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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스페셜] 어떻게 영화산업이 우리들의 목록을 제한하고 있는가? - <에센셜 시네마>

“나쁜 영화를 보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다.” 영화 사이트 뮤비(Mubi)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내건 자극적인 슬로건이다. 이 사이트가 제공하려는 영화들은 이른바 좋은 영화들, 말하자면 ‘에센셜 시네마’들이다. 일종의 정전(canon)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 목록은 어떻게 결정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다양한 비평가들의 목록들을 봤었다. 제임스 아제, 마니 파베르, 앙드레 바쟁, 폴린 카엘, 피터 보그다노비치, 앤드루 새리스, 로저 에버트, 조너선 로젠봄, 하스미 시게히코 등 유수의 비평가들의 목록들이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영국영화협회(BFI), 미국영화협회(AFI), 프랑스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영국 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 <필름 코멘트> 등의 영화기관, 잡지가 선정한 조금 더 공식적인 목록들도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꼽은 100편의 한국영화, 부산국제영화제가 꼽은 100편의 아시아영화들도 있다. 이는 최고의 영화들을 말하는 것인가, 혹은 비평가들의 고약한 취미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의 목록들인가? 혹은 예산을 배정받지 못해 창고에 필름들을 쌓아놓은 아카이브가 고육지책으로 국가예산을 뽑아내 우선적으로 복원, 소장하려는 목록들인가? 사실 목록들이 흥미로운 것은 아니다. 어떻게 작품들이 선별될 수 있는지, 배제와 통합의 원리가 무엇인지, 가치 평가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가 도리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영화의 모범시민 폴 슈레이더는 이미 답을 내놓은 바 있다. 이른바 영화 정전을 위한 흥미로운 7가지 표준들. 아름다움, 기묘함, 형식과 주제의 단일성, 전통, 반복 가능성, 관객의 참여, 모럴리티 등이 그러하다. 평론가 에이드리언 마틴이 제시한 정전은 보다 전략적이다. 첫째, <스타워즈> 정전(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스타워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혹은 박스오피스 정전이 있다. 상업적으로 성공하고도 명예까지 차지하고픈 블록버스터 목록들이다. 둘째, <시민 케인> 정전. 1950년대와 60년대, 국제 영화제에서 발견된 목록들에 이어 아트하우스의 단골 상영작이 된 영화들이다. 누벨바그 시절, 비평가들이 구축한 오래된 정전이다. 마틴은 이 목록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글로벌 시네마에서 이 정전이 지나치게 남성, 유럽-미국 편향적이며 미학적, 세대, 지리적 배분에서 심각한 편식이 나타나고 있다. 다큐멘터리, 단편, 여성영화, 실험영화들 또한 결핍된 목록들이다. 셋째, 그가 주창하는 키아로스타미 정전이 있다. 두 번째와 세번째의 정전에서 결핍되고 누락된 영화들을 보완한 새로운 정전이다. 마틴의 자극적인 분류법에 더해 가장 흥미로운 정전화의 실천이 시도된 것이 이제 소개하려는 미국 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의 <에센셜 시네마>라는 책이다. 2002년에 출간된 이 책은 특별히 ‘영화 정전의 필요성’을 주창한다. 그는 영화의 정전이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읽는 영화 교과서(아마도 데이비드 보드웰의 책들), 혹은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에 기재된 목록들, 혹은 박스오피스 성적을 올린 영화들만 남게 될 것이라 분노한다. 정전화에 대한 그의 저작이- 비록 이미 <시카고 리더>라는 신문에 쓰였던 글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21세기 초두에 나온 것은 특별한 시대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21세기 들어서 잡지, 케이블 텔레비전, 인터넷, 기관들을 통해 너도 나도 리스트를 발표하며 정전화 작업을 공식화했다. 로젠봄은 이런 목록들 가운데 특히 AFI가 1999년에 발표한 ‘100편의 미국영화’를 공격했다. 고결한 영화 취향을 드러내고 자랑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나는 그의 글 한구절도 읽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대신 그의 질문은 이러하다. “어떻게 할리우드와 미디어가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제한시키고 있는가?” AFI의 리스트는 오스카상을 수상한 작품들, 유명 배우와 고예산의 영화들,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도모하기 위한 고도의 홍보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로젠봄은 이러한 리스트가 할리우드 배급 채널의 지배와 단지 할리우드 작품들을 홍보하는 데 열중한 잡지들, 그런 작품들을 소개하는 데 동원된 비평가들의 합작이라 여긴다. 산업의 손에 넘겨진 목록을 넘어서기 위해 로젠봄은 대안적인 미국영화 100편의 리스트를 공개했다. 언더그라운드, 아방가르드, 독립영화들이 포함된 ‘대안적인 100편의 미국영화들’이다. <에센셜 시네마>는 로젠봄의 이런 실천에서 나온 영화의 정전을 확장하기 위한 정전의 전략(정치학)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에센셜 시네마>의 흥미로운 자극은 이른바 정전의 선별전략, 말하자면 정전화에 필수적인 비평적 기준을 갱신하는 노력에 있다. 각 장의 글들이 비록 다른 목적으로 쓰였던 글이지만 이 느슨한 연결에서 로젠봄이 제시하는 몇 가지 흥미로운 주장을 엿볼 수 있다. 일단, 그가 제시한 영화 목록의 방대함이다. 100편이 아닌 1천편의 에센셜 시네마다. 하루에 세편씩 본다면 꼬박 1년이 걸릴 목록이다. 서양의 작품만은 아닌(그는 영화가 문학에 비해 언어적 차이가 덜 지배적인 예술 매체라 여긴다), 아시아, 아프리카를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 미학적 고려만은 아닌(예술작품에 대한 선호란 결국 소비지상주의의 다른 버전이기에) 통상적으로 대중적 영화라 부르는 영화들을 포함한 목록이며, 적은 편수라고 말해야겠지만, 다른 목록들과 비교해보자면 여성감독들의 작품이 많이 수록된 편이다(물론, 아녜스 바르다 영화가 고작 세편이며, 샹탈 애커만 영화는 5편에 불과하다). 정전화로 고려될 영화의 유형을 확장한 목록들이기도 하다. 가령, 비디오 작품들, 텔레비전용 영화, 애니메이션, 단편, 실험영화들의 목록을 포함한다. 물론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그러하듯 사심 가득한 목록들도 있다. 이 책의 중요성은 로젠봄의 글이 단지 할리우드의 문화 지배를 다루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나는 이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에서 우리나라 현실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읽고 있다. <경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조지프 맹케위츠, 프리츠 랑과 고다르의 연관 관계. 헬로우 시네필리아 <무비 무테이션즈>(Movie Mutations: The Changing face of World Cinephilia) 조너선 로젠봄 외 지음 / BFI 펴냄 <에센셜 시네마>와 함께, 실은 먼저 읽어야 할 책이 전세계(사실은 개인적인 네트워크인) 비평가들의 서신 교환으로 작성된 <무비 무테이션즈>이다(국내 미출간). 조너선 로젠봄이 1997년에 발의해 시작한 비평가들의 서신 교환- 원래는 프랑스 저널 <트래픽>에서 시작했다-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로젠봄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그가 만난 상이한 국적의 시네필 비평가들이- 대략 1960년대생들이다- 지역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젠봄과 멜버른의 에이드리언 마틴, 뉴욕의 켄트 존스, 빈의 알렉스 호르워스, 파리의 니콜 브레네들이 나눈 서신 교환들은 그들 각자의 영화 문화의 경험, 취향들을 전시한다. 이들은 시네필 돌연변이들(Mutants)로 수전 손택, 데이비드 톰슨, 데이비드 덴비 등이 즐겨 말한 ‘영화의 죽음’에 대항해 새로운 시네필리아의 시대, 혹은 세대를 제창한다. 작가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세계영화의 지도가 변경 중에 있기 때문이다. 더이상 유럽 중심적이지 않다. 게으른 비평가들만이 제대로 지금 그 변화를 지켜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에센셜 시네마>의 목록들이 어떤 지역적, 글로벌한 조건의 변이에서 나온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은 필수다. 동세대 비평가들의 논의뿐만 아니라 레이몽 벨루, 그리고 하스미 시게히코와 나눈 하워드 혹스, 마스무라 야스조에 관한 대화가 실은 더 흥미롭긴 하다.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우리가 보고 있다

