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 검색결과

기사/뉴스(2003)

[해외뉴스] 애플, 자체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다

애플도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최근 애플이 자체 TV프로그램과 영화 제작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들 콘텐츠는 애플 뮤직을 통해서만 볼 수 있을 예정이다. 지난 6월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애플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자체 제작 리얼리티 프로그램 <플래닛 오브 디 앱스>가 처음 공개됐다. 제시카 알바, 기네스 팰트로 등 유명 배우와 기업가들이 출연하는 이 방송은 출연진이 힘을 합쳐 애플리케이션을 직접 만드는 내용을 담았다. 이 프로그램이 평론가들에게 엄청난 혹평을 받으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애플의 자체 콘텐츠 제작 계획에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지만, 분위기를 전환시킬 만한 사건이 등장했다. 지난 6월 16일(현지시각) 애플이 소니픽처스 텔레비전 출신의 제이미 일리흐트와 잭 반 앰버그를 비디오 프로그래밍 부문 총괄로 영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동안 두 사람이 관여했던 콘텐츠로는 <브레이킹 배드> <베터 콜사울> <더 크라운> <블러드라인> 등이 있다. 오는 8월에는 지난해 판권을 구입했던 <CBS>의 <더 레이트 레이트 쇼> 인기 코너 ‘카풀 가라오케’의 스핀오프를 방영할 예정이다. 자체 제작 콘텐츠에 대한 애플의 관심은 기존 서비스 매출과도 연관이 있다. 자체 콘텐츠를 통해 아이폰, 애플 TV 등 기존 애플 제품의 영향력도 견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2700만명에 이르는 애플 뮤직 가입자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플랫폼 개척은 5천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스포티파이가 취하고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애플의 콘텐츠 사업이 넷플릭스처럼 영화 및 TV프로그램 시장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그래서 최근 주가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는 애플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함께 보면 좋을 10대 소년 이야기 담은 영화

1. <나 홀로 집에>(1990)의 케빈(매컬리 컬킨) 사상 최악의 크리스마스 악당 하면 누가 먼저 떠오를까.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1993)의 잭 스켈링톤이나 짐 캐리가 열연한 <그린치>(2000)의 그린치도 이분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나 홀로 집에>의 케빈은 자신이 저지르는 짓의 한계를 모른다는 점에서 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순수 악당이다. 어리바리 도둑 2인조를 잔인하게 응징하는 케빈의 트랩 퍼레이드는 악동과 악당의 경계를 넘나든다. 스파이더맨도 대적하는 빌런들과 한끗 차이다. 스파이더맨 속 악당들은 스파이더맨의 또 다른 자아라 해도 좋을만큼 유난히 닮았다. 피터 파커는 어느 날 생긴 특별한 힘을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끝내 선한 의지를 지켜냄으로써 영웅의 자격을 증명한다. 어른이 되어버린 케빈이 왠지 서글픈 것처럼 악동으로 머물 수 있는 시기는 피터팬보다 훨씬 짧은 것 같다. 2. <크로니클>(2012)의 앤드루 데트머(데인 드한) 어른들은 항상 궁금하다. 지금 10대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빠져 있을까. 한참 전에 그 시절을 이미 지나온 입장에선 현재의 소년 소녀들이 열광하는 감정은 이해할지언정 그 방식은 불가사의에 가깝다. 몇몇 영화들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한가운데 사는 10대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한 형식을 동원한다. 조시 트랭크 감독의 <크로니클>은 페이크다큐멘터리와 홈비디오 형식을 결합해 영상 세대의 리얼리티를 구현했다. <크로니클>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다크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닮은 구석이 있다. 특히 오프닝에서 부산스럽게 홈비디오를 찍고 ‘피터 파커 작품’이라고 떡하니 타이틀을 붙이는 피터 파커의 허세는 소년의 흥분을 엿보는 것 같아 귀엽다. 훨씬 어둡고 살벌한 <크로니클>의 카메라를 보니 역시 중요한 건 페이크 다큐라는 영상 형식이 아니라 ‘카메라를 든 소년’이 누구인가에 달렸나보다. 3. <백 투 더 퓨처>(1985)의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J. 폭스) 존 와츠 감독은 스파이더맨을 15살 시절로 되돌리면서 <백 투 더 퓨처>의 마티 맥플라이를 21세기로 소환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고등학생의 모험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알지 못했던 과거의 비밀이나 미래의 신기한 물건들 때문만은 아니다. 모험의 중심에는 고교생 마티 맥플라이의 평범함이 자리한다. 마티는 적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대체로 소심하지만 적당히 착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 만한 용기와 선의를 갖추고 있다. 숭고한 이상이나 거창한 목표보다 당장 멋지게 보이는 게 더 신경 쓰이는 허세남이기도 하다. 톰 홀랜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도 쿨하지 않은데 엄청 쿨한 척하는” 게 매력이다. 스파이더맨이 ‘우리의 친절한 이웃’이 될 수 있는 건 그가 마티의 얼굴을 한 슈퍼히어로이기 때문이 아닐까. 4. <킥애스: 영웅의 탄생>(2010)의 데이브(에런 존슨) 피터 파커와 친구들의 차진 대화를 듣고 있자면 <구니스>(1985)의 왁자지껄한 소동이 생각난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끝내 찾아가는 피터 파커를 보고 있자니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며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랜달 크레이저 감독의 <협곡의 실종>(1986)도 연상된다. 하지만 미숙한 10대 영웅의 성장담이란 점에서 <킥애스: 영웅의 탄생>(2010)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순 없다. 매튜 본 감독의 <킥애스: 영웅의 탄생>은 초장부터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데이브는 쫄쫄이 코스튬을 입으며 되뇐다. “슈퍼히어로를 만드는 건 거미에 물리는 일이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긍정과 순수에 대한 믿음”이라고. 물론 곧장 신나게 박살이 나긴 하지만 올바름을 향한 곧은 선의가 소년을 히어로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조각임에는 틀림없다.

<옥자> 봉준호 감독 인터뷰 - 옥자야 놀자

장맛비가 숨을 돌린 오후,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봉준호 감독은 7월 독감을 앓고 있는 운 없는 사람 치고는 매우 밝았다. 아니, 3년 만에 새로운 장편을 공개하고 열흘째를 맞이한 영화감독 치고는 대단히 명랑했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스코어라는 유령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감독의 활기는 첫주 박스오피스 성적이라는 괴물이 얼마나 영혼을 좀먹는지 반증을 보는 듯했다. 대화를 통해 기자는, 동물권 문제가 단순히 인간과 동물의 우정을 그리기 위해 <옥자>에 끌려들어온 소재가 아니라 봉준호 감독이 현재 세계의 중요한 이슈로 통감하고 감독으로서 구현할 수 있는 영화적 아름다움을 그 안에서 발견한 주제임을 확인했다. 카페에서 상주하는 고양이 후추가 무심한 척 덧문에 등을 대고 우리의 인터뷰를 엿들었다. 주차장에서 구조된 후 3kg이 늘었다는 몸으로 끙차 돌아눕는 태가 옥자 같았다. 넷플릭스 영화는 블루레이 발매가 늦는 편이라고 한다. 그때까지 감독 코멘터리를 소박하게 대신하자는 마음으로 상세히 물었다. -<괴물> <설국열차> 때보다 오히려 관객과 만남이 많은 것 같다. =극장에서 가늘고 길게 버텨보려고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다. 7월 28일에는 ‘감금틀 사육 반대 서명운동’을 <옥자>와 함께하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회원을 위한 특별상영을 하고 8월 5일에는 <옥자>와 내가 좋아하는 조지 밀러의 <꼬마돼지 베이브2>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동시상영한다. (웃음) 최대한 큰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일 기회를 만들자고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 프로듀서와 한 다짐을 실천하려고 한다. 제시된 손익분기점이 없으니 솔직히 마음 편하다. 덕분에 1895년 개관한 인천의 애관극장도 가보고 대구 만경관도 가봤다. -극중 미자의 여정이 봉 감독 자신의 할리우드 경험과 평행선 아니냐는 짐작이 있다. 말하자면, 하이브리드의 존재(영화)를 만들어 미국에 갔는데 쌍둥이 형제를 만나 고초를 겪는다는 설정에서 루시와 낸시가 (<설국열차> 배급권자로서 최종편집을 두고 감독을 압박했던) 웨인스타인 형제에게서 힌트를 얻은 건 아닌가 하는 가설이다. (웃음) =과도한 해석이긴 하지만 하비 웨인스타인의 흔적이 하나 있긴 하다. 제이(폴 다노)가 처음 미자에게 장광설로 미란도 기업의 거짓말을 설명하며 옥자가 태어난 지하 실험실 영상을 보여주는데 위치가 뉴저지 파라무스라고 나온다. 실은 파라무스의 거대 쇼핑몰에 있는 멀티플렉스에서 웨인스타인이 30분을 잘라낸 90분짜리 <설국열차> 테스트 스크리닝(관객 반응을 최종편집에 반영하기 위한 시사.-편집자)이 있었다. (좌중 폭소) 사지 잘려나간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아무 생각 없는 10대들이 팝콘을 먹으면서 “왓 더 퍽 이즈 고잉 온?” 하고 있는 광경을 프로듀서와 맨 뒷줄에서 지켜봤다. 시사가 끝나고 대행사에서 관객 설문지를 집계했는데 데이비드 린치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반짝이 양복을 입은 직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와 “봉. 아임 소 소리. 스코어 이즈 베리 배드” 하더라. 속으로 ‘아 당연히 안 좋지, 영화를 30분이나 쳐냈는데’라고 구시렁거리다 오히려 점수가 낮으니 잘된 건가 하고 있는데 웨인스타인이 다가오더니. “봉, 이츠 베리 배드. 레츠 컷 아웃 모어” 하는 거다. (좌중폭소) 남의 일이면 모든 상황이 너무 웃기고 재밌는데 불행히도 그것이 내 영화였다. 다행히 계약서에 감독판도 유사 조건에서 테스트 시사를 1회 가질 권리가 명시돼 있었고 결과적으로 감독판 점수가 훨씬 높게 나와 디렉터스 컷으로 미국에서 개봉할 수 있었다. 웨인스타인의 가위손에서 살아남은 감독 두명 중 한명이라는 말도 들었다. 다른 한명은 <모노노케 히메>를 미라맥스를 통해 미국에 배급한 미야자키 하야오다. 웨인스타인에게 선물을 보냈는데 열어보니 사무라이칼과 ‘노 컷’이라고 쓴 종이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옥자>가 올해 시드니영화제 폐막작이었다. <매드맥스> 시리즈, <꼬마돼지 베이브>, <해피 피트>와 공통점이 있으니 당연히 호주 출신 조지 밀러 감독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것 같다. =물론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가 70주년을 맞아 많은 감독을 초청한 덕분에 조지 밀러를 처음 만났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편집 중에 <설국열차>를 반복해서 봤다고 하셔서, <설국열차> 편집하며 <매드맥스2>를 반복해서 봤으니 스스로에게 영감을 받으신 것이고 나는 끼어들었을 뿐이라고 답하며 웃었다. 시드니에서 재회했다. “정말 아름답죠?” -<옥자> 안으로 들어가자. 영화가 시작할 때 울리는 여섯번의 종소리는 무엇인가. =<플란다스의 개> 오프닝을 보면 개 짖는 소리가 중앙부터 극장 한바퀴를 빙 돈다. 스피커 상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넣은 일종의 테스터다. 이번에는 종소리로 여섯 방향 스피커를 체크한 거다. 시사회에 앉아 있다가 시작과 동시에 종소리 중 하나가 깨져 있거나 안들리면 내가 ‘스위치’를 빡 누르고 곧장 연출부가 퓽 총알같이 영사실로 달려올라가 “멈추어!”라고 외치는 거다. (웃음) -그래도 영화의 오프닝을 상영관 테스트에 바치다니 상상 밖이다. =난 모든 영화들 앞에 극장시설 점검 리더 필름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안성기 선배를 캐스팅해 1분30초짜리 영상을 만드는 거다. 안 선배가 차트를 하나 들고 “지금 이 숫자를 읽으실 수 있습니까? 아니라면 보시는 상영관의 포커스는 나가 있습니다”, “다음은 스피커. 모든 종소리가 들렸나요? 그럼 안심하고 관람하세요” 하는 거다. 그래야 모든 극장이 긴장하지. 게다가 이번에는 스트리밍 공개인 만큼 인터넷 속도가 느린 나라에서도 틸다 스윈튼의 최초 숏을 종소리로 지연해 전송 상태가 정리된 다음 정상화질로 보게 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되는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의 TED 토크는 자본주의의 탐욕이나 잔혹함보다는 변태성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먹는 것들에 대해 가지는 분열적 태도랄까. =구구절절 아름답게 미란도 기업의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맨 마지막에 “무엇보다 X나게 맛있다”라고 한다. 극중 신문기사에서 루시 미란도는 사람들이 앞으로 먹게 될 동물과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는 구절이 해당 장면의 핵심이다. -공동작가 존 론슨은 미국 대테러 첨단무기 회사의 레지나 듀간이 로봇 벌새 드론을 프레젠테이션하면서 “정말 아름답죠?”라고 했던 동영상을 참고했다고 하던데. =틸다와 존과 함께 봤던 영상이다. 그 아름답다는 로봇 벌새가 독침으로 표적을 살상하는 무기 아니냐는 질문이 좌중에서 나오자 행사장이 썰렁해진다. 주섬주섬 나가는 사람도 있고. -루시는 프롤로그에서 교정기를 끼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사인을 연습하는 장면을 보면 딱 아이들이 식탁에서 그림 그리는 자세이기도 하다. 틸다 스윈튼이 인터뷰에서 <옥자>에서 가장 성숙한 존재가 옥자, 정반대 극점이 루시라고 말했더라. =<설국열차>에서는 메이슨 역으로 틀니를 했는데 틸다가 입에다 뭘 하는 걸 나보다 더 좋아한다. 대사하기도 불편할 텐데. 회의 장면에서 보면 루시는 어른이지만 징징거린다. 그래서 조금 가엾기도 하고 결국 실패할 거라는 예감이 든다. 마지막에 미자가 찾아갔을 때도 낸시 정도 되니까 미자와 대결하지 루시는 깜이 안 됐을 거다. “너는 가고 김기춘 나와!”와 비슷한 상황 아닌가. (웃음) 외젖꼭지와 작은 눈 -옥자는 돼지 수명으로는 꽉 찬 10살 시점에 영화에 소개된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서사적으로 어떤 필요였나. =즉, 공장형 축산 기준으로는 옥자가 상품성이 없다. 26마리 귀엽고 예쁜 아기돼지들은, 미란도가 지하 실험실에서 진짜 대량생산 유통을 위한 유전자 변형 돼지를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하는 동안 10년을 커버하는 장기 마케팅 도구다. 실제로 배설물에 인 성분이 적게 함유된 유전자 변형 돼지를 북미 산학협동으로 만들어내는 데 9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윤을 위해서는 대량생산이 중요한데 옥자의 젖꼭지는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나중에 개발된 돼지는 젖꼭지가 여럿인가. =생산력을 제고하려면 생체주기가 짧고 많은 새끼를 낳아야 한다. 그래서 비육장의 돼지들은 외젖꼭지가 아니다. 화면이 어두워 자세히 안 보이지만 몸도 옥자보다 작고 피부에 얼룩도 있다. 기형으로 기어다니는 돼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도저 같은 낸시는 옥자까지 도축하려고 한다. 루시라면 살려서 왕관 씌워 마케팅에 더 이용했을지도 모른다. -옥자는 디즈니적으로 귀엽지는 않지만 관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스러워야 했을 텐데 외양과 움직임의 디자인에서 어떻게 해결책에 도달했나. =첫눈에 귀엽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감수하자고 장희철 크리처 디자이너와 논의했다. 개도 첫눈에 자지러지게 귀여운 애가 있는가 하면 종에 따라 퍼그처럼 뭉툭하지만 사나흘 보면 더 정드는 종이 있지 않나. 두툼하고 둔탁한 느낌과 디즈니 스타일과 다른 콧구멍만한 작은 눈을 생각했다. 눈이 크면 빨리 호소할 수 있지만 큰 덩치의 동물이 눈까지 크면 체구가 실감나지 않는다. 하마나 코끼리를 봐도 안구가 크진 않다. 눈으로 뭔가를 호소할 때는 카메라가 빅 클로즈업으로 다가가면 된다고 봤다. 대신 귀를 키웠다. -옥자는 오른쪽 콧구멍만 인중과 연결돼 있다. =자연스럽게 자랐지만 태생은 유전자 조작이라 불균형이 있다. 장희철 디자이너와 두 번째 작업이라 <괴물> 디자인 기간의 반 정도에 해냈다. -절벽에서 미자를 구하는 장면을 보면 지능도 유전자 조작으로 올라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떨어져도 죽지 않음을 알뿐더러 행위의 논리적 결과를 예측하고 있다. =다른 슈퍼돼지의 지능은 모르지만 옥자는 물리법칙을 아는 듯하다. 