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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웃픈 우리 영화의 날들

김태영 감독이 <58년 개띠 노총각감독 서울 위드 러브>라는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제목의 영화를 찍는다고 연락을 해왔다. <세계영화기행> 등 다수의 TV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독립프로덕션 인디컴미디어의 대표인 그는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면서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졌다. 몸 한쪽이 마비돼 지팡이 없이는 걷는 것도 불편한 몸. 가난하고 몸 불편한 노총각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고, 8월15일 크랭크인 현장에 <씨네21>을 불렀다. 영화의 정체도 궁금했고, 그간의 김태영 감독 얘기도 궁금했다.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찬 이야기를 전한다. 인디컴미디어 수상 경력 1993 <베트남 전쟁, 그 후 17년> 제29회 백상예술대상 TV비극부문상, 제20회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 1994 <카리브해의 고도, 쿠바> 제21회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 1995 <세계영화기행> 제23회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 1998 <생명시대1> 98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 비디오 부문 우수작품상 2000 <생명시대2> 2000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 비디오 부문 대상& 감독상 2001 <어머니와 아들> 제6회 베를린 국제 민속영화제 특별상 수상 2002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제39회 대종상영화제 4개 부문 수상, 제23회 청룡영화제 시각효과상 2006 <아버지의 나라> 2006 독립제작사협회 대상 2010 <천사의 아침> 2010 대한민국 신화창조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2011 <샹그릴라의 여자 우체부> 제5회 BCM 다큐 사전제작지원상 수상 2012 <바비> 제42회 지포니영화제 그리폰어워드 “누추하지만, 희망의 궁전입니다.” 딜쿠샤 2층 ‘뽕짝 아줌마’ 억순이의 방에 들어서자 김태영 감독이 신난 아이의 표정을 하고서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8월15일.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한 붉은 벽돌의 2층 양옥집 딜쿠샤에서 김태영 감독은 10년 만의 재기를 꿈꾸며 영화 <58년 개띠 노총각감독 서울 위드 러브>(이하 <58년 개띠>)의 첫 촬영을 시작했다. 공간이 주는 기운이 묘했다. 발을 뗄 때마다 삐걱 소리를 내는 마룻바닥은 90년 된 이 집의 역사를 그대로 웅변하고 있었다. 3.1 독립선언서를 태어난 지 하루 된 아들의 요람 밑에 숨겨 세계에 알린 UPI 통신사 기자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지었던 딜쿠샤. 지금은 그곳에 억순이를 비롯한 15가구가 살고 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합된 <58년 개띠>에 억순이는 희망을 상징하는 현실의 인물로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할 예정이다. 트로트 가수가 꿈인 억순이는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이른바 ‘고속도로 휴게소 앨범’을 제작했지만 제작비 1천만원이 무색하게 앨범은 찾는 이가 없어 반품 처리됐다. 캐스팅을 위해 억순이를 만난 김태영 감독은 “그거 사기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억순이는 이렇게 답했다. “그게 제 꿈인 걸요. 트로트 앨범 내고, 공중파에서 절 한번 불러주는 게.” 이날 억순이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노래 <고장난 벽시계>에 맞춰 여러번 빙그르르 춤을 추었다. 억순이의 콧잔등엔 땀이 맺혔다. 힌디어로 희망의 궁전, 이 상향, 행복한 마음을 뜻한다는 딜쿠샤. 억순이와 딜쿠샤의 기운을 듬뿍 받기 위해 김태영 감독은 이곳에서 크랭크인을 한 게 아니었을까. 반전의 리턴매치를 향해 딜쿠샤에서 촬영을 마친 10여명의 스탭들은 근처 교회 주차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도시락을 거의 비워갈 때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식사 시간 종료를 알리고 다음 촬영을 재촉하는 지나가는 비. 서울 성곽길에서 나풀거리는 치마를 입은 ‘박카스녀’가 노총각 김 감독을 유혹하는 장면을 찍은 뒤 스탭들은 다시 경복궁으로 향했다. 휴일이라 경복궁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궁에서의 촬영은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촬영 진행비도 따로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김태영 감독은 촬영비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이날 꼼수를 부려 몰래 촬영을 시도했다. 두명의 촬영감독과 김태영 감독만 경복궁으로 입장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만큼 김태영 감독은 <58년 개띠>에서 연출과 출연을 겸한다. 영화 주인공인 노총각 김 감독으로 변신한 김태영 감독은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관광객 틈에 섞여 근정전으로 뻗은 길을 묵묵히 걸었다. “장애인 연기만 자연스럽지 다른 건 어려워요.” 뙤약볕 아래서 그는 ‘왕의 길’을 세번 왕복했다. 걸음은 느렸다. 그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나중에 물었다. “내가 전생에 왕은 아니었을까, 상상했죠.” 서울에서 나고 자란 김태영 감독은 시간이 날 때면 자주 고궁을 찾는다.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 그는 경복궁, 창덕궁을 산책하며 조선의 왕들과 왕비들을 수시로 대면한다. 이번엔 아예 고종과 명성황후를 영화로 불러들였다.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와 <로마 위드 러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김태영 감독은 <58년 개띠>에서 과거로 훌쩍 시간여행을 감행한다. 고종, 명성황후,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그리고 이상과 금홍이 <58년 개띠>에서 노총각 김 감독과 만난다. <58년 개띠>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도 없고, 이야기를 한줄로 요약하기도 어려운 영화다. 굳이 정리하자면,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놓인 노총각 영화감독이 서울을 배경으로 상상 연애를 하고, 꿈을 꾸며 살아가는 이웃들을 만나면서 다시 의지를 다진다는 이야기다. 형식적으로는 다큐와 픽션, 현실과 판타지의 결합을 시도한다. 호기심과 모험심이 충만한 김태영 감독은 이 영화를 “몽상가의 짬뽕 프로젝트”라고도 했다. “평생 한번밖에 없는 기회인데, 망할 때 망하더라도 기왕이면 다 해보고 망하자(웃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항상 이렇게 최초로 하는 게 문제라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영화가 될 뻔했던 <미스터 레이디>를 제작하다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됐잖아요. 이번엔 제대로 반전의 리턴매치를 해봐야죠.” 영화라는 이름의 생존 확인 “뇌출혈로 쓰러지고 10년 된 지금이 최악이에요. 진짜 최악!”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 위치한 인디컴미디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도중 김태영 감독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웃으며 발신 자 이름이 뜬 휴대폰 바탕화면을 보여주었다. ‘**텔레콤 미납센터.’ 지금의 사무실을 10년 동안 유지해온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한때는 <베트남 전쟁, 그 후 17년> <카리브해의 고도, 쿠바> <세계영화기행> <아시아영화기행> 등 웰메이드 TV다큐멘터리 제작사로 유명했던 인디컴미디어였지만, 지금은 사무실 보증금 까먹은 지 오래요, 월세도 부득이 미뤄 낼 때가 다반사다. 어디 사무실만 그런가.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파트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그는 월세로 얻은 아파트에서 현재 3명의 남자와 동거 중이다. 한명은 별거 중인 기러기 아빠이고 두명은 이혼남이다. “이건 추태집합소나 마찬가지예요. (웃음) 빨리 각자 재기를 해서 헤어져야 할 텐데.” 