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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5]

개인주의, TV에 뿌리내리다 <앞집 여자>의 경쾌한 여성, 연약한 남성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거야. 길가다 교통사고처럼 아무랑이나 부딪칠 수 있는 게 사랑이야. 사고나는 데 유부남이, 할아버지가, 홀아비가 무슨 상관이 돼, 나면 나는 거지….”(노희경의 <거짓말>, 1998) 하지만 가볍게 훈방조처되는 처녀·총각과 달리 유부남·유부녀의 교통사고는 공권력의 개입과 상관없이 어떻게든 처벌됐다. 드라마 안이든 밖이든 그게 현실이었다. 그 강팍한 조건을 에둘러가기 위해서 불륜이나 동성애 같은 ‘비정상적’ 사랑은 온 존재를 내던진, 심각한 그 무엇이어야 했다. “난 당신을 만지고 싶었던 게 아니야! 잠자리를 하자고 한 게 아니야! 사랑하자고 한 거야! 외로우니까, 위로하자고 한 것뿐이야! 사람이 사람을 위로할 수 없다면 이 힘든 세상 어떻게 살아.”(노희경의 <슬픈 유혹>, 1999) “10년만 지나면 우리 지금처럼 젊지 않어. 그때 누가 우리 곁을 지켜줄까? 남편일까, 애인일까…? 그 남자도 별 수 없어. 영원히 멋질 거 같애? 배나오고 술먹고 나선 냄새 죽죽 풍기면서 씻지도 않고 쓰러져 자고.” 애경에게 애인은 일회용 건전지, 남편은 충전 건전지쯤의 의미다. 가히 진정한 개인주의자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끼어서는 안 되는 수정 같은 사랑이어야 했고, 그래서 새로운 당신이 아닌 남편(혹은 아내)과의 애정은 부정돼야 했다. ‘All or Nothing’의 게임. 그런데 <앞집 여자>(극본 박은령, 연출 권석장)의 애경(변정수)은 그 유창하고 쿨한 논리로 가볍기만한 불륜이 가능하다고 설파하고 나섰다. 조약돌 20개를 모으면(만날 때마다 하나씩 모았다가) 미련없이 버리고 가는 놀이가 됐다. 불시에 찾아오는 메마른 결핍감을 채우려는 욕망도 아니다. “이건 삶의 활력소일 뿐”이니까. 여기에 운명 같은 사랑 따위는 없다. 남편이라고 다를까. “10년만 지나면 우리 지금처럼 젊지 않어. 그때 누가 우리 곁을 지켜줄까? 남편일까, 애인일까…? 그 남자도 별 수 없어. 영원히 멋질 거 같애? 배나오고 술먹고 나선 냄새 죽죽 풍기면서 씻지도 않고 쓰러져 자고.” 애경에게 애인은 일회용 건전지, 남편은 충전 건전지쯤의 의미다. 가히 진정한 개인주의자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어디서 찾았고 어떻게 온몸에 새겨넣었는지 알 수 없는 애경의 자존감과 독립심은 <바람난 가족>의 호정(문소리)과 비슷하다. 그닥 결핍감이 없어 보이는 호정이 바람 피우는 남편에게 “너나 잘살아”라고 진정으로 말하는데, 애경도 남편에게 진심으로 그렇게 충고할 만한 위인이다(애경 남편의 성기능이 살짝 맛이 간 것으로 설정한 건 그래서 여러모로 유감이다). 아내의 불륜이든 가장의 부도이든 밝혀진 ‘사고’를 가장 빨리 수습하는 게 애경 부부라는 점은 당연해 보인다. TV에 가부장은 없다? 거꾸로 <앞집 여자>의 남자들은 마초와는 거리가 멀지만, 위로받거나 의존하는 사랑을 나누기에는 여자들보다 덜 성숙하다. 오히려 돌봐줌이나 치료가 필요한 연민 어린 존재다. 상태(손현주)는 아내 미연(유호정)이 접촉사고를 낸 날 ‘중고 마누라’보다 새 차의 안위를 걱정하더니 “놀란 데는 침이 최고야. 침 한대 맞자”며 몸을 더듬어 경멸의 대상이 된다. 또 유정(허영란)과의 사이가 들통나자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아내에게 참회의 편지를 쓴다.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사랑하는 나영 엄마. 내 미안한 맘 말로는…”까지 간신히 써놓고는 쿨쿨 낮잠에 빠져든다. 그렇다고 그가 미운 건 아니다. 삶이 그를 속이는 것뿐이니. 상태는 자기 아내와 연결된 정우(김성택)의 휴대폰을 들고 “아줌마, 가정을 버리세요! 아줌마, 줌마, 줌마∼”라고 격려의 추임새를 넣는 기구한 짓을 선의로 하지 않던가. 유정(허영란)과 육체 관계를 갖지 않는 게 플라토닉 러브라기보다 동화 같은 판타지를 꿈꾸는 퇴행으로 보이는 건 그래서다. 상태와 반대 지점에 선 정우는 치료가 필요해 보인다. 12년을 오로지 미연만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점도 놀랍기는 하지만, 이보다는 그런 사랑의 대상이 처한 조건을 전혀 가늠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역시 어떤 환상에 빠져 있다(정우는 미연에게 미국에 가서 살며 세계 곳곳으로 놀러다니자고 말하는데, 미연이 내 딸은 어쩌고 하자 화들짝 놀란다). 유정과 수미(진희경)·봉섭(이두일) 부부는 특이한 캐릭터로서 유쾌한 감초 구실을 충분히 해냈지만 그 이상의 존재이기도 하다. 유정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위풍당당 정부(情婦)다. 기세좋게 카페로 들어선 미연에게 머리채를 잡히기는커녕 “이혼해주세요, 제발”이라고 무릎 꿇고 호소해 상대방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동시에 창피하게 만들어 쫓아버린다. 또 “한 커플 헤어져 두 커플이 행복해지면 좋은 것 아니냐”며 입바른 소리를 해 미연과 상태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데, 이런 ‘엽기적인 그녀’가 도저히 불행에 빠질 것 같지는 않다. 수미·봉섭 부부에게 남편과 아내의 위치는 경제적 능력이나 침대 역학에서 여느 부부와 정반대다. 그래서 이들의 일상은 소박하며 코믹하지만 가장이란 권력의 모습은 설사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어도 달라질 게 없다고 웅변하는 듯하다. <앞집 여자>는 초·중반의 휘몰이에 비해 그 도가 끝으로 갈수록 잦아들더니 안전한 마무리로 끝났다. 혹자는 그걸 타협이나 드라마의 한계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앞집 여자>는 여성끼리의 연대를 명시적으로 외치지 않고, 또 남성을 배제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고, 쿨한 개인주의자가 되는 게 현명하지 않으냐고 나직히 역설하는 희귀한 TV드라마다. 눈높이와 호흡을 정확히 생활드라마에 맞춰놓고서 말이다. 이성욱 lewook@hani.co.kr <앞집 여자> 박은령 작가 인터뷰 미연과 애경, 내 안에 부글거리는 마그마의 두 얼굴이다 두 아이의 엄마인 박은령(37) 작가는 지난해 MBC 베스트극본 공모에 당선되기까지 “부글부글 끓는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이얼이 룸살롱에서 옷벗고 기타를 칠 수밖에 없는 장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고 한다. “이상은 저만큼에 있는데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는 그 심정이 나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10년 동안 ‘아줌마’로 지내면서 드라마를 너무 쓰고 싶었으나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자신도 없었던 시절을 딛고 쓴 첫 시리즈 <앞집 여자>를 보고 스승인 이금림 작가는 “은령의 나이와 고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발로 끝날 작가가 아니란 걸 보여줬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기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다 4학년 때 방송사에서 구성작가로 잠시 일하면서 재미를 붙였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면서 얼결에 결혼을 했고 허니문 베이비까지 갖게 됐다. 당연히 일을 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늘 마음속에 마그마 같은 게 끓었다. <앞집 여자> 캐릭터 중에 자신과 동일시한 인물이 있다면. 미연과 애경이 모두 나의 페르소나다. 미연은 새침데기 같은 소녀이면서 동시에 아줌마다. 바람 피운 남편 때문에 가슴이 미어져 길을 가다가도 트럭에서 “무 천원에 3개” 하면 ‘싸다’고 생각해 다 잊고 달려가는 인물이다. 애경은 말을 세게 하는 편인데, 내가 그렇다. 조용히 있다가도 입을 열면 깨는 말을 하고는 한다. 단막극 쓸 때도 싸한 여자 캐릭터가 많았다. 겉은 얼음인데 속은 따뜻한 덩어리가 있는 여자. 그런 인간이 좋다. 애경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 드라마가 애경이란 캐릭터에서 출발했다. 그다지 예쁠 것도 없는 전형적인 아줌마 선배가 있는데, 어느 날 보니까 용됐더라. 세련되고 멋도 있고 자신감도 넘치고. 살살 캐봤더니 애인이 생겼고, 연애를 하면서 사람이 달라진 것이었다. 요것봐라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애경을 만들었다. 애경이 가장 쿨한 캐릭터라고들 하는데, 능력있는 남편이 바깥에서 바람 피우면서 집에서는 다정하고 훌륭한 아빠로 지내기도 하지 않나? 애경도 그런 셈이다. 극본을 쓰면서 타협을 하진 않았나. 내 생각을 98%까지 지켰다고 본다. 나머지 2%를 다 채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나 혼자 만족하는 100%가 될 것 같았다. 절묘한 느낌이 드는 캐스팅이다. 의견을 보탰나. 인물을 만들어갈 때, 이 사람은 누구다 하고 정해놓고 쓰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만족스러웠다. 예전부터 손현주씨를 아주 좋아했는데, 머릿속에 그렸던 그 남자를 딱 보여주더라. 그리고 허영란씨. 미연에게 무릎 끓고 비는 장면 때문에 꼭 그가 해야 한다고 했다. <순풍 산부인과>에서 멍하게 빵 뜯어먹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무모한 이미지라고 할까. 아주 잘해주었다. 여성과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기본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다고 볼 뿐이다. 수십년을 함께 살아도 절대로 다가서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난 남자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다. 허술하나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남성들 말이다.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1]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2]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3]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4]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5]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2]