나야 오로지 옥자가 어떤 귀여운 자세로 추락할까만 고민했다. -몸을 일으킬 때에도 단번에 안 일어나고 옆으로 한번 굴러 뭉기적거리고 일어나는 옥자의 모습에는 감독의 습관이 혹시 반영돼 있나. (웃음) =비만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다. 내 주변에 비만인도 많고. 나도 117kg까지 나간 적이 있다. 우리는 결코 한번에 일어날 수가 없다. 90도로 한번 꺾어 팔에 의지하며 일어나야지 불쑥 일어나면 허리를 다칠 수 있다. -추락 후 미자의 사과와 옥자의 반응은 둘의 관계를 복합적으로 잘 보여줘서 재미있다. =옥자는 “내가 죽을 뻔했구만 감 하나로 덮어?” 하는 토라진 태도고, 거기 대응하는 미자의 행동을 보면 둘 사이에 이런 상황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적 감수성이라면 미자가 울고불고했겠지만 무뚝뚝한 한국 산골 아이 미자는 다르다. -미자와 옥자는 한쪽이 어머니 역을 하지 않는 수평적인 관계다. =영화에서는 옥자가 인간이 지배하는 세계에 끌려갔기 때문에 미자가 분투를 벌이고 뛰어다니는 거지 대등한 솔 메이트다. 만약 브라질 아마존에 갔더라면 옥자가 미자를 지키거나 둘이 함께 헤집고 다녔겠지. -<괴물>의 현서가 어머니 없는 가족의 어린 엄마 역할을 했다면 미자는 나이브하지 않은 시골 소녀다. 서울에 상경해서도 별다른 문화충격을 느끼는 것 같지 않다. =실제로 시골이라고 순수하고 세속을 등진 것은 아니다. 컴퓨터는 군민회관 같은 곳의 바자회에서 가져왔을 법한 구형모델이지만 그걸로 인터넷 다 하고 ‘레티나 디스플레이’에도 관심이 있다. 서울 갈 때도 미란도 코리아 주소를 검색해 야무지게 찾아간다. -<괴물>의 크리처가 참고한 인간 모델로는 배우 스티브 부세미, 다케나카 나오토가 있었는데 옥자의 경우는. =(태블릿으로 <쉘 위 댄스>의 다구치 히로마사 사진을 보여주며) 영화에서 항상 땀에 절어 있고 되게 소심한데 춤출 때는 엄청 정열적인 귀여운 캐릭터다.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한국 문화를 연기시킨 것 아니냐는 반응도 많다. 제이크 질렌홀의 TV 동물박사 연기가 시끌벅적한 한국 예능 프로그램 진행과 비슷하다거나 낸시(틸다 스윈튼)의 의상이 한국 아주머니들의 취향과 비슷하다거나. =전혀 아니다. 오히려 배우들이 그런 표현을 너무 좋아해 말리느라 힘들었다. 샤넬 한복도 틸다가 우겨서 졌다. 조니 윌콕스 박사(제이크 질렌홀)를 보고 노홍철씨 같다는 반응이 촬영 중에도 있었는데 존 론슨과 내가 제이크에게 보여준 영상은 1960년대 영국 텔레비전 동물쇼 진행자 조니 모리스의 방송이었다. 군복 입고 나와서 침팬지랑 서로 때리고 동물한테 밟히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하긴 낸시의 옷차림도 미국 평자들은 공화당 지지자 계열의 패션이라고 부르더라. 미란도 기업이 고용한 사병 블랙초크도 한국인에게는 백골단을 연상시키지만 비슷한 이름의 미국 민간 용병(보안컨설팅) 회사가 실존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금돼지 순도를 어금니로 깨물어 확인하는 행동은. =존 부어먼 감독의 <제네럴>을 보면 아일랜드 장물아비가 같은 행동을 한다. 한국과 아일랜드만의 풍습인가? (웃음) 우리가 한국적인 요소라 생각한 것들의 많은 부분이 사실 세계적이다. 현대의 도시적 생활세계는 그만큼 균질화돼 있다. 나도 낸시 의상을 보며 <마더>의 김혜자 선생님 옆에서 춤추던 아주머니랑 비슷하지 않은가 싶었다. 제일 좋았던 틸다의 아이디어는 목베개다. 베개를 덜렁거리고 여기저기 다니는 걸 별로 창피해하지 않는 안하무인적 기운이 낸시에게 있다. 블랙초크의 모델은 유전자 변형 식품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에 의해 제3세계 농부들의 진압에 투입됐다는 보도가 나왔던 회사다.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찍은 <칠드런 오브맨>의 거리 풍경도 한국인에게 익숙한 참상과 다르지 않다. 결국 비슷한 거다. -동물해방전선(ALF)은 실존하는 단체다. 연락을 취했나. =두명을 만났다. 그들은 결코 공식 단원임을 인정하지 않고 서포터라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학 동물 실험실을 습격해 무단침입 죄목으로 실형을 살기도 했다. 헤드쿼터가 없는 점조직으로 기본적 프로토콜만 공유하는 조직으로 안다. 준비과정에서 <언더그라운드: 1990년대 ALF 후원자 그룹 매거진 모음>이라는 책을 구입했는데 미팅 자리에서 폴 다노도 슬그머니 같은 책을 꺼내놓더라. 근면성실한 배우다! 축산 대기업의 로비력이 막강하다 보니 미국에서는 ALF를 중동 테러리스트와 동격으로 치부한다고 들었다. -현실의 ALF는 영화가 그리는 것처럼 비폭력주의는 아니지 않나. =창립자 로니 리의 원칙은 극중 폴 다노가 말하는 40년 원칙과 동일하다. 다만 현실에서 항의하다 보면 경비인력이 다치기도 하고 기물도 파손된다. 영화에서도 옥자를 트럭에서 떨어뜨리는 등 실수투성이다. 두 사람에게도 “당신들의 이상이 훌륭하고 그 이상에 동의하지만 슈퍼히어로로 그릴 생각은 없다”고 했고 “당연하다. 우린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만 지나친 괴짜단체로만 그리지 말았으면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많은 영화에서 동물보호운동가들이 할 일 없는 사람들로 그려졌기 때문에 나온 우려일 거다. -ALF 단원 중 실버와 블론드는 커플로 보인다. =명확하지 않나? 서로 만지지 못해 안달이다. 어느 팀이나 서너명이 넘어가면 내부에서 연애를 한다. 유일한 여성 멤버 레드(릴리 콜린스)가 팀원과 사귀는 설정은 싫었다. 레드는 가장 냉정하고 정확하게 일을 진행하고 바주카포를 터뜨리고 운전을 맡는 역이기도 하다. 폴 다노의 제이는 조직 내에서 연애할 사람이 아니라고 봤다. 순열조합의 묘와 깽판의 폭발 -봉준호 영화에서는 언제나 운동을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격투보다 추격이 중심이다. 회현지하상가 추격전과 뉴욕 슈퍼돼지 축제의 ALF 시위 장면을 2대 세트피스로 본다면 각각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뉴욕 장면은 프로듀서들이 성취한 기막힌 순열조합의 묘다. 조립식 무대를 세번 짓고 해체하며 실제 뉴욕 파이셜 디스트릭트 촬영분과 브루클린 창고에 세운 블루스크린 촬영분, 밴쿠버 무역센터 지하 분량을 섞었다. 무대 정면 숏은 창고에서, 빌딩과 군중이 보이는 앵글은 실제 길거리에서 찍은 거다. 봉합이 감쪽같아 우리조차 헷갈렸다. 회현지하상가 장면은 질감 차이를 부각시켰다.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차갑고 광택나고 미끈거린다. 나무와 흙의 질감 속에 살아온 옥자와 미자는 도시에서 계속 유리벽에 막히고 미끄러지고 부딪힌다. 또, 도시에 와서 둘은 계속 박스 안에 갇힌다. 창 없는 복도에 갇히고 지하상가로, 지하주차장으로 계속 내려간다. -내용의 긴박함과 비극성을 떠나 추격의 절정에서 카니발스러운 음악을 선호한다. 회현지하상가 시퀀스 막판에 흐르는 마케도니아 브라스 밴드 잠보 아구세프의 음악을 듣고 <괴물>의 <한강찬가>를 추억하는 관객도 있을 거다. =무수한 물건이 있는 지하상가는 정보 과잉의 공간인데 그것이 깽판의 절정에 이르니 음악과 사운드도 완전 혼을 빼놓겠다는 방향으로 갔다. 그러다 조용해지면서 존 덴버 아저씨가 등장한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에도 존 덴버 노래가 나왔나? 몰랐다. 편집실에서 어릴 적 형이 즐겨 듣던 <Annie’s Song>을 넣었는데 잘 어울려서 결정했다. -충돌의 종착점이 천원숍이어야 했던 이유는. =혼란의 극점이니 색색의 온갖 물건이 있는 곳이어야 할 것 같았다. 레드가 우산을 집어들어도 어색하지 않고 옥자의 발바닥에 박힐 파편도 있어야 하고, 슬로모션이 걸릴 테니 사물들이 이리저리 튕기고 팔락였으면 했다. 예를 들어 행남자기 매장이었다면 곤란하다. (좌중 폭소) 옥자 목소리 연기를 한 이정은 배우가 휠체어를 타고 비명 지르고 옥자가 코너를 도는 순간부터 남양주 세트장 촬영분이다. 이하준 미술감독이 기막히게 지하상가를 복제했고 다이소 쪽에서 적극 협찬해줬다. -옥자와 인간 배우가 뒤엉키는 장면에서 테니스 공을 연기의 기준점으로 쓰지 않고 실제 모형을 썼다고 들었다. 에릭 드 보어 시각효과감독이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어떤 도움을 줬나. =(현장 사진을 보여준다. 옥자의 얼굴 모형이 몸크기만 한 틀에 붙어 있고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 있는 장치가 있다.) 미자는 만날 얘를 만지며 연기했다. 에릭 드 보어가 어디까지 손발이 들어가도 되는지 기술적 조언부터 나중에 CG로 커버가 가능한지 여부를 즉석에서 판가름해줬다. 그의 오른팔인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 스티븐 클리가 직접 연기하며 후반작업 CG애니메이션과 현장을 연결했다. 몸을 대신한 틀은 배우보다 촬영감독을 위한 것으로 앵글에서 옥자의 크기를 정확하게 가늠하는 기준이었다. -스스로 미쳐가는 동물학자 조니 윌콕스는 대변하는 이슈가 많아 좀 벅차 보이기도 했다. 동물을 사랑해서 직업을 택했는데 기업의 후원이 공장 축산의 이윤을 늘리는 연구에 집중되다 보니 분열증을 일으킨 경우다. 여성 보스 아래에서 일하는 상황을 수용 못하는 면도 보인다. =루시에게 모욕당하고 조니가 기도하는 옥자의 폭력적 짝짓기 장면을, 나는 동물이 실제 축산업에서 겪는 수난으로서 접근했지만 존 론슨 작가는 조니가 품은 여성에 대한 병적 감정도 은연중에 표현한 것 같다. 조니가 옥자를 루시와 동일시했을 수 있다. -낸시와 루시의 관계를 묘사한 신이 삭제된 건 아닌가? ALF 단원을 비롯해 조연 캐릭터의 스토리도 덜 개발돼 시리즈의 첫편 같은 기분도 들었다. =원래는 프롤로그 직후 낸시가 루시와 통화하는 숏이 있었으나 루시의 화려한 연설에서 조용한 강원도 풍경으로 넘어가는 흐름이 좋아서 포기했다. 그 숏이 살아남았다면 처음부터 루시와 낸시의 이중 관계를 포석하는 장점은 있었을 거다. ALF에 대한 미니시리즈를 보고 싶다는 트윗도 봤다. 그러나 <옥자>는 미자와 옥자의 시점에 입각한 영화이니 둘의 관점에서 보이고 추측되는 만큼이면 적절하다고 봤다. 다른 누가 후속 시리즈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설국열차> TV시리즈도 관여하지 않고 있다. 스콧 데릭슨 감독(<닥터 스트레인지>)이 잘하겠지. -원래 감성과 지성을 지닌 옥자는 도리어 인간에게 학대받은 후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한동안 ‘짐승’이 된다. 그런데 옥자가 물리적으로 해치는 인간은 미자뿐이다. 미자가 팔을 다치는 장면은 정확히 <모노노케 히메>의 멧돼지 공격을 떠올리게 했는데. =그보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작은 동물이 소녀의 손가락을 물었는데 가만히 기다리자 귀를 내리고 할짝할짝 핥는 장면에서 더 영향을 받았다. 찍을 때도 생각했고.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공장식 축산업에 관한 다큐멘터리 등을 사전에 배우들에게 보여줬다는 릴리 콜린스의 인터뷰를 들었다. 콜로라도 도살장 견학 외에 어떤 리서치가 있었나. =허구한 날 도살장을 다닐 수 없으니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 내레이션이 일체 없는 독일 작품 <아워 데일리 브레드>가 큰 도움을 줬다. 특히 이마에 스턴건(충격총)을 써서 동물을 절명시키고 회전통에서 굴러나오게 하고 거꾸로 매다는 도살장 구조를 빌려왔다. 오스카 단편다큐멘터리상 후보였던 <리퍼>(The Reaper)는 스터너라 불리는 방아쇠 당기는 담당자의 일상을 “동물을 죽여 자식을 먹인다”라는 컨셉으로 지켜보는 영화다. 살해와 부양의 개념이 병치된다. 촬영도 훌륭하다. 그 밖에도 식품산업 실상에 관한 교육적 다큐멘터리는 넷플릭스에도 많다. <푸드 인코퍼레이티드> 등등. -동물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상품으로서 몸의 일부를 채취당한다는 설정이 <옥자>의 주제와 관련해 중요해 보인다. 마블링을 추출해 검사하는 기구도 등장하는데. =만든 소품이 아니라 업계에서 쓰는 물건이다. 찔렀다 빼면 고기가 뽑혀 나오고 소는 몸에 구멍이 난 채로 멍하니 서 있다. 쌀 수매할 때 농협에서 가마니를 쑤시는 도구를 살아 있는 소에게 쓰는 셈이다. 실제 도살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도 생명체에서 제품으로 전환되는 경계가 어디냐였다. 스턴건으로 절명당했을 때도 소는 여전히 동물이다. 목을 따서 거꾸로 매달아 피를 뽑을 때도 여전히 죽은 동물 같다. 그러다 0.1초 만에 소 전체의 가죽을 벗기는 거대한 기계가 다가오고 순식간에 붉은 살덩이가 출렁한다. 그 순간부터 제품이구나 싶었다. 동물의 가죽이 벗겨지는 사운드가 있다. 엄청난 기계음 소용돌이 속에 그 소리만 따로 들렸다. 정말 음향효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소리였는데 <옥자>에는 그런 장면이 안 나온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시장에 가면 닭을 잡아서 줬다. 그 울음소리와 닭털 냄새가 강력하게 몸 안에 남아 있다. 요즘 스티로폼 접시에 얹힌 정육을 사는 현대 소비자에겐 그런 과정이 완전히 가려져 있다. =도살장을 유리벽으로 만드는 순간 전세계가 육식을 멈추게 될 것이라는 말도 있다. 바코드가 박힌 마트 제품으로 보니까 안전한 구역에 머물 수 있는 거다. -<설국열차>의 양갱과 <옥자>의 육포는 휴대할 수 있는 식품이고 원재료를 상상하기 힘든 형태의 식품이기도 하다. =루시가 육포 먹는 모습을 꼭 넣고 싶었다. 자기들이 생산하는 식품을 정작 먹지 않는 내부자들도 있지만 루시는 유전자 변형식품에 대한 공포가 과장이라는 믿음을 정말 갖고 있다. 미란도 기업 내부자들이 직접 먹지 않는다면 영화의 층이 너무 단순해진다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의 변명이랄까. 사실 유전자 변형 동식물에 관한 논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아무튼 공룡기업이 그렇게 돈을 퍼부어도 안전성을 입증한 연구는 아직 없지 않나. =위험성을 입증한 프랑스의 실험이 있었는데 반박이 다시 나왔다. 그런데 반박한 과학자들이 식품기업의 장학생이었음이 폭로됐다. 위험성을 입증하라는 요구가 나왔고 “아니 당신네가 안전성을 입증해야지 우리가 왜 위험성을 입증해야 하는가”라는 대응이 있었다. 현재 유전자 변형식품에 관해 한국과 일본은 너그럽다. 참여연대가 금지는 못하더라도 알고는 먹도록 성분을 표기하라는 주장을 했는데 국회 통과가 안 된 상태다. -<옥자>의 도살 장면은 다큐멘터리에서 본 현실보다 오히려 덜 끔찍하다. 강제수용소처럼 보이는 비육장의 풍경이 더 강력했다. =콜로라도에서도 “우리 시스템이 가장 인도적”이라고 자랑하더라. 위생관리도 잘하고 스턴건 도살은 NGO도 추천하는 방식이다. 나 역시 도살장 내부를 볼 때는 압도적 냄새와 초현실적 이미지에 멍했고 촬영이 허락되지 않아 눈으로 사진을 찍겠다고 긴장해 있다가 바깥으로 나와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기나긴 소의 행렬을 마주쳤을 때 무너졌다. 소들의 경로는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이 고안한 선진적 방식에 따라 공포를 최소화하도록 디자인돼 있었지만 닥칠 일을 모르는 그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 힘겨웠다. 6개월간 살이 찌워진 다음 단계적으로 도살장에 가까워질 수만 마리 소의 무리가 자동차로 30분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비육장 디자인에 현대사가 남긴 이미지는 영향이 없었나? 클레이애니메이션이지만 <치킨 런>에도 2차 세계대전 수용소 같은 양계장이 나온다. =당시엔 떠올릴 겨를이 없었고 다만 미술팀과 철조망 디자인은 2차 세계대전 수용소, 특히 아우슈비츠 자료를 참조하자고 이야기했다. 동물의 입장에서 상황을 간접체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옥자의 시점숏도 있고 불특정 다수 돼지의 시점도 있다. -결말에 아기돼지의 구조와 관련된 플롯이 몸속에 혈연 없는 어린 것을 품고 구한다는 면에서 <괴물>과 너무 비슷하다는 주저는 없었나. =유사하다고 느꼈지만 상관없었다. 2고까지는 없던 설정인데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자세히 보면 제이와 미자가 도살장에 들어가도록 케이가 전기 철조망을 벌려줄 때 문제의 돼지 가족이 옆에 있다. 그 광경을 보고 학습한 아빠 돼지가 감전의 고통을 참고 철망을 벌리는 것이고 엄마 돼지가 아이를 밀어 내보내는 거다. -<옥자>를 보면서 동물권 운동가들을 다른 영화처럼 놀림감으로 삼을까 봐 우려했던 입장이다. 한국에서는 특히 동물권 옹호와 채식주의를 유난 떠는 행동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럴 거였으면 ALF 단원들이 햇살 속에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에필로그를 시나리오에 쓰지도 않았겠지. 미자는 옥자 때문에 울고불고하니 백숙과 생선도 먹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는데 동의할 수 없다. 우리 대다수가 동물을 사랑하면서 삼겹살도 먹는다. 육식하는 사람이 모두 동물을 학대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대량생산에 동물을 편입시킨 공장식 축산이다. 지금 같은 축산업을 유지하면 소요되는 물과 사료, 메탄가스와 폐수로 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수학적으로 지탱이 불가능하다. IMF 때 금 모으듯 전 인류가 합의해 육식을 줄여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감정을 떠나 간단한 산수이고 더이상 ‘유난 떠는’ 동물 애호가들만의 이슈가 아니다. 완전채식을 하건 1년에 한번 개를 먹건 그것은 개인이 알아서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고기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산술적으로만 봐도 환경 재앙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윤리적 선택의 단계가 있다. 소녀의 거래 -미자네는 이웃이 하나도 없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옥자는 어쩌면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곳에서나 자유로울 수 있고 조금만 사람이 주변에 많아도 문젯거리가 되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즉, 고립된 산골 말고 나머지 세계에서는 행복한 공존이 어렵다는 체념의 표현 같기도 하다. =제작진끼리는 미란도 기업이 어떤 기준으로 26개국의 슈퍼돼지 사육자를 선정했을까에 대해 토의했다. 우수 축산농은 말뿐이고 정작 제품이 될 돼지는 따로 키우고 있으니 아마 마케팅에 도움될 지역색이 뚜렷한 경치 좋은 곳에 사는 농부를 선정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사실 주희봉(변희봉)도 그냥 동물을 산에 풀어놓는 것 외에 테크닉이 없다. (웃음) -“옥자는 돈으로 살 수 없다더라”는 할아버지의 말이 미자의 여정을 시동하는데 결국 미자는 옥자를 산다. 가족을 포함해 살 수 없는 게 없는 세상이다. 어떻게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입장(동물은 상품이 아니라는 입장)과 모든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입장의 투쟁이므로, 옥자를 되찾은 결말은 미자의 성공이지만 만물은 상품이라는 입장이 이긴 셈이다. =미자도 인정하는 셈이 되니 씁쓸하다. 폴 다노의 파트너인 배우이자 작가, 연극 연출자인 조이 카잔(<빅 식> <루비 스파크스>)이 <옥자>의 시나리오를 읽고 미자가 금돼지로 낸시와 거래하는 장면에서 시나리오가 좋은 의미에서 다른 레벨로 올라간다는 감상을 줬다. 반면 이 허무한 귀결이 클라이맥스 맞냐는 반응도 내부에서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ALF가 고기 공장을 뒤집어엎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아니지않나. =북미 최대 규모 ALF 시위를 도살장에 소집해 모든 돼지를 해방시키는 아이디어를 약 이틀 반 정도 생각했지만 역시 싫었다. (웃음) 극과 극의 두 반응이 공존해서 나로서는 좋다. 촬영 당시에는 당연히 씁쓸한 이야기라 여기며 찍었는데, 아쉬워하는 반응을 접하다보니 요즘은 미자가 낸시 수준에 맞춰준 거라고 설명하고 다닌다. 낸시는 설득될 사람이 아니다. 죽여야만 팔 수 있으니 죽이고 자신의 자산이니 집에 돌려보낼 줄 수 없다. 방법은 상품으로서 사는 것 뿐이다. 미자가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고 맞춰주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중이다. (웃음) -에필로그 전 마지막 숏이 아름답다. 미자와 할아버지가 밥을 먹자 아기돼지는 마루에 올라와 엉덩이를 들이밀고 마당을 향해 앉고, 원경 퇴창으로 옥자의 얼굴이 보인다. <괴물>의 매점 라스트신의 변주 같기도 하다. =처음부터 그렇게 끝내려 했다. 네댓개 레이어로 감싸인 숏이다. 새끼돼지가 궁둥이를 내려놓는 속도가 좋지 않나? 여기서 옥자 얼굴이 좀 어두운데 “옥자가 뒤끝이 있다”는 해석도 있다. 미자가 잘 때 자기를 미란도에 넘긴 희봉의 방에 들어가 앞발로 지그시 눌러준다거나. (좌중 폭소)

