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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종합선물세트 [11] - 일본 소설 ②

여성작가들의 힘 <호텔선인장> <공주님> <냉정과 열정 사이>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의외로 여성작가들을 찾기 힘들다. 남성작가들의 소설 위주로 번역이 된 것인지 실제로 여성작가들의 활동이 미비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나마 알려진 여성작가들이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야마다 에이미로 이른바 여자 하루키 3인방이다. 이들의 소설은 말랑하고 가볍고 감상적이다(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여자 하루키로 불린다는 것은 하루키의 강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건 아닐까). 소설이라기보다는 한권의 순정만화를 읽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특히 에쿠니 가오리가 쓰지 히토나리와 함께 쓴 <냉정과 열정 사이>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실연당한 사람들에게는 경전 같은 소설이다. 밀란 쿤데라가 소설 <향수>에서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소설은 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네가(동시에 내가) 어찌하고 있는지’를 거울처럼 보여준다.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게 된 연인의 헤어진 이후를 각각의 입장에서 서술한 내용이다. 읽는 동안은 살을 에이는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마음이 아린데 읽고 나면 실연의 고통도 사실은 판타지구나 깨닫게 해주는 것이 이 소설의 미덕이다. 그와 내가 맺고 있던 관계가 깨져서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프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아픔을 가져온 전후사정과 잘잘못 따위를 잊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관계의 쓸쓸함은 에쿠니 가오리의 최신작인 <호텔선인장>에서도 읽을 수 있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볼 수 있는 이 소설은 ‘호텔선인장’이라는 이름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오이와 숫자 2와 모자가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줄거리의 전부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느끼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설레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 감정들이 본질을 변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야마다 에이미는 단편집 <공주님>에서 실연 대신 연애를 통해 관계의 불안정함을 묘사한다. 5편의 연애소설이 수록된 <공주님>에서 연애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그 사랑에 도취되어 있는 순간이 아니라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죽음을 감추고 있는 여자는 남자에게 버림받지 않는다’(체온재기)라는 문장은 연애나 사랑은 상대에 대한 불안이 팽팽하게 이어져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파 같지만 수긍이 간다. 일본 여성작가들의 연애소설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유미리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유미리의 소설은 이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주제도 소재도 쓰는 방식도 다르다. 동포 2세인 그녀를 일본 작가의 범주에 넣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소설이 일본사회와 충돌하고 교류하여 형성된 정서적 기반을 근간으로 씌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본 소설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 소설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가족에 대한 강박, 민족적인 정체성이 끝없이 노출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러한 강박도 그녀에게 아쿠카타와상을 안겨준 <가족 시네마>처럼 비교적 초기작에서만 엿볼 수 있다. 이후에 보여지는 그녀의 소설인 일본사회 자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렇더라도 다른 여성작가들과 주제의식이 많이 다르다는 점은 변함없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성공을 거둔 바 있는 <철도원>과 <러브레터>(영화 <파이란>의 원작 소설)의 작가 아사다 지로도 폭넓게 사랑받는 작가 가운데 하나다.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이 몰락하는 바람에 야쿠자 생활까지 해봤다는 그의 밑바닥 체험이 녹아 있는 소설은 읽기 쉽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는 가족이 해체되고 파편처럼 남은 개인들이 홀로 살아가는 풍경을 자주 쓰는데 우울하고 쓸쓸하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을 보면 본성이 착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장편보다는 단편이 훨씬 매력적인 작가다. 최근에 나온 아사다의 소설은 주로 장편이다. 단편으로는 <장미도둑>이 있지만 <낯선 아내에게>를 더 권하고 싶다.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가 없다고는 하지만 대중적인 감수성의 글로 시작했다가 어느 정도 인기를 모으고 나면 좀더 문학적인 수사법을 구사하려는 태도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연스러운 전환이 아니라 의도적인 전환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법이다. <장미도둑>은 조금 더 문학적일지는 몰라도 ‘아사다’스럽기는 덜하다. 대중소설의 경쾌발랄함 <파크 라이프><플라나리아> 소설이 농담처럼 가벼워지는 건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비슷한 추세다. 경쾌발랄함은 솔직히 일본 소설이 한수 위다.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에 대한 적서 차별이 없는 탓인지 그들의 대중소설에는 콤플렉스가 없다. 특히 재미있는 건 나오키문학상 수상작들이다. 이것저것 고민하지 않고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면 일단 나오키문학상 수상작부터 고르면 된다. 아쿠카타와상이 순수소설에 주어지는 문학상이고 나오키상은 대중소설에 주어지는 상이라는데 그 선정 기준이 유머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한·일 합작영화로도 제작된(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는 스스로를 코리언재패니즈라고 부르는 재일동포 가네시로 가즈키가 썼다. 조총련계 초·중학교를 다니며 느낀 일본사회의 차별을 딴청부리듯 경쾌한 문체로 그려냈다. 외형적으로 연애소설을 표방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연애는 단순히 남녀의 교감의 문제가 아니라(그건 문제될 것도 없다. 이 소설에서 남녀로서의 두 존재는 갈등의 여지가 없다. 그야말로 한눈에 반해, 딱딱 들어맞은 그들은, 성별 존재로서는 전혀 갈등하고 있지 않다) 다분히 언제가 그 기원인지 알 수도 없는 국적으로 이질화된 타자들간의 문제로 나타난다. 이 문제 앞에서 작가는 역사와 상황 속에서 개인은 떠돌아다니는 부초라고 말한다. 즉 개인은 민족이나 국가 인종에 매이지 않는 고유의 개체라는 뜻이다. 물론 부초라는 표현에는 뿌리내리지 못한 이의 서글픔도 어쩔 수 없이 묻어난다. 가볍지만 경박하지는 않은 것 또한 이 소설의 미덕이다. 비극이 정점에 달하면 유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정체성 혼란의 상황을 농담으로 풀어내기까지 작가가 거쳐간 심적 고통이 소설의 문체처럼 발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또 다른 소설인 <레볼루션 No3.>도 재미는 있지만 만한 깊이는 없어서 아쉽다. 역시 나오키문학상 수상작인 야마모토 후미오의 <플라나리아>도 재미를 전면으로 내세운 소설이다. 농담의 기저가 비극에 있다는 앞서의 명제는 이 소설에서도 유효하다. 재미있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인생의 낙오자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그러고보니 학창 시절에 반에서 제일 웃기는, 자처한 개그맨들은 모두 반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이었다. 슬픔과 웃음은 일종의 샴쌍둥이 같은 것일까. 물론 일본의 젊은 소설이 모두 경쾌발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02년 아쿠타카와상을 받은 요시다 슈이치의 <파크 라이프>는 현대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전철을 타고 회사와 집을 오가며 가끔 회사 근처 공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남자의 일상과 그 남자 주위 사람들의 가벼운 에피소드가 소설의 전부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는 소설인데 한순간 아찔해진다. 