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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이 이룬 비약과 후퇴 [1]

해체된 가족들, 쿨하게 살아가다 김소영/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이론과 교수 1. 가족의 육체 믿거나 말거나! <바람난 가족>은 가족영화다. 그렇다고 패밀리 레스토랑을 선호하는 패밀리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혈연과 결혼 관계 등으로 한 집안을 이룬 사람들의 집단이 가족이라면 이 영화는 분명 그 집단을 무대중앙에 세운다. 그리하여 혈연은 피범벅 관계임이 밝혀지고 결혼은 이혼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건 이제 주변에서 금방,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 사실 그렇다. 하지만 <바람난 가족>은 “작금”의 현실을 반영한 가족 해체를 다루는 진부한 드라마는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욕망은 해체된 가족들이 ‘쿨’하게 살아가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데 있다. 말하자면 바람난 아내나 남편의 이야기는 이제 더이상 쿨하지 않은 반면 가족이 집단적으로 바람이 날 때 그것은 영화가 된다. 60살의 여성이 할머니, 어머니이기를 부인하고 생전 처음으로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말하는 순간 말이다. 이때의 쿨은 섹스를 위한 코드다. 성행위에 집착하는 이 영화에서 동작과 동선, 유동성은 매우 중요하다. 섹스장면의 한결같은 매너리즘을 피하는 것도 요구된다. 장선우의 <거짓말>과 정지우의 <해피엔드>를 찍었던 김우형의 촬영은 몸의 움직임과 피사체의 운동을 신선하게 포착하면서 그 각각에 분명하고 강도 높은 색채를 입힌다. 특히 푸른 색 톤으로 처리한 첫 시퀀스, 교각을 달려오는 주인공 영작(황정민)의 차 장면은 일찌감치 한국 풍경을 마치 동유럽의 풍경처럼 낯설게 보이게 한다. 호정(문소리)이 지운(봉태규)의 뒤를 따라 평창동 언덕길을 자전거로 질주하는 장면도 유쾌하다. 담장에는 할렐루야라는 글씨가 농담처럼 스쳐가고 서울 주택가의 내리막길은 호정에게 빠른 속도감을 제공한다. 영화의 후반부 호정이 아들 수인을 사고로 잃고 산을 내려가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의 짙은 녹색 처리는 과잉 표현이지만 효과가 있다. 달리는 호정은 사실 몸의 움직임에 익숙한 여자다. 결혼 전 직업 무용수였고 현재도 동네 무용 스튜디오에 나가 춤을 춘다. 춤추지 않을 때 그녀는 야간 등산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 그러나 집에서 그녀는 심심하다. 물구나무서는 것이 일이다. 또 남편과의 섹스는 자위로 이어진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인 이웃집 소년의 노골적인 엿보기에 호기심을 느낀다. 아들 수인과의 관계는 만족할 만한 것이지만, 수인은 자신이 입양된 아이라는 것을 알고 혼란을 겪고 있다. 반면 남편 영작은 움직임과 열림에 익숙하지 않다. 혹은 그가 움직일 때면 장애와 사고가 발생한다. 흐름이 끊어진다. 예의 첫 시퀀스, 푸른 새벽을 달리던 그의 차는 개의 시체와 마주친다. 이후 한국전쟁 때의 시신이 묻혀 있는 현장에 변호사로 참관했다가 구덩이에 자신이 빠진다. 사진작가인 애인 연과의 정사에서 그 장면의 연출자는 번번이 연(년이 아니길 바란다)이다. 또 연과 함께 차를 달리다가 술 취한 지루를 차로 받고, 그것이 결정적인 삶의 함정으로 변한다. 아직 화해되지 않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연루된 사람도 영작이다. 변호사로서의 영작은 50년의 매몰 끝에 발견된 한국전쟁의 시신들과 관계된 가족들의 보상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영화에서 이 부분은 명확히 설명되고 있진 않다. 그러나 영작의 가족사 또한 유사한 역사적 맥락 속에 놓여 있음은 분명하다. 예컨대 간암으로 사경을 헤매는 영작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6명의 여자 형제들을 두고 아버지와 단둘이 월남한 사람이다. 한국전쟁과 분단에 관계된 이러한 문제는 영작과 연의 섹스신에서, 연이 황석영의 소설의 한 장면- 한국전쟁 때 사람들 코에 철사를 끼우고 끌고 다녔다는- 을 상기시킬 때, 영화 텍스트라는 육체 속으로 기묘하게 파고든다. 그래서 이후 영작과 연의 가벼운 사도마조히즘적 성행위를 전쟁시 육체의 이러한 오용과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긴 어렵다. 그리고 아버지(김인문)가 간암 때문에 “더러운 피”(간이 해독작용을 하지 못한)를 토해 가족들의 몸을 붉은 피로 적실 때 다시 한번 환기된다. <바람난 가족>에서 육체는 한편으로는 성적인 쾌락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전쟁과 적대감 그리고 질병에 속박되어 있다. 몸이 만들어내는 액체들은 섹스 때 쾌락을 위해 사용되지만(연은 영작에게 얼굴에 침을 뱉을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통제 불가능하게 유출될 때 몸을 죽인다. 분단의 외상을 안고, 질병으로 부어오르고 파열되어 나머지 가족들을 더러운 피로 물들이는 아버지의 몸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섹스에 관계하지 않는 성인의 몸이다. 아들과 아버지, 할아버지의 역사는 <바람난 가족>의 정치적 외상이다. 반면 여자들, 아내와 어머니는 그 외상으로부터 비껴나 있다. 남자들의 몸은 역사적 무게에 짓눌려 있는 반면 여자들의 몸은 그 동반 압사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있다. 어머니(윤여정)는 탱고를 잘 추는 초등학교 동창과의 재혼을 생각하고 아내는 고딩과의 연애를 거쳐 아이를 잉태한 뒤 집을 나간다. ▶ <바람난 가족>이 이룬 비약과 후퇴 [1] ▶ <바람난 가족>이 이룬 비약과 후퇴 [2]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1]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2]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3] ▶ <바람난 가족>을 둘러싼 3각혈전 [4]

