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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프랑스에서의 한 철>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 “차드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국가다”

“마치 질병처럼 영화의 바이러스에 전염됐다.”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과의 대화에서 받은 의외의 놀라움은 그가 갖은 역경 속에서 오히려 낭만의 언어를 키워온 점이었다.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은 세계 최빈국이라는 고단한 수식어와 함께 지난해에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국 금지 조치로 몸살을 앓은 아프리카 차드공화국 출신 감독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다라트>(2006),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절규하는 남자>(2010) 등 세계 영화계 내의 인지도 면에서 볼 때 여전히 차드의 ‘유일한’ 영화감독으로 불리기도 한다. 올해 디아스포라영화제에 초청된 신작 <프랑스에서의 한 철>은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삼은 그의 첫 번째 작품. 종교 분쟁을 피해 두 자녀를 데리고 프랑스로 건너온 압바스와 그의 연인 캐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이미 두번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적 있는 이력을 두고 “다음 생에는 한국인으로 환생할 모양”이라며 웃었다. -<프랑스에서의 한 철>은 차드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당신의 자전적인 스토리가 일부분 반영된 것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작은 신문 기사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차드의 한 남성이 프랑스에 난민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했고, 이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실패해서 결국 분신자살한 내용이었다. 나 역시 차드의 오랜 내전(1960년에 프랑스에서 독립한 후 이슬람교가 대다수인 북부와 기독교를 믿는 남부 사이의 종교 갈등이 극심해졌다. 오랜 내전과 학살, 1980년대 들어선 이센 아브레의 독재 정권은 살레 하룬 감독이 피부로 겪은 차드의 가장 큰 비극이다.-편집자)을 피해 나라를 떠나온 난민이라는 점이 영화를 만드는 강한 동력이 됐다. -10대 시절에 차드 내전을 피해 파리로 가게 된 자세한 과정이 궁금하다. =탈출 과정에서 오발탄이 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더이상 걸을 수 없게 되자 아버지가 나를 수레에 싣고 카메룬과 인접한 국경지대의 강을 건넜다. 그 직후부터 나는 공식적인 난민이 된 거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무일푼 상태였는데, 내 바지 주머니에 파리의 영화학교 주소가 적힌 쪽지가 있더라. 당시로부터 2년 전쯤, 잡지에서 프랑스 유학 중인 아프리카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기사 하단에 학교 주소가 있기에 찢어서 넣어두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지. 난민 생활의 절박한 순간에 쪽지를 발견하면서 이게 운명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에 도착한 후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병원에서 야간 근무를 했고, 소설을 쓰기도 했다. 많은 청년들이 그렇듯이 가능한 한 낭만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저널리즘 공부를 하고 기자 생활을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영화학교 주소가 적힌 잡지를 찢어서 보관할 정도면 어릴 때부터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9살 때 처음 영화와 만났다. 삼촌이 나를 극장에 데리고 갔다. 당시는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외부 세계의 그 어떤 이미지도 접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야외극장에 모인 500명 정도의 관객에 둘러싸여서 발리우드영화를 봤다. 카메라를 향해 웃는 인도 배우의 클로즈업이 스크린에 등장한 순간, 짧은 몇초간이었지만 그녀가 꼭 나를 향해 웃는 것 같더라. 그 여인과 그리고 영화와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다. -1999년 <바이 바이 아프리카>로 데뷔한 이래 여전히 차드와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꼽힌다. 세계 영화계에 차드의 목소리를 전달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늘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어떤 면에서 나는 약간 고립되어 있다. 가끔은 혼자서 가정을 책임지는 연장자의 마음가짐 같은 것을 느낀다. 내가 차드의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도 차드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세계 영화산업을 큰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면, 나는 그중에서도 매우 작은 나만의 악기를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당신의 영화는 늘 차드의 현재를 재현해왔는데, 이번 <프랑스에서의 한 철>은 처음으로 유럽을 배경으로 찍었다. =이제 프랑스에서 살게 된 지 30년이 넘었다. 영화에는 만든 사람의 기억이 자연스레 담길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영화에 난민이 등장하면 난민으로서 처하는 어려움 외에 다른 삶은 아예 없는 것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난민들에게도 일상적이고 내밀한 생활에서 보이는 진짜 얼굴이 있다. 이런 시각이 개개인이 겪는 트라우마나 스트레스를 가까이서 보여주기에 더 적합한 방식이라 생각했다. -<다라트> <절규하는 남자> 같은 대표작에서 드넓고 황량한 아프리카의 풍경을 정제된 이미지 속에 담아냈다. <프랑스에서의 한 철>에서도 카메라가 매우 신중히 움직이고 롱테이크숏 역시 돋보인다. =사실 이번 영화는 기술적인 면에서 그동안과 차이점이 있었다. 차드에선 거의 모든 장면에서 광활한 공간감을 다뤘던 반면,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을 땐 좁은 장소에서 촬영하는 법을 새롭게 고민해야 했다. 로케이션이 좁을 때는 카메라 위치에 약간의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그 밖에 내가 노력하는 부분은 모든 얼굴이 각각의 풍경으로 전달되는 일이다. 사계절의 이미지처럼 감정과 분위기가 천천히 보였으면 한다. 그제야 비로소 인물이 처한 극심한 고뇌(anguish)가 전달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0년에 <절규하는 남자>가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후 영화산업을 바라보는 차드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나. 2013년에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영화학교 개설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내비치기도 했는데. =칸 수상 직후에 차드 정부와 영화학교 건립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적은 금액이긴 하지만 통신 세금의 일부를 떼와서 영화 지원 사업에 투자하는 방안도 추진되었고. 이후 학교를 세울 부지까지 정했는데, 유가 하락이 지속되면서 현재는 계획이 중단된 상태다. 2017년 2월부터 1년간 차드로 돌아가 문화부 장관으로 일했다. 예산 부족으로 기대했던 프로젝트를 추진하지는 못했지만 계속해서 방안을 찾는 중이다. -<프랑스에서의 한 철>은 프랑스영화계의 제작비 지원이 있었나. =배경이 프랑스이긴 하지만 내 영화는 근본적으로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행히도 프랑스 정부는 예술 작품을 개방적인 태도로 받아들인다.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와 두개의 텔레비전 방송국으로부터 제작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신 말대로 이번 영화에서는 이주민을 배척하는 냉혹한 유럽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난민과 외국인 노동자 등 이방인을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정치적인 구호들이 곳곳에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인류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다. 인류의 이동과 흐름을 막거나 제어하는 것은 내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주 단순하게 접근해서 초창기 인류는 사는 곳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나. 그런 자연의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은 다시 차드로 돌아가서 찍을 계획인가. =차드에서 불법인 낙태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중이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15살 소녀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부조리한 시스템 아래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나온다. ‘링기’라는 차드의 전통적 개념과 연결해보고 싶기도 한데, 링기란 특히 여성간의 단단한 의리, 유대감을 칭하는 개념이다. 깊이 있는 앎, 신뢰, 변하지 않는 마음을 통해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관계를 등장시키고 싶다. -그동안 일관적으로 남성 중심의 서사를 구축해왔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서고, 그들의 세계를 너르게 그리는 첫 번째 시도가 될 것 같은데. 변화가 흥미롭다. =장관직을 위해 1년간 차드로 돌아가 있을 때 차드의 여성들, 특히 어린 소녀들이 어떤 생활 속에 놓여 있는지 보게 됐다. 사소한 예를 들어 차드는 50% 이상이 이슬람교인데, 이슬람교 여성들은 낮에는 히잡을 쓰고 살지만 밤에는 몰래 히잡을 벗고 클럽에 놀러 가기도 한다. 거기엔 오로지 개인의 독자적인 세계와 자유에 관한 문제가 얽혀 있는 거다. 모든 여성에 대한 헌사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북한영화⑤] 한국영화 속 북한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는가, 휴전 직후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혼란스러운 현실 반영과 가능성들 한국전쟁 직후 자연스레 냉전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반공영화가 확산되었다. 일차적으로는 반공 의식 강화에 목적을 두고 있었지만 본래 영화라는 게 딱딱한 틀로 고정하려고 하면 비죽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1960년 이전의 반공영화들은 이데올로기의 고취보다는 전쟁의 비극과 부조리를 조명하는 데 좀더 집중한다. 전쟁의 스펙터클을 재현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만큼 제한된 상황에서 휴머니즘적인 접근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영화들이 다수 눈에 띈다. 이 시기 영화들은 북한을 적대국가로 설정하면서도 같은 민족, 같은 사람임을 잊지 않고 있다. <피아골> 1955·감독 이강천 휴전 후 지리산에서 게릴라 활동을 이어간 빨치산 부대 내부의 갈등을 그린 영화. 잔혹한 빨치산 부대장 아가리(이예춘), 온갖 만행을 지켜보며 공산주의 이념에 회의를 느낀 철수(김진규)와 그를 연모하는 애란(노경희), 동료를 겁탈하고 다른 이에게 누명을 씌워 살해하는 만수(허장강)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면면을 다뤘다. 토벌대의 영웅적 업적 대신 빨치산들의 인간적인 고뇌를 다뤘다는 이유로 용공논쟁을 불러일으킨 한편 반공법 위반으로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으며 마지막 장면에 태극기를 오버랩으로 삽입한 후에야 극장 개봉을 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이념적 갈등보다 애정 문제 등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지 않은 시선을 바탕에 깔고 있다. ★관련 영화★ 시점의 차이_ <나는 고발한다>(1959) 감독 김묵 한국전쟁 때 납북된 남한 인사들의 북한 강제수용소 탈출기. 빨치산과 정반대의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절박한 상황에서의 멜로드라마를 축으로 하는 등 골격은 <피아골>과 유사하지만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과 북한의 비인간적인 만행을 집중 조명한 반공 드라마의 전형. <7인의 여포로> 1965·감독 이만희 북한군 장교가 한국전쟁 중 포로가 된 간호장교 7명을 호송한다. 그 과정에서 중공군이 여포로들을 겁탈하려 하자 이를 막아서며 중공군을 해치운다. 북한군 장교는 한 민족이라는 생각에 일을 저질렀지만 이대로 포로를 호송하면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받을 거란 생각에 갈등하고 결국 여군들의 설득 끝에 남한으로 귀순을 결심한다.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논란을 일으켰다. 1962년 영화법 개정 이후 검열이 강화된 탓에 이만희 감독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감상적 민족주의, 무기력한 국군 묘사, 북한 괴뢰군 찬양, 양공주의 과장된 묘사가 구속의 근거였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그만큼 정확하게 시대상을 반영한 표현이라 말할 수 있다. ★관련 영화★ 시대고발_ <오발탄>(1961) 감독 유현목 전후 서울의 피폐한 풍경을 그린 <오발탄>에서 노모의 “가자, 가자”라는 대사가 북으로 가자는 말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문제가 됐다. 