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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추석의 제왕은 누구?

하반기 라인업 윤곽 드러나, <조폭 마누라2> <바람난 가족> 등 개봉 올 하반기 흥행전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최근 주요 배급사들이 라인업을 확정하면서 하반기 개봉작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상반기 점유율 1위를 차지한 CJ는 8월8일 을 시작으로 한국영화 6편, 외화 7편을 배급할 예정이며 상반기에 다소 부진했던 시네마서비스는 8월1일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을 시작으로 한국영화 7편이 대기 중이다. 양대 메이저의 물량공세에 맞서는 중소 배급사의 움직임도 관심거리다. <장화,홍련>과 <싱글즈>가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면서 주가를 올린 청어람은 8월14일 <바람난 가족>부터 4편의 라인업을 확정했고 <툼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로 배급시장에 복귀한 튜브엔터테인먼트는 5편을 준비 중이다. <똥개>로 스타트를 끊은 쇼이스트, 9월5일 <오! 브라더스>부터 3편이 대기 중인 쇼박스, 1년여 탐색기를 마친 코리아픽쳐스 등도 다크호스로 눈여겨볼 회사들이다. 현재 각 배급사의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CJ: 8월8일 (이수연/ 박신양, 전지현), 9월5일 <스캔들-조선남여상열지사>(이재용/ 전도연, 배용준), 10월24일 <위대한 유산>(오상훈/ 임창정, 김선아), 11월14일 <말죽거리 잔혹사>(유하/ 권상우, 이정진), 12월5일 <낭만자객>(윤제균/ 김민종, 최성국) ▲시네마서비스: 8월14일 <거울속으로>(김성호/ 유지태) 9월5일 <불어라 봄바람>(장항준/ 김승우, 김정은), 10월17일 <천년호>(이광훈/ 정준호), 10월 말 혹은 11월 초 <영어완전정복>(김성수/ 장혁, 이나영), 11월7일 <황산벌>(이준익/ 박중훈), 12월24일 <실미도>(강우석/ 설경구) ▲청어람: 8월14일 <바람난 가족>(임상수/ 문소리), 9월 말 혹은 10월 초 <여섯개의 시선>(인권영화프로젝트), 11월5일 <아빠하고 나하고>(이상훈/ 정웅인), 11월 말 <고독이 몸부림칠 때>(이수인/ 주현), 12월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송강호) ▲튜브: 8월14일 <남남북녀>(정초신/ 조인성), 9월5일 <내츄럴시티>(민병천/ 유지태), 10월 <귀여워>(김수현/ 김석훈), 11월 <…ing>(이언희/ 이미숙, 김래원), 12월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이건동/ 차태현, 김선아) ▲쇼박스: 9월5일 <오! 브라더스>(김용화/ 이정재, 이범수), 11월 <빙우>(김은숙/ 송승헌, 김하늘), 12월 <동해물과 백두산이>(안지우/ 정준호) ▲쇼이스트: 9월 말 혹은 10월 초 <아카시아>(박기형/ 심혜진), 10월 말 혹은 11월 초 <올드보이>(박찬욱/ 최민식, 유지태) ▲코리아픽쳐스: 9월19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 김영민), 12월 <목포는 항구다>(김지훈/ 조재현, 차인표). 이같은 라인업에서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여름 흥행전의 마지막 고비인 8월14일과 추석연휴를 앞둔 9월5일의 흥행전. <거울속으로> <바람난 가족> <남남북녀> 등 3편이 격돌하는 8월14일과 <불어라 봄바람> <조폭 마누라2: 돌아온 전설> <내츄럴시티> <오! 브라더스> 등 4편이 경합하는 9월5일의 흥행결과는 하반기 영화시장의 판도를 가늠할 기회로 보인다. 극장가의 여름은 끝나가지만 한국영화의 여름은 지금부터가 뜨거워지는 시기다.남동철