눈을 뜨자마자 텔레비전을 켠다. 채널은 TV조선. 내 살다살다 TV조선을 보는 날이 다 오다니. 아침 시트콤을 보는 심정으로 우병우의 검찰 출두를,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하는 장면을 본다. 호빠 출신과 무당의 조합. 그 날고 긴다는 문화계 황태자의 굴욕적인 호송 장면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한순간 놓치면 줄거리를 따라갈 수도 없는 급박한 전개다. 누군가가 그랬다. 가장 대중적인 시나리오는 익숙한 구조에 신선한 설정으로 탄생한다고. 대통령 임기 말에 습관적으로 터지는 측근 비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현실적인 설정을 얻어 역대급 스캔들이 되었다. 임성한 드라마를 챙겨 보던 친구를 한심해하던 나에게도, 이것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마성의 드라마다. 한때 열혈 영화청년의 정신을 되살려 난 분노를 뒤로하고 조용히 이 아침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해체/분석해본다. 눈앞의 반전을 위해 급급하게 만들어진 시나리오가 아니다. 치밀하게 초반부터 장치를 깔아둔 공이 많이 들어간 각본이다. 증거는 이 드라마가 무려 40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거다. 처음은 가정불화였을 것이다. 단지 아버지 마음에 안 드는 딸의 남자친구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가정이 대통령 일가였다는 것이고, 그 아버지는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탄탄한 지지층을 만들어냈다는 게 또 하나의 문제였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탄생한 비련의 여주인공. 그리고 일가를 이룬 남자친구는 죽음 이후에도 그녀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녀를 보좌한다. 그리고 세대를 넘어, 그들은 콘크리트 같은 지지층을 딛고 한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비리와 부패를 자행한다. 언젠가 그 여주인공이 했던 고백은 진심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이 비극은 그 평범한 가정 안에서의 일로 끝났을 거다. 긴 세월에 걸친 엄청난 스케일이 무색하게, 하루아침에 콘크리트가 무너졌다. 형광등100개를 켠 듯 그녀에게만 집중됐던 조명이 뒷배경을 비춘 순간 여주인공은 공주님에서 초라한 패널 앞의 꼭두각시로 전락해버렸다. 이 정도면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속 절름발이 정도는 쉽게 뛰어넘을 희대의 반전 캐릭터 아닌가.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두명의 캐릭터 문제도 아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은 알고도 모르는 척, 은근슬쩍 꼭두각시놀이를 즐겼다. 정신 차려보니 이곳엔 정의라는 달달한 것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고 협잡꾼이 되지 않으면 멍청하다는 소릴 듣는 사기꾼의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 믿기 힘들지만, 이 드라마는 현실이다. 뉴스는 시트콤이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대하드라마도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다. 나는 그들을 팔짱 끼고 구경할 수 있는 TV 밖 시청자가 아닌, 그들에 의해 상식과 삶과 가치를 배신당한 등장인물 중 하나인 것이다. 때문에 즐거울 수 없다. 남의 일처럼 웃으면서 조롱할 수 없다. 도무지 분노하지않을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만약 이게 진짜 드라마라면 클라이맥스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난 이 드라마가 끝나지 않길 기도한다. 최소한 여주인공의 퇴장으로 끝나버려선 안 된다. 망가져버린 이곳의 가치와 상식이 제대로 서는 모습까진 무조건 연장방영해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 분노를 잃지 않고 지켜볼 생각이다.

[성균관대학교] 고전적 매체부터 뉴미디어까지, 영상의 모든 것을 가르친다

학과소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영상을 사용한 새로운 개념의 공연과 미디어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와 같은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커리큘럼을 갖춘 학과다. 영상학과에 진학한 학생들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영상 전 분야를 수학하며, 기존의 틀을 벗어나 주도적으로 영상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토양을 다지게 된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21세기 첨단 영상 분야를 이끌어갈 영상 전문인을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1998년 설립된 이래 디지털 영상 산업에 최적화된 학과편제를 갖추었고 2002년 정보통신부 우수 IT학과 지원사업의 최우수 학과로 선정되었다. 또 2003년 문화관광부의 문화콘텐츠 우수학과 지원사업에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하는 첨단 디지털 영화’로 최우수 학과로 2년간 선정된 바 있다. 영상에 대한 전반적인 탐구 과정을 포괄하는 커리큘럼은 이론과 실기,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치지 않는다. 저학년 때 매체를 개괄하는 영상학원론, 미디어의 다양한 특성을 탐구하는 미디어스터디, 영상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영상스토리텔링 등을 학습하는 동시에 시나리오워크샵, 촬영기초, 영상편집기초, 애니메이션기초 등의 실기 수업으로 기술의 초석을 다진다. 고학년 때에는 비평이론의 틀과 방법론을 배우는 ‘영상비평론’, ‘정신분석과 영상연출’ 등을 통해 사유를 확장하며, 게임워크샵, 영화연출워크샵, TV드라마워크샵 등 매체별 워크숍 수업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며 실전 감각을 익힌다. 고전적 매체를 넘어서 뉴미디어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은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만의 강점이다. 매체간 융합을 통해 뉴미디어를 개발하는 인터랙티브영상, 디지털 영상 공간 유저들의 행위를 연구하는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디자인 수업을 비롯해 하나의 스토리를 다양한 플랫폼에서 콘텐츠화하는 스토리텔링을 배우는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뉴미디어콘텐츠워크샵 등의 수업은 시시각각 다변화하는 미디어를 발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책임질 교수진도 탄탄하다.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이준희 교수와 현대진 교수 등 뉴미디어에 정통한 교수들과 <오감도>를 연출한 변혁 감독, <말하는 건축가>의 정재은 감독, <꼬마버스 타요> 프로듀서인 이우진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등 현업에서 활동 중인 교수들이 이론과 실기 수업을 두루 책임진다. 탄탄한 커리큘럼과 교수진의 수준 높은 강의의 결과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현재 각 분야에서 활약 중인 수많은 동문을 배출했다. 영화계에는 <검은 사제들>을 연출한 장재현 감독, <도희야>의 정주리 감독 등 자기 색을 뚜렷이 드러내는 감독들을 비롯해 투자배급사 CJ E&M에 재직 중인 동문 등 다양한 분야에 동문들이 포진해 있다. 그외에도 공연기획자, 미디어 아티스트,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동문을 비롯해 KBS 등의 방송사, 광고기획사 제일기획, 네이버 주식회사, 게임업체 NC소프트, 애니메이션 제작사 아이코닉스 등 다양한 분야에 동문들이 재직 중이다. 현대예술과 대중문화에 걸쳐 현재 가장 두드러진 화두는 융합일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뉴미디어에 대한 탐구에서 한발 나아가 인문학적 토대를 기반으로 예술과 공연,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매체를 융합한 디지털 컨버전스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뉴미디어와 영상미학 강의를 비롯해 영상학과의 변혁 교수가 기획 및 제작한 시네마틱 퍼포먼스인 <자유부인>과 <윤이상을 만나다>에도 많은 영상학과 재학생들이 참여한 바 있다.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 변화에 따라 뉴미디어 교육에 앞장서고 있는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이론과 기술, 비전을 갖춘, 시대에 앞서가는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입시전형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2017년 입학정원은 총 37명이다. 2017년 수시모집에서는 글로벌 인재 15명, 논술우수자 10명, 예체능 특기자 5명을 선발했으며, 정시 모집에서는 7명을 선발하며 나군에서 지원을 받는다. 정시 모집의 경우 수능 점수 100%를 보는 일반전형으로 진행하며, 국어 30%, 수리 30%, 영어 30%. 사회탐구 선택 2과목 10%에 한국사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합산해 전형 총점 순으로 선발한다. 2017년 1월2일 오전 10시부터 1월4일 오후 6시까지 접수 받는다. “ 매체를 넘나드는 영상 스토리텔링 능력이 핵심 경쟁력”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이준희 전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가 여타의 영화학과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학과명에 영화나 방송 등과 같이 목표로 하는 매체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는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크기 및 형태의 스크린, 러닝타임, 관람 형태 그리고 기술의 발전에 최적화된 영상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보고, 이에 맞춰 설계한 커리큘럼이 마련되어 있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가 지향하는 교육 목표와 교육관은 무엇인가. =기존 매체를 위한 연출이건 융복합적인 실험적 시도이건 주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에 매체의 특성을 고려한 콘텐츠의 형식을 디자인하는 것이 순서다. 예술이나 인문학적 이해는 이를 위한 필수 소양이다. 