끝없이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지만 화자는 누구와도 관계맺지 않는다. 의도한 것도 아니고,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가 숙명처럼 몸에 배었을 뿐이다. 주인공을 비롯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삶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 맞은편 창 어둠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느닷없이 조우했을 때처럼 낯선 동시에 익숙하다. 내 삶이 어떠하다고 말해주지 않으면서 어떠하다고 직시하게 만들어주는, 질투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아쿠카타와상과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신인작가에게 준다는 야먀모토 슈고로상도 수상했다. 우리의 문학적 풍경 속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실 경쾌발랄하고 당당한 일본의 ‘대중소설'을 읽다보면 가끔 헷갈린다. 그들의 대중소설에서는 배다른 오빠가 조폭이어서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리는 일도 드물지만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가 대중적인 상을 받았다고 해서 경원하는 일도 없다. 이른바 대중과 순수가 경계도 모호하지만 서로 배타적이지도 않고 넘나듦도 자유로워 보인다. 우리 문학에서도 그런 게 가능할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추석 종합선물세트 [1] - 추석 영화 ①

달력 보셨어요? 서늘한 바람이 불어서 벌써 9월인가 했더니, 추석도 유난히 빠릅니다. 갈 데도 없고 돈도 없다고, 기나긴 연휴에 방바닥 긁는 계획밖에 없다고 한숨 쉬실 분들을 위해 특별히 종합선물세트를 준비했습니다. 추석 극장가에서 볼 수 있는 영화 가이드, TV와 애니메이션의 DVD 박스 소개, <마징가 Z>를 비롯해 복간된 추억의 만화들, 그리고 재즈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들과 그 음반 올 가이드, 마지막으로 연휴기간 동안의 TV프로그램도 모두 모았습니다. 아니, 보너스를 받으셨다구요? 좋아하던 TV시리즈의 DVD 박스를 사는 건 어떠세요? 해외여행을 가신다구요? 일본 소설책 한권 들고 떠나세요! <씨네21> 한권이면 추석 2주, 남부럽지 않게 보낼 수 있습니다. 친구에게도 ‘강추’해주세요. 일가친척이 모여서도 가고, 친구를 만나서도 가고, 애인을 만나서도 가고. 기나긴 연휴동안, 극장은 한번 이상 발을 디디게 되는 주요 만남의 장소 중 한 곳이다. 해마다 유난히 한국영화가 강세를 보이는 추석기간동안 볼만한 영화21편을 한데 모았다. 드 라 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김기덕의 아홉 번째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전에 없는 방식으로 풍경의 심도를 구축한다. 물 위에 떠 있는 암자는 고립된 세상을 주공간으로 삼던 김기덕식 로케이션의 결과이지만, 언제나 ‘자연의 반대명제’로 이미지를 주조하던 방식은 이제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을 담고자 하는 ‘먼’ 시선을 포함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의 한가운데에 떠 있듯 자리잡은 조그마한 암자. 그곳에 노승과 동자승이 살고 있다. 여기서 인생은 계절의 흐름으로 압축된다. 봄, 미물을 장난감 삼아 놀이한 동자승에게 노승은 호통을 친다. 여름, 청년이 된 동자승은 병을 고치기 위해 암자를 찾은 여고생과 사랑에 빠져 암자를 떠나 속세로 빠져든다. 가을, 살인을 저지르고 다시 암자를 찾은 청년은 노승의 가르침으로 번뇌를 씻고 감옥으로 향한다. 겨울, 죗값을 치르고 중년이 되어 다시 찾은 절, 산을 오르는 고행으로 깨달음을 갈구한다. 그리고 다시 봄. <바람난 가족> <바람난 가족>은 대한민국 남성들의, 혹은 감독 스스로의 ‘고해성사’ 같은 영화다. 사회적 우위를 계승받아 고의적이든 고의적이지 않든 폭력의 역사에 동참했던 ‘미성숙’의 남자들이, 길게는 60년 짧게는 30년을 참고 살아온 ‘성숙한’ 여자들에게 바치는 반성문인 것이다. 하여 이 영화 속 남자들은 등장부터 구덩이에 빠지거나, 무력하게 자기 뒤도 못 닦고 손발이 묶여진 채 마지막 기운을 뿜어대다가 걸레질로 ‘아웃’당한다. 입양한 아들 수인과 나름대로 정의로운 변호사 남편, 까탈스러운 시어머니와 병상에 누운 시아버지를 둔 가정주부 호정. 얼핏 평범해 보이는 집안이지만, 남편 영작은 젊은 애인 연과의 섹스에 탐닉해 있고, 시어머니는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이 나서 “생전처음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고백하며, 호정 역시 옆집 고등학생 지운과 심심풀이 ‘찐한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차 안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던 영작의 차가 술취한 우체부 지루의 오토바이를 들이받으면서 이 가족은 아슬아슬한 균열을 넘어 붕괴의 순간을 맞는다. <스위밍 풀> 베스트셀러 범죄소설 ‘도웰 시리즈’의 작가 사라는 점차 젊고 유능한 작가들에게 밀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연인관계에 있는 출판사 사장인 존은 사라에게 자신의 프랑스 별장에서 휴식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길 권한다. 전원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푹 빠진 사라에겐 새로운 창작의 기운이 솟는 듯하지만 존의 딸 줄리가 별장에 찾아오면서 그 평화는 단숨에 깨진다. <케이펙스> 맨해튼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벌쩡해 보이는 사내 '프롯'이 이송된다. 스스로를 '케이-펙스'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이 지적이고 확신에 찬 환자는 이내 다른 환자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게 되고, 애초 그를 치료받을 환자로만 여기던 정신과 의사 마크 파웰마저도 그의 주장이 과학적 사실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알자 혼란스러워진다. 코 미 디 <오! 브라더스> 가족을 소재로 하고 또 그것이 주제의 위치에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결론이기도 한, 가족을 하나의 매직 워드로 사용하는 본격 가족(주의)영화. 불륜 커플들의 사진을 찍으며 생계를 꾸려가는 흥신소 직원 오상우는 거의 연을 끊고 살던 아버지의 부음과 함께 그 빚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접한다. 때마침 악질 경찰인 정 반장의 뒷돈 독촉으로 궁색해진 상우는 조로증으로 특수학교에 있다는 또 다른 상속인이자 이복동생인 봉구를 찾아나선다. 마치 <레옹>에서 마틸다에게서 어린아이와 연인의 두 얼굴을 한꺼번에 집어넣어 중의적이고 복합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냈듯이 <오! 브라더스>는 <하면 된다>의 그로테스크한 캐릭터의 얼굴을 한 열두살짜리 소년을 통해 그렇게 한다. <불어라 봄바람> 장항준 감독의 <라이터를 켜라>에서 ‘어리버리’의 진가를 보여준 김승우는 감독과의 호흡을 연장하여 ‘좀팽이’로 확실하게 거듭난다. 전자는 어리석고 후자는 약았지만, 김승우의 탁월한 만화적 표정과 제스처 덕에 두 캐릭터는 장항준표 코믹 페르소나의 동일성을 획득한다. <가문의 영광>에서 내숭과 엽기를 오가던 김정은은 이번엔 사투리 대신 비속어를 ‘열라’ 남발하며 ‘졸라’ 단순발랄한 삼류인생을 여전히 사랑스럽게 연기해낸다. 돈 좀 아끼겠다고 별 치사한 짓 다하는 좀팽이 소설가 선국의 집에 다방레지 화정이 세들어온다. 방만하고 시끄러운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은 원고 독촉에 시달리는 선국의 화만 돋울 뿐이다. 그러던 중 선국은 문하생이 정리한 화정의 이야기를 자기 소설에 도용하기 시작한다. 이를 숨기려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선국은 조금씩 화정의 순수함에 마음을 열게 되고 화정도 선국에게 끌린다. 하지만 사실을 알게 된 화정이 결국 떠나자, 선국은 뒤늦게 사랑을 깨닫는다. <위험한 사돈> 노익장을 과시하는 스파이와 겁쟁이 사돈의 좌충우돌 활약상. CIA 비밀요원 스티브는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상견례 자리에서 만난 사돈 제리에게 복사기 세일즈맨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미모의 여인과의 수상한 접선 현장을 들켜 제리로부터 매춘 알선업자라는 오해를 산다. 핵 잠수함 밀매 사건을 조사 중인 스티브는 프랑스로 거래인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사돈 제리를 동행하는데, 소심한 제리는 의외의 활약을 펼친다. <조폭마누라2: 돌아온 전설> <조폭마누라2>는 기억을 잃어버린 은진이 순진한 동네 사람들과 ‘의리’를 다지는 이야기다. 타고난 재능으로 조폭들을 평정했던 은진은, 자신의 힘을 알지도 쓰지도 못한 채 중국집 배달부로 일한다. 재철을 비롯한 많은 남자들이 은진에게 접근을 하면서 자잘한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 사건들은 오로지 ‘개그’ 일색이다. 가위파의 두목 차은진은 다른 조직과의 싸움 도중 빌딩 옥상에서 떨어진다. 주변을 지나가던 중국집 주방장 재철은 정신을 잃은 은진을 발견하여 집으로 데리고 간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은진은 재철의 중국집에서 배달을 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2년 뒤, 재철의 가게가 있는 거리의 재개발 사업이 시작된다. 은진의 라이벌이었던 백상어가 재개발 이권을 노리고 왔다가, 기억을 잃은 은진을 보게 된다.