질투와 자괴감에 대한 이야기,<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여고괴담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의 다른 이름은 ‘예고괴담’이다. 1편이 학교라는 공간의 폭력성을, 2편이 사춘기의 사랑을 공포의 모티브로 삼았다면 3편 <…여우계단>의 주문(呪文)은 질투다. 단순히 더 예쁜 아이, 더 근사한 교정 풍경을 얻기 위해 예술학교를 배경으로 고르는 많은 학원물과 달리 <…여우계단>의 괴담에서 주인공들이 예술가 지망생이라는 점은 그들이 여성이라는 사실만큼 중요하다. 자신의 인생을 갖고 무엇을 할지 너무 일찍 결정한 아이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경주하는 예술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악령은, 교육제도나 기성세대에 대한 염증이 아니라 질투와 자괴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발 더 나아가 죽음의 방식까지 아이들의 전공과 연결시킨다. 지젤로 선발된 소녀는 죽어서도 배신한 연인 곁을 맴도는 지젤이고, 걸작을 욕심내던 조소과 학생은 스스로 조각이 된다.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비극의 원흉은 분별없이 소원을 들어주는 여우계단이지만, 따지고 보면 계단은 눈을 홀리는 허깨비에 불과하다. 정작 피를 부르는 것은 진성의 죄책감, 그리고 혜주의 억눌린 분노와 열등감이다. 그래서 <장화, 홍련>이 그랬듯이 귀신이 출몰하는 초현실적 공포와 산 사람의 죄의식이 부른 환영을 동시에 가동하는 절충 전략이 쓰인다. 그러나 <…여우계단>은 오싹한 찰나의 이미지를 건지는 데 성공할 뿐 서스펜스나 참신하게 시각화된 쇼크를 연출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누가 죽이는가?”나 “어떻게 죽일 것인가?”의 궁금증은 좀처럼 관객의 마음을 점령하지 못하고, 공포의 크고 작은 정점들은 <캐리> <링> <여우령>의 추억을 호명하는 선에서 머문다. “왜?”라는 질문까지 희미하게 만드는 것은 캐릭터의 문제다. 돌이켜보면 <여고괴담> 시리즈는 신인 여성배우들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어떤 방식이건- 심지어 자멸이라도- 자신의 운명을 장악한 자주적인 여성캐릭터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우계단>의 네 소녀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허약하다. 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하게 굴다가, 유리조각이 든 토슈즈를 신은 채 춤을 추는 지독함을 발휘하는 소희의 빛과 어둠은 인물 안에서 하나로 녹아들지 못한다. 진성의 성격은 ‘소희의 적대자’라는 기능적 역할을 넘어서는 개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뚱보 왕따’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그려진 혜주의 희극성은 그녀가 지닌 슬픔의 깊이를 덮어버린다. 오만하고 가학적인 윤지는 극의 구조 바깥에서 겉돌다 스러진다. <여고괴담> 연작에는 <할로윈>이나 시리즈로부터는 절대 바랄 수 없는, 선연한 이미지들이 있다. 복도에 선 유령의 점프 컷이나 학교를 굽어보는 거대한 눈동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1편에서 목 매달린 교사의 시체를 목격한 지오(김규리)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대신 뒤따라온 심약한 친구를 돌려 세워 눈을 가려준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효신(박예진)은 반 아이들의 야유 속에 친구의 피 흘리는 입술에 키스한다. 빙빙 도는 카메라는 숙원 같은 입맞춤이 추문의 악취에 포위된 광경을 둘러본다. 연약하고 아름다운 것과 불길한 것의 공존이 빚어내는 불안. 그것은 <여고괴담> 시리즈의 고유한 마력이었다. <여우계단>의 초반에도 숨을 죽이게 하는 한장의 그림이 있다. 무용과의 만년 2등 진성은 전공 교사와 친구의 면담을 엿듣고 낙담한다. 소녀는 시기심으로 흐려진 눈빛으로 난간 위에 훌쩍 올라선다. 그녀의 실루엣은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부터 나는 추락할 것인가, 비상할 것인가? 한 걸음, 두 걸음. 누군가 발목을 끌어내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라이벌 친구가 거기 있다. 하지만 영화 <…여우계단>은 난간 위의 균형을 그리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죽음의 단조로운 리듬에 투신한다. <여고괴담> 시리즈가 독창적인 공포영화로서 보유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어차피 끔찍한 괴물이나 절묘한 플롯이 아니다. 관객을 오래 전율하게 만든 것은 클라이맥스가 덮쳐오기 이전에 예민한 소녀들에게 전염되는 고요한 패닉이었고 우리가 공유하는 기억의 속살을 베어내는 쓰라림이었다. 캠퍼스를 무대로 한 여느 할리우드 10대 슬래셔의 속편이었다면 <…여우계단>에 대한 만족도는 훨씬 높았을 것이다. 1편이 들려준 장중한 진혼곡, 2편이 들려준 우아한 랩소디에 이어 4년 만에 돌아온 충무로판 ‘죽음과 소녀’는 빠른 춤곡의 템포 안에서 멜로디를 혼동하고 말았다. 윤재연 감독 인터뷰 끼리끼리 붙어다니지만 그 속엔 질투가 박기형, 김태용, 민규동 감독에 이어 <여고괴담> 시리즈를 통해 장편 데뷔한 윤재연(31) 감독은 16mm 단편 <사이코 드라마>로 서울여성영화제 우수상을 받았고 박종원 감독의 <파라다이스 빌라>의 아트디렉터를 거쳤다. <…여우계단> 인물의 심리에는 서양화 전공으로 예술고교에서 보낸 감독의 학창 시절 기억이 배어 있다. 예술고등학교를 3편의 무대로 잡았다. 시나리오 마지막 단계에 결정했다. 예고를 다니면서 특별히 강렬한 경쟁이나 질투를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무용과 친구들을 보면 끼리끼리 붙어다니면서도 묘하게 질투하는 불편한 감정이 은연중에 느끼곤 했다. 학업에 대한 경쟁이라면 1편에서도 만년 2등 이야기를 다룬 바 있어서 주제를 담아내는 데 예고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학생은 나오지 않는다. 사실 혜주의 폭식과 갈등의 원인으로 조소과 남학생을 설정하기도 했다. 결국 여학생들만의 예술고교가 됐지만. 제목이 ‘여고괴담’이라고 여학생들만 다룰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 스탭이 대거 참여한 영화라는 점이 부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네 명의 작가와 배우, 내가 여자이긴 하지만 남성 스탭도 많았다. 여자들끼리 작업했다는 점이 영화를 크게 바꿨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가령 남자 작가가 참여했다 해도 좋게 작용할 수 있었을 거다. 호러영화로서 쇼크장면에 대한 고민은. 귀신의 모양새나 등장이 기존 영화와 꼭 달라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처녀귀신은 여러 번 보아도 여전히 서늘하다. 그보다 ‘여우계단’과 그것이 상징하는 내용, 사랑받고 싶고 버림받기 싫은 소녀의 마음이 표현되길 바랐다.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은. 윤지는 위압적인 행동 중에 스스로 가리고 싶은 면이 있는 캐릭터였는데 생략돼 아쉽다. 얼굴의 화상도 영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첫 장편에 대한 자기 평가는. 관객이 흥미를 잃지 않고 따라갈 수 있고, 다 보고나면 생각거리가 있는 영화이길 희망했는데, 첫 번째 바람만 이뤄진 것 같다. 다음 영화에서는 최초의 설정을 후반작업까지 살려 숨은 의도까지 잘 전달하고 싶다.

