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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환상을 보존하는 방식에 관하여

다소 지엽적인 질문 하나를 던져보고 싶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하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왜 영화관에 가지 않을까. 크리처(더그 존스)를 찾기 위해서라는 예외적인 목적을 제외하고 엘라이자는 극장에 가지 않는다. 엘라이자가 영화를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코너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자일스(리처드 젠킨스)의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영화를 보곤 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전작에서 텔레비전이 하나의 미장센처럼 활용된 바 있긴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단순한 미장센을 넘어 우주탐사, 소수자 차별 등과 함께 1960년대를 반영하는 지표 중 하나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엘라이자가 영화관에 가지 않는 상황 역시 시대를 대변하는 것일까. 텔레비전이 처음 등장할 당시, TV에 영화 관객을 빼앗기게 된 현실을 우려하는 시각이 팽배했으나, 델 토로가 굳이 지나간 논란을 끌어들여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텔레비전을 통해 영화가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앞서 물어야 할 다른 질문이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왜 별안간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자신의 영화 내부에 새겨넣었을까. 델 토로의 영화에서 영화관을 다룬 적이 없었기에 이는 던져봄직한 질문이다.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겠다. 델 토로는 왜 영화관을 그리면서도 이를 전면화하지 않고 바깥으로 밀쳐두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관은 엘라이자와 자일스의 방이나 엘라이자가 근무하는 항공우주국에 비해 전면화된 공간은 아니지만 빛으로 어른거리거나 음악으로 스미며 구획된 경계를 넘는다. 이것은 감독이 영화관을 사유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엘라이자의 공간이 시네필에게 최고의 장소’라는 의견에 동의하며 ‘엘라이자의 다락방에는 늘 영화가 상영되는 소리가 새어들어온다’고 설명하는데(장영엽 기자, <씨네21> 1143호), 이것이 공간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공간의 연결성은 감독이 언급한 대로 일단은 소리 혹은 빛으로 표현된다. 주목할 것은 순환하고 교환되는 영향의 방향성이다. 영화관이 엘라이자의 공간에 영향을 주는 동시에 때로는 엘라이자의 삶이 영화관으로 흘러들면서 두 공간은 교통한다. 엘라이자의 일상을 보여주는 첫 시퀀스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은 두 공간이 한축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엘라이자가 연한 청록색 욕조에 물을 받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직선으로 하강해 층 사이에 놓인 철근과 콘크리트를 지나 영화관까지 하나의 연결된 숏(플랑세캉스)으로 보여준다. 엘라이자의 공간 중에서도 특히 욕실과 영화관을 연결지은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두 공간의 연결은 제목이 말하는 ‘물의 형태’가 영화관 혹은 영화라는 매체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엘라이자가 크리처와 사랑을 나누는 결정적인 장면에 이르러 영화는 카메라 무빙을 통해 두 공간의 연결성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엘라이자의 공간이 영화관에까지 흘러넘치는 상황을 약간은 코믹한 방식으로 기입한다. 엘라이자는 문틈을 막아 욕실 전체를 물로 가득 채우는 무모한 방식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물은 아래층 영화관까지 흘러들어 입을 벌린 채 잠든 관객의 얼굴 위로 떨어지기에 이른다. 이때 관객의 얼굴은 정확히 천장을 향한 채다. 고개의 방향은 ‘진짜’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이 어디인가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물이 떨어지는 영화관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관객 얼굴에 물을 뿜곤 하는 4D 입체영화의 방식과 유사한데, 관객이 혼비백산하는 대목에서는 어쩐지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1895)을 보고는 놀라 달아났다는 초기 영화 관객이 연상된다. 다소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영화에서 설정한 시대적 배경인 1960년대 외에도 초월적인 시간이 그 순간 장소 안에 기입되며 곳곳에 흘러든다. 영화관을 투과해 흐르는 초월적 시간 영화관은 단지 엘라이자의 공간만이 아니라, 영화 곳곳에 빛을 드리우며 영화적인 것을 상상하고 발견하게끔 만든다. 달리 말해,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영화관은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움직이며 생성되는 공간이다.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투명한 ‘물’들과 ‘막’들은 그 자체로 스크린과 다르지 않으며, 그것을 독특한 방식으로 화면에 불러들이는 자는 크리처다. 아가미 인간인 크리처의 몸을 감싸는 물은 크리처와 인간을 구분하는 일종의 막이다. 애초에 모양이 없는 물은 어딘가에 담겨야 하므로, 물은 다시 막을 소환한다. 델 토로의 전작에서 막은 괴생명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데 더욱 효과적인 기능을 발휘했던 것이 사실이다. <크로노스>(1993)에서 달걀 모양의 곤충기계는 접촉된 인간의 신체를 파고들었으며, <미믹>(1997)의 바퀴벌레 인간 주다스와의 접촉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크리처의 파괴성은 은유적으로 표현되며, 비교적 온순하다.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의 손가락을 물어버린 상황이 피투성이가 된 손과 바닥을 뒹구는 손가락으로 생략되는 사이, 엘라이자의 언어를 그대로 습득하는 크리처의 순수성이 빈틈을 메운다. 인간과 변종 사이에 필수적이었던 막은 접촉 가능한 것으로 변화한다. 처음에 단단한 큐브 속에 있던 크리처는 어느 순간 넓은 욕조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엘라이자를 맞는다. 욕조의 타일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조심스러운 대화를 시작한다. 다음 만남에서 크리처는 아예 욕조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스트릭랜드의 손가락을 물어버린 일로 물 밖으로 꺼내져 고문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델 토로의 세계에서 괴생명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작용했던 막이 반대로 인간으로부터 크리처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은 특징적이다. 델 토로는 괴물 같은 것과 인간이 얼마나 비슷한가를 주지시키면서도 끝내 화해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묘사해왔는데, <셰이프 오브 워터>에 이르러 그 관계는 뒤집힌다. 이런 상황이 괴생명체를 좁고 어두운 지하도가 아니라 2층 다락에서 누군가의 일상과 조우하도록 만든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괴생명체들이 인간의 일상을 파괴할 정도로 힘이 셌다는 것을 상기해볼 때, 영화 속에서 크리처는 엘라이자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엘라이자가 크리처를 떠나보내기로 했던 건 크리처의 유약한 속성 때문이지, 인간계에 스며들지 못하는 파괴적인 속성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크리처는 고양이의 머리를 뜯어 먹음으로써 그가 인간 생활에 완전히 동화될 수 없다는 것을 표시한다. 중요한 건 크리처의 행위를 대하는 자일스와 엘라이자의 반응이다. 이들은 고양이의 죽음을 애도하긴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일상을 뒤흔든다거나 크리처를 내몰 정도의 일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섹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엘라이자와 크리처의 섹스가 암시적으로 표현되면서, 규칙적으로 이뤄져온 엘라이자의 자위행위와 크리처와의 섹스를 연속된 것으로 상정할 여지를 마련한다. 크리처와의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물’이었고, 엘라이자의 자위에서도 그랬다. 다만 크리처와의 만남 이후 물은 전보다 훨씬 남용되었고, 그녀의 자위행위 역시 좀더 확장된다는 인상을 준다. 막을 뚫고 들어가는 데 혈안이 된 우주 개발의 욕망과는 대조적으로 환상이 엘라이자의 삶에 침투하는 방식과 이에 관한 엘라이자의 반응은 부드럽고 나직하게 조응한다. 엘라이자가 크리처와 함께 뮤지컬 속으로 들어가는 환상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때 환상의 틈입은 일상을 깨고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조명의 변화를 통해 일상의 자리가 흑백 화면으로 대변되는 환상의 자리로 점차 전환되면서 성취된다. 흑백은 막의 일종으로 환상을 표시하는 경계이자, 엘라이자의 입장에서는 그 환상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은 채 그것과 합일되려는 겸허한 태도를 표시한다. 환상을 보존하면서도 그것에 도달하고자 하는 태도가 이 장면의 무드를 통해 강화된다. 