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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팔 궁리만 하면 그래,잘 팔리남?

한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를 위해서 모인 모든 사람들은 상품을 파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상품을 개발할 사람이나 상품을 판매할 사람, 가게를 홍보할 사람, 가게를 운영할 사람 등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본래 맡은 역할보다는 어떻게 팔 것인지에 대해서만 의논했다. 결국 그 가게는? 마케팅 총괄, 마케팅 책임, 마케팅 관리, 마케팅 진행, 홍보마케팅…. 요즘 영화의 크레딧을 살펴보면 유독 마케팅이라 이름붙은 것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이름이야 붙이게 나름이지만 그 역할이나 성격이 어떻게 구분되는 것인지 직접 마케팅이라는 이름이 붙은 일만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애매하다. 영화가 산업으로 성장하고, 영화 외적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영화에서 마케팅이 차지하는 역할이 커지는 것은 필연적 현상이다. ‘영화산업’이다, ‘영화상품’이다라는 말로 영화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는 것처럼 영화라는 장르가 이제는 작품 개념의 순수예술로서뿐만 아니라 산업 분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야말로 무한한 마케팅의 가능성과 잠재력이 존재하며 그것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영화마케팅이란 무엇인가? 다른 여타 산업의 마케팅은 ‘고객이 원하는 바를 연구, 개발하여 거래를 촉진하는 창조적인 기능, 즉 상품의 질과 서비스의 판매를 조정, 이익을 위해 필요한 자질과 규모를 결정, 추진해가는 종합적인 노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영화마케팅에 빗대어 좀더 쉽게 말하면, 기획단계부터 사후관리까지 시장과 소비자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그 영화의 개봉뿐만 아니라 영화개봉 뒤 관리까지의 마케팅 전략과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관객이 영화의 정보를 접하게 되는 모든 것, 즉 홍보, 예고편, 광고, 프로모션, 이벤트 등 매우 사소한 부분까지 기획과 진행을 하는 것이 영화마케팅이다. 영화를 작품상으로 ‘잘 만드는 것’ 못지않게 상업적인 이윤을 위해 ‘잘 포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듯 마케팅이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한 작품 안에 ‘마케팅’ 작업을 수행하는 그룹이 늘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뭐든지 이름대로만 제 역할을 해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명색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름과 그 역할이 모호해지는 일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 분야에 많은 사람이 공조해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한쪽으로만 몰려서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는 것은 소모적이 아닐 수 없다. 영화에서 마케팅이라는 분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차피 영화를 위한 한 부분이다.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는 걸로만 끝난다면 오죽 좋겠느냐만, 배는 침몰하고 사공끼리 다투는 혼란을 겪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채윤희/올 댓 시네마 대표

[인터뷰] 영화 <선택> 주연 김중기

투옥 경험 살려 비전향 장기수로 열연 "사실 그게 지금은 중요하지 않거든요.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소리가 더 좋죠."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선택>의 주연배우 김중기(37) 에게는 다른 배우들이 갖지 못한 이색적 경력이 있다. 바로 임수경 씨가 평양에 가기 1년 전인 1988년 전대협 남북청년학생회담의 남측 단장까지 맡은 바 있는 학생운동권의 리더 출신이라는 것. 다음달 부산영화제 상영과 극장 개봉을 앞두고 기자를 만난 그는 "운동권 출신 배우라는 말이 썩 달갑지만은 않겠다"는 말에 "그게 사실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하며 말문을 열었다. "소위 말하는 문화운동을 하기 위해 연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행복하고 남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영화를 하는 것이죠.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말이 더 좋습니다." <선택>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사실 그의 연기를 기억하는 영화팬들은 많지 않다.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는 <둘 하나 섹스>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등 독립영화. 이밖에 <연풍연가>, <북경반점>, <정글쥬스>, <일단 뛰어>에서는 비중이 적은 조연으로만 얼굴을 내밀었다. 연기자 김중기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인 셈. 서울대 철학과 85학번으로 학생 운동으로 세상과 부딪치던 그가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 것은 영화 <정복자 펠레>와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때문이었다. "89년 감옥에서 나온 뒤에 그동안 안보던 영화도 보고 시나 소설을 읽으며 지냈어요. 이나 <정복자 펠레>, <프라하의 봄> 등을 보는데 이만큼 즐거운 일이 없더라고요. 특히 <정복자…>의 막스 폰 시도우의 연기를 보고 가슴이 뒤집어지는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어느 가을 도서관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연기자가 되겠다고 불쑥 결심을 했습니다." 군대에 다녀온 뒤 대학로에서 '소리없는 만가(挽歌)' 등의 연극에 몇편 출연했고 이듬해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공부했으며 영화전문지 필름2.0에 온라인 팀장을 맡은 2년을 제외하고는 영화 출연을 계속하고 있다. <선택>은 독립영화에만 출연하는 배우라고 인식될까봐 꺼리던 그가 '어쩔 수 없 는 운명'으로 선택한 영화. "운명 혹은 팔자 같은 거예요. 