교육과정에서는 다양한 매체 또는 장르를 경험하며 얻은 지식을 체화하고 이를 실험적으로 융합하는 것을 권장한다. -어떤 인재를 양성하려 하나. =유연한 사고와 리더십을 갖춘 인재 양성이 목표다. 유연한 사고는 매체에 대한 유연성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는 작업 환경 속 역할의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 다른 분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것을 의미하고, 리더십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주위 사람들의 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홈페이지 ftm.kr 전화번호 02-760-0661 교수진 안상혁, 이준희, 현대진, 박광춘, 변혁, 정재은, 이우진, 박준원 등 커리큘럼 영상학원론, 촬영기초, 영화사, 음악음향실습, 영상음향실습, 인터랙티브영상, 인터랙티브아트, 애니메이션기초, 시나리오워크샵, 영상미학, 영상스토리텔링,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디자인, 디지털디자인, 디지털비디오와 무빙이미지, 게임디자인, 캐릭터 애니메이션, 미디어스터디, 영상편집워크샵, 영상편집기초, 영화사연구, 게임워크샵, 영상비평론, 영상매체경영론, 영상학현장실습, 모션그래픽워크샵, 정신분석과 영상연출, 실험영상워크샵, 광고연출, CF워크샵, 스튜디오촬영워크샵, 장편시나리오워크샵, 다큐멘터리워크샵, 영화연출워크샵, 애니메이션 연출, 뉴미디어시대의 영상미학, 다큐멘터리의 이해,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방송포맷디자인워크샵, 뉴미디어콘텐츠워크샵, 콘텐츠기획과프리젠테이션, 영상학 현장실습, 영화기획제작워크샵, TV드라마워크샵, 졸업작품워크샵, 캡스톤디자인 졸업작품연구, 디지털시대의 영상예술

[정지연의 영화비평] 저항의 멜로드라마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는 많은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의 전통은 ‘저항의 영화’, 강력한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담아내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에 이어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의 수상 소감은 흡사 정치연설에 가까웠다. 심사위원장인 조지 밀러의 발표와 함께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 켄 로치는 “이 상을 받는 게 이상합니다. 우리에게 이 영화의 영감을 준 이들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그는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경제정책이 세상을 위험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잔혹한 빈곤과 내핍에 시달리게 되었음을 피력하며 영화예술의 책무가 무엇인지 상기시킨 것이다. 올해로 81살이 된 켄 로치 감독은 지난 2014년에 연출한 <지미스 홀>이 자신의 마지막 극영화라고 이미 선언한 바 있다. 일종의 은퇴 선언처럼 받아들여졌고, 왜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지미스 홀>인지 처음엔 다소 의아했다. <지미스 홀>은 아일랜드 전쟁을 다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부터 정확히 10년 후를 다룬 작품이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역사적 실패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반성적으로 사유하길 촉구했으며(켄 로치는 혁명가 제임스 코널리의 말을 인용하며 현재의 정치국면을 은유했다. “만약 영국군을 철수시킨다 해도 사회주의 공화국을 조직하지 않는다면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영국은 지주와 상업 기관들을 통해 아일랜드를 계속 통치할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가장 이상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 <지미스 홀>의 주인공 지미 그랄튼. 켄 로치는 그에게 급진적 사회주의자, 문학과 음악을 사랑했던 예술가, 가난한 민중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숭고한 실천을 보여준 혁명가, 그리고 자유롭고 사색적인 인간의 면모를 부여했다. 그런 면에서 지미 그랄튼은 켄 로치가 이룬 모든 영화의 주인공들을 대변하는 이상적 캐릭터이다. 게다가 그가 존재했던 시간은 영국 노동계급에겐 가장 잔혹한 시간으로 간주되는 1930년대였다. 부르주아들과 상업 자본가들의 수탈이 극에 달하고, 노동계급은 붕괴했다. 켄 로치는 여러 인터뷰에서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부활시키는 사회는 흡사 30년대 영국 사회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결코 돌이켜서는 안 되는 시간. 그래서 그의 마지막 영화에서 그 시대에 저항한 사회주의 혁명가를 다시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켄 로치는 은퇴 선언 이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정치투쟁에 가담했다. 좌파연합 ‘레스펙트’(Respect)의 전국위원이었으며, 사회주의자와 생태주의자, 페미니스트 등이 연대한 정당 ‘레프트 유니티’의 건설을 주도했다. 최근 레프트 유니티는 노동당의 보수화를 견제하며 제레미 코빈에게 힘을 실어줬고, 무엇보다도 ‘수 많은 민중이 성취한 사회·경제적 이익을 파괴하기 위한 긴축재정’ 반대투쟁에 앞장섰다. <1945년의 시대정신>(2012)이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했던 1945년, 영국 사회의 놀라운 성취들(의료, 주거, 교육, 철도, 전기 등의 공공화)을 상기하며 신자유주의로 파괴된 현재의 영국 사회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과 논쟁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였다면, 그가 은퇴 선언까지 번복하며 만들어야만 했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긴축정책과 복지체제의 후퇴가 어떻게 노동자계급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피력하는 비극의 드라마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착한 자본주의(Caring Capitalism)요? 사회적으로 책임지고 보살피는 자본주의란 ‘불사조’와 같은 겁니다. 누구나 들어는 봤지만 아무도 본 적은 없거든요.” <1945년의 시대정신>에서 영국 사회의 희망과 좌절을 모두 경험했던 한 노인은 그렇게 말한다. 1945년 사회주의적 이념을 내세운 노동당 정권이 들어서고, 사회적 부는 노동자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한 정책으로 분배됐다. 그러나 1979년 영국의 악몽, 보수당의 대처가 집권했다. 신자유주의는 대처리즘으로도 호명되면서 영국 경제의 위기를 복지정책과 노동자계급의 책임으로 전가했다. 그리고 2016년, 영국 뉴캐슬에서 살고 있는 59살의 노동자 다니엘 블레이크. 이제 그가 직면하게 될 삶은 은퇴 후 편안한 노후와 여가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과 복지제도의 모순, 위압적 관료제에 의한 생존권의 위협과 모멸, 불안이 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암흑 화면 속에서 들려오는 다니엘 블레이크와 의료수당 지급 담당자와의 길고도 답답한 대화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번의 심장 쇼크로 인해 주치의로부터 업무 불가 판정을 받은 그에게 담당자는 다니엘의 건강 상태와는 하등 상관없는 형식적인 질문들로 심사를 끌고 나간다. 어이없는 심사에 화가 난 다니엘이 유머 섞인 항변을 하곤 하지만, 그 결과는 잔인했다. 마치 괘씸죄인 양 그에게 심사 탈락을 결정한 것이다. 의료수당 심사에서 탈락하게 되면 그는 다시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주치의는 그의 건강 상태가 일을 할 수 없는 정도라며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심사 결과에 항소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항소절차가 복잡하다. 어이없는 심사결과 통보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관과 통화하기 위해선 두 시간의 연결대기음을 들으며 마냥 기다려야 한다. 그 힘든 시간을 버텨 통화를 하게 되면 또다시 불합리한 절차상의 순서가 통보된다. 전화로 해결하지 못한 그가 구직센터(Job Center)를 찾아가지만 그곳은 그의 마지막 자존감마저 앗아간다. 정확히 50년 만이다. 켄 로치는 이미 1966년, 영국 노동계급의 주거 문제와 복지제도의 모순을 다룬 ‘ 수요 드라마 극장’ <캐시 컴 홈>을 연출한 바 있다. 이 작품은 당시 영국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1200만명 이상이 시청했고,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켄 로치를 연구한 영국의 미디어 연구자 존 힐은 이 영화가 ‘국가적 양심’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고, 는 방영 한달여 만에 재방송을 전격적으로 내보내기도 했다고 기록한다. 당연히 논란도 뒤따랐다. 보수주의자들은 이 영화에서 공무원과 센터 직원들이 여성의 가슴이나 훔쳐보는 무뢰한으로 묘사됐다고 분개했다. 그러나 존 힐은 켄 로치 영화를 평가하면서, “켄 로치 영화의 가장 큰 힘은 그의 작품을 둘러싼 논쟁 그 자체”라고 단언한다(<켄 로치: 영화와 텔레비전의 정치학>(존 힐 지음)). 그로부터 50년 후. “세상은 진보하고 발전해나가는 것이다”라는 한때의 역사적 낙관주의자들을 비웃듯 세상은 나쁜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심지어 <캐시 컴 홈>이 만들어졌던 66년보다 더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영국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개봉되자 보수당 의원 데미언 그린은 의회에서 이 영화를 혹독하게 비난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 복지제도를 왜곡했으며, 구직센터의 직원들을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 속 이야기는 완전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켄 로치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들의 상당수는 더 끔찍했다. 