환상과 일상의 공존 스크린은 괴생명체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구획하는 투명한 막일 뿐 아니라 단단한 몸과 그 위를 뒤덮은 끈끈하고 축축한 막으로서 크리처의 신체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해부당할 위기에 처한 크리처를 구출하는 시퀀스를 통해 강조되는 크리처의 예민한 신체와 그 성질은 영화관이라는 공간, 그리고 필름이라는 물질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대책 없고 무모하기까지 했던 크리처 구출 시퀀스에서 가장 유효했던 전략 중 하나는 건물 전체를 일시적으로 정전시키는 것이다. CCTV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이 전략은, 영화가 상영되기 위한 필수조건 중의 하나인 어둠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가정을 밀어붙이자면, 크리처를 위해 적절히 물의 염도를 만드는 장면은 곧 필름을 현상하거나 보존하기 위한 작업을 연상시킨다. 크리처가 이따금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는 것 역시 스크린에 관한 하나의 은유와 맞닿는다. 크리처의 신체는 환상을 보존하는 최소한의 막들과 그 막이 우리에게 되비추는 환영들을 도처에 불러들인다. 영화관에서 브라운관으로, 브라운관에서 모니터로, 모니터에서 모바일 화면으로 환영을 재생하는 창구가 분화되고 쪼개어지는 오늘날의 양상이 영화에서 분기하는 끊임없는 막들의 향연을 통해 예고된다. “여기에 미래가 있다”는 구호와 함께 끊임없이 소환되는 청록 빛깔은 (파이 광고 문구의 녹색, 캐딜락의 청록빛) 실은 엘라이자의 시선이 거치고 간 일상의 막들이 내뿜는 빛을 가리키는 적절한 수식어처럼 보인다. 그중 하나가 엘라이자가 자일스와 함께 보던 텔레비전이다. 엘라이자와의 첫 만남에서 크리처는 투명한 큐브의 막 속에서 손을 뻗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이때의 큐브는 엘라이자가 자일스와 함께 보던 텔레비전을 연상시킨다. 어릴 적 텔레비전 속에 진짜 사람이 존재한다는 원시적인 상상을 했던 것을 기억해보면, 크리처가 안쪽에서 반응했을 때의 놀라움은 텔레비전 속에 존재하던 사람이 화면 밖에 존재하는 내게 말을 걸어온 것처럼 섬뜩하고도 기이한 일이었을 거라 짐작된다. 크리처의 신체는 곧 화면 속에 놓여 있던 환상의 대상으로서의 신체이며, 그 신체는 막을 벗어나 엘라이자의 삶에 서서히 스민다. 자일스의 텔레비전을 통해 흑백영화가 상영될 때, 텔레비전이 내뿜는 빛은 묘한 청록색을 띤다. 청록빛은 텔레비전 속 인물들이 마치 물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를 통해 크리처와 텔레비전이 비추는 인물들은 하나의 계열을 이룬다. 물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은 또 있다. 스트릭랜드의 집무실 한쪽 벽은 CCTV로 채워져 있는데, 나는 종종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 대신 배경에 놓인 CCTV 속 인물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존재는 보이지만 그들이 내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CCTV 속 인물들 역시 물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리를 번역하지 않는 CCTV가 정당하게 주장할 기회가 말살된 비주류 인간이 처한 상태를 암시함은 명백하다. 비주얼적인 연관성을 통해 위기에 처한 크리처와 TV 속 흑백영화, 그리고 CCTV 속 감시당하는 사람들, 특히 엘라이자와 젤다(옥타비아 스펜서)를 위시한 하층 노동자들이 비슷한 위치에서 나란히 정렬된다. 자일스에게 자신과 괴물이 다르지 않다고 강변하던 엘라이자의 주장은 이미지를 통해 이미 암시됐던 바다. 엘라이자가 이를 손으로 말하는 동시에 자일스의 입으로 반복시킨 이유는 그것이 관객을 향한 것임을 의미한다. 언어의 번역과 반복을 통해 엘라이자는 관객을 자신과 나란한 위치로 조용하지만, 단호히 끌어온다. 이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것은 다시 영화다. 엘라이자가 크리처를 찾아 영화관에 당도했을 때, 크리처는 영화관 중앙에 선 채로 영화에 몰입해 있다. 이때 영사되던 영화가 무엇이었고, 어떤 장면이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앞선 인터뷰에서 감독은 ‘영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니라 작은 규모나 사소한 영화들이 우리에겐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를 염두에 둘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영화가 아닌, 그저 영화를 보고 있었다는 상태 자체일 수 있다. 크리처가 영화관에 숨어들기 전 몰두해서 바라보던 것은 자일스가 크리처의 모습을 본떠 그린 몇장의 스케치들이다. 크리처는 그것이 자신의 얼굴임을 인지한 듯 유심히 들여다본다. 영화를 마주한 크리처의 정지된 응시는 그가 자신을 그린 자일스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을 때의 정지 상태를 반복한다. 연속된 크리처의 응시를 통해 영화 매체와 크리처간에, 친연성을 넘어선 동일성을 상상할 여지가 마련된다. 인간의 언어를 알지 못하는 크리처는 영화의 내러티브나 캐릭터가 아닌 영화관의 스크린과 대면해 그것이 주는 기운을 흡수한다. 영화를 대면한 크리처의 응시 이제 대구를 이루는 오프닝과 클로징이 보여주는 거대하고도 비밀스러운 장막을 마주할 차례다. 크리처가 쓰러진 엘라이자를 안고 강물에 뛰어드는 마지막 시퀀스를 보고 난 뒤 오프닝 시퀀스를 돌이켜보면, 엘라이자가 물속에 잠긴 이유는 납득된다. 하지만 어째서 그녀의 방 전체가 물에 잠긴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델 토로는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2006)에서도 첫 장면의 비밀이 마지막에 이르러 풀리며 대구를 이루는 방식으로 극을 여닫은 바 있다. 오필리아가 피 흘리며 쓰러진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 처음에는 역재생의 방식으로, 마지막에는 원래의 흐름대로 반복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셰이프 오브 워터>의 오프닝은 결정적인 순간이라기보다 엘라이자가 잠에서 깨기 직전의 일상이다. 오프닝이 결말에 비추어 과거인지 미래인지조차 불분명한 이 시간은 그저 한순간 속에 정지한 채 보존되어 있다. 이때 물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존된 기억, 혹은 기억-물질로서의 영화라는 매체를 다시 환기한다. 물은 과거의 한순간으로 다가가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 양상을 시각화한 물질로도 보인다. 공간의 측면에서 보자면 카메라 워크에 의해 관계성이 내내 강조되었으나 분리된 것으로 존재했던 엘라이자의 방과 영화관이 그 순간 합일된다. 확장하면 그 순간 속에 일상과 환상이 더는 분리되지 않는 오늘날의 삶이 포개진다. 공간의 합일은 확고한 반면, 엘라이자와 크리처의 결합은 위태롭다. 특히 오프닝에서 왜 결합의 삶을 그리는 대신 엘라이자의 일상을 떼다놓은 것인지 의문스럽다. 오프닝과 클로징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자일스의 목소리는 하나의 설화로서의 ‘이야기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어딘지 누군가의 죽음 이후 그의 삶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처럼 들린다. 특히 마지막에 시를 읊는 장면은 <악마의 등뼈>(2001)에서 카사레스가 죽음을 앞둔 캐서린에게 시를 읊어주던 장면과 겹친다. 그렇다면 자일스는 애도와 추모의 시를 읊은 것일까. 마지막 시퀀스의 환상을 동화처럼 믿을 것인가, 아니면 환상 이전에 벌어진 참혹한 광경에 마음을 둘 것인가. 델 토로는 관객에게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는 환상의 안과 밖을 고루 보여주며, 현실의 참혹함과는 대조적인 환상의 승리를 동시에 그린다. 다만 이번에는 환상과 현실이 대조된 채 분리된 것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의 체제가 점프하지 않고 하나의 흐름 속에 포개진다. 엘라이자가 크리처를 만난 뒤 홀로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걸터앉아 슬쩍 욕조쪽을 바라볼 때, 그녀가 바라본 것은 물이자 환영이자 크리처였고 그것은 분리되지 않는다. 델 토로는 마치 모든 분리에 저항하기라도 하듯 현실과 환상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 순간 말하고 싶어한다. 시각적으로 감지할 뿐 잡을 수 없는 환영의 감각은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크리처라는 살갗을 통해 육화되고 감각된다. 정말 크리처가 존재했는지 한낱 신기루였는지 알 수 없다. 신기루에 불과할지라도 이들의 포옹을 힘껏 믿을 수밖에 없는 건, 우리가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방식이 대개 그러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판타스틱 부니베어> 카니발쇼를 꿈꾸는 한물간 동물 서커스단

영국의 푸와 패딩턴, 미국의 위 베어 베어스, 평창의 반다비까지 곰돌이들의 귀여움은 언제나 옳다. 중국에서 태어난 부니베어는 앞선 곰 캐릭터들에 비해 야생의 특질이 부각된 투박한 외양을 지녔다. 가슴에 선명한 반달무늬가 새겨진 큰형 브라이언(조연우)은 외모만큼 저돌적이고 씩씩한 성격, 동생 브램블(신정훈)은 겁 많고 게으른 대신 상냥한 마음씨가 빛난다. 영화는 카니발쇼를 꿈꾸는 한물간 동물 서커스단이 부활과 자유를 향해 조금씩 걸어나가는 과정을 비춘다. 홍수에 휩쓸린 브라이언이 졸지에 아랫마을의 서커스단에 합류하면서 형제의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반복되는 고도의 훈련에 지친 동물들은 관습에 반기를 드는 브라이언의 출현에 환호를 보내고, 두려운 공중 곡예는 어느새 놀이와 축제로 탈바꿈한다. 여기에 애타게 형을 찾던 브램블과 고향 친구들이 극적으로 합류하면서 일탈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영화는 서커스와 동물 포획, 지나친 산림 개발 등 환경 파괴와 동물 복지에 관한 제재를 다양하게 끌어들이는데, 아동용 애니메이션임을 감안해도 스릴과 코미디, 주제의식 모두 어정쩡한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 다만 잊을 만할 때쯤 등장하는 서커스 장면이 기분 좋은 생동감으로 활기를 불어넣는다. 일렉트로닉 음악과 알록달록한 색감, 온갖 묘기들이 펼쳐지며 천막 안의 작은 무대를 환상 속으로 이끈다.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에서 출발한 <부니베어>의 다섯 번째 극장판으로 중국에선 2016년에 개봉한 작품이다. 숲을 파괴하는 악당인 벌목꾼 로거 빅이 이번 시리즈에선 의외의 아군이 되어 형제를 돕는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서식지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소공녀>의 영어 제목 마이크로해비타트(Microhabitat)는 미미한 서식지를 의미한다. 애벌레에게 거처 겸 식량이 되는 낙엽이나 작은 동식물이 연명할 환경이 되는 통나무 조각이 예다. <소공녀>의 미소(이솜)도 신세지거나 다치지 않고 오직 ‘서식’하고자 한다. 