<네멋…> 이후 파편적인 캐릭터의 흔적은 ‘MBC표 드라마’에서 부쩍 잦아진다. <내 인생의 콩깍지>에서 박광현은 소유진과 10년 동안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박광현이 헤어진 연인 소유진을 우연히 만나 급히 지폐에 연락처를 받아놓았는데 그 돈을 백화점에서 써버렸다. 뒤늦게 백화점으로 달려가 그 돈을 찾느라 난리법석을 피우는데 엉뚱하게도 자길 도와주려 애쓰는 여직원과 눈이 맞아 샛길 연애를 시작한다. 정해진 운명을 향해 직선처럼 곧장 나아가지 않는 게 실제 인생이다. <눈사람>에서 조재현은 자기와 미묘한 관계에 빠져드는 처제를 기계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완전히 외면하거나 푹 빠져드는 게 아니라 그 경계선에서 미묘하게 떨린다. 파편적인 인간은 파편적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앞집 여자>의 변정수는 이를 극적으로 희화화한 경우다. 20%의 감정만 주고 20번째 만남에서 관계를 정리하는 능숙한 바람기와 아내와 주부의 기능을 분리해서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그의 원칙에 현모양처형 주부 유호정은 반박할 말을 잃는다. 어느덧 자신도 변정수와 비슷한 길을 가게 되건만 객관적으로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다가 엿되는 수가 있다”는 요즘 말투와 문어체가 혼재하는 퓨전사극 <다모>에서 캐릭터의 현대성을 따질 수는 없다. 대신 여기선 새로운 여성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조선여형사 채옥(하지원)은 땀이건 물이건 홍건히 젖어 있기 일쑤다. 유례없이 동적인 여성이기 때문이다. 일정 간격으로 펼쳐지는 활극에서 그의 액션은 남자의 그것을 능가하거나 최소한 동등하다. 사랑하는 ‘나으리’가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해도 자꾸 위험에 개입함으로써 주위에 자신이 존중받을 받한 존재라는 걸 증명해간다. 드라마의 고전성을 탈피하려면 좀 더 현대적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건 때론 추하고 더러운 삶의 이면을 과장하지 않고 들춰내는 모던함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 <네 멋‥>의 복수나 경, 미래처럼 순간순간 급변하는 파편적인 캐릭터들의 등장은 '얼마나 사람과 호흡하느냐'가 요즘 드라마의 관건이 된 것과 같은 맥락임을 보여준다. <눈사람> <앞집 여자> 스타 PD들은 왜 추락했는가 <네멋…>에서 <다모>와 <앞집 여자>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뜻밖의 현상이 발견된다. 스타 PD의 졸작 내지 범작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명성을 딛고 독립해나간 프로덕션 시스템의 외주 생산물인 반면 일련의 화제작은 MBC 미니시리즈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그것도 날렵한 프로덕션 제작방식이 아닌 ‘공장’이라 불리는 드라마국 제품이다(<앞집 여자>처럼 ‘무늬’만 외주 제작인 것도 있긴 하다). ‘MBC 드라마국 안에 무슨 일이?’라는 궁금증이 일어나는 대목이다. <네멋…> <옥탑방 고양이> <앞집 여자>에 대해 박성수 PD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일상생활의 속도감을 지닌 드라마로 완벽함이 아니라 괜찮음으로 승부한 드라마”라는 점과 “데스크들이 다 안 된다고 봤던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옥탑방…>의 김사현 PD는 “<네멋…>은 드라마국에 상상하기 힘든 바람을 일으켰다. 기존 드라마 문법으로 보면 망할 수밖에 없는 구도였고, 내부에서 심각하게 걱정했던 작품이었으니까.” <앞집 여자>의 박은령 작가는 단막극 공모에 당선된 뒤 “계속 물먹다가” 처음으로 시리즈를 쓴 것인데, 방송 직전까지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애초 단막극 대본이었으나 “백전고수 프로바람꾼 주부라는 앞집 여자의 캐릭터”에 주목한 박종 드라마국 국장이 미니시리즈로 확대한 작품인데(기획은 그가 국장이 되기 전인 올 초에 시작됐다), 수많은 반대의견을 헤치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수년 전부터 준비해온 <다모>의 고초도 남다를 것이다. <까레이스키> 이후 대작을 회피해온 MBC에서 모처럼 큰돈을 들인 <다모>의 연출은 익히 알려졌듯 연출 입봉 PD가 맡았다. 프로덕션 제작에서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졌고, 그런 ‘기습’들이 1992년 이승렬의 <질투>가 일으켰던 드라마의 큰획을 새롭게 긋고 있는 셈이다. “프로덕션 제작은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성공이 수익과 직결되니 흔히 말하는 성공요소들, 드라마 소재와 내용, 캐스팅, 연출자를 검증된 무난한 방식으로 택하게 된다. 새로운 게 나오기 힘든 구조다. 드라마국은 시청률이라는 자본의 논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시청률이 잘 안 나와도 작품이 좋으면 평가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박종 국장) <백야 3.98> <올인> 등 이름난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대작들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영화로 치면 할리우드형 드라마다. 손님은 끌지언정 새로운 작품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프로덕션을 통한 외주 제작방식은 애초 방송사의 관료적인 공장 시스템이 주는 획일성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제시됐다. 고석만, 김종학 등 초기 스타 PD들이 방송사를 나서며 내건 명분이지만 이제는 거꾸로 프로덕션 시스템이 재점검의 대상이 돼버렸다. 인정옥 작가는 “공장의 경직성 해소 등 몇 가지 이유로 프로덕션을 통한 외주 제작이 장려되고 있으나 지금은 스타 PD들이 나가서 돈을 더 많이 벌게 됐다는 것말고 달라진 게 없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자본(시청률)의 경쟁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프로덕션 시스템과 좀 심하게 말하면 돌아가며 작품 한번씩 만드는 공장 시스템 가운데 창의적 작품을 내놓는 건 의외로 후자쪽인 것이다. 혹자는 미니시리즈와 일일극·주말극을 바둑에 비유한다. 전자가 PD들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는 ‘세력’이라면, 후자는 회사 전체의 이익을 위해 더 중요하게 봐야 할 ‘실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MBC 드라마국이 당연히 늘 ‘선’은 아니다. <인어아가씨>의 고무줄 연장 방영이 그렇듯 실리를 위해선 무리수를 아끼지 않는다. 현재 일일극과 주말극에서 재미를 못 보고 미니시리즈로 세를 얻고 있는 형국이니 언제 또 실리를 얻기 위한 수를 둘지 모른다. MBC의 한 PD는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미니시리즈에 대해 데스크들은 어쩌다 성공한 도박 같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지금의 드라마국 상황을 대세 변화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성욱 lewook@hani.co.kr 변종드라마의 새 요소들 옛날 드라마엔 없다. 요즘 드라마에만 있다! ■ 안 예뻐도 괜찮아 예쁘지도 않고 돈도 없고 재능도 없는 여주인공. <명랑소녀 성공기>의 양순(장나라)과 <옥탑방 고양이>의 정은(정다빈)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평범한 소녀가 평범한 사랑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정은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양순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재능을 숨기고 있는 데다가 재벌 2세와의 사랑을 이루는 신데렐라에 가깝다. ■ 주인공보다 멋져요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연적. 삼각관계의 한축이 얄밉고 비열하게만 그려졌던 데 비해 <다모>의 난희(배영선)는 착하고 단아하며 고운 여인이다. 그러나 “밤마다 윤과 채옥의 뒤를 따라다니며 스토커짓 한다”고 비난하는 시청자도 있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캐릭터는 <네 멋대로 해라>의 미래(공효진). 미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연적이다. ■ 허술대왕, 무식왕자 야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자주인공. <대망>의 재영(장혁)은 드라마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도 욕심이라고는 없이 허술하다. 예쁜 색시 맞아서 집 한채 짓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 그의 꿈. 요즘 눈에 띄는 인물은 <보디가드>의 홍경탁(차승원). 야심이 있다 해도 이룰 방도가 없는 단순무식한 청년이다. ■ 복수씨 죽은 거예요? 열린 결말. 주인공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보여주지 않는다. 복수(양동근)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네 멋대로 해라>가 대표적인 경우. 영화에서는 종종 찾아볼 수 있지만, 확실한 결말을 추구하는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 형식을 벗어나 자유로운 형식. 뮤지컬을 도입한 <내 인생의 콩깍지>처럼 파격적인 형식의 드라마가 생겨나고 있다. 복수와 경(이나영)이 울산에서 보내는 시간을 판타지처럼 표현한 <네 멋대로 해라>도 이 경우에 포함될 수 있겠다.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1]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2]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3]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4] ▶ <네 멋대로해라>부터 <다모>까지,MBC드라마의 대반란 [5]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3]