처음에는 출연을 고사했지만 스스로 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시나리오와 캐릭터도 탄탄하고 어렸을 적부터 늙은 나이에 이르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 배우로서도 좋은 도전이고…." 영화는 45년간 수감생활을 한 김선명 씨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 만큼 대부분의 촬영을 교도소 세트나 서대문의 실제 형무소에서 진행했다. 투옥 경험이 연기에도 도움이 됐겠다고 말을 건넸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독방에서 교도소 생활을 했으니 '소지'니 운동시간이니 하는 분위기는 잘 알고 있죠. 특히 밥먹는 장면에서 도움이 됐죠. 안에 있으면 정말 항상 배가 고프거든요." 교도소에서 먹었던 특식과 쌀밥 등의 얘기를 들려주며 말을 잇던 그에게 만약 김선명 씨의 상황이 되면 버틸 수 있었겠느냐고 물었다. "아마 못했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세대가 다르고 성장한 문화적 배경이 달라요. 장기수 분들은 선비스타일의 어른들 같아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굽히지 않는 것이 존재의 근거이고 이를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죠." 케빈 스페이시나 에드워드 노튼, 안성기 등의 배우를 좋아한다는 그에게 배우로서의 꿈은 무엇인지 물었다. "유명해지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먹고 살 정도의 돈을 벌며 평생 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바람입니다." <선택>은 다음달 2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뉴커런츠 부문에서 상영되며 같은 달 24일 전국 극장가에서 개봉한다. (서울=연합뉴스)

바람둥이와 정절녀가 통하였더냐,<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 Story 때는 조선 후기 정조 치세. 유판서의 정실부인인 조씨(이미숙)의 집에 벼슬길을 마다하고 풍류나 즐기며 사는 사촌동생 조원(배용준)이 찾아온다. 첫사랑인 서로를 오래전 포기해야 했던 두 사람은 이후 사랑을 냉소하며 비정한 호색가로 살아왔다. 조씨 부인은 아들을 얻기 위해 남편이 소실로 들이는 처녀 소옥(이소연)을 임신시켜달라고 조원에게 요구하지만, 조원의 목표는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정절녀 숙부인(전도연). 결국 숙부인을 함락시키면 조원에게 조씨가 몸을 허락한다는 거래가 성사된다. 숙부인이 출석하는 천주학 집회부터 치밀하게 공략해가는 조원. 소옥과 옆집 권도령(조현재)의 풋사랑이 사태에 뜻밖의 변수를 더하지만, 게임의 더 큰 반전은 숙부인의 진심을 바라보는 조원의 가슴속에서 싹튼다. ■ Review 연주에 앞서 현을 가다듬는 양악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으로 막을 올리는 시대극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이제부터 이질적인 것들이- 혹은 그리 믿고 있는 것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광경을 보게 되리라 통고한다. 과연, 영화의 서주부는 여인의 누드를 그리다말고 벌이는 대담한 정사와 얇은 장지문 너머에서 벌어지는 엄숙한 문중제의를 오락가락한다. 제삿날 시집에 간 며느리가 부엌을 빠져나와 연인에게 달려가던 감독의 전작 <정사>의 뜨거운 대목이, 대뜸 한 호흡에 펼쳐진다. 지체 높은 조선 사대부 남녀의 정사와 순애보를 그린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무엇보다 ‘번안’이라는 양식의 성실한 실험이다. 인물과 일화는 원작의 치마폭 안에서 최소한 변조됐고, 팽팽한 설전이 오갈라치면 가야금 대신 하프시코드가 차르랑거리며 추임새를 넣는다. 이재용 감독이 불러낸 추문의 주역은, 쇼데를로 라클로가 쓴 원작과 동명영화 <위험한 정사>의 메르테이유 후작부인, 비콩트 발몽, 투르벨 백작부인의 ‘도플갱어’들이다. 부유한 양반인 조씨 부인과 사촌동생 조원은 조선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를 우습게 알지만, 그 사회가 제공하는 안락한 틈새에 드러누워 산다. 첫사랑으로 순정을 매듭짓고 이후로는 “나도 어찌할 수 없다”며 함부로 심신을 굴리는 두 사람은, 어찌보면 금욕적인 인물이다. 열정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본성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사랑에 연연하는 어리석은 뭇 남녀를 농락하는 그들의 행각은 절반은 가학이되 절반은 자학이다. 반면 숙부인은 아는 게 그뿐인 열녀가 아니라 “평판에 휘둘리지 않고 믿는 일을 행하는” 온유한 카리스마의 여성이다. 후일 숙부인이 선택하는 길은 그녀가 천주학에 경도됐음을 돌이킬 때 더욱 애달픈 바 있다. 그러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겹겹의 장신구에 가려진 상류사회의 공동(空洞)을 갱스터에 가까운 신랄함으로 들추어냈던 마틴 스코시즈의 <순수의 시대>나 스티븐 프리어즈의 <위험한 관계>처럼 터프하지 않다. <스캔들….>의 거지반은- 놀랍게도(!)- 코미디이다. 흥미롭게도 <스캔들…>의 웃음은 시나리오로 읽을 때보다 인물을 둘러싼 물리적 현실의 부피가 감각으로 전해지는 영화로 볼 때, 또한 혼자보다 여럿이 볼 때 배가 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문화적 금제와 예스런 말투를 비집고 나오는 <스캔들…>의 ‘진담’들은 집단 카타르시스가 어린 웃음을 부른다. “소리를 지를 테요!”, “사내가 다정스럽기도 하지” 같은 심상한 대사, 불현듯 현대의 관객과 교감하는 능청스런 눈짓 하나 하나가 죄다 펀치라인이 된다. 순진하기만 한 원작의 세실과 달리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소옥의 존재도 희극성에 탄력을 준다. 원작의 또 다른 리메이크인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이 택한 분방한 뉴욕과 정반대로 제약이 한층 강고한 조선사회라는 배경은 이쯤 되면 장애가 아니라 에너지다. 번안을 통한 이같은 장르의 굴절은 <스캔들…>이 탄탄한 내러티브의 단순한 복제물이 아니라 신선한 해석본으로 발돋움했음을 보여준다. 코믹한 전반부와 대조적으로 얌전하게 진정한 사랑의 승리를 그려가는 후반부의 멜로드라마가 가지런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캔들…>은 흥행의 혈을 짚는다. 뼈대로 보면 코미디로 전개부까지 끌어가다가 멜로로 절정과 대단원을 마감하는 점이 한국 흥행영화의 공식과 멀지 않고 “그들도 우리처럼”이라는 당돌한 전제로 과거를 바라본 아이디어 역시 최근 눈길을 끈 <다모>나 <대장금> 같은 TV사극과 통한다. 가마에 넣는 요강까지 챙기는 <스캔들…>은 ‘웰메이드 시대극’으로서 포만감을 안긴다. 어디를 보아도 야무진 프로덕션디자인은 물론이고 잘게 쪼갠 컷과 정중동을 포착하는 카메라가 과거가 현실과 비슷한 박자로 흐르게끔 돕는다. 연기는 대체로 큰 역부터 작은 역까지 첩지를 받을 만하다. 이미숙은 눈썹의 꿈틀거림만으로 객석을 쥐락펴락하고, 자신과 타인을 비웃는 연기로 관객까지 웃기는 배용준은 스크린에 안착했다. 게임의 승부가 가려지고 마지막 꽃잎이 흩날려도 정숙히 자리를 보존할 것. 그럴듯한 후일담이 엔딩 크레딧 뒤에 기다리고 있으니.