부담스럽다,그래도 달려들었다,<4인용 식탁> 전지현&박신양

TV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와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 때의 박신양은 전지현에게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그때 그는 워낙 대선배인데다 이미 입지를 다진 배우였고, 전지현은 초짜에 불과했으니까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을 계기로 5년 만에 다시 만나서도 전지현은 부담이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박신양이 “애써서 거북하게 대하거나 그러진 않았는데…”라며 웃는다. “사실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엔 모든 게 공평해져요. 나이도 필요없고 경력도 필요없고….” 진짜 부담스러운 건 다른 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불행한 영혼을 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기억 속에 새겨진 치유되기 힘든 상처에 관한 이 영화 자체가 버거웠을 것이다. 부담은 박신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자극에조차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면증 환자 ‘연’과, 문득 닥친 비일상적 경험으로 인해 잊고 싶은 과거를 대면하는 ‘정원’. 이 둘은 불안과 긴장의 심리를 극의 끝까지 몰아가되 행동보다 내면이 요동쳐야 할 인물들이다. 이번 영화가 두 주연배우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꽤 명백해 보인다. 이 까다로운 심리스릴러는, <달마야 놀자>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박신양이 일견 쉽고 좋은 궁합의 멜로드라마 대신 택한 도전이다. 그리고 자신을 “이제 시작하는, 아직 할 것이 더 많은 배우”라고 규정한 전지현이 앞으로 겪어야 할 많은 과정 중 하나로, 그렇지만 “연기에 관한 어떤 얘기도 들을 각오”로 택한 관문이다. 우리가 을 주목하게 되는 몇 가지 이유 중 한 가지도 여기에 있었다. 전지현‥ 외로움, 그리고 성숙에 관하여 그가 무슨 ‘투항’을 요구한 건 아니지만 때론 솔직한 게 미덕이다, 라고 자위하기로 했다. 삽시간에 대학노트 5장을 가득 메운 그의 말들은 적당한 재배치가 손끝에 익은 (기자라는) 직업적 습관을 집요하게 거부했다. “촬영장에 갈 때면 항상 어떤 가느다란 선이 보이지 않게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뭔지도 모르는 그걸 굉장히 의지하며 살아가는데, 누군가 그걸 봐버리거나 끊어버리면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세계로 빠져들 것 같았어요. 그 선의 끝이 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전 그걸 의지하며 살아가는 여자였어요.” 소설의 한 대목을 읽는 듯한 문장을 줄줄이 읊어대는 이런 말에 뭔가를 빼거나 보탤 수 있을까? 의 ‘연’은 타인의 숨어버린 먼 과거나 비가시적인 영혼을 보고 살아야 하는 여인이다. 외롭고 슬픈 이 여인의 이미지를 어떻게 찾아갔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에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너무 힘들었다”며 ‘가느다란 선’ 이야기를 꺼냈다. 전지현은 식상한 인상평이 필요없는 스타다, 라고 작심했으나 이 순간 이것도 쓸데없는 짓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그와 얼굴을 마주 대하기 전까지 ‘성숙’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으니. 초롱초롱한 눈빛과 달리 약간 나른한 피로감을 풍기는 표정이나 질문을 곱씹으며 자기 생각을 비교적 길게 말하는 그는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이 아니었다. 앞에 앉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나서 어떤 장르라고 딱히 말하기 힘들었어요. 호러로 많이 각인이 돼 있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건 싫어요. 식탁이란 단어는 따뜻한 일차적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가족을 상징하는데, 가장 친근한 이들끼리 배신하고 불신하게 되는 데서 오는 두려움을 보여주죠.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흔히 일어나는 존재의 외로움이에요. 마주 앉은 ‘연’ 부자연스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라서 다른 영화보다 서너배는 더 힘들었어요. 막상 끝나고 나니까 이 홀가분한 느낌이 뭔가 싶더라고요. 촬영 끝나고 나니 2∼3kg이 빠져 있었어요. ‘연’에게서 벗어난 게 너무 좋았고 다시는 이런 영화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결과적으로 그와의 만남은 현명한 선택이었어요. 저에게 자신감을 준 캐릭터예요. <엽기적인 그녀>의 잔류 이미지가 너무 강했어요. <엽기…>의 전지현에서 멈출 수는 없고, <엽기…>의 전지현에서 어떤 산업적인 걸 끌어내는 걸 보고 있으니 내 자신이 갇혀 있는 듯 느껴졌거든요. 믿음, 그리고 외로움 요즘 믿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내가 믿고 있는 사람들이 뭘까. 믿는 사람 한명조차 챙기기 힘들다는 생각…. 그렇다고 뭘 잃었다거나 나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한 적은 없어요. 주변 사람보다 저한테 문제가 있겠지만, 꽉 찬 만족감은 없고, 다 떠나보내고 나 혼자 서고 싶고, 남들이 생각하는 전지현에 맞추고 싶지도 않고…. 광고 이미지와 실제의 나 광고란 매체는 짧은 시간 안에 내가 가진 걸 빠르게 전달하게 해줘요. 