진짜 현실을 볼 수 있을까? <카우보이 비밥>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 Profile | 1965년 교토 출생 · 선라이즈 입사 · 제작진행 스탭을 거쳐 <기갑엽병 메로우링크>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연출 및 그림 콘티를 담당 · <마크로스 플러스> <카우보이 비밥>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 <애니매트릭스: Kid’s story> <애니매트릭스: Detective story> 감독 모두들 농담으로 듣지만, 애초 <카우보이 비밥>에서 그가 그리고 싶었던 건 이소룡의 정신세계였다. 빈센트와의 대결장면에서 스파이크가 보여준 포즈는 그냥 나온 게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판보다 빨리 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애니메이션계에 발을 들였다고 말하는 이 사람은,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역시 열정은 숨길 수 없는 것일까. 이른 아침 인터뷰에 몽롱한 상태였던 와타나베 감독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무르익어갈수록 활기차게 변했다.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이 세상에 나온 지도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카우보이 비밥> 이전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 여전히 돈은 별로 없지만 여러 사람들이 지원을 해주는 덕분에 좋아하는 것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사무라이 참푸르>(SAMURAI CHAMPLOO)라는 새로운 TV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참푸르’는 오키나와 지방의 고유명사로, 짬뽕처럼 이것저것 넣고 섞어서 만드는 요리 이름이다. 사무라이물이지만 고정관념을 벗어난, 그야말로 이것저것을 집어넣은 참푸르 요리 같은 작품이 될 것이다. 배경은 에도 시대로, 말투나 행동거지는 모두 현대적이다. 일본의 옛날영화를 즐겨봤는데, 이번 시리즈에서 그 영향이 많이 드러날 것 같다. 방송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내년부터 방영될 예정이다. 내가 기획하고 각본 쓴 작품이다. 미소녀나 미소년이 나오는 종류는 전혀 아니다. (웃음)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음악은 힙합이고 이번에도 간노 요코에게 음악을 부탁했다. 장르 이동에 무척 능숙한 것 같다. 추리, 액션, 로맨스, 미스터리…. 그때그때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를 적용시킨다. 원래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편인가. 영화를 볼 때도 특별히 장르를 가려서 보는 편이 아니다. 옛날부터 메이저영화부터 독립영화까지 가리지 않고 봤다. 물론 취향은 있다. 요즘 할리우드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1960∼70년대의 액션영화나 누벨바그를 비롯한 유럽영화, 필름누아르나 탐정물도 좋아한다. 홍콩의 오우삼 감독도 좋아한다. 굉장한 영화광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사실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많이 본 편이 아니고 라이브 액션을 많이 봤다. 그래서 감독이 되고 싶었고,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 감독이나 실사 감독이나 그다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쪽으로 오게 됐다. 솔직히 애니메이션쪽이 훨씬 빨리 감독이 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 잔머리를 굴린 셈이다. (웃음) 일본에서는 실사 감독이 되려면 무척 오랫동안 바닥 일을 해야 하니까. 다른 감독에 비하면 참여한 작품이 많은 편은 아닌데…. 연출부를 오래했다. 감독 아래서 TV시리즈 한편 한편을 관리하는 일인데 이걸 오래했다. 그러나 역시 위에 감독이 있어서 자유롭게 작품에 참여할 수 없었다.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어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내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마크로스 플러스>에서 처음 감독 데뷔를 했지만 가와모리 감독과 공동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반밖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카우보이 비밥>에서 비로소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감독의 작품에는 언제나 기억에 얽매여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기억이 봉인되거나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특별히 기억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나. 나 스스로가 기억에 얽매여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기억’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흥미가 있었다. 인간의 과거라는 건 기억 속에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에는 틀린 부분이 있다. 자신의 기억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라이브 액션에서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과거가 캐릭터에 배어 나오지만, 애니메이션은 그림이니까 그럴 수 없다. 그래서 과거를 넣어서 깊이를 우려내려고 노력했다. 과거가 소개될 기회가 없는 캐릭터라도 경력이나 과거를 설정하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다음 작품에서도 역시 이런 특징은 나올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의 연출은 정말 놀랍다. 별로 고민하지 않고 그런 연출이 나오는 건지 궁금하다.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 편인가. 아니다. 시간 걸린다. (웃음) 업무량이 많은 탓에 무척 고생하면서 잠도 안 자고 만들고 있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러나 발상은 그냥 저절로 나오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에 그런 연출이 나오는 것이냐고들 묻는데,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니다. 그렇게 치자면 많은 영화를 섭렵한 평론가가 제일 뛰어난 감독이 된다는 소리가 되지 않나. (웃음) " 라이브 액션에서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과거가 캐릭터에 배어나오지만, 애니메이션은 그림이니까 그럴 수 없다. 그래서 과거를 넣어서 깊이를 우려내려고 노력했다. " <카우보이 비밥> 하면 감노 요코의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서로 치밀하게 논의하는 편이 아니라 각자 영감대로 만든 뒤 나중에 맞춰본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영상과 음악이 그토록 조화를 이룬다니,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그건 필링이다. 말하지 않아도 감각으로 통하니까. 대부분의 작업이 그랬다. 음악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아도 필링으로 전해지길 바랐다. 그게 안 되면 아무리 설명해도 전해지지 않는다. 결국 필링이 맞느냐, 안 맞느냐의 문제다. 영상을 음악과 맞추는 것은 물론 어려웠다. 그러나 모두 나중에 맞추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음악이 계속 나오는 장면에서는 미리 삽입할 곡을 정하고 거기에 맞춰 그림 콘티를 짠다. 편집에서 그 음악의 길이에 맞춰 장면을 편집하는 것이다. TV시리즈 5화에서 스파이크가 창문을 부수고 떨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로 플래시백 하는 장면인데, 그게 1분40초다. 