정서를 담은 그림의 스펙터클,<카우보이 비밥-천국의 문>

■ Story 서기 2071년 화성, 트럭 한대가 폭발하면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근방에 퍼진다. 72명이 사망한 이 테러의 주범에게 걸린 현상금은 3억우롱. 돈이 없어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스파이크와 제트, 페이, 에드는 이 테러리스트를 체포해 고기를 먹어보자고 결심한다. 이들 비밥호 일행은 페이가 우연히 찍은 범인의 흐릿한 영상을 단서 삼아 사냥을 시작하지만, 현상금 사냥꾼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된다. 테러리스트 빈센트는 오래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특수부대 군인. 그는 마이크로 로봇을 이용한 인체실험의 희생물이었고, 이제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 Review <카우보이 비밥-천국의 문>은 1999년 종영된 TV시리즈 <카우보이 비밥>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네 사람과 한 마리의 이야기”라고 압축했던 <카우보이 비밥>은 낡은 우주선 비밥호에서 함께 살던 스파이크와 제트, 페이, 에드, 천재 강아지 아인이 먼 우주로 흩어지는 결말을 맞았었다. 그러므로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이 이들의 인연을 다시 한번 이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건 당연한 소망일지 모른다. 석양을 받으며 떠난 에드와 아인, “결코 깨지 않을 꿈을 보려” 했지만 영영 묻어두고 싶은 현실을 향해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스파이크는 아련하고 서글픈 추억을 남겼으므로. 그러나 <카우보이 비밥-천국의 문>은 TV시리즈 이전도 이후도 아닌, 그 일부에 속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 사람과 한 마리는 여전히 비밥호에 머물고 있고, 변함없이 난폭하게 비행을 하면서, 겁도 없이 현상범을 뒤쫓는다. 여행을 마친 철이가 진짜 어른이 되고 진짜 전쟁에 나서는 <은하철도 999>의 극장판과는 다른 것이다. 다만 <카우보이 비밥-천국의 문>은 좀더 길고도 깊은 시간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TV시리즈가 조각조각 드러냈던 스파이크의 서늘한 마음속을 한 호흡으로 이어가는 데 바쳐진다. 노래를 각 에피소드의 제목으로 삼은 TV시리즈는 리듬을 변주하듯 에피소드의 분위기를 바꿔나갔다. 트럭을 타고 질주하는 메탈과 자유롭고 귀엽게 미끄러지는 왈츠, 비에 젖은 장미꽃잎처럼 처연한 발라드. 그 안에서 스파이크와 동료들은 코믹하거나 쿨하게 음악을 탔고, 아주 드물게는 파열할 지경으로 무겁게 짓누르는 과거를 드러내기도 했다. <카우보이 비밥-천국의 문>은 이 사연 많은 캐릭터들 중에서도 스파이크를 골라내 빈센트라는 또 다른 자신을 짝지워줬다. 스파이크는 사고로 눈동자 하나를 잃어버리고선 갈색과 푸른색 눈동자로 각기 다른 시간을 동시에 응시하는 남자다. 한쪽 눈으로는 현재를, 다른 한쪽 눈으로는 과거를. 그러면서 그는 묻는다. 이것은 꿈일까 현실일까,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일까. 과거 때문에 현재로 복귀했지만, 가장 소중한 기억을 잊고 만 빈센트는 스파이크와 비슷한 독백을 중얼거린다. 어쩌면 세상 자체를 파괴하려는 빈센트의 행동은 꿈처럼 흐릿한 현실 속에서 뛰쳐나가고자 출구를 찾는 절박한 몸짓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스파이크는 함께 파멸할지 모르면서도 빈센트를 포기하지 못한다. 스파이크 역시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여자와 피로 맺은 조직의 형제를 한밤에 꾸는 흑백의 꿈처럼 지워버렸으니까.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기억과 삶과 죽음을 두 시간 가까이 아우르면서, 넓어진 공간도 한껏 활용했다. 2001년에 제작된 <카우보이 비밥-천국의 문>은 2D애니메이션인 탓에 오히려 낯설다. 테크놀로지가 관객의 감각에서 그동안 익숙했던 평면의 그림을 놀랄 만큼 빠르게 밀어냈기 때문이다. 이소룡의 절권도를 재현했다는 스파이크의 격투기나 자동차 가득한 도로를 헤집으며 현상범을 추적하는 페이의 비행정은 한 호흡 마음을 늦추지 않는다면 어설프게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카우보이 비밥-천국의 문>은 기술과 자본을 돌파하는 액션연출과 함께 정서를 담은 그림이 얼마나 스펙터클한지를 일깨우는 애니메이션이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사랑했던 여자를 기억해낸 빈센트, 망연한 시선으로 그의 추락을 지켜보는 옛 연인과 스파이크, 그들 위에 빛나는 날개 가루를 흩뿌리며 꿈과 현실의 경계를 녹여내리는 장자의 나비는 <카우보이 비밥-천국의 문>의 결정체와도 같다. 냉혹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순간 마음을 아득하게 만든다. 영화 첫 부분에서 흘러나왔던 빈센트의 독백이 되풀이되는 마지막은 명백한 구분을 부정하는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의지인 듯싶다. 하드보일드한 <카우보이 비밥>의 세계는 스크린에 도달해 곡선을 이루었고, 늘어지는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완강한 잔상을 남기게 됐다. 뜻이 통하는 사람들의 재능을 창조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평소처럼 간노 요코의 음악을 실어나르는 외에도, <인랑>의 감독 오키우라 히로유키를 데려와 모노톤이 쓸쓸한 오프닝 시퀀스를 만들기도 했다. :: 캐릭터 소개 무표정 뒤에 진한 슬픔이 1998년 에서 방영을 시작한 <카우보이 비밥>은 ‘위상차 공간 게이트’를 통해 행성에서 행성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2070년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웨스턴과 SF, 필름누아르를 섞은 듯한 정서를 가진 시리즈. 그 자체만으로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음악과 깊은 감정을 지닌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스파이크 스피겔: 중국계 마피아 조직 레드 드래곤의 2인자였지만, 죽음과도 같은 경험을 겪고선 현상금 사냥꾼 ‘카우보이’가 됐다. 무심한 듯 아무 생각없어 보이지만 가슴 쓸어내리게 하는 슬픔도 묻어놓은 인물. 젊은 시절 죽음을 두려워해본 적이 없는 스파이크는 줄리아를 사랑하면서 처음으로 삶을 욕망하게 됐다. 그러나 함께 떠나기로 한 줄리아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스파이크는 시리즈가 끝나갈 무렵 다시 과거와 대면한다. 스파이크의 과거사를 담은 <타락천사의 발라드>는 시리즈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 에피소드다. 제트 블랙: 한쪽에 기계팔을 단 전직 가니메데 행성 경찰. 비밥호의 살림을 도맡고 있으며, 돈만 있으면 훌륭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요리사이기도 하다.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고향을 떠난 제트는 그 때문에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시동을 걸고 동료를 도우러 달려가곤 한다. 믿거나 말거나 서른여섯살이다. 페이 발렌타인: 20세기에 냉동되었다가 아무런 기억도 없이 21세기에 깨어났다. 깨어난 그 병원에서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불운한 인물. 그러나 그 빚더미가 갈수록 불어난 데는 본인의 도박벽이 더 큰 몫을 했다. 어느 날 과거에서 날아온 비디오테이프를 받고선 알 수 없는 과거로 이끌리기 시작한다. 에드워드 웡 호 페펠루 티부르스키 4세: 아버지가 깜박 잊어버리는 바람에 고아나 다름없이 된 소녀. 천재적인 해커로 비밥호에는 스스로 뛰어들었다. 모니터와 키보드를 사용하는 대신 특유의 몸짓으로 가상공간을 헤엄치며 해킹하는 에드의 모습은 윌리엄 깁슨의 사이버펑크 소설을 닮은 요소. 마찬가지로 천재인 강아지 아인과 친하다.