유현목 감독은 <7인의 여포로>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춘몽>(1965)이 외설 혐의를 받는 등 고초도 겪었다. 반공의 장르화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62년 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반공영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1966년 제작편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동시에 정권의 입맛에 맞춘 검열이 강화되며 감독들과 지속적인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제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색을 녹여낸 영화들은 꾸준히 나왔으며 반공영화가 전쟁, 첩보, 멜로드라마 등의 장르와 결합해 다양한 형태로 분화했다. <운명의 손> 1954·감독 한형모 반공 첩보물의 효시로서 이후 영화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북한의 간첩 정애(윤인자)는 우연히 고학생 영철을 구해주고 정성껏 치료한다. 그 과정에서 애틋한 마음이 생기지만 영철이 실은 방첩 장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사랑과 임무 사이에서 갈등한다. 멜로드라마를 기반에 둔 첩보물. 특히 여주인공 정애가 시대의 부조리를 꿰뚫고 있는 똑똑한 신여성으로 묘사된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분단 상황 자체를 장르적 갈등요소로 풀어낸 스타일리시한 작품. 클로즈업된 손의 몽타주로 문을 여는 오프닝,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 신 등 여러모로 파격적이고 과감하다. ★관련 영화★ 첩보영화 제작 붐 반공 오락영화의 두축 중 하나인 첩보물은 1965년 <007 위기일발>(1963)의 개봉을 기점으로 크게 유행한다. 실제 첩보원이었던 김동현 원작으로 화제를 모은 <8240 KLO>(감독 정진우, 1966), 남편의 복수를 위해 첩보 활동을 하는 여성간첩을 그린 <죽은 자와 산 자>(감독 이강천, 1966), 한·홍 합작영화로 국제첩보조직을 다룬 <스타베리 김>(감독 고영남, 1966) 등 다채로운 소재와 결합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감독 이만희 반공 오락영화의 나머지 한축인 전쟁영화는 한국전쟁 직후엔 대규모 촬영이 불가능해 현실적으로 제작이 어려운 지점이 많았다. 장동휘, 최무룡, 구봉서, 이대엽 등 당대 스타들을 총동원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해병들의 전우애를 그리고 있다. 한국영화 최초의 대규모 전투 장면을 선보이며 이후 전쟁영화 제작에 물꼬를 텄지만 이 영화가 기억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군인들의 영웅적 면모보다 처참한 전장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적 고뇌를 부각해 보편타당한 인간애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병대와 국방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은 이 영화에는 실제 탱크와 제트기가 동원됐고 3천여명의 해병대가 직접 출연했다. 특수효과 총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 실탄을 사용하는 등 또 다른 차원에서의 리얼리티가 넘친다. ★관련 영화★ 전쟁영화 전성기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상업적 성공으로 <빨간 마후라>(감독 신상옥, 1964), <피어린 구월산>(감독 최무룡, 1965), <남과 북>(감독 김기덕, 1965) 등 여러 장르와 결합한 형태의 전쟁영화들이 쏟아져나오며 반공영화의 폭발적 증가의 한축을 담당했다. <똘이장군: 제3땅굴편> 1978·감독 김청기 1970년대 전방위로 시작된 반공교육과 대대적인 지원을 받은 국책영화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매체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바로 애니메이션일 것이다. 오늘날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대표적인 반공만화영화 <똘이장군>(1978)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붉은 수령을 돼지로, 수하들을 여우와 늑대, 박쥐로 그리는 등 노골적이고 직관적인 묘사가 눈에 띈다. 공산당 붉은 수령의 생일을 위해 산삼을 캐오라는 명령으로 민중을 괴롭히는 악당들에 맞서 숲속에서 자란 똘이장군이 숲속 친구들과 함께 제3땅굴을 파내려가던 북한 괴뢰를 무찌르는 과정을 담았다. 고된 노동으로 인민들을 착취하는 모습, 아편 밀수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북한 특권층의 부도덕, 끊임없이 남한을 노리는 북한의 야심 등 민감한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이란 완충지대를 빌려 서슴없이 묘사한다. 김정일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여타 애니메이션이 많지 않았던 것이 흥행의 이유이기도 하다. 인기에 힘입어 속편 <똘이장군: 간첩잡는 똘이장군>(1978)이 제작됐다. 의심과 균열 반공영화의 장르적 효용은 사실상 1960년대에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1970년대에도 반공영화는 꾸준히, 아니 적극적으로 제작되었다. 정권유지 차원에서 반공을 국시로 내건 이후 대대적인 제작에 들어간 반공영화는 국책영화라는 이름을 빌려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직접 제작하는 형태로 명맥을 이어간다. 그런 만큼 검열은 더욱 엄격해졌고 선전, 선동의 성격이 한층 짙어졌다. 한정된 표현의 자유 와중에도 시대와 부딪치고 창작의 틈새를 기어코 찾아낸 영화들도 있다. 이후 1990년 냉전해체 이후 반공에 대한 색은 옅어지고 자연스레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로 축을 옮겨가게 된다. 여기서는 그 대표적인 두 작품을 소개한다. <짝코> 1980·감독 임권택 “내가 제일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짝코>에서 거의 주제와 닿고 있는 데가 잘려나갔단 말이오. 짝코(김희라)와 송기열(최윤식)이 갱생원에서 탈출 전에 텔레비전에서 6·25기념 방송이 나오고 있는데 전쟁 평론가들이 좌담하는 프로를 보고 있는 거예요. 요지는 결국 6·25가 열강들의 대리전쟁 격이었다는 이야긴데…. (중략) 두 사람이 거기서 알아차린 거요. 자기들이 피해자였다는 것을.” 임권택 감독은 정성일 평론가와의 인터뷰집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2권에서 진한 아쉬움을 피력했다. 시나리오 검열에서는 통과한 그 장면이 영화에서는 삭제되어 본질이 훼손당했다는 것이다. <짝코>는 30년 동안 쫓고 쫓기던 두 남자가 갱생원에서 만나 마지막을 함께하는 이야기다. 빨치산이었기에 평생을 도망쳐야 했던 남자와 빨치산 토벌대였지만 그를 놓친 탓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또 다른 남자의 삶은 한국전쟁이 남긴, 잘 드러나지도 않아 곯아버린 상처다. 분노와 비애로 지난 한국 근현대사를 되돌아보는 이 영화는 실은 외화수입쿼터를 받기 위해 의무적으로 제작한 반공영화이며 이제는 역사의 뒷길로 사라진 대종상 우수반공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실은 정확히 반공을 반대하는 영화라 불러 마땅하다. 부정적으로 그려지던 북괴의 모습을 탈피해 분단이 서로에게 남긴 상처 그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나뉘고 대립했던 관계를 인간이라는 동등한 위치에 놓고 섞은 뒤 통찰한다. 이후 찾아올 분단영화의 전조라고 할 수 있는데, 시류에 편승한 게 아니라 감독 스스로 걸어온 삶의 역정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관련 영화★ 국책영화의 표본_ <증언>(1973) 감독 임권택 <들국화는 피었는데>(감독 이만희, 1974), <울지 않으리>(감독 임권택, 1974), <태백산맥>(감독 권영순, 1975), <낙동강은 흐르는가>(감독 임권택, 1976) 등 1970년대는 정부가 지원한 초대형 반공영화들이 쏟아져나왔고 그 선두에 <증언>이 있다. 당시 1억2천만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 과정을 잔혹하게 묘사한다.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로서는 손색없지만 시선이 편향되어 있음은 어쩔 수 없다. 반대로 이 영화의 노골적인 편향성이 당대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쉬리> 1999·감독 강제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을 탄생시킨 영화로 당시 전국 관객 150만명 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사라져가던 분단이라는 소재를 다시금 전면으로 끌어올리며 이른바 새로운 분단영화의 문을 열기도 했다. 스펙터클한 전투와 실감나는 시가전, 멜로드라마적인 감성과 스릴러의 긴장을 갖춘 종합엔터테인먼트 무비다. 무엇보다 북한을 단순한 악의 축으로 그리지 않고 첩보원 이방희(김윤진) 등에 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하며 분단 상황의 비극을 강조한 것이 인식의 전환을 불러왔다. 찬반양론이 쏟아졌지만 이후 북한을 다룬 영화에 결정적인 방향을 제공한다. 같은 눈높이에서 <쉬리>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시대가 제대로 반영된 것이라 해도 좋겠다. 남북 화해 무드 시기에 나온 영화들은 남과 북을 한민족으로 묶어 인간애를 부각시켰고, 냉전 모드로 들어간 뒤로는 북쪽의 첩보원에 대한 영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비극적인 분단 현실이 장르적으로 소화되던 1950~60년대로 다시 돌아간 모양새라 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 같다. 가깝고 친숙하지만 여전히 장막에 가려진 이미지들. 영화는 그 틈새를 비집고 어떻게든 북한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공동경비구역 JSA> 2000·감독 박찬욱 멜로드라마를 통해 인간미를 강조했음에도 <쉬리>는 여전히 전문 요원들의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에 반해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북한군도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일반인의 눈높이로 끄집어 내린다. 판문점에서 일어난 북한 초소병 의문사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남북 군인들의 우정을 그려낸 이 영화는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와 한장의 이미지로 보이는 것 이상의 진실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북한군의 사랑을 받는 초코파이에 대한 재미난 묘사를 통해 디테일한 부분까지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련 영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남북 화해 분위기에 맞춰 민족의 화합을 그린 영화나 북한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는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제작됐다.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2005)은 전쟁과 동떨어진 강원도 산골 마을을 무대로 이념과 대립을 넘어 남북 군인들을 하나로 묶는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선보인다. 안판석 감독의 <국경의 남쪽>(2006)은 북에 연인을 남겨두고 온 탈북민의 절절한 사연을 통해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새삼 일깨운다. <간첩> 2012·감독 우민호 표현의 영토가 어디까지 확장되었는지 알아보기 가장 쉬운 장르는 호러와 코미디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코미디 장르가 추가되기 시작한 건 그만큼 익숙하고 유연한 영역에서 대상에 대한 풍자와 해석이 가능해졌다는 신호일 것이다. 우민호 감독의 <간첩>은 이제껏 보지 못한 생활밀착형, 생계형 간첩들을 통해 거리감을 좁힌다. 남파된 지 오래된 고정간첩들은 이제 자신이 간첩인지 남한 주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암살지령을 가지고 온 엘리트 간첩은 고민거리일 뿐이다. 오랜 남북 대치가 빚어낸 기발한 상상력이자 어쩌면 현실적이고 익숙한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관련 영화★ 웃길 수 있다!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1999) 이후 남파 간첩에 대한 스펙트럼은 극적으로 넓어졌다. 북한에 대한 친숙함의 정도가 반영된 결과라 해도 무방하다. 딱딱하고 진지하고 비극적으로만 받아들였던 현실은 분단 상황을 코미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만남의 광장>(감독 김종진, 2007)처럼 점차 유연해져 생활눈높이까지 내려오는 중이다. <의형제> 2009·감독 장훈 송강호가 하면 뭐든 생활이 된다. 해직된 국정원 요원과 남파공작원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서로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이 형제처럼 친밀해진다는 구조 자체는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흥신소로 생계를 유지하는 국정원 요원의 밥벌이의 서러움이나 훤칠하고 어린 남파공작원의 콤비는 참신한 면이 있다. 북한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는 다소 준 대신 버디무디, 액션, 판타지 코미디 등 장르색이 강해졌다. 평화와 냉전 모드를 오가며 교착된 사이 분단 상황의 규모를 늘리는 대신 우회로를 찾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관련 영화★ 잘생긴 북한 첩보원과 생계밀착형 남한 요원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 2013), <공조>(감독 김성훈, 2016), <용의자>(감독 원신연, 2013)의 공통점은 잘생기고 능력 있는 북한 첩보원과 생계밀착형(혹은 비리형) 남한 요원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의형제> 이후 하나의 전형처럼 자리잡은 이러한 관계는 무능하고 부패한 남한 정부와 보수정권이 들어선 후 교류가 줄어들며 한동안 신비주의 장막에 가려진 북한에 대한 현실인식의 반영으로 보인다.