그러나 영화에 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라고 항변했다. 시나리오작가 폴 래버티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직접 데미언 그린에게 이 영화의 스크립트 책을 보냈다. 책 첫장에 그는 이렇게 썼다. “당신이 얘기하는 걸 보니 아마 영화를 보지 않은 게 틀림없군요.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파악하라고 이 책을 보냅니다. 그런데 너무 바빠서 책조차 읽을 시간이 없다면 아무 푸드뱅크라도 방문해보세요.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들려줬던 비참한 이야기들을 당신에게도 들려줄 테니까요.” 존 힐은 켄 로치의 많은 영화들이 ‘저항의 멜로드라마’를 구성한다고 본다. 제임스 스미스의 연구서 <멜로드라마>에서 가져온 이 개념은 “무고한 영웅”을 시스템의 피해자로 그려내는 방식을 취한다. 1966년작 <캐시 컴 홈>은 영국 노동계급의 한 젊은 여성이 세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그녀가 어떻게 노동에서 배제 되는지, 어떻게 건물주에 의해 일방적으로 쫓겨나는지, 사회복지 시스템은 왜 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관료적이고 모순적인 방식으로 더 공격적이고 심지어 아이들을 엄마에게서 빼앗는지를 묘사한다. 확실히 초창기의 켄 로치는 형식적 자의식과 실험의식이 강했다.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방식과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실제 공간과 사람들을 작품에 담아냈으며, 주인공의 극적인 이야기보다는 그녀가 삶의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폭력과 모순을 포착하는 데 더 집중했다.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션은 흡사 이 작품을 르포 형식의 다큐멘터리처럼도 보이게 한다. 그러나 가장 큰 핵심은 ‘무고한 영웅’, 즉 영화 속 캐시가 결코 그녀의 무능과 잘못으로 인해 그러한 삶으로 내몰리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우리는 다시금 현재적 의미의 ‘무고한 영웅’을 마주하게 된다. 59살의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와 20대 후반의 아이 엄마 케이티. 저항의 멜로드라마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딱히 언어적인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작품이다. 전문가적 시선이 개입된 분석적 글도 어쩌면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다니엘이라는 사람과, 그 사람에 대한 시선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가 단순화된 카메라앵글 안에 미니멀한 방식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담담히 담겨 있다. 그냥 가슴 먹먹한 상태로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중에서도 몇몇 장면들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내내 마음을 붙든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심사과정의 암전이 끝나면 우리는 처음으로 다니엘 블레이크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는 몹시 상기되어 있으며 항변하고 싶으나 뭔가 설명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켄 로치는 이 영화에서 유달리 주인공의 클로즈업을 중요한 감정의 수사학으로 제시한다. 복지체제의 부조리함과 구직센터의 위악스러운 관료주의 앞에 당혹해질 수밖에 없는 늙은 노동자의 절박함. 자신 때문에 곤경에 처한 이를 바라보는 미안함, 채용 전화를 걸어온 사장에게 뭐라 거짓 핑계조차 대지 못하는 솔직함과 자괴감, 아이들을 위해 매춘 행위로 내몰리는 케이티를 향한 슬픔과 비탄. 그리고 컴퓨터를 쓸 줄 몰라 손으로 써온 이력서를 비웃고 제재를 가하는 구직센터 직원 앞에서 느끼는 모멸감과 수치심. 그리고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의 표정. 켄 로치 영화의 힘은 계몽주의에 가까우리만치 날카롭고 정확한 사회적 메시지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모든 영화에서 드러나는 휴머니티와 연민의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단순한 조연, 엑스트라 혹은 군중을 향한다. 물론 이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모든 주된 시선은 데이브 존스가 연기하는 다니엘 블레이크에 집중된다(그만큼 이 영화는 켄 로치의 이전작들에 비해 인물들과 사건이 미니멀하게 압축된다). 위에서 언급한 그의 클로즈업숏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니엘이 도서관 컴퓨터를 이용하기 전, 빈 시간을 메우기 위해 서늘한 도심에서 비를 맞으며 배회하는 장면들이 그러하다. 내러티브의 경제라는 측면에서 판단한다면 이 장면들은 삭제돼도 무방하다. 서사적으로는 그 장면들이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켄 로치는 그 순간들을 매우 공들여 연출했다. 추운 거리의 건물 처마 밑에서 언 손을 부비며 서 있는 모습,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자리를 옮기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초라한 순간들. 지금 다니엘 블레이크는 가난하고 지쳤으며 절박하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장면. 푸드뱅크에서 허기를 못 이기고 음식을 삼키다 울어버리는 케이티를 향해 그는 “이 모든 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켄 로치의 ‘무고한 영웅’들이 직면한 빈곤과 실업의 문제가 결코 그들의 품성과 능력 문제로 전가될 수 없음을 피력한다(가령 이력서 작성 교육 장면에서 강사는 노동자들에게 취업을 하고 성공을 하려면 “똑똑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모순을 개인의 역량 문제로 치환하고 왜곡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 연민과 시선 그리고 비극 종종 비전문 배우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 “정말로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을 캐스팅하면 카메라 앞에서라도 부지불식간에 삶의 체취가 묻어난다”라고 켄 로치는 말하곤 한다. 그건 켄 로치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켄 로치 영화에서 보여지는 인간적인 연민과 시선의 따스함은 그 자신의 품성과 현장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관한 다큐멘터리 <하우 투 메이크 어 켄 로치 필름>에서 시나리오작가 폴 래버티는 “나는 켄 로치와 20년 동안 12편의 영화를 같이 했지만 그동안 현장에서 그가 소리지르는 것을 한번도 본 적 없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켄 로치는 영화의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하고 결정하고 있었다. 푸드뱅크 신을 찍는 날, 오전 10시에 모인 수십명의 엑스트라들 앞에서 그는 직접 푸드뱅크가 어떤 곳이고 영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그날의 촬영은 어떻게 언제까지 진행될지, 그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참여해주길 설명하고 부탁한다. 푸드뱅크 외부에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을 찍기 전, 그는 직접 그 모든 엑스트라들의 위치를 설정하고 친절하게 그들의 이름을 물어주고, 아이를 업은 이에겐 힘들지 않느냐는 인사까지 건넨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아침마다 거대한 산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라는 그가 현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중압감에 짓눌린 예민한 예술가도, 날카로운 정치적 선동가도 아니다. 이것은 흡사 <지미스 홀>에서 묘사했던 자신의 이상적 캐릭터와도 닮아 있다. 실천적 좌파 사회주의자이자 시와 노래, 춤과 음악을 사랑했던 예술가,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던 선하고 예의바른 인간 말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2000년대 이후 켄 로치가 만들어낸 가장 비극적인 영화 중 한편이다. 생존을 위해 동료의 죽음을 방치 할 수밖에 없었던 <내비게이터>(2001)의 참담한 결말이나, 결국 자살로 치달은 이라크 참전 용사에 관한 <루트 아이리시>(2010)의 참담함처럼 이 영화는 과연 어디서 희망을 발견해야 할지 암담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켄 로치의 오래된 응답(<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이후의 인터뷰), “희망은 없다. 정치가와 경제인은 대개 남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고용주는 고용인의 일자리를 뺏고, 헐값으로 대체 노동력을 산다. 이런 구조 안에서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유일한 희망은 새로운 경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소수의 탐욕에 봉사하는 경제가 아니라 다수의 생계를 안정시키는 그런 구조 말이다.”

