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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극장가 어린이 영화팬 손짓

본격적인 여름방학 시즌을 맞은 극장가에 어린이를 비롯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영화 상영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5월초 개봉한 국산 애니메이션 '오세암'은 여름방학을 맞아 최근 재개봉했다. '오세암'(제작 마고21)은 다섯 살 소년 길손이와 앞 못 보는 열두 살 소녀 감이 남매의 엄마 찾기 여정을 그린 영화. 제작사는 여름방학 시즌을 맞아 스카라극장과 어린이회관 무지개 극장 등 서울 7개, 전국 50개 극장에서 8월말까지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다. 지난 16일 개봉한 '피노키오'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가 감독과 주연 1인 2역을 한 작품. 1940년대 처음 제작된 이후 20여 회 넘게 영화화한 원작 동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환상과 모험의 세계를 표현해내기 위해 5천만 달러를 투입 대형 세트를 만드는 등 볼거리에 신경을 썼으며 피노키오 분장과 의상도 나무인형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공을 들였다.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는 어린이 관객층을 겨냥해 만든 코미디 영화. '영구와 땡칠이'로 1980년대 후반 270만 명(비공식 집계)의 관객을 동원한 남기남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인기 TV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 출연자들이 출연한다. 갈갈이 삼형제를 비롯한 갈갈이 패밀리가 마을에 침입한 드라큐라 일당을 처치한다는 것이 기둥줄거리. '갈갈이 삼형제', '생활사투리', '우비삼남매', '봉숭아학당' 등 '개그…'의 인기에서 보인 유머가 스크린에 옮겨져 있다. 다음달 1일 개봉. 같은 달 8일 관객들을 만나는 '고양이의 보은'은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으로 알려진 지브리스튜디오의 최신작이다. 우연히 트럭에 치일뻔한 고양이를 구해준 평범한 여고생이 고양이 왕국으로 초대 받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긴박감있게 전개되는 스토리나 화면의 역동성은 높은 점수를 줄 만하고 재치있는 대사가 주는 아기자기한 유머도 유쾌한 편. 이밖에도 지난 11일과 17일 각각 개봉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신밧드의 모험'과 국산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도 상영중이다. 한편, 서울 신문로에 위치한 씨네큐브 광화문은 다음달 1일부터 1주일 간 '일본애니메이션 걸작선'이라는 제목으로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고양이의 보은'(이상 전체 관람가), '인랑'(15세 이상 관람가), '공각기공대'(12세 이상 관람가) 등 여섯 편의 영화가 오전 11시부터 하루 다섯 차례 관객들을 만난다. ☎(02)2002-7770, 인터넷 www.cinecube.net 경기도 부천 종합운동장에서는 다음달 1일까지 '한여름밤의 피섬 영화제(P-SUMㆍPuchun Summer night film festival)가 개최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동승', '이웃집 토토로' 등 온 가족이 즐기는 영화들이 대형 전광판을 통해 상영된다. ☎(032)611-4540 (=연합뉴스)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4]

순풍타고 돌아온 정열의 에스메랄다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에서 <고독이 몸부림칠 때>까지, 선우용녀 I’m back_ 평범하고 솔직한 가정의 거실로 단정한 머리에 굵직한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 화사한 오렌지빛 투피스 차림을 한 선우용녀는, TV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의 고상한 아줌마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이 익숙한 스타일은, 바꿔 말하면 ‘중년연기자’라는 용어의 실제적 정의이고 선우용녀에 대한 우리 세대의 첫 기억이다. 엄마의 위치에 대한 딸의 첫 기억이 ‘여보’, ‘아무개 엄마’ 혹은 ‘아줌마’이듯이. 그래서 <순풍 산부인과>의 오 박사 부인 ‘용녀’로 시작되는 두 번째 기억은 중요하다. 여기서 그가 보여줬던 이른바 ‘망가진 아줌마’ 캐릭터는, 기존 드라마의 그것으로부터 90도 이상 틀어져 있으면서도 선남선녀 청춘배우들이 홍보용 멘트처럼 “저 망가졌어요”라고 말하는 것과도 달랐다. “의사, 판사 부인은 어떻다, 그런 게 있는데 사실 그런 사람은 한두 사람일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더 자유롭고 싶고 더 편한 사람도 많을 텐데. 그래서 아, ‘용녀’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일부러 더 캐주얼하게 편한 옷도 입고 그랬어요.” 그것이 ‘중년연기자 선우용녀의 귀환’이다. <대박가족>으로 이어진 ‘용녀’스러운 캐릭터로 아줌마도 웃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보여준 그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다. 젊은 층이 소비하는 패스트푸드 식품 광고에 출연하는 한편, 연예인 10명이 각각 한편씩 맡아 시리즈로 제작된 우유 광고에서 ‘열정’이란 컨셉을 표현했다. 붉은색의 집시 드레스를 입고 탱고를 추는 그의 모습은 <노틀담의 꼽추>에 등장하는 에스메랄다를 연상시켰다. “내가 아주 옛날에 <노틀담의 꼽추>를 뮤지컬로 했었는데 우리 후배가 어떻게 그걸 알아가지고 그것처럼 하자고 그러더라구.” 1969년 명동의 한 극장에서 당대의 스타 이대근과 함께 공연했던 그때, 그는 “그 CF랑 똑같은 옷 입고 내 머리도 이렇게 기르고” 있었다. 임신 4개월의 몸이었지만 지금보다도 날씬했던 그때. Once Upon a Time_ 넘치는 스케줄, 메마른 열정 원래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선우용녀는, 원하는 대학에 시험쳤다가 떨어진 뒤 친언니의 권유로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그해 6월엔 동양방송(TBS)이 개국할 예정이었다. 교수는 2개월짜리 신입생에게 추천서를 써주면서 방송사에 시험칠 것을 권했다. 그때까지도 연기에 별 관심이 없었던 그는 발레를 배운 경험을 살려 무용분야로 지원했다. 그런데 TBS는 그에게 합격 통지서와 함께 입사 동기들 중 가장 먼저 드라마에 발탁되는 기회를 주었다. 선우용녀의 연기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숲속의 바보> <순풍 산부인과> <대박가족> 처음부터 그는 “잘 나갔다”. 데뷔 드라마 <상궁나인>(1966)은 곧바로 히트했고 여기서 선우용녀의 연기를 눈여겨본 김기영 감독이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에 그를 캐스팅했다. 이후 82년 <친구 애인>을 끝으로 미국에 이민을 다녀올 때까지 그는 스무편에 가까운 영화에 주·조연으로 출연하고 그보다 많은 수의 드라마를 소화했다. 분위기 있는 여배우와 탤런트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TV드라마 <외아들>로 TBS TV연기상을, 김수용 감독의 <산불>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생활은 그에게 늘 힘들었다. “그땐 한국영화 쿼타 딴다고 일주일 만에 영화 한편씩 찍으니까, 거의 뭐 기계처럼 했죠. 그리고 지금은 머리 해주는 사람, 옷 입혀주는 사람 다 따로 있지만 그땐 내가 옷설정하고 화장하고 머리하고 그리고 촬영장 가면서 대본 읽고 그랬어요. 진짜 정신없었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 비단 환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힘들던 와중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이나 애정은 혹 없었는지 묻자 그는 말이 없었다. 