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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소년에서 남자로

내 옆자리에 앉은 소년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물론 선생은 없었고, 나와 그 소년은 교실 안에서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유화반이라는 과외수업을 했는데, 한동안 비어 있었던 내 옆자리에 새로 온 소년은 얼굴이 우유처럼 뽀얗고 귀티가 흐르는 얼굴로 입만 열면 “내 팔자에 뭘 더 바란다고”, “이제 내가 죽어야지” 같은 아줌마들 입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뱉어내거나 유행가를 청승맞게 부르면서 그림을 그렸다. “어제는 비가 내렸네. 키 작은 나뭇잎 새로”로 시작되는 윤형주의 <어제 내린 비>였다. 목욕탕의 탕 안에 느긋하게 몸을 담그고 있다가 목욕탕 문을 열어젖히며 “그건 너, 바로 너”를 큰 소리로 부르면서 안으로 들어오던 키 작고 빼빼 마른 깡패소년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 그때까지 내가 본, 일반인이 유행가를 부르는 가장 인상적인 모습이었는데 얼굴이 하얀 미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어제 내린 비>도 인상적이었다. 어린이가 어른들의 노래를 태연하게 부르는 것도 그렇고 연애영화의 주제가를 부르는 것도 그랬다. 노래를 부르다 멈춘 소년은 고개를 돌리며 나에게 영화 <어제 내린 비>를 보았냐고 물었다. 다람쥐처럼 극장을 쏘다니며 영화를 보다가 홍콩 성인영화 <소녀>(召女)를 보았고, 대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던 <바보들의 행진>도 보았지만 본격적인 성인 남녀의 연애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본 적이 없었다. 남자의 입으로 연애영화를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기에 소년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소년은 누나들이 여럿 있는 집안의 막내였다. 누나들이 많은 집의 소년을 만난 것이다. 소년과 친해진 이후로 나는 윤형주의 <바보>, 뚜아에무아, 현경과 영애의 사랑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위로는 삼촌과 사촌 형, 아래로는 남동생, 어머니를 제외하고 시꺼먼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환경에서 자란 내가 위로 누나들만 있는 친구를 만난 것은 신세계였다. 나는 그 소년의 인도로 임예진, 올리비아 허시, 노라 마오 같은 여배우를 좋아하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도 않고 남자답지 못한 행동도 아님을 배웠다. 그래서 왕우나 이소룡 영화를 보고 또 보았듯 올리비아 허시를 보기 위해 <썸머타임 킬러>를 보고 또 보아도 아무렇지 않았고, 임예진이 등장하는 <진짜 진짜 잊지마>를 보러 극장 매표구 앞에 섰을 때는 쑥스러웠으나 다음에 개봉한 <진짜 진짜 미안해>는 당당하게 보러 갔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우리 반 최고의 불량소년이 임예진 영화를 혼자 보러 가기 부끄러웠는지 나를 앞세워 <푸른 교실>을 보러 가기도 했다. 어느 날 영화를 많이 보러 다니는 내게 관심을 보여 친해진 친구가 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그 친구 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일본 영화잡지 <스크린>과 <로드쇼>는 물론이고 홍콩의 영화잡지가 책장에 한가득이었다. 걸신 들린 사람처럼 홍콩 영화잡지를 펼치니 듣도 보도 못한 적룡과 깡따위, 왕우가 출연한 영화의 스틸 사진들이 쏟아져나왔다. 숨도 쉬지 않고 잡지를 읽고 있는데 친구의 고등학생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와 나와 친구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한마디 했다. “너희 내 방에서 뭐해?” 그렇다. 그 친구 역시 누나들이 많은 집 막내아들이었다. 양병집과 양희은의 노래를 알려준 친구도 위로 누나들이 셋이나 있는 집 아이였고, 중학교 3학년 때 나에게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게 한 사람은 화실의 고등학교 2학년 누나였다. 누나들과 자란 소년들에게는 남자들과 자란 나와는 다른 세계가 있었다. 그들은 내 책가방 속의 무협지를 몰아내고 삼중당에서 나온 이어령의 수필집을 읽게 만들었다. 만화책과 무협지 말고 또 다른 읽을거리가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헌책방에서 가끔 노다지처럼 만났던 일본 만화책을 돈만 있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새책으로 살 수 있는 명동의 중화민국 대사관과 코스모스 백화점 사이에 있던 ‘딸라골목’을 알게 되었다. 질 떨어지는 종이와 인쇄 상태의 한국 만화들을 보면 한숨이 나왔던 시기에 나와 같이 동행한 누나들이 많은 소년은 내가 일본 만화책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당시 인기 최고였던 록밴드 키스(KISS)의 화보집을 들어 보이며 “이런 책을 사야지, 어린애처럼 만화가 뭐냐?”라고 했었다. 누나들이 많은 집에서 자란 소년들은 어린애였던 나를, 소녀를 사랑하는 소년으로 만들어주었다. 중학교는 정말 끔찍한 곳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한명의 선생만 상대하면 되었는데, 중학교에 들어오니 교과목 수만큼 많은 선생들이 매 시간 번갈아 들어왔고, 그들이 학생들에게 구사하는 폭언과 폭력은 선생 수만큼 다양했다. 교과목마다 바뀌어 들어오는 선생 중 단 한 사람도 어린 학생들을 슬퍼해주지 않았다. 여선생이 담임인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유일하게 우리에게 매를 들지 않았지만 덩치 큰 같은 반 학생을 반장으로 삼아 그가 우리를 때리게 만들었다. 지은 지 오십년은 넘은 낡고 좁은 교실 안에 칠십여명의 학생들이 들어차 있으니 교실로 들어온 선생들의 첫마디는 “항상 창문 열어”였다. 매 시간 선생이 학생을 패고, 쉬는 시간에는 학생들끼리 악다구니를 쓰며 싸움을 했다. 그런 곳에서 나는 어질어질 바보가 되고 말았다. 초등학생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되던 가죽 허리띠가 교칙 위반이었고, 양말의 색깔까지 정해져 있어서 아침 등굣길 교문 앞에서 자주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친구와 정다워지기 전에 사소한 일로 주먹질을 해서 서로 외로워졌다. 그 시절 그곳에서는 친구를 만들기도 힘들었다. 학교를 무단결석한 학생을 선생이 자신의 시계가 텅! 하고 날아가면서까지 패는 광경을 숨죽이고 지켜보며 꾀병을 앓아 학교를 빠진다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 시절에 만난 위로 누나들이 많은 집 소년들은 구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악당이자 선인인 절대 영웅을 찾다 어느 비오는 휴일. 거의 몇달을 찾지 않았던 만홧가게에 발을 들였다. 사실 몇번 들르긴 했지만 만화들이 전부 시시해 보였고, 황재의 <쾌걸 흑나비>와 <소림사> 시리즈를 빼고는 재미있는 만화들도 별로 없었다. 홍콩 무협영화에서 발을 넓혀 하이틴 멜로영화까지 섭렵하고 텔레비전에서 줄기차게 틀어주던 이탈리아 웨스턴에 홀딱 빠져버렸으며, 무협지에서 한국 소설들까지 발을 넓힌 내가 어린애들이나 가는 만홧가게에서 더이상 재미를 찾긴 어려울 듯 싶었다. 게다가 등굣길에서 만나는 여학생을 짝사랑하기까지 했으니 심심할 틈이 없었다. 내게 만홧가게의 만화는 이미 관심 밖 세상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황재의 신간이 있으면 빌려볼까 해서 들른 만홧가게에서 한복을 입고 발차기를 하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는 표지의 만화책을 만났다. <각시탈>이었다. 선 채로 잠깐 읽기만 했는데도 피가 머리 위로 솟구쳤다. 다음주 휴일, 청계천의 만화책 도매상으로 가서 부길문화사판 <각시탈>을 손에 넣었고,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각시탈> 시리즈가 모두 모여 있다는 장충동의 어느 만홧가게에서 전권을 다 보았다. 엄마를 속여 돈을 타내서는 <각시탈> 시리즈를 돈이 되는 만큼 사들이고서야 머리 꼭대기로 솟구쳤던 피가 정상으로 몸속으로 돌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각시탈> 앞에서 누나가 있는 친구들을 사귀며 만들어졌던 그 나이 또래 소년이 당연히 가져야 할 감성은 모두 날아가버리고, 다시 마초 남자들의 비린내 나는 세계로 순식간에 귀환하고 말았던 것이다. 상하이 어느 뒷골목의 골방 안. 두 사나이가 난로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험상궂은 중국인이 난로 뚜껑을 열어 시뻘겋게 타고 있는 조개탄 하나를 맨 손가락으로 꺼내어 곰방대에 불을 붙이고 난로 속으로 툭 집어던진다. 중국인의 건너편에 앉아 중국인을 바라보던 젊은 사내도 난로 뚜껑을 열어 맨손가락으로 조개탄을 꺼내든다. 그러고는 자신의 허벅지 위에 조개탄을 올려놓고 주머니를 뒤져 담배 쌈지를 꺼내어 담배를 말기 시작한다. 어두운 방 안에 살타는 냄새가 진동하고 중국인들이 경악한다. 사내는 표정의 변화 없이 느긋하게 담배를 말아 허벅지 위에 올려두었던 조개탄을 집어 불을 붙이고는 난로 속에 던져넣는다. 이 만화는 이재학 글•그림의 성인만화 <히라소니>의 한 장면으로 내가 처음 본 허영만이 그린 만화였다. 허영만이 이재학의 문하생으로 있을 당시 이재학의 대필로 그린 이 작품은 당시 신문가판대에서 판매되던 성인만화였다. 형과 동생이 있다. 형은 일제의 단발령에 걸려 머리카락을 잘리고 실성해버렸고, 동생은 출세를 위해 헌병대의 조선인 앞잡이가 된다. 동생은 택견의 달인인 복면 괴인 각시탈을 잡아 승진하려 애쓴다. 복면 괴인 각시탈은 원성이 극에 이른 일본인 부자와 상인, 군인, 경찰들에게 테러를 하는 테러리스트다. 하얀 한복 저고리에 바지를 입은 각시탈은 놀라운 무술 실력으로 신출귀몰한다. 각시탈을 잡기 위해 수많은 동족들을 괴롭히던 동생은 드디어 각시탈이 출현한 현장에서 그에게 부상을 입힌다. 핏자국을 따라가는 동생. 각시탈의 핏자국은 자기 집으로 이어져 있다. 집으로 들어가 안방 문을 열면 동생이 쏜 총탄에 죽어가는 형과 그가 벗어놓은 각시탈이 놓여 있다. 나는 이 이야기가 너무나 좋았다. 일본 만화 <타이거 마스크> <내일의 조> <황야의 소년 이사무>에는 있었으나 당시 한국 만화에는 없었던, 악의 소굴에서 자라나 개심한 인물로 반은 악당이고 반은 선인인 주인공을 한국 만화에서 발견한 것이다. <타이거 마스크>의 완전한 한국판이었다. 중학생 시절에 나는 절대적으로 하나만 꼽으라면 이것이라 말할 수 있는 주인공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질투심도 있었다. 바로 ‘중국 무사나 사무라이. 황야의 무법자들 같은 멋진 캐릭터가 우리에겐 왜 없는가?’였다. 물론 시라소니나 김두한 같은 깡패들의 신화 이야기가 영화와 만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지만 그것들은 뭔가 만듦새가 조악했다. 내가 가장 반한 것은 각시탈이 발차기를 할 때 허영만이 그린 한복 바지의 모양새였다. 몸에 딱 달라붙은 그런 바지가 아니어서 각시탈이 발차기를 하려고 발을 공중으로 들어올리면 발을 중심으로 허리까지 삼각형의 모양이 만들어진다. 각시탈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옷고름과 한복 자락이 펄럭인다. 그것이 각시탈의 움직임에 활력과 우아함을 더해주었다. 복면을 안 썼을 때에는 바보 노릇을 하다가 탈을 쓰면 잔혹한 응징자로 변하는 캐릭터도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각시탈의 완전한 포로가 된 것은 부길문화사판 <각시탈> 하권에 부록처럼 붙어 있던 에피소드였다. 형을 죽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악당이 아무리 개과천선한다 해도 지난날 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 과거에 지은 죄은 언젠가 되돌아와 죗값을 묻는다. 각시탈 이강토는 어이없는 실수로 눈이 멀어버린다. 장님이 된 강토는 결국 각시탈을 쓰고, 과거의 죄를 속죄할 길을 찾지 못한다. 눈 덮인 깊은 산의 동굴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참회하는 장면이 대부분이었던 이 만화를 보고 나는 한국 만화의 단 하나의 절대적 캐릭터는 각시탈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소년잡지 <우등생>에 부록으로 연재되었던 <우등생판 각시탈>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옛 친구와의 고통스런 대결도 좋았다. 