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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개막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가 27일 오후 7시 전주시 전북대 문화관에서 개막식을 열어 5월3일까지 장·단편 극영화와 다큐멘타리 180여편을 상영하는 8일간의 영화 장정을 시작했다. 이날 개막식엔 중국 감독 진첸, 일본 감독 미에다 겐지 등 해외 영화계 인사들과 임권택 감독, 배우 명계남씨, 명필름 이은 대표 등이 참석했다. 개막작인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상연됐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 <세 친구>에 이은 임순례(40)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27일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관객에게 첫 선을 보였다.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였던 <세 친구>(96) 이후 5년이 흐른 것처럼, <와이키키…>는 성장기의 희망이 빛 바래고 남루해진 어른들의 세계로 옮겨왔다. 영화의 주인공은 청소년 시절 음악을 좋아했던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그룹 사운드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남성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불경기로 밤업소들 사정이 나빠지면서 하나둘씩 밴드를 떠난다. 활동무대도 서울에서 지방으로, 나이트클럽에서 단란주점으로 추락해간다. 갈수록 꿈은 멀어지고, 볼품 없고 지리한 현실이 주인공을 에워싼다. 그 과정을 무척 사실감있게 보여주기 때문에 <와이키키…>에서 희망의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 그러나 지방 소도시의 문화, 그곳의 나이트클럽에 모이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누추하면서도 정겹다. 나훈아를 흉내내는 가수 너훈아, 식당일 하다가 나이트클럽 공연이 펑크났을 때 달려와 이영자를 흉내내는 땜질 전문 코미디언, 마음에 드는 여자손님이 들어오면 시선을 끄느라 난데없이 백보컬을 지르는 드러머, 춤 잘추고 바람난 목욕탕 때밀이 유부녀…. 가식과 과장이 없는 연출 속에서도 이런 한국식 `3류 문화'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묻어난다. <와이키키…>의 분위기는 우울한 저음으로 시작해 한번도 고음을 내지 않지만 낮은 음자리 안에서의 잔잔한 높낮이와 강약이 관객의 감정을 고양시킨다. 그 안에 삶의 애환과 행불행의 이미지가 다 담겨 있어 저음에 익숙해지면 바로 낄낄거리게 되고, 그러는 사이에 영화 속의 세상은 익숙한 곳으로 다가온다. 임 감독은 주인공의 불행을 `보편적 불행'으로 관객에게 전염시키지만, 세상을 보는 자신의 눈에 담긴 애정까지 함께 옮기기 때문에 춥지가 않다. “사는 게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누추한 삶도 유쾌할 때가 있고, 성공했다고 보이는 삶도 누추할 때가 있을 거다. 주인공이나 그 주변사람들은 항상 손해보고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지 못하지만 그게 대다수가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봤다.”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에 대해 임 감독은 “잃어버린 10대 때의 꿈, 그것과 현재 삶과의 간극을 그려보고 싶었다”면서 “밴드의 이야기를 택한 건 음악이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의 순수함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직설적 공격이 <세 친구>보다 약해진 데 대해서는 “연고 중심주의로 똘똘뭉친 지방 소도시는 한국사회의 폐단과 비리의 집약이라고 생각돼 그걸 함께 담아보고 싶었지만 영화가 산만해질 것 같아 덜어냈다”고 설명했다. 제작사인 명필름은 <와이키키…>를 해외영화제에 몇차례 내보낸 뒤 가을에 일반극장에 걸 예정이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

봄을 만난 겨울의 정령, <고양이를 부탁해>의 옥지영

“에취!”하얗고 가느다란 몸이 영락없이 한 줄기 카라 꽃을 닮은 소녀가, 어울리지 않게도 꽃가루 알레르기라며 연방 재채기를 해댄다. 혹시 봄에 대한 알레르기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창백하다 못해 반투명한 피부,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텅 빈 눈동자. 바람 끝이 매웠던 <고양이를 부탁해>의 촬영지 월미도에서 처음 마주친 옥지영(21)은, 겨울의 정령 같았다. 누군가 쓸어안지 않으면 동화 속 눈의 여왕이 세상 끝까지 유괴해 갈 것만 같던 그날의 소녀는, 무척 가난하고 무척 자존심 세고 많이 슬픈 날이면 우는 대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는 극중 배역 지영이 그대로였다. 그러나 봄 햇살이 졸고 있는 카페에서 다시 만난 옥지영은 딴판이다.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손거울을 꺼내 재채기 뒤끝을 수습하자마자, 중1 때 일년 새 키가 25cm 커서 등이 ‘텄다’고, 만화 <유리가면> 보고 연기에 반했다는 이야기 꼭 써달라고, 돈 많이 벌어서 제주도에 동물 고아원을 세우는 게 꿈이라고 종달새마냥 지저귄다. “그럼 그날 현장에서는 춥고 배고파서 우울했던 건가요?” “저 추운 거 되게 좋아하고 배고픈 건 아주 잘 참아요! 영화에서 지영이가 화가 나 있어서 저도 종일 그랬던 거예요.” 이 아가씨, 정말 열심이다. 패션계에서는 벌써 톱모델로 불렸다는 옥지영이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온 것에 의아해 했더니, 자기는 개성파도, 굉장한 미모도 아니라 ‘센’ 옷을 입어야 어울리지만, “오늘은 모델이 아니라 나 자신을 말하는 배우로 나온 자리니까”라고 가르쳐준다. 김태용, 민규동 감독의 <열일곱>에도 모습을 담았고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오디션에도 응했지만, 이것이 배우로서 첫 인터뷰. 숙제장 검사받는 초등학생처럼 수줍음 반 자랑 반 연기관도 펼쳐 보인다. 어려운 쪽은 단연 모델보다 영화배우. 주어진 공간을 표정과 포즈로 온전히 지배하는 패션사진 촬영과 달리, 연기는 조금만 움직이면 초점나갔다고 제동이 걸리고 생각과 말을 동시에 해야 하니 곤욕이다. 정답을 일러주면 좋으련만 정재은 감독의 충고는 늘 질문에 가깝다. 그래서 요즘 옥지영은 궁리가 많다. 영화 속 지영이가 왜 그랬을까. 결국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스물한살 옥지영에게 무엇보다 영화는 모델일이 그랬듯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법을 배우는 즐거운 수업이기도 하다. 모델이 되고 난 뒤 싫기만 했던 외꺼풀 눈과 껑충한 키의 아름다움을 알았듯, 컷 사인 뒤 모니터를 바라보며 옥지영은 조금씩 발견한다. 내 목소리가 이렇구나, 내 손에 이런 표정이 있구나. 나, 이런 힘이 있었구나.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지영은 고양이를 친구들에게 맨 처음 부탁하는 아이다. 두나 언니와 동갑내기 요원이도 좋은 연기 조교지만, 그래서 그녀의 가장 충실한 단짝은 고양이. 아직 홀로 서는 연기가 버거워, 혼자 찍는 장면에서도 곁을 지켜주는 고양이가 고맙다는 옥지영의 새하얀 손등에 고양이 발톱에 할퀸 상처가 드문드문했다. 앞으로도 생채기가 많이 날 거야. 몹시 쓰릴 때도 있겠지. 그래도 잘 부탁해. 건너편 탁자에서 몸을 늘여대던 고양이 ‘액션이’가 드디어 지루함에 겨운 신음소리를 냈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프린스 앤 프린세스 Princes et Princesses

Story 어둠이 내린 낡은 영화관. 변신 마술 기계를 가진 늙은 영사기사와 소년, 소녀는 여섯개의 짧은 동화를 짓고 직접 이야기 속 인물이 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착한 왕자가 개미들의 도움으로 목걸이를 되찾아 공주를 구한다. 두 번째 일화의 주인공은 한겨울에 열린 무화과를 진상해 상을 받는 순수한 소년과 이집트 여왕.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온갖 공격에도 끄떡없는 마녀의 성을 친절한 마음으로 간단히 여는 청년이 나온다. 네 번째 일화의 꼬부랑 할머니는 괴력으로 도둑을 실컷 골탕먹이고, 다섯 번째 이야기에서 살생을 일삼는 고독한 여왕은 새 조련사의 구애를 받는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키스할 때마다 온갖 동물로 탈바꿈하는 왕자와 공주의 곤경을 그린다. Review안데르센이 <그림없는 그림책>을 썼다면, 프랑스 애니메이션 작가 미셸 오슬로의 <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그림자로 그린 그림책’이다. 갈피갈피 넘기다보면 마치 다락방에서 달님이 들려주는 흐뭇한 천일야화를 듣는 듯 호젓한 공기가 폐에 스며드는 점도 같다. 전작 <키리쿠와 마녀>에서 셀과 종이 위 이미지를 컴퓨터로 콜라주했던 미셸 오슬로는 <프린스 앤 프린세스>에서는 검정 도화지와 가위, 색 전구 조명이 설치된 테이블이 들어찬 간소한 실루엣 애니메이션 작업실로 돌아갔다. 이렇게 쓰여진 그림책을 읽어주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버려진 영화관에 비밀스런 그들만의 스튜디오를 꾸민 소년과 소녀. 이들은 친구이자 교사격인 영사기사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마법의 기계장치로 옷만 갈아입으면 고대 이집트의 백성으로, 중세의 마녀로 탈바꿈해 시공을 가르는 매직 카펫 라이드를 시작한다. 아이디어를 내고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과정을 막간극으로 삼아 총 6막으로 구성된 <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에피소드마다 왕족이 하나둘 등장하지만 주역이 꼭 그들의 몫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하지만 선하고 슬기로운 청년이, 지체 높고 아름다우나 고독 속에 갇힌 처녀의 마음을 얻는 스토리가 여섯편 중 네편을 채운다. 