잠시 뒤, “근데…” 하며 조심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하고 싶지 않은데 하려니까….” 20년 가까운 연기생활은 이렇게 정리됐다. 선우용녀에게 연기에 대한 열정이 솟구치기 시작한 것은 귀국 뒤 KBS 사극 <역사는 흐른다>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 “그땐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여건이 주어지면 영화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는 의욕이 말라 있던 젊은 때를 후회하는 것 같았다. “아쉬움은 있어요.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서…. 하지만 나이에 맞춰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맞춰서 해가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그 아쉬운 심정을 ‘아쉬움’이란 단어는 다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던 그가 갑자기 “예전엔,” 하면서 몸을 뒤로 젖혀 우아하고도 섹시한 자태를 만들어 보이더니 말했다. “이러고 사진 찍었잖아.” 이어서 그는 중얼거렸다. “만날 옷 바꿔 입고 카렌다 찍고 그랬는데… 다 옛날 일이지.” The Show Must Go On_ 이 나이엔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 중견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할머니 한명을 두고 세 할아버지가 사랑의 줄다리기를 벌이는, 60대 중반 노인들의 로맨틱코미디다. 여기서 선우용녀는 주현과 김무생 그리고 송재호의 젊은 마음을 사로잡는 우아한 할머니 ‘인주’를 맡았다. “시켜준다고 해서 고마웠지요, 뭐. 요즘 영화가 젊은 사람들 위주라, 이런 영화가 한번쯤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우리 나이엔 느낄 수 있는 게 더 많은데.” 그에게 드라마 하는 것이 “펑퍼짐한 옷을 집고 안방에 누워 있는” 거라면 영화하는 것은 “잘 차려입고 외출하는” 거다. “그러니까 설레요. 오랜만에 찍는 거라. 음식도 조절해서 먹고 있어요. 영화는 스크린도 큰데 하마같이 나오면 안 되잖아요.” 젊은 배우들이나 농담 핑계로 털어놓을 법한 속내를 밝힌 것이 스스로도 쑥스러운지 소리내서 웃는다. 그는 연기가 아직도 어렵다. 본인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되는 일이긴 하지만, 거기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 연기란 말은, 참 흔한 표현이긴 해도 연기경력 38년의 중견배우가 하는 말이라면 그것은 순전히 경험이고 깨달음이다. “‘안녕하세요∼’ 하나를 하더라도 어떤 기분에서 안녕하신지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정말 어려워요. 영원히 답은 없는 거 같아요. 그냥 그 답을 각자가 찾아가는 거죠.” 그래도 사람들은 그에게서 많은 답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순풍 산부인과>의 ‘용녀’가 그 답의 일부였고, <고독…>의 캐스팅은 그 답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본인은 “그냥 그런 데에 끼게 된 것 같아요. 나이든 사람들도 고독하지 않게 껴주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라며 그런 평가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지만, 선우용녀가 뒤늦은 열정 속에 만난 ‘용녀’를 ‘새로운 정답’말고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글 박혜명 na_mee@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필 모 그 라 피 (Filmopraphy) 1945년생 영화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1966) <태백산맥>(1975) <산불>(1977) <세종대왕>(1978) <황토기>(1979)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 외 다수 TV <상궁나인> <아씨> <외아들> <역사는 흐른다> <순풍 산부인과> <당신때문에> <햇빛 속으로> <대박가족> 외 다수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1]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2]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3]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4]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5]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2]

무기력하게, 무표정하게 하지만 창자를 끊을 듯한 열정으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부터 <바람난 가족>까지, 배우 김인문 I’m Back_ 다작배우의 뒤늦은 발견 술 한잔 걸친 늦은 귀가였다. 무심코 TV를 튼 김인문씨는 우연히 <처녀들의 저녁식사>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거, 감독이 보통놈이 아닐세.” 이후 <바람난 가족> 시나리오를 읽은 그는 “이렇게 뻔뻔한 시나리오를 쓴 사람, 얼굴이나 보자”는 마음으로 한번 뵙자는 임상수 감독의 제안에 흥쾌히 응했고 “인간성은 전혀 마음에 안 들지만 연출력은 인정되는” 감독에게 “이왕 하는 김에 진짜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해보자”는 OK 사인을 건넸다. “선생님께서, 이런 ‘위선의 시대’에 요런 작품은 반드시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물론 임상수 감독에게도 조건은 있었다. “늘 감초 같은 역할만 하셨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레고리 펙처럼 해달라고 했죠, 잠시 나와도 제일 멋있고, 위엄있고, 폼나게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하이톤의 쇳소리 ‘이장님 목소리’는 안 쓴다는 것을 주원칙으로 삼았다. “얼마 전 제 친구 중에 하나가 완성된 영화를 보더니, 김인문 선생은 조폭 두목 시켜도 될 만큼 카리스마가 느껴진다고 하던데요. 저로서는 배우의 발견이죠.” 사실 김인문씨는 최근 <조폭 마누라> <엽기적인 그녀> 등 웬만한 최근 히트작에서는 빠지지 않고 얼굴을 볼 수 있는 ‘다작배우’다. 물론 구멍난 독에 물을 가득 채워보라는 선문답을 던지던 <달마야 놀자>에서도, 귀여운 대통령으로 출연했던 <재밌는 영화>에서도, 똥지게를 진 무능한 아버지였던 <해적, 디스코왕 되다>에서도, “개 같은 년” 같은 쌍욕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 늙은 ‘운짱’으로 등장했던 <철없는 아내,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에서도 그는 늘 같은 모습을 반복 재생산하진 않았다. 하지만 <바람난 가족>에서 그는 확연히 다르다. 목소리를 낮추고, 표정을 줄인 채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이 이상한 아버지는 짧게 등장하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특히 죽기 직전 병상에서 부르는 <김일성찬가>는 묘한 공명을 가진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일본군가>였던 것을 <김일성찬가>로 바꿔 부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은 김인문씨였다. “이북 출신 영감이잖아요. 단지 이념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어릴 적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불렀을 노랠 텐데, 죽어가면서 아마도 본능으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래서 부른 거야. ” 인터뷰 도중 갑자기 그가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 나른한 오후, 호텔로비의 공기가 그의 노래로 조용히 덮인다. Once upon a time_ ‘스타’다방에서 배우를 시작하다 농대를 졸업한 이 ‘흙의 사나이’는 26살 무렵 그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에 떡하니 붙어서 “흰칼라 입은 멀끔한” 동사무소 재무담당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때가 자유당 말기라서 비리가 많을 때예요. 