[김경욱의 영화비평] <여교사>, 자극적인 설정에 봉인된 주제의식

※이 글에는 <여교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쉬리>(1998) 이후,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대의 도래와 함께 주류 한국영화는 남성 중심의 장르로 이동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모두 14편인 천만 관객 영화를 돌아보면, 여성이 주연인 영화는 <암살> 한편뿐이다. 이것은 멜로드라마의 하위 장르인 로맨스가 주류영화에서 거의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서브플롯에서도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쉬리>의 경우, 주인공 유중원의 약혼녀이자 적대자로서 간첩 이방희가 등장하지만, <의형제>(2010)의 경우에는 이방희의 자리를 남성 간첩 송지원이 차지하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도 ‘로맨스’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예를 들어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시리즈의 경우, 초기에는 로맨스가 서브플롯으로 들어가 있었으나 최근 시리즈에서는 볼 수가 없다. 로맨스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주류영화에서 남성 투톱(또는 스리톱)을 내세우는 경향이 대세가 되고 로맨스마저 사라지면서 결국 여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된 셈이다. 대신 여배우는 구색 맞추기식으로 조연의 역할을 맡게 된다. 최근에 개봉한 <마스터>에서 엄지원은 터프한 형사로 등장해 이전의 이미지에서 변신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강동원, 김우빈, 이병헌 사이에서 존재감은 미미했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2016년의 흥행작이자 주류영화라고 할 수 있는 <아가씨>는 예외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흥행 원동력에 스타 감독 박찬욱의 작품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김민희가 극도로 노출을 꺼리는 여성 스타의 금기를 깼다는 점과 레즈비언의 섹스를 볼거리로 전시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6년의 한국영화를 돌아보면, 블록버스터와 저예산영화 사이의 중간급 규모의 영화 <비밀은 없다> <미씽: 사라진 여자> 등에서 여성 스타의 등장이 눈에 띈다. 전자에서, 손예진은 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는 엄마로 등장 한다. 후자에서, 엄지원과 공효진은 아이를 차지하려고 사투를 벌인다. 그들은 엄마 역할을 통해 멜로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구축된 스타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로맨틱 코미디 스타의 이미지 전복 올해 첫 개봉영화의 하나인 김태용의 <여교사>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여교사 효주로 등장하는 김하늘은 14년 전,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 <로망스>에서 제자와 사랑에 빠지는 여교사 채원 역을 했다. 제자 재하(이원근)와 엮이게 되는 효주는 채원의 가장 어두운 버전으로서,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적인 스타 김하늘이 자신의 이미지를 전복하는 시도를 한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계약직 교사로 일하는 효주는 정교사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사장의 딸 혜영(유인영)이 느닷없이 등장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린다. 효주의 가족이나 성장 배경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없으나, 이러한 설정에서 흙수저 효주와 금수저 혜영 사이의 계급 갈등이 형성된다. 김태용은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핫한 쟁점을 설정한 다음 심리적인 차원으로 풀어나간다. 가진 게 별로 없는 효주가 다 가진 것 같은 혜영에게 느끼는 즉각적인 감정은 시기심이다. 시기심은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매우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효주의 시기심은 신경증환자처럼 심각하다(<비밀은 없다>의 손예진, <미씽: 사라진 여자>의 엄지원과 공효진도 ‘모성애’를 표면에 내세우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신경증환자처럼 보인다. 또 <씨네21> 2016년 한국영화 베스트5에 선정된 <우리들>에서, 선과 지아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원인에는 ‘시기심’이 있다). 혜영의 존재로 괴로워하던 효주가 혜영과 재하가 섹스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자, 재하를 차지할 계획을 세운다. 한편으로는 혜영을 협박하며 괴롭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가진 것의 하나인 재하를 빼앗음으로써 박탈감을 만회하려고 한다. 효주는 먼저 열악한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 연습실에서 혼자 발레를 하는 재하에게 학원을 보내주는 명목으로 접근한다. 그런 다음 재하가 집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하자 자기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밥을 해주고 옷도 사준다. 이전에 효주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남자를 10년 동안 돌보다 결국 헤어졌다. 논점에서 다소 벗어나지만, 그녀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돌봐야 하는 남자를 반복해서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유형의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영화와 대중영화 사이에서 길을 잃다 효주의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흙수저는 결코 금수저를 이길 수 없다. 효주가 그 학교에서 계속 일하려면 혜영의 자비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재하마저도 알고 보니 혜영이 시키는 대로 효주를 사랑하는 것처럼 꾸민 것이었다. 효주는 완벽하게 굴욕적인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혜영이 무릎 꿇은 효주에게 최대한의 모멸감을 안겨줄 때, 효주는 혜영을 살해하고 만다. 이 장면은 공포영화처럼 섬뜩하게 연출되어 인상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결말에 이르러 대중적인 장르영화의 컨벤션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금수저에 대한 복수로서, 대다수 흙수저 관객에게 일말의 쾌감을 안겨주는 결말인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위에서 언급한 중간급 예산 영화에서도 발견되는 문제이다. 예산의 규모를 고려하면 흥행 요소들을 최대한 살려야 하는데, 그렇다고 작품의 질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일종의 작가영화와 대중영화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딜레마 속에서, 결과는 모두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쳤다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혜영의 약혼자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설정이다. 딜레마 속에서 특히 고등학생 재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이한 인물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학교 연습실에서 잠들어 있던 재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던 효주에게 느닷없이 비몽사몽간에 키스를 한다. 이 장면 때문에 효주와 관객은 그가 효주를 사랑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효주와 섹스를 하기는 해도 오로지 혜영만을 열렬하게 사랑한다. 효주와 혜영 사이의 갈등의 원인을 계급의 차이에 두었으나, 재하가 효주를 이용하고 혜영을 추종하는 이유가 그녀가 부르주아이기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금수저 혜영은 흙수저 효주와 재하 모두를 마음껏 농락했으나, 재하는 결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는 혜영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음을 감지하면서도 효주와 섹스를 한다. 이유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섹스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혜영의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운데 그녀의 고급 아파트에서, 제자 재하가 선생 효주에게 강간에 가까운 행위를 벌이는 장면은 포르노의 설정과 유사하다. 이때 효주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쾌락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다. 효주/김하늘의 무표정한 얼굴을 제시하면서, 관객에게 판단을 미루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김태용이 어느쪽도 결정하지 못한 건 아닌지, 김하늘이 자신의 스타 이미지를 고집한 결과는 아닌지 의문이 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효주는 멘털 붕괴 상태임에도 학교의 자기 자리로 간다. 여기서 그녀가 원한 건 재하가 아니라 정교사 자리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삼 이 영화가 계급 문제를 모티브로 설정했다는 점을 환기하게 되면서 동시에 풀어낸 방법이 적절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효주를 심각한 신경증환자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혜영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녀의 고통 속에서 사회의 문제가 투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끔찍한 복수와 자극적인 설정 속에서 봉인되어버리는 것 같다.