특히 마지막 대결 장소가 매운탕집이라는 것이 너무나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각시탈> 시리즈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각시탈의 에피소드는 <여기는 우리땅>이었다. 이 에피소드에서 이강토는 한번도 각시탈을 쓰지 않는다. 각시탈을 쓰지 않는 <각시탈> 만화. 이 만화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10년 전 김성수 감독이 <각시탈>을 TV시리즈물로 만들려는 기획을 하고 있을 때, 그에게 나도 <각시탈> 한 에피소드를 연출하게 해달라며 각시탈이 각시탈을 한번도 안 쓰는 에피소드인데 죽이지 않느냐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여기는 우리땅>에서 강토는 일본인 악덕 지주의 집에 얹혀살며 잡일을 하면서 일본산 도사견의 마음을 빼앗는 데 성공한다. 지주의 창고가 도둑맞지 않는 이유는 사나운 도사견 때문. 강토는 불순한 마음으로 개의 마음을 빼앗고 지주의 창고를 터는 데 성공한다. 라스트는 비극이다. 강토에게 마음을 준 개는 몇해 동안 먹여주고 길러준 주인을 버리고 사악한 마음으로 접근한 강토를 선택하지만 개에게 주어진 운명은 죽음이다. 일제에 대항하여 투쟁한다는 가면을 쓰고는 있었지만 허영만이 그린 <각시탈>은 한 사내를 죽이고 그 사내가 되어버린 사내가 그를 죽이려는 또 다른 수많은 사내들과 대결하는 남성 멜로드라마였다. 거침없이 세상을 휘젓는 남자 이야기 <태양을 향해 달려라>는 이상무의 야구 만화들과 비슷한 이야기와 캐릭터들이었지만 이상무의 만화보다 강토와 강산의 우정에 조금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고, <변칙복서>에서는 아들이 발레리노가 되기 원하는 아버지를 피해 권투를 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끝없이 남자 이야기를 한다. <변칙복서>는 영국영화 <빌리 엘리어트>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만화였다. 동생은 내가 좋아하는 <미스터 손>이 일본 만화 <드래곤 볼>의 표절이라며 무시했지만 <미스터 손>을 <드래곤 볼>의 표절로 보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지 않은가. 허영만의 <미스터 손>은 고우영의 <서유기>의 피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만화다. 고우영의 손오공은 세상 끝까지 날아가 그곳에 서 있는 기둥(부처의 손가락)에 오줌을 싸는데, 허영만의 미스터 손은 옥황상제가 보낸 전투기의 캐노피 위에 오줌을 갈긴다. 미스터 손은 전형적인 악동이고, 트릭스터 캐릭터다. <서유기>를 원작으로 한 수많은 만화 중 손오공이 옥황상제가 지배하는 세상을 얼마나 깽판 치느냐에 따라 선호도가 바뀐다. <드래곤 볼>에서는 손오공이 옥황상제가 지배하는 하늘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에피소드를 아예 빼버렸지만, 미스터 손은 고우영의 손오공만큼 악랄하진 않아도 소년만화에서 허용되는 만큼 난장판을 만들어버린다. 허영만은 <서유기>를 원작으로 한 만화 중 가장 새로운 캐릭터인 사오정을 탄생시킨다. 물론 허영만의 저팔계도 재미있지만 음흉함에 있어서는 고우영의 저팔계가 조금 더 저질이다. <서유기>를 원작으로 한 만화 역사상 최고로 독특한 삼장법사가 <오공도>를 그린 야마구치 다카유키의 색계를 위해 탄생한 여자 삼장이라면 최고의 사오정 캐릭터는 허영만의 것이다. 80년대 들어 허영만의 만화는 날개를 단 것 같았다. <담배꽁초> <오, 한강>으로 이어지는 그의 행보는 감탄을 자아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허영만의 만화는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그렸던, 만홧가게에 진열된 그의 만화들이다. 중학생 시절 만홧가게의 진열대에 꽂혀 있던 <각시탈> 시리즈들의 빛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스타 뒤에 사람 있어요!

신림동에 살고 청담동 부근에서 일하(면서 한국 사회의 빈부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던 시절이었다. 동료가 사무실 근처에서 주운 휴대폰 하나를 두고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연락처를 찾으려고 열어본 전화기에 유명한 연예인과 매니저들의 전화번호가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로 말하자면 먼저 인터뷰를 잡았는데도 다른 일정이 들어오면 가차 없이 까이고 까이다가 영혼에 깊은 화인 하나 품고 살아가기에 이른 청춘들로서, 그 화인에 아로새긴 네 글자는 이.류.잡.지.였으니…. “베끼자.” 누가, 네가? 그랬다. 때는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한다는 건 근미래에나 가능한 일로 보이던 선사시대, 전문가의 손을 거치지 않고 주소록을 옮기려면 손으로 베끼는 수밖에 없던 암흑의 시절이었다. 결국 우리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면서 (사실은 없어, 가오) 궁상맞게 주소록 베끼는 걸 포기하고 휴대폰을 주인에게 넘겼다. 그는 누구였을까, A++급 여배우 ***의 매니저였다. 인터뷰 1회권하고 교환할걸 그랬지. 세월은 유수와도 같아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주고받는 근미래가 살아생전에 도래했다. 전화기 잃어버린 매니저가 그거 찾겠다고 도시의 연쇄 폭행범으로 거듭나는 영화 <핸드폰>을 보면서 나는 안도했다, 그때 주운 것이 멀티미디어 따위 모르던 뗀석기 수준의 휴대폰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100만원대 월급이 그나마도 밀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양 비디오라도 들어 있었다면 <핸드폰> 찍을 뻔했다. 김혜수와 전도연 등을 맡았던 전직 매니지먼트계의 거물 박성혜의 에세이 <별은 스스로 빛나지않는다: 스타를 부탁해>를 보면 15년 동안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다던데 그걸 읽은 나는 그럼이 사람은 15년 동안 번호 이동 할인 한번 안 받고 기기 바꿨겠네, 가오 있어, 아니 이게 아니라, 매니저에게 전화기는 그만큼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쳤다. 하지만 <핸드폰>은 전화만큼이나 전화 예절 또한 소중하다고 역설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기획사 대표 오승민(엄태웅)이 성질 부리지 않고 전화를 받았더라면 이런 액션 활극을 찍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이 영화 각본 쓴 사람, 매니저들하고 통화깨나 해봤구나. 나도 매니저들하고 통화만 했다 하면 왠지 겁이 나고 비굴해진 나머지 스스로 착해져서 한번은 옆에서 듣고 있던 편집장에게 칭찬도 받았다, “텔레마케터 해도 되겠다.” 그렇다고 세상에 친절한 매니저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뒤엉켜 술을 마시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나하고 난생처음 보는 어느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뿐이었던 (나머지는 의자에 걸려 있었고) 어느 술자리에서의 일이었다. 적막이 흘렀다. 나는 그를 보고 웃었다, 그도 나를 보고 웃었다, 자, 이제 뭘 해야 할까. 그는 가방을 열더니 인화한 사진을 한 보따리 꺼냈다. 그리고 내가 그때껏 만난 누구보다도 친절한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 사진 보실래요? 이건 정장 입은 거, 아유, 잘생겼다, 그리고 이건… 어머, 수영복이네? 우리 **가 요새 운동을 하느라. 그럼, 수영복으로 몇장 더?” 그렇게 나는 몸은 좋지만 웃기게 생긴 청년의 반누드 사진을 보면서 충만한 새벽을 맞았다. 아, 친절하여라. 그리고 몇년 뒤, 웃기게 생긴 청년은 개성 있는 마스크를 지녔다는 스타가 되었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포착하다니, 아무나 매니저 하는 게 아니구나. 제목이 그래 보여 팬픽 독립영화로 착각했지만 어엿한 팬픽 상업영화였던 환희 주연의 <스타: 빛나는 사랑>에 나오는 매니저는 정교한 내추럴 메이크업으로 무장한 주연 여배우한테 화장하면 예쁘겠다고 눈뜬장님 수준의 대사를 날리기에 저러고도 월급 받나 싶었지만, 그러고도 월급 받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아니, 어쨌든 진짜 매니저에겐 날카로운 안목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매니저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하라는 일은 뭐든지 한다는 사실이다. 집에서 게임하던 톱스타의 전화를 받고 담배 사러 나가던 매니저가 “우리 **이 진짜 착해요. 동네 담배 가게가 어딘지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감싸길래, 어쩜 이런 거짓말을 하면서도 표정이 진심이야, 과연 배우 매니저구나 했지만 <라디오 스타>를 보니까 진짜였어, 매니저 있는 사람들은 담배를 어디서 파는지 몰라, 이래서 담배 자판기를 부활시켜야 한다니까, 아니 이게 아니고, 그 사람 연기가 아니었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재벌이 아니라면 세상에 감정 노동 아닌 일이 없어 오늘 하루도 키보드 두드린 내 손가락이 한 일보다 갑을 상대로 내 감정이 한 일이 훨씬 많지만 (그러니까 돈 받으면 내 손가락을 위한 반지 한개보단 내 감정을 위한 술 한병을 사리라), <라디오 스타>의 매니저 민수(안성기)처럼 “얼굴에 수십번 똥칠해서 똥독 오른” 건 아니니 다행이라 하겠다. 20년 동안 민수가 한 일을 꼽아보자면, 짐꾼에 기사에 가이드에 대변인에 짜장면 비벼주다 말고 담배와 커피 자판기 노릇까지, 게다가 팬들이 몰려들면 보디가드도 해야 한다. 저 깊은 바다를 가르며 헤엄치는 청어 떼처럼 질주하다가 순식간에 270도 회전하여 송골매처럼 스타를 덮치는 팔팔한 10대 소녀 무리 곁에 한번이라도 서봤다면 알게 될 것이다, 매니저에게도 보디가드는 필요하다. 박성혜가 내린 정의에 따르면 매니저란 “한마디로 문화 상품인 스타를 생산하는” 직업이면서 이상하게 그 ‘문화 상품’ 중 하나인 영화에선 미움받는 직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동안 거친 직업으로도 모자라 다시 새로운 직업을 구하느라 고심 중인 실업자로서, 직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저 사람이 사는 세상은 한여름 같아, 아주 눈이 부시지. 퇴직했지만 용돈 주는 딸자식은 없고 그냥 딸자식만 있던 아빠가 경비원 일을 시작했을 때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노동과 월급이 있는 찬란한 세상이라니. 어쩌면 미안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로 인한 서러움 매니저에게 웬만해선 없는 두세 가지 것들 퇴근은 없다 매니저 관상인 건지, <핸드폰>에 이어 <톱스타>에서도 배우가 되지 못해 매니저 노릇을 하는 엄태웅은 기어이 톱스타가 되고 나서도 이런 소리만 듣는다, 촌스러워, 욕심이 붙었어, 빈티 나. 그러고 보니 <톱스타>는 왕후장상엔 씨가 없어도 톱스타엔 씨가 있다고 주장하는 영화였군, 매니저는 안 되는 거야. 어쨌든 그 영화에서 술 마시고 사고 치는 엄태웅을 보면서 나는 왜 매니저들이 새벽까지 배우들하고 붙어 있는지 알았다. 집에도 데려다줘야 하겠지만 감시도 해야 하니까. 옛날에도 퇴근 시간 없던 그 매니저들은 이제 24시간 스마트폰으로 트위터 감시해야겠구나. 스마트폰 너무 보면 목에 주름 생긴다던데. 국경도 없다 한물간 스타라도 열심히 뒤치다꺼리하다가 <라디오 스타>의 민수처럼 “얼굴이 삭는” 매니저 팔자에는 국경도 없다. 그 많은 러브라인에서 한 가닥도 배정받지 못한 <러브 액츄얼리>의 조는 돌보는 가수의 막말과 사고를 감당하느라 그랬는지 원래 그랬는지 살찌고 삭았는데, 그걸 일깨워주는 사람이 바로 그 가수다. 얼굴도 안 나오는데 자꾸 추남에 뚱보라고 시청자들한테 알려주지, 아, 친절하여라. 그러고는 크리스마스에 들고 오는 것이 고작 샴페인 한병이다. 매니저에게도 안주는 필요할 텐데. 배려 따윈 없다 신인 배우를 차로 치었다가 합의금 주는 대신 매니저로 일하게 된 <스물>의 치호(김우빈)는 감독(박혁권)의 귀염둥이다. 술자리 진상, 그 갑 중의 갑으로서, 이미 한 얘기를 하고 또 하는데 심지어 그 얘기가 진지하기까지 한 완전체 진상하고 놀아주는 사람은 치호뿐이니까. 그렇게 놀아주는 치호를 보면서 감독과 동고동락해야 마땅한 스탭들은 지금이다 싶어 잽싸게 도망간다. 원래 술자리 진상하고는 한 시간씩 돌아가며 놀아주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인정이거늘.