<너와 극장에서> 유지영·정가영·김태진 감독 - 누구나 자기만의 극장이 있다

누군가는 극장을 가다 미로 같은 길 속에 갇히고, 누군가는 극장에서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 관객과 싸우고, 누군가는 극장이라는 낙원에 숨어버린 후배 직원을 찾아다니느라 진땀 뺀다. 옴니버스영화 <너와 극장에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극장이라는 공간을 공유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극장/영화를 사유한다. 유지영 감독의 <극장쪽으로>, 정가영 감독의 <극장에서 한 생각>, 김태진 감독의 <우리들의 낙원>이 <너와 극장에서>라는 제목의 옴니버스영화로 개봉한다. <너와 극장에서>는 서울독립영화제의 독립영화 차기작 프로젝트 인디트라이앵글을 통해 완성된 다섯 번째 작품이다. 서울독립영화제가 2008년부터 진행한 지원사업 인디트라이앵글은 젊고 유망한 감독을 발굴해 단편 제작을 지원하고, 이를 장편 옴니버스로 개봉·배급하는 프로젝트다(2017년 프로젝트인 <너와 극장에서>에는 네이버가 제작 및 배급·개봉지원금 5천만원을 지원했다). 인디트라이앵글을 통해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세편의 단편영화를 만든 유지영, 정가영, 김태진 감독을 만나 ‘그들 각자의 영화관’을 엿보았다. 동갑내기 정가영 감독과 김태진 감독의 티격태격 속에, 솔직한 고백과 귀여운 농담이 편히 오간 그날의 대화를 전한다. -극장이라는 공통된 제시어로 시작했지만 사뭇 다른 세편의 영화가 완성됐다. 서로의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들려준다면. =김태진_ 1차 편집 시사 끝나고 기분이 좋았다. 세편 모두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았다. 소심한 성격이라 면전에서 말을 잘 못하는 편인데, 그날 집에 돌아가서 문자를 보냈다. 영화 좋았다고. =유지영_ 그 문자를 나한테만 보낸 게 아니었구나? =정가영_ 난 문자 받은 기억이 없는데? 김태진_ 유지영 감독에겐 그날 바로 문자를 보냈고, 정가영 감독한텐 그날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나서 문자를 보냈다. (웃음) 정가영_ 극장이라는 제시어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내가 만들 수 없는 영화를 두분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영화 세편이 묶여 있어서 확실히 보는 재미가 있는 옴니버스로 완성된 것 같다. 유지영_ 정가영 감독의 영화는 재기발랄하고 당돌한 매력이 있고, 김태진 감독의 영화는 이전에 만든 단편영화처럼 여자주인공을 섬세하게 다루는 게 눈에 띄었다. -서울독립영화제 인디트라이앵글 제작지원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된 건 ‘극장’이라는 제시어가 마음에 들어서였나. 정가영_ 각 영화에 1천만원을 지원해주는 그 기회가 감독들에겐 소중하다. 어떻게든 아이디어를 쥐어짜서 시나리오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극장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가까운 주제이긴 하지만 막상 그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려니 어렵더라. 그러면서 이런저런 경험들을 떠올렸다. 영화 끝나기 5분 전에 극장을 나와서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다른 관에 몰래 영화 보러 들어갔던 적이나, <곤지암>을 청소년 요금으로 표 끊었다가 극장 직원이 ‘청소년 맞으세요?’ 하고 물어봐서 <곤지암>보다 더 무서운 상황을 경험했던 일이나. 김태진_ 이건 우리 삼촌 세대에서나 할 법한 일인데. 정가영_ 아무튼 그러다 ‘관객과의 대화’(GV) 관련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 김태진_ 이야기에 기승전결이 없잖아! 유지영_ 우리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웃음) -정리하자면 극장이라는 제시어보다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더 소중했다는 이야기인가. 정가영_ 맞다. 그 말을 하려고 했다. (웃음) 유지영_ <수성못>을 찍고서 당분간 쉬려고 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대부분 영화인이라 이런 공모 소식이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후배가 공모에 낼 시나리오를 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나도 ‘되면 좋고 안 되면 말지’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가 떠오르면 시나리오를 써서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접수 마감일 아침에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시간 만에 시나리오를 써서 접수했고 결국 선정이 됐다. 김태진_ 이건 영웅담인데. 정가영_ 친구 오디션에 따라갔다가 본인만 합격한 이야기인 거네. (웃음) 김태진_ 나 역시 극장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둔 건 아니었다. 영화가 찍고 싶었고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다행히 극장이란 소재가 현실감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좀더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전에도 극장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정가영_ 한달쯤 전에 극장에 관한 단편영화를 하나 찍었다. 인천에 있는 미림극장에서 찍었고, 제목도 <극장미림>이다. 나의 개인 유튜브 채널 ‘가영정’에 가면 볼 수 있다. 채널 구독자 수가 1천명 정도 되는데, 홍보가 좀 덜 된 것 같다. 기사에 ‘가영정’ 얘기 좀…. (웃음) 유지영_ 김태진 감독은 평소 극장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봤을 것 같은데.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손꼽을 정도로 많은 영화를 본 시네필이다. 정가영_ 그럼 <씨네21>에 ‘내 인생의 영화’ 한번 써야겠다. (웃음) 김태진_ 극장에 관한 영화나 영화에 대한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영화에 대한 영화의 경우 영화과 다닐 때 주변에서 많이 쓰지 않나. 그런 얘기는 괜히 낯부끄럽기만 하고 신선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극장을 키워드로 시나리오를 써보니 재밌긴 하더라. -극장이라는 제시어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너와 극장에서>의 각 영화는 어떻게 구상했나. 유지영_ 극장이라는 공간이 악몽처럼 표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모에 지원한 많은 영화들이 극장을 데이트 장소나 낭만적인 스케치로 표현하지 않을까 싶었고, 오히려 그런 생각을 뒤집어서 싸늘하고 건조한 톤으로 이야기를 쓰려 했다. 거기에 이방인, 고립, 외로움, 관계에 대한 불안 등과 같은 키워드를 생각했다. 극장이 일종의 신기루나 오아시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막상 영화의 주인공이 극장이라곤 할 수 없는 이야기라서 시나리오 면접 때 극장이 너무 부각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런 방향으로 수정하면 의미 없는 영화가 되기 때문에 더 바꾸긴 힘들다는 얘기도 했다. 정가영_ <비치온더비치>(2016) 개봉하고서 GV를 많이 했는데 극장에서 긴장이 되더라. 그때는 관객이 내 영화를 심판하는 심판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긴장하는 게 싫어서 괜히 충동적인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많았다. GV에 대한 부담감과 충동적 행동에 대한 생각, 내 영화들이 사적인 이야기처럼 보이는 지점이 있는데 거기서 비롯되는 질문과 생각들을 GV라는 구성 안에 녹여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GV라는 설정 안에서 정가영이라는 사람이 끝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이야기가 뻗어나갔다. 김태진_ <이미지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을 쓴 레지스 드브레의 말 중에 ‘텔레비전은 시청자를 안방의 정주인으로 만들지만 영화는 관객을 거리의 유목민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극장을 향해 가는 여정,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 사람, 그날의 공기와 기억들이 합쳐져 영화에 대한 감상이 완성된다는 말이다. 때로는 영화 자체에 대한 미학적 평가나 기억보다 영화 감상 전후의 과정이 더해졌을 때 훌륭한 감상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극장 자체가 주인공이 아닌, 극장을 가기 위한 여정과 소동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 영화에 모두 주인공이 영화를 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극장쪽으로>에선 웨스 크레이븐의 <나이트메어>(1984)와 아녜스 바르다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가 사운드로 삽입되고, <우리들의 낙원>에선 프랭크 카프라의 <우리들의 낙원>(1938)이 등장하고, <극장에서 한 생각>은 가상의 영화 <극장 살인 사건>을 보고 정가영 감독이 GV를 한다는 설정이 있다. 유지영_ 누가 봐도 <나이트메어>라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 장면을 사용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해서 결국엔 영화 사운드만 사용했다. 혼자 사는 여자들이 느낄 법한 불안감이 있는데, 오히려 공포영화를 보면서 그걸 극복한다는 의미로 주인공이 밤에 집에서 혼자 노트북으로 보는 영화가 <나이트메어>다. 기왕이면 관객이 단번에 무슨 영화인 줄 알았으면 해서 <나이트메어>를 떠올렸다. 영화 마지막 즈음 오오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인데 선미(김예은)가 하루 동안 극장 주변을 헤매는 이야기가 클레오가 파리를 배회하는 것과 매칭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사운드가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선미가 상영관에 들어가면 공원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주인공이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들려오는데, 마치 낙원 같은 극장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섬처럼 홀로 영화를 보고 있다. 그렇게 혼자 영화 보는 사람들의 모습, 그 이미지를 영화에 넣고 싶었다. 김태진_ 극장으로 향하는 여정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은정(박현영)과 민철(오동민)이 함께 보는 영화로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프랭크 카프라를 떠올렸다. 유토피아적인 세계와 이상적 가치를 표현해온 사람이 프랭크 카프라이고, 마침 그의 영화 중에 <우리들의 낙원>이란 제목의 영화가 있어서 그게 딱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들의 낙원’이라는 게 극장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고, 로케이션으로 삼고 싶었던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에 있었던 시절도 있었으니 말이다. -<극장쪽으로>는 오오극장, <극장에서 한 생각>은 이봄씨어터, <우리들의 낙원>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촬영했다. 로케이션으로 삼고 싶은 특정 극장이 있었나. 유지영_ 대구 동성아트홀과 오오극장 두 군데 중에서 고민을 했다. 그런데 동성아트홀이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 내가 원한 극장의 느낌이 나지 않았고 그렇다면 선택지는 오오극장밖에 없었다. 오오극장은 대구에서 영화하는 친구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고, 극장 직원들과도 가족같이 지내고 있어서 섭외에 어려움이 없었다. 더불어 지금 시대의 변해가는 독립예술영화관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오극장이 영화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정가영_ 중요하게 생각한 건 촬영하기 좋은 극장, 대관료가 비싸지 않은 극장에서 찍는 거였다. 이봄씨어터에 대한 기억으로, <비치온더비치> GV를 하러 갔는데 관객이 딱 한분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분마저 영화가 끝나고 자리를 뜨시기에 붙잡아서 일대일 GV를 한 적이 있다. (웃음) 아무튼 극장에서 대관료도 싸게 해주고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줘서 고마웠다. 이봄씨어터에서 <너와 극장에서> GV도 진행하니 많이 와주시기 바란다. 김태진_ 주인공 박민철이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 인물이라 그가 갈만한 극장으로 자연스럽게 서울아트시네마를 떠올렸다. 또 현재 서울아트시네마가 서울극장 내부에 있는데, 서울극장과 서울아트시네마와 인디스페이스가 별개의 극장이란 것을 잘 모르거나 헷갈려하는 분들도 있더라. 낙원상가에 있을 때나 서울극장 건물에 있는 지금이나 건물의 구조가 복잡해서 극장을 처음 찾는 사람은 상영관 앞에 제대로 도착하기 쉽지가 않은데, 그런 요소들이 영화의 서사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나 역시 서울아트시네마쪽에서 많은 협조를 해줘서 수월하게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실제 나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극장이 있나. 정가영_ 영화에서도 극장형 인간이 아니라고 얘기했지만, 집에서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최근엔 넷플릭스를 깔았다. 거기 접속하면 뭐든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영화를 더 안 보게 되더라. 그래서 해지했다. (웃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극장은 따로 없고, 의정부에 살아서 의정부 근처 멀티플렉스를 주로 이용하고, 노원구에 예술영화전용관 더숲 아트시네마가 생겼는데 거기서도 영화를 종종 본다. 김태진_ 내가 좋아했던 극장들은 지금은 다 사라져버렸다. 고향이 부산인데, 수영만 요트경기장 안에 시네마테크 부산이라고 단관 극장이 있었다. 건물도 낡았고 좌석도 딱딱하고 매점에서 파는 커피도 전기 커피포트에서 오래 데운 커피였지만 그곳이 개인적으로는 각별했다. 시간이 잘 맞으면 영화를 보고 나와서 일몰의 바다도 볼 수 있었고. 그런 것들이 영화를 더 애착할 수 있게 해준 이미지였던 것 같다. 서울에 올라온 뒤론 하이퍼텍 나다, 스폰지하우스, 씨네코드 선재에 자주 갔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 좋아했던 극장들이 사라지는 걸 경험하면서 요즘은 어디 한곳에 특별히 정을 못 붙이고 있다. 유지영_ 22살 때 동성아트홀에서 지금의 남자 친구를 처음 만났다. 예술영화를 보러 동성아트홀에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과거 내 절친과 그 절친이 좋아했던 남자인 지금의 내 남자 친구를 만난거다. 당시 서로 호감은 느꼈지만 각자 연인도 있고 해서 우리는 아닌가보다 하고 6년을 연락도 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상경했다 대구로 다시 귀향해선 ‘앞으로 어떻게 영화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하며 동성아트홀에 영화를 보러 갔다. 관객은 나밖에 없었다. 오늘도 혼자서 영화를 보나 싶었는데 앞에 누가 앉아 있더라. 지금의 내 남친이었다. 정가영_ GPS를 장착한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이! 유지영_ 그때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지금 7년째 연애 중이다. 그리고 내년에 결혼한다. 그러니 동성아트홀이 내겐 각별한 공간일 수밖에. -그렇다면, 나에게 극장이란. 김태진_ 애증의 공간인 것 같다. 좋은데 싫은, 싫은데 좋은. 예전엔 극장이 기회의 공간이기도 했고, 사회와의 통로나 창구로서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었는데 영화를 업으로 삼은 이후엔 극장에서 순수하게 영화를 보고 즐기기가 어려워졌다. 공부 차원에서 영화를 볼 때도 있고, 의무적으로 봐야 할 때도 있고. 극장에서 책임감이나 자격지심을 느끼기도 한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극장과도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며 밀당을 하는 것 같다. 정가영_ 나에게 극장이란 전 남친이다. 내가 찾아가고 싶을 때만 찾아가니까. (웃음) 유지영_ 나에겐 예배당이다. 극장에 가서 각 잡고 영화를 보는 편이다. 누가 조금만 떠들어도 ‘저기요!’ 그런다. 한 장면도, 한컷도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집중하고 몰두하고 체험하기를 바란다. 일종의 의식처럼.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와야지만 영화를 본 것 같다. 예를 들면 <쥬라기 월드> 같은 상업영화를 볼 때도 뭔가 얻을 게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본다. 한컷 한컷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려고 하기 때문에, 내겐 극장이 팝콘 먹고 데이트하는 장소는 아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유지영_ 지금은 좀 쉬고 싶다. 탐욕적인 독서여행을 가고 싶다. 게걸스럽게 책만 읽고 싶다. 그러다보면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정가영_ 우선 <밤치기>는 하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지금이 에너지가 넘칠 때라서 상업영화도 준비하고 있고 독립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빨리 들어가는 놈으로 얼른 찍고 싶다. 앞서 언급한 단편 <극장미림> 말고는 올해 영화를 찍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김태진_ 그동안 찍은 단편은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였는데, 이번엔 욕심을 좀 내서 장기 미제 사건을 다루는 수사극 장편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한창 진행하다보니 모든 일상이 범죄사건과 연관돼 보이기 시작하더라. 정가영_ 진짜 흥미로운 소재인 것 같다. <탐정: 리턴즈>도 ‘장기’ 소재던데 흥행이 잘되는 것 같더라. 김태진_ 우리가 말하는 장기(長期)는 그 장기(臟器)가 아닌 것 같은데. 정가영_ (복부를 가리키며) 이 장기가 아냐? 나 학교 다시 가야겠다. 아직 졸업을 못해서. (웃음) 유지영_ 나도 관심 있는 소재이긴 한데 쓸 엄두가 안 난다. 김태진_ 엄두만 안 나지 쓰면 또 잘 쓰지 않나. 정가영_ 친구 따라 오디션 갔다가 혼자 합격하는 게 장기(長技)니까. (웃음)

