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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2003] 부산국제영화제 이모저모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3일 개막 이틀째를 맞아 영화상영을 본격화한 가운데 초반부터 높은 예매율을 보이는 등 순항하고 있다. 예매 좌석수는 3일 현재 9만5천463석으로 지난해와 엇비슷한 수준이나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3만여명 늘어난 20여만명의 관객들이 영화제를 맞아 극장을 찾을 것으로 집행위원회는 전망했다. 모두 61개국에서 243편의 영화가 출품된 이번 영화제는 역대 최대 규모인데다 3년만에 야외스크린이 다시 가동돼 관객들에게 한층 더 운치있고 풍성한 `스크린 축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출품작 가운데 <안녕, 용문객잔>(사진)(차이밍량)을 비롯한 69편은 벌써 완전 매진됐고, <그 집앞>(김진아) 등 9편은 2회 매진됐으며 리양 감독의 <맹정> 등 87편은 첫회 매진됐다. 0... 올해 가장 많은 출품작이 초청된 탓인지 외신의 관심도 그 어느때보다 뜨겁다는 것이 집행위원회의 전언이다. 개막일인 2일 밤 8시30분까지 집행위에 등록한 외국언론인은 모두 101명으로 집계됐으나 폐막일까지 140-150명 가량의 외국 기자들이 항도 부산을 찾을 것으로 집행위는 예상했다. 지난해 영화제 취재차 들른 외국언론인은 125명. 외국언론인 등록리스트를 보면 일본이 가장 많은 27명이고, 중국 8명, 미국 6명 등의 순을 보였고, 이밖에 프랑스와 방글라데시, 네덜란드, 싱가포르 언론인들도 포함돼 있다. 0... 예년과 달리 올해의 경우 영화제 상영관 17개 가운데 11개관이 해운대에 들어서 `스크린 축제'의 본거지가 기존의 남포동에서 해운대로 옮겨진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관이 몰려 있는 남포동에서는 이날 오전 개막작을 비롯해 일찍부터 영화상영을 시작해 여전히 활기를 띠었다. 남포동에 위치한 부산극장 앞에서는 예매표를 현장에서 받으려는 팬들과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하려는 관객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는 바람에 첫날 1회 상영시간이 20분가량 늦춰지기도 했다. 0... 영화제 주최측은 `무지개를 기다리며:아프가니스탄과 영화'란 특별전을 여는 것과 동시에 이날부터 남포동 PIFF 광장과 프레스센터가 있는 해운대의 쇼핑몰에 모금함을 설치하고 `사랑의 펜 모으기 행사'를 펼쳐 아프간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 영화제 손님들이 정성을 모아 전달한 연필과 볼펜 등 필기구는 아프가니스탄 감독인 세디그 바르막 감독(`오사마' 연출)을 거쳐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에게 전달된다. (부산=연합뉴스)