점심 먹고 와보면 책상 아래 와이루(뇌물)가 놓여 있더란 말이지. 그런데 그 돈이 다 자기들 잘되려고 주는 거 아니겠어, 결국엔 내 인생의 흡집이 나는 게 싫어서 2년8개월 만에 때려치웠지 뭐.” 무얼 할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고 그때부터 김수용 감독 집 앞에서 오로지 배우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죽치고 서 있었다. 김 감독의 부인은 “고생하지 말고 연락처만 남겨놓고 가라”고 타일렀지만 이십대 후반의 이 피끓는 청춘의 의지는 길바닥에서 밤을 새우는 날이 늘어갈수록 더욱 가열차게 타올랐다. 공무원 그만둔 게 쪽팔려서라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름이면 모기에 수혈을 하는 와중에도 적십자에 가서 피뽑아 매혈하고, 겨울에는 천호동 벽돌공장에서 벽돌을 구우면서 추위를 피했다. <푸른하늘 은하수> <감자> <달마야 놀자> 그렇게 13개월, 1년이 넘게 김 감독의 집 앞을 지키던 어느 날, 부인이 “들어와보라”는 말을 그에게 건넸다. “들어가니 김수용 감독이 다짜고짜 “이 사람이 말야! 배우 아무나 되는 건 줄 알아?”하고 호통을 치시더라고. 그런데 신이 도왔는지, 그 말에 주눅이 든 게 아니라 뜬금없이 “‘혹시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론을 아십니까?’라는 말이 쑥 나와버렸던 거지.” 그렇게 대성하는 배우는 길 지나가도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어야 한다. 좋은 배우가 되고 안 되고는 상상력의 차이다. 앤서니 퀸, 더스틴 호프먼을 봐라, 절대로 미남 아니다. 뭐 이런 말을 쉬지 않고 지껄였다. “그제서야, 너 이리 앉아봐라. 하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테이블 위에 도민증하고 공무원증을 딱 올려놨지. 신분도 확실한 거지. (웃음) 그리고 찬찬히 보시더만, 내일 새벽 5시에 스타다방으로 나와, 그러대. 다음날 가보니 여기저기 유명한 배우들이 앉아 있더라고, 아이고 어머니, 나 배우 다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그때 조감독이 설렁탕 먹고 촬영가자 그러더라고, 그때는 잘 먹으면 하루에 가락국수 두 그릇이었는데 설렁탕이라니, 식당에 앉아서 첫 숟갈을 뜨는 순간, 그 열세달간의 아니 이십몇년간의 뭔가가 울컥하니 올라오는 게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거야….” 어떻게 얻은 배우라는 타이틀이었던가. 뙤약볕에서 하루종일 기다려도, 대사가 없어도 신나고 좋기만 했다. 그렇게 7, 8개월 동안 엑스트라를 거친 그에게 신영균, 윤정희 주연의 <맨발의 영광>에서 6신이나 등장하는 깡패 역할은 본격적인 배우인생의 시작이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성공하겠다던 열살배기 소년의 꿈도, 멀리 솟은 삼각산을 우러러보며 대성하겠다고 다짐하던 청년의 희망도 대사 한마디의 희열 속에 다 녹아버렸다. Show must go on_ 더 늙기 전에, 죽기 전에 “내보고 염밭에 가서 일을 하자구?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못혀!” 마누라 덕에 겨우 밥을 먹으면서도 체면은 차리는 <감자>의 무능력한 소금골 서 서방을 비롯해, “가진 건 쥐뿔도 없는데 달랑 하나 있는 것도 제구실을 못하는” 천덕꾸러기 남편으로 등장한 <수탉>까지, 꽤 오랫동안 그는 무력한 남자의 초상이었다. 호방하게 계집 한번 후리지도 못하고 구들장에 누웠다가 밥상이나 받는 아버지, 세상사의 흐름에서 조금 비껴나간 듯한 장돌뱅이 같은 의 주인공들 역시 한참 동안 그의 차지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엔 늘 이면을 비출 거울들이 순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노식 선생이 나를 보고, 넌 악역을 해야 해, 그러시더라고, 악역이란 게 인상 더럽다고 하는 게 아니다, 칼로 푹 쑤시고 무표정하게 돌아서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걸어가도 하나도 안 이상할 사람이 진짜 악역이라고. 글쎄, 더 늙기 전에 정말 제대로 된 악역도 해보고도 싶어. 그런데 배우란 늘 선택이 되어야 하는 존재잖아. 그러니 어떡해, 늙어죽을 때까지 선택받게끔 노력하는 수밖에, 난 한번도 떠본 적도, 떨어져본 적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오히려 꾸준히 할 수 있는 거지.” 그가 최근 염두에 두고 있는 작품은 바로 여균동 감독의 <비단구두>다. 북한땅을 밟는 게 소원인 노인에게 아들이 강원도 어느 마을에 고향동네를 똑같이 재현시켜준다는 이 판타지에 가까운 영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의 속에서는 훅하고 뭔가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배우는 늘 한이 많아. 해놓고 나면 늘 후회한다고. 그런데 창자로, 이 배창자에서 끌어올려서 연기를 하고 나면 정말 만족감을 느끼거든. 그게 진짜야. 진짜 연기.” 죽을 날 앞둔 노인이 <오빠생각>을 흥얼거리며 비단구두를 새끼줄에 덜렁덜렁 매달고 걸어가는 마지막 그림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건 정말 내가 죽기 전에 한번 해보고 싶은 역할”이라며 아이처럼 들떠하는 배우. 그래, 그 기다림의 시간이 13개월인들, 13년인들, 130년인들 어떠랴. 어차피 그에게 연기란 건 배창자가 끊어지는 순간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될, 기다려 내지 않으면 안 될 숙명이 아니었던가. 글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필 모 그 라 피 (Filmopraphy) 1939년생 영화 <맨발의 영광>(1968) <감자>(1987) <수탉>(1990) <휘모리>(1994) <엽기적인 그녀>(2001) <달마야 놀자>(2001) <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 <바람난 가족> (2003) <영어완전정복>(2003) 외 다수 TV <순심이>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옥이이모> <저 푸른 초원 위에> 외 다수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1]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2]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3]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4]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5]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1]

돌아온 백전노장, 젊은 충무로를 쏴라 한국영화로 돌아온 TV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TV드라마의 중견배우들이 스크린으로 돌아오고 있다. 와 <반칙왕>의 신구, <친구>와 <굳세어라 금순아>의 주현, <조용한 가족>과 <봄날은 간다>의 박인환, <무사>와 <살인의 추억>의 송재호, <달마야 놀자>와 <라이터를 켜라>의 김인문, <선생 김봉두>와 <살인의 추억>의 변희봉, <튜브>의 임현식, <피도 눈물도 없이>와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백일섭, <황산벌>의 오지명, <가문의 영광>과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의 유동근, <라이터를 켜라>와 <보리울의 여름>의 박영규, <조용한 가족>과 <영어완전정복>의 나문희,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자옥, <바람난 가족>의 윤여정 등, 최근 몇년간 한국영화는 TV드라마에서 연륜과 경험을 수혈받으며 관객이 사랑할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을 만들어갔다. 바야흐로 ‘실버배우 전성시대’라 이름붙일 수 있는 상황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변희봉, 송재호, 두 배우를 캐스팅한 봉준호 감독은 TV드라마의 관록있는 연기자들을 “무한한 금광”이라 표현한다. “매일 브라운관에서 보면서 너무 쉽게 여겨서 그렇지 그분들의 연기력은 엄청나다. 