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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9404)

게임의 주인,<워크래프트 3 프로즌 쓰론>을 둘러싼 추문들

식자우환.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더 좋은 일이 징그럽게도 많다. 궁금한 걸 참지 못해 이리 찔러보고 저리 들춰보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것이다. 그렇게 알게 된 불쾌한 사실들은, 겉보기에는 고결하고 감동적이고 멋들어지고 번쩍번쩍한 것이었을수록 더 아프게 가슴을 후벼판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저자가 파렴치범이라고 감명깊게 읽은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냉정하기가 힘들다, 최소한 나라는 사람은, 그 책에 홀딱 반해 수선을 떨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바야흐로 패키지 게임의 암흑기에 몇 안 되는 기대작 중 하나가 <워크래프트3>의 확장팩인 <워크래프트 3 프로즌 쓰론>이었다. 출시 전부터 소문이 무성했다. 그런데 대부분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워크래프트>는 블리자드가 내놓은 최초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시리즈다. 국내 PC 게임시장에서도 열 손가락에 들 정도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무후무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뒤를 이었고, <워크래프트>는 판매로 보나 팬들의 애정으로 보나 어딘지 뒷전으로 밀려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워크래프트3>가 출시되었다. 완성도가 상당했다. 더 깊어진 세계관에 풍부해진 스토리가 수준 높은 그래픽으로 매끈하게 표현된다. 올드팬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이머,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타크래프트>로 게임에 입문한 사람들은 이 게임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워크래프트3>의 최종 판매량은 <스타크래프트>의 1/4 수준에 머물렀다. 적은 건 아니지만 많지도 않다. 그래도 워낙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로 이어지는 제작사 블리자드의 지명도가 높다보니 이번에 나올 확장팩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3>를 충분히 팔지 못한 게 기존 유통사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반면 유통사 입장에서는 확장팩에까지 이어지는 과도한 로열티 요구가 불만족스러웠다. 이 와중에 새로운 유통사 후보들, 그리고 각종 브로커들이 출몰했다. 그 다음은 뻔한 수순이다. 스포츠신문이 부럽지 않은 각종 지저분한 소문이 난무했고, 게임은 출시도 되기 전 만신창이가 되었다. 결국 확장팩의 유통권은 다른 회사로 넘어갔다. 떠돌던 소문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고 있는 것은 바람뿐이다. 하지만 원본과 확장팩의 유통사가 바뀌는 것은 일반적인 게임 유통 관행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게임은 여전히 뛰어나다. 이미 예기되었던 것처럼 아서스는 권력욕에 눈이 먼 폭군이 되어 세상에 던져넣을 절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자신과 같은 욕망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는 다른 종족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아마 모를 것이다. 새로운 영웅들이 새로운 마법을 가지고 폭력과 절망 속으로 뛰어든다. 본편을 즐긴 사람이라면 확장팩 역시 반드시 해봐야 할 것이다. 게임 속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것과 게임 밖에서 게임을 보는 것이 많이 다를 때 게이머는 순간적으로 정신분열을 일으킨다. 아무리 뛰어난 게임시스템이라도, 게임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는 빛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면 필요 이상으로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 원망스러워진다. 하지만 알고 있다. 세상 어느 것도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원망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은 물론, 현실을 전복하지 못할 바에야 판타지에서 위안이라도 얻고 싶은 얄팍한 마음 때문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

음악은 이렇게 영화를 완성한다,<이웃집 토토로>

매년 여름 이맘때쯤 되면 생각나는 애니메이션이 하나 있다.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고 걸작 <이웃집 토로>가 그것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아빠와 두딸이 털털거리는 용달차를 타고 전형적인 농촌에 이사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만화영화는 몸져누워 있는 엄마를 향한 어린 두 자매의 그리움, 도쿄 어느 대학의 교수인 아빠의 말없는 헌신, 그리고 천진한 아이들의 꿋꿋함과 용기를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의 미덕은 겉으로 과하게 감정표출을 하지 않으면서도 한 가족의 애환을 눈물겹게 그려내면서 거기에 일본의 전통적인 다신적 정령숭배와 일종의 환경론적인 바람들을 이음새 없이 잘 덧대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늘이라면 음악을 맡은 히사이시 조는 실이다. 이 영화에서 둘의 콤비는 눈부실 정도다. 이 만화영화는 음악과 영상을 일치시키는 법에 관한 한 어떤 장르의 영화를 하는 사람에게도 권장할 만한 교과서이다. 영화음악은 장소의 예술이다. 어떤 장면의 어느 대목에서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고 그것이 어떻게, 어느 대목에서 잦아들어야 하는지 이 영화는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또 주제가로 쓰인 음악들이 어떤 때에 어떻게 반복되고 어떻게 변주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맨 처음, 등장인물과 캐릭터들이 행진을 할 때 나오는 만화주제가는 영화 전편을 통해 가지가지 방식으로 변주, 반복되면서 영화를 이끌어가는 음악적 중심축이 된다. 너무 반복이 없으면 새겨지는 것이 없고 그게 너무 심하면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히사이시 조는 바로 그 미묘한 경계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또 이 영화는 어느 순간 씨앗처럼 제시된, 효과음과도 비슷한 작은 멜로디의 단락이 어느 대목에 가서 자라나 결국 어떤 결실을 맺으며 종결부에 이르는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모범 답안을 보여준다. 가령 ‘동글이 검댕먼지’가 벽에서 기어나올 때 아주 잠깐 반짝하던 효과음은 나중에 크게 확대되어 변주되는 대목에서 리듬의 중심을 이룬다. 나무들이 싹을 틔우기를 바라며 잠든 아이들이 꿈속에서 환상을 체험하기 시작할 때, 조심스럽게 시작된 음악이 나중에 토토로와 함께 하늘을 날 때 크고 아름답게 변주되는 대목도 참 절묘하다. 석양을 배경으로, 사치키 언니가 메이를 찾으러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뛰어가던 장면의 배경음악. 비오는 날, 토토로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질 때 가만가만 시작되었던 음악의 발전. 고양이 버스를 타고 하늘을 날 때 아이들의 환한 표정에 걸맞은 신나는 음악…. 각 장소에서 음악들은 적절한 때 나타나 적절한 때 환하게 타올랐다가 사라진다. 그리고는 다시 사운드의 공백이 잠시 관객의 호흡을 가다듬어주고 다음 단계의 음악이 세심하게 꺼내어진다. 이와 같은 절묘한 음악적 호흡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히사이시 조의 재능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은 마치 줄넘기 줄 안으로 뛰어들어가야만 하는 어린이처럼 타이밍을 기다린다. 줄넘기가 적당하게 돌아가주지 않으면 음악은 들어갈 자리를 잃고 머뭇거리게 된다. <이웃집 토토로>는 영상 자체의 리듬이 음악을 초대하고 있다. 숭고한 인류애적 이상과 어린이다운 순진함 가운데 교묘히 결합된 민족주의적 그리움이 티 안 내고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도록 한 것도 놀랍지만, 이처럼 정교한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기한 것도 거의 그만큼 놀랍다. 이 대목에서는 사무라이들의 기가 느껴질 정도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다각화 한다,CJ엔터테인먼트 대표 이강복