첫 에피소드는 111개의 흩어진 다이아몬드를 찾아 목걸이로 엮어줄 왕자가 나타날 때까지 저주에 감금된 공주의 이야기. ‘성취욕’으로 무작정 달려든 왕자들은 실패하지만, 그녀를 구해주고 싶다는 진심을 품은 왕자는 성공한다. 마법에서 풀려난 공주가 모래시계를 깨고 사랑의 영원한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설정이 의미심장하다. 세밀하게 오려낸 구조물과 스테인드 글라스도 눈길을 머물게 한다.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올라간 두 번째 에피소드는 가진 거라곤 무화과 나무뿐인 소년과 마음이 메마른 여왕의 이야기. 모두가 뭔가를 얻기 위해 여왕을 알현하지만 소년만은 겨울에 열린 무화과를 여왕에게 주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으로 그녀를 찾는다. 오슬로 감독이 사랑해 마지않는 고대 이집트 미술의 정면성을 잘 살린 캐릭터, 태양신의 나룻배, 해먹모양의 나뭇가지 등 디자인적 묘미가 탁월하다. 감독의 창작 스토리인 세 번째 ‘마녀의 성’ 에피소드는 산뜻한 반전의 러브스토리. 마녀의 성문을 열면 공주를 주겠다는 왕의 포고령에 권력자는 사람을 부려 온갖 공격을 가하지만 마녀의 성벽은 끄떡없다. 이를 지켜보던 신중하고 지혜로운 젊은이는 정중한 단 한번의 노크로 성문을 연다. 그리고 그저 무례함을 싫어했을 뿐 기계 설계와 야채수프 끓이기를 즐기는 빗자루 머리의 말괄량이 성주를 만난다. 변신로봇 같은 성곽이 재미난 볼거리. 작은 구멍과 전구 불빛으로 다이아몬드를 표현하고, 베일과 말린 꽃의 반투명한 소재를 활용하는 등 전반의 3부에 걸쳐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넓은 폭을 보여준 감독은, 네 번째 에피소드에 이르면 19세기 일본의 판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에게서 빌려온 듯한 풍경 속으로 이야기를 끌고 들어가 호롱불 켜진 장지문의 반영과 계곡의 물안개를 망라하는 그림자의 번짐과 농담(濃淡)까지 스크린에 살려낸다. 그림동화에서 착안한 ‘잔혹한 여왕’편은 외로움에 중독된 나머지 살생의 숨바꼭질을 멈추지 못하는 여왕의 이야기. 서기 3000년의 기술시대로 옮겨진 배경과 중세 음유시인의 노래 같은 음악의 묘한 어울림이 마치 차가운 금속이 심장을 스치는 듯한 쓸쓸함을 자아낸다. 마지막 6화는 ‘개구리 왕자’ 우화의 현대적 개정판. 별이라도 서로에게 따다 주겠다던 왕자와 공주가 입을 맞출 때마다 다른 짐승으로 변하자 당황한다. 전통적인 왕자-공주동화를 뒤집고 연애의 속내를 꼬집은 에필로그다. <프린스…>는 성인 애니메이션 관객에 대한 신뢰에 기댄 작품으로 더빙판 없이 자막판만 개봉되지만, 그래도 어린이들에게 권하지 않을 수 없는 양질의 엔터테인먼트다. 우수한 아동문학 작품이 그렇듯 <프린스…>는 가장 기초적이고 간명한 단어들로 재미와 운율을 건져올린다. 보통의 ‘왕자-공주’동화마냥 돈많고 잘생긴 남녀의 만남이 곧 행복이라는 생각을 부추기지 않을까 근심할 필요도 없다. 오슬로의 주인공들은 비록 2차원의 납작한 그림자지만 미덕과 결함을 갖춘 개성의 소유자다. 어디 그뿐인가. 그림자의 과묵함이 얼마나 풍부한 언어를 갖고 있는지, 절제된 한두 가지 색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 깨닫는 기회는 우리의 눈뿐 아니라 정신에도 소중한 양식이다. 김혜리 기자 vermeer@hani.co.kr

<파이란> 송해성 감독의 편지

● 프롤로그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이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한 교수님께 ‘내가 영화감독이 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편지를 썼던 십여년 전 그날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여배우에게 ‘당신이 연기할 캐릭터의 히스토리’에 대해 긴 편지를 썼던 수개월 전 그날처럼요. 나는 이 편지를 부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우체통 앞에서 잠깐 망설입니다. 덜컥 편지를 넣어버린 뒤에 후회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다 결국 부치기로 합니다. 수신자가 너무 많군요. <카라>를 봤던 사람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나를 믿었던 사람들, 나를 의심했던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또 부칩니다. 그리고 편지 첫머리에 <파이란>이라는 제목을 달아 봅니다. #1. <카라> 이후, 강재처럼 살았습니다 <카라>가 개봉되던 극장 앞에서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영화를 보지 않은 채 그냥 돌아가는 길이었죠. “네 영화가 아니”니까 볼 필요가 없다면서. 내 의사와 무관하게 합류했고, 저작권 소송에 휘말려 촬영이 중단됐었지만, 시작한 이상 내가 마무리해야 했던 프로젝트. 그들 말마따나 <카라>는 내 영화가 아니었지만, 싫든 좋든 내 필모그래피에 남을 영화였습니다.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왜 <카라>를 찍었냐”는 질문을 피할 길이 없었고, 때마다 앵무새처럼 같은 변명을 되풀이하는 게 싫었거든요. 그리고 <파이란>의 강재처럼 종일 오락실에서 시간을 죽였습니다. 5천원짜리 경품을 타기 위해 6만∼7만원의 게임비를 날리면서요. 문득 이게 뭔가,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희망을 품고 용기를 내고 호기를 부려볼 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할 만한 ‘물건’을 내놓았다가도 다음 기회를 만들지 못하는 이들, 너무 빨리 피고 지는 사람들을, 나는 수없이 봐왔습니다. 하물며 망가져버린 첫 번째 영화를 만회할 ‘기회’를, 내가 바라고 만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김성수 감독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나, <런어웨이>로 깨지고 나서 2년을 놀았다. 다음 영화 잘 만들면 돼.” 고마웠지만, 속절없이 쓴웃음이 나오더군요. 가슴속에서 마른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2. 원작소설 <러브레터>, 심상치 않았지요 문득 <카라> 후반작업 때 일본에서 만난 통역자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 <철도원>이라고 일본에서 날리는 영화가 있는데, 그 원작소설집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더군요. 아사다 지로의 단편집인데, <철도원> 뒤에 붙은 <러브레터>라는 단편이 더 심금을 울린다나요. 건성으로 듣던 내게 통역자가 열심히 줄거리 얘기를 해줬습니다. 막 출소한 사십대 삼류 깡패가 서류로 결혼한 중국 여자의 죽음과 러브레터를 접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얘기였죠. 시시콜콜 자세한 얘기를 들은 것도 아니었는데, 참, 이상하지요.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올라왔습니다. 심상치 않았어요. 뭐라고 할까. 남자의 회한이랄까. 사십줄에 접어들어서 문득 어떤 계기로 삶을 돌아보는데, 이뤄놓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도 없다는 걸 알게 되죠. 그제서야 이게 아니었는데, 후회하고 절망하는 그 남자의 얘기가, 내 얘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물받은 그 소설 생각이 났습니다. 번역을 맡겨 번역본을 보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어, 하는 사이에 <철도원> 열풍이 한국에도 상륙했더군요. 영화도 개봉하고 책도 출간됐습니다. 일본 소설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것이 맘에 걸리긴 했지만, 나만이 아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잠시 주춤하게 되더군요. 그때 구로사와 아키라가 떠올랐습니다. 원작 <맥베스>에 어떤 누도 끼치지 않으면서, 또다른 ‘작품’ <거미의 성>을 만들어 보인 그의 성가를 기억해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외람되지만, 나도 그처럼 한번 해보겠다구요. #3. 나를 믿어줄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초고는 유성의 한 여관에서 사흘 동안 썼습니다. 나는 외로운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한때 같이 어울리고 놀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어 없어졌다고 칩시다. 누가 없어진 것 같긴 한데, 누구였더라, 이름이 뭐였더라,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전라도 시골에서 올라와 낯선 땅 인천에 버려진 남자, 중국에서 고아가 돼 한국까지 흘러들어온 여자가,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캐릭터들을 그냥 휙 던져놓고 지켜볼 생각이었습니다. 다큐적인 카메라로 그들의 역정을 묵묵히 따라가기로 했지요. 그러던 와중에 <카라>를 같이 했던 안상훈 프로듀서가 튜브쪽과 접촉한 모양입니다. 튜브의 황우현 이사는 시놉시스만 보고 제작 의사를 밝혔습니다. 의외로 <카라>를 잘 봤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장사가 안 돼도 괜찮으니까, 만들어놓고 우리끼리 좋아하고 뿌듯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고마웠습니다. 모두가 나를 거부할 때, 믿고 받아들였으니까요. ‘함께’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온전한 ‘내 영화’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작은 안도감이 슬며시 들었습니다. #4. 강재를 죽여야만 했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나의 세계관이, 인생관이 밝지 못한 탓일까요. 