캐릭터를 어떻게 재미있게 만드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 “류승완 감독 역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그는 신구와 백일섭, 두 배우에게 과거 액션영화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악역을 다시 보여달라고 청했고 그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의 새로운 단면을 보는 것만으로 영화적 즐거움을 대신할 수 있는 영화가 됐다. 한편 TV드라마의 중견배우들이 보여준 안정감 있는 연기는 최근 흥행영화의 필수요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동근이 없는 <가문의 영광>, 김인문이 나오지 않는 <달마야 놀자>, 백일섭, 김자옥이 빠진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지금보다 꽤 심심한 영화가 될 것이다. 그들의 친숙한 모습은 코미디의 들뜬 세계에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주문처럼 느껴졌다. 예를 들어 오지명이 <황산벌>에서 의자왕으로 출연한다는 사실이 연상시키는 코믹한 이미지는 캐릭터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을 구차하게 만든다. 90년대 이후 성장일로에 있는 한국영화가 TV드라마에서 새로운 자산을 발굴한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다. 처음엔 숱한 연극배우들이 카메라 앞에 섰고 그중 일부가 스타가 됐지만, TV에 그들 못지않은 ‘탤런트’가 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TV드라마의 중견배우들은 과거 충무로에서 촉망받던 배우들이기도 하다. 물론 그들이 돌아오는 데는 커다란 걸림돌이 있었다. 그건 할 만한 배역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20대 초·중반 관객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다는 기획영화의 깃발 아래 주류영화는 부모세대의 등장에 무관심했다. 로맨틱코미디건 멜로드라마건 액션영화건 장르에 관계없이 한국영화의 젊은이들은 부모가 없는 인물이거나 가족관계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초기에 이런 경향을 거스른 작품은 허진호 감독의 ,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 장진 감독의 <기막힌 사내들>, 윤인호 감독의 <마요네즈> 등이었다. 제작비 절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시나리오 단계에서 배제됐던 중년, 노년의 인물들이 하나둘 영화의 울타리에 들어온 과정과 한국영화가 진화한 과정이 겹쳐지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연이 아닐 것이다. TV드라마의 중견배우들이 등장하면서 한국영화는 현실에 좀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최근 촬영에 들어간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이런 상황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노인들이 주인공인 코미디인 이 영화는 주현, 김무생, 송재호, 선우용녀, 양택조, 박영규 등 주·조연을 TV드라마의 중견배우들로 채웠다. ‘실버배우 전성시대’를 영화의 기획단계부터 적극 받아들인 경우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지만 이런 시도는 한국영화가 중견배우라는 풍요로운 자산을 어떻게 관리할지와 관련해 중요한 대목이다. “여배우는 서른, 남자배우는 마흔 넘으면 맡을 배역이 없다”는 어느 영화배우의 한탄은 단순히 일자리를 달라는 투정으로 들리지 않는다. 관록있는 연기자를 배제하면서도 좋은 영화가 양산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잭 니콜슨,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해리슨 포드 등 환갑을 넘은 배우들이 여전히 주인공을 맡고 서른살이 훨씬 넘은 줄리언 무어, 니콜 키드먼, 애슐리 저드 등이 멜로드라마의 연인으로 나오는 할리우드와 지금 한국영화의 시스템을 비교하는 것은 자칫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될 수 있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일찍이 할리우드만큼 역사가 길고 효과적인 스타시스템은 없었으니까. 여기 ‘실버배우 전성시대’의 얼굴로 네 명을 초대한 것도 한국영화가 지금보다 풍요로운 스타시스템을 갖추길 희망하기 때문이다. 변희봉, 송재호, 김인문, 선우용녀 등 네 배우는 최근 영화로 복귀한 백전노장 연기자들이다. 분명 그들의 삶과 연기에 관한 태도는 지금 한국영화에 부족한 어떤 면을 보완하는 데 필수적일 것이다.남동철 namdong@hani.co.kr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1]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2]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3]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4] 한국영화로 돌아온 TV 드라마의 중견배우 4인 [5]

7개 코드로 풀어보는 <원더풀 데이즈>의 성공 가능성 [2]

4 | 국내외 공격 마케팅 <원더풀 데이즈>는 과연 돈을 벌 수 있을까.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해도, 126억원이라는 숫자는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를 넘어 ‘애니메이션 산업’의 희망이라는 무거운 짐을 <원더풀 데이즈>에 안겨줬다. 7월14일 현재 <원더풀 데이즈>의 상영관은 서울 45개, 지방 102개. 국내 창작애니메이션으로는 전무한 배급 규모다. 하지만 최근 15년 동안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돌아온 홍길동 95>와 <블루 시걸> 정도. 96년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은 관객 동원에는 성공했으나, 회관 및 변두리 극장 상영 위주였던 당시 배급 시스템에서 수익을 남기진 못했다. 창작애니메이션의 시장이 협소하고, 성공모델이 드문 국내 환경에서, <원더풀 데이즈>의 시도가 무모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애초부터 제작진의 목표는 해외 세일즈를 통한 제작비 회수. 이미 99년 10월 MIFED에서 대만의 CMC와 30만달러에 판권 계약을 맺었고, 올해 프랑스 파테와 50만달러, 스페인의 망가와 17만5천달러, 중국 광저우의 방송사 <포샨>과 10만달러에 미니멈 개런티 계약을 맺었다고. 모두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하며, 추가수익이 발생하면 배분하는 조건이라는 게 황경선 PD의 말이다. 승부의 관건이 될 미국, 일본과의 계약은 아직 협의 중. 최상의 경우 미국과는 영어 시나리오 수정 및 더빙 비용을 포함해 500만달러선, 일본과는 200만달러선의 계약을 기대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500만∼600만달러, 국내에서는 전국 관객 수 100만명을 동원하고 마케팅비 20억원을 회수하는 게 제작진의 야심찬 바람. 할리우드 애니메이션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외한 일본 애니메이션도 쉽게 달성하지 못했던 성적이지만, 꿈대로라면 제작비를 충당하고 수익을 올리는 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국내 작품으로는 드물게 40cm 구체관절 액션 피규어와 종이 피규어, 영상소설과 메이킹북, 모바일 게임, 의류까지 다양한 부대상품과 함께 적극적인 멀티 마케팅 공세를 펴는 것도 그 때문. 꿈이 어느 정도 현실이 될지는, 해외에서 개봉한다는 내년까지 일단 지켜봐야 알 일이다. 5 | 말로 못한 정서와 이미지를 음악으로 전하다 <원더풀 데이즈>의 이미지가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면, 원일의 음악은 귀를 통해 마음을 사로잡는 세이렌이다. 