PIFF 2003 단신 및 행사

핸드프린팅 행사 뉴커런츠 심사위원장으로 부산을 방문한 얀 트로엘 감독의 핸드프린팅 행사가 4일 오후 1시 10분경 PIFF광장 야외무대에서 있었다. 김동호 위원장의 소개로 무대에 오른 얀 트로엘 감독은 예의 수줍은 말투로 “이런 (사람이 많은) 무대에 오를 것은 알고 있었다면, 50년 전 감독이 되는 것을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며, “(핸드프린팅 행사가) 몹시 어려울 것이라는 주의를 몇번이나 들었다. 되도록 얌전히, 움직이지 않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말했다. 행사는 동아대 김학재 교수의 도움으로, 석고틀에 5분간 손을 담근 후, 사인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로써 PIFF 광장에 손자국을 남긴 영화계 인사는 모두 스무명이다. 티켓 발급 불만 빗발쳐 외국에서 온 게스트와 저널리스트들이 티켓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일반 상영 첫날인 3일 오전부터 동나기 시작한 게스트용 티켓은 4일에는 ‘고갈’로 드러났다. 4일 밤 11시 현재, 5일 상영작 중 게스트 할당분이 남은 작품은 <노인> 등 3편 뿐이다. <스크린 인터내셔널> 평론가이자 국제평론가협회 심사위원이기도 한 댄 파이나루는 “영화제는 일반 관객뿐만 아니라 게스트와 저널리스트를 위한 관람 기회를 동시에 적절히 마련해야 한다. 지금 외국인 게스트들 사이에 ‘영화를 볼 수 없는 영화제’라는 불만과 함께 부산영화제가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영화제 조직위는 합당한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티켓 발급 시스템이 자주 다운되는 점도 관객과 게스트들의 불만사항. 3, 4일에는 티켓 발급 지연으로 일부 영화가 늦게 상영을 시작하기도 했다. 독립다큐 관련 세미나 독립다큐멘터리의 활로를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10월5일 오후 4시 해운대 메가박스 10관에서 열리는 <독립다큐멘터리와 방송채널과의 연계교류 방안>이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그것. 앨리 덕스(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 집행위원장), 김이찬(다큐멘터리 감독) 씨 등 국내외 독립영화 관계자들과 이승훈(EBS), 김현(KBS) 프로듀서 등 방송 관계자들이 패널로 참여한다.   <마그니피코> 관객과의 대화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에 포함된 <마그니피코>가 10월4일 오전 11시 메가박스 9관에서 의 첫 상영을 마친 다음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필리핀 출신의 감독 마리요 J. 드 로스 레이어스는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울었다”는 관객들의 고백이 줄을 잇자 내내 흐뭇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 영화로 몬트리올, 후쿠오카 등의 영화제에 초청받았는데 서양 관객들에 비해 동양 관객들이 2시간 넘는 러닝타임을 잘 견디는 것 같다”면서 “나는 인간이 선한다고 믿는 사람이며 영화는 그 선함을 전달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마그니피코>는 그런 믿음 아래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소개했다. 130여명의 관객들은 극중 생계를 책임지는 9살 소년 가장 역의 아역 배우를 어떻게 캐스팅 했는지를 비롯해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 대해 호기심을 보였다. 마리요 감독은 “지로 마니오라는 배우는 필리핀에서 각광받는 TV 스타로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독식하는 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데는 3일 만에 자신의 경험을 녹여서 만족스러운 시나리오를 써낸 야마모토 미치꼬의 힘이 컸다며 공을 돌리기도. EFP 기자회견 유러피안 필름 프로모션(EFP) 참가단 기자회견이 10월5일 오후12시 파라다이스 호텔 파노라마 룸에서 열린다. 유럽 감독들의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열리는 이 자리에는 뉴 커런츠 심사위원장인 얀 트로엘 감독을 비롯, 다구르 카리, 솔베이그 안스팍, 라일라 파칼니나, 유니 호카넨 감독 등 17명의 감독이 참석할 예정이다. GV 취소와 추가 5일로 예정된 관객과의 대화(GV) 중 일부가 변경된다. 취소된 GV는 오후1시 메가박스 4관의 <절망으로 불타는 우리 집>, 오후4시 메가박스 7관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 오후7시 메가박스 7관의 <철인>, 오후7시30분 부산 2관의 <바람난 가족>이고, 추가된 GV는 오전10시 메가박스 4관의 <마리온 브리지>, 오후10시 메가박스 1관의 <봄: 수친유 이야기>다. 오늘의 행사(5일) 10:30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 공동 마케팅, 프로그래밍 대안모색포럼/ 씨네마테크 부산 12:00 EFP 참가단 공식 기자회견/ 파라다이스 호텔 16층 파노라마홀 16:00 독립 다큐멘터리와 방송채널과의 연계교류방안 세미나/ 메가박스9관 16:30 NDIF 프리젠테이션/ 파라다이스호텔 16층 파노라마룸 18:30 2003 BIFCOM & PPP 개막파티/ 파라다이스 호텔 신관 가든 19:30 탭윙 컴퍼니 공연/ 야외상영관 20:00 쇼박스 파티/ 조선비치 그랜드 볼룸 22:00 EFP 파티/ 할매집 22:30 아이픽처스 파티/ 해운대 그랜드호텔 레저2층 ‘칸스’ 24:00 미로비전 파티/ 해운대 중동 ‘오 해피데이’ 내일의 행사(6일) 11:30 정창화 회고전 기자회견/ 파라다이스호텔 파노라마룸 12:00 PPP Luncheon Buffet/ 파라다이스호텔 지하 찰리스 12:30 뉴커런츠 감독과 프레스 브런치/ 레스토랑 여해 14:00 PPP세미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현재와 미래/ 파라다이스호텔 파노라마룸 16:00 EFP 야외무대 인사/ PIFF광장 16:00 BIFCOM세미나1- 캐나다 정부의 영상지원 정책 분석 및 영상산업 현황연구/ 파라다이스호텔 파노라마룸 18:00 홍콩 칵테일 파티/ 파라다이스호텔 가든 19:30 시네마서비스 10주년 파티/ 매리어트호텔 야외 테라스 19:30 여행스케치 공연/ 야외상영관

