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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상처` 깊은 소희 온몸으로 느끼려 휴학까지 했어요

열일곱 살 소희를 연기한 김민정씨는 올해 갓 스물이다. 지난해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밖에 다니지 못했다. 소희 때문이다. “촬영에 몰두하기 위해 휴학했어요. 소희가 한 학기를 잡아먹은 거죠.”<버스, 정류장>의 소희는 연기하기 쉬운 캐릭터가 아니다. 열일곱의 나이에 세상의 부조리를 거의 다 알아채버린 데다 상처와 환멸이 지우기 어려울 만큼 깊다. 소희란 캐릭터와 자신의 공통점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펄쩍 뛴다. “너무도 다르죠. 원조교제나 자살 같은 일들은 신문지상에선 많이 봤지만 제 주위에선 보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소희라는 아이를 연기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웠어요. 말투와 행동도 재미있지만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조숙한 아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이었죠. 직접 소희처럼 깊은 상처를 겪어보진 못했지만, 그런 아이를 표현하는 일에 거부감은 없었어요. 사람들은 누구든 상처를 입고 살아가게 마련이잖아요? 크든 작든. 다른 사람들이 상처라 여기지 않더라도 자신에겐 아픈 데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소희의 마음이 되려고 노력했어요.”영화는 상처 입은 두 사람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성숙’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기하면서 사실은 저도 많이 성숙했다는 느낌이어요. 소희나 재섭이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그런 이들의 내면을 이해하려고 고민하다 보니 나 자신도 조금은 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도, “진실이 뭔지 아세요? 거짓이요!”라는 소희의 대사는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고 털어놓을 만큼 솔직하고 당차다는 점이 그와 소희의 공통분모일 것같다.성인 연기자로선 이번 작품이 처음이지만, 그는 이미 지난 93년 <키드캅>이란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아역 배우로는 12년의 경력을 쌓았다. “아역을 오래 한 경우 연기 변신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이번 작품이 그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건 이 때문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배우’라는 자의식이 훨씬 강하게 들었어요. 깊이 있는 작업을 집중해서 하는 점도 좋았구요.” <버스, 정류장>에서처럼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배우’로서 자의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가 배우의 길을 가는 데 다른 걸림돌은 없지 않을까.이상수 기자▶ <버스정류장> 너도 세상과 담 쌓고 살았구나

가족이 내게 준 상처가 나를 키워놨을까

웨스 앤더슨 감독의 <로얄 테넌바움>은 문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난 어느 집안 이야기다. 집안 얘기라지만 진부한 가족주의에 대한 설교와는 친연관계가 없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모진 인연에 대해 진지한 어법 대신 시종 가볍고 익살스런 말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로얄 테넌바움(진 해크먼)은 파산한 변호사다. 22년 전 아내와 별거한 이래 계속 거주해오던 호텔에서도 쫓겨났다. 테넌바움 집안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가 발에 채인다. 지성과 극성을 함께 갖춘 고고학자인 아내 애슬린(안젤리카 휴스턴)은 남다른 교육열로 남매 셋을 모두 천재로 키워냈다. 입양한 맏딸 마고(귀네스 펠트로)는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 열다섯 살 때 이미 희곡으로 퓰리처상을 거머쥐었다. 둘째 채스(벤 스틸러)는 여섯 살 때 달마시안 무늬가 있는 생쥐를 교배해낸 괴짜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동산과 금융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다. 셋째인 리치(루크 윌슨)는 10대 때 주니어 테니스 세계 랭킹에 오른 테니스의 귀재다. 여기까지가 테넌바움 가문의 빛나던 시절이다. 로얄과 애슬린 부부가 별거에 들어간 뒤부터 세 천재는 박제가 되는 길을 걷는다. 문학과 세상 모두에 환멸을 느낀 마고는 하루 종일 목욕탕 안에서 담배와 텔레비전만 끼고 산다. 비행기 사고로 아내를 잃은 채스는 두 아이와 함께 언제나 빨강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다니며 일주일에 열여섯 번씩이나 재난 대비 자체 비상훈련을 실시한다. 테니스 천재 리치는 마음 속으로 좋아했던 입양된 누나 마고가 결혼을 발표하자 경기 도중 망연자실해 완패한 뒤 망망대해를 떠돌며 여행으로 지새운다. 세 남매는 모두 세상에서 입은 상처가 아물지 않아 스스로를 과거에 가두고 성장을 멈춰버렸다. 테넌바움 집안의 회계사 헨리 셔먼(대니 글로버)이 애슬린에게 청혼했다는 얘기에 발끈한 로얄은 “위암 때문에 6주간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는 거짓말로 테넌바움 집안에 다시 발을 들여놓는다. 이로 인해 흩어졌던 식구들이 다시 모인다. 그의 거짓말은 6주 만에 들통 나지만, 이 짧은 재회는 세 남매가 뒤집어쓰고 있던 각질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포함해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영화는 각 장마다 등장인물 한 사람씩을 주인으로 삼아 그의 개성을 그려내면서 여기에 현재진행형의 사건을 얹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모든 등장인물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고루 돌리고 있다는 게 이 수다스런 영화의 남다른 미덕이다.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역시 로얄이다. 그는 아내 자식 재산 명예 등 모든 걸 다 잃어버린 철저한 패배자다. 그는 비록 자상하고 사려 깊은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폐쇄적으로 길러지는 손자들을 데리고 나가 쓰레기차 뒤에 몰래 올라타기, 대로 무단 횡단하기, 슈퍼마켓 물건 훔치기, 투견장에서 고함지르기 따위를 통해 일종의 ‘호연지기’를 길러줄 줄 아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각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가장 깊은 상처를 안길 수 있다는 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차가운 역설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인생에서 철저히 패배한 이가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매우 많은 걸 베풀어줄 수도 있다는 따뜻한 역설도 함께 보여준다.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