마르의 폐선, 허름한 수하의 방 레코드 플레이어에서 흐르는 어쿠스틱 기타와 쓸쓸하면서도 온기어린 음색처럼, 황폐하고 음울한 미래의 공기를 푸근하게 감싸곤 하는 음악. “시적인 영화를 찍고 싶었기 때문에 이미지 위주고, 음악이 영화의 영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김문생 감독은, 원일의 솔로 음반 <아수라>를 듣고 바로 자신이 찾던 음악이라 느꼈다. “한곡에 기쁨과 슬픔, 과거와 미래가 다 담긴, 에스닉하면서도 컨템포러리한 음악. 말잔치지 이게 어디 설명인가. 그런데 원일씨는 알아들었다.” 평소 민속적인 음악과 현대적인 사운드의 결합에 관심이 많았던 원일은 감독의 말에 쉽게 의기투합했고, <꽃잎> <아름다운 시절>과는 또 다른 <원더풀 데이즈>의 음악을 5년 넘도록 고심해왔다. 감독과 함께 로저 워터스, 브라이언 이노 등 잘 어울릴 것 같은 음악을 이어붙여보기도 하고, “에코반은 진주조개에서 나올 것 같은 약간 금속성인 소리, 외부의 마르는 나무 느낌의 소리”라는 주문을 기초로 수십곡을 작곡하기도. 현악과 테크노 비트가 어우러진 추격전, 클라이맥스에 흐르는 오페라 아리아 등 체코까지 날아가서 녹음한 사운드트랙은 말로 다 드러내지 못한 캐릭터들의 정서와 낯선 이미지에 대한 감성적인 거리를 좁혀주는 공신이라 할 만하다. 6 | 어색하고 밋밋한 캐릭터 표정 <원더풀 데이즈>를 보고 나온 한 관객은 “어떻게 같은 영화인데 얼굴이 장면마다 다른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나의 캐릭터라도 옆모습과 정면이 다르고, 움직임도 어색한 탓이었다. 김문생 감독은 이런 약점을 “찌그러진다”고 표현했다. 10대부터 프랑스 만화 <헤비메탈>, 일러스트 스타일이 강한 뫼비우스의 그림을 좋아해서 사실적인 캐릭터를 시도했는데, 문제는 애니메이팅이 까다롭다는 것이었다. 제이와 수하, 시몬은 다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보다 선을 훨씬 많이 그어야 하는, 다시 말해 실제 인물과 가깝고 복잡한 외양을 지닌 캐릭터이고, 선이 1mm만 흐트러져도 그 차이가 훨씬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또 “애니메이션은 뛰는 장면보다 걷는 장면 연출이 훨씬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깨의 움직임과 떼놓는 발걸음 하나에도 그때그때의 감정과 상황이 실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관객은 그런 어려움을 고려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기 어렵기 때문에 어색할 거라는 단점을 파악했다면, 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어야 할 것이다. 감정을 풍부하게 묘사할 수 있기 때문에 3D가 아닌, 2D 캐릭터를 선택한 의도 역시 충분하게 살아나지 못했다. 웃는 장면은 시나리오상에 거의 없지만, 감정이 파도처럼 치고 일어나야 할 장면에서도 중요한 캐릭터 셋은 무표정으로 일관하거나 멀찌감치 서 있는 전신만을 드러낸다. “부족하다면, 관객이 눈치채기 전에 숨기고 지나가자”고 판단했다는 것이 김문생 감독의 설명. 그는 “다음엔 좀더 단순한 캐릭터를 그려야겠다”고 말했다. 7 | 불모지 개척, SF와 10대 이상의 관객 영화예매 사이트 맥스무비는 <원더풀 데이즈> 예매관객이 18∼21살 사이에 집중돼있다고 분석했다. <아마겟돈> <블루 시걸>이라는 오래된, 그리고 각각 흥행과 완성도 면에서 성공하지 못했던 전례가 있기는 하지만,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은 참 오래간만이다. 여기엔 10대를 대상으로 한 CF를 주로 연출했던 김문생 감독의 전력과 함께, 이제서야 한국에서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SF장르의 영향력이 함께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원더풀 데이즈>가 <아키라> <공각기동대> <카우보이 비밥> 등을 참고했다고 지적하는데, 이들은 상당히 많은 한국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재패니메이션이다. 감독 자신은 프랑스 만화 <헤비메탈>을 이미지의 원재료로 삼고 싶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원더풀 데이즈>는 암울한 미래와 비극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는 러브 스토리, 젊은 세대의 감각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을 먹고 자란 세대의 공유재산인 것이다. <원더풀 데이즈>가 예매보다 현매가 활발하다는 사실 역시 이런 견해를 사실로 입증한다. 신용카드가 없는 십대 관객은 인터넷 예매보단 현매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보다 먼저 기반을 잡아야 할 SF소설과 만화가 부실한 한국에서, <원더풀 데이즈>는 오염된 지구와 그 정화라는 지나치게 방대한 소재를 택했고, 그 규모에 비해 너무나도 사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원더풀 데이즈>는 채 자라기도 전에 세상에 나온 미숙아일까? 관객의 판단은 아직 더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김현정 parady@hani.co.kr, 황혜림 blauex@hanmail.net · 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 7개 코드로 풀어보는 <원더풀 데이즈>의 성공 가능성 [1] 7개 코드로 풀어보는 <원더풀 데이즈>의 성공 가능성 [1]

7개 코드로 풀어보는 <원더풀 데이즈>의 성공 가능성 [1]

애니메이션의 `쉬리` 될까 7개 코드로 풀어보는 <원더풀 데이즈>의 성공 가능성 <원더풀 데이즈>가 드디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7년에 걸친 제작기간과 126억원에 달하는 제작비, 독창적인 제작기법으로 관심을 모아온 <원더풀 데이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한 고비가 될 만한 작품이다. <원더풀 데이즈>가 스스로 길을 닦아가면서 치른 모험은 애니메이션에 하나의 돌파구를 열 수도 있겠지만, 실패한다면 그 손실이 가져올 파장은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대작이 실패할 때마다 몇년 동안 그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한국의 장편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는 그 쓰라린 기억을 되풀이하게 될까, 아니면 한국 애니메이션에 ‘원더풀 데이즈’를 가져올 수 있을까. <씨네21>은 <원더풀 데이즈>가 내놓은 승부수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조심스럽게 그 미래를 짐작해 보았다. - 편집자 1 | 기법과 이미지의 신대륙 김문생 감독은 “아주 가끔,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이라는, 티저포스터에도 실린 문장 하나를 토대로 <원더풀 데이즈>를 시작했다. 파란 하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영감을 받은 글라이더, 그늘진 미래도시의 거리. 비가 그치지 않는 AD 2142년 지구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이 포스터는 하늘이 맑게 갠 단 한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주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조각들을 봉합한 그림이기도 하다. 실사로 촬영한 하늘과 평면적인 2D의 글라이더, 미니어처와 3D가 혼용된 미래도시가 프레임 하나에 녹아 있는 것이다. 몇겹의 그림을 겹쳐가면서, <원더풀 데이즈> 제작진은 여러 기법의 질감을 살리는 방식으로 엄청난 규모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 대적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했다. <원더풀 데이즈> 제작진이 이런 독창적인 기법을 시도한 까닭은 의외로 <파이널 환타지> 때문이었다. 3D 기술만으로는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할리우드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그 때문에 가우디의 건축물을 기초로 삼은 에코반과 레비우스 우즈의 해체주의 디자인을 청계천 골목에 응용해 완성한 마르는 미니어처로, 미묘한 색감과 존재감이 중요한 구름은 실사촬영으로, 3D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필요한 인물은 2D로 제작하기로 했다. 