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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썸’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 <오늘의 연애>

연애만 했다 하면 백일도 못 가 차이고 마는 초등학교 교사 준수(이승기)와 잘나가는 기상 캐스터 현우(문채원)는 둘도 없는 18년지기 친구다. 준수의 집을 제 집처럼 들락거리며 술만 마셨다 하면 거침없는 욕설을 쏟아내는 현우이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비밀스런 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그녀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것도 준수뿐이다. ‘가슴이 떨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준수와 사랑도 우정도 아닌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현우 앞에 어느 날 사진작가 효봉(정준영)이 나타나고, 이들의 우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오늘의 연애>는 <너는 내 운명> <내 사랑 내 곁에> <그놈 목소리> 등으로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박진표 감독의 신작이다. 하지만 흔치 않은 노년의 사랑을 용감하게 그린 <죽어도 좋아>로 데뷔한 후,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순애보적 사랑을 그린 두편의 영화 <너는 내 운명>과 <내 사랑 내 곁에> 등을 연출하며 오랜 시간 ‘사랑’의 여러 양상에 대해 고민해온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는 다소 의아하다. “이 영화를 통해 ‘썸’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되짚어보고, ‘썸’으로 맺어지는 남녀 관계와 감정들을 깊이 있게 파헤쳐보려 했다”는 감독의 말이 눈에 띈다. 실제로 영화는 ‘썸’이라는 단어가 제목 그대로 ‘오늘날의 연애’ 양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일종의 ‘현상’이라고 관객을 설득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문제는 영화가 생각하는 ‘썸’이 지나치게 표면에만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볼 법한 소란스런 자막들의 활용이나 슬쩍만 보아도 어딘지 알 수 있는 ‘핫플레이스’들을 선택한 노골적인 로케이션 전략, 그리고 문채원의 고운 얼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민망한 대사들은 지금 ‘썸’을 타는 이들에게도 공감대를 끌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조금 더 곤란한 건 ‘썸’의 감각들이 다 떨어져가는 후반부다. 파편적인 에피소드들로 신을 쌓아나가다 보니 ‘썸’이 ‘연애’로 바뀌는 순간, 두 주인공의 감정 변화가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곤 했던 ‘박진표식 사랑’의 우직함도 이 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문채원-이승기’라는 배우 조합은 이 영화의 벤치마킹 대상이었을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차태현’ 못지않은 ‘캐미’를 발산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감정의 근거가 미약해 캐릭터의 매력이 십분 살아나지 못한다는 점도 못내 아쉽다.

[이시이 유야] 시대와 사회가 내뿜는 공기에서 영화가 나온다

외모도 영화도 자못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시이 유야는 작품을 통해 현대 일본 사회를 향한 “화와 분노”를 슬그머니 드러내온 신진 연출가다. 수편의 실험적인 단편을 연출하다 오사카예술대학졸업작품인 장편영화 <무키다시 닛폰>(2005)으로 피아영화제 대상과 음악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국내엔 <행복한 사전>(2013)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별까지 7일>(2014)은 그의 아홉번째 장편영화다. 최근 <이별까지 7일>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자 한국을 찾은 그의 발길을 잠시 붙들었다.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이시이 유야의 말끝엔 젊은 작가의 예리한 칼날이 숨어 있었다. -하야미 가즈마사의 소설 <이별까지 7일>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이번에 처음 작업해보는 나가이 다쿠로 프로듀서에게 제안 받았다. 원작에서 큰 감동을 느꼈다고 하더라. -원작을 각색할 때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려야 겠다고 생각했나. =두 가지는 반드시 지키자고 생각했다. 하나는 하야미 가즈마사가 갖고 있는 가족에 대한 시선을 흐트러뜨리지 말자는 것. 그는 30대 초반에 이 소설을 썼고, 지금 나는 그때의 그와 엇비슷한 나이다. 그 시점까지 고려하고 싶었다. 또 하나는 원작을 읽고 난 독자의 감상과 영화를 본 관객의 감상이 같았으면 하는 거였다. -동생 슌페이(이케마쓰 소스케)가 아침에 텔레비전에서 행운의 색과 숫자를 보고 난 뒤 긍정적인 결말이 찾아온다는 등의 디테일까지도 살려냈다. =그걸 꼭 살리고 싶었던 이유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슌페이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다. 의지할 것을 만들어주고 싶었달까. 원작엔 없지만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장면도 있다. 형제가 언덕 위를 마구 올라가며 우리 뭔가 제대로 해보자고 의기투합하는 장면이다. 원작에선 형 코스케가 다소 일방적으로 추궁당하는 중에 슌페이가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형에게도 굳은 의지를 드러낼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그 장면을 추가한 거다. -<이별까지 7일>에서 드러나는 가족의 모습이 현대 일본 사회의 가족 문제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나. =내가 그려낸 형태가 일본의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부분적인 조각은 겹치지 않을까 한다. 가족 내 구성원끼리도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지 않나. 그들 사이에서 거리감이 생기는 부분과 가까운 가족의 문제이기에 미루면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들을 담으려 했다. 이러한 부분은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싶다. -레이코(하라다 미에코)의 시한부 판정이 영화 초반에 가족의 고민거리로 제시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지 않았던 사람들이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열심히 무언가를 해볼 의지를 갖게 된다는 설정에 집착하는 편이다. 레이코의 시한부 판정을 계기로 변해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일본에 절실한 태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때로 당신의 영화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끌고 간다. <이별까지 7일>에서도 레이코는 집안의 남자들이 모르는 사이 어느새 집의 바탕과 중심이 되어 있는 캐릭터다. =내가 강한 여성에게 끌리는 건 확실하다. (웃음) 남성이 알고 보면 약한 존재라는 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인 것도 같다. 내가 알 수 없는 여성성에 의지하려는 면이 있다. -하라다 미에코는 여리지만 심지가 굳은 어머니로 적역이다. 기억을 잃으며 그녀가 보여주는 소녀 같은 모습도 대단히 사랑스러운데 당신은 그녀에게 어떤 기대를 가졌나. =그녀가 보여주는 소녀다움은 단순한 귀여움이 아니다. 아이 같은 천진한 표정도 있지만 그녀는 남자 셋이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드는 사람이다. 치매 증상 때문에 본인도 모르게 자기 생각을 마구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해 속내를 털어놓는 것 같기도 한 모호함 역시 하라다 미에코가 완벽히 표현해주었다. 