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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젠틀맨리그>, <바람난 가족> 흥행순항

숀코너리 주연의 SF 액션 블록버스터 <젠틀맨리그>가 개봉 첫주 주말 흥행순위 1위에 이름을 올려놨다. 배급사 20세기폭스 코리아에 따르면 <젠틀맨리그>는 16-17일 주말 서울 43개 스크린에서 9만362명의 관객을 동원해 베니스 경쟁부문 진출작 <바람난 가족>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목요일인 14일 개봉 이후 극장을 찾은 관객은 서울 17만5천105명, 전국 54만1천100명. 문소리, 황정민 주연의 <바람난 가족>은 7만4천600명의 관객을 불러들이며 2위를 차지했다. 14일 개봉 이후 전국 44만명이 영화를 즐겼다. 윌스미스 주연의 <나쁜녀석들2>는 5만9천명으로 3위. 유지태 주연의 공포물 <거울속으로>는 서울 주말 5만명의 성적으로 개봉 첫 주말을 시작했다. 5위는 3만1천명을 동원한 지브리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 국산 공포영화 <거울속으로>와 <여우계단>은 각각 2만5천명과 2만3천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네번째 주말을 맞은 <터미네이터3>은 1만2천명으로 8위. 지난달 25일 개봉 후 244만명의 전국 관객들이 감상했다. 22일에는 스파이크 리-에드워드 노튼의 , 프랑소와 오종의 신작 <스위밍풀>, 할리우드 코미디 <위험한 사돈>, <왓 어 걸 원츠>, 공포영화 <데드캠프>가 각각 개봉한다. (서울=연합뉴스)

불협화음이 빚어내는 나름의 아기자기함,<위험한 사돈>

■ Story CIA 비밀요원 스티브(마이클 더글러스)는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상견례 자리에서 만난 사돈 제리(앨버트 브룩스)에게 복사기 세일즈맨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미모의 여인과의 수상한 접선 현장을 들켜 제리로부터 매춘 알선업자라는 오해를 산다. 핵 잠수함 밀매 사건을 조사 중인 스티브는 프랑스로 거래인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사돈 제리를 동행하는데, 소심한 제리는 의외의 활약을 펼친다. ■ Review 첩보원 영화에도 ‘실버’ 바람이 부는 걸까. 책임감이나 애국심이 발동해서가 아니라 제 멋에 겨워 뛰어다니던 트리플X와 오스틴 파워 등 엽기적인 첩보원들의 시대에, 난데없이 손자 볼 나이에 특급 미션을 척척 떠맡는 중후한 스파이가 등장했다. 그런데 유행은 돌고 도는 모양이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스파이와 겁쟁이 사돈의 좌충우돌 활약상을 그린 <위험한 사돈>의 아이디어는 참신해 보이지만, 20여년 전에 이미 영화화된 적이 있다. 피터 포크와 앨런 아킨이 호흡을 맞춘 79년작 를 리메이크한 작품. 원작보다 점잖아진 것으로 평가되는 2003년작 <위험한 사돈>은 웃음을 유발하는 이야기의 축은 대체로 온전히 물려받았다. 세계의 평화를 책임지는 특급 요원이지만, 가장으로서의 일상을 꾸려가는 데는 서투른 남자가 가정적이지만 의심도 많고 겁도 많고, 아무튼 사방이 꽉 막힌 남자를 사돈 겸 파트너로 만났다, 는 설정은 꽤 매력적이다. 발 전문의일 뿐인 그가 FBI에 ‘거물’로 오인받고, 범죄조직과 대면해 전설적 킬러 ‘굵은 코브라’ 행세를 하게 되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특히 백미. 이에 비하면 자녀들의 결혼식에 FBI와 악당 등이 몰려드는 하이라이트는 오히려 심심한 편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클리셰도 눈에 거슬리는 대목. 핵 잠수함을 사들이는 범죄자의 프랑스 국적(요즘 할리우드영화에서 악당은 대부분 프랑스인이다)과 동성애 취향을 희화화한 설정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위험한 사돈>의 관건은 판이한 성격의 커플을 연기한 두 배우의 궁합. 진지한 드라마와 스릴러를 무대로 삼았던 마이클 더글러스가 천하태평 베테랑 요원으로 변신한 시도는 신선하지만, 웃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한 연기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너무 소심해서 귀여운 사돈 역의 앨버트 브룩스는 <니모를 찾아서>에서 니모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 물고기 말린의 목소리를 내는 등 최근작에서 연달아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신념을 설파하고 있다. 미국 개봉 당시 “잘못된 만남”() 등의 혹평이 우세했지만, 이들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은 나름대로 유쾌하고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기획리포트2] SicAF를 찾은 아니메의 두얼굴

제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은 어렵게 바다를 건넌 손님 두 사람을 맞았다. <반딧불의 묘>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거장 다카하타 이사오와 이미 한번의 상영 불발을 겪었던 성인애니메이션 <메조 포르테>의 우메즈 야스오미다. 다카하타 이사오는 한국애니메이션창작인회의의 초청으로 강연을 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청중 앞에서 오랜 경험과 현명한 통찰을 들려준 다카하타는 공항으로 떠나기 전 잠시 틈을 내 한국 기자들을 만났다. 한 시간 동안, 쉼표를 찍을 틈도 없이 많은 말을 들려준 다카하타는 애니메이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과 역사에 밀착하고자 자신을 조이는 책임감 있는 지식인이었다. <메조 포르테>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한국에 온 우메즈는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성인물의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소개된 적이 없는데도, 자신의 작품을 미리 보고 찾아온 관객 앞에서, 우메즈는 솔직한 유머로 마음을 열어놓았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인터뷰에 응한 우메즈는 애니메이터로서 자신의 인생을 짧지만 풍성하게 들려주었다. ▲다카하타 이사오 1935년생.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지브리를 이끌어가는 인물로, TV 시리즈 <빨강머리 앤>, 극장용 <반딧불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 등 연출 팍팍한 현실 속의 소박한 희망을 믿는다 다카하타 이사오 다카하타 이사오는 한국에서 단 하룻밤을 머물렀다. 육십을 넘긴 그는 “95년에 보았던, 철거 중이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이처럼 무리한 일정으로 바다를 건너왔다고 했다. <반딧불의 묘> <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 등에서 현실에 대한 발언을 계속해온 이 애니메이터는 처음 꺼낸 그 한마디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렸다. 다카하타는 “나는 현실주의자다. 그리고 희망을 믿는다. 현실은 거창하지도 그리 좋지만도 않지만, 희망이 없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애니메이션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닌” 신작을 준비하고 있는 다카하타가 최근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은 일은 프랑스 애니메이션 <키리쿠와 마녀>의 일본 개봉 추진이다. 지난해에 이 영화를 본 다카하타는 배급사에 일본 개봉을 제안했고, 8월2일 극장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보고나면 재미있다, 감동적이었다가 전부인, 현실과 동떨어진 애니메이션”뿐인 일본에서, 다카하타는 <키리쿠와 마녀>가 방향을 틀어줄 키가 될 거라고 믿었다. “어떻게 현실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말해주기 때문에. 