나의 소장 비디오: 0개

그러고보니 주변에 (공테이프를 제외하고) 비디오테이프를 하나라도 ‘소장’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초기 흑백 무성영화와 각종 희귀영화들을 여기저기서 구해다 놓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부모님의 장롱 속에서 오래된 에로비디오를 발견했다는 친구의 증언에 이르기까지.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의 친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비디오를 적어도 세편 이상씩은 꼭 갖고 있다. 나도 비디오 중고판매점을 지나칠 때면 들어가서 구경을 하곤 한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샅샅이. 그런데, 그러다가 그냥 나온다. 대여점에서 구프로라는 분류하에 단돈 500원이면 볼 수 있는 것들을 희귀품이라는 명목하에 몇 천원, 심하게는 1만원 이상씩 주면서 뽕빼먹을 만큼 보고 또 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500원이면 볼 수 있었던 영화에 대해 기어이 6천원의 연체료를 치르고야 마는 나 정도의 게으름이라면 빌려보느니 사보는 게 이득일 수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비디오는 카세트테이프나 시디와는 달라서, 내 것이 되는 순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영원히 보지 않고 방치해둘 가능성이 너무나 짙어지는 것이다. 친구에게 빌린 지 1년이 다 돼가도록 보지 않고 있는 비디오가 그 증거다. 단순 희귀품의 차원을 넘어서서, 아예 우리나라에서 개봉하지 않았거나 구할 수 있는 길이 없는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방영한다고 해도 나는 서둘러 녹화버튼을 누르는 대신 처음부터 보지 않은 영화는 아예 안 보는 습관 때문에 그냥 채널을 돌려버리곤 한다. 안녕,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뭐, 라고 생각하며. 영화에 대한 소유욕이 너무나 빈약한 까닭에, (나 같은)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되돌려받지 못할 걱정도 없이 나는 항상 홀가분하다. 그 덕에 영화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무수한 영화들을 아직까지도 기약없는 만남하에 남겨두고 있긴 하지만.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