세기가 바뀐다고 세상이 온통 들떠 있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사람들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없는 사람은 계속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은 계속 누리고 사는 것이지요. 그게 현실이니까요. 강재의 삶이 현실의 내 삶을 오롯이 투영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강재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입니다. 나도 강재들처럼 별 볼일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원작 <러브레터>의 주인공은 망자가 된 생면부지 이국 아내의 유골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울면서 웃자니, 마른 뼈들이 무릎 위에서 달그락거리며 우는 소리를 냈다”하고, 끝마치지요. 그건 슬픈 희망 같은 겁니다. 그러나 나는 <파이란>의 강재를 죽여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지요. 이 사회는 강재 같은 인간에게 희망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강재의 동기이자 보스인 용식이 말마따나, 강재는 그 바닥 체질도 아닌 것이, 간도 쪼만하고, 마음도 여리고, 끈기도 없어서, 맡은 일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죠. ‘동정 없는 세상’은 강재 같은 놈들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싹트는 것조차 두고 못 보죠. 그게 세상의 법칙입니다. 강재에게 덧붙인 깡패의 서사는, 그가 얼마나 한심하게 살아왔는지, 그리하여 사랑의 흔적 앞에서 얼마나 깊은 시름과 회한에 젖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에 불과합니다. 깡패영화나, 깡패영화의 관습을 빌린 드라마나,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그냥 인간 이강재에 관한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으니까요. #5. 파이란을 왜 세탁소로 보냈냐고요? 가장 풀기 어려웠던 숙제는, 파이란이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원작의 파이란은 달랑 두장의 편지로만 설명되는, 실체가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나는 파이란이 외로운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강하지만, 어떤 근본적인 외로움이 있는 여자라구요. 중국에서 건너온 젊고 예쁜 여자라면, 게다가 조직에 엮여 팔려다니는 몸이라면, 원작에서처럼 창녀로 설정하는 게 옳았겠지요. 그게 현실적인 상황이니까요. 심지어 원작에서 파이란은 남편에게 남긴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손님들 모두 친절하지만, 일하면서 당신을 잊지 않습니다. 진짜입니다. 손님을 당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열심히 되어서 손님이 기뻐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그건 일본 정서이지, 한국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얘기입니다. 사실 처음에 흑산도 창녀로, 현실적으로 그려 보기도 했지만, 너무 암울하고 팍팍해져 버렸습니다. 노출 신을 찍어낼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파이란을 세탁소로 보냈지요. 나는 세탁한다는 행위, 누군가를 깨끗하게 만들어준다는 행위가 참 좋습니다. 가망없는 인간 이강재를 구원한다는 의미, 세상을 정화하고 순수하게 베푸는 사람의 이미지로는 세탁부가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강재에 포커스를 맞추느라 파이란을 현실적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건 자백해야겠습니다. 그림 속 모델이나 정물처럼 생동감 없이 고정돼버린 느낌, 그게 아쉽습니다. #6. 둘이 만난다면 많이 울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강재와 파이란, 색깔과 질감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교직시키기로 했습니다. 시작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진 강재의 절망에, 1년 전 부푼 꿈을 안고 한국을 찾은 파이란의 희망을 마주 보게 하는 것이었지요. 시간과 공간이 엇갈려 꽂히고, 이들은 서로 만나지 못합니다. 만나게 된다면, 멜로 성향이 짙어질 테고, 대중성을 생각하자면, 그렇게 울리는 편이 나았겠지만요.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카라>를 하면서, 내가 할 수 없는 게 뭔지 깨달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도 알아냈으까요. 그러다보니, 강재의 삶을 그리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할애하게 됐습니다. 강재라는 인물을 바닥까지 끌어내려, 연민과 동정을 끌어내기 위해선, 그래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원래는 강재에 대한 설명이 더 많았습니다. 상대 조직원을 죽인 보스를 대신해 감옥으로 들어가기로 하면서, 강재는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겁니다. 통장번호 불러라, 나 맏아들이다, 걱정마라, 큰소리치지요. 파이란에게 호적을 팔아 받은 돈을 경마장에서 날리는 장면도 있었구요. 그래야 파이란의 죽음을 접한 강재의 회한이 더 커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이 아니면, 강재라는 인간을 충분히 동정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조금 가파른 감이 있긴 하지만, 그런 뒤에 파이란을 등장시켜 교차편집시키기로 했습니다. #7. "최민식씨, 나를 못믿는 겁니까?" 최민식씨가 강재 역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 꼭 한번 하고 싶었다”고 흔쾌히 응한 뒤로도 3개월이나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최민식씨의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도장 찍지 않는 이유가 뭐냐, 나를 못 믿는 거냐,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냐, 그걸 알아야 다른 배우도 설득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조곤조곤 캐물었죠. 솔직히 섭섭했습니다. 내가 흥행으로 검증된 감독이라도, 그렇게 망설였을까, 그런 자괴감도 들었구요. 그날 저녁에 최민식씨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겠다고 하더군요. 최민식씨가 캐스팅된 뒤로, 초고의 냉소적이고 유약한 캐릭터에 동적이고 거친 컬러를 덧칠했습니다. 그리고 파이란의 캐스팅까지 마무리되면서, 장백지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거듭 시나리오를 수정했습니다. 8고쯤 나온 뒤인가, 헌팅을 시작했지요. 강재의 공간은 쇳가루가 날리는 팍팍한 곳,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의 공간, 중국인들이 들어오는 제1창구로서의 인천을 택했습니다. 파이란의 공간은 바다과 등대가 보이는 대진으로 정했습니다. 행선지를 정하고 스탭들과 차를 달려 여장을 풀자, 겨울이 성큼 다가와 있었습니다. #8. 다짐했습니다.술 생각나는 영화를 만들자,하고 대진과 인천의 겨울 바다는 몹시 추웠습니다. 20년 만의 한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상 10도에서도 동사하는 사람들의 나라 홍콩에서 온 장백지가 가장 고생이 많았지요. 스탭과 배우들이 어울려 한판 축구를 하거나, 알코올 기운을 빌려 추위를 달래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끼리 다짐했지요. 술 생각나는 영화를 만들자, 하고. 어떻게 찍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고, 또 그만큼 유난히 어렵게 찍은 장면들이 있습니다. 강재가 바닷가에서 파이란의 두 번째 편지를 읽는 장면은 본래 눈물기조차 없었습니다. 대신 구토를 해서, 가슴속의 오물을 모조리 뱉아내게 돼 있었지요. 최민식씨가 그러더군요. 이쯤에서 울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구토의 상징적인 의미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서, 울다가 토하는 설정으로 갔지요. 편집에서 잘랐지만요. 5번 NG가 나고, 매번 2시간씩 쉬다보니, 해가 저물더군요. 연출부 동생들이 최민식씨가 하루 만에 부쩍 늙었다고 안쓰러워 했습니다. 또 하나는 강재가 파이란의 비디오를 보면서 죽음을 맞는 라스트였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늦게 알아버린 사랑, 지나간 삶에 대한 회한에 사무친 얼굴을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어느덧 춥고 외롭던 48회 촬영이 끝났더군요. 술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술을 마셨습니다. #9. 고집스러워졌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울리는 영화는 만들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기술시사 때 영화를 보던 누군가가 훌쩍훌쩍 울어댑니다. 돌아보니 최민식씨더군요. 머쓱했던지, 영화가 슬퍼서가 아니라, 스탭들 고생한 생각에 울었다고 둘러댑니다. 영화를 보면서, 마음먹었던 만큼 ‘흔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내게는 남습니다. 