거기에 들어가는 음악이 1분40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 맞는 것이다. 그럼 음악이 먼저 완성된다는 소리인가. 대개 그렇다. 일단 먼저 완성된 음악이 있고, 점점 새로운 곡이 추가된다. 그렇게 병행해서 음악 작업은 진행됐다. <마크로스 플러스> 때 간노 요코를 처음 알게 됐는데, 그때도 서로 치밀하게 논의한 편은 아니었다. <카우보이 비밥>에 대해 말하자면, 처음에 내가 이런 작품이다, 이런 캐릭터가 등장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것만 듣고 간노 요코가 멋대로 곡을 만들어왔다. 서스펜스 1, 2, 3이라든가 액션 테마 등 자세한 설명을 의뢰서에 썼건만 그런 건 전혀 보지 않고 멋대로 만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그 곡을 듣고 영감을 받아서 새로운 장면을 만들게 됐다. 그걸 간노 요코에게 영상으로 보여주면 이번에는 그쪽에서 영감을 받아서 새로운 곡을 만들어오고…. 이런 식이었다. 캐치 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그녀는 0.5초 안에 영감으로 곡을 만든다. 감독이 생각하는 간노 요코의 음악은 어떤 것인가. 뭐랄까…. 자기 입으로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사랑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애정이 담겨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 생각한다. 음향이나 사운드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작품에서 사운드는 반 이상의 역할을 한다. 영상과 사운드를 믹스할 때 특히 주의하는 것은 사운드가 영상의 설명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슬픈 장면에서 슬픈 음악이 흐르면, 음악이 영상을 설명하는 역할만 할 따름이다. 사운드 이펙트에서도 그림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수준을 넘어서고 싶었다. 소리와 영상이 안 맞아도 좋으니까, 소리가 영상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50:50의 관계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무척 실력있는 사람에게 의뢰했고, 그림에 없는 소리를 넣어달라고 특별 주문했다. 그림에 있는 소리만 넣는 것은 평범하지 않나. 그림에는 안 나와도 화면 밖에는 세계가 있으니까 거기에 있는 걸 상상해서 넣어달라고 했다. 그걸 잘 생각해서 만들어줬다. 예를 들면 TV시리즈 1화의 안약을 흥정하는 장면에서 파리가 붕붕 날아다니는 소리가 났는데, 그림에 파리는 없었다. 다만 여기는 이 정도로 더러운 곳이니까 파리 정도는 있을 것이라는 상상에서 만든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 TV시리즈부터 극장판까지, 조연으로 세명의 노인이 줄곧 등장한다. 그들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느껴졌는데, 이건 오해인지. 어떤 캐릭터가 가장 좋으냐고 물으면 나는 세명의 노인을 꼽는다. 원래 1화에서 잠깐 나오고 말 예정이었는데, 만들고보니 재미있어서 계속 내보내게 됐다. 화성, 금성, 목성, 배경은 다른데 계속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웃음) 어디를 가도 그들이 있다. 심지어 극장판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구해낸다. 사실은 화성이지만. (웃음) 어릴 적부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진짜일까’라는 의문을 가져왔다고 말한 적 있다. 그 주제는 <카우보이 비밥>을 거쳐 <애니매트릭스>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 셈인데…. 그렇다. <매트릭스>를 처음 봤을 때 ‘나랑 비슷한 녀석이 있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니매트릭스>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참으로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 워쇼스키 형제 역시 <카우보이 비밥> 팬이어서, 그들도 ‘일본에 비슷한 녀석이 있군’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웃음) 지금 이 세계는 진짜라고 생각하나. 현실이란 뭐라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그걸 알고 싶어서 작품을 열심히 만들고 있다. (웃음) 만일 <매트릭스>의 앤더슨과 같이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걸 선택할 건가. 깨지 않는 꿈을 꿀 텐가, 냉혹한 현실이라도 진실을 선택할 텐가. 어려운 선택이다. 정말은 현실을 보고 싶다. 그러나 과연 현실을 볼 수 있을까? <애니매트릭스>를 작업할 때 생각한 건 현실을 선택한다 해도 그게 과연 현실일까, 진짜 현실이라고 불리는 세계는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따라서 어느 쪽을 선택한다 해도 똑같을지도 모른다. <매트릭스>식으로 보자면, 현실 속에 허구가 있고, 허구 속에 현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애니매트릭스>에서 두편을 감독했다. 는 워쇼스키 형제가, 는 본인이 직접 각본을 썼는데, 아무래도 후자쪽이 만들기 쉬웠을 것 같다. 사실은 그 반대다. 는 워쇼스키가 쓴 각본이라고 해도 완전히 완성된 게 아니라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희망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거기에만 맞추고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 만들었다. 그게 워쇼스키의 마음에도 들어서 그대로 가게 됐다. 원래 나는 이 한편만 만들 예정이었다. 그런데 다른 감독 작품이 잘되지 않은 바람에 시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편 더 만들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가 마음에 드니까 자유롭게 만들어보라는 소리에 오리지널 스토리를 썼는데, 뜻밖에 엄청나게 많은 리테이크가 나왔다. 오리지널 <매트릭스> 세계관에 맞춰서 를 수없이 고쳤다. 정말 고생했다. 이런 이유로 를 만들 때가 훨씬 편했다. 흑백 사진 이미지를 특별히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 옛날영화의 이미지를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원래 모노톤을 좋아한다. 사실은 작품 전체를 완전하게 모노톤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사람들이 보지 않을 것 같다. (웃음) 이런 생각을 지지해주는 스폰서가 나타난다면 해보고 싶다. (웃음) 전체적으로 작품이 밝은 편은 아니다. 혹시 염세주의자인가. 사실 젊었을 때는 그랬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낙천적으로 변하더라.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이 염세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등장시킨 것은 삶과 죽음이 나의 커다란 주제이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부정적이거나 염세적인 이미지로 여기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서로 뗄 수 없는 것이다. 삶을 그리려면 죽음을 그려야 하고, 죽음을 그리려면 삶을 그려야 한다. 죽음을 다뤘다고 염세적인 것은 아니다. 김일림/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illim@korea.com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1]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2]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3]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1]

<카우보이 비밥>의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한국을 찾았다. 국내 케이블방송에서도 방영된 <카우보이 비밥>은 애니메이션의 영역을 실사쪽으로 한 걸음 더 끌어당긴, 그러면서도 애니메이션의 자유로움을 잃어버리지 않은 독특한 작품이었다. 현실과 환상을 한 화면에 담았다고나 할까. 언제나 끼고 다니던 선글라스를 벗은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이 말하는 ‘이야기와 현실’을 들어보았다. - 편집자 반절은 꿈속에서, 반절은 현실에서 애니의 새 지평 연 <카우보이 비밥>과 와타나베 신이치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카우보이 비밥>의 마지막 화에서, 죽으러 가는 스파이크를 페이가 말린다. 그 순간 스파이크는, 처음으로 진심을 말한다. “이 눈을 봐. 사고로 없어져서, 만들어 넣은 거야. 그때부터 나는 한쪽 눈으로는 과거를,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현재를 본다구. 눈에 보이는 것만이 현실은 아냐, 그렇게 생각했어. 깨지 않는 꿈을 보려했지. 하지만, 어느샌가 깨버린 거야.” <카우보이 비밥>이 첫선을 보인 것은 98년 4월 TV 도쿄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전 26화 중에서 12화만 방영되었고, 부득이하게 재편집된 부분도 있었다. 모든 에피소드가 방영된 것은 그해 10월 일본 위성방송 채널인 를 통해서였다. <카우보이 비밥>은 위성간 게이트 사고로 지구에서는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게 되고, 인류는 다른 별들로 이주한 2070년대를 무대로 한다. 