김은형의 오! 컬트 <플란다스의 개>

지난해 ‘씨네21이 틀렸다’라는 창간특집을 읽고 난 다음 <플란다스의 개>를 봤다. 실은 봐야지, 봐야지 노래만 하다가 텔레비전에서 방영할 때야 봤다. 그냥 봤다고 하면 될 걸 자랑도 아닌 나의 게으름을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2000년 초 개봉 때 봤다면 무심코 지나갔을지 모를 반가운 얼굴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현남이의 친구를 연기한 고수희씨의 열렬한 팬이다. 이 영화가 개봉한 지 1년 뒤쯤 이 배우의 팬이 됐으니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나중에 비디오로 보는 게 훨씬 좋았던 셈이다. 고수희씨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내가 그녀에게 반한 건 그녀의 고향이면서 주무대인 대학로가 아니라 시트콤 <세친구>에서였다. 고수희는 <세친구>에 조역으로 여러 번 등장했다. 그중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하나 들자면 헬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한 고수희가 윤다훈에게 끈끈한 눈길을 보내자 이를 포착한 안연홍과의 한판 대결이었다. 알겠지만 안연홍이 연적들과 싸우는 장면은 대체로 ‘노려본다’→‘함께 화장실 간다’→‘상대방의 처참한 몰골 클로즈업’으로 끝난다. 그런데 고수희의 건장한 체격에 주눅든 안연홍이 이번에는 읍소작전으로 나갔다. “흑, 전 이미 윤 실장님에게 순결을 바쳤어요.” 심드렁한 표정의 고수희는 가느다란 담배를 피워 물며 ‘쿨’하게 응답한다. “어쩌라고∼.” 이 장면에서 나는 그녀에게 뿅 갔다. 대본작가에 힘입은 바 크겠지만 고수희에게는 여느 뚱녀 코믹 캐릭터들과 달리 기품이 있어보였고, 귀여운 섹시함도 살짝 느껴졌다. 그녀라면 밥을 솥째 들고 먹거나, 남자한테 눈길 한번 받는 것만으로도 턱이 땅 끝까지 떨어지는, 식상한 뚱녀 캐릭터 따위는 도도하게 거절할 것이라 믿어졌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속 고정관념의 허를 찔렀다는 면에서 그녀의 등장은 신선하고 통쾌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그녀는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현남 친구 뚱녀를 연기한 고수희는 배우 이름순으로는 이성재, 배두나, 변희봉, 김호정에 이어 다섯번째로 등장하는 주요 배역이었다. 이모가 운영하는 작은 문방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는 신문의 낱말맞추기와 간간이 즐기는 ‘옥상담배’맛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청춘이다. 뚱녀는 퍼즐 정답 ‘결초보은’을 ‘결초보훈’이라고 생각하는 현남에게 “야, 이 무식한 년아”라는 욕을 서슴지 않지만 먹은 걸 다 토하고 자신에게 기대 잠든 현남의 머리카락을 얌전한 손길로 추스려주는 아이다. 둘은 동네 통닭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장난삼아 주차된 차의 옆거울을 떼어 훔쳐 달아나기도 하고, 그 좁은 문방구 안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술을 마시며 춤을 추기도 한다.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사랑스럽고, 쓸쓸하다. 특히 둘이 작은 배낭을 메고- 그 속에 들어 있는 훔친 옆거울을 꺼내 보며 손거울인 양 얼굴 매무새를 고치기도 한다- 산에 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그들을 비추는 가을볕처럼 너무나 허허롭고도 아름다워서 그대로 포스터에 담아 벽에 걸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러한 현남과 뚱녀의 장면들만 떼어놓는다면 <플란다스의 개>는 <고양이를 부탁해>의 사촌언니뻘쯤 되는 스무살 여자애들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주변의 스무살 가운데는 팔등신의 지영이나 혜주보다 건장한 뚱녀를 만나기가 더 쉽다는 점에서 <플란더스의 개>는 <고양이…>보다 사실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남자배우들에 비하면 여전히 여자배우들의 외모에는 엄격하고 연기에는 관대한 충무로에서 내가 본 고수희씨가 살과 완전히 무관한 역할을 맡기는 당분간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플란다스의 개>에서처럼 살보다는 눈빛과 표정이 도드라지는 그런 연기를 하는 그녀를 어서 만나고 싶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이상 지겹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김은형/ <한겨레21> 기자

비디오판 머피의 법칙

그 기막힌 타이밍은 거의 예외가 없다. 영화 속 인물들이 신체적 접촉을 하려고만 하면 엄마가 나타난다. 전화벨 소리도 못 들을 정도로 깊은 낮잠은 꼭 감질나는 키스신이 시작되기 직전에 끝이 난다. 영원히 안방에만 머물 것 같던 진공청소기도 베드신이 시작되기 3초 전에 내가 있는 거실로 이동한다. 그걸 피해 안방으로 옮겨서 문을 닫고 비디오를 보고 있자면, 왜 생전 안 주던 과일은 꼭 잔혹한 강간의 순간에 문을 벌컥 열며 배달되는 건지. 게다가 한번 시작된 그 장면들은 내가 나서서 컷을 외치고 싶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그만, 컷컷컷! 한순간에 영화의 등급은 엄마의 주관하에 재평가되며 나는 졸지에 ‘문닫고 이상한 영화나 보고 있는 애’가 되어버리는 거다. 물론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내가 자발적으로 찔려하면서 비굴, 소심해지는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가 펼쳐질 듯하면 나는 소리를 줄이고 엄마의 행동반경과 그곳에서의 정체시간을 계산한다. 긴장해서 숨을 죽이고 제발 이 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거나, 불안의 정도가 심할 경우 비디오를 끄고 텔레비전을 보는 척한다. 이것 참, 17살짜리가 포르노를 보는것도 아니고 말이다. 빨리감기 등의 트릭은 더구나 타이밍 계산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 장면들’을 빨리감기하고 있을 그 순간에 엄마가 들어오면 바로 ‘이상한 장면을 반복해서 돌려보는 애’로 전락하는 거다. 가만히만 있어도 괜찮을 뻔했는데 억울하게도 말이다! 이런 점에서는 극장이 좋다. 팝콘까지 씹어가며 어둠 속에서 모두들 당당하지 않은가.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