다른 영화에서 묘사해대듯이 양아치 세계란 결코 폼나는 곳이 아니라고, 마구 깨고 흔들어대고 싶었습니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도심의 하늘처럼, 금방이라도 일이 터질 것 같은 불길하고 위태로운 공기를 살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파이란>이 ‘재밌다’가 아니라 ‘좋다’고 입을 모으는 평들에 관객의 맘이 얼마나 동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저 남의 인생 1시간50분이 꽤 긴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고, 그만큼의 책임을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화려한 것에 홀려 멀미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촌스럽고 투박한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달까요. 이런 생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나는 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지 못했고, 그렇게 오래 살다보니, 부쩍 고집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그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에필로그 나는 지금 유성으로 떠납니다. 불현듯 <파이란>의 첫 번째 시나리오를 낳은 그곳에 돌아가고 싶어져서요. 편지가 배달될 즈음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 편지에서 무얼 읽으셨는지 궁금하군요. 무엇보다 행간마다 채워넣은 나의 본심을, 진심을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타율 3할의 타자는 잘하는 축에 속한다죠. 감독 한 사람 보고 수십억원씩 투자하고, 과정보다 결과로 평가하는 충무로에서, 그런 관대함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고 지켜봐주기를, 강재들에게 세상이 좀더 관대해지기를 바라 봅니다. 부질없지만요. 취재 허문영 기자 정리 박은영 기자 사진 정진환 기자 ▶ 제작 뒷이야기

그들의 카오스, 침묵 속의 울부짖음

● 나의 마음을, 당신의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인간의 마음은 카오스다. 선과 악 어느 하나로 규정짓거나, 자신의 의지로 올곧게 움직일 수 없는 혼돈. 누군가를 사랑한다거나 미워한다는 마음 역시, 하나의 방향으로 일관되게 흘러가지 않는다. 애증이 들끓고 믿음과 배신이 자연스레 공존하는 곳. 이 세상이고, 곧 우리의 마음이다. <카오스>는 우리의 마음처럼 종잡을 수 없게,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호흡법과 스텝으로 흘러간다. 시작은 가정주부의 유괴사건. 남편인 고미야마와 점심식사를 한 뒤 아내인 사오리는 종적을 감췄다. 협박전화가 걸려와 고미야마가 돈을 가져가지만,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유괴사건은 자작극이었다. 사오리는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하여,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구로다에게 부탁을 한다. 조금 머뭇거렸지만 구로다는 성실하게 고객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은신장소로 돌아온 구로다는 사오리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곳으로 걸려온 낯선 남자의 전화. ‘시체를 좀 처리해주지 않겠나.’ <큐어>를 만든 구로사와 기요시는 <카오스>의 전개에 대해 ‘이미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고, 공범자도 배반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연쇄의 시스템만이 정교하고 치밀하게 축적되어 검은 상자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던져진다… 가까스로 한개의 정답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그 해체의 순서는 어떤 매뉴얼에도 없다’고 평한다. 유괴사건은 조작이고, 그 유괴사건의 의도조차도 조작이다. 처음에 유괴를 청했던 여자가 사오리가 아닌 고미야마의 애인 사토미임을 밝혀낸 뒤에도 <카오스>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사토미는 단지 구로다만 속인 것이 아니라, 고미야마에게도 감추는 것이 있다. 구로다는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단지 누명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반전을 계획한다. 논리적으로 가능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범죄와는 달리 <카오스>는 자꾸 심연으로 파고들어간다. 나카다 히데오, 공포영화 ‘전문’감독? 나카다 히데오는 반전되는 사건들을 독특한 리듬으로 처리한다. 돌변하는 상황들이 빗발치면서도, 하나하나의 호흡은 완만한 곡선을 이룬다. 그러면서도 <링>과 <링2>를 만들었던 이력답게 심리적인 불안감을 유지하는 데 능숙하다. 귀신은 겨우 마지막 장면에서야 나타나는데도, <링>은 시종일관 귀신이 우리 곁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나카다 히데오는 숨막히는 긴장감이 어디에서 유발되는지 잘 알고 있다. 나카다 히데오를 공포영화 ‘전문’감독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색하다. 나카다 히데오는 도쿄대학에 입학한 뒤, 영화평론가이자 현 도쿄대학 총장인 하스미 시게히코에게 영향을 받아 영화로 진로를 바꾸었다. 시노다 마사히로의 표현사, 교토에 있는 다이에이촬영소 등을 전전하다가 입사한 곳은 닛카쓰촬영소. 이곳에서 사생활이라고는 없는 빡빡한 조감독 생활을 7년간이나 지속한다. 92년 테레비아사히에서 방영한 <정말로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의 <유령이 머무는 여관> <저주받은 인형> <사령의 연못>으로 연출을 시작한 것은, 나카다 히데오를 공포영화 ‘전문감독’으로 규정지었다. 장르영화 제작이 많은 일본에서 한 장르에서 역량을 인정받으면 비슷한 제의가 계속 들어온다. 하지만 나카다 히데오의 스승은 하스미 시게히코 또는 영국의 조셉 로지다. 94년 나카다 히데오는 조셉 로지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의 제작에 착수한다. 동시에 <여교사일기, 금지된 성>과 <도촬난바도> 같은 어덜트 비디오물의 감독도 맡는다. 와우와우라는 위성채널에서는 역량있는 신진감독들에게 중편영화를 만들게 하는 ‘J 무비 워즈’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나카다 히데오에게도 연출을 의뢰하여 <여우령>을 만들었다. 96년 조셉 로지의 인터뷰집 <추방당한 혼의 이야기>를 번역한 나카다 히데오는 이후 <암살의 거리> <학교의 괴담f> <링> <링2> <카오스> <유리의 뇌> <라스트 신> 등을 만들었다. <링>으로 메이저에 진입한 나카다 히데오는 이제 공포영화 ‘전문’에서 벗어나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작품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스릴러인가, 멜로드라마인가 <링2>를 끝내고 만든 <카오스>는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가 무엇인지를 실증하는 작품이다. 사오리를 숲 속에 묻고 올 때까지, <카오스>는 잘 다듬어진 스릴러물이다. 집에 도착한 구로다는, 이혼한 아내가 데리고 있는 아들을 발견한다. 이지메를 당하고 찾아온 아들을 재운 구로다에게, 아내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타박한다. “무심한 사람. 전화 한통없이.” 구로다는 삭막한 음모에 걸려드는 하드보일드의 주인공답지 않게, 일상의 먼지가 가득 덮여 있다. 구로다를 보는 나카다 히데오의 첫 시선부터가 그렇다. 구로다의 심부름센터는 단지 허름한 집에 설치한 자동응답전화 하나뿐. 카메라는 너저분한 방 안을 훑어가다가, 낮잠에 빠진 구로다에 이른다. 이혼한 뒤, 홀로 살아가는 추레한 남자. 심부름센터로 걸려오는 전화란 기껏해야 ‘바둑상대를 찾아주세요’라든가 ‘수도관이 터졌어요’ 등 너저분한 일들이다. 축 처진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어느 날, 유괴사건이란 기묘한 청탁이 들어오고 구로다는 카오스에 빨려든다. 아들을 데리고 이혼한 아내에게 가던 구로다는, 거리에서 사오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넋이 나간 듯 차에서 내린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꿈을 꿨던 것일까. 그리고 <카오스>는 멜로드라마가 된다. 구로다와, 사오리의 행세를 했던 사토미. 사토미의 행적을 찾아가던 구로다는 그녀의 사진을 보고 문득 깨닫는다. 그녀를 만난 적이 있다, 더 먼 과거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검은 슬립 드레스를 입은 그녀와는 달랐던, 과거의 그녀. 긴 머리를 묶고, 온통 물을 뒤집어쓴 청초한 모습의 그녀. 이미 구로다와 사토미의 붉은 실은 묶여 있었던 것이다. 그걸 묶은 건, 바로 사토미다. 구로다는 거기에 엮이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누가 감히, 그녀를 외면할 수 있을까. 그녀의 ‘붉은’ 열정을. 활활 타오르는 생의 불꽃을. 마침내 그녀를 찾아낸 구로다에게서 등을 돌려 도망치는 사토미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날 찾아낼 줄 알았어. 그냥 왠지 다시 보고 싶었어.” 구로다는 이미 그녀에게 사로잡혔다. 나카다 히데오는 이전까지 자신의 영화가 ‘바람이 불지 않’는 결점이 있었다고 말한다. 촬영소 출신이기 때문에, 세트 촬영에 더욱 능숙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토미와 구로다가 함께 뛰어가는 이 장면은, <카오스>의 백미다. 뛰어가는 사토미의 웃음을 보는 순간, 숨이 막힌다. 그런 순간을 맞이한 구로다가 너무나 부러워진다. 소유할 수 없는 여자, 삶의 카오스 <카오스>는 사토미의 영화다. 