<허스토리> 미래의 통역자를 기다리며

<허스토리>에서 당신이 본 것은 무엇인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기구한 삶인가, 그들의 몸에 남은 치욕적인 상처인가. 아픈 몸을 이끌고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간 여성들의 고단함인가, 뻔뻔한 일본 재판정의 법조인이나 반대시위자들인가. 그것을 마주한 당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 심정적인 공감인가,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하지 않는 일본 당국에 대한 분노인가.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사명감인가, 적절한 피해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데 동참하겠다는 다짐인가.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보았지만 어떤 것도 보지 못했고, 이 모든 것을 느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허스토리>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영화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투과한 세상의 이야기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세상의 이야기를 위해 위안부를 소재로 이용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위안부 피해 여성의 사연은 영화의 모든 쟁점 속에서 단단히 중심을 잡는다. 영화가 다루는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투쟁기가 ‘달’이라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관객에게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도록 만든다. 누군가는 달을 보랬더니 왜 손가락을 보느냐고 타박할지 모르지만, 영화는 달을 묘사하는 방식만큼이나 그것을 가리키는 방식을 고민한다고 여겨진다. 곁에 있어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달을 비로소 인식하게 만든 그 손가락에 관해 더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관객의 대변자인 정숙이 사건에 다가가는 과정 정숙(김희애)은 관객을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로 안내하는 인물이다. 위안부 사안에 무감했던 정숙의 자각은 서서히 이뤄진다. 위안부 이야기는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처음 영화 속에 기입된다. 이때 실존 인물인 김학순 할머니의 실제 증언영상이 자료화면으로 쓰인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이를 지켜보던 딸 혜수(이설)와 달리 정숙은 그보다 떨어진 곳에서 식사 중이다. 정숙에게 생존자의 증언은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딸을 겁줄 때에 유용할 뿐이다. 며칠 뒤 위안부들의 사연이 보도되는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하는 신 사장(김선영)과 달리 정숙은 텔레비전에서 떨어진 식탁에 등진 채로 앉아 있다. 기차 안에서 신 사장으로부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위한 신고전화 개설을 제안받을 때, 정숙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얼굴을 덮은 수건이 신 사장에 의해 홱 벗겨지면서, 정숙은 다소 수동적인 방식으로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영화는 대면의 순간을 유예하면서 그 간격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정숙의 변화는 앞서 언급한 장면을 전복적으로 전유하면서 이뤄진다. 오랫동안 가까이 지낸 배정길(김해숙)이 위안부 피해 여성임을 뒤늦게 알게 된 날, 정숙은 택시 안에서 위안부의 증언과 관련된 라디오 뉴스를 듣는다. “할마씨들이 쪽팔린 줄도 모르고…”, “보상금 탈라고 저런다”는 택시 기사의 망발에, 정숙은 “할매가 기사님 어머니면 어쩔 겁니까?”라고 따진다. 택시 기사의 무관심을 힐난하는 이 말은 불과 며칠전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정숙이 재판을 도와줄 변호사 이상일(김준한)을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 정숙의 변화는 좀더 분명해진다. 늘 차창 안에서 카메라를 외면했던 정숙이 이번에는 스스로 창을 내린 채 카메라를 환영한다. 정숙이 적극적인 행동가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이제 그녀가 관객과 비슷한 위치에서 벗어나 관객을 위한 전달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때 그녀의 눈을 가린 선글라스는 그녀가 완전무결하기보다 모순적인 전달자임을 예고한다. 정숙의 사연은 피해자들의 투쟁 스토리에 완전히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흐름 속에서 존재하며, 원고단의 이야기와 오케스트레이션을 이룬다. 가장 핵심적인 지점은 정숙의 여행사가 일본인을 상대로 한 기생관광에 연루된 것이다. 여행사는 이미지 쇄신 측면에서 위안부 피해 여성 신고전화를 개설했으므로, 기생관광은 피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이자 조건이다. 이는 단순히 극적인 설정만이 아니라 실제 맥락의 반영이다. 변영주 감독은 기생관광에 관한 다큐멘터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3)을 만들면서 일본인을 상대로 매춘을 하는 여성들을 만난다. 그중 한 여성으로부터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했으며, 그녀의 어머니가 위안부 피해 여성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감독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인 <낮은 목소리> 시리즈(1995∼99)를 제작하게 된 계기였다. <허스토리>는 정숙이 기생관광과 느슨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설정하면서 <낮은 목소리>에 내재한 문제와 반복되는 여성의 역사를 의식하는 것 같다. 이는 정길이 증언을 위해 정숙의 여행사를 찾았을 때, 그녀를 맞이한 인물이 기생관광 문제에 연루된 선영(이유영)이었다는 점에서도 옅게 드러난다. 이중의 적 “세상은 안 바뀌어도 우리는 바뀌겠지요.” 정숙의 말은 중의적이다. 싸우는 동안 스스로 변화할 극중 인물들을 일컫는 한편, 영화가 건드리고자 하는 대상이 세상으로 대변되는 ‘그들’이 아닌 관객을 포함한 ‘우리’임을 알린다. 정숙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고 있음을 알게 된 일본측 바이어와의 논쟁 장면을 보라. 일본 역시 피해자임을 강조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은 분노를 유발하지만, 영화는 일본측 입장에 대한 분노로 이 시퀀스를 끝맺지 않는다. 누군가가 밖에서 여행사 사무실 창문을 향해 던진 공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선영쪽으로 날아든 상황을 통해 가까이에 있는 적을 잊지 않도록 만든다. 돌을 던진 이는 일전에 정숙과 논쟁을 벌인 택시 기사였다. 그의 망언은 위안부 피해자를 대하는 당대의 인식을 축약한다. 일상화된 탓에 잘못이라는 것을 인식하기조차 힘들어진 그의 말은 ‘성’(性)을 금기시하는 문화 속에서 성폭행을 피해자의 수치로 여겨온 오랜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위안부 피해 여성이 증언하기를 망설였던 이유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이 강요된 ‘부끄러움’ 때문이다(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시리즈를 참고하라). 정숙이 피해 증언을 설득하자 “내 이름도 나가는 거 아닌가”, “면상 다 까발리는 것 아니냐”는 생존자의 걱정스러운 반응에서 이들이 느끼는 거리낌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그 부끄러움을 정숙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로 돌려놓는다. 왜 그렇게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에 집착하느냐는 신 사장의 물음에, 정숙은 “나 혼자 잘 먹고 잘산 게 부끄러워서”라고 말하지만, 이내 “…는 아니고, 못 이겼으니까”라고 말을 고친다. 이러한 말 바꿈은 부끄러움을 언급하면서도 관객에게 이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영화의 태도를 보여준다. 정숙의 이야기와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가 엮이는 가운데, 최근 성폭력과 미투(#MeToo) 운동을 통해 쏟아지는 증언과 이에 관한 2차 가해의 상황이 환기된다. 우리가 오늘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역사적인 ‘허스토리’였음을 영화는 역설한다. ‘성’만큼이나 ‘돈’은 본질을 흐리기 좋은 대상이다. 보상금과 관련해 진의를 의심하는 시선은 피해 여성을 움츠러들게 한다.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데, 왜 돈이 개입되자마자 운동의 진의마저 곤두박질치는 것일까. 영화는 가장 속된 것으로 인식되지만 누구나 필요로 하는 ‘돈’과 ‘성’의 문제를 낮게 깔아둔다. 정길이 증언을 결심한 이유는 아픈 아들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서였다. 정길에게 ‘돈’이 필요했던 이유가 단지 속된 욕망 때문은 아니었다고 해도, “보상금은 나올라나”라고 묻는 서귀순(문숙)의 말을 은근슬쩍 삽입하면서 이러한 문제에 관한 싹을 완전히 잘라내진 않는다. 여행사 CEO 정숙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된 상황은 ‘성’과 ‘돈’의 문제를 함께 사유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다. ‘성’과 ‘돈’의 결합체로 여성 캐릭터를 그릴 때 성매매에 연루된 피해자로 그려지기 마련이라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느슨한 연루자의 자리에 있는 정숙을 통해 불필요한 묘사나 감정적 과잉을 방지한다. 또한 일대일로 말끔히 해결되는 폐쇄적인 해결 대신 복합적인 논의를 지향한다. 그러나 거리감이 면책의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해고당한 직원과 언쟁하며 자신은 몰랐다고 말하는 정숙에게 상일은 “몰랐어도 사장이면 책임을 져야지요”라고 슬쩍 끼어든다. 상일의 말은 다시 위안부 피해보상을 둘러싼 책임 문제를 환기한다. 몰랐다고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책임과 국민의 관심을 일깨우는 것으로 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시모노세키의 법정에 대응하는 중요한 장소는 부산의 택시 안이다. 택시는 법적 책임이 아닌 일상의 책임을 묻는 작은 재판소다. 시모노세키로 출항하기 위해 부산항으로 향하던 원고단 4인이 “할매들 꽃단장하고 어디 가는겨”라는 택시 기사의 물음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이유는 부정적 반응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년 뒤 다시 택시 안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원고단은 당당히 일본에 위안부 재판을 받으러 간다고 말하며, 자신의 변화를 새긴다. 재연이 아닌 통역으로서의 연기 <허스토리>는 실화영화이지만, 원고 4인방을 연기한 배우들은 실존 인물의 재연자가 아니다. 각자의 개성이 또렷한 4인의 원고는 굳이 실존 인물을 찾아 대조해보지 않아도 직조된 캐릭터임을 즉각 알 수 있다. 서귀순이 외유내강형이라면, 박순녀(예수정)는 외강내유형이다. 이옥주(이용녀)가 유연하고 아이 같다면, 배정길은 의연하고 어른스럽다. 상호보완적인 팀워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국가대표’라는 박순녀의 자칭은 꽤 적절해 보인다. 응원하는 사람들과 취재진으로 북적이는 재판정 앞에 하얀 한복을 맞춰 입고 등장한 이들의 모습도 영락없는 ‘국가대표’다. 각자 캐릭터의 개성이 워낙 뚜렷한 까닭에 이들은 마치 한명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서로 다른 자아처럼 보인다. 이들은 일종의 통역자로, 위안부 피해 여성의 어떤 측면을 연기한다. 특히 옥주는 전체 극에서 상징적인 존재 같다. 불안정하고 가끔 제멋대로인 옥주가 재판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다. 옥주라는 캐릭터가 있어야 했던 이유는 오직 여성들의 기억과 진술에 기댄 영화에서 옥주만이 여전히 그날 그 시간 속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옥주는 플래시백이 없는 영화의 플래시백이며, 재현이 없는 영화의 재현이다. 옥주가 기억에 사로잡혀 빌고, 울고, 호소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눈물 짓는 정길을 포함한 원고단의 반응숏을 삽입한다. 인물들은 마치 자신을 보듯, 서로가 서로의 진술 장면을 바라본다. 과거로 빙의한 채 몸과 표정으로 진술하는 옥주는 동료들을 대신해 감정을 발산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 같다. 이것이 실화라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이러한 해석은 과도하거나 무지한 비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적어도 법정 장면에서 영화는 스스로 이것이 한편의 극임을 인식한다고 여겨진다. 10인의 원고단 중 주요 인물 4인을 연기한 이들은 이미 관객에게 특정 캐릭터로 각인된 배우들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가진 원래 이미지를 차용하는 동시에 이것을 비트는 방식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예수정이 최근에 떠오른 대표적인 어머니라면, 김해숙은 그보다 앞서 어머니의 전형으로 인식된다. <허스토리>에서 이들은 어머니가 아니거나 유사 어머니로 등장해 본래의 캐릭터를 환기한다. 문숙이 연기한 서귀순은 굵고 짧은 활동 후 영화계에서 자취를 감춘 배우가 가진 미스터리함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러나 문숙이 바닷가 어귀에서 등장할 때는 이만희 감독의 <삼포가는 길>(1975)에서 문숙이 연기한 백화의 미래처럼 느껴진다. 주로 세고 개성 강한 역할을 도맡아온 이용녀는 이번 영화에서는 대조적인 역할을 맡았음에도 순간순간 변화하는 모습에서 배우가 가진 원래의 개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경향의 정점에 있는 것이 정숙 역의 김희애다. 우아한 이미지가 강한 김희애는 <허스토리>에서 사투리 연기와 다혈질 캐릭터를 소화한다. 손님들의 불만 제기를 이유로 원고단이 일본에서 숙소 예약을 취소당했을 때, 모두가 침묵하던 중 정숙은 이들을 대신해 “씨발놈들”이라고 외친다. 이 순간의 통쾌함은 상황 속에서 주어진 것인 동시에 배우 김희애의 캐릭터 전환에서 온다. 워커홀릭인 정숙은 딸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나, 그렇다고 딸을 마냥 방치하지 않는 부모의 역할을 맡는다. 말 그대로 정숙은 ‘부’이자 ‘모’인 혼종적인 인물이다. 배우 김선영이 연기한 신 사장은 정숙과 대조적으로 기존에 ‘부산 아지매’로 인식된 수다스러운 인물에 닿아 있다. 신 사장은 정숙의 중성적인 성향을 훨씬 더 남성에 가까운 것으로 밀쳐내는 역할을 한다. 신 사장이 정숙의 가슴을 만지며 고생해서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하는 장면이나 정숙이 신 사장에게 별안간 입맞추는 장면도 이러한 맥락의 일부다. 정숙과 신 사장이 보여주는 케미스트리는 레즈비언 캐릭터를 영화 속에서 등장시켜온 민규동 감독의 인장처럼 보이나,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둘러싼 문제제기에 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하며 여성에 관한 다층적인 반영체로서의 영화의 성격을 드러낸다. 법정 밖의 법정 피해 증언자 4인의 중 마지막 발언자로 등장한 정길은 일본 재판정을 향해 당당히 사과를 요구하며 “인간이 돼라”고 꾸짖는다. 그런데 영화는 정길의 발언에 대한 반응숏 대신 서슬퍼런 정길의 얼굴 클로즈업에서 정기수요집회 현장으로 전환된다. 집회 현장에 모인 사람은 마치 정길의 발언을 향한 것처럼 박수를 보내는데, 그 박수의 주인은 집회 발언자로 나선 혜수다. 이는 판결 결과를 보여주는 장면에 앞서 등장하며 배정길의 진술의 진짜 수신처가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수요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법정 밖의 ‘정숙들’로, 역사에 대한 저마다의 통역자들이다. 재판정에서 정숙은 원고의 진술을 그대로 전달하는 대신,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더한 과잉 통역으로 지적을 받았다. 이에 정숙은 자신은 원고의 진술을 생생하게 전달한 것뿐이라고 강변한다. 정숙처럼 우리에게도 역사에 반응하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통역해낼 것이 요구된다. 원고단이 사진관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나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관부 재판에 참여한 실존 인물들이 2017년 4월 모두 세상을 떠났음을 밝히는 자막이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는 흑백 영정 사진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과거의 한때로 만들거나 추모하는 대신 단체 사진 찍기 직전 미소 띤 얼굴들을 보여준다. 마지막 순간 카메라는 이들의 맞은편에 있던 정숙의 얼굴로 돌아온다. 이 순간 정숙은 위안부 생존자들을 비로소 대면한다. 영화가 정숙의 얼굴로 끝맺는 데에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남은 이들에 의해 계속 통역되기를 기원하는 바람이 담긴 것만 같다.