Ia Ora na, FIFO! 안녕, 오세아니아다큐멘터리영화제!

타히티(Tahiti)는? 정식 명칭 /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본 섬인 타히티로 통용됨) 수도 / 파페에테(Papeete) 사용 언어 / 공용어는 타히티어와 프랑스어. 호텔, 레스토랑, 관광지 등에서는 영어 통용. 시차 / 한국시간보다 19시간 늦음(타히티시간=한국시간+5시간-1일). 통화 / 프렌치 퍼시픽 프랑(CFP, XFP). 유로로 환전해 현지에 도착한 뒤 공항이나 리조트에서 현지 화폐인 퍼시픽 프랑으로 환전하면 된다. 리조트 안에서는 신용카드나 유로화로 통용. 항공편 / 우리나라에서 타히티까지 직항편이 없다. 일본 도쿄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며, 비행시간은 도쿄에서부터 11시간10분 정도 걸린다. 프롤로그 “타히티는 왜?” 타히티에 출장 간다고 하니 회사 동료, 친구,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물어보자. 타히티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버킷리스트의 단골 메뉴이자 신혼여행지인 보라보라 섬? 타히티와 보라보라는 각기 다른 섬이지만 두 섬 모두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속하니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타히티의 여인들> <아레아레아>(기쁨) 등 많은 명작을 그린 고갱에게 영감을 준 섬으로도 유명하다.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할리우드 멜로영화 <러브 어페어>(감독 글렌 고든 캐런, 1994)에서 주인공 워런 비티와 아네트 베닝이 가까워진 모레아 섬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커플 테라피: 대화가 필요해>(2009)에서는 위기의 부부 네쌍이 보라보라 섬에서 금실을 회복했을 정도니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섬들은 사랑이 꽃피는 묘약을 가진 게 분명하다. 타히티는 남태평양에 위치해 있다. 남반구인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남미 방향으로 이동하면 보인다. 그곳에 타히티, 보라보라, 모레아를 포함한 118개 섬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이들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라고 부른다. 지도로 보면 한국에서 거리가 만만치 않은 듯하지만, 일본에서 한번만 갈아타면 되니 그리 먼 것도 아니다. 어쨌거나 타히티에 간 건 제13회 오세아니아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피포(FIFO,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DOCUMENTAIRE OCEANIEN))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매년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가 이곳에 모이는 까닭에 피포가 이 동네에선 가장 큰 영화제라고 한다. 11시간의 비행 끝에 타히티의 파아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공항 건물에 들어서자 한 무리의 전통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흥겨운 노래를 불러주었다. 공항에 마중 나왔던 영화제 스탭이 색색의 꽃목걸이를 목에 걸어주었다. 낭만적인 환대를 받자 흥이 절로 났다. ‘이아 오라 나’ (Ia Ora na, 안녕), 타히티! 피포만의 전통을 만나다 모레아 섬 (Mo’orea) 투어 개막식이 이틀이나 남았는데 영화제 일정은 이미 시작됐다. 1월31일 일요일, 피포 왈레스 코트라 집행위원장, 심사위원장인 압데라만 시사코 감독을 포함한 경쟁부문 심사위원 7명, 경쟁부문에 초청된 감독, 프로듀서, 피포 주요 스탭들과 함께 모레아 섬으로 소풍을 갔다. 앞에서 짧게 언급한 대로 모레아 섬은 <러브 어페어>의 배경이 된 섬이다.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만난 마이크 갬브릴(워런 비티)과 테리 매케이(아네트 베닝)의 원래 목적지는 호주다. 하지만 비행기는 엔진이 고장나는 바람에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쿡아일랜드에 불시착한다. 그곳에서 마이크는 숙모가 있는 타히티로, 테리는 하와이로 가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테리는 하와이행 배 시간이 맞지 않아 마이크와 함께 타히티로 간다. 타히티에서 두 사람이 배를 타고 간 곳이 바로 모레아 섬이다. 타히티의 수도 파페에테에서 배로 50분밖에 걸리지 않는 모레아 섬은 영화에서 소개된 대로 무척 아름다웠다. 보라보라에 비하면 한국 사람에게 아직 덜 알려져 있지만, 현지인의 말에 따르면 모레아는 보라보라 못지않게 진주 같은 곳이라고 한다. 명성대로 육지는 숲이 울창한 산들이 줄지어 있었고, 바다는 에메랄드빛을 반짝반짝 냈다. 상어, 가오리가 지나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만큼 바다 또한 투명했다. 보트를 타고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라군에 당도해 사람들과 함께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 것도 그래서다. 수심이 성인 남자의 허리밖에 되지 않아 수영을 못하더라도 충분히 라군을 즐길 수 있었다(상어와 가오리가 해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자기소개를 차례로 하고 나니 사람들과 금세 친해졌다. 왈레스 코트라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시작되면 각자 일정이 바빠서 친해질 시간이 없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마련한 소풍으로, 피포만의 전통”이라고 자랑했다. 이날 알게 된 사람들 덕분에 영화제 기간 동안 취재하는 데 꽤 수월했다. 영화제 운영 시스템을 먼저 파악해 짜인 일정대로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칸이나 베를린 같은 큰 영화제와 달리 이곳은 사람과 먼저 친해지면 편하다. 영화가 어땠냐고 서로 물어봐주고, 점심을 함께 먹고, 매일 밤 열리는 와인 파티에 나가 쉴 새 없이 수다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 관객과의 영상 인터뷰 제13회 피포 개막 2월2일 아침 8시. 시차 적응을 못해 밤새 잠을 설친 탓에 졸린 눈으로 영화제가 열리는 메종 드 라 컬처로 향했다. 상영관 두개로 이루어진 이곳은 이른 아침부터 개막식 준비로 시끌벅적했다. 폴리네시아 원주민 의상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은 북을 둥둥 울렸고, 젊은 마오리족은 전통 춤 하카를 선보이며 관객을 열렬히 환영했다. 밤에 진행되는 보통 영화제의 개막식과 달리 피포의 개막식은 하루의 시작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레드 카펫 행사가 없는 대신 형형색색의 꽃무늬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무대에 올라 영화제 주제곡을 합창했다. “피포~ 피포~ 피포~ 피~ 포.” 반복되는 가사 때문에 하루 종일 귀에 울릴 만큼 중독성 있는 곡이었다. 소박하고 귀여운 개막식이라고나 할까. 개막식 행사가 그랬듯이 피포는 13년 동안 이어져온 영화제 전통을 고집 있게 지켜오고 있는 영화제다. 서른명이 넘는 피포 스탭들은 피포를 찾은 관객을 세심하게 배려했다. 영화제가 열리는 타히티의 수도 파페에테 구경을 하다가 15분 늦게 극장에 도착한 적이 있다. 상영관을 지키고 있던 자원 활동가가 “늦었는데 영화 볼 수 있냐고? 물론이지. 그런데 상영 도중에 문을 열면 관객의 감상에 방해가 될 거야. 그러니 상영관 뒤에 있는 강의실에도 영화를 동시에 틀고 있으니 거기 가서 보지 않을래?”라고 안내해주었다. 피포에서만 볼 수 있는 이벤트도 있었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자원 활동가가 한 관객을 골라 아이패드 영상 인터뷰를 요청한다. 관객은 아이패드에 연결된 수화기를 들고 영화가 어땠는지 말하면 된다. 친구나 가족과 전화 통화하듯이 말이다. 기자 역시 자원 활동가에게 붙잡혀 <넥스트 골 윈즈>(감독 마이크 브렛•스티브 재미슨, 2014)의 감상 소감을 말해야 했다. 메종 드 라 컬처를 든든하게 지키는 큰 나무 아래에서 관객과 감독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자리도 인기 만점이었다. 감독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몰려든 관객 덕분에 빈 의자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데 어떻게 쓸지 몰라 고민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나리오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멘토들의 도움을 받아 3분짜리 단편영화의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 대회였다. 이 밖에도 사진을 촬영하면 피포 포스터와 합성해 인화해주는 부스는 줄을 서야 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고, 어린아이들은 드론 촬영 설명회의 단골손님이었다. 영화제를 쭉 둘러보니 영화 상영부터 부대 행사까지 모든 프로그램의 중심은 첫째도 관객, 둘째도 관객, 셋째도 관객이었다. 지금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경쟁부문 상영 경쟁부문에 상영된 다큐멘터리 11편의 완성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다. 호주(3편), 뉴질랜드(3편), 프랑스령 폴리네시아(2편, 이중 한편인 <튜파이아>는 뉴질랜드와 공동 제작), 뉴칼레도니아(1편), 하와이(1편), 영국(1편) 등 오세아니아 여러 지역에서 온 작품들은 현재 이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축소판이었다. <힙합어르신, 라스베이거스에 가다>(2014)는 평균 연령대가 9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힙합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낯선 힙합 리듬에 맞춰 인공관절을 꺾는 걸 보면서 도전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주인공인 27명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캐릭터가 개성 있고, 서사가 단순해 관객 반응이 좋았다. 축구 팬으로서 앞에서 짧게 언급했던 <넥스트 골 윈즈>도 재미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최하위권에 있는 미국령 사모아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지역 예선 1승 도전기를 그린 작품이다. <평화의 대가>(감독 킴 웨비, 2015)는 뉴질랜드 정부를 상대로 7년간의 투쟁을 벌인 마오리족 활동가인 테임의 사연을 그린 작품이다. 뉴질랜드 경찰이 마오리족 공동체 문화를 문제 삼아 테임을 테러리스트로 탄압했다. 테임은 “마오리족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정부에 위협을 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나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저항했다. 카메라는 정부를 상대로 한 테임의 싸움을 7년 동안 성실하게 따라다닌다. <평화의 대가>가 뉴질랜드의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이라면 <더 그라운드 위 원>(감독 크리스토퍼 프라이어, 2015)은 뉴질랜드의 어느 시골 마을에 있는 럭비팀을 그린 사적 다큐멘터리다. 흑백으로 촬영된 이 작품은 <넥스트 골 윈즈>처럼 축구팀의 도전기를 그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럭비를 하고, 아이를 키우고, 젖소를 키우고, 술을 마시고, 성인식을 치르는 등 럭비팀 구성원의 일상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낸다. 이 밖에도 <프리즌 송>(감독 조슈아 길버트, 2015)은 호주 베리마 지역의 한 감옥이 배경이다. 수감자의 80%가 원주민인 이곳에서 수감자들은 자신의 사연을 직접 노래로 부른다. 영화의 소재나 주제에 어울리는 형식을 고민한 작품이 많았다는 점에서, 상영작 모두 한국 관객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놓칠 수 없는, 끝에서 끝까지의 타히티 타히티 섬 일주 출장 마지막 날. 거금을 들여 현지 택시기사를 일일 가이드로 고용했다. 여행사가 운영하는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할까 고민하다가 타히티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 궁금해 여행 방식을 바꿨다. 여행을 함께하기로 한 택시기사는 에이미. 타히티에서 나고 자란 중국계 아저씨다. 그에게 주문한 건 두 가지다. 파페에테에서 출발해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타히티이티(Tahiti iti)까지 간 뒤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 타히티 섬을 한 바퀴 돌 것, 현지 사람들이 주말에 가족과 함께 놀러가는 장소를 소개해줄 것. 타히티 섬은 표주박 모양인데 북쪽의 큰 섬을 타히티누이(Nui는 크다는 뜻이다), 작은 섬을 타히티이티(iti는 작다는 뜻이다)라 부른다. 두 섬은 표주박의 잘록한 부분에 해당하는 타라바오 동네에서 좌우로 나뉜다. 어쨌거나 택시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달리는 내내 도로의 왼편에는 높은 산들이, 오른편에는 에메랄드빛의 라군이 펼쳐졌다. 어느 한 군데 빼놓을 수 없지만 서핑을 좋아한다면 타히티이티 남쪽에 있는 테아후푸를 추천한다. 파도가 세고 빨라서 세계 서핑 대회가 많이 열리는 곳이라고 한다. 타히티누이와 타히티이티가 이어진 모습을 보고 싶다면 테아후푸 근처에 있는 타라바오 고원을 오르면 된다. 수백 마리의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을 뒤로하고 고원 꼭대기에 오르면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두개의 타히티 섬이 연결된 장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타히티누이 동쪽 해변가에 있는 아라호호 바람구멍. 절벽 아래에 웅장한 바람 소리와 함께 바닷물을 내뿜는 바위구멍이다. 화산폭발로 생긴 검은 모래 해변이 절벽 아래에 있어 현지인들이 나들이 장소로 즐겨찾는 곳이라고 한다. 에필로그 하이킹한 뒤 계곡 구경, 보라보라, 마우피티 섬 탐방, 테아후푸에서 서핑 강습 등등. 시간이 좀더 있었더라면 해보고 싶은 것들을 쭉 나열해놓고 나니 무척 아쉽다. 아, 다음에는 6월과 10월 사이에 타히티를 찾아 고래 구경을 하고 싶다. 오세아니아 사람들을 영화로 하나로 왈레스 코트라 피포 집행위원장 <프랑스 텔레비전>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지역 감독이기도 한 왈레스 코트라 집행위원장은 지난 13년 동안 피포를 이끌어왔다. 그가 영화제를 찾은 관객과 손님을 각별하게 챙긴 덕분에 피포는 오세아니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시상식이 열린 2월5일 오후, 그를 만나 올해 영화제가 어땠는지부터 물었다. “폐막까지 아직 이틀이나 남았는데 유료 티켓 관객수가 3만5천명이 넘었다. 