감독 신상옥-배우 최은희,`안양신필림예술센터` 재건

물리적으로 많은 나이가 인간의 활동을 상당 부분 제한한다는 것은 강력한 편견이다. 그러나 또 종종 깨진다. 이 편견의 근거없는 힘은 지난 9월18일 오후 신상옥-최은희 부부를 대하는 순간 더욱 무력해졌다. 안양신필림예술센터 학생들의 뮤지컬 <미스 마마> 공연을 앞둔 안양문예회관 2층 로비. 분주히 손님들을 맞고 있던 두 사람에게서 어느 누구라도 그 얼굴에 띤 홍조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신 감독 내외는 25년 만에 학교를 다시 세우고, 기본기 닦기에 한창인 학생들을 가르쳐 3개월 만에 무대 위로 올린 참이다. 여전히 창작의 열정이 스며나오는 노 감독과 배우 부부, 그리고 그 제자들의 뮤지컬 공연. 얼핏 기묘해 보이는 이 삼박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시간을 조금 거슬러올라갈 필요가 있다. 사재 20억원 털어 학교 근간 재건 안양예고와 계원예고가 자리한 경기도 안양시는, 1967년 세워졌던 ‘신필림부설안양예술학교’를 기억하고 있다. 이 학교는 신상옥 감독의 영화제작사 신필림이 스튜디오 내에 연기실을 만들면서 시작된 배우양성기관. 신필림은 당시 연간 30편의 영화를 제작해낼 만큼 규모와 위상 면에서 국내 최고를 자랑하던 영화제작사였다. 왕성한 영화 제작편수를 배우 수가 받쳐주지 못하자 신 감독이 ‘자급자족’ 시스템을 고안해낸 셈이다. 1978년 신 감독 내외가 연이어 북으로 가게 되면서 주인을 잃은 이 학교는 안양예술고등학교로 바뀌게 된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 안양시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설립자인 신 감독 내외와 한국 영화사에 굵직한 획을 남긴 영화제작사 신필림이다. 신 감독 내외도 그들이 세웠던 학교를 잊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학교를 세워 연기자를 양성하겠다는 열정은 세월의 입김에도 식지 않았다. 이 마음이 예술도시의 위상 회복을 꿈꾸던 안양시의 바람과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초 안양시가 주최한 신상옥 감독 작품 회고전은 이유없는 행사가 아니었다. 회고전을 개최하면서 안양시장은 신 감독 내외에게 안양시 내 예술학교 건립을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올해 3월, 안양시로부터 임대받은 경찰서 부지 위에 안양신필림예술센터가 문을 열었다. 애초 의도는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센터’로 이름 붙은 까닭은, 학교 인가를 받지 못해서다. 사립학교의 부지가 설립자 소유가 아닐 경우 학교 인가는 나지 않는다. 학교 건립을 먼저 제안했으나 재정이 넉넉지 않은 안양시로선 부지 임대가 최대한의 협조였다. 신 감독 내외는 사재 20억원을 들여 기존 건물을 개조 및 수리, 증축해 현재의 센터를 완성했다. 3천평의 대지 위에는 강의실과 스튜디오, 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 등이 꼼꼼하게 들어앉아 있고, 감독과, 연기과, 작편곡과, 가수과 등 4개 학과 안에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160명가량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신상옥 감독은 이사장의 타이틀을 달았고, 최은희씨가 학장을 맡았다. 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혹독한 실기 사실 이런 정황만으로 신필림예술센터를 주목해야 한다고 적극 발언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이유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영화사의 일부분을 몸에 새긴 영화인이 오래된 의지와 아낌없는 사재투자로 학교를 세웠다는 것, 여기에서 이 학교의 독특한 성격도 비롯되고 있다. 40여년 전의 안양예술학교 설립 의도도 그러했지만 신상옥 감독의 신필림예술센터는 실기와 현장 경험 위주의 교육을 가장 큰 목표로 삼는다. 지난 18일 안양문예회관에서 선보인 뮤지컬 공연 <미스 마마>는 이 목표를 실현시킨 첫 번째 결과물이다. 예술센터 학생들은 기본기 수업을 3개월만 받고 6월에 오디션을 치렀다. 캐스트가 확정된 뒤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혹독한 연습이 계속됐다. 이 과정이 정말 ‘혹독’했으리라 짐작되는 까닭은 학생들 중 상당수가 ‘하고 싶다는 의지’를 높이 평가받아 입학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교무과장 양계현씨는 “총지원자 수가 230명 정도 됐는데 간단한 면접으로 학생들을 걸러냈다. 자격에 큰 제한을 둔 건 아니었고, 신 감독님 내외는 학생들이 본인 의사로 온 건지 부모에게 떠밀려 지원한 건지를 판단했다. 자신이 희망해서 오지 않은 학생들은 안 받겠다는 뜻이었다”고 말한다. 외모나 나이, 연기력 따윈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았다. 공연 팸플릿 인사말에 담긴 최은희씨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완전한 배우는 없다. 항상 겸손하고 배우는 자세로 임하길 바란다.” 뮤지컬 <미스마마> 만들기로 수업 이론보다는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당연한’ 생각은 이곳의 커리큘럼도 독특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수업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구성된다. 지난 1학기는 이번에 치른 <미스 마마> 시공연을 중심으로 수업을 꾸렸고, 현재는 11월에 있을 본공연에 맞춰 진행 중이다. “아직은 아이들 실력이 검증이 안 돼서 시공연-본공연 형태로 하고 있다”는 것이 학교쪽의 설명. 감독과와 연기과 학생들은 뮤지컬 본공연을 마친 뒤 내년 새로운 프로젝트 수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작편곡과와 가수과 학생들은 오는 12월 콘서트 시공연, 내년 상반기 본공연 일정에 맞춰 수업을 받고 있다. 안양신필림예술센터의 첫 학생공연 <미스 마마>는 과거 신필림부설안양예술학교 학생들이 출연했던 뮤지컬영화 <아이 러브 마마>의 각색작이다. 지금은 예술감독 크레딧을 달고 있는 신상옥 감독이 직접 연출했고 남궁원, 최은희씨가 주연을 맡았었다. 신 감독은, “그때 그 학교를 다녔던 서미경이, 김보연이, 김세환이가 이거 하고 나서 유명해졌지”라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공연이 있던 그날은 오후 일찍부터 비가 내렸다. 그 와중에도 찾아온 지인들을 맞으면서 신 감독 내외는 총 3회 공연 내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2회 공연을 관람하던 신상옥 감독은, 마치 이 공연 처음 본다는 듯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연습은 물론이고 리허설과 1회 공연까지도 똑같은 것을 수없이 보았을 텐데, 그에겐 전혀 새로운 듯했다. 아마 3회 공연 때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저 표정 외에 신필림예술센터가 세워지게 된 궁극적 이유를 설명할 길은, 없는 듯하다. “내 몸을 바치고 있다” 신상옥-최은희, 양계현씨 인터뷰 지난 9월18일 늦은 오후, <미스 마마> 2회 공연이 끝나고 안양문예회관에서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씨 내외, 그리고 신필림예술센터의 교무과장 양계현씨를 만났다. 하루 동안 3회 공연이 연달아 진행되는 일정 때문인지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분주해 보였고, 그중에서도 세 사람은 가장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인터뷰는, 신 감독 내외가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는 짬을 통해 짤막히 진행됐다. 최은희, 신상옥 학교를 세우겠다는 뜻을 결국은 다시 실현시켰다. (최은희)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해오고 있었다. 가끔 아는 사람들이 “예전에 예술학교 하셨죠? 지금은 다시 학교 안 하세요?” 이런 질문을 물어오곤 했다. 