정부가 재선을 위해 캐스린 비글로를 비롯한 영화의 제작진에 빈 라덴 암살과 관련된 기밀 정보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그들이 밝혀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캐스린 비글로와 마크 볼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개된 국방부 자료를 검토했다고 해명했다. <제로 다크 서티>의 미국 개봉을 2012년 10월로 예정해두고 있던 배급사 소니픽처스는 11월 대선을 둘러싼 정치적 공세에 압박을 느낀 듯 12월로 개봉을 변경했다. F 허위 정보 False Information 모두가 이야기의 결말- 빈 라덴의 죽음- 을 알고 있을 때, 어떻게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제로 다크 서티> 제작진의 가장 큰 고민이 여기에 있었다. 시나리오작가 마크 볼의 해답은 이 사건의 “메커니즘”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미군이 빈 라덴의 은신처에 당도하는 영화의 마지막 35분 전까지, <제로 다크 서티>를 채우는 건 수많은 허위 정보들이다. 친척의 아는 사람이 파티에서 빈 라덴을 목격했다거나, 마름모 패턴(빈 라덴이 그렇듯)으로 움직이는 남자들을 봤다는 농부의 증언 등 얼핏 듣기만 해도 믿지 못할 가설들이 편집증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CIA 부서 내부를 떠돈다. 관객은 이미 어떤 정보가 진짜인지 알고 있으나, 등장인물들은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듯”(캐스린 비글로) 믿을 만한 정보를 가려내야 하는 상황이 <제로 다크 서티>의 서스펜스를 길어올리는 원동력이다. G 녹색빛 작전 Green Light Operation 모든 희생과 노력을 감수한 끝에, 네이비 실 부대가 빈 라덴의 은신처에 잠입하는 마지막 35분의 전투 신은 <제로 다크 서티>의 백미다. 보는 이들에게 “당신이 거기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캐스린 비글로는 촬영에 있어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실 요원들이 야간 습격 당시 투시경을 끼고 봤던 그 모습 그대로, 야간 투시 렌즈를 카메라에 장착해 화면 전체를 녹색빛으로 채운 것이다. “야간 투시 렌즈는 조도가 0이었을 때 작동 가능하다. 100여명의 제작진과 실 팀을 연기하는 22명의 배우들이 칠흑같이 어두운 돌무더기 세트장에서 터벅터벅 걷는 경험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캐스린 비글로의 말이다. 보통의 감독들은 야간 투시의 느낌을 살리고 싶을 때 일반적인 방식으로 촬영을 진행하고 후반작업에서 그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비글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조명 없이 작업해야 했던 촬영감독 그레이그 프레이저의 떨리는 가슴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냐마는, 영화를 본 이라면 누구나 여장부 캐스린 비글로의 모험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H 홈랜드 Homeland <제로 다크 서티>의 히로인, 마야와 비견되는 인물은 미국 전쟁드라마 <홈랜드>의 캐리(클레어 데인즈)다. 그 역시 CIA 요원인 캐리는 이라크에서 8년 동안 구금됐다 풀려난 브로디 하사가 테러조직에 매수됐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브로디가 전쟁영웅이라고 생각한다. 포스트 9.11을 맞이한 미국의 트라우마와 편집증을 온몸으로 대변하는 캐리는 <제로 다크 서티>의 마야를 보기 전 반드시 예습해야 할 인물이다. I 정보국 Intelligence Agency “펜타곤과 CIA가 <허트 로커>의 엄청난 팬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영화에 대한 미국 정보국의 지원을 두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이렇게 평했다. 캐스린 비글로에게 여성으로서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감독상을 안겨준 <허트 로커>는 미국의 대테러전을 소재로 한 비글로의 두 번째 영화 <제로 다크 서티>의 제작 지원에 큰 도움을 줬다. 공화당 의원 피터 킹과 사법감시단이 정보공개법에 따라 요청한 자료에 의하면, CIA는 빈 라덴 암살작전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 한 론 하워드와 이매진 엔터테인먼트의 지원 요청에 앞서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우리는 영화적 위상, 제작의 실현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마크 볼과 캐스린 비글로의 영화가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CIA 대변인 마리 하프) J 제시카 채스테인 Jessica Chastein <트리 오브 라이프> <헬프>를 통해 할리우드의 가장 주목할 만한 여배우로 급부상한 제시카 채스테인이 <제로 다크 서티>의 마야를 연기한다. 그녀에게 이 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영화를 보면 채스테인의 말을 이해하게 될 거다. 