공식을 벗어나 현실적 디테일을 획득한 <앤트맨과 와스프>

<앤트맨과 와스프>는 여성 슈퍼히어로가 주인공인 첫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영화이다. 블랙 위도우나 스칼렛 위치와 같은 캐릭터들이 어벤저스 멤버로 등장하긴 했지만 그들은 단 한번도 자기 영화를 가진 적이 없었다. <에이전트 카터>와 <제시카 존스>는 텔레비전 시리즈다. 마블에서는 첫 흑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블랙팬서>에서 그랬듯, 2019년에 나오는 <캡틴 마블> 영화를 첫 여자주인공을 내세운 기념비적인 MCU 영화로 홍보하려고 하는데, <앤트맨과 와스프>가 그 김을 살짝 빼버렸다. 그렇다면 그 기념비적인 영화의 타이틀은 <앤트맨과 와스프>로 넘어가는가? 아니, 그 어느 것도 기념비적이지 않다. 생각해보라. 21세기도 거의 5분의 1이 지나가는 지금 초능력을 가진 여자주인공이 나오는 영화가 어떤 의미에서건 기념비적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영화는 당연하고 일상적이어야 한다. 10여년 전에 MCU와 무관하게 <캡틴 마블>이 나왔다면 다들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를 뭔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난 10여년의 MCU 역사가 심하게 뒤틀려 있다는 걸 의미한다. <앤트맨과 와스프>, <캡틴 마블>(그리고 <블랙팬서>)보다 더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 그 이전에 나온 마블 영화 전체이다. 당연히 좋은 의미는 아니다. 10년에 걸친 연속극과 같은 시리즈를 만들면서 모든 주인공 자리를 오로지 백인 이성애자 남자(이 시리즈의 퀴어베이팅에 넘어간 수많은 관객은 그들의 망상 밖의 세계가 실제로는 이렇다는 걸 완전히 잊고 있었을 텐데)에게 넘겨준 그 반동적 뻔뻔스러움은 이들이 다루고 있는 우주가 마블 코믹북 우주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 어이가 없다. 마블의 세계는 이렇게 일관되게 심심한 적이 없었다. 늘 빠르게 시류를 읽고 다양성을 추구했다. MCU의 영화들은 옛날 원작에 충실하느라 구닥다리가 된 게 아니라 나이 먹은 원작들보다 늘 뒤처졌다. 그리고 이 하얀 남자들의 세계는 지금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인크레더블2>, 심지어 넷플릭스의 <쉬-라> 리메이크에까지 시비를 걸며 징징거리고 있는 인종주의자/성차별주의자 팬덤에게 심적/논리적 기반을 제공해주었다. 10년이나 지나서 겨우 여자 수를 늘리고 LGBT 캐릭터를 넣어주겠다며 (어느 세월에?) 립서비스를 한다고 해서 지난 10년의 독기가 빠지는 건 아니다. 이런 걸 병 주고 약 주고라고 하는데…. 도입부가 너무 길어졌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골백번 말했지만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미셸 파이퍼가 연기하는 재닛 반 다인은 코믹북 세계에서는 어벤저스의 창립 멤버이고 리더였다. 이 캐릭터가 이렇게 뒤늦게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부터가 이 세계의 묘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시리즈에선 재닛의 딸 호프가(코믹북에서 이 캐릭터가 어떻게 되었는지 사연을 읊으면 또 길어지니 넘어가자) 와스프인데 앞에 나온 영화 <앤트맨>에서 어떻게 구박을 받았는지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감독 페이턴 리드는 우리가 앞의 스토리를 이번 영화의 전주곡처럼 여기길 바라겠지만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는 게, 여전히 <앤트맨과 와스프>는 불필요한 타이틀을 단 생색내기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는 리드의 잘못이 아니다. 세계가 워낙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너무 구박하지는 말기로 하자. <앤트맨과 와스프>는 걸작과는 거리가 멀지만 꽤 좋은 영화이다. 가볍고 유쾌하고 날렵하다. 가지고 있는 야심과 하려는 이야기가 보기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다소 밋밋한 MCU 영화들의 공식을 거의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슈퍼히어로 유니버스의 세계가 심심한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조금씩 다른 개성과 능력을 가졌을 뿐, 대부분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비슷비슷한 역할의 사람들이라는 데 있다. MCU 영화의 악당들이 누가 있었는지 모두 구별하거나 기억할 수 있는 머글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배우가 나와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 이들 대부분은 슈퍼히어로가 이들을 퇴치하면서 슈퍼파워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최대한 주인공 캐릭터를 다르게 주고 시작점을 다르게 잡아도 클라이맥스는 늘 비슷한 음향과 분노의 반복이다. 이런 비슷한 일들을 겪는 사람들이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고 해서 그 세계가 충분히 다양해질 수 있을까? 그들을 대립시킨다고?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이들 모두 라벨이 붙은 상품들이기 때문에. <앤트맨과 와스프>는 이 반복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이들이 상대하는 빌런(한국어 사용자가 악당 대신 빌런이란 단어를 쓴다면 그들의 사고가 장르 클리셰에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스트가 그에 가장 가깝지만 이 캐릭터에겐 (아직) 악의는 없다. 그냥 스스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소니 버치가 이끄는 악당들도 있지만 이들 역시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길을 막는 방해꾼에 가깝다. 방해꾼이란 면에서 고스트와 소니 버치는 앤트맨 스콧 랭(폴 러드)을 감시하는 연방요원 지미 우와 정확히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 이 영화의 임무는 이들을 퇴치하는 것이 아니다. 최대한 이들의 간섭을 피해 양자 영역 어딘가에 신비스러운 형태로 존재하는 호프의 엄마 재닛을 구출하는 것이다. 구출 플롯은 악당 타도만큼 흔하기 짝이 없는 기성품 공식인데, 이것을 슈퍼히어로 이야기에 넣자 엄청난 차별성이 발생한다. <아이언맨2>나 <토르: 다크 월드>의 줄거리를 기억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앤트맨과 와스프>는 사정이 다르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MCU에서 이런 이야기는 반복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회상 장면을 제외하면 사람도 죽지 않는다. 여기엔 구별하기 쉽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입체적으로 구성된 세계는 다양한 욕망과 다양한 기능을 가진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앤트맨과 와스프>의 캐릭터들이 추가되면서 MCU는 이들 머릿수만큼의 다양성을 확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소코비아의 대소동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에게는 중요하기 짝이 없지만 다른 MCU 영화와 비교하면 하찮기 그지없는 영향력을 끼친다. 그 하찮음만큼 이 세계는 그럴듯해진다. 스콧 랭이란 주인공의 하찮음 자체도 그 디테일의 일부이다. <앤트맨과 와스프>란 영화 자체가 큰 붓으로 투박하게 그린 그림 위에 현실적인 디테일을 더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는 지금까지 MCU에서 있어온 반복을 커버할 만큼 충분치 않으며,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 우주의 생명을 반으로 줄이면 뭔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최종빌런이 벌인 대소동을 피할 수 있을 정도는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 세계가 몇몇 히어로의 목숨을 날리면서 원상복구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이는 이들이 가진 장점을 심하게 날릴 정도는 아니다. 아마 이들의 이야기가 계속되어 다른 히어로의 이야기와 뒤섞인다면 이 디테일은 새끼를 치며 불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MCU 세계 자체를 바꿀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이 세계는 아무리 개조해도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이 뒹굴기 위한 무대로 존재하는 곳이고 그 목표를 제외하면 처음부터 말이 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석종서 CJ ENM 스튜디오 바주카 국장 - 극장판은 가족극의 재미에 집중했다