올해 CJ엔터테인먼트의 독주는 단연 돋보인다. 겨우 상반기를 지났을 뿐이지만 올해 시장점유율에서 CJ가 1위를 차지하리라는 예상은 당연해 보인다.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전국관객 480만명을 돌파하고 <살인의 추억>이 500만명을 넘긴데다가 최근엔 <반지의 제왕3>를 배급한다는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CJ엔터테인먼트 대표 이강복씨의 표정이 밝은 것은 예상했던 대로다. 그는 “2편 흥행한 걸 갖고 뭘 그러느냐”고 손사래를 치지만 여유가 느껴지는 미소를 숨기지는 않았다. 최근 CJ의 상승세는 지난해 우울한 성적표와 대조를 이뤄 더욱 뚜렷해 보인다. 지난해 CJ의 한국영화 성적표는 13전 1승2무10패였다. 하지만 영화인들의 관심이 CJ가 올해 시네마서비스를 추월할 것인가에 놓여 있는 건 아니다. 당장 CJ의 행보에서 두드러지는 건 자체 제작시스템을 만들면서 코미디영화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는 점. 임창정, 김선아 주연의 <위대한 유산>은 그 첫 작품이다. 정초신 감독 영입설도 여러 가지 추측을 부풀리게 하고 있으며 올해 초 시도했다 무산된 CJS연합의 전말도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대목이다. CJ의 선택이 주류 영화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기에 이강복 대표의 생각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반지의 제왕3>를 비롯해 태원의 외화를 배급하기로 했는데, 어떤 과정으로 진행된 일인가. 그동안 시네마서비스에서 태원의 외화를 배급해왔는데 포기하는 바람에 우리가 나서게 된 거다. 태원의 외화를 우리가 전부 배급하는 건 아니다. <반지의 제왕3>을 포함, 7편만 계약했다. CJ 외화 라인업은 그간 드림웍스 중심이었다. 태원의 외화가 들어오면 상당한 변화가 생기지 않겠나. 드림웍스 영화가 작품이 별로 없어서, 1년에 2∼3편밖에 안 되니까 우리 입장에선 잘된 일이다. 안 그래도 외화 라인업이 필요하던 상황인데 갑자기 제안이 들어와서 흔쾌히 우리가 배급하겠다고 나섰다. 올해 상반기는 CJ의 독주가 돋보인다. 잘되긴.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살인의 추억>, 2편 잘된 거밖에 더 있나. 지난해엔 시네마서비스가 여러 편 흥행하지 않았나? 워낙 안 되다가 터지니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거 아니겠나. 그래도 CJ 내부 분위기가 많이 좋아진 거 같다.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흥행하기 전까지는 상당히 심각했던 걸로 기억한다. 안 되면 어차피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운되는 건 당연한데…. 콘텐츠 비즈니스란 게 콘텐츠에 따라 잘됐다 안 됐다를 반복하는 거 아닌가. 미국 스튜디오도 그렇잖나? 어느 해엔 좋은 영화가 나와서 잘되고 어느 해엔 안 되고.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건데 회사 실적이 안 좋아지니까 말이 많이 나오긴 했던 거 같다. 우리는 창투사처럼 한번 하고 말 게 아니잖나. 잘되면 좋지만 안 되도 손을 뗄 수는 없다. 계속 갈 수밖에 없다. 지난해와 올해 흥행성적이 이처럼 차이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난해에 여러 편 안 되면서 반성을 많이 한 거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흥행하면서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어서 예술, 감동, 이런 거 위주로 생각했다. 대작들도 많이 만들고 <와이키키 브라더스>처럼 특별한 스타일도 해보고 그러면서 영화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 많이 했다. 하지만 관객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영화를 좋아하는 걸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영화라는 게 일방적인 만족감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처음 나온 게 <피아노 치는 대통령>과 <동갑내기 과외하기>였다. 코미디를 거의 안 만들다가 했으니까. 나도 그렇고 CJ가 전반적으로 코미디는 약했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있는데 못 쫓아간 거다. 용역을 줘서 요즘 세대에 대한 연구도 했는데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제일 충격적인 게 뭐냐면, 기성세대는 어떤 정보를 받으면 옳으냐 그르냐를 이성적으로 따지려고 노력하는 데 반해 요즘 세대인 감성세대는 좋으냐 나쁘냐를 판단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영화도 오락으로, 즐기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쪽이 많았다.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이 많았다.