기분 좋다. (웃음)” -영화제가 올해로 13회째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주력했던 건 무엇인가. =비단 올해만의 컨셉은 아니다. 피포는 남태평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욱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남태평양 지역은 섬이 많아서 다른 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오세아니아 사람들이 서로 가깝게 지내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하나로 묶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피포였다. -13년 전, 피포를 처음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 =그렇다. 당시 지역 방송국인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일하고 있었다. 영화를 만드는 친구와 함께 피포를 만들었다. -왜 다큐멘터리영화제였나. =영화를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까. 반면 다큐멘터리는 영화에 비하면 제작 비용이 적다. 오세아니아 지역은 텔레비전 산업 규모가 작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이 지역에 적합했다. -영화제를 운영하면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 =오세아니아 지역은 섬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이동 수단이 비행기라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또, 피포 상영작이 인터넷을 통해 지역 사람들에게 더 많이 소개되길 원하는데 아직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나. =물론이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정부를 포함한 타히티관광청, 에어 타히티누이 등 기관과 기업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혹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알고 있나. =아주 오래전에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피포를 찾은 적이 있다.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의 위기와 관련한 소식에 대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영화제들이 부러워하는, 오랜 시간 힘들게 이뤄온 역사를 왜 그리 쉽게 무너트리려 하는지, 많이 걱정된다. -앞으로 피포의 목표는 무엇인가. =늘 그래왔듯이 피포를 통해 오세아니아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됐으면 좋겠다. 우리 역시 늙으면 노인이 된다 알렉스 리, 관객상 수상작 <힙합어르신, 라스베이거스에 가다> 프로듀서 -노인들이 힙합에 도전하는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었다. 소재의 어떤 면이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적합하다고 생각했나.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노인 이야기는 어느 곳이나 똑같지 않나. 그들은 항상 자녀나 손주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만 아무도 오지 않으면 외로운 데다가 대화 상대는 없고. 그렇다고 노인이 인생에서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 건 아니잖나. 노인 이야기이지만 우리 역시 늙으면 그들이 된다. -촬영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건강 문제가 걱정됐다. 영화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그들이 힙합 대회에 참가하는 데 필요한 비용 문제가 있었다.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 =<아시안 디아스포라>(가제)라는 프로젝트다. 세계 각국의 아시아 커뮤니티에 관심이 많다. 가령,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하다. 최근에 지켜보고 있는 문제는 고기잡이배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다.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를 2, 3년 동안 배에서만 머물게 하며 일을 시킨다. 휴식도, 물도, 식량도 없이 말이다. 그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게 바다에 빠트려 죽인다. 현대판 노예이야기인데 잔인하지 않나. 소재에 대한 진실한 접근이 중요하다 심사위원장 압데라만 시사코 감독 인터뷰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은 아프리카 말리 출신인 압데라만 시사코 감독이 맡았다. 그가 연출했던 <팀북투>(2014)도 개막식 하루 전 특별상영됐다. <팀북투>는 말리에 위치한 팀북투라는 동네에서 한 가족의 가장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2014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상영된 바 있다. 개막식이 열리는 2월2일 아침, 호텔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심사위원장을 맡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피포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오세아니아 지역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영화제라는 얘길 듣고, 어떤 영화들이 있을까 궁금했다.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으니 맡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전에도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나. =없다. 심사위원으로 영화제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항상 영화를 만들기만 해서 다른 사람이 만든 영화를 보고 어떤 작품인지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물론 어깨도 무겁지만 말이다. -어제 당신의 영화 <팀북투>도 특별상영됐다. =영화를 어떻게 봤나. -이슬람 강경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팀북투라는 지역이 현실과 어울리지 않게 아름답게 묘사돼 슬펐다. 개인의 자유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는 현실이 충격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저항하는 마지막 장면은 응원해주고 싶었다. =맞다. 그런 메시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만든 영화다. -촬영은 팀북투에서 진행했나. =팀북투는 위험한 곳이라 다른 곳에서 찍어야 했다. 그럼에도 군대의 경호를 받았다. 경찰 말고 군대. (웃음) 촬영은 6주에 걸쳐 진행됐지만 완성할 때까지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심사할 때도 <팀북투> 같은 영화에 힘을 실어줄 생각인가. =하하. 소재를 진실되게 다루는,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아직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이라 자세하게 얘기할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이 배경인 이야기다. 그래서 3월에 중국에 시나리오를 쓰러갈 계획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투자자들과 미팅 약속이 있다. 내년 촬영이 목표다. (취재지원) 프랑스 문화원 http://www.institutfrancais-seoul.com/

거장 미카엘 하네케의 현장 <감독 미카엘 하네케>

2012년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기간, 당시는 미하엘 하네케가 <아무르>(2012)를 통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던 때였다. 그때 찍은 인터뷰를 기점으로 다큐멘터리의 시간은 거슬러 올라간다. <하얀 리본>(2009)의 북부 독일의 마을에서 <피아니스트>(2001)의 배경이 된 빈, 그리고 <미지의 코드>(2000)의 파리를 지나 데뷔작 <일곱 번째 대륙>(1989)에 이르기까지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이 스크린에서 되살아난다. 다큐멘터리 감독 이브 몽마외르는 촬영 과정에서 드러나는 영화의 함의를 분석하는 대신, 연출 과정을 살피는 데 더 집중한다. 이자벨 위페르나 수잔느 로터 등 유명 배우들의 인터뷰가 객관적 자료들을 발설하면,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나 메이킹 필름 등 숨겨진 이미지들이 창작 방식의 비워진 틈을 메운다. 실상 하네케의 영화가 제작 과정의 흔적을 지우며 완성된다는 점에 비교하면, 이 다큐멘터리가 그의 창작 방식과 정반대 방향에서 연출가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사생활에 대한 언급이나 개별 영화에 대한 해석 없이, 오직 감독의 작업 방식을 주요하게 다루며 영화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인간’이 아닌 ‘감독’으로서의 모습에 더 집중하는 작품이다. 여러 비평가들이 지적하듯 하네케의 힘은 ‘비관적인 사색’으로부터 나온다. 이를 다큐멘터리는 ‘통제광’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때문에 영화 초반 등장하는 하네케의 유머러스한 모습은 당혹스러운 동시에 반갑다. 검은색 재킷만을 걸치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강박적 이미지와 청교도적 엄숙함이 조금이나마 상쇄되는 것 같다. 이렇듯 하네케가 카메라를 거부하지 않고 가볍게 응대한 것은 <베니의 비디오>(1992) 홍보차 방문했던 프랑스 소도시에서 이브 몽마외르와 맺었던 친분이 적지 않은 힘을 발휘한 덕분이다. 2000년 <미지의 코드> 촬영차 파리에 왔을 때, 두 사람은 친해졌다고 한다. 그의 아카데믹한 창작 방식, 현장 리허설과 연극 수업을 통해 드러나는 드라마투르기의 접근법이 이 영화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드러난다. 비록 표면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 세기의 거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정보들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과학으로 미래를 상상하기

도발적인 마이웨이의 끝은 어디인가. <엑스 마키나>까지 보고 나니 ‘대니 보일과의 협업은 연출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다만 마이웨이를 걷는 만큼 대중성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편. 원작이 있는 영화보다 원작 없이 만든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훨씬 흥미롭다. 엔딩에 이르러 담담하게 내지르는 한방이 회심의 무기. 영화 <절멸>(Annihilation, 2017) 연출•각본 <엑스 마키나>(2015) 연출•각본 <저지 드레드>(2012) <네버 렛 미 고>(2010) <선샤인>(2007) <테저렉>(2003) <28일후…>(2002) <비치>(2000) TV시리즈 <배트맨: 블랙 앤드 화이트>(2009) 게임 <인슬레이브드: 오디세이 투 더 웨스트>(2010) 작가는 스스로 태어나는 존재일까, 환경에 의해 키워지는 존재일까. 알렉스 갈랜드의 작가적 기질과 취향은 이미 유전자에서부터 기록됐는지 모른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 <텔레그래프> <인디펜던트>에 정치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였고 어머니는 정신분석학자였다. 196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생물학자 피터 메더워를 외조부로 두었고 외조모는 작가였다. 아마도 그는 종종 지적인 대화가 오가는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호기심과 탐구심은 자연스레 그가 과학과 인간성의 연관에 대해 질문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맨체스터 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한 알렉스 갈랜드는 기자가 되는 것도 잠시 고민했지만 소설가로 먼저 데뷔했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아시아 대륙 배낭여행을 즐기곤 했는데 그 여행의 기억들은 이후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마닐라 여행은 <비치> 집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6년에 출간한 첫 소설 <비치>는 환각과 광기에 물든 유토피아를 독특한 방식으로 묘사한다. 평단으로부터 “X세대를 위한 <파리대왕>”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영화화까지 진행되었으나 영화 <비치>는 제대로 통제되지 못한 프로덕션 과정, 흥행 실패, 환경파괴 논란 등에 휩싸여 모두의 기억에 악몽으로 남고 말았다. 하지만 대니 보일과의 연은 이후로도 계속돼 둘은 <선샤인>과 <28일후…>까지 세 작품을 함께했다. 알렉스 갈랜드의 두 번째 소설 <테저렉>은 <비치>만큼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이국적 정서와 영적 모험에 지나치게 심취한 나머지 겉멋만 든 작품 정도로 평가절하됐다. 다만 <테저렉>에서 시도한 비선형적 스토리텔링은 그의 이후 작업 스타일에도 상당한 참고가 된 것 같다. “예술가들이 직관적인 방식으로 탐구 주제와 일 사이를 유영하는 데 반해 과학자들의 세계는 융통성 없고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경험적으로 나는 훌륭한 과학자들이 웬만한 예술가보다도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 그들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데에 있어서도 말이다.” 알렉스 갈랜드는 이십대 초반을 지나면서부터 과학에 깊은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주제의식이 개인의 삶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의 사상을 증명 혹은 전달하는 주요한 장치로 과학이 활용됐다. 이시구로 가즈오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바탕으로 쓰인 <네버 렛 미 고>는 클론의 한계와 슬픈 운명에 관해 말하는 서정적인 SF 멜로드라마였는데 어떤 식으로든 <엑스 마키나>에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다. 알렉스 갈랜드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엑스 마키나>는 클론이 자신의 한계와 운명을 극복한다는 요지의, 신선한 접근방식이 돋보이는 SF다. 