가사도우미 일로 집세를 내고 일과 후 담배와 위스키를 맛볼 수 있다면 족하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담뱃값이 뛰자 미소는 집과 기호품 중 더 큰 행복을 택하고 방을 뺀다. 여행 가방에 생필품을 꾸려넣은 미소는 친구들을 하나씩 방문해 달걀 한판과 가사노동을 숙식과 교환한다. 그녀의 선택은 합리적이고 누구도 해치지 않으나, 사람들은 미소가 사는 방식을 불편해하며 자꾸 ‘상식적’ 삶에 끌어들이려 한다. 동화 <소공녀>의 세라처럼 미소는 어떤 처지에서도 품위를 지키는 인간이다. 그녀는 뭔가를 갖기 위해 삶의 소신을 꺾거나 아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02/22 숀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지난해 가을 영화제에서 미리 본 나는, 첫눈에 반한 자의 저주받은 숙명에 따라 시시콜콜한 뒷이야기를 캐고 다니게 됐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핼리(브리아 비나이트) 모녀는, 2008년 미국 금융 위기로 양산된 ‘숨은 홈리스’의 일원이다. 숨은 홈리스란, 노숙은 하지 않으나 자동차와 모텔, 가족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 디즈니월드 주변 퇴락한 모텔촌을 공동작가 크리스 버고시와 돌아다니던 숀 베이커는 굳은 얼굴의 한 아저씨에게 제지당했다고 한다. 남자의 손에는 야구 방망이인지 전동 드릴인지 충분히 무기가 될 물건이 들려 있었다. 사실인즉 한 모텔 관리인인 남자는 수상쩍은 두 백인 중년 남자로부터 보호자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호하려던 것이었다. 숀 베이커가 직접 겪은 이 상황은, 매직캐슬 모텔 매니저 바비(윌럼 더포)가 배회하는 성도착자를 아이들로부터 떼어놓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한 시퀀스가 되었다. 그리고 피고용인으로서 한계를 잘 알면서도 곤궁한 처지의 투숙객들에게 마음을 쓰는 이 실제 관리인은,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취재원이 됐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영화를 준비한다는 일행의 말을 들은 그는 “영화? 우리 모텔에 배우 앤드루 가필드도 묵었는데”라는 말로 감독과 작가를 식겁하게 했다고 한다. 당시 후반작업 중이던 문제의 영화는 역시 플로리다주 올랜도 지역을 배경으로 집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라민 바흐러니 감독의 <라스트 홈>(2014). 심지어 관리인은 바흐러니 감독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바꿔주었고 숀 베이커는 두 영화의 차이를 확인하고 한시름 놓았다고 한다. 6살 무니 역의 브루클린 프린스도 나를 검색의 개미지옥에 빠뜨렸다. 올랜도 출신의 이 배우는 경력자로서 오디션에 응했는데, 나중에 친구 스쿠티 역으로 발탁된 크리스토퍼 리베라와 같은 면접 그룹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소년이 오디션을 위해 힘을 내야 한다며 푸시업을 시작하자 브루클린 프린스는 질세라 쭈그려 앉기 운동을 하며 준비체조에 합세했고 그날 감독은 프로듀서에게 무니를 발견했다는 낭보를 알렸다. 브루클린은 리서치에도 철저한 연기자로 모텔촌에 사는 또래 친구들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과 모니터링도 구했다고 한다. <할리우드 리포터> 팟캐스트에 초대된 브루클린 프린스의 인터뷰는, 조숙한 어린 배우에게 심드렁한 관객의 입가에도 미소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역할 모델로 엘르 패닝, 다코타 패닝, 에마 왓슨, 데이지 리들리, 갤 가돗을 거명하는 프린스는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엘르 패닝이 자기를 만나러 영화잡지 사무실까지 왔던 행복한 기억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언제가 나를 정말 정말 보고 싶어 하는 다른 배우가 있다면, 엘르처럼 꼭 만나러 가서 기쁘게 해줄 거예요. 비행기를 타야 하더라도요.” 칸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에 참여해 커다란 극장에 만장한 관객과 같이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본 소감을 묻자 프린스는 별거 없다는 듯 “우리 집 텔레비전도 되게 커요”라고 대꾸했다. 살짝 당황한 진행자가 재차 묻자 이 배우는 어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안다는 투로 “숀이 내 감독이라 감사했고 내가 옳은 길을 택해서 만족스러웠어요. 나도 이제 스토리를 들려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어요. 다음 계획이요? 그건 신의 손에 달렸죠.” 언니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하려는 참에 브루클린 프린스는 특종을 건네주듯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세계 최초의 어린이 감독이 되고 싶어요!” 02/24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숀 베이커 감독 필모그래피에서 처음으로 100만달러가 넘는 예산으로 제작됐다. 본래 2012년작 <스타렛>을 마치고 촬영에 들어가길 희망했으나, 아이폰5S로 찍은 <탠저린>(2015)이 독립영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다음에야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전작 다섯편의 예산을 몽땅 합친 것보다 넉넉한- 그래봤자 영화산업 전체로 보면 초저예산인- 제작비를 갖게 된 숀 베이커는 곧장 35mm 필름 촬영을 선택했다. 단, 엄마와 억지로 헤어지게 된 무니와 작별 통보를 들은 젠시(발레리아 코토)가 손을 잡고 디즈니월드 안으로 달려들어가는 마지막 장면만은 아이폰으로 찍었다. 매체에 무심한 관객이 보더라도 즉각 알아챌 수 있도록 화면의 질감과 시야는 확연히 달라진다. 무엇보다 아이폰을 다시 사용한 불가피한 이유는, 디즈니월드의 허가를 받지 않은 촬영이어서 필름 카메라를 반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신의 특별함은, 극중에서 한번도 무너지지 않았던 매직캐슬 모텔과 디즈니 매직 킹덤의 경계를 아이들이 처음으로 뛰어넘는 광경이라는 데에 있다. 관광객을 직통으로 실어 나르는 헬기는 무니의 동네를 스치지도 않으며, 엄마 핼리는 하늘의 그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끝내 붙잡혀 돌아오고야 말 아이들의 질주를 엔딩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디즈니월드 장면은 무책임한 엔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선행한 100여분을 주시한 관객이라면, 그해 여름 이후 핼리와 무니의 행로를 예고하는 것은 다른 프로젝트의 영역임도 직감할 것이다. 사후적인 정당화일 수 있지만, 숀 베이커 감독은 “이때까지 영화가 아이들의 현실이라면, 라스트신은 아이들의 머릿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고 말한다. 알렉시스 사베 촬영감독은- 아이폰6S 플러스의 롤링 셔터 기능을 사용했다고 인터뷰는 전한다- <탠저린>과 대조되는 덜컹이는 화면을 티나게 구현했다. 클로즈업도 시점숏도 거의 없는 이 영화는, 촬영기를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렌즈를 여섯살의 키 높이로 대뜸 낮춤으로써 인물의 주관적 시점을 표현한 셈이다. 돌아보면 과연 그때까지 무니와 친구들은 디즈니월드에 발을 들이지 못하지만, 매직 킹덤의 공기를 숨쉬며 논다. 유령 하우스 대신 건설이 중단된 콘도에서 위험천만한 놀이를 즐기고, 사파리 대신 국도변의 소떼를 구경한다. 심지어 놀이동산 입구에서 자유이용권 팔찌를 팔기도 한다. 그처럼 의식 안에서만 존재했던 마법의 왕국으로 무니와 젠시가 뛰어들어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통쾌한 해방감을 잠시 맛본다. 감독의 전작 <스타렛>에는 주인공이 계획하는 파리 여행이, <탠저린>에는 알렉산드라가 꾸는 가수의 꿈이 비슷한 자리에 있었다. 이것은 영국의 켄 로치, 마이크 리의 영화가 결코 보여주지 않는 무지개다. 동시에 우리는 무니와 젠시를 따라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하고 멈춘다. 그곳은 관리인 바비 아저씨와 감독 숀 베이커의 자리이기도 하다. 좋아요 조찬 회동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는 모든 면에서 지극히 시의적절한 할리우드 리버럴 드라마이자, 이미지와 움직임을 다루는 달인의 쇼케이스이며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라는 두 거물의 본질을 실어나르는 최상의 비이클이기까지 하다. 세 번째를 확인시키는 장면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와 새로운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이 극중 최초로 마주앉는 간단한 아침 미팅 신만으로도 관객은 마음 놓고 기대치를 높일 수 있다. 두 인물은 선의의 동료이지만 편집과 경영의 입장을 각기 대변하는 맞수이기도 하다. 원칙주의자 벤은, 캐서린이 장사꾼 사주가 아님은 알지만, 연성 기사에 관한 캐서린의 작은 의견도 딱 잘라 거절한다. 여기서 벤은 방어적이고 캐서린은 치고 들어갈 만큼 공격적이지 않다. 체념에 익숙한 캐서린의 예의바른 상냥함은 그녀의 단단한 심지를 가린다. 대화는 군데군데 오디오를 겹치며 마디 없이 흐른다. 슬쩍슬쩍 손등을 스치다 이뤄지는 악수 같다. 겉보기엔 톰 행크스가 주도하는 장면이나, 기실 행크스는 그에게 친숙한 인물형을 가볍게 연기하며 메릴 스트립의 새로운 시도에 공간을 내주는 중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아타리 2600’에 대해