<바람난 가족> 들고 베니스 가는 임상수 감독

<바람난 가족> 개봉을 코앞에 둔 11일 만난 임상수(41) 감독은 표정이 밝았다.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했지만, 두번째 영화 <눈물>은 둘다 시원치 않았다. 경사가 큰 하강곡선을 탔던 그에게, 세번째 영화 <바람난 가족>은 평단의 높은 지지에 더해 흥행 전망도 나쁘지가 않다. 말투도 차분하고, 술 마실 때 입이 걸어지는 일도 줄었다. 여성들이 내 의도 잘 이해‥통쾌감 얹어서 보더라 -‘차갑다’ ‘냉정하다’에서 ‘통쾌하다’까지 반응이 다양하다. =남자보다 여자들이 내 의도를 잘 봐주는 것 같다. 영화를 좋게 봤더라도 남자들은 우울하다, 나아가 암울하다고까지 말한다. 여자들은 거기에 더해 통쾌함이랄까, 그런 정서를 얹어서 보더라. 사실 내용이 우울하긴 하지만, 그점만 본다면 좀 아쉽다. 나는 웃자고 만든 건데. -‘떡 영화’라면서 장선우나 홍상수 영화와 달리 여관장면이 안 나오는 게 특이하다. =임권택 감독 조감독하면서 호남쪽 여관은 안 가본 데가 없을 만큼 여관을 많이 다녔다. 여관 냄새만 맡아도 ‘으윽’할 정도로. 우리가 좁고 막힌 데서만 하는데, 이 영화 마지막 처럼 천장이 높고 탁 트인 홀에서 하는 거, 그런 팬터지를 제공한다고 할까. -그보다 주인공이 변호사라는 유한계급이어서가 아닐까. 영화의 주인공 가족은 먹고 사는 데에 이렇다할 구속을 받지 않는다. =원래 바람필 때는 여관에 잘 안 가지 않나 들키키도 쉽고. 김인식 감독이 시나리오를 보더니 주인공 직업을 변호사가 아니라, 성공한 냉면집의 2대 사장으로 바꾸라고 하더라.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려면 냉면집 취재를 한참 해야하고…. 또 우리 세대 중에 자신 뿐아니라 사회까지 포함해서 어떻게 살아야할 지 알면서 그렇게 못 사는 이들을 고찰하고 싶었던 거고. 그래서 그냥 변호사로 갔다. 팬터지 캐릭터면 어때, 나쁘지만 않으면 되지 이문구 소설 밑줄 치며 진주 같은 대사 길어올려 -맞바람피는 부인 호정의 캐릭터가 팬터지라는 지적도 있는데. =팬터지가 아니라 나의 비전이다. 호정은 비현실적이고 엉뚱하고 푼수같기도 하지만 비전을 구현하는 인물이다. 그 가정에는 시아버지부터 남편에게 이어지는 가부장제의 대물림이 있다. 그걸 끊어내고 비전을 찾아가는 거다. 팬터지면 또 어떤가. 나쁜 팬터지가 문제지. -전작들도 그렇고, 대사가 매우 좋다. =유골 발굴장에서 주민이 경찰과 다투면서 ‘법의 멱살을 잡는 게 아니라…’라는 말은 이문구의 소설에, 성지루가 오토바이 사고 낸 뒤에 경찰이 ‘허무하다고 지가 신이야…’라는 건 박완서 소설, ‘니들이 광국이를 알어’하는 성지루의 말은 김신의 소설에서 따왔다. “나는 엄마의 배가 아파서 나온 게 아니라, 엄마의 가슴이 아파서 나왔다”는 입양한 어린 아들의 말은 인테넷 입양 사이트에 올라 있는 입양아들의 말을 인용했다. 이런 말 내가 어떻게 만들어 내겠냐. 요즘 소설에선 따올 게 별로 없다. 이문구 소설 전집을 사다놓고 밑줄 쳐가면서 읽는다. 표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한국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감독이라고 용서되지 않을까. 사실 대사 한줄에 목숨을 건다. 무릎을 치게 하는 대사 열개만 있어도 시나리오가 확 좋아진다. -끼가 앞서는 감독 같았는데, 그보다 논리적인 것 같다. -그건 욕같이 들리네. 머리를 많이 써서 논리적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하려 하지만, 내키는 대로 막 흘러가는 것도 겁내지 않는다. 그게 없으면 영화가 별로 재미 없을 것 같다. -다음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10·26 사건을 다룬 역사물이라고 들었다. 보통 같으면 역사적 사건을 다루다가 성이나 일상의 문제로 가는데, 임 감독은 그 반대로 간다. =정통적인 역사물이 아니고, 10·26 사건 주변에서 우왕좌왕하던 이들을 그리는, 좀 우스꽝스런 총격영화다. 박정희라는 큰 체제가 사라지니까 다 패닉 상태에 빠지는 건데, 가부장의 대물림이라는 가족사를 다룬 이번 영화를 징검다리 삼아 건너가 보는 거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서부극의 역사, 존 포드 회고전 [3]