최고 시청률 10%대를 기록하며 한국 어린이 채널 프로그램 중 역대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투니버스의 <신비아파트> 시리즈가 극장판으로 여름방학 공략에 나섰다. 2016년 7월 <신비아파트: 고스트볼의 비밀>이 처음 방영된 이후 올해 3월에 시즌2의 1부 <신비아파트: 고스트볼 X의 탄생>이 종영하기까지, 초등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신비아파트>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시리즈를 탄생시킨 CJ ENM 스튜디오 바주카의 석종서 국장은 2014년 기획 당시를 회상하며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유아물이나 로봇물, 배틀물 등에 집중돼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의 결과는 그때 석 국장이 과감하게 “호러를 밀어붙인” 덕분이다. 그는 “우리가 어렸을 때 <전설의 고향>을 좋아한 것처럼, 요즘 아이들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는 뚝심을 지켰다. <신비아파트> 시리즈는 하리·두리 남매가 102년 묵은 도깨비 신비와 함께 원한 많은 귀신들을 만나 억울함을 풀어주는 설정. 극장판에선 특별히 “귀신의 표현 수위를 낮췄다”. 텔레비전 화면이 아닌 “큰 스크린으로 귀신을 마주할 아이들을 위한 배려” 차원이었다. “시청률 조사 결과 부모 동반 시청률이 유독 높게 나온” 점도 눈여겨봤다. 석종서 국장은 “무섭다는 이유로 부모를 함께 텔레비전 앞에 앉히는 콘텐츠”라고 설명하면서 극장판은 이를 노려 “부모 세대도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 개발”에 힘썼다. 영화엔 90년대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장치들이 뒤섞여 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질문을 할 테고, 극장 밖을 나와서도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예상도다. 2000년에 투니버스 생방송 PD로 입사한 그는 성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고 매력을 느껴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더빙 PD로 활동했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1~3기), <명탐정 코난>(3~5기) 같은 작품을 현지화하는 과정은 “주요 히트작들의 리듬감을 체화하는” 계기가 됐다. “패밀리 타깃으로 관객층을 확대하고, 극장판만의 스케일과 재미를 살릴 수 있는 참신한 기획이 필요하다”며 국산 애니메이션의 극장판 진출에 의욕을 보인 석종서 국장은 “<신비아파트>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스튜디오 바주카가 작은 제작사들과 협업하는 기회까지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수첩과 펜 “글로 적다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석종서 국장에게 수첩과 펜은 동심을 열어준다. 석종서 국장의 어린 시절과 3살짜리 딸아이의 눈높이로 진입하는 창구인 수첩에는 <신비아파트> 시리즈를 비롯해 현재 방영 중인 <레인보우루비> 시즌2, <로봇트레인 RT> 시즌2, 등 투니버스 인기 애니메이션들의 비밀이 빼곡하다. 애니메이션 기획 작품 2018 극장판 <신비아파트: 금빛 도깨비와 비밀의 동굴> 2017 <신비아파트: 고스트볼 X의 탄생> 2016 <신비아파트: 고스트볼의 비밀> 2016 극장판 <안녕 자두야> 2016 <파파독> 2014 <놓지마 정신줄> 시즌1 2012 <와라편의점> 2011 <안녕 자두야>시즌1 ~ 2017 <안녕 자두야> 시즌4 2008 <아기공룡 둘리> 2007 <냉장고나라 코코몽>

이요섭 감독의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 방구석에서 만난 잡탕의 진수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 / 목소리 출연 야마데라 고이치, 이시즈카 운쇼, 하야시바라 메구미 / 제작연도 2001년 2002년, 5평짜리 원룸에서 무자비한 식성으로 영화를 섭취하던 때였다. 성에 제거가 안 된 소형 냉장고의 문틈으로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만화학원 입시반 아르바이트를 뛰며 모은 돈을 몰빵한 나의 사랑스러운 플레이스테이션2에 다양한 DVD를 박아넣고 천원짜리 만두를 씹으며 영화를 봤었다. 대부분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보다 4:3 11인치 브라운관 텔레비전으로 소비한 나는 종횡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뭐가 시네마스코프인지 비스타 비전인지 감도 없고 화면이 잘려 있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당시 내 취향을 돌아보면 말 그대로 잡탕이었다. 애니메이션부터 중국·미국·일본 영화를 가리지 않고 봤다. 나는 확실히 2시간 이상의 서사를 목격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연작을 통해 심연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를 탐닉하고 나면 술에 취한 것처럼 며칠 동안 그 생각만 하곤 했다. O.S.T를 반복해서 듣고, 캐릭터의 다른 자료를 찾아보고, 작품이 참고한 다른 영화들을 보는 등 일련의 덕질을 깊지 않게 즐겼다. 마지막으로 정리가 되면 머릿속 라이브러리에 저장하고 세분화해서 분류한다. 정말 주관적인 감정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샤이닝>(감독 스탠리 큐브릭,1980)이 스릴러 칸에 꽂혀 있고, <드라이브>(감독 니콜라스 빈딩 레픈, 2011)가 로맨스 칸에 꽂혀 있기도 했다. 그러다 나의 호기심을 강하게 건드린 장르가 있었는데 내 멋대로 말하면 ‘물 탄 장르’라고 불린 작품들이다. 나는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장르를 건드리고 있는 새로운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고전적인 규칙을 충실히 이행하는 작품을 특히 좋아했다. 그때 나에게 잡탕의 진수를 선보여 준 작품을 꼽으라면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이다. 비밥(bebop). 비밥은 악기간의 부드러운 조화보다는 악기 각자의 개성 넘치는 연주를 중요시하는 장르이다(나무위키, <카우보이 비밥> 참고). 미래, 우주를 여행하며 범죄자를 잡는 현상금 사냥꾼(작중에서는 카우보이)들이 주인공이다. 회마다 범죄자들을 유쾌하게 검거하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검거율은 꽤 떨어진다. 카우보이들은 범죄자들에게 측은함을 느끼고 때론 현상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찾아 과감하게 체포를 포기한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생활을 유지하는지 궁금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여행자처럼 느껴진다. 여행 과정 중 새로운 동료가 생기기도 하고, 과거의 적대자를 마주하기도 하며, 이야기는 전형적인 구조 속에서 다채로운 표현 방법으로 장르적 서사를 재현한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이야기는 종반부를 향할수록 자신들의 아픈 과거를 직면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유쾌함 뒤에는 슬픔이 있고 이면을 알게 된 이후 주인공들을 더 애정할 수밖에 없다. 26부작이라는 긴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가 소모되지 않고 17년 동안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게 여전히 놀랍다. 죽기 전까지 이런 작품을 딱 100개만 더 보고 싶다. 욕심이 과한 건가? see you space cowboy…. 이요섭 영화감독. 장편 <범죄의 여왕>(2015)과 단편 <더티혜리>(2013), <그의 인상>(2010), <다문 입술>(2010), <플라스틱 로봇>(2005)을 만들었다.

박영이 감독 - 평양국제영화축전에 한국영화가 상영되는 그날까지

박영이 감독은 요코하마 조선학교 출신으로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3세다. 일본 내 혐오 세력이 조선학교 학생들의 치마저고리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실화를 담은 <걸치다>(2010)를 비롯해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조선학교 학생들을 밀착 취재한 <하늘색 심포니>(2016) 등 박영이 감독은 일본과 북한을 오가며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온 진귀한 경험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한국의 DMZ국제다큐영화제, 이주민영화제 등을 찾으며 남북한의 평화를 위한 “무지개다리”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북한영화 <우리집 이야기>(2016)가 한국 최초로 공개 상영된 것에 깊은 감회를 표했다. -최근 남북·북미 정세가 급변한 이후 외부의 관심을 굉장히 많이 받고 있겠다. =BIFAN에서 개막하기 약 10일 전쯤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 남북 영화’의 기조 강연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7월 13일에 서울에 도착했는데, 한국의 많은 매체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특히 단순 언론 보도뿐 아니라 남북 합작영화에 관한 의지가 뜨거운 것 같다. 8월에 북에 들어가서 이런 이야기들을 전달하려고 한다. 해외동포사업국을 비롯해 평양영화축전을 담당하는 외무성의 조선영화수출입상사에도 건의할 예정이다. -일본 언론의 반응은 어떤가.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달라는 제의가 있었다.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으려는 입장인데, 사전 협의 과정에서 아베 정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더니 방송국쪽에서 결국 못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BIFAN에서 공개된 북한영화들은 비교적 최신 경향도 담고 있는데, 직접 평가를 해준다면. =우선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2012)는 영국, 벨기에와 합작한 영화라 사상적으로도 열려 있고 대중적인 재미가 있다. <우리집 이야기>는 2016년에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영화인데 촬영 기술의 진일보를 감지할 수 있다. 작품 전반에서 지방의 생활양식이라든지 일반인들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북한의 영화 관계자들 또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고, 확실히 앞으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자는 분위기가 있다. <우리집 이야기>의 공동연출자인 리윤호 감독을 2014년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한번 만난 적 있는데, 당시 리윤호 감독이 샌드아트를 이용해 영화제 오프닝 세리머니를 연출했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조선학교를 다닌 재일교포들에게 북한영화는 익숙한가. =커뮤니티 내에 북한영화가 자연스럽게 유입돼 학생 시절부터 많이 보게 된다. 일본 사람들 중에도 북한영화를 보는 이들이 있는데, 유명 DVD숍에 가면 <월미도>(1982), <불가사리>(1985) 같은 ‘조선영화’들이 있다. 물론 최신 영화는 아직 없고, 주로 옛날 작품들이다. -<걸치다> 등 일본 내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다룬 작품을 주로 만들어왔다. 그러다 <하늘색 심포니>에서는 북한으로 건너갔는데. =이바라키현의 조선학교 학생들이 2주간 졸업여행으로 북한을 다녀올 예정이었는데, 교장 선생님과 의논 후 북한에 우리의 촬영 의사를 전했다. 다행히 성사가 되어서 이바라키조선초중급고급학교 재학생 11명의 수학여행에 동행했다. 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 초청된 후 반응이 좋았지만 당시 남북 관계가 매우 첨예했던 터라 배급 제의가 일체 없었다. -오히려 요즘 들어 다시 관심을 받을 만한 작품 아닌가. =아직 정확하게 밝힐 순 없지만 한국의 배급사와 올해 개봉을 논의 중이다. -지금까지 북에는 몇번 다녀왔나. 북한영화계와 어느 정도 교류를 나누고 있는지 궁금하다. =총 18번 다녀왔고, 이제는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2008년 이후 매해 방문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1년에 두번씩 다녀올 때도 있다. 일본 조선대학교 재학 시절인 96년 9월부터 97년 2월까지 5개월간 북에 머물렀던 것이 단일 방문으로는 가장 오랫동안 체류한 경험이다. 그때 북한에 건립된 재일교포 기숙사를 이용하면서 전국 각지를 돌고 공장에 나가서 노동도 해봤다. -평양의 영화관은 일반 시민들에게 열려 있나. =아직은 자유롭게 티켓을 사서 들어갈 수는 없고, 단체로 모여서 미리 관람 신청을 해야 한다. 2천석 규모의 대극장이 있는 평양국제영화관, 새로 건립된 대동문영화관, 개선문 옆에 있는 개선영화관 등이 있다. -남북 영화교류의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보탠다면.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 당시에도 영화 합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잘 안 됐다고 알고 있다. 70년 분단 기간 동안, 사고방식은 물론 영화 사업에 관한 인식 자체도 격차가 많이 벌어지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 규모가 큰 영화로 남북 합작을 해보자는 건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자체보다는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의 인간적인 교류가 먼저다. 작은 작품이라도 상관없으니 남북 모두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선을 찾아야 한다. -북한영화계는 합작에 관해 아직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보인다. =합작영화로 수익을 올릴 것이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 상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남쪽의 삶에 대해 북한 주민들의 관심이 높다. 다들 알겠지만 한국영화를 몰래 보기도 한다. 정부 단위로 움직일 조짐도 보인다. 그렇지만 아직은 영화축전에 가면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영화는 상영되어도 한국과 미국 영화는 볼 수가 없다. 일단은 하나씩 뚫고 나가는 시기라고 본다. -한국영화계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심스럽지만 북한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다. <강철비>(2017)를 보면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남성 캐릭터, 컵라면 하나에 기뻐서 날뛰는 주민의 모습 등으로 북한을 희화화해 한국 관객을 웃게 만든다. 한국이 북한에 시혜를 베푸는 듯한 시선 역시 조금은 불편하다. 지난 정권 10년간 남북 교류가 없었고, 정보가 제한되어 있었던 이유가 크리라 생각한다. -남과 북의 영화를 모두 접하는 입장에서 둘의 중요한 차이가 뭐라고 보나. =한국영화는 표현 하나하나가 세밀하고,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촬영 및 편집 등의 기술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수준 아닌가. 며칠 전에 <마녀>를 봤는데, 신인배우 김다미의 연기와 감독의 액션 연출이 정말 훌륭하더라. 반면 북한영화는 양심과 도덕, 인간의 휴머니티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올해 활동 계획은. =지금껏 꾸준히 북한으로 건너가 한국이나 일본에서 보도되지 않는 것을 전하기 위해 촬영을 해왔다. 앞으로는 이런 일을 더욱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 가깝게는 올가을에 열리는 평양국제영화축전에 한국영화를 출품하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 물론 아직 가능성을 타진할 단계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북한에 사무실을 내서 2, 3달간 머무르면서 영화를 찍는 것이다. 대학생과 택시 운전사 등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을 촬영하고 싶다.