새 정부에 바란다, 김숙현·명소희·박홍준·정용택·홍형숙 독립영화 창작자 5인의 대담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80여명이 자발적으로 텔레그램에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대화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화의 내용은 새 정부의 영화정책에 대한 제언이었다. 이에 앞서 감독, 평론가 등 작가들이 중심이 돼 운영되는 인디포럼도 올해 영화제 기간 중 ‘#독립영화 #창작자 #대나무숲’이라는 특별포럼을 열었다. 인디포럼은 홈페이지에 포럼 내용을 정리해 공개했고 후속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게시판을 신설했다. 영화계 각 단위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 취임 이후 본격화된 새 정부 영화산업 로드맵 구상에 의견을 제기하는 흐름에서 나온 움직임이다. 이런 창작자들의 목소리는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독립영화가 뿌리째 흔들리다 못해 고사 상태에 처했다는 심각한 문제의식이 전제됐다. 창작자 스스로 자신들의 현재 상황을 타개할 독립영화 진흥책을 생각해보려는 건설적인 행보이기도 하다. 향후 독립영화 감독들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토론의 자리를 마련해 문체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창작자의 의견을 직접 전달할 예정이다. 7월 12일 독립영화 감독들이 대담을 위해 다시 만났다. 참석자는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 등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김숙현 감독, <24>를 연출하고 신진 여성감독으로서 동료 감독들과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이하 두영찍)라는 기획단을 만든 명소희 감독, <5월의 봄> 등을 연출한 박홍준 인디포럼 의장, 홍대 두리반 강제 철거 반대 투쟁을 담은 <파티51>의 정용택 감독, 1980년대 중·후반부터 독립영화 현장에서 활동하며 <변방에서 중심으로> <경계도시> 등을 연출한 홍형숙 감독이다.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독립영화 진흥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그들 각자가 경험한 영화 현장을 바탕으로 문제점과 대안 논의 등 전방위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독립영화 창작자들이 자발적으로 새 정부의 영화정책 방향에 목소리를 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먼저 짚어보면 좋겠다. =박홍준_ 올해 인디포럼영화제를 준비하던 때가 새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이라 영화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인디포럼은 작가 중심으로 운영하므로 플랫폼으로서 논의 테이블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제 기간에 특별포럼을 열었고 이후 패널로 참석한 <거미의 땅>(2012)의 김동령 감독님과 우리의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기존에는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가 독립영화계의 목소리를 모으고 정부쪽과 의견을 조율하는 등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비회원인 감독들은 논의 진행 사항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양한 형태로 작업하는 신진 감독도 많은 상황이다. 창작자의 목소리를 좀더 분명히 낼 필요가 생겼다. =정용택_ 지난 9년간 영화정책은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흘러갔다. 동료 감독들, 미디어 활동가들이 계속 주변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새 정부에 거는 기대도 크지만 지금 재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더이상 영화를 만들기 힘들겠다는 우려가 커졌다. 나도 한독협 회원이지만 창작자들이 교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도 있다. 독립영화라는 큰 틀 안에서 정부, 영진위 등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정보 등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 지난 6월 21일에 열린 도종환 문체부 장관과 독립영화계의 간담회만 해도 그렇다. 종로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는데 그 내용을 사전에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극장, 배급 관계자들은 있는데 내가 아는 다큐멘터리 감독은 한분도 안 계시더라. 창작자들이 모여서 얘기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홍형숙_ 1998년 한독협이 생겼으니 내년이면 20주년이다. 협회 회원인 나는 그간 한독협이 세대교체가 되고, 미디액트나 인디스페이스 등 유관 단위들과 보조를 맞추며 논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조직력 있는 협회가 정부와 대화에 나서 협상력을 발휘해온 부분은 분명 인정해야 한다. 한독협쪽도 간담회 전날 연락을 받았고 혹여 들러리 서는 게 아닐까 염려했지만 만나서 독립영화계의 상황을 정확히 전하고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와중에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모인 것이다. 그동안 창작자들이 한독협 내 다큐멘터리분과라는 한정된 형태로 만났다면 이젠 훨씬 많은 개별 창작자를 흡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이는 한편으로 창작자들이 자신의 말로 문제의식을 전하려는 건강한 움직임의 시작이다. =명소희_ 신진 여성감독으로서 이 자리에 나왔다. 텔레그램 단체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선배 감독들과 신진 감독인 내가 느끼는 고민의 결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선배 감독 중 많은 분이 신진 감독의 멘토이다보니 더욱 그렇다. 정책 토론방이 생긴 뒤 신진 감독들은 ‘우리도 움직여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 =김숙현_ 실험영화, 다큐멘터리, 예술영화의 중간 지대에서 작업하는 이들의 미학적 고민은 상당하다. 독립영화가 계속 변화해오면서 미학적 가치도 분화됐다. 지금의 젊은 관객은 관심의 영역이 다양해 기존 독립영화의 미학적 준거로는 다 담아낼 수가 없다.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런 변화가 기존의 독립영화라는 기표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화 가능할까. 사실상 지난 정부에서 실험영화는 영진위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지원 분야가 극영화, 다큐멘터리로만 구분돼 있다. 다큐멘터리 부문에 지원해 ‘제 영화는 실험영화입니다’라고 설명해야 한다. 최근 몇년간 영화제 상영작을 장르별로 분석해봤다. 장르별 편수를 공지하는 곳은 서울독립영화제와 인디포럼뿐이다. 실험영화가 5~6% 이상이다. 그에 합당한 제작지원이 따라야 한다. 올해 영진위 제작지원 개편안을 보면 4억원에서 10억원 미만의 저예산 독립영화는 사업자등록증까지 있어야 한다더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로 카테고리를 나누는 데도 반대한다. 정권에 따라 그런 카테고리는 계속 바뀔 테고 특히 실험영화는 시장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제든 어디로든 이동 가능하다. 독립영화라는 큰 틀 아래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 독립영화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6월 22일 영진위는 ‘영화발전기금 2018년도 기금 사업 설명 자료’를 발표했다. 2018년 총예산은 2017년 대비 5% 감액됐고, 정부의 입맛에 맞는 영화에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가족영화 제작지원은 폐지했다. 한국영화 기획개발지원 대상에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없고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은 2017년 대비 동결이다. 이런 흐름에 대해 좀더 얘기해봤으면 한다. 박홍준_ 한번 물어보자. 저예산영화가 독립영화인가. 영진위는 독립영화 제작지원을 다양성영화 제작지원, 비상업영화 제작지원 등으로 이름만 바꾸어왔다. 고영재 한독협 대표도 “독립영화 제작지원으로 바꾸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홍형숙_ 영진위야말로 적폐 청산의 대상인데 말이다. 시장 중심의 논리로 독립영화를 말하는 현재의 좌표에서 이동해야 한다. 시장 질서 안에 있는 영화는 정책 방향을 그 질서대로 잡으면 된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시장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다. 특히 한국의 독립영화는 태동부터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의 성격이 분명했다. 저예산영화는 상업영화 내에서 비교적 예산이 적은 영화를 퉁쳐 말하는 게 아닌가. 끼워 넣기다. 독립영화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영진위 집행 예산 총액의 20%는 반드시 독립영화 예산으로 확보해야 한다. 정용택_ <워낭소리>(2008) 이후 독립영화계에서 이른바 ‘대박 영화’를 향한 욕망이 생겨났다. 그걸 또 적절히 상품화해 CGV아트하우스 등이 독립영화를 배급하면서 독립영화라는 개념에 혼란이 생긴 측면이 있다. 그 이전 독립영화는 20~30개 상영관에서 관객 1만명 정도만 들어도 대박이라고 했다. P&A(Print & Advertisement)비용만 겨우 맞췄을 뿐 제작비조차 회수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CGV아트하우스가 배급하는 독립영화는 개봉 전부터 시사를 수십회 해 개봉일에 이미 상당한 관객수를 기록하곤 한다. 실험영화를 포함해 애초에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영화는 아예 배급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극장 개봉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통로가 전무하다. 김숙현_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비평이 살아나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난 감독에게는 적어도 인정 욕구라는 상징 자본이라도 있어야 한다. ‘네 영화는 가치 있다. 네 작품이 더 많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하는 평가 말이다. 최소한의 인정을 위한 창구, 담론화해줄 수 있는 비평계의 흐름이 필요하다. 작가를 위한 정책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독립영화 한편을 만들면 관심 갖고 말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일에 가치를 느끼고 다음 영화를 만들 방편을 강구할 힘이 났다. 그런데 지금은 오로지 <씨네21>에만 기대고 있다. (웃음) 비평가들도 ‘관객이 비평을 워낙 안 보니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한다. 영화장(場)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장이 꼭 필요하다. 명소희_ 상당히 공감한다. 이와 함께 얘기하고 싶은 건 멘토링 시스템이다. 신진 감독에게 멘토링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멘토-멘티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선후배간 위계와 권력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멘토가 아닌 신진 감독의 영화를 새롭게 끊임없이 읽어내고 발견해주고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발판이 돼주는 게 비평이다. 박홍준_ <씨네21>에서 독립장편극영화 비평도 많이 해주면 좋겠다. 감독들은 정확한 비평을 원할 거다. 어떤 작품을 두고 그 작품이 과연 독립영화인가 하는 문제제기도 해주면 좋겠고. 물론 정부가 독립영화 비평이나 비평 잡지 활성화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제 수상작 중심의 발굴이 아니라 영화를 많이 보는 비평가들이 글을 쓸 수 있는 지면이 있어야 한다. 단계별로 최적화된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명소희_ 신진 감독의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정책이 상당히 부족하다. 신진 감독들은 멘토링, 피칭, 제작지원 등 상업적 시스템 안에서 제작지원을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환경부터 경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립다큐멘터리라는 게 뭘까 고민하게 된다. 신진 작가를 대상으로 규모가 큰 제작지원 정책을 갖춘 것은 DMZ국제다큐영화제, 영진위 정도고 그외에는 규모가 작거나 멘토링 시스템에 기댄다. 신진 감독도 영화를 만드는 한명의 감독이다. 제작지원을 받을 때마다 매번 다른 멘토에게 다른 코멘트를 받는 게 과연 효과적일까. 멘토링 여부를 신진 감독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멘티가 멘토를 선택하는 매칭 방식이어야 한다. 멘토링의 매뉴얼이 없는 것도 문제다. 멘토-멘티가 서로 맞지 않거나 남성 멘토와 여성 멘티 사이에 문제가 생기거나 경력 차에서 오는 부당함 등을 개별 감독이 풀어야 한다. 박홍준_ 독립영화는 창작권 보호가 기본이다. 그렇다면 멘토링은 왜 필요한 것인가. 제작지원을 위한 방편이라면 신진 감독을 기존 감독과 동등한 위치에서 봐줘야 한다. 지원하고 싶은 부분에서 신진일 뿐이다. 멘토-멘티 관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일이 벌어지면 그 책임을 당사자에게 전가해버린다. 공적 자금이 투자한 지원제도에서 멘토링은 없어져야 한다. 홍형숙_ 제작지원제도도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 등 단계별로 최적화된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예컨대 제작 기획 단계에서도 사전 취재가 필요해 스탭을 꾸린다. 그런데 감독 본인과 스탭 인건비는 제작지원비로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 e나라도움(기획재정부가 국고보조금의 예산 편성·교부·집행·정산 등의 전 과정을 전자화해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이다.-편집자) 시스템도 문제가 많다. 피칭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이 있어야 가능한데 독립영화 특히 다큐멘터리가 시장이 있나. 공공의 채널인 방송이 다큐멘터리의 플랫폼이 돼야 한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국내외 방송과 영화의 펀딩 플랫폼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특화해야 한다. 