가장 어려운 역할인 동시에 내가 가장 기대한 역할이었다. 물론 아주 성공적이었고. -반면, 남성 캐릭터들은 대체로 덜 자란 느낌이다. 특히 <이별까지 7일>의 세 남자에게서 그런 면모가 가장 크게 드러난다. =세명의 남성 캐릭터를 만들며 가장 의식한 부분은 셋 다 각기 다른 캐릭터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다는 거였다. 술에 약하다든가 성격적인 부분이 비슷하지 않나. 레이코를 구해야 한다는 목적을 공유해야 함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는 세 남자가 ‘우리 상황이 이러니 서로 힘을 합치자!’라고 자연스럽게 화합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각자 뭔가 해보려고 하지만 사실 그들 개개인의 능력이 출중하지 못하고, 노력하는 중에 ‘어찌어찌하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네?’ 하는 인상을 심고 싶었다. 이 ‘얼떨결’의 뉘앙스를 꼭 강조해달라. (웃음) -얼마 전 진행한 서면인터뷰(<씨네21> 988호)에서 쓰마부키 사토시는 이케마쓰 소스케와 캐치볼을 하며 우애를 쌓았다고 했다. 연출자인 당신이 둘의 관계를 조율한 부분도 있나. =형제간의 정이나 연결고리를 만들게끔 내가 그들 사이에 끼어든 건 없다. 둘 사이에서 빠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심지어 이케마쓰 소스케에게 ‘쓰마부키 사토시가 대단한 배우이지만 너도 할 수 있으니 그에게 지지 말라’고 하며 갈등을 부추기기까지 했는데. (웃음) 남자 형제 사이는 서로에 대한 대립의식을 보이는 게 더 어울린다. 덧붙이자면, 평소 나는 쓰마부키 사토시와 이케마쓰 소스케가 서로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쓰마부키 사토시야 워낙 훌륭한 배우이니 캐스팅에 대해선 물어볼 게 없지만, 슌페이 역을 이케마쓰 소스케에게 맡긴 이유는 궁금하다. =그렇다고 해서 둘을 대하는 내 태도에 큰 차이는 없었다. 이케마쓰 소스케에 관해서만 얘기하자면 심지어 나는 그를 천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웃음) 그가 천재여서 그랬다. -이케마쓰 소스케의 어떤 점이 그토록 천재적이던가. =응? 사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웃음) 20초만 기다려달라. (정확히 20초 뒤) 나보다 네다섯살 어린데도 그는 같이 일하는 파트너로서 신뢰할 수 있는 타입이다. 그는 연출자의 모든 생각을 지지하고 믿어주는 편이다. 영화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연기도 아주 훌륭하다. 확신할 수 있는 건 그의 마음 깊은 곳엔 어떠한 분노와 야심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는 거다. 반면 상당히 순수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이 이케마쓰 소스케의 연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당신의 영화는 대체로 느리게 호흡한다. 영화의 리듬을 짜는 데엔 어떤 고민을 하나. =그래, 빠른 것 같진 않다. (웃음) 특히 최근 찍은 영화 셋(<행복한 사전> <이별까지 7일> <밴쿠버의 아사히>)은 더더욱 그렇다. 이것도 봐라, 저것도 봐라 하는 식으로 연출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끊임없이 관객에게 주입하는 영화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나는 하나를 보여주더라도 제대로 보여주고 관객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도록 하고 싶다. 특히 <이별까지 7일>처럼 가족과 관련된 영화라면 마음 한쪽에서 내 가족은 어떠한가 하고 가족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쉼없이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미츠코, 출산하다>(2011)와 <행복한 사전> 사이에는 얼마간 시간이 비어 있다.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 =왜 그랬을까? (웃음) 동일본 대지진이 발발해 그사이에 약간의 정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꾸준히 뭔가 일을 하긴 했다. (한국엔 방영되지 않은) 의 2부작 드라마 <엔딩롤>과 의 8부작 드라마 <망상수사~ 구와가타 고이치 준교수의 스타일리시한 생활> 중 두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행복한 사전> 이후 당신 영화의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는 생각도 든다. 원작 각색 영화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청춘들의 주변적인 이야기를 주로 만들다가 <행복한 사전> 이후 작품엔 보편적인 드라마까지 얹혔다. =사실 원작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고 연출자로서 내 태도가 달라진 것도 아니다. 너무나 명백한 답변이지만 프로젝트의 성격이 달라진 게 가장 큰 이유다. <행복한 사전> 이전의 영화는 제작비도 적었고, 그만큼 내가 알아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또 그걸 관심있는 사람만 봐도 좋았다. 하지만 <행복한 사전>부터는 제작비도 늘어났고 영화도 더 폭넓은 관객이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꾸준히 영화를 만들 힘을 얻는다”고 지난 인터뷰(<씨네21> 647호)에서 말했다. 여전히 그런가. =불만이라기보다 내가 피부로 느끼는 사회에 대한 위화감에 가깝다. 이 시대와 사회가 내뿜는 공기, 나는 그 안에서 호흡하며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공기에서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작품을 구상한다. -지금 가장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일본 사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한국 매체에서 직접적으로 이런 얘기를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에둘러 말하자면 위기를 안고 있는 일본 사회는 점점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악화되는 부분은 정치나 경제 면에서 여러 가지가 있다. 그보다 문제인 것은 그 위기를 일본인들이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가치가 낮아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현재 일본에서 상영 중인 신작 <밴쿠버의 아사히>는 쓰마부키 사토시, 이케마쓰 소스케와 또 한번 만난 영화다. =두번 같이 작업하니까 더 어렵다. 기존에 했던 것들을 일부 부정하고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낀다. -배경이 1938년부터 1941년까지인데, 이 정도까지 옛날로 간 시대극은 처음이다. =전쟁 이전의 캐나다가 배경이다. 오히려 재밌다고 느낀 건 그래서였다. 국내에서가 아니라 외국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일본인 거다. 캐나다에서 사는 일본인이 일본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더 갖고 있고, 모국의 장단점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모습들이 흥미로웠다. 이민자로서 겪는 갈등과 차별 역시 현대 일본의 사회문제와도 통한다고 생각했다. -프로덕션상의 차이도 크게 느꼈겠다. =(질문 끝나자마자) 너무너무 힘들었다! (웃음) 캐나다 현지 촬영은 어려워서 일본에 당시를 그대로 재현한 세트를 지었다. 길거리는 물론이고 야구장까지 모두 만들었다. 만들 땐 힘겨웠지만 일단 만들고 나니 스탭과 배우가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건 쉬웠다. -새해도 밝았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내 안에는 화와 분노가 굉장히 많다. 20대 중반까지는 그게 영화를 만드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됐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런 감정이 더 격렬해져서 이걸로 내가 영화를 만드는 것이 괜찮은지 생각하게 됐다. 앞뒤 생각 없이 달려오기만 한 상황이라 앞으로는 시간을 두고 나의 영화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려 한다. 신작에 대해선 구체적인 계획 없이 생각만 하고 있다.