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요즘 젊은 관객 취향에 맞추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렇다고 <살인의 추억>같은 영화를 안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일단 비즈니스를 해야 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요즘 CJ에선 코미디 아니면 안 한다더라,는 말도 나온다. 그렇진 않다. 내년에 나올 영화는 감동적인 게 많다. 올해 하반기엔 코미디가 좀 많지만 내년은 또 다르다. 관객 패턴도 달라진다고 본다. 다양한 영화를 만들 거고 관객도 다양한 영화를 선호할 거라고 생각한다. 당장 <살인의 추억>이나 <장화, 홍련>이 잘되는 걸 보면 그렇지 않나. 최근에 CJ에서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제작사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영화사마다 어떤 방향이 있다면 그 방향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다.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든가 기회가 있으면 해보자는 거다. 본격적으로 여러 편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다. 1년에 많이 해봐야 2∼3편 정도 해보자는 거다. 기존에 제작사에 맡겨두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인가. 제작사마다 스타일이 있어서 그걸 벗어나기 어렵다. 스타일이 다른 제작사가 여럿 있어도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를 수 있고 통제하는 게 쉽지 않아서 직접 만드는 것을 생각한 거다. 다양성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다양성’이라고 하지만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코미디를 만드는 게 필요해서 아닌가. 그것도 일리가 있다. 제작비는 많이 안 들어가는데 내용이 좋은 코미디, 그런 게 필요하다. 대체로 제작사에서 들고오는 프로젝트는 제작비도 많이 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영화가 많다. 앞으로 제작비 규모가 큰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는 것인가. 물론 특수한 경우엔 할 수 있다. <무사>처럼 중국에서 찍는다든가 해외합작이라든가. 국내 시장만으론 한계가 뚜렷한 거 같다. 시장의 한계가 제작비 몇억원 정도라고 생각하나. 제작비 40억원, 마케팅비 합쳐서 50억원 정도 아닐까. 대체적으로는 20억∼30억원 사이 영화를 만들고 경우에 따라 제작비 60억원까지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최근 제작사의 불만사항 가운데 하나는 CJ에서 시나리오 개발비 지원을 안 하는 식으로 움직인다는 점인데. 왜 안 하나. 더 많이 하고 있다. 개발비 지원을 안 하면 물건이 안 나오는데 그럴 수는 없다. 시나리오 개발이 잘 안 되는 곳에 대해서 우리는 더 못하겠으니 다른 데서 하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잘못된 소문인 거 같다. 기존 제작사와 관계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 명필름이나 싸이더스 영화는 다 투자하는 식이었는데 이젠 작품별로 계약을 하는 식이다. 그런 기회를 줬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바뀐 셈이다. 결과가 좋았다면 계속 그런 식으로 갔을 텐데 같은 패턴으로 몇번 실패를 하면서 달라졌다. 제작비 규모가 너무 큰 프로젝트는 일단 제쳐두는 편이다.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하자고 말하는 편이다. <살인의 추억> 배급하면서 <질투는 나의 힘>을 극장에서 일찍 떨어뜨려서 <질투는 나의 힘> 제작사쪽에서 불만이 많았는데.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질투는 나의 힘>은 영화의 스타일이나 관객의 기대치라는 점에서 봤을 때 오래 건다고 잘될 영화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관객이 조금 더 들 수는 있었겠지만 큰 차이가 나진 않았을 거다. <살인의 추억>은 시사를 보고 이 영화는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영화를 알릴 수 있는 방식은 마땅치 않았다. 사람들이 일단 빨리 보고 입소문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개봉을 일주일 당겼다. 실제로 <살인의 추억>은 개봉주보다 개봉 다음주에 관객이 더 들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개봉할 때도 그랬다. <이중간첩>이 개봉한 다음주에 개봉할 예정이었는데 일주일 당기자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잘됐다. 일주일 당기느라 감독이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과로를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흥행면에서 매우 유리해졌다. 올해 초 플레너스를 인수하려다 포기했다. 다 지난 이야기지만 인수를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알려진 대로 가격 차이 때문이었나. 사실 플레너스를 인수하려고 했던 건 영화쪽보다 게임쪽에 관심이 있어서였다. 겉으론 영화를 한다고 얘기했지만 게임의 가능성에 높은 비중을 뒀다. 