[파리] 부성을 그린 영화 <투 이즈 어 패밀리> 흥행 기대

<언터처블: 1%의 우정>을 기억하는 영화 팬들이 있을 것이다. 전신마비 환자인 상위 1% 부자 필립(프랑수아 클루제)과 그의 개인 간호보조 드리스(오마 사이)의 특별한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1억9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아멜리에>(2001) 이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몰이를 한 프랑스영화로 자리잡았다. <언터처블: 1%의 우정>의 대대적인 성공 이후, 국제적인 스타덤에 오른 오마 사이는 <쥬라기 월드>(2015),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 <인페르노>(2016) 등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조연으로 얼굴을 내비치는 한편, <웰컴, 삼바>(2014), <쇼콜라>(2016) 같은 자국영화에선 프랑스에 밀입국한 세네갈 난민,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활동한 광대 등의 역할을 맡아 연기력을 보여줬다. 이런 그가 휴고 겔랭 감독의 코미디 <투 이즈 어 패밀리>(2016년 12월7일 프랑스 개봉, 원제는 ‘내일, 모두 시작된다’)로 돌아와 언론과 관객의 관심을 모았다. 극중 오마 사이는 누구인지 기억이 불확실한 하룻밤의 연인에게 3개월 된 자신의 딸을 건네받은 뒤, 철없는 바람둥이에서 훌륭한 아빠로 변해가는 사뮤엘 역을 맡았다. 1월3일 현재 <투 이즈 어 패밀리>는 개봉 4주 만에 225만여 관객수를 기록하며 프랑스영화 박스오피스 4위를 차지했다. 평단의 반응은 다소 엇갈린다. 이 영화에 긍정적인 쪽은 ‘놀라운 배우’(<20미니츠>), ‘탁월한 오마 사이’(<컬처 박스>) 처럼 대체로 배우의 호연을 높게 사는 분위기다. 반면 ‘감정이입이 힘들고 결말이 자연스럽지 못하다’(<유럽 1>), ‘눈물을 짜내는 평범한 코미디’(<텔레라마>) 같은 부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과연 오마 사이가 <투 이즈 어 패밀리>로 ‘언터처블, 1%의 부성’을 이뤄낼지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스페셜] 국가관을 홍보하는 광고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영진위의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시계가 빠르게 가고 있다. 국정 농단을 입증할 증거가 된다면 마지막 하나까지도 모두 밝혀야 한다. <씨네21>은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 일지를 다시 살폈다. 일지에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근거한 정부의 <다이빙벨>과 관련한 외압(<씨네21> 1087호)뿐 아니라 <명량> <국제시장>에 대한 언급도 있다. 2014년 8월14일자에는 ‘長’(김기춘 전 비서실장), ‘CJ그룹, 명량 관련 고무’, 2014년 12월26일자 ‘長’, ‘영화 <국제시장> 保守(보수), 애국’, 12월28일자에는 ‘<국제시장> 제작 과정 투자자 구득난-문제 有. 장악, 관장 기관이 있어야’라 적혀 있다. CJ E&M이 투자·배급한 영화 <명량>은 2014년 7월30일 개봉했다. 그해 8월6일 박근혜 대통령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들과 함께 여의도CGV에서 <명량>을 관람했다. 당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민관군이 합동해 위기를 극복하고 국론을 결집했던 정신을 고취하고, 경제 활성화와 국가혁신을 한마음으로 추진하자는 의미가 있다”라며 청와대의 영화 관람 소감을 전했다. <명량>에 고무된 청와대가 앞장서서 <명량> 고무를 지시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영화계 관계자는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을 세운 게 박정희 정권이다(1968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졌다.-편집자). 이순신 장군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명량>의 흥행 고무를 지시한 것”이라고 전했다. “장악, 관장 기관 있어야” 2014년 11월 말, 박근혜 대통령은 손경식 CJ그룹 회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CJ의 영화·방송 사업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 방향을 바꾸라”고 말했고 손 회장은 “죄송하다. 방향을 바꾸겠다”고 답했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을 비롯해 영화인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을 풍자한 tvN의 의 시사 풍자 코너 ‘여의도 텔레토비’에 대한 보복으로 이미경 전 CJ그룹 부회장 사퇴를 요구했다”고 해석했다. 업무 일지에 <국제시장>을 두고 ‘구득난’이라 말한 건 청와대가 업계 사정을 전혀 모른 채 한 소리로 보인다. <국제시장>은 업계 1위인 대형 투자·배급사 CJ E&M과 다년간의 제작 경험으로 여러 편의 흥행작을 만들어온 JK필름이 만든 영화다. 정작 청와대가 하고 싶은 말은, ‘장악, 관장 기관 있어야’로 ‘구득난’은 제 입맛에 맞는 영화만 보고 싶다는 청와대의 명분용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이어지는 기사에서 이와 관련한 정치인, 영화인들의 해석을 들어봤다). CJ그룹은 바로 다음해인 2015년 CGV 극장을 통해 ‘프리미엄 코리아’라는 극장용 광고를 내보낸다. 광고는 ‘우리 민족’을 강조하며 ‘이토록 큰 자부심을 주는 나라가 우리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마무리된다. CJ그룹의 비전이나 활동 소개는 전혀 없고 국가 홍보용 광고로 보일 정도라 관객 사이에서는 ‘국뽕광고’로 불렸다. CGV의 조성진 홍보팀장은 “CGV는 광고비를 받고 상영만 했다”며 “광고의 내용과 집행 과정은 CJ그룹에서 결정한 사항”이라고 말한다. CJ그룹 홍보실 한수경 부장은 “CJ그룹 사장단이 제작을 결정한 광고다. 2015년은 CJ그룹이 문화 사업을 시작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여러 기념행사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광고의 의미를 일축했다. 광고 내용에 대해서는 “2014년 <명량>으로 큰 사랑을 받아 국민들께 감사한 마음과 세월호 사고로 국가·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라 ‘다들 힘내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CJ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 광고가 ‘현 정부의 외압과 그룹의 몸 사리기에서 나온 것’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CJ E&M도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라는 극장 상영용 광고를 만들기도 했다. <씨네21>은 업무 일지의 2014년 12월10일자 메모, ‘바른사회(시민회의)와 행복한 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행변) 역시 주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청와대는 업무 일지에 ‘보수 법률가 단체 活用(7월7일)’, ‘보수 법률 단체 現況(9월25자)’ 등을 언급하며 세월호 유족쪽 변론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활동 변호사들을 주시해왔다. 행변은 2014년 9월16일 조희연 서울시 교육청 교육감의 자사고 폐지 주장을 국민의 교육권 침해라며 성명서를 내면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세월호 유가족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대리 기사의 무료 변론을 맡기도 했다. 청와대가 민변에 대항할 목적으로 결집시킨 보수 법률인 모임이 행변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행변에는 세월호 특조위가 대통령의 행적을 조사하려 하자 반발하며 특조위원직을 사퇴한 차기환 변호사도 있다. 그는 정호성 전 비서관의 변호사이기도 하다. 그와 사법연수원 17기 동기인 이인철 변호사 역시 행변 소속이다. 이인철 변호사, 그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비상임 감사다.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6년 3월 임명한 2년 임기직이다. 차기환, 이인철과 연수원 동기에는 더블루케이 한국법인의 대표였던 최철 변호사도 있다. 최철 변호사는 행변의 발기인인 강래형 변호사와 같은 법무법인 웅빈 소속이다. 영진위가 정권의 블랙리스트를 충실히 실행에 옮겼음이 밝혀진 이상 영진위 내부의 ‘수상한’ 커넥션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충분히 가능하다. 영진위는 그동안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실행을 전면 부인해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와 문체부 특별감사로 위원장과 사무국장의 비위 사실까지 확인됐다. 사무국장은 직위해제됐고 김세훈 위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 이의신청을 한 상태다. 영진위,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영화인들은 영진위를 국정 농단의 부역자로 보고, 김세훈 위원장과 부산국제영화제에 외압을 행사한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와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영진위의 최고 의결기구인 9인 위원회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2월30일로 임기가 만료된 3인의 위원을 새로이 구성하기 위해 임명권을 가진 문체부가 영화인들을 상대로 인재 추천을 받고 있다. 영진위 주무부처인 문체부 영상콘텐츠사업과의 박정후 사무관은 “문체부에 등록된 60여개의 영화 관련 단체에 추천해달라고 요구서를 보냈다”며 “이중에는 현재 활동을 하지 않거나 영화와 상관이 없는 듯한 단체도 여럿”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임의적으로 (추천인 명단에서 활동하지 않는 단체들을) 빼버리면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였으나 추천인을 제대로 받아보겠다는 문체부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되는 지점이다. 박 사무관은 “(영화인 추천제는) 2009년에 만들어진 시행령에 따른 것인데 별 효과가 없어서 2012년 이후로는 추천을 받지 않아왔다. 필요한 경우 영화계 원로들의 추천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를 개선하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음을 자인한 셈이다. 영화계는 문체부의 추천인 제안을 전격 거부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는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는 9인 위원을 수용할 수 없다. 시급한 사업이 아닌 이상 2017년 영진위 사업을 전면 중단하라. 새로운 정부 수립 이후 영진위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이 정권에 부역한 9인 위원회도 전부 사퇴하라”고 강력 규탄했다.