하지만 어떤 별이나 지금의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어디는 사막이고, 어디는 정글이고, 어디는 타락한 도시다. 그곳에서 한때 중국계 마피아의 간부였던 스파이크와 경찰이었던 제트, 수십년의 냉동 상태에서 깨어난 페이와 천재 해커 겸 게으름의 왕 에드 그리고 천재견 아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떤 때는 인간드라마로, 어떤 때는 모험활극으로, 어떤 때는 필름누아르로. 그런 <카우보이 비밥>의 내용을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말로 축약하자면 ‘네 사람과 한 마리의 이야기’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 등장한 <카우보이 비밥>은 종래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특이한 질감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치밀하고 높은 완성도의 작화와 다양한 스타일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세련된 각본, 하드보일드풍으로 한껏 숙성된 세계관. 그리고 전형적이지만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절묘한 캐릭터가 잘 어우러진 애니메이션은 아무데서나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멋진 TV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목표를 완수시키기 위해 작용했다는 점이 대단한 것”이다. 완성도로 따지자면 <카우보이 비밥>은 그 무엇도 감히 따르기 힘든 하나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 완성도에 끌려 <카우보이 비밥>을 보기 시작하면, 이내 중독되어버린다. 모든 에피소드의 제목은 노래 제목으로 되어 있고, 그 제목에 걸맞은 음악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때로는 음악으로 모든 것이 전개되기도 해서, 마치 오페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말려들어간다. ‘별거 아니야’라고 내뱉는 그들의 어깨 위에는 결코 내릴 수 없는, 묵중한 과거가 달라붙어 있었다. 무겁지 않은 듯 무겁고, 가볍지 않은 듯 가벼운 인물과 상황들이 연달아 펼쳐지면서, 즉흥 재즈 연주의 화려한 생명력처럼 <카우보이 비밥>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꿈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의 거울로서도. 현실과 환상이 하나로 그 <카우보이 비밥>을 만든 것은 와타나베 신이치로. 일본 선라이즈의 제작 진행을 거쳐 <기동전사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등을 연출했고 <마크로스 플러스>를 공동감독했다. <카우보이 비밥> 이전까지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과거의 작품 속에서도 그는 조금씩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박에 끄집어내어지는 것이 아닌지라, 조금씩 꺼내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카우보이 비밥>에선 굉장히 많이 참고 억누른 게 사실이다”라는 말처럼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카우보이 비밥>에서도 많은 것을 참았다. 과거에는 더욱 그랬다. <마크로스 플러스>에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은 이사무의 꿈을 드러내는 것 정도였다. 그 꿈을 위해서 이사무는, 모든 것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카우보이 비밥>은 와타나베 신이치로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루팡 3세>와 실사영화 없이도. <카우보이 비밥>에서 두드러진 것 하나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전통적인 영화문법이다. 1965년생인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애니메이션을 그다지 많이 보지 않았다고 한다. “실사든 애니든 구분하지 않고 보다가 취직할 무렵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우루세이 야츠라-뷰티풀 드리머> 등이 나와서 뭔가 애니는 자기 좋을 대로 이것저것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재미있어 보였다.… 그리고 애니쪽이 빨리 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것이 애니메이션 지망의 변이다. 그는 <루팡 3세> 이외의 어떤 애니메이션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서도, 애니메이션은 결코 아이들만의 장난감이 아니라고 말한다. <카우보이 비밥>은 와타나베 신이치로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루팡 3세>와 실사영화 없이도. <카우보이 비밥>에서 두드러진 것 하나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전통적인 영화문법이다. 실사의 세계관으로 다듬어낸, 현실을 그려낸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애니메이션이 바로 <카우보이 비밥>이다. 실사의 세계관으로 다듬어낸, 현실을 그려낸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애니메이션이 바로 <카우보이 비밥>이다. 한 예로 제1화 <아스테로이드 블루스>는 방송을 거부당했다. 조직으로부터 현상금이 걸려 절망적인 도피행을 하는 커플의 이야기다. 라스트 신, 그들은 비행정을 타고 도망가려하지만, 뒤를 쫓는 적기(敵機)의 수에 여자는 절망한다. 그리고 마약에 미쳐버린 사랑하는 남자에게 총구를 돌린다. 조종석 안에서 선혈이 터져나오고, 여자는 스파이크의 눈앞에서 추격하던 포탄에 맞아 비행정과 함께 날아가버린다. “총을 쏘거나 하는 작품이 애니메이션에는 굉장히 많지만, 대체로 아주 멋들어지게만 보여진다. 하지만 총을 쏜 다음, 선혈이 낭자하고, 결국 아주 끔찍하게 죽는 인간들도 있다. 물론 이런 장면 때문에 아주 싫은 기분이 될 때도 있긴 하겠지만, 숨기지 않고 이런 부분도 있다는 것을 거짓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애니메이션 자체의 발전도 <카우보이 비밥>의 탄생을 재촉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비평가인 다카하시 미노루의 말에 따르면 “장르영화가 번성할수록 그 속에는 장르를 뒤엎는 요소가 등장할 가능성을 간직한다. 표면은 장르영화의 틀을 따르는 듯하면서, 사실은 모든 지향점이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작품”들이 등장한다. 애니메이션이 번성하면서 수많은 장르가 만들어지고, 분화하면서 더욱 깊고 넓어진 90년대 말에는 반드시 <카우보이 비밥> 같은 작품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마음의 문제를 제기한 뒤 각각의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않은 채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한 <소녀혁명 우테나> <기동전함 나데시코> <아키하바라 전뇌조> <레인>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등이 출현한 것도 <카우보이 비밥>의 전초전이었다. <카우보이 비밥>은 그 결과로서, 혹은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러나 마음을 찾으면서도, 결코 마음을 찾아나서지는 않는다. <카우보이 비밥>은 그저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극장판인 <카우보이 비밥-천국의 문> 도입부에서 스파이크는 말한다. ‘꿈속에서 살고 있는 듯한 그런 남자였다.’ 스파이크가 쫓는 남자 빈센트는 “죽음 같은 것은 두렵지 않아. 조용히 꿈을 꿀 뿐이다. 영원한 꿈을 꾸고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스파이크와 빈센트는 비슷한 냄새가 나는, 현실의 꿈을 살고 있는 남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돌아오려 한다. 빈센트는 테러리스트로서 세상을 파괴하려 하고, 스파이크는 죽음을 맞이하러 비셔스를 찾아간다. “스파이크가 비밥호에서 나와 비셔스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뭐, 이런저런 사람에게 원망을 들었지만. 과거의 여자에 얽매여 도피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인가, 하고. 지금 현실의 여자가 눈앞에 있는데도 어째서 뒤돌아가야 하는가 하고. 하지만, 그렇게 말할 것은 아니다. 스파이크는 현실로 되돌아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꿈을 찾으러 가서, 그렇기 때문에 죽는다고.” 비밥호에서의 모험은, 스파이크가 보기에는 ‘꿈의 시간’이다. 그것 역시 절실하지만 결코 현실로 돌아가기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다. 현실로 나가라고 애걸하지 않는다. 그저 스파이크라는, 시대에 뒤쳐진 주인공을 내세워 ‘현실의 싸움’에 나서게 할 뿐이다. 선택은 관객에게 있다.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1]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2] ▶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 완전정복 [3]

실존인물 다룬 영화 제작 붐

