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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여곡성>의 배우 서영희·손나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 새롭게 쓰여진다, 호러의 큰 즐거움"

한국 공포영화의 오랜 자부심이었던 <여곡성>(1986)이 32년 만에 동명의 제목으로 리메이크됐다.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을 배경으로, 안방마님 신씨 부인과 며느리 옥분이 각자의 위치에서 집안의 악귀와 맞서 싸우는 이야기인 <여곡성>은 간추린 줄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곳곳에 배치된 아이코닉한 장면들로 꾸준히 회자되는 작품. 토속적인 소재를 활용한 기괴한 이벤트들을 따라가다보면 조선시대 신분제와 보수적 이념 속에 짓눌린 한 많은 여인들의 비련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낸다. 2018년 버전은 유영선 감독이 “여성 인물들의 누아르”라고 언급한 것과 같이, 자기 욕망과 개성을 보다 선명하게 실현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저력을 기대하게 만든다. <추격자>(2008),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2010), <마돈나>(2015) 등에서 독보적인 개성을 구축해온 배우 서영희가 신씨 부인으로, 아이돌 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이 스크린 첫 주연작에서 옥분으로 분했다. 서영희와 손나은이라는 반가운 이름, 그리고 두 사람의 조화가 주는 의외성만으로도 클래식 호러에 가미된 트렌디함을 가늠해보기에 충분하다.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 이후 배우 서영희의 3년이 궁금했다. <탐정> 시리즈를 거치며 사설 탐정 강대만(권상우)의 아내인 미옥을 연기했는데, 1편보다 오히려 2편에서 캐릭터의 매력과 분량이 더해지는 걸 보고서 배우의 힘이 크지 않았나 실감했다. =서영희_ 아! 그런 말을 들으니 기쁘다. 사실 지난 3년은 가정에 충실했던 시기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바쁜 시간을 보냈다. 첫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정신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잠깐 바깥바람을 쐬게 해준 작품이 <탐정> 시리즈였다. 정말 고맙지. 가정생활에서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던 상태에서 내 개인적 삶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배우로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 작품들이었다. 적절한 균형을 잘 유지했다고 본다. 지난 3년간 내 상태에서는 최선치였다. 출연 분량에 대한 욕심은 없다. 물론 이제는 조금 달라질 것 같기도 하다. <여곡성>을 기점으로 바깥바람을 더 많이 쐬고 싶다. (웃음) -서영희 배우가 극의 가장 중심이 되는 첫 번째 작품이 공포영화 <스승의 은혜>(2006)라고 볼 수 있는데, 손나은 배우도 스크린 첫 주연작으로 <여곡성>을 하게 됐다. 재밌는 우연이다. 둘은 평소에 호러영화를 즐겨보나. =손나은_ 어릴 적부터 동생하고 꼬박꼬박 챙겨볼 정도로 공포영화를 좋아했다. 연기할 때도 꼭 도전해 보고 싶었던 장르가 호러다. 서영희_ 겁이 많아서 평소에 따로 찾아보진 않는다. 그래서 내가 호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유명한 호러영화는 거의 다 봤더라. 특히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유영선 감독님이 꽤 많은 작품을 추천해주셨다. 덕분에 그동안 내가 공포영화의 무서움 그 자체에만 집중한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면서 호러 장르의 다양한 면모를 접하게 됐다. 앞으로는 즐겨보게 될 것 같다. -유영선 감독의 전작도 공포영화 <마녀>(2013)였다. 잘 알려진 공포영화 마니아라고 들었는데, 감독이 추천한 작품 중 특히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 영화가 있나. 서영희_ 난 <강시: 리거모티스>(2013)를 꼽겠다. 영화미술 측면에서 탁월한 작품이었다. 그레이 톤의 화면에 붉은 피가 물드는 이미지가 오랫동안 잔상에 남는다. 공포영화가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 영화였다. 피가 징그럽고 무섭다기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더라. 말하고 보니 좀 변태처럼 들리나? 손나은_ 옥분 캐릭터와 공통점이 있다면서 감독님이 <돌로레스 클레이븐>(1995)을 추천해주셨는데 굉장히 좋았다. <벌들의 죽음>이라는 스코틀랜드 소설 역시 감독님이 선물해주셨는데, 재밌게 읽었다. -동그란 눈, 유독 천진난만해 보이는 웃음 덕분인지 서영희 배우는 코미디영화에서도 늘 적임자 같았다. 한편 <스승의 은혜>, <궁녀>(2007)에선 처연한 얼굴로 호러영화에 어울리는 비극의 중심을 담당하기도 했다. 서영희는 두 극단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능란하게 소화한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배우다. 반면 손나은 배우는 이번 영화로 첫 호러에 도전했다. 손나은_ 우선 걱정스러웠던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웃음) 큰 스크린에 나와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드린다고 생각하니까 가능한 한 최대치의 섬세함과 집중력을 발휘하자는 생각뿐이었다. 옥분은 호러적인 상황에서 리액션을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인데, 대본을 연습할 때 놀라는 타이밍의 연기를 미리 짜놓지 않으려고 했다.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나를 덮치는 느낌에 충실하자는 생각이었다. 서영희_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는 일들이 영화 안에서 새롭게 쓰여진다는 점, 그게 호러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아닐까. 머릿속에서 그냥 생각만 하던 것들, 예를 들어 귀신은 이렇지 않을까 하고 상상만했던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배우로서 정말 즐거운 일이다. 이런 몇몇 지점을 제외하면 가급적 장르의 틀에 영향받지 않으려는 편이다. 약간의 표현법이 다를 뿐, 드라마가 중요한 것은 다 똑같다. 작품 선택도 당연히 캐릭터와 감정선이 기준이다. 