캐스린 비글로는 빈 라덴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마야의 모습을 담기 위해 요원으로서의 삶 이외의 모든 요소들을 거세했다. 그녀의 가족, 연인, 친구, 생각. 달리 말해 전쟁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이 관습적으로 안고 있는 요소들을 제시카 채스테인은 고민할 새가 없었다. “마야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파악돼야 하는 캐릭터다. 그녀의 외모, 눈빛,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부터 마야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야 했다. 이건 <헬프>에서 셀리아 풋을 연기할 때처럼 목소리와 몸 상태를 바꾸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었다.” 캐스린 비글로의 여전사가 되는 길은 그렇게 험난했다. K 캐스린 비글로 Kathryn Biglow “비글로가 만든 가장 인상적인 영화, 그리고 그녀의 가장 사적인 영화다.” <할리우드 리포터>의 토드 매카시는 <제로 다크 서티>를 이런 작품으로 정의했다. 이 영화가 비글로의 전작 <허트 로커>를 제치고 가장 인상적인 그녀의 영화가 되리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비글로의 가장 사적인 영화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블루 스틸>의 제이미 리 커티스, <스트레인지 데이즈>의 안젤라 바셋처럼 비글로의 영화에는 종종 강인한 여성들이 등장했으나 <제로 다크 서티>의 마야만큼 비글로와 닮아 있는 여성 캐릭터는 없었다. 영화의 초반부, 블랙사이트로 파견된 마야를 두고 남자요원들은 수군거린다. “이런 문제를 맡기에 너무 어리지 않나?” 어쩌면 여성으로서 할리우드의 마초적인 영화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비글로가 실제로 겪었을 편견들. 그녀가 <제로 다크 서티>를 연출하며 마야의 여성성을 유추할 수 있는 그 어떤 장면도 할애하지 않은 건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유능함이 평가절하됨을 경험했던 비글로의 자전적인 모습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L 로케이션 Location 아보타바드의 야간 습격 장면은 <허트 로커>의 주요 로케이션이기도 했던 요르단 사막에서 촬영됐다. 비글로는 습격 장면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배우들의 동선을 고려한 빈 라덴의 은신처를 실제 규모로 짓길 원했다. “16피트 높이의 장벽과 외부와 차단된 창문들, 그 안을 둘러싼 7피트의 벽”을 완비한 빈 라덴의 요새는 10주간에 걸쳐 재창조됐다. 영화의 첩보 장면은 인도 찬디가르 등의 지역에서 촬영했는데, 모슬렘 복장으로 힌두 지역을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한때 폭도들이 제작진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CIA의 블랙사이트 지역은 폴란드의 단스크에서 촬영했다. M 마크 볼 Mark Boal <허트 로커>로 시작된 캐스린 비글로의 재기의 일등공신은 이 남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트 로커>에 이어 <제로 다크 서티>의 각본을 맡은 시나리오작가 마크 볼은 프리랜서 기자다. 마크 볼은 폴 해기스의 이라크 전쟁영화 <엘라의 계곡>의 각본을 쓴 뒤, 역시 전쟁영화 <허트 로커>를 준비하던 비글로와 인연을 맺었다. <엘라의 계곡>의 원안 기사를 잡지 <플레이보이>에 연재하며 그가 발굴한 정보원들은 <허트 로커>와 <제로 다크 서티>의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깊은 조사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퍼즐 조각이 있었다. 이 영화를 위한 자료조사는 그야말로 진빠지는 일이었고 엄청난 시간이 소비됐다. 마크의 조사 능력과 경험이야말로 빈 라덴 추적의 복잡한 과정을 탐구할 수 있게 했다.”(캐스린 비글로) N 네이비 실 Navy Seal 세계 최강의 엘리트 부대라 불리는 미 해군의 특수부대. 빈 라덴의 최후를 집행하고 목격한 부대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마크 오언이란 필명을 쓰는 네이비 실 전직 대원이 빈 라덴 사살 과정을 다룬 <노 이지 데이>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빈 라덴을 초기에 제압한 뒤에도 그가 더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수차례 총격을 가했다”고 책에서 밝혔고 영화 또한 그런 장면을 반영하고 있다. O 오바마 Obama 오바마 정부와 <제로 다크 서티> 제작진의 밀월 관계와 더불어 이 영화의 큰 이슈 중 하나는 과연 오바마 대통령이 영화에 모습을 나타낼지에 대한 것이었다. CIA 첩보 과정을 무미건조하게 다루는 <제로 다크 서티>에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작전이 일사불란하게 실행되는, 애국주의적인 장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오바마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건 단 한 장면, CIA 사무실의 TV 화면에서다. “미 정부는 고문을 자행하지 않는다”는 오바마의 성명이 울려퍼지는 순간을 CIA 요원들은 심드렁하게 쳐다본다. 