일반 대학교에서 예술학교를 만들자는 제안도 몇번 들어왔었다. 그렇지만 막상 얘기해보니 그쪽이랑 우리랑 의견이 맞지 않아서 거절했다. 안양예술학교 때도 그렇고 지금 예술센터에서도 최은희씨가 학장 일을 맡고 있다. (최은희) 그때는 특강만 했지 요즘처럼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영화랑 TV 출연하느라. 요즘엔 완전히 내 몸 바쳐서 신경쓰고 있다. 이번 공연이, 말하자면 신필림예술센터를 본격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인데 특별히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뭔가. (신상옥) 젊은 애들 구미에 맞추려고 뮤지컬을 택했다. 원래는 사극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심청전>을 하려고 했는데 애들이 어려워할까봐 바꿨다. 공연 준비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신상옥) 2억원 가까이 들었다. 애들 등록금 1년치 모으면 3억원인데. 내년엔 TV드라마를 자체적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드라마 만들어서 방송사에 납품할 거다. 영화도 만들 계획이다. 다른 연영과에서는 무서워서 못한다. 돈이 없어지니까. 사재 20억원도 털어넣었다. 엄청난 애정이다. (신상옥) (웃음) 나이가 이렇게 드니까 다들 아들딸 같다. 양계현 학생들은 어떻게 모집했나. 크게 홍보하지는 않았는데, 신 감독님과 최은희씨가 학교를 세운다는 기사가 나가서 그걸 보고 지원해 왔다. 올해 1월 말부터 2월까지 신청을 받았다. 학생들 나이가 다양하다. 나이 제한을 안 두고 받았다. 초·중·고등학생들은 정규 학교를 다니면서 이곳에서 수업을 받고 있고, 성인반 친구들은 대학을 포기하고 온 애들이다. 커리큘럼이 특이하다. 프로젝트에 따라 수업이 편성된다. 이번 뮤지컬 공연이 끝나면 바로 드라마 제작에 들어간다. 그러면 수업도 거기에 맞춰서 진행될 것이다. 일본 드라마가 원작인데, 판권 때문에 신 감독님이 일본에 가셨다. 만들고 나면 방송사에 납품할 계획이다. 주요 배역과 스탭들은 모두 기성 배우와 전문가들이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이 조연과 어시스트로 참여하게 된다. 학생으로선 직접 실습을 한다는 의미가 있고, 방송사 입장에서는 외주를 받는 셈이다. 신 감독님과 최은희씨는 학교 일에 얼마나 관여하는가. 제일 일찍 나오시고 제일 늦게 퇴근하신다. 직접 수업도 하신다. 최은희 선생님은 금요일마다 연기과 학생들 모니터링을 해주시고, 신 감독님은 금요일마다 영화 감상하고 평가하는 토론 수업을 진행하셨다. 지금은 감독과 학생들한테 프로젝트를 주셨는데 그걸 관리하고 계신다. 이번 뮤지컬 메이킹필름을 찍는 거다. 본인은 두분과 그 전부터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나. 아니다. 모 방송사 아카데미에 있다가 왔다. 거기는 정말 학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여기는 다르다. 두분에게 배울 게 정말 많다.

영화 쏟아지는 해운대의 첫날 밤

3년만에 야외에서 개막식, 국내외 영화인들 대거 참석 여덟번째 출항을 알리는 고동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60개국에서 온 242편의 영화를 싣고 10월2일부터 아흐레 동안의 항해에 나선다. 오늘 저녁 7시 해운대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관에서 열리는 개막식은 3년만에 야외에서 열리게 되어 관심을 모은다. 5000석의 객석과 시원한 스크린을 배경으로 초가을 바닷가의 정취를 즐길 수 있어 한동안 부산영화제만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야외 행사는 지난 2년간 영화제가 11월에 개막하는 바람에 날씨 탓으로 열리지 못했다. 박중훈과 방은진의 사회로 열리는 이날의 개막식은 안상영 부산영화제 조직위원장의 개막 선언으로 시작해 개막 퍼포먼스인 황병기 명인의 가야금 연주공연 ‘침향무’로 이어지며, 심사위원 소개, 개막작 <도플갱어>의 감독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주연 야쿠쇼 고지가 무대인사를 마친 뒤 개막작 상영에 들어간다. 개막식에는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장인 스웨덴의 얀 트로엘 감독을 비롯,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 대만의 배우 첸상치, <도플갱어>의 여배우 히로미 나가사쿠 등의 해외 게스트들을 비롯해 최은희, 윤정희, 안성기, 송강호, 문소리, 심혜진 등의 배우, 신상옥, 임권택, 배창호, 정지영, 허진호 등의 감독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인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개막 하루를 앞둔 10월1일 6시에는 남포동 PIFF광장에서 400여명의 게스트와 관객이 참여한 가운데 ‘PIFF 광장 여름마당 행사’와 핸드 프린팅 제막식이 열렸다. 애초 심사위원장으로 정해졌다가 갑작스런 질병으로 참석하지 못한 뤼시엥 핀틸리에 감독의 핸드프린팅은 루마니아를 찾아가 받아오겠다고 김동호 위원장이 밝혔다. 중심 무대를 해운대로 옮기고 치러지는 첫 영화제인 올해 영화들은 해운대 수영만 야외상영장과 메가박스 10개관, 남포동 6개관에서 상영되며, 해운대의 스펀지, 파라다이스 호텔 등지에서 다양한 행사가 치러질 예정이다. 문석 기자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감독 이재용의 스타일 분석 [2]

부르주아 vs 보헤미안 이재용 감독은 “사람이 왜 이런데?” 하는 질문을 받으면 “충청도 중산층 출신이라서 그래”라고 농담처럼 대꾸하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영화에는 구질구질한 인생이 좀체 등장하지 않는다. 한결같이 넉넉한 부르주아들이다. <정사>와 <스캔들…>의 등장인물들은 시대만 달랐지 서로 조응할 만한 상류층이다. <순애보>에서 우인은 비록 동사무소의 말단 직원이지만 아버지 재산 덕에 적어도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그들은 모두 부르주아이지만 동시에 보헤미안이다. 비극적으로 뒤얽힌 사랑 때문이건 남루한 일상이 지겨워서건 그들은 한곳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한다. <스캔들…>의 조원이 문무에 능하나 출세에 뜻이 없고 유희를 찾아 즐기는 것도 이런 별스런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르주아를 중심에 세우지만 프롤레타리아를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순애보>에서 삼류 댄서로 살면서 미혼모가 되는 리에나 불법체류자 아랍인 네마자데는 조금도 기죽어 있지 않다. 심지어 게이오대학을 다니는 척하는 스포츠센터 청년은 딸과 아내가 있는 어엿한 가장이자 포르노 배우다. 비난의 빛은 조금도 없다. 감독의 말 >> “한창 영화를 고민할 때가 80년대였다. 어떤 영화를 해야 할지 고민할 때 나는 내가 아닌 걸 하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모르는 걸 할 수도 없었다. 내가 하려는 건 다 하찮아 보이던 시대였다. 그래서 영화를 그만두려고 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안주하지는 말되 솔직해지기로 했다.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의 <시골에서의 일요일>을 아주 좋게 봤는데, 어디선가 ‘프티 부르주아 리얼리즘의 대가’라는 소개말을 읽었다. 그게 힘이 됐다. 내가 중산층 출신인 건 맞지만 상류층과 하류층 그 어느 곳에도 속했던 적은 없고 변방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사실 내 영화에 상류층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정사>의 처음 컨셉은 청담동 사는 부인이 아니라 은행의 부장급 아내 정도였다. 그런데 소재가 불륜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아주 좋아하지만 이런 구도로는 그 범위를 벗어나기 힘들어 보였다. 추석특선영화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같은 걸 만들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미숙과 이정재라는 스타를 데리고 말이다. 