이전에 CJ에서 게임에 투자해서 실패한 예가 있었는데 게임포털인 넷마블을 인수하면 게임업계에 쉽게 진출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인수가 실패로 돌아간 건 가격문제도 있었지만 가격 외의 문제가 컸다. 가격은 우리가 포기하고 나서 더 올라가지 않았나. 영화를 독점한다는 여론이 워낙 강해서 그걸 무릅쓰고 인수할 경우 헤쳐나갈 법적, 제도적 문제가 만만치 않더라. 그게 더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입장에선 플레너스 인수가 무산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로선 아쉽다. 시네마서비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게임이 영화나 음악보다 큰 산업이라고 본다. 언어장벽이 없으니까 발전할 가능성도 훨씬 크다. 우리로선 생소한 분야라 처음부터 직접 하는 건 불가능하고 이미 존재하는 걸 인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어떻게 게임업계에 진출할지 모색해야 한다. CJ엔터테인먼트 전체 사업의 큰 축으로 게임을 생각한 것인가. 그렇다. 게임도 큰 분야고 이번에 공연사업에도 진출한다. 지금은 외국 공연을 들여오는 식으로 가고 있는데 시간이 좀더 지나면 국내 공연도 활성화될 거다. 실제로 들여올 외국 공연도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뒤론 창작 공연의 시대가 올 가능성이 많다. 그걸 대비해서 외국 공연을 들여오는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게임과 공연 외에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고민 중이다. 워낙 일본 애니메이션이 세니까 시간이 더 걸릴 거 같다. 최근엔 조이큐브라고 DVD, 비디오, CD, 게임 등을 대여하는 가게를 열기도 했다. 70평 정도 규모로 목동에 미국의 블럭버스터 체인같은 걸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잘되면 프랜차이즈를 많이 늘려갈 생각이다. 기존 비디오가게의 문제점이 빌리러 가면 없다는 점인데 이런 대형체인점은 언제 가든 빌릴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미국은 비디오, DVD 등 극장 외에서 나오는 수익이 더 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으니까 이런 렌털숍이 성공해서 시장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다시 스크린쿼터가 첨예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CJ의 대표로서 어떤 입장인가. CJ엔터테인먼트 대표로서는 스크린쿼터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CGV 주주 입장으로선…. 허허허. 글쎄. 없어져야 한다 그러면 몰매맞을 일이지. 극장 입장에서는 스크린쿼터가 없는 게 낫다는 얘기인가. 그런 건 아니다. 최근 몇년간 한국영화 덕분에 장사를 하고 있는데 그럴 수 있나. 하지만 극장만 하는 사람이라면 걱정하는 게 있긴 할 거다. 예를 들어서 한국영화가 관객이 안 들 때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걱정스러운 건 최근 여론이 스크린쿼터를 지지하는 쪽보다 줄여야 한다는 쪽이 많은 것 같다. 영화 유통이 어떻게 특수한지 잘 설득해야 하는데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거 같다. 정초신 감독을 영입한다는 보도가 나간 적이 있다. 지금도 추진 중인가. 정초신 감독이 미리 말을 하는 바람에 유야무야됐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지금 당장은 연출하기로 계약한 작품이 많아서 하기 힘들지만 본인이 할 수 있다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먼저 제안한 거니까. 정초신 감독이 CJ로 들어온다면 어떤 역할을 맡게 되나. 프로듀서를 하는 거다. 전체 제작 라인업 가운데 일부를 맡아서 할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물 건너간 거다. <남남북녀> 다음에 연출할 작품도 정해져 있어서. 어쨌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시네마서비스는 김상진, CJ는 정초신 두 감독이 전체 라인업을 정하는 게 아닌가 염려하기도 한다. 아이, 그럴 리가 있나. CJ 석동준 팀장도 있고 다른 제작사도 있는데. 각자 몇편씩 맡아서 관리하는 정도지. 그런데 뭘 염려하는 건지 모르겠다. 두 감독의 성향이 코미디를 좋아하니까 전체 한국영화도 코미디 위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거 아니겠나. CJ는 그러면 안 된다는 말로 들린다. 지난해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렇다면 정초신 감독을 영입하려 한 것은 코미디를 많이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도 되나. 그렇다. 우리가 코미디쪽이 약하니까 외부인사를 영입해서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아주 오래 전부터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걸 생각했는데 마땅한 인물이 없어서 못했을 뿐이다. 정초신 감독이 안 되더라도 계속 추진할 생각이다.