[베를린] 아버지 세대와의 갈등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개봉 전부터 화제였던 <우리는 젊다. 우리는 강하다>(We are Young. We are Strong)가 지난 1월 말부터 독일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 이 영화는 1992년 8월 독일 북부의 옛 동독 지역인 리히텐하겐에서 발생한 난민거주주택 방화사건을 다룬다. 최근 독일의 각 도시에서 반이슬람 시위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러한 정세를 고려했을 때 이 영화의 개봉은 이보다 더 시의적절할 수가 없다. 리히텐하겐의 한 아파트 벽에는 아직도 해바라기 문양이 새겨진 모자이크가 남아 있다. 일명 ‘해바라기 집’이라고 불리는 이 아파트엔 1992년 당시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아파트 앞에서 반외국인 구호를 외치며 극우주의자들이 화염병을 무더기로 던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독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영화는 1992년 8월24일, ‘해바라기 집’ 인근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세 가지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 고등학교를 갓 마친 청년 슈테판과 그의 아버지이자 지역정치가인 마틴, 그날의 피해자였던 베트남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각기 다른 세 사람의 일상을 마치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듯 집요하게 좇는다. 이 영화가 인상적인 점은 ‘그날’ 밤 테러에 동참한 젊은이들을 단순한 악인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오히려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의 아나키즘적 반항심과 방향성 없이 끓어오르는 에너지의 표출에 초점을 맞춘다. 슈테판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대화에서 감독이 가진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세대는 나치 아버지에 대항해서 공산주의에 열광했고, 너희는 공산주의에 반대해 민주주의자가 되었지.” 결국 방화사건의 이면에는 아버지 세대에 반항하는 독일 젊은이들의 ‘갈등 메커니즘’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젊다. 우리는 강하다>는 부르한 쿠르바니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감독 자신이 아프카니스탄에서 독일로 건너온 이주민이다. 그는 12살 때 독일 현지 텔레비전을 통해 방화사건을 접했다고 밝혔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동명 만화 원작 <기생수 파트1>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던 고등학생 신이치(소메타니 쇼타)는 어느 날 밤 이상한 일을 겪는다. 잠을 자던 중 작은 뱀처럼 생긴 정체 모를 물체가 자신의 오른손 안으로 파고든 것이다. 신이치는 꿈이라 생각하고 넘어가지만 다음날 아침 자신의 오른손이 말까지 할 수 있는 다른 생물로 변해 있음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놀랄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날을 기점으로 일본 전역에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신이치는 이 사건이 자신의 오른손을 차지한 ‘기생수’와 연관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2005) 시리즈 등을 연출한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의 <기생수 파트1>은 이와아키 히토시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완결편인 <기생수 파트2>는 오는 4월 일본에서 개봉예정이다). 만화 <기생수>는 1988년에 연재를 시작한 후 기발한 상상력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영화화에 대한 기대 역시 높았던 작품이다. 원작 팬들은 인간의 몸을 산산이 해체해버리는 강력한 폭력과 문명사회에 대한 시니컬한 유머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세계를 다른 매체에서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기생수 파트1>은 원작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폭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영화로 옮기는 데 실패한다. 영화는 원작의 ‘곁가지’에 해당하는 신이치의 아버지나 텔레파시 소녀 카나 등 만화 <기생수>의 많은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냈고 에피소드의 구성 역시 과감히 재배치했다. 이를 통해 신이치와 다른 기생수들과의 싸움을 그리는 데 더 힘을 쏟으며, 나아가 이야기의 빠른 전개에 주력한 것이다. 물론 이야기 전개의 효율성에 방점을 찍은 감독의 선택이 그 자체로 나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까지 거침없이 잘라낸 것은 명백한 실책으로 보인다. 특히 유약하던 소년 신이치가 점차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이라든지, 신이치와 ‘오른손’의 기묘한 연대를 한두개의 사건으로만 기능적으로 짚고 넘어가는 것은 결과적으로 영화의 감정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만화 <기생수>의 장점은 단순히 기생수의 기괴한 모습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피와 살이 난무하는 폭력 묘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생수 파트1>은 겉으로 드러난 에피소드를 따라가기만 하다 그 아래 녹아 있는 인물의 심리 변화를 놓치고 말았다.

매력있는 특수촬영에 화려한 CG가 더해지다 <울트라맨 사가>

멸망을 앞둔 지구에 울트라맨 용사가 나타났다. 지구의 생명체를 제거하려는 악당과 거대 괴수에 맞서 아이들을 지키는 자칭 우주방위대 소녀들은 힘겹게 생존을 이어나간다. 위기를 감지한 다른 평행우주에서 울트라맨 코스모스, 울트라맨 다이나, 울트라맨 제로가 지구를 찾아온다. 거대 울트라맨에는 각각 우주인 타이가, 아스카, 무사시가 탑승해야 한다. 이들은 최강의 적수 하이퍼 젯톤의 각성에 맞서기 위해 ‘울트라맨 사가’로 합체해 최후의 승부를 펼친다. 머나먼 우주 저편 빛의 나라 거인족인 울트라일족이 거대 괴수의 위협에 처한 지구인을 돕는다는 설정의 <울트라맨> 시리즈는 1966년부터 TV로 방송된 특수촬영 시리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든 안노 히데아키의 세계관이 <울트라맨> 시리즈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텔레비전으로 소개된 적은 있지만 극장판으로 만나는 것은 드문 기회다. 화려한 CG가 더해져 낯설고 기이한 우주의 볼거리가 강화되었지만, 도심 괴수 대격전과 같은 특수촬영을 통한 아날로그 정서야말로 본 시리즈의 진정한 매력이다. TPC별에서 온 타이가(다이고)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울트라맨에 탑승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지구에 남은 불량소녀들이 자칭 우주방위대가 되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도와주는 에피소드도 울트라맨과 괴수의 대결 못지않게 잘 엮어들었다. 소녀 방위대원으로는 일본 걸그룹 AKB48의 전 멤버인 아키모토 사야카, 마스타 유카, 고바야시 가나, 시마다 하루카 등이 나섰다.