그게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되지만. 저를 생각할 때, 저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 의한, 빛나게끔 하기 위한 장치들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있어서 빛나는 게 아니라. 어쨌든 내가 그 속에 있어서 빛나는 게 좋긴 해요. 실제의 나는 오히려 그 반대를 걸어갈 수도 있지만 말이죠. 국제적 브랜드 하하, 그런 수식어는 처음 듣네요. 누가 자신을 상품이라고 생각하겠어요. 내 자신이 가장 소중한데. 작은 소재의 한국영화(<엽기적인 그녀>)가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고 웃음을 주었다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고,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할리우드 같은 허망한 꿈을 꾸는 건 아니고요. 좋은 한국영화를 여러 나라에 알리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지만 이것 때문에 또 다른 트레이너를 두거나 하진 않았어요. 박신양‥ 집요함을 품고, 오해를 넘어 배우에겐 어쩔 수 없는 자기 스타일이 있다. 이른바 연기 잘하는 배우가 생소한 캐릭터를 꼭꼭 씹어넘겨 완벽히 소화했어도 뒤로 나온 결과물은 자기화해 있게 마련이다. ‘천의 얼굴’이란 말은, 그렇게 믿고 싶은 우리의 바람이 만들어낸 표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연기 자체에 품은 욕심의 냄새가 지독할수록 배우는 자기가 이해 못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포기하기보다 집요하게 물고늘어져 결국 자기만의 논리를 갖추고 카메라 앞에 선다. 박신양에게는 이것이 일부분 맞아떨어지고 일부분 어긋난다. <편지> <약속> <화이트 발렌타인> <인디안 썸머> 등의 영화와 TV드라마 <사랑한다면> <내 마음을 뺏어봐> 등 유사한 멜로 이야기 속에서 유사한 캐릭터로 반복 등장해왔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에 대한 중요한 설명이다. 직업과 배경에 상관없이 자상하고 섬세하며, 감성적인 동시에 감정적인 남자 환유, 종두, 준하. ‘박신양 스타일의 연기’를 뚜렷이 보여준 이런 선택들은 데뷔 이후 무섭게 상승세를 타오던 배우에게 효율적인 선택이었을 망정 효과적인 활용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메소드 연기’의 원산지 러시아에서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넘쳐났지만 한가닥 아쉬움이 영화 끝에 묻어나곤 했다. 그런 시간도, 그로부터 꽤 흐른 것 같다. 앞에 앉다 시나리오를 읽고 무서운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난 공포영화에 출연할 생각이 전혀 없던 사람인데. 무서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런 영화, 저런 연기를 하게 될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근데 이 영화는 좀 달랐어요. 공허하지 않더라는 것, 그게 매력이었던 거 같아요. 굉장히 섬뜩하고, 그 섬뜩함의 원인을 파헤치는데 그게 집요하더라구요. 보통 공포영화들처럼 대충 넘어가는 게 아니라. 마주 앉은 ‘정원’ 굉장히 어려웠죠. 아주 불분명하고 불투명해서 형상화가 고민되는 그런 역할이었어요. 심리상태 하나로 영화 전편을 끌고가는 인물인데, 그 긴장감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문제였어요. 몸으로 하는 큰 연기가 없어도 에너지 소모는 다른 영화보다 서너배 더 들었던 거 같아요. 3∼4개월 동안 계속 불안하고 예민한 상태로 있으려니까 아주 힘들더라구요. 예전에 했던 역할들과 많이 달라서 과연 이 인물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도 걱정됐지만, 지금은 별로 신경 안 쓰고 있어요. 만족 이번 영화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매우 다른 역할이고 다른 모습인데, 잘했는지 못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어요. 예전에 해왔던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한 영화들이, 역할들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나, 그건 아닌 거 같아요. 남들한테 매력적이었다고 한다면 나한테도 그랬나, 그것도 아니고요. 10년이나 20년쯤 지나서 내 영화들을 돌아보면 그땐 만족할 수도 있겠죠. 멜로영화가 대변하는 이미지 내가 그런 캐릭터를 고집했다기보다는 내가 출연했던 영화들 중에 그런 영화들이 흥행을 했다는 게 맞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 거예요. 그 당시에 멜로가 주류를 이루던 상황인 것도 있겠구요. 그리고 그런 영화에서 보는 모습(예컨대 ‘진지맨’이라는 이미지)이 실제의 나와 가까울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영화가 사람에게 혼돈을 가져다줄 수 있는 매체라서 그런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나는 프로페셔널이에요. 무대와 실생활을 혼동하지 않고 분리하는 법을 훈련했거든요. 오해 사실 코미디영화를 무지 좋아하는데 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남자들이 우르르 등장하는 영화요? 그것도 좋아해요. 할 기회가 적었던 거죠. <달마야 놀자>를 하자 사람들이 뜻밖의 출연으로 여기던데 내가 정말 많은 오해에 휩싸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도, 내가 어쩌지 못하는 오해들뿐이더라구요. 그럼 난 어떡하나? 할 수 없지, 뭐. (웃음) 내가 앞으로 할 영화들은 그렇지 않을 거예요. 시간이 흐르고 돌이켜보면 다양한 작품들이 있을 거고, 지금 말하는 그런 이미지들도 많이 없겠죠.

