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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혈흔

※<살인자의 기억법> <윈드 리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발레리안: 천개 행성의 도시>의 데인 드한은 올 들어 가장 이상한 캐스팅이다. 그가 연기하는 발레리안은 자칭 마성의 바람둥이로, 사귄 여자들의 목록을 ‘플레이리스트’라고 부르며 영화에 등장하자마자 로렐린(카라 델러빈)에게 대뜸 구혼을 한다. 이런 역을 성립시키려면 뻔뻔한 카리스마- 가령 톰 크루즈나 해리슨 포드 같은- 가 필요한데 그것은 데인 드한의 사전에 없는 자질이다. 이 영화에서 데인 드한의 발성은 곧장 키아누 리브스의 둔탁한 대사연기를 연상시킨다. 특히 조종간을 잡은 로렐린에게 간섭하는 장면에선 판박이다. 드한의 캐스팅을 납득하는 길은, 뤽 베송이 전통적 마초 남성 영웅의 공식을 해체하려 했다고 믿는 것이다. 베송은 이번 영화에서 진주족의 외양을 중성적으로 디자인하고 황제 목소리를 엘리자베스 데비키에게 맡기기도 했다. 하긴 그러고보면 엄청난 능력을 지닌 이 영화 속 다양한 우주 종족들 가운데 왜 지구인이 여전히 중심인지도 설명하기 힘들긴 하다. 08/28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많은 사람을 살해한 김병수는 죽이고 싶었지만 참고 살려둔 자들을 회상하며 “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나”라는 작고한 부친의 말에 공감의 한숨을 쉰다. 문제의 부친은 가정폭력범이었는데 소년 김병수는 아버지를 살해한 후 재능을 발견해 꾸준히 살인했다. 김영하 작가가 쓴 소설에서 주인공의 동기는 “나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장인적’ 집착이다. 소설의 김병수는 규범을 벗어난 일종의 방외인(方外人)이다. 반면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원신연 감독은 김병수(설경구)를 상식의 영역 안에 넣는다. 그의 동기는 정의구현으로, 자기가 사회를 좀먹는다고 판단한 악인들을 제거한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알츠하이머는 평생을 속박한 살인의 의지로부터 인물을 풀어주는 구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방감도 잠시, 기억상실을 안고 불가피하게 살인을 재개한 김병수는 심연을 마주한다. 내가 누구인지 죽여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나침반을 잃어버린 그의 위기는 외적 파국이자 내적인 소멸이다. 그러나 영화의 김병수는 끝까지 해체되지 않는 주체다. 그는 관객이 동일시해 목적 달성 여정을 동반하는 고전적 영웅이다. 영화의 김병수에게는 애초에 “나쁜 놈들만 죽였다”는 정당화의 변이 있고 민태주(김남길)라는, 기억의 유실에도 불구하고 의심할 수 없는 확고한 적수가 있다. 관객이 김병수에게 동일시해도 괜찮은 이유로 영화는 핏줄도 안 섞인 딸을 끝까지 보호하려는 가족애를 제시한다(“내 딸만 손 안 대면 네가 뭘 하건 상관 안해”). 아버지의 정체와 그가 어머니에게 한 일을 깨닫고 (당연히) 저리 가라고 거부했던 착한 딸(설현)은 에필로그에서 용서하는 얼굴로 문병 온다. 마치 이 남자에게 아버지로서 자기를 보호하길 허하는 ‘고!’ 사인 같다. 결국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제 가족에게는 따뜻한 가엾은 악인과 훨씬 구제불능인 사이코패스의 관습적 싸움으로 귀결되어버린다. 소설에서 주인공의 기억과 세계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살인 행위로 연결돼 서로를 구성하는 재료를 공급한다. 영화에서 세계는 강고하고 기억상실은 인물을 방해하는 핸디캡이 되는 데에 그친다. 남성 주체의 자아는 너무도 지우기 어려운 무엇이다. 09/06 <윈드 리버>를 밀어가는 엔진은, 와이오밍주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일어난 두건의 강간살인사건이다. 야생동물 보호국 소속의 토박이 포식동물 사냥꾼 코리(제레미 레너)는 아메리카 원주민 아내와의 사이에 둔 맏딸을 잃었다. “완벽한 나의 세계 속에는 풀밭이 하나 있다”라는 시를 쓰는 아이였던 딸은, 눈밭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달아나다가 맨발로 죽었다. 3년 후, 가축을 해치는 퓨마를 추적하던 코리는 죽은 딸과 단짝이자 친구의 딸인 나탈리(켈시 초)의 얼어붙은 시신을 발견한다. 누군가로부터 달아나다가 폐가 터져버린. 코리는 이윽고 사냥할 포식동물이 네발 짐승만이 아니라고 결심한다. 사건 발생 장소가 보호구역이기에 파견된 FBI 수사관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은, 테일러 셰리던 감독이 쓴 전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케이트(에밀리 블런트)처럼 나이브하지만(그녀는 바람막이 차림으로 눈밭에 타이어를 공회전시키며 등장한다) 선의를 품은 아웃사이더다. 피해자도 추격자 중 한명도 여성이지만 <윈드 리버>는 궁극적으로 ‘괴물’에게 딸을 잃은 아버지들의 애도와 복수를 그린다. 제인은 인상적인 주역이지만 영화는 그녀에 대해 알 듯 말 듯한 지점에서 더 들어가지 않는다.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테일러 셰리던 감독이 묘사하는 와이오밍의 이 지역은 기실 모두가 모두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하는 곳이다. 오래전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고 억만장자가 다시 백만장자를 몰아낸 자리에서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여긴 아무것도 없어. 여자도 없고, 여흥도 없고 눈만 계속 쌓이잖아.” 타지에서 온 백인들은 변방 생활의 권태와 욕구불만을 지역 여성들을 향한 폭력으로 해소한다. 셰리던은 역시 시나리오를 쓴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와 마찬가지로 법에 호소하기보다 피해자의 상처를 달랠 수 있는 딱 맞는 방법을 법 밖에서 찾아 고독한 늑대의 태도로 밀어붙이는 방법을 택한다. 범죄 플롯과 금융자본이 휩쓸고 간 현대 미국의 스케치, 유장한 정서가 균형을 이룬 <로스트 인 더스트>에 비해 <윈드 리버>는 훨씬 감정적이다. 보호구역 주변 지역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문화,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들이 성폭력 앞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코멘트는 생략돼 있다. 살인 미스터리는, 해결이랄 것도 없는 압도적인 샘 페킨파풍의 총격전과 플래시백으로 순식간에 풀리고, 영화는 무고한 죽은 자와 비운의 땅을 애도하는 자리로 허위허위 돌아간다. 09/07 쌍용자동차 노동자 김정운씨는 2009년 구조조정과정 대상에 해당되지 않았지만 무더기로 정리해고된 동료들과 연대하며 투쟁을 시작했고 싸움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어른들이 싸우는 동안 아이들은 어김없이 자랐다. 한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안녕 히어로>는 아빠가 감옥에 간 2009년 봄부터 복직한 2016년까지 맏아들 현우의 9살부터 15살을 관찰과 인터뷰로 기록한다. 두 아들은 아직은 옥살이를 한다는 사실이 반드시 죄를 지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엔 어리다. 현우의 가족은 평범한 듯 결코 평범하지 않다. 부부는 일상적으로 어린 두 아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앉혀 아빠의 싸움과 관련된 뉴스를 보게 하고 현장에 데려간다. 아이들이 품는 궁금증과 의구심에 귀를 기울이며 본인조차 정답을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최대한 솔직하게 설명한다. 아빠와 엄마가 옳은 일을 하려고 고생하고 있으니 참아야 한다고 다그치지 않는다. 이 담담한 태도는 소년을 스스로 조용히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들의 반응과 고충은 어른들의 염려하는 바와는 사뭇 다르다. 현우는 선거에 입후보한 아빠 동료의 포스터 앞에서 “노동자로 선수교체”라는 슬로건이 틀렸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반박하지 않는다. 뭐, 주먹을 부르쥐고 입술을 깨물며 참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또래들이 그렇듯 현우가 제일 꺼리는 일은 남다르게 보여 일대일 면담에 호출되는 것이다(“이상한 애로 안 보이면 그걸로 돼요”). 장래희망도 특이한 직종을 썼다가는 발표를 시킬까봐 조심한다. 표정을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시기에 접어든 10대지만 영화는 김현우라는 개인의 성품을 서서히 드러낸다. 현우는 상냥함을 타고난 아이다. 이기적 불만이라고는 투쟁이 시작된 후 아빠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줄어서 같이 놀 기회가 적다는 정도다. 소년의 근심은 주로 부모를 향한다. 몇년이나 추운 곳에 서 있는 아빠가 안쓰럽고, 예전에 장난감을 졸라서 사지 않았으면 통장 잔고가 얼마일까 헤아려본다. 심지어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막연해 보였던 아빠의 고생에 가시적 목표가 생겨서 좋다고 안도한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주고 싶어요.” 부모가 아이에 대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부모에 대해 하는 말이다. 영화가 끝나기 8분 전에야 현우는 아빠와 영웅이라는 두 낱말을 이어서 쓴다. 아빠는 분명 특별하다. 하지만 소년은 아빠처럼 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용기를 주는 약이 있다면?”이라는 감독의 질문에 현우는 위험한 지경에 뛰어들어 오히려 둘 다 죽을 수 있으니 약을 버리겠다고, 아니면 (더 훌륭한) 딴 사람에게 약을 넘기겠다고 대답한다. 아이들은 입력한 대로 출력되는 수식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염려하되 이끌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한영희 감독은 이미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좋아요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우리의 20세기>의 도로시아(아네트 베닝)는 인류학자의 표정으로 본인의 장년과 10대 아들의 성장을 관찰한다. 아들을 무척 사랑하고 행복을 원하지만, 그것을 어렵게 만드는 세상사에도 호기심을 거두지 않는다. 영화 초반 슈퍼마켓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발화하는 장면에서 도로시아의 얼굴에는 경악과 동시에 강 건너 불 구경하는 흥분이 스쳐간다. 아들이 결석사유서 서명을 위조했다는 사실을 학교에서 통보받아도 감쪽같은 솜씨에 감탄부터 한다. 도로시아는 세입자들과 가족처럼 살며, 다양한 사람을 초대해 파티를 즐긴다. 그것이 아들을 잘 키우는 길 중 하나라 믿는다. 그녀는 본인의 고독과 어려움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모색하고 기웃거리는 50대 여성이다. 지적이고 관대하며 쓸쓸한, 세월과 화해한 자연스런 아름다움. 배우 아네트 베닝의 현재 얼굴이기도 하다.