안중근, 김선명, 최영의, 박경원 등 줄이어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탄을 날린 안중근 의사, 전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수감됐던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씨, 맨손으로 소를 잡았다는 극진가라대의 고수 최영의, 프로야구 원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패전처리 전문 투수 감사용, 한국 최초의 여성 파일럿 박경원 씨…. 시대도 성별도 나이도 그리고 하는 일도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하나같이 어떤 소설이나 드라마 못지 않게 극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과 가깝게는 올해 안에 아니면 몇 년 안에 스크린에서 영화화하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의 기획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준비중인 '선택'에서 기획단계의 '김추자'까지 열 편은 넘을 듯. 실제 인물을 영화에서 되살리는 작업이 충무로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이들의 삶이 영화화하기 충분할 정도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데다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는 의미도 있기 때문. 여기에 관객들에게 충분한 인지도가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장진영(사진)이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청연>(靑燕)(제작 씨네라인2)은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의 생애를 다룬 영화. 한국 최초 남성 파일럿인 안창남에 비해 여류비행사 박경원은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 1901년 태어난 박경원은 신학문을 깨친 후 간호사가 되려고 공부를 했으나 안창남의 비행을 보고 일본으로 건너가 비행학교를 수료하고 비행사의 길을 걷게 된다. 영화는 박경원의 극적인 삶과 사랑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남자주인공으로 <싱글즈>, 의 김주혁이 물망에 오르고 있으며 캐스팅을 확정한 후 9월말~10월초 크랭크인할 예정이다. <소름>의 윤종찬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 유오성의 출연이 확정된 <도마 안중근>(제작 소스원 프로덕션)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 전후 11일 간을 집중조명한다. '도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안의사의 세례명으로 영화는 인간 안중근의 고뇌, 항일 투쟁, 종교관과 가족 사랑을 그릴 예정이다. 한국의 갑 엔터테인먼트와 홍콩의 드래곤 필름, 중국의 오리엔트 이글 매니지먼트가 공동으로 투자하며 '용적심'의 멍하이(孟海) 감독과 한국의 서재영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을 맡는다. 중국의 뤼순(旅順), 하얼빈,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촬영돼 내년 2월말 개봉될 예정. <공동경비구역 JSA >와 <바람난 가족>의 제작사 명필름은 지난 2년 간 준비해온 야심작 <아리랑>의 본격적인 제작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일찌감치 송강호의 캐스팅이 확정된 <아리랑>은 님 웨일즈의 논픽션 동명 소설의 주인공인 김산(본명 張志樂 1905-38)의 짧은 생애를 그린다. 사회주의 혁명가 김산은 북한에서는 연안파로 몰리고 남한에서는 냉전식 반공이데올로기에 묻혀 철저히 외면 당한 인물. 1984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님 웨일즈가 인터뷰를 중심으로 쓴 소설이 출간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현재는 2001년에 시작된 시나리오 작업을 가다듬고 있으며 이르면 내년 초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남부군>, <하얀전쟁>의 정지영 감독이 연출을 맡아 중국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된다. 싸이더스가 제작해 내년 초 촬영에 들어갈 예정인 <슈퍼스타 감사용>은 80년대 초반 프로야구 초기 삼미슈퍼스타즈의 패전처리 전문 투수 감사용(甘四用)의 이야기를 그린다. 삼미 계열사의 사무직 직원이었던 감사용은 82년 프로야구 출범시 입단테스트를 거쳐 마운드에 서게 되지만 이후 은퇴까지 5년 동안 15승 65패의 기록을 남기며 패전처리 투수로 '명성'을 날렸다. 김종현 감독의 데뷔작.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이 신작으로 준비하고 있는 <역도산>(제작 싸이더스)은 일본에서 활동한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역도산'(본명 김신락)을 스크린 속으로 부활시킨다. 스모선수 출신으로 일본에 서구식 프로 레슬링을 인기 종목으로 부상시킨 바 있는 불세출의 영웅이다. <실미도>에 출연중인 설경구가 역도산으로 변신할 예정. 내년 2월 촬영을 시작하며 60억원 가량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한편, 극진가라대의 고수 최배달(본명 최영의)의 삶을 그릴 <바람의 파이터>도 이르면 올 가을에 촬영이 시작될 수 있을 전망이며 전향서 쓰기를 거부하다 지난 95년 45년만에 자유의 몸이 된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의 일생을 다룬 영화 <선택>(감독 홍기선ㆍ제작 영필름/신씨네)은 후반작업을 마무리하며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이밖에 <시월애>의 이현승 감독은 <늦기 전에>, <커피 한잔>, <꽃잎> 등으로 7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가수 김추자의 일생을 그릴 영화를 구상하고 있으며 고주원, 김규리 등이 출연하는 <형>(제작 백상시네마)은 70년대 뛰어난 무술실력과 함께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하며 광주 빈민들의 우상으로 불린 실존인물 박흥숙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스카이라이프 추석 영화 ‘풍성’

추석명절에 즈음해 스카이라이프(한국디지털위성방송)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안방에 선사한다. 스카이라이프의 NVOD(Near Video On Demand:유사 주문형비디오) 서비스인 스카이초이스(스카이라이프 101-113번 채널)는 10-18일 장르별로 골라볼 수 있는 영화를 선보인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즐길 수 있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106, 107번), 차승원 주연의 <선생 김봉두>(101번), 벤 애플렉 주연의 <데어데블>(112번), 김민종.김정은이 출연한 <나비>(102, 103번), 액션물 <스티븐 시걸의 생존게임>(104번) 등이 시청자를 찾는다. 코미디 영화는 예지원, 임성민 주연의 <대한민국 헌법 제1조>(111번), 디카프리오와 톰 행크스가 열연한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스릴러물로는 유령선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고스트 쉽>(108번), 장국영의 마지막 영화 <이도공간>(109번) 등이 방송된다. 종합 영화채널 MGM(320번)에서도 대표적 베트남 전쟁영화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수작 <플래툰>(10일 저녁 8시 40분), 마릴린 먼로와 빌리 와일더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뜨거운 것이 좋아>(12일 밤 12시), 말론 브란도 주연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3일 밤 12시 10분)가 시청자를 찾아간다. 클래식영화 전문 채널 TCM&클래식무비(319번)는 추억의 한국 영화와 명작들을 편성했다. 11일부터 14일까지 매일 오전 10시에 방송되며 하이틴 영화 붐을 일으킨 <고교 얄개>(11일), <고교 우량아>(12일), <모모는 철부지>(13일), 명작 중의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4일) 등이 전파를 탄다. 13일 저녁에는 명작 <벤허>(저녁 6시25분)를 만날 수 있다. 영화채널 캐치온은 10-12일 밤 10시 `가족족영화 특집을 마련, 케빈 레이놀즈 감독의 <몬테 크리스토>(10일), <동승>(11일), <스파이더맨>(12일)을 방영한다. 영화채널 OCN도 9-12일 밤 10시 `흥행작 퍼레이드'란 특집을 편성해 수사액션물 <이것이 법이다>(9일), SF액션물 <스타쉽 트루퍼스>(10일), <러시아워2>(11일),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12일)을 소개한다. (서울=연합뉴스)

흥행바람, 누가 일으킬까