경제적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를 받았던 일 등 김태영 감독은 숨기고픈 자신의 일상을 <58년 개띠>에 고스란히 노출한다. <괴물>과 <26년>을 제작한 영화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58년 개띠>의 시나리오를 보고 “더 뻔뻔해져야 한다”고 조언을 했단다. “어차피 (장애와 가난을) 드러낸 거 마케팅으로라도 활용하게 나보고 뻔뻔해지래. 그런데 장애인이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난 너무 싫어요.” 김태영 감독은 오른쪽 팔다리를 못 쓰는 3급 장애인이다. 서울예대 영화과 후배인 고 조명남 감독과 트랜스젠더가 된 종갓집 장손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영화 <미스터 레이디>를 준비하다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그렇게 됐다. 김태영 감독은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제작하기 전 조명남 감독과 구두로 <미스터 레이디> 제작을 약속한 상태였다. 소재도 장르도 너무 앞서간 탓에 주위에선 영화제작을 극구 만류했지만 김태영 감독은 약속을 지 키고 싶었다. 하지만 촬영이 반 이상 진행된 상태에서 결국 영화제작은 무산됐다. 출근길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3일 뒤 병원에서 깨어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6개월 뒤엔 낫겠지” 싶었단다. 지금처럼 무리없이 상대와 대화할 수 있게 된 것도 불과 3, 4년밖에 되지 않았다. “솔직한 얘기로, 장애인인 거 너무 싫어요.” 그럼에도 김태영 감독은 퇴원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불편한 몸을 질질 끌고 사무실에 나와” 영화며, 방송이며 다시 제작에 착수했다. “내겐 일 외엔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일에 빠져서 노는 게 진짜 즐거워요. 그 즐거움이 지금까지 나를 끌고 온 힘이 아니었나 싶어요.” 물론 돈 안되는 다큐멘터리 말고 돈 되는 상업영화를 제작해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2007년엔 조명남 감독과 함께 <대도 성학수>라는 영화를 준비했지만 그러던 중 조명남 감독이 암 선고를 받았다. 영화 역시 최종 계약 단계에서 무산됐다. 이후 <위대한 개츠비>라는 영화를 준비했지만 투자사 한곳이 발을 빼면서 꿈은 좌절됐다. 지인들에게 “5만원만 빌려줘” 하고 다녔던 게 그즈음이었다. 김태영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남들은 쉽게 누리는 걸 쉽게 누리며 살지 못했다. 그에겐 외로움을 함께 나눌 여자도 없고 가족도 없다. “엄마가 5명이었는지 6명이었는지 몰라요. 어릴 때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하면서 제 유랑생활은 시작됐어요. ”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음악다방에서 DJ로 활동하다 방송국에서 FD로 일하며 16mm영화를 만들고 서울예대 방송연예과와 영화과에서 공부를 마치고 인디컴미디어라는 독립프로덕션을 세웠다. “경제적으로 고통스러웠지만 16mm 독립영화를 만든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의 자기 확인이요, 방송이나 예술은 성적순이 아니란 것의 증명 작업이었고, 학력에 대한 반항이었다.” 책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에 김태영 감독이 직접 쓴 글이다. 이장호 감독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와 함께 제38회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됐던 <칸트씨의 발표회>(1987)나,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군 병사의 양심선언을 다룬 <황무지>(정부의 단속에 의해 상영되지 못했다)는 김태영이라는 존재를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인간을 바로 보는 것.” 김태영 감독은 이것이 다큐멘터리를 하게 된 최초의 동기였다고 한다. “꿈꾸는 데 나이가 어딨냐” 세상에 눈뜨게 해준 것이 다큐멘터리였다면, 김태영 감독의 외로움을 달래준 오랜 친구는 단연코 영화다. “영화는 꿈의 엔터테인먼트인 것 같아요. 영화를 보는 그 두 시간만큼은 진짜 행복하니까.” <58년 개띠>에서 노총각 김 감독과 후배 감독은 이 런 얘기를 나눈다. “맨날 꿈만 꿔서 어떡해요. 우리 꿈꿀 나이 지났어요.” “꿈꾸는 데 나이가 어딨냐.” 김태영 감독은 영화를 보며, 영화를 만들며 영화(榮華)를 꿈꾼다. 현재의 꿈은 “계속해서 꿈꿀 수 있게 <58년 개띠>가 성공”하는 거다. 더 소박하게는 무사히 “영화를 완성”시키는 거다. 목표로 한 제작비 1억원을 아직 다 모으지 못했다. 김태영 감독의 지인과 최용배 대표가 1천만원씩 투자한 상태다. 스탭들은 대부분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고, CG, 믹싱 등 후반작업도 후배들의 도움을 받기로 약속받았다. 9월2일부터는 크라우드펀드 사이트 ‘굿펀딩’(goodfunding.net)을 통해 제작비 모금을 시작했다. 총 30회차 일정으로 10월 말까지 촬영을 무사히 마치면, 영화는 내년쯤 극장에 걸릴 수 있을 것이다. “급하게 찍지 않고 천천히, 철저하게 촬영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영화가 잘 만들어지면 로카르노영화제에 출품할 욕심도 있고요.” epilogue 인디컴미디어 사무실을 방문했던 날 김태영 감독은 돌아서는 기자의 손에 한아름 책을 안겼다. <황무지>의 시나리오와 <칸트씨의 발표회> 팸플릿과 김태영 감독이 쓰거나 제작한 책들이었다. 그 뒤로도 김태영 감독은 기사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인디컴미디어에 관한 신문기사 스크랩이나 자신의 다큐 이력을 정리한 글들)을 수시로 보내주었다. 사무실에 빈손으로 들른 게 못내 미안해 “다음번엔 제가 밥 한번 사겠습니다” 했더니 손님의 지갑을 열게 하는 건 주인된 도리가 아니라고도 했다. 김태영 감독은 자신을 찾아주고 기억해준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하고 마는 사람이었다. “<58년 개띠>가 잘되면…”이라는 가정법이 현실이 돼 그의 빚진 인생이 빛 든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58년 개띠 노총각감독 서울 위드 러브> 배우 & 캐릭터 길용우(고종) 대한제국의 황제이자 비밀조직 ‘제국익문사’의 수장인 고종 역은 김태영 감독과 서울예대 선후배 사이인 길용우가 연기한다. 이번 영화에선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한 왕”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김태영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항상 좋아했다. 김 감독이 오랜 고통의 시간을 벗어나서 새로 일을 시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뭐라도 도와주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 진혜경(명성황후/와글녀) 진혜경은 고종의 사랑을 기다리는 비련의 명성황후와 와글밥집 사장인 와글녀, 1인2역을 맡았다. “영화 속 명성황후는 김태영 감독님이 생각하는 모든 로망의 집합체이다.” 시나리오 초고엔 명성황후와 김 감독과의 뽀뽀 신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명성황후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진혜경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단다. 박창희(순정효왕후) 순종효왕후는 고종의 며느리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후다. “옥쇄를 치마폭에 숨겨 나라를 지키려 한 온화하고 강단있는 왕후다. 그 모습에 김 감독이 반한다. 순종효왕후는 김 감독을 ‘낭군~, 낭군~’ 하고 부른다.” 참고로 박창희는 네일아티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럽에서 선정한 올해의 네일아티스트상을 수상할 만큼 대단한 실력자라고. 한초원(덕혜옹주) 고종의 막내딸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는 초등학교 5학년인 한초원이 연기한다.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다. 김태영 감독은 한초원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순간 ‘아, 덕혜옹주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첫 영화인 만큼 한초원은 덕혜옹주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단다. 조찬형(이상) 천재시인이자 제비다방 사장인 이상. 영화에선 진지한 모습보다 엉뚱한 모습이 강조될 것 같다고 한다. “상대 배역이 달샤벳의 아영이다. 여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게 이번이 처음인데, 아영이가 워낙 사랑스럽다보니 이상 역시 사랑스러워보여야 하지 않나 싶다.” 아영(금홍) 이상의 애인인 금홍은 달샤벳의 아영이 연기한다. “금홍은 이상의 여성관에 큰 영향을 끼친, 평양 최고 기생이다. 영화에선 이상에게 굴비를 사달라고 조르는 귀여운 인물로 등장한다.” 최근 아영은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영화 <노브레싱> 등에 출연하면서 연기의 재미를 만끽하는 중이다.