기병대 삼부작의 마지막 <리오 그란데> Rio Grande, 1950년, 105분, 흑백출연 존 웨인, 모린 오하라 기병대 사령관인 커비 대령은 15년 동안이나 아내와 떨어져 지내면서 기병대에 자신의 삶을 바쳤을 정도로 헌신적인 군인이다. 어느 날 그는 아들 제프가 일반 사병으로 자신의 기지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커비의 부인마저도 아들을 군대에서 빼내기 위해 남편·아들의 기지에 나타난다. 기병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리오 그란데>는 분명 액션을 포함하는 영화다. 그러나 거친 것이 아니라 섬세한 이 웨스턴은 감정적인 갈등에 좀더 주의를 기울인다. 의무감과 가족에 대한 사랑 사이의 갈등을 영화는 꽤 사려 깊게 들여다본다. 포드 스스로 좋아하는 아방가르드 웨스턴 <웨건 마스터> Wagon Master, 1950년, 105분, 흑백 출연 벤 존슨, 해리 캐리 주니어 영화가 시작되면 몰몬교도들이 무장을 하고서 서쪽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을 본다. <웨건 마스터>는 이들 낙오자들의 공동체가 약속의 땅을 찾아가는 위험한 여행을 따라가며 일련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주는 영화다. 포드가 최소한의 예산을 가지고 대신 어떤 압력을 받지 않고 찍은 이 영화는 지극히 사적인 프로젝트라 개봉 당시 일반 관객은 물론이고 비평가들의 주목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포드 자신은 자신이 성취하기를 바랐던 것에 가장 가까이 갔으며 자신이 만든 가장 순수하고 단순한 웨스턴이라며 <웨건 마스터>를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영화로 꼽았다. 내러티브를 거의 포기하고 풍경과 인물들에 집중하는 이 영화를 두고 린제이 앤더슨은 “아방가르드 웨스턴”이라고 기술한 적도 있다. 상징적 귀향, 성숙한 러브스토리 <조용한 사나이> The Quiet Man, 1952년, 129분, 컬러 출연 존 웨인, 모린 오하라 전직 권투선수였던 숀은 시합 도중 상대선수를 죽인 게 괴로워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온다. 자기가 태어난 집을 산 숀은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아가씨 메리와 사랑에 빠진다. 둘은 결혼하려 하지만 메리의 난폭한 오빠는 육중한 장애물로 작용한다. 오래 전에 국내에서 <아일랜드의 연풍>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조용한 사나이>는 포드에게 일종의 상징적 귀향과도 같은 영화다. 부모님의 고향 땅에서 (실외 장면만) 찍은 이 영화는 그것말고도 포드 자신의 많은 기억들이 들어가 있는 영화인 것이다. 포드 자신이 “성숙한 러브 스토리”라고 불렀고 동시에 유쾌한 코미디이기도 한 <조용한 사나이>는 가벼운 터치가 진지함과 절묘하게 만나게 하는 포드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로 포드는 자신의 네 번째 오스카 감독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소란스럽고 코믹한 우화 <태양은 밝게 빛난다> The Sun Shines Bright, 1953년, 90분, 흑백 출연 찰스 위닝거, 알린 휠란 <태양은 밝게 빛난다>는 재선에 나선 늙은 판사가 새로운 방식의 미국적 정치에 어렵게 맞선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포드 자신이 1934년에 만든 <판사 프리스트>의 리메이크인 이 영화는 소란스런 매너코미디이고 신랄한 사회적 항변이면서 기독교적 우화이기도 한 영화다. <태양은 밝게 빛난다>는 무엇보다도 포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자기 영화들 가운데 하나로 늘 꼽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그는 이것이 계속해서 보고 싶은 자신의 영화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개봉 당시 영화는 혹평과 상업적 실패를 맛봐야 했고 결국엔 포드의 아르시영화사가 없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련된 상업영화 <모감보> Mogambo, 1953년, 116분, 컬러 출연 클라크 게이블, 에바 가드너, 그레이스 켈리 난봉꾼 기질이 다분한 사냥꾼, 세상 물정에 밝고 강인한 여자, 그리고 억눌려 있고 약간 히스테리컬한 인류학자의 아내, 이 세 인물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모감보>는 빅터 플레밍의 1932년작 <홍진>을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원작에도 출연한 적 있던 클라크 게이블 옆에다가 에바 가드너와 그레이스 켈리라는 당대의 톱스타를 기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코미디는 포드가 오로지 상업적인 이유로 착수한 몇 안 되는 영화들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고 해서 세련미와 매력을 잃지 않으며 연출된 이 즐길 만한 코미디는 포드에게 전작 <태양은 밝게 빛난다>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주었다. 서부의 신화를 수정한 걸작 <수색자> The Searchers, 1956년, 119분, 컬러 출연 존 웨인, 제프리 헌터 <수색자>는 아마도 포드의 경력 안에서 성찰의 힘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만들어진 걸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영화는 동생 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조카마저 납치한 인디언 무리를 강박적으로 찾아다니는 서부 사나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존 포드와 존 웨인이라는 두 위대한 서부 사나이들은 이 영화에서 그간 자신들이 구축했던 서부의 신화를 스스로 수정하기에 이른다. 그럼으로써 세계 영화사의 걸작 반열에 오른 이 작품은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를 비롯해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 스티븐 소더버그의 <라이미>,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 등 수많은 현대의 수작들에 영감을 불어넣어줬고 물론 앞으로도 그 역할을 계속해갈 것이다. 포드-웨인 콤비의 마지막 영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년, 122분, 흑백 출연 존 웨인, 제임스 스튜어트, 베라 마일즈 존 포드와 존 웨인이 함께 작업한 마지막 작품인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수색자>와 함께 영화사에 길이 남을 또 다른 수정주의 웨스턴의 걸작이다. 현재는 상원의원이자 왕년에 “(악당)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 이름을 날렸던 스토다드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부의 도시 신본에 돌아온다. 그의 귀환에 궁금증을 느낀 신문기자에게 스토다드는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문명화의 과정에 폭력과 기만의 야만 행위가 스며들어 있었음을 이야기하면서 서부의 순진한 신화를 공박한다. 그러면서 포드 자신의 경력까지 스스로 비판하는 이 영화에 노인의 지혜와 시적 감수성, 비판정신이 모두 녹아들어 있음을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후기 포드의 저주받은 걸작 <일곱 여인들> 7Women, 1965년, 86분, 컬러 출연 앤 밴크로프트, 플로라 롭슨 “여성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드의 바람에 따라 만들어진 <일곱 여인들>은 50년에 걸친 그의 영화감독 경력에서 마지막 장편영화로 남아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1935년의 중국을 배경으로 전염병과 또 이민족 전사들과 싸워야 하는 처지에 놓인 선교회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개봉 당시 흥행뿐 아니라 비평 쪽에서도 실패를 맛봐야했던 <일곱 여인들>은 나중에 재평가되어 흔히 포드의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는 영화다. 예컨대 포드에 대한 연구서를 쓴 태그 갤러허는 이 영화가 포드의 후기작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활력이 넘치고 대단히 창조적이며 풍부하다고 적고 있다. 홍성남 /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 서부극의 역사, 존 포드 회고전 [1] ▶ 서부극의 역사, 존 포드 회고전 [2] ▶ 서부극의 역사, 존 포드 회고전 [3]

영화 속 자살, 영화 밖 자살-투신의 행렬은 무엇을 말하는가 [4]