다카하타는 “천재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천재가 아닌 나 다카하타 이사오” 사이의 두 번째 차이도 역시 거기에 있다고 했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 외에도 글을 쓰고 발언을 한다. 천안문 사태 때문에 중지된 프로젝트 역시 일본인이 중국인의 땅 만주에서 왜 지주로 군림했는지, 왜 자신들은 지주로 살아야만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는지를 파헤치는 작품이었다. 다카하타의 빠듯한 한국 방문 일정 중에서 눈에 띄는 사건은 <마리이야기>의 이성강 감독과의 만남.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에 감탄을 표한 다카하타는 자청해서 이성강 감독을 만났고, 두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했다. 그는 아직 한국 애니메이션을 잘 알진 못하지만, 한국이 과거 일본처럼 애니메이션을 이끄는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본에서 사라져버린, “어떻게 그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라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걸작으로 칭송받는 TV시리즈 <빨간머리 앤>을 “제작사에서 요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런 걸 왜 만들어야 하나 의심하면서” 만들었다고 고백하는 솔직한 거장. 다카하타 이사오는 사인을 요청하는 몇몇 기자들을 위해 필통을 꺼내고 안경을 쓰면서 정성들인 잉크 자국을 남기는 정겨운 심성을 보여주고 떠났다. 그동안 몰래 보셨다구요? <메조 포르테> 감독 우메즈 야스오미 ▲우메즈 야스오미 1960년생. 일본의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감독.로봇 카니발 에피소드 <프레젠스>, <카이트>, <메조 포르테> 등 제작 엄마 아빠가 살해된 현장을 목격한 뒤 살인청부업자로 일하게 되는 소녀. 그녀를 살인청부업자로 키워 이용하는 자들은 다름 아닌 바로 소녀의 부모를 죽인 원수들이다. 소녀는 이들이 시키는 대로 목표물을 죽여나가는 가운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청년을 알고 사랑에 빠진다. 내내 어두운 분위기의 연출, 마지막에 관객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의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비극적 스토리의 <카이트>(KITE, 1998)는 18금(禁) 애니메이션 작가 우메즈 야스오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에 그를 알린 작품은 단편 옴니버스 <로버트 카니발>(Robot Carnival)의 에피소드 중 <존재> 편. <존재>는 우메즈가 성인 애니의 세계에 입문하기 전에 그린 작품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이 정식으로 상영·배급된 적은 없으며, 올해 SicAF에 초청된 <메조 포르테>(2001)가 국내 상영으론 처음인 셈이다. <메조 포르테>는 <카이트>의 후속작으로 비합법적으로 청부업을 하는 미쿠라라는 소녀와 두명의 남자가 한팀을 이뤄 의뢰받은 위험한 사건들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카이트>에 비해서는 다소 밝은 분위기이지만, 전작의 분위기를 완전히 떨쳐낸 것은 아니다. 과격한 폭력 묘사, 포르노 수준의 성적 묘사는 그대로다. 액션신에서 그의 공력이 그대로 묻어나는데, 상당히 정교하고 역동적이기까지 한 화면은 할리우드 실사 액션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H물’(성인물을 ‘에찌’라고 발음하는 데서)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메가존23 파트2>(Megazone23 part2), <로버트 카니발>-존재 등을 비롯해 <갓챠맨> <캐산>의 캐릭터디자인, 작화감독, 감독 등을 거치며 활약해왔던 우메즈 감독은 제작비가 부족해 활동이 뜸했으나, 성인물을 그리면 투자해주겠다는 제의에 종목을 바꿨다. <카이트>와 <메조 포르테>에서 H신이 적고, 액션신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H물을 하기는 하지만, 그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현재 우메즈는 <메조 포르테>의 TV판과 라는 이름의 신작을 준비 중이며, < 트리플X >의 감독 롭 코언이 <카이트> 실사작업에 참여 중이다.

이게 바로 `다이하드` 일세,<빵과 우유>

어쩌면 오늘이 인생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 주머니에 쑤셔넣은 해직통고서만 생각하면 선로보수 노동자 원씨는 눈앞이 캄캄해진다. 해결되지 않은 아들의 병원비는 어떡하며, 당장 내일부터 먹고살 일은 어떡하나. 노동자들에게 매일 간식으로 지급되는 빵과 우유로 허기를 달래면서 목숨을 부지할 필요조차 그는 느낄 수 없다. 열차사고를 위장해 보험금이라도 타낼 수 있다면 아예 깨끗이 죽고 말리라. 강원도 정선군 구절리, 수해 때문에 폐선으로 남은 열찻길 구간에서 조용히 영화가 촬영 중이다. ♣ 자살을 사고로 위장해 보험금을 탈 요량인 노동자 원씨. 눕긴 누웠으나, 열차는 오지 않고 마음은 무겁다. 노동자 원씨를 연기하는 배우 원풍연은 이 영화의 유일한 배우. 현장에 동료배우가 없다는 것이 생각보다 당사자를 많이 외롭게 하는 모양이다. 그는 촬영을 쉬는 순간마다 구석에 조용히 있거나 아예 없어지곤 했다. 올해 코닥이스트만 단편제작지원 시나리오 공모전의 당선작인 <빵과 우유>는, 자살을 결심했던 철길노동자가 기찻길 위에 떨어진 낙석을 처리하느라 ‘죽기를 포기하고’ 만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신연 감독은, 혼자 철길을 걸어가는 노동자의 뒷모습에서 인상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고, 배우를 물색하러 대학로를 돌아다니던 중 건물 벽에 그려진 광부의 얼굴에서 친동생이 떠올라 그를 섭외했다. 감독의 동생 원풍연은 연극배우다. 한여름의 쨍한 태양을 받으며 촬영이 진행돼야 하는데 그물거리는 날씨는 비협조적이기만 했다. 좀처럼 환해지지 않는 하늘을 수시로 올려다보며 스탭들은 바람따라 움직이는 구름의 모양으로 언제쯤 해가 드러날지 가늠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촬영 일정도 조금씩 늦어졌지만 <빵과 우유>는 9월 중순까지 후반작업을 포함해 모든 작업을 완료한 뒤, 코닥이스트만 지원작들에 자동으로 본선 진출 기회가 주어지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다. 사진 정진환·글 박혜명 ♣ “우린 준비가 다 됐다니까. 날씨만 받쳐주면 돼, 날씨만.” 잠깐이었지만 해가 나는가 싶어 후닥닥 촬영 준비에 들어갔던 스탭들. 다시 하늘이 어두워지는데도 무덤덤하다. 이런 식으로 김샌 적이 벌써 골백번이니, 해탈에 이를 때도 됐다.(왼쪽 사진) ♣ 촬영 리허설 장면을 소형캠코더로 테스트 촬영해 확인하고 있는 촬영부.(오른쪽 사진) ♣ 배우, 아니 동생의 모자를 고쳐 씌워주고 있는 감독이자 형. 둘은 감독의 전작 <자장가>에서 작업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 너무 많이 싸워서 다시는 같이 안 하려고” 했지만, 이 역할을 할 사람은 동생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형은 또다시 캐스팅을 제의했고, 동생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왼쪽사진) ♣ 해가 날 참인가보다. 감독 이하 스탭들은 후닥닥 촬영 모드로 돌입, 철길 위에 발을 올려놓고 머릿속으로 보험금을 계산하는 원씨의 테스트촬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렇게 리허설과 테스트를 마치고 슛 들어가려는 찰나 도로 하늘이 어두워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오른쪽 사진)