<스캔들>의 세 배우 [3] - 배용준

경력 10년차가 어디서나 대접받는 건 아니다. 대접을 받는다 해도, 경력 10년차가 늘 당당하지만은 않다. 영화 <스캔들…>의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에 응하는 배용준의 태도가 뜻밖에도 그랬다. 한마디 말을 하더라도 그는 언제든 뒤로 빠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방송경력 10년의 연기자에게, 혹은 그 10년 동안 스타의 고도를 변함없이 유지해왔던 프로페셔널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수세였다.“‘1+1=2’처럼 수학적 연기를 계속 하다가 연기 자체가 감정의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거 같아요. 하지만 아직은 걸음마하는 수준인데요, 뭐. 기어다니는 정도죠.” 그에게는 <스캔들…>의 선택이 매체를 달리하는 것 이상의 의미였던 것 같다. 스크린의 은막을 두르고 한번도 나가본 적 없는 온실 밖으로 나서는 순간 맞아야 될 찬 바람은, 이전과 다른 연기의 영역이라는. “영화가 훨씬 여유있어요. TV가 좀더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순발력을 요하는 매체라면, 영화는 핸드메이드 같은 거죠. 저는 이전보다도 더 게을러졌어요.” 언뜻 이해되지 않는 이 말은, 테이크를 몇번을 가도 매번 똑같기 쉬운 연기로부터, 그리고 그 연기가 요구하는 반복적인 감정의 훈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의미였다. “지금은 연기에 대해 자신이 없지만 예전에 하던 대로 반복적인 감정을 보여주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잘했다고는 얘기 못하지만, 발전은 있었어요.” 기성복이 어떻게 나올지는 그것을 찍어내는 기계에 달려 있고, 핸드메이드는 꿰매는 사람 마음이다. TV에서의 연기가 언제나 빡빡하고 틀에 박힌 것은 아니었겠지만, 오랫동안 익숙해 있었던 드라마보다 영화에서의 연기가 더 자유로웠더라고 그는 고백하고 있었다. 영화를 하기 전에도 그가 연기에 욕심을 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흡연자인 그는 담배를 끊었다가 피웠다가를 반복해왔다고 했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한두 달 정도 끊었다가 들어가면 다시 피우고 그래요. 일단 작품을 시작하면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어야 되니까. 그렇지만 들어가기 전엔 끊어요. 내 의지를 시험하는 거죠. 드라마 때부터 그렇게 해왔어요.” 이 습관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촬영 전 두달 동안 지속됐고, 자신의 의지를 시험할 만큼의 욕심은 첫 영화의 촬영현장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꼭 한번은 더 갔어요. 모니터 보기도 전에, 감독님이 컷, 하고 외치는 순간 ‘감독님, 딱 한번만 더!’ 그랬죠.” 야외촬영이 대부분 낮신이라 해를 넘기면 찍을 수 없는 현장에서, 게다가 분장이고 조명이고 촬영 준비도 보통보다 까다로웠을 사극 현장에서 그가 부렸던 고집이었다. “내가 몰랐던 표정이 나와요. 나는 그런 표정이 나한테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나오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속성을 끄집어냈다는 거죠. 그런 작업의 묘미를 느끼게 됐어요. 끝나서 아쉽죠. 재밌었어요. 같이 했던 시간들이 기억이 나고 또 같이 했으면 싶고.” 설레는 저 표정이 실은, 드라마와 CF에서 보여줬던 미소와 혼동이 됐었다. 방송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져 자연인 배용준의 삶조차 그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란 짐작도 한두 사람만 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그의 말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예상보다 지나치게 수세적이다 싶었던 이 느낌이 그 사람의 프로페셔널리즘에 속은 결과라 해도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뭐든지 처음은 특별하지 않느냐는 말까지도 저버릴 순 없는 일이니까. “이 작품을 하고 나면 배우로서 난 얻는 게 있다, 분명히 뭔가 얻는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얻었구요. 그런데 뭘 얻었냐고 물어본다면 난 말하기 싫어요. 섣불리 그런 걸 말하기는 싫은 거죠.” 굳이 입을 통해 알아내는 것도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닐 듯싶다. 그가 직접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영리한 상업영화. 좋지 않나요?<오!브라더스> 감독 김용화

장대비가 쏟아지는 토요일 오후. 제작사인 KM컬쳐 사무실에서 스탭들과 농을 주고 받던 김용화(32) 감독은 데뷔작 개봉을 앞두고서 불안에 떠는 신인감독이 아니었다. <오! 브라더스>가 각종 시사회를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상황이 여유를 갖게끔 한 것일까. “에이. 그래도 좋다고 내색할 수 있나요.” 인터뷰에 들어가자 갑자기 진지 모드로 돌변한 그가 웃음기 띤 얼굴로 응대한다.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동생과 빚독촉에 시달리는 파파라치 형이 만나 우여곡절 끝에 ‘믿음’을 회복한다는 내용의 <오! 브라더스>는 ‘영리한’ 상업영화라는 세간의 평가를 업고서 추석 대전에 나설 준비를 마친 상태.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졸업작인 단편 <자반고등어>를 통해 해외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김 감독은 그러나, 인터뷰가 시작되자 작심이라도 한 듯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에 엄정한 평가 기준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보고나면 가슴 찡한 코미디를 하고 싶었다. 코믹한 분위기로 가다가 슬픈 결말로 도식적으로 흘러가는 것말고. 그랬다면 마지막에 우리 영화도 상우랑 봉구랑 껴안고 울어야지. 물론 촬영 때 찍긴 했다. <파이란>의 강재처럼 이정재씨가 눈물, 콧물 다 흘리고 그런 장면도 있긴 했는데 그러고보니까 좀 당황스럽더라. 이거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슬픔과 기쁨은 다른 감정이라기보다 하나의 감정이라고 본다. 그런 전제 아래서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했다. 다들 그러잖나. 코미디의 정수는 페이소스라고. 그러려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놈이 등장해야 하는 거고, 그런 놈이 굉장히 큰 아이러니한 병을 갖고 있어야 하는 거고, 정작 등장인물은 웃고 있고 관객도 저러면 안 되는데, 저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따라 웃는 상황들이 이어지길 바랐다. 한국판 <레인맨>이라고도 알려졌는데. 참고는 했다. 그 밖에도 <잭> <빅> <내 사랑 컬리수>도 정서적으로 참조했다. <아홉살 인생>이라는 책도 자료로 삼았고. 인물들은 직접 경험한 이들을 극화시킨 경우다. 정 반장은 내가 잘 아는 형사를 좀 부풀렸고, 상우는 나랑 비슷하고 봉구는 내 어렸을 적이랑 비슷하고. 이걸 어떻게 컴바인을 잘해야 하나, 그걸 끊임없이 고민했다. 주변 캐릭터까지도 취재를 바탕으로 인물을 만들어냈다고 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있다면. 사설 흥신소 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사무실은 1평도 채 안 되는 곳이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벽에 걸려 있는 엉성한 액자였다. 자신에 관한 조그만 기사가 실렸던 모양인데 그걸 달아놨더라. 자리에 앉았는데 커피도 내오고 영화에 도움을 주겠다면서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데 너무 웃겨서 정신없이 웃었더니 이 사람이 갑자기 건방을 떨기 시작한 거다. ‘헛 가오’도 좀 있는 사람인데, 겁을 주려고 했는지 내가 별의별 놈을 다 잡았어라고 갑자기 반말을 하면서 포크레인 이야길 꺼내는 거다. 시체를 묻을 때 3m는 땅을 파야 파리가 안 꼬인다는 영화 속 대사는 실제 그분이 했던 말이다. 극중 박영규씨가 연기했던 캐릭터뿐만 아니라 자기애가 강한 그분의 성향이 전체 영화의 캐릭터에 녹아들어갔을 거다. 코언 형제의 영화에 보면 자주 나오는 캐릭터들인데, 예를 들면 나름대로는 주도면밀하고 꼼꼼한데 어벙하게 취급받는 이들을 보면 애정이 간다. 시나리오와 비교하면 코믹한 부분이 좀 늘어났다. 원래 시나리오는 휴먼드라마 분량이 좀 많다. 코믹은 터치 정도였는데 영화는 코미디가 좀 세졌다. 반대로 드라마는 약해졌을 수 있다. 톤 조절에서도 좀더 자연스러운 결말, 자연스러운 감동을 주고 싶었는데 편집과정에서 드라마가 거세되고 디테일들이 빠지다보니 정서보다는 사건만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 컨셉영화인데도 불구하고 A편집본이 무려 3시간 분량이었다고 들었다. 실수한 거다. (웃음) 현장에서 재밌으면 무조건 하라고 했으니까. 이 영화를 두고 인공적인 장치들이 눈에 거슬린다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은데, 사실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간 부분들이 대부분 작위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을 상쇄할 수 있는 것들이다. 상우의 개인사라든지 상우와 봉구의 관계 변화를 표현하는 정서장면이라든지 관계가 좋아지는 시점에서도 상우가 봉구에게 아버지에 관한 한 용납할 수 없다든지 하는 장면들이 빠졌다. 그래서 상우가 나중에 되찾게 되는 가치들을 조금 쉽게 얻는 것 아닌가 할 수도 있고. 일반 시사에 가봤나. 애초 의도와 반응이 엇갈리는 경험을 했을 텐데. 예를 들어 웃음이 터져나오는 지점이라든지. 안 빠지고 다 갔다. (웃음) 사족 같지만, 털어놓자면 후반작업하면서 음악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나중에 방준석 음악감독까지 가세해서 트윈으로 일주일 동안 새로 작업했다. 그래서 프린트 버전이 3개인데 쓰이는 음악도 다 다르고, 인아웃 지점도 모두 다르다. 기술시사 하는 날이었을 거다. 모니터를 위해 일반 관객 50명을 불렀는데, 마지막에 상우가 봉구에게 아버지의 유언을 묻는 장면이 있다. “이게 마지막이야” 하고 물으니까 봉구가 “응” 하는데 거기서 막 웃더라. 조소는 아니었겠지 하는데도 가슴이 철렁해졌다. 애 같은 봉구의 반응에 이입돼서 웃는 건데, 애초 신의 목적과 반대니까. 