돼지가 물에 빠진 날

민주당이 대선자금 내역을 공개했다. 말이 ‘공개’지 공개된 것은 하나도 없다. 민주당이 공개랍시고 한 것은 사실상 선관위에 신고용 공개 액수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상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이라면 민주당이 대선 기간에 그 정도 액수만 썼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액수는 선거대책본부가 발족한 이후에 쓴 것만 포괄할 뿐, 지난해 4월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결정된 이후에 사용된 “사실상의” 대선자금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희망돼지와 온라인으로 들어온 국민성금은 50억원 정도라 하나, 그나마 확실한 것은 30억원뿐, 나머지는 정체가 애매하다고 한다. 설사 50억원이라 해도 그 액수라면 민주당이 선거 치르고 남긴 이른바 ‘잔여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민주당은 굳이 국민성금이 없었어도 대선을 치르는 데 별 지장이 없었던 셈이다. 당시 희망돼지는 ‘참여정치’의 표본으로 대대적으로 선전되었으나, 그 참여정치의 실상은 허탈하게도 이렇게 누추한 것으로 드러났다. 누추하면 희망이 아닌가? 아니다. 누추해도 희망은 희망이다. 아니, 희망은 원래 누추한 것, 문제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돼지가 주제를 모르고 거대해졌다는 것이다. 다분히 조작된 여론에 한껏 흥분한 돼지는 시퍼런 헐크 돼지로 돌변해 “나는 서민의 돈 먹는 돼지. 민주당 총알은 내 배 안에 들어 있다”고 외쳤다. 몸집만 속이지 않았더라도 돼지는 희망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제 몸집을 불린 돼지는 더이상 희망이 아니다. 부풀려진 그만큼 달콤한 환각이며, 교활한 동원 이데올로기다. 부풀려지지 않은 그만큼은 희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온전한 희망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돼지는 대선이라는 빅 이벤트에 걸었던 판돈에 가깝기 때문이다. 자, 대선 끝났다. 돼지가 희망이려면 그 작은 몸집만큼이라도 민주당의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돼지가 참여정치의 실현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선거 뒤 돼지 치던 이중 민주당의 진성당원이 된 이는 얼마나 되며, 선거 끝난 뒤에도 민주당에 깨끗한 돈을 보낸 이는 또 얼마나 될까? 누가 희망돼지를 물에 빠뜨렸는가? 그 돼지의 배꼽에 바늘을 꽂고 열심히 공기 펌프질을 했던 유명인들, 지식인들, 매체들이다. “노무현은 희망돼지만으로 선거를 치르고 있다.” 어느 노란 배우가 TV에 나와서 공언한 이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말은 현실의 기술(記述)이 아니라 미래의 염원이었어야 한다. 민주당의 이데올로기들은 이 미래의 바람을 슬쩍 현실의 기술로 바꿔놓고, 사람들을 동원하는 데에 써먹었다. 한마디로 희망돼지를 감동적 정치극의 소품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민주당 ‘대선백서’에서 어느 노란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의 경우 (…) 몇백개의 기업에서 100억원 이상의 모금을 하였는데 (…) 노무현 후보가 거둔 가장 큰 수확은 부유한 소수에게서 거액의 후원금을 걷지 않고 평범한 다수에게서 소액 후원금을 받아 선거를 치렀다는 점이다.” 순진하게 이 이데올로기를 믿고 11만명이 모금에 참여했다. 그중 일부라도 희망돼지에 환멸을 느낀다면, 이 뻔뻔한 거짓말을 유포했던 분들은 이제라도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한다. 노란 시인은 말한다. “비용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비용을 지불한 주체가 바뀌었다.”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을 누가 지불하는가는 정치권의 활동의 최대 수혜자가 누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항이다.” 아주 중요한 지적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비용을 지불한 주체는 바뀌지 않았다. 희망돼지는 대선 잔여금 수준, 자금의 대부분은 기업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민주당 활동의 최대 수혜자가 누가 될 것인가? 민주당은 누구의 정당이라고 해야 할까? 시인은 민주당이 서민의 정당이라는 자기최면에서 깨어나 이 냉엄한 현실을 이제는 추인할까? 시민의 정치참여는 좋은 일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은 바람직한 일이다. 희망돼지는 더 장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돼지의 배에 동전을 집어넣으며 정치적 환각의 매트릭스에 빠지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보수정치의 시스템을 그대로 놔둔 채 그들의 선거자금만 모아준다고 정치개혁이 이루어지겠는가? 11만명이 들러붙어 그 난리를 쳤는데도, 시민의 몫은 10%에 불과했다. 그게 돼지가 품은 희망의 정확한 함량이다. 희망은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결코 희망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진중권/ 문화평론가

김운경의 장기근속 팬으로서 말하자면…

나는 김운경 작가의 팬이다. 94년 <서울의 달>부터였으니 꼭 10년 됐다. <서울의 달> <옥이이모> <파랑새는 있다> <흐린 날에 쓴 편지>는 모두 주말극이어서 한동안 주말에 여행도 가지 못했다. 아니, 가고 싶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체세포들이 벌써 흥분하기 시작했고, 오프닝 타이틀이 뜰 때 거실 정중앙 로열석에 자리를 잡고는 CF를 보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월·화드라마였던 <도둑의 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도둑의 딸>이 조기종영한다는 뉴스가 날벼락이었을 뿐이다. <서울의 달>에서 지금도 생각나는 건, 달동네 다세대주택에 단칸방 하나씩 차지하고서는 쪼잔한 대화와 시비로 날 새던 사람들, 갓 상경한 얼빵한 촌놈(춘섭이었던가)을 진짜 촌놈보다 더 촌놈같이 연기하던 최민식, 그리고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노래를 부르며 늘 뭔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 나대던 제비족 한석규가 어느 날 아침 마을 공터에서 처참하게 뭉개진 시체로 발견되던 장면이다. TV연속극치고는 예외적으로 단호한 비극적 엔딩이었다. 내 마음에 김운경의 서명을 간직하게 된 건 <옥이이모>다. 지금도 이따금씩 내 과거 어느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기분으로 떠올리게 되는 게 <옥이이모>다. <용의 눈물>이나 <모래시계>도 열심히 보았지만, 사극이나 정치드라마의 뻔한 통속성과 무모한 과장법에 헛배 불렀다가는, 드라마에 대한 애정도 종영과 함께 깨끗이 종 쳤다. ‘샘’의 원조인 선생님 정종준과 어떤 때는 2회씩이나 계속되던 그 ‘구라’에 넋을 놓던 아이들, 앞니가 빠져 바람이 쉭쉭 새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니, 그거 아나’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던 풀빵 장수 주현과 밑바닥 청춘들, 색시집 주인 권기선과 아가씨들(<장군의 아들>의 꽃 송채환이 퍼런 아이섀도가 벙벙하게 번진 채 껌을 짝짝 씹으면서 그렇게 무너졌지만 나는 <옥이이모>에서 송채환이 가장 빛났다고 생각한다), <옥이이모>의 모든 우수마발(牛수馬勃) 즉 소오줌말똥 같이 보잘것없는, 그러나 각기 나름의 삶의 이유와 명분과 스타일을 견지하고 있던 그 인물들은, 김운경 같은 그릇에서만 빚어질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서울의 달> <옥이이모>가 나만의 컬트는 아니었다. 당시 시청률 최고의 드라마였으니까. 이번의 MBC 주말극 <죽도록 사랑해>도 전형적인 김운경표 드라마다. ‘떼 조연’들의 파노라마도 여전했다. <옥이이모>는 옥이이모에게 애인이 생기거나 남편이 죽거나 하는 아무런 특기할 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도 몇회씩이나 구김살 없이 흘러가곤 했지만, <죽도록 사랑해>의 재섭은 늘 삼각관계 같은 감정적인 센세이션의 중심에 있으면서 비교적 여타의 TV 멜로 주인공들처럼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좀더 대중적인 드라마 얼개를 취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청률은 KBS 주말극에 ‘하프 스코어’ 이하로 밀리면서 내내 10%선상을 오르내렸다. 대중은 처음부터 그다지 이 드라마를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령 ‘여자에게 강간당해서 할 수 없이 결혼한 남자 이야기’라거나 ‘옥탑방의 혼전 동거 남녀 이야기’라거나 하는 식으로 요즘 대중의 안테나를 곧장 건드는 어떤 코드가 없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 작가의 스타일이라는 것도 10년에 한번씩은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것인지도.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왔던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결혼생활이 신혼을 지나 권태기가 찾아오는 것과 순서가 같다. 95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김운경씨는 “한번 시대극을 써보고 싶다”고 했고 “왕 같은 사람은 나오지도 않는 철저히 민중만 나오는 사극”을 써보고 싶다는 말도 했다. 지금, 리모델링이 필요한 시점이라면 김운경 작가 자신도 아마 여러 가지 설계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장기근속 김운경 팬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죽도록 사랑해> 방영 중에는 태도가 좀 불량했다. 드라마는 압도적으로 좋은데, 걸핏하면 빼먹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면서도 김운경 드라마의 시청률이 잘 안 나온다는 얘길 들으면 공연히 내가 좌절했다. 이토록 냉담한 대중 앞에 서 있다니, 신인 소설가로서 의욕이 안 나네, 라고 중얼대면서. 조선희/ 소설가