<돈의 신> 가수 이승환 - 적어도 정의롭게 살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음악은 길고 긴 투쟁의 현장에 열기를 불어넣었다. 광우병 촛불 시위(2008년),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2009년) 무대에 올랐고 제작 난항을 겪던 영화 <26년>(2012)에 투자자로 참여해 힘을 더했으며 세월호 참사 추모곡 <가만히 있으라>(2015)를 내놓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했고 공연 <한쪽 눈을 가리지 마세요>(2015)를 직접 열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지난겨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 국민들의 힘겨운 겨울나기에 든든한 힘을 보탰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싱글 앨범 <돈의 신>을 발표해 음원을 무료로 배포했다. <돈의 신>은 주진우 기자의 ‘MB 프로젝트’ 일환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풍자한 곡이다. 최근 들어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이승환은 “주진우 기자의 취재와 그가 출연한 영화 <저수지 게임>을 응원하기 위해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돈의 신>이 MBC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예상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한 헌가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를 발표한 날, 미리 잡혔던 MBC 녹화가 취소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파업은 참여율이 좋고, 영화 <공범자들>도 개봉해 여론이 과거처럼 외면하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돈의 신>은 SBS 라디오에서 많이 틀어주고 있다. -매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열심히 홍보하고 있던데. =미디어들이 반응이 없으니까. 포털 사이트는 아예 처음부터 메인에 노출해줄 수 없다고 했다. 유튜브와 지니뮤직을 합쳐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9월 4일 현재 약 49만5천건에 이른다. -주진우 기자의 MB 프로젝트에 함께한 이유가 무엇인가. =인생에 두번의 큰 사건이 있었는데 하나가 들국화 공연을 보며 음악을 직업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시절,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겠다며 후보로 나서자 어떻게 그가 누구인지 모를 수 있을까, 스스로 너무 이상하다 싶었다. 그때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전에도 내 음악을 하고 있었지만 내 삶과 생각을 반영할 음악을 진정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다. MB 프로젝트는 좋은 기회고, 당연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문화제에 참여한 게 첫 집회 공연이지 않나. =음악을 하면서 돈을 벌면 좋겠지만, 나 스스로가 돈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 그게 나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든다. 요즘은 아티스트의 능력이나 예술성이 아닌 오로지 돈을 기준으로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돈을 숭상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 편법이나 범법으로 돈을 챙기고, 낙수효과처럼 국민들이 보고 배운 것 같다. 건물주가 아이들의 꿈이 된, 천박한 세상이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른 대통령과의 차이 중 하나가…. =완벽한 뻔뻔함이지. 하하하. -지위를 이용해 국가를 자신의 사업 수단으로 삼았다는 건데. =보수적인 집안에서 나고 자라 부산과 대구를 거쳐 서울 강남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보수 엘리트의 과정을 두루 거쳐온 까닭에 (정치에 대한) 아무런 의식이 없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나와 이상한 거짓말을 해대는 게 빤히 보이는데 사람들이 그것에 현혹되는 걸 보고 너무 놀랐다. 이명박은 내게 정치를 알려준, 의미가 큰 사람이다. 반대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심이 전혀 없다가 퇴임 이후의 행보를 보고 대통령이 재직 때 했던 일들을 찾아보면서 좋은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다. -이명박의 존재가 지금도 견고한데 그를 풍자하는 음반을 내는 일이 두렵진 않았나. =(이명박은) 엄청 힘이 세다.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에 나가기로 했을 때 공연 담당자를 통해 앞으로 공연장을 대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연락이 온 게 가장 큰 위협이었다. 모든 것을 빼앗아가겠다는 얘기니까. 세무조사도 당했다. 진짜 꼼꼼하셨어. (웃음) -이명박을 풍자하는 가사가 재기 넘치고 재미있더라. =객관적이고 정확한 가사여야 해서 주진우와 함께 썼고 법률 자문을 받았다. 처음에는 세게 쓰고 싶었는데 곡 작업을 하다보니 풍자라는 게 선을 타는 재미가 있었다. -백종열 감독이 연출하고 주진우 기자가 이명박 분장을 하고 출연한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었다. =신화와 관련된 컨셉이다. 백종열 감독에게 (주)진우가 무조건 나와야 하고, 이명박으로 분장하면 아이러니해서 더 재미있겠다고 싶었으며, (백종열 감독이) 콜라주를 시도하겠다고 하니 이명박 사진 열 몇장을 골라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레이어가 많아서 편집한 분이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음악적으로 이런 스타일을 구사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5월 21일부터 일을 쉬고 있어서 시간이 많았다. 여자를 너무 안 만났으니까 10월까지 5개월 동안 소개팅을 해야지 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웃음) 그리고 내가 새 정부의 수혜를 받을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행사에 나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특정 당이 주최하는 자리에 참석하기가 싫었다. 대선 때 지지하긴 했지만 말이다. 내 돈을 직접 투자해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공연 <한쪽 눈을 가리지 마세요>를 열었다. 그만큼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과 관련이 없는데 오해를 받느니 차라리 일을 잠깐 안 해야겠다 싶었는데 아무도 소개팅을 안 해주고. (웃음) 시간이 많아서 편집을 오래한 덕분에 곡이 잘 나온 것 같다. -주진우 기자가 출연한 영화 <저수지 게임>은 봤나. =언론에 공개되기 전에 봤다. 취재 실패담을 그린 영화인데 진우가 되게 껄렁거리더라. 아무래도 카메라가 따라다니니까 실제로 취재하는 것보다 멋지게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류승완 감독과 여러 의견을 내기도 했는데 그걸 다 밝힐 순 없고.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때 촛불 집회 무대에 올라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물어본다> <폴 투 플라이> <덩크슛>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가족> 등 총 6곡을 불렀는데. =공연을 가장 많이 하지만 텔레비전에 많이 안 나오다보니 사람들이 나를 잘 모른다. 그날 <덩크슛>을 불렀는데, 후렴구에 있는 가사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히야 야발라바히야’를 ‘주문을 외워보자/ 하야하라 박근혜 하야하라 박근혜’로 개사했는데 사람들이 멜로디를 몰라서 실제 음정과 다르게 불러 놀랐다. (웃음) 집회가 어렵고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들게 만들고 싶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게 하는 게 의도였다. -대중가수로서 가진 영향력을 인간의 존엄과 세상의 정의를 지키는 데 활용하는 모습이 든든했다. =성향이 연예계에서 완전한 아웃사이더이자 꼴통이니까. 지금도 하는 얘기지만 아는 PD가 4명 밖에 없고, 아는 연예인도 4명밖에 없으며 연예계 매니저는 한명도 아는 사람이 없다. 25살 때 직접 앨범을 제작하고 매니지먼트를 하면서 지켜본 방송·언론쪽 아저씨들의 모습이 너무 안좋았기 때문이다. 촌지를 요구하고, 그걸 주지 않으면 ‘같이 사는 세상이야, 승환아’ 이런 얘기를 들어야 했고. 그때부터 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반감을 너무 많이 가져서 반골이 된 거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음악 하는 게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물론 중간에 돈을 벌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애원> 뮤직비디오를 찍을 당시 귀신을 조작했다는 루머가 돌았을 때 매니저나 제작자 같은 바람막이 하나 없이 많은 적폐들을 맞닥뜨리면서 그 사람들과 동화되지 않기 위해 튕겨져 나가야 했다. 사이가 워낙 안 좋았던 탓에 그들은 <애원> 뮤직비디오 사태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보도했던 거다. -평소 후배 뮤지션들에게 대관료를 지원해주고, 수익금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프리 프롬 올’(Free from All)을 운영해왔고, 최근에는 CJ문화재단과 함께 인디밴드 공연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인 ‘프라지트’(FRAZIT)도 시작했는데. =지난 2년 동안 100개가 넘는 팀에 홍대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80만원씩 지원했다. 정의롭게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후배들을 도와주고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 역할을 하기 위해 숙명처럼 태어난 사람 같다. -후배들이 좋아할 것 같다. -지난해 인디신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선정됐다(국제음악축제 잔다리페스타에서 올해 키워드를 ‘리스펙트’로 정하면서 ‘존중의 인물’로 이승환을 선정했다). 후배들에게 대놓고 얘기한다. 내 목표는 너희들한테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거야, 존경을 받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할 뿐이야. -11월부터 전국투어 <공연의 끝>이 예정되어 있는데.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 =주진우가 전화를 해와서 ‘건강 괜찮으세요?’라고 물으면 맨날 하는 대답이 있다. 너보다는 나아. (웃음) 지난해 무대 위에서 8시간27분을 노래했다. 어제 팔굽혀펴기 기록이 165개였고, 한번에. 2, 3개월 전에 턱걸이를 30개 넘게 했다. 나는 건강하다. 오랫동안 섹스를 못해서 그게 자신이 없어서 그렇지. (웃음) 싱글 앨범 <돈의 신> 음원과 반주 음원을 음원 사이트에 무료로 배포됐다. ‘늬들은 고작 사람이나 사랑 따윌 믿지/ 난 돈을 믿어 고귀하고 정직해 날 구원할 유일한 선/ 늬들은 왜 그리 사니 근데 왜 그 꼴로 사니/ 돈으로 산 내 권세와 젊음 내 삶을 올려다봐.’ 이승환, 주진우, MC 메타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풍자하며 쓴 가사가 재기 넘치고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오케스트라가 동원된 멜로디는 이승환 특유의 창법과 어우러져 웅장하다. 주진우 기자가 이명박으로 분장해 출연한 것으로 화제가 된 뮤직비디오(연출 백종열)는 이미지 콜라주가 인상적인 풍자극이다.