[CineChoice 3] <프렌치 아메리칸>, <광기의 즐거움>, <프리드먼 가 사람들 포착하기>, <해파리>

<프렌치 아메리칸 (Le Divorce)> 미국, 프랑스, 2003년, 117분,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오전 11시 부산극장 1관 “왜 프랑스 여자들은 각설탕만 쓰는거지?” “스카프 매는 법은 어떻고? 모두 이렇게 휙 돌려서 이렇게 묶고….” 프랑스인에 대한 미국인의 시선을 조소섞인 대화 속에 풀어놓는 <프렌치 아메리칸>은 제임스 아이보리가 선사하는 애교스러운 문화차이에 대한 보고서다. 충돌하는 문화들 사이의 차이와 공통점을 발견하기를 즐겼던 제임스 아이보리는 <프렌치 아메리칸>에서 보다 발랄한 로맨틱코미디의 리듬에 몸을 싣고 이야기를 건넨다. 낭만의 파리, 그러나 록산느에게는 더 이상 이곳이 낭만스러울 수는 없다. 한때 사랑의 도시였던 이곳은 지리멸렬한 이혼절차를 밟아야 하는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으니까. 임신한 자신을 뒤로 하고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프랑스인 남편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으로 괴로워하는 록산느. 그러나 언니의 이런 사정도 모르고 태어날 조카를 돌보기 위해 미국 LA에서 날아온 여동생 이사벨은 유명인사이자 유부남인 록산느의 시삼촌과 아슬아슬한 바람을 피우게 된다. “이혼녀에 시인? 프랑스 남자들은 좋아할 만한 요소지” 하지만 사랑스러웠던 이사벨의 시는 이제 처연한 한숨으로 바뀌고 말았다. 한편 이혼절차가 진행되는 가운데 록산느가 친정에서 들고 온 그림이 고가의 진품임이 밝혀지면서 이 그림을 둘러싼 프랑스 집안과 미국 집안의 팽팽한 대결이 시작된다. 골디 혼의 딸이자 <올모스트 페이머스> <열흘만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등에서 태양같은 에너지를 발산하던 케이트 허드슨이 천방지축 여동생 이사벨로, <링>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오묘한 매력을 뿜어냈던 나오미 왓츠가 비련의 록산느로 호흡을 맞춘 <프렌치 아메리칸>은 두 여배우의 화학작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글 백은하 <광기의 즐거움 (Joy Of Madness)> 이란/ 2003년/ 73분/ 감독 하나 마흐말바프 오후 7시 메가박스 2관 탈레반 붕괴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촬영된 최초의 영화인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오후 5시>(2003)에 관심을 가진 관객이라면, 영화제 기간 동안 국내위성방송(KBS KOREA)을 통해 재방영될 기획프로그램 <아프간으로 간 영화감독>과 바로 이 <광기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의 짧은 다큐멘터리를 함께 감상하도록 권하고 싶다. ‘청출어람’이란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장편데뷔작 <사과>(1998)와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인 <칠판>(2000)을 만든 사미라는 그녀의 세 번째 장편영화에 출연할 비전문배우를 물색하기 위해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의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내면에 여전히 잔존해 있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으로 인해 사미라의 캐스팅 작업은 별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영화출연을 약속했다가 금새 말을 바꾸는 율법학자, 선뜻 카메라 앞에 나서길 두려워하는 두 명의 여인, 그리고 약간 정신이 나간 듯한 남자와 그에게 딸린 가족 등,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사미라는 점점 초조해지고 별안간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이때 그 사람들과 사미라 사이에서 현명하고 침착하게 조율을 이끌어내는 이는 물론 아버지인 모흐센 마흐말바프이다. <광기의 즐거움>은 바로 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마흐말바프가(家)의 막내딸인 하나 마흐말바프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에 대한 묘사보다도 더욱 흥미로운 것은, 카메라가 관찰자임과 동시에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 됨으로써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화의 과정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2003년 베니스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었던 작품으로, 하나 마흐말바프는 그간 세계 3대 영화제에 초청된 감독들 가운데 최연소 감독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리드먼 가 사람들 포착하기 (Capturing the Friedmans)> 와이드 앵글/ 미국/ 2003년/107분/ 감독 앤드류 자렉키/ 오후 8시 부산3관 점잖은 중산층 가정이 모여사는 지역 사회에서도 각별히 존경받아온 컴퓨터 교사가 충격적인 혐의로 체포된다. 아동 포르노 잡지가 그의 거실에서 발견됐을 뿐 아니라, 집안에서 운영하던 사설 컴퓨터 강좌에서 자신의 10대 막내 아들을 공범으로 끌어들여 일상적으로 어린 소년들을 성추행했다는 고발이다. 프리드먼의 스캔들은 미국 사회의 알레르기 부위를 자극한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면서 프리드먼 가의 양탄자 밑에 엎드려 있던 비밀스런 과거와 욕망, 히스테리는 도마뱀처럼 고개를 치켜든다. 유독 아버지와 끈끈한 유대를 갖고 있는 세 아들은 생업도 내팽개치고 명예회복에 나서지만, 결과는 부엌에서 오가는 고성 뿐이다. 가족과 이웃, 수사관과 전문가의 인터뷰를 통해 하나씩 하나씩 제출되는 증거는 마치 추리소설의 장을 넘기듯이 더러는 진실의 사슬을 잇고 더러는 앞서 수립된 명제를 기각시키며 다큐멘터리를 지그재그로 전진시킨다. “세 아들과 프리드먼은 가족 중 어머니를 소외시키며 단단히 결속한 ‘갱’이었다.” “경찰의 증거와 심문은 다분히 과장됐다.” “아버지는 유아성애자인 동시에 좋은 사람이었다.” 조각을 모아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이며 ‘포착’이라는 표현은 이 영화의 제목으로 매우 적절하다. 프리드만 식구들의 유난스런 기록벽이 남긴 생생한 홈 비디오와 앤드류 자렉키 감독의 탐정에 가까운 취재력은 이 다큐멘터리에 희귀한 가치를 불어넣었다. 잘 만든 미스터리 한 편을 본듯한 소감은 몇 가지 회의적 상념으로 요약된다. 진실은 얼마나 상하기 쉬운 유기체인가? 그것이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는 순간은 도대체 있기나 한가? 글 김혜리 <해파리 (Bright Future)> 아시아영화의 창, 일본, 2003년, 92분,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오후 5시 부산1관 아리타가 키우는 해파리는 젊은 세대의 상징이다. 해파리처럼 젊은이들은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따스하게 돌봐주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 그들 자신의 희망과 미래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 공장에서 일하는 니무라는 해파리를 키우는 동료 아리타와 가까워진다. 공장의 사장은 니무라와 아리타에게 집안일을 시키고 보너스를 주더니, 조금씩 접근하기 시작한다. 아리타의 집에 찾아와 혼자 TV를 보며 떠들거나, 니무라의 CD를 뺏다시피 빌려가기도 한다. 젊은이들의 생활을 공유하여 자신의 따분한 생활을 바꾸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무례한 사장의 행동은 차츰 니무라와 아리타에게 짜증과 분노를 일으키고, 마침내 화가 난 니무라는 쇠파이프를 들고 빌려간 CD를 받기 위해 사장의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미 사장의 가족들은 시체가 되어 있다. 범인은 아리타. 니무라는 아리타를 면회갔다가 그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차츰 가까워진다. 니무라와 아리타의 아버지가 가까워지는 과정은, ‘밝은 미래’의 아주 작은 신호음처럼 미세하게 들린다. 아리타가 키우는 해파리는 젊은 세대의 상징이다. 해파리는 가까이 오는 모든 것에게 독을 뿜는다. 해파리처럼 젊은이들은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따스하게 돌봐주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 그들 자신의 희망과 미래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선뜻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체 게바라의 티셔츠를 입고 불량스럽게 대로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위에 ‘밝은 미래’라는 글자를 박아넣은 구로사와의 마음은 알 수 있다. 잠시라도 돌보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았던 해파리가 시궁창에서 자라나고, 마침내 자신의 미래를 향해 떼지어 바다로 나아가는 광경은 묘한 감동을 준다. 글 김봉석