에코반 경비대와 마르 레지스탕스가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그 조화가 가장 돋보이는 부분 중 하나다. 역동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3D로 만든 도끼가 미니어처 세트를 가르며 2D인 제이 옆에 박히는 이 장면은 <원더풀 데이즈>가 자랑스러워 할 만한 결실. 깊이가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번져 기법간의 경계를 지워가는 <원더풀 데이즈>의 영상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이룩하지 못한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감독이 20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파리, 텍사스>에서 가져온 황폐한 대지와 흐린 안개 속을 질주하는 제이의 바이크는 분명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감정을 품은 장면이다. <원더풀 데이즈>는 세심한 손길을 거친 테크놀로지라면 정서에도 호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다. 2 | 제작기간 7년, 제작비 126억원 ‘사상 최대’ “블루캡에서 후반 작업할 때 김기덕 감독을 만났는데, 내가 1편 만드는 동안 4편 째 만들고 있더라.” 애니메이션의 평균 제작기간이 실사영화보다 길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원더풀 데이즈>의 항해는 참으로 지난했다. 기획에 들어간 96년의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꼽으면 7년째. 2000년 2월 미니어처 제작부터 시작된 메인 프로덕션만 따진다 해도 만 3년 반이 걸렸다. 적확한 항로를 알 수 없는 모험이었던 만큼, 이미지의 신대륙을 찾아가는 과정의 시행착오도 불가피했던 탓이다. 이를테면 미니어처로는 에코반의 웅장한 스케일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판단하에, 촬영 직전 세트를 포기하고 3D컴퓨터그래픽으로 대체한 것도 그 한 예. 전체적인 레이아웃에 맞는 세트를 제작하려면 스토리보드가 정확해야 하고, 그러려면 완전한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결국 프리프로덕션으로 귀결된다. <원더풀 데이즈> 시나리오의 최종 수정이 끝난 것은 2002년 가을. “순서대로 하는 게 최상이지만, 쉽지 않다.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는 투자가 안 된다.” 프리프로덕션에 대한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는 국내 환경에서, 완성된 시나리오보다 데모부터 선보이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유치하는 경우가 많은 게 창작애니메이션의 현실. <원더풀 데이즈>의 경우, 99년 데모 제작을 위해 인력을 모은 뒤 메인 프로덕션에 박차를 가하기까지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제작 스탭만 해도 350여명, “CG 파트만 25명이 3년간 일했다. 1인당 100만원씩만 인건비를 계산해도 1년이면 3억원”이라는 황경선 PD의 말이 아니더라도 제작비가 불어난 과정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12만매의 동화와 3D의 외주 제작, 소니카메라와 프레지어 렌즈의 4개월 대여료 10억원, 다양한 질감의 이미지를 합성하기 위한 장비 인페르노를 1년간 사용하는 데 4억원 등 제작기법에 따른 제작비 상승도 만만치 않다. 제작사 양철집이 밝힌 실제작비는 80억원. 20억원은 국내 마케팅, 나머지는 해외 세일즈용 더빙 및 마케팅 비용이다. 하지만 프리프로덕션부터 차근차근 밟으며 시나리오 수정에 들어간 돈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었다면, ‘한국 영화사상 초유’라는 126억원의 제작규모는 줄어들었으리라는 게 업계의 중론. 어마어마한 제작비는 세계 시장에 승부수를 던질 만한 영상을 길러내는 자양분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승부를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3 | 헐거운 구성과 빈약한 스토리라인 오랜 산고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질감의 이미지를 조합하는 세공의 매력에 비해 군데군데 빈틈이 보이는 이야기는 가장 많은 아쉬움을 샀던 지점. 갈등구조가 단순하고, 인물들의 감정표현이 적은 드라마의 전개는 느슨하고 밋밋한 편이다. 오염물질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인공 도시 에코반, 에코반의 존속을 위해 희생될 위기에 처한 마르, 각자의 터전을 지키는 적으로 재회한 두 연인 제이와 수하. 가보지 않은 미래세계에 대한 시각적인 이미지의 구성은 풍부하지만, 에코반과 마르가 어떤 공간인지에 대한 이해나 주인공들의 애틋한 감정에 대한 몰입을 유도할 만한 묘사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유기체적이고 현대적인 에코반과 거친 자연의 모습을 띤 마르의 풍경을 활보하는 카메라워크의 역동적인 장관 속에서, 절제된 대사와 표정으로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들은 정물적인 이미지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김문생 감독은 “대사에 의존한 영화보다는 이미지에 의한 구성을 시도하고 싶었다”고. “비는 현실, 안개는 회상과 과거에 대한 기억, 번개는 생존, 바람은 변화, 햇살은 이상이 찾아온 날, 5장의 구조를 가진 시적인 애니메이션”이 애초의 구상이었다. 실험영화냐, 드라마가 약하다는 주위의 지적에 시나리오를 보강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의 작가들에게 의뢰해가며 거듭 수정을 거쳤지만, 3년이 지나도록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사실 국내에서 장편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써본 사람은 드물다.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추상적으로 쓰는데, ‘어둠이 컬러를 도려내는 침묵’ 같은 묘사를 보고 어떻게 콘티를 짜겠나.” 결국 감독이 직접 다락방에서 칩거하면서 사랑 이야기 위주로 풀어보고자 했던 시도가 지금의 버전. 제작 막바지까지도 시나리오를 다듬고, 편집실에서 곽재용 감독의 조언을 들어가며 대사를 일부 손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은 눈치다. 인물 중심, 수하의 동선을 쫓아갔어야 한다는 어느 관객의 평에 수긍이 갔다면서, “관객은 울고 웃을 준비를 많이 하고 보는데, 그 감정을 끌었다 놨다 하지 못하고 좀 일방적으로 보게만 한 것 같다”는 게 김문생 감독의 말. 7개 코드로 풀어보는 <원더풀 데이즈>의 성공 가능성 [1] 7개 코드로 풀어보는 <원더풀 데이즈>의 성공 가능성 [2]

DVD 연속기획 1 - DVD로 듣는 OST [3]