[감독들의 감독들②] <매혹당한 사람들> 돈 시겔 - 직선적인 표현력

소피아 코폴라는 <매혹당한 사람들>(2017)의 원작인 돈 시겔의 <매혹당한 사람들>에 대해 “명성은 들었지만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매혹당한 사람들>은 미국 남북전쟁 시기, 부상을 입은 북군 존(클린트 이스트우드)이 여자들만 있는 기숙학교에 들어가 겪는 고전을 그린, 직선적이며 하드보일드한 남성적인 캐릭터를 구축해 온 시겔의 작품 안에서 비죽 솟아나온 독특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남성이 여성의 질투와 기만에 희생당하는 서사는, 46년 후 여성감독의 시각으로 여성의 응징으로 변환되니 두 작품의 비교지점도 상당하다. 그만큼 시겔의 스타일과 작품세계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그 극단에 자리한 것 같은 지금의 소피아 코폴라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시겔을 대표하는 수식어는 언제나 로버트 알드리치, 새뮤얼 풀러 등을 위시한 ‘B무비의 제왕’이었고, 저예산으로 만들어낸 액션영화의 대가로 통했다. 빠듯한 예산, 한정된 기간은 그의 영화에 늘 따라다니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신체강탈자의 침입>(1956), <킬러들>(1964), <더티 해리>(1971) 등을 통해 그는 미국 주류영화계에서는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해낸 장인이었다. 시겔이 영화를 시작한 건 1933년의 일이다. 시카고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했고 파리 예술학교 보아트에서도 잠깐 공부했다. 20살이 되면서 그는 할리우드로 와서 영화계에 입문한다.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에서 배우 일을 하기도 했으며, 이후 편집, 영화자료실 조수 등 각 분야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1930~40년대,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호황기를 누리던 할리우드에서 스튜디오는 다량의 영화를 찍어내느라 바빴고, 이때 습득한 다량의 작품을 효율적으로 발빠르게 찍어내는 제작 방식이 그의 영화를 만드는 리듬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당시 그는 수천편의 편집 일을 도맡기도 했는데, <카사블랑카>(1942) 역시 시겔이 편집에 참여했던 작품이다. 편집실에서 경험을 쌓던 그가 연출자로 각성하게 된 계기는 단편 <밤의 별>(1945)과 다큐멘터리 <히틀러는 살아 있다>(1945)를 만들면서다. 두 작품으로 아카데미에서 수상한 그는 곧바로 연출 재능을 살려 장편 극영화 만들기에 돌입한다. <신체강탈자의 침입> <킬러들> 등 시겔의 초기영화들이 이때 탄생한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직선적인 표현력, 레이먼드 챈들러나 대실 해밋 등이 쓴 하드보일드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마초적인 남성 캐릭터처럼, 이후 시겔 영화를 규정짓는 특징들이 이때 정립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킬러들>에서 킬러 찰리를 연기한 리 마빈에게서 시겔의 대표작인 <더티 해리>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저렴한 제작비로 액션 스릴러를 찍어내는 시겔은 할리우드에서보다 프랑스에서 먼저 인정을 받는다. 1950년대에 이르러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들은 ‘더이상 유능할 수 없는 스튜디오 감독’으로 그를 평가한다. 일견 할리우드가 그를 저평가한 데는 작품 자체뿐 아니라 좀체 스튜디오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하는 독불장군 스타일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스튜디오 영화를 많이 찍는 만큼 반골 기질의 그는 자주 해고되기를 반복한 전적이 있다. 흥행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던 그를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계기는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의 만남을 빼놓을 수 없다. 이스트우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화에 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돈 시겔 감독에게서 배운 것이다”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혔을 정도로 그의 영화 인생에 시겔의 그림자는 막강했다. <일망타진>(1968), <사라 자매를 위한 두 마리의 노새>(1970) 등을 시작으로 <매혹당한 사람들> <더티 해리> 이후 <알카트라즈 탈출>(1979)에 이르기까지 총 5편의 영화를 함께 찍은 영화 파트너였다 (특히 시겔의 두 번째 부인인 캐롤 리달은 이스트우드의 어시스턴트로 일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친분 역시 돈독했다). 두 사람의 영화인생에 전기를 가져온 <더티 해리>의 제작 당시 일화는 시겔의 자서전 <돈 시겔: 시겔의 영화>에 둘의 대화체로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워너와 이 작품을 협의 중이던 이스트우드는 시겔에게 영화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만류하는 시겔에게 직접 연출까지 맡아주길 청했다. 그간 구축해온 액션 연출의 장기를 십분 발휘한 <더티 해리>를 통해 시겔은 파시스트 보안관 해리 칼라한 경사를 창조해낸다. 감상을 배제한 직선적인 방식의 캐릭터 창출과 영화 스타일은 이후 그의 작품의 지속적인 뼈대가 된다. 존 웨인의 출연작 <총잡이>(1976)에서 시겔은 뒤늦게 도착한 서부극을 통해 또 한번 자신이 영화에서 그리는 인물의 스타일을 강조한다. 더이상 서부극의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 왕년의 서부극의 영웅인 존 웨인은 악당들과의 대결에서 만신창이가 된다. 뉴할리우드 시대의 상처뿐인 영광은 그렇게 시겔의 영화를 통해 시각화된다. 이후 시겔은 1991년 사망하기 전까지 <알카트라즈 탈출>, <텔레폰>(1977), <러프컷>(1979), <재수없는 상대>(1982) 등 다수의 작품을 더 내놓는다.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숙달된 기술을 바탕으로 하지만 평생을 할리우드의 시스템을 거스르는 ‘불편한’ 영화 만들기에 매진한 시겔. “나는 권위가 싫다”는 태도로 초지일관 스튜디오의 애정을 구애하기보다 삐딱한 정신으로 평생을 승부한 B급 장인의 영화 결기는 지금 다시 꺼내봐도 죽지 않았다. 어떤 감독? <매혹당한 사람들>(1971) 돈 시겔 감독 누가 언급했나. 박찬욱 감독. 올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가 소피아 코폴라가 연출한 리메이크작과 비교해서 보면 좋을 작품으로 선정. <매혹당한 사람들>은 어떤 영화? 미국 남북전쟁 시기, 부상을 입은 북군 존(클린트 이스트우드)은 남부의 한 소녀에게 구출된다. 소녀는 원장부터 선생, 학생까지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기숙학교로 존을 데려간다. 여성들의 간호로 존은 부상에서 회복되지만 위기는 회복 이후부터 시작된다. 존에게 매력을 느낀 여성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학교 분위기는 질투와 기만으로 가득 차게 되고, 이후 결단의 시간이 찾아온다. 남성을 단죄하는 후반부의 ‘액션’이 가해지기 이전, 전쟁이라는 긴장 상태, 폐쇄된 학교, 여성들간의 심리전, 섹슈얼한 판타지가 불러일으키는 긴장감 등이 치밀하게 직조된 작품이다. 시겔의 다른 작품에서 무자비한 남성성을 보여주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남부 여성이라는 ‘강적’을 만나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이 인상적. 소피아 코폴라의 리메이크작이 여성의 ‘응징’이라면, 시겔의 작품은 남성이 ‘당한다’는 관점의 차이가 엿보인다.