그러고 나서 코미디는 매 순간 유쾌하게 집중하면 되고, 호러는 비극적인 사건을 솔직하게 돌파하면 된다. 사실 특정 장르에만 어울리는 배우라는 평가를 들으면 좀 속상할 법도 한데 대조되는 두 장르 모두 편안하게 어울린다고 평가해주시는 것 같아서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신씨 부인과 옥분 모두 극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급변하는 지점이 있다. 신씨에겐 월아라는 한 맺힌 악령이, 옥분에겐 뱃속의 아이가 동력이 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인물이 겪는 안팎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 배우들에겐 매력적인 요소였을 것 같다. 서영희_ 특히 신씨 부인은 그 변화가 매우 정확하고 극명한 편이다. 신씨 부인이 잠시간 편안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내 원래 성격과 맞으니 연기는 편했다. 오히려 어려웠던 것은, 관객이 믿을 만한 캐릭터의 중심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신씨가 본래 가지고 있던 강인함과 내면의 욕망이 분명히 보인 뒤에야만, 이후의 변화 또한 흥미롭게 전달될 테니까. 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아우라도 중요했고. 아직 최종 완성본을 보지 못한 상태인데, 잘했을지 걱정이 많다. 손나은_ 옥분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악을 택하는 캐릭터라고 느꼈다. 초반과 마지막에서 상반된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메이크업, 한복의 색감 같은 인물의 외양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옥분은 천민 출신이라 극 초반엔 꾀죄죄한 때분장도 했고, 집안 사람들의 기에 눌려서 주눅들어 있는 모습을 강조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로 보였으면 했다. 후반부에는 신씨 부인과 옥분에 이어 악이 계속 세습된다는 테마가 핵심이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에 서영희 선배님이 연기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처음 말씀드리는 거라 좀 민망하긴 하지만 선배님이 쓰는 말투와 제스처에 최대한 가까워 보이려고 노력했다. -서영희 배우는 정신적·신체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인물들을 연기하며 주목받았고, 극중에서 자주 죽음을 맞기도 했다. <여곡성>에서는 안방마님이 되어 집을 호령하는 신씨 부인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전복적인 쾌감도 있더라. 서영희_ 신분이 갑자기 엄청 상승했다. (일동 웃음) 인물의 지위를 고려해야 하는데, 신씨가 사실은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신씨도 아래에서 위로 신분 상승을 경험한 인물이다. 그래서 계급적으로 아주 특별한 제스처를 더하려고 하지 않았다. 얼굴, 말투 하나하나 무언가 꽉 짜놓은 채 표현하면 오히려 뻔한 캐릭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도식적인 표현을 경계했다. 평소에 내가 말을 조금 천천히 하는 편이다. 끝을 길게 빼면서 약간 흐리는 식으로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 부분만 조금 더 강단 있게 잘 다독이려 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하면 우선 나 자신이 불편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힘들다. -오랜만에 긴 호흡으로 영화 촬영을 해서 남다른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서영희_ 하동, 괴산 등 오랜만에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숙박해가며 촬영했다. 촬영장 가는 길이 매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웃음) 오랜만에 밖에 나가는 행복을 만끽하게 해주셔서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촬영 시작 전에 나은이와 함께 액션스쿨에서 영화의 클라이맥스 신을 위해 액션 연습을 한 적도 있다. 최종적으로 조금 변경되긴 했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엎어치기를 하는 등 나은이를 꽤 힘들게 했지. 개인적으로 호러적인 장면들에 CG가 더해져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예측해보는 점도 재미있다. -두 사람 모두 연기하기 전엔 오랫동안 미술을 공부했고,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미술에서 연기로 관심사가 옮겨가던 학창 시절엔 무슨 일이 있었나. 서영희_ 앞장서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연기? 그런 건 나은이처럼 예쁘고 키 큰 친구들만 하는 줄 알았다. 텔레비전도 별로 안 보며 자랐다. 미대를 가려고 굉장히 오랜 시간 그림을 그려왔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 앞두고서야 내게 대단한 능력이 없다는 걸 실감했다. 그 당시 사는 곳 바로 옆에 연기학원이 있었는데, 무언가 읽고 연습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무의식중에 행복해지기 위해선 연기를 해야만 할 것 같더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자책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는데 그게 연기였다. 경험이 전혀 없진 않았다. 이상하게 주변에 배우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 쫓아서 오디션에 가기도 했다. 잊었던 꿈이 10대 후반이 되어서야 되살아난 셈이다. 손나은_ 나도 미술 공부를 꾸준히 하다가, 사촌동생의 오디션에 따라간 것을 계기로 덜컥 회사에 캐스팅됐다. 굉장히 뜻밖의 일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장기자랑 무대에 나가기 좋아하고, 친구들 앞에서 무언가 보여주는 걸 좋아했다. 방과 후 활동으로 뮤지컬부 전단지를 받았던 때가 내게는 배우 활동의 어떤 최초의 순간이었달까. 내 안에 꿈틀거리던 연기 욕심을 발견했다. 회사에 들어와서는 연기자 연습생으로 있다가 가수 트레이닝을 받는 등 혼란스러운 시기도 있었다. 