영화 속 자살, 영화밖 자살 투신의 행렬은 무엇을 말하는가 [4] 몸 날리는 사람들, 한국 근대성의 그늘 남재일/ 고려대 강사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간다.”<설국>(雪國)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유서는 간결했다. 그는 일흔넷 되던 해 평생의 동반자였던 아내와 함께 가스불을 피워놓고 잠을 청함으로써 삶을 마감했다. 이 죽음에 ‘자살’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삶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대가로 감내해야 했던 허무의 늪을 청명한 언어의 징검다리로 건너가, 마침내 세계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 그가 죽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볼 것 다 보고, 할말 다 해버려 이제는 바람 빠질 일만 남은 가죽부대를, 그는 서둘러 급행열차에 태워 떠나보냈을 뿐이다. 그러니 이 논리적 귀결에 ‘살’(殺)이란 말을 붙이는 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소설가이자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죽음도 이와 유사했다. 몇년 전 국내에 번역된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에 실린 저자 약력에는 “자유의지로 삶을 마감했다”란 표현을 쓰고 있다. 헤밍웨이의 경우는 좀더 데시벨이 높은 죽음의 방식을 택했다. 사냥용 엽총으로 평생 욕망과 고뇌로 티격태격하던 육체의 본부를 날려버렸다. 소란스럽긴 야스나리의 제자였던 미시마 유키오도 마찬가지여서, 스승이 죽기 직전에 사무라이처럼 할복했다. 그는 칼로 베어버리고 싶지만 일일이 다 베어낼 수 없는 세상의 군살 대신, 그 군살의 축적에 일조한, 욕망으로 가득 찼던 자신의 근육질 배를 갈랐다. 여기에 비하면 흐르는 강물에 아카시아 꽃잎처럼 몸을 맡겨버린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은 얼마나 조용한가. 피안으로 훌쩍 건너가고 싶은 열망은 등 뒤에 요란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법이다. 그녀는 ‘디아더스’로 결코 귀환하지 않을 조용한 확신 속에서 흘러가버렸다. 산 자에게 희망의 똥침을? 유명 작가들의 자살은 종종 작품 세계와 접합돼서 하나의 문학적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무명의 자살이 사회에서 처리되는 방식은 훨씬 기계적이다. 대개 뉴스에서 누군가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은 ‘왜?’이고, 그 다음 궁금한 점은 ‘어떻게’이다. 뉴스는 여기에 화답해서 ‘자살동기’와 ‘현장의 상태’를 필수적인 팩트로 전한다. 그런데, ‘어떻게’에 해당하는 자살 방법은 현장에 물증의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단순 전달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살 동기는 한 개인의 생애 전체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명쾌한 규정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자살을 몇개의 항목으로 범주화해서 설명하는 오랜 습관 속에서 살고 있다. ‘생활고 비관’, ‘신병비관’, ‘가정불화’, ‘실연’, ‘비사교적 성격,’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등등이 흔히 보는 자살 동기의 범주들이다. 군대는 ‘가정불화’, ‘실연’, ‘내성적 성격’이란 불과 세개의 범주만으로 모든 자살을 설명하는 기막힌 효율을 과시한다. 한 개인이 삶을 마감한 이유를 이렇게 단순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개인이 삶을 포기한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자살 동기란 범주는 사실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등을 돌리기 위한 방패이다. 목숨을 끊어버린 사람에 대한 지독한 두 가지 궁금증- “내 삶이 행여 저 죽음에 개입했을까?”라는 아련한 죄의식과 “저렇게 버릴 수도 있는 목숨을 나는 쓸데없이 꼭꼭 부둥켜안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무지에 대한 불안을 재빨리 없애주기 위한 것. 한마디로 자살 동기는 죽은 자의 사연을 설명하는 범주가 아니라 산 자에게 희망의 똥침을 놓기 위한 범주이다. 자살자에 대해 심각하게 “왜”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던진 이는 뒤르켐이다. 그가 자살을 산업사회의 병리현상으로 간주하고 사회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지 한 세기가 지났다. 자살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주로 자살 동기와 사회구조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사회의 구조적 결함을 찾아내고 보완하는 데 주력해왔다. 이런 거시적인 접근에서 자살자는 사회적 환부를 드러내주는 하나의 징후일 뿐이며, 사회의 안티테제일 뿐이다. 자살자의 발언권은 전제되지 않으며, 자살자는 자살이라는 행위로만 기억된다. 이보다 좀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살자의 속내에 접근한 연구는 자살의 유형학, 혹은 자살의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경향들이다. 이는 ‘어떻게’와 ‘왜’ 사이에 주목해서 자살자의 심리상태와 자살의 방법 사이의 상관성을 찾기도 하고, 자살방법과 시대상과의 관계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든 자살에 관한 연구는 말없는 죽은 자를 대상으로 하는 까닭에 검증할 길이 없는 하나의 추론에 불과하며, 그렇기에 산 자의 의지가 개입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일 공산이 크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죽음을 연구의 대상으로 다루면서 과학을 표방하는 데 일말의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차라리 문학이나 연극과 같은 허구의 서사장르가 자살을 형상화하는 게 더 온당해 보인다. 이 말은 반드시 서사장르로만 자살에 대해 얘기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과학을 표방한 연구라도 그것을 하나의 문학적 은유로만 수용하자는 얘기다. 내가 아래에 늘어놓는 자살과 추락에 관한 수다는 이런저런 책에서 주워온 사실들을 열거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내가 자살과 추락에 관해 갖고 있는 문학적 상상이다. 근대적 자살로서의 투신 자살에 성공하려면 흔히 세 가지 욕구가 충족돼야 한다고 한다. ‘죽고 싶은 욕구’, ‘죽이고 싶은 욕구’,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구’. 이 세 가지 욕구를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무게 중심에 자살자의 시신이 누워 있다는 것이다. 이 삼각형에서 ‘죽고 싶은 욕구’는 말 그대로 삶을 더이상 연장하고 싶은 의사가 없는 상태다. ‘죽이고 싶은 욕구’는 죽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된 원인 제공자에 대한 살의이다.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구’는 죽이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무기력하게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을 때의 자기 학대적인 감정으로, 살의가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상태이다. 세 가지 욕구가 폐쇄회로 속에서 돌고 돌다가 임계점에 달하면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논법은 내가 본 자살에 관한 해석 중에 가장 복잡하다. 그만큼 다양한 유형의 자살에 관한 해석이 가능하며, 특히 자살 유형과 자살자의 심리를 연결짓는 데 유용한 고리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논법은 자살의 유형을 특정의 심리상태로 환원시키기 때문에 자살자가 처한 환경적 변인을 무시한다. 사실 나무에 목을 매다느냐, 총을 머리를 쏘느냐, 빌딩에서 뛰어내리느냐와 같은 자살의 방법은 자살자가 처한 환경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게 가장 설명력이 높다. 군대에서 총으로 자살하는 것은 총이 지천에 널렸기 때문이며, 조선시대 여자들이 광목에 목을 매달아 죽는 것도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세의 기사는 활로는 자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칼을 사용하고, 고층빌딩이 없었던 과거에는 투신할 장소가 없다. 이런 환경적 변인 이외에 자살의 유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변인은 자살자가 자살이란 퍼포먼스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의미이다. 이는 자살을 세상에 대한 하나의 무언의 발언으로 보고 자살의 방식에 내재된 감정이나 심리를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관점들을 종합해봤을 때 외형상 가장 단순해 보이면서도 심리적으로 가장 복잡한 자살의 유형이 투신자살이다. 특히 고층빌딩 투신자살은 가장 현대적인 자살의 유형이다. 우선 환경적으로 고층빌딩이 없던 시절에는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 방식이다. 빌딩 없는 시절의 투신은 주로 태종대 자살바위처럼 자연적인 절벽인 강물에서 이루어졌다.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는 것과 물 속에 떨어지는 것은 삶에 대한 미련의 정도에서 차이가 난다.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서 살아날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에 빌딩투신은 가장 자살의 의지가 확고할 때 선택하는 방식, 즉 ‘죽고 싶은 욕구’에 가장 충실한 방법이다. 또 신체 훼손이 가장 심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구’에도 충실하다. 가속도를 이용해서 지구 전체를 망치처럼 활용하니 이것만큼 강렬한 살인의 퍼포먼스도 드물다. 대개 동반자살을 기도하는 연인들은 빌딩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든다. 그들은 이 세상을 떠나 피안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이니 죽고 싶은 욕구는 강하지만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구는 없다. 시체를 훼손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서 어딘가로 떠나버리는 것이 그들이 목적이다.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그랬고, 퐁네프의 연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 속의 연인들은 이 방식을 선호했다. 이들이 자살을 통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는 가요. 찾지 말아요”이다. 빌딩투신의 메시지는 사뭇 다르다. 빌딩투신은 다른 자살 유형에 비해 유서를 남기는 확률이 낮다. 그리고 사람들이 오가는 도심에서 이루어진다. 그 곳에서 ‘피떡이 된 시체가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더이상 할말 없다 똑바로 쳐다봐라.” ▶ 영화 속 자살, 영화 밖 자살-세상의 창에 찔린 영혼들 여기 떠돌다 [1] ▶ 영화 속 자살, 영화 밖 자살-세상의 창에 찔린 영혼들 여기 떠돌다 [2] ▶ 영화 속 자살, 영화 밖 자살-새로운 가족윤리를 꿈꾼다 [3] ▶ 영화 속 자살, 영화 밖 자살-투신의 행렬은 무엇을 말하는가 [4] ▶ 영화 속 자살, 영화 밖 자살-투신의 행렬은 무엇을 말하는가 [5]