‘MB 정부 시기의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건’ 조사 결과 드러난 블랙리스트에 오른 영화인들의 반응

문성근 배우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적폐청산 TF로부터 보고받은 ‘MB 정부 시기의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건’ 조사 결과로 드러난 블랙리스트에 영화감독이 무려 52명(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등)에 이르며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 비해 압도적이더라. 국가정보 전문가들로부터 영화와 영화인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것 같아 매우 기쁘다. (웃음) ‘이명박근혜’ 정권 기간 동안 영화계, 특히 독립영화와 민간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정부 지원을 못 받지 않았나. 지난 9년 동안 스마트폰이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감청이나 도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아이폰을 사용하고, 텔레그램이나 아이메시지를 통해 문자를 주고받은 것도 그래서다. 이번 공개된 문화·예술인 사찰은 사생활을 일일이 들여다보진 않았겠으나 동향을 광범위하게 파악했다는 점에서 국가폭력이라 할 수 있겠다. 문화·예술인을 포함해 KBS, MBC 같은 방송사와 대기업 투자·배급사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작동됐다는 것은 그것을 실행한 공무원들이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범법 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수사가 필요하다. 모태펀드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한국벤처투자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방송사와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내부 고발과 증언 그리고 고백이 계속 나와야 한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에 거는 기대다.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감독 MB 정권 때 영화인들이 광우병 촛불집회, 민주노동당 지지 선언 등 시국 선언에 많이 참여했다. 영화인들의 시국 선언 참여는 MB 정권 이전에도 많았다. 참여정부 때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기도 했고. 어쨌거나 당시 시국 선언을 조직하는 일을 했었는데, 광우병 촛불집회 때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직원들도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적 있다. 집회 이후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 때문에 영진위 직원들이 징계를 받는 걸 지켜보면서 시국 참여를 독려할 때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 내가 피해를 보는 건 괜찮지만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볼 수 있으니까.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이 엔터팀을 따로 운영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국정원이 영화계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실제로 정보 기관이 어떤 유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발상 자체가 대한민국을, 30, 40년 전으로 되돌린 일이다. 댓글을 단 것만으로도 한심했는데 말이다.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명박 정권 초기에 좌파 영화제로 찍혔고, 집행위원장인 내가 '빨갱이'소리까지 들어서 국정원의 블랙리스트 문건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과거 문화·예술인들을 담당했던 국정원 요원이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영화인들을 만났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막상 상세하게 작성된 문건 내용을 보니 어이가 없다. 지난주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을 시작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에 가서 지난 정권에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지난 정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소상히 밝혀져야 한다. 이준익 감독 70년대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21세기에 통할 리 없다. 창작은 통제와 강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준동 나우필름·파인하우스필름 대표 개인적으로나 회사 차원에서 국정원 사찰을 당한 적은 없다. 기사 내용을 보니 돈줄을 쥐고 있는 대기업 투자·배급사 투자팀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한 게 아닌가 싶다. '이명박근혜'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화 투쟁을 통해 몇 십년 동안 이루해 온 민주주의가 퇴행됐다. 영화계가 몇십년 동안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영화를 만들어오지 않았나. 그런데 지난 정권의 국정원은 자신들 마음대로 '대통령이 직접 액션도 하는 히어로물을 만들려고 했다'는 발상 자체가 영화와 영화산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그것은 창조경제의 의미를 하나도 몰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막강한 권력을 앞세운 정보기관의사찰은 창작자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고, 현장에서 위축된다는 것은 자기 검열로 이어진다. 영화계가 무슨 작품을 만드는지 파악하는 일이 국정원 업무와 무슨 상관이 있나. 영화를 만드는 데 써야 할 에너지를 정보기관의 검열과 사찰에 쓰는 건 분명한 낭비다.국정원의 영화계 사찰은 이런저런 풍문을 들어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어이없기도 하고, 분노가 앞서기도 한다. 정지영 감독 지난 9년 동안 국정원이 영화인들을 사찰할 거라는 사실을 예측하고 있었다.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1985>(2012)를 연달아 연출했고,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2013)를 제작하며 활발하게 작업하다가 어느 순간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시 투자가 잘되지 않았던 건 흥행 감독도 아니고,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투자자들이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불편해한다, 같은 얘기를 간접적으로 들은 적 있다. 지난 6월 28일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직지코드>(2017)는 콘텐츠진흥원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심사에서 떨어진 게 내가 블랙리스트에 속한 감독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소신껏 일해왔는데 그게 권력에 미운털이 박힌 건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나. 다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서는 안 된다. 우리(영화인)는 지금까지 싸워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싸워나갈 것이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는 올랐지만 국정원이 따로 만나자고 하거나 연락해온 적은 없다. 지난 정권의 국정원 사찰은 한국 사회에 전방위적으로 자행된 일인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특정 이데올로기에 편향된 영화에 투자하고, 만들라고 독려한 건 단순한 사찰을 넘어선 일이라 할 수 있다. 국정원이 <변호인>(2013)에 관심을 보이며 제작 진행을 파악했던 일이나 한국벤처투자의 모 전문위원이 모태펀드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이토록 ‘화이트리스트’를 독려한 건 처음 들었고 매우 놀랍다. 얼마 전 업무를 시작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와 국정원 TF팀이 영화산업에 개입한 국정원에 대한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권해효 배우 MB 정권의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오른 영화감독이 무려 52명에 이른다는 건 그만큼 영화계를 장악하기 힘들었다는 방증이다. 그게 인사권을 이용해 조직을 장악했던 공영방송의 경우와 가장 큰? 이점이다. 대기업 투자·배급사가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거나 정권과 어울리지 않는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배우와 스탭들을 A, B, C등급으로 분류해 관리를 해왔다는 정황이 있었다. 대기업의 정권 눈치보기인지 아니면 청와대나 국정원이 이런 문건을 토대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국정원이 블랙리스트 문건을 작성해 영화계를 사찰했다는 사실이다. 새 정부는 이것을 철저하게 조사·수사해야 한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MB 블랙리스트에는 다수의 독립영화인이 포함되어 있다. 역시나 예상했던 것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다. MB 정부 초기, 수많은 성명서와 입장을 독립영화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발표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2008년 ‘촛불 섹션’을 별도로 신설해 작품 공모를 진행했는데, 그 까닭에 2009년 대규모로 실시된 시민사회단체감사에서 표적이 되었다. 실제로 감사를 받는 동안 ‘촛불’에 상당히 집착하는 인상을 받았다. 별 내용이 없으니 실망하는 듯했다. 공개된 리스트에는 한국독립영화협회, 서울독립영화제,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강릉시네마떼끄, 대구독립영화협회 등의 주요 활동가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수집경로가 어떠하든 독립영화에 대한 노골적인 배제로 읽힌다. MB 정부는 여러 방식의 공격을 통해 독립영화를 초토화하려 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강한섭 위원장 때 독립영화라는 말을 지우고 비상업영화라는 말로 대체하려 하기도 했다.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부관장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9년부터 흉흉한 소문 떠돌았다. 정권의 반대자로 분류된 영화인과 영화단체의 리스트가 작성되었고, 리스트에 들어 있는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과 배제가 있을 것이라는 게 소문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2009년 영화단체와 영화제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감사가 진행되었다. 강한섭 위원장 체제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의 사업자를 교체했고, 이후 조희문 위원장 체제의 영진위는 제작지원사업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 시나리오에 0점을 주었다. 유인촌 장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2010년 독립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폐지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번에 밝혀진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는 좌파 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영화계를 옥죄었고 탄압했다. 그리고 화이트리스트를 급하게 만들어 얼토당토않은 지원을 강행했다. 더 많은 것들이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바로잡혀야 한다. 양우석 감독 <변호인>(2013)을 만들고 난 뒤 주변에서 조심하라는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모태펀드 투자를 받는 게 힘들 거라는 얘기도 들었다. 다행히도 큰 어려움 없이 신작 <강철비>를 진행할 수 있었다. 영화를 포함한 문화콘텐츠는 자금 여력이 약한 분야고, 특히 영화는 유료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인 까닭에 권력이 정치적으로 개입하면 쉽게 위축될 수 있다. 지난 9년 동안 정권은 영화인들이 좌편향되었다고 했지만 그들의 표현대로 관객이 좌편향된 영화를 보기 때문에 영화인들이 그런 영화를 만드는 거다. 국정원이 좌편향된 영화인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하는 건 좌편향된 국민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결국은 일부만의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얘기다. 지난 정권의 국정원이 영화계를 사찰하고, 우파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회가 퇴보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보다 슬픔이 앞섰다.

국정원, CJ E&M 직접 관리했다

박근혜 정권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CJ E&M의 ‘좌경화’를 지적하며 ‘과도한 사업 확장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월 30일(월) 국정원 개혁위가 발표한 ‘적폐청산 T/F의 블랙리스트 작성 관여 사건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8월 27일 국정원은 ‘CJ의 좌편향 문화사업 확장 및 인물 영입 여론’이라는 제목의 청와대 보고서를 통해 CJ E&M이 투자·배급한 영화를 다음과 같이 바라보았다. △<살인의 추억> <공공의 적> <도가니> 등은 공무원·경찰을 부패·무능한 비리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을 주입하였고, △<공동경비구역 JSA> <베를린>이 북한의 군인·첩보원 등을 동지·착한 친구로 묘사해 종북(從北) 세력을 친근한 이미지로 오도하고, △<설국열차>는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기며, △천만 관객이 관람한 <광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토록 하는 등 지난 대선 시 문재인 후보를 간접 지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이 보고서를 살펴보면 국정원은 영화뿐만 아니라 CJ E&M이 제작한 방송 프로그램도 꼼꼼하게 챙겨본 것으로 드러났다. △‘좌파’ 영화감독 장진에게 의 연출·진행을 맡겨 대통령을 폄훼하고, ‘여의도 텔레토비’코너에서 대통령을 패러디한 ‘또’를 욕설을 가장 많이 하고 안하무인인 인물로 묘사해 정부비판 시각을 조정하였으며, △MBC 노조파업에 적극 가담했던 최일구·오상진 아나운서를 방송진행자로, KBS 노조파업을 지지했던 나영석 PD를 예능감독으로 기용하는 등 좌파 세력을 영입하고, △탁현민·김어준·표창원·진중권과 임수경 의원, 성한용 <한겨레> 기자 등을 토론 패널로 집중 출연시켜 종북좌파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지원했다고 지적하였다. 국정원은 ‘CJ의 좌경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친노(親盧)의 대모’ 역할을 해온 이미경 부회장이 회사의 좌성향 활동을 묵인하고 지원한 것으로 보고, 국가정체성 훼손 등 정부에 부담요인이 되지 않도록 CJ쪽에 시정을 강력 경고할 것을 건의했다. 한편, 국정원 개혁위는 국정원이 박근혜 정부의 ‘특정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 활동에 단초를 제공하였고,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요청에 따라 소위 문제인물 및 단체를 선별·통보하는 등 소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한 사실도 확인했다. 2013년 8월 부임한 직후부터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정원 그리고 문체부 사이에서 지시와 보고가 꽤 긴밀하게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2월 20일 국정원이 김 전 비서실장에게 문예기금 지원 심사체계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고, 다음날인 2월 21일 김 전 실장이 문체부에 문예기금 지원 대상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뒤, 국정원과 문체부에 지원 대상 인물을 검증하라고 지시했다. 2월 21일 이후 문체부가 국정원에 인물 검증을 요청하자 국정원이 문체부에 검증 결과를 통보했다. 국정원은 그렇게 검증한 결과를 바탕으로 2014년 3월 19일 김 전 실장에게 문예계 내 좌성향 세력 현황 및 고려사항을 보고했다. 청와대는 이것과 별개로 경찰에도 정부에 비판적인 인물이 있는지 검증하도록 지시했던 것으로도 확인됐다. 박찬욱·봉준호·이창동·정지영·류승완 감독, 배우 문성근·문소리·김규리 등 영화인 104명을 비롯한 문화·예술인 249명이 그렇게 작성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됐고, 박근혜 정부는 이 블랙리스트를 지원을 배제하는 데 활용했다.