아타리와 스필버그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게 될 국내 관객에게 게임기 ‘아타리’는 추억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금 우리는 세가와 닌텐도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운좋게도 어린 시절에 아타리를 경험했던 나는 까만 보디에 까만 팩을 꽂고서 거대한 어댑터를 꽂아둘 트랜스를 사러 전파상을 찾아다녔다. 지금도 아타리를 구할 수는 있다. 뉴욕 맨해튼과 퀸스 전역에 있는 레트로 게임숍에서 아타리 게임들을 팔고 있다. 얼마 전 이스트 빌리지의 한 숍에서 우연히 아타리의 게임 를 보게 되었는데 쇼케이스에 고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기가 찼던 기억도 난다. 스티븐 스필버그에게는 가 자신의 인생을 대표하는 영화겠지만 게임 는 아타리 게임기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게임 기업 아타리는 ‘Innovative Leisure’ , 즉 ‘창의적인 놀이’라는 캐치프 레이즈를 내건 수장 놀런 부슈널에 의해 탄생됐다. 아타리의 어원은 적을 포위하고 자기 진영을 넓힌다는 의미의 바둑 용어로 몇년 후 아타리가 맞이할 운명적 복선이기도 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 묘사되는 IOI의 수장 놀런 소렌토의 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놀런 부슈널은 파트너 테드 데브니와 탁구게임인 아케이드판 <퐁>(1972)을 만들어 떼돈을 벌었다. 가정용으로 발매했던 <퐁>은 40개가 넘는 회사가 모방했고 결과적으로 미국 전역에 수백만대가 팔렸다. 당시 부슈널은 가정에서도 <퐁>을 할 수 있고, 또 소프트웨어까지도 바꿔서 플레이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롬 카트리지 게임기 ‘아타리 2600’을 만들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금난에 시달리자 그는 <퐁>의 히트를 기회 삼아 당시 아타리를 워너커뮤니케이션의 매니 제라드에게 2800만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1977년 9월 11일, 결국 세상에 나타난 아타리 2600(통칭 Atari VCS)은 모든걸 바꿔놓았다. 당시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살기 좋은 환경에 적마저도 없는 테라포밍 행성 같았다. 시장이랄 것도 없이 시도하는 모든 것이 역사가 될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아타리 2600은 시장을 완전히 독점했고, 막강한 그래픽과 사운드는 몰입도를 높여줬다. 사람들은 조이스틱을 들고 텔레비전 화면에 개입할 수 있었고, 컴퓨터라는 게 뭔지 비로소 막연하게 알아가기 시작했다. 아타리는 넘버링을 바꿔서 후기 모델을 출시했는데 후속 모델인 2700의 경우, 무선 컨트롤러를 도입할 예정이었다. 당시의 기술 수준을 감안하면 대단히 혁신적인 행보였다. 부슈널은 출시된 지 불과 1년 만에 워너와의 의견 차이로 1978년에 아타리사를 떠난다. 그는 향후 5년간 아타리와 겹치는 시장 업무를 중단해야 했다. 구글이나 애플 이전에 아타리는 꿈의 직장이었다. 일과 파티의 구분 없이 매일 법인카드로 술과 마약을 즐기던 직원들이 <템페스트> <아스트로이드> <센티피드> <건틀렛> 같은 걸작 게임들을 뽑아냈다. 부슈널의 고용방법은 간단했다. 똑똑한 사람들을 파티에 데려오는 것. 놀면서 일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이들은 기술적이고 창의적인 엔지니어로 성장했다. 게임 개발자 하워드 스콧 워쇼는 1982년 5월에 <야르의 복수>를 성공시켰던 인물로 아타리에서도 에이스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가 1982년 6월 박스오피스에서 대히트를 치고 있을 때 스필버그의 천재성에 매료된 워너사의 스티브 로스는 스필버그와 유니버설사로부터 게임 판권을 따냈다. 이전에 <레이더스>를 통해 아타리와 게임 플랫폼에서 단맛을 본 적 있던 스필버그는 당시 하워드 스콧 워쇼를 개발자로 지명했다. 하워드 스콧 워쇼는 즉시 스필버그 앞에서 게임 브리핑을 했다. 영화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신선하고 혁신적인 게임으로 감동을 주자고 생각했던 그에게 스필버그는 게임을 그저 <팩맨>처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 조각 먹다 남은 피자 모양을 보고 만든 캐릭터에서 출발한 <팩맨>은 성공의 대명사였다. 당시 스필버그의 제안으로 유추해보건대 그는 게임을 또 다른 창작의 영역이 아니라 거대한 판권 시장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비디오게임의 대목인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불과 5주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게임 출시를 너무 급하게 추진한 것이었다. 오리지널 아타리 게임 개발은 보통 5~6개월이 소요되지만 그는 단 5주 만에 완성된 게임을 스필버그에게 보냈다. 스필버그의 승인이 떨어지면 그 즉시 발매에 돌입할 수 있었다. 스필버그가 1983년에한 방송국과 나눈 인터뷰에서 하워드 스콧 워쇼를 미치광이 천재라고 묘사하며 “게임은 어려웠지만 동시에 재미있었다. 내가 만든 영화 기반이니까 당연히 만족한다”라고 말한 적 있는데 스콧 워쇼는 원작자의 만족에 안이하게 대처했다. 그 흔한 베타 테스트도 없이 바로 출시를 결정해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 아타리 제국은 멸망했다. 창업한 지 불과 3년 반밖에 지나지 않은 때에 벌어진 일이었다. 1982년, 영화 를 싫어하는 사람을 지구상에서 찾기 어려웠던 그때,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아이들 대부분은 게임을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아타리 게임 는 너무 어렵고 난해했다. 악질적인 아타리의 퍼블리싱도 문제를 더 키웠다. 소위 말하는 끼워팔기에 소매점들로 하여금 1년치 재고를 미리 주문하라고 선주문 압박을 가했다. 그 후 1년치 게임 재고 400만개가 아타리 창고를 덮쳤다. 아타리는 물론이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미국 비디오 게임 시장 전체의 빙하기가 시작됐다. 트럭 몇십대분의 악성 재고 게임들이 엘라모고도 사막의 한 매립지에 파묻혔다. 아타리의 귀환 사건 이후 게임산업을 무너뜨린 주범으로 몰린 하워드 스콧 위쇼에게 고작 8킬로바이트의 코드로 10억달러짜리 산업을 파괴할 힘이 있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하지만 본인은 그 평가가 완전히 정당하지는 않았다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술회한다. 그리고 파묻은 게임은 도시전설처럼 부풀려져 퍼져나갔다. 2013년, 전세계 게이머들은 이 진실을 목격했다. 뉴멕시코 환경국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파묻힌 게임에 대한 진실 공개를 거부하고 있었으나, 캐나다 엔터회사 퓨얼 인더스트리사에 반년간의 발굴 및 다큐멘터리 제작 권한을 일임하면서 진실이 알려졌다. 발굴 현장에는 수많은 게이머들과 개발자인 하워드 스콧 워쇼, <레디 플레이어 원>의 원작자인 어니스트 클라인까지 함께 했다(그는 이 현장에 원작에서처럼 들로리안을 타고 나타났다). 실제로 매설된 게임의 양은 72만8천개였다는데 발굴된 양은 1300개였다. 아타리와 게임 와 관련해 어떤 누구에게서도 스필버그 책임론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역사상 최악의 게임을 언급할 때면 언제나 스필버그의 영화 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커버가 등장했다. 스필버그 자신도 이를 결코 모를 리 없었을 거다. 어쩌면 게임기 ‘'아타리 2600’이 <레디 플레이어 원>의 결정적 장면에 등장하는 것은 스필버그만의 속죄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스필버그와 이스터에그 또한 주인공 웨이드의 마지막 미션으로 주어지는 게임 아타리 2600의 <어드벤처>는 1979년에 발매된 세계 최초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자, 최초의 이스터에그 게임이다. 당시 아타리에서는 단 한명의 게임 개발자가 아이디어를 내고 코딩과 그래픽, 효과음까지 만든 다음 자녀들과 테스트해본 뒤에 발매 수순을 밟는 1인 제작이 일반적인 경우였다. 게임 제작자의 이름을 게임 속에서 볼 수 없도록 하는 내부방침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개발자가 게임 속에 비밀 방을 만들어두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세로로 새겨넣었던 것이다(이 최초의 기록은 얼마 전에 깨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부사장이자 아케이드 게임 마니아인 에드 프라이가 1977년에 출시된 아타리의 <스타십1>에서 이스터에그를 발견했다). 이스터에그는 원작과 영화에서 개발자가 남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열쇠로 묘사된다. 여담이지만, 1980년대의 닌텐도 팬이라면 닌텐도 캐릭터가 영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점에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닌텐도나 세가의 콘솔로 게임 인생을 시작한 이들이 많을 테니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스필버그가 1980년대 중반부터 일어난 일본발 게임 혁명의 주역인 닌텐도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다소 타이트한 닌텐도의 라이선스 관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에 동키콩 대신 킹콩과 매시업한 다음 ‘콩’이라는 이름으로 착시를 줬다고 짐작해본다. 영화에서 첫 미션을 수행하는 장면에서 스테이지 아래로 녹색 프레임이 펼쳐지는 장면, 참가자들을 부비트랩으로 방해하는 기믹 역시 사실상 게임 <동키콩>에 대한 묘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아시스의 설계자 할리데이가 유년기를 보낸 방바닥에는 <닌텐도 파워>로 짐작되는 잡지가 펼쳐져 있다. 묘하게 포커스는 나가 있지만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쓰인 제목에서 잡지 <닌텐도 파워>가 떠오르지 않을 게이머는 없을 것이다. <닌텐도 파워>는 당시 잡지 뒤편에 이스터에그를 수록해 큰 인기를 얻었으니까 말이다. 평소 스티븐 스필버그의 행보가 달갑지는 않았다. 소년, 소녀들이 활약하는 모험 활극의 마이스터임에도 그는 마치 유대인 감독의 의무를 다하려는 듯 역사의 한복판으로 가버린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레디 플레이어 원>이 너무 늦게 도착한, 우리 세대의 정서를 쥐어짜는 상업적 크로스오버, 무책임한 매시업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스필버그는 2018년의 방식으로 아타리를 소환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국적과 시대를 불문하고 총망라하면서 자신 역시 그것들을 지금도 충분히 기억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영화를 보며 한때 우리가 잃어버리고 지냈던 감정을 따뜻하게 보상해준 느낌이 들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뒷자리의 남성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들이 알아본 캐릭터들을 외쳐대는 소리를 들으며, 그 순간 스필버그가 우리에게 남긴 이스터에그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의 이스터에그 찾기에 얼른 동참해보시라.