오! 형제여,끈끈한 듯 낯선, <오!브라더스>의 이정재&이범수

오, 브러더스라. 그런데 별로 형제 같지 않다. 친형제가 아니므로 당연하겠지만, 이정재와 이범수는 여러모로 닮은 구석을 찾기 힘든 사람들이다.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어깨를 드러낸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들어선 이정재는 소파에 앉으면서 먼저 주위를 살피는 반면, 이범수는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빨간 추리닝 바지에 회색 티셔츠를 한 세트로 갖춰 입고 와서는 윗도리 얼마 아랫도리 얼마 하며, 싸게 샀다고 자랑한다. 여기에 영화사 관계자가 귀띔해준 바에 따르면, 평소 말수가 많지 않은 이정재는 있는 자리도 가려 가지만, 스톱사인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 발화(發話)량이 무한대로 뻗어가는 이범수는 없는 자리도 만들어내 사람들을 모으는 타입이란다. 그런데 본래 형제끼리는, 외모나 습관을 빼고 닮은 구석이 별로 없는 법이다. 큰애가 욕심이 많으면 작은애는 양보에 익숙해지고, 애교 많은 누나 밑에서 자란 동생은 상대적으로 뻣뻣한 성격을 갖게 된다. 영화 <오! 브라더스>에서 이복형제로 엮인 이정재와 이범수가 잘 어울려 뵈는 것도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이 상반된 기류를 가진 탓이 있을 것이다. 이범수는 “형 상우가 동생 봉구를 나무라면서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우리 두 사람의 호흡이 정말 잘 맞는 걸 느꼈다”고 말한다. 사실 두 사람은 촬영장에서 슛이 들어간 순간을 제외하고는 “정재씨”, “범수씨”라며 꼬박꼬박 존칭을 덧대 부르는 사이다. 이렇듯 툭 터지지 않고 지속됐던 낯섦 혹 긴장감은, 이정재가 말한 대로 “내가 준비해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을 내다보고 준비도 더 많이 해오는” 상대배우의 열의 때문일 수도 있고, 5년 전 <태양은 없다>에서 주·조연이었던 관계가 주연이란 대등한 관계로 달라지면서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 묘한 긴장감 속의 호흡은, 결과적으로 상우와 봉구의 관계를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만들어냈고, 이제 두 사람은 전작 이후로 하지 못했던 혹은 그보다 더 전의 이야기들까지도 나누기 위해 상대 기자와 각각 마주앉았다. “실패보다 변신이 중요하다” 청년의 속을 채우는 것이 꿈과 의욕이라면, 이것이 다 털어질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젊었을 적 예상과 다른 현실, 혹은 그런 현실에 대한 인식이 꼭꼭 눌려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꿈을 묻는 건 무의미해 보일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데뷔 9년차 배우 이정재는 애늙은이 같았다. 웬만한 질문에는 대부분 심드렁해져서, 내일모레면 몇십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장래희망은 왜 물으실까 하는 표정으로 그는 쌍꺼풀 없는 눈을 한층 가늘게 접곤 했다. 카메라 앞에서 웃는 모습은 9년 전의 TV드라마 <느낌>에서처럼 여전히 환했지만, 이야기를 싣고 나온 그 목소리가 껄끄러운 혀를 굴러나오다 혓바닥 위로 몇번쯤 걸려 넘어진 듯 들렸다. “옛날에는 인기나 욕심, 이런 것만 있었는데 사실 나도 상업적인 배우니까 흥행에도 신경써야 한다는 거 알죠. 남의 돈으로 영화 찍으면서 책임은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너무나 부담스러운데, 그게 어쩔 수 없는 내 위치인 것 같아요.” 이것이 다름아닌 ‘심드렁’의 원인이었다. 거침없이 장래희망만을 말할 수 있는 젊은이의 순진함이나 어리광 따윈 더이상 통하지 않을 시점에 와 있다는 사실 말이다. 너무 일찍 데뷔한 탓에 그만큼 빨리 이쪽 세상의 생리를 알아버린 서른한살의 영화배우 청년은, 혹시 정신적인 ‘조로증’을 앓고 있는 건 아닐까. 전작 <오버 더 레인보우>까지 열두편의 영화를 찍어오는 동안, 이정재는 분명 배우로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눈빛만으로 모든 사태를 일갈할 수밖에 없었던 백제희가 이젠 바로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영화의 흥행은 종종 그의 옆구리를 비껴갔을지라도, 보장된 퀄리티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스타성 배우로서 큰 하락세는 없었다. <오! 브라더스>의 캐릭터 ‘상우’도 이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지 않다. 그런데 유독 자기 혼자만 또 다른 이상한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무슨 대단한 배우라고… 제가 한 게 뭐가 있어요. 한석규 선배처럼 한국영화의 관객 수를 확 끌어올리는 영화를 했던 것도 아니고, 문제작을 했던 것도 아니고, 해외영화제에서 상받을 영화를 했던 것도 아닌데.” 그의 짧은 한숨이 순간, 아버지들의 그것과 비슷하게 들렸다. 제 이름 석자로 혹은 능력으로 영화의 흥행이나 가계를 책임져야 할 때이지만, 막상 뒤를 돌아보면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손에 집히는 게 별로 없어서 저도 모르게 뱉어지고 마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가족들이 위로할지라도 아버지 스스로의 생각을 뒤집기는 어렵듯, 네임밸류 센 젊은 배우의 고집도 꺾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게 무기력인지도 몰랐다. 바람이나 욕심을 섣불리 내지르기엔 이미 많은 책임을 알아버린 조숙한 아이가 제 할말을 조금씩 남겨놓는 것처럼, 뜨거운 기대는 죄다 증발시키고 말았다는 투로 그는 스스로를 계속 빈털터리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정재의 자연적인 나이는 이제 서른을 갓 넘기고 있을 따름이다. 온갖 복잡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어지르고는 지쳐서 벌렁 누워버릴 때가 아니라는 걸 자기 자신이 모를 리가 없다. 열세 작품을 하기까지 연기에 관한, 배우로서의 자의식에 관한 어떤 짜릿한 순간도 맛본 적이 없다는 그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노력으로 찾아오든 갑자기 쇼크처럼 다가오든 나한테 오긴 올 텐데, 그게 언제 어떻게 올지는 알 수 없는 거고… 그런 게 설레고 기대되긴 해요.” 어느샌가 웃는다. 심드렁하던 그 표정이 딸랑, 하고 소리날 것 같은 미소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기다림의 시간을 노력으로 더 압축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여러 작품, 여러 캐릭터들을 하는 것에는 그런 깨달음을 얻으려는 이유도 있어요. 변신이 잘됐건 아니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변신이 잘 안 됐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바꾸는 게 낫다고 보는 거죠.” 이정재의 심드렁함, 혹 조로 증세처럼 보였던 건 어쩌면 엉터리 진단에 불과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너무 늦게 찾아온 사춘기 증세와 많이 닮아서, 새파란 청년의 열정적인 호흡을 늙은이의 한숨으로 잘못 들었던 것도 같다. 기죽지 않는 씩씩함, 혹은 천진함 웃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빨간 트레이닝 셔츠에 맨발, 주변이 캄캄해지도록 그을은 피부. 산책 나온 것처럼 헐렁한 차림의 이범수는 낯선 스튜디오가 오래 전부터 자기 자리로 정해져 있었다는 듯이 편하게 앉아 웃고 있었다. 