[베를린] 1차대전 독일 프로파간다로 시작된 영화사의 과거와 현재

1920년대 독일영화의 최고 전성기를 담당했던 우파(Ufa)영화사가 100주년을 맞았다. 우파영화사 세트장이 자리했던 베를린과 포츠담에서는 전시회, 회고전, 학술대회 등 기념행사가 연달아 열리고 있다. 이미 베를린 예술영화극장 바빌론이 9월 한달 동안 우파영화사 영화 100여편을 선정해 상영했다. 또 9월 25일엔 독일 대통령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와 독일 영화인 4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독일 우파 100주년 기념식도 열렸다. 현재 포츠담 영화박물관에서는 전시회와 상영회가 열리고 있고, 베를린 영화박물관에서도 11월 전시회 일정이 잡혀 있다. 독일 프랑스 합작 공영 방송국 <아르테>에서는 우파영화사 100주년 기념 특집 영화들을 방영하고, 방영된 영화들을 인터넷에도 제공하고 있다. 우파영화사 영욕의 역사를 다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들이 12월 초 방영 예정이다. 한편 독일 역사박물관에서 지난 5월에 열렸던 우파영화사 관련 학술회의가 12월에도 열린다. 우파영화사는 독일 역사의 격동만큼 영욕의 100년을 겪었다. 1917년 12월 8일, 1차대전 중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우파영화사는 군국주의 프로파간다 영화 제작을 목표로 했다. 패전 후 상업 영화사로 선회한 다음, 영화사에 길이 남을 표현주의 걸작들을 배출해냈다.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 프리츠 랑의 <니벨룽겐>(1924)과 <메트로폴리스>(1927), 요제프 폰 슈테른베르크의 <푸른 천사>(1930)가 독일영화 황금시대의 대표작들이다. 하지만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선 후 독일영화계에서 유대인들이 퇴출되기 시작하고, 나치 프로파간다 영화가 상업영화와 함께 무수히 제작되었다. 2차대전 후 동독과 서독으로 나뉜 것처럼 우파영화사도 둘로 나뉘었다, 동독에서는 국영 영화사로 영속했지만, 서독에서는 우여곡절을 거쳐 1964년 독일 미디어기업인 베텔스만이 우파영화사 전신을 매입해 지금까지 경영하고 있다. 우파영화사는 지금도 텔레비전 중심으로 상업성과 작품성을 오가며 작품을 제작하는 중이다. 독일의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 <좋은 시간, 나쁜 시간>이나 작품성을 인정받은 <우리 어머니들, 우리 아버지들>이 최근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TV시리즈⑦] 숀 레비 <기묘한 이야기> 시즌2 - 거부할 수 없는 모험담의 매력

<기묘한 이야기> 시즌2 Stranger Things2 감독 더퍼 형제, 숀 레비, 앤드루 스탠턴, 레베카 토머스 / 출연 밀리 보비 브라운, 위노나 라이더, 핀 울프하트, 케일럽 매클로플린, 게이튼 마타라조 / 국내 방영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가 공개되기 직전에는 어느 누구도 이 드라마가 <하우스 오브 카드>나 <오렌지 이즈 블랙>과 같은 성공을 넷플릭스에 안겨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2016년 7월 시즌 첫 공개 이후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화제를 낳았고, 기획과 연출을 맡은 더퍼 형제가 바로 시즌2 각본 작업에 돌입할 수 있었던 데는 눈썰미 좋은 제작자 숀 레비 감독의 공이 크다. 대여섯편의 단편영화와 이제 막 첫 장편 데뷔작으로 만든 호러영화 <히든>이 포트폴리오의 전부였던 맷 더퍼, 로스 더퍼 형제는 TV시리즈로 제작 가능한 파일럿 몇편의 각본을 들고 영화사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러던 중 <히든>을 흥미롭게 본 프로듀서이자 숀 레비 감독의 제작사 ‘21랩스’의 대표인 도널드 디라인과도 만났는데 그에게서 시나리오를 전해 받은 숀 레비 감독은 <기묘한 이야기>를 읽자마자 그길로 더퍼 형제를 찾아가 드라마 판권을 계약했다. 더퍼 형제가 쓴 이야기가 워낙 흥미로운 이유도 있었겠지만 마침 시나리오를 받아 읽던 2015년 즈음은 숀 레비 감독 스스로도 뭔가 변화의 길을 찾아야겠다고 궁리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건강도 나빠지고 스스로에게 자극이 필요하다고 여기던 때에 마침 <기묘한 이야기>가 사무실 문을 두드린” 것은 거의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었다. 그는 이 시리즈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더퍼 형제가 전체 에피소드 10개 가운데 일부의 각본만 완성된 채로 1, 2편 촬영을 마쳤을 때 그가 나서서 “내가 3, 4편을 연출할 테니 자네들은 그 시간에 각본을 완성하라”며 공동 연출자로도 이름을 올려버렸다. 여기까지가 자존감이 곤두박질치던 어느 할리우드의 중년 감독에게 일어난 기묘한 성공담이다. 제작자로서의 감각과 감독으로서의 야심이 <기묘한 이야기> 성공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더퍼 형제는 넷플릭스와 시즌2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도 비슷한 전략을 취했다. 자신들은 기획과 각본을 총괄하면서 1, 2편 연출로 기조를 잡아주고 3, 4편을 숀 레비 감독에게, 5, 6편을 앤드루 스탠턴 감독에게, 7편을 레베카 토머스 감독에게 맡기면서 각본 작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더퍼 형제는 시즌1 때 팬들이 보인 반응과 평을 면밀히 살피면서 각본을 계속 수정해나갔다. 물론 최종 마무리인 8, 9편은 더퍼 형제의 손에서 끝을 맺었다. <기묘한 이야기>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인디애나주 호킨스라는 도시에 위치한 정체 모를 과학 연구 시설에서 실험에 의해 개조당해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 소녀 일레븐(밀리 보비 브라운)이 다른 차원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게 되면서 벌어지는 SF 호러 장르의 이야기다. 더퍼 형제는 자신들이 어려서부터 즐겨봤던 1980년대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요소를 교과서 삼아 지금의 할리우드 영화산업 내에서는 제작되기 어려운 연출을 자유롭게 시도했다. 연구시설에서 도망쳐 나온 소녀 일레븐을 보호하고 마을을 구하기 위해 뭉친 동네 너드 소년 네명이 벌이는 화끈한 모험담의 플롯은 당대 스필버그 사단 영화나 스티븐 킹 소설 속 세계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고 프로덕션 디자인과 음악 역시 1980년대에 유행했던 여러 요소로 꾸몄다. 기획 단계 때 여러 영화사를 돌며 아동용 타깃의 소박한 재미 요소라며 지적받았던 것들을 모두 살려 성공을 거둔 것이다.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기획이다. 하지만 TV시리즈 제작에 잔뼈가 굵을 대로 굵은 숀 레비 감독의 감각이 없었다면 어느 누구도 이런 과감한 투자를 결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TV드라마를 연출한 <알렉스 맥의 비밀세계>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니켈로디언>에서 방영된 작품으로 하굣길에 우연히 화학물질에 닿아 텔레파시 능력이 생긴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SF 판타지 드라마였다. 그다음 연출에 참여한 드라마 <앨런 스트레인지의 여행>은 지구에 떨어져 흑인 소년의 모습으로 숨어 사는 외계인 이야기를 다룬 아동 드라마였다. <기묘한 이야기>의 배경 출처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기묘한 이야기> 이후 숀 레비 감독의 이름을 크레딧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였다. 그가 연출을 맡을 차기작은 존 카펜터 감독의 <스타맨>의 리메이크 영화화 작업,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영화화하는 <언차티드>, 이혼한 부부가 외계인 침공을 겪으며 아이들을 잃어버려 위험한 여정을 떠나는 SF 액션영화 <더 폴> 등이다. <기묘한 이야기> 이후 숀 레비 감독이 완전히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감독으로서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나 스스로를 더 행복한 제작자로 만들어준다고 확신한다. 나는 이 일을 정말 사랑하고 또 그 결과물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연출과 제작은 너무 다른 영역이지만 둘 다 내가 즐기는 일이다.” 더퍼 형제의 <기묘한 이야기>가 슈퍼히어로로 뒤덮인 할리우드에 지친 관객에게 신선한 활력이 되어줬다면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숀 레비에게는 인생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줬다. 밀리 보비 브라운 2017년 전세계 핼러윈 시즌 최고의 코스튬은 단연 ‘일레븐’이었다. 하얗게 삭발한 머리를 하고 흙먼지가 묻어 지저분해진 드레스를 입고는 한손에 와플을 들고 코피를 흘리는 일레븐은 더없이 순수하면서도 세계를 뒤엎을 무자비한 파워도 갖춘 초능력자. <기묘한 이야기> 시즌1이 연구실에서만 갇혀 생활하다가 처음으로 바깥세상에 나와 친구들을 통해 우정과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된 일레븐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면서 스스로 우정과 사랑의 마음을 담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슬픈 성장담을 다뤘다면 시즌2의 이야기는 그녀를 아끼고 또 만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일레븐이 살아갈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적에 맞서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시즌2에서는 이전 시리즈에서 화제가 됐던 일레븐의 의상 스타일이 ‘MTV 시절’의 복고풍으로 확 바뀐 놀라운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 히어로 캐릭터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리플리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사라 코너 이후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 밀리 보비 브라운이라는 놀라운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4년 스페인 출생으로 4살 무렵 미국으로 건너온 그녀는 2013년에 데뷔해 <기묘한 이야기>의 일레븐 역에 발탁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지녔지만 연기로 이를 극복 중이다. 전세계 장르영화 팬들은 그녀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레아 공주의 젊은 시절을 연기할 유일한 배우라며 열광하는데 이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다. 그녀가 없었다면 <기묘한 이야기>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

불행에 절실히 접근하는 이승원 감독의 <해피뻐스데이>와 <소통과 거짓말>