인간과 클론을 구분짓는 기준은 무엇인가, 클론의 자유의지는 어디까지 진화 가능한가 등 기존의 하드SF 장르에서 줄곧 제기되었던 이슈를 알렉스 갈랜드는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풀어간다. 서사는 작가의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되어가고, 과욕을 부리지 않아 이야기는 깔끔하고 간결하게 마무리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덤덤한 엔딩 덕에 <엑스 마키나>는 외려 파괴적인 영화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각본을 쓴 많은 작품에서 알렉스 갈랜드가 인간의 종말 또는 종말 위기에 맞닿은인간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선샤인>의 인물들은 사위어가는 태양에 도로 불을 붙이기 위해 무려 ‘이카루스’라는 이름의 우주선을 타고 핵미사일을 운반한다. <28일후…>에서 인류와 문명에 거대한 위기를 몰고 오는 바이러스와 폐허가 된 도시의 심판자를 그리는 <저지 드레드>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딱히 구원에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과학이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대신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차기작으로 거론되는 영화의 제목은 <절멸>(Annihilation)로, 법이 허락하지 않은 신비의 영역에까지 가보려는 생물학자의 고투를 그린다고 한다. 알렉스 갈랜드의 또 한 차례의 실험은 어떤 결론을 도출해낼 것인가. 명대사 <엑스 마키나>엔 중요한 변곡점이 있다. 일곱 차례의 테스트를 거치는 중간, 칼렙(돔놀 글리슨)이 인공지능(A.I.)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에게 진심으로 흔들리자 에이바를 만든 네이든(오스카 아이삭)은 칼렙에게 테스트의 취지를 상기시킨다. “진화된 인공지능의 등장은 수십년 전부터 예고된 일이었어. 문제는 그게 언제인가야. 에이바는 창조된 게 아니라 진화된 거야. (…) 에이바가 가엾나? 자네 걱정이나 해. 곧 인간은 저들에게 아프리카 화석처럼 기억될 거야. 원시적인 언어와 도구를 쓰며 먼지 속에 사는 직립보행 유인원 말이지. 멸종을 눈앞에 둔 존재로 말야.” 신과 다름없는 존재이기에 네이든의 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너무나 인간다운 인간 칼렙은 무력하게 버려지고, 에이바는 자신만의 창세기를 여는 데 성공한다. 작가 알렉스 갈랜드가 과학의 어떤 모습에 매혹되었는지도 어렴풋이 짐작된다. 게임 시나리오에도 강점이 과학에 흥미를 둔 작가가 게임으로 손을 뻗어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알렉스 갈랜드는 게임사 닌자 시어리(Ninja Theory)의 CEO 타밈 안토니아데스와 함께 콘솔게임 <인슬레이브드: 오디세이 투 더 웨스트>의 각본도 썼다. <서유기>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역시 과학기술의 일부가 활용된 이 게임 시나리오는 2011 영국작가조합어워드에서 베스트 컨티뉴잉 드라마상도 수상했다. 그 뒤 알렉스 갈랜드는 의 스토리 슈퍼바이저로도 일했고, 상당 금액의 개발비와 함께 엑스박스의 킬러 콘텐츠 <헤일로>의 영화화도 손에 쥐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전 회장까지 “‘스토리 예술’로서의 비디오게임 분야에서도 <헤일로>는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고 말했을 만큼 <헤일로>는 중대한 프로젝트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영화화는 엎어졌지만 <헤일로>의 팬들은 여전히 그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trans x cross] “내 그라운드에서 오직 음악으로 맞선다”

“열망은 딱 하나지 내 영감을 채워 만든 명반/ 열반 이건 일종의 우월감/ …난 지금 열반의 경지.” 딥플로우의 세 번째 앨범 《양화》는 “열반의 경지”에 오른 딥플로우의 묵직한 선포로 시작한다. 그 선포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고도, “유희열 면회증” 같은 것 없이도 “꿈을 이뤘다”는 자부심과 이유 있는 고집을 바탕으로 한다. 넉살, 던밀스, TK, ODEE 등이 소속된 VMC(비스메이저 컴퍼니) 레이블의 수장으로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을 10년 넘게 일구어온 딥플로우는 지난해 4월 발표한 《양화》로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 노래상’과 ‘올해의 음악인상’을 수상했다. VMC의 합정동 작업실에서 딥플로우를 만나 지난해 최고의 힙합 앨범 중 하나로 손꼽혔던 《양화》에 대해, 그의 불가항력적 음악과 소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늦었지만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을 축하한다. 최우수 랩&힙합 노래상과 올해의 음악인상을 받았는데, 특히 올해의 음악인상 수상은 타협 없이 한길을 걸어온 힙합 아티스트에 대한 인정의 의미가 컸다. =심사위원들이 그런 부분을 조명하고 상을 줬다는 게 신기했다.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힙합 아티스트한테 음악인상을 준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데 사실 아직도 의아하다. 왜 내게 음악인상을 줬는지. (웃음) -이센스의 《The Anecdote》가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지만 《양화》 역시 그럴 자격이 충분한 앨범이었다. 내심 앨범상을 기대하진 않았나. =종합 부문 앨범상은 아니고 힙합 부문 올해의 앨범상은 받고 싶었다. -<작두>로 최우수 랩&힙합 노래상을 받았다. 타이틀곡인 <버킷 리스트>나 앨범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열반> <양화> 같은 곡도 인상적이었다. =만든 이의 의도가 확실히 드러나고 음악에 대한 반응까지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는 곡을 기획물이라고 하는데 <작두>가 그런 곡이었다. 공연 때 부르기 좋고 팬들이 좋아할 수 있는 킬링 트랙이 하나의 장치로서 앨범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목소리가 낮고 화려하지 않은 스탠더드 랩을 추구하는 나의 랩 스타일에는 어느 정도 핸디캡이 있다. 공연할 때는 하이톤의 래퍼들과 협업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넉살과 허클베리피가 <작두>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들이 더 조명을 받았다. 이 친구들이 나보다 더 날아다녀서 곡이 풍성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피처링이 주인을 압도했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큰 정은 안 간다. (웃음) 100% 내 이야기가 담긴 곡들에 더 애착이 간다. -3년가량 준비해 《양화》를 내놓았다. 세 번째 정규 앨범 이상의 의미를 담으려 한 것 같은데. =《양화》를 작업할 당시가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20대 마지막 즈음엔 ‘이제 다 끝났다’ 하는 마음, 제2의 중2병에 걸려 있었다. (웃음) 그래서 더 진지하게 작업에 임했던 것 같다. 전에는 내 노래로 가득 채운 1시간짜리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단순한 의도로 작업했다면 이번엔 처음으로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컨셉을 잡고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모든 걸 다 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만든 앨범이다. -그런데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먼저 발표됐다. 어떤 심정이었나. =이미 2년 정도 앨범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양화대교>가 나왔다. 심지어 노래가 너무 좋아서 패배감에 빠졌다. ‘딥플로우의 양화대교 이야기도 기다려주세요’ 그런 오그라드는 글도 술 마시고 SNS에 남기고. (웃음) 그렇다고 타이틀을 교체할 수는 없었다. 이미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여서. -일터인 홍대와 살고 있는 영등포 두곳을 잇는 것이 양화대교다. 양화대교를 모티브로 삼아 앨범 작업을 하게 된 이유는 뭔가. =그 당시 홍대의 코쿤이라는 클럽에서 호스트 MC 아르바이트를 했다. 호스트 MC의 역할은 술 마시며 노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멘트와 랩을 하는 거다. 그런데 정작 나는 전혀 신나지가 않았다. 호스트 MC로 4년간 일하는 동안 항상 마음이 눅눅했다. 새벽에 택시 타고 양화대교를 건너서 집에 갔는데, 한강을 바라보면 무척 슬펐다.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면서 이게 뭐하는 건가 싶고. 클럽에서 사람들이 ‘딥플로우 아니에요?’ 하고 알아보면 창피하기도 했고.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 하루에 두번씩, 거의 천번 이상 양화대교를 건넜다. 그러다보니 굉장히 각별한 장소가 됐고, 그때의 감정들이 앨범의 모티브가 됐다. -첫 번째 트랙인 <열반>엔 14년차 래퍼의 자부심과 현재의 힙합 신에 대한 회의감이 섞여 있다. =지금의 한국 힙합 신이 <쇼미더머니>라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좌지우지되고 있는데 이런 경험 자체가 굉장히 생소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누군가는 너도 거기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고, 주변에 그런 고민으로 흔들리는 동료들도 자주 봤다. 결국엔 ‘내가 맞아,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아, 이제 너희들은 신경쓰지 않겠어, 내 그라운드는 따로 있어’ 하면서 정신승리를 하게 됐고, 그런 생각이 발현된 곡이 <열반>이다. -<쇼미더머니> 출연을 고민한 적도 있었나. =시즌 초반보다 최근에 그런 고민을 더 했던 것 같다. 꾸려가는 레이블(VMC)이 있으니까, 레이블에 소속된 친구들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혜를 받으면 앞으로 활동하기 편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지도도 올라갈 테고 돈도 더 벌 수 있을 테고, <쇼미더머니>는 굉장히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이콧까지는 아니지만 거기에 관심을 두지 말고 좋은 앨범이나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쇼미더머니>가 무작정 싫다는 건 아니고, ‘힙합 신의 물을 흐렸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젊은 래퍼들의 목적의식을 바꿔버렸다. -<낡은 신발>에서 그런 상황을 지적했다. ‘대체 니 꿈이 도끼야? 자신으로 살기 포기한 채/ 그건 니가 로또 맞을 확률보다도 Unlucky한 거야 이 병신아’라고. =과학의 발전처럼 요즘 친구들이 랩은 다 잘한다. 보고 들은 게 많아서인지 학습 속도도 빠르다. 그런데 말한 것처럼 목적의식이 다 흐릿하다. 내가 한창 힙합 좋아하고 랩 할 때는 ‘저 멋있는 형들처럼 무대에 서서 랩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지금은 ‘돈 벌고 싶다’가 압도적으로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생각이지만 뭔가 로망이 사라진 느낌이다. 이 친구들은 돈벌이가 안 되면 랩을 안 하겠네, 그런 생각이 든다. 또 음악에 승패가 존재한다면 음악으로 해야 하는데, 팬들은 목걸이, 시계, 차로 성공한 아티스트와 그렇지 않은 아티스트를 나눈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차트에 오른 음악이 승리한 것처럼 인식되니까 거기서 오는 박탈감과 괴리감이 있다. -지난 2월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했다. TV 출연에 대한 거부감이 있진 않나. =방송 출연에 대한 거부감은 없고 단지 내가 잘하는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프로그램의 성향도 본다. 최근엔 할머니들한테 랩을 가르치는 <힙합의 민족>이란 프로그램도 생긴다더라. (웃음) 거기서도 섭외가 들어왔는데 이걸 왜 하는 거지 싶어서 거절했다. -원래는 예고에서 미술을 전공했는데 힙합으로 진로를 선회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으로 ‘이것이 힙합이구나’라고 강렬한 느낌을 준 음악이나 뮤지션이 있다면. =중학생 땐 국내 힙합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에미넴이 2001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엘튼 존과 함께 을 부르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 그동안 들었던 조피디나 원타임이나 지누션의 음악이랑은 완전히 달랐다. 그때부터 외국 힙합을 많이 찾아들었다. 나스의 음악을 듣고 나스의 뮤직비디오를 보고선 ‘나 이런 거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다. 대학도 만화창작과로 진학했다. 만화가 아니라 힙합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지는 5년밖에 안 된다. 5년 전에는, 나는 언젠가 만화가가 될 건데 힙합이라는 외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웃음) -어느 인터뷰에서 래퍼로서 멋있는 나이가 있다고 말했다. 커트라인이라고 생각하는 나이는 몇살인가. =평균 커트라인을 말한 건 아니고 스스로에게 적용한 말이었다. 외국 같은 경우 스눕 독, 제이 지 같은 사람들이 불혹의 나이가 지나서도 멋있게 음악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태진아, 설운도 같은 대중적인 원로가수라 할 수 있어서 우리와 일대일 비교를 하긴 힘들다. 국내에선 MC 메타 형이 멋있게 활동하고 있지만 그 또한 상징적인 아이콘으로서 특별한 경우다. 힙합 자체가 ‘힙’한 음악이고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내 경우는 글쎄 서른 여섯? 그쯤까지 생각하고 있다. -서른여섯이면 얼마 안 남았다. (웃음) =그래서 다음 앨범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웃음) 이후엔 프로듀싱에 더 집중하고 싶다. 인간 류상구 이야기 《양화》 딥플로우의 세 번째 정규 앨범. 1번 트랙 <열반>을 시작으로 마지막 곡 <가족의 탄생>까지 총 15곡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이소룡의 영화 제목과 이소룡의 캐릭터를 겸사겸사 차용한 당산동(에 작업실이 있었던) 빅 브라더의 스웨그(swag, 힙합 용어로 ‘멋지다, 내가 최고다’라는 의미) <당산대형>, 하품나는 짝퉁과 가짜들을 싹둑 베어버리는 <작두> 같은 곡이 앨범의 앞쪽에 배치돼 후반부에 드러나는 인간 류상구의 모습을 극대화한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버킷 리스트> 등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은 곡들이 《양화》에 포진해 있다.