그래서 뒤로 밀어놨던 음악을 다 당겨오고 그랬다. 그 다음 시사 때는 웃음이 잦아지더라. 아, 음악을 몇 콤마만 달리 써도 저러는구나 싶었다. 또 하나는 도입부 문제인데. 영화에서 가장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초반 10분이다. 보면서 맘속으로 관객이여 조금만 견뎌달라고 애원했다. 관객이란 게 시작은 관대하고 엔딩은 박한 면이 있지만, 막상 옆에 앉아서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더라. 이정재, 이범수 두 배우에게 요구한 것이 있다면. (상우 역의) 정재씨가 전체를 끌고가야 한다면 (봉구 역의) 범수 형은 각각의 신에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봉구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매력이 크기 때문에 그걸 잘 드러내줄 수 있다면 그렇게 갔다. 범수 형이 워낙 아이디어가 많아서 별 어려움이 없었고. 리허설을 하면 할수록 좋은 걸 건질 수 있는 스타일이라 더 그랬다. 일례로 정 반장이 봉구에게 불교 이야기를 들며 이죽거리는 상황에서 봉구가 “나 하나님 믿는데요” 하고 돌아서는 것까지가 원 상황이었는데 몇번의 리허설 끝에 범수 형이 대사 치고난 뒤 곧바로 “예쑤 이름으로∼”라고 흥얼거리며 애드리브를 치더라. 그거 보고서 곧바로 카메라 돌리자고 했다. 정재씨는 스타일 자체가 범수 형하고는 좀 다르다. 리허설 할수록 첫 느낌보다 안 좋아진다. 대신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진실로 믿고서 내놓는 즉발적인 감정은 무척 뛰어나다. 현장에서 ‘슛’ 부르기 직전까지도 리허설에 공을 들였다. 연기 디렉션에서 리허설 덕을 좀 봤나. 책에선 1분 정도의 장면이면, 1시간의 리허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도 짧다.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수십만 가지다. 현장에서 직관으로 판단하려면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해야 한다. 이번 영화에선 촬영 전에 그리고 촬영 도중에도 끊임없이 리허설을 했다. 그게 없었다면, 범수 형이 애드리브를 쉽게 꺼내놓을 순 없었을 거다. 예를 들어 대사 아래 서브텍스트로 인물의 심리를 적어놓았는데, 리허설 하다보면 배우가 생각하는 해석이 있고, 그게 원래 것보다 좋은 경우가 있다. 그런 건 다 적어놨다가 현장에 가서 말해준다. 정작 현장 가면 배우들은 감독의 의도대로 따라오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말해주면 연기가 좀더 윤택해진다. 대사 입에 붙으라고 하는 리허설이 아니다. 리허설은 내겐 즉효약처럼 꺼내먹을 수 있는 일종의 알사탕들을 확보하는 시간이다. 현장에서 스스로 실연을 여러 번 하기도 했는데. 좋은 배우, 좋은 연기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코언 영화의 배우들을 보면 양식적인 연기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모건 프리먼이나 알 파치노 같은 경우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공기를 몸으로 진심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하고 꼼꼼한 리액션이 돋보이는 배우들의 연기를 즐겨 본다. 정 반장이라는 캐릭터는 이질적이다. 애초에는 정 반장을 통해 다른 코믹한 관계들을 좀더 긴장감 있게 끌고 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레옹>의 게리 올드먼 같은 캐릭턴데. 그렇게 센 캐릭터가 좋다. 정 반장은 파편적이고 히스테리컬한 친구인데 뭘 원하는 건지 파악이 잘 안 되는 인물이다. 처음에 상우와 만나는 장면에선 형, 동생하는 사인가, 아니면 친군가 뭐 그렇게 헷갈려 하다가 아, 저 새끼가 저런 농담할 땐 웃으면 큰일나겠구나 하는 분위기로 몰고 가려고 했다. 근데 그게 너무 많이 들어내서 듬성듬성 드러나니까 캐릭터의 뾰족한 모서리만 두드러진 것 같다. ‘쎈’ 캐릭터, ‘쎈’ 영화를 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지. 전체 드라마나 캐릭터가 굉장히 강한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영화다. <트루 로맨스>가 그렇다. 이번 영화에선 너무 순화시켜서 간 것 아닌가 싶기도 해서 좀 아쉽다. 감정의 파고가 다이내믹하고 크되 그걸 관객이 놓치지 않고 흡수하는 웰 메이드 영화를 하고 싶다. 입은 웃지만,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그런 영화도 해보고 싶고. 다음 프로젝트는 뭔가. 평소 하고 싶다던 스릴러인가. 감독은 일종의 벤처다.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아나. (웃음) 데뷔가 제 스스로 빵점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자신있는 척하는 거지, 뭐. 전에 써놨던 <오르페우스>는 하고 싶은데 잘 모르곘다.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가 여자들을 살해한다는 줄거린데, 거칠지만 원초적인 끌림이 있다. 재기발랄하고 톡톡 튀고 유머 많은 뮤지션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제리 맥과이어>류의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유의 영화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 인물, 상황을 만들 자신도 없고, 배포도 없다. 오히려 많이 본 듯한데 전혀 새로운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명 제작사의 이유있는 흥행

현재 문광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영화사가 1천여개를 넘는다고 한다. 이름만 걸쳐놓은 영화사가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인가보다. 하지만 1년에 제작되는 60편 내외의 작품 수를 생각하면 이 많은 영화사의 숫자는 허수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영화의 8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공식 회원사는 40여개 안팎에 불과하다. 이중에서도 9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발전에 중요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되는 작품을 제작한 영화사를 꼽으라면, 열 손가락으로 셈을 해야 될지 모른다. 그만큼 좋은 영화 한편 혹은 흥행영화 한편을 만든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바람난 가족>의 성공이 남다른 이유와 가슴 뿌듯한 감동을 가져다주는 것은 한국 영화계의 자랑거리인 ‘명필름’이 뒤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난 가족>이 제작되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많은 얘기들을 주위에서 들었다. 흔히 영화인들의 술자리에서 오고가는 작품에 대한 뒷얘기들은 일상의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바람난 가족>의 경우는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둘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나 이은 감독을 만나서 직접 얘기를 들은 바는 없다. 다만 나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이유들이다. 제작 초기에 김혜수 캐스팅을 둘러싼 해프닝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제작자에게 엄청난 타격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웬만한 내공이 없는 제작자라면, 그 작품을 계속 끌어가지 못한다. 나중에 문소리가 캐스팅되었을 때, 그간의 시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가히 짐작된다. 그 이후에 우연히 문소리와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바람난 가족>을 선택한 문소리에게 진심으로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문소리 역시 자신이 이 작품을 선택한 배경에는 임상수 감독과 무엇보다 제작사인 ‘명필름’에 대한 신뢰가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캐스팅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이 작품은 순탄한 제작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프로덕션 내부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외면당했던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명필름’이 제작하고 임상수 감독이 연출하는데 투자자들이 투자를 기피한다는 것은 언뜻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투자 분위기를 생각하면, 별로 이상할 게 없다. 조금이라도 흥행전선에 부담이 있다고 판단하면, 제작자 감독의 크레딧에 관계없이 투자를 꺼린다. 투자의 보증수표라고 여겼던 스타 캐스팅의 조건도 이제는 옛말이 돼버렸다. 오로지 작품 자체가 이른바 상업성이 있어야만 한다. ‘명필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바람난 가족>의 제작을 밀어붙였다. 뒤에 영진위 관계자로부터 얘기를 들은 바, 이 작품 때문에 ‘명필름’에서 10억원의 대출을 받아갔다고 했다. 2년 안에 갚아야 되는 대출금으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자칫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일 수 있다. 제작자의 자기확신과 책임감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제작방식이라고 생각된다. ‘명필름’이 개봉을 얼마 앞두고 인터넷 펀딩을 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지나친 마케팅 전략이라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이 작품에 대한 자기확신과 책임을 전제한 마케팅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에 따라 회사가 엄청난 곤경에 처할 수도 있는 제작방식과 마케팅은 누구라도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이것은 ‘명필름’만의 내공과 마케팅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며, 결과는 모두에게 성공적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흥행의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쉬운 일이다. 