이승원 감독의 장편영화 <소통과 거짓말> <해피뻐스데이> 두편이 최근 개봉했지만 저예산 독립영화의 처지가 흔히 그렇듯 많은 관객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이승원의 영화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영화들은 상업영화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묘사들로 화면의 표면을 채워 반도덕의 도발 그 자체로 호소한다는 오해를 사기 쉬운 데다, 이런 유형의 충격적인 소재로 작품의 개성을 포장하려는 시도는 이미 국내에서도 여러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피상적인 정보만 갖고는 굳이 이승원의 영화에 접근할 마음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 신청된 이승원의 두번째 장편영화 <해피뻐스데이>를 보고 나는 그의 영화가 섣부른 오해를 사기 쉬운 진정성의 폭탄이며 머지않아 주류 한국영화계에도 상당한 자극을 줄 잠재적 재능의 징표라고 봤다. 개봉 즈음에 다시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나의 건방진 태도를 반성했다. <해피뻐스데이>와 이승원의 첫 장편 <소통과 거짓말>은 적은 제작비에 따른 낮은 기술적 완성도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발광하는 아름다운 진실의 순간들로 뭉친 작품들이다. 유별나게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 인간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감독 이승원의 절실한 접근은 데뷔작 <소통과 거짓말>을 통해 (나는 몇해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이 영화를 이번에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이미 적절한 표현의 통로를 찾았다. <해피뻐스데이>는 이승원이 데뷔작에서 극한까지 밀어붙였던 불행한 인간들의 흉터투성이인 삶의 묘사를 이어가면서도 삶과 죽음, 상처와 재생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고유한 방식으로 접합한 것이 인상적이다. 서서히 드러나는 징후들 <해피뻐스데이>는 전신마비인 장남의 대소변을 번갈아 받아내야 하는 한 가족의 하루 일상을 시간 틀로 삼아 그 장남의 생일에 온 가족이 모여 어떤 음모에 의무적으로 가담해야 하는 내용을 담은 이야기다. 그 음모의 전개와 귀결에 서사적 긴장이 붙어야겠지만 그걸 방해하는 것은 가족 구성원 대다수의 정상성 규범에 벗어나는 말과 행동이다. 영화 초반에 소개되는 남매 상훈(박지홍)과 아현(김애진)은 방에서 함께 지내면서 하릴없이 뒹굴거리며 티격태격하는데 여장을 하고 여자가 되고 싶어 하며 어머니로부터 여자로 인정받은 상훈의 위치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남매가 아닌 자매다. 곧이어 집안 막내 승환(김성민)이 화면에 등장하는데 동네 깡패 형을 동경하는 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대상을 정하지 않고 누군가를 죽여버리겠다고 칼을 들고 설쳐댄다. 그다음에 집에 도착한 셋째아들 성일(이주원)은 그런 승환을 완력으로 제압하는데 틱장애가 있는 그가 겉보기에 우스꽝스럽게 말할 때마다 그가 데리고 온 약혼녀 정복(장선)은 상스럽게 낄낄댄다. 이 가족 구성원은 서로 뭘 하든 관심이 없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삶을 독립적으로 영위하며, 가족 누군가가 망가진 행동을 해도 또 다른 누군가는 그걸 재미있어 하는 상황들이 연이어 이어진다. 아버지가 없는 이 집안의 대장은 어머니인데 그가 겪은 불행은 가족들의 출생 계보를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누군가는 어머니가 동네 건달에게 성폭행당해 낳은 아들이고 누군가는 이 집안 아들이 성폭행한 탓에 데리고 들어와 키우는 딸이다. 이런 사연들은 영화가 진행된 지 한참 후에 차츰 밝혀진다. 감독 이승원은 등장인물들의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의 농도를 높여 반복적으로 제시한 다음에 우리가 그들의 사연을 궁금해하지 않을 지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들의 그런 행동동기에 대한 단초를 희미하게 설명한다. 인물들의 행동을 심리적 외상에 따른 징후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그걸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승원은 관객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이 겪는 물리적 징후의 결과들을 지켜보는 쪽으로 안내한다. <해피뻐스데이>의 화면에 나타난 물리적 징표들은 블랙코미디의 톤으로 묘사하는 척 위장하지만 실제로는 관객에게 난처함을 안긴다. 앞서 거론한 초반 장면에서 귀가하자마자 칼을 휘두르며 발작적인 행동을 하는 승환을 처음에는 여장 차림의 상훈이 말리는데 그 두 사람이 엉켜 이리저리 구를 때마다 상훈의 치마 속 삼각팬티가 드러나며 표시되는 것은 불쑥 발기된 성기다. 상훈의 발기된 성기를 보고 우리가 킥킥대고 웃는다면, 그건 어울리지 않게 여장을 한 배 나오고 못생긴 인물의 복장도착을 변태라고 비웃는 냉소의 묘사 전략에 따른 반응인지, 아니면 불우하게도 미모를 타고나지 못했으나 여하튼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인물에 대한 자발적인 공감의 데이터를 쌓아가는 반응인지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숙고가 필요하다. 이런 식의 묘사는 이 영화에 수두룩한데 가장 논란의 여지가 되는 것은, 영화의 중심 플롯에서 잠시 벗어나 곁가지로 묘사되는, 막내 승환과 존경하는 동네 양아치(감독 이승원이 직접 연기한다)가 만나는 장면이다. 말끝마다 욕이 붙어 있는 이 인물은 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며 승환 앞에서 허세를 떨다가 식당의 다른 손님들을 겁박한 후 밖으로 나와서는 근처를 지나가는 여학생을 한 건물 화장실에서 성폭행한다. 승환의 형 성일이 화장실로 찾아와 상황을 종결시키고 그 동네 양아치를 마구 때릴 때 뜻밖에도 그는 싱겁게 성일의 완력에 굴복하며 심지어 무릎을 꿇은 상태로 거듭 사과하면서 자기가 무릎이 좋지 않다고 징징댄다. 화장실에서 나온 성폭행 피해 여학생이 팬티를 끌어올리며 “이 새끼 죽여버리면 안 돼요?”라고 말할 때 이 장면은 끝나는데, 원래는 이승원이 연기하는 그 인물이 울면서 얘기하는 긴 장면이 있었으나 편집됐다고 한다. 이 장면은 단순히 받아들이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삽입된 장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관객의 불쾌를 일으키기 위한 불쾌한 장면은 관객의 도덕적, 심미적 기준을 혼란시킨다. 불구의 형상으로 제시된 초상 이승원 감독은 끈질기게 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도덕적 불구자로 그린다.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도덕적 우위에 오를 수 있는 인물들이 없다. 영화 초·중반 큰아들을 찾아온 장애인 성도우미를 어머니가 맞이할 때 며느리 선영은 그를 벌레 대하듯 한다. 거듭 감사를 표하던 어머니도 그 여자에게 얼마나 병균이 많겠냐고 하는 며느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금방 마음이 변한다. 도우미가 작업을 하러 큰아들이 있는 이층 방으로 올라갔을 때 짐승같은 큰아들의 괴성이 울려퍼지고 별일 아니라는 도우미의 말에도 불구하고 며느리를 비롯한 가족들은 난리를 치는데 이때 화면에 담기는 것은 반나체의 도우미다. 이 여자의 처지는 가족들에 의해 삽시간에 불쌍한 사람을 능멸한 가해자로 바뀐다. 그런가 하면 성일의 약혼녀 정복은 시도 때도 없이 음란한 말로 상대를 공격하며, 성일의 형이자 이 집안의 유일한 며느리인 선영의 남편 기태는 상전 모시듯 그런 그를 공손하게 대하며 맞장구를 친다. 기태의 아내인 선영은 성일과 관계했었고 기태와 딱 한번 관계한 것 때문에 딸을 낳았으며 그 딸이 성일과 기태 중 누구의 유전자를 받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떠들썩한 소동극의 분위기 속에서 불구의 형상으로 제시된 가족의 초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상투적인 도덕관의 경계를 넘어서며 점차 그들과 나란히 수평적인 위치에서 그들의 삶을 긍정도 부정도 아닌 관점으로 보게 만든다.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가족을 힘겹게 꾸리고 버티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 살아 있으되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지독한 고통의 대가라는 걸 드러내지 않고 공유한다. 영화 중·후반, 채팅으로 누군가를 만나러 간 상훈은 아현이 휴대폰으로 상대방에게 사진을 전송하는 바람에 허탕을 치고 귀가하는데 슬퍼하는 상훈을 키득대며 놀리는 아현은 “넌 나하고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돼”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가족들이 모두 공범으로 가담한 음모를 마무리하는 심야 술자리에서 함께 있는 다른 가족들에게 “너희들, 내 밑구녕으로 다 들어와. 다 죽어버려”라고 말한다. 이들은 영화에 나오는 또 다른 대사처럼 ‘죽어야 사는 것’이라는 역설을 각자 스스로 체화하고 있다. 죽음이 없다면 이 삶은 무한하고 무한한 삶은 고통이며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삶이 시작되지 않았던 어머니 자궁 속의 시원으로 이들은 돌아가야 한다. 그때까지 이들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그 상처를 통해 살아 있는 것을 감각하는 순환 고리에 갇혀 있다. 세속의 도덕으로 수식될 수 없는 삶의 진흙탕 놀랍게도 이 영화가 도달하는 것은 죽어야 사는 것이라는 역설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승원 감독은 자기만의 거친 방식으로(스포일러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어떤 등장인물이 또 다른 방식으로 현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현존 방식은 세속의 도덕으로 가닿을 수 없는 무한한 인간긍정의 도달점이다. 우리가 본받고 싶고 환상의 영역에서나마 감정이입하고 싶은 영웅 서사의 정반대편에서 이 영화는 이해할 수 없고 망가져 있으며 저 스스로 감출 수 없는 상처의 자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이는 인물들을 통해 그들에게 수직적 연민을 보낼 수 없어 당황하는 우리 자신을 느끼게 한다. 그들은 우리의 수직적 연민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로지 그들과 수평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위치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속의 도덕으로 옹호되거나 수식될 수 없는 삶의 진흙탕에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공존하는데 그들이 필사적으로 사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방기한 삶을 통해 이미 죽음과 가깝게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더 삶을 갈망한다. 이 역설을 표방하는 것은 며느리를 연기하는 김선영의 존재다. 