민주당도, 공화당도 좋아할 만한 장면은 아니다. P 정치적 논쟁 Political Controversy 미국 대선을 피해서 개봉했음에도, <제로 다크 서티>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공화당쪽은 마크 볼과 캐스린 비글로를 비롯한 영화의 제작진이 공개되지 않은 비밀 문서에 접근할 권한을 실제로 가졌는지에 대해 꾸준히 추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Q 말, 말, 말 Quote “이 영화는 실제 사건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제로 다크 서티>는 미국에서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여러 정보원들의 ‘말’로 구성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이비 실의 빈 라덴 암살 작전에 대한 서적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음에도 마크 볼이 굳이 관계자들의 증언을 직접 듣길 고집한 건, 팩트의 중요성을 아는 기자 정신 때문이었다. “나는 국가 안보에 대한 정말 훌륭한 보도가 있다는 점도 알지만, 현실과는 멀리 떨어진 기사가 있다는 점도 안다. 훌륭한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R 실존 인물 Real Person 마야의 롤모델을 비롯해 <제로 다크 서티>의 시나리오작가 마크 볼이 도움을 받은 정보원들은 철저히 신원을 보호받고 있다. 노출을 꺼리는 그들의 예민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의 기사를 참고할 것. “2008년, 시나리오작가 마크 볼은 퇴임한 특수부대 요원과 약속을 잡았다. (중략) 볼은 그를 만나기 전까지 약속이 잡히리라는 사실도 몰랐다. 요원은 GPS로 위치를 알려줬다(나중에 그 장소는 주유소로 밝혀졌다). 미팅은 짧았다. 정보 교환에 대한 보증도 없었다. 그의 첫마디는 이랬다. ‘내가 왜 당신과 얘기해야 하는지 합당한 이유를 대보시오.’ 마크는 ‘여하간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마크 볼은 할리우드 시나리오작가가 언제나 밥 우드워드(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기자)를 닮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S 음향편집 Sound Editing 작품상, 여우주연상을 포함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에 오른 <제로 다크 서티>는 <007 스카이폴>과 음향편집상을 공동 수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음향편집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은 후반 35분의 습격신이다. 은신처로 접근하는 스텔스 전투기의 프로펠러 소리, 문을 폭파하는 소리, 총성으로 가득한 이 영화의 마지막 35분은 별다른 대사 없이도 긴장감을 끌어낼 줄 아는 음향편집의 승리다. T 트리플 프론티어 Trifle Frontier 캐스린 비글로-마크 볼이 <허트 로커>를 끝낸 뒤 준비하던 영화. 남아공의 마약 범죄를 소재로 한 이 저예산영화의 제작을 파라마운트가 지체하자, 비글로와 볼은 <제로 다크 서티>의 전신인 <킬 빈 라덴>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U UBL Ussamah bin Ladin CIA 요원들은 오사마 빈 라덴을 UBL(Ussamah bin Ladin)로 불렀다. 회고록 <노 이지 데이>에서 마크 오언은 빈 라덴이 최후의 은신처에서 발각되었을 때 무력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UBL이 끝까지 저항했다는 미국 정부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진술이다. <제로 다크 서티>에서도 빈 라덴이 쓰러지는 건 한순간이다. 보이지 않던 그는 서방세계를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아보타바드 호화 은신처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빈 라덴은 주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V VS 어디까지가 영화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이에 <텔레그래프>는 ‘<제로 다크 서티>: 팩트 vs 픽션’이라는 주제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었고 그중 가장 흥미로운 차이는 네이비 실 요원의 증언에서 비롯됐다. 그의 말에 따르면 빈 라덴의 암살은 영화보다 훨씬 건조하게 진행됐다. 