주인보다도 더 주인처럼 보였지만, 그뒤에선 오래 인정받지 못했던 재능이 살짝,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전엔 내가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코미디 연기를 많이 한다고 그것만 봤던 거지. 그런데 나는 막나가는 코미디는 한번도 한 적 없어요. 이번 영화 <오! 브라더스>도 마찬가지고.” 눈밑에 잘게 새겨진 서른몇살의 잔주름이 그 억울한 마음의 흔적이었을까. 그러나 이범수는 “힘들 때일수록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버티면서 자신을 다독여왔다. 오만하다고 오해받더라도,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도록. “이면이 없는, 액면 그대로를 믿을 수 있는 인간”이고 싶어하는 이범수는 “내 안에 천진함이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오! 브라더스>의 봉구를 연기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했다. 이범수는 “봉구는 천진한 눈망울이 가장 중요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나이는 열두살, 외모는 삼십대 중반. 조로증에 걸린 꼬마 봉구를 연기하기 위해서 초등학교 4학년 수업을 참관하기도 했고, 집 근처 초등학교 꼬마들이 집에 가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기도 했지만, “눈동자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범수는 시나리오를 받아들고선 자신을 돌아봤다. 나이를 먹었지만, 그래서 많이 작아졌겠지만, 내 마음 어딘가엔 아직 먼지를 타지 않은 아이 같은 부분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발견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나를 보호하고 남을 밀쳐내면 행복하겠어요? 차라리 난 상처받는 편을 택하겠어요.” 남자다운 고집과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이 사이좋게 섞여 있는 배우. 많은 이들이 <정글쥬스>의 덜떨어진 양아치나 <태양은 없다>의 음산한 깡패, <하면 된다>의 어눌한 촌놈으로 이범수를 기억할 뿐이다. 그러나 이범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잘 들여다봐야 하는 사람이다. “너무 답답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 알리는 광고를 만들어볼까 하는데”라며 농담을 던지지만, 그 농담에는 곧은 뼈가 심지를 세우고 있다. 단역과 조연으로 보낸 세월이 12년. 그 시간이 흐르고서야 이범수는 <정글쥬스>로 당연히 자기 몫이라고 생각했던 주연이 됐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는 “맨발로 뛰어왔다”. “판에 박힌 조연을 계속 하면서 편한 길을 가고 싶은 욕망도 있었지만” 그리고 “불량과자처럼 달기만 한 나쁜 영화 시나리오도 많이 받아 봤지만” 버릴 수 없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범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영화는 용납하지 못한다. 그는 <몽정기>에 출연하면서 스스로 촌스러운 노총각 선생님의 모습을 택했다. 그 편이 인간답기 때문이었다. <오! 브라더스>의 봉구를 연기하면서도 신파로 흐르지 않도록 열심히 자신을 다스렸다. 열두살 꼬마라면, 당연히 그렇게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식인이라며, 영화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는 자신과 다른 배우들에게 온갖 짐을 다 얹어주려 들었다. 그늘에 묻혀 있던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것처럼, 이범수는 벌써 다른 영화 촬영에 들어갔다. 신작 <안녕! 유에프오>에서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시각장애인을 사랑하는 버스 운전사. 그가 가지고 있는 “순박한 심성”을 드러내는 영화가 될 것이다. “동네 슈퍼에 들러 하드 하나 사 가지고 빨아먹으면서 걸어갈 때 행복하다”는 순박한 이범수를. 어디선가 비닐봉지 가득 하드를 담아들고 슬리퍼를 끌고 있는 그를 만난다면, 이 사람 지금 행복하구나, 믿어도 좋을 것이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젠틀맨리그>의 스튜어트 타운센드

“상아와 장미꽃잎으로 만들어진 젊은 아도니스!” 세월과 죄과는 초상화가 감당할 뿐 그 자신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사악한 미청년 도리안 그레이. 그의 창조주인 오스카 와일드가 무덤에서 일어나 영화 <젠틀맨리그>를 본다면, 적어도 캐스팅에 이의를 제기하진 않을 것 같다. 스튜어트 타운센드(Stuart Townsend). 신비롭고 불길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의 카리스마는 미모의 흡혈귀 미나 하커뿐 아니라 스크린 밖의 여성들까지 결박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스튜어트 타운센드가 낯이 익다면, 그가 단지 브랜든 리나 주드 로나 조니 뎁을 닮아서가 아닐 것이다. 그는 몇번인가, 우리가 알 만한 영화에 얼굴을 내민 적이 있다. <퀸 오브 뱀파이어>에서는 음산한 록음악으로 뱀파이어 아카샤의 잠을 깨우던 레스타트로 출연한 바 있지만, 이 작품이 ‘알리야의 유작’이 되면서, 그는 죽은 알리야의 그늘에 묻혀버렸다. 마이클 윈터보텀의 <원더랜드>에서는 애인이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와 일탈적인 관계를 맺곤 하는 냉소적인 남자로 출연했지만, 앙상블 드라마라는 극의 성격상 크게 돋보이진 않았다. <어바웃 아담>에서는 케이트 허드슨을 비롯한 세 자매를 동시에 유혹하고 희롱하는, 천재적인 바람둥이의 면모를 선보인 바 있다. 이처럼 그는 언제나 아름다운 연인이거나 위험한 ‘옴므파탈’이었다. 타고난 미모 덕, 또는 미모 탓이었다. 그 때문에 빚어진 불운한 사건도 있었다. 스튜어트 타운센드는 <반지의 제왕>에 아라곤으로 캐스팅돼 사나흘 촬영까지 진행한 상태에서, “창작에 대한 견해 차이로” 도중 하차했다. 피터 잭슨은 그가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불평했고, 타운센드는 덩치 큰 프로덕션과 궁합이 맞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사정이야 어떻든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선이 굵은 비고 모르텐슨이 소화해낸 아라곤은, 강인한 전사보다는 달콤한 연인의 이미지에 가까운 타운센드에겐 애초 ‘맞지 않는 옷’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같은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혈관에 흑맥주라도 흐르는 듯 터프한 야성남 콜린 파렐과도, 그는 재미난 대조를 이룬다. 극장도 없는 더블린의 작은 어촌에서 나고 자란 스튜어트 타운센드는 한때 그 좁고 답답한 곳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았더랬다.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섭렵하면서도 여자친구가 다니던 연기학교에 따라 입학하기까지 그는 배우가 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연극무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2000년 이후 할리우드에 진출했지만, 무대에 대한, 아일랜드에 대한 타운센드의 애착은 여전하다. 스릴러 <트랩트>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췄던 샤를리즈 테론과는 실제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 “길고 컴컴한 터널 끝에서 만난 한줄기 빛”과 같은 연인 때문일까. 그의 앞길은 일사천리다. 프랑스 코미디 <제임스 바타이유의 귀향>, 연인과 함께한 시대극 <헤드 인 더 클라우드>로,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넓혀갈 전망.