<터미네이터3> 기세 “끝내준다”

<터미네이터3>의 기세가 무섭다. 배급사 시네마서비스에 따르면 개봉 첫주말 전국 100만명을 돌파했다. <매트릭스2>의 기록엔 20만명 정도 못 미쳤지만, 주말 서울 관객수 21만 9천여명으로 최근 몇주간의 1위 관객 숫자를 2~3배 웃돌며 박스오피스를 평정했다. <터미네이터3>의 기세에 2주간 1위를 차지했던 <싱글즈>는 2위로 밀려났다. 지금까지 전국관객 누계는 182만명에 달했다. 3위권인 <똥개> 또한 지난 16일 개봉 이후 12일간 1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배급사 쇼이스트는 밝혔다. 한편 지난 4월25일 개봉했던 <살인의 추억>은 지난 24일을 마지막으로 공식 극장상영을 마쳤다고 CJ 엔터테인먼트가 밝혔다. 전국관객 510만여명 정도로 <친구><쉬리><공동경비구역 JSA>에 이어 역대 한국영화 4위권의 성적을 기록했다. 31일 오전 현재 맥스무비의 예매순위를 보면 여전히 <터미네이터3>가 1위(34.23%)를 달리는 가운데 또 한 명의 돌아온 할리우드 전사, 라라 크로포트의 <툼레이더 2: 판도라의 상자>가 2위(26.88%)에 올랐다. 워낙 전편이 허술한 플롯으로 비판을 받은지라, 얀 드봉이 지휘봉을 넘겨받은 2편은 1편에 비해 훨씬 그럴듯한 이야기와 액션을 보여주는 편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보여주는 탄력있는 스턴트 연기는, 근육질의 남자전사나 만화 같은 미녀삼총사 류의 CG액션과 확실히 다른 맛이 있다. 3위(20.47%)에 오른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은 한국에서 드물게 자리잡은 시리즈의 속편이란 점에서 일찌감치 관심을 모은 작품. 라스 폰 트리에와 니콜 키드먼의 야심작 <도그빌>은 예매순위 6위에 올랐다. 2시간58분의 엄청난 러닝타임, 연극무대를 옮겨놓은 듯한 실험적 화면 등 만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괴물같은 감독의 또다른 작품으로 한 번 작정하고 탐구해볼 만하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1일부터 시작될 일본 애니메이션 걸작선도 대부분 개봉작이지만 관람기회를 놓쳤던 이들에겐 반가운 축제다. <공각기동대><인랑><바람계곡의 나우시카><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이 상영된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햇빛이 만든 그림자,야자와 아이의 <하현의 달>