<젠틀맨리그> 그들의 과거가 알고싶다 [1]

<젠틀맨리그>는 이중의 각색을 거친 블록버스터다. 앨런 무어의 만화를 할리우드에 맞도록 고쳤지만, 무어의 원작 자체가 19세기 영국 문학의 걸작들을 참고하고 있는 탓이다. 일곱명에 달하는 ‘젠틀맨리그’ 멤버들과 한명의 악당이 가지는 함의도 풍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한번, <젠틀맨리그>는 블록버스터다. 미청년 도리안 그레이가 어떻게 수십발의 총알을 맞고도 무사한지, 왜 하필이면 아프리카 오지에 은둔한 노인 앨런 쿼터메인을 리그의 지도자로 택했는지, 미나 하커가 치욕의 상처인 것처럼 보여주는 목덜미의 작은 구멍 두개는 누가 뚫어놓은 것인지, 지킬 박사인 동시에 하이드씨인 남자가 어떤 연유로 두개의 신체와 정신을 가지게 되었는지,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다. 영화를 탓할 수도 있겠지만, 문을 열어주기 전에 두드리는 것도 우리 앞에 놓인 길 중 하나. 한 세기 전의 공기를 체험할 수 있는 <젠틀맨리그>의 참고도서들을 찾아 일일이 그 책장을 들춰보았다. -편집자 주 관찰자에서 완벽한 지도자로 앨런 쿼터메인 원작 | 솔로몬 왕의 보물 | H. 라이더 해거드 지음 | 최홍 옮김 | 영언 펴냄 사냥꾼 앨런 쿼터메인은 이십년 전, 사막 넘어 산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는 솔로몬 왕의 보물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나선 사람은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돈 많은 귀족 헨리 커티스는 전설을 잊고 지내던 쿼터메인을 찾아와, 보물이 있다는 산맥으로 떠났다가 실종된 동생을 구하자고 제안한다. 쿼터메인은 다이아몬드에 유혹을 느껴 해군 장교 존 굿과 비밀이 있어 보이는 원주민 움보파와 함께 죽음의 사막 경계로 다가간다. <솔로몬 왕의 보물>은 열네편의 시리즈로 이어진 앨런 쿼터메인의 모험담 첫 번째 이야기다. 나이든 사냥꾼인 그는 수백 마리는 될 법한 사자와 코끼리를 잡았고, 원주민 군대와도 싸웠지만, 약점이 많은 인물이다. 스스로 소심하고 겁많은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그는 목숨을 걸고 싸우느니 비굴하다고 놀림받는 편을 택하겠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런 쿼터메인은 이 소설에서 남자답고 당당한 동료들을 칭송하는 충실한 관찰자로 남는다. 그의 경험과 지혜가 도움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쿼터메인이 무대 전면에 나서는 일이 드물다. 위기다 싶으면 도망가고, 잔머리를 굴리는 인디아나 존스는 쿼터메인을 참고한 캐릭터라고 한다. H. 라이더 해거드는 절대미를 지닌 불사의 여왕 아샤 시리즈로도 인기를 얻었고, 쿼터메인과 아샤가 동시에 등장하는 소설을 쓰기까지 했다. 19세기 말 식민지에서 살아보았던 라이더 해거드의 경험은 부족한 문학적 자질을 생생한 묘사로 대신해준다. 그러나 “태양은 어둠과 어울릴 수 없고, 백인은 흑인과 어울릴 수 없다”는 전제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거슬릴 수도 있다. 영화 | 완벽한 지도자다. 앨런 쿼터메인은 수백 야드 밖에서 움직이는 표적을 쏘아맞추고, 세계대전을 눈앞에 두고서도 여유롭다.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다가 아프리카에도 위협이 닥치는 것을 보고 총을 잡는 사나이. 마지막 장면에선 깜짝쇼를 볼 수 있다. 연약한 여인에서 전천후 뱀파이어로 미나 하커 원작 | 드라큘라 | 브람 스토커 지음 |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드라큘라>는 수없이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원작이 살아남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드라큘라 백작은 그 자체만으로도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매혹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훈족 아틸라 왕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는 드라큘라는 강한 완력과 어둠의 생물을 다스리는 능력, 불사의 신체를 가진 흡혈귀다. 많은 작가와 감독들은 브람 스토커가 세운 기본 뼈대에 자신만의 취향과 해석을 덧붙여왔다. 그러나 20세기를 3년 앞둔 해에 출판된 <드라큘라>는 세기말의 혼돈과 다가올 백년을 바라보는 불안이 담겨 있고, 자연과학을 향한 맹신과 떨치지 못한 미신의 흔적이 기묘한 조합을 이루는 소설이다. 브람 스토커는 어쩔 수 없는 19세기 말의 산물이지만, 후대에까지 피비린내를 남길 걸출한 괴물을 만들어냈다. 브람 스토커는 <드라큘라>를 믿을 만한 괴담으로 만들기 위해 기록문학의 형식을 택했다. 트랜실베니아에서 칩거해온 드라큘라 백작을 변호사 자격으로 찾아간 조나단 하커, 영국에서 그를 기다리는 정숙한 약혼녀 미나, 자신의 환자를 관찰하면서 뭔가 섬뜩한 괴물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정신과 의사 수어드 등은 일기나 편지를 통해 드라큘라의 존재와 그에 맞선 싸움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미나의 친구 루시가 흡혈귀에게 살해당한 뒤, 하커 부부와 루시의 구혼자들, 흡혈귀를 연구하는 과학자 반 헬싱 박사는 드라큘라를 처단하고자 한다. 