이는 영화사의 운명과 작품의 운명을 같이한 ‘명필름’의 큰 원칙이 있었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일구어온 전 과정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바람난 가족>의 바람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일전에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 선배를 만난 적이 있다. <살인의 추억>이 성공하기까지 24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앞으로 이런 영화를 만나기 위해 또다시 24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힘들고 두렵다고 했다. 제작자 모두의 자기성취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나는 아직 한참 뒤에 있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앞선 이런 선배들이 있어서 자랑스럽다. 그리고 꿈과 비전을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한편의 영화에 흥행과 생존을 무릅쓰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못내 싫지만, ‘명필름’과 같은 명가(名家)의 제작사가 옆에 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힘이고 보람이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이승재/ LJ필름

야비…냉소…, 배용준 변했다

배용준(30)은 하얀 얼굴과 부드러운 미소 뒤에 단단한 고집을 숨기고 있는 배우다. 그가 텔레비전 연기자 생활 10년 만에 첫 영화로 선택한 작품은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모두들 의외라 했다. 배경이 조선시대인지라 상투 틀고 안경을 벗어야 했는 데다 충무로에 다른 배우의 이름이 공공연히 떠돌던 작품이다. 매니지먼트 회사를 포함해 주변에서 선뜻 찬성하는 이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내가 먼저 시나리오를 찾아 읽고 영화사에 연락”할 정도면 옹골찬 고집 없이는 힘들었을 터. “원래 제가 친구랑 게임을 할 때도 조건을 불리하게 만들기를 좋아해요. 성취욕이 있잖아요. 승부사 같은 기질이랄까.” <스캔들…>은 배용준의 10년 연기인생에서 하나의 ‘승부수’일지 모른다. 꼭 상투 틀고 수염 붙였서만은 아니다. 그가 맡은 역할은 정조시대 희대의 바람둥이 조원. 야심만만한 사촌누이 조씨부인(이미숙)과 내기를 걸고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정절녀 숙부인(전도연)의 유혹에 나선다. 세 인물 가운데 영화 속에서 가장 격렬한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가 조원이다. “너무 부드럽고 착한 말투”라는 말을 몇번씩 들어가면서 그는 느물거림과 야비함, 그러면서 세상사에 냉소적이지만 후반부 비극적 사랑을 하는 조원을 통해 자신에게 숨어있던 팔색의 스펙트럼을 펼쳐보였다. 찍는 과정은 “단 한 장면도 쉽게 찍은 게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상투를 틀고 있으니 피가 안 통해 “생각이 마비될 것 같”았다. “나름대로 준비 많이 했죠. 조선시대 나온 영화부터 생활사 책들까지 다 뒤져보고, 근데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순서대로 찍지도 않고 후시녹음하는 것도 낯설었고….” 배용준은 영화 ‘신인’임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여러 역을 해왔지만 사실 제 이미지는 하나죠. 아마 내 색이 파랑색이라면 이제까진 그 색과 비슷한 색을 덧칠해온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는 아주 다른 원색일 거에요. 앞으론 이렇게 다른 원색을 칠하고 싶어요.” 90년대초 충무로에서 연출부로 시작한 그는 “유학갈 돈을 마련하고 싶어”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전 끼 없어요. 노력이에요. 어렸을 땐 내성적이라 남들 앞에서 노래도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를 사랑하는 팬들에 대한 책임감이 날 이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더라.” “이전엔 남들에게 천상천하 유아독존처럼 보이기도 했죠. 고집세고. 근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없어져요. 어떨 땐 내가 현실과 타협하는 게 아닌가 싶어 씁쓸할 때도 있지만…”이라면서도 그는 이제 “사람들과 깊이 오래가는 관계를 맺고 싶다”고 말했다. “나를 오빠, 아들, 친동생처럼 여기는 팬들”이 바꿔놓은 그의 모습이다. 배용준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반자동 카메라엔 꽤 손길이 닿은 흔적이 보였다. 카메라에 대한 배용준의 생각은 바로 자신의 삶, 자신의 연기에 대한 생각이기도 했다. “디지털은 느낌이 싫어요. 뭔가 공들이지 않은 듯한 느낌이랄까. 디지털은 그냥 공짜잖아요. 마음에 안 들면 지워도 되고. 상이 한번 맺히면 이건 지울 수 없잖아요. 그래서 신중하게 눌러야죠.” 그 신중한 첫번째 선택, <스캔들…>은 내달 2일 개봉한다.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영화제 역대 최대 라인업 발표

시네필들이 고대하던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라인업이 발표됐다. 10월2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이번 부산영화제에선 역대 최대 규모인 60개국 244편의 영화가 선보이며, 어느 해보다 많은 게스트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관심을 모았던 개막작으로는 일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신작 <도플갱어>가, 폐막작으로는 박기형 감독의 <아카시아>가 선정됐다. 각각 “일본 영화계 최고의 감독 기요시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작품”, “호러라는 장르를 경유하지만 가족과 현대적 삶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영화”라는 게 프로그래머들의 선정 이유. 한편, 개막식은 박중훈과 방은진이, 폐막식은 김호정과 황정민이 각각 진행하게 된다. 부산을 찾을 해외 게스트들의 진용 또한 화려하다.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주연 야쿠쇼 고지를 비롯해 부산영화제가 제정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자인 모흐센 마흐말바프, 그리고 그의 딸인 사미라와 하나, 캐나다의 괴짜감독 가이 매딘,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등이 영화제를 빛내줄 인물들. 또 부산프로모션플랜(PPP)에 참여하는 홍콩의 왕가위, 스탠리 콴, 프루트 챈, 인도의 무랄리 나이르 또한 반가운 얼굴들이다. 한편, 올해 부산영화제는 해운대로 메인센터를 옮긴 가운데 치러지는 첫 행사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영화제 사무국과 각종 게스트 서비스가 해운대에 집중되는 가운데, 해운대 메가박스 10개관이 사실상 주상영관 역할을 하게 된다. 또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야외상영도 2년 만에 부활해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돋울 전망이다. 남포동의 부산극장 3개관과 대영시네마 3개관에서도 상당수의 작품이 상영될 계획. 해운대와 남포동의 상영작 비율은 대략 6 대 4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폐막작 예매는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http://www.piff.org)나 부산은행 홈페이지(http://www.pusanbank.co.kr)를 통해 9월18일과 19일 이뤄질 예정이며, 일반 예매는 9월24일부터 폐막일까지 인터넷과 부산 해운대 메가박스,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점, 서울 대한극장, 수원 메가박스, 대구 메가박스에서 이뤄진다.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섹션별 상영작과 각종 행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한국영화회고전은 56쪽 ‘정창화 회고전’ 기사 참조). 아시아영화의 창 젊고 패기 넘치는 감독들의 작품이 상당수를 이룬다. 특히 중국, 일본, 홍콩의 독립영화가 강세를 보인다. 홍콩의 <푸보>(웡칭포, 리컹록), <사랑은 죄가 아냐>(덕 첸), <어둠의 신부>(윌리엄 콕)나 일본의 <후나키를 기다리며>(야마시타 노부히로), 중국의 <아야야>(쿼이지언) 등은 부산을 통해 세계로 발돋움하려는 ‘따끈따끈한’ 작품들. 구로사와 기요시의 <해파리>(밝은 미래),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오후 5시>, 자파르 파나히의 <붉은 황금>,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 나카다 히데오의 <라스트 신> 또한 영화광이라면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물결 아시아의 신예감독 13인이 내놓은 젊은 영화 중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세디그 바르막 감독의 <오사마>. 탈레반 정권 이후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장편 극영화인 이 작품은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자행되는 인도의 현실을 뒤틀어 보여주는 가상드라마 <마트루부미: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땅>(마니쉬 자)이나 싱가포르 청소년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로이스톤 탄), ‘차이밍량의 배우’ 이강생의 감독 데뷔작 <불견>도 관심을 끈다. 허문영 프로그래머가 “한국영화가 배출한 올해의 성과”라고 표현한 홍기선 감독의 <선택> 또한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한국영화 파노라마 올해 이 부문의 특징은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은 작품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점. 