[신 전영객잔] 말(言)의 행로

<우리 선희>에 대해 “이번에 미친 짓 중 하나는 노래를 통째로 넣는 것”이라는 홍상수 감독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특집 ‘홍상수의 첫 경험’, <씨네21> 921호). 영화 안의 음악으로 세번 나오는 <고향>은 이미 알려졌듯, 1941년에 발표된 가수 이난영의 노래를 최은진이 다시 부른 곡이다. 그의 어떤 직관이 이런 시도를 하게 만들었는지 우리가 알 길은 없으나, 그간 홍상수의 음악에 친숙한 우리에게도 이 곡은 어딘지 과도하게 들린다. 물론 일차적으로 그 느낌은 그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근대가요가 흘러나오고, 그걸 부른 가수의 음색이 드라마틱하며, 무엇보다 이 노래에는 구체적인 가사가 있다는 점에 근거할 것이다. 애절하게 호소하는 가사를 더없이 애절하게 부르는 가수의 노래와 홍상수 세계의 조합에 대해 적어도 나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홍상수의 전작들에서 음악의 감흥은 음악 자체의 내용이나 개성이 아니라, 그 음악이 세계와 만나는 순간 빚어내는 낯선 감각에서 비롯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홍상수 영화에서 음악은 서사를 보충하는 기능으로 보는 이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 적이 없다. 홍상수는 우리 귀에 익숙한 클래식 음악들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황에 등장시켜 세계를 예상치 못한 차원의 감각지평으로 풍요롭게 확장하는 걸 즐겨온 감독이다. 혹은 그의 오랜 파트너인 정용진 감독이 연주한 단순하고 맑은 피아노 선율은 세계의 쓸데없는 것들을 눌러서 가장 투명한 순간을 살아나게 하는 또 하나의 독립된 세계였다. <우리 선희>에서 <고향>은 전작들의 음악들과 다르다. 앞서도 말했듯, <고향>이라는 노래의 특이성, 그러니까 음악의 구조와 내용도 다르지만, 그 느낌은 무엇보다 이 노래가 영화에 흘러들어오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인상과 더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음악의 정조가 영화 속 세계와 충돌하거나 접속하며 그 세계를 다른 차원으로 이행하고 도약하게 만들었던 전작들의 방식에서 음악이 영화세계의 표면과 부딪치며 만들어낸 감흥은 영화 속의 인물들은 모르는, 영화 밖의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체험이었다. 그런데 <우리 선희>에서 <고향>이 당황스러운 건 영화 속 인물들이 그 노래에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홍상수의 지난 영화들을 상기하면 이건 분명 낯선 광경이다. 우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지금 무언가를 듣고 있다. 그 노래가 디에게시스(diegesis) 내에서 나오는 것으로 설정되었으니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리 간단히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노래의 작동과 이에 대한 인물들의 기묘한 반응에는 보다 복잡하고 모호한 움직임이 있고, 그걸 물을 때, <우리 선희>에 대한 새로운 물음도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를 위해 <고향>이 흘러나오는 세 장면을 언급하려고 한다. 학교 앞 치킨 집에서 선희가 먼저 나가버리자, 취한 문수는 텅 빈 가게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그때 프레임 안으로 <고향>이 들려오고 문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프레임 밖 어딘가를 잠시 쳐다본 뒤 얼굴을 감싼다. 문수의 낙담스럽고도 우스꽝스러운 처지와 프레임 밖으로 향하는 문수의 갑작스러운 시선, 도무지 치킨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의 어색하지만 강렬한 조합도 잊기 어렵지만, 더 이상한 인상이 있다. 다음 장면에서 문수는 북촌의 골목을 걷고 있는데 이전 장면에서 나오던 노래가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이 노래의 위치는 어디일까. 치킨 집 어딘가에서 나오는 것 같았던 이 노래가 그대로 이어지며 북촌의 골목길에서도 들린다면, 이 노래는 영화 안에 존재하는 것일까, 밖에 존재하는 것일까. 혹시 이 노래는 문수를 따라다니는 환청이고 그렇다면 우리 역시 문수의 환청을 듣고 있는 것일까(이 노래가 ‘아리랑’에서 다시 나오자 문수는 재학을 향해 “이거 나 좀전에 들었던 노랜데, 진짜!”라고 흥분해서 말하지만 이 말의 뉘앙스는 어딘지 자연스럽지 않다). 문수가 노래를 듣고 있었던 게 아니라, 노래가 문수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까. 그렇다면 이 노래가 처음 흘러나오는 순간, 프레임 밖 어딘가를 돌아보던 문수의 시선은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대답은 불가능하다. 다만 나는 <우리 선희>가 전작들과 비교해 “시간이 혼동되지 않고, 꿈이 등장하지 않으며, 인물의 속마음이 들리지 않는”(‘아름답고 귀한 욕망의 원주운동’, 921호)다는 정한석의 지적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고향>의 괴이한 움직임과 그 안에서 반응하는 인물의 괴이한 행동, 시선이야말로 중층적이고 모호하며, 때로는 귀기어린 기운을 영화에 퍼뜨리는 활동이라고 느낀다. 그들은 음악을 보고 있다 문수와 재학이, 그리고 선희와 재학이 술집 ‘아리랑’에서 만나는 장면들 끝에도 이 노래가 나온다. 문수와 재학 사이의 삐거덕대는 대화의 끝에, 선희와 재학 사이의 애틋한 행동이 오가는 중에, <고향>은 정황상 ‘아리랑’의 주인(예지원)이 프레임 밖으로 나가 트는 노래로 그들의 공간에 흘러들어온다. 앞선 치킨 집 장면에서 문수가 프레임 밖으로 갑자기 시선을 이동하던 것처럼, 여기서도 인물들은 노래가 불쑥 끼어드는 순간, 동시에 화면으로 고개를 돌려 뚫어지게 응시한다. 말하자면 <고향>이라는 신파적인 노래가 마치 파도처럼 프레임을 삼켜버린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인물들의 시선은 이렇게 반복적으로 프레임 밖 어딘가로, 혹은 화면 어딘가로 빨려들어간다. 이 노래는 어디서 들려오는 것일까. 지금 이들은 무엇에 홀린 것일까. 일상적으로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도중 감동적인 노래가 흐를 때, 우리는 그것이 텔레비전에서 나오거나 라이브로 연주되지 않는 이상, 그 노래가 나오는 곳을 궁금해하며 쳐다보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장면들에서 인물들이 <고향>에 대해 보이는 무의식적인 반응은 분명 이상한 것이다. 그들은 들리는 걸 그저 들으며 흥에 취하는 대신, 보고 있다. 마치 거기 음악의 육체성이 있다는 듯이.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듣는 것을 그들도 듣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지금 그들은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향>이라는 음악의 혼령은 대체 프레임 밖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그 프레임 밖은 여전히 ‘아리랑’이라는 시공간일까. 거기에는 다른 차원의 시공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다소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물음의 연쇄지만, 내게 이 장면들은 그런 질문의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게 하는 충격을 안겨준다. 홍상수의 영화들을 보며 나는 프레임 밖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에 이렇게 사로잡혀본 적이 없다. 영화 안에서 유일하게 이 노래를 듣지 못한 최 교수에게도 이와 유사한 순간이 있다. 이 순간에는 <고향>이 아니라 정용진의 피아노 선율이 영화 밖에서 흐른다.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며 술을 마신 선희와 최 교수는 다음 숏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골목을 걷는다. 