가을 극장가 흥행 3파전, <조폭마누라2> <오! 브라더스> <불어라 봄바람> 추석 흥행 대전을 앞두고 극장가가 급속히 달아오르고 있다. <조폭마누라2: 돌아온 전설>(사진) <오! 브라더스> <불어라 봄바람> 등 9월5일 개봉하는 코미디영화 3편이 삼두마차를 형성하면서 물러설 수 없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영화가 정상에 오를지 예측하기는 섣부르지만, 첫주를 선점할 경우에 연휴 5일이 끼어 있는 그 다음주의 실질적인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라는 판단은 어렵지 않다. 해당 영화의 배급사들과 홍보사들도 이 때문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현재까진 <조폭마누라2>가 다소 앞서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인지도 및 선호도를 알아보는 각종 리서치에서 <조폭마누라2>는 세대별, 성별간 큰 차이없이 폭넓은 관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전편의 브랜드 파워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면서 “전국에서 약 230개 스크린을 열어 관객을 불러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영화 사상 최대 스크린 수를 확보하면서 규모로 맞서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기엔 이른 것 같다. <오! 브라더스>와 <불어라 봄바람>이 개봉 직전까지 전국에서 1만여명 규모의 무료 시사회를 개최하는 등 관객의 입소문에 적극적으로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 브라더스>는 2주 전부터 선호도가 급속하게 뛰어오르면서 <조폭마누라2>를 바짝 압박하고 있다. 쇼박스의 최인수 배급팀장은 “전국 스크린이 180개 정도니 규모에서는 <조폭마누라2>에 뒤져 첫주부터 좋은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상승세를 고려하면 마지막에 웃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장항준 감독의 <불어라 봄바람> 또한 호시탐탐 막판 뒤집기를 노리고 있다. 20대 남녀로부터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이 영화는 처음 책정한 마케팅 비용을 늘리는 등 공세적인 처방전으로 급상승을 꾀하고 있다. 방송광고 등을 통해 지방관객을 좀더 끌어들인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전국에서 170개가량의 스크린을 확보할 예정인 시네마서비스의 김동현 과장은 “결과는 끝나봐야 안다. 첫주 승부는 세 작품이 벌이는 박빙의 싸움이 될 것이다”라고 추측했다. 할리우드영화라고 호락호락하게 물러설까. 한국영화의 경우, 타깃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가족 단위의 관객을 대상으로 한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를 추석 특선으로 내놓은 디즈니가 선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서울과 부산의 일부 멀티플렉스에서 경쟁작들보다 한발 앞선 8월27일부터 유로 전야제 행사 등을 열어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에만 무려 70개의 스크린 포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 공포영화 <주온2>도 전편의 입소문의 후광을 입고 박스오피스 상위에 랭크될 것으로 보이며, 30대 이상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내는 뒷심으로 끝내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던 <바람난 가족>은 타격이야 입겠지만 200만명 고지를 향해 꾸준한 관객몰이를 계속할 듯싶다. 이영진

[특별기고] 제1회 베이징 TV프로그램마켓 현지 르포

드라마의 성과를 넘어서, 대체 장르개발 투자 필요 8월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중국 베이징에서는 1차 국제TV프로그램마켓((China International Film and TV Programs Exhibition)이 열렸다. 지난 6월 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의 여파로 ‘상하이페스티벌’이 취소된 뒤 아시아에서는 올해 첫 번째로 열린 가장 큰 견본시장이다. 이번 마켓은 중국 미디어산업을 좀더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이루어졌다. 6만m2의 베이징센터에는 아시아는 물론 아메리카, 유럽 등 15개국 이상 국가에서 200여개의 업체가 참여, 발디딜 틈이 없었다. 중국은 한류 열풍의 주무대이자 떠오르는 아시아 시장답게 역동적인 특별한 힘을 보여줬다. 그리고 한국 공동관은 여전히(?) 가장 인기있는 부스였다. 더욱 가열된 드라마 열기와 함께 가장 큰 성황을 이룬 곳이기도 하다. 특히 바이어들 사이에선 한국 스타에 대한 관심이 우리가 상상한 이상이었다. 무조건 한류 스타가 나오는 영상물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한 <올인>이 올 3월 프랑스에서 열린 MIP TV에서 아시아 바이어들 사이의 최대 화제였다면 지금은 단연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에 대한 끊임없는 판권 경쟁이다. <여름향기>의 경우 한국에서는 <다모>와 <옥탑방 고양이>에 밀려 다소 주춤하였으나, 동남아 시장에서는 <올인>을 누르고 최고의 해외 수출가격을 기록했다. 한국 공동관에는 공중파 외에 한국케이블협회, 독립제작사협회가 참여하였지만 여전히 수출 강세는 드라마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도출된다. 당장 3∼4년 뒤 한국의 다음 영상상품은 무엇인가, 를 살펴보았을 때 지금처럼 드라마 위주의 수출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인 것이다. 즉 드라마에 의존한 해외 수출로는 아시아 황색시장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드라마 장르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드라마 수출 가격상승도 질적 현상에 따른 현상이라기보다 2001년 대만의 ‘비디오 랜드- 위래(緯來)방송국’의 채널개국과 함께 불거진 경쟁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물론 일본 드라마 판권의 높은 가격도 한몫했다). 즉 비디오 랜드는 대만 GTV와의 전면전을 선포, 한국 드라마의 이른바 ‘줄 편성’이라는 걸 시도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국에서 방영이 끝나기도 전에 수입해가는 여러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따라서 이러한 수입업체간의 경쟁에 따른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단기적 현상에 그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은 우리가 아시아에서 거둔 드라마의 성과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한 대체 장르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때이다. 그리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상품’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본격적인 해외수출을 위한 대체상품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 될 것이다. 현재 모든 TV 프로그램 견본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장르는 다큐멘터리다. < 동아TV >의 홍성아 PD는 “드라마 장르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의 수출비중이 10% 미만인 것은 시급히 수정돼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렇듯 새로운 부가가치를 위한 타 장르에 대한 제작도 강화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사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지금의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또는 공중파에 납품하기 위한 한국 다큐멘터리로는 도저히 세계시장에 나갈 수가 없다는 거다. 이미 세계시장의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소재와 새로운 스타일로 업그레이드 중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다큐멘터리는 기존의 딱딱한 성우 내레이션에 조잡한 편집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으며, ‘자연’이나 ‘풍물 다큐멘터리’ 등은 너무 흔해서 더이상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새로운 다큐멘터리가 필요한 이유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관련이라면 분명 전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작품도 가능할 것이다(실제로 서구권의 엔터테인먼트 다큐멘터리는 거의 프라임타임대 방영되고 있다). 그러나 타자후박(他者厚薄)이라 했던가. 이른바 ‘문화 사대주의’ 때문에 아직도 우리 것은 보잘것없다는 못된(?) 사고방식이 남아 있는 듯하다. 우리의 대중문화와 상품으로 세계시장에 나간다는 것에 여전히 주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할리우드를 제외하고는 대중문화의 질이 압도적으로 높은 곳은 그리 없다. 우리도 충분한 승산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방송시장은 예전처럼 미국 영상물이 큰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시장에 부는 아시아의 바람도 우리에게 무시못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는 수출시장을 좀더 넓은 시장으로 확대, 전세계에 한류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반드시 요원한 일만은 아니다. 드라마의 성과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지금과 같이 아시아 주도권을 잡은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한다면 말이다.