그래서 판타지로 가되 객관적인 거리두기를 하기로 했다. 환상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 남의 사랑놀음을 보며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말이다. <스캔들…>도 마찬가지다. 왕실 이야기는 TV에서 넘쳐나고, 토속 에로물도 그동안 수없이 만들어졌다. 다뤄지지 않은 게 사대부 문화에 대한 것이었다.” 5. 클래식 vs 트렌디(혹은 근본주의 vs 키치) “10년 뒤에 봐도 세련된 느낌이 남는 영화를 만들자”는 게 <정사> 이후 일관되게 유지해온 이재용 스타일의 공식 노선이다. 클래식한 영화가 되고자 하는 소망이다. 그는 또 상업영화의 장르 안에서 익숙한 소재들(<정사>의 불륜, <순애보>의 일상성, <스캔들…>의 사극)을 안고 가면서 자기 식으로 비틀어대는 걸 즐긴다. 멜로나 사극 같은 장르만큼 클래식한 것이 있을까. 자기식 변용에서 끼어드는 게 트렌디한 쿨한 감성이다. <스캔들…>에서 조원이 가슴아리게 숨을 거둘 때, 그의 손발이 되어온 자근노미가 중얼거린다. “양반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데 이렇게 값어치없게 죽나!” 이건 재치있는 농담이지만 멜로의 절정을 완성하는 긴요한 시점에서 분위기를 깨는 결정적 대사가 될 수 있다. 제작사 내부에서 논란이 일었지만 감독은 밀어붙였고, 시사회에서 20대 중·후반의 젊은 여성들이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클래식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서 <순애보>에선 키치적 감성으로 작품 전체를 은근히 감쌌다. 감독의 말 >> “섣부른 퓨전이나 트렌디를 하기보다 근본을 잘하자, 클래식을 잘하자는 주의다. 유행에 관심이 많고 그걸 즐기기도 하지만 내 것으로 선택하고 사야 하는 시점에선 결국 클래식하고 베이식한 걸 고르게 된다. 사실 난 존 워터스나 알모도바르의 초창기 영화 같은 키치하고 펑키한 영화를 좋아하고 그런 걸 만들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키치적인 게 주류가 돼버리면서 흥미를 잃게 됐다. 조폭영화가 유행하면서 양아치라는 걸 지나치게 자랑하고 드러내는 데 거부감이 일었다. 뭐든 관습화되고 주류가 되면 일단 싫어지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스캔들…>의 음악도 대금이나 국악을 싫어해서 쓰지 않은 게 아니라 이 대목에선 이렇게 쓰는 게 정석처럼 통용되는 게 싫었다. 포장마차 메뉴가 어딜 가나 똑같은 것도 난 싫다. <바람난 가족>을 아주 재밌게 봤는데 시니컬하기가 10배쯤은 더할 영화가 토드 헤인즈의 <해피니스>(헤인즈의 <파 프롬 헤븐>?? 솔론즈의 <해피니스>임. 확인!!!)일 거다. 세상을 혐오하게 만드는 이런 영화를 재밌게 즐기는 편이지만 내가 만들어 보여준다는 것에는 회의가 든다. 쿨한 감성이 내 취향이긴 하나 이른바 ‘쿨한 영화’로 불리는 걸 만들기는 싫다. 그래서 내 영화에 신파적 요소가 자꾸 끼어드는 건가?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다 모아놓으면 <아멜리에> 같은 영화가 될 것 같다. 모든 캐릭터가 약간 병적이며 신경증적이지만 귀여운.” 6. 자기 페르소나와 거리 유지 <정사>와 <순애보>에서 같은 이름으로 등장하는 우인은 이재용의 페르소나일 것이다. <정사>에서 우인의 세련된 겉모습에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지만 내면을 드러내는 표정은 어떤 결핍감에 시달려 보인다. 정상적인 듯하나 약간 고장난 상태다. <순애보>에서는 우인을 확실히 고장난 상태로 만든다. 마비된 새끼손가락이 상징하듯 ‘거세된 남자’이고 스스로를 외부세계와 시종일관 차단시킨다. 이렇게 어딘가 고장났고 폐쇄적이지만 우인은 숨어 있는 열정을 발산시키려는 욕망을 갖고 있고, 그런 기회를 만나면 서슴없이 폭발시켜버린다. 특이한 건 이재용 감독이 자기 페르소나를 편애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정사>에서 쿨한 감성은 우인의 몫이 아니라 그의 ‘경쟁자’인 서현의 남편(송영창)일 것이다. 우인이 그에게 “행복하십니까”라고 묻자 남편이 답한다. “행복이 별거야? 저 수족관을 봐. 물결은 잔잔하고 온도 딱 맞고, 먹을 건 언제든지 계속 공급되고, 아무 걱정없이 설렁거리며 헤엄만 치는 것. 그게 행복 아닌가.” 쓸쓸하기는 해도 비난할 수 없는 현실감각이다. 남편은 서현의 외도를 알면서도 굳이 캐묻지 않는다. <정사>는 남편을 지리멸렬하게 그리지도 않았고 위기의 원인을 그에게 돌리지도 않았다. 이재용 감독의 ‘관조적 쿨함’은 이렇게 고루 분산돼 있다. <스캔들…>의 조원이 이재용의 페르소나는 아니겠으나 우인보다 훨씬 거리를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조원은 대범하면서 야비하고, 악하면서 선하다. 이재용 감독은 거꾸로 캐릭터의 이런 이중성에 더 애정을 품고 있는 듯하다. 감독의 말 >> “배우의 얼굴이 너무 진하고 극적이면 부담스러워서 싫다. 평범한 듯한데 뭔가를 감춘 듯한 사람의 얼굴을 한 배우가 좋다. 튀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범할 것이다. 그런데 한명한명 들여다보면 다 다르다. 선악 같은 어떤 도식으로 사람들을 구분하기란 힘들다. 평범한 듯한데 변태일 수 있다. 그래서 배우도 아주 드라마틱하기보다 살짝 변용이 가능한 친구가 좋다. 이정재는 평범한 듯한데 섹시하고 배용준은 부드러운 듯하지만 안경을 벗으면 매섭고, 단호하며, 야비한 느낌까지 들어서 좋다. 난 내 캐릭터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는 있어도 편들고 싶지는 않다. 나 자신에 대해 가혹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단죄하지도 못한다. <스캔들…>의 원작에서 조씨 부인은 악인으로서 결국 벌을 받고 병들어서 야반도주한다. 내 작품에선 그렇게 못했다. <정사>의 서현도 내가 단죄할 수는 없었다. 인간이 지닌 삶의 무게는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나는 건 아니지만 인간적 고뇌에 관한 한 평등하지 않을까.” 7. 디테일 vs 유머 이재용 감독처럼 촬영현장에서 말이 없는 연출자도 드물 것이다. 스탭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다(술자리에서도 도통 말이 없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왜 이렇게 말이 없으세요” 하면 “제가 보이나요?” 하고 되묻는 ‘유머’를 구사한다. 그는 투명인간이 돼 보이지 않는 관찰자가 되고 싶을 때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디테일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스타일리스트의 기본은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아닐까). 이야기의 맥락과 전후관계, 왜 저 캐릭터가 이 상황에서 이런 이상한 짓을 하는지 논리와 상상으로 충분히 납득이 돼야만 한다. 그의 유머감각은 정교하게 설계한 상황의 아이러니에서도 나오지만 한두번 봐서는 찾기 어려운 디테일로 드러나기도 한다. 감독만이 알고 있을 디테일과 유머를 들어보자. 감독의 말 >> “<순애보>에서 아야가 가는 사진스튜디오(실은 포르노 사이트 업체)의 이름이 ‘벨 드 쥬르’(나팔꽃)다. 이건 루이스 브뉘엘 영화에서 따왔다. 성적 리비도에 억압돼 있는 카트린 드뇌브가 남편 친구로부터 고급 매춘업소에 대한 정보를 듣고는 낮에만 몸을 파는 여자가 된다. 그곳에서 지어준 이름이 낮에 피는 꽃이란 뜻의 ‘벨 드 쥬르’다. <순애보>에서도 아야가 ‘아침에 와서 (사진을 찍어도) 좋아요’라고 하자 아침 조(朝)가 들어간 아사코란 예명을 지어준다. 아사코의 머리 모양과 옷은 <비브르 사비>의 ‘나나’ 스타일을 옮겨왔다(안나 카리나가 연기한 나나는 매춘부다). <스캔들…>에서 첫 음악이 불협화음처럼 들려오는데 그건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앞두고 악기의 줄을 맞추는 듯한 효과를 염두에 두고 넣었다. 사람들은 공연장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감상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지 않는가. 조원이 춘화를 그릴 때마다 낙관을 찍는데, 자세히 보면 그 호가 ‘발몽’이다(같은 원작을 영화화한 밀로스 포먼의 작품 이름). 춘화도 자세히 보면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을 짜깁기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조씨 부인과 한담을 즐기는 대갓집 마나님들의 이름이 허씨 부인, 오씨 부인 등인데 모두 내가 좋아하는 허진호 감독, 오정완 영화사 봄 대표 이름에서 따왔다. 하하.”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3]