창작자들이 작품마다 어떤 형태의 피칭에 참여할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독립영화 제작지원의 전체 파이가 커져야 함은 물론이다. 정용택_ 방송국 외주 프로듀서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송국에 납품하고 일정 제작비를 받으면 끝이다. 제작권은 방송국에 귀속된다. 유럽은 방영하고 다른 편집본으로 극장 개봉도 하는 선순환 구조다. 방송법 개정이 필요하다. 명소희_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멘토링과 피칭이 결합돼 있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 지원해 4주간 토요일마다 시간을 내 피칭 멘토링을 받았다. 엄연히 노동력을 들였는데도 창작자에겐 아무런 보수가 없더라. 사실 나는 아이를 지방의 친정에 맡기고 왔고, 아르바이트를 포기하고 오는 이도 있었다. 1500만원을 두고 다섯팀이 경쟁했는데 극장을 빼곡히 메운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극장 어딘가에 앉아 있을 심사위원들을 상대로 피칭을 해야 했다. 어떤 경우는 피칭으로 발표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다. 또 나처럼 사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경우는 작품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나에 대한 문제제기성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웃음) 중견 감독에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피칭이 있는 제작지원에는 지원하지 않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항상 고민이다.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현장에서 이러한 시스템이 과연 맞는지 이제는 얘기를 해봐야 할 때다. 박홍준_ 유통 관계자들이 오는 마켓에서야 피칭이 가능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관객 앞에서 피칭하는 건 아이템 유출이라는 문제가 생길 우려가 크다. 인터뷰 심사로도 충분히 가능한데 주체측에서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꽤 많다. 창작자들이 먼저 목소리를 내야 한다 -도종환 장관은 취임 전인 지난해 11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지난 6월 30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영화산업 독과점 개선 방안’ 간담회를 마련해 한국영화의 독과점 규제 방안을 논의했다. 대기업 규제와 함께 또는 별개로 독립영화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다. 정용택_ 배급과 상영 분리는 영화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독립영화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는 없다. CGV아트하우스의 독립영화 배급도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단관 예술관 등에서 <옥자>(2017)를 배급하면서 독립다큐멘터리가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산업적 욕망에 따라 각자의 선택지가 달라질 수 있어야 하는 건 제작지원제도만이 아니다. 배급제도도 마찬가지다. 멀티플렉스마다 한 관 정도는 독립영화전용관으로 만든다든지 독립영화전용관, 예술영화전용관 등에서 한 작품의 최소 상영일수를 보장하는 등 보다 세심하고 현실적인 방안이 따라야 한다. 박홍준_ 콘텐츠가 없으면 이 모든 논의가 다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창작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게 더욱 중요하다. 창작자의 복지를 얘기하는 이유도 제작지원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창작 생태계만이라도 보호된다면 좋겠다. 결과적으로 파이는 커져야겠지만 원칙이 없으면 또다시 나눠 먹기 식밖에는 안 된다. 도종환 장관도 “문체부 예산을 확정하는 기획재정부를 설득할 수 있게 영화계가 힘을 모아달라”고 하는데 문화예술진흥기금 등이 기획재정부 통제하에 있는 것도 문제다. 국고 지원이 가능하려면 독립영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공론의 장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김숙현_ 정부 정책이 불필요하게 세분화되고 개념 혼용으로 복잡해져 창작자들이 좇아가기가 너무 어렵다. 창작자가 많아진 만큼 각자의 욕망도, 지향하는 영화적 실천 방식도 다 달라졌다. 하나의 창구로 모이기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파편화돼 작업하는 실험영화 창작자들이 적어도 자신의 최소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창구는 있어야 하지 않나. 홍형숙_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만난 한 관객이 이렇게 묻더라. “의미 있는 작품 만들어줘 고맙다. 근데 무척 궁금하다. 이렇게 해서 먹고살 수는 있는 거냐.” 영화를 만들어야 하니 지난해 서울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에 신청해 제작비를 받았다. 후배 감독들에게 많이 미안했고 가슴 아팠다. 경력이 쌓인 만큼 제작환경도 개선돼야 한다. 영화정책이 정권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상황만큼은 제발 벗어나길 바란다. 명소희_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 모든 게 당장은 내 일이 아닌 것 같아도 결국에는 내가 맞닥뜨려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동료들과 다 같이 다음 영화를 만들고 싶다. 건강한 제작 기반에서 우리의 얘기를 영화로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나부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동료들이 다음에 좀더 쉽게 얘기하고 나보다는 좀더 나은 제작환경에서 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영화의 역사와 결혼한 배우’ 잔 모로를 기리며

잔 모로와의 첫 만남의 영화가 더 근사한 작품이었다면 좋았을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잔 모로의 부고 소식에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나 <줄 앤 짐>(1962)의 그녀를 떠올린다지만, 그녀에 대한 내 기억의 첫인상은 수상한 서부극에서의 총을 든 여인의 모습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감독이 루이 말이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을 정도로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에 보게 된 영화다. 80년대 후반, 어느 주말 저녁에 텔레비전으로 <비바 마리아>(1965)와 만났다. 물론 그녀의 출연작을 이미 보긴 했었을 것이다. <현금에 손대지 마라>(1954)나 <대열차 작전>(1964) 같은 영화를 유년기 때 텔레비전으로 봤으니 그녀를 몰랐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장 가뱅이나 버트 랭커스터는 기억해도 잔 모로는 그런 영화들의 한구석에서 어떤 인상이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비바 마리아>가 그렇다고 잔 모로를 영접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작품은 아니었다. 나는 그때 브리지트 바르도 때문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혁명의 마리아 <비바 마리아>는 멕시코 혁명을 다룬 일종의 자파타 웨스턴으로, 내용은 시시하지만 두 여인이 혁명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등장해 군인들과 과감한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만으로도 흥미롭긴 했다. 아일랜드 혁명가의 딸인 마리아(브리지트 바르도)가 아일랜드 독립을 꾀해 테러를 감행하다 멕시코까지 흘러와 유랑극단 가수인 또 다른 마리아(잔 모로)를 만난다. 이어 둘은 의기투합해 정의를 외치며 멕시코 혁명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바르도는 잔 모로에게 혁명과 테러를 전파하고, 잔 모로는 선머슴 같은 그녀에게 반대로 사랑의 쾌락을 전수한다. 잔 모로의 가르침은 이때부터 시작이었을까. 90년대 초에 개봉한 <니키타>(1990)에도 그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잔 모로는 니키타에게 몸놀림과 매너, 화장이나 패션에 대해 가르침을 준다. 무엇보다 여성으로서의 쾌락에 자유롭게 너를 맡기라 권고한다. 아무튼, <비바 마리아>에서 잔 모로는 사랑의 메신저이자 전사인데, 그럼에도 그녀를 기억하게 한 장면은 액션이나 사랑의 순간들이 아니다. 영화의 중반쯤, 꽤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장면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바르도와 잔 모로의 얼굴이 마치 잉마르 베리만의 <페르소나>(1966)에서처럼 겹치는 순간이다. 카메라는 두 마리아를 한 화면에 단일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포착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바르도를 쫓던 카메라에는 갑자기 잔 모로의 얼굴이 등장하고, 반대로 잔 모로가 움직여 기둥 뒤로 사라지면 반대편으로 바로도가 출현한다. 두 얼굴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순간으로, 그녀의 얼굴들이 서로 닮아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한 사람이었던 마리아가 둘로 나뉘고 있는지 혼란스럽다. 이야기 전개와는 상관없는 과잉의 순간이다. 이 시퀀스가 지금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그녀가 전후 프랑스 영화사를 새롭게 작성한 누벨바그의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르도와 잔 모로는 전후 해방의 시대에 모든 종류의 터부를 붕괴시키고자 했던 누벨바그 감독들이 꿈꿨던 현대적 여인의 두 초상이자 이상적 종합이다. 잔 모로는 그들이 꿈꾼 혁명의 마리아인 것이다. 변용의 배우 여기에 누벨바그 작가들의 피그말리온의 신화가 있다. 말하자면, 잔 모로의 이미지는 누벨바그 작가들의 섬세한 손길과 그들이 믿는 영화의 힘에 따라 변용되었다. 1928년생인 잔 모로는 이미 1947년에 연극 무대에 데뷔했고, 1949년부터 영화에 출현해 루이 말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 출연하기 전까지 이미 20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녀는 갑자기 새롭게 등장한 스타라기보다는 당시 주류 영화의 한계적 이미지에 갇혀 있던 배우였다. 잔 모로의 변화는 그러므로 누벨바그 작가들의 출현과 젊은이들의 파격적인 영화작업과 함께 시작했다. 언젠가 잔 모로는 누벨바그가 기성세대들에게는 공포였다며 “관습에 따르지 않는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출현에 영화계 전체가 공포를 느꼈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젊은 작가들은 그러므로 잔 모로에게 단지 새로운 배역을 주었던 것으로 관습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잔 모로에게 접근하고자 했다. 1957년, 트뤼포는 이미 잔 모로를 향해 “그녀는 프랑스영화계의 가장 위대한 연인이다. 갱의 무리가 서로 죽도록 치고받는 동안에도 그녀는 댄스 스커트를 입고서 서커스단에서 춤을 추고, 사디스트에게 학대당하고 기관총 세례를 뚫고 나가면서도 오로지 사랑만을 생각한다. 떨리는 입술을 지니고 머리를 풀어헤친 그녀는 이른바 ‘도덕’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이, 사랑을 통해 사랑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제작자와 감독들이여, 그녀에게 진정한 역할을 주라. 그러면 우리는 위대한 영화를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 찬사를 보냈었다. 트뤼포의 고백처럼 누벨바그 작가들은 잔 모로의 얼굴과 몸짓, 특유의 걸음걸이에서 해방 된 여성의 자유를 체현하는 은막의 뮤즈를 발견하고자 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의 오프닝 장면은 변화의 시작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잔 모로의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개시한다. 마치 칼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1928)에서의 팔코네티처럼 수수한 얼굴로 등장한 그녀는 “더이상은 못 참겠어. 당신을 사랑해”라 말하고 있는 중이다. 그 어떤 설정도 없이 루이 말은 과감하게 잔 모로의 거대한 얼굴을 스크린에 투사한다. 카메라의 새로운 힘이 그녀를 태어나게 한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들 또한 잔 모로가 무기력하게 파리의 밤거리를 걷는 순간들로, 순수하게 관조적 접근일 뿐이지만 그녀의 어쩔 수 없는 허무감이 화면 가득 강렬하게 전달된다. 또 다른 시적 리얼리즘이라 해야 할까, 그녀의 얼굴에서 걸음에서 우리는 불가해한 내면과는 상관없는 잔 모로의 무의식, 분위기와 마주한다. 캐릭터는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다. 단지 고독과 마주한 한 여인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이른바 트뤼포가 말한 잔 모로의 ‘베트 데이비스’ 측면이라 할 만한데, 이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밤>(1961)에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자의 걸음으로, 자크 드미의 <천사들의 해변>(1963)에서 니스 해안 거리를 머리를 흩날리며 사뿐사뿐 걷는 모습에서 반복된다. 특별히 그녀의 걷는 순간을 사랑한 루이스 브뉘엘의 <하녀의 일기>(1964)에서 그녀의 움직임은 이상한 긴장과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이런 영화들에서 잔 모로는 어떤 인물을 소화한다기보다는 그저 움직이는 형태, 부서질 듯 파멸로 이끌리면서도 활력 있고 자유롭고 고고한 욕망을 품은 생동감 있는 몸짓의 인상으로 진정한 배우가 된다. 누벨바그의 안내자 잔 모로의 탁월한 아름다움은 그럼에도 루이 말의 두 번째 작품 <연인들>(1958)에서라 할 수 있겠다. 그녀를 진정으로 좋아하게 된 것도 이 영화 때문이다. <연인들>은 동시대 누벨바그 영화 중 가장 성숙하고 세련된 영화로, 무엇보다 잔 모로가 느끼는 감각적 경험이 그녀의 얼굴과 표정, 몸짓을 통해 세세하게 전달되는 영화다. 누벨바그가 새로운 파도였다면, 그 파도를 거쳐 어딘가 다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할 매개자가 있어야만 한다. 잔 모로는 이 영화로 부유하는 파도를 거쳐, 미지의 대지로 우리를 끌고 가는 매혹적인 배우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그녀는 우리를 감정의 여정으로 안내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그녀가 새벽에 깨어나 정원을 산책하는 장면이다. 그녀의 멋진 목소리가 보이스 오브 내레이션으로 들려온다. “갑자기 그녀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의 변용을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사례다. 모로는 이 순간 단지 집을 나서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터부에서 그녀의 몸을 구속하는 환경에서, 그녀에 대해 여하한 규정과 속박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그녀가 몽유병 환자처럼 집을 나서면 한 젊은 남자가 그녀를 뒤따른다. 그는 잔 모로의 모습에 도취되어 있다. 연인들이 달빛을 온몸에 품은 채 숲을 거닐고, 그물에 걸린 고기를 풀어주고, 쪽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 내려가는 여정은 우리를 알려지지 않은 영토, 영화의 크레딧에 나오는 ‘부드러움의 지도’라 부르는 고대적 여정을 따라가게 한다. 그들은 지금 유토피아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잔 모로의 머리는 흩날리고 달빛 아래 연인들의 열망이 우리를 사회 바깥으로, 도덕의 굴레 바깥으로 항해하게 한다. 어떤 저속한 욕망도 끼어들 틈이 없는 가장 낭만적인 장면에 브람스의 음악이 함께한다. 누벨바그의 파도를 따라 유토피아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이 모든 아름다운 순간은 그러나 영화의 강력한 힘에 의한 작동이며, 여기서 잔 모로의 황홀한 변모를 넋 나간 듯이 지켜보는 이는 그녀를 연모하는 젊은 남자 혹은 관객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 배우의 몸에 감동한 예술가의 존재가 있다. 장 뤽 고다르와 안나 카리나가 그랬듯이 여기서도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의 관계가 있다. 잔 모로의 압도적인 현전에 대해서는 물론 프랑수아 트뤼포의 <줄 앤 짐>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잔 모로는 가히 여신으로 등장하는데, 이 때문에 당시 비평가들이 그녀가 두 남자의 우정이야기를 붕괴시키고, 심지어 작가의 영화를 배우의 영화로 변형했다고까지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을 정도다. 