그를 저격한 뒤, 모두가 비명을 지를 뿐 영화에서처럼 오사마의 이름을 소리쳐 외칠 생각조차 못했다고. W 전쟁영화 War Film 폭탄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아드레날린을 분출했던 <허트 로커>의 폭탄전문가 윌리엄 하사(제레미 레너)를 기억하는가. <제로 다크 서티>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한 영화이며 <허트 로커>보다는 장르적인 재미가 덜한 작품이지만, 비글로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주는 스릴의 순수한 즐거움을 굳이 외면하지는 않는 영화다. <허트 로커>에 등장했던 사제 폭탄들이 고루한 문서와 사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마야의 선배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저기, 아부 아흐메드(빈 라덴의 접선책)가 네 아기인 건 아는데… 이제 탯줄 끊을 때가 됐어.” <제로 다크 서티>는 테러리스트로 이어지는 탯줄을 끊지 못하는 첩보중독자 여성 요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X X파일 X File “나는 시나리오작가로 이야기에 접근하되 마치 (전장에 나간) 리포터처럼 과제를 해야 했다”고 마크 볼은 말했다. 그가 <제로 다크 서티>를 통해 선보인 빈 라덴 은신처의 세부적인 모습과 이를 묘사하는 데 기여한 수많은 익명의 정보원들은 미국 언론이 풀어야 할 새로운 X파일이 되었다고 외신 매체들은 보도한다. Y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 Yet 모든 작전이 끝난 뒤, “어디로 가길 원하세요?”라는 비행사의 질문에 마야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생각이 없음을 깨닫는다. 이 장면이 마야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보여준다”고 주연배우 제시카 채스테인은 말한다. 미국과 중동의 테러전은 추적하고 죽이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전쟁기계’들을 낳았고, <제로 다크 서티>는 전쟁의 부속품처럼 소비되는 사람들을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Z 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 영화의 원제인 ‘제로 다크 서티’는 오전 12시30분을 일컫는 군사용어로, 하루 중 가장 어둡기 때문에 군사작전이 용이한 시간으로 알려졌다. 제목의 뜻대로 비글로의 신작 <제로 다크 서티>는 미국 첩보국의 가장 비밀스러운 임무를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고문 같은 전쟁의 추악한 이면을 완전히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전쟁의 본질 그 자체를 담아내려는 노력을 높게 평가할 만하다. <제로 다크 서티>는 애국주의와 적에 대한 증오로 무장한, 감상주의적인 전쟁영화에 냉소를 보내는 21세기 미국 전쟁영화 장르의 현재를 보여준다. 그 점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대통령의 일머리

초등학생이 된 아이 방을 창고가 아닌 방으로는 만들어줘야겠다 싶어 벽장부터 비우기로 했다. 문제는 이것이 엄청난 ‘도미노 효과’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꺼내 분류해서 넣을 곳을 보니 그곳에는 다른 짐뭉치가 있고 그 뭉치를 정리해 옮길 곳을 보니 그쪽도 사정은 간단치가 않고…. 으아악. 몽땅 쓸어버리는 게 나을 뻔했다고 여기며 집 한구석에 쌓아놓고는 이번 생애 저것들을 다 정리할 수 있으려나 노려보다가 가자미눈이 되어 애 입학식에 참석했다. 담임선생님 얼굴? 늦게 가서 잘 모르겠다. 전직 대통령께서는 잡념없이 바쁘게 살면 건강에 좋다는 ‘말씀’을 남기셨는데(그분이 바쁘게 산 덕에 많은 걸 잃은 분들이 들으면 건강까지 나빠질 지경이겠다) 몇날 며칠 잡념없이 바쁘게 집을 뒤집은 결과 허리는 욱신대고 팔다리는 후들거린다. 살림의 여왕들이 보면 코웃음칠 수준이지만 일머리 없는 나로서는 이렇게 수족이 고생한다. 새 대통령도 일머리가 부족하신 것 같다. 새봄맞이 ‘인사 도미노’에 너무 진을 빼신다.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내세운 것치고 참으로 답답하다. 당장 임명장 주거나 일 시켜도 될 자리는 방기하고 국회의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 탓만 하며 “비상 국정운영”을 들먹이는 것은 완벽주의의 폐단일까 몽니일까 아니면 ‘잡념’ 탓일까. 변화될 부처에서 일하는 한 친구는 요새 인터넷 서핑에 매진하며 괜찮은 혼수가구(십수년 전에 결혼한 니가 왜), 주꾸미 맛있게 하는 집(이건 도움됐다) 따위를 뒤지는 것으로 세월을 보낸다. 국방장관 후보자는 비록 예편한 신분이긴 하나 천안함 침몰사건 다음날 골프를 치고 순직장병 애도기간에도 골프를 쳤다. 연평도 포격사건 다음날에는 일본으로 온천관광을 다녀왔다. 보통 사람들도 텔레비전 속보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였다. 그에 앞서 현직(1군사령관) 시절에는 “군대 내 자살은 개인문제”라는 인터뷰를 했다. 자신이 책임지던 동부전선 최전방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뒤로 범정부적으로 병영문화 전반을 심각하게 진단하고 개선책을 찾을 때였다. 놀러다닌 것보다 더 개념없는 인식의 일단이다. 대통령이 내보일 강단과 결기는 싸고돌 사람과 내쳐야 할 사람을 가르는 일에 먼저 쓰여야 한다. 그게 일의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