‘이다’라는 이름의 60년대 폴란드

“내가 누군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니?” 자신을 찾아온 조카 안나에게 이모는 묻는다. 안나는 자신의 뿌리를 되짚어가야만 한다. 이 물음은 <이다>를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다>는 서원식을 앞둔 견습 수녀 안나가 이모 완다를 만나 자신을 억압하던 것들을 걷어내고 본래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스탠더드 화면비의 흑백 화면 속에는 수녀복, 팝송과 재즈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뒤엉켜 있다. 기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여정을 따르다 보면 1960년대 전후 폴란드 사회가 품고 있던 어둠이 보일 것이다. 보기 드물게 개봉하는 폴란드영화 <이다>(2013)는 극도로 조용한 흑백 영상으로 폴란드 사회가 안고 있던 어둠과 죄의식을 담아낸 작품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에 유럽 영화계를 석권했던 전성기 폴란드파 영화의 흔적이 느껴지는, 아울러 그 시기의 폴란드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가령, 폴란드는 원래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 전개된 곳이지만, 다른 한편 유대인 박해의 역사 또한 갖고 있었다. 2차대전의 종전, 나치의 집단 학살이 끝난 뒤 유대인들은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지만 그들이 원래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에 위험을 느낀 일부 폴란드인들이 유대인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1946년 7월 폴란드의 카일체에서는 유대인들이 폴란드 소년을 죽여서 종교의례에 사용했다는 거짓된 소문들이 퍼지면서 대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학살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전쟁 이후 유럽을 떠나도록 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다>는 그런 어둠의 역사를 아주 은밀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화면의 부자연스러움이다. 지금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고풍스런 흑백 화면, 1.33:1의 스탠더드 화면비, 꽤 정적인 인물들의 부자연스런 연기(주인공 안나 역의 아가타 트셰부호프사카가 초연이기에 그렇다는 게 아니라, 반대로 그녀는 현실에서 부자연스런 인물을 가장 잘 소화하고 있다) 등이 그러하다. 영화는 가시성의 장치이지만 사각의 프레임으로 둘러싸인 시선의 한계,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에 기록되는 시간, 구도의 중심을 불가피하게 갖는다. 프레임을 짜는 것은 공간의 배치에서 무엇을 포함하고 배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기에, 특정한 경계들, 한계들, 가장자리가 만들어진다. 사실 이러한 한계와 제한 없이는 화면의 구도가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작가가 어떤 프레임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어느 특정의 시점이 불가피하게 형성되어버린다. 그렇다고 영화가 내부만 지닌 가시성의 프레임에 갇혀 있지는 않다. 그랬다면 사진이나 회화의 모방, 혹은 텔레비전과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프레임 내부로의 유도와 외부의 소거는 대체로 텔레비전이 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영화는 바깥을, 주변을 끊임없이 내부로 끌어들여 세계를 확장한다. 첫 장면이 이를 예시한다. 1962년 겨울, 폴란드의 어느 수도원. 나이 어린 견습 수녀 안나가 복원된 예수 조각상에 채색을 하고 있다. 그녀는 수직으로 긴(수평으로 늘어진 최근의 화면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길다는 의미다) 화면의 왼쪽 하단 끄트머리쯤에 위치한다. 나머지 화면의 1/4은 대체로 비어 있다. 이어지는 장면은 그녀가 잠시 붓질을 멈추고 예수상을 바라보는 순간으로 조각상과 안나가 화면의 중앙에 위치하는데, 꽤 부자연스런 연극적 구도처럼 보인다. 이어 반대의 각도에서 그녀가 조각상에 채색하는 순간은 화면의 왼쪽 하단에 둘이 위치하고 나머지 1/4은 비어 있다. 발의 클로즈업, 눈이 내리는 가운데 수녀원의 외부로 세명의 수녀가 예수상을 들고 정원으로 나가고 있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또한 화면의 오른쪽 하단의 끄트머리쯤에서 아주 작게 그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전후의 폴란드, 스탈린 사후, 고무우카 정권은 교회에 실용주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 영화의 배경인 1962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교회와 사회간의 관계가 새로이 혁신적으로 설정되던 때이다. 교회가 사회의식에 보다 관심을 갖던 갱신운동의 시기로, 수도원 바깥의 정원에 상을 세우는 것은 그러므로 꽤 상징적으로 표현된 시대상을 드러낸다. 작가는 여기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덧댄다. 이어 우리는 원장 수녀가 고아인 견습 수녀 안나에게 수녀의 맹세를 하기 전에 유일한 육친인 완다 이모를 만나고 오라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녀는 처음에 원치 않았지만 떠밀려 바깥, 즉 현실로의 여행을 떠난다. 역사의 가장자리에서 안나의 여행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일종의 로드무비이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와 공간을 돌아다니는 탐색이 근원적으로는 내부와 외부의 접촉에 있다는 것이다. 이 테마는 흑백의 정적인 화면의 배치와 중심에서 비껴간 프레임 장치들을 통해 미학적 정당화를 얻는다. 대체로 인물들은 프레임의 좌우측 하단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중심에서 벗어난 프레임으로, 이런 부자연스런 프레임은 화면이 스탠더드 사이즈일 때 손쉽게,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다(이 비슷한 사례가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이다. 그는 스탠더드 사이즈를 모럴의 문제로 여겼다). 이때 우리는 영화를 성립시키는 프레임이라는 장치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프레임 바깥에 잘린 부분들이 몹시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꽤 민감하게 프레임을 보게 되고, 무언가 부자연스럽게 숨겨진 것들, 혹은 스크린에 이미 한발을 걸쳐놓고 있었지만 이제 막 그 안으로 들어오려는 무언가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이 장치가 주제에 어울리는 이유는 수녀가 되려는 안나의 삶에 이미 한발을 들여놓고 있었지만 그녀가 몰랐던 일들, 과거 평범한 폴란드인들이 유대인에게 벌인 학살의 과거사들을 민감하게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로드무비는 중심을 계속 변경하면서 주변을 넓혀가는 이야기와 역사를 보여주는 형식이다. 