여자라는 존재의 극단적인 두 얼굴을 함께 드러내는 나카타니 미키의 연기는 놀랍다.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는 유난히 여주인공이 돋보인다. <링>의 주인공을 여자로 바꾼 것도 어쩌면 나카다 히데오의 취향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영화 속 히로인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는 타입이기 때문에 (<카오스>가) 지금의 스타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처럼, <카오스>는 사토미의 변신, 아니, ‘카오스’에 경도되어 있다. 사토미가 사오리가 된 것은, 우연이었다. 모델인 사토미는 광고주였던 고미야마와 불륜의 관계를 맺는다. 사토미의 집에 고미야마가 찾아왔을 때, 사오리가 들이닥치고 칼로 고미야마를 공격한다. 그는 사오리의 목을 조르고, 그녀는 숨진다. 그가 자수하겠다고 풀이 죽은 소리로 말할 때, 사토미는 말을 막는다. “난 싫어요, 이대로 끝낼 순 없어.” 그리고 사토미는 고미야마를 몰아붙인다. “똑바로 말해 봐, 내가 사오리와 닮았다고 했지.” 모든 계획을 짜고, 사토미는 구로다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고미야마의 불륜의 상대에 불과하던 사토미는, 모든 관계를 역전시키고 두 남자의 머리 위에 선다. 이 순간 사토미는 전형적인 필름누아르의 ‘팜므 파탈’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토미는, 단순히 남자를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악녀가 아니다. 그녀는 삶의 카오스다. 끈질기게 살아남으려는 욕망, 에로스의 현신인 것이다. 그녀를 만났을 때 구로다는 욕정을 느낀다. ‘리얼리티’를 위해, 구로다는 사오리의 손목과 발목을 묶는다. 그리고 갑자기 돌변한다. “부자들 돈장난도 여기까지야.” 하지만 구로다는 알고 있다. 이건 단지 ‘의뢰’일 뿐이라고. ‘리얼리티’를 선사한 뒤, 구로다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 이런 광경은 또 한번 되풀이된다. 사토미를 찾아낸 구로다는, 다시 한번 사오리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직접 새빨간 립스틱을 발라준다. 당신에겐 진한 색이 잘 어울린다며. 구로다와 사토미의 감정이 은밀하게 교류하는 이 두 장면은, <카오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사토미의 손목을 묶은 뒤 두 사람의 눈이 느리게 마주치는 순간 두 사람의 격동치는 감정은, 화면 아래에서 맹렬하게 꿈틀거린다.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들의 ‘카오스’는 침묵 속에서, 울부짖는다. 나카다 히데오는 하드보일드 소설 <사랑받고 싶은 여자>를 각색하면서, 남자의 이야기를 여자 중심으로 바꿔놓았다. 그녀는 사랑받고 싶은 여자가 아니라, 생의 카오스를 사랑하는 여자다. 자신의 운에 모든 것을 맡겨보는, 생의 불꽃이 인도하는 곳으로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여자. 구로다가 원한 것은 그녀의 사랑이지만, 그녀의 ‘카오스’에는 두려움을 느낀다. 모든 것을 끝내고, 차 안에서 사토미를 애무하던 구로다는 그녀에게서 칼을 발견한다. 그리고 망설인다.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그녀에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토미의 ‘함께 가자’라는 말에도, 그는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린다. 그녀는 혼자 절벽으로 웃, 으, 며 뛰어내린다. 그녀를 소유할 수 있는 남자는, 결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카오스>는 우리가 돌아갈 수 없는, 아니 남자가 갈망하는 매혹적인 ‘혼돈’에 눈이 멀게 한다. 김봉석 기자

당선작 <좁은 골목의 영혼>

작가 심용학 인터뷰 2시간 넘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신명나게 들려준 스토리가 무려 7∼8개, 심용학씨는 시나리오 작가는 이야기꾼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새삼 되새기게 만들었다. 그 이야기들이 아무리 그가 지난 3∼4년간 써온 시나리오 줄거리라 해도 말이다. 아이디어만 떠오르면 한달에 1편씩 쓴다는 그는 현업 ‘백수’이자 열댓편의 습작을 거친 예비 작가. 현대자동차 차량전자시험팀 내 오디오팀에서 8년간 일하다가 IMF를 맞아 명예퇴직했다. 집안 사정이 어렵던 터라 돈도 필요했고, 내친 김에 오래도록 짝사랑해온 영화로 달려온 것이다. 현대자동차에 다닐 때도 영화를 보러 지방에서 서울까지 내달려 오기 일쑤였을 만큼, 영화가 좋았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퇴직 뒤 충무로의 시나리오 학원에 다니며 본격적인 작문 수업에 임하기까지, 써 본 글이라곤 공대 실험결과 리포트와 대리 시절의 논술시험 정도라고. 하지만 단편용 <모래알>을 시작으로 영화진흥위원회 사전제작 지원공모 본심에 올랐던 <소울 메이트> 등 15편에 이르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야기의 직조법을 체득해왔다. 당선 소감은. 실감이 안 났다. 한동안 꿈을 잘 꿔서 느낌이 좋았지만, 당선이라니. 내 시나리오를 읽는 한석규씨를 만나고, ‘대경사’라는 이름의 가게에 물건 배달을 가는 등 꿈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뉴에이지에 관심이 많아서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이 도움을 줄 거라 믿는 편이지만, 그래도 놀랐다. 현대자동차를 그만두고 시나리오를 쓰다니,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IMF가 터지고 사정이 좀 어려웠다. 집안에 부채도 많은데 명퇴하면 돈도 많이 준다니까…. 퇴직금은 빚갚는데 들어가고, 덕분에 주변 친구들이 폐인 하나 구하려고 고생했다. 전자공학과를 나왔고, 동아리도 컴퓨터 동아리였지만 어차피 적성에 딱 맞지는 않았다. 형편이 좀더 좋았다면, 그래서 직업이 보장된 진로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연극영화과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기 전 40일 동안 거의 같은 꿈을 꿨는데, 단성사 간판을 보고 있거나 그 건물 안 복도를 걷거나 스크린을 보고 있는 거였다. 회사에 들어간 뒤에도 영화를 약 3천편은 본 것 같다. 그 스타들 손도장이 찍혔다는 맨즈 차이니즈 시어터에 가 보고 싶어서 여름휴가를 할리우드가 있는 LA로 간 적도 있다. 1주일 내내 영화만 20여편 보고 돌아왔다. 오히려 너무 늦게 영화로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나.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기보다 영화가 하고 싶었다. 펠리니의 <길>이나 왕가위의 <아비정전> 같은 영화를 보면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참 행복하겠다,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젤소미나의 노래가 나오는 빨래터 장면이나 장국영이 슬로모션으로 걸어가면서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장면, 마술적인 환상이 현실에 녹아든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영화들…. 제작이나 감독은 돈이 많이 들지만, 시나리오는 혼자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학적 재능이 없어서 자신은 없었지만, 시나리오 학원에서 문맥도 안 맞고 조사도 틀린다고 놀림받아가며 쓰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의 영혼>은 어떻게 구상했나. 하루 동안에 떠올린 얘기다. 어떤 사람이 귀신을 보고, 그 귀신이 뭘 바라며 나타나는 것인지 찾아간다는 구상에서 출발했다. 왜 귀신을 볼까 생각하다가, 죽기 직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도 보인다니까 시한부 인생으로 설정했고, 기왕 그러면 최악의 조건을 만들자 싶었다. 자신은 죽어가고, 가족은 해체되고, 마을에는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돈이 없어 이사도 못 가고. 감히 시한부 인생을 건드려서 욕먹지 않을까 싶었고, 감정 잡기도 힘들어 쓰는 데 넉달이나 걸렸다. 시나리오에 “모래와 피아노, 노래와 비밀 속에 묻혀 있는 행복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란 설명이 있던데,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나. 어렸을 때 모래 장난을 하며 모래 한알을 뿌리면서 빌면 100m 이내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100m에는 나도 포함되니까 나도 행복해지고, 서너알을 뿌리면 가족들도 다 행복해지고. 처음 쓴 <모래알>에도 모래를 뿌리는 에피소드를 넣었는데, 유치하고 동화적인 생각이지만 암울한 일상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기억한다는 게 좋기도 하다. 행복하진 않은데, 행복을 바라는 마음. 그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수많은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행복에 대한 생각들도 담고 싶었고. 피아노는 정숙과 귀신을 위해 끌어온 장치다. 한 가족의 일상, 귀신과 연쇄살인사건에 시한부 인생까지, 이야기가 상당히 복잡하다.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이 있어서 모방할 수 없는 작품을 쓰겠다고 복잡하게 만든 게, 너무 복잡해졌다. 장면 안에 장면을 너무 많이 넣고, 연쇄살인범의 심리묘사는 제대로 안 되고. 시한부 인생도 힘든데 연쇄살인범까지 등장하고, 호러 약간에 가족드라마에 사랑이야기까지…. 아직 손봐야 할 부분이 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쓰고 싶나. 글을 계속 쓴다면 사람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주고 싶다.