남한 로미오 북한 줄리엣,<남남북녀> 촬영현장

촬영현장에서 정초신 감독은 무슨 입시학원 강사 같다. 스탭들과 배우들을 매섭게 다그치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한손으로 콘티북을 들고 있는 포즈도 영락없다. “테스트 없이 그냥 가도 되지? 요령은 (설명한 것과) 같아. 슬레이트… 액션!” 7월10일, 크랭크업을 하루 앞두고 중국 지린성 옌지시 공상행정관리국 앞에서 도둑촬영을 하고 있던(중국 현지촬영 허가를 받았지만, 관청일 경우 외벽을 찍는다 하더라도 따로 신청서를 제출해 승낙을 얻어내야 한다) <남남북녀> 제작진은 몰려들어 조인성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는 군중을 제지해야 했던데다 출동한 공안(公安)들을 얼르느라 부산해 보였다. 오직, 하루 평균 60컷씩을 찍어낸다는 정초신 감독만이 촬영 도중 “취재진들이 귀국하기 전에 개봉할 계획”이라는 농담을 늘어놓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이날 오후 촬영차량 몇대로 나뉘어 옌지시를 휘젓고다니던 제작진이 해저물 무렵 도착한 곳은 옌볜대학. 촬영지인 팔각정에 오르는 동안 해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는지 정 감독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니들 이거 (오늘) 못 찍으면 큰일날 줄 알아”라며 큰소리를 낸다. 이날 촬영의 피날레는 남한의 정보기관 고위인사의 아들로 바람기를 잠재우지 못하는 김철수(조인성)와 북한 외교관의 딸로 콧대높기로 유명한 오영희(김사랑)가 서로의 연정을 확인하는 장면. 고구려 고분 발굴단에 참가해서 알게 된 이들 두 사람의 티격태격 자존심 싸움이 어느 샌가 러브 스토리로 전이되는 로맨틱코미디의 한 장면을 위해 정 감독은 후시녹음이지만 조인성에게 직접 하모니카 연주를 해보이며 카메라 거두기를 주저한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스토리 요약처럼, 영화는 남북 정보요원들이 이들 두 사람을 뒤따라 붙으면서 후반부에 가속도를 높일 예정. 배우들뿐 아니라 옌볜 촬영을 위해 중국 정부가 제시한 까다로운 요구를 적절히 눙치느라 제작진도 연신 취재진에게 ‘입조심’을 강조했다. “후시녹음을 현지에서 해야 한다”는 장춘제편창의 현실적인 요구와 달리 성(省) 정부가 “주인공들의 신분이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다”며 수정을 요구해와서 실제 촬영시엔 남쪽 대기업의 아들과 북쪽의 한 여대생의 사랑이라는 설정이라고 속였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에선 촬영현장에 조선말을 알아듣는 스파이를 심어놓기도 하는 탓에 10일 동안의 짧은 일정이었는데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고. 튜브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며 개봉예정은 8월14일이다. 옌볜=사진 이혜정·글 이영진 ♣ “련변 사람들이 추는 군중무용은 질서가 없구나야.” 특공무술에 가까운 댄스를 선보이는 영희. 김사랑은 영희가 쓰는 북한 사투리 구사를 위해 통일원을 드나들며 20대 북한 여성의 말투를 반복 청취했다고. ♣ 싸이의 <챔피언>에 맞춰 격렬한 몸짓을 선보이고 있는 정초신 감독(오른쪽). 그는 이날 현지 DJ와 함께 깜짝 출연했다. ♣ 요원들에게 쫓기다 잠시 몸을 숨긴 철수와 영희. 옌볜 시민들은 피멍이 든 분장을 한 조인성이 한숨 돌릴라치면 사인을 부탁하느라 정신없었다. ♣ 제작진이 그치지 않는 옌볜 시내의 경적 소리를 피해 건너편의 철수와 영희를 포커스인하고 있다.