형식의 과잉이 도드라지는 작품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도리어 이 영화는 침묵과 풍경, 빛들만으로도 감정이 동하는 꽤 서정적인 영화다. 사실 이런 형식은 삶을, 역사를 표현하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1960년대 초, 마치 빙하기의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숨겨진 것들이 조금씩 드러나던 때이다. 억압되었던 삶의 중심으로 주변에 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던 시기이다. 감독 파벨 파블리코프스키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변경한 것도 그 때문이다. 원래 그는 1962년이 아니라 1968년 3월, 즉 폴란드에서 학생 시위가 발생해 혼란에 빠진 시기 당시 공산정권이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반유대적인 배척운동을 벌였던 시기를 배경으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폴란드 정권은 약 1만5천명의 유대인을 강제로 추방했다. 하지만 지나친 정치적 내용들을 피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 이야기를 단순화하고 인물을 함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시대적 배경을 1962년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이 변화로 영화는 독일, 구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폴란드 역사의 비극, 폴란드인과 유대인과의 미묘한 관계가 전후 10여년의 폴란드 역사의 숨겨진 단면으로 꽤 은밀하게 드러난다. 감독은 이 시기가 폴란드인이 가장 재기발랄하게 산 시대였다고 말한다. 이 시대의 자유로움은 영화 내내 흐르는 팝송과 재즈 음악으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존 콜트레인의 음악이 그러하다. 물론, 여전히 과거 어둠의 잔여가 있다. 이의 가장 아름다운 사례는 외양간 창문에 어울리지 않게, 하지만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는 안나의 어머니가 남긴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이다. 아직 중심에 들어서지 못한, 하지만 끊임없이 주변에서 중심으로 회귀해 들어오는 것은 처음에는 인물들의 숨겨진 내력이다. 안나를 처음 만난 이모의 첫 질문은 “내가 누군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니”라는 말이었다. 누구인가, 무슨 일을 했는가, 라는 물음은 영화의 주된 질문이다. 안나는 자신이 유대인이며, 부모님이 폴란드인의 손에 살해당해 숲속에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안나의 수녀원 바깥으로의 여행은 갑작스런 운명, 숨겨진 과거, 혹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역사의 시간과 만나는 탐험이다. 가시의 영역을 불안정하게 좁힌 이 영화의 불완전한 프레임이란 그러므로 그 가장자리, 절단의 바깥에서 무언지 모를 것들이 방문하도록 허용하는 장치이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부모님 묘소에 가보겠다는 안나의 말에 이모는 “시신도 못 찾고 있다. 그러다 신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할래?”라 묻는다. 안나의 여정은 그러므로 상관적인 두 질문의 해답 찾기로 이어진다. 그 하나가 부모, 과거의 내력, 자신의 정체성 찾기라면 다른 하나는 그녀가 되돌아와야 할 신으로 열린 영혼의 탐구이다. 가장 멀리서 오는 지금 여기 프레임의 영역적인 경계를 해체하는 이러한 민감한 프레임(칼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재판>에서와 같은 이런 식의 프레임을 파스칼 보니처는 데카드라주라 불렀다)은 구도의 중심성을 깨는 것만이 아니라 주체의 방향성을 상관적으로 잃게 한다. 인물을 프레임 바깥으로 기입되게 하고, 중심의 밖으로 놓는 것이 그 기능이다. 이때 프레임의 경계, 한계, 끝, 모서리는 그 모든 만남을 이루는 접촉의 장소가 된다. 안나의 여행은 그 모서리 바깥으로 나서는 탐색이며, 이때 수녀가 되려던 안나는 자기완결적, 자기충족적 단독자가 아닌 밖을 향해 열리는 존재가 된다. 안나의 ‘유대인 이다 되기’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안나가 유대인 이다로 정체성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이다가 자신 내부로 침투되어 들어오는 것이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바깥에 있다. 그녀가 찾으려는 영혼 또한 수녀원의 내부가 아니라 바깥에 있게 된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우리는 안나/이다가 자기내면과 정체성을 외부와의 접촉으로 도달해가는 시도를 보이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녀는 수녀복을 벗고 드레스를 입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색소폰 연주자인 젊은 청년(같은 해 나온 폴란드영화 <라이프 필스 굿>에서 장애인 연기를 놀랍게 소화한 데이비드 가드너가 역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과 사랑을 나눈다. 이를 일탈로 읽어서는 안 된다. 감독은 안나의 이모 완다가 맹신적이고 냉소적인 공산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이며, 무신론자이자 공산주의 정권 시절에 정치적 여론조작재판에서 검사로서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라 소개한다. 그런 완다는 창밖으로 몸을 던져 프레임의 바깥으로 사라진다. 안나/이다는 반대로 어디로 향하는지 확인되지 않는 곳을 향해 길을 걷는다. 바흐의 아름답고 슬픈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그녀가 길을 걸어가는 모습은 이전의 정적인 카메라와는 달리 흔들리는 카메라로 보이고, 프레임의 외부와 가장자리를 민감하게 두었던 영화가 이제는 온전히 내부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이를 어떤 구속으로 읽어야 할지 아니면 자유로움으로 보아야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기존의 테두리를 깨뜨리고 나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내면의 영혼이 아니라, 몸의 바깥으로부터 그녀 자신에 접촉해 도달한 안나/이다의 또 다른 모험이 펼쳐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다른 한편, 이는 스스로 폴란드 영화계의 아웃사이더라 생각하는 감독 자신의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1957년 바르샤바 태생으로 14살에 폴란드를 떠나 독일, 이탈리아, 최종적으로는 영국에 정착해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영화는 그가 처음으로 폴란드에서 만든 영화다.