[People] NDIF에 <황소부랄과 하나님> 출품한 김중 감독/매니페스트 필름 대표 자넷 양

“저, 귀엽게 봐 주세요” NDIF에 <황소부랄과 하나님> 출품한 김중 감독 영화제 기간 동안 어디선가 분위기가 다운되는 일이 생기면, 이 사람을 찾을 것! 올해 NDIF에 제목부터 엽기발랄한 <황소부랄과 하나님>을 출품한 김중 감독이 수많은 영화제 내방객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폭탄 머리에 원색 만화 티셔츠 때문만은 아니다. “저, 귀엽게 재밌게 찍어 주세요. 개그맨 처럼요.” 으레 ‘감독님’이라면 시쳇말로 ‘가오’를 잡기 마련일텐데, 김중 감독은 먼저 망가지길 자청한다. 자신의 영화 유학에 도피 혐의가 있었고, 일찍 아기 아빠가 되는 바람에 군 면제를 기도했었다는 충격 고백도 서슴치 않는다. (참고로 그는 군대에 다녀왔다) 출품 프로젝트 또한 얼마간 그를 닮아 있는, 황당한 유머와 풍자가 깃든 판타지. 엄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안의 유일한 재산인 황소를 거세해 암소로 만들어달라는 기도를 올리는 열살배기 꼬마 철이의 상상을 따라가는, 따뜻하고 편안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가 배어나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가장 좋아하고 또 자신있는 장르가 판타지와 SF라고 밝히는 그가 머잖은 미래에 한국의 팀 버튼, 한국의 테리 길리엄으로 불리울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아시아에서 할리우드로” 매니페스트 필름 대표 자넷 양 <래리 플린트> <웨이트 오브 워터> <하이 크라임>의 프로듀서이자 매니페스트 필름의 대표인 자넷 양이 부산을 찾았다. 이명세 감독의 신작 <크로싱>의 제작자로서 5일부터 시작되는 PPP에 참가하기 위한 것. 재미교포 이혜리의 <태양이 없는 곳>이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크로싱>은 체제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좋은 반응을 얻을만한 내용”이라는 게 양의 판단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본 뒤, 이명세 감독과 작업할 것을 결정했다는 그는 “이 감독은 액션 뿐 아니라 러브스토리, 드라마에 모두 탄탄한 실력을 보여주는 탓에 이 영화에 딱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한다.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그녀의 궁극적 목표는 많은 아시아 영화인들을 할리우드에 소개하는 것이라고.