물론, 잔 모로의 압도적 아름다움이 두 남자의 특권화된 시선과 관련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쥘과 짐은 여성적 이미지를 고대의 조각상에서 발견하고, 잔 모로를 그들의 이상적 이미지의 체현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잔 모로가 비록 60년대 해방적인 여성 이미지로 비쳐질지라도 그녀는 구체적인 역사나 사회, 문화적 조건에서 빠져나온 이른바 ‘사랑의 정열에 빠진 여인’으로 표현되고 있다. 트뤼포는 <비련의 신부>(1968)에서 잔 모로의 신화적 측면을 더 강렬하게 표현한다. 영화의 초반부, 잔 모로는 죽은 남편의 복수를 위해 살인자의 집을 방문한다. 카메라는 마치 그녀의 움직임의 시선을 따라가듯 아파트의 고층부터 아래로의 하강운동과 회전이동을 거듭해 마당을 쓸고 있는 한 남자에게 다가가는데, 이때 잔 모로는 전 장면에서의 검은 옷의 상복과 달리 바람에 살랑거리는 레이스 달린 흰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우뚝 서 있다. 이때 남자를 죽이러 가는 서스펜스의 전개는 이 이미지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화면의 이동과 그런 모든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중단시키는 그녀의 이미지의 대조에 있다. 잔 모로는 여기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나중에 화가의 그림에 구현될 이상적인 여인의 이미지로, 숱한 남자들의 삶을 중단시키는 절멸의 여신으로 현현한다. 영화의 역사와 함께한 배우 이렇듯 잔 모로는 <줄 앤 짐>에서 그녀가 불렀던 노래처럼 ‘인생의 회오리바람’처럼 화면에 출연하곤 했다. 그녀의 초기 이미지들이 누벨바그 작가들의 이상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체현했다 말한다 해도, 몇초만에 표정을 바꾸고 그녀를 둘러싼 환경을 순식간에 감정의 소용돌이로 몰아가는 잔 모로의 탁월한 능력은 작가의 한계를 언제나 초과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현대적인 작가들과 작업한 한명의 배우가 아니라 (오슨 웰스, 누벨바그 초기 이후 그녀와 작업한 작가들의 목록은 화려하다), 세르주 투비아나가 말했듯이 ‘영화의 역사와 결혼한 배우’였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그녀는 암실의 현상액 속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자신의 사진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사진을 손끝으로 만지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늙어가겠지. 하지만 우리는 여기 사진 속에 함께 있잖아. 어디에선가, 항상 함께 있는 거야. 아무도 우리를 떼어놓을 수는 없어.”

<혹성탈출: 종의 전쟁> 앤더스 랭글랜즈 감독·임창의 감독 - 폭설 속 몸싸움 장면을 눈여겨보시길

“시네마가 요구하는 모든 스펙터클이 그들의 얼굴에 담겨 있다.” <텔레그래프>의 평에서 유추할 수 있듯,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액션블록버스터 이전에 비장한 드라마로 기억될 영화다. 종의 명운을 건 유인원과 인간의 전쟁을 조명한 이 작품의 시각효과는 최첨단 디지털 시네마 기술을 감정의 시각언어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 <혹성탈출> 3부작을 통해 할리우드 시각효과의 놀라운 진보를 입증한 뉴질랜드 시각효과 업체 웨타 디지털의 두 스탭이 한국을 찾았다. 시각효과감독을 맡은 앤더스 랭글랜즈와 라이팅기술감독 임창의가 그들이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마션> 등을 작업한 시각효과 업체 MPC(Moving Picture Company)에서 13년간 일했던 앤더스 랭글랜즈 감독은 이번 작품이 웨타에서의 첫 영화다. 지난 2014년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개봉 당시 한국을 찾아 <씨네21>과 인터뷰를 진행했던 임창의 라이팅기술감독(963호 기획 인터뷰 참조)은 이십세기폭스가 리부트한 <혹성탈출> 시리즈의 3부작에 모두 참여한 시각효과 전문가다. 두 사람이 참석한 국내 매체와의 기자간담회와 내한 단독 인터뷰에서 오갔던 이야기를 전한다. -<혹성탈출> 시리즈의 3편을 준비하며 새롭게 염두에 두어야 했던 점은. =임창의_ <혹성탈출> 세편에 모두 참여한 사람으로서, 3편의 가장 큰 도전과제는 전편을 넘어서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2편(<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1편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의 CG가 정말 잘 나왔다. 관객의 기대치를 한껏 높인 상황에서 그 기대에 부합하려면 전편을 넘어서는 퀄리티의 시각효과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혹성탈출> 시리즈의 시각효과 작업은 부문을 막론하고 전편의 기술력을 넘어서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이었다. -앤더스 랭글랜즈 감독은 이번 작품이 웨타 디지털에서의 첫 영화다. 그동안 <마션>(2015),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1>(2010) 등 다양한 영화의 시각효과 작업을 해왔는데, 이전에 작업한 영화들과 비교해 <혹성탈출: 종의 전쟁>만이 가지고 있는 차별점이 있다면. =앤더스 랭글랜즈_ 가장 큰 차이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맷 리브스 감독은 작가 출신인 만큼 캐릭터와 이야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기술팀까지도 열정을 가지고 임할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 -3편은 전작에 비해 클로즈업숏이 유독 많은 영화였다. 디지털 캐릭터의 감정을 보다 섬세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었을 법하다. 앤더스 랭글랜즈_ 클로즈업 장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분석’이다. 시각효과 제작진은 스스로 작업한 CG컷을 보며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캐릭터가 사실적으로 보이는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말이다. 디지털 캐릭터의 두상을 만드는 작업부터 그들의 얼굴에 음영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CG로 잘 전환되었는지 등에 주목하며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했다. 특히 이번 영화에는 시저가 내적으로 깊은 갈등을 겪는 장면이 많은데, (시저의 모션 캡처 연기를 맡은) 앤디 서키스의 심오한 감정 연기가 인상깊었다. 한 프레임에 담기나 싶을 정도로 매우 짧은 순간에서조차 그는 시저의 미세한 표정과 떨림을 표현해내더라. 임창의_ 앤더스 감독님의 말대로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했다. 그들의 클로즈업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전달돼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이번 작품의 클로즈업 신에 대해 조명 기술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전작에서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작업방식을 선택했다. 이전 <혹성탈출> 영화에서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완전히 마친 다음 라이팅 작업을 시작했다. 라이팅과 렌더링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로즈업 장면의 경우에는 조명을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어버리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작업 단계에서부터 라이팅이 필요하다. 이번 영화에서는 기존의 라이팅과 매우 흡사하면서도 애니메이션 작업만을 위한 라이팅을 새롭게 만들었다. 애니메이터들이 클로즈업 장면을 작업할 때 거의 완성본에 가까운 라이팅을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숲, 설원 등 야외 촬영분이 전편보다 많았다는 점도 3편의 중요한 특징이다. 시각효과 측면에서 도전과제가 있었다면. 앤더스 랭글랜즈_ 야외 촬영이 굉장히 많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많은 영화를 통해 축적해온 웨타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탄탄해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영화에는 ‘토타라’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는데, 실제 숲의 생애 주기나 변화의 과정을 묘사할 수 있는 툴이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산악지대나 자연환경의 모습을 최대한 리얼하게 반영할 수 있어 좋았다. 임창의_ 야외 촬영은 빛의 방향과 날씨에 따라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라이팅을 하기 쉽지 않다. 시각효과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실제로 촬영한 이미지의 라이팅을 바꿔야 하는 순간인데, 야외 촬영이 굉장히 많았던 이번 작품에서는 라이팅 작업을 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번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장면을 꼽는다면. 앤더스 랭글랜즈_ 배드 에이프가 눈 내리는 산장 속에서 말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배드 에이프를 연기한 스티브 잔은 배우 자체가 재미있고 흥이 많다. 캐릭터의 따뜻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특성을 굉장히 잘 살려냈고, 개인적으로 그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임창의_ 시저와 루카와 병사들이 폭설 속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이 장면은 캐나다에서 촬영했는데, 폭설이 내리는 날에 배우들이 퍼포먼스 캡처 슈트를 입고 진짜 난투극을 벌였다. 최근 영화로는 아주 보기 드문 사례였다. 보통 눈 내리는 장면은 후반작업을 통해 만들어내기 때문에 맑은 날 촬영하거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뒤 CG 작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캐나다의 폭설이 내리는 환경에서 촬영했다는 건 라이팅 아티스트로서는 정말 축복이었다. 실제로 눈이 왔을 때 라이팅 조건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하고 배울 수 있어서 굉장히 도움이 됐다. -시각효과 전문가로서, 최근 업계의 화두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앤더스 랭글랜즈_ <혹성탈출> 시리즈를 통해 유인원 캐릭터를 일정 수준 이상까지 현실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을 정말 인간다운 모습의 디지털 이미지로 구현하는 건 아직도 시각효과 업계의 도전과제다. 임창의_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실 매 작품이 도전일 수밖에 없다. 영화마다 시각효과에 대한 아이디어와 기술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라이팅 아티스트로서 향후의 도전과제가 있다면, 노이즈 문제에 대한 해결이 될 것이다. 현존하는 라이팅 기술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이 노이즈다. 지금으로서는 노이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컴퓨터 프로세스를 이용해 오랜 시간 동안 계산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는 게 라이팅, 렌더링 분야의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 산학협력의 허브에서 진짜 인재를 키워낸다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은 세계 유수의 전문 교육 학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영화산업 매체 <버라이어티>에서 전세계 예술 계열 대학을 대상으로 경쟁력을 갖춘 교육을 제공하는 20개 대학을 소개했다. 이 리스트에는 미술디자인 전문학교인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고블린 이미지 스쿨 등을 비롯해 예일, 페퍼딘, 이시카 대학교 등 미국 전역의 영화학과와 폴란드의 내셔널필름스쿨, 사우디아라비아의 이팻 대학, 인도의 필름 앤드 텔레비전 학교 등 전세계 20여곳의 다양한 학교가 올라 있었다.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은 한국 학교로는 유일하게 이 리스트에 선정됐다. 이용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 학장은 “이번에 <버라이어티>가 선정한 리스트 기준은 전세계 최고의 톱클래스 학교가 아니라 발전 가능성을 고려한 차세대 리스트”라고 자세를 낮춰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선정 이유가 아마도 동서대학교만이 가진 세 가지 교육 특징 때문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첫 번째 특징은 동서대학교만의 특수한 지원 방식이다.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은 2015년부터 영화과, 뮤지컬과, 연기과와 함께 디지털 콘텐츠를 다루는 게임테크놀로지, 게임 아트, 3D애니메이션, 비주얼이펙트 등을 아우르는 디지털콘텐츠학부까지 통합해 영화와 영상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교육을 추구한다. 그 어느 대학보다 교육의 정체성이 뚜렷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지원으로 학부간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체계라 할 만하다. 예를 들면 영화과는 디지털콘텐츠학부의 강점인 CG와 애니메이션 기술력을 가까이 할 수 있고 디지털콘텐츠학부는 영화과로부터 연출과 시나리오 부문의 전문성을 얻을 수 있다. 한 학생이 학기 동안 교육받을 수 있는 과정 전반을 트랙으로 표현한다면 디지털콘텐츠학부는 게임테크놀로지, 게임아트, 애니메이션과 VFX 등 4개 트랙으로 세분화해 전문적인 교육을 실행한다. 둘째로 부산이 갖추고 있는 새로운 영상 문화 환경의 최대 수혜자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이라는 점이 세계 언론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유일 것이다. 일례로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이 위치한 부산 센텀시티 지역은 매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전당을 비롯해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게임물관리위원회 다양한 정부 기관이 한데 모여 있는 특수한 산업 지역이다. 한국의 어떤 교육 현장보다도 산학협력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지리적 요건을 갖췄다는 뜻이다. 이용관 학장에 따르면 해외에서도 이 부분을 특히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와 연계해 영화 제작을 비롯해 촬영과 사운드, 미술 부문 등에서 학생들이 직접 스탭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산학협력 네트워크가 탄탄하게 이뤄져 있다는 점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의 우수한 장점이자 학생들이 얻어갈 수 있는 훌륭한 혜택이다. 이와 연관지어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활발한 교류를 나누고 있다는 점도 동서대학교만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은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채프먼 대학의 닷지 필름스쿨, 중국 베이징의 전매대학 등과 교환학생 공동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베이징전영학원 등과 함께 ‘아시아대학생영화제’를 개최해 교류하고 있는 점도 차세대 아시아 영화인 발굴과 함께 활발한 네트워킹을 다져나가는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이 가진 특징이라고 이용관 학장은 힘주어 강조한다. 이러한 체계의 특징뿐만 아니라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 재학생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우수한 설비 또한 자랑거리다. 영화전공 학생이라면 누구나 1년에 2회 이상 임권택 석좌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거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레드원 카메라를 포함한 30대 이상의 카메라로 촬영한 다음 촬영조명실습실, 편집실, 사운드 편집실 등의 후반작업실에서 영화를 완성할 수 있다. 뮤지컬 및 연기과 학생들은 1074석 규모의 소향뮤지컬씨어터에서 언제든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으며 35평 규모의 무대제작실과 20평 규모의 의상 보관 및 제작실 등에서 부족함 없이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을 수 있다. 어떤 학교도 이보다 더 갖추어진 시설을 보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이라서 가능한 규모다. 