네 이념대로 찍어라

10여년 전, 재야 출신 국회의원의 보좌관 노릇을 하던 선배는 “나중에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 발 벗고 뛸 거”라 말했다. 노무현은 처음부터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 노무현은 대통령 선거에 나왔고, 이변이라 불릴 만큼 약진하고 있다. 노무현의 개혁 이미지는 대개 인정할 만한 사실이다. 그는 <조선일보>와 국가보안법에 공개 반대하고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유일한 정치인이다. 이른바 ‘비판적 지지’(어차피 당선 가능성이 없는 진보 후보를 찍어 죽은 표를 만드느니 좀더 나은 보수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 진보의 미래를 도모한다는)의 두번째 대상으로 그가 거론되는 건 그런 점에서 당연해 보인다. ‘비판적 지지’의 첫번째 대상은 김대중이었다. 밝히자면, 나도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그렇게 했다. 비판적 지지론이 아닌 진보 독자후보론을 주장하던 진영에 더 가까웠지만, 그래서 다들 내가 그렇게 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망설임 끝에 그렇게 했다. 진보진영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했다. 드디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고 그에게 표를 몰아준 진보주의자들은 그의 개혁성에, 그의 개혁성을 통해 도모될 진보의 미래에 기대했다. 기대가 의구심으로 의구심이 다시 지루한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단지 몇달이 필요했다. 나는 그 즈음 내가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김대중에 대한 실망의 원인은 김대중에게 있는 게 아니라 그에게 실망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있었다. 어리석게도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인 김대중이 진보적이기를 기대했다. 실망에 찬 그들은 말하기를 김대중이 변했다고 했다. 그러나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김대중은 예나 지금이나 보수주의자이며 그의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그의 이념에 충실하다. 김대중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기대는 그가 한국사회 보수영역의 마이너로서 한국사회 보수영역의 메이저인 파시스트들에게서 오랫동안 견제받는 모습을 통해 생긴 판타지였다. 김대중에 대한 실망을 노무현으로 보상하려는 심정이야 인간적으로 이해 안 가는 바 아니나, 정치적으로 가련하기만 하다. 노무현이 김대중보다 인격적으로 신뢰가 가는가. 나 역시 그래 보이지만, 개인의 인격이 정치를 좌우할 수 있다는 가설은 텔레비전 궁중사극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노무현의 판타지에 젖은 사람들은 오늘 김대중을 잠시 접고 옛 김대중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때 오늘의 노무현과는 비교가 안 될 판타지를 가진, ‘선생’이라 불리는 정치인이었다. 노무현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노무현은 (개혁적)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에도 당당히 맞서는가, 노무현은 하층계급의 싸움에 연대하는가. 김대중의 정치는 바보가 아닌 사람들로 하여금 이른바 나쁜 보수와 좋은 보수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특히 오늘처럼 극단적 파시즘이 이면으로 물러난 상황에선 더욱더)을 충분히 깨닫게 할 만했다. 좋은 보수 후보에 표를 몰아주어 진보의 미래를 도모한다는 노회한 전략은 한국 정치에서 진보의 지분(득표율, 혹은 국회의원 수로 계량할 수 있는)이 하다못해 ‘김종필의 당’만큼이 되어, 캐스팅보트 노릇이라도 가능해진 다음에나 생각할 일이다. 진보주의자, 혹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단 한명도 없는 세계 유일의 나라에서 진보주의자가 할 일은 오로지 ‘털끝만큼이라도 진보의 지분을 늘리는 것’이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제 이념대로 순정하게 찍는 것, 그래서 한국 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한국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동기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것만이 한국인들이 제 처지에 가장 적절한 정치를 맞을 유일한 방법이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한국사회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면 가장 반동적인 보수 후보를 찍어라. 한국사회의 표면적 악취라도 우선 덜고 싶다면 가장 개혁적인 보수 후보를 찍어라. 그러나 한국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바란다면 (당선 가능성을 절대 기준으로 한 이런저런 되지 못한 정치평론일랑 걷어치우고) 그저 가장 진보적인 후보를 찍어라. 진보에 외상은 없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김규항/ 출판인 gyuhang@mac.com