그러나 남자들이 잠시 방심한 틈을 타서 드라큘라는 미나마저 먹잇감으로 삼는다. 어둠에 잠겨 들어가는 미나의 영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드라큘라의 생명을 뺐는 것뿐이다. 영화 | 햇빛 속에서도 나다닐 수 있는 전천후 뱀파이어가 됐다. 소설에선 남자들의 싸움을 타이핑하고 정리하는 비서 역할에 머무르지만, ‘젠틀맨리그’가 필요로 하는 건 과학자로서 그녀의 두뇌. 한때 도리안 그레이와 연인이었다. 노틸러스호 선장이란 것만 같네 네모 선장 원작 | 해저 2만리 | 쥘 베른 지음 | 이인철 옮김 | 문학과 지성사 펴냄 쥘 베른은 이십 세기를 미리 겪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예측했던 작가다. 상상력과 통찰력을 모두 갖춘, 흔치 않은 작가였지만, 성인이 돼서 그를 다시 만난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600쪽 넘는 분량으로 번역된 <해저 2만리>는 쥘 베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책이다.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을 바다생물들을 묘사하는 필치나 빛이 닿지 않는 심해를 꿈꾸는 문장은 쥘 베른의 다른 소설들까지 다시 한 번 찾아 보고 싶도록 만드는 요소. 그러나 무엇보다 새로운 것은 네모 선장과 그 선원들에게서 감지할 수 있는 증오와 아픔이다. 아동용 다이제스트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네모 선장의 알 수 없는 고통이, 소설에선 육중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다가온다. 19세기 중반, 선박들이 정체 모를 괴물과 충돌해 침몰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다. 소설의 화자인 파리 박물관 교수 아로낙스와 그의 하인 콩세유, 작살잡이 네드는 원정을 위해 올라탄 에이브러햄 링컨 호가 마찬가지 이유로 난파한 뒤 표류하다가 네모 함장에 의해 구조된다. 바다 위에서 다가온 것이 아니라 바다 아래서 떠오른 배 노틸러스. 괴물은 거대한 오징어나 고래가 아니라 복수심에 불타 물밑을 헤엄쳐온 잠수함 노틸러스호였던 것이다. 비밀을 목격했기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게 된 세 사람은 반은 인질로, 반은 손님으로 노틸러스호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네모 선장이 선원들을 떠나보내는 깊은 바다 산호 무덤이나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듯한 네모 선장의 흐느낌, 오래 전 수장된 난파선의 잔해가 이전에 알던 <해저 2만리>와는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영화 | 인도인이 됐다. 칼을 잘 쓴다. 노틸러스호의 선장이라는 것말고는 원작과 닮은 점이 거의 없다. 미소년에서 강인한 남자로 도리안 그레이 원작 |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지음 | 이원용 옮김 | 일신서적 펴냄 오스카 와일드는 그가 쓴 희곡이나 소설, 동화보단 그가 일으킨 스캔들로 더 유명한 작가다. 책표지에 박힌, 뭔가 소망하는 듯한 눈을 가진 와일드의 사진은 굳이 해설을 읽지 않더라도 ‘탐미주의’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평자들이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 등장하는 분방한 조언자 헨리 경을 와일드 자신으로 지목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이 아름답게 남기보단 아름다운 대상을 사랑하는 일을 더 욕망할 것처럼 보인다. 더이상 추할 수 없는 심성을 가진 도리안 그레이지만, 와일드가 그 아름다운 얼굴을 언어로 그려나갈 때만은, 추악한 영혼 덕분에 더욱 선명해진 미적 충격을 던진다. “상아와 장미꽃잎으로 된 것 같은 젊은 아도니스”라는, 과잉의 표현은 아무데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유하고 젊은 귀족청년 도리안 그레이는 화가 배질 홀워드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늙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한탄한다. 언제까지나 젊음을 잃지 않는 쪽이 자신이고 늙어가는 쪽이 그림이라면, 이라고. 그리고 그 기원은 현실로 나타난다. 초상화를 집에 걸어둔 도리안 그레이는 자신의 매정한 말 때문에 사랑하던 여배우가 자살한 날, 초상화가 조금 흉하게 변했다고 느낀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리안은 악해지고, 초상화는 그 죄과를 대신 짊어져 추해진다. 중년에 이른 도리안은 더이상 초상화를 감당할 수 없어 나이프로 그림을 찢으려 한다. 영화 | 자신의 초상화를 보아야만 죽음을 맞는 불사신. 화사한 미소와 어린아이 같은 응석으로 귀부인들을 녹이는 소설과 달리 뱀파이어 미나 하커와 대등하게 싸울 정도로 검술에 능한, 강인한 남자로 다시 태어났다. 바람둥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젠틀맨리그> 그들의 과거가 알고싶다 [1] ▶<젠틀맨리그> 그들의 과거가 알고싶다 [2]