<바람난 가족> 놀라운 바람

<젠틀맨 리그>와 <바람난 가족>이 개봉 첫주 1, 2위로 좋은 출발을 보였다. 숀 코너리라는 든든한 배우를 앞세운 <젠틀맨 리그>는 앨런 쿼터메인, 뱀파이어, 투명인간 등 19세기 영국 문학의 전설적인 주인공 7명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는 만화적 발상(원작이 만화다) 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배급사에 따르면 첫주말 전국관객은 54만명 정도. 놀라운 바람을 일으킨 건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이다. <젠틀맨 리그>보다 적은 스크린 숫자로 출발한 데다 ‘야하다’고는 하지만, 사회의 가치관을 들쑤시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영화에 서울 7만4천여명, 전국 44만여명의 관객이 든 것이다. 게다가 영화가 완성된 뒤 일반인들의 인터넷 펀드로만 20억원을 투자받았고 다음주부터 시작될 베니스영화제에도 초청됐으니, 투자자가 없어 자체제작비로 영화를 완성해야 했던 명필름으로선 그동안의 마음고생 기억을 날려버렸을 듯 하다. 덕분에 이 영화는 이번주 전국 스크린 숫자를 131개에서 150개로 늘리게 되었다. 20일 오전현재 맥스무비의 예매순위에서도 <바람난 가족>(30.69%)은 <젠틀맨 리그>(19.38%)를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라있다. 이번주 개봉작 가운데는 스파이크 리 감독의 와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스위밍 풀>이 단연 눈에 띈다. 마약거래죄로 내일이면 감옥에 가야 하는 몬티의 하루를 그린 가 사색적이며 사람을 침잠케 하는 여운긴 영화라면 <스위밍…>은 미스테리한 분위기로 영화를 이끌다가 마지막 반전으로 방점을 찍는 깔끔한 작품이다. 이번주엔 무엇보다 세네프 영화제(21일 개막)와 광주국제영화제(22일 개막)가 영화팬들의 마음을 달뜨게 할 것 같다. 특히 두 영화제는 각각 러시아의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와 미국의 존 포드라는 전설같은 두 감독을 본격소개한다. 타르코프스키와 함께 러시아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음에도 정부의 박해로 수용소 살이를 하고, 일찍 숨져버린 파라자노프의 마술같은 영화들 <석류의 빛깔><수람요새의 전설> 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길. 광주에 간다면 웨스턴에 인간을 그려넣었던 거장 포드의 작품들을 15편이나 볼 수 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바람난 가족> <4인용 식탁>의 여성들,몸을 이용해 제도를 돌파하다

남근 중심에서 자궁 중심으로 옮아가는 한국영화 1. 프롤로그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바람난 가족>은 바람에 대한 영화가 아니었다. 페미니즘, 일부일처제, 불륜과 간통의 질곡에 기대어, <눈물>보다는 <처녀들의 저녁식사>에 가깝게, 임상수는 처음으로 성이 아닌 죽음과 죄의식, 몸의 문제를 끄집어낸다. 주인공 호정은 춤을 전공했다는 설정에서도 드러나듯이 몸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이다. <바람난 가족>의 주인공 모두는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마다 손을 베이고 몸을 다치고 피를 토한다. 마사지를 하고, 요가를 하며, 춤을 추고 등산을 하는 주인공들. 몸을 위해 살고, 몸이 마음을 배신하고, 몸이 늙으면 죽어버리는 유물론적인 진실을 포획하며, <바람난 가족>은 호정이 초음파로 새로운 생의 근원인 자신의 자궁을 마주 대하는 것으로 끝난다. 텅 빈 체육관은 마치 호정의 텅 빈 자궁같이 외로워 보이지만, 그녀는 또 다른 정자 제공자였던 남편을 걸레질 한번으로 아웃시킨다. <바람난 가족>이 의도하는 그리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는 누가 보아도 급진적이다. 가족의 해체는 전적으로 호정과 시어머니 두 안주인의 손에 달려 있고, 남자들은 이런 여자들을 막지 못한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역사상 새로운 <안토니아스 라인>의 탄생으로 보이는 호정의 욕망, 자신의 유전자만으로 이루어진 친자 가계를 형성하려 드는 호정의 선택은 과연 온전히 그녀의 욕망이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여성감독인 이수연은 으로 극단의 답을 한다. (공포영화로서는 거의 낙제점에 가깝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전복적인 모성 이데올로기를 들이밀며, 영화는 ‘접시를 깨자’의 표어를 지나 ‘밥상을 깨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바람난 가족>이나 <싱글즈>가 보여주는 미혼모 신드롬은 남성감독들이 의도적으로 주장하는 캐치프레이즈에 가깝게 느껴진다. 반면 아이 셋과 투신자살한 이 땅의 여성과 동일한 공포를 체현하는 은 훨씬 더 지상의 기운을 가깝게 받고 있는 듯 보인다. 의 등장은 <자유 부인> 이래 유구했던 대한민국 여성들의 욕망이 자궁을 채우는 것에서 비워내는 것으로, 외간남자와의 연애를 통한 부계적 혈연의 교란이 아닌 ‘거부’로 변해버렸다는 점을 분명히 증거한다. 아이는 추락사하고, <소름>과 달리 어머니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했던 여자는 남편에게 구타 대신 보호를 받는다. 이렇듯 변화하는 모성 이데올로기 앞에서, 변화하는 남과 여 앞에서, 다시 한번 한국영화 속 여자들의 자궁을 명상해본다. <여고괴담>에서 <바람난 가족>까지, 존재 자체의 연원을 잃어버린 듯했던 남한 여자들이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궁을 확인하고 바라보기까지, 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린 것일까? 2. 사라진 남한 여자들 - 회피된 자궁 시기 한때 이 땅의 영화에서 남한 여성들이 아니 처녀들이 사라져간 시기가 있었다. 아마도 시작은 98년 나온 <여고괴담>부터였을 것이다. <월하의 공동묘지> 이후 산발머리에 피를 뚝뚝 흘리며 나타나던 한국 공포영화 속의 처녀귀신들은 이제 단정한 교복 차림의 소녀가 되어, 한국사회의 억압을 증거하는 전령이 되어 나타났다.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2000년 이후 펼쳐질 자궁 공포증에 대한 하나의 증후라는 것을 감지하지는 못했다. 이후 99년과 2000년 대한민국 흥행의 역사를 새로 쓴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 두 영화주인공 모두가 이 땅이 아닌 어떤 곳, 북한 여자 혹은 중립국에서 날아들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사랑과 조국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방희-이명현(김윤진)은 맑은 물에서만 사는 물고기 쉬리인 동시에 히드라로 규정된다. 궁극적으로 <쉬리>의 내러티브와 정서의 핵심에는 여성이라는 특별한 성차의 인간에게 부여되는 사회적-개인적 욕망의 분열, 그 화합되지 않는 정체성의 분열에서 나오는 슬픔이 반전의 함정에 싸여 있었다. 또한 외국인, 황인종 그리고 여성이라는 비주류의 타자를 세겹으로 겹쳐놓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소피(이영애)는 판문점의 금을 비집고 들어가 남성 비밀결사의 비극을 파헤치지만 끝내 그 공동체의 언저리를 서성일 뿐이다. 이방희-이명현-소피. 그녀 모두는 강인했지만 차가웠고, 적당히 지적이고 무성적인 여자들이었다. 그리고 신은 또 여자들을 만들고 스크린 위의 여성들은 계속 수입되었다. 국가 대표 호구이며 삼류 깡패인 강재에게 파이란은 먼 나라에서 온 구원의 여신이고 백지 같은 영혼의 그녀는 위장결혼한 강재와 털끝 하나 스치지 못한다. 처음 본 남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파이란은 <쉬리>의 여전사와 달리 안온하고 따뜻한 전근대적인 여성이었지만,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의 여성주인공들처럼 무성적인 여성이기도 했다. 그리고는 사랑을 아는 자 혹은 구원을 아는 자로서 자연을 대표하는 할머니의 열풍, <집으로…>. 