[trans × cross] 40대를 넘어도 아줌마 역할에 갇히지 않는 여배우들이 많아지길

듀나가 에세이집 <가능한 꿈의 공간들>을 출간했다. 90년대 후반부터 SF작가로 활동한 듀나는 소설 집필과 더불어 각종 매체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사회 곳곳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다. <씨네21> 초창기부터 영화에 관한 글과 평론을 기고해온 오랜 필진이기도 하다. 광활한 여백이 연상되는 제목에서부터 책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가능한 꿈의 공간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은 ‘잡식에세이’다. 영화에 관한 글과 사회 비평을 비롯해 극장 환경, 디지털 문화 등 듀나가 꾸준히 관심을 표현해온 이슈들까지 빼곡하게 담았다. 듀나는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SF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의 영역을 커버한다. 일반적인 이야기꾼은 현실세계에서 가능할 법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SF작가는 존재 가능한 우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룬다.” 뾰족한 듯 섬세하고, 냉정한 듯 사려깊은 그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무심결에 지나치고 말았던 공간들의 존재를 감지하게 될 것이다. 책 너머 다른 이야기도 들어보고자 듀나에게 필담을 청했다. -여러 지면과 게시판을 통해 독자와 만났지만 인터뷰는 낯섭니다. 평소 글을 쓸 때의 환경도 궁금한데요. 습관이나 원칙이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니 제가 마치 금욕적인 프로페셔널리즘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잖아요. 안 그렇습니다. 원칙이 있어도 못 지켜요. 프로페셔널한 장르 작가에 대한 판타지는 있지만 끝까지 판타지로 남겠지요. 시간 관리는 늘 엉망이고 마감 몇 시간 전에 초치기를 하고 전 제가 하는 일에 확신이 없습니다.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 같습니다. 작업은 그냥 아무 데에서나 합니다. 모바일 환경 덕택에 이게 가능해졌죠. 이제 데스크톱 컴퓨터로는 작업하지 않아요. 전철 안에서 의외로 작업이 잘되고 침대 위에 굴러다니면서도 쓰는 편이고요. 이전에는 집중하려고 도서관 같은 곳을 시도해봤지만 전 어느 정도 어수선한 환경에서 작업이 더 잘되더군요. 지금은 방 안을 빙빙 돌아다니면서 태블릿으로 쓰고 있습니다. 답변을 처음 시작할 때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코미디 빅리그> 재방송을 들으며 침대에 쪼그리고 있었어요. 그 사이사이에 화장실, 부엌 등을 방황했고요. 멋진 신세계입니다. -아카이빙은 어떻게 하나요. 고수하는 DVD, 책, 자료 정리법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드디스크에 ‘원고’ 폴더를 만들어 넣어둡니다. 관리하기 어려워지면 ‘원고2’를 만들어 그 안에 넣고요. 지금까지 폴더가 8개 생겼습니다. 전 정리엔 정말 재주가 없어요. 그나마 블루레이와 DVD는 알파벳으로 정리되어 있지만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책은 불가능하죠. 주제와 장르별로 분류하긴 하는데 이게 그렇게 만만치가 않지요. 그러는 동안 새 책은 계속 쌓이고. 그래서 전자책의 발전에 기대가 큽니다. 세월이 흐르면 제 책장엔 전자책으로 완전히 변환 불가능한 그림책 종류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렵겠죠. 물건에 대한 애착이 심한 편이라. -책을 미처 읽지 않았을 독자를 위해, 비평에세이집 <가능한 꿈의 공간들>을 출간한 계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만든 모든 책들과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만들자고 했어요. -원고는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분류했습니까. =철저하게 랜덤이에요. 그냥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따라가봤던 거죠. 의도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같습니다. 책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고 저 혼자만 생각해서도 안 되지요. -영화에 관한 글, 취미에 관한 글, 특정 이슈에 관한 글, 혹은 이의 제기까지 짧고 다양한 글들이 일관되게 때로는 자유롭게 널려 있다는 인상입니다. 책의 구성에 관해 의견을 낸 바가 있다면. =규칙 같은 것 없이 자유연상으로 흐르는 책.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다음 목표도 그것이 될 것 같습니다.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구성된 책을 만들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써야죠. 저에겐 그게 그렇게 올바른 작업 같지 않습니다. 미리 정해놓은 논리에 내용을 맞추기 시작하면 거짓말을 하게 되니까요. 앞뒤가 맞지 않는 건 오히려 당연한 것이고 일관성보다는 찰나의 진실이 더 중요하죠. -“극장에서는 상체를 숙여선 안 된다”는 내용으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극장 에티켓을 말미에 배치한 덕인지 굉장한 강조로 보이는데요. =모두에게 유익한 정보로 끝내고 싶었어요. 일반적인 우선순위에 따르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실제로는 아주 중요한 것들이 있어요.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감독이나 작가가 어깨에 잔뜩 힘주어 이야기하는 추상적인 주제보다 중간에 슬쩍 흘리는 실용적인 지식이 더 큰 도움이 될 때도 있죠. 둘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야 늘 후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그래서 영화가 종종 잘못된 정보를 주면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신경이 쓰여요. 예를 들어 <다이하드2>의 클라이맥스 장면. 비행기는 그런 식으로 폭발할 수 없거든요. -트위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인터넷 사용에 관해 쓴 ‘다들 그렇지 않나요?’를 읽으며 든 생각입니다만, 트위터를 사용하시며 글쓰기 방식에는 어떤 변화나 영향이 있었습니까. =트위터를 활용하는 게 아니라 그냥 트위터를 해요. 제가 이 매체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럴 의도가 있다면 장난감 사진을 올리거나 게임 화면 캡처 따위는 하지 않겠죠. 맞춤법에 더 신경을 쓸 거고 다음에 쓸 내용을 트위터에 흘리지도 않을 거고 140자의 한계를 보다 야무지게 활용하겠죠. 어차피 놀자고 시작한 건데 굳이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크게 달라진 건 없죠. 단지 트위터를 하면서 쌓은 생각들을 정리해 글로 옮기는 일이 늘어나긴 했죠. 이걸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게 그렇게 문제인가 싶습니다. 어디서인가 일어날 일이 트위터에서 일어나는 것뿐인걸요. 여기서 손해보는 쪽이 있다면 그건 작업하는 사람이고. -비슷한 맥락에서 “대중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쓴 것이 인상 깊습니다. ‘대중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은 작가로서의 관점인가요,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의 관점인가요.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죠. 