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잠깐이나마 행복을 생각해볼 수 있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얘기도 하고 싶다. 그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쓰고 싶은 얘기 다 쓸 때가지 쓰고 싶다, 너무 많아서 마르진 않을 것 같다. 시놉시스 자동차회사 연구소의 오디오팀 과장인 이석은 아내 정숙, 어린 남매와 함께 소도시 변두리의 빌라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부부싸움 끝에 집을 뛰쳐나온 이석은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여관에 간다. 하지만 여자는 이내 뛰쳐나가고, 취한 이석은 그녀를 찾으러 가다가 차 사고를 일으킨다. 이석은 이 사건으로 모아둔 이삿돈을 다 날리고, 정숙과의 신경전으로 단란하던 가정생활에도 금이 간다. 어느 밤 정숙과 말다툼 끝에 거실로 나온 이석은 귀신을 본다. 한편 운전면허가 취소된 남편의 차를 몰고 수영장에 다니던 정숙은 귀갓길에 실종된 여자의 사체 발굴 현장을 지난다.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이곳이 싫지만 벗어날 수 없어 원망스럽다. 친하던 정 과장 부부까지 이사를 간다고 하자, 지쳐 있던 정숙은 이혼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날 농구시합 중에 쓰러진 이석이 췌장암 말기의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는다. 정숙은 쌓인 앙금을 누르며 이석에게 헌신하려 애쓰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 이석은 새삼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귀신이 관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늘 음악이 흐르던 이웃 한옥집,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선영을 보고 행복을 빌었던 기억. 그때를 회상하며 옛 집의 골목을 찾아간 이석은 혼자된 채 꿋꿋이 살고 있는 선영을 만난다. 다시 선영의 행복을 빌며 돌아온 이석은, 의문이 풀리지 않은 가운데 선영과 외모가 비슷했던 사고 당시의 여인을 떠올린다. 수소문 끝에 정숙과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아가지만, 다리를 저는 소설가 주환에게 문전박대를 당한다. 며칠 뒤 찾아온 주환은 아내 미란이 6개월째 실종됐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미란이 귀신임을 확신하던 이석은, 주환을 데려다주러 나선 정숙의 실종 통보를 받고 찾아나선다. 시나리오 #1. (F.I) 프롤로그 (25년 전) 저녁 무렵. 한 소년(12)이 골목을 뛰어간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골목을 꺾어 거침없이 내달린다. 골목은 한없이 길고 넓다. 계속 뛰어가다 마침내 어느 골목집 앞 창문 아래에 멈춘다. 창문으로 낯익은 70년대 팝 음악이 흘러나온다. 소년은 숨을 고른 뒤 등을 벽에 밀착시키며 음악에 젖는다. 소년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수를 세듯 손에서 해변의 모래알을 조금씩 바닥에 떨어트린다. 그리고 소년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진다. (Dissolve) #2. 6개월 전의 어느 날 밤 [ 2-1. 호프집 ] 이석(37)이 술에 취한 채 노곤한 미소를 짓는다. 테이블에는 빈 술병이 한곳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다. 비운 술병 하나를 다시 한곳에 두는 여자의 손. 취기가 오른 이석이 술잔을 단숨에 비운 뒤(뒷모습만 보이는) 여자에게 술을 따라준다. 수수한 차림의 여자가 공손하게 술을 받아 들이킨다. 재떨이에 비스듬히 세워둔 담배는 긴 연기 줄기를 만들어낸다. [ 2-2. 여관 복도 - 여관방 ] 색이 바랜 빨간색 카펫이 깔려 있는 복도의 맨 끝 방. 방문이 열리고 여자가 옷매무새를 다지며 뛰어나간다. 그녀의 투박한 구두. 뒷모습만을 보이고 뛰어가는 그녀는 두툼한 손가방을 들고 있다. 열린 방 안으로 카메라 들어가면… 이석이 일어나려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 넘어진다. 그 바람에 바닥에 정돈되어 있던 맥주병도 덩달아 넘어진다. 콸콸 쏟아지는 맥주 옆으로 이발소 할인권 다발이 보인다. [ 2-3. 여관 근처 도로 ] 여관의 네온간판이 이석의 차창에 기울어져 비친다. 헝클어진 모습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이석. 도로 저 멀리 어렴풋이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도로가에 세워둔 자신의 차에 타고 주차한 곳을 빠져 나오려고 급하게 후진을 하는 순간 쿵! 뒷차의 범퍼가 내려앉는다. 다시 전진하다 앞차의 사이드를 쾅! 앞차에서 피곤한 듯 기대있던 원철(40)이 깜짝 놀라 뒤돌아본다. 이석의 차가 앞차의 깨진 사이드 램프의 파편을 짓이기며 빠르게 달려나간다. 원철의 백미러로 뒷차에서 나와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남자가 보인다. [ 2-4. 달리는 이석의 차 안 ] 가로등이 빠르게 스친다. 이석, 계속 보도로 눈길을 돌리며 달린다. 그가 찾는 여자가 보이지 않자 반대편 차선으로 급작스럽게 유턴한다. 순간 차창 밖으로 왱왱거리며 달려오는 두대의 경찰차. 무시하고 달리는 이석. 백미러로 보이는 경찰차는 더욱 바짝 달라붙는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더 속도를 내는 이석. 그러나 계속 커지는 경음기 소리에 서서히 위협을 느낀다. 바로 옆을 달리는 경찰차를 보고 마침내 포기하듯 차를 멈춘다. [ 2-5. 경찰서 유치장 ] 또각또각 걸어와 유치장 앞에 멈추는 정숙(35). 수갑이 채워져 있는 이석의 손을 보고 눈물을 떨군다. 아직 술이 덜 깬 얼굴로 정숙을 올려다보는 이석. 책망하는 표정으로 바뀌며 고개를 돌리는 정숙. 이석, 자신의 손에 채워진 수갑을 바라본다. (F.O) #3. (F.I) 달리는 이석의 차 (현재) 경기도 근교 작은 도시의 동네 도로. 안개가 자욱하다. 정숙이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하고 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이석이 고개를 돌려 뒷자리를 본다. 서로 고개를 맞대고 자고 있는 하늘(10)과 강(6). 담배를 꺼내 물며 창문을 여는 이석. 순간 끼이익! 정숙 (핸들을 잡은 채 앞을 응시하며) 나가서 펴. 이석 …엄마한테 왜 그래? 정숙 (바로 쏘아보며) 모르면 좀 가만히 있어. 바쁘신 당신 형님들 사모님 때문이라구 알어? 그 사람들 안 왔다고 나한테 역정을 내신 거야. 날 차별하고 무시해서… 참다참다 겨우 한마디했어…. 당신이 바람이나 피다 사고 치지 않았으면 내게 그랬겠어? 이석 또 그 얘기야?! 그 일은 기억이 안 난다고 내 당신한테 수십번 얘기했어. 정숙 (지지 않겠다는 듯)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그렇다고 사라질 줄 알아? 이석 !… 당신과 싸우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었어. 이석, 차에서 내리며 문을 쾅 닫는다. 정숙 !… 바로 급출발해서 내빼듯 사라지는 정숙. #4. 빌라 근처 이석, 내빼듯 달리는 차를 바라본다. 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어렴풋이 외롭게 서 있는 빌라가 보인다.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다. 터벅터벅 걸으며 담배에 불을 붙이는 이석. 길가에 버려져 있는 맥주병을 주워 들고 걸어간다. 주위를 훑어보다… 어느 순간 바위를 향해 힘껏 던진다. 화풀이하듯… 챙… 병은 파편을 튀기며 산산조각 난다. 그걸 보며 걸음을 옮기던 이석, 순간 돌부리에 걸려 휘청한다. #5. 이석의 빌라 (밤) [ 5-1. 서재 ] 오디오시스템과 벽을 가득 메운 수천장의 CD가 있다. 헤드폰을 쓰고 벽에 기댄 채 음향공학 책을 보고 있는 이석. 옆에는 대여섯장의 CD와 담배꽁초 하나가 짓이겨 있는 재떨이가 있다. 11시50분. 이석, 책에다 갈피를 끼워 덮고 헤드폰을 벗는다. 책을 책꽂이에 CD를 CD장에 정리하고 방을 나간다. ▶ 제3회 막동이시나리오 공모 발표 ▶ 당선작 <좁은 골목의 영혼> ▶ 가작 <11월의 비> ▶ 제3회 막동이시나리오 심사평

2001 충무로 파워 50 - [5] 31위~40위

● 31.오지철 문화관광부 기획관리실장| 49년생| 2000년 순위 31위 “그가 있어서 문화관광부에 대한 미련이 그래도 존재한다”는 한 추천인의 촌평은 과찬이 아니다. 97년 문화산업국장 시절부터 전문성과 비전을 겸비한 합리적인 일처리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영화 관련 단체 인사들 사이에선 “말이 가장 잘 통하는” 행정 관료로 꼽힌다. 99년 문화정책국장 시절, 표준전산망 사업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특혜의혹이 불거져 영화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그에게만큼은 ‘면죄부’가 주어졌던 것도 그 때문. 지난 4월 기획관리실장으로 승진, 부처 내 예산과 기금 운용 등을 맡고 있다. 지나온 1년 완결하진 못했지만, 복수 시스템과 네트워크망 형성 등의 원칙하에 영진위 등 단체들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는 만큼 통합전산망 사업이 조속히 마무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1년 한국영화를 찾는 관객이 늘고 있지만, 시나리오나 연출 등을 좀더 다듬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스크린쿼터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으므로, 영화계 내부의 단결이 필요한 한해다. ● 32.신철 신씨네 대표| 57년생| 2000년 순위 23 <편지> <약속>의 흥행으로 재기한 뒤 <거짓말>을 제작해 한차례 몸살을 앓았다. 제작에서 개봉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 영화라 후유증이 컸다고 말한다. “다들 지쳐서 베트남전에 다녀온 기분이었다”고. 