에이핑크로 합류하고도 계속 원하는 연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 -<추격자>에서 살인마 지영민(하정우)의 피해자인 미진,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에서 섬마을 주민들의 묵인 아래 학대와 착취로 병든 인물 복남처럼 압도적인 컨셉과 배우의 호연이 만나 필모그래피에서 유독 돋보이는 작품들이 있다. 각각의 작품들이 배우 서영희의 인생에 작은 분기점으로 기능했나. 서영희_ <추격자>는 내게 연기를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좋은 평가를 안겨줬다. <마돈나>에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고. 지금의 나를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만나서 너무 고마운 작품들이다. 간혹 그 세 작품만 주로 이야기해서 섭섭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전혀. 그렇게 회자되는 대표작이 있다는 건 배우로서 행복한 일 아닌가. 비슷한 맥락으로 어두운 역할만 많이 해서 싫지 않냐는 질문도 받는데, 그것도 전혀 싫지 않다. 구체적인 맥락에서 인물 하나하나가 무척 다르기 때문에 배우로선 무언가 겹치거나 중복된다는 느낌은 없다. -<탐정: 리턴즈>(감독 이언희), <마돈나>(감독 신수원) 등 서영희 배우는 지금껏 여성감독들과 작업한 경험이 다수다. 서영희_ 맞다. 시작부터 그랬다. 박찬옥 감독님의 <질투는 나의 힘>(2002)을 시작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에 자주 함께했던 것 같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글쎄…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걸까? 약간 편안하게 다가가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워낙 두루두루 잘 지내는 성격이라 배우들이 여럿 모이는 촬영장에서도 유연하게 잘 적응한다. 특히 <궁녀>는 출연배우가 많아서 김미정 감독님이 촬영장에서 배우들이 편하게 어울려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한 작품인데, 촬영도 무탈했고 배우들과도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돌에서 믿음직한 배우로 활약하는 인물들의 좋은 예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아이돌 출신 연기자’라는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부담감도 클 테고. 손나은_ 격려해주는 분들도 많지만 개중에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결국은 내게 주어진 기회를 그저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임하는지 보여드려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그 노력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진심을 다하려 한다. 지금까지 해온 TV드라마처럼, 작은 역에서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올라가고 싶다. 욕심낼 생각은 없고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가고 싶다. -최근에는 분량이나 역할의 중요도 면에서 여성배우들에게 보다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관객의 목소리도 선명해지고 있는데. 서영희_ 배우로서 조금 아쉽더라도 마음 편히 기다리자는 입장이다. 무던한 성격을 타고난 것도 있고, 살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욕심낸다고 다 내 것이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갈증이 언젠가 좋은 기회를 만나면 제대로 폭발할 수도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도 <여곡성>은 내게 무척 기쁜 경험이었다.

<완벽한 타인> 배세영 시나리오작가 - 코미디는 나의 힘

“이렇게 잘되는 작품은 작가 생활 중 처음이다.” 개봉한 지 7일 만에 200만 관객을 달성한 <완벽한 타인>의 순항 속에 각본을 쓴 배세영 작가를 만났다. 동창생들의 부부 동반 모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서로의 스마트폰을 공유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소동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캐릭터의 설정은 물론, 모든 갈등과 위기를 대사로 풀어내는 것”이 작가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법도 했지만, 이재규 감독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시나리오 탈고 전 제작진이 함께 속초 여행을 다녀온 것 또한 영감의 원천이 됐다. “성형 전문의인 석호(조진웅)는 제작자인 박철수 대표님의 친구에게서 외형을 빌려왔다. 물곰탕, 아바이순대 등은 속초에서 직접 먹어본 뒤에 혼자서 몰래 시나리오에 넣자고 결심했다. (웃음)” 영랑호 역시 여행자가 들을 법한 여러 이야깃거리 중 하나였다. “사람의 이면에 한가지 성질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완벽한 타인>의 테마라면 바다와 민물이 섞인 영랑호는 우리 영화에 더없이 걸맞은 상징이었다.” 이탈리아 원작 <퍼펙트 스트레인저스>(2016)에 기반한 <완벽한 타인>은 배세영 작가에게 “원작의 구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이질감이 없도록 우리 현실로 가져오는 작업”이었다. 그는 작품의 매력을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른 점으로 꼽았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두고 불륜을 비난한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조장한다고 하더라.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이다.” 특히 신경 쓴 부분도 있었다. “남자들의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진 원작을 한국으로 가져오면서, 여성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보다 재밌게 살리려고 했다.” 특히 수현(염정아)에겐 작가 자신이 결혼 후 느낀 답답함을 반영했다. 2007년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각본으로 데뷔해 올해 12년차, <킹콩을 들다> <적과의 동침> <바람 바람 바람> 등 드라마와 코믹을 주로 써왔다. 문예창작과 재학 시절부터 코미디에 심취했다는 그는 “같은 주제라도 정색하며 말하기보다는 웃으면서 해보자는 쪽이다. 특히 풍자 코미디가 좋다”고 말한다. 