잠재적 독자나 대상으로서 대중을 생각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대상으로서 대중을 상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걸 상상하기 시작하면 언젠간 자신과 독자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겠죠. 사람들이 대중이라고 부르는 순결하고 단순하고 멍청하고 현명하고 기타 이것저것 모두인 무언가가 존재하긴 할까요? -최근 주목하는 이슈나 소재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언제나 종말에 대해서 생각하지요. -젊은 여자 배우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에 관해서도 묻고 싶습니다. 그들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요. =‘젊은 여자 배우’는 착시예요. 한국 배우들에게 그런 편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특정한 환경 때문이죠. 90년대 이후 제가 관심을 가질 만하고 감정이입에 가능한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여기서 걸리는 건 나이가 아니라 세대예요. 이들 중 상당수는 30대고요. 제가 팬질하는 외국 배우들에겐 그런 환경적 편향이 없죠. 그들 중 상당수는 이미 고인이고 심지어 몇명은 탄생 100주년을 넘겼어요. 한국 배우들에겐 그런 ‘팬질’이 힘들어요. 아무리 좋은 배우라고 하더라도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이 ‘팬질’을 막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캐릭터들과 이들을 연기할 배우들이 움직일 만한 영역이 한심할 정도로 비좁은 게 한국 영화계죠. 어딜 가나 남자들이 지나치게 많고 그들은 제가 보기에 다들 비슷해요. 여성 캐릭터들이 많은 텔레비전으로 가면 또 비슷비슷한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보게 되고요. 다들 한국 사회에서 적당히 용인되는 전형성을 연기하고 있는데, 전 그게 많이 갑갑하고 무섭습니다. 이들의 욕망과 행동은 대부분 저랑 클릭하지 않아요. 그러니 그 틈 사이에서 제가 견딜 만한 그리고 기왕이면 감정이입도 가능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거죠. 그러다보니 그 전형성에서 벗어난 캐릭터를 받아들일 수 있는 몇몇 배우들이 보이는 거고.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라는 게 뻔하니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이들이 연기할 수도 있는 10% 정도 가능성에 대한 제 투자인 거죠. 이들 배우들이 40대를 넘어서도 아줌마나 사모님 역할에 갇히지 않고 제 관심을 끌 수 있는 캐릭터를 꾸준히 찾아낼 수 있다면 저도 좋겠죠. -올해는 <씨네21> 창간 20주년입니다. 오랜 필진으로서 앞으로의 <씨네21>의 방향에 목소리를 보탠다면요. =전 장르를 다루는 사람이니까 장르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면 좋겠죠. 책에서도 썼지만 극장 환경에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어요. 요샌 다른 매체에서도 이에 관심을 갖고 다루고 있는데, 일반 관객의 불편함만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멀티플렉스의 무책임함에 맞설 수 없어요. 보다 전문적인 관점이 따라야죠.

[obituary] 미스터 스팍을 떠나보내며

뾰족한 귀를 가진 지구인과 벌컨인의 혼혈 ‘미스터 스팍’으로 기억되는 배우 레너드 니모이가 향년 83살로 세상을 떴다. 1950년대부터 여러 TV시리즈물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혼혈 항해사 스팍 캐릭터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연출자로서도 두편의 <스타트렉> 시리즈를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최근까지 J. J. 에이브럼스가 리부트한 <스타트렉> 시리즈에도 특별 출연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렇기에 SF 장르의 가장 선명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였던 그의 사망 소식에 수많은 팬들이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영화평론가이자 SF소설가인 듀나가 그에 대한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그의 존재감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레너드 니모이가 지난 2월27일, 83살로 자택에서 세상을 떴다. 사인은 만성 폐쇄성질환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오랜 흡연으로 인한 발병 사실을 공개했던 그는 죽기 며칠 전까지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죽기 며칠 전 그는 유언이라도 하듯 공식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마지막 트윗을 남겼다. “인생은 정원과 같다. 완벽한 순간은 있을 수 있어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기억뿐이다. LLAP(장수와 번영이 있기를).”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스타트렉>에 같이 출연했던 윌리엄 샤트너와 조지 다케이와 같은 그의 연기 동료들은 뉴스가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트위터에 작별의 글을 남겼고 심지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백악관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공식 메시지를 보냈다. 그중 가장 상징적인 애도의 제스처는 국제우주정거장에 체류하고 있는 미국인 우주비행사 테리 버트의 것으로, 그는 지구가 보이는 창에서 니모이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장지와 약지 사이를 벌리는 벌컨 손인사를 하는 자기 손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레너드 니모이는 평생 134편의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12편의 작품을 감독했으며 이외에도 사진집과 앨범, 회고록, 시집을 냈다. 가장 유명한 <스타트렉> 시리즈 이외에도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잠시 고정 출연하기도 했고 <인베이션 오브 바디 스내처즈> 시리즈 중 가장 암울한 2편에 나오기도 했다. 그는 UFO나 빅풋과 같은 소재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 의 호스트를 맡기도 했는데, 이 작품의 소재 선택과 스타일은 시리즈와 <블레어 윗치>(1999)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엉뚱하게도 그가 감독한 작품들은 <스타트렉> 시리즈 몇편을 제외하면 대중적인 일반 드라마가 많았는데 그중 가장 히트작은 프랑스 코미디의 리메이크인 <뉴욕 세 남자와 아기>(1987)이다. 충분히 다채로운 경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미스터 스팍’이라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레너드 니모이를 기억한다. SF시리즈 <스타트렉>은 시청률 부진으로 시즌3 만에 종영되었지만 그 뒤에 나온 영화 시리즈와 끝도 없는 재방영 덕택에, 미스터 스팍은 미국 SF 문화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스타트렉> 이후 그의 경력 대부분은 어느 정도나마 <스타트렉>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의 호스트로서 그가 적역이었던 이유도 아무리 프로그램이 허황된 주제를 다룬다고 해도 그의 믿음직한 스팍 이미지가 그 의혹을 지워주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후에 출연했던 SF 계열의 작품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60년대 이후 여성 SF작가가 급증한 이유를 두고 “미스터 스팍의 귀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반쯤 농담이었겠지만 내용 없는 농담은 아니었다. 