이용관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 학장 현장 중심의 교육을 강화할 것 -여러 가지 새로운 교육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들었다. =부산의 여러 교육기관과 연계한 이른바 ‘어셈블리 교육’을 구상 중이다. 어떻게 하면 부산지역 학생들을 가둬두지 않고 부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까에 관해 고민했다. 센텀시티는 일종의 문화 산학협력단지로 특화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는 게 이곳만의 장점으로 꼽는데, 예를 들면 기업에서 직접 필요로 하는 과목을 개설해 학생들을 가르친다. 졸업 이후를 구상할 수 있게 해주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여러 아이디어를 내고 회의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학생들의 진로, 취업률에 관한 고민인 것 같다. =‘임권택’이라는 감독의 이름을 학교명에 쓰는 것만큼 현장 중심의 교육을 고민한다. 앞으로는 셀프 인증제라는 제도를 도입해서 3학년 과정부터 모든 과목을 스스로 세분화해서 현장 중심의 교육으로 이수시키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현장 감독들이 직접 교육을 하고 학생들에게 현장 투입 인증을 해주는 것이다. 교육만 받고 각 전공분야에 진출할 수 없으면 소용이 없다. 얼마나 더 오래 졸업 이후를 관리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구상해봤다. 일종의 아트 마켓이라고 이름 지어 연기전공자는 매니지먼트 형태의 지원을 해주는 식이다. 올해 발표를 해서 2학기부터 시범적으로 운영해보고 4~5년 계획을 짜볼 생각이다. -시설과 환경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자부하는가. =자부한다. 영화의 전당에 가면 시네마테크도 있어 1년 내내 훌륭한 시설을 갖춘 극장에서 고전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곳에 오면 정말 마음껏 영화와 놀 수 있다. -올해 수시전형 입시 기준의 변화가 있나. =지금까지는 크게 변동이 없다. 성적이나 시험에 의존하지 않고도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기준을 고민하고는 있다. 올해도 선발 기준은 인성과 끼다. 우리의 목표가 끼 있는 교육이다. 1학년 1학기 첫 수업을 들어보면 이곳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수시든 정시든 끼가 많은 친구들이 들어오길 바란다. 동서대학교 학과 및 전형 소개 동서대학교의 슬로건은 ‘Before Dongseo After Dongseo’(BDAD)이다. 영화, 영상, IT, 디자인, 콘텐츠 분야의 특성화에 집중하며 슬로건처럼 ‘미래형 대학’을 목표로 한다. 동서대학교의 지역적 특성화 전략을 통해 실질적인 산학협력을 추구하며, 부산 해운대에 자리한 센텀시티 캠퍼스에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을 오픈한 것은 글로벌 대학으로의 도약을 가능케 할 필수 요소다. 현장과 실습 위주의 영화과는 이론교육을 강화하는 1학년 과정을 거쳐 제작 실습이 강조되는 2학년 과정부터 직접 단편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물론 장편영화 지원 프로젝트도 가능하다. 뮤지컬과, 연기과는 맞춤형 교육을 추구하며 일대일 수업과 소수그룹 수업을 지향한다. 실기와 공연 중심의 커리큘럼을 통해 매년 5편 이상의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 뮤지컬과는 베이징 전매대학교와의 교류를 통해 공동 학위 운영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중이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최고의 교수진들이 학생들을 전폭적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의 2018년 수시전형은 디지털콘텐츠학부의 경우 입학 정원 140명 중 105명을, 영화과는 40명 중 30명, 뮤지컬과는 30명 중 20명, 연기과는 30명 중 20명을 수시전형에서 선발한다. 일반계고교 전형은 1단계에서 학생부 100%를, 2단계에서 학생부 90%+면접 10%를 반영해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뮤지컬, 연기과의 경우 학생부 40%+실기 60%를 반영한다. 뮤지컬과와 연기과는 지정 실기 과제 중 한 가지를 택해 준비해야 하고 디지털콘텐츠학부, 영화과 지원자는 실기고사가 없다. 원서접수는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서류 제출은 9월 11일부터 20일까지. 자세한 실기 사항 및 전형 일정은 동서대학교 홈페이지를 참조할 것.

[파리] 프랑스 언론, 영국 시선에서 그려진 <덩케르크> ‘디나모’ 작전에 혹평 쏟아내

크리스토퍼 놀란의 최근작 <덩케르크>는 2차대전 초반, 독일군과 벌인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덩케르크에 포위되었던 40만명의 연합군 중 30만명을 구해내 영국으로 데려온 ‘디나모’ 작전이 한창인 현장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이 작품의 형식, 미학, 대사의 사용, 구조, 내러티브 등의 독창성에 대한 찬사는 본지에서도 여러번 다룬 바 있고, 놀란이 매번 세계적으로 호평받는 양질의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내는 감독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놀란의 이번 작품은 프랑스언론에 제대로 미운털이 박혔다. ‘영국인이 최고라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는 영화’(<르 몽드>), ‘왜 놀란의 <덩케르크>가 역사의 왜곡인가’(<레 제코>), ‘역사는 어디로 갔나’(<피가로>), ‘리얼리즘 영화가 되기엔 너무 하얀 영화’(<텔레라마>), ‘영국의 관점, 프랑스를 화나게 하는 <덩케르크>’(<쿠리에 인터내셔널>)…. 이 영화에는 연합군으로 함께 참전한 프랑스군의 시선이 배제되었다는 점에 프랑스 언론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이들의 반응은 <르 몽드>에 실린 프랑스 육군 중령이자 전쟁역사학자인 제롬 드 레피노아의 글을 읽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레피노아는 ‘디나모’ 작전이 가능했던 건 4만여명의 프랑스 군인이 덩케르크 그 주변 도시에서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희생했기 때문이고, 영국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군인 중에는 프랑스 군인도 1만2천명이나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게다가 당시 프랑스군은 영국이 ‘디나모’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들어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란의 영화에는 프랑스 군인들은 초반 10여초 동안 등장해 주인공에게 “영국인? 잘가’라며 비꼬는 모습이나, 목숨을 부지하고자 영국군의 옷을 입고 숨어든 겁쟁이 ‘개구리’로 그려지고 있으니(그것도 모자라 그는 마치 벌을 받는 듯 결국 물살에 휩쓸려 사라진다) 프랑스인으로선 불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저수지 게임> 주진우 기자, 최진성 감독 수다

지난 8월 29일 강남의 한 편집실에서 진행된 <저수지 게임>(제작 프로젝트 부·배급 스마일이엔티) 기술 시사에는 최진성 감독,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주진우 <시사IN> 기자뿐만 아니라 예닐곱명의 변호사들도 참석했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이들은 한동안 자리에 앉은 채 주진우 기자의 영화 속 발언, 자막 하나하나를 검토했다. 소송의 빌미를 주지 않고, 혹시나 걸릴지 모를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씨네21> 1098호 기획 기사 ‘2012년 대선 개표 부정 의혹 다룬 최진성 감독의 다큐멘터리 <더 플랜>과 <저수지 게임> 제작기’에서 이미 소개된 대로, 다큐멘터리 <저수지 게임>은 주진우 기자가 탐정처럼 이명박 정권의 비자금 저수지를 추적하는 “하드보일드한 미스터리 명랑 추적극”이다. 9월 7일 개봉을 앞두고 주연배우 주진우 기자와 최진성 감독이 나눈 이명박의 비자금 취재 후일담을 전한다. 이 영화를 제작한 김어준 총수는 서면으로 인터뷰 답변지를 보내왔다. -변호사들이 꽤 꼼꼼하게 검토하던데. =주진우_ 나와 김어준은 (소송에 걸려도) 상관이 없다. 최 감독을 조금 더 안전하게 하려고. =최진성_ 예전에 독립다큐멘터리를 작업할 때 온갖 욕을 영화에 넣어도 문제가 안 됐는데 주진우 기자가 그걸 하면 보통 사람들보다 화력이 세니까 (상대방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영화는 어떻게 봤나. 주진우_ 내가 너무 많이 나와서 쑥스러웠다. (웃음) 평소에 거울도 안보고 사는데. 영화를 보니 내가 다큐멘터리를 찍기에 좋은 소재일지는 몰라도 좋은 도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 감독과 만나게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취재원 대부분이 신변 노출을 꺼려 여러모로 한계가 많았다. 촬영을 하다가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취재 때문에 해외에 나가기도 했고, 취재원의 전화를 받고 갑자기 그 쪽으로 먼저 가버리는 바람에 최 감독이 고생을 많이 했다. 최진성_ 2015년 11월 30일 주진우 기자를 처음 만났으니 함께 지낸 지 햇수로 3년째다. 개봉을 앞두고 있어 드디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는구나 싶다. 1년10개월간의 긴 터널을. 홀가분한 심정과 더불어 이 영화에서 주 기자가 하고 싶어 하는 얘기가 잘 전달돼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를 기대하고 있다. 주진우_ 어차피 실패를 전제로 시작한 취재라고 해야 하나. 간단하게 비자금을 찾아내 이명박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면 끝난다. 그런데 검찰도, 국세청도 못하는 일을 일개 기자인 내가 하고 다니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이명박이 보면 얼마나 가소롭겠나. 나라는 꼴통 기자 하나가 실패가 뻔한 취재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명박은 돈을 위해서 공권력을 이용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너무나 많이 했다. 자원외교, 4대강 사업 등 그가 했던 사업들을 쫓아다녔는데 그게 잘못됐다고 증명할 순 없으니 기록으로라도 남기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를 최 감독과 함께한 이유는, 기사를 쓸 수 없게 될지라도 취재하면서 쏟았던 작은 노력이라도 기록된다면 그게 대중에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류승완 감독이 두 사람을 소개시켜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진성_ 류승완 감독이 연락해와서는 주 기자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작업할 생각이 없냐고 제안했다. 주 기자를 처음 만나 다음해인 2016년 4월에 촬영을 시작하기 전까지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밥 먹고 차 마시면서 주 기자가 취재한 내용들을 조금씩 들었고, 그걸 가지고 어떻게 영화로 만들까 그림을 그려나갔다. 촬영이 시작된 뒤인 4월 말, 김어준 총수를 만나 함께하기로 했다. 주진우_ 류승완 감독이 최진성 감독을 두고 “좋은 감독”이라고 하더라. 박정희 신화에 사로잡힌 한국의 우익 꼴통들을 다룬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2001), 4대강 공사 현장을 찾아가 펼친 작은 공연을 그린 <저수지의 개들>(2011) 같은 최진성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들을 챙겨 봤다. 그러면서 최 감독을 만나 생각을 주고받았다. 최 감독과 나는 다른 점이 굉장히 많다. 김어준 총수나 나는 제멋대로라고나 할까. (웃음) 중요한 제보가 들어오면 그걸 확인하러 갑자기 달려가기도 했으니 영화 찍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최악이지. (웃음) 최진성_ 영화를 찍고 있는데, 찍을 신이 많이 남았는데, 스탭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주연배우가 갑자기 가는 거다. (웃음) 주진우_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때 박근혜의 비자금을 찾기 위해 스위스만 10번 이상 갔다. 새벽까지 특검 수사에 협조했고. 그래서 이명박 각하에 집중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국정원을 포함해 이명박과 관련된 취재 아이템이 굉장히 많았는데 여러 제약 때문에 최 감독이 영화에 쓸 수 없어서 어려웠을 것 같다. -주진우 기자와 함께 작업하려면 그만큼 리스크도 감당해야 하는데 연출을 맡기로 한 이유가 뭔가. 주진우_ 그래, 굉장히 위험한 일이야. (웃음) 지금은 (나와 함께) 하겠다는 사람이 많지만 말이야. 최진성_ 박근혜의 서슬이 시퍼 을 때니까. (웃음) <시사IN> 주진우 기자의 책상에 가면 (검찰이나 경찰에서 온) 소환장이 높이 쌓여 있었고, 그는 재판도 계속 받고 있었다. 지금은 정권이 교체돼 웃으면서 개봉을 준비하고 있지만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받았을 때만 해도 개봉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정권하에서 주진우와 김어준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하고 곤란한 스피커와 함께 작업한 거니까. 앞으로 영화 일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각오로 (연출을 할지) 고민한 거다. 그럼에도 맡기로 한 건 주진우가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되게 흥미진진한 캐릭터고, 무엇보다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쫓는 게 무척 재미있으니까. (웃음) 주진우_ 스케일이 이 정도는 돼야지. 최진성_ 어, 이 정도는 돼야지.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주 기자와 MB 한번 쫓아다녀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딜을 한 거다. 주진우_ 류승완 감독과 다큐멘터리 감독을 찾을 때 가장 중점을 둔 게, 일단 실력이 있어야 했다. 두 번째 조건은 흔들리지 않는 정신, 똑바로 박힌 정신. (웃음) 나와 친해서 좌천되고 피해를 본 사람이 많아서 처음에는 감독 이름을 안 밝히고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최 감독이) 모든 걸 던지고 함께해준 거지. 최진성 감독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이었던 지난해 9월 21일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113회 방송에 얼굴을 가리기 위해 봉투를 쓰고 출연해 <더 플랜>과 <저수지 게임>을 소개했다. <저수지 게임>은 주진우 기자의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재 중에서 2013년 발생했던 캐나다 토론토 역사상 가장 큰 부동산 사기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추적극이다. 한국 대기업과 농협이 직접 투자한 이 사업은 공사비만 1500억원 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토론토 한인 밀집지역인 노스요크에 주상복합 빌딩을 짓겠다고 발표했다가 추가 자본금을 유치하지 못해 부지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건설이 무산됐다. 해외에서 벌어진 사기사건으로 넘기기에는 수상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농협은 국내 법인 A사를 통해 캐나다 시행사에 210억원을 선뜻 대출해줬고, 대출 과정에서 담보 관리가 부실했으며(나중에는 담보를 그냥 풀어주기까지 했다), 사기사건이 발생한 뒤로 대출금 210억원이 손실 처리됐음에도 돌려받기 위한 어떤 고소나 고발 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시사IN> 464호 기사 ‘농협이 날려버린 210억원의 배후는?’으로 보도됐다. -주진우 기자의 많은 취재 중에서 2013년 토론토 노스요크에서 발생한 부동산 사기사건을 서사의 큰 줄기로 삼은 이유가 뭔가. 최진성_ 처음 서너달 동안 주 기자로부터 파편적인 정보들을 계속 들었고, 카메라를 본격적으로 든 뒤로 주 기자가 MB 비자금을 추적했던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서너 시간씩 들려준 게 이 영화의 밑그림이 됐다.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2016년 7월 주 기자와 함께 토론토와 뉴욕에 가게 됐는데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취재가 잘되지 않았다. 주진우_ 취재하기로 한 사람들이 만날 때쯤 다 사라졌다. 친했던 취재원들도 갑자기 피하고, 약속도 많이 취소됐고. 나한테는 얘기해줄 수 있는데 카메라 앞에 서거나 최 감독과 함께 만나는 건 굉장히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 최진성_ 토론토 부동산 사기사건이 가장 취재가 많이 되어 있었고, 자원외교나 MB와 관련된 비자금의 흐름이 이쪽으로 오는 패턴이 있었으며, 정황 증거에 가까운 그림이라 감독으로서 다루기 좋은 사건이었다. 주진우_ 이걸 극영화로 찍었다면 훨씬 더 잘 나왔을 것이다. 최진성_ 무엇보다 국내와 해외를 넘나드는 인터내셔널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하드보일드 장르영화에서 봤을 법한 추적 서사를 갖추고 있고, 주 기자의 캐릭터가 사건에 쏙 들어오니 마치 탐정 같더라. 