가벼운 바람은 인생의 박카스?<앞집 여자>

<앞집 여자> MBC 수·목 밤 9시55분 확실히, ‘바람난 여자’는 최근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존재인가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성생활로 한국 영화사에 인상적인 족적을 남긴 여성들의 계보를 훑은 <씨네21> 특집 기사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또 한명의 ‘바람난 여자’가 안방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말았다. 드라마 <앞집 여자>의 주인공은 결혼 7년차 전업주부인 미연(유호정)이지만, 드라마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미연의 ‘앞집 여자’인 애경(변정수)이다. 올해 나이 35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데도 단박에 시선을 끌 만큼 늘씬한 몸매에 완벽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애경은 얄미울 정도로 부족한 게 없다. 잘 꾸며놓은 집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방송사, 잡지사 사람들로 문턱이 닳을 지경이고, 소문난 요리 솜씨는 이웃 남편들의 반찬투정을 부채질한다. 얼마 전에는 샌드위치 전문점을 개업했는데, 특유의 음식 솜씨에 힘입어 웬만한 월급쟁이는 명함도 못 내밀 만큼 떼돈을 벌고 있단다. 그런데 애경이 살림 잘하고, 돈 잘 벌고, 아이 잘 키우고, 애교 만점인 슈퍼우먼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바로 그가 만나는 남자들, 꼭 스무번씩만 만나 아낌없이 주고받은 뒤 쿨하게 헤어지는 남자들과의 위태롭고 달콤한 섹스에서 나온다. 애경은 현모양처의 탈을 쓴 요부인 셈이지만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죄의식은 느끼지 않는다. 음전한 주부인 미연이 살랑거리는 바람의 유혹에 빠지는 듯하자 애경은 ‘선배’로서 가장 현실적인 충고를 해준다. “난 딱 20%만 줘. 20%가 적은 것 같아? 내가 가진 돈이 1억이면, 2천만원이야. 그걸로도 충분해. 상처받고 어쩌고 하면 나만 손해잖아? 자기 설마, 남편하고 이혼하고 애까지 뺏기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럼 사랑타령 그만두고 제대로 즐기기나 해. 못하겠으면 첨부터 그만두던지.” 애경은 국내 드라마 사상 가장 쿨하게 바람을 피우는 여성 캐릭터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불륜은 화목한 가정을 파탄내고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안겨주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였고, 주인공 여성은 주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시청자들의 연민과 동정을 흠뻑 받았다. 그러나 애경은 지리멸렬한 피해/가해 논쟁을 가볍게 뛰어넘더니, 드라마 <애인>에서 보여준 낭만적인 불륜 신드롬이 실은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는 사실마저 여지없이 까발린다. “친구? 남녀간에 친구란 성적 긴장감이 없는 상태에서만 가능한 거야. 사랑? 누구든지 삼년만 같이 살면 시들해지지. 남자 거기서 거기야. 미련 떨 거 없어.” 불륜의 본질이 결국 섹스라는 사실을 이토록 직설적으로 보여준 드라마 캐릭터는 일찍이 없었다. 시청률은 단 2회 방송에 20%대로 치솟았고, 게시판은 지금 논쟁 중이다. 현실적이라는 칭찬과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이 엇갈린다. 자신이 발딛고 있는 현실을 파악하는 시각이야 저마다 다를 수 있으나, 분명한 건 어쨌든 애경이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왔으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었고 무엇보다 자기 일상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옆집에 살고 있는 ‘보통 주부’ 미연은? 결혼 7년 동안 아파트 융자금 갚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아이 키우면서 동동거리느라 마땅한 외출복 한벌 없고, 가슴 처지고 똥배 나오고 팔뚝 굵어지는 것도 잊고 살았는데 어느덧 중년이다. 남편에게도 종종 무시당하는 그가 대접을 받는 경우는 물건을 살 때뿐. 종업원은 비싼 원피스를 사라고 그를 꼬실 때는 상냥하기 그지없으나 반품하고 돌아서면 뒤통수에 대고 입을 비죽거린다. 백화점 고객으로서만 대접받는 미연이 8년 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으로부터 뜨거운 관심과 상냥한 친절을 받는 기분이란! 자신의 행복보다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일에 더 관심이 많은 미연이 중세인이라면 남들이 뭐라든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애경은 근대 신여성이다. 이처럼 세대차가 나는 두 사람이 이웃해 살아가면서 엮어낼 미래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결혼의 권태, 인생무상의 기로에서 달콤한 유혹을 느끼는 미연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인생의 목표였던 ‘행복한 가정’이 실은 부서지기 쉬운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헛살았다’며 가슴을 치지는 않을까? 다행스러운 것은 미연의 옆집에 한 세대를 앞서 살아가는 개화된 신여성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애경는 머지않아 사회적 합의를 깨고 자신의 행복에만 집착한 죄로 돌팔매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여성들이 그러했듯, 애경은 그 존재만으로도 미연, 혹은 평범한 우리의 삶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나는, 진정 행복한가? 이미경/ <스카이라이프> 기자 friendlee@hani.co.kr

씨네큐브 ‘일본 애니 걸작선’ 마련

영화사 백두대간이 다음달 1-7일 서울 신문로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일본애니메이션 걸작선'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축제를 마련한다. <인랑>, <공각기공대>, <고양이의 보은> 등 여섯 편의 영화가 오전 11시부터 하루 다섯 차례 상영되며 관람료는 7천원(조조, 학생 6천원). 맥스무비(www.maxmovie.com), 티켓링크(www.ticketlink.co.kr), 무비오케이(www.movieok.co.kr) 등 인터넷 예매 사이트를 통해 미리 표를 구입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다섯 편의 영화를 모두 관람하는 관객에게는 그동안 씨네큐브 상영작으로 출시된 비디오를 선물한다. ☎(02)2002-7770, 인터넷 www.cinecube.net 상영작은 다음과 같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미야자키 하야오ㆍ전체 관람가) = 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일본 개봉 당시 2천400만명을 동원한 바 있다. 10살짜리 소녀 치히로가 가족과 함께 시골로 이사오던 도중 폐허가 된 놀이공원에서 홀로 남게 되면서 기이한 환상의 세계를 체험한다는 이야기. ▲이웃집 도토로(미야자키 하야오ㆍ전체 관람가) =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애니메이션. 아빠와 함께 시골로 이사온 11살 사츠키와 4살 메이가 우연히 숲의 정령인 도토로 가족을 만나 위기에서 도움을 받는다는 내용.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미야자키 하야오ㆍ전체 관람가) = 1984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첫 번째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자연을 사랑하는 소녀 <나우시카>의 활약과 희생으로 `바람계곡'을 재앙에서 구한다는 내용. ▲공각기공대(오시이 마모루ㆍ전체 관람가) = <매트릭스>와 <제5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작품. 웬만한 실사 SF영화에 버금가는 화려한 비주얼과 심오한 철학적 내용으로 마니아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사이보그 경찰인 `쿠사나기' 소령이 정체 모를 해커 `인형사'를 추적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기둥 줄거리. ▲인랑(오키우라 히로유키ㆍ15세 관람가) = 패전 후 가상일본을 배경삼아 인간병기로 훈련받은 `가즈키'와 반정부 요원 `케이'의 비극적 사랑을 실화처럼 리얼하게 그려낸 수작. ▲고양이의 보은(모리타 히로유키ㆍ전체관람가) = 지브리 스튜디오의 최신작. 우연히 트럭에 치일뻔한 고양이를 구해준 평범한 여고생이 고양이 왕국으로 초대받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서울=연합뉴스)

먹고 마시기만 하는 멀티플렉스는 가라!