레너드 니모이가 무뚝뚝한 심각함으로 연기한 미스터 스팍의 개성과 매력은 기존 할리우드 SF의 공식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철저하게 이성과 논리를 추구하는 뾰족한 귀의 지구인/벌컨인 혼혈인 우주인의 인기는 SF 장르에 다양성과 복잡성의 문을 열었다. SF에 관심이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미스터 스팍을 통해 이 장르에 관심을 가졌고 그 안에 뛰어들었다. 여성 작가나 비백인 작가의 증가와 같은 건 그중 정상적인 현상이었다. 그보다 비주류의 현상이라면, 팬덤 사이에 커크/스팍 팬픽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슬래시 팬픽의 끈적거리는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스팍은 과학자, 엔지니어, SF 기크들의 영웅이었다. 별과 별 사이를 오가며 외계인 미녀와 데이트를 하고 외계 괴물과 레슬링을 하던 공식적인 주인공인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 선장은 기존의 SF물의 백인 남자 액션 주인공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니모이의 미스터 스팍은 SF 장르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는 이성과 과학을 추구했고 무엇보다 지구인들로 부글거리는 우주선 안에 홀로 남은 아웃사이더였다. 이런 그의 냉정한 성격은 종종 자폐인이나 아스퍼거 증후군의 증상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자폐인 생물학자 템플 그랜딘은 스팍의 열렬한 팬이다. 종종 60년대 사회문제를 우주로 끌어들였던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그는 늘 믿을 수 있는 정확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쪽이었다. 니모이가 세상을 뜨자 과학자, 엔지니어 집단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이 니모이의 죽음에 애도의 메시지를 보낸 것도 니모이의 스팍이 그들의 세계를 대표했으며 니모이 역시 그들을 존중했기 때문이었다. 1대 <스타트렉> 출연자로서 그는 반세기 동안 팬덤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니모이는 두편의 회고록을 썼는데, 제목은 <나는 스팍이 아니다>와 <나는 스팍이다>였다. 니모이와 미스터 스팍이라는 캐릭터 사이의 애증을 짐작할 수 있다. 캐릭터의 인기가 배우로서의 경력과 자신의 이미지를 가로막는다고 생각한 니모이는 극장판 2편에서 자신을 죽여달라고 제작진에 요청하기도 했다. 요청은 받아들여졌지만 분노한 팬들의 아우성 때문에 스팍은 3편에서 부활했고, 심지어 3, 4편의 연출은 니모이 자신이 맡았다. 여기서 아서 코난 도일과 셜록 홈스의 관계를 떠올리는 분이라면 미스터 스팍이 언젠가 자신의 모계 조상 중 한명이 셜록 홈스라는 암시를 흘렸음에 재미있어할 것이다. 그가 세상을 뜨기 몇년 전 J. J. 에이브럼스가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를 리부팅했고 미스터 스팍 역은 재커리 퀸토가 물려받았다. 비록 많은 팬들은 퀸토의 미스터 스팍이 오리지널의 희미한 복사품이라고 불평하지만, 그의 연기는 니모이 연기 진수의 상당 부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비록 배우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만든 캐릭터와 연기 스타일은 다른 배우를 통해 대를 이어 시리즈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마치… ‘죽음’ 같은 사운드

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인이 있다면, 우리는 그가 외계인인지 사람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언더 더 스킨>은 ‘인간의 탈’(문자 그대로다!)을 쓰고 지구를 배회하는 외계인의 눈에 비친 인간세계를 투사하는 영화다. 그가 어째서 지금, 여기에 당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모습을 한 외계인을 외계인답게 하는 건 불균질한 사운드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가는 과정에서 들릴 법한 노이즈, 조율이 잘못된 현악기에서 흘러나올 듯한 불협화음. <언더 더 스킨>의 일상적인 풍경은 뮤지션 미카 레비가 작곡한 매혹적인 불균형의 음악과 맞물려 긴장감 넘치며 위험이 서려 있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인간의 몸과 외계인의 마음, 이유 있는 친절함과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냉혹한 의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위태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영화에 어울릴 만한 음악가로 미카 레비는 최적의 선택지다. 1987년생으로, 다양한 장르를 혼합한 실험적인 음악으로 이름을 알린 이 싱어송라이터는 영국의 유서 깊은 음악 교육기관인 길드홀음악연극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위해 곡을 쓰기도 했던 그녀는 현악기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십분 살려 <언더 더 스킨>의 불균질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에서 미카 레비가 가장 자주 사용한 악기는 ‘비올라’다. “비올라의 음색은 견고하지 않다. 이 악기는 마치 무언가를 복사하고, 복사하고, 또 복사한 듯한 질감의 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허함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때로 이 악기는 우는 듯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울림 또한 크지 않고. 마치 ’죽음’ 같은 소리라고 할까.” 그녀의 말처럼 의도적으로 조율하지 않은 <언더 더 스킨> 속 비올라의 선율은 이 영화의 심연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준다. 비올라와 더불어 심벌즈와 마이크의 잡음, 신시사이저 음향 또한 낯선 세계에 당도한 외계인의 심리를 대변하는 중요한 악기로 사용됐다. <언더 더 스킨>이 첫 영화음악 작업인 미카 레비는 ‘미카추 앤드 더 셰입스’ (Micachu and the Shapes)라는 밴드 활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일렉트로닉 뮤지션 매튜 허버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들의 데뷔 앨범 ≪쥬얼리≫(2009)는 “겁 없이 실험적이고, 열광적인”(<텔레그래프>) 음악으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영국 음악평론가들로부터 그해의 범상치 않은 데뷔작으로 언급되곤 했다. 노이즈와 조율되지 않은 현악기의 사운드를 자유자재로 혼합하고, 필요하다면 진공청소기 소음까지 음악의 질료로 사용하는 이 아티스트의 실험정신이 앞으로 더 많은 영화의 자양분이 되길. 이 장면, 이 음악 <언더 더 스킨> 중 Drift 아름다움은 때때로 인간을 ‘죽인’다. 빼어난 외모로 남자들을 유혹해 자신의 아지트로 불러들인 다음, 그들을 심연에 가두어 피와 살을 발라내는 스칼렛 요한슨의 모습은 SF 장르 속 새로운 팜므파탈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자신의 눈앞에 닥친 죽음도 감지하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남자들을 조명하는 장면에서 가 흐른다. 한없이 늘어지는 듯하다가도 현악기 특유의 날을 세우는 비올라 선율에 잠길 수 있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