실패한 연인들을 위하여 <화양연화> 花樣年華 | 2000년 | 감독 왕가위출연 양조위, 장만옥 | 출시사 다음미디어 10번 트랙/ 사랑에 빠져 가정을 떠난 남녀 뒤에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남편이, 아내가 떠나버린 빈자리에 남아 상처를 쓰다듬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 냇 킹 콜의 노래가 내려앉는다. 쿨한 듯 흘러나오는 냇 킹 콜의 음색은, 그러나 찌꺼기만 남아 있다고 생각했던 사랑의 감정을 쿡쿡 찔러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알람소리에 아침잠을 깨듯, 냇 킹 콜의 슬프도록 달콤한 목소리가 울리면 그들은 스쳐지나고, 만나고, 응시한다. 싱가포르로 떠나게 된 차우(양조위)는 묻는다. “티켓이 한장 더 있다면 같이 가겠소?” 그리고 가 흐른다. “항상 난 그대에게 묻지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냐고/ 그대는 늘 내게 대답하지요/ 글쎄, 글쎄, 글쎄/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고/ 나는 절망에 빠져듭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대답하지요/ 글쎄, 글쎄, 글쎄….” 노래가 끝나고, 남자는 떠나고, 허겁지겁 달려온 리첸(장만옥)은 뇌까린다. “내게 자리가 있다면 내게로 올 건가요?” 내 연애만 실패로 끝나는 건지, 원래 연애라는 장르는 실패가 운명지워진 건지, 이 의문에 답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긴 여정의 서곡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 1984년감독 빔 벤더스 | 출연 해리 딘 스탠튼나스타샤 킨스키 | 출시사 미디어체인 1번 트랙/ 작열하는 광선 속에서 모든 게 말라비틀어진 듯한 황량한 텍사스 사막, 빨간 모자가 눈에 띄는 한 남자가 걸어간다. 초점 잃은 눈과 무기력한 걸음걸이는 그의 내면이 사막보다 더 황폐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흘러나오는 라이 쿠더의 기타 소리는 이 공허함과 쓸쓸함을 극단까지 몰아붙인다. 떨림이 강한 기타의 단속음은 멜로디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이 영화의 커다란 주제인 소통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듯하다. 주제곡 <파리, 텍사스>는 주인공 트래비스(해리 딘 스탠튼)가 이 영화 속에서 헤쳐나가야할 여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 내내 다양한 형태로 흘러나오면서 트래비스의 심리상태와 사람들 사이의 먼 거리를 표현한다. <파리, 텍사스>는 벤더스와 라이 쿠더의 첫 합작품이다. 너는, 나는 누구냐? <파이트 클럽> Fight Club | 1999년감독 데이비드 핀처 | 출연 에드워드 노튼브래드 피트, 헬레나 본햄 카터 | 출시사 이십세기 폭스 35, 36번 트랙/ “다리는 하늘에, 머리는 땅바닥에 두고 이 트릭과 회전을 해보지 그래, 네 머리는 붕괴할걸. 하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지. 그리고 넌 스스로에게 묻겠지. 내 정신은 어디에?” 통유리창 너머로 즐비했던 고층빌딩들이 바람 앞의 모래성처럼 속절없이 무너질 때 강렬한 기타와 드럼 사운드에 실린 목소리가 이렇게 묻는다. 나(에드워드 노튼)와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이 분열을 멈추고 통일된 듯한 상황에서 픽시스는 로 ‘도대체 나는 누구냐?’고 묻는 것 같다. 확고하기 짝이 없던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즐거워하는 듯 시원한 사운드는 정체성에 관한 다소 심오한 질문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지만, 이 영화의 이 장면에는 딱 어울리는 절묘한 선택이다. 다른 장면에선 더스트 브러더스의 하드코어 테크노 사운드를 사용하다 마지막에 이 곡을 쓴 데는 핀처의 섬세한 계산이 작용했을 듯. 전통은 가라! <사무라이 픽션> Samurai Fiction | 1998년감독 나카노 히로유키 | 출연 가자마 모리오후키코시 미쓰루, 호테이 도모야스 | 출시사 다음미디어 5번 트랙/ 흑백 사무라이영화에 록음악이 웬말이냐. 그런데 그게 썩 어울리는 것을 보면 오프닝 타이틀에 SF라고 시작하는 것이 (<사무라이 픽션>의 줄임말이기도 하지만, ‘공상과학’이라는 뜻으로 봤을 때도) 공염불은 아닌 듯. 보검을 훔친 카자마츠리를 뒤쫓는 울트라 엉성 3인조가 바닷가로 산으로 마구 내달리는 모습에서 <트레인스포팅>의 청춘군상이 오버랩된다면 오버일까. 여자 앞에서 퍽 하고 시뻘건 코피를 쏟는 사무라이의 모습에 낄낄거리고 다리가 풀려서 천장에서 뚝 떨어지는 자객에 푸실푸실 웃다보면 전혀 일본 전통스럽지 않은 선곡에 놀랄 것도 없어 보인다. 슬라이드 기타가 등장하면 마카로니 웨스턴이 되는가 싶은데, 또 어느 순간엔 보사노바 계열의 리듬이 들어서더니 영화를 가볍고 말랑말랑한 핑크빛으로 칠해버린다. 기모노를 입은 여주인이 카자마츠리를 유혹하려고 캉캉 댄서라도 된 듯 엉덩이를 내보이며 에 맞춰 몸을 흔드는 부분이 바로 그것.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고 옆에 슬쩍 앉아서는 “정말 강하시군요”라며 허스키하게 중얼거리는 그녀. 뇌쇄적 매력보다는 싸움솜씨가 돋보이는 터프한 팜므파탈을 위한 최고의 선곡이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 1984년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 출연 로버트 드 니로제임스 우즈 | 출시사 워너 10번 트랙/ 너무 많이 봤다고? 그래서 진부하다고? 글쎄, 섣불리 답하긴 이르다. 영화를 굳이 다 보지 않은 사람들도 TV에서 족히 대여섯번은 보았을 어린 데보라(엘리자베스 맥거번)가 춤을 추는 장면은 최근 복원출시된 229분짜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다시 훔쳐보기를 충동질한다. 이제는 늙어 백발이 성성한 누들스(로버트 드 니로)가 옛날 옛적 비열한 거리에서 지냈던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리기 위해 필요로 했던 것은, 모의 식당 화장실 변기 뚜껑을 닫고 올라서서 벽의 판자를 뜯어내고 그 구멍에 눈을, 마음을 가져다대는 것. 그 너머에 그녀가 있다. DVD의 깨끗한 음질 덕에 지직거리는 소리조차 선명한,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가 육체로 현현한 듯 음악과 하나된 소녀. 밀가루를 후광처럼 대기 중에 띄우고 사뿐사뿐 몸을 가누며 춤에 몰두한 데보라의 모습은, 그들 모두가 맞닥뜨려야 할 잔인한 삶에 쉽게 KO당하지 않을 작은 꿈이 되어준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가장 의외의 선곡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 Fidelity | 2000년감독 스티븐 프리어스 | 출연 존 쿠색 잭 블랙 | 출시사 브에나비스타 28번 트랙/ 가장 뻔뻔한 조연 ‘Top 5’를 뽑으면 상위권에 랭크될 것이 120% 확실한 베리(잭 블랙)는, 영화 내내 얄미운 짓만 골라한다. 바지는 다 흘러내려서 X구멍이 다 보일 지경에 머리는 천만년 전에 감은 듯 떡이 됐고, LP를 사겠다는 손님이 마음에 안 든다며 팔기를 거부하는 베리의 싸가지는 그야말로 영업장의 적. “돈을 줄 테니 제발 무대에 서지 말아줘”라는 롭(존 쿠색)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에 선 밴드 ‘죽이는 원숭이’의 보컬 베리. 괴상한 노래를 불러서 사람들이 모두 계란투척이라도 할까봐 잔뜩 불안해진 롭과 그의 여자친구 로라의 귀에 딩딩딩∼ 하는 기타전주와 함께 들려온 것은 . 짧은 전주가 선곡의 놀라움을 극대화한다. 극중에서 ‘최고의 1번 트랙’으로도 꼽혔던 마빈 게이의 명곡이고, 여주인공 로라가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사운드트랙 앨범에는 잭 블랙의 노래가 실려 있다. 시체들을 위한 러브송 <좋은 친구들> Goodfellas | 1990년감독 마틴 스코시즈 | 출연 로버트 드 니로조 페시, 레이 리오타 | 출시사 워너 B면 7번 트랙/ <카지노>와 더불어 <좋은 친구들> 역시 노래 듣는 재미만으로도 끝까지 보는 게 어렵지 않다. 한국에서는 사운드트랙 앨범이 발매되지 않은 점이 유감이지만 DVD의 볼륨을 한껏 키워놓으면 총소리, 비명소리와 함께 듣는 고전(록과 팝의 고전) 명곡들에 소름이 돋는다. 영화의 후반부, 크게 한탕한 지미(로버트 드 니로) 일당. 그들은 돈 번 티를 섣불리 내는 녀석들, 그리고 관련되어 소문을 낼지도 모르는 놈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기 시작한다. 이 트랙의 이름은 ‘온통 시체들뿐’(Bodies All Over)인데, 어느 아침, 아이들이 농구공을 들고 가다가 주차된 차 안에 죽어 있는 남녀를 발견한다. 피투성이가 된 남녀를 클로즈업하면서 ‘Derek and the Dominos’의 가 힘차게 터져나온다. 흔히 듣게 되는 에릭 클랩튼의 보컬 부분이 아닌 중후반의 피아노 리드 부분인데, 절절한 사랑 노래에 맞춰 쓰레기더미의 시체, 냉동차 안 갈고리에 걸려 매달린 시체들이 하나둘 등장한다. 그런데 너무 잘 어울린다, 뒷골이 쭈뼛 설 정도로. DVD 연속기획 1 - DVD로 듣는 OST [1] DVD 연속기획 1 - DVD로 듣는 OST [2] DVD 연속기획 1 - DVD로 듣는 OST [3]

북한 소재 코미디영화 제작 잇따라