1998년이니 <내 남자 친구 이야기>의 연재가 끝날 즈음이다. 일본의 한 잡지에 야자와 아이로서는 매우 놀랍게도 ‘시리어스한 미스터리’라는 카피로 <하현의 달>(下弦の月)에 대한 예고가 나왔다. 귀엽고 발랄한 여자아이들의 웃음과 꿈을 줄곧 그려온, 말하자면 인생의 가장 밝은 부분을 (실체감 있는 한에서) 최대한 화려하게 그려온 만화가로서는 놀라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뒤 그녀의 외도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기다려왔지만, 후속작 <나나> <파라다이스 키스>가 한참이나 진행되고도 이 작품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두어번 해적판이 나와 속아서 이야기할 뻔도 했다. 그러나 6년을 기다린 뒤, 뒤늦게나마 정식으로 국내에 번역되었고, 이제 야자와가 말하는 ‘심각함’의 실체를 이야기해볼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생인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미즈키. 그녀는 새어머니가 데리고 온 동생이, 이미 그녀의 친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동생은 어머니를 빼앗길까봐 못된 짓을 해댔고, 미즈키는 집을 나와 방황했다. 길거리에서 애절한 선율을 연주하는 백인 남자를 만났고, 그의 집으로 따라들어갔다. 뮤지션인 아담은 죽어버린 옛 애인과 닮은 미즈키에게 집착했고, 미즈키는 그에게 자기를 데려가달라고 했다. 그들이 만나기로 했던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미즈키는 차에 치어 죽어버렸다. 그리고 그 유령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어느 집에 갇혀버렸다. 이제 다른 소녀가 나타난다. 초등학생인 호타루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으려다 빈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아름다운 유령을 만난다. 유령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며 단지 ‘아담을 만나고 싶다’는 감정만을 가지고 있다. 호타루와 친구들은 그녀를 ‘이브’라 이름짓고 그 바람을 들어주고자 한다. 사랑하는 연인의 연속된 죽음, 연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 때문에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유령, 초등학생의 나이에 유령의 애절한 사연을 들어야 하는 오컬트 체험…. 그 설정으로는 분명히 미스터리하고 시리어스하다. 그러나 야자와의 만화에서 애초에 뼈를 저미는 심각함과 비애를 맛보길 바랐던 것은 좀 과한 기대였던 것 같다. 한장한장 넘기기가 피를 빨리듯 괴로운 구스모토 마키의 <치사량 도리스>와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던 마음은 쉽게 정리해야 했다. 그러나 실망이라는 말을 던지는 것은 아니다. <하현의 달>은 야자와 아이다운 ‘슬픔과 위로’의 만화다. 이 작품을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네명의 영특하고 개성있는 초등학생들이 한 유령의 사연을 해결해주는 오컬트 미스터리 탐정만화라고 할 수도 있다. 미즈키의 유령을 처음으로 바라보고 그녀의 친구가 되어준 따뜻한 마음의 호타루, 똑똑하고 독립적인 척하는 이벤트주의자 사에, 멍청한 듯 천진하지만 그만큼 쾌활한 테츠야, 가장 이성적이고 당연히 “유령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라며 말하지만 직접 유령의 존재를 본 뒤에는 문제의 해결에 가장 시원시원하게 앞장서는 마사키…. 이들은 소년소녀 탐정단의 멤버로서 손색이 없는 구성을 하고 있다. 사실 클램프(CLAMP) 등의 초등학생용 탐정서클만화에 비교해볼 때도 캐릭터의 명료한 성격과 흥미로운 사건의 전개면에서 더 ‘제대로’다 싶은 면도 없지 않다. 물론 야자와는 죽음과 연애에 얽힌 뼈아픈 감정과 눈물의 장면을 미려한 필체로 정교하게 그려나간다. 그녀는 <내 남자 친구 이야기>의 5, 6등신에서 <나나> <파라다이스 키스>의 8, 9등신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이 작품을 그렸는데, 스스로 변화시키고 있던 인물과 연출의 기법으로 지독히 심각한 사랑을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탐정단의 명랑한 분위기와 잦은 개그 터치는 전반적인 애(哀)와 희(喜)의 기조를 <나나> 이상으로 넘어서게 하지는 않는다(<나나> 역시 꽤 심각한 면이 많은 만화다). “오래간만에, 심각한 것을 그리고 싶어서 그리고 싶어서 그리고 싶어서… 드디어 폭발해버렸습니다”라는 고백은 ‘심각한 주제’와 그것에 접근하는 만화가의 ‘덜 심각한 태도’ 양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심각함에 대한 기대는 채우지 못하더라도, <하현의 달>은 충분히 흥미진진한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만한 만화다. 이브가 왜 사야카라는 낯선 여자의 집에 갇혀 있을까? 그녀 손에 끼어져 있던 반지의 이니셜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아담이 쉼없이 부르는 <라스트 쿼터>(Last Quater)라는 곡은 어떻게 그들의 사연을 이어줄 것인가? 그리고 혹시 정말로 굉장하고도 뼈저린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이명석/ 사탕발림 운영 www.sugarspray.com

[인터뷰] <바람난 가족> 임상수 감독

"저희 영화가 원래 그런 영화예요." <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 등을 연출했던 임상수(41) 감독이 또다른 문제작 <바람난 가족>(제작 명필름)으로 돌아왔다. <바람난 가족>은 젊은 여자를 애인으로 둔 변호사 남편, 병든 남편을 두고 딴 남자를 만나는 시어머니, 고등학생과 '섹스'를 나누는 며느리 등 '바람난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발칙한' 영화.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20대의 섹스를, '눈물'이 10대의 성을 다루고 있다면 <바람난 가족>은 30대에서 60대를 아우르는 성적 욕망을 전작들 못지않게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29일 오후 영화의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감독을 만났다. "힘든 인생에 연애가 힘이 된다면 까짓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라며 연출의 변을 밝히는 감독은 "우리 영화가 원래 그런 영화"라는 말로 자신의 영화를 정의했다. 다음은 감독과의 일문일답.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가족 얘기도 했던 것 같고 섹스 얘기도 했던 것 같다.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고 윤리적인 것에 대한 생각도 말했다. 섹스를 소재로 한 내 영화의 완결편이다. 그동안 '처녀들의…'와 '눈물'에서 20대와 10대의 성을 다뤘고 이번에는 30대에서 60대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다뤘으니 그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등장인물 중 특별히 애정이 있는 캐릭터는 누구인가. -모두 다 한결같이 애정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성지루가 맡은 우편배달부도 영화 속에서는 가족을 파멸로 이끌지만 관객이 악한으로 보지 않게 그리려고 노력했다. ▲성(性)이라는 소재에 특별히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한테서 영화 속 내용이 다 감독의 경험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듣는다. 섹스는 제작자의 구미에 맞는 소재다. 이왕 (연출)하는 김에 잘해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다른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다음 영화에서부터는 다른 소재들도 영화화하고 싶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옆집 고등학생과 정사를 나누는 도중 여주인공 호정(문소리)이 다소 과장되게 흐느껴 우는 장면이 있다. 감독의 의도가 들어간 것인가. -관객 각자의 성생활에 따라 다르게 느낄 것 같다. 영화를 만들면서 항상 경계하는 것은 '오버'하는 것이다. 과장하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살다 보면 그런 경험을 하게 될 날이 올 때도 있을 것이다.(웃음) ▲영화의 진행 속도가 빠른 느낌이다. 의도적으로 커트 수를 많게 한 것인가. -스피디하게 (영화를)찍으려 애쓴다. 커트보다 신이 많게 느껴지도록 노력한 편이다. 신으로 속도를 조절하는 편을 좋아한다. ▲옆집 고등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웃집 아줌마의 섹스는 교육적으로 좋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입장에서 보면 화낼 만한 영화다. 우리 영화가 원래 그런 영화다. 호정이 옆집 고등학생에게 끌리게 된 것은 그가 한국 남성의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편배달부가 호정 부부의 아이를 높은 데서 떨어뜨리는 장면이 잔인하게 느껴진다. -영화를 만들면서 밋밋하고 우아하게 찍을 생각은 없다. 내 영화로 놀래켜주고 싶고 쇼크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관객에게 충격을 주려고 잔인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 장면을 보고 끔찍하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것들보다 끔찍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나. (서울=연합뉴스)