[베를린] 제작기간 14년 걸린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 개봉 후 반응

부활절 연휴를 맞아 독일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영화가 개봉했다.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가 그 작품이다. 영화는 1960년 출간된 미하엘 엔데의 동명 동화가 원작이다. 동명의 원작은 지금까지 총 3500만부가 판매되었다. 영화는 제작비가 무려 2500만유로 들었으며, 제작기간이 14년이나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감독도 중간에 바뀌었다. 2013년부터 데니스 간젤이 감독을 맡았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파시즘의 폐해를 확인하는 실험을 한 고등학교 교사의 이야기를 다룬 <디 벨레>로 호평받았던 데니스 간젤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동화를 꼭 영화로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영화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에는 우베 옥센크네히트 등 독일 간판 배우들도 대거 출연한다.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룸머란트에 소포로 배달된 흑인 아기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주민들의 도움으로 자란 흑인 소년이 주인공 짐 크노프다. 짐 크노프는 기관차 엠마를 운전하는 루카스와 친해진다. 기관차를 타고 모험을 떠나는 루카스와 흑인 소년 짐 크노프는 모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우정과 사랑을 키운다. 독일인들에게는 1960년대 아우크스 부르크 인형극단이 제작한 텔레비전 인형극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 버전이 익숙하다. 단순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유럽 전통 인형들 대신 간젤 감독은 컴퓨터그래픽으로 화려한 실사를 구현했다. 하지만 기대 속에 개봉한 영화에 대한 평은 혹독하다. 유력 주간지 <슈피겔>은 “컴퓨터 효과로 가득 채운 간젤의 버전은 판타지를 배제한다. 그리고 (미하엘 엔데가 의도한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침잠한다”고 평했고, 일간 <베를리너 차이퉁>은 “영화 속 인물들이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혹평했다.

[영화를 향한 책의 여정③] <왕가위: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신비의 근원을 찾아서

외로운 남자 아비, 그는 두 여성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 차례로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내 그녀들에게 무관심해진다. 이런 그의 태도가 상대방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지만, 그를 냉정한 마음을 가진 자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영화 <아비정전>(1990)이 꼬집는 감정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이 말을 전한다. 아비가 바라보는 대상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있는 먼 곳의 장소를 바라본다고 말이다. 그 어딘가의 장소는 꾸준히 변주된다. 현재 그가 머무는 건물의 입구나 어두운 복도들, 혹은 시야가 흐려진 골목길과 같은 중간 어드메의 공간들이 그 상상적 이미지를 대체하게 된다. 홍콩이란 도시를 지탱하는 모난 장소들 곁에서, 왕가위의 영화가 갈망하는 욕망도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20세기 말의 관객이 그의 영화를 보며 ‘영국의 홍콩 반환’이라는 역사적 이벤트를 떠올렸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불가항력적인 망명과 덧없는 기억 사이에서, 당대의 관객은 스스로 채우는 것이 불가능한 공허 이면의 불안함을 거대한 스크린에 투영했다. 작가이자 비평가인 존 파워스가 바라본 왕가위 인터뷰집 <왕가위: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은 감독으로서 왕가위가 스스로의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책자이다. 첫장을 열자마자 독자들은 압도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영화의 스틸사진들을 통해 이 책이 현장에서 출발해 감독의 개인적인 어린 시절 사진까지, 그야말로 왕가위의 팬들에게 ‘매혹되는 순간’을 안겨줄 것이란 걸 직감하게 된다. 여섯 차례 대화를 통해 완성된 왕가위 영화에 대해 그들이 나누었던 심도 깊은 대화는, 과거 트뤼포가 히치콕 특유의 ‘감정의 언어’를 조명하려 노력했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존 파워스는 이번 인터뷰집에서 왕가위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가로지르는 ‘신비함의 원천’을 재단하려 노력한다. 아마도 그가 찾아낸 핵심은 표면이 아닌 내면에 있는 것 같다. 37개의 작은 단위로 나눈 오프닝의 비평 에세이에서 그는 ‘시간, 기억, 유배, 실연, 홍콩의 각기 다른 얼굴들’이란 다채로운 주제를 분할해 왕가위가 결국에는 “아름다움으로 시작해 마지막은 감정으로 끝맺게” 되는 연출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시간에 대한 애착과 노스탤지어를 향한 간절함, 그리고 기다림에 대한 운명성이 왕가위 영화의 키워드가 된다. 감독 스스로 이르듯 “마음의 기나긴 방황보다 더한 대하드라마는 없을 것”이란 동감이 찰나의 집적을 통해 형성된다. 관객이 현실 너머에 있는 황홀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불투명한 통로로서 왕가위의 영화는 우리 가슴에 자리잡고 있다. “제 영화는 전부 홍콩에 대한 겁니다. 설사 아르헨티나가 배경이라 해도 말이죠.” 생각해보면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탱고를 추던 홍콩의 작은 아파트를 벗어나서도 이러한 이미지는 계속해서 확장되었다. “주의 깊게 보면 모든 이야기가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게 보일 겁니다. 다양한 방향 감각에 그만큼 다양한 방향의 가능성이 더해지는 거고요.” 시간이나 공간의 경계선 전략만으로 이를 묶어둘 필요는 없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떠올린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중경삼림>(1994)의 낮과 밤의 이미지, <해피 투게더>(1997)의 절단되는 거대한 폭포수의 이미지, 그리고 <화양연화>(2000)의 남편도 부인도 아닌 관계들에 대해 연관 지을 수 있다. 이는 바로 ‘중국인의 디아스포라’라 표상되는 왕가위 자신의 개인적이고도 시대적인 상황과도 맞아떨어진다. 과거 왕가위가 진행했던 즉흥적인 촬영현장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완성된 영화의 흐릿한 이미지들과 겹치는 것 같아 보인다. 오랜 기간 왕가위 영화에서 의상과 세트를 담당했던 미술감독 장숙평은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왕가위를 정의한다. “그 친구, 흐릿한 거 너무 좋아해요”라고. 실상 왕가위는 사랑의 상실과 어긋남 같은 내적인 감정을 계산하거나 법칙을 지닌 것으로 표현하지 않는 연출자이다. 초당 12프레임으로 촬영된 뒤 더블프린팅되는 중첩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행동이나 리액션이 아닌 시선 자체의 롱테이크를 통해 그는 과거지향주의자로서 자신이 지닌 ‘60년대 홍콩’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90년대 후반, 당시의 관객은 무언가 느껴야 했고 스스로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시대가 지닌 경계에서의 불가사의함이 왕가위 영화에 전방위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그가 직접 영향 받은 60년대 뉴웨이브의 영화들에서부터, 그가 즐겨 읽던 남아메리카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주제와 방식이 서로 햄 앤드 에그처럼 맞아떨어질 때 최고의 효과를 낸다”는 그의 취향은 이후에 믿음으로 바뀐다. 놀랄 만큼 충격적인 시각적 충만함이 그의 필모그래피를 채우게 된다. 인물이나 장소, 혹은 장르라고 하더라도 왕가위 영화에서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렇게 그의 영화는 확실한 장치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다. 완벽한 과거로의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장벽이 왕가위 영화를 최대한 경계에서 가까운 곳으로 끌어다놓는다. 약 250장의 스틸사진으로 장식된 304쪽 분량의 이 깔끔한 하드커버는 2016년에 완성되어 국내에서는 올해 4월 발매됐다. 성문영이 번역한 한국어판은 원서와 거의 동일한 속도로 내용이 진행되며, 사진의 배치는 완전히 똑같다. 데뷔작 <열혈남아>(1987)부터 2013년 개봉한 <일대종사>(2012)까지 중요한 작품 전체를 아우르기에 회고전의 뉘앙스로 받아들여도 된다. 영화가 현실보다 과장된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 연출자로서 감독의 태도가 책장 사이사이에 배어 있다. 카프카나 도스토옙스키, 혹은 히치콕처럼 왕가위가 불안증에 사로잡힌 예술가는 아니더라도, 그는 관객에게 여전히 ‘오랜 시간 남게 되는 감정’이 담긴 작품을 제공한 아시아 최고의 영화연출자다. 과정의 반복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결과물은 우연한 조합이나 운 좋은 기적이 아니다.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마음의 교차점을 왕가위의 영화는 매혹적 구조물로 채운다. 그가 창조하는 아름다움의 과정에는 과장이 없다. 오직 진실한 내면의 깊이가 존재할 따름이다. 왕가위와 <포지티프> 존 파워스는 왕가위 영화가 “결코 최신 유행이라 부르는 것에 중독된 적이 없다”라고 강조한다. 이론에서 출발해서 영화를 제작한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작가 일을 습득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그간 그를 오해했는지 모른다. 실상 왕가위는 <카이에 뒤 시네마>보다 <포지티프>에 더 잘 어울리는 감독이라 할 수 있다. 급진적 이론을 제작에 활용하기보다는, 단편영화에서 출발해 고전적 완성도를 발전시킨 좌안파의 부류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2008년 2월 영화잡지 <포지티프>는 비평가 얀 토빈의 주도로 <왕가위 Wong Kar Wai>라는 제목의 비평집을 내놓았다. 그간의 기사와 비평 그리고 장만옥, 양조위, 크리스토퍼 도일, 장숙평과의 인터뷰를 통해 책은 직접적 대면이 아니라, 주변부의 역설적 반응을 통해 연출자 왕가위를 소개한다.