영화? 세계의 터무니없음을 드러내는 표현수단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인터뷰 2년 전 인터뷰를 한 뒤, <밝은 미래>와 <도플갱어> 두편을 보았다. 당신의 영화에는 자신의 사상을 다소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카리스마> <인간합격> <밝은 미래> 유형과, 장르의 틀을 허물고 부수면서 새로운 지형으로 나아가는 <큐어> <카이로> <도플갱어> 유형이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당신을 창작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 * * 나에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자기자신과 영화 자체의 갈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작품은 작가의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과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영화라는 틀이 서로 어우러져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밝은 미래>는 영화의 역사성보다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실감쪽에 좀더 강하게 뿌리를 두고 만들었다. 한편 <도플갱어>는 영화 그 자체에 좀더 깊이 몰입해서 만들었다. 아울러 작가가 살아 있는 실감을 ‘현실’이라고 하고 영화의 역사성을 어떤 의미에서 ‘장르’라고 부른다. 현실과 장르, 작품에 따라서 비율의 차는 있겠지만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영화는 비주류다 이전에 당신은, 일본에서 영화는 비주류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은 여전한 것 같다. 얼마 전 개봉했던 <춤추는 대수사선2>가 대성공을 거두었어도 그것은 TV의 연장선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열악한 상황이 일부 일본 감독들에게는 오히려 독특한 영화를 만들게 하는 조건처럼 보인다. 현재의 상황, 조건이 당신의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 * * 일본에서 현재 영화는 전혀 메인 미디어가 아니다. 영화를 만들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애니메이션이나 텔레비전에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극명하다. 이런 일본의 상황에서도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인간은, 웬만큼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나도 그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난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만든다. 돈을 벌 목적도 아니고 유명해질 생각도 없다. 이런 감독의 존재를 연명시키고 있는 것이 일본 영화계의 최대의 특징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익도 명예도 아닌 ‘역사에 남을 걸작’을 만들 날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카이로>같은 영화는 마치 유럽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 전 당신은 누벨바그 등 유럽영화에 심취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지옥의 경비원> 이후 만든 영화들에서 공포영화에 막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당신이 장르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공포영화에 헌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 * 난 유럽영화도 좋아하지만 할리우드영화도 좋아한다. 그래서 예산이 빠듯한 일본영화로 어떻게 하면 할리우드영화에 버금가는 오락성을 창출할 수 있을까 옛날부터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듭해왔다. 그러던 중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공포영화라고 하는 장르에 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질의 공포는 예산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오락으로 성립한다. 이것은 옛날부터의 영화이론이다. | 장르가 된 구로자와 기요시 <도플갱어>를 보고는, 당신이 만드는 장르영화는 이제 완전히 ‘구로사와 기요시’만의 것이 되었다, 는 생각이 들었다. <강령>은 장르의 자장 안에서도 자신만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도플갱어>는 아예 장르의 구조 자체를 바꿔버린다는 느낌이다. 당신은 영화라는 매체에서 어떻게 장르를 활용하는가. * * * 영화의 장르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이다. 영화는 대개 100분 정도인데 그건 왜일까? 물론 역사적인 우연이 몇번 거듭되다 보니 그렇게 됐겠지만, 아무래도 장르라고 하는 것은 100분을 법칙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항상 이 100분을 어떻게 구축해갈까 생각한다. <강령>에서는 한개나 두개 정도의 장르를 사용하려고 생각했고 <도플갱어>에서는 사용할 만한 장르는 다 사용해보자는 각오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장르와는 전혀 동떨어진 영화로 만들려고 했던 <밝은 미래>까지도 최종적으로 100분 정도의 길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나 자신한테 문제가 있었나 아니면 영화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밝은 미래>의 마지막은 묘했다. 체 게바라의 티셔츠를 입은 불량스러운 아이들에게 과연 우리의 미래가 있는 것일까? 몇년 전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요즘의 일본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그래서 흥미롭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 * 물론 젊은이에게는 미래가 있다. 나한테도 있고, 누구라도 나름대로 다 미래가 있다. 이것은 ‘일본의 미래’, ‘한국의 미래’, ‘세계의 미래’라고 하는 것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나는 젊은이들에게만 ‘일본의 미래’를 다 맡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아무리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보기엔 우리 기성세대가 이해 못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는 것은 곧 매력적인 것이다. 반대로 이해는 위선이다. 인간이 타인을 애써 무리하게 이해하려고 할 때, 오히려 ‘굴욕’이라든가 ‘굴종’이 작용한다. 나는 그런 게 싫다.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적어도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 나는 그들을 모른다. 그러나 대화한다. <밝은 미래>의 해파리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 보살핌이 필요하고 건드리면 독을 뿜는 존재는 젊은 세대를 말하는 것인가. * * * 그렇다. 