선희는 최 교수를 껴안고 최 교수는 그런 선희의 손을 풀었다가 그녀의 손을 다시 잡고 프레임 밖으로 급하게 나가버리는데 이후 이들의 행로는 생략된다. 술에 취한 그들의 걸음걸이와 프레임 밖 어딘가로 시선을 빼앗긴 듯한 최 교수의 표정, 어딘지 우습지만 간절한 제스처들이 이 순간에 진귀한 리듬을 부여한다. 물론 이 숏의 내용을 설명하기는 쉽다. 최 교수는 반짝이는 모텔의 불빛을 보고 그쪽으로 황급히 걸음을 옮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 멀리 어딘가로 던져지는 최 교수의 몽롱하면서도 결기어린 시선과 둘의 세세한 행동의 리듬은 여전히 나로 하여금 이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보이는 것들의 충만한 표면들로 구조화되어 거기 감응하게 했던 홍상수의 전작들에서 우리가 느껴본 적 없는 것들이 <우리 선희>에서는 우리를 건드리는 것 같다. 홍상수의 이전 작품들에서는 ‘보이는 것’들, 바꿔 말하면 상투적인 것들이 너무 명징하게 드러나거나 인물들이 보고 있는 것들을 카메라가 정색하고 쳐다보며 그 정체를 다시 보이게 하면서, 오히려 모호함과 생경함을 우리에게 안겼다면(남산이나 성곽이나 동상들을 떠올려보라), 이 영화에서의 모호함과 생경함의 근원은 다르다. <우리 선희>에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걸 그들만 보게 함으로써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만 보게 함으로써 그런 기운을 자아낸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동안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이끌리는 경험은 적어도 내게는 처음이다. 꿈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문이 모호하거나(<북촌방향> <다른나라에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인물들의 동질성이 모호하거나(<옥희의 영화>), 시간의 축이 모호한(<하하하>) 전작들이 보이는 것들의 명확함을 흔들며 구조적인 신비를 드러냈다면, <우리 선희>에서 인물의 등장과 퇴장, 시간의 흐름은 “굵고 큰 덩어리들이 몇개 안되면서 이어”진다는 홍상수의 표현처럼 단순하고 단단한 편이다. 대신 그 ‘큰 덩어리’ 각각에 리듬을 부여하는 덩어리 내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작용, 영화적 요소들의 움직임이 중요한 것 같다. 전작들이 안에서 더 안으로 갈라지며 층위를 쌓아갔다면, 이 영화는 안과 밖의 호흡으로 리듬을 만든다. 누군가를 부르고 그 부름에 화답하는 목소리로 인물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순간을 이 영화는 프레임 안팎을 오가는 시선과 목소리의 운동을 통해 종종 신기한 리듬으로 전환해낸다. 이를테면 문호가 재학의 집 앞에서 그를 부를 때, 유사한 방식으로 최 교수가 재학을 부를 때, 두 인물은 하나의 숏에 담기지 않는다. 우리는 재학의 집 안에서 창가에 얼굴을 빼고 선 재학의 등을 보며 창밖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문호의 목소리를 듣는다. 혹은 골목길에 선 최 교수가 재학의 창가를 올려다보는 광경에 울려퍼지는 재학의 목소리를 듣는다. 말하자면 두 인물이 동시적인 시공간에 존재하며 시선과 목소리를 교환한다는 것이 영화적 사실임에도, 여기에는 이상한 머뭇거림과 엇갈림의 간극이 있다. 프레임 안으로 불쑥 밀려 들어오는 보이지 않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밖으로 향하는 시선의 이미지는 서로 다른 층위에 존재한다는 인상을 준다. 한 사람의 목소리와 다른 한 사람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실은 두 사람의 숏이지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어딘지 불균형한 움직임으로 지탱되는 이 장면들은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다른 장치 없이 오직 영화적인 요소들의 움직임으로만 정서적 낯섦과 묘한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말의 세속 안에서 <우리 선희>는 그러므로 어딘가로 던져지고 돌아오는 시선, 소리, 말이 중요한 영화이며, 그 던져짐과 돌아옴의 방향과 타이밍, 즉 그 행로가 기묘한 영화다. 앞서 예를 든 장면들에서는 물론이고, 이 영화에서 선희를 중심으로 돌고 도는 말의 궤적이 그렇다. 내 앞의 당신에게만 해당되는, 당신만을 매혹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말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을 향해 끊임없이 반복될 때, <우리 선희>는 말의 진위나 출처보다 그것의 자율적 활동의 활기에 더 매료된 것처럼 보인다. 그 행로에서 말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그 말의 톤이, 말의 뉘앙스가, 그리고 말이 이끌어내는 반응이 어떤 미묘한 차이의 리듬을 발생시키는지 보고 싶어 하며, 그 각각의 차이가 불러일으키는 충만감, 간절함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선희>에서 반복되는 말의 내용은 (단 한 사람에게) 유일무이하지 않지만, 말이 던져지는 순간의 공기, 말의 행로가 파놓은 기억들은 언제나 유일무이하다. 선희와 세 남자의 유사하지만 다른, 수평적으로 나열된 만남 혹은 확정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생략하는 관계, 그러니까 홍상수가 말한 “굵고 큰 덩어리들”을 붙잡으며 종종 거울처럼 서로를 비치게 하는 축은 선희라는 실체이기보다는 선희와 함께 생성되는 말의 행로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 말들이 반복되며 만들어내는 행로는 선희와 세 남자들 사이에서 우연이 작용한 결과지만, <우리 선희>라는 세계에 최소의 구조를 부여하는 영화적 필연이다. 나는 <우리 선희>가 실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말의 한계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세간의 평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선희>는 오히려 그 실체라는 것이 말로 따라잡을 수 없는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말의 작용, 행로와 함께 변하는 것이라고 믿는 영화에 더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선희는 세 남자의 선망을 받으면서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끝내 말로 표현 불가능한 기이한 여인이 아니라, 말의 행로 속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알고 싶어 하길 멈추지 않는 여자다. 말의 내용에는 개의치 않지만, 말의 행로를 민감하게 따라가며, 말이, 소리가, 음악이 들리는 곳을 쳐다보고 거기 매번 달리 반응하는 인물들이 여기 있다. 우리는 그들이 거기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끝내 알지 못하며, 영화 또한 모르는 것 같다. 다만 그 행로를 붙잡고 기억하며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 같다. 결국 말은 다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해버리는 건 홍상수의 방식이 아니다. 말의 상투적 파편들로 어떻게 질문을 꺼뜨리지 않으면서 그 과정에서 아주 잠깐 스쳐가는 투명한 한순간을 건져낼 것인가. 말의 세속 안에서 그 세속을 꿰뚫는 맑음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 선희는 떠났고 카메라는 고궁의 사라진 무언가의 흔적을 들여다보는 남자들을 멀리서 어리석고 귀여운 작은 개미처럼 찍었다. 선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안고 말의 행로를 따라온 결과가 결국 저 세 남자들처럼 지금은 텅 빈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것이라 해도 이 마지막 장면의 찡하게 아름다운 정취와 깊이는 그 행로가 더없이 소중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만 같다.