앙드레 바쟁 탄생 100주년

올해 2018년은 앙드레 바쟁 탄생 100주년이다. ‘영화이론의 선구자’라 불러도 될 만큼 그는 리얼리즘 이론의 기초를 마련했고, 이후 많은 비평가들이 그의 유산 아래 자신의 언어와 화법을 발전 시켜나갔다. 최근 기념비적인 저작 <영화란 무엇인가?> 개정 영문판이 출간되고(물론 앙드레 바쟁이 쓴 글은 2616편에 달하고 <영화란 무엇인가?>는 그중 일부만을 모은 것이다), 앙드레 바쟁이 텔레비전과 3D, 시네마스코프에 대해 쓴 글을 영역한 <앙드레 바쟁의 뉴 미디어>가 출간되는 등 2000년대 후반부터 바쟁을 재조명하는 연구들이 서구 영화학계에서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생일로 따지면 4월 18일이 그의 탄생 100주년이긴 하다. 김지훈 교수가 그의 비평을 재조명하는 소중한 원고를 보내왔다. (논문 제목은 괄호안에 작은따옴표로 표시했다. (예: ‘존제론’)) 앙드레 바쟁은 누구인가. 많은 이들은 두 가지 교과서적인 바쟁을 떠올릴 것이다. 오슨 웰스, 윌리엄 와일러, 장 르누아르,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지지하고 심도와 시퀀스숏, 롱테이크의 사용을 유성영화 이후 ‘영화언어의 진화’로 평가함으로써 현실의 기록과 재현을 영화매체의 본질로 간주하는 리얼리즘 영화이론의 기초를 마련한 바쟁이 있다. 또한 현대적 영화저널리즘은 물론 이러한 저널리즘이 지향하는 비평적 관점이자 방법론으로서의 작가주의를 후원한 바쟁도 있다. 1958년 너무나 이르게 세상의 스크린을 떠난 바쟁의 두 얼굴은 68혁명기 정치적 모더니즘 성향의 영화비평과 이러한 노선의 토대 위에 과학적 방법론을 구축한 1970년대 현대영화이론에서 탈신화화의 대상이 되었다. 관객에게 심층적 퇴행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생생한 스펙터클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장치(apparatus)로서 영화 일반을 개념화하고자 했던 이 시기의 스크린 이론(Screen Theory)은 감독의 개인적 비전을 영화예술의 원천으로 평가했던 작가주의를 배격했다. 이러한 현대영화 이론의 기획에서 바쟁은 영화의 충실한 현실 반영을 믿는 나이브한 본질주의자로 기각되었다. 리얼리즘과 작가주의는 바쟁의 유산이기도 했지만 현대영화이론은 이를 계승하는 과정에서 바쟁의 비평에 고정관념적인 주형을 입혔다. 2000년대 이후 유럽과 북미 영화학계는 바쟁이 생전에 <카이에 뒤 시네마>는 물론 <시네마 누오보> <에스프리> 등 수십개 매체에 기고한 2616편의 비평문을 아카이빙하고 다시 읽고, 이들 중의 일부를 영역 출간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4권으로 이루어진 원본 <영화란 무엇인가?>(1958∼62) 중 26편의 글만이 1967년 두권의 책으로 영역되어 오랫동안 참조되어왔다는 기존 번역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2009년 대규모의 국제학회를 기반으로 바쟁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을 모아 <바쟁을 열기: 2차대전 후 영화이론과 그 내세>(Opening Bazin: Postwar Film Theory & Its Afterlife, 2011)를 출간한 영화학자 더들리 앤드루에 따르면 바쟁은 “예술과 역사 사이에서의 자신의 특별한 자리를 직감했고 자신의 위치를 스크린을 통해 영사되는 세계와 그 세계의 거주자들의 철학적 관찰자로 여겼으며, (영화예술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파리에서 상영되는 수백편의 영화를 다룬 일상적 비평가이자 전투적 시네필”이었다. 이러한 다면적 성격을 입증하듯, 바쟁의 타자기는 일반적으로 작가주의 혹은 전후 유럽 모더니즘 영화로 분류되는 특정 작품들만을 대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는 장르영화, 탐험다큐멘터리, 예술다큐멘터리는 물론 현실의 기록을 영화예술의 본질로 삼았던 그가 반대했던 것으로 통상 알려진 아방가르드 영화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고, 스타와 에로티시즘, 새로운 스크린 테크놀로지, 텔레비전과 같은 영화의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차원도 성찰했다. 하나가 아닌 여러 리얼리즘, 모더니스트로서의 바쟁 바쟁을 리얼리즘 영화이론의 개념적 인물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한 글은 ‘사진적 이미지의 존재론’(이하 ‘존재론’)이다. 기존 리얼리즘 영화이론은 이 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바쟁에 따르면 조형예술은 “죽은 자를 방부처리”하고 시간의 흐름에 맞서 과거를 보존하는 ‘미라 콤플렉스’(mummy complex)의 욕망을 추구해왔으며, 중세와 근대의 회화는 실물과 유사한 “복제를 통해 외부 세계를 대신하는” 기법들을 개발해왔다. 화가의 주관성이 개입되는 회화와 달리 카메라의 자동기법(automatism)으로 인간의 개입이 감소된 채 피사체를 기록하는 사진의 발명은 실물과의 유사성을 추구하는 조형예술의 역사와 결정적으로 단절했다. 바쟁은 사진의 자동기법이 약속하는 “객관성으로 인해 (사진은) 모든 회화에서 있을 수 없던 강한 신뢰성”을 획득하고 “시간을 방부처리”하는 조형예술의 오랜 욕망을 실현한다고 주장한다. “사진 속 피사체의 실존은 마치 지문처럼 그 모델의 실존을 공유한다. 그때문에 사진은 자연의 창조를 대체한다기보다는 그 창조에 실제적 역할을 맡는다.”(‘존재론’) 사진 이미지를 실물로서의 모델 대한 모방적 재현이 아니라 “모델 자체”로 보는 바쟁의 관점은 그의 다른 글들에도 산포되어 있다. “초상화가 정당화되는 이유는 유사성”인 반면, 사진은 “사물이나 존재의 이미지가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해 그 흔적이다…사진사는 렌즈를 활용하여 빛의 진정한 인상을 촬영한다. 말하자면 주형(mould)인 셈이다. 사진은 그 자체로 유사성 이상, 말하자면 일종의 동일성이다.”(‘연극과 영화’) 피터 울른은 기호학자 C. S. 퍼스의 지표 개념을 활용하여 바쟁의 견해를 지표적 리얼리즘(indexical realism), 즉 카메라 앞에 과거에 존재했던 피사체와 사진적 이미지간의 실존적, 인과적 관계에 근거한 리얼리즘으로 정식화하는 데 기여했다. “바쟁은 기호와 대상간의 결정적인 실존적 유대를 거듭 강조하는데 퍼스는 이를 지표적 기호의 결정적 특성으로 여겼다.”(<영화의 기호와 의미>) 지표적 리얼리즘은 바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독해가 본격화된 1990년대 중반부터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스테픈 프린스는 지표적 리얼리즘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건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컴퓨터그래픽과 디지털 합성 이미지의 현실감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지각적 리얼리즘’(perceptual realism)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이 용어는 비록 이미지가 물리적 현실에는 부재하는 존재나 사건을 전달하더라도 그것이 현실감을 지각하는 관객의 도식과 호응한다면 사실적으로 간주할 수 있음을 뜻한다. 톰 거닝은 지표적 리얼리즘을 고수할 경우 필름 기반의 사진과 영화를 현실의 충실한 흔적으로 여기고 디지털 사진과 영화를 현실의 조작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에 사로잡힐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지표는 영화적 리얼리즘이란 문제에 접근하는 최고의 방식이 아닐 수도 있고 유일한 방식이어서도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바쟁의 리얼리즘과 관련된 주요 저작을 가장 꼼꼼히 독해한 논문에서 다니엘 모건은 지표성 개념이 바쟁이 리얼리즘의 관념으로 비평하는 영화들의 스타일적 다양성, 이러한 영화들이 다루는 물리적 현실의 다양성을 포착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모건이 이러한 지적과 더불어 환기시키는 바쟁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나의 리얼리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리얼리즘이 있다. 각각의 시대는 자신의 리얼리즘을, 말하자면 우리가 현실에서 원하는 것을 가장 잘 포착하고 유지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법과 미학을 추구한다”(‘윌리엄 와일러, 또는 영화의 장세니즘’). 이러한 수정주의적 독해는 각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차원으로 수렴된다. 즉 지표적 리얼리즘은 영화의 사실성 또는 영화 이미지와 세계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유일하고도 선험적인 기준일 필요가 없다는 점, 또한 바쟁의 비평은 지표적 리얼리즘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여러 리얼리즘 개념들을 던지고 그 사이를 횡단했다는 점이다. ‘존재론’에서 바쟁은 “정신적인 사실성을 표현하려는 순수 미학적 열망”과 “복제를 통해 외부 세계를 대신하려는 심리학적 욕망”을 언급한다. 예를 들어 정신적 리얼리즘이라 말할 수 있는 전자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를 “순수 사진처럼 객관적인 동시에 순수 의식처럼 주관적인 정신적 풍경”(‘로셀리니에 대한 옹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때 반영된다. 환영주의(illusionism)를 함축하는 심리적 리얼리즘이라 말할 수 있는 후자는 ‘완전영화의 신화’에서 “세상을 이미지로 재창조함으로써 완벽한 리얼리즘을 완성하려는 욕망을” 영화의 발명을 추동한 관념으로 소환할 때 입증된다. 또한 스타일로서의 리얼리즘이 있다. 물론 이것이 가리키는 바는 파편화를 근거로 미리 상정된 관념적 현실 아래 숏들을 배열하는 몽타주와는 다른 데쿠파주(d coupage) 또는 미장센이다. <영화란 무엇인가?