장진 감독과 함께 작업하던 당시 에 합류해 만든 정치 풍자극 <여의도 텔레토비>는 의 전성기를 이끌며 두터운 팬층도 남겼다.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코미디들도 있지만, 공감으로부터 나오는 웃음은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완벽한 타인> 또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풍자와 공감 속에서 진정한 웃음이 나온다.” <완벽한 타인> 속 식탁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소품이었던 식탁이 지금은 우리 집에 와 있다. 감독님이 촬영 끝난 뒤 선물로 주셨다. 7인의 배우가 둘러앉을 수 있도록 영화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식탁인데, 이제는 내가 매일 아침 앉아서 글을 쓰는 작업용 책상이 되었다.” 각본 2017 <바람 바람 바람> 2014 <우리는 형제입니다> 2012 <미나문방구> 2011 <적과의 동침> 2009 <킹콩을 들다> 2007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각색 2018 <원더풀 고스트> 2012 <미쓰GO> 2010 <된장>

다큐멘터리 <치킨인류>를 연출한 이욱정 감독, 제작사 배달의 민족의 장인성 이사,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트렌드를 읽는다”

“영화와 음식만큼 힘들고 지친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인류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요리 학교 르코르동 블루에서 요리를 배운 탐험가, 이욱정 감독은 말한다. KBS에서 PD로 일하며 다큐멘터리 <누들로드>(2009), <요리인류>(2015) 등 한국 음식 콘텐츠의 도약을 이끈 이욱정 감독이 이번엔 배달앱에 기반한 푸드테크 서비스의 선두주자인 배달의 민족과 만났다. 제4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치킨인류>는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식재료인 닭을 좇아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닭요리와 사람의 문화를 펼쳐내는 이른바 음식 오디세이다. 이 장대하고도 맛있는 여행을 책임진 이욱정 감독과 시종 유쾌한 조력자였던 배달의 민족 장인성 이사에게 만남을 청했다. -KBS 이욱정 PD와 배달의 민족이 어떻게 함께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나. 작품 기획 단계가 궁금해진다. =이욱정_ 배달의 민족이 <매거진 B>와 함께 만드는 <매거진 F>를 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기획이다. 기존의 음식 잡지와는 다른 결을 가진, 재미와 깊이를 모두 가진 특별한 콘텐츠였다. 창간 소식을 전해들음과 동시에 <매거진 F>가 매호 다루는 음식 콘텐츠를 종이 매체에만 담지 말고 일종의 원 소스 멀티 유즈 프로젝트로 실현하면 어떨까 하고 의견이 모아졌다. 끈질긴 시간성을 가지는 두 매체, 매거진과 다큐멘터리가 쌍을 이루게 해 더욱 값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자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이란 회사의 실험정신이 특히 내가 꾸린 ‘요리인류’ 브랜드(이욱정 PD는 <요리인류>를 비롯해 <요리인류: 도시의 맛>(2017) 등 음식 문화에 인류학적 식견을 더한 자신만의 다큐멘터리 브랜드를 구축했다. KBS 내 ‘요리인류’팀을 꾸려 지금도 콘텐츠 제작에 힘쏟고 있다.-편집자)와 좋은 시너지를 낼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장인성_ 배달의 민족이 왜 뜬금없이 음식 매거진이냐,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 의아한 반응들을 보고 <매거진 F>를 시작하길 잘했구나 싶더라. 배달의 민족 하면 무조건 야식, 치킨 등을 떠올리는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만든 시도였다.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가 우리의 모토다. 굳이 어딘가로 가지 않고도, 배가 고플 때 좋은 음식으로 언제든 배를 채울 수 있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조금 더 넓고 건강한 방식으로 음식 문화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배달의 민족의 마음이 깃든 사업이다. 다큐멘터리 <치킨인류>를 만들고, <매거진 F>에서 소금이나 토마토를 이야기한다고 해서(1호 소금, 2호 치즈, 3호 토마토, 4호 치킨, 그리고 현재 준비 중인 5호는 쌀을 다룰 예정이다.-편집자)회사의 매출이 올라가진 않는다. (웃음) 문화에 기여한다는 마인드로 꾸준하고 진정성 있게 가치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여러 국가 중 한국 분량이 아예 빠져 있는 것은 의외였다. 이욱정_ 이전 다큐멘터리에서도 한국 분량은 많지 않은 편이었다. 다분히 의도한 구성이다. 요리인류 프로그램과 한식 전문 프로그램을 분리하려고 한다. 요리인류 기획의 핵심은 음식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특히 이번 극장판 <치킨인류>의 경우,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로컬 프라이드치킨만 소비하지만 인류의 많은 주방에서 닭이 굉장히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리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장인성_ 감독님의 인류학적 취재가 특히 빛을 발할 수 있는 구성이다. 치킨이란 음식이 각 나라의 문화별로 사람에게 가지는 의미, 그리고 그 음식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마음과 행복을 얻는지 더 큰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극장판 외에 웹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잘개 쪼개 온라인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이욱정_ 극장판에서 분량상 편집한 부분도 웹에서는 볼 수 있게 된다. 한국의 치킨에 대한 내용도 한 에피소드를 차지한다. 나는 오늘날의 인류를 인스턴트 인류라고 불러보고 싶다. 인스턴트 푸드, 인스턴트 러브 모두 부정적인 어감을 갖고 있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인스턴트’하다는 건 인류의 본능 중 하나다. 이제는 그 본래 의미에 가깝게, 시대가 인식하는 인스턴트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기 욕망을 ‘즉각적으로’ 처리하고 싶어 했다. 