진정한 예언자 <어떤 여인의 고백>

멀리 혹은 가까이 들리는 폭탄 소리. 전쟁과 내전으로 점철된 아프가니스탄의 한 마을에서 군인과 반군은 밤낮으로 지배와 수복을 반복한다. 식물인간 상태의 남편(하미드 자바단)을 간호하는 여자(골쉬프테 파라하니)는 폭격 속에서도 남편을 떠날 수 없다. 사랑하는 방법도 이유도 모르는 남편에게 여자는 지난 결혼 10년간 그저 고깃덩어리였을 뿐. 사랑하지 못하는 남자는 전쟁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 전쟁 영웅 출신 남편은 어이없는 다툼에 휘말려 식물인간이 되었고 모두 전쟁을 피해 떠나고 없다. 폭격과 강간의 위협을 느끼며 남편을 간병하던 여자는 누워 있는 남편을 ‘인내의 돌’로 삼기로 한다. 이모가 들려준 민담에 의하면 인내의 돌에 비밀을 털어놓으면 끝내 산산이 부서지면서 비밀을 가진 자의 고통을 해방시켜준다고 한다. 대담히 자신의 비밀과 바람을 말하던 여자는 처음에는 악령에 홀린 모양이라며 자기 검열을 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억눌린 감정과 분노, 욕망이 토로되자 점차 해방감을 느껴간다. 그리고 우연히 말 더듬는 군인과 불가피하게 만남을 지속하게 되면서 자신이 진짜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홀린 채 진리에 도달하는 자가 선지자라면 여자야말로 진정한 예언자일 것이다. 전쟁 영웅이 아니라 여성들의 깨달음 속에 진리는 더 가까이 있다. 영화는 폭력적이고 성차별적인 지하드의 명분보다 여성적 성찰과 에로스의 포용력에 방점을 두었다. 감독 아티크 라미히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프랑스 망명작가다. 조국의 상황을 알리기 위한 매체로 영화를 선택하여 소르본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페르시아어로 쓴 자신의 첫 소설 <흙과 재>(2000)를 영화로 만든 이래 영화감독, 텔레비전 드라마 감독,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어로 쓴 첫 소설인 <인내의 돌>로 2008년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으며, <어떤 여인의 고백>은 이를 영화화한 것이다.