장르영화처럼 보여주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주진우_ 사실 더 멋진 장면이 많은데 감독니임. (웃음) 나는 뭐가 멋있나 그게 더 중요하니까. 하하하. -혼자서 취재하는 보통 때와 달리 다큐멘터리팀과 함께 취재해보니 기자로서 어땠나. 주진우_ 조금은 안심이 됐다. 그전에는 해외에 출장을 가면 방문 앞에 의자를 막 쌓아두고 그랬으니까. 혼자 취재하러 가거나 김어준과 같이 가면 온갖 미행과 감시가 붙었고, 그래서 위협적이었다. 하도 위험한 취재를 많이 하니까 가수 이승환씨는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해 외국에 취재하러 가지 말라고 울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다큐멘터리팀과 함께 나가니 만나야 할 사람을 못 만난 대신에 든든하니 좋더라. 우리가 만난 뒤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전화 통화를 한 적 없을 만큼 보안도 신경 썼고. 최진성_ 처음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 내용이 ‘전화 쓰면 안 된다, 문자도 안 된다, 카카오톡은 더더욱 안 된다’였다. 주진우_ 텔레그램과 페이스타임(아이폰의 통화 기능) 같은 몇 가지 방식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지. -주진우 기자의 취재를 따라다녀보니 어떻던가. 최진성_ <시사IN> 명함 하나 있으면 어디든지 들어갈 수 있는 게 부러웠고 신기했다. 주진우_ 아니, 그건 그냥 들어가는 거야. 최진성_ 과거에 다큐멘터리를 연출할 때 취재하러 왔다고 하면 정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주 기자의 ‘무데뽀 멘털’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도 있지만 다큐멘터리 감독보다 저널리스트가 취재하기 좋은 직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진우_ 다큐멘터리 감독이니 취재원에게 항상 먼저 여쭤보고 (카메라를) 세팅해야 해서 그렇게 느낄 수 있는데 나 또한 일단 들어가는 거다. 들어가서 (취재원을) 찍어보고 안 된다고 하면 빠지고, 그게 딜이니까. -영화 속 주진우 기자의 취재는 실패의 연속이다. 취재원들이 만나주지 않을뿐더러, 만나더라도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는데. 최진성_ 주 기자가 만나려고 시도하는 취재원마다 안 만나주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나. 그런데 이게 우리 다큐멘터리의 이야기가 되겠다 싶었다. 영화에서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 총수는 ‘이 취재가 실패담’이라고 얘기하는데 오히려 이게 이 추적극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진우라는 기자가 영화 안팎에서 항상 누군가의 옆에 서 있고, 그를 계속 쫓고 있다는 걸 보여주자. 우리가 당장 지금 진실을, 그분의 비자금을 발견할 수 없지만 ‘누군가가 오늘도 쫓고 있고, 당신 옆에 서 있다’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나는 주 기자의 취재가 실패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진우_ 기자로서 취재를 계속 실패하고 있는데 실패하는 것만 카메라에 보여주면 어떻게 하나 두려웠다. 기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보통의 극영화를 보면 증인이 갑자기 나타나 진실을 얘기해주거나 증거가 담긴 USB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나. (웃음) 사건의 열쇠를 쥔 사람이 딱 나오면 얼마나 좋겠어. 그런 사람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수백번 전화를 하고, 수십번 찾아가야 취재원을 겨우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때마다 좌절하는데 그럼에도 취재원의 얘기를 하나라도 듣기 위해 수백번 시도하는 거다. 게다가 우리가 한 사람 얘기만 듣고 쓰는 게 아니라 크로스 체크를 해가며 신빙성 있는 얘기를 좇아갔다. 여러 전문가, 정부 관료 등 수많은 도움이 있었는데 그걸 우리가 (영화에) 다 쓸 수 없었다. -주진우 기자를 오랫동안 만나면서 관찰해보니 어떤 사람인 것 같나. 최진성_ 그를 만나기 전에는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귀엽고 성실하고 용기 있는 기자? (웃음) 그렇게만 알고 있다가 함께 일을 해보니이 사람, 미쳤구나 싶더라. <올드보이>에서 우진(유지태)이 오대수(최민식)에게 자신을 “오대수학 학자”라 소개하지 않나. 수학, 과학, 철학, MB학이 있다면 주진우 기자는 MB학 박사라 부를 수 있을 만큼 MB에 미쳐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웃음) 주진우_ 이명박을 쫓아다니면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다. 그래서 최진성 감독에게 “내가 (중간에) 가더라도 잘 마무리해달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완성되지 못할 수도, 개봉하지 못할 수도, 흥행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누구라도 이 취재를 해야 하고, 취재를 하다가 무슨 일이 생겨도 뭐라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최 감독이 끝까지 완성해줘서 굉장히 많은 힘이 됐다. 최진성_ 노심초사하며 벌벌 떨면서 작업했던 기억이 많다. 집에 갈 때 괜히 무서웠고.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중 하나는 기자가 취재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검찰이나 금융감독원 같은 국가기관이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는 것인데. 최진성_ 엔딩 크레딧 직전에 ‘오늘도 주 기자는 H를 쫓고 있다’는 자막을 넣었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이, 언론인이, 정치인이 주 기자와 함게 희대의 사기꾼인 MB의 비자금을 쫓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주진우_ (MB 프로젝트 첫 번째 기사 ‘이명박 청와대 140억 송금 작전’이 실린 <시사IN> 519호를 들어 보이며) 이 보도는 성공이야. 이건 이명박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큰 폭탄인데 어떤 언론이나 포털 사이트도 이 기사에 대한 후속 보도를 내놓거나 메인에 내걸지 않고 있다.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기사(<시사IN> 517호)가 나갔을 때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앞으로 MB 프로젝트 기사를 몇탄 더 쓸 건데, 아직도 MB는 힘이 있다. 아직도 이명박의 아이들이 이 사회의 주류로 활동하고 있고, 그 메인스트림이 견고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줘야 나도 덜 외롭고 살 수 있다. 안 그러면 저수지에서 발견되거나 소송 폭탄에 허우적거리게 된다. 이명박이 역사적으로 다시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중요하다. -혹시 흥행 비책은 있나. 최진성_ 관객수 100만명이 넘으면 주 기자가 뭘 할까? (웃음) 주진우_ 뭐라도 할게, 이명박 잡으러 갈게. (웃음)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인터뷰 -정권이 교체되었음에도 이 영화를 언제 개봉할지 꽤 오래 고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민한 적 없다. 적절한 때를 기다렸을 뿐. -영화는 어떻게 봤나. =이 영화는, 최소한 민간인 몇은 이명박 비자금을 잊지 않고 여전히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사회적 비컨이 되고자 박근혜 정권 시절 시작했다. 훗날 시간의 망망대해에서 그 등화를 발견한 시대가 그 비자금을 다 함께 찾아나서기를 바라며. 영화는 충분히 그 역할을 수행할 정도가 된다. -영화가 끝난 뒤 변호사들과 한참 얘기를 나누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논쟁거리였나. =소송을 어디까지 감당할 것인가. -한명의 저널리스트로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를, 정권 자체를 수익모델로 삼은 그랜드 야바위인. 협잡을 국가정책 레벨에서 시전했다는 점에서, 우리 헌정사에 전무후무한 숙련 불법인이다. -영화에서 총수와 주 기자는 이 취재를 두고 실패담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뭔가. =이제는 공권력이 이 영화가 도달한 지점 이후를 감당해, 꼭 성공담으로 끝을 내길 바란다는 뜻이다. -제작자로서 배우 주진우와 감독 최진성은 어땠나. =주진우, <경찰청사람들> 같은 재연드라마의 잡범 정도는 감당할 연기력이다. 최진성의 연출력은 이미 <더 플랜>에서 입증됐다. -관객에게 <저수지 게임>이 어떤 작품이 되길 바라나. 흥행을 예상해본다면. =100만명. 이명박 비자금 수사를 시작하게 만든 영화가 되길 원한다.

잔 모로(1928~2017) - 종래에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연기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1928년 1월 23일 파리에서 태어난 잔 모로는 1947년 배우 출신의 유명 연출가로 당시 아비뇽페스티벌을 이끌던 장 빌라르의 작품을 통해 데뷔했다. 이어서 코미디 프랑세즈에 들어가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갔으며, 장 빌라르와 함께하기 위해 그가 새로 설립한 TNP(Theatre National Populaire, 국립민중극장)로 적을 옮겼다. 루이 말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이후 그의 대표작들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와 당시 큰 스캔들을 일으킨 <연인들>(1958)에 출연한다.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원작을 영화화한 <모데라토 칸타빌레>(1960)에 출연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1992년 <바다를 걷는 나이 든 여자>로 세자르상을 수상했다. 14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루이 말, 프랑수아 트뤼포, 오슨 웰스, 엘리아 카잔, 베르트랑 블리에, 조셉 로지, 로제 바딤, 테오 앙겔로풀로스, 빔 벤더스, 앙드레 테시네, 뤽 베송, 프랑수아 오종 감독 등 프랑스를 넘어 수많은 감독들과 함께했다. 잔 모로는 배우뿐만 아니라 가수로서도 특유의 목소리와 대체 불가능한 감수성으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감독으로도 두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2001년 문화예술 아카데미에 들어간 첫 번째 여성 회원이며, 2005년에는 앙제 지역에서 페스티벌을 시작해 젊은 감독들의 데뷔작 연출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프랑스, 유럽, 할리우드, 해외 합작 프로젝트 등 가능한 한 모든 통로를 통해 영화에 출연하며 살아 있는 역사가 된 배우였으며, 그녀의 존재가 그 자체로 영화라는 것을 모든 영화인들이 알고 있었다. 잔 모로는 “우리는 모두 자유의 나라에 살고 있으며, 이 자유의 나라는 바로 영화입니다”라고 말했던, 영화의 영광과 자부심, 승리를 스스로 증명한 존재였다. (지난 7월 31일 잔 모로 작고 후 프랑스 현지에서는 언론들의 추모 기사와 지난 인터뷰 기사들이 계속 쏟아져나오는 중이다. 그 내용을 파리에 있는 김나희 클래식음악평론가가 1인칭 화법으로 재구성했다.-편집자) 이렇게 바 안에 들어가는 것, 이런 장소 모두 참 익숙해요. 제가 연기했던 인물들이 자주 이런 바 안에 있었죠. 루이 말 감독은 저와 음악에 대해 자주 말했어요. 우린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을 자주 들었죠.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찍는 도중 마일스 데이비스와 연락이 닿아서 루이 말은 전화로 영화 스토리를 말하고 ‘우리가 촬영을 거의 다 했으니까 음악을 맡아달라’고 했어요. 마일스는 작곡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죠. 그래서 루이는 이제 편집본이 나오면 그걸 보고 음악을 만들어주면 된다고 했어요. 결국 샹젤리제 거리 부근의 스튜디오에 마일스 데이비스가 왔어요. 샹젤리제 마리냥 영화관이 있었고, 거기에 스튜디오가 있었어요. 마리냥의 가장 큰 관이었고요. 마일스는 그와 함께할 뮤지션을 다 고른 상태였어요. 우리는 영화를 보여줬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일스는 루이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죠. 딱 봐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 먹을 것들을 찾으러 갔어요. 간단한 요깃거리와 음료수를 가지고 돌아왔어요. 그다음에는 계속 거기 함께 있었어요.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이어진 그 녹음 세션을 다 지켜봤어요. 마일스의 트럼펫 소리가 들려왔으니까요. 그 장소를 벗어날 수 없었죠. 마일스를 위해 영화를 멈췄다가, 다시 틀고, 또다시 틀었어요. 한꺼번에 다 녹음되지 않았던 터라 그랬죠. 마일스는 한 주제를 즉흥적으로 만들어냈고, 그 테마를 바탕으로 곡이 이어져서 나왔어요. 그래서 다시 영화를 틀었고, 또 멈췄고, 또 마일스가 즉흥연주를 만들어내고, 다시 곡이 이어져서 나오고…. 그렇게 영화 한편 전체의 음악이 완성된 밤이었어요. 저는 그 순간을 지켜보면서 마치 손님 접대를 하는 여주인처럼 모두를 위해 음식과 마실 것들을 가져다 날랐어요. 창작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하룻밤 사이에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본능적으로 이미지에 맞춰 즉흥적으로 탄생된 음악들은 유일한 무엇이었어요. 저에게 어디에서부터 연기가 시작되는지 묻는다면, 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거예요. 우리가 읽어야 하는 대본, 어떤 시선, 내면의 감정, 일상에서는 절대 입을 일 없으나 영화에서는 입어야 하는 특별한 의상들, 거의 모든 것에서 시작돼요. 카메라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스탭들 혹은 함께하는 배우들과의 물리적인 거리, 촬영 당시의 춥거나 더운 날씨일 수도 있고요. 그게 어떻게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정의 내릴 수가 없어요. 이런 정의할 수 없음이 결국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요. 저는 한번도 주의 깊게 어떻게 인물에 몰입했는지 생각한 적이 없는데,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고, 매번 영화마다 달랐어요. 한번도 같은 적이 없더군요. 의심의 여지없이 배우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연기를 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와닿는 그 순간으로부터, 우리는 전혀 아는 거 없이, 뭐 하나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게 되는 것 없이 그냥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필름에 다 담기고 인화되니까요. 그 모든 것들이 관객에게는 아무리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더라도 다 의미를 지니는 무언가가 되니까요. 감독이 나서서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겠다고 의도한 거죠. 그가 렌즈를, 배우를, 그 영화에 접근하는 특별한 그만의 측면들을 다 선택했고요. 이런 날에는 카메라를 이렇게 움직이고, 또 다른 날에는 어떤 색을 강조하고, 다르게 움직이고요. 어느 순간 우리는 주의력을 잃게 되고,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있던 길의 중간에, 가던 길을 돌아 나와버려요. 더이상 그 인물이 아니게 되는 거죠. 이게 ‘춤’의 느낌을 줘요. 인물이 입체적으로 변화하죠. 저는 단 한번도 인위적으로 목소리를 낸다거나 트레이닝을 한 적이 없어요. 목소리는 바로 저 자신이니까요. 저처럼 변화무쌍하고 자주 달라지죠. 제가 우울해하거나 화가 나 있거나 장애물에 부딪히거나 한다면 제 친구들은 전화기 너머에서도 바로 알아요. 제 목소리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까. 그거 아세요? 감정이라는 것은 우리의 내면이고, 목소리라는 것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자 한 인간의 어떤 측면이죠. 흔히들 눈이 영혼의 거울이라고들 하잖아요. 목소리는 감정이 비치는 현상이에요. 우리가 이런 면을 다 인식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거죠. 만들어진 가짜 목소리로는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아요. 정치인들을 보면 알잖아요. 텔레비전에 나와 만들어진 목소리로 말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정말 놀라워요. 만약 정치인들이 배우가 된다고 가정해보죠. 그들은 어떤 역할도 소화해내지 못하고 바로 잘릴걸요. 만들어진 목소리로만 말하니까 어떤 것도 우리의 내면까지 와닿지 않을 거예요. 거짓된 목소리는 정말 끔찍하죠. 그거 아세요? 설령 투박하더라도 진실함은 결국 통해요. 거짓은 우리가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위대한 배우들이 가진 그들만의 힘이 있다면 바로 이거예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의 진정성이요. 