[CineChoice 3] <침묵의 물>, <붉은 황금>, <희미한 불빛>, <사막의 춤>

<침묵의 물 (Silent Waters)> 아시아 영화의 창/ 파키스탄, 독일, 프랑스/ 2003년/ 110분/ 감독 사비하 수마르/ 오후 8시 메가박스 3관 <침묵의 물>은 파키스탄의 격변기 속에서 가장 큰 희생을 겪어야 했던 여성의 현실을 비추는 영화다. 1977년 군부의 지아 장군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등에 업고 부토 정권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2년 뒤, 광풍은 작은 마을인 차크리에도 불어닥친다. 부토를 처형한 근본주의자들은 과격한 이슬람 율법을 설파하면서 마을을 공포분위기로 몰아넣고, 젊은 피리 연주자 살림도 이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자립적인 여성인 그의 연인 주베이다는 그의 모습을 보며 걱정하지만, 살림은 오히려 주베이다와의 관계를 끊으려 한다. 그리고 이 다가올 소용돌이를 바라보는 살림의 어머니 아예사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던 광풍이 서서히 바람을 모으기 시작하는 것은 한 시크교도가 마을로 들어오면서부터. 그동안 이 마을 사람들은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혼합된 이 종교에 대해 그리 적대적이지 않았으나, 근본주의자들은 뭔가 꼬투리를 잡아 그를 몰아내려 한다. 이와 함께 아예사의 불안감은 눈에 띄게 더해간다. 인도로부터 파키스탄이 분리되던 1947년 당시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1947년과 1979년의 시점을 끊임없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리고 후반부 2002년으로 점프하면서, 여전히 우물 속 깊은 나락 같이 비참한 파키스탄 여성의 현실을 고발한다. 파키스탄에선 매우 드문 여성 독립영화 감독 사비하 수마르는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사이의 끊임없는 종교분쟁 속에서 가장 큰 희생을, 때로는 죽음까지 강요받았던 존재가 바로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밀도 짙게 보여준다. 올해 로카르노영화제 대상작이기도 하다. 글 문석 <붉은 황금 (Crimson Gold)> 아시아영화의 창/ 이란 / 2003년/ 97분/ 감독 자파르 파나히/ 오후 4시 메가박스 6관 “도둑을 체포하려 한다면 세상을 체포해야만 할 것이다.” 나름의 식견과 전문가 의식을 가진 영화 속의 도둑은 이렇게 말한다. 얘기인즉 남의 재산을 가지려 하는 행위는 세상에서 가장 널리 퍼진 ‘직업’일 것이고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 일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붉은 황금>의 주인공 후세인은 이 ‘이론’의 한 가지 (불행한) 사례가 되고만 인물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이 남자가 한 보석상에서 강도짓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예기치 못한 다급한 상황이 일어나면서 그는 보석상 주인을 죽이고 만다. 보석상 안에서 길쪽을 향해 그동안 묵묵히 지켜보던 카메라는 천천히 앞으로 이동을 하더니 자신의 머리를 향해 총을 들이대는 후세인의 얼굴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이 이란산 범죄영화는 이후로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어떻게 건실한 피자 배달원이었던 후세인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친한 친구의 동생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그는 약혼자에게 결혼 선물을 해주고 싶어 고급 보석상을 찾지만 첫눈에 돈이 없어 보이는 그는 여기서 모욕감만을 맛본다. 그렇듯 후세인을 좌절로 이끈 주요 동인은 빈자와 부자 사이에 놓인 깊은 골이었던 것이다. 전작 <써클>에서 여성들을 구석으로 내몬 이란사회에 카메라를 들이댔던 자파르 파나히는 이번 영화에서는 후세인의 오토바이를 타고 돈 없는 이들에게 깊은 굴욕감을 주는 이란사회를 격하지 않은 목소리로 가끔은 부조리한 유머를 섞어가며 이야기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시나리오를 썼다. <희미한 불빛 (Distant Lights)> 월드 시네마/ 독일/ 2003년/ 105분/ 감독 한스 크리스티안 쉬미트/ 오후 8시 부산 2관 <희미한 불빛>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뒤얽혀 있는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지대를 탐험하는 영화다. 이곳에는 독일로 불법 입국하려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있고, 이들의 사정을 안타까워 하며 도우려는 통역사와 딸 아이에게 성찬식 드레스를 사주기 위해 이들의 불법 입국까지 주선해야 하는 폴란드 택시운전사도 있다. 또 큰 돈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폴란드의 아름다운 젊은 여성과 한때 그녀의 연인이었지만, 배신해버린 독일 남자가 있으며 매트리스 장사를 하다 쫄딱 망해버린 빈궁한 사업가와 그의 곁을 지켜주려는 여성도 있다. 이 각기 다른 조건과 상이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얽혀가면서 영화는 조금씩 슬퍼져 간다. 한 우크라이나인은 통역사의 차 트렁크 안에 숨어서 독일로 들어가려하고 또 다른 우크라이나 부부는 택시운전사에 의지해 국경의 강을 건너려 한다. 건축회사에 다니는 독일 남자는 공사 수주를 위해 폴란드 여성을 ‘성상납’하려는 사장에게 대들며, 매트리스 사업가는 엄청난 빚을 안은 채 쓰러지려 한다. 이 아슬아슬한 상황, 그들에게 절실한 도움을 주는 것은 바로 그들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다. 동기와 사연이야 서로 다르지만, 이들은 결국 자본주의적 관계를 넘어서는 진정한 연대와 호혜적 관계의 가능성을 역증하는 존재들이다. 이 영화는 그 제목처럼, 조그만 입김에도 꺼질 수 있는 ‘희미한 불빛’이지만, 최소한 아직까지는 이 불빛 아래서 사람과 사람들이 어깨를 맞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뜨거운 마음을 가진 <매그놀리아>라 할만하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국제평론가협회상 수상작인 이 영화는 <굿바이 레닌>과 함께 새로운 독일영화의 도래를 알려주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글 문석 <사막의 춤 (Dancing In The Dust)> 새로운 물결/ 이란/ 아쉬가르 파르하디/ 2003년/ 95분 오전 10시 메가박스6 이 영화를 서슴없이 걸작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사막의 춤>은 걸작만이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우쳐준다. 나자르는 버스 안에서 만난 레이하네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한다. 그러나 레이하네의 어머니가 매춘부라는 이유로 그들은 이혼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레이하네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은 나자르는 그녀의 새로운 결혼 지참금을 마련해주는 것만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빚쟁이들에게 쫓겨 도망치던 나자르는 우여곡절 끝에 땅꾼 하지의 차를 타고 사막에 도착한다. 나자르는 그곳에서 뱀을 잡아 돈을 마련하려다가 도리어 손가락을 물려 절단하게 된다. 병속에 담긴 손가락과 결혼반지를 쳐다보며 나자르는 슬픔과 아픔을 참지 못해 운다. <사막의 춤>은 화려한 화술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감동을 가져오는 힘을 갖고 있다. 아쉬가르 파르하디는 이 슬픈 사랑 이야기를 소중하게 다룬다.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파라마르즈 가르비안은 순진하고 덜떨어진 주인공 나자르 역을 충실히 소화하면서 이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의 엉뚱한 모습은 웃으면서 울게 되는 영화의 뒤섞인 감정과 어울린다. 사랑의 낙원을 보여줄 듯한 낭만적인 첫 장면 이후, 붕대를 감은 손을 뒤로 하고 돈뭉치를 넘겨주는 슬픈 마지막까지, 착하고 순진한 나자르에게 현실은 장애로 가득 찬 사막일 뿐이다. 그래서 <사막의 춤>은 현실에서 길을 잃고, 사랑을 위해 돈을 구해야 하는 슬픈 신밧드의 모험처럼 보인다. 글 정한석