인터파크 등 외부투자를 받아 회사 규모가 조금 커졌고 제작편수를 늘릴 예정이다. “구상중인 아이템이 여러 개 있지만 확정 안 된 상황에서 미리 떠들 수 없다”며 구체적인 계획에 관해선 함구한다. 장기적 제휴를 제안하는 투자사나 다른 사업을 벌이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제작에만 주력할 계획. 지나온 1년 예전에 비해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고 <교도소 월드컵>을 제작했다. 5월19일 개봉예정. <엽기적인 그녀>가 촬영에 들어갔다. 앞으로 1년 올해 3편 정도 찍을 계획. <엽기적인 그녀> 외에 2편이 제작준비 단계에 있다. ● 33.김성수 영화감독| 61년생| 2000년 순위 첫 진입 국내 감독 가운데 드물게 테크니션으로 분류되는 그는 신작 <무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50위 안에 처음 진입했다. <런어웨이>로 데뷔해 <비트> <태양은 없다>를 만들었고 배우 정우성, 프로듀서 조민환, 촬영 김형구, 조명 이강산, 무술 정두홍 등과 계속 작업했다. 현재 호주에서 <무사> 후반작업을 진행중인데 이번 영화에선 특히 난이도 높은 촬영을 많이 시도했다. 대작 액션영화를 완성도 있게 찍을 수 있는 드문 감독 중 하나로 꼽히며 컷 수가 많은 영화를 찍는 걸로도 유명하다. 샘 페킨파와 구로사와 아키라를 존경하며 힘있는 영화, 남성적인 영화를 만든다. 지나온 1년 중국 대륙을 횡단하다시피하며 <무사>를 찍었다. 사고 위험이 많은 험난한 현장이었지만 노련한 스탭과 김성수 사단의 팀워크가 뒷받침돼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앞으로 1년 6월에 완성된 프린트를 들고 귀국한다. 7월에 개봉할 예정. ● 34.김지운 영화감독| 64년생| 2000년 순위 36 공포와 코미디를 독특하게 교배한 데뷔작 <조용한 가족>(1997)으로 충무로에 성공리에 입성했고, 2000년 설 극장가를 뒤흔들며 서울에서만 81만여명 관객을 동원한 <반칙왕>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반칙왕>은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 등 많은 해외영화제에 초청되고, 지난 3월에는 홍콩에도 수출, 개봉 첫주에 <트래픽>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40분짜리 인터넷 단편영화 <커밍아웃>도 조회 수가 42만회를 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지나온 1년 <반칙왕> 들고 해외영화제 다녔다. 판타스포르투,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여러 영화제도 돌아보고, 인터넷영화 <커밍아웃>도 만들었다. 앞으로 1년 올 여름, 진가신 감독이 속해 있는 홍콩 영화사의 제안으로 타이, 홍콩, 한국, 일본 4개국 감독들이 옴니버스식으로 공포 단편을 만든다. 전생이 악마인 여자를 그린 정통 공포영화. ● 35.정태원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 64년생| 2000년 순위 첫 진입 외화수입업자로 알려졌던 그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비천무>를 통해 제작자로서 인지도를 높였다. 뉴라인, 미라맥스영화의 국내 배급을 도맡다시피해 시네마서비스의 외화 라인업에서 큰 축을 이루고 있다. 80년대 미국 가수들의 내한공연을 기획하다 88년부터 영화수입을 시작했고 매니지먼트 사업에도 손을 댔다. <할렐루야>로 본격 제작에 뛰어든 뒤 <산전수전> <키스할까요> 등도 제작했다. 기획부터 편집까지 일일이 관여하는 스타일이며 대중영화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 지나온 1년 <비천무>로 인해 돈도 벌고 비판도 많이 받았다.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은 몇달간 배창호 감독을 쫓아다닌 결과로 만들게 된 영화다. 앞으로 1년 외화로는 <반지전쟁> <골드코스트> 등이 있고 한국영화는 <흑수선> 외에 2∼3편을 준비중이다. 이번엔 ‘최악의 영화’라는 소리 듣거나 함께 일한 감독에게 비난받지 않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 36.박병무 로커스홀딩스 대표| 61년생| 2000년 순위 첫 진입 지난 2월12일 시네마서비스를 인수,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최대 지주회사로 떠올랐다. 제작, 음반, 매니지먼트의 싸이더스, 배급의 시네마서비스를 확보했기 때문. 박병무 대표는 이같은 인수합병을 “엔터테인먼트를 산업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로커스(대표 김형순)가 코아텍을 인수해 로커스홀딩스를 만들기 전에 M&A 전문변호사로 널리 알려졌다. 국내 최대 법률회사 김&장의 M&A팀장이던 그는 김형순 대표의 제안으로 로커스홀딩스 대표를 맡아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80년 서울대 전체 수석합격, 법대 수석졸업, 하버드 로스쿨 졸업 등 경력이 화려하다. 지나온 1년 시네마서비스를 인수, 로커스홀딩스가 엔터테인먼트 지주회사로 뿌리내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앞으로 1년 자회사인 싸이더스와 시네마서비스가 어떤 시너지효과를 내느냐가 관건. 1단계 목표는 영화, 음반, 게임, 애니메이션 등에서 강력한 콘텐츠군을 만드는 것인데 아직 1단계의 시작일 뿐이다. 월트 디즈니처럼 하나의 작품을 영화-음반-애니메이션-게임-방송-인터넷 등으로 결합하는 작업이 목표다. ● 37.정지영 영화감독| 46년생| 2000년 순위 19 직배반대투쟁부터 스크린쿼터사수투쟁까지 한국영화계의 투사이자 든든한 맏형. 특히 영화인회의 이사장으로 영화계의 개혁정책을 펼치는데 힘써왔다. 작년말에는 오랫동안 접어두었던 신작을 위해 이사장 자리를 후배 이춘연에게 내어주었다. <남부군> <하얀전쟁> 등 굵직굵직한 필모그래피를 안고 있는 정감독은 “감독으로 파워50에 들어가고 싶지 그 외적인 이유로 선정되는 것은 ‘은퇴’하고 싶다”는 말로 이제는 ‘영화감독’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리라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지나온 1년 바빴다. 하지만 영화인회의 이사장으로서 영화계 신구파의 모양새를 제법 갖추고 그만뒀다는 것이 보람이다. 앞으로 1년 차기작 <은지화>의 시나리오 수정작업을 거의 끝냈다. 이번달 말쯤엔 완성될 것 같다. 계절상으로 여름에 찍어야 하는 작품이라 촬영이 가을로 넘어가진 않을 거다. ● 38.염태순 (주)유니코리아 문예투자·드림벤처캐피탈 대표| 53년생| 2000년 순위 26 “잘 만들면, 잘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1차 관객은 영화인이다.” 유니코리아 문예투자의 보이지 않는 사훈이다. 이창동, 홍상수 감독 등의 작품에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뚝심’을 발휘, 아이찜을 만드는 ‘가방공장 사장’이라는 직함 위에 좀처럼 유혹에 곁눈길 두지 않는 건실한 투자자라는 평가도 얹었다. 장선우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리공주>는 직접 제작하는 케이스. 제작비 마련을 위한 투자조합 결성이 무위로 돌아갔지만, 곧 RGP프랑스사로부터 100만달러를 투자받기로 했다. 지나온 1년 <오! 수정> <시월애>, 이지상 감독의 <돈?gt; 등에 75억원 투자. 칸영화제에서 진행한 간단한 프로모션으로 <바리공주> 제작비 100만달러를 유치하는 데 성공. 앞으로 1년 올해도 투자액수는 약 90억원가량. 홍상수 감독의 차기 프로젝트와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준비. ● 39.장윤현 영화감독·씨앤필름 대표| 67년생| 2000년 순위 24 <텔미썸딩> 이후 후속작이 없지만 강우석, 강제규의 뒤를 쫓는 차세대 감독 겸 프로듀서로 꼽힌다. 씨앤필름 외에 디지털영화를 제작하는 아이오직과 온라인마케팅을 하는 헬로닷티브이라는 두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엉뚱한 사업다각화가 아니라 영화제작에 종속된, 제작의 필요에 의한 다각화”라고 말한다. 씨앤필름 대표로 제작자임에 틀림없지만 그가 그리는 영화사는 일반적인 영화사와 그림이 좀 다르다. “영화 만들고 싶은 프로듀서와 감독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마당을 제공하겠다”는 것. 제작자가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다양한 작품이 많이 나오는 영화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지나온 1년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건 안정적인 제작시스템의 토대를 닦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탓이다. 송일곤 감독의 <꽃섬>을 제작했다. 앞으로 1년 직접 연출할 SF영화 <테슬라>는 9월경 촬영에 들어가는 게 목표. <테슬라> 외에 준비중인 영화도 3편 이상 있다. ● 40.이광모 영화감독| 61년생| 2000년 순위 47 <아름다운 시절> 이후 내내 관심을 모아온 신작 <어머니>는 아직 준비단계지만, 접을 생각까지 했던 수입·배급·제작자로서 백두대간의 면모를 재정비한 1년이었다. 멀티플래넘 극장을 표방하고 지난해 12월2일 흥국생명 신사옥 내에 개관한 씨네큐브 광화문의 기획과 책임운영을 맡았고, 제작면에서는 대중성 있는 영화를 내놓을 시네마 상상을 설립했다. 장기적으로 백두대간과 시네마 상상을 합쳐 연간 3편 정도의 영화가 굴러가는 제작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상. <어머니>는 올해 안에 다큐멘터리 부문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지나온 1년 씨네큐브 광화문을 개관했고 40여편의 프로그램을 확보했다. <포르노그래픽 어페어> <야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성공적으로 개봉했고, 2차에 걸친 공모를 통해 백두대간과 시네마 상상이 제작할 영화의 시나리오를 확보했다. 앞으로 1년 백두대간 제작, 시네마 상상 공동제작의 스릴러 <오르페우스>(감독 김용하)가 여름에 크랭크인하고, 코미디 <아내>(가제)가 차기작으로 준비중. 3차 시나리오 공모가 하반기에 있다.