흥미로운 것은 여성들이 순결했을 때, 이국에서 몰려들었을 때, 할머니라는 안전한 타자의 모습으로 등장할 때, 임신과 낙태, 불륜과 성적 일탈의 이슈는 당시 영화에 전혀 등장할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애국심에 울고, 사랑에 울고, 생활고에 울고, 손자 때문에 울지만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아야만 임무를 완수하는 이 땅의 처녀들은 아닌 것이다. 물론 21세기를 살아가는 남한 여자들, 그 어린 백성들의 사랑스런 자화상이었던 <고양이를 부탁해>가 있긴 했지만, 그녀들은 20살의 약동하는 섹슈얼리티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떡볶이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 보이는 소녀 취향의 여성들이었다. 3. 학대받는 자궁들 - 자궁 공포의 시기 그것은 다 커버린 사춘기 딸을 외면하는 아버지의 심리처럼, 가임 가능한 남한 여자들에 관한 철저한 외면이자 회피였다. 국외자라는 옷을 입고 혹은 할머니라는 대리 타자의 몸을 빌려서야 순정한 여주인공이 되어 나타나는 이 이상한 현상 앞에서, 그것이 실제로는 당시 대한민국에서 순결 이데올로기가 본격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데에 대한 대한민국 남성들의 공포이자 침묵이었다는 것은 이후의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다. 2002년 판타지영화 속에서 부활한 젊은 여성들의 육체는 그 부활의 대가라 하기엔 너무나 처참한 몰골로 구타당하고 살해당한다. 이 시기의 판타지물, <하얀방>이나 <폰> 혹은 등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집중적으로 유산과 낙태의 문제를 원죄적 공포와 연결짓는다. 유령이 된 혹은 사지절단당한 그녀들의 죄는 분명하다. 그들은 원조교제를 했고, 궁극적으로는 적으로 밝혀진 남자와 동침을 했고 그들의 아이를 가졌다. 이미연 감독이 만든 <버스, 정류장>은 그러한 여주인공에게 깊은 연민과 면죄부를 주었지만 나머지 영화들은 그럴 수 없었다. <하얀방>은 기실 낙태 뒤 텅 비어 있는 자궁, 낙태된 아이들의 영혼이 물러갈 줄 모르는 죄로 물든 자궁에 대한 은유에 다름 아니다.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피를 흘림으로써 스스로를 정화하고, 아이를 가졌을 때 오히려 핏빛 소파가 되는 자궁이 하얗다는, 이 상징적 거세의 이미지는 여성의 임신과 낙태에 대한 지독한 공포의 현현으로 여성관객을 짓누른다. 역시 월경 주기와 범죄 주기를 일치시키며 범죄심리학에 몰두하더니 불현듯 범인의 동기를 범인의 어머니에서 온 것, 즉 낙태라는 태곳적 원죄에서 건져올린다. 에서 낯선 사내에게 철삿줄로 목졸림을 당했던 미혼모의 내장이 튀어나온 모습, <하얀방>에서 혼전 아이를 가진 상태로 애인에게 구타를 당하는 유실의 모습은 결혼이라는 합법적인 제도 외의 정자를 받아낸 여성들의 자궁이 어떤 운명에 처해지리라 하는 것을 만방에 공포하는 잔혹한 이미지였으리라. 그것은 처벌이었다. 그것은 저잣거리의 효수였고 공포의 정치학이었다. 여성전사로, 지고지순한 구원의 여신으로 수입된 외국 여성들이 남성 판타지의 대상이 될 때, 그녀의 자궁은 온전히 보존된다. 그러나 유산을 하고 낙태를 하면서 혹은 영화 <소름>에서처럼 자신의 아이를 죽인 여성은 철저히 사지절단당하고 자궁은 너덜너덜해진다. 무너져가는 아파트의 이미지가 선명한 <소름>의 텅 빈 자궁에 대한 은유는 그래서 소름끼친다. 그녀들은 슬프고 불온하고 용감하고 지적이고 심지어 엽기적일 수 있지만 아이를 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 한몸 고이고이 지켜 서울대 법대 출신의 남자에게 시집가서 ‘가문’이라는 그 남근 중심적 줄줄이 사탕의 가계도를 고이 접어 나빌레라 하는 <가문의 영광>은 가부장제 지킴이 여성의 전형적인 성공담이 아니던가? <여고괴담> 이전에 여공/식모, 호스티스, 유령 혹은 자유부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판타지 영화 속 여성들은 그 강렬한 섹슈얼리티와 신분 상승을 교란할 위험으로 오랫동안 이 사회의 타자/괴물의 모습을 빌려서야 스크린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더이상 나쁜 여자가 나쁜 여자가 되지 못하는 90년대 후반기 들어, 여성 관객의 욕망과 남성감독이 만든 영화들은 끊임없이 불화했다. 지극한 구원의 여신의 자리에서 추락한 대한민국의 처녀들은 다시 판타지의 틀 안에서 울부짖고 징벌받고서야 현실로 귀환하였고, 젊은 관객의 욕망과 조우하지 못한 <고양이를 부탁해>와 <버스, 정류장>은 결국 여성관객에게조차 외면받는다. 4. 반격 - 수컷들의 악몽 그러나 반격은 시작되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주인공 연희(엄정화)는 2002년의 여성들이 욕망하는 결혼과 연애의 병행이라는 판타지를 향해 내달리며, 본격적으로 여성관객의 환대를 받는 최초의 여성이 된다. 낮에는 사랑하는 남자의 옥탑방에서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을 하다 밤에는 적당한 부와 안락함을 주는 법적인 남편과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는 연희의 줄다리기는 위험하지만 짜릿하게 안락한 구석을 지닌다. 그러나 그녀의 이중성은 결혼제도 자체에 대한 혁신보다는 결혼제도의 땜빵이나 공상 정도의 중혼에서 멈춰진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영화 <밀애>와 함께 2002년 여성관객이 뽑은 최고의 여성영화에 올랐다. 사실 가부장제를 발로 차버리는 대신 중혼의 욕망을 고집하는 연희의 행동은 2002년 대한민국 사회의 무의식에 도사린 자궁 공포증의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일종의 악몽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연희가 대학강사인 준영(감우성)과 남편 모두와의 삶을 병행하는 한, 그녀의 자궁에는 두 남자의 정자가 오락가락할 것이다. 생물심리학적으로 많은 여자에게 가급적 자신의 씨를 퍼뜨려야 하는 수컷의 입장에서 그것은 실패이자 수치요, 두려움이자 분노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이 싸가지 없는 여성의 욕망대로라면 가문의 영광이 재현되기는커녕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두 사내의 정자가 한 자궁에서 섞일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자신의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한, 그건 미친 짓을 지나 수컷들의 악몽에 다름 아니게 된다. 그러니 이제는 알 수 있지 않은가.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엿보이는 연희의 욕망이 결국 한국 남성들에게는 지극한 공포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2002년 판타지영화에서 명멸하는 자궁 공포증은 이 땅의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순결 이데올로기가 파괴되는 자리에 피어난 독버섯이다. 동시에 그것은 심지어 그 흔한 TV드라마에서조차 옥탑방 고양이가 야옹거리는 상황에 직면한 이 땅의 남성들의 불안, 그 불안이 여성들의 자궁에 투사된 가장 고전적인 형태의 처벌이기도 했다. 이후 여친들의 유산과 순결의 문제는 이제 역으로 대한민국 남성주인공들이 보여줄 수 있는 순정의 표상이 되어갔다. 섹스코미디를 표방했던 <색즉시공>에서 차력을 하는 은식(임창정)의 행동을 보라. 그는 심지어 친구의 아이를 임신하고 낙태를 한 은효(하지원)에게 미역국을 끓여 바치는 순정을 보여준다. 그가 병상의 은효에게 스스로를 때리고 차면서라도 웃음짓게 만드는 장면은 <색즉시공>이 지니고 있는 물리적 마조히즘의 어떤 극한을 보는 것 같다. 여자는 순정을 남자는 순결을 택하며 신파와 멜로와 코미디를 샌드위치시켰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또 어떠한가. <편지>류의 죽어서까지 잘해주는 남자를 지나, <엽기적인 그녀>와 <색즉시공>의 남자들 역시 불가능한 남자들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죽어서 잘해주기보다는 살아서 너그러운 남자, 그 너그러움이 거의 마조히즘에 가까운 남자들은 일련의 판타지영화에서 보여지는 가학적 살인자의 모습과 거의 대극을 이루는 남성 판타지의 두축을 이루어낸다.