도시무협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현장 드러나다 [3]

‘준’의 광고모델로 잘 알려진 의진 역의 윤소이는 디테일한 감정 처리는 감독의 디렉션을 일일이 받아야 하지만 검을 쥐고 쏘아보는 눈매는 검투사 못지않다. 비법 셋>> 완급조절(緩急調節) “갱영화에서 총격전이 벌어져요. 탕. 탕. 탕. 그러다 갑자기 기관총이 등장하죠. 드르르륵. 그때의 시원함. 이건 무술의 리듬하고 다르지 않아요.” <피도 눈물도 없이>의 액션을 두고, 한 평론가는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하다고 썼다. 7개의 액션장면을 서로 다른 속도감과 앵글로 찍었는데도 말이다. 류 감독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테크닉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돼요. 예를 들면 속임수나 카메라를 흔드는 것이나 그런 잔재주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저 스스로가 뛰어난 테크니션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뭐 정리하자면 테크닉의 기본은 얼마나 매혹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느냐의 문제인 것 같은데, <피도 눈물도 없이> 때처럼 보는 사람에게 감정적 동요를 끌어내지 못하면 쓸모없는 거죠.” 류 감독은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찍으면서 영화적 리듬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절제나 과잉, 어느 한쪽이 최선의 미덕이 아니라면, 적재적소에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느냐가 중요해져요. 인물들의 감정선이나 스토리를 전달해야 하는 드라마는 간소하게 숏을 나누지 않고 앵글도 바꾸지 않고 찍어요. 반대로 장르적인 테크닉을 부여하는 지점에서는 그냥 아낌없이… 클로즈업도 임팩트 있게 쓰고 있고.” 그가 리듬과 완급을 고려한 데는 <아라한 장풍대작전>이 순제작비 48억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예산의 프로젝트라는 점도 작용했다. 예산을 초과한다고 퀄리티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안에서 힘을 줘야 할 곳과 빼야 할 곳을 적절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기존의 블록버스터영화들이 빠지는 함정은 장르영화가 노정할 수밖에 없는 함정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 20분만을 기억하고 전쟁영화를 만든다면 그건 밀도면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영웅>이 액션장면 자체로만 보면 <와호장룡>보다 업그레이드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만큼의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도 같은 원리”라고 말한다. 비법 넷>> 동반상승(同伴上昇) “전과 다르게 승범이하고 배우와 감독으로 부딪쳐요. 위기가 왔던 상황도 몇번 있었고. 보여질 때야 아무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지만, 만드는 사람은 알거든요. 어쨌든 전과 달라진 점은 제 스스로도 어떤 행위를 지시한다기보다는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 감정 상황을 공유하는 것 같고.” 류 감독은 이번 영화를 두고 “장르적 색깔이 가장 뚜렷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연기연출 방식은 비장르영화처럼 하고 있다”고 한다. 이전에는 “본인이 만들어놓은 앵글에 맞춰서 배우가 연기하고 빠져주길 바랐는데, 지금은 연기자의 흐름에 따라서 전체 상황 리허설을 해보고 나서 때론 콘티를 버리고 바꾸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류승범과 정두홍 무술감독이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촬영 때 인천 부둣가의 센 바람을 맞아가며, 감독인 형이 만족해할 때까지 밤새 주먹질을 해대다 촬영이 끝나자 녹초가 되어버렸던 류승범은 이제 형 말에 따르면 “연출자의 시선까지도 갖춰가고 있다”. 류승완 감독은 전에 모르던 영화 만드는 재미를 얻었다고 말할 정도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 이어 무술감독과 배우를 겸하고 있는 정두홍 무술감독 또한 이제 ‘파트너’로서 공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류 감독은, 처음 작업 때는 “네가 액션을 알아?”라며 알게 모르게 견제했다면서 웃는다. 그러고보니 이번 현장에 류 감독의 영화 동지들이 보이지 않는다. 김성제 프로듀서, 최영환 촬영감독, 김성관 조명감독과 함께 간다면서 “팀워크는 나의 힘”이라던 신조는 어찌된 걸까. “다들 스케줄이 바빠서 못한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이번 스탭들에 대한 감독의 신뢰가 전보다 못할 리 없다. 류 감독은 스탭 구성에 있어 CG 작업 경험이 많은 이들을 우선으로 했다고 말한다. “블루매트 촬영을 비롯해서 CG 작업을 고려한 현장 세팅에 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CG 작업에 익숙한 광고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데다 얼마 전까지 블록버스터 <내츄럴시티>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이준규 촬영감독과 서정달 조명감독과의 새로운 팀워크는 류 감독의 부담을 덜어주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9월 중순 크랭크업 한 뒤 CG 작업 등 후반작업이 마무리되는 내년 봄에 대장정의 결과를 보여줄 예정.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 도시무협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현장 드러나다 [1] ▶ 도시무협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현장 드러나다 [2] ▶ 도시무협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현장 드러나다 [3]

슈워제네거, 당내 후보 광고공세 ‘산 너머 산’

부친의 나치경력 시비로 궁지에 몰렸던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주 주지사 소환선거에 뛰어든 같은 공화당 후보 빌 사이먼의 라디오 광고로 직격탄을 받게 됐다. 지난 11월 중간선거에 패배한 뒤 재차 주지사 후보로 나선 기업인 빌 사이먼 후보는 당내 선두주자인 슈워제네거의 재정ㆍ경제자문 워런 버핏이 주(州) 재산세 인상 필요성을 제기한 데 초점을 맞춰 이를 공격하는 라디오 광고를 내보낼 것이라고 17일 미국 뉴스전문 채널 폭스TV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사이먼 캠프의 K.B. 포브스 대변인은 폭스뉴스와 한 회견에서 이 같이 말하고 "라디오 광고는 편집이 모두 끝난 상태로 이날 저녁부터 전파를 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라디오 선거광고의 제작비용과 프로그램을 송출할 방송사를 구체적으로 밝하지 않았으나 반슈워제네거 광고는 주 전역의 주요 방송사를 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포브스 대변인은 "광고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이미 자동차세 3배 인상에 직면해 있는데 지금 슈워제네거의 수석 경제보좌관은 재산새 3배 인상을 들고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고 밝히면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열띤 1대1 토론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슈워제네거 선거캠프의 재정ㆍ경제자문으로 영입된 투자의 '귀재'버핏은 지난 15일 월 스트리트 저널과 한 회견에서 캘리포니아 재산세율이 너무 낮다고 지적하고 적정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반면 사이먼 진영은 이를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슈워제네거 캠프는 버핏 경제고문의 발언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사태를 우려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롭 슈투츠먼 대변인도 "슈워제네거 후보는 재산세 인상문제와 관련한 버핏의 발언에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주민발의(Proposition) 13'을 입안한 하워드 자비스를 "원조 감세 터미네이터'로 보고 있다"고 밝혀 불똥이 확산하는 사태를 경계했다. 슈투츠먼 대변인은 또 슈워제네거가 주지사로 당선하면 주민발의 13에 대한 '철저한 수호자(fierce protector)'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그의 선거캠프와 워싱턴 공화당 사정에 모두 정통한 소식통도 "캘리포니아내 어느 누구도, 특히 공화당원은 이 조례에 칼을 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을에는 크랭크인을 하겠어요