<어느 가족>, 서민적 홈드라마의 외견을 모방하는 동시에 담론의 드라마적 봉합을 거부하다

어떤 면에서 <어느 가족>은 가족영화로 브랜드화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안전한 작품인 양 보인다. 무구한 아이들을 동원한 <아무도 모른다>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같은 영화가 왠지 불편했던 관객이라면 정서적 몰입을 활용한 공감의 인본주의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와 텔레비전 작업에서 시작해 극영화로 영역을 넓혀온 고레에다 세계의 전력을 감안해도, 쇼타(조 가이리)의 입원을 계기로 영화의 질감이 홈드라마에서 다큐멘터리적 취조 장면으로 뒤바뀌는 장면을 전후해서 어떠한 이물감을 느꼈다. 이 정서를 되뇌며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가 진실을 구축하는 방식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누구인가? <어느 가족>에 등장하는 하층민 가족은 잡다한 좀도둑질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을 예외로 하면 외견상 번듯한 가족과 다름없다. 일용직 노동자인 남편 오사무(릴리 프랭키),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아내 노부요(안도 사쿠라), 남편이 남긴 집과 연금으로 살아가는 할머니 하츠에(기키 기린), 섹스 노동을 하는 아내의 여동생 아키(마쓰오카 마유), 부부의 아들 쇼타가 기본을 이루고 있고, 여기에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가 가족에 합류한다. 얼핏 보면 기존 가족에 유리가 편입된 모양으로 보이지만 영화가 점점 진행되다 보면 기존의 가족도 사후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가족의 생존방식은 어딘가 야릇하다. 가령 오프닝에서 오사무의 장바구니에 가득 담긴 물건은 일종의 위장술이며, 대형마트에서 훔쳐진 물건은 쇼타가 몰래 들고 나온 컵라면 하나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오사무와 쇼타는 어엿하게 돈을 주고 상점가의 크로켓을 구매한다. 그리고 이 가족이 전혀 노동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사무는 아파트 건설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지만, 부상을 입어도 고용구조상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세탁소에서 일하던 노부요는 ‘워크셰어’를 구실로 노동시간이 단축되다못해 종내 회사에서 해고된다. 영화 속 대사처럼 “다함께 조금씩 더 가난해지는” 구조 속에서 고용상태가 가장 불안한 오사무와 노부요 같은 자들이 더 쉽게 배제된다. 그들은 진열된 상품은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가게가 망하지 않을 정도”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괜찮다고 여긴다. 이 논리에 과잉 전시된 상품을 가져오는 것은, 잉여 존재로 낙오된 이들의 생존방식에 적합한 것이라는 합리화 과정이 내장되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가족을 생계형 도적 집단 혹은 윤리적으로 포용 가능한 불한당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좀더 들어가보자. 각 인물이 품은 과거사의 모호성은 영화에 자잘한 미스터리를 구축하고 이것이 영화의 전반부를 견인해 간다. 여기에 몇 가지 호기심이 자리잡는다. 우선, 이들은 누구인가? 미스터리의 계기는 소녀 유리의 유입이다. 가족이 ‘주워온’ 학대아동 유리로 인해 다른 가족 구성원의 과거사에 대한 궁금증도 확대돼간다. 그리고 각자 노동을 하며 연금과 같은 부수입이 있음에도 이들은 왜 좀도둑질을 하는가? 외견상 답은 간단하다. 이들을 가족으로 구성시킨 것은 일차적으로는 할머니의 연금, 즉 돈이다. 그리고 좀도둑질은 탐욕에 의해 추동된 것이 아니라 체제 밖 존재자들의 반문화적 집단행동이다. 좀도둑질은 단독으로 행해지기보다 둘 내지 셋 이상의 단체로 수행되는 놀이로서의 ‘서리’에 가까운데, 상품들이 과잉 진열된 대형 마트에서 주로 절도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제도의 압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글 초반에 던진 이물감과 관련해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을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영화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쉽게 내레이션이나 플래시백을 활용하며 사건을 압축하거나 그 흐름을 역전시키는데, 이때 관객은 피동적 객체로 놓이기 쉽다. <어느 가족>을 살펴보면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은 자연적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즉 영화는 작품에 내재된 미스터리를 해명하기 위해 플래시백을 활용하지 않는다. 가족의 과거 이력은 파편적으로 던져진 대사나 정황을 통해 관객이 적극적으로 구축해가야 한다. 영화 속 인물 각자는 고독한 단독자들이며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위해 공동체를 형성했다. 여기엔 ‘돈’이라는 물질적 타산, ‘정’이라는 초물질적 기대 어느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논리가 혼재되어 있다. 가족, 복지, 고용 등 제도의 외부에서 살아가며 사소한 불법을 일삼지만 어느 누구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판타지도 더해진다. 그런데 영화는 이에 머물지 않고 판타지의 장막을 찢어낸다. 계기는 쇼타가 절도를 하다가 다리를 다치고 가족의 정체가 사회에 폭로되는 과정을 전후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후의 영화는 앞선 홈드라마의 양식을 벗어나 다큐멘터리적 기법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후반부의 차가운 해부는 전반부의 온정적 담론을 부정하는가? 병원, 경찰, 상담소 등에 고립된 개인들은 형사나 상담원을 통해 진상을 추궁당한다. 그들은 아동유괴와 시체유기에 가담하고 방조한 범죄자들이다. 이들은 공범자들이며 반사회적 공동체의 일원이다. 취조와 상담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잔혹한 해부를 통해, 영화 속 인물들은 상대방의 진심과 의도에 혼란을 느낀다. 진실을 해부하고자 하는 이성적 시선에 저항하며, 유사가족의 인간적 유대를 신뢰하는 최종적 해석은 아마도 관객의 윤리적이고 심정적인 기대가 만들어낸 상상적 종합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본 <어느 가족>은 합의 가능한 진실에 도달할 의도가 없어 보인다. 구성된 가족이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고레에다의 가장 불친절한 영화 <디스턴스>(2001)와 상통하는 점이 많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산장에서 하루를 보낸다. 점차 관객은 이들이 ‘옴 진리교 사건’을 연상시키는 신흥 종교의 무차별 범죄를 자행한 신도들의 유족임을 알게 된다. 영화는 이들이 모이게 된 계기와 과거를 중간중간 취조실 장면을 통해 플래시백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어느 가족>에는 동기를 해명하는 플래시백이 없으며 영화 속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어느 가족>은 서민적 홈드라마의 외견을 모방하는 동시에 담론의 드라마적 봉합을 거부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반문화적(생산, 노동, 공교육, 재생산의 거부) 생존방식을 좀도둑 가족을 통해 보여주는 동시에 이 가족의 영속화에 저항하며 궁극적으로 이를 해체한다. 의례와 전통의 매개로서의 가족은 여전히 문화적 제도 내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엄마 혹은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 아이에 대해 부부가 느끼는 애잔함이 묻어나는 장면에서 신파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가족으로 상상하는 순간 다시금 제도의 압력이 반문화적 상상력을 훼손시킬 것을 알고 있다. <어느 가족>은 그렇기에 고독한 낙오자들의 연대라는 감상적 향수를 넘어 반사회적 에너지쪽으로 선회하며 차가운 세계에 놓인 단독자의 시선에서 마친다. 그러므로 소년 쇼타와 소녀 유리에게 가족은 종착점이 아니라 경유지다.

<극장판 헬로카봇: 백악기 시대> 최신규 총감독, "'같이 가자!'는 감성이 무척 중요하다는 걸 지금도 확신한다"