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2002년 대한민국에서 변화하는 여성들과 변화하지 않는 남성들의 의사소통에 교집합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담지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해안선>에서 이윽고 군인들의 공동의 씨받이가 된 미영이 그들 남성 공동체의 손에 마취제도 없이 강제로 유산당하는 설정은 김기덕의 자장 안에서뿐 아니라 사회문화학적으로도 의미심장하게 보여진다. 누구나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공동의 여자에 대한 판타지와 그 결과로 빚어지는 내 것일 수도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는 태아.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해안선>이 어떤 점에서 통한다는 주장은 과연 지나친 추론일까? 5. 에필로그 그러므로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람난 가족>과 <싱글즈>의 호정과 나난이 얼마나 먼 길을 돌아서 왔는지를. 2003년의 히로인들은 더이상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가 꿈꾸는 식의 중혼을 욕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부장제의 바깥, 그 경계를 돌파하면서 씩씩하게 미혼모 발대식을 선포한다. 역시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적어도 이제 2003년 여성주인공들의 자궁은 더이상 피 흘리지 않고, 여성들의 육체의 한 부분이 되어간다. 나는 그 상징을 자신의 자궁 초음파 사진을 찾아 보는 문소리의 눈길에서 찾아본다. 여기에 맞물려져서 더 흥미로운 쪽은 바로 남자주인공들의 태도 변화이다. <바람난 가족>은 남자들이 좀더 쿨할 것을 요구한다. <바람난 가족>의 주인공 영작이 정작 직면한 것은 여자가 아닌 아버지였고, 성이 아닌 죽음이었다. 그가 역사의 과오를 증명하는 한 무더기의 유골을 마주 대한 것처럼, 영작은 가족 해체에 대한 죄의식과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직면하고서 다른 여자와의 섹스를 통해서 이를 극복하려 한다. 그러나 기실 영작은 쿨하려 하지만 결코 쿨하지 못했다. 바람난 아내를 구타하고 또 그 아내에게 내쳐지는 영작은 한국 영화역사에서 성과 가족을 분리하려는 이중적인 몸짓이 궁극적으로 아직은 실패했음을 알려준다. 반면 의 남자주인공 정원은 영작보다 더 적극적으로 친부 살해를 감행하고, 이후 그 귀신을 볼 수 있는 초능력을 물려받았다. 그가 본 죽은 아이는 자신의 죽어버린 어린 시절이자, 이제는 서서히 해체되어가는 대한민국의 가족제도, 그 질긴 밥상머리 앞에서는 아이들의 현현이기도 할 것이다. <바람난 가족>과 모두가 입양과 아이들의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사실, 더 놀랍게도 이들 영화들에서 아이들이 모두 추락사한다는 유사 설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자궁이냐 사회냐 가족이냐 하는 한국영화 속 여자주인공들의 선택은 이 사회의 뿌리 자체를 뒤흔드는 어떤 비장하고도 절박한 기운을 휘감고 있다. 분명한 것은 80년대 리얼리즘 세대라고 일컫는 박광수, 장선우 그리고 최근의 이들의 계보를 잇는 이창동의 영화만 해도, 가족은 변화하는 물질주의와 광포한 근대성의 균열을 드러내는 진원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그 다원적인 복합체는 가족에서 여성들의 자궁으로, 체제에서 몸의 문제로 좁혀지고 있다. 그것은 80년대 이전의 영화들이 중심과 주변을, 아버지와 아들을 가르면서 그 가운데 자유부인을 끼워놓았지만, 2000년대 이후는 가정과 사회와 대안가족으로서의 경계를 허무는 정반대의 작업이 될 것이라는 점을 예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90년대와 2000년대 한국영화는 그 서술 구조가 남근 중심에서 자궁 중심으로 옮아가는 과도기로 기록될 듯도 하다. 아마도 유산과 낙태, 출산 같은 자궁으로 해낼 수 있는 그 모든 삶의 비밀과 제의들은 순결과 이혼과 모성 이데올로기와 동성애, 동거 같은 모든 대안적인 가족 양태에 대한 유혹과 혼란의 진원지로서 한국영화 속에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처녀들이 남편을 빼앗아가는 아줌마의 경쟁자가 아닌 아줌마의 동료가 되어 ‘여자들의 저녁식사’를 허할 날은 있을 것인가? 그날까지 우리를, 우리 사회를, 우리 가족을, 우리의 욕망을 끊임없이 반사해내고 있는 자궁은 우리의 거울이다. 공포의 자생지가 아닌 희망의 근거지로서.

2003 광주영화제 추천작 13편 그리고 +α [1]

빛고을의 불타는 영화들 시네필을 매혹하다 2003 광주영화제 추천작 13편 그리고 +α ‘시네필’의 천국 2003 광주의 문이 열렸다. 예년보다 불어난 몸집, 풍성해진 작품, 다양해진 행사들로 제3회 광주국제영화제가 손님들을 기다린다. 15편이 장전된 서부영화의 수호신 존 포드의 회고전, 번뜩이는 총구를 마주할 60년대 일본 액션영화 특별전, ‘탐욕’과 ‘금욕’의 양단을 보여줄 호아오 세자르 몬테이로와 모리스 피알라의 추도전이 굵직하게 서 있고, 아프리카와 팔레스타인 등 변방의 신예를 끌어올린 영시네마 부문과 각국의 거장들이 자웅을 겨루는 월드시네마 부문, 그리고 다양한 미학으로 새롭게 마주할 논픽션 시네마 부문이 펼쳐져 있다. 부대행사로는 일본 비평계의 거성 하스미 시게히코와 을 저술한 미국의 영화학자 태그 갤러거가 참석하여 들려주는 ‘존 포드를 말한다’ 시네포럼이 단연 돋보인다. <레드 새틴>의 감독 라자 아마리가 내한할 예정이며, <시네마니아>의 안젤라 크리스티리브는 ‘사람들은 어떻게 시네필이 되는가?’의 시네포럼에도 참석한다. 자, 더 넓고, 더 친숙한 의미의 시네필을 위한 광주국제영화제에서 당신의 영화애를 확인하시기를. - 편집자 ▶ 광주영화제 상영시간표 바로가기 프로그래머 추천작 6편-광주를 찾은 거장과 신예 연륜은 시대를 감싸고, 시선은 현실을 찌른다 That Day | 라울 루이스 | 프랑스&스위스 | 2003년 | 105분 | 컬러 생명을 거두시는 신에게 경배를 <그날> 스위스 근미래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기로 되어 있는 리비아는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다. 그녀는 무엇에라도 홀린 듯, “내일은 내 생애 최고의 날”이 될 거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날’이 온다. 전날 우연히 마주쳤던 미치광이 에밀은 정신병원을 탈출하여 리비아의 집에 찾아들고, 그는 리비아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이유없이 하나둘씩 죽여나간다. 그러나 그 살인의 행각이 신의 뜻이라도 되는 듯, 리비아와 에밀은 찬송가를 부르고, 서로 알 수 없는 친화감에 휩싸여 기이한 문답을 나눈다. 결국 집안 한켠에는 살해당한 자들의 원탁이 마련된다. <도난당한 그림에 대한 가설> <범죄의 계보학> 등 초현실주의 경향과 다큐멘터리 양식을 동시에 지향해온 라울 루이스는 과연 루이스 브뉘엘의 적자라는 비유에 걸맞게 광기어린 침묵으로 뒤엉킨 촌극 한편을 만들어낸다. <그날>은 2003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이다. Tycoon: A New Russian | 파벨 룽긴 | 러시아 | 2002년 | 128분 | 컬러 신세기 러시아의 창세기 <뉴 러시아> 파벨 룽긴의 <택시 블루스>(1990)는 세기말 러시아에 휘몰아친 개혁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기괴한 결핍의 풍자극이었다. <루나 파크>와 <결혼>을 만들며 파벨 룽긴은 그 시기를 실제로 십여년쯤 보냈고, 다시 이 영화 <뉴 러시아>를 통해 그때, 그곳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영화는 주인공 플라토의 죽음으로부터 시간을 거꾸로 센다. 1988년, 소비에트 연방의 경제적 파탄기를 이용하여 플라토와 네명의 친구들이 거대 불법 사업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사업가로 성장하는 궤적들을 현재 살아 있는 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뜯어나간다. 