>의 개정 영역본을 2009년 출간한 티모시 버나드는 기존 영미권 영화연구가 데쿠파주를 고전적 할리우드의 ‘분석적 편집’과 동일시하면서 그 의미의 풍부함을 희석시켰으며, 바쟁이 웰스와 와일러, 르누아르와 관련된 비평을 고려할 때 데쿠파주는 각본과 촬영 과정에서 어우러져 작용하는 장면 구성, 카메라 배치와 이동, 배우 연기의 연출 모두를 포함함을 입증한 바 있다. 1950년대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들이 ‘미장센 비평’으로 계승한 데쿠파주의 중요성은 일례로 와일러의 공적을 “조명, 카메라 앵글, 배우의 연출을 포함하는 ‘미장센의 기예(art)에 가져온 결정적 변화”(‘윌리엄 와일러’)로 규정할 때 드러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의 대상은 데쿠파주 또는 미장센, 혹은 이를 구성하는 특정 기법의 역할이다. 이것들은 현실의 흔적과 지속을 충실하게 보존하는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와 관련된 일련의 글들에서 바쟁은 현실과 관련하여 ‘공간적 밀도’나 ‘모호성’과 같은 표현을 쓰면서 이를 사실(fact/fait)이라는 용어와 구분한다. “그 자체로 다양하고 모호성으로 가득 찬 구체적 현실의 조각이 갖는 의미는 사실 이후에, 다른 주어진 사실들의 도움으로 드러난다. 정신은 이 사실들간의 어떤 관계를 수립한다”(‘현실의 미학: 영화에서의 리얼리즘과 해방 이후의 이탈리아 학파’). 즉 여기서 ‘사실’이란 농밀하고도 모호한 현실의 부분이며, 카메라의 기록과 데쿠파주는 “현실을 선험적 관점의 노예로 만들지 않고”(‘연출가 데 시카’) 그러한 현실로부터 ‘사실’을 구성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바쟁이 딥포커스와 롱테이크의 기능을 “시간과 공간의 연속체”(‘영화언어의 진화’)의 보존으로 간주한 이유는 현실을 존중하면서 관객의 심리적 리얼리즘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며, 데쿠파주가 구성하는 ‘사실’은 물리적 현실의 보존에만 한정되지 않는 정신적 리얼리즘의 영역, 즉 “추상적인 스타일과 추상화를 통해”(‘로셀리니에 대한 옹호’) 도달하는 “정신적 풍경”의 영역이기도 하다. 결국 바쟁의 비평은 지표적 리얼리즘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리얼리즘들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갔다. 그의 글쓰기는 이러한 리얼리즘들을 활성화하면서 현실로부터 ‘사실’을 구성하는 데쿠파주의 유형과 미학적 효과에 대한 계통학적, 지질학적 탐사였다(그의 비평이 진화생물학과 지질학을 연상시키는 많은 비유들을 썼다는 점을 상기하자). 이처럼 “(영화)매체의 재료와 미학적 가능성들간의 복잡한 협상”(다니엘 모건)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바쟁을 리얼리스트인 동시에 모더니스트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그는 크리스 마르케의 <시베리아에서 온 편지>(1957)의 일차적 재료를 ‘지성’으로 규정함으로써 모더니즘적 영화로서의 에세이영화를 선구적으로 식별하기도 했다). 철학자이자 예술사가, 플랫폼 비평가로서의 바쟁 리얼리스트이자 모더니스트로서의 바쟁이 갖는 철학적 면모는 일찍이 알려졌다. 지속의 철학에 대한 베르그송의 교훈,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과의 대면, 그를 신비주의자로 오해하게 했던 가톨릭주의 등 바쟁에게 영향을 준 철학적 전통은 물론 그가 질 들뢰즈의 ‘시간-이미지’ 개념에 미친 영향이 이러한 면모를 말해준다. 이들의 영향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는 아니지만, 그가 영화의 심리적 또는 정신적 리얼리즘을 말하면서 이미지의 현실에 대한 관객의 태도라는 문제에 매달렸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 점은 섹스와 죽음과 같은 “근본적으로 의식의 영역을 벗어난”(‘매일 오후의 죽음’) 현실이 스크린에 반복될 때, 또는 탐험다큐멘터리 <콘-티키>(1950)에서 물에 언뜻 보이고 사라지는 상어를 기록한 불완전한 장면을 두고 “그 장면이 흥미로운 것은 상어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위험을 보여주기 때문”(‘영화와 탐험’)이라고 말할 때 반영된다. 결국 바쟁이 자신의 비평에서 강조했던 ‘현실의 모호성’은 그 현실에서 사실을 구축하는 영화 이미지의 모호성, 이러한 이미지와 조우하는 주체의 인식론적 모호성이기도 하다. 필립 로젠이 적절히 지적하듯, 바쟁의 비평에서 영화적 리얼리즘의 문제는 비이성적인 것(미라 콤플렉스)과 상상적인 것(‘존재론’에서 그는 사진 이미지의 효과를 초현실주의와 연결시키기도 했다)을 포함하는 믿음(belief/croyance)의 문제이기도 하다. 바쟁은 또한 예술비평가의 태도로 영화이론의 고전적 문제인 영화와 인접 예술과의 관계를 탐구했다. <피카소의 미스터리>(1956)와 같은 회화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기울였고, 영화가 연극 및 문학의 유산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전용하는가의 문제를 성찰했다.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0)에서 로베르 브레송이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원작을 각색하면서 적용한 생략법과 간결한 몽타주를 옹호하며 바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치 있는 각색은 문학작품의 각색을 진정한 영화, ‘순수 영화’가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것으로 보는 비평적 오해를 반박한다”(‘비순수 영화를 위하여: 각색에 대한 옹호’). 바쟁은 원작과 구별되는 영화적 표현을 추구하면서도 원작의 화법과 주제에 등가적인 각색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리얼리즘의 효과가 내러티브의 차원에서도 구현된다고 보았으며, 미국 소설의 발달과 영화적 각색의 발달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가를 역사적으로 고찰했다. 이러한 작업을 근거로 바쟁이 제안한 ‘비순수 영화’(cin ma impure)라는 개념은 1920년대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담론에 기원하고 영화의 본질을 시각성의 표현에서 찾는 ‘순수 영화’ 개념에 대항함은 물론, 사진 이미지의 존재론을 영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질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영화매체의 특정성을 지탱하는 사진 이미지의 고유함은 영화가 포용하는 문학적, 회화적, 연극적 유산들의 혼종성과 협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울러 바쟁은 영화에서 대중과 산업의 관계를 중요시했고, 새로운 예술로서의 영화의 위상 또한 대중 및 산업과의 협상에 따라 변화한다고 믿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서부영화의 영향력을 미국을 뒷받침하는 신화와 도덕의 차원에서 찾았고(‘서부영화: 탁월한 미국영화’), 영화가 자극하는 에로티시즘의 근거를 “참여와 동일화를 요구하는 상상적 공간”(‘영화에서의 에로티시즘에 대한 난외주석’)에서 찾았으며, 장 가뱅과 채플린을 스타 이미지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관에 근거한 영화적 경험과 영화의 산업적 경계라는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되는 포스트-시네마 조건하에서 가장 중요한 재조명의 대상은 바쟁이 텔레비전, 시네마스코프, 시네라마, 3D 등 새로운 스크린 테크놀로지에 대해 쓴 글들이다(이 글들은 <앙드레 바쟁의 뉴 미디어>(Andr Bazin’s New Media)라는 제목의 모음집으로 2014년 영역 출간되었다). 이 글들 중 많은 것들은 바쟁이 르누아르나 로셀리니의 텔레비전영화에서 영화미학의 유산을 계승할 수 있는 텔레비전의 미학적 가능성을 찾았다는 통상적인 견해 이상의 풍부한 통찰과 생생한 관찰로 가득하다. 바쟁은 시네마스코프를 비롯한 새로운 스크린 테크놀로지가 텔레비전의 위협에 대한 대응임을 간파했는데, 이는 “영화는 산업의 이윤이 사라질 때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 소멸에 매우 노출된 산업적 예술”(‘시네마스코프는 영화를 구할 것인가?’)라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도입과 대중화에 산업의 제작 분야 못지않게 상영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시네라마와 3D의 기술적 차원(시네라마의 화면비율, 3D 영화를 가능케 하는 양쪽 눈의 시각 차이 메커니즘)을 치밀하게 고려하면서 이것들의 생리학적 현실감을 관객의 입장에서 꼼꼼하게 기술했다. 더 나아가 이 새로운 스크린 테크놀로지가 몽타주 및 심도와 같은 미장센의 구성요소에 미치는 영향에도 예민하게 주목했다. 이러한 영향은 바쟁의 동시대 영화는 물론 오늘날의 영화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감독은 웰스와 와일러의 예를 따라 자신의 구성을 조직하기 위해 심도를 활용한다. 그런데 이들은 시네마스코프 스크린의 넓이를 활용하여 마찬가지의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시네마스코프와 네오리얼리즘’)라는 바쟁의 진단은 1960년대 이후 와이드스크린 포맷의 대중화를 예견했다. 또한 “몽타주는 그리피스의 유산으로부터 도달하는 근본적 법칙들을 깨뜨리지 않고도 새로운 시각적 상황들에 단순히 적응되고 있다”(‘3D 혁명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가?’)는 바쟁의 관찰은 70mm 아이맥스 포맷을 채택하면서도 평행편집의 표현적 잠재력을 확장한 <덩케르크>(2017)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텔레비전과 와이드스크린, 시네라마와 3D에 대한 바쟁의 비평은 그의 주된 관심사가 테크놀로지와 산업이 결정하고 변화시키는 영화적 경험(cinematic experience)의 문제임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영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영화 이미지의 존재론을 넘어 영화적 경험의 관점으로 사유하는 바쟁의 문제의식이 다양한 종류의 작은 디지털 스크린들, 그리고 넷플릭스처럼 기존 영화산업의 프로토콜을 위반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도전을 고려할 때 동시대적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바쟁을 영화 스타일과 테크놀로지의 전환기에 활동했고 21세기에 재조명되는 플랫폼 비평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바쟁의 세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칸의 밤을 환하게 밝힌 <버닝>의 열기