2001 충무로 파워 50 - [6] 41위~50위

● 41.박무승 KM컬쳐 대표| 60년생| 2000년 순위 27위 “국민기술금융 영화사업 팀장 및 KM컬쳐 부사장직을 겸임하다 2월부터 KM컬쳐 대표로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해 <반칙왕>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주목받는 투자사가 됐지만, 이후 거대 음반사를 인수하는 등 “영화쪽 투자에 소흘했다”는 것이 그의 말. LJ필름, 다다필름 등 개성있는 제작사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KM컬쳐는 투자뿐 아니라 자체 제작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조만간 신인들을 중심으로 한 매니지먼트 사업을 부상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나온 1년 별로 한 게 없다. 순위 안에 든 것도 앞으로의 가능성을 높이 사준 듯싶다. 앞으로 1년 자체 제작하는 <명랑만화와 권법소년>을 비롯해서 4편 정도 생각하고 있다. 규모는 100억원이다. 큰 작품을 할 수도 있어 맥시멈은 200억원까지도 잡고 있다. ● 42.유동훈 영화인협회 이사장| 41년생| 2000년 순위 첫 진입 24년간 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을 했던 그는 올해 말 많고 탈 많은 영화인협회의 새로운 이사장이 됐다. 세대간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개혁성향의 보수주의자라는 평을 얻은 그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가 많았는데 아직 어떤 평가를 내리긴 이른 시점. 대종상을 영화인회의와 공동주최한 것은 청신호로 보였으나 심사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스탭의 권익을 위한 표준계약관행 도입, 영화촬영장소 확보를 대행하는 필름오피스 사업, 영화센터 건립, 영화재단 설립 등을 추진중이다. <춘희> <삼포가는 길> <마지막 포옹> 등이 시나리오를 쓴 대표적인 영화들이며 1970년 한해에만 그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14편이 극장에 걸린 진기 기록을 갖고 있다. 그를 입봉시킨 인물은 정진우 감독. 지나온 1년 영화인협회 이사장으로서 영화인회의와 힘을 합쳐 대종상을 준비했다. 극영화 제작지원 사업과 관련, 영진위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앞으로 1년 이사장 선거에 내건 공약을 하나씩 해결해갈 예정. ● 43.박찬욱 영화감독| 63년생| 2000년 순위 첫 진입 비주류적 감성과 형식의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 <삼인조>의 감독이자, 폭넓은 영화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무장한 비평가로서 오랫동안 마니아의 벗이었던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 한편으로 대중의 총아가 됐다. <…JSA>의 극장 상영 이후로는 지난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현재까지 여러 해외영화제를 주유하고 있는 중. 그러나 전달한 메시지가 강한 영화이기에 웰 메이드(well-made) 스타일을 선택했을 뿐, 감독으로서 노선을 바꾼 건 아니라고 박 감독은 말해왔다. 현재 이탈리아 우디네에서 열리는 극동영화제, 런던의 한국영화 페스티벌 등에 참석중인 박찬욱 감독은 <…JSA>의 일본 개봉에 앞서 5월5일부터 나흘간 일본 5대 도시를 방문한다. 한국영화 수출의 활로라는 의미에서 <…JSA>가 일본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지나온 1년 내가 세 번째 장편영화를 만든 해.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앞으로 1년 영화사 스튜디오 박스에서 제작하는 <복수는 나의 것> 촬영을 7월 말경 시작한다. 개봉예정은 연말연시. 각본에 참여한 <휴머니스트>가 좋은 반응을 얻었으면 좋겠고, <휴머니스?gt;의 이무영 감독과 시나리오를 함께 쓴 윤태용 감독의 <썬데이서울>도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 44.오정완 영화사 대표 봄 대표이사| 64년생 | 2000년 순위 15위 지난해 초 <반칙왕>의 성공으로 15위에 첫 진입했던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이사는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에 걸쳐 공을 들인 <눈물>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약간 주춤했다. <눈물>은 대신 해외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중. 97년까지 몸담은 신씨네에서 많은 흥행작을 기획, 제작, 마케팅했고, 독립한 뒤에는 <정사> <반칙왕> 등을 선보이며 충무로에 새 바람을 일으켜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강봉래, 류진옥, 이유진 프로듀서가 영화사 봄의 식구들로, 프로듀서별로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제작하는 시스템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올해부터 한해에 두세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활발히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나온 1년 <눈물>을 제작했다. <눈물>의 실패로, 영화사의 노선과 방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앞으로 1년 현재 시나리오까지 나온 공포영화 과 스릴러영화 <살인비가>의 캐스팅 작업에 박차를 기해, 올해 안에 제작, 개봉하는 것이 목표다. ● 45.곽경택 영화감독| 66년생| 2000년 순위 첫 진입 상반기 최대의 흥행작 <친구>로 첫 진입한 곽경택은 <억수탕> <닥터K>의 고전을 딛고 신화적 성공을 이뤄냈다. 고신대 의대를 중퇴하고 미국 뉴욕대 영화연출과를 졸업, 단편 <영창이야기>로 서울단편영화제 우수상을 수상했다. 최근 <친구>는 전국 관객 300만명이 넘었고 이 시간에도 여전히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나온 1년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친구>를 만들면서 쏟아버린것 같다. 개봉 뒤엔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고 이제야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1년 올해 상반기까지는 더 많은 관객이 <친구>를 만나도록 해야 하고 6월 이후에는 깔끔히 털고 새 영화 준비를 할 것이다. 원래 차기작으로 링 위에서 사망한 권투선수 김득구의 생을 담은 영화를 준비중이었는데 다른 변수가 생겼다. 아직 둘 중 뭘 선택할지 결정을 안내렸다. 하지만 어떤 작품을 하던지 <친구>의 두배 에너지를 써야 그 반 정도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46.김정상 시네마서비스 사장| 60년생| 2000년 순위 33 지난해 직배영화사와 음반사가 제안한 거액의 연봉을 제쳐두고 강우석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여 시네마서비스의 안살림을 맡게 됐다. 88년 대우비디오에 입사해 93년부터 폭스의 한국지사장을 맡았다. <만추>의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씨의 아들이다. 강우석 감독이 회사 운영에 관한 문제를 일임할 만큼 신뢰하는 친구이기도 하며 로커스홀딩스의 시네마서비스 인수 등 투자유치에도 능력을 발휘했다. 감정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는 충무로 방식과 달리 철저히 합리적인 직배사 스타일로 알려졌다. 지나온 1년 로커스홀딩스의 투자유치를 끌어내는 데 기여했고 메이저영화사에 걸맞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구조를 만들었다. 앞으로 1년 비디오 유통 등 신규사업을 벌일 계획. 올해 개봉시킬 영화만 대략 16편 정도 된다. ● 47.김동원 영화감독| 55년생| 2000년 순위 48 10여년 동안 노동, 빈민, 인권 등 ‘소외된 삶의 뿌리’에 대한 지독한 애정과 열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 독립영화계의 대부. 1988년 상계동 빈민촌 철거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을 시작으로 다큐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991년 다큐멘터리 제작집단 푸른영상을 만들었고, 푸른영상은 <동강은 흐른다> <명성, 그 6일의 기록> 등의 비제도권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집단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그동안 자신과 푸른영상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모아 개인전 ‘상계동에서 평양으로’를 열기도 했다. 지나온 1년 비전향 장기수 송환 추진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송환 추진 과정을 촬영했다. 한국독립영화회고전을 열다섯번 열었고, 독립영화 순회상영차 미국에 다녀왔다. 앞으로 1년 일단 비전향 장기수 송환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를 마무리하는 것이 급선무. 푸른영상 10주년도 준비해야 하고, 올해 건립할 예정인 미디어센터에도 힘을 보탤 것이다. ● 48.김미희 좋은영화 대표| 64년생| 2000년 순위 첫 진입 강우석 감독과 일하다 좋은영화를 차리며 독립한 프로듀서. 단국대 국문과를 나와 화천공사 카피라이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시네마서비스 기획이사로 일하며 <투캅스2> <올가미> 등 한국영화 제작을 했다. 1999년 창립작품으로 <주유소 습격사건>을 내놓아 흥행에 성공했고, 올해는 두 번째 작품으로 이영애, 이정재 주연의 <선물>을 만들었다. 대중의 감각을 파고드는 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나온 1년 <선물>을 제작, 발표했다. 김상진 감독이 연출하는 <신라의 달밤>을 올 2월 크랭크인했다. 앞으로 1년 여름경 <신라의 달밤>을 개봉할 예정. 6월에는 류승완 감독의 신작 <피도 눈물도 없이>를 시작하여 12월 말에 개봉할 계획이다. 가을에는 또다른 신작에 착수한다. ● 49.최민식 영화배우| 62년생| 2000년 순위 첫 진입 이미 <쉬리> <해피엔드>로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아오다 최근 개봉한 <파이란>을 통해 명실공히 ‘영향력 있는’ 배우로 등극. 이념으로 무장된 북한군, 평범한 소시민에서 삼류 깡패까지 장르영화와 비장르영화 어디에도 잘 녹아드는 배우. 특히 영화에 임하는 자세가 진지해서 동료들과 제작자, 관객에게 깊이 사랑받고 있다. 지나온 1년 장진 감독과 연극 <박수칠 때 떠나라>를 LG아트센터 개관기념작으로 올렸다. 그 이후엔 <파이란>을 찍었고. 앞으로 1년 임권택 감독의 <오원 장승업>에 매진할 계획. 요즘은 화가인 장승업을 연기하기 위해 그림을 배우고 있다. 선긋기, 붓잡는 법, 먹가는 법부터 시작해 문방사우를 다루는 예절을 배웠고 이제 사군자에 들어간다. 묵향이 사람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 촬영은 춘하추동을 다 담아야 하기 때문에 1년 정도 진행될 예정. ● 50.김상일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영화사업부 사장| 49년생| 2000년 순위 34 해마다 ‘한국영화 파워 50’에 빠짐없이 포함됐던 직배사 대표들이 모두 탈락한 올해에도, 직배사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한국영화를 배급해 온 브에나비스타 코리아의 김상일 사장은 50인 안에 이름을 올렸다. 브에나비스타는 외국영화 26편, 한국영화 3편을 배급해 2000년 배급사별 시장점유율(영진위 정책실 집계)에서 전체 3위, 직배사 중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한국영화 배급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시월애> <오! 수정> <번지점프를 하다>로 만족스런 성과를 냈다. 국제상사 등 무역회사를 거쳐 디즈니 사장에 취임한 지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김상일 사장은 소탈한 성품의 소유자로 실무진을 신뢰하는 스타일의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지나온 1년 비즈니스면에서 최상의 해였다. 직배한 <식스티 세컨즈> <다이너소어> <언브레이커블>이 흥행에 성공했다. 앞으로 1년 <진주만> <아틀란티스: 잃어버린 제국> <몬스터 주식회사>를 직배하고 한국영화 <소름>을 배급한다. 지난해 이루지 못한 한국영화 제작 투자에 참여하는 방안을 계속 연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