<바람난 가족>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영화 <바람난 가족> (감독 임상수/ 제작 명필름)이 오는 27일부터 9월6일까지 이태리에서 열리는 제6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 (VENEZIA60)에 초청되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모리츠 데 하델른 (Moritz de Hadeln)은 31일 해외 배급사인 이픽처스(대표 폴이)를 통해 "가족의 붕괴라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통렬하면서도 경쾌한 해석과 인물들에 접근해가는 임상수 감독의 독창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 라는 평가와 함께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 (VENEZIA60) 선정을 알려왔다. 지난 5월 깐느 마켓에서 처음으로 상영해 베니스 국제 영화제 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바람난 가족>은 일찌감치 베니스 영화제 본선 진출 유력작으로 기대를 모아왔다. 그리고, <바람난 가족>은 베니스 영화제 외에도 9월 4일부터 열리는 북미 최고의 영화제인 토론토 영화제 등에서 이미 초청을 받아놓은 상태다. 한편, 지난해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오아시스>의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연기로 신인 여우상을 수상한 문소리가 올해 <바람난 가족>에서는 고등학생과 바람난 섹시한 주부라는 파격적인 연기 변신으로 여우 주연상에 도전한다. 수상뿐만 아니라 같은 국제 영화제에 두 번 연속 초청을 받은 여배우는 한국에서 문소리가 유일하다. 우리시대 중산층 가정의 실체를 날카롭게 조명한 영화 <바람난 가족>은 오는 14일 국내 개봉될 예정이다. 인터넷 컨텐츠팀 cine21@news.hani.co.kr

진짜 ‘나쁜 놈’ 돼서 돌아온 <나쁜 녀석들2>

주검 배가르고, 쿠바 판자촌 싹쓸어버리고... 올해엔 몇년 만에 돌아온 놈들이 참 많다. 네오(<매트릭스>)부터 천사들(<미녀삼총사>), T-800(<터미네이터>), 라라(<툼 레이더>),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녀석들이 이놈들이다. 나쁜 녀석들. <나쁜 녀석들2>는 8년 전 감독 마이클 베이와 주연 윌 스미스, 마틴 로렌스를 대스타로 만든 버디영화의 속편이다. 올해 나온 속편들이 어느정도 수준을 유지했듯 이 영화도 볼거리 많은 액션 버디 영화로는 빠지지 않는다. 근데 미국에선 이 영화의 폭력성이 꽤 논란이 된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이번 영화에선 시체의 배를 갈라 마약을 찾다가 심장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나온다. 둘의 수다로 일관하다 한참이 지나야 총을 빼들던 1편과 달리 아예 2편에선 KKK단의 집회에 숨어들어 흰 옷을 벗어던지며 총질을 해대는 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마이애미의 이국적 풍광과 함께 진짜 건물들을 날려버리는 액션장면들도 실감난다. 사실 이런 액션보다 <나쁜 녀석들> 시리즈의 볼거리는 두 주연의 변함없는 입담이다. 무조건 차를 밟고 총부터 쏘아대는 마이크(윌 스미스)는 여전히 뺀질거리며 건들거리는 바람둥이고, 소심한 아저씨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는 마커스(마틴 로렌스)는 약간 느리지만 할 말은 다 한다. 전자상가에서 모든 모니터에 둘이 떠드는 모습이 비춰지는데 게이로 오해받는 장면 같은 게 이 영화의 재미다. 이번엔 뉴욕 마약반 수사대인 마커스의 여동생 시드(가브리엘 유니온)가 이 떠벌이 경찰짝궁 사이에 끼어든다. 마커스 몰래 이 동생과 뉴욕에서부터 연애를 했던 마이크와 동생을 끔찍히 사랑하는 큰오빠 마커스는, 시드가 위험한 마이애미의 거물 마약사범을 추적하는 걸 알고 사건에 뛰어든다. 언뜻언뜻 비치는 동성애자에 대한 무시나, 백인을 조롱하는 듯하며 라틴 아메리카인들을 무시하는 교묘한 인종차별은 상업영화의 유머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더 빠르고 강하고 크다는 속편의 법칙을 인정하더라도, 이번 2편은 당혹스런 구석이 있다. 우선 2시간28분의 긴 러닝타임이다. 또하나는 후반부 쿠바로 날아가 여동생을 구출하는 작전의 뻔뻔스러움이다.(이 장면 직전에 영화가 끝난 줄 알고 일어날 수도 있다.) 아무리 볼거리 위주의 법칙에 충실했다 하더라도, 의리파 미국의 경찰들이 뭉쳐 헬기로 날아간 뒤 쿠바의 판자촌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 부시의 얼굴이 오락가락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여기가 원래 마약의 제조원산지’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8일 개봉.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