영화의 말미에 가족들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큰아들의 방에 들어가 자기 삶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며느리의 말은 세속적 도덕의 경계를 놀라울 정도로 위반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느 누구의 것에 비해서 인간적이다. 이때까지 단독 화면을 거의 쓰지 않았던 감독 이승원은 이 장면에서 클로즈업을 구사하는데 이 예외성으로 드러나는 것은 며느리의 개별성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것까지 포괄하는 대표성이다. 이어지는 마지막 가족 소풍 장면에서 다시 한번 배치된 김선영의 클로즈업은 폐소공포증의 지옥도였던 영화의 공기를 휴식의 온기로 바꿔놓는다. <해피뻐스데이>는 낭비되고 있는 최근 한국 주류영화의 클로즈업 사용 문법의 결함을 재고하게 하는 반면교사이며 텔레비전 드라마의 호흡이 아니라 블록으로 짜인 화면의 긴장이 쌓일 때 단독 화면의 정서이입 효과가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 이제 이승원의 데뷔작 <소통과 거짓말>을 짧게 말할 차례가 되었다. <소통과 거짓말>은 <해피뻐스데이>에 비해 훨씬 어둡다. 등장인물들이 겪고 있는 내면의 지옥을 따라가며 관객이 경험하는 것은 끊임없는 감정적 하강이다. 정사각형 사이즈로 찍힌 화면은 인물들에게 일체의 탈출구도, 약간의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인물들을 가두며 장선과 김권후가 연기하는 남녀 주인공은 각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채 자신의 신체가 파열되는 과정을, 또는 자신의 마음이 붕괴되는 과정을 또 다른 자아가 지켜보는 듯이 행동한다. 일차적으로 이 인물들의 자기파괴적인 일상들이 묘사되는 면면은 아프다. 우리는 마음이 아플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아프게 될 것 같은 착각을 이 영화를 보며 느낀다. 경이적인 것은 그 병든 인간의 슬픈 상황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살아내는 것처럼 해내는 배우들의 연기다. <해피뻐스데이>에서 정복을 연기했던 장선은 특히, 어떤 연기론도 무색한 몰아의 경지를 화면에 구현한 것처럼 나는 느꼈다. 장선은 슬프다는 것을 슬프다고 표현하는 게 아니라 슬프다는 것을 슬프다고 표현하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영화 속에 존재했다. 이것은 의지로 되는 것도, 이해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고 나는 추측한다. 비록 허구의 인물이지만 그 인물의 슬픔에 거의 완전히 동화될 수 있는 기운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슬픔과 불행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노력에는 예상하기 힘든 기운이 필요하다. 다르게 말해서 우리는 자신을 훼손하면서까지, 또는 훼손할 수 있는 용기와 기운을 갖춰야만 다른 사람의 슬픔의 깊이에 가깝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장선의 연기가 그 비슷한 경지의 훼손을 치르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성취로 보였다.

에밀리 디킨슨의 생을 그린 <조용한 열정>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것은 한번도 답장하지 않은/ 세상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 자연이 부드러운 당당함으로/ 전해준 소박한 소식이다./ 그 소식은 내가 볼 수 없는 손에게 맡겨진다/ 다정한 동포들이여 자연을 사랑하듯/ 나도 후하게 판단해주길.” 에밀리 디킨슨은 은둔자로 불리며 당대에는 평가받지 못했지만 이후 시대를 앞서간 문학적 감수성으로 숱한 영감을 남긴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called back”(불려갔음)이라는 단순하고도 피할 수 없는 문장을 묘비명에 새긴 것처럼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고 솔직하다. <조용한 열정>은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담은 전기영화다. 유년 시절부터 죽음까지의 일대기를 담아냈지만 테렌스 데이비스의 영상으로 표현된 삶은 여느 일대기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표면화된 서사가 아니라 시의 아름다움을 담은 영화는 생생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눈을 돌리기 힘든 마력이 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써내려갔던 시인의 삶은 어떻게 시가 되었을까. 시도, 영화도 아름다움은 그 끝에서 통한다. 영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표현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56년을 산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하나의 손실 없이 이해하려면 56년 동안 찍은 필름이 필요하다. 물리적으로 그게 불가능하기에, 축약을 한다. 축약이란 결국 배제다. 불필요한 부분을 자의적인 판단 아래 제거하는 것이다. 어떤 정성을 들인다 해도 창작자에 의한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본래의 형태와는 달라진다. 다시 말해 완벽한 전기영화라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어쩌면 실존 인물을 다루는 모든 영화는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대상의 형태를 규정짓고 오해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피치 못한 축약과 왜곡에서 벗어날 유일한 가능성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시다. 에밀리 디킨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는 “진실을 압축하는” 작업이다. 시는 시인의 감정을 그대로 찍어내고자 하는 판화가 아니다. 단어의 배열, 문장의 형태, 시의 호흡을 거쳐 순간의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좁은 오솔길에 가깝다. 은유된 문장들은 읽는 이의 해석을 거쳐 각각 다른 가능성으로 발화된다. 시를 읽는 일은 일종의 교감이다. 우리는 시라는 문을 통해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고 그때 당시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인간이 느꼈던 감정에 맞닿는다. 에밀리 디킨슨이 쓰고, 테렌스 데이비스가 찍은 영상시집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이 그린 에밀리 디킨슨의 전기영화 <조용한 열정>은 삶을 찍어낸 영화라기보다는 삶에 조응하는 한편의 시라고 부르고 싶다. 이 영화는 에밀리의 유년 시절부터 죽음까지 일대기를 담고 있지만 삶의 궤적을 충실히 따라가는 여느 영화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테렌스 데이비스가 에밀리 디킨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관계자들이 즉각 은둔자에 관한 영화를 어떻게 만들 거냐고 반문했을 정도로 에밀리 디킨슨의 인생은 겉으로 알려진 사건이 거의 없다. ‘과격한 개인주의자’라는 평을 받았던 에밀리 디킨슨은 메사추세츠주의 작은 마을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집을 떠난 적도 없다. 그녀는 외부와의 관계를 거의 끊고 철저히 은둔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녀가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킨 건 아니다. 에밀리 디킨슨은 일생에 걸쳐 거의 하루에 한편씩 시를 썼고 1800여편의 시를 통해 세상에 자신을 알려왔다. 그녀는 세상이 잠드는 고요한 새벽마다 시를 썼다. 평생 집을 떠나본 일이 없지만 영감은 넘쳐났다. 그녀는 가족과의 갈등과 애정,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 기독교의 폭력적인 권위 등 시대에 저항했던 자신의 감정에 대해 썼다. 죽음과 어둠, 생의 무력감,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 등 실존적인 깨달음에 대해서도 썼다. 꽃과 벌, 자연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고 썼다. 그렇게 모든 시가 삶이었고 그녀가 버텨낸 시간이었으며 에밀리 디킨슨이었다.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은 에밀리 디킨슨이 겪은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찍는 대신 그녀의 시를 찍는 쪽으로 연출의 가닥을 잡는다. <조용한 열정>은 에밀리 디킨슨의 전기영화라는 딱딱한 틀 안에서 설명하기 곤란하다. 차라리 에밀리 디킨슨의 영상시집이라고 부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이 영화에는 흔히 말하는 기승전결의 서사적 구조가 없다.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고 간혹 장면마다 점프하는 상황도 맥락이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갑작스럽다. 원인과 결과의 흐름으로 사건을 구성하는 대신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는 에밀리 디킨슨의 감정들을 조각조각 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에밀리 디킨슨의 기숙학교 생활부터 출발한다. 아마도 강요된 질서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지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속죄와 회개가 의무라는 원장 앞에서 에밀리는 “깨닫지도 못한 죄를 어떻게 회개하나요”라며 홀로 반항한다. 바로 다음 장면,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는 창밖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에밀리의 뒷모습이 보인다. 카메라가 느리게 에밀리를 향해 클로즈업됨과 동시에 에밀리 디킨슨의 목소리로 한편의 시가 낭송된다. “모든 황홀한 순간엔 고통이 대가로 따른다/ 황홀한 만큼 날카롭고 떨리도록/ 사랑받은 시간만큼 비참한 수년/ 치열하게 싸운 동전들 눈물 가득한 금고.” 이 시가 에밀리 디킨슨의 감정의 표현인지 상황의 묘사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녀가 평생토록 깊숙이 침잠해 탐색했던 삶에 대한 실존인지는 중요치 않다. 장면은 원장 선생의 강요처럼 특정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화면과 관객 사이에는 오직 시적인 이미지의 순간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고요하게 펼쳐진 이미지와 내레이션은 관객에게 완전히 열린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게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이 한편씩 영상으로 옮겨지고 쌓여나간다. 솔직히 말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건이라고 해봤자 가족간의 갈등 정도이고, 공간이라고 해봐야 집과 애트머스의 산책길 정도가 전부다. 제목처럼 고요하게 흘러가는 영화는 에밀리 디킨슨의 내면에 흐르는 격정과 열정을 극적으로 표출시키는 무리는 범하진 않는다. 