[인터뷰] 부산영화제 온 이명세 감독

<첫사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이 부산영화제의 필름 사전 마켓 PPP(Pusan Promotion Plan) 참가차 부산을 찾았다. 2000년 4월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행사에 참가한 이 감독은 4일 오후 부산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지난 4년간의 할리우드 생활과 차기작 진행 상황 등을 털어놓았다. 그가 PPP에 가져온 작품은 <더 크로싱>(The Crossing). <조이럭 클럽>의 자넷 양이 프로듀서를 맡는 이 영화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을 남한으로 탈출시킨다는 내용의 드라마다. 이 감독은 이와 함께 액션 장르의 영화 <디비전>(Divisionㆍ가제)도 준비중이라고 전했다. 이들 영화의 진척상황을 묻는 질문에 그는 "영화는 만들어봐야 아는 것 아니냐. 이르면 내년 초께 촬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할리우드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이 살아 있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다음은 이 감독과의 일문일답. -그동안 한국 영화계가 많이 변했다. =상당히 많이 변한 듯하다. 더 체계적으로 보이고 많이 젊어졌다. 여러모로 좋아졌다. <반칙왕>(김지운)과 <생활의 발견>(홍상수), <플란다스의 개>(봉준호) 등 좋은 영화도 나왔고 송강호나 설경구 같은 좋은 배우들도 활동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이유는 무엇이었나. =한국의 시장이 좁은 만큼 넓게 열린 시장으로 나가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같은 나라도 그렇지만 자국 시장에만 만족하면 산업 전체가 주저앉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한 적도 없고 유학 경험도 없지만 나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할리우드에서 연출할 작품들은 어느 정도 진행이 됐나. =미국에 가자마자 연출 제안이 있었다. 그 중에는 <폰 부스>도 있었고 장클로드 반담 주연의 영화도 있었다. 존 우(우위썬ㆍ吳宇森) 감독과 비교되는 것이 싫어서 시나리오 작업에 오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현재는 두 편을 동시에 추진중이다. <디비전>은 시나리오가 '9고' 정도 나온 상태며 <더 크로싱>은 시나리오 전체의 플롯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더 크로싱>에는 <간디>의 벤 킹슬리나 <반지의 제왕>에 레골라스로 출연했던 올란드 블롬이 주인공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각각 아나니머스 콘텐츠와 마니페스토라는 회사가 제작을 한다. 어떤 영화를 먼저 시작할지는 투자금 조달상황에 달렸다. -<더 크로싱>에 한국인 배역이 있어 한국 배우들이 출연할 가능성도 있겠다. =몇사람 중 두 사람 정도로 출연시켰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모든 게 다 준비된 뒤에 할 얘기지만 한국 스태프들도 같이 데려가서 일하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빗속 싸움 장면이 <매트릭스>나 <찰리의 진실> 등에서 인용된 것 같은데. =뉴욕에 있는 친구들이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 뭐 좋은 얘기 아닌가. -아시아 출신 감독들이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경우가 많지 않은데. =아마 존 우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배우의 경우보다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맨 처음에 에이전트가 하는 얘기가 아시아 사람들은 쉽지 않지만 당신은 될 것 같다더라. 카메라 뒤에 있기 때문에. 만들어 봐야 알겠지만 액션 영화건 어떤 장르건 영화만으로 얘기할 수 있는 영화가 진짜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분야, 그리고 완전해 감정이 당기는 영화가 아니면 (할리우드에서) 안하겠다.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작업 환경은 어떤 면에서 다른가. =충무로에서는 감독이 '지시'하는 쪽이었다면 할리우드에서는 '요구'하는 쪽이더라. 감독의 역할이 변호사를 통해, 에이전트를 통해 세세한 것까지 요구한다. -영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지냈나.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클래식 전용극장에서 고전영화들을 봤다. 또 영어학원도다녔지만 숙제하느라 바빠지는 게 싫어서 그만뒀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인생이 꿈 같다. 사는 게 늘 그런 느낌이다. 영화에서도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 또 대중에게 가깝게 가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 (부산=연합뉴스)