[마이클 더글러스] 탐욕의 화신이 돌아왔다

마이클 더글러스가 연기한 가장 강력하고 힘 있는 인물 중 하나가 <월 스트리트>(1987)의 주인공 고든 게코다.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매혹적인 말로 이 영화를 보았던 당대의 출세 지향적 젊은 관객을 무한정 자극했던 월 스트리트 금융가의 악덕 증권 브로커, 그러나 끝내 영화 속 자신은 파멸을 면치 못했던 인물. 더글러스는 이 인상 깊은 악역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손에 쥐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때였다. 20년쯤 지나 속편에 해당하는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2010)가 제작되었을 때 더글러스는 동일 인물로 다시 출연한다. 감옥에서 출소한 고든은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밑천으로 강연하고 책을 팔며 산다. 강당에 학생들을 앉혀놓고 월 스트리트의 병폐에 관해 이것저것 짚어가던 고든은 연설의 마무리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자 비장의 비유 하나를 꺼내든다. “그런 건 암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서 이겨내야 할 질병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요? 세 단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연단 위에 놓인 자신의 책을 집어들며) 내, 책을, 사세요!” 이 능청스러우면서도 유머러스한 말솜씨가 돋보이는 장면을 찍을 때만 해도 더글러스 자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시기에 그가 구강암 말기이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때를 맞았다는 사실을.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의 홍보 시즌이 다가왔을 즈음 더글러스는 병에 대해 알게 됐고 <데이비드 레터먼 쇼>에 나와 이를 공식 인정했으며 이내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하지만 복귀는커녕 이미 말기에 이르렀다는 암을 이기는 것초차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1970년대 초에 데뷔했고 2000년대에는 <트래픽>이라는 걸출한 대표작도 있었지만, 사실 더글러스의 전성기는 <로맨싱 스톤>(1984), <위험한 정사>(1987), <월 스트리트>, <블랙 레인>(1989), <원초적 본능>(1992), <폴링 다운>(1993), <대통령의 연인>(1995)을 거치던 1980년대 초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였다. 매력적인 쾌남에서 비열한 악당 그리고 팜므파탈에게 협박받는 유약한 남자에 이르기까지, 그는 말 그대로 한 시대의 멋진 남자주인공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그의 이름을 알린 가장 큰 사건은 연기가 아니라 그의 사생활, 캐서린 제타 존스와의 결혼이었고 시간은 정처없이 흘러갔으며 그러는 사이 2010년에 발견된 암은 배우로서 그의 연기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반드시 병을 치료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던 그가 약 2년 만에 완치를 선언하고 정말 돌아온 건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독특하다고 기록될 만한 인물 리버라치로 말이다. 더글러스에게 리버라치 역을 제안했던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훗날 고백했다.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마이클 더글러스는 정말 훌륭한 연기를 해냈다. 그런데 나도 내가 그때 왜 리버라치 역할로 더글러스에 꽂혀 있었는지는 설명을 잘 못 하겠다.” 더글러스와 리버라치,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조합이 직감적으로는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소더버그가 이 역할을 제안했을 때 더글러스가 했던 첫 반응이야말로 리버라치와 더글러스의 만남이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제안을 들은 더글러스의 반응은 이거였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나를 놀리려고 이러는 건가?” “탐욕은 좋은 것” 리버라치가 누구여서 그랬던 걸까. 그는 1970, 80년대를 풍미한, “레이디 가가와 마돈나와 엘튼 존 이전에 존재했던 위대한 쇼맨”이었다. 피아니스트가 검은 정장을 입으면 피아노 색깔과 혼동되어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려한 흰색 의상을 입기를 고집했고 치렁치렁한 금반지를 손가락에 끼고서도 기가 막힌 연주 기교를 선보였으며 여는 쇼마다 거의 언제나 전회 매진되는 쇼맨십의 제왕이자 국제적인 인기 스타였다. 한편으로 그는 시종일관 게이라 의심받으면서도 그를 두고 게이라는 기사를 낸 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하고는 평생 동안 운명의 여인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순수남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곤 했던, 게이였다. 더글러스도 그를 기억한다. “우연히 그를 두세번 본 적 있다. 아버지(고전기 할리우드영화의 대표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팜스프링스의 리버라치 집 근처에 집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는 쇼맨십에 매우 유능했다. 그의 인기는 거의 텔레비전 쇼의 인기 덕분이었고 그 쇼를 통해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됐다. 그는 아마도 카메라를 보고 직접 이야기한 첫 번째 사람이었을 것이다. 관객을 자신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의 대단한 능력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퍼포먼스 스타일과 자신의 공연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쇼를 사랑한 남자>가 엔터테이너로서 리버라치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인물이었는지에 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보다는 리버라치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 혹은 리버라치의 가장 중요한 연인이었던 스콧 도슨(맷 데이먼)과의 들끓는 애증이 이 영화의 주된 관심사다. 젊고 순진했던 개 조련사 스콧은 우연히 리버라치와 만나고, 리버라치가 지닌 매력과 부에 빠져들어 그의 연인이자 집사이자 아들이 된다. 따라서 <쇼를 사랑한 남자>는 리버라치의 사랑과 욕망의 러브 스토리로 온통 가득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더글러스는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너는 단순히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완벽히 리버라치처럼 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균형을 유지해야만 하며 반드시 편안해야 할 것이며 맷 데이먼에게 정말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글러스는 자신의 그 다짐을 잘해낸 것 같다. 스콧을 유혹하고 사랑하는 그날들의 리버라치는 더없이 다정하고 뜨겁게 표현됐으며, 스콧에게 등돌리는 그날들의 리버라치는 더없이 차갑게 표현됐다. 언젠가 영화사가인 데이비드 톰슨은 더글러스가 맡아온 인물들에 관하여 “유약하고 부덕하며 탐욕스러운”이라는 묘사를 동원한 바 있는데, 대개 맞는 말들이다. 아니 거기에 배우 더글러스의 매력이 있었다. <쇼를 사랑한 남자>의 리버라치 역시 그 몇 가지 묘사에 충분히 걸맞을 만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것 한 가지를 꼽자면 탐욕스러움이다. 더글러스가 리버라치 역할을 맡기로 한 것은 암 덩어리가 발견되기 이미 수년 전에 계획된 일이었으니 그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쇼를 사랑한 남자>는 더 빨리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암 투병 이전과 이후의 영화는 과연 같았을까. 리버라치의 육체의 쇠약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꺼지지 않는 성애적 탐욕이라는 대조가 지금보다 더 잘 그려질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더글러스가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취한 자세는 전에 없는 과감함이다. 그는 고도의 양식화된 연기 퍼포먼스를 시도했고 또 성공했다. 과감하게 꾸민 것이다. 하지만 그 꾸밈보다 더 중요한 시도는 과감하게도 숨기지 않은 것이다. 더글러스는 자신의 병마, 그걸 이겨내기 위한 독한 치료가 남긴 육체의 쇠약함을 숨기지 않고 여기저기 드러낸다. 그 때문에 노년에 접어든 리버라치의 성애의 탐욕은 오히려 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리버라치라는 인물로 돌아온 더글러스의 영화적 복귀의 행로도 그때 칭송할 만한 것이 된다. 더글러스는 이미 2013년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어쩌면 상복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르며 인간 역정의 드라마를 높이 사는 오스카에까지 그 흐름이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상을 주고 안 주고는 심사하는 사람들의 소관이리라. 다만 더글러스의 연기 인생과 이 화려한 복귀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역시나 그에게 “탐욕은 좋은 것”이다. magic hour 그 무언가가 무엇인 순간 마침내 스콧 도슨이 리버라치의 집에 눌러살게 되자 스콧을 시샘하는 이 집의 집사는 너도 그의 수많은 애인 중 하나이며 곧 버림받을 것이라고 모욕을 준다. 스콧이 리버라치를 찾아가 집사의 행동에 대해 불평을 하려던 찰나, 그는 리버라치가 숨겨온 깜짝 놀랄 만한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천연덕스러운 리버라치는 “나는 자기 속상해하는 얼굴 보기 싫은데. 자기가 슬픈 얼굴을 하면 나까지 슬퍼진단 말이야. 자기가 몇달간 날 행복하게 해줬는데 난 자길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 거잖아. 나한테는 자기 행복이 전부야 스콧”이라며 이제부터 자신의 중요한 ‘그 무언가’를 관리해주는 사람으로 곁에 남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우스꽝스럽고도 기괴한 순간이 <쇼를 사랑한 남자>의 매직 아워다. 하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린 아직 말할 수 없다. 그 순간의 난처함을 즐기는 건 당신의 권리이니까.