패자는 없다

메시 대 호날두. 애플 대 삼성. 아이언맨 대 캡틴 아메리카. 배트맨 대 슈퍼맨. DC 대 마블. 사람들은 왜 라이벌에 집착을 할까. 왜 모든 것이 경쟁이 되어야 할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대결 구도로 만드는 것 같다. 그렇게 해야만 적어도 어느 한편에는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가 어느 편에 속하고 누구를 함께 응원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DC와 마블이 경쟁상대라고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대결이라기보다 이 두 회사는 결과적으로 각자 자기만의 특별한 브랜드와 정체성을 갖출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공생적인 관계를 이루어온 것이다. 현대 슈퍼히어로의 탄생 1938년 4월18일, 형사물(Detective) 코믹스의 액션 코믹스 브랜드를 통해 슈퍼맨 첫회가 출간되며 만화책 황금시기(1930년 말~1950년 초)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우리 현대 슈퍼히어로의 탄생이다. 그전의 만화책들은 깡패 서부 포르노 SF와 형사물이었다. DC 코믹스의 DC가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에서 비롯된 약자인 것을 모두 알 것이다. 슈퍼맨의 대성공 이후로 모든 산업이 새로운 슈퍼히어로를 만들어냈다. 슈퍼맨 이후 1939년 5월 디텍티브 코믹스 27회의 어둠 속에서 배트맨이 나타났다. 1939년 타임리(Timely) 출판사(이 출판사는 1961년 공식적으로 마블 코믹스가 된다)는 불과 물에 관련된 슈퍼히어로 휴먼 토치와 네이머를 마블 코믹스 1화에 등장시켰다. 1941년 잭 커비와 조 사이먼은 캡틴 아메리카를 창조했다. 그 당시에 DC는 훌륭한 그림과 탄탄한 스토리 중심이었고, 반면에 타임리 출판사는 훨씬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지녔었다. 코믹스는 초기에 대공황을 탈출할 수 있는 근원이었다. 그리고 1941년 미국이 세계 2차대전에 참전하며 코믹스는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히틀러를 때렸고 슈퍼맨은 스탈린, 히틀러와 싸웠다. 그러나 몇년의 대공황과 전쟁을 겪은 후 현실의 전쟁 영웅들이 귀향할 때 미국은 더이상 슈퍼히어로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안정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50년대 들어 텔레비전의 인기와 코믹스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미국 상원으로 인해 슈퍼히어로와 코믹스의 인기는 시들어갔다. 종교계와 교육계 집단은 코믹스를 보이콧하고 심지어 코믹스를 모아서 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슈퍼맨은 텔레비전 쇼 덕분에 이 위기를 버티고 인기를 오래 유지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던 마블은 서부, 괴물, 호러, 코미디, 도덕적 이야기 따위에 의지했다. 1961년 저스티스 리그의 성공이 없었으면 어벤져스와 판타스틱 포도 없었다. 저스티스 리그의 초기 멤버들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마샨 맨헌터, 아쿠아맨, 그린랜턴, 플래시로, 당시 마블 회장 마틴 굿맨은 DC 출판사와 골프를 치면서 출판사의 저스티스 리그 성공에 대한 자랑을 들어야 했다. 이후 마틴 굿맨은 작가 스탠 리에게 가서 마블도 슈퍼히어로팀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어벤져스와 판타스틱 포가 탄생했다. 60년대에는 달에 먼저 도달하기 위한 경쟁이 있었고,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었고, 시민 평등권 운동이 중요해졌고, 초기 코믹스 팬들은 청소년과 성인이 되었다. DC 슈퍼히어로들은 독자들에게 좋은 아이들이 되라고 말하는 도덕적인 어른의 이미지였다. 반면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은 독자들의 걱정과 그들의 세계를 대변하는 존재가 되어갔다. DC는 훨씬 신화적이고 판타지적이었던 반면에 마블의 히어로들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에 대해 회의하면서 이에 맞서는 모습을 그렸다. 미국 코믹스 세계관의 배경이 되는 도시를 보면 이 판타지와 현실의 차이를 볼 수 있다. DC 세계관의 배경은 메트로폴리스나 고담시처럼 가상의 도시인 한편 마블 세계의 배경은 뉴욕 , 휴스턴, 로스앤젤레스 등 실제 도시이다. 케네디 암살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마블의 스탠리와 잭 커비는 그들의 코믹스 세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선전용 슈퍼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를 얼음에서 녹여버리고 부활시켰다. 캡틴은 그 당시 60년대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대통령이 암살당한 세상이 얼마나 부당하고 적응할 수 없는 상황인지 보여주기 위해 부활한 것이다. 평등권 운동이 이슈가 되자 마블은 첫 흑인 슈퍼히어로 블랙 팬서와 루크 케이지를 탄생시켰다. 마블은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이 먹어가는 독자들은 새로운 히어로인 스파이더맨을 지지하게 되었다. 자신감 넘쳤던 기존의 히어로와 달리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 인생 외에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피터 파커는 여자 문제, 학교 문제, 친구 문제를 안고 아픈 이모와 삼촌과 같이 사는 평범한 10대 소년이었다. 스탠 리가 스파이더맨을 어떻게 탄생시켰는지에 대한 인터뷰에서 피터 파커에 대해 “그는 어리둥절하고, 자신없고, 서툴고, 어색한 너드(nerd)여야 됐다. 그는 10대의 나 같은 루저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스파이더맨은 슈퍼맨 이후 가장 인기 많은 히어로가 되었다. 마블은 그 당시 우주 과학 발전을 비추는 판타스틱 포를 탄생시켰고, 헐크는 미군들에게 쫓기는, 감마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과학자였으며 핵폭탄, 냉전시대, 반베트남전쟁 감정을 보여준 캐릭터였다. 마블이 실험을 하고 있었을 때 DC는 유명한 슈퍼맨, 원더우먼, 그린랜턴의 인기와 배트맨 TV쇼와 굿즈들을 통해 상업적 성공을 즐겼다. 히어로들의 변화 1970년대에는 비조직 범죄, 마약 문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등이 있었다. 슈퍼히어로들은 불쾌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그전에 있던 이상주의는 사라졌다. 조금 유치했던,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던 DC에서 깊이 있는 스토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DC의 그린 애로우와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마약 문제를 건드렸다. 슈퍼히어로들은 더 폭력적이고 치열한 문제들에 맞닥뜨렸다. 코믹스의 세계관에서 더 많은 죽음들이 발생했다. 스파이더맨의 여자친구인 그웬 스테이시는 목이 부러져 죽었고 정의를 위해서 살인을 하는 퍼니셔는 데어데블의 악당이 되어버렸다. 울버린은 영웅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고 슈퍼맨과는 상당히 차이나는 도덕성을 지녔다. 토니 스타크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슈퍼맨의 숙적인 렉스 루터는 전에는 미친 과학자로 나왔지만 이제는 악한 기업체 간부와 정치인으로 재해석되었다. 흑인, 동양인, 동성애자, 왕따 같은 소수자에게, 다수와는 다른 돌연변이인 엑스맨은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헐크와 원더우먼이 등장하는 TV쇼들은 여전히 큰 성공을 누렸다. 그 시절 슈퍼맨 영화들은 현재의 슈퍼히어로영화들의 길을 터주었다. 히어로를 다루는 TV쇼나 영화가 만화책들처럼 진지한 줄거리를 가지기엔 시간이 더 걸렸다. 1980년대 레이건 시대의 애국심에 대한 환멸로 등장한 두개의 DC 스토리는 시장에 혁신을 일으켰다.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앨런 무어의 <왓치맨>이 바로 그것이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늙고, 망가지고, 지친, 은퇴한 배트맨의 모습을 보여준다. 배트맨의 재해석에 충격을 먹은 팬들은 밀러가 배트맨을 파시스트로 만들어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밀러는 “배트맨이 파시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치 공부를 더 해야 한다. 배트맨은 오히려 자유의지론자다. 파시스트들은 남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배트맨은 단지 범죄자들을 보고 멈추라고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왓치맨>에서는 슈퍼히어로들이 보통 인간보다도 더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국가들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시기, 슈퍼히어로의 필요성에 대해 지적한다. 두 이야기는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것이 정신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준다. 마스크를 쓰고 세계를 구원한다고 다짐한 사람이 결코 정신적으로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슈퍼히어로의 도덕성과 목적을 의심하는 계기가 된다. 어두운 컨셉을 따라 워너브러더스의 자회사가 된 DC는 강렬하고 고딕적인 느낌으로 표현된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들을 개봉한다. 90년대 들어 부도 위기에 처한 마블은 전도유망한 엑스맨과 판타스틱 포의 저작권을 이십세기 폭스에 넘기고 스파이더맨을 소니에 넘긴다.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와 달리 마블 영화들은(엑스맨, 스파이더맨 등) 만화책 내용과 멀지 않고 부담없는 액션영화로 성공할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영화들은 지나치게 만화 같았고(유치했고) 작품적으로도 혹평을 받았다. 그 당시까지는 인기가 많았던 배트맨의 굉장히 어두운 시기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예전에는 마블이 현실적인 스토리를 겪는 슈퍼히어로를 만들었는데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으로 이후 DC와 마블의 현실과 판타지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스파이더맨 영화들이 단순한 선악 대결을 보여주고 있는 시기에 놀란이 해석한 배트맨은 9•11 테러 이후의 세계에 적절한, 어둡고 도덕적으로 애매한 인물로 재발견되었다. 배트맨의 선제적 행동의 철학은 부시 정부의 중동 지역 외교정책을 반영했다. 놀란은 “우리의 두려움에 대해서 솔직해지자면, 9•11 테러 이후 미국 대도시를 배경으로 액션영화를 찍으면서 테러에 대한 신념과 직면하게 되었다. 영화감독으로서는 관객이 거리를 두고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를 만드는 데 책임을 느끼면서도 엔터테이너로서는 나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맨 오브 스틸>도 이런 현실적인 컨셉을 장착하면서 슈퍼맨의 원초적인 이상주의는 많이 없어졌다. 진지 vs 유머 DC는 심각한 (솔직히 너무 심각한)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반면 마블은 작품마다 이스터에그, 쿠키영상 그리고 유머를 동원해 팬들의 다음 편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을 사고 있다. 이제야 마블의 이러한 성공 전략을 깨달은 DC는 마블의 공식을 써서 이번 배트맨과 슈퍼맨 영화로 자기들의 시네마틱 세계를 시작하고자 한다. 필자의 생각에 마블의 장점은 이 치밀한 계획력에 있으며 DC의 매력은 악당에 있는 것 같다. 저스티스 리그를 파괴하려고 조커와 렉스 루터와 다크사이드가 힘을 합치고 서로 배신하는 모습이 영화에 담기면 정말 흥미로울 것이다. 지금 두 영화의 세계관을 보면 마블의 타노스와 토르, DC의 슈퍼맨의 크립톤을 통해서 우주와 연관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나타났다시피 우주 스토리들은 지구와 연관 없이 편하게 우주에서 스토리를 시작하고 마무리하지만 DC 코믹스의 우주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언젠간 그 클라이맥스를 지구에서 진행할 것이다. DC가 과연 마블을 따라 우주에서의 전쟁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출판 매체에선 초기에 DC가 기준을 세웠고 그 뒤에 진보적인 마블이 그 기준을 재정비했다. 이어서 80년대에 DC는 어두운 <다크 나이트 리턴즈> 만화 등을 통해서 그 기준을 또 개조하도록 강요받으며 코믹스를 잊고 있던 독자들을 탈환하였다. 여기서 데자뷔 현상이 드러난다. 영화와 TV매체에서도 슈퍼맨과 배트맨을 통해 DC는 초기 기준이 된 걸 즐겼다. 그러나 20세기 말, 21세기 초 마블이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나타나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제 DC는 80년대처럼 어둡고 현실적인 그들만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대답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DC와 마블은 경쟁을 통해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슈퍼히어로 대결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두달 간격으로 개봉되는 걸 봐도 놀랍지 않다. 블루 스웨이드의 팝송 이 나오는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예고편의 성공에, DC는 <수어사이드 스쿼드> 예고편에 흐르는 퀸의 로 대응했다. 프랭크 밀러와 그랜트 모리슨 같은 대단한 작가들도 회사를 가리지 않고 이 두 회사를 위해서 굉장히 기막힌 스토리를 썼다. 그리고 배트맨과 울버린이 한 캐릭터로 재해석되는 DC/마블 크로스오버 스토리라인도 가끔식 등장한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이들 두 회사가 대결 상대라기보다는 공생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은 경쟁자라기보다는 서로 의지하는 형제 같은 존재다. 형제도 친근하고 공감할 수 있는 형제가 있고, 롤모델이나 우상 같은 형제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가끔식 이들이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두 회사는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우리는 즐기면 된다. 글 시드(Syd) 인디영화 감독, 영화비즈니스전문아카데미 로카 ‘슈퍼히어로의 모든 것’강사