다만 기술이 뒷받침해주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접 손편지를 썼고, 배가 고프면 직접 나가서 동물을 사냥했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테크놀로지가 해결해준다. 그런 면에서 콘텐츠의 소비 형태도 시대의 흐름과 발맞춰야 한다. 아무리 스토리텔링과 세부 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보 및 지식 위주의 다큐멘터리를 1시간 내내 보는 것은 지루할 수밖에 없는 시대인 거다. 지하철 타고 이동할 때 보는 용도로, 딱 10분짜리 에피소드를 구성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매일 출퇴근하면서 한 에피소드씩 볼 수 있게. 웹다큐 포맷에 워낙 관심이 많은 터라, 배달의 민족과 <치킨인류>에 이어 <반찬인류>까지 준비 중이다. 요리인류팀은 언제나 다큐멘터리의 기발함과 신선함을 고민한다. -특히 프라이드치킨을 중심으로 한 배달 문화의 강세가 뚜렷하고, 음식 콘텐츠가 넘쳐난다. 지금 한국의 식문화에 두분은 어떤 해석을 더해줄 수 있을까. 장인성_ 이제는 더이상 미리 전단지를 모으거나 정보를 찾아놓지 않아도, 20~30대 젊은 사람들과 1인 가정이 쉽고 편안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다. 그만큼 인프라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해주던 밥, 그러니까 집밥의 의미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이욱정_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 가족 해체와 1인 가정의 증가, 입시나 취업 경쟁이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시대라는 것도 큰 이유가 된다. 지금의 어린 세대들은 엄마가 시켜준 밥, 엄마랑 같이 어느 식당에 가서 먹은 밥도 소중하게 추억할 것이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트렌드라고 본다. 가사노동으로서의 요리는 줄어드는 대신, 놀이로서의 요리가 조금씩 떠오르고 있다. 일상의 끼니는 배달 음식, 테이크아웃, 인스턴트 식품으로 간편하게 해결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육체와 정신을 움직이면서 요리를 통해 나를 깨달아가는 행위의 쾌감을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지. 미디어 테크놀로지, 푸드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만들어낸 결과다. 어느 시대보다도 요리를 적게 하면서 요리에 가장 관심이 많은 아이러니한 시대이기도 하다. 아마 주방용품 소비도 가장 높은 시대가 아닐까? 장인성_ 요리하는 남자가 주목받는 것, 음식 방송이 사랑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제4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했다. KBS 방영이 아닌 영화제로 작품을 첫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이욱정_ 텔레비전은 게시판 글이나 댓글을 통해 반응을 접하는 반면, 영화감독들은 관객과 바로 대면하지 않나. 이번에 몸소 체험하고서 영화감독들의 무대인사 일정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실감했다. (웃음) 객석에 앉아서도 자꾸 관객의 반응을 보게 되고, 나중에 무대에 나가서도 부담감이 상당했다. 한편으로는 큰 스크린으로 작품을 확인하는 보람도 있더라. 기껏 고생해서 UHD로 작품을 찍었더니, 방송 플랫폼의 특성상 주로 스마트폰, 노트북으로 다시 찾아보게 되는 형태라 화면이 잘 전달될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음식을 만들자마자 식기 전에 빨리 와서 먹으라고 재촉하게 되는 요리사의 마음과 비슷한 이치다. -<치킨인류> 여행 중 가장 맛있었던 닭요리는. 이욱정_ 아마 저크치킨이 아닐는지. (웃음) <요리인류: 도시의 맛> 시리즈에서 뉴욕편을 촬영할 때 브루클린에서 저크치킨을 먹은 적이 있다. 식당 공터에서 드럼통을 이용해 만드는 팬 바비큐의 일종인데, 정말이지 황홀하더라. 이후에 치킨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면 저크치킨은 반드시 넣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이번에는 저크치킨의 본고장인 자메이카로 가서 그곳의 노예제 역사까지 함께 살펴본다. <치킨인류> 제작 배달의 민족 / 감독 이욱정 / 제작연도 2018년 / 상영시간 72분 인도, 미국, 중국, 자메이카, 일본 등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류의 전천후 음식인 닭을 탐구한다. 그 어느 곳에서도 금기시되지 않는 식재료이면서, 고급 요리와 서민음식을 넘나들며 다양한 형태를 보이는 닭요리가 <치킨인류>를 가득 채운다. 여기에 이욱정 감독은 닭이라는 생명체의 태동에서부터 각 지역의 역사·문화적 관계를 짚으며 인류 보편의 미식 감각을 노래하기에 이른다. 수많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실행력, 그 여정에 깃든 사람과 음식에 대한 무한한 낙관주의가 <치킨인류>를 보는 경험을 배부르게 만든다.

[제7회 스웨덴영화제②] <베리만 아일랜드> 마리 뉘레로드 감독 - 그는 외로웠던 사람

-1980년 스웨덴 공영방송 에 입사해 아직까지 일하고 있다. 기자, 프로듀서, 다큐멘터리 감독 등 다방면을 섭렵 중인데. =뉴스 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1986년부터 문화예술부로 자리를 옮겼다. 지극히 사적인 관심에서 지원한 일이었다. 지금도 문화예술계 소식을 종종 뉴스로 전하고 있지만, 다큐멘터리 작업에 좀더 집중하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용 다큐멘터리의 책임 프로듀서로도 활동 중이다. -잉마르 베리만이 노년을 보낸 포뢰섬을 방문해 그를 인터뷰한 유일한 언론인이다. =1983년에 인터뷰차 베리만을 처음 만났고, 1997년에 의 문화지에 들어갈 긴 인터뷰를 나눈 것이 중요한 계기를 됐다. 이후 그가 나에게 편견 없이 대해주어서 고마웠다고 전화를 해왔다. 당시 업계에서 잉마르 베리만은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나는 그와의 대화가 꽤 편안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더 심도 있는 만남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한 그때 이후로 무려 5년이 지나서야 포뢰섬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인터뷰 준비가 아주 잘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지. 