<유혹의 기술> <아홉살 인생>등 속속 제작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충무로의 제작 라인업에도 새로운 작품이 차례로 추가되고 있다. <유혹의 기술>은 <정사> <반칙왕>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의 시나리오를 쓴 김대우 작가가 처음으로 연출하는 작품. 어느 중산층 부부 앞에 이상한 분위기의 다른 부부가 등장하면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주인공 부부의 남편이 상대 부부의 아내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보디 히트>처럼 팜므파탈의 유혹과 음모에 파괴되는 중산층 가정의 모습이 에로틱스릴러 분위기에 담길 예정. 드라마 <앞집여자>를 제작한 에이트픽스의 충무로 진출작이다. 내년쯤 크랭크인할 예정.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김동원 감독(사진)은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 당선작인 <슈즈>(청년필름)를 2번째 작품으로 결정했다. <슈즈>는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어하는 18살짜리 여자아이의 이야기.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게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아이를 갖기 위해 남자를 고르고, 사랑을 나누는 과정이 경쾌하고 발랄하게 묘사된다. <안토니아스 라인>의 한국판 10대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내년부터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바리케이드>와 <마요네즈>의 윤인호 감독은 위기철의 소설 <아홉살 인생>(황기성 사단)을 영화화한다. 맑은 아홉살 소년 여민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사가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묘사된다. 10월 크랭크인 예정. <화산고>의 김태균 감독은 귀여니의 베스트셀러 <늑대의 유혹>(싸이더스)을 연출하며,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은 전지현을 주연으로 한 여자경찰의 이야기 <바람개비>(싸이더스 HQ)를 감독한다. 두 작품 모두 9월 중 촬영을 개시한다. 또 <파란 대문> 등에서 조감독을 했던 남상국 감독은 아주 실력없는 태권도부의 이야기인 <돌려차기>(씨네2000)로 데뷔할 예정이다. 이제 가을로 접어들면서 내년 수확을 준비하는 충무로의 손길은 더욱 분주해질 전망이다. 문석

프랑스는 지금 코미디 열풍

자국영화 점유율 낮은 가운데 코미디 약진 두드러져 프랑스에 코미디 바람이 불고 있다. 일반 관객이 쉽게 동화되는 장르이며, TV 체인의 인기 구매 프로라는, 코미디의 일반적인 강점을 들지 않더라도, 프랑스인의 코미디 사랑은 유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3년간 개봉된 18편의 코미디영화 중 14편에 100만명 이상의 관객이 들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프랑스 영화계의 특징을 ‘코미디 특수’로 볼 수 있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올해는 유난히 코미디 작품들이 박스오피스와 제작 라인업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 이에 <버라이어티> 최근호는 현재 제작 중인 프랑스 코미디의 경향 등을 소개했다. 올해 프랑스 박스오피스는 이례적으로 자국영화 점유율이 높았던 지난해 같은 시점에 비해 21%가량 낮은 성적을 보이고 있지만, 이 와중에 눈에 띄는 약진을 보이고 있는 영화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코미디다. 대표적인 작품이 올 초 개봉한 <슈슈>와 <라 부즈>. <슈슈>는 지난 3월 개봉 첫 주말에 600만달러 이상 벌어들이며, 개봉 2주차에도 새로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데어데블>에 1위 자리를 뺏기지 않은 흥행작. 최종적으로 4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불법 이민자가 파리의 클럽에서 여장 종업원으로 일하며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다소 민감한 내용을 코믹하게 풀어가 화제를 모았다. 이보다 1개월 앞서 개봉한 <라 부즈>는 덜떨어진 두 남자의 좌충우돌을 그린 ‘프랑스판 <덤 앤 더머>’로, <슈슈>의 성적엔 미치지 못했지만, 1800만달러를 벌어들이며 선전했다. 이에 고무된 프랑스 영화계는 코미디 제작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다. 워너 프랑스는 <슈슈>를 시작으로, 감독 겸 제작자 크리스티앙 페슈네의 향후 코미디 4편에 투자 및 배급을 약속한 바 있다. M6, UGC, 카날플러스 등 주요 프로덕션의 제작 라인업에도 코미디가 속속 추가되고 있다. M6는 술탄에 관한 인기 만화를 영화화한 <이즈고누>, 그리고 존 랜디스의 코미디를 리메이크한 <더블 제로>도 준비 중이다. UGC는 <달턴가 사람들>을 제작하고 있다. <아스테릭스2: 미션 클레오파트라>의 알랭 샤바도 자신의 제작사에서 ‘선사시대’ 코미디 을 연출하고 있으며, <늑대의 후예들>을 패러디한 기획 <암탉의 후예들>을 개발 중이다. 이처럼 프랑스의 제작 투자사들이 코미디 제작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제작비를 적게 들이면서도, 무대 또는 TV로 친근한 코미디언들의 스타 파워를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스테릭스: 미션 클레오파트라> <아멜리에>의 자멜 데부즈, <슈슈>의 가드 엘마레, 콤비 코미디언 에릭과 람지 등이 대표적인 스타들. 코미디언의 원맨쇼 레퍼토리가 영화화돼 성공을 거둔 <슈슈>의 경우처럼 이들은 스타성으로는 물론 작품 기획 창작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뤽 베송의 유로파를 중심으로 값비싼 액션 블록버스터의 제작이 급증하고 있는 한편으로, 저렴하고 신속한 제작이 강점인 코미디의 공급과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또 다른 트렌드는, 지난해 자국영화의 폭발적인 흥행을 기점으로, 프랑스 영화산업이 매우 건강해졌다는 의미인 것으로 해석된다. 박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