[앤드루 가필드] 진중하게 답을 찾는 연기

영화 2016 <핵소 리지> 2016 <사일런스> 2014 <라스트 홈> 2014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2012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010 <소셜 네트워크> 2010 <아임 히어> 2010 <네버 렛 미 고> 2009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2008 <천일의 스캔들> 2007 <보이A> 2007 <로스트 라이언즈> 드라마 2009 <레드 라이딩: 1974> 2009 <레드 라이딩: 1980> 2009 <레드 라이딩: 1983> 2007 <닥터 후> 시즌3 2005 <슈거러시> 딜레마의 남자. 배우 앤드루 가필드가 맡아온 배역은 늘 ‘나는 누구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소년범 ‘보이A’이자 과거를 청산한 ‘잭 버리지’였고(<보이A>), 평범한 소년 ‘토미’이자 장기를 기증할 용도로 길러진 클론이었으며(<네버 렛 미 고>), ‘피터 파커’이자 ‘스파이더맨(<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었던 그는 영화에서 번번이 가혹한 운명에 처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자아 정체성을 고민하는 남자를 연기해온 앤드루 가필드는 언제나 위태로운 사춘기 무렵의 소년 같았다. 유난히 빛을 많이 반사해내는 까만 눈망울과 숱이 많아 덥수룩한 머리, 비스듬한 어깨에 어쩐지 애처로워 보이는 긴 목, 그러나 웃을 땐 해가 나듯 화사해지는 얼굴까지. 여린 소년의 감성을 담은 얼굴은 때때로 상대배우 혹은 관객과의 벽을 일순 허물어버리며, 어떤 장르에서 어떤 역할을 맡든 기어코 멜랑콜리한 무드를 형성하곤 했다. 인물이 자신이 누구인지 고뇌하는 과정에서 앤드루 가필드의 세심하고 감성적인 연기는 감정의 무게를 전달하기에 적격이었다.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그가 브라운관에서 첫 연기를 선보인 영국 드라마 <슈거러시>는 그의 소년다움이 극명히 드러난 작품이다. 데뷔 당시 22살의 어리지 않은 나이였지만, 중학생 소년처럼 풋내 나는 비주얼의 그는 짝사랑하는 소녀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이기 일쑤인 소년의 모습을 그려냈다. 대뜸 키스를 해놓고 화장실로 뛰어와 입 냄새가 나는지 확인해보고, 치약 아닌 제모제를 입에 짜넣었다가 황급히 뱉어내는 모습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코믹하고 밝은 모습일 터다. 그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존 크롤리 감독의 <보이A>에서였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소년은 비뚤어진 친구와 어울리다 한 소녀를 죽이고, 14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뒤 ‘잭’이란 이름으로 새 출발하려 하지만 그를 뜻하는 ‘보이A’는 계속해서 발목을 잡는다. 자아를 확립해야 할 시기에 교도소에서 복역한 잭을 앤드루 가필드는 어린아이 같은 백지 상태로 표현해낸다. 처음 사귄 친구와 연인의 사소한 호의 하나하나에도 쉽게 감동하고 지레 움츠러드는 그의 제스처는 놀랍다. 불안감과 행복감의 경계를 일렁이는 눈빛, 미소를 머금다가도 곧 탄식을 뱉을 것처럼 벌어지는 입, 뒷걸음치다가도 이내 놓칠까 두려워 꼭 그러안는 두팔. 방어적이면서도 사랑받길 갈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그의 연기는 경이로울 정도다. 그는 <보이A>에서 보여준 순수한 모습을 <네버 렛 미 고>와 <아임 히어>로 이어갔다. 장기 기증을 위해 만들어진 클론들의 사랑을 그려낸 <네버 렛 미 고>에서 ‘토미’ 역시 천진하고 동물적인 캐릭터다. 잭처럼 토미도 끊임없이 자신이 영혼을 지닌 인간이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임을 입증하려 한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단편 <아임 히어>에서는 금속의 로봇으로 분해 사랑하는 로봇에게 팔과 다리, 몸통마저 내주고 머리만을 남긴다. 표정조차 쓸 수 없는 한정적 상황에서 그는 자기희생적인 캐릭터를 목소리와 행동만으로 살려낸다. 네모난 금속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유독 따뜻하다. 어딘가 결핍돼 있지만, 그래서 더 순정적인 모습들이다. 전과자, 로봇, 클론 등 유약한 소수자의 얼굴을 탁월하게 그려내던 앤드루 가필드는 <소셜 네트워크>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며 대중의 시선을 환기했다. 천재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의 동업자이자 투자자 왈도 세브린은 하버드 재학생으로서의 지성과 핸섬한 외모, 재력을 갖춘 인물이다. 너드에 냉혈한인 마크 저커버그와 대조되는 훈훈한 외모와 인간미를 갖춘 그는 더는 ‘짠한’ 소년이 아닌 ‘매력적인 수컷’으로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왈도 세브린 역시 전작에서의 멜랑콜리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왈도는 믿었던 친구 마크에게 배신당하며 약자의 포지션에 서고, 그 실연의 서사를 거의 연인 사이의 그것처럼 재연해낸다. 멋진 외관 이면의 열등감과 상처받은 마음은 기존 앤드루 가필드의 매력을 멜로드라마적으로 살린 대목이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그의 연기를 “믿을 수 없는 감정이입이었다”고 말했다. “3살 때부터 스파이더맨 슈트을 입는 게 꿈이었던” 앤드루 가필드는 리부트 작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캐스팅되면서 연기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는 기존의 <스파이더맨>을 멜로드라마적으로 재해석하고, ‘피터 파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섬세한 결을 불어넣는다. 마크 웹 감독은 앤드루 가필드를 낙점한 까닭으로 “그는 감정적인 무게를 다룰 줄 안.다. 피터 파커는 언제나 비극적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매우 중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부모님의 부재, 정체성을 고민하는 스파이더맨인 동시에 20층 아파트 발코니를 뛰어넘어 꽃을 한아름 바치고, 멋쩍은 듯 씩 웃는 로맨틱한 스파이더맨이기도 했다.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로 거듭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전세계에서 약 7억5800만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영화 속 로맨스는 실제로 이어져, 앤드루 가필드와 에마 스톤은 장장 4년간의 만남을 지속하며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이 시리즈를 통해 히어로물의 하이틴 스타로, 할리우드의 핫한 커플로, 셀러브리티로 거듭났지만 동시에 이 시리즈는 그에게 족쇄이기도 했다. 시리즈 2편에 4년을 묶여 있어 필모그래피는 한동안 공백이 됐고, 무엇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처참한 완성도는 그의 실패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앤드루 가필드는 “제작사 소니의 지나친 간섭으로 초기의 좋은 각본이 산으로 갔다”고 소신껏 발언해 소니에 미운털이 박혔고, 결과적으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감독과 주연배우가 모두 하차하며 종료됐다. 스파이더맨 슈트를 벗은 그는 성큼 자라서 돌아왔다. 그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초래된 부동산 대공황 사태를 다룬 <라스트 홈>을 차기작으로 선택했고, 제작에도 처음으로 참여했다. 영화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집을 차압당하는 당사자들의 고통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차압당하는 이와 차압하는 부동산 사업자 갑을 구도에서 앤드루 가필드가 맡은 역할은 ‘갑’이 된 ‘을’ 데니스 내쉬다. 주택담보 연체자였으나 부동산 업자 릭 카버(마이클 섀넌)의 동업 제안을 받은 그는 자신의 집을 되찾기 위해 다른 이들의 집을 빼앗아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다. 앤드루 가필드는 수염을 기르고 오물을 묻히는 연기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서사에 가까이 밀착해 영화를 견인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그는 땟국 진 인부의 옷에서 멀끔한 정장까지 갈아입으며 모습을 바꾼다. 여태까지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인가, 사회가 규정하는 나인가’를 고민했던 그가 이젠 딜레마의 층위를 ‘나는 어떤 내가 되어야 하는가, 사회와 나는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가’의 윤리와 당위의 문제로 확장한 셈이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는 또 다른 두 작품 역시 촬영을 마쳤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멜 깁슨 감독의 <핵소 리지>에서는 군 거부를 주장한 첫 양심적 병역수이자 군의관인 드몬드 도스 상병을 연기한다. 17세기 예수회 사제가 일본에서 받은 박해를 그려낸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사일런스>에선 로드리게스 신부 역을 맡았다. 두 작품에서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 데서 나아가 그 신념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넌 어렸을 때부터 아주 많은 의문을 가지고 살아왔지. 그 의문들이 삶의 원동력이자 우리의 본질이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벤 파커가 피터 파커에게 건네는 이 말은, 배우 앤드루 가필드의 연기 인생에도 유효한 대사다. 숱한 물음표들이 모여 만들어낸 그의 초상은 점점 더 근사해질 것이다. 내게도 소중한 사람이 생겼어 <보이A>의 잭은 교도소에 수감된 14년의 세월의 공백으로 사회성이 결여되고 어린 아이의 모습을 간직한 인물이다. “살면서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말하고 들을 수 있을 줄 몰랐어.” 떨리는 눈빛과 애달픈 목소리로 미셸에게 고백하는 이 장면은 그중 백미.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이라는 중죄를 저지른 인물임에도 보이A가 아닌 잭의 등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전적으로 앤드루 가필드의 연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앤드루 가필드는 이 작품으로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BAFTA)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김영진의 영화비평] 비극의 시대를 비웃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하스미 시게히코의 평론집 <영화의 맨살>에는 ‘영화는 어떻게 죽는가- 할리우드의 50년대’라는 글이 실려있다. 강연을 풀어낸 이 글의 주제는 코언 형제의 신작 <헤일, 시저!>와 크게 통하는 부분이 있다. 경쾌하게 조롱 섞인 긍정을 담은 이 희극 영화는 언뜻 영화 찬가의 외피를 두른 것처럼 보이지만 할리우드 전성기인 1930년대나 1940년대가 아니라 1950년대의 할리우드를 배경 삼았다는 점에서 이 당시에 영화가 죽어가고 있다는 쓰디쓴 진술을 담으려는 속내와 무관하지 않다.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다수의 실력 있는 영화인들은 매카시즘 광풍으로 실업자가 되거나 근신하며 남의 이름을 빌려 활동하지 않으면 망명해야 했다. 할리우드가 전무후무한 커다란 재능의 손실을 겪은 시기였다. 또한 텔레비전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1년에 500여편을 주기적으로 생산하던 작업공정 구조가 훼손되면서 스튜디오 시스템이 무너졌으며 단단한 드라마보다는 대작 위주의 물량공세로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었다. 영화의 죽음 이후의 영화적 관계 맺기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은 이런 교과서적 사실 외에 또 다른 흥미로운 가설을 던진다. 고전기의 할리우드에서 활약했던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영화현장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학력이 없는 영화 전문인들로서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불량배 같은 기질을 가진 개성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들이 건설한 할리우드 고전기라는 황금기를 지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할리우드에 영입된 영화인들은 대학을 마친 고학력자들로서 영화에 관한 자의식을 갖고 영화를 대한, 좌파적 소양이 다분한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조셉 로지나 엘리아 카잔 같은 감독들은 젊은 시절에 어떤 식으로든 공산주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었고 앞서 말했듯 매카시즘이 할리우드를 덮치자 이들은 영화를 찍기 위해서 타협을 하거나 망명을 택해야 했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과 같은 감독들은 ‘데뷔하자마자 영화를 빼앗겨버렸다’ . 조셉 로지는 망명했지만 엘리아 카잔과 같은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은 동료들을 배신해서라도 미국에 남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망명하거나 변절했던 정치적 희생자들로 인해 영화의 죽음이 시작되었다고 하스미 시게히코는 주장한다. “할리우드영화의 낙천적인 밝음은 이때 붕괴하기 시작했고 앞 세대에 비하면 교양과 지식이 있었던 그들은 할리우드의 낙천성을 재생산할 수 없었다.