[해외뉴스] 봄은 언제 오나

할리우드 중원에 또다시 한파가 불어닥쳤다. 10월1일, 파라마운트픽처스(이하 파라마운트)의 최고운영책임자 프레더릭 헌츠베리가 LA 본사 및 해외 지사 직원 전체에게 보낸 메모를 통해 대규모 정리해고 계획을 밝혔다. 메모에 따르면, 정리해고 주요 대상은 재무, 인사, 정보기술, 국제 홈미디어 배급, 법률, 마케팅 부문이 될 것이며, 그 규모는 총 110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파라마운트는 지난 2008년 12월에도 전 부문에 걸쳐 100여명, 100주년이었던 2011년에도 200여명을 정리해고한 바 있다. 이번 파라마운트의 몸집 줄이기는 올해 특히 부진했던 박스오피스 성적이 주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파라마운트가 “박스오피스 성적 면에서 어려운 한해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좀비 블록버스터 <월드워Z>가 전세계에서 5억3900만달러를 벌어들이고도 겨우 적자를 면했고,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액션범죄물 <페인 앤 게인>과 제레미 레너 주연의 동화 원작 액션 블록버스터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도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다. 한편 파라마운트의 모회사인 비아컴의 재정 상태도 어둠 속이다. 필름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수입만 매년 18%씩 감소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올해 3분기까지는 총 68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덧붙여 극장부문도 9%, 홈엔터테인먼트는 무려 34%, TV라이선스 부문도 12% 수입이 하락했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정리해고 소식을 전하게 된 프레더릭 헌츠베리는 “변화는 언제나 힘들지만… 우리는 이런 변화를 통해 사업의 속도와 유연성을 높이고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의 기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누구도 섣불리 낙천적인 전망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지난 5년간, 파라마운트 외에도 대부분의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지속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왔다. 해마다 영화제작편수, 평균 제작예산이 감소해왔음은 물론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 8월 디즈니•ABC 텔레비전 그룹도 175명 규모에 달하는 정리해고를 준비 중이라 밝혔다. 장기적인 경제난의 여파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할리우드의 비상구는 요원해 보인다.

[CINE CHOICE] <기노시타 게이스케 이야기> Dawn of a Filmmaker: The Keisuke Kinoshita Story

하라 케이이치 | 일본 | 2013년 | 96분 | 아시아영화의 창 OCT07 CGV3 16:00 기노시타 게이스케는 구로사와 아키라와 같은 해에 데뷔한 동세대이며 <스물 네 개의 눈동자>,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 같은 대표작을 무수히 남긴 일본 영화의 거장 감독이다. 제목이 <기노시타 케이스케 이야기>라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삶 일부분을 소재로 한 극영화다. 1945년 4월 전쟁의 막바지, 도쿄 인근에 크나큰 공습이 지나고 난 직후. 집으로 잠시 돌아온 영화감독 기노시타는 어머니가 병석에 누웠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려고 한다. 하지만 차를 구할 수 없어 손수레에 싣고 머나먼 길을 떠난다. 전쟁 중에 아들이 아픈 어머니를 손수레에 싣고 안전한 땅에 이르기 위해 천신만고를 겪는 이 며칠간의 이야기를 감독은 한편으론 동화처럼 한편으론 텔레비전의 단막극처럼 소박하게 연출했다. 그의 영화들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의 삶의 한 시기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하지만 감독의 영화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장면도 있다. 일본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만들었던 전쟁홍보영화 <육군>(1944), 그러나 사실상 전쟁을 예찬하기보다는 전쟁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드러내는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TIP 주인공 기노시타 게이스케 역할을 배우 카세 료가 하고 있다.