<극장판 헬로카봇: 백악기 시대>가 8월 1일 개봉일 스코어 16만명으로 역대 애니메이션 오프닝 기록을 경신하고 첫 주말까지 62만 관객을 불러들였다. 초등학교 1학년 차탄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시계를 통해 변신 로봇을 불러들이는 설정인 <헬로카봇> 시리즈는 2014년 TV 첫 방영과 함께 완구 판매율을 이끄는 원천 소스의 힘을 증명했다. 기존의 자동차 변신 로봇에서 변화를 꾀한 이번 첫 극장판에선 공룡에서 로봇으로 변신하는 새로운 4개 캐릭터가 등장한다. 손익분기점 105만명을 무사히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이름은 총감독을 맡은 최신규 전 손오공 회장이다. 최신규 총감독은 추억의 완구 ‘끈끈이’를 비롯해 발사대를 이용한 팽이 ‘탑블레이드’의 신화를 썼고, ‘헬로카봇’과 ‘터닝메카드’를 연이어 출시하며 뉴밀레니엄세대 초등학생들의 대통령으로 떠올랐다. 최 총감독은 1992년 창립한 국내 1위 완구회사 손오공을 2016년에 미국 마텔사에 매각하고, 현재 아들 최종일 대표가 운영하는 완구·애니메이션 콘텐츠 전문기업 초이락콘텐츠팩토리에 몸담고 있다. -기획, 제작 등을 총괄한 총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손오공을 이끄는 사업가에서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역할 변신을 꾀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손오공 창업 후에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1999), TV만화 <하얀 마음 백구>(2000) 등 30여편의 애니메이션에 기획, 투자로 참여했다. 그중엔 내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들도 많다. 후배 양성에 집중하자는 취지였다. 이번에 총감독을 맡게 된 것은 제작에 대한 오랜 노하우와 아이디어가 쌓인 창의적인 지휘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어린 애니메이터들까지 유연하게 이끌 수 있는 선배의 역할로 접근했다. 나름대로 성공한 케이스니까 후배들이 따라줄 거란 생각도 있었고. (웃음) 작가, 애니메이션 감독, 그래픽 감독 등 구성원들의 장점을 융합하는 데 그동안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현대자동차의 실제 모델을 일부 등장시킨 <헬로카봇>의 탄생부터 이야기해보자. 2013년에 처음 완구를 출시했다. =현대차 모델과 관련해서는 일면에서 내 애국심이 발휘된 사례일 수도 있겠다. 과거의 로봇물을 끌어왔지만, 옛날보다 더 재밌게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도 주요했다. 요즘 아이들에겐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는 로봇물을 설득시키려면 자동차 같은 친근한 모티브가 필요할 거라고 봤다. <트랜스포머> 스타일이라는 오해에 아쉬운 마음도 있었는데, 이번 <극장판 헬로카봇: 백악기 시대>는 자동차가 아닌 공룡이 직접 변신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보여줄 거라 생각한다. -공룡카봇 4총사(티라클레스, 트리톤, 테고, 테라제트)의 새로운 등장이 극장판의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7월 7일부터 TV 애니메이션 <내 친구 코리리>가 방영 중이고, 올겨울에 <극장판 공룡메카드: 타이니소어의 섬> 개봉도 앞두고 있다. 로봇물과 마찬가지로 공룡물 역시 클래식의 트렌디한 활용처럼 느껴진다. =향수를 자극하는 과거의 로봇, 공룡물을 요즘 어린이들의 시대로 다시 데려다놓으려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지금 <헬로카봇> 시리즈를 보고 자란 어린아이들이 나중에 키덜트층을 형성할 때까지 멀리 내다보려는 시도다. 당연히 차가 변신할 줄 알았는데 살아 있는 공룡이 변신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의 생경함과 놀라움도 극장판에선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봤다. 말이 그렇지 공룡을 쪼개서 변신시키는 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웃음) -두 주제곡 <공룡 보러 가자> <엄마 얼굴>을 직접 작곡하고, 작사에도 관여했다고. =한때 음악을 하고 싶어서 피아노, 기타를 배웠다.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휴대폰에 녹음하고 가끔은 직접 가이드까지 만들어서 작곡가들에게 들려준다. <공룡 보러 가자>는 손녀딸에게 ‘공룡 보러 가자’고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줬는데, 한번 듣고는 금세 따라하는 거다.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그 뒤에 ‘엄마하고 가자, 아빠하고 가자’라는 반복적인 가사를 붙였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시시하지만 아이들에겐 어딘가를 엄마, 아빠와 같이 가고 싶다는 마음이 매우 핵심적인 감정이다. 어머니가 43살에 날 낳으셨고, 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 혼자서 매일 구슬치기, 딱지치기 하면서 어린 시절에 무엇이 필요한지 절실히 느껴왔고, ‘같이 가자!’는 감성이 무척 중요하다는 걸 지금도 확신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쉽고 따라하기 좋은 콘텐츠를 최우선으로 하는 건가. =나는 <헬로카봇> 시리즈를 비폭력 가족영화라고 부른다. 기본적으로는 초등학교 2학년을 기준으로, 형과 동생이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는다. 많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타깃으로 삼는 연령층보다 살짝 낮춰서, 이후에 서서히 끌어올리자는 게 내 생각이다. 표면적으로 로봇물에 대해 약간은 강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에, 모성애와 부성애 등 가족의 정감을 강조한 분위기로 순화하려고 한다. -차탄의 부모 캐릭터가 강조된 것은 아이를 동반한 부모 관객에게도 어필하는 지점인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강조된 가족영화의 틀 안에서 부모 관객도 뭉클함을 느끼며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뒤편에서 아들 차탄이 돕고 있는 걸 모른 채 결과적으로 늘 엉뚱하게 영웅이 되고 마는 아빠 캐릭터 역시 아이들에게 묘한 쾌감을 준다. 부부 관계도 나름의 재미를 주고 있는데, 아빠는 의외로 약하게, 엄마를 힘 있고 개성 있게 만드는 등 요즘 시대의 정서도 첨가하려고 한다. -극장판의 제작 기간은. =10개월 걸렸다. 일반적인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매우 짧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텔레비전에서 쌓아온 <헬로카봇>의 기본기가 있기에 가능했다. 줄거리 문제로 TV판에 적용할 수는 없어서, 극장판을 위해 미리 빼둔 것들도 있었다, 사실 제작 기간을 무한정 길게 가져간다고 더 좋은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특히 3D의 경우는 중간에 애니메이터가 교체되기라도 하면 작업이 훨씬 비효율적으로 진행된다. 밀어붙이는 능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일제히 투자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TV 애니메이션은 힘들어도 오로지 우리 자본으로 만들어왔다. 직접 투자를 하면 아무래도 더 간절해지니까. 그런데 극장판의 경우 외부 투자가 필요하다고 봤다.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건 안정성인데, 2013년에 완구 출시를 시작으로 5년 이상 인기를 지속해온 ‘헬로카봇’이란 브랜드의 신뢰도가 바탕이 됐다. 구두계약 이후 실질적인 투자를 받기까지 무작정 기다리지 않고 미리 제작을 한 것도 내 나름의 경력을 바탕으로 내린 결단이었다. -극장판 개봉을 앞두고 CJ 오쇼핑을 통한 영화관람권과 공룡카봇 4종 사전 판매의 반응이 뜨거웠다. 초반 흥행몰이에도 도움을 준 것 같은데, 원소스 멀티유즈 사업과 마케팅의 화력 지원이 잘 맞아떨어진 사례 같다. =과감하게 지원해야 하는 부분, 결단력이 필요한 부분에서 배급·홍보팀과의 팀워크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과거 이야기를 하자면, 당시로는 불모지에 가까웠던 완구업에 도전해서 끈끈이를 탄생시키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기술을 배우다가 19살에 사업을 시작했다. 어릴 땐 금은 세공이나 주물 기술 등을 무조건 금방 배우려고 했다. 빨리 패스하고 벗어나고 싶었던 거지. 다른 길로 가고 싶어서 공장들도 형제들에게 다 나눠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내가 개발을 잘한다고 소문이 났더라. 나한테 맡기면 잠을 편히 잘 잔다고 했다. 워낙 까다롭고 꼼꼼하니까. 과거나 지금이나 제작을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버린다. 덮는 것도 용기고 장인정신이라고 본다. 완구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도 형제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아서 나 혼자 플라스틱 콘텐츠에 관심을 가진 거였다. 당시엔 비전이 없다고 하던 사업을 오로지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버텼다. 그렇게 몇년간 힘들게 고생하다가 1985년에 손에 묻어나지 않고 독성이 없는 끈끈이가 제대로 터졌다. (최신규 회장이 완구사업에서 첫 번째 성공을 맛본 독성 없는 끈끈이는 1985년 당시 4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1992년 손오공 창업의 일등공신이 됐다.) -아이들의 유행은 매우 빠르게 바뀐다. 그래서 2013년에 등장한 헬로카봇이 지금까지 인기가 뜨거운 현상은 꽤 놀랍다. 새로운 캐릭터를 꾸준히 개발하는데 그 요인이 있을 거라고 보는데, 어린이의 눈으로 트렌드를 살피는 실질적인 비결은 뭔가. =어렸을 때 외롭게 살아보면, 엄마가 없을 때의 쓸쓸함을 제대로 알게 된다. 닫힌 문 안쪽에 있을 때의 쓸쓸함 같은 것도. 아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는 기분은 중요하다. 옛날 아이들이나 요즘 아이들이나 어릴 때 보면 책상 밑에 들어가서 노는 걸 참 좋아한다. 그게 왜 좋은지, 나는 아직 기억이 난다. 아이들과 공감대를 이뤄야 아이들을 만족시킬 만한 감성이 나온다. -모바일 게임 시장, 유튜브, SNS 등이 2010년대 이후로 폭발적인 성장을 지속 중이다. 전통적인 완구, 애니메이션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이락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다고 보나. =우린 아직 서정적인 것의 힘을 믿는다. 요즘은 뭐랄까… 뭐든지 강하고 딱딱한 것 같다. 젊은 애니메이터들은 아이들 콘텐츠마저도 소프트한 느낌보다는 빠르고 센 걸 보여주고 싶어 하더라. 내 기준에선 다소 급하다는 인상이 든다. 그래서 요즘 애니메이터들과 대화해보면 내가 훨씬 어린애처럼 느껴진다. (웃음) -디즈니 영화가 모든 아이들의 취향을 잠식해버리는 시대인데, 마블과 폭스를 차례로 인수해가는 디즈니 왕국의 행보에서 취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IP(지식재산권)를 키우는 것이다. 다양한 IP를 보유할수록 유통도 활로가 트인다. 초이락 역시 전세계 브랜드로 가고자 한다. 다만 섣불리 거대 디즈니를 따라가려는 생각은 없다. 해외 시장을 맹목적으로 바라보는 건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막상 마블이 제작하는 것들을 보면 의외로 타깃 연령층이 높은데, 우리는 조금 더 낮은 연령층으로 내려가서 완전히 유아 시장부터 시작하고 있다. 업계 1세대이면서 완구, 애니메이션, 온라인 게임 등의 IT분야까지 두루 거치고 아직까지 현역에 있다는 게 스스로 조금은 자부하는 지점이다. 4차 산업의 융합 측면에서 모든 노하우들을 집약시킨 콘텐츠를 만들 것이다. -2003년 초이락 게임즈 창립 후 게임 산업에 뛰어들어 쓴맛을 봤다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말한 적 있다. =콘텐츠를 많이 가진 사람이 게임을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게임 제작에 부딪쳐보고서 나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온라인 게임 <샤이야>도 수익성을 높이 평가받아 넥센에 잘 넘겼고, 직접 게임 세계로 뛰어들어 배운 것도 아직 생생하다. 길드에 들어가서 유저들과 같이 놀면서, 1년 동안 열심히 게임을 했는데, 내가 있는 줄 모르고 돈 많이 벌었다며 욕하는 광경도 보고 그랬다. (웃음) -<헬로카봇> 시리즈는 게임화를 노려볼 만한 콘텐츠 아닌가. =조심스럽다. <헬로카봇>만큼은 천천히 하자고 생각 중이다. 엄마들이 반대할 것 같다. 게임 중독에 대한 걱정도 클 것 같고. 수익성 면에서도 <헬로카봇> 시리즈의 과금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문제다. 사실 게임화보다 더 현실적인 프로젝트가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헬로카봇> 실사 제작을 목표로 이미 오래전부터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30년 이상 멀리 보고 미리 준비하자는 게 내 작업 신조다. -오래전부터 등산을 즐긴다고 했다. 요즘 같은 폭염엔 어떤가. =그래도 매주 간다. 한두번 빠지면 더 가기 싫어지니까. 밤새 누워서 굳어 있던 머리, 생각만 가득 찬 머리로 산에 오르면 새로운 발상이 떠오른다. 항상 산에 가서 우리 작가에게 전화를 한다. 이 부분만큼은 욕먹어도 어쩔 수가 없다. (웃음) 어릴 때부터 관찰을 좋아해서 어른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면, 귀찮게 한다고 자주 야단맞곤 했다. 지금도 산에 가면 개미가 기어가는 걸 유심히 보다가 메모하고 그런다. -앞으로 초이락의 미래는. =아들이 초이락 대표로 있는데 항상 돈에 욕심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돈은 많이 생겨봤자 나쁜 길로 빠지기 십상이니까 영원히 도망가지 않는 콘텐츠에 투자하라고 강조한다. 이번에 제대로 시동을 건 공룡 콘텐츠를 당분간 점점 더 발전된 형태로 선보일 예정이다. 오프닝 스코어로 비교되었던 <겨울왕국>(2013)의 핵심은 쉼 없이 연결되는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에 있다고 보는데, 음악에 관심도 많고 하니 뮤지컬에도 도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