남북문제 희화화ㆍ상업화 우려도 남한 정보기관장의 '날라리' 아들 철수. 공부보다는 무도회장에서 뭇 여성에게 '작업' 거는 것을 즐기는 그는 부족한 학점을 채우려고 참여한 옌볜 고분 답사에서 운명적인 여자 영희를 만난다. 그녀는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딸. 이제 이 바람둥이는 사상 최초로 북한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남한의 남자대학생이 된다.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의 제작이 활발해지면서 남북한 문제가 상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기획중이거나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 북한 소재의 영화는 4편 이상. <남남북녀>(사진)(제작 아시아라인), <동해물과 백두산이>(제작 주머니필름), <그녀를 모르면 간첩>(제작 M3엔터테인먼트)을 비롯해 이경규의 연출 복귀작 <우리가 몰랐던 세상>까지 분단 반세기 어느 때보다 제작이 활발한 듯하다. 최근 촬영을 마치고 다음달 14일로 개봉 날짜를 잡아놓은 <남남북녀>는 남북학생 고분발굴단에 참가한 남한의 바람둥이 철수와 북한의 여대생 영희의 사랑을 그린영화. 배우 정준호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북한 병사들의 남한 표류기다. 해안 초소의 북한군 '동해'와 '백두'가 우연히 남한으로 떼밀려와 황당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이 주요 내용. 최근 김정화를 캐스팅하고 9월께 촬영에 들어갈 예정인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제목 그대로 간첩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팬 사이트까지 만들어 질 정도로 '퀸카'로 인기를 모으던 여대생이 알고 보니 진짜 간첩이었다는 것이 영화의 설정이다. 이경규의 연출 복귀작 <우리가 몰랐던 세상>도 간첩이 등장하는 영화. 20년 전의 남한 실상을 바탕으로 교육을 받던 간첩이 남한에 내려와서 겪는 문화충돌을 소재로 한다. 이렇게 간첩이나 북한군, 북한 여성 등이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가까우면서도 멀리 있는 듯하던 북한이 좀더 친근한 존재가 됐다는 증거다. 금강산 관광으로 북한 방문이 가능해졌고 육로와 철길이 막혀있던 남북을 이어주고 있으며 지난해 아시안게임 때는 미모의 북한 여성응원단들이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렇게 북한을 웃음의 소재로 하는 영화가 늘고 있는데 대해 영화계 안팎에서는 우려의 눈길도 많다. 한 영화인은 "북한이라는 소재는 진지하게만 접근하면 쉽게 지루해지기 때문에 코미디로 접근하게 되는 듯하다"며 "이런 소재가 최근의 몇몇 코미디 영화의 공식대로 가벼운 웃음과 감동을 주기 위한 것으로만 사용될까봐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북한 사람들을 희화화시키거나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우려도 있다. <남남북녀>에서 북녀(北女) 영희는 남한의 라디오를 몰래 들으며 god 노래의 가사를 받아 적는다. <그녀를…>에서 남파된 간첩은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는 남한 사람들에게 속아 피라미드 판매조직에 들어가고 <우리가…>에서 이미 한참 지난 남한 실정을 바탕으로 교육을 받고 남파에 온 간첩은 우왕좌왕한다. <그녀를…>의 한 관계자는 "'간첩'은 로맨틱 코미디인 이 영화에서 소재로만 등장할 뿐"이라고 전제한 뒤 "소재를 왜곡할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 씨는 "코미디라고 해서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라는 소재를 한결같이 코미디로만 풀어가려는 경향은 우려가 된다"며 "북한 소재의 코미디 영화가 성공을 하려면 웃음을 통해 코미디만이 줄 수 있는 신랄한 현실 풍자를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한국영화 회고록 신상옥 9

"문화라는 게 독창적인 건 없잖아?” 이탈리아 리얼리즘의 영향 아래 흥행작 <지옥화>를 만들다 <지옥화>(The Flower in Hell) 1958년, 제작사 신상옥프로덕션, 제작자·감독 신상옥, 각본 이정선, 촬영 강범구, 음악 손목인, 미술 송백규, 조명 이규창, 편집 김영희, 출연 김학, 최은희, 조해원 지난호에 이어 서울영화사 시절과 영화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똥고집을 부려 실패한 작품”이든 “흥행성이 좋았던 작품”이든 신상옥 감독은 자작을 말할 때 가장 상기된 모습을 보인다. <지옥화>를 보고 난 뒤 오랫동안, 양부인(洋婦人) 최은희와 하모니카로 연주되는 ‘바람둥이 아가씨’로 이 영화를 기억했다. 그런데 이제 기타치는 포즈를 섞어 영화를 설명하는 신상옥 감독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당가당가 당, 당가당가 당….” <무영탑>은 완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스펙타클이 안 되니까 무대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 결국은 실패작이었다. 무대식으로 해가지고는 맥히질 않는다. 그때 한참 <리차드 3세>니 뭐니 섹스피어 걸 영국에서 무대식으로 많이 찍은 게 있었다. 또 우리가 서라벌이네 뭐네 하는 것을 전부 세트로 할 수 없으니까 무대식으로 한 것인데, 똥고집을 부려가지고 실패했다고 봐야지. 그러나 지금도 ‘무영탑’은 좋은 소재라고 생각한다. <고백>(<어느 여대생의 고백>)하고 <지옥화>부터 흥행이 되기 시작했다. ‘여대생의 고백’이라는 제목 때문에 (관객이) 들었을 것이다. <여대생의 고백>은 앙드레 지드 원작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목이 <배신>인가? 그때 여자 변호사로 처음 최 여사(최은희)가 나와서 했기 때문에 이태영씨가 반해서 최 여사를 딸이라고 생각하고 아꼈다. 돌아가신 이태영 박사가 여자 변호사로는 처음 아냐? 검사 논고문은 또 문인구씨더러, 직접 검사한테 써달라고 해서 넣었다. 그때 논고는 어떻게 하는 건지 우리가 전혀 모를 때거든. 우리가 뭘 아나? <지옥화>는 흥행성이 아주 좋았다. 대략 <악야>라는 것부터가 양부인 얘긴데, 양부인이라는 것이 (나에게) 처음의 한 가지 소재였으니까. <지옥화>는 양부인치고는 좀 액티브하다. 이건 사실 최 여사보다는 좀더 악녀다운 여자가 해야 되는 건데, 최 여사 딱 맞는다고 보지 못하지. 그때 최 여사는 <마음의 고향>(1949, 윤용규)으로 어느 정도 ‘이메지’가 섰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꼭 한국 전형적인 여성이다 하는 그런 이메지가 그렇게 세지 않을 때고, 또 한 가지 나로서는 어지간히 부려먹어었어야지. (웃음) 그래서 시켰다. 젊었으니까 체격도 좋았고. 마지막에 쏘냐가 죽는 늪의 장면, 그건 한양대 앞에 돌다리, 살구씨 다리에서 찍었다. 그 근처가 전부 늪이었다. <무영탑>도 특별한 데가 아니고 전부 한강이다. <지옥화>는 불란서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은 이걸 대표작으로 인정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사회성 있는 영화로서는 처음이다 이거지. <오발탄>보다 앞섰으니까. 그 사람들이 물을 때 꼭 뭐라고 묻는가 하니, <백주의 혈투>(, 1946, King Vidor, Otto Brower)를 봤느냐고. 조셉 코튼하고 제니퍼 존스, 그레고리 펙이 나오는 영화, 내가 그걸 베낀 줄 알고. 형제간에 여자 하나 두고 싸우는 소재는 같잖아? 그러나 그때 나는 그 영화 보지 못했고 내용이 전혀 다르다. 나도 40년 만에 불란서에서 처음 <지옥화>를 봤는데 잘 찍었다고 봤다. <여대생의 고백>에서 돈 벌었으니까 쩔쩔매면서 찍었갔지? 캬메라는 뉴스 캬메라 아이몬데 ‘아이모’에다가 400자 마가진(매거진)을 붙여가지고 찍었다. 그 마가진이 돌아가지 않아서 손으로 돌리고 참 애먹었다. 음악은 신서사이저 하나로 전부 했다. 그 안에 하모니카 그거밖에 다른 음악이 없잖아? 그것도 무슨 내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돈이 없었으니까. 그때 <써드 맨>(The Third Man, 1949, Carol Reed) 같은 게 전부 기타 하나로 끝냈다. “당가당가 당, 당가당가 당” 하면서. 마찬가지 계통이다. 그리고 그때가 한참 이탈리아 리얼리즘이 성할 때였고. 그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지. 문화라는 건 서로 영향을 받아가지고 발달하는 것이지 독창적인 게 없다. 단군의 자손이라고 해서 단군의 문화가 없다. 대담 신상옥·김소희·이기림정리 이기림/ 영화사 연구자 marie3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