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제작자에게 인정받을 수도 없었다. 일단 기존 장르를 이용하면서 거기에 사회비판을 집어넣는다는 전략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아볼 사람은 알 것이라는 식으로 영화에 상징적인 의미를 배치했고 반동적이기는 하지만 직업적 양심만은 갖고 있는 프로듀서에게 인정받으려면 연출 수완이 아주 뛰어나야 했다. 조셉 로지, 니콜라스 레이, 에이브러햄 폴란스키, 앤서니 만, 존 휴스턴 등의 감독들이 이런 전략을 취했지만 거세진 정치적 반동의 여파로 이런 미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셉 로지, 에이브러햄 폴란스키 등의 감독은 미국에서의 경력이 끝났고 그보다 더 오래 버텼던 니콜라스 레이나 앤서니 만 등 재능 있는 감독들은 극단적인 대작 제작 경쟁의 도구가 되어 유럽에서 영화를 찍다가 알코올 중독으로 심신을 다쳐 할리우드에서 쫓겨난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1950년대에 서서히 죽어버렸던 영화에 대해, 영화의 죽음을 의식하고 영화를 찍었던 빅토르 에리세, 다니엘 슈미트,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의 감독을 언급하면서 이들이 초기작을 찍었던 1973년의 영화들을 언급하는데 그의 분석이나 예언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빨갱이 사냥의 시대에 풍속적인 흥미나 정치적인 분석 외에 그때 문화로서의 영화가 무엇을 잃고 그 상실이 지금까지 어떻게 심각한 상처가 되어 남아 있는가에 대해 대다수가 충분히 의식하고 있지 않다. 영화역사가 어떠한 희생을 누군가에게 강요한 탓에 지금 자신들이 있다는 자각이 희박하다. 더글러스 서크, 프리츠 랑, 로버트 시오드막 등이 할리우드에서 차례로 사라졌다. 그들이 미국영화에 무엇을 주었는지 미국의 누구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귀중한 인재가 일거에 어떤 나라를 떠나는 일은 없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에리세와 슈미트와 이스트우드의 초기 영화들이 영화의 죽음을 확실히 자각한 채 지금 영화를 찍고 있는 자신들은 누구인가를 영화로 질문한다고 평한다. 영화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에게 영화와 관계 맺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다는 것이다. 영화가 죽었으니 불행하다고 자각하는 이들 세대의 감독은 섬세하고 특이한 전략으로 1950년대까지 쌓아온 할리우드적인 여러 기법들을 자기들 영화에 원용하면서 기후 자체를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지평선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와 같은 영화의 기본적인 문제들을 할리우드 고전에서 어떻게 배웠고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가라는 자각이 확실히 드러나는 윤리적인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스미 시게히코는 말한다. 무려 1985년에 행한 강연 원고를 여기서 길게 인용하는 게 시대착오적이고 영화광적 단호함이 지나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하스미 시게히코의 ‘죽음을 끌어안은 영화의 현재를 성실하게 사는 것’이라는 명제는 곰곰이 새겨볼 만한 것이다. 코언 형제의 <헤일, 시저!>가 그런 명제를 정색하고 끌어안은 영화라는 건 아니지만 할리우드영화의 위대한 고전적 완성기를 지나 자체의 미학적 토대가 무너진 채 죽어가던 1950년대를 작품의 시대배경으로 삼은 이유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명제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엉뚱함으로 무장한 코언식 유머 이 영화의 주인공, 캐피털 픽처스 피지컬 프로덕션의 수장 에디 매닉스(조시 브롤린)는 반동적이지만 수완이 좋은 프로듀서다. 그는 하루를 분, 초 단위로 나눠 쓸 만큼 바쁜데 그의 일은 주로 상상하기 힘들 만큼 기벽이 심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건 사고를 조용히 처리해주거나 촬영현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마찰과 위기를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해 원만하게 무마시키고 어떻게든 작품이 완성되게 하는 일이다. 이 영화에서 에디 매닉스가 당면한 가장 큰 난제는 대작 <헤일 시저: 그리스도의 삶> 촬영 중 납치된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을 찾는 일이다. 베어드는 할리우드의 공산주의 비밀 결사단체인 ‘퓨처’(미래) 회원들에게 납치된 것인데 베어드는 종일 그들의 강의를 들으며 하루 사이에 어느 정도 의식화된다. 어느 대학교수의 자문을 받고 할리우드 일급 뮤지컬 스타인 버트 거니의 지휘를 받는 그들 비밀 결사단체 회원들은 주로 시나리오작가들이며 자신들이 얼마나 자본주의를 혐오하고 영화를 통해 그들의 반자본주의적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파시켰는지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코언의 카메라는 이들에게 동조하는 것도, 조롱하는 것도 아닌 거리감을 지키고 있는데 거기서 이상한 유머감각이 나온다. 그들은 베어드에게 신사적으로 굴지만 계몽적이며 위압적인 태도를 감추지 못하고, 혁명을 주장하는 그들의 언사와 행동은 추상적이고 나이브하다. 그들의 리더인 뮤지컬 스타 버트 거니는 급기야 회원들을 이끌고 인근 바다로 나가 그 혼자만 소련 잠수함을 타고 망명하는데 버트 거니를 배웅하는 ‘퓨처’ 회원들의 비장한 면면들은 미래를 견인할 만큼 강인해 보이기는커녕 연약하고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잠수함이 입수하면서 크게 넘실대는 파도 때문에 그들이 탄 조각배가 위태롭게 갸우뚱거리고 그들이 배 안에서 허둥대는 모습은 이들의 연약함을 점잖게 조롱한다. ‘퓨처’ 회원들에게 살짝 의식화된 채 돌아온 베어드는 자신이 배운 것을 전파하려고 하지만 즉각 싸늘한 대접을 받는다. 베어드가 에디 매닉스에게 자본의 추악함을 비난하는 언설을 앵무새처럼 읊을 때 에디 매닉스의 반응은 짧고 단호하다. 에디는 베어드의 뺨을 세차게 몇 차례 갈기고는 너를 스타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투자자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헛소리 말고 빨리 촬영장으로 복귀하라는 에디의 명령에 베어드는 직전의 호기를 잃고 순한 양처럼 복종한다. 베어드의 촬영장 이탈 소식을 가십 칼럼에 써먹으려는 삼류 저널리스트에게도 에디는 빨갱이 협조자가 될 거냐는 단순한 협박으로 효과를 본다. 이렇게 모든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에디는 자신과 관련된 일에선 결정장애를 갖고 있으며 남들이 보기엔 사소하지만 자신에게는 절실한 강박을 갖고 있다. 매일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는 그는 금연 결심을 실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의지박약을 자책하며 항공사로부터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도 마음을 정하지 못해 헤맨다. 베어드 사건을 해결할 즈음 에디는 다시 신부를 찾아가 항공사 스카우트 제안을 고민하는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데 옳다고 믿는 일을 하면 신이 함께할 것이라는 신부의 충고에 영화사 일을 계속하기로 굳게 결심한다. 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에디의 믿음은 물론 상대적인 것이다. 엄밀히 말해 항공사 취업과 영화사 일을 계속하는 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에디는 스튜디오 책임자이지만 동시에 사장의 분부를 받는 피고용인이기도 하다. 뉴욕에 있는 보스에게서 온 전화를 받을 때 그는 비굴하게 서서 마치 보스가 앞에 있는 듯 굽신거리며 지나친 예의를 보인다. 베어드의 의식화 연설에 그가 그토록 단호한 것도 투자자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었다. 진보 인텔리 물을 먹은 ‘퓨처’의 시나리오작가 회원들이나 자본주의의 당당한 시종인 에디 매닉스나 어딘가 허물어져 있고 기댈 데 없는, 영웅적인 면이 전혀 없는 인물들이고, 이 영화의 희극적 뉘앙스가 이런 인물들로부터 배어나오지만, 이 영화의 다른 등장인물들도 대체로 그렇다. 코언의 은근슬쩍 코미디는 심지어 에디 매닉스가 <헤일, 시저!>에 관한 종교적 자문을 구하기 위해 만나는 각계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그들의 일관되지만 어이없는 장광설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도 빛을 발하는데 예수의 신성 여부를 두고 벌이는 그들의 논전은 그들의 위에 있는 신을 모독하기에 충분할 만큼 불경하고 그 때문에 우스꽝스럽다. 이런 우스꽝스러움은 방사형으로 가지를 치며 수중 뮤지컬을 찍다가 가스가 차서 스스로 컷을 외치는 스타 여배우가 임신한 아기를 몰래 출산했다가 입양하는 방법을 불법적으로 모색하다 그런 일을 처리해주는 전문가와 다시 바람이 나 번개처럼 결혼을 해버린다거나, 우아한 연출방식을 고수하는 일류 감독이 서부 액션 스타를 캐스팅해 그의 발연기를 보다 못해 저잣거리 상인처럼 짜증을 내며 이성을 잃어버린다거나, 고도로 양식화된 뮤지컬을 연출하는 유럽 출신 감독이 촬영 막간에 자신의 불륜 사실을 스웨덴에 있는 본처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제작자 에디 매닉스에게 부탁한다거나, 또는 러시아로 망명을 갈만큼 의식화된 뮤지컬 스타 배우가 촬영현장에선 자신의 머리를 만진 것에 항의하는 술집 주인 역의 배우를 가볍게 무시하는 행동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모습을 통해 형용모순의 어쩔 수 없는 지경에 대해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만든다. 사라진 ‘믿음’을 대신하는 기적의 순간 거듭 말하지만 이게 조롱은 아닐 것이다. 코언 형제는 그저 위대한 할리우드가 난처한 지경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거대 담론을 고민하는 지식인 영화인들이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곤경도 직선으로 돌파하는 속물 프로듀서나 철없는 어린애 같은 행동으로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바보 같은 모습의 스타 배우들이나 지성과 수완을 갖고 있지만 막노동판 같은 영화현장에서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다양하게 풀고 있는 감독들이나 저마다 모두 자기만의 곤경에 빠져 있다. 그걸 망원경으로 보면 서두에 밝힌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화가 죽어갔던 시스템일 것이고 현미경으로 보면 저마다 각자의 함정에 빠진 과민한 신경의 소유자들이 빠진 집단 히스테리가 만연하는 장소일 것이다. 영화의 말미에 촬영장으로 복귀한 베어드 휘트록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앞에서 신앙 고백을 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을 찍으며 명연기를 보여주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대사를 까먹는데 그가 떠올리지 못한 말은 ‘믿음’이었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에디 매닉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믿음이라는 말을 베어드는 하지 못한다. 피지컬 프로덕션의 리더 에디 매닉스가 했던 말을 잠깐 의식화됐던 베어드는 하지 못한다. 할리우드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그건 자본 덕분이겠지만 그 시스템 안에서 유약한 지성은 버티지 못할 것이고 영화인들의 반골기질은 각종 신경증으로 변질돼 전염병처럼 스튜디오 전체로 번질 것이다. 코언 형제는 이 비극을 코미디로 풀어내면서 프랑수아 트뤼포가 <아메리카의 밤>(1973)에서 잠깐 관객에게 보여줬던 마법, 온갖 사건 사고가 빈발하는 촬영장에서 기적처럼 아름다운 순간이 찍히는 마법을 조금 더 길게 실현하는 방법으로 영화에 대한 존중을 내비친다. 아주 공들여 찍은 수중 뮤지컬 장면과 바의 댄스 장면은 이 영화에서 조형적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하는 보너스 같은 것인데 전성기 할리우드의 극점에 달했던 장인정신을 오늘에 받들어 기리려는 코언 형제의 헌사일 것이다. 이 정도에서 더 나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할리우드의 상실의 시대에 바치는 찬가 다시 하스미 시게히코의 얘기로 돌아가자면, 전성기의 할리우드를 지탱했던 건 다소 불량기가 있었던 사회적 반골들이었다. 그들은 영화의 표현 규범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만큼이나 무지막지했지만 영화에 애정이 있었던 스튜디오의 군주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이런 반골기질은 할리우드 전성기의 거장들뿐만 아니라 전성기의 일본영화계에도 있었고 ‘영화는 사회에 끊임없어 흘려보내는 독’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던 일본영화 쇠퇴기의 스즈키 세이준 같은 감독들에게도 있었다. 피터 보그 다노비치가 만든 존 포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스무살을 갓 넘긴 스티븐 스필버그가 반은퇴 상태였던 존 포드의 사무실을 방문했던 일화가 나오는데 잔뜩 얼어붙은 청년 스필버그에게 존 포드는 큰소리로 사무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느낀 점을 말하라고 한다. 단 1분간의 만남에서 스필버그가 존 포드에게 들은 훈계는 ‘저 그림에서 지평선이 어디 있느냐? 기억해라. 영화감독이 할 일은 지평선을 어디에 두느냐 결정하는 거야. 나가봐’라는 말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알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건달처럼 굴며 시스템에서 버티는 일을 해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힘을 잃었을 때 유약한 지성들이 할리우드를 접수했으나 그들은 얼마 후 속절없이 쫓겨났다. 재능의 공백을 겪으며 내부의 잠재력을 잃은 스튜디오가 이익의 보전을 위해 방황할 때가 할리우드의 1950년대였다면 그 시대를 슬프게 그리는 것 말고 영화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것으로 이만한 수위의 희극이 없다는 점에서 코언 형제의 재능에 다시 한번 수긍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