충무로 주류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제작방식을 택한 영화들이 해외 관객뿐 아니라 한국 관객의 눈길을 기다린다. 전수일 감독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진아 감독의 <그 집 앞>, 이윤택 감독의 <오구>, 박광수, 박찬욱, 정재은 감독 등이 참여한 인권영화 <여섯개의 시선> 등이 그것. 이외에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살인의 추억> <바람난 가족> 등이 포함돼 있다. 월드 시네마 모두 49편의 다양한 작품들이 상영되는 월드 시네마에서는 유명감독들의 신작이 우선 눈에 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 알렉산드르 소쿠로프의 <아버지와 아들>, 피터 그리너웨이의 <털시 루퍼의 가방>을 비롯해 마이클 윈터보텀의 <인 디스 월드>,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 미카엘 하네케의 <늑대의 시간>, 제임스 아이보리의 <프렌치 아메리칸>, 자크 드와이옹의 <라자>, 누리 빌제 세일란의 <머나먼>, 알랭 기로디의 <용감한 자에게 안식은 없다> 등이 영화광들과의 조우를 고대하고 있다. 만약 내일의 영화를 발견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미국의 광채> <반복되는 나날들> <절망으로 불타는 우리집> <내 이름은 노이> <영 아담> 등에 주목해도 좋다. 와이드 앵글 우선 이란 모슬렘 만수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들만의 영화천국>을 신경써야 한다. 정부의 통제를 피해 영화와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한 가정 안의 은밀한 부분을 파헤친 <프리드먼가 사람들 따라잡기>, 춤추는 젊은이들을 뮤직비디오처럼 담아낸 <가무중국>, 언니 사미라가 <오후 5시>를 위해 캐스팅하는 과정을 담은 마흐말바프 가족의 막내 하나의 <광기의 즐거움>도 관심을 모은다. 김태일 감독의 <나도 노동자이고 싶다>, 최하동하 감독의 <높은 언덕> 등 한국 다큐 6편은 처음 소개되며, <잼 필름스2> <터널> <크래커백> 등의 단편과 <나수: 안달루시아의 여름> <소강로사> 같은 애니메이션도 흥미롭다. 오픈 시네마 대중의 호응이 높을 만한 작품들 위주로 선정했다. 조엘 코언의 신작 <인톨러블 크루얼티>, 유쾌한 정치코미디 <굿바이, 레닌!>, 기타노 다케시의 검객영화 <자토이치>, 타이 전통무술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옹박>,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소녀의 이야기 <웨일 라이더> 등을 놓치지 말 것. 크리틱스 초이스 전찬일, 김영진 등 4인의 평론가가 선정한 이들 영화 중에서는 박경희 감독의 미개봉작 <미소>를 비롯해 홍콩 유릭와이의 <명일천애>, 오스트리아 루트 마더 감독의 <투쟁>, 아이슬란드 브래들리 러스트 그레이 감독의 <솔트>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별기획 프로그램 아톰 에고이얀의 <패밀리 뷰잉>, 드니 아르캉의 <야만적 침략>, 가이 매딘의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등 캐나다 감독들의 작품이 소개되는 ‘캐나다 특별전’, 장위안의 <마마>, 왕샤오솨이의 <극도한랭> 등이 소개되는 ‘중국 독립영화 특별전’, 아프가니스탄과 관련된 영화를 묶어 상영하는 ‘아프가니스탄과 영화’, 뉴 이란 시네마에 영감을 준 이란의 시인 포루흐 파로허저드를 소개하는 ‘파로허저드 특별전’ 등이 준비돼 있다. 부산프로모션플랜(PPP)의 감독들과 영화들한국 감독들 프로젝트 두드러져 올해 PPP의 특징은 한국 감독들의 프로젝트가 18개 중 5개를 차지할 정도로 두드러진다는 사실. 허진호 감독의 <행복>(가제), 전수일 감독의 <어느 한국 사제의 이야기>(가제), 정재은 감독의 <태풍태양>, 김인식 감독의 <러브 바이러스>, 이명세 감독의 <크로싱> 등이 투자자와 배급망을 기다린다. 특히 가족을 북한에서 탈출시키는 한 여성의 이야기인 이명세 감독의 <크로싱>은 <래리 플린트>의 프로듀서였던 재닛 양이 제작을 맡을 예정. 이외에 가장 눈길이 가는 프로젝트는 왕가위의 <피안화>다. 그의 신작은 중국의 컬트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남매의 사랑 이야기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로프트>나 스탠리 콴의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무랄리 나이르의 <버진 카우>, 조앤 첸의 <애첩>, 헬렌 리의 <벤츄라>, 펑하오싱의 <나이키를 기다리며> 역시 국제적인 관심을 모을 프로젝트들이다. 한국 신인감독들을 대상으로 하는 뉴디렉터스 인 포커스(NDIF)에는 박진오 감독의 <죄와 벌>을 비롯한 5편이 출품됐고, 프루트 챈의 <마운틴 블루스> 등 홍콩-아시안필름파이넨싱포럼(HAF)의 프로젝트 5편 또한 부산에서 프리마켓을 열 예정이다. 한편, PPP는 올해부터 해외 세일즈 오피스를 아시아 전역의 영화사로 확대함으로써 향후 본격적인 필름마켓으로의 도약을 준비할 예정이다. 또 부산영상위원회가 주최해온 로케이션 박람회인 BIFCOM과 행사를 함께 열어 영화의 기획, 투자에서부터 로케이션, 후반작업까지를 총괄하는 ‘토털 마켓 플레이스’ 아시아 필름인더스트리센터(AFIC)를 운영하게 된다.

백은하 기자의 즐거운 베니스 다이어리 [3]

8월30일 토요일 __ 오! 오마 샤리프! (담배 아님) <드리머스> -- <토킹 픽처> 각국 기자들이 모여드는 프레스센터 안은 말 그대로 언어의 대격돌장이다. 여기는 이탈리아어가, 저기는 불어가, 러시아어가, 일본어가, 영어가, 스페인어가, 포르투갈어가, 복잡한 전선처럼 얽히고 설켜 있다. 인터넷선을 차지하기 위한 대화에도, “그 영화 어땠어?” 하는 탐색전도 끊임없이 다른 언어들이 교차한 뒤에나 이루어진다. 오늘은 세계화를 반대하는 극공산주의 좌파그룹인 ‘노글로벌’(noglobal)이 팔라초 델 치네마 앞의 연단을 장악하는 ‘파도 점령사건’이 일어났다. 올해의 시위는 평소 때보다 조용히 치러지긴 했지만, 이탈리아 ‘리라’가 사라지고 유로로 통합된 지도 몇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이들의 구호로 막기엔 빠른 속도로 뒤섞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영화제에 출품된 영화의 면면을 보더라도, 특정지역의 이슈를 심도있게 다루는 몇몇 작품을 제외한다면 거의 문화충돌의 산물처럼 보이는 게 대부분이다. 제임스 아이보리의 <프렌치 아메리칸>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드리머스>는 파리의 미국인의 혼란을, <로젠 스트라세>는 뉴욕에 사는 독일계 여인의 숨겨진 역사를, 브루노 뒤몽의 는 황량한 LA사막을 여행하는 프랑스 여자와 미국 남자의 치명적 사랑을, 자크 드와이옹의 <라자>는 모로코 소녀와 프랑스 남자의 왜곡된 커뮤니케이션을, 마이클 윈터보텀의 <코드46>은 이 모든 혼란을 하나의 패스로 단일화시키는 가까운 미래의 러브 스토리를 담는다. 그러나 이 서로 다른 언어를 담아낸 종합선물세트로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토킹픽처>를 따라갈 영화는 없어 보인다. 제목 그대로 ‘말하는 영화’인 <토킹픽처>(Un filme falado/ 베네치아60 경쟁부문/ 감독 마뇰 드 올리비에라/ 출연 레오노르 실베이라)는 뭄바이에서 일하는 남편을 찾아 그리스로, 터키로, 이집트로 향하는 모녀의 여정을 따르는 영화다. 초반엔 마치 역사교육용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여주인공의 직업 역시 역사선생이다), 영화는 그리스 신전의 역사를, 파라오의 비밀을 왜곡없는 숏으로 담아낸다. 물론 이 영화는 꽤나 충격적이고 드라마틱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 “앗, 들켰다 어떡하지.” <연> 시사회장에 이탈리아 배우 스테파노 아코르시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그의 좌석 앞으로는 사인을 받으려는 관객이 몰려들어 상영이 지연될 정도였다. (왼쪽사진)♣ 배우, 감독 등 대부분의 게스트들이 묵는 ‘엑셀시오르’호텔. 할리우드영화를 비롯해 배급력 있는 영화사의 작품들은 여기저기 광고용 스탠드가 서 있다.(오른쪽사진) <이브라힘 아저씨>(Monsieur Ibrahim and the Flowers of Coran/ 비경쟁 부문/ 감독 프랑수아즈 뒤페이옹/ 출연 오마 샤리프, 피에르 볼랭거)는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를 포함해 평생 8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해왔으며 올해 베니스가 황금사자 평생공로상을 바친 오마 샤리프의 최근작이다. 파리의 외곽 식료품가게 주인과 어린 유대인 소년의 우정을 그린 이 영화에서는 한때 뭇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닥터 지바고는 없다. 대신 누런 이빨과 천진한 웃음으로 무장한 백발의 오마 샤리프가 통조림을 건넨다. “5, 6년 만의 영화지만 사실 25년 만에 영화를 찍는 거라 할 수 있다. 나는 프랑스인도, 미국인도, 아랍인도 아니다. 젊었을 때 영화사는 내 정체성에 맞추어서 역할을 조정했지만, 이제 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노인이 되었다. 만약 나이든 프랑스 배우가 필요하다면 굳이 나를 찾을 이유가 없었을 거다. 그러나 이브라힘 아저씨는 정확히 나였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노인인데….” 30여분간의 공식적인 기자회견이 끝나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머리는 중후한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세를 유지하라고 말하지만, 갑자기 다리가 먼저 앞으로 달려가, 손이 먼저 펜을 찾아, 입이 먼저 “사인 부탁합니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이 백발의 아랍배우는 동양 여기자가 건넨 데일리지를 받아 자신의 사진 위에 정성스럽게 사인을 한다. 그리고 도저히 경계의 기운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동그랗고 큰눈을 맞추며 웃어 보인다. 오마 샤리프에게서도 나에게도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 순 없지만, 인생을 바쳐 꾸준히 한길을 걸어간 사람의 위대함은 세월과 함께 구축된다. <자토이치> 감독 기타노 다케시 오락을 아는 사무라이 기자회견이 열리는 날 아침 리도에 당도한 이 ‘베니스의 연인’은 아마 가장 큰 환대를 받은 스타일 것이다. 극중의 자토이치처럼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들어 인사를 하는 도중 마이크에 머리를 부딪히면서 장내에 웃음을 끌어냈다. 