울렁대는 첫 영화의 추억,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때는 1971년 아니면 72년쯤이었을 것이다. 당시 다섯살 남짓했던 소년은 부모와의 오랜만의 외출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극장에 들어갔고 아이는 뭔가 재미있는 영화겠거니 생각하며 텅 빈 극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웬 걸, 그날 보게 된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라는 영화는 데이브라는 심야 라디오 DJ가 이블린이란 여자와 놀아나다 잘못 걸려들어 끈질긴 스토킹을 당한다는 매우 비교육적이며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무서운 장면이 나올 듯싶을 때마다 꼬마는 어머니의 등 뒤로 고개를 파묻고 “무서운 장면 끝났어?”라고 물어보며 어서 영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한숨을 돌리고 있는 데이브에게 또다시 칼을 들고 방 한구석에서 나타난 이블린의 광기 어린 눈빛, 그리고 언덕 위의 하얀집의 원경과 스토커의 최후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으로 영화는 끝났다. 너무나 오랜 시간 긴장을 했는지 극장을 나와 먹던 불고기도 별로 내키지 않았고, 속만 울렁거릴 뿐이었다. 이후 소년은 그 끔찍했던 영화관람 사건을 잊고 싶었지만, 밤에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또 추억의 명화랍시고 텔레비전에서 재탕 삼탕을 할 때마다 찝찝한 기억이 의식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한 여학생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렁거려서 ‘보기만 하면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 애도 나를 좋아한다는 소문에 기쁘기는커녕, 이상하게 피하게 되었고 결국 그녀의 눈물을 보고 말았다. 대학 1학년 때에는 미팅에서 만난 친구가 처음 만난 날 생맥주 3천㏄를 마시며 내게 친하게 지내자고 했을 때 나는 왠지 모를 두려운 긴장감이 들면서 그녀를 멀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십수년이 지나 소년은 데이브를 괴롭히던 이블린과 같은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과의사가 된 뒤 이런저런 잡다한 문화계의 ‘경계’에서 얼쩡거리고 있다. 그 소년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아마 그 전에도 극장에 간 일은 있었겠지만 최소한 내 기억 속에서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는 ‘내 인생의 첫 영화’라 할 수 있다. 아이의 정서교육보다 자신들의 영화 욕구충족이 먼저였던(!) 부모 덕분에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본 그 영화는 생각보다 광범위한 임팩트를 줬다. 당시 백지장 같던 어린 내 머릿속에 각인된 첫 영화의 잔상은 내 발달과정에 산탄총알이 박히듯 여기저기 많은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첫키스, 첫경험이 중요하듯이 첫 영화 경험은 내 인생에 어떤 작용을 했을까? 돌이켜보니 내가 정신과의사가 된 이유가 결국 그때의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을 치료자가 되는 것으로 극복해보겠다는 몸부림의 소산일 뿐이었다. 또 왜 어릴 때 이성관계에 서툴렀는지, 왜 공포영화를 보는 것을 싫어하는지 등의 난삽한 의문들이 이 영화를 기준으로 일렬종대로 늘어서며 한꺼번에 풀려버렸다. 아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기껏 영화일 뿐인데 이렇게 내 인생을 규정하고 있다니. 또 영화적 선호도로 보면 형편없는 그렇고 그런 이 영화가 왜 하필 ‘내 인생의 영화’라는 제목의 글을 쓰려는 이 시점에 내 의식선상에 떠오른 것인가. 지금도 뭔가 앙금이 남아 있는 걸까? 고백컨대 이 글을 쓰면서 위에 묘사한 영화 속의 장면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비디오를 빌려보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그 장면들이 내게 중요한 것이니까(웃기지 마, 역시 뭔가 남아 있는 게 분명해). 끝으로 내 딸의 첫 영화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다. 그 행위가 내 딸을 환경론자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한 일은 절대 아님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