해파리는 원래 바다 생물이니까 바다로 돌아가면 되지만, 인간은 젊은이든 그렇지 않든 사회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젊은이들을 ‘반사회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해파리가 아니다. 사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들을 사회 밖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나는 존재를 인정하는 시점에서 출발하고 싶다. <밝은 미래>에서는 기성시대와 젊은 세대의 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 그런 세대간의 대화가 실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 * * 대화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젊은이(젊은이뿐 아니라 타인이라면 누구라도)는 내가 모르는 것을 많이 알고 있다. 그걸 알기 위해서도 대화는 필요하다. 젊은이들이 알고 있은 것을 다 가르쳐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탐색해가면서 결코 이해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런 인간이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 <도플갱어>의 하야사키를 인공 신체를 연구하는 학자로 설정한 이유는. * * *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트럭으로 옮길 수 있는 것, 그리고 많이 흔들리면 부서지는 것, 그런 기준으로 이것저것 생각하다 문득 떠올랐다. <도플갱어>에서 왜 하야사키는 도플갱어를 보고도 죽지 않는 건가. <카이로>에서는 ‘귀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그는 단지 자신의 내면을 본 것뿐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도플갱어는 무엇인가. * * * 마지막에 등장하는 하야사키는 어느 하야사키일까라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실을 말하면 줄거리상 하야사키 본인은 이미 죽었다. 분명히 이해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도플갱어는 하야사키한테 살해당했고, 하야사키 자신도 차에 깔려 죽고, 마지막에 두 사람이 제3의 하야사키로 등장한다는 구조이다. 현실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지만. | <도플갱어>, 인간과 세계의 분열 하야사키와 도플갱어가 함께 등장할 때, 화면분할이 빈번하게 쓰인다. 그것은 그들의 상황만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서 점유한 영역을 말하는 것 같다. 화면분할의 의도는 무엇인가. * * * 말한 대로다. 이 영화에서는 하나의 인간이 분열하여, 동시에 그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도 분열을 시작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것을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나는 두 사람이 하나의 세계에서 갈등하고 있는 장면으로서 합성화면을, 두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가 서로 대립하고 있는 장면으로서는 편집에 의해 교체를, 그리고 두 사람의 인간이 두개의 세계에 공존하고 있는 장면으로서 분할화면을 사용하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서 미국영화에서 유행했던 분할화면을 언젠가는 해보리라고 30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실현된 셈이다. 도플갱어가 죽은 뒤, 그의 존재는 마치 하야사키 안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야사키의 내면에 숨겨진 것이 드러났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야사키가 도플갱어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 * * * 하야사키는 모든 걸 깨달은 전혀 별개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가 손에 넣은 것은 새로운 세계다. 그것은 일명 ‘자유’라는 이름의…. <도플갱어>의 이야기는 불쑥불쑥 튀어드는 사건들로 연결된다. 그건 난데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필요없는’ 장면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예를 들어 하야사키를 쫓던 무라카미는,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 트럭에 깔려 죽어버린다. 그들에게 세상이란 불가해하고,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무엇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 *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나는 대답할 지식도 자격도 없다. 그건 모르겠다. 세계는 불가해하고 터무니없다는 사실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사에 의한 영화만이 이런 터무니없는 세상을 터무니없는 사실 그대로 그릴 수 있는 양질의 표현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희망을 원하는가? 당신의 영화는 늘 사회에서 이탈하거나 멀어져가는 사람을 그려왔다. <큐어> <카리스마> <카이로>를 지배하는 것은 비관적인 정조다. 그런데 <밝은 미래>와 <도플갱어>의 결말에서는 묘한 희망 같은 것이 엿보인다. 어떤 의미인가. 지금 당신은 비관적인가, 희망적인가. * * * 나는 항상 희망적인 영화를 찍으려고 한다. 그러나 개인의 희망이 사회적 가치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때로 인간은 완전히 반사회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절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부자유스러운 상황이 갑자기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혀 배려없이 행한 행동이 남을 구할 수도 있다. <카이로>까지 나는 ‘사랑과 증오’, ‘사회와 반사회’, ‘자유와 부자유’라고 하는 것을 가능한 한 대등한 가치에 두도록 유념했었다.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인가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밝은 미래>부터는 좀더 명확한 ‘사랑’, ‘사회’, ‘자유’의 방향으로 발을 내디디려고 생각한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인지, 9·11 사태를 겪어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내 나이 탓일까. 앞으로 당신이 꼭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 * *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나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것들은 절대 변경 불가능한 현실이 버티고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대답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지금까지의 나 자신과 영화 그 자체와의 갈등 속에서 작품을 성립시켜왔다. 또 한 가지 요소, 즉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하는 요소를 가미하면 어떨까, 한번 실험해보고 싶다.김봉석 lotusid@hani.co.kr ▶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1] ▶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2] ▶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