어떻게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나. <자토이치> 시리즈는 거의 신타로 가추의 개인소유물처럼 느껴지는 영화다. 하여 신타로의 사망 이후 어떤 사람도 감히 또 다른 <자토이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나 역시 그가 죽지 않았다면 감히 내가 이 영화를 만들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타로 가추의 <자토이치>와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어떻게 다른가. 아, 일단 머리색깔이 다르지 않나. (웃음) 이왕 만들 거라면 나만의 독창적인 각색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물론 그에 대한 존경심은 잊지 않았지만, 과거의 시리즈에서 자토이치가 장님이다, 사무라이다, 도박을 잘한다는 3가지 요소만을 가져왔을 뿐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시대극은 처음이다. 검은 양복이 아닌 일본 전통복장을 입은 당신의 모습이 어색할 만큼. 처음엔 나도 이게 참 새로운 경험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쉽지 않겠다고 느꼈다. 그러나 웬걸, 현재가 아니라는 점은 오히려 영화를 너무 현실적으로 만들지 않다도 된다는 자유로움을 주었다. 자토이치가 파란눈에 노랗게 염색한 머리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다. 나는 장르의 전통을 새로 구축하고 싶었다. 특별히 칼싸움 장면은 안무가의 도움을 받아서 좀더 격렬하고 사실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당신은 <자토이치>를 절대로 일본의 전형적인 사무라이영화처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비 속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결투신이나, 거의 홀딱 벗고 집 근처를 뛰어다니는 약간 모자란 옆집 남자의 등장은 분명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로사와의 딸이 의상담당으로 참여했는데 내가 해놓은 일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웃음) 8월31일 일요일 __ 베니스에서의 마지막 8월 업스트림 스페셜이벤트로 초정된 <툴스 루퍼 슈트 케이스: 앤드워프>를 안고 베니스를 찾은 피터 그리너웨이는 대단한 웅변가였다. 올해 칸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가 소개된 이 실험적인 영화에 대한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영화는 죽었다. 우리는 새 시대의 첫 번째 트랙을 탄 사람들이다. 앞으로 내 생에서 셀룰로이드로 영화를 찍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라는 그의 확언은 기자회견장을 웅성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렇듯 피터 그리너웨이가 끊임없이 새로운 미디어를 향해 나아가는 데 반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영화가 인생이고, 모든 것이었던 시절의 파리로 향수어린 귀환을 결심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이후 30년 만에 파리로 돌아가 찍은 영화 <드리머스>(Dreamers/ 비경쟁 부문/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출연 마이클 피트, 에바 그린, 필립 가렐)는 시네마테크에서 만난 미국인 매튜와 프랑스인 쌍둥이 남매 이자벨과 테오의 며칠간의 동거를 담고 있다. (왼쪽부터) , <자토이치> “혁명을 생각할 때면 섹스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파리의 68혁명은 정치와 섹슈얼리즘의 능선을 넘어온 이 거장에게 매우 매력적인 시대로 다가왔을 것이다. 창문 밖 세상이 혼란스러워질수록 더욱 자신들만의 고치 속으로 파고들었던 이자벨과 매튜. 그러나 개인의 해방과 사회적 해방이 병행되었던 이 혁명의 포효 속에서 소년과 소녀는 ‘꿈’을 깨고, 창문을 깨고 거리로 달려간다. <드리머스>를 보고 밖을 나서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흐르던 에티트 피아프의 샹송이 계속 입가에 맴돈다. 갑작스럽게 기온이 뚝 떨어졌다. 윙윙 귀를 때리는 바람소리와 함께, 거대한 파도소리와 함께. 9월1일 월요일 __ 이상기후, 또 이상기후 <코드46> 기타노 다케시, 그는 진정 무엇이 오락인지 아는 감독이다. 리드미컬한 타악기 소리에 맞춰 출연배우들의 한바탕 탭댄스로 마무리짓는 <자토이치>(비경쟁 부문/ 감독 기타노 다케시/ 출연 비트 다케시, 아사노 타다노부)는 초반부터 서서히 달아 올랐던 관객을 절정으로 이끌었고, 크레딧 엔딩이 오르자 여기저기서 함성과 휘파람소리가 터져왔다. 신타로 가추가 연기한 맹인검객 ‘자토이치’ 시리즈는 30대 이상의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 만큼 유명한 TV시리즈이자 영화다. 해가 뜨면 자고, 밤이 되면 일하는 사람들. <코드46>(Code 46/ 베네치아60 경쟁부문/ 감독 마이클 윈터보텀/ 출연 팀 로빈스, 사만다 모튼)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사실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세상에>로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트로피를 거머쥔 마이클 윈터보텀이 같은해에 베니스까지 도착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총명하고 집중력 좋은 영국 감독은 미래의 애잔한 러브 스토리를 단숨에 만들어냈다. 가까운 미래, 비자와 신분증을 대신하는 ‘파펠’이라는 증명서가 사람들의 정체성을 대신하는 시대에 탐정 윌리엄은 파펠 복제의 범인을 찾아 상하이로 떠난다. 용의자를 심문하는 가운데 마리아를 만난 윌리엄은 그녀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는다. “처음 보는 사람을 오랫동안 그리워한 적이 있나요?” 그날 밤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지만, 임신한 상태에서 ‘코드46’ 바이러스에 감염된 마리아는 사랑을 나눈 기억만을 제거당한다. 이후 윌리엄은 마리아가 자신의 죽은 어머니의 DNA를 받아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윌리엄이 다시 마리아를 찾았을 때 그녀는 더이상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신화에 젖줄을 댄 이 매혹적인 미래극은 매우 낮은 제작비로 제작되었다. “우리는 <마이너리티리포트>를 만들 돈이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도시를 짓는 대신, 미래의 도시에 가까운 풍경들을 찾아냈다.” 상하이와 인도의 뭄바이에서 주로 촬영된 <코드46>의 풍경은 현실과 맞닿아 있는 동시에 생경하게 다가온다. ♣ “어디 보자, 신문에는 무슨 영화를 보라고 썼나.” 한국은 영화제가 주로 젊은이들의 축제인 데 반해, 해외영화제는 백발의 노인들이나 노부부 커플들이 유난히 많다.(왼쪽사진)♣ “한푼이라도 벌어야죠.” ID카드를 달 수 있는 목걸이를 파는 아이들. (오른쪽사진) 새벽 상영을 마치고 선착장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 이상기후임에 분명하다. 내 몸도 이상기후다. 두통에서 감기로 몸살로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봐야 할 영화가, 들어야 할 기자회견이 산더미다. 혹 가까운 미래에 내 몸이 ‘코드46’에 감염되어 기억이 새롭게 조작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반드시 이곳 베니스에서 보낸 일주일만큼은 자물쇠를 걸어 기억할 것이다. 잔인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바람난 가족> 첫 시사 반응 관심은 컸지만 열광은 없었다 9월3일 현지시각 밤 12시에 팔라 갈릴레오에서 <바람난 가족>의 기자 시사회가 열렸다. 시사회장에는 임상수 감독과 문소리, 황정민 두 주연배우가 자리를 함께했다. <바람난 가족>은 <오아시스>를 잇는 한국의 화제작이라는 기대 그리고 2년 연속 베니스를 찾은 문소리로 인해 현지 언론의 관심을 모았었다. 아시아권 영화 가운데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나 차이밍량의 <잘있어요, 용문객잔>이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낸 것과 달리 <바람난 가족>의 시사회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조용했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기자 패트릭 프레이터는 “임상수 감독의 작품으로는 <눈물>을 본 적이 있다. <눈물>과 <바람난 가족>은 이야기나 주제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두 영화를 비교하긴 힘들다. 한국 근대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이 이 영화를 보게 되면, 단순히 ‘중산층의 도발적인 성생활’이라고 하는 수면 위의 것만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5, 6년 전 프랑스영화에서 너무 많이 보여진 것들이라 낡았다는 느낌까지 준다. 한국 관객에게는 환대를 받았을 수 있겠으나 해외 관객에게는 평범해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호정의 아들이 지루에게 투신살해당하는 장면은 쇼킹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편의 영화에 대한 이해는 하나의 문화권을 건너갈 때마다 달라진다는 것을 재확인시킨다. 일반 시사를 앞두고 있는 <바람난 가족>이 이탈리아의 일반 관객으로부터는 어떤 반응을 얻게 될지 주목된다. 비공식적으로 리도를 찾은 스타들 “ 그냥 와봤어 ” 애초에 올 거라고 기대를 모았던 니콜 키드먼이 당도하지 않은 리도는 중반이 넘어갈 때까지 좀 심심한 편이었다. 앤서니 홉킨스는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이란 표현은 인간됨을 상실하게 한다”는 중후한 코멘트를 제외하고는 유난히 말을 아꼈고, 후반부에 상영이 잡힌 <참을 수 없는 잔인함>의 조지 클루니와 캐서린 제타 존스를 기다리기엔 시간은 꽤나 더디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럴 땐 객원스타의 등장이 더없이 반갑다.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또 하나의 최근 연출작인 <스파이 키드3: 게임오버>의 홍보행사를 리도에서 열자, 근육질의 실베스터 스탤론은 베니스 꼬마와 함께 3D안경을 끼고 다정히 포즈를 취해야 했다. 