화랑·무대 결합 신촌 ‘아트레온’ 색다른 멋 연출 영화판에서는 대형 상영관과 음식점, 오락공간을 버무린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대유행이다. 이른바 극장건축의 블록버스터화인 셈인데, 서울 신촌의 옛 신영극장 소유주인 최호준씨와 젊은 건축가 김준성씨는 이런 흐름이 찜찜했던 듯 하다. 먹고 마시는 소비공간보다 화랑과 공연무대 같은 문화공간을 결합시킨 멀티플렉스는 어떨까. 소비지대로 전락한 신촌에 문화의 향기를 심자고 둘은 의기투합했다. 신촌 전철역과 이대 전철역 사이 신촌대로변, 옛 신영극장 자리에 우뚝 선 종합문화공간 ‘아트레온’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당찬 포부가 빚어낸 결실이다. 2001년 1월 착공해 다음달께 완공되는 지상 15층, 지하 4층의 이 콘크리트 철골 건물에는 9곳의 영화전용 상영관(모두 2319석)이 있어 단독건물 최다 상영관을 자랑한다. 그러나 정작 건물의 미덕은 규모보다 문화적인 얼개와 동선에 있을 성 싶다. 건물 정면은 소비지역 신촌의 성격에 맞게 내부와 외부를 투사하는 전면 투명유리다. 저층 중층부 일부를 올록볼록한 곡면으로 만들고, 반투명 유리와 투명유리가 리듬감 있게 교차하면서 재료에 색다른 디자인 감각을 불어넣고 있다. 건축평론가 이주연씨는 “재료의 본질로부터 디자인적 요소를 뽑아내는 이른바 텍토닉 기법을 쓴 건물”이라며 “곡면의 투명유리가 옆면과 구석의 금속제 강판 표면과 결합되어 고층건물의 육중함을 덜고 영화관의 가볍고 신선한 이미지를 반영했다”고 평했다. 들머리와 꼭대기 공간을 문화적 인프라로 완전개방한 것도 특색. 1층과 지하층을 연결하는 들머리에 연면적 700평, 300석 규모의 개방형 광장무대를, 13, 14층을 서로 연결되는 화랑과 문화모임공간으로 꾸몄다. 광장무대에는 설치미술가 안필연씨의 유리블록 작품 <무한>을 객 석 옆벽에 붙여 건물의 문화공간적 성격을 부각시킨 점도 눈에 띈다. 입면과 공간에 매달리지 않고 비건축적인 요소에서 건축의 시작을 끌어내려 애써왔다는 그의 이번 작품이 신촌에 새로운 문화적 바람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제공 (주)아트레온

설레는 음악과의 동침,창작 뮤지컬 <카르멘>

“내 삶, 내 방식, 나의 인생, 나의 운명, 어차피 내가 갈길 뒷걸음질은 싫어. 내 운명 죽음이라도 상관없어, 상관없어. 카르멘의 길을 갈 뿐.”(뮤지컬 <카르멘> 중 ‘내 길을 갈 뿐’) 이 여인, 참으로 대담하고 거침없다. 살아가기 위해 사랑하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고, 미친 듯이 사랑하지만 그 틀에 얽매이는 법없이 사랑하고 싶은 만큼만 사랑하다 마지막 감정의 방울까지 말라붙는 순간 가차없이 다른 사랑을 찾아 날아가버리는 여자 카르멘. 1845년,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중편소설 <카르멘>에서 태어난 집시 여인 카르멘은 15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대담하고 치명적인 열정의 또 다른 이름이다. 빌표 당시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소설 속의 카르멘을 기억하게 만든 것은,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일 것이다. 1875년에 나온 이 오페라는 스페인 세비야 지방을 무대로 담배 공장에서 일하는 매혹적인 집시 카르멘, 그녀에게 빠진 순간부터 운명이 꼬여버린 젊은 하사 돈 호세의 비극적인 사랑의 일대기와 이국적인 선율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 7월11일부터 리틀엔젤스예술회관 무대에 오른 <카르멘>은, 소설과 오페라로 잘 알려진 원작을 전곡 새로 작곡한 음악으로 재창조한 국산 창작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이은 극단 갖가지의 두 번째 창작뮤지컬로, 지난해 12월에 이어 두 번째 공연이며, 7월27일까지 계속된다. <시카고> 같은 해외 초청팀의 공연이나 <캣츠> <토요일밤의 열기> 등 외국 히트작들을 각색한 공연에 비해 창작 뮤지컬을 보기 드문 현실에서, <카르멘>은 돋보이는 시도. 춤이나 무대장치가 화려하진 않지만, 구름다리처럼 만든 2층의 무대를 알뜰하게 활용하면서 우리말 가사로 창작한 노래와 음악, 극적 긴장을 살린 연출이 아니라 극적 긴장을 탄탄하게 포개놨다. 도입부부터 스페인풍 기타, 바이올린 등 현악기로 강렬하게 튕기는 리듬, 서글프면서도 낭만적인 선율의 조화를 들려주는 음악은 이국적인 정취와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의 행로를 역동적으로 뒷받침한다. 호세가 약혼녀 미카엘라에게 사랑을 맹세할 때 부르는 <영원의 끝날까지>, 공장에서 싸움을 벌인 카르멘 대신 수감된 뒤 그녀와 재회하면서 부르는 <미칠 것만 같았어>처럼 피아노와 현악 반주에 실린 서정적인 발라드 이중창도, 관객에게 감성적인 공감대를 끌어낸다. “모포 한장이면 융숭한 하룻밤/ 그 설레는 대지와의 동침”이라며 떠도는 집시의 삶을 노래하는 <겨드랑이 바람>, 호세의 집착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카르멘의 <내 길을 갈 뿐> 등 독창적이면서 시적인 가사는 익숙한 <카르멘>의 이야기를 다시 보게 하는 요소. 자신의 욕망의 현재에 당당하고 충실한 카르멘의 현대적인 캐릭터와 그 열정의 궤도에 사로잡힌 채 파멸해가는 호세, 비극적인 긴장감을 이따금 늦춰주는 낙천적인 투우사 에스카미오와 조연들까지 <카르멘>은 원작의 극적 재미와 한국적인 재해석이 균형을 이룬 뮤지컬이다. 베르테르에 이어 호세로 호소력 있는 노래 연기를 펼친 배우 조승우와 더블 캐스트 이석준, 격정적인 카르멘 양숙형, 해맑은 고음이 돋보인 미카엘라 김선미 등 감정선을 살리는 배우들의 에너지도, 보는 재미에 한몫한다. 황혜림 blauex@hanmail.net