[김영진의 영화비평] 최근 한국영화의 낭비되는 이미지 문법에 관하여

이 글은 하나의 의문을 갖고 물고 늘어지며 쓰려 한다. 최근의 주류 한국영화에서 클로즈업된 배우의 얼굴들이 근사하다는 느낌으로 수렴되는 것 외에 왜 지속적인 잔상을 남기지 않을까란 의문이 그것이다. 나와 가끔 문자로 교신하는 어느 영화인은 요즘 한국영화에서의 얼굴 클로즈업은 대사와 표정 외에 어떤 기능도 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스토리는 다양해졌지만 얼굴이 영화적 이미지로 작동하지 못하고 사용가치로 전락해버린 작금의 한국영화 현실은 오염돼 있다는 것이다. 얼굴의 ‘사용가치’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인데, 이 풍토에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얼굴의 페티시즘에 갇힌 온갖 메시지 영화들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입장들도 머지않아 상투형의 막다른 골목에 막힐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윤리적 감각의 균형이 부재한 <마스터> 이를테면 <마스터>란 영화에 등장하는 숱한 배우들의 얼굴 클로즈업은 그저 배우들이 근사하게 생겼다는 인상 외에 어떤 것도 전달하지 않는다. 이건 ‘15세 관람가, 권선징악’의 연출 전력과 무관하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희대의 사기꾼 악당 진현필은 이병헌이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 이상의 것을 주지 않는다. 관객에게 연기를 잘하고 있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그는 역설적으로 어떤 수준 이상의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관객은 영화 속의 진현필을 이병헌이 근사하게 연기하는 허구의 악당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심지어 무섭지도, 사악하지도 않은 멋있는 악당, 사악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멋있는 배우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이 느낌을 주기 위해 그는 영화에서 수많은 클로즈업을 할당받는데 이건 끝없이 나열되는 광고 화면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의 이미지는 영화 속의 인물 이미지로 육화된 것이 아니라 배우의 물리적 아름다움에 카메라가 자의적으로 포섭되어 사악한 것조차 멋있게 재현한다는 목적의 도구로 쓰이는 이미지다. <씨네21> 지난 1089호 인터뷰에서 감독 스스로 ‘사기 캐릭터’라고 밝힌, 진현필 회장을 끝까지 추적하는 엘리트 경찰이자 지능범죄 수사대 팀장인 김재명은 더 나아가 현실에 아예 존재하지 않지만 대리만족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해 무한대의 경계로 넓혀진 캐릭터다. 첫 등장부터 영국 수상 처칠이 벌금을 문 일화를 언급하는 그는 청렴결백하고 총명하며 정의감 넘치고 최고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상부의 절대적인 엄호를 받는 무결점의 인물이다. 그의 마지막 퇴장 장면은 진현필을 검거한 후 진현필을 비호하던 정치인들을 검거하기 위해 출동하는 수많은 경찰차들 사이에서 늠름하게 화면 저편으로 걸어가는 모습이다. 좋다. 이런 장면이 정의에 목마른 한국 사람들에게 잠시 동안의 대리만족을 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이 밋밋한 캐릭터를 수행하는 김재명의 멋지고 잘생긴 외모를 강조하기 위해, 드라마의 이야기 기능을 운반하기 위해 인형처럼 대사를 읊는 느낌을 주는 강동원의 소모되는 이미지는 어쩔 것인가,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잘생겼지만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영화에서 최소한의 극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잉여적으로 발산하지 않는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한국영화 속의 경찰 캐릭터는 그냥 영화 속 캐릭터일 뿐이다. 그래도 된다고 감독이나 배우는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이 캐릭터가 아무런 현실적 환기력도 지니지 않을 때 캐릭터는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나르시시즘의 발현도구로만 머물게 된다. 이것은 이 영화가 그가 출연하는 사이비 공익 광고에 불과하다는 전시효과를 낳는다. 공허하게 정의는 살아 있다고 물리적으로 과시하는 이미지를 펼쳐봐야 그것은 강동원은 멋있다, 그렇지만 강동원은 연기를 너무 못한다, 강동원이 전시하는 정의의 담지자로서의 스크린 속 물리적 형상은 가짜다, 라는 느낌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마스터>는 실제 벌어졌던 사기사건을 소재로 현실에서와 달리 권선징악의 결말로 맺음하는 영화다. 현실에서 미제였던 사건을 극화해서 법의 심판을 받는 해피엔딩으로 바꾸는 것이 윤리적으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자명한 악을 향해 자명하다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미지를 나열하고 있으며, 그 악을 처단하기 위해 집요하게 추적하는 경찰의 정의로운 이미지 역시 고루 안배하고 있다. 서사 차원에서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공정한 위치에 서 있다고 떳떳하게 주장하지만 나쁜 것을 나쁘다고 주장하는 게 정의는 아니다. 나쁜 것을 나쁘다고 주장하는 우리 안의 악 역시 들여다볼 수 있어야 정의에 대한 윤리적 감각의 균형이 선다. <마스터>에는 그런 윤리적 감각의 균형을 가늠할 서사적 자리가 전혀 없다. 진현필의 연기, 누구에게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달콤한 유혹을 건네는, 그리하여 수많은 고객을 모으는 그의 수법을 드러내는 영화 초반의 경과 보고회 무대 연기는, 그가 가족이라고 부르는 고객들의 마음을 훔치는 고도의 연기라고 영화에선 주장되지만 관객 입장에선 상투적인 연기다. 연출자도 그 점을 아는지 진현필이 무대 연기를 마친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 그의 가짜 연기 실력을 드러냄으로써 진현필이 악당 캐릭터로서 서사적으로 이미 지고 들어가고 있음을 실토한다. 진현필 캐릭터는 이병헌이라는 스타가 연기하지 않으면 보고 있을 인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의 캐릭터다.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반해 투자를 결심하게 만들었던 그의 매력을 증명하려면 그에게 자기 인생을 맡겼던 사람들의 어리석음, 무지, 탐욕이 우리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는 데 이르러야 한다. 그가 사는 방식에서 표출되는 매력은 곧 우리 안의 악함이 반질반질한 최고 자본가의 외형을 향한 것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거칠고 단순하지만 이병헌이 역시 악당으로 나왔던 <내부자들>에선 희미하게나마 그런 악의 공감성에 대한 묘사가 있었다. 기능적인 숏들의 나열로만 완성된 서사 강동원이 연기하는 김재명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지만 진현필의 수하였으나 그를 배신하게 되는 박장군(김우빈)에 대해서는 조금 더 말할 것이 있겠다. 이 캐릭터도 평면적인 것은 다른 캐릭터와 비슷하지만 진현필의 편에 있다가 자기 생존을 위해 김재명 편에 서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실존적 동요를 영화에서 경험하므로 관객 입장에선 뭔가 약간의 이입 여지를 남기는 인물이다. 이 영화를 본 다음날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 우연히 직장인들이 <마스터>에 대한 감상 소감을 나누는 걸 옆자리에서 듣게 됐는데 그들은 김우빈이 이 영화에서 가장 연기를 잘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김우빈이 맡은 역할의 캐릭터가 그나마 유일하게 도덕적으로 진화하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반영하는데, 흥미롭게도 그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 가운데 클로즈업으로 웅변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가 가장 생생한 캐릭터라는 느낌을 준 건 그에게는 그나마 다른 인물들과 달리 영화 속에서 뻔한 동선을 제공받지 않은 채 관객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진현필이 점유한 공간이나 김재명이 점유하는 공간은, 영화 중반에 김재명이 터널에서 펼치는 액션이나 영화 후반부 필리핀에서 펼치는 김재명과 진현필의 대결 장면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직 박장군만이 다른 인물들과 달리 현실적 공간을 그나마 돌아다닌다. 형사들의 미행을 따돌리고 그가 비밀 전산기지를 방문하거나 진현필의 사기 피해자들 집회 모임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최소한의 동선 확보를 통해 그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그나마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의 빈약한 캐릭터는 오로지 서사의 문제인가.