대신 에밀리 디킨슨이 남긴 시를 내레이션 형식으로 풀며 상황과 매치시킨다. 그녀의 시에는 제목이 따로 없다. 그날의 겪고 듣고 품었던 세계를 고요한 새벽에 언어의 형태로 옮겨 적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정확히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우주와 그녀를 둘러싼 19세기라는 세계가 충돌하는 기록들이다. 기독교 중심의 가치관과 여성을 철저히 억누르고 가두었던 당시의 사회는 그녀에게는 감옥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집과 가족은 에밀리 디킨슨의 영혼을 보호하는 유일한 장소였다. 에밀리 디킨슨은 은둔을 한 것이 아니라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투쟁을 이어간 셈이다. 기숙학교를 떠난 그날부터 그녀의 투쟁은 이어진다.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예민한 영혼과 19세기 미국, 두 세계가 때로는 불협화음을 내고 때로는 조화롭게 하모니를 이룬다. 그 모든 순간들이 시의 언어를 통해 발현되면 테렌스 데이비스는 전기영화의 서사에 개의치 않고 이를 하나하나 화면 위에 조각해낸다. 진실을 압축하는 이미지들, 절대적인 아름다움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19세기 최고의 미국 시로 재발견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주목하고 싶은 건 단어의 응축과 이미지즘적 스타일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군더더기가 없다.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걸 결코 풀어서 설명하지 않고 자신의 감성을 곧잘 사물에 빗대어 표현했다. 그 묘사들은 그림으로 옮길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고 구체적이다. 가령 짧게나마 마음을 빼앗겼던 워스워즈 목사와의 만남 뒤 이어지는 시는 환희에 가득한 그녀의 심정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가을에 그대 오신다면 여름은 훌훌 털어버릴래요/ 미소와 콧방귀로 파리를 쫓듯/ 일년 뒤 그대 오신다면 각 달을 공처럼 말아/ 서랍에 넣을래요. 때가 올 때까지/ 만약 더 늦어진다면 손 위에서 셀게요/ 그러다 손가락이 나락에 떨어질 때까지/ 만약 이 생이 끝나고 당신과 함께할 수 있다면/ 이 생은 벗어버리고 영원을 맛볼래요.” 당대 상황에서 유부남 목사에게 마음을 품는 것을 두고 동생 비니는 경악하지만 에밀리 디킨슨은 자신의 감정을 외면한 적이 없다. 그녀의 시가 진실을 압축하고 있는 것처럼 다가오는 건 그 때문이다. 시대에 저항하고 세상에 상처 입은 모든 순간들을 언어로 옮겨 담는 것이 에밀리 디킨슨이 숨을 쉬고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테렌스 데이비스는 그 시간의 호흡을 하나도 거르지 않고 느리고 세심한 카메라로 담아낸다. 여느 영화에서는 결코 보여주질 않을 잉여의 시간들, 멍한 표정들, 비어 있는 순간들이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주인공처럼 담긴다. 흐느끼는 어깨의 뒷모습, 어머니의 손을 잡은 힘없는 손길, 디킨슨이 병을 앓는 순간까지 한 호흡 더 길게 응시한다. 카메라는 인물의 격앙된 감정이 아니라 세계와 충돌하는 시의 형태, 시가 태어나는 순간의 호흡을 담기 위해 그 자리에 조금 더 머무는 것이다. 미묘한 표정과 제스처를 잡아내기 위해 오래 머무르고 무심하게 공간을 가로지는 카메라가 일견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영상시집이라고 생각하고 각 시퀀스들을 끊어서 감상해보면 전혀 다른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일대기이되 일대기가 아니다. 한 사람의 생을 따라가되 시가 탄생하는 순간에 방점을 찍고 한줄에 꿴다. 어떤 장면은 슬프고, 어떤 시는 애잔하고, 어떤 시는 푸근하고, 어떤 시는 황홀하다. 때로는 두세 가지가 동시에 이뤄지기도 한다. 에밀리 디킨슨이 시를 통해 영혼의 모양을 새겨 넣었다면 테렌스 데이비스는 시적 이미지를 통해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압축한다. 그래서 전체를 보면 일견 불균질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지나치게 완벽한 게 아닌가 느껴질 정도다. 그렇다. 테렌스 데이비스의 카메라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와 마찬가지로 ‘진실을 압축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가족과 집, 브라일링 버펌 같은 극소수의 우정 안에서 자신을 지켜오던 에밀리 디킨슨의 세계는 이별의 연속에 놓여 있다. 새로운 만남이 힘겨웠던만큼 익숙했던 것들과의 이별은 세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마음이 맞지 않던 고모가 죽고, 유일했던 친구가 결혼과 함께 떠나고, 이해와 반목을 반복했던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 또한 죽는다. 세계의 분열 앞에서 그녀의 영혼도 조금씩 찢어진다. 그럼에도 에밀리 디킨슨은 신장염으로 56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통과 균열의 흔적을 새기는 데 눈돌리지 않았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허락된 해방의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떠나가고 홀로 남겨질 것이라는 걸 예감하고 있는 에밀리 디킨슨에게 그것은 저주이자 축복이다. 그 축복은 전쟁 같은 자존을 통해서만이 유지된다. 새벽녘 혼자 시를 쓰고 있던 에밀리에게 오빠의 아내 수잔이 찾아와 말한다. “너에겐 시가 있잖아.” 에밀리는 화답한다. “너에겐 삶이 있잖아. 난 그저 일상이고. 구제불능에게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선물.” 에밀리의 시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여성으로서 시대와 전쟁을 벌였던 인간의 열정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고통의 산물이기도 하다. 에밀리 디킨슨도 시대에 순응하며 행복을 갈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고, 예민하며, 고고했다. 그 영혼의 형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름을 붙일 수는 있을까. 극중 결혼한 오빠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에밀리는 갓난 조카 아기를 품에 안고 읊조린다. “난 아무도 아녜요, 당신은 누군가요, 당신도 아무도 아닌가요. 그럼 우린 같은 처지네요. 말하진 말아요. 사람들이 알면 쫓아낼 테니. 누군가가 된다는 건 너무 우울해요.” <조용한 열정>에 어떤 묘사를 갖다붙이더라도 말이 무기력해질 것이다. 이 영화에는 압축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한 인간의 생이 담겨 있다. 모든 드라마와 극적 순간을 비껴가는 것 같지만 실상 그 묘사들이 너무도 생생하고 고통스러워 계속 바라보고 있기 힘들다. 동시에 그렇기에 영화가 내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여기 시가 된 영화, 영화가 된 시의 힘을 빌려 온전히 한 사람의 생을 목격한다. 영국의 영상시인 테렌스 데이비스 테렌스 데이비스는 1988년 장편영화 <먼 목소리, 정지된 삶>으로 데뷔한 이래 29년간 겨우 8편의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았을 뿐이다. 매우 신중하고 느리게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그 미학적 성취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영국의 작가 감독이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거나 직접 각본, 각색을 하는 그는 시적인 은유가 돋보이는 영상 스타일로 주목을 받는다.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는 다른 것”이라는 주장을 해온 그의 영화는 선형적인 서사 전달보다 영화적 형식의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데뷔작을 비롯한 초창기 작품들이 리버풀에 주목했다면 최근 테렌스 데이비스가 심취한 대상은 여성의 삶이다. 2000년 <환희의 집>, 2011년 <더 딥 블루 씨>는 물론 2015년 <선셋 송>까지 억압받아온 여성에 대한 관찰을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애초에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그가 시인 에밀리 디킨슨에 이끌린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요시네 교코 - 맑고 은은한 빛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의 소녀 나루세 준은 진심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한다. 매사 소극적이고 쭈뼛거리는 그녀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길은 뮤지컬 공연이다. 준 역을 맡은 요시네 교코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다름 아닌 원작인 인기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다. 소심하고 여리지만 배려 깊고 맑은 마음씨의 소녀. 애니메이션은 그런 소녀를 그리면 되지만 요시네 교코는 연기를 해야 한다. 아마도 나루세 준을 실사로 표현하는 데 현재 일본에서 요시네 교코만큼 적합한 캐스팅도 없을 것이다. <후지TV>에서 방영한 드라마 <라스트 신데렐라>로 데뷔한 요시네 교코는 귀엽고 맑고 청순한 캐릭터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차세대 배우다. 거기에 더해 요시네 교코는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자신을 드러내고 감정을 쏟아내어 스스로 빛나는 태양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아도 항상 주변에 머물며 은은히 빛을 반사하는 달에 가깝다. <하나코와 앤> <탐정의 탐정> 등 주요 드라마에서 활약하던 요시네 교코를 배우로 각인시킨 작품은 2015년 <오모테산도 고교 합창부!>다. 무려 1천 대 1의 오디션을 뚫고 주연으로 발탁된 이 작품을 통해 제86회 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제1회 컨피던스 어워드 드라마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대사나 표정보다 자세, 손짓, 목소리 톤으로 감정변화를 전달할 줄 아는 배우. 어쩌면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의 수줍지만 강인한 소녀 나루세 준은 그때부터 이미 그림을 찢고 나올 준비가 돼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2017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2016 <와사비> 2016 <64 파트2> 2015 <선배와 그녀> TV 2016 <벳핀상> 2016 <몽타주 3억엔 사건 기담> 2015 <오모테산도 고교 합창부!> 2015 <탐정의 탐정> 2014 <하나코와 앤> 2013 <가면티처> 2013 <라스트 신데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