베리만에 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읽을 수 있을 만큼의 긴 기다림이었다. (웃음) -85살의 베리만을 담은 <베리만 아일랜드>를 2004년 발표했다. 다큐멘터리를 실질적으로 촬영한 시점과 기간은. =약 5주간 촬영했다. 그전에 스톡홀름에서 5일 정도 촬영한 분량이 있었고. 그렇게 30시간 정도의 푸티지들을 얻었다. 2004년 에서는 각각 1시간 분량의 3부작(영화, 연극, 사적인 삶)으로 편성돼 극장판보다 훨씬 긴 분량이 방영되었다.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이나 다큐멘터리는 스웨덴 방송가에서 시청률이 어느 정도 되나. =<베리만 아일랜드>의 경우 50만명 정도. 많은 수라고는 보기 어렵다. 베리만은 사실 스웨덴에서조차 단 한번도 대중적인 적이 없었던 예술가다. 어둡고 어려운 흑백의 작가로 취급되는 건 스웨덴에서도 똑같다. 그나마 <화니와 알렉산더>(1982)가 스웨덴의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을 담고 있기에 좀더 쉽게 공유되는 영화다. (웃음) -반면에 TV드라마의 경우 전 국민적 인기를 얻기도 했는데. =에서 드라마로 제작된 6부작 미니시리즈 <결혼의 풍경>(1973)은 방영시간대가 되면 길거리에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드라마 종영 이후 스웨덴의 이혼율이 전보다 2배 가까이 치솟았다는 보고도 있다. 당시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전화번호부에서 잉마르 베리만을 찾아서 개인적으로 전화도 걸 수 있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베리만에게 결혼 생활에 대한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일동 웃음) -스웨덴의 텔레비전 보급과 동시에 베리만은 매우 빨리 TV매체로 뛰어들었다. 방송 관계자로서 그의 행보를 평가한다면. =베리만은 1957년에 첫 번째 텔레비전 연극을 선보였다. 당시에 보급된 전체 텔레비전 수가 겨우 2만대 정도였으니, 그는 다른 영화감독들과는 매우 다른 선택을 한 셈이다. 이른바 얼리어답터가 아닐까. 1950년대에 5개의 텔레비전 연극을 만들었고, 1975년에는 오페라 <마술 피리>를 스웨덴어로 바꾸어서 TV 관객층을 넓힌 것이 지금까지도 특별하게 기억되는 점이다. 그는, 영화는 하이클래스의 예술이고 텔레비전은 그보다 수준이 낮다는 인식을 싫어했다. -자서전 <마법의 등>에서 그랬던 것처럼 <베리만 아일랜드>에서도 베리만은 5번의 결혼과 9명의 자녀들에 관한 죄책감을 털어놓기도 하고, 과거 인터뷰에서 <외침과 속삭임>(1972)에 대해 “자신의 어머니와 모성에 대한 영화”라고 답한 것이 순간적으로 지어낸 말일 뿐이었다고 고백하는 등 매우 덤덤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나타나 인상적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영화를 보았을 때, 나조차도 깜짝 놀라게 된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에서 베리만은 자신의 작품보다는 사적인 삶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촬영 당시 그는 직업적으로 은퇴한 상태였고, 외로운 한명의 인간이었다. 포뢰라는 지독히도 고요한 외딴섬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냈다. 많은 영화계 사람들이 젊은 시절의 베리만이 보였던 예민하고 불같은 성격을 두고 악평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다큐멘터리 촬영 후 그를 변호하는 입장이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인문학과 디지털 영상 테크놀로지의 조화를 추구한다

학과소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국내 영화산업의 발전과 역사를 함께했다. 1990년대 초 국내 영화계에 대기업의 자본이 유입되면서 영화산업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는 한국 블록버스터의 출현으로 이어지며, 지금과 같은 한국영화 전성시대를 이루는 계기가 됐다.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당시 국내 영화산업의 성장에 핵심 역할을 한 삼성영상사업단의 권유로 1998년 개설됐다. 이후 20년간 성균관대학교가 길러낸 영상 전문 인재들은 대형 영화 투자·배급사와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비롯해 홈쇼핑-방송사, 온라인-모바일 게임업계, 통신회사, 광고기획사, 문화콘텐츠 관련 공공기관까지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활동 중이다. 이렇듯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분야의 실무 활동가를 길러낼 수 있었던 힘은 인문사회학적 탐구에 기반을 두고 최신 영상 콘텐츠의 트렌드와 기술을 조화롭게 다루는 커리큘럼에 있다. 인문학과 영상학 영역을 결합한 영상미학, 영상스토리텔링, 정신분석과영상연출 등의 과목을 통해 학생들이 인간 심리를 심도 깊게 탐구하고 개념화될 수 없는 것들을 영상을 통해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뿌리 깊은 인문학 특화 교육에 더해 21세기 첨단영상 분야를 이끌어갈 영상 전문인을 양성하기 위한 과목도 눈길을 끈다. 디지털 영상 공간 유저들의 행위를 연구하는 인터페이스와인터랙션디자인, 하나의 스토리를 다양한 플랫폼에서 콘텐츠화하는 법을 배우는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뉴미디어콘텐츠워크샵 등의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은 새로운 매체인 플랫폼에서의 콘텐츠를 탐색할 기회를 얻는다.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와 같은 전통적인 영상 영역뿐만 아니라 실험영화, 인터랙티브 영상, 뉴미디어, 트랜스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폭넓은 커리큘럼이 바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의 핵심 경쟁력이다. 영상학과의 커리큘럼을 책임지는 교수진도 탄탄하다. 풍부한 실무 경험을 가진 교수진들은 학생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역할을 한다. 국내 콘텐츠 분야를 일군 1세대인 안상혁 교수는 90년대 다양한 콘텐츠 유형을 기획, 제작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성 있는 영상학과의 편제를 구성했다. 새로운 미디어를 도입하여 영상학과의 지평을 넓힌 장본인들도 있다. 뉴욕에서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이준희 교수와 현대진 교수는 각각 게임 인터랙티브 분야와 모션그래픽 분야를 맡고 있다. 