대중에게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람보? 그에게 많은 빚을 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로 여러 해 동안 툴툴거릴 수밖에 없었다”는 비교적 솔직한 대답을 풀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베스터 스탤론의 이번 베니스행은 그다지 좋은 기억을 남기진 못했다. 그의 보디가드가 인터뷰를 하려고 다가간 이탈리아 공영 TV채널 ‘라이’의 60대 노기자의 옆구리를 찌르고, 이에 항의하는 기자를 밀어 넘어뜨리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곤경에 빠진 것. 스탤론은 즉시 그를 일으켜 세워 의자에 앉힌 뒤 사과를 하고 떠나는 날까지 “만약 내 아버지에게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나 역시 굉장히 화났을 것”이라며 사과를 남겼다. 그러나 비엔날레쪽은 이 보디가드가 비엔날레 소속 보안 요원이 아닌 스탤론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이탈리아 경호요원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또한 영화 <물랑루즈>와 지난해 12월 뉴욕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라 보엠>을 끝내고 신작 <알렉산더 대왕>의 헌팅 여행 중인 바즈 루어만은 올리베이라의 <토킹픽처>의 주인공의 여정을 반대로 거스르며 베니스에 당도했다. “커다란 전투신을 위한 황량한, 사막 같은 공간을 찾고 있다”는 그는 요르단과 그리스, 모로코를 돌아보며 영감을 얻고 있다고. 한편 올해 심사위원인 이탈리아 배우 스테파노 아코르시의 약혼자인 프랑스의 스타 라에티티아 카스타는 야밤에 비밀리에 리도에 도착해 현지의 많은 사진기자와 카메라맨들을 잠 못 들게 했다. ▶ 백은하 기자의 즐거운 베니스 다이어리 [1] ▶ 백은하 기자의 즐거운 베니스 다이어리 [2] ▶ 백은하 기자의 즐거운 베니스 다이어리 [3]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의 원작이 된 디즈니랜드의 라이드

골수팬 몰빵 ‘누이좋고 매부좋고’ 아내가 둘째를 임신한 이후부터 그 둘째가 5개월이 된 지금까지, 어딘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아들을 위한 이런저런 이벤트를 많이 기획해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그중 하나가 사람이 별로 없는 토요일 오전이면 집에서 가까이 있는 롯데월드에 함께 놀러가는 일. 하지만 그때마다 스릴이나 속도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라이드들, 예를 들어 ‘모노레일’이라든가 ‘풍선여행’ 혹은 배를 타고 석촌호수를 유람하는 ‘제네바 유람선’ 등만을 골라 그것도 몇번씩 반복해서 타야만 하는 것은 약간 고역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엔 큰맘먹고 아들 녀석을 꼬드겨 어두운 지하 동굴 속을 배로 여행하며 신기한 구경거리들을 볼 수 있다는 ‘신밧드의 모험’이라는 라이드를 탔다. 처음에는 그저 뭐 움직이는 인형들이 조금 으스스한 분위기나 연출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그게 아니었다. ‘후름라이드’ 정도는 아니지만 배가 큰 낙차를 두고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전반적인 분위기도 으스스한 정도를 넘어 공포스러운 면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그런 예상치 못한 선택에 아들 녀석이 무서워 울거나 할까봐 큰 걱정을 했는데, 아들 녀석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다. 라이드 내내 숨을 죽이고 내게 딱 붙어 있기는 했지만, 라이드가 끝나고 배에서 내리면서 ‘조금 무섭다’고 말하는 것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 그때 문득 2년 반 전에 첫돌도 채 지나지 않은 아들 녀석을 데리고,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아들 녀석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주겠다고 유아용 라이드들을 태워주었지만 무서웠는지 그때마다 녀석은 나나 아내의 품에 얼굴을 묻고는 이내 잠이 들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가는 한 사람이 아들을 보고, 나머지 한 사람이 성인용 라이드를 번갈아 타는 것으로 작전을 바꾸어 나름대로 어른들만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미 아기에서 아동으로 훌쩍 커버려서, 어른도 약간의 스릴과 공포를 느낄 수 있는 라이드를 탈 정도가 된 아들 녀석이 대견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라이드의 내부 중 한 장면의 디자인 컨셉과 실제 완성된 모습.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라이드 건조 당시 움직이는 인형 옆에서 선 월트 디즈니의 모습. 재미있는 것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롯데월드의 ‘신밧드의 모험’이라는 라이드가 실은 디즈니월드에서 나와 아내가 번갈아 탔던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라이드를 본떠 만들어졌고, 그 라이드가 이번에 개봉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의 원작이라는 사실이다. 보통은 히트한 영화가 원작이 되어 테마파크의 라이드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인데 이 영화는 그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 라이드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저 인기가 많다고 영화화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그보다는 1967년 3월부터 LA 근교의 디즈니랜드에서 서비스가 시작되어, 지난 36년 동안 미국인들에게 사랑받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라이드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 발전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원인이라 하겠다. 그렇게 캐리비안의 해적이 ‘놀이기구’에서 ‘텍스트’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월트 디즈니의 시대를 앞서간 비전에 기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965년 디즈니랜드 오픈 10주년을 기념해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세상의 모든 것들, 심지어 종이 위에 그린 그림까지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데 집중해왔다. 이제 우리는 전기를 이용해 사람, 동물 모양의 인형을 움직이게 하는 중이다. 나는 이것이 미래 엔터테인먼트 시대를 여는 새로운 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이른바 ‘오디오-애니메트로닉스’(Audio-Animatronics)의 개념을 소개했다. 녹음된 음성에 따라 움직이는 실물 크기 인형들로 장면을 연출해놓고 배나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라이드의 초기 개념을 완성한 것. 그리고 디즈니랜드의 개장 초기부터 그가 생각했던 ‘해적들이 가득 찬 마을을 여행하는 이야기’를 직접 구현해낸 것이 바로 캐리비안의 해적이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캐리비안의 해적에 엄청난 열정을 쏟아냈던 월트 디즈니가 결국 그 오픈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캐리비언의 해적은 그가 제일 좋아했던 디즈니랜드의 라이드로 알려져 있는데, 그건 그가 항상 다음번에 오픈할 라이드를 ‘가장 좋아하는’ 라이드라고 소개했던 버릇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월트 디즈니의 바람처럼 그 라이드를 수많은 미국인들이 지난 36년간 꾸준히 즐겨왔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어두운 곳에 차나 배를 타고 들어가는 이른바 ‘다크 라이드’들 중 최고라 불리며, ‘인디아나 존스 라이드’, ‘쥬라기 공원 라이드’ 등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라이드로 수많은 팬들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캐리비안의 해적을 여러 번 즐겼다는 것을 자랑하는 골수팬들의 존재는 각종 팬 사이트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디즈니는 바로 그들의 존재에서 힘을 얻어 영화를 기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영화의 내용과 라이드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컨셉도 이전에 만들어진 수많은 해적영화들을 생각해볼 때, 딱히 라이드에서만 나온 것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부분도 많다. 그나마 제목이 같다는 점을 제외하면 영화를 독립된 상품으로 이해하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니라고 할 정도. 그러나 디즈니는 <컷스로트 아일랜드> 등 최근 해적영화들이 그다지 재미를 못 봤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엄청난 팬을 확보하고 있는 라이드와 영화를 끈끈하게 묶어서 상품성을 높이려 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성공의 여세를 몰아 벌써 주요 출연진, 제작진들과 속편 제작에 대한 계약까지 마친 상태로 알려져 있다. 물론 어떤 속편이 나올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역으로 영화가 라이드에 관람객을 몰아주는 현상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 현상을 ‘관람객 몰아주기의 선순환 구조’라고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라이드 비공식 홈페이지 : http:// www.doombuggies.com/tnt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공식 홈페이지 : http://pirates.movies.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