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앞에서 낭비되는 클로즈업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다. 빠른 속도감을 지키면서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 잘생긴 스타배우들의 클로즈업을 나열하는 이 영화의 연출 호흡은 서사의 기능적 지분을 넘어서는 잉여를 창조하는 데 완벽하게 실패했다. 서사 작법과는 다른 차원에서 <마스터>는 최근 한국영화에서 낭비되는 이미지 문법의 적절한 실례를 보여준다. 하나의 장면이 시작하면 인물의 위치와 동선이 생생하게 재현된다는 느낌을 주는 프레이밍과 연결을 이 영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근본적으로 텔레비전 드라마의 호흡이지만 빠른 속도감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다음 장면을 향해 초조하게 내달리려는 이런 연출에서 유일하게 생존의 동아줄처럼 붙잡고 있는 것이 클로즈업인데, 유감스럽게도 나 같은 관객은 초반 30분 이후부터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현장에서 연출, 촬영, 여타 스탭들은 인물과 카메라의 위치, 인물의 동선과 재배치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만들었을 텐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궁금하다. 하나의 가설을 만든다면 그건 이 영화가 스크린 위의 물리적 현실을 재현하려는 노력 대신 근사한 전시적 이미지에 봉사하는 기능적 숏들만으로도 서사가 완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이함의 소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가 현실을 방패 삼아 현실의 정반대 면을 재현한 가상의 판타지라서가 아니라 정의감의 충족이라는 서사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더라도 의당 심혈을 기울였어야 할 현실의 물리적 단면들의 재현과 복원에 관습적으로 임했기 때문일 것이다. 판타지에도 현재 우리의 삶의 모습이 투영되고 미래의 우리 모습이 어른거린다면 영화 속 이미지들은 우리를 소름 돋게 만들 수 있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이미지의 응결점이 생길 지점이 없다. 예를 들면 필리핀에서 진현필과 김재명이 담판을 지을 때, 경찰과 악당이 대결한다는 긴장감은 서사가 그때까지 감추고 있던 정보를 폭발적으로 풀어놓는 속도감 속에서 소모된다. 여기서 이 두 인물은 그 자체의 존재감으로 화면에 버티는 게 아니라 반전의 도구로서 소용된다. 캐릭터는 남아 있지 않고 이병헌, 강동원의 물리적 인상만으로 버티면서 서사를 다음 단계로 넘기는 데 급급하다. 숏이 정보의 기능적 전달을 넘어 내러티브의 진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어떤 잉여의 것들을 창조할 때 우리가 그것을 영화적 이미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영화에는 단 한순간도 잉여의 창조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게 발생하지 않는 이미지라면 예쁜 관광엽서의 소모성 이미지와 다를 게 없다. 같은 배우를 계속 언급해서 미안하지만 <마스터>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강동원은 그 직전에 개봉했던 영화 <가려진 시간>에서도 비슷한 패턴으로 소모된다. 두개의 시공간이 있고 그중 하나의 멈춰진 시공간에 존재하는 소년이자 어른의 육체를 지닌 주인공으로 나오는 강동원의 이미지는 서사적으로 논리적 결함투성이인 플롯과는 별개로 어린아이들이 처한 고립의 절망감을 자기도취적으로 동어반복해 소비하는 곤란함에 봉착한다.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강동원의 존재감은 사슴처럼 맑은 눈망울로 뭔가를 호소하는 익숙한 이미지로 되풀이되지만 여기서는 아예 비현실의 공간에 처한 인물이라는 설정 때문에 위치와 동선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어떤 시도도 불가능한 모순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강동원은 서사적 결함에 덧입혀 자꾸 화면 속에서 겉도는 느낌을 주게 되고 세월호의 비극을 의식하며 이야기를 구상했다는 감독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비극을 배우의 육체에 기대어 소비적인 페티시즘으로 낭비하고 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이미지의 생존력이 살아 있는 영화를 기대하며 이제 좀 다른 차원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줬던 한편의 영화를 더 언급해보려 한다.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는 주제의식과 접근방법 모두 선의를 갖고 있고 매우 꼼꼼하게 재현된 화면 역시 수준급 연출력을 증명하지만 이상하게도 영화가 끝난 후 뭔가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준다. 나는 이게 일정하게 스릴러 장르 문법을 따르며 몇개의 맥거핀을 던진 후 살짝 방향을 비틀어 서사에 윤곽을 주는 이 영화의 전개 방식 때문이 아니라 인물 클로즈업과 사운드에 대한 약간 지나친 의존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 영화는 보모와 아기가 함께 실종되었다고 믿었다가 보모가 아기를 납치했다는 걸 알게 된 주인공 이지선(엄지원)이 결국 중국인이었던 보모가 왜 아기를 납치했는지 그 전모를 알고 공감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이분해서 나눌 수 없는, 두 여자주인공의 위치는 서사의 전개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데 주인공 이지선과 보모 김연(공효진)은 서로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 아기를 잃어버린 이지선의 행방을 따라 반쯤 정신을 잃고 경찰과 별개로 탐문에 나서는 이지선은 숱한 위협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를 대하는 주변의 시선은 어느 쪽에서도 우호적이지 않다. 직장 상사, 경찰, 이혼한 전남편, 시어머니, 브로커, 심지어 보이스 피싱 전화 너머의 미지의 남자에 이르기까지 이지선이 접하는 인물들은 그를 위협하거나 불신하거나 적대시 한다. 영화는 부분적으로 그가 느끼는 고립감과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재현하는데 이를테면 그가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 골목을 심야에 탐문한다거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거리 복판에서 미친 여자 취급을 당하며 아기를 찾기 위해 달리거나, 보모가 살던 시골집을 탐문하며 낯선 집의 대문을 들어설 때와 같은 장면에서 화면들은 그의 실제 존재와는 별개로 무능력하고 약간 이상하고 무모하고 믿을 수 없고 연약한 여자로 정의되는 상황들을 시각적으로 잘 재현한다. 불가피하게 영화는 이지선의 내면을 관객에게 이입시키기 위해 허다한 근접 화면을 사용하는데 이는 영화의 중· 후반 이후 과거 회상 장면으로 사연의 전모가 밝혀지는 보모 김연을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가 주력해서 사용하는 또 하나의 장치는 정확하게 발음되지 않는 보모 김연의 목소리다. 김연은 한국말을 잘 쓰지 못하지만 아기를 달래기 위해 중국어 자장가를 부르는데 그 어조 덕분에 아기들이 그의 목소리에 잘 반응한다. 김연이 자장가를 부르는 몇개의 장면 외에 김연의 과거를 보여주는 몇몇 장면에서 김연이 통곡을 할 때 그의 울음소리가 화면에 계속 이어지면 현재 장면에서의 이지선이 마치 그 목소리를 듣는 듯 연결되는 장면들이 영화에는 꽤 나온다. 김연의 자장가 소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김연이 물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죽음을 택할 때 한국어로 바뀌어 화면에 깔린다. 이것을 누가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소리는 영화 내내 주조음으로 깔려 있던 것이고 그것이 일종의 배음 효과를 가졌더라면 이 마지막 장면에서 한국어로 들리는 자장가 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화음 못지않게 관객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두 엄마, 이지선과 김연이 아직 살아 있는 아기 다연의 목숨을 놓고 대립할 때 번갈아 오가는 그들의 클로즈업을 통해 배음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인상을 관객에게 주고 싶었다면 그전에 매 장면에 수시로 끼어드는 클로즈업들은 좀더 자제됐어야 했다고 본다. 나는 뛰어난 감독들은 무성영화와 경쟁한다고 믿는 구식 평론가일지도 모르지만, 21세기의 영화 역시 근본적으로는 무성영화적 속성을 지녀야 한다고, 그래야 이미지의 생존력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영화들은 너무 많은 근접 이미지, 너무 많은 사운드로 화면의 전체 긴장을 해하며 결과적으로 영화의 강력한 표현 도구인 근접 이미지를 무의미하게 낭비하고 있다. 이것이 당장에는 스타 이미지의 소비를 통한 흥행 제고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머지않은 기간에 이미지의 상투형이라는 동굴에 갇혀 흥행 제고에도 감점 요인이 될지 모른다. 무엇보다 낭비되지 않는 이미지, 정확한 순서에 정확한 크기로 배치되는 이미지, 전체의 아우라를 잘 보존해서 현실적 환기력을 꾀하려는 이미지, 그런 창조의 결과물들을 한국영화에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