그 밖에도 실무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겸임 교수진이 영상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넷플릭스나 유튜브와 같은 혁신적인 플랫폼의 등장으로 미디어 산업의 구조가 재편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시장의 흐름을 읽고 변화에 준비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 주력한다. 안상혁 학과장은 영상학과의 폭넓은 커리큘럼에 대해 “무한하게 느슨해진 열린 구조의 교과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범주에 도전하고, 졸업 후 다양한 영상산업으로 진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소규모 창업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추세에 따라 학과에서 선발된 창업팀이 유튜브 채널용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창업동아리실과 촬영 및 편집 장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입시전형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영상학과의 2019년 입학정원은 총 37명이다. 2018년 수시 모집에서는 예체능 특기/실기 우수자 5명, 글로벌 인재 15명, 논술우수자 10명의 인원을 선발했다. 정시 모집에서는 7명을 선발하며 나군에서 지원을 받는다. 정시 모집의 경우 전형요소로 수능 점수 100%를 반영하는 일반 전형으로 진행한다. 수능 영역별 반영비율은 국어 40%, 수학 40%, 탐구(사회 및 과학) 20%이며, 영어 및 한국사에는 별도의 가산점을 부여해 합산한 후 총점 순으로 선발한다. 원서접수는 2018년 12월 31일(월) 오전 10시부터 2019년 1월3일(목)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새로운 영상 플랫폼이 열어놓은 가능성의 세계”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안상혁 학과장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커리큘럼의 특징은. =영상학과의 교과과정은 영화, 방송, 애니메이션, 게임, 모션그래픽 등의 세부 영역이 나선형 구조를 이룬다. 유튜브같이 새롭게 등장하는 영상 플랫폼에서도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영상학과 입학을 원하는 신입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사람들은 아직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 공간에 관심을 기울인다. 새로운 영상 플랫폼이 열어놓은 ‘유희’의 공간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다면 영상학과에 지원하라.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영상학과의 비전은 무엇인가. =영상 콘텐츠 산업의 지형은 대학의 외부조건에 의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에서는 새로운 영상 플랫폼에서 소프트 파워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영상스토리텔링에 좀더 집중하려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워주는 것이 바로 영상스토리텔링의 의무라 생각한다. 학과에서는 영상을 통해 사람들이 꿈을 꾸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려 한다. 동시에 인간과 테크놀로지 사이를 균형 잡아주는 연습장이 되는 것이 학과의 비전이다. 홈페이지 ftm.kr 전화번호 02-760-0661 교수진 안상혁, 변혁, 이준희, 현대진 커리큘럼 영상학원론, 촬영기초, 영화사, 영상음악실습, 영상음향실습, 인터렉티브영상, 인터렉티브아트, 애니메이션기초, 시나리오워크샵, 영상미학, 영상스토리텔링, 인터페이스와인터랙션디자인, 디지털디자인, 디지털비디오와무빙이미지, 게임디자인, 캐릭터애니메이션, 미디어스터디, 영상편집워크샵, 영상편집기초, 영화사연구, 게임워크샵, 영상비평론, 유튜브플랫폼과실험적인MCN콘텐츠, 영상학현장실습, 모션그래픽워크샵, 정신분석과영상연출, 실험영상워크샵, 광고연출, CF워크샵, 스튜디오촬영워크샵, 장편시나리오워크샵, 다큐멘터리워크샵, 영화연출워크샵, 애니메이션연출, 뉴미디어시대의영상미학, 다큐멘터리의이해,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방송포맷디자인워크샵, 뉴미디어콘텐츠워크샵, 콘텐츠기획과프리젠테이션, 영상학현장실습, 영화기획제작워크샵, TV드라마워크샵, 캡스톤디자인졸업작품워크샵

[파리] 엉뚱한 코믹영화 <싱크 오어 스윔> 프랑스 박스오피스 석권

<싱크 오어 스윔>은 코믹 배우 출신인 질 를루슈가 처음으로 야심차게 혼자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 (그는 이전에 장 뒤자르댕과 함께 <플레이어스>(2012)를 공동 연출한 적 있다) 삶에 환멸을 느낀 8명의 중년 남성들이 국제수중발레대회에 참가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다룬 작품이다. 이 어정쩡한 팀은 2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는 가장(마티외 아말릭),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망한 중소기업 사장(브누아 포엘부드), 정신병 앓는 어머니를 둔 신경질적 이혼남(기욤 카네), 50살이 넘도록 로커의 꿈을 꾸는 철없는 아버지(장 위그 앙글라드), 어린 시절 양부에게 학대받은 수영장 관리인(필립 카트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의 훈련을 맡은 이는 왕년에 수중발레 선수로 잘나갔지만 현재는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고 있으며 동네 수영장 코치가 된 독신 여성(버지니아 엘피라)이다. 이들 모두에게 수중발레는 금남의 운동도 아니고, 물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아야 하는 답답한 훈련도 아니다. 이들에게 수중발레는 가장으로서, 남자로서, 아버지로서 당당하게 자리잡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다. 이 프랑스식 ‘필 굿 무비’는 10월 24일 개봉 첫주부터 관객 117만7534명을 모았고, 11월 27일 기준으로 382만2502명의 관객 몰이를 하면서 올해 개봉한 프랑스영화 중 <투치3> <츠티 가족> <택시5> 다음으로 많은 관객을 불러모았다. 이에 영화 주간지 <텔레라마>는 “탄력 있고 감동적인 프랑스식 <풀 몬티>”라고 평했고, 영화 월간지 <스튜디오>는 “완벽한 필 굿 무비”라고 극찬했다.