시트콤같은 웃음이 제공하는 즐거움,<불어라 봄바람>

■ Story 돈 좀 아끼겠다고 별 치사한 짓 다하는 좀팽이 소설가 선국(김승우)의 집에 다방레지 화정(김정은)이 세들어온다. 방만하고 시끄러운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은 원고 독촉에 시달리는 선국의 화만 돋울 뿐이다. 그러던 중 선국은 문하생(김경범)이 정리한 화정의 이야기를 자기 소설에 도용하기 시작한다. 이를 숨기려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선국은 조금씩 화정의 순수함에 마음을 열게 되고 화정도 선국에게 끌린다. 하지만 사실을 알게 된 화정이 결국 떠나자, 선국은 뒤늦게 사랑을 깨닫는다. ■ Review 배우들의 개인기와 시트콤적 문법에 기댄 코미디가 최근 한국 주류 영화판을 접수했다면, <불어라 봄바람>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수 있겠다. 장항준 감독의 <라이터를 켜라>에서 ‘어리버리’의 진가를 보여준 김승우는 감독과의 호흡을 연장하여 ‘좀팽이’로 확실하게 거듭난다. 전자는 어리석고 후자는 약았지만, 김승우의 탁월한 만화적 표정과 제스처 덕에 두 캐릭터는 장항준표 코믹 페르소나의 동일성을 획득한다. <가문의 영광>에서 내숭과 엽기를 오가던 김정은은 이번엔 사투리 대신 비속어를 ‘열라’ 남발하며 ‘졸라’ 단순발랄한 삼류인생을 여전히 사랑스럽게 연기해낸다. 그녀의 하이톤 억양은 순식간에 글썽대는 눈물만큼 과장되어 있지만, 바로 그 오버가 영화를 살린 건 그녀가 김정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즘 영화의 감초로 자리한 황혼의 TV스타들과 개성적인 조연들이 저마다 장기자랑을 한다. 관객은 그저 인물군을 순회하며 시트콤처럼 제조된 웃음을 관람하면 된다. 영감이 고갈된 소설가가 자신과 정반대의 동거인에게서 아이디어를 훔치는 설정은 <스위밍 풀>과도 닮았지만, 당연히 창작의 딜레마 따위엔 관심없는 <불어라 봄바람>은 철저하게 로맨틱코미디의 아기자기한 디테일과 스토리에 집중한다. “어차피 사랑은 픽션”이라 냉소하던, 겨울을 내복으로 버티던 짠돌이 연애소설 작가가, 경멸해 마지않던 스쿠터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면서 36도로까지 보일러를 틀어놓는 식이다. 경제적 지출과 심리적 유출이 동반 상승하는 그 훈기에 따라, 봉투 사기 아까워 쓰레기를 무단 투척해대는 오프닝의 겨울 골목은 한없이 화사하게 봄바람 부는 엔딩의 유채꽃밭으로 변전한다. 짝짓기를 보여주는 <동물의 왕국>은 결혼식 몽타주로 우화적 변주를 거치며, 소녀가장 돕기는 화정과 선국을 매개한다. 화정의 동물원 트라우마는 선국의 즉흥시로 어루만져진다. 이런 수미상응식 반복과 더불어 코믹멜로 특유의 만화적이고 동화적인 장치들이 현실에서 한발 붕 뜬 판타지를 영화적으로 창출한다. 손바닥을 펴고 질주하는 선국이나 한껏 전형화된 화정, 게이인 문하생과 바람둥이 친구의 모습은 그 과장된 상투성 자체로부터 영화를 시작하겠다는 감독의 전략과 다름없다. 인물간의 ‘삐리리’ 순간마다 울려퍼지는 나 선국의 허둥댐에 실린 <헝가리무곡>, 멕시코 배경의 <베사메무초> 등은 코믹 MTV풍 막간극을 심심할 때마다 상연해댄다. <라이터를 켜라>에서 선보인, 실은 비극인데도 희극적으로 재현된 짧은 플래시백들 역시 한국영화에 고질적인 과거의 어둠을 적정 수준에서 걷어낸다. 현실과 영화 사이의 이런 계산된 스텝은 서민적인 현지 로케와 뽀시시한 세트 촬영 사이에서 소시민의 판타지를 따뜻하게 전하려는 감독의 마음씨와 닮아 있다. 하지만 훈훈한 영화라고 좋은 영화인 건 아니다. 정치인과 깡패, 시민들이 뒤엉킨 열차 안에서 소심한 예비군의 무구한 자아찾기를 통해 권력과 폭력을 재치있게 풍자한 <라이터를 켜라>에 비하면 같은 명령형 제목의 <불어라 봄바람>이 표방한 ‘대국민 선동성’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기반한 로맨틱코미디의 계층화합을 동화적으로 답습할 뿐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폭소가 터지는 상황 대신 웃음을 재촉하는 억지 설정이 난무한다. 더 강화된 건 라이터 켜기가 상징하는 남성성 회복이 봄을 좋아했다는 선국 아버지의 바람기와도 연결되는 요상한 이데올로기다. 선국 모친은 저승에서 남편이 외도해도 따르겠다며 감상에 젖는데, 대관령 할머니 역시 비슷하다. 작가적 양심상 ‘무식하고 천박한’ 화정에 비해 하등 나을 바 없는 선국 또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준 비녀를 화정에게 대물림하는 것으로 쉽게 용서받는다. <불어라 봄바람>의 순풍은 고로 <바람난 가족>의 삭풍이 뒤집어놓은 가족주의를 가부장제에 대한 고민없이 되돌려놓는 복고풍에 가깝다. 웃기면 그만이라면 할 수 없지만, 뽀시시한 세트 없이도 로맨틱했던 <싱글즈> 같은 코미디가 상업영화를 한발씩 진보시키는 판에, <불어라 봄바람>은 결국 아들 몰래 전셋값을 챙긴 아버지가 그 돈과 더불어 여자를 아들에게 선물했다는 식의 ‘아버지의 사랑’(선국의 책 제목인)을 전하는 데 그친다. 하늘 같은 그 아버지는 우디 앨런의 <뉴욕 스토리>에서 하늘에 나타난 어머니와 달리, 아들과 토론하는 대신 그저 웃으며 가족을 내려다볼 뿐이다. 추석 특집 가족코미디가 될진 몰라도 <불어라 봄바람>의 봄바람이 시절착오적인 건 어쩔 수 없다. :: 장항준 감독 인터뷰‘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영화가 실질적인 데뷔작이다.” 초여름 크랭크업을 앞두고 촬영현장에서 만난 장항준 감독은 거리낌없이 말했다. <라이터를 켜라>로 지난해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적지 않은 찬사를 얻어냈던 장 감독은 자신의 개성을 과잉에 가까울 만치 내세우고 있다. “철저한 캐릭터코미디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장 감독과의 일문일답. 전작과 달리 캐릭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라이터를 켜라>는 소동극이다. 군상들이 등장하지만, 긴박한 사건 안에서 가려지는 부분이 많았다. 이번엔 다양한 사랑의 유형을 통해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다. 죽은 아버지를 그리는 어머니의 사랑, 시골 노부부의 티격태격한 사랑, 노작가와 홍마담의 뒤늦은 사랑, 말하지 못하는 문하생의 동성애까지. 편집과정에서 잘랐는데 성지루씨가 연기한 신부 또한 신과 교감하고 있다. 우린 지금 사랑을 하고 있나, 자문하게 하는 영화였으면 한다. 처음 구상은 옴니버스영화였다고 들었다. 처제를 좋아한 형부 이야기, 학교에 부임한 선생이 날라리 여학생을 좋아하는 이야기, 남편의 불륜 증거를 잡아달라는 고용인과 사랑에 빠지는 심부름 센터 직원 이야기. 이렇게 세 이야기를 묶어서 가려고 했는데 펀딩도 어렵고, 캐스팅도 어려웠다. 선국이 감독을 너무 빼닮았다고 하지 않나. 꼭 인물이 아니더라도 영화에는 감독의 성향이 배어나온다. 김상진 감독 영화에서 진지한 인물은 좀 찾기 어렵지 않나. 인물들의 과장된 행위들이 좀 아쉬운 것도 있는데. 매듭 또한 엉성하고. 두 사람의 로맨틱코미디만을 보여줘선 이 영화를 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그건 나보다 더 잘할 사람들이 많다. 두 사람만 놓고 보면 이건 되게 후진 이야기다. 소설가와 다방레지의 로맨스라. 영락없는 80년대 신파영화다. 올드하지 않나. 집에서 우연히 동거하게 된다는 설정도 흔하고. 하지만, 그 위에 다양한 캐릭터를 더하고 판타지를 강조한다면 좀 색다르지 않나 싶었다. 그게 내가 잘할 수 있는 서비스다. 배우들에게 일부러 한톤 높은 과장 연기를 원했던 건가. 배우들이 오버한 게 아니라 애초 캐릭터가 좀 그렇다. 현장에서 오히려 톤을 죽였다. 애드리브 잘하기로 유명한 김정은씨도 이번엔 거의 안 했을 정도다. 머리 감다 말고 달려나가는 선국이 지나치게 희화화됐다고 할 수 있지만, 난 재밌으면서도 그 자체의 리얼한 감정이 묻어나길 바랐다. 물론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 내 깜냥이 부족한 건 알지만. 이영진 ant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