[런던] 영국이 사랑한 여자 그러나…

지난 9월20일 나오미 왓츠 주연 <다이애나>가 공개됐다. <다이애나>는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1995년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뒤부터 파리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기까지 2년여를 그린 작품이다. 화려해 보이는 생활과 달리 가정불화로 인해 외롭고 쓸쓸한 생활을 보내던 다이애나가 파키스탄 출신의 외과의 하스나트 칸을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안타까운 이별을 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왕세자비의 비운의 사랑과 죽음을 담은 내용으로 제작 초기부터 화제가 됐던 작품임에도 <다이애나>에 대한 영국인들의 평가는 냉담했다.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에서 62만3천여파운드의 수익을 올리며 가까스로 5위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여름영화 성수기 시즌이 아님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다소 실망스러운 수치다. 또한 이 작품은 영국의 실존 인물들을 다뤘던 다른 작품들의 개봉 첫주 수익에서도 많이 뒤처졌다. <철의 여인>의 경우 개봉 첫주 약 215만파운드를 벌어들였었다. 사실 이같은 <다이애나>의 저조한 성적은 지난 9월 초 언론에 영화가 처음 공개되면서 예상됐던 결과다. 프리미어 행사를 통해 영화를 처음 접한 영국 내 유수의 언론들이 이 작품에 대해 내린 평가는 처참하리만큼 냉혹했기 때문이다. 당시 <더 미러>의 평론가 데이비드 에드워드는 “지루하고 값싼 로맨스”라 평했고,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바꿀 수 없는 사실은 1997년 끔찍했던 사고로 사망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2013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고 평했다. <더 텔레그래프>의 팀 로비 역시 “올해 최악의 영화”라고 지적했다. 다이애나를 연기한 나오미 왓츠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었다. 주요 일간지는 입을 모아 나오미 왓츠의 노력과 연기력은 인정하지만 실제 다이애나 왕세자비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고 평했다. 물론 모든 언론이 <다이애나>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데일리 메일>은 “많은 단점을 가진 작품이기는 하나 올해 반드시 봐야 할 작품 중 하나”로 이 작품을 꼽았고, <이브닝 스탠더드>는 “다이애나비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충분히 애절하게 표현했다”고 전했다. 9월 말이면 2주차를 맞이할 <다이애나>가 대중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결과에 영국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구체제와 신문물의 대립 <텔레비전>

방글라데시의 미타누푸르. 이곳에선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비롯해 신문이나 잡지 속 사진을 보는 행위마저 모두 금지돼 있다. 극심한 이슬람주의자인 미타누푸르의 촌장 아민 파토와리(샤히르 카지 후다)는 유대인이 만든 ‘텔레비전’이란 매체를 국가 차원에서 반대해야 한다는 원칙의 소유자다. 그런 촌장에게 사업을 하는 아들(찬찰 초두리)이 있다. 그는 아름다운 코히누르(누스랏 임로세 티샤)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이 젊은 연인은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휴대전화가 필요하다. 현재 둘의 사이는 회사직원 모즈누(모샤라프 카림)가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이어가고 있다. 이후 아들은 아버지를 설득해서 휴대전화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하나를 가지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차츰 여러 통로를 통해 연인들의 소통경로는 다양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텔레비전 한대가 마을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의 매력에 빠져들고, 촌장은 더 강력하게 감시하기 시작한다. 강으로 둘러싸인 탓에 부두를 통해서만 문물이 반입되는, 가상의 시골을 배경으로 한 풍자극이다. 제목이 이르듯 매체 자체의 속성이 영화 속 주제가 된다. 구체제와 신문물은 대립되며, ‘술, 전화, 인터넷’ 등은 죄다 서구문물의 중독성에 대한 메타포로 쓰인다. “속이는 것과 속는 것은 둘 다 죄이며, 그래서 소설과 영화가 해롭다”라는 대사도 마찬가지다. 세련된 촌극은 아니지만 프레임과 인물관계 등이 세밀하게 구조화된 영화다. 따라서 극은 필연적 결말을 향해 유연하게 흘러간다. 젊은이들이 올라탄 환상의 말을 비난하던 촌장이 그 자신도 상상의 말에 올라타는 순간, 그래서 절망보다 웃음이 새어나온다. 이 유쾌한 소동극의 연출은 방글라데시 아방가르드 영화그룹 ‘차비알’ 소속의 모스타파 사르와르 파루키 감독이 맡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던 <텔레비전>은 그의 네 번째 장편 극영화이다.

[베를린] 같고도 다른 질문

지난 10월 개봉한 에드거 라이츠 감독의 <또 다른 고향>(Die andere Heimat)이 화제다. <또 다른 고향>은 올 베니스영화제에서도 선보이며 호평받았다. 독일 언론들은 라이츠의 이번 영화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다른 고향>은 원래 텔레비전 드라마인 <고향>(Die Heimat) 3부작의 프리퀄이다. 1984년부터 2006년에 걸쳐 방영된 라이츠의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 <고향>은 독일인에게 친숙하다. 이 드라마는 총 60시간에 이르는 분량으로 2차대전 뒤 독일에서부터, 68세대의 독일 대학가, 독일 통일 이후 시기까지를 아우른 대서사시다. 감독의 자서전적 이야기라 더욱 흥미롭다. 또 독일 모젤 지방의 작은 마을 샤바흐에 사는 주인공 헤르만 시몬의 가족사이자 독일 현대사를 체험할 수 있는 사회연구라 할 만하다. 네 시간 러닝타임의 <또 다른 고향>은 텔레비전 <고향> 시리즈의 주인공 헤르만의 증조부 야콥 시몬의 이야기다. 라이츠의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됐는가?”라는 끊임없는 물음은 1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징한 흑백화면에 유려한 카메라는 질척이는 땅에 닭들이 돌아다니고, 골조가옥들과 우물이 서 있는 가난한 마을로 관객을 이끈다. 말굽대장간 집의 작은아들 19살 야콥은 아버지 일을 돕기보다 몰래 숨어 책을 읽으며 몽상에 잠기기를 좋아하는 소년이다. 책 읽는 것을 들키면 야단치는 아버지를 피해 숲으로 도망가 이곳저곳을 쏘다닌다. 영화의 배경은 3월 혁명 이전 시기인 1842년부터 1844년이다. 당시 독일을 풍미했던 먼 곳을 동경하는 낭만주의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야콥은 남미 인디오에 관한 책에서 그들의 언어를 독학하며 브라질에 이민 가는 꿈을 품고 있다. 때마침 마을에 기아와 돌림병이 돌고, 결국 브라질로 이민 가는 이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야콥과 주변인들 그리고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당시의 시대정신과 인물의 심리상태가 ‘지금, 여기’로 소환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라이츠 감독은 60년대 뉴 저먼 시네마 출발 신호탄이 됐던 오버하우젠 선언의 주역 중 한명이다. 올해 81살인 그는 독일 전후 역동의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텔레비전 시리즈 <고향>이 감독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자아 찾기’였다면, 라이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조상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았을까’로 질문을 넓혔다. 결국 나는 그들로부터 온 존재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