<버닝>이 칸의 밤을 환하게 불태웠다. 16일 저녁 6시30분(현지시간) 뤼미에르 극장에서 이창동 감독의 <버닝>의 첫 상영이 시작됐다. 2007년 <밀양>으로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2010년 <시>로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은 세 번째로 경쟁부문 레드카펫을 밟았다. 공개 전부터 영화 외적인 요소로 크고 작은 구설에 올랐던 만큼 이창동 감독과 유아인, 스티브 연, 전종서는 레드카펫에서 살짝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상영이 끝난 뒤 분위기는 일변했다. 뤼미에르 대극장을 가득 메운 박수갈채는 오랫동안 이어지자 이창동 감독과 배우들도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파인하우스필름의 이준동 대표는 프로듀서이자 칸 영화제 자문위원인 고 피에르 르시앙의 뱃지를 치켜들며 헌사를 보냈다. 고 피에르 르시앙은 “2018년은 반드시 그의 해가 될 것”이라며 장문의 글을 통해 이창동 감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내기도 했다.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 역시 “순수한 미장센으로서 영화의 역할을 다하며 관객의 지적능력을 기대하는 시적이고 미스터리한 영화”라며 찬사를 보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각색한 <버닝>은 두 남녀와 정체불명의 남자 사이의 비밀스런 관계를 그린 영화다.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는 우연히 어릴 적 동네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종수는 밝지만 공허한 분위기를 풍기는 해미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해미는 종수에게 고양이를 부탁한 채 돌연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다. 얼마 뒤 해미는 젊고 부유하지만 뭘 하는지 의심스러운 남자 벤(스티븐 연)과 함께 귀국한다. 세 남녀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그린 이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보다는 차라리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나 루스 렌델의 소설에 가까운 미스터리 스릴러를 골격으로 하고 있다. <버닝>은 죄악감을 불태우는 이야기다. 인간의 죄의식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이어가던 이창동 감독이 이 원작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 있었던 것 같다.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윌러엄 포크너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는 하늘까지 치솟는 불길의 장려한 배덕감을 그렸다. 영화의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는 좀 더 음산하고 축축한 정서에 휩싸여 있다. 이에 반해 이창동 감독의 비전은 뼛속으로부터 울리는 긴장감의 공기를 골자로 한다. 영화 전반에 깔린 낮은 고동을 축으로 밀도 있고 날카로운 드라마가 생성된다. <버닝>은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과 유사하게 죄의식의 형상을 더듬지만 윤리와 도덕을 소재로 한 직접적인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죄의식 주체의 내면을 직접 파고드는 대신 죄의식을 둘러싼 상황과 풍경, 비유하자면 퍼져나가는 파장을 민감하게 포착하는 쪽에 가깝다. 미니멀한 스토리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밀도의 장면들로 채워져 있으며 각 장면마다 상징적인 요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촘촘한 메타포의 그물을 형성한다. 특히 음악과 사운드의 조율이 실로 탁월하다. 시사 직후 반응은 폭발적이다. 아직 매체들의 리뷰가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트위터를 통해 쏟아지는 평은 대부분 찬사로 가득하다. 호평과 혹평이 동시에 지적하는 부분은 이 영화가 매우 클래식하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이를 근거로 “영화적인 것 밖에 없는 영화”라며 환호하고, 다른 쪽에서는 “옛날영화처럼 길고 지루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기자 시사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빠르게 나갔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으며 극장을 나오자마자 활발한 토론과 함께 SNS를 통해 감상을 전했다. <버닝>은 현지시간 17일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71회 칸 국제영화제는 오는 20일 폐막작 상영과 함께 경쟁 부문 수상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현지 반응 -한마디로 지금까지 칸 영화제 상영 중 최고. 미니멀리스적 서사지만 긴장은 최고. 훌륭한 촬영. 대단한 음악. 역할을 완전히 소화한 배우. 아마도 내 생각엔 황금종려상. _<가디언> 피터 브래드쇼. -거인의 작품. 외형적으로 단순해보이지만 대단한 밀도. 아름답고, 영화적이고, 지적이다. 이런 영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아마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_<르 필름> 루카스 누네스. -이창동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시나리오 작법, 분위기, 연출, 연기의 모범이다. 이런 서사를 무리하게 늘어뜨리지 않으며너도 길게 이어가는 것은 놀랄만한 능숙함의 증거다. _<시네마티저> 오렐리앙 알랭. -이창동의 <버닝>은 정말 대단하다. 어쩌면 한 15분 정도 길어보이고 몇몇 부분은 지나치게 작가적이지만 정말 아름답게 잘 구성된 작품이다. _<텔레라마> 다비드 오노라. -좀 길다고 할 수 있지만 <버닝>은 아마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나의 황금종려상이다. 이 영화에는 진짜 영화적인 것 밖에 없다. _<프르미에> 줄리앙 라다.

씨네21 추천도서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핑크빛 표지에 ‘첫사랑’ , ‘낙원’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장식되어 있지만 이 소설은 강간 피해자의 마음속 지옥도를 그려낸 세밀화다. 쓰치와 이팅은 문학을 사랑하는 13살 소녀들이다. 감수성 풍부한 문학소녀들의 세계는 안온하게 흘러갔다. 50살의 인기 강사 리궈화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소녀들은 이웃집 이원 언니의 집에 들락거리면서 문학 전공자인 언니와 토론하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들의 세계에 문학 강사 리궈화가 침입한다. 입시 인기 강사의 자리를 이용해 소녀들을 유린해온 리궈화는 쓰치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주겠다’며 유인하고, 강간 후에는 ‘이건 선생님이 너를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위장한다. 폭력으로 지배한 후에는 교묘한 말로 정신을 지배한다. 우리의 관계는 장아이링의 연인 후란청(작가이자 유부남이었지만 14살 연하의 장아이링과 비밀결혼했다), 루쉰과 쉬광핑(루쉰의 제자였으며 17살 연상인 루쉰과 동거했다)의 관계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쓰치가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이원 언니는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폭행당하고, 이웃들은 피해자 얼굴 위의 멍자국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눈돌린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쓴 린이한은 책이 출간된 후 자살했다. 작가 나이 26살이었다. 작가의 가족들은 이 소설이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임을 인정하고 가해자를 고발했다. 그러나 “팡쓰치가 본인이냐”는 질문에 생전의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팡쓰치인지 아닌지는 이 책의 가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질문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에게 해야 한다. 포식자에 의해 찢어지고 뭉개진 소녀의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 독자에게는 괴로운 일이다. 그리하여 눈돌리고 싶을 때마다 팡쓰치는 세상에 이러한 고통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름다워서 더 고통스러운 문장 사이사이에 슬픔이 차오르는 소설이다. 피해자의 기록 이원이 쪼그려 앉아 두 소녀에게 말했다. “내 머릿속에 더 많은 책이 들어 있어.” 시어머니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머릿속에 책을 넣지 말고 배 속에 애를 넣어야지.” 텔레비전 소리가 그렇게 큰데 며느리의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신기했다. 이팅은 이원 언니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았다. (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