함께 가니 더 좋네요,젊은 애니를 껴안다 ⑦ - 김기표

애니메이션 제작사 ‘로딩’(Loading)은 ‘어린’ 회사다. 2003년 3월 사업자등록증을 받았으니 이제 넉달이 지난 ‘갓난아기’인 셈이다. 그렇다고 만드는 사람까지 초보자는 아니다. 이 분야에서 각자 6년 넘게 작업해온 베테랑 3명이 주축이 돼 만든 회사가 ‘로딩’이다. 감독이자 대표로 있는 김기표(31·사진)씨는 <마리이야기> 조감독 출신. PD로 있는 이준엽씨는 선우엔터테인먼트에서 ‘스페이스 힙합 덕’팀에 있었다. 아트디렉터 이주석씨는 양철집에서 <원더풀 데이즈> 차기 프로젝트 기획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김 감독과 이 PD는 ‘미메시스’에서 활동하면서 알게 됐고, 김 감독과 이주석씨는 장편애니메이션 <비너스>의 기획작업을 함께했다. 이들을 한데 묶은 것은 만화가 이익선씨가 잡지 <영챔프>에 연재한 화제작 <밀가루 커넥션>. ‘물건이 되겠다’ 싶어 무작정 만화가를 찾아갔다.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이제 애니메이션에서 비주얼은 기본이고 스토리와 캐릭터가 남달라야 하는데 이 작품은 캐릭터가 아주 좋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모두 좋은 예감을 갖고 있어요.” 떡볶이, 송편, 오뎅, 수제비, 피자, 만두, 라면 등 분식점에 등장하는 온갖 메뉴가 처절한 조직간 싸움을 벌이는 조직폭력배로 등장하는 <밀가루 커넥션>은 작품의 독특함을 인정받아 지난 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파일럿 필름 제작 지원작으로도 선정됐다. “이제 스토리가 끝났고요. 11월 말까지 파일럿을 만들어야 하니까 요즘 좀 바빠요.” 김 감독은 이 작품을 모바일 콘텐츠용으로 내놓을 생각이다. 조직폭력배 이야기인 만큼 TV로는 어려울 것 같고 웹에 올려놓자니 수익성을 낼 길이 없어서다. 만화책 단행본은 6권까지 나와 있지만 만화와 차별성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다. 현재로서는 3분짜리 20편 정도를 만들고 싶다고. “관객의 코드를 잘 읽어야겠죠. 2∼3년 뒤에도 인기를 끌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겠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타협’도 많이 하고 있어요. 하하.” 이 말을 들은 이주엽씨가 한마디 거든다. “다들 생각이 너무 튀어요. 그래서 걷잡을 수 없을 때도 많아요.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디어가 모아지는 걸 느끼죠.” 1998년부터 3년간 애니메이션 창작집단 ‘반지하’에서 작품활동을 해온 김 감독은 <악몽>과 <콜라> 등의 단편을 만들었다. <콜라>는 스너프필름을 연상시키는 8분짜리 하드코어 스플래터물. 한 여성에 대해 무자비한 성적 폭력을 휘두르는 한 남자를 통해 교류가 단절된 사회의 억눌림을 소름끼치는 영상으로 표현했다. “왜 만들었냐”고 물으니 “당시 상황이 그랬다” 고 덤덤히 말한다. <마리이야기> 이후로는 이성강 감독의 HD TV용 3부작 <원천강 오늘이>의 편집 및 특수효과를 맡기도 했다. <밀가루 커넥션>이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면 야심차게 기획 중인 <팔미호뎐>은 순수 창작물이다. ‘구미호’의 이미지를 응용한 이 작품은 TV시리즈로 선보일 생각이다. “한번 보실래요” 하며 자랑하듯 보여준 데모필름의 인트로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그것의 코믹버전을 연상시켰다. 현재 7명의 직원에게 월급을 주면서 회사를 운용하고 있다는 김 감독은 “광고도 좀 했고 다른 회사의 의뢰를 받은 것도 있지만, 가능한 모든 여력을 창작에 쏟아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한다. “그래도 혼자 쭈그리고 단편 만들 때보다는 훨씬 좋다”고 덧붙이면서. 정형모/ <중앙일보> 메트로부 기자 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