결국 다 통하고 설득력을 갖게 하고야 마는 그 지점이죠. 그게 어떻게 통하는지, 왜 설득력을 갖는지 설명할 수도 없고 왜인지도 모르지만 우리 모두 그가 연기하는 인물에게 빨려들어가고 그렇다고 믿게 돼요. 그게 손짓일 수도 있고, 미세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일 수도 있고, 특유의 몸짓이나 눈빛일 수도 있어요. 목소리의 높낮이, 그 목소리에 담긴 어떤 음악 때문이거나 그 순간의 호흡이나 숨소리, 윙크나 슬쩍 움찔대는 거, 어쩌면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어떤 것들 때문에 가능하죠. 위대한 예술가들이 지닌 힘에 대하여 빌리 홀리데이는 정말 특별한 가수였어요. 조셉 로지 감독과 만났을 때 제가 직접 빌리 홀리데이를 선택했어요. 당시에 저는 브르타뉴 지방에 샤토 드 빌로라는 성을 한채 빌려서 지내고 있었어요. 그곳은 모두가 꿈꾸는 그런 성은 아니었고, 아름다우면서도 사람들을 겁먹게 한달까 두려움을 주는 장소였어요. 조셉 로지라는 이름을 당시에 저는 잘 몰랐고, 그의 영화들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바가 없었어요. 그가 브르타뉴로 와서 저와 함께 일주일을 보냈어요. 그는 계속 다음 영화의 주 무대가 될 바에 대해 말했어요. 그 일주일은 거의 미친 시간이었어요. 우리는 거의 같이 시나리오를 썼어요. 제가 끝없이 아이디어를 꺼내놓았어요. 여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아이로 태어나 유년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그녀의 첫 성경험은 어땠는지,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떤지….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내내 빌리 홀리데이 음악을 들었어요. 그때 제가 빌리 홀리데이를 듣기 시작한 지 5년쯤 되었을 때였고, 완전히 반해 있었으니까요. 결국 영화 <에바>(1962)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빌리 홀리데이를 넣기로 했어요. 빌리 홀리데이는 뭐랄까, 식물과도 같은 가수예요. 그녀는 음악의 바깥에서 존재하고 있는 다른 가수들과는 완전히 달라요. 뿌리를 내리는 식물처럼 그 안에서 살죠. 사랑의 고통과 잔인함, 그녀가 살아냈으므로 알고 있는 것들을 노래로 다시 꺼내놓아요. 그녀 스스로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라 그랬을지도.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완전히 뒤흔들고 지나가요. 그렇게 사랑의 경험이 우리에게 남긴 기억을 환기시켜요. 그 앞에서 우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녀의 노래들 자체가 완전히 첫눈에 반해버리는 과정과 고스란히 닮아 있어요. 아름다운 사랑 노래는 더이상의 것이 필요 없어요. 그 자체로 사랑을 이해하기에 충분해요. 우리가 어떤 노래에 반하듯, 서로가 서로를 알아차리고 인식하고 스쳐서 지나가버리죠. ‘유혹’의 과정이 그러하듯이 말이에요. 그녀가 다른 가수들과 구별되는 지점을 두고 미국에서는 다들 토치송(Torch Song)이라고 말했어요. 토치, 우리의 심장을 불태워버리는 사랑의 고통, 그걸 꺼내놓는 게 미국 재즈 특유의 어법이었죠. 그게 그녀가 취했던 마약, 술, 삶의 굴곡진 지점들 때문에 더 강조되었던 것 같아요. 목소리가 완전히 부서져버렸달까. 약에 흠뻑 취해 있었거나 아니면 금단증상에 시달릴 때였나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부서져 있던 시간이 역설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죠.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순간이니까. 그게 우리를 갈가리 찢고 지나가요. 심장과 영혼이 찢겨나가는걸요. 그 순간을 그저 음악으로만 듣는 데도 고통이 전해져서 숨쉬기가 힘들어져요. 그런 노래를 불렀던 그녀가 느낀 고통은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요. 그래요. 우리는 그 고통이 지나간 흔적을 지켜보는데 그치는 거니까 모두가 그런 고통을 경험할 필요는 없어요. 바로 그거겠죠. 예술가가 필요한 이유는요. 엑소시즘(악령 퇴치)이 된달까. 생의 고통을 미리 경험해서 쫓아주는 역할이랄까. 그렇게 찢겨짐과 파멸의 가장 극단에 가닿는 사람, 환각과 광기, 고통을 가장 멀리까지 가서 경험하는 사람,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따라다니는데 대체 왜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을 경험하고 묘사하는 사람, 우리 내면에서 감정적으로 뭔가가 마구 폭발하고, 우리의 존재를 할퀴고 상처내서 우리가 피흘리는데, 그런 걸 대신 경험해주는 역할을 해요. 마치 엑소시즘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예술가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예요. 배우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배우가 된다는 것은 남들과 다르게 사는 걸 받아들이는 거죠. 그 값을 치르고요. 배우가 되어 누리는 만큼의 대가겠죠. 저는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어떤 순간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자 꼭 필요하다는 걸 알아요. 그걸 설명은 못하겠어요. 정말 신비로운 과정이죠. 이걸 설명한 단어도 없고, 그 과정도 이성적으로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에요. 제가 표현해 낼 수 있다고 믿는 것들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배우들은 타인에 의해 평가를 받아요. 외모에 의해, 우리가 한번 배우가 되겠다고 결정을 내린 다음에는 우리의 목소리에 의해, 성격으로, 그리고 한순간,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연기했던 인물들을 관통해서 새로운 누군가가 되죠. 그러니까 아무 역할이나 마구 해서는 안 돼요. 제가 지금 돌이켜 20살의 저를 떠올리면 지금의 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는 게 보여요. 20살의 잔 모로는 제가 분명하지만, 더이상 제가 아니에요. 어쩌면 배우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비슷할 것 같아요. 10살에 어땠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면 현재의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요? 우린 지금 설명할 언어가 없는 걸 자꾸 말로 하려고 하네요. 하녀 역할도 해봤고, 속물의식에 젖은 젊은 여자 역할도 해봤고, <줄리에타>(1953), <여왕 마고>(1954) 같은 작품들에서 다양한 역할들을 이미 소화했었죠. 노래도 불렀고, 아직도 그 노랫말이며 노래를 불렀던 생 제르망 데 프레 부근의 바도 다 생각이 나요. 사람들은 저에게 함께한 위대한 거장 감독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상대적으로 좀 덜 유명한(위대한) 감독들과의 작업은 언급하지 않는데 사실 저는 그 모든 역할들을 다 기억해요. 저에게는 감독의 유명세와 상관없이 다 똑같이 소중했죠.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찍고 나서 저는 루이 말과 함께 <연인들>을 찍었어요. 그때 이미 트뤼포에게서도 연락을 받았죠. 저는 루이 말을 알기 훨씬 이전에 이미 오슨 웰스를 알고 있었어요. 1951년 코미디 프랑세즈에서 만났어요. 그는 나와 함께 작품을 하고 싶어 했죠. 그가 에드워드 7세 극장을 맡으면서, 그는 제가 코미디 프랑세즈를 관두는 김에 <오셀로>(1952) 속 데스데모나를 맡아줬으면 했어요. 사람들은 제가 영화의 성공으로 쉽게 감독들을 만났고, 역할을 제안받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저는 감독들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제가 무대에서 연기하는 걸 보러 왔었으니까. 제가 연극으로 시작한 걸 잊지 말아야죠. 저는 사실 영화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우선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많이 보지도 않았어요. 영화가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어요. 무대 위 여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고전 속 여주인공 역할을 꿈꾸면서요. 사라 베르나르 같은 그런 전설로 남은 여배우요. 연극은 이미 저희 부모님에게는 너무 험한 예술이었죠.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특히 파리에서 가톨릭의 영향으로(프랑스의 종교 중립은 1905년에 선포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연극배우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성당에서 성인이 세례를 받거나 신부님 앞에서 결혼을 할 수도 없었고, 공동묘지에 묻히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어요. 영화는 너무 새로운 장르라 연극보다도 못한 평가를 받았어요. 저희 부모님 세대에는 그림을 콜라주화한 것에 불과하게 여겨졌고요. 시와 노래와 음악이 하는 일에 대하여 누군가는 제가 손쉽게 음악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주변 사람들은 일상이 음악에 둘러싸여 있거나 거의 듣지 않기도 하고요. 음악이 우리를 방해하는 소음이 되는 경우도 얼마나 많나요? 사실 제가 음악에 방해받을 때마다 놀라고는 해요. 그래도 음악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어요. 천상에서 내려오는 것같이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요. 일상에 지쳐 있다가도 갑자기 어떤 음악 하나로 완전히 구원받는 기분이 들고는 하잖아요. 그건 음악이 가진 진실함에서 기원해요. 진실함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어요. 어떤 노래의 가사들은 고스란히 ‘시’가 될 때가 있어요. 그 시로 인해 음악은 더욱 특별해지고 위력을 갖죠.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말할 때 그녀는 마치 시를 쓰듯 그렇게 말했어요. 정말 경이로운 사람이었죠.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이 매우 놀라운 존재들인 것처럼요. 가장 놀라운 것은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이 말하는 방식인데, 일상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흔히 사람들은 ‘이게 뭐야? 사실성이 없네?’라고 말해요. 맞아요.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실적임’을 뛰어넘는 말투예요. 예언자와도 같이 초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아주 내밀한 목소리를 들려줘요. 설명을 통해 제가 뭔가를 표현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분명하고, 실체가 있고, 감각적으로 느끼도록 노력할수록 제 내면에서는 감정들이 마구 끓어오르죠. 제가 살았고, 살아낼 것이고, 현재 살고 있는 그 순간의 감정들이요. 다 전해지지는 않지만요. 그래서 망원경이라는 단어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문체를 설명하는지도 몰라요. 저는 말하면서 문장을 균형감 있게 프레이징하듯 구성하지만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써낸 인물들은 그런 걸 하지 않아요. 그들은 인생을 뒤흔든 커다란 위기를 경험하고, 그다음의 위기를 준비하는 듯한 사람들이에요.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그런 사람들의 내면의 목소리를 우리로 하여금 듣게 해줘요. 사실 우리 내부에는 얼마쯤 다 있는 건데 잘 모르고 지나가버리기 쉬운 걸 발견하게 해주는 거예요. 당연히 우리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메트로나 카페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니까요. 현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그들이 우리를 한없이 괴롭게 하고, 고통받게 하고, 생각하게 하죠. 가장 역설적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없는 것,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일상적인 단어를 가지고 우리를 고뇌하게 하고 산산이 찢어버리고 파괴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익숙하지 않은 자세를 취하고 낯선 구도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위대한 시와 노래와 음악은 그걸 가능하게 해줘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문장도 그래요. 저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술가들은 사실 도둑들이나 다름없어요. 도둑보다는 사기라고 해야 할까요. 영화에도 당연히, 사기꾼들이 있어요. 어떤 특정한 설정들이 엄청난 감정들을 가져온다는 걸 사람들을 미친듯이 웃게 한다는 걸 알고 있죠. 설정들을 고려해 시나리오를 써내고 영화를 찍어요. 안전하게 적당한 구도를 잡고, 편집으로 리듬을 조절하고, 시퀀스를 만들고 이런 영화들이 영화의 수준에 상관없이 쉽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하죠. 또 다른 영화는 절박함, 이 시점에 세상에 꼭 나와야 하는 위급함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들이에요. 진정성이 있으니까 결국 통하죠. 이 위급함은 분리할 수 없는 요소예요.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사람들에게는 언뜻 낯설고 덜 매력적이라 관객의 인정을 좀 늦게 받아요. 사기꾼들은 곳곳에 숨어서 “이게 뭐야? 이상해! 이해가 안 가!”라고 말해요. 하지만 장담건대 18개월쯤 지나서 이 사기꾼들이 바로 이상하다고 했던 바로 그 부분을 가지고 슬쩍 다른 방식으로 비틀어 그들의 영화에 바로 써먹는걸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아방가르드함을 두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할리우드의 감독들이 어떤 특정한 시대의 프랑스영화에 홀딱 반해 있었던 건 정말 놀라워요. 당시 아방가르드 물결에 앞장서 있던 영화들을 통해 그 새로운 영토를 발견함으로써 새로움이 우리를 신선한 공기로 호흡하게 해줬어요. 아방가르드를 손가락질하던 이들이 나중에 결국 아방가르드를 차용한 걸 두고 사기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누구든 우리 스스로를 먹여살릴 이유가 있죠. 만약 어떤 위대한 배우가 엄청난 연기를 하는 걸 본다고 가정해볼까요. 누구든 그걸 보면 연기가 하고 싶어질 거예요. 거기에 깃든 진정성은 숨어 있는 자들의 질투와 폄하로 훼손되지 않아요. 역시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이들에게 가닿아서 의미 있는 울림이 되죠. 세상에 거짓이 얼마나 만연해 있나요. 누군가 제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면 저는 상대가 진실하지 않다는 걸 금방 알아차려요. 진정성을 갖기 위해 평생 애를 썼으니까요. 나르시시즘에 기반한 만족감은 사실 배우의 커리어 초반에 시작되어 늘 배우들을 따라다니지만 곧 다른 것들을 알게 되죠. 단순히 우리가 스스로를 타인들의 시선에 노출하면서, 스스로를 보여주면서 느끼는 만족감이 다가 아니에요. 어떤 예술이든 장르에 상관없이, 창작에 있어서 깊이가 더해질 때, 수직 방향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존재를 아주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탐구하게 돼요. 동시에 스스로를 가로질러서 다른 것들을 찾아가게 돼요. 그러니 나르시시즘은 일차원적인 감정이라 금방 초월하게 돼요. 영화 속 여성들의 역할에 대하여 저는 누구나 영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탭들이 필요한 건 맞죠. 예산이 있다면. 시나리오를 쓸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사고, 그 돈을 낼 수만 있다면. 그다음 이미지들에 도전하면 되죠. 만약 당신이 영화를 창조한다는 그 사실에 대한 집착과 폐쇄성을 버리지 못한다면 어렵겠지만요. 영화에서 의미 있는 여성 캐릭터들은 지금까지 위대한 영화의 존재 가치를 더욱 빛내준 여주인공들의 역할과 같아요. 그런데 최근 들어 점점 여주인공들이 설 자리가 사라져가고 있어요. 더이상 영화에서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아요. 제가 여배우로서 말하는 건데 아주 많은 영화들이 폭력적인 세계를 그려내기 위해 만들어지니까요. 폭력을 다루지 않는 영화는 에로티시즘에 천착하면서, 여기서도 역시 여성의 역할은 그저 대상화되어 줄어들어 있어요. 영화가 가장 빛나던 시대, 전성기의 할리우드나 누벨바그의 여주인공들은 이렇게 사용되지 않았어요. 처음에 그저 영화 속 인물들을 연기할 때에는 사실 그 캐릭터 속에 망명해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가상의 인물 속 그림자에 숨어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겨우 깨닫게 되는 거죠. 캐릭터들을 연기하면서 타인들을 이해하기 쉬워진다는 걸요. 결국 배우가 마지막에 가서 드러내는 것은 영화 속 인물이 아닌 스스로예요. 우리는 그제야 우리가 타인에 대해 행하고 있는 이 매혹적인 일이 의미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요. 아주 깊게 통찰하는 것, 이해하고 그 내면까지 온전히 아는 것, 그건 배우인 저에게 가장 중요한 평생의 숙제였어요. 어쩌면 오늘날까지도 제 앞에 놓여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