마치 신세기 러시아의 창세기를 다루듯, 또는 러시아의 ‘시민 케인’을 상상하듯,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에서 성공한 한 개인의 뒤안길을 보여준다. “메르세데스 안에서 인생을 보내고, 소비에트 따위는 잊어버리고.” 이 희망의 가사가 지금은 무엇을 반영하는지를 차분한 시선으로 뜯어본다. Revenger’s Tragedy | 알렉스 콕스 | 영국 | 2002년 | 109분 | 컬러 복수의 칼을 갈아왔단다 <복수의 비극> 빈디치는 10년 전 자신의 결혼식날 독살로 아내를 잃는다.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해 어디론가 사라졌던 빈디치는 아내를 죽인 듀크를 파멸시키기 위해 2011년 리버풀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이미 거물이 된 듀크를 파멸하려는 계획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듀크의 아들이 강간혐의로 구속되면서 빈디치는 복수의 기회를 잡게 된다. <복수의 비극>은 <리포맨> <시드와 낸시>를 통해 국내에도 이미 탄탄한 컬트팬을 형성하고 있는 알렉스 콕스의 새로운 상상력 신천지를 보여준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죽음의 나침반>을 소재로 신비한 형이상학의 이미지를 다루기도 했던 알렉스 콕스가 예의 그 기발한 코믹함과 넘치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어둡고, 폭력적인 토마스 미들톤의 1607년작 <복수의 비극>을 근미래의 시간대로 옮겨놓는다. Since Otar Left | 줄리 베르투첼리 | 프랑스 | 2003년 | 102분 | 컬러 착한 거짓말 <오타르가 떠난 후> 돈을 벌기 위해 그루지야를 떠나 멀리 프랑스로 간 아들 오타르. 아들을 천리 타국에 보낸 백발의 노모는 오로지 그의 편지와 전화를 삶의 낙으로 삼고 살아간다. 그러나 오타르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가 오고, 누이와 조카는 노모의 상심을 걱정하여 거짓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무려 일곱달 동안 아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노모는 이상한 기운을 느끼며 직접 프랑스로 건너갈 결심을 세운다. 삶의 끝에 이른 노모와 지루한 삶을 연명하는 딸과 그런 부모세대를 떠나고 싶은 손녀. 이들이 함께 프랑스로 향한다. <오타르가 떠난 후>는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작품에서 AD로 함께했던 줄리 베르투첼리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이다. 한 가족 구성원의 죽음을 두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펼치는 슬프고 아름다운 거짓의 드라마가 영화의 마지막을 감싼다. Our Father | 마하마트 살레 하룬 | 차드 | 2002년 | 84분 | 컬러 당신의 아버지는 안녕하십니까 <아부나> 영화가 시작하면 융단 같은 사막을 건너 한 사내가 사라진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는다. 아버지는 그렇게 떠나간다. 축구시합의 주심이 되어주기로 했던 아버지가 홀연히 그들 곁을 떠나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두 아들은 상심한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무책임하다고 하고, 동생은 형에게 무책임함의 뜻을 묻는다. 급기야 아버지의 일터로 찾아가보지만 그들이 알게 되는 사실은 그가 이미 2년3개월 전부터 출근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어머니는 두 아들의 버거운 양육을 타개하기 위해 기숙학교에 그들을 맡긴다. 여전히 동생은 끈질기게 아버지를 찾고 싶어하지만, 형은 새로운 이성의 사랑에 눈뜨게 된다. <아부나>는 끝내 슬픈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차드를 모국으로 둔 마하마트 살레 하룬은 그 슬픈 이야기를 짜내지 않고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바이 바이 아프리카>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든 <아부나>는 슬픔을 내어주고 또 다른 안식을 얻어가는 동화 한편이다. Rana’s Wedding | 하니 아부-아사드 | 팔레스타인 | 2002년 | 90분 | 컬러 그녀의 팔레스타인식 웨딩<라나의 결혼식> 팔레스타인 감독 하니 아부-아사드의 <라나의 결혼식>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인물들과는 다른 이유로 길을 달리고, 차를 몰고, 무언가를 절실히 찾으면서 예루살렘의 접경지역들을 헤매고 다닌다. 미혼여성 라나는 아버지에게서 갑작스러운 엄포를 듣는다. 10시간 이내에 아버지가 지정한 명단에서 남편감을 골라내지 못하면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외국으로 떠나야만 한다. 그래서, 라나는 연인 칼릴을 찾아 집을 나선다. 그런데, 왜 10시간 안에 삶의 가장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걸까? 이유는 그녀가 방을 나선 순간부터 드러난다. 도처에 널린 군인들, 죽어 실려가는 사람들, 곳곳에 쳐진 바리케이드들. 돌과 총의 전투가 오고가는 그 현실이 이유이다. 하니 아부-아사드는 팔레스타인의 어떤 사적인 삶이 거시적인 환부에 어떻게 영향받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차 안에서 식을 올리고, 거리에서 피로연을 여는 <라나의 결혼식>은 바로 팔레스타인의 현재에 관한 위태로운 위안이자, 결코 그 땅을 버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논픽션 시네마<돈키호테>가 엎어진 사연 들어보실라우? 예년과 달리 올해의 광주는 특별프로그램으로 ‘논픽션 시네마’ 부문을 마련했다. 극영화에서 만날 수 없는 기록의 숨결들이 보고 싶다면 이런 목록을 참조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마이클 스노의 <코퍼스 칼로섬>(2002)과 케이스 풀튼의 <로스트 인 라만차>(2002)이다. 아방가르드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 <파장>으로 내러티브의 제한을 벗어나 실험적 미학의 한 선례를 남긴 마이클 스노는 이 작품에서 역시 텅 빈 모니터를 응시하는 사람들을 좌우 반복적인 패닝숏으로 보여주는 등 독특한 다큐멘터리 양식을 보여준다. <로스트 인 라만차>는 테리 길리엄의 <돈키호테>에 관한 메이킹필름이다. 그러나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무산되었는가에 관한 기록이다. 2000년 9월 촬영을 시작한 <돈키호테>는 10년의 준비기간을 거치고, 3200만달러의 제작비 조달에 성공했음에도 갖가지 재앙들을 거치며 결국 무산되었다. <쓰리 킹즈> <시티 오브 엔젤>, 그리고 의 DVD에 수록된 를 연출한 케이스 풀튼은 사막이 홍수로 뒤덮이고, 주연배우가 병에 걸리고, 필름들이 모두 망가지면서 촬영이 무산된 <돈키호테> 제작과정의 생생한 비극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히틀러의 개인 비서 트라우들 융게의 진술을 오롯이 들을 수 있는 <히틀러의 여비서>(2002), 영화보기에 인생을 걸고 살아가는 5명의 뉴욕 시네필들에게 초점을 맞춘 <시네마니아>(2002), 1966년 런던월드컵 당시 8강까지 진출해 화제를 모았던 당시 북한 축구대표팀을 소재로 한 <일생일대의 승부>(2002), 미국 몬태나주에서 벌어진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대립구도를 비판적 시각으로 담아낸 <어느 운동가의 죽음>(2002)이 있다. ▶ 2003 광주영화제 추천작 13편 그리고 +α [1] ▶ 2003 광주영화제 추천작 13편 그리고 +α [2] ▶ 2003 광주영화제 추천작 13편 그리고 +α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