[인터뷰] 모흐센, 하나 마흐말바프

"이제는 아시아인들의 고통을 말할 때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신설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의 초대 수상자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딸 하나 마흐말바프와 함께 4일 오후 부산 해운대의 프라자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2001년 <칸다하르>로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마흐말바프 일가는 아버지 모흐센을 비롯해 아들 메이삼, 딸 사미라와 하나 그리고 부인인 마르지예 매쉬키니까지 온 가족이 영화감독으로 연출을 하고 있다. 서로의 작품에 조감독이나 배우로 도움을 주며 일종의 영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가족은 지난 2000년 온 가족이 함께 부산을 찾은 적이 있으며 올해는 아버지와 막내딸만 왔다.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상을 받는 것은 언제나 기쁘지만 시선을 넓혀 아시아인들의 고통을 말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책임감이 어깨에 걸린 것 같다"며 "한편으로는 아직도 아시아에서 재정 부족이나 검열로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내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겸손함을 내비쳤다. 다른 가족들에 대해 그는 "사미라는 18세때 처음으로 칸영화제에 진출했고 하나는 14살 때 베니스에 갔지만 재능있는 영화예술인이기 보다는 단지 영화를 통해 세계에 말하고 싶을 뿐"이라며 "6㎜ 디지털 카메라가 있는 이제는 누구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영화를 통해 하고싶은 말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딸들의 영화에 대해 "<칠판>이나 <광기의 즐거움>이 내가 만든 영화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며 "젊은 감독들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영화가 나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모흐센의 <칸다하르>, 하나의 <광기의 즐거움>, 사미라의 <오후 5시>는 모두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을 소재로 한 영화. 모흐센은 "전쟁과 가난 때문에 매년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이란으로 넘어오고 있으며 탈레반 정권때 현지를 방문한 뒤 한 도시에서 스무명 가량의 사람들이 길거리에 죽어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고 설명한 뒤 "영화를 만들면서 이곳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 어린이 교육 운동(ACEM)이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란에서는 자신의 집을 개조해 영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정규학교에서 시간별로 과목을 나누어 가르치는 반면 몇 달 씩 같은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영화학교에 대해 설명하는 감독은 두 딸 사미라와 하나를 비교해달라는 기자들의 주문에 "사미라가 열정적이고 기계에는 관심이 적은 반면 하나는 더 어릴 적부터 영화를 접한 만큼 음향이나 카메라 등 기계적인 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딸 하나 마흐말바프는 "부산영화제는 역동적이고 사람들이 붐벼 가장 좋아하는 영화제"라며 "특히 이런 점들을 출품작에서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부산을 찾은 소감을 밝혔다. (부산=연합뉴스)

[뉴욕] 참을 수 없는 마케팅

우디 앨런의 <애니싱 엘스> 고정팬 무시한 마케팅으로 최악의 흥행성적 올려 할리우드에서 저명한 감독들의 이름을 숨기는 이상한 마케팅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최근 미 전역에서 개봉된 우디 앨런이 연출한 <애니싱 엘스>(Anything Else)와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콜드 크릭 매너>(Cold Creek Manor)를 들 수 있다. <애니싱 엘스>는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로 알려진 제이슨 빅스와 <슬리피 할로우>의 크리스티나 리치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로맨틱코미디. 제작과 배급을 담당한 드림웍스는 <애니싱 엘스>를 기존 우디 앨런의 작품들처럼 마케팅을 하는 대신, 1천만달러를 투입해 <아메리칸 파이> 관객층(?)을 겨냥한 깜찍한 데이트용 영화로 포장했다. 이 때문에 우디 앨런은 연출과 각본, 조연까지 맡았지만 극장과 TV예고편은 물론 포스터, 잡지 광고, TV용 리뷰클립에서조차 그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트레일러에서는 제이슨 빅스와 크리스티나 리치의 사랑 싸움만이 다뤄졌고, 포스터와 잡지 광고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로맨틱코미디처럼 커다란 하트 안에 귀여운 표정을 한 크리스티나 리치가 웃음을 머금고 있다. 문제는 드림웍스가 ‘우디 앨런 영화’에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이려 한 시도가 완전히 빗나가버렸다는 것. 젊고 새로운 관객층에만 신경을 쓴 드림웍스가 지금까지 우디 앨런의 영화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격려해준 팬들을 외면한 것이다. 대부분의 젊은 관객은 이 영화를 흔한 코미디로 생각해 관람하지 않았고, 우디 앨런의 팬들은 이 영화가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 기존 우디 앨런의 작품들은 대체로 300여 극장에서 한정 상영돼왔지만 <애니싱 엘스>는 전국적으로 1033개 극장에서 개봉되는 파격적인 뒷받침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같은 전폭적인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주에는 흥행순위 12위를, 두 번째 주에는 18위를 기록했으며, 9월29일 현재까지 284만여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이는 우디 앨런의 작품들 중에서도 최악의 흥행성적이다. 드림웍스의 이번 마케팅 전략은 평론가들은 물론 영화팬들의 반감도 사고 있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자신의 칼럼에서 “<애니싱 엘스>의 극장 광고와 TV 트레일러를 보면 제이슨 빅스와 크리스티나 리치에게 모든 크레딧을 주고 있다”며 “우디 앨런의 작품을 <아메리칸 파이> 관객을 위해 포장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영화 전문 웹사이트인 ‘IMDB’(Internet Movie Data Base)와 ‘에인트 잇 쿨’(Ain’t It Cool.com)에도 이 작품이 우디 앨런의 것임을 뒤늦게 알고 격렬한 항의의 글을 올리는 영화팬들이 많다. 일부 우디 앨런 팬들은 “이 영화를 <아메리칸 파이> 관객에게 팔려고 한 드림웍스 사람들은 자폭해야 한다”, “이번 마케팅은 진짜 비열한 짓이다” 등의 메시지를 올렸다. 마이크 피기스의 <콜드 크릭 매너> 또한 광고에 피기스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트레일러나 포스터, 광고물에서도 그의 이름은 볼 수 없으며, 오직 대형 포스터 가장자리에 ‘감독 마이크 피기스’라고만 명시돼 있다. 피기스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원 나잇 스탠드> <타임코드> 등으로 아트하우스 영화팬들에게 잘 알려졌지만, 메인 스트림 안에서 만든 공포영화를 홍보하는 데는 그의 이름이 필요치 않았던 모양이다. 10월 말 할로윈 데이를 겨냥해 9월 말에 개봉된 공포영화 <콜드 크릭 매너>는 브에나비스타가 배급을 맡은 작품으로 주인공인 데니스 퀘이드와 샤론 스톤의 스타 파워, 그리고 으스스해 보이는 저택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고 있다. 이 영화 역시 총 2035개 극장에서 개봉됐으나, 1493만여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개봉 첫주에 간신히 5위에 턱걸이한 뒤 9월29일 현재 8위로 떨어졌다. 이같은 마케팅의 패착은 조지 클루니와 캐서린 제타 존스가 주연한 <참을 수 없는 사랑>(Intolerable Cruelty)으로도 이어지는 듯했으나, 제작진은 10월10일 개봉을 앞두고 이 작품을 감독한 코언 형제의 이름을 내세우며 ‘인디영화 팬’ 관리에 뒤늦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뉴욕=양지현 통신원

[베를린] 한국 애니의 발견

여름 휴가를 맞아 조용하던 베를린은 9월 들어서자마자 한층 분주해졌다. 중순부터는 가을 축제가 시작되고, 월초에는 1997년부터 시작된 베를린 ‘아시아태평양주간’ 행사 때문이다. 명실상부한 통일독일의 중심부로서의 위상을 되찾은 베를린은 ‘멀티컬처’, 즉 복합문화의 중심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며, 1997년부터는 ‘아태주간’ 행사를 격년으로 치러오고 있다. 이름 그대로 아시아 전역과 호주, 뉴질랜드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문화권을 커버하는 전방위 행사다. 매회마다 주제국을 선정해 일본, 중국 등을 거쳐 인도까지 이른 이 행사에서, 올해는 한국도 분주했다. 2년 뒤를 위한 예행연습 내지 전야제 차원에서다. 한마디로 2005년은 독일 땅에서 한국이 판치는 해다. 세계적인 프랑크푸르트 서적 박람회는 물론 2005년 ‘아태주간’ 주제국에도 한국이 선정되었다. 게다가 독일에서 개최될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붉은 악마’로 각인된 축구의 나라 한국을 상기시키려는 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그렇게 곳곳에서 개최되어 사람 헷갈리게 만든 한국 행사 풍년 한켠에 조용히, 그러나 풍요롭게 한국애니메이션영화제가 열렸다. 한국애니영화제는 마침 베를린을 찾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일정과 맞물렸다. 이 시장은 9월25일부터 27일까지 베를린의 유서 깊은 극장 로열팔라스트에서 열린 ‘서울애니메이션영화제’ 개막식에도 참석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홍보했다. 개막작으로는 2002년 서울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대상과 프랑스안시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가 선정되었고, <오세암>(사진), <엘레시움> 등의 극장용 장편은 물론 <인생> 등 갖가지 영화제에서 수상한 단편들이 3일 동안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최근 국제무대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실사영화들에 비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세계 ‘최대’ 애니메이션 시장인 독일에 첫선을 보인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제는 그 의미가 매우 큰 행사였는데, 독일 유수 영화제 관련자들, 언론인들,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을 비롯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관객이 몰리는 바람에 많은 이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난처한,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그지없이 반가운 상황을 빚기도 했다. 베를린영화제의 경쟁 섹션 중 하나인 ‘어린이영화제’의 마리안 레드파트 부위원장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운 색채와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 그리고 단편들의 놀라운 아이디어와 기술 수준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국 작품들이 꾸준히 독일에 소개될 수 있는 루트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해오기도 했다. 9월17∼21일 동안 열린 제1회 ‘아태 영화제’에서도 상영작 총 25편 중 <취화선> <오아시스>를 비롯한 우리 영화 4편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아직도 유럽에서는 몇몇 영화제를 제외하고는 한국영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전무하다. 날로 높아가는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에 비해 이제는 마케팅이 한수 처지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