[넷플릭스 신작 영화③] 코언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 - 황야에서 죽음까지 코언의 시도는 계속된다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코언 형제의 18번째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가 11월 16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배급되는 코언 형제의 첫 작품이자, 35년의 활동 기간 중 처음으로 디지털로 촬영했으며 여태 만든 작품 중 러닝타임이 가장 길다. TV시리즈로 계획했다가 장편영화로 방향을 바꾼 작품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코언 형제는 최초에 쓴 영화 시나리오 그대로 촬영했고 TV시리즈로 의도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루머를 바로잡았다. 넷플릭스와의 기념비적 만남에 관한 <인디와이어>의 집요한 질문에 “애초에 할리우드 영화사에는 시나리오를 보여줄 계획도 없었다. 자금을 대줄 리 없다고 생각했다”는 에단 코언의 대답은 자못 상징적이다. 조엘 코언은 “마블 영화나 대형 프랜차이즈 액션영화처럼 요즘 영화사들의 주요 업무가 아닌 작품”, 즉 수익성이 모호한 <카우보이의 노래>와 같은 작품에도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가능성”을 가장 중요한 경험으로 언급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시네마의 완성을 위한 노력들, 이미지와 사운드의 디테일을 큰 스크린으로 확인하는 것은 텔레비전의 경험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확신한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넷플릭스 스트리밍 영화 중 지극히 소수만이 누리는 극장 병행 상영의 기회를 누렸다. 지금으로서는 북미에서 제한적으로 극장 상영을 실시한 것이 넷플릭스와 코언 형제가 내린 최선의 타협점이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어떤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는 6개의 단편을 엮은 선집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것 같은 영화다. 감독들은 각각의 단편을 지난 25년간 하나로 묶으려는 목적 없이 천천히 그리고 개별적으로 써내려갔다. 서랍에 넣어둔 짧은 이야기들이 19세기 말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공통의 테마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형제가 자각한 것은 10년 전쯤의 일이다(<할리우드 리포터>). 앤솔러지 형식을 계획한 후 본격적으로 단편들을 소급하는 과정에서 우선 고심했던 것은 배치였는데, 코언 형제는 이야기가 쓰인 순서, 그러니까 긴 시간 동안 이야기가 스스로 흘러나오고 정렬된 순서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각 단편의 내러티브를 드라마틱하게 응집하려 애쓰지 않는 태도는 <카우보이의 노래>가 더욱 우아하고 기묘하게 빛나도록 만든다. 프레데릭 레밍턴(서부 개척 시대의 화가, 황야의 풍경과 인디언들을 주로 그렸다) 스타일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각 단편의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를 인서트 삼아 영화가 이어지는데, 이 낡은 책의 면면에서 단편과 앤솔러지, 그리고 서부극에 대한 코언 형제의 공고한 취향이 드러난다. 선집의 목차를 훑어보는 요량으로 영화를 간단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1장. <버스터 스크럭스의 발라드>는 노래와 사격 실력에 있어 최고를 자부하는 총잡이(팀 블레이크 넬슨)의 짧은 활약상을 그린다. ‘인간혐오자’라 불리는 말끔한 백색 슈트의 무법자는 죽음 앞에서 기이할 정도로 유희적인 태도를 보인다. 코미디와 뮤지컬 장르, 그리고 자비 없는 폭력이 뒤섞인다. 2장. <알고도네스 근처에서>는 알고도네스 지역 인근의 은행을 털려는 카우보이(제임스 프랭코)의 수난을 담았다. 어리석은 선택과 반복되는 불운이 담긴, 코언 형제 특유의 테마가 두드러지는 단편이다. 3장. <밥줄>의 사지가 없는 장애인 배우(해리 멜링)와 그를 돈벌이로 이용하는 방랑극단의 단장(리암 니슨)은 점점 줄어드는 수입으로 고전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의 <오지만디아스>, 창세기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템페스트>, 그리고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선언에 이르는 장대한 낭독극이 펼쳐진다. 4장. <금빛 협곡>은 의심과 긴장에 지친 관객에게 때맞춰 사탕을 물리는 에피소드다. 찬란한 미지의 초원, 노동요를 흥얼거리며 밤낮으로 금광을 찾아 땅을 파는 늙은 채굴꾼(톰 웨이츠)이 있다. 노숙하며 황금에만 골몰하는 속물적인 인간이지만, 배고픈 와중에 부엉이 둥지의 알을 딱 한개만 집어오는 의외의 양심도 지녔다. 5장. <곤경에 빠진 아가씨>는 광활한 오리건 트레일을 가로지르는 느린 마차의 행렬 속으로 합류한다. 두명의 길잡이에 의지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젊은 여성(조 카잔)은 자꾸만 시끄럽게 짖어대는 애완견 프랭클린 피어스(미국 14대 대통령의 이름) 때문에 난처해진다. 6장. <시체>는 역마차 안에 모인 5명의 사람들이 벌이는 긴 수다를 엿듣는다. 이들은 어떻게 한자리에 모였나, 그리고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코언에 의한, 코언을 위한 서부극 코언 형제는 이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와 <더 브레이브>(2010)에서 서부를 탐험한 적이 있다. 미국 중북부에 위치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데뷔작 <블러드 심플>(1984)에서부터 텍사스를 영화적 고향으로 택했다. 마침 전작 <헤일, 시저!>(2016)에 카우보이 캐릭터가 등장했던 것까지 더하면, 잊을만하면 서부로 돌아오고야 마는 후천적 습성을 지닌 모양새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단편마다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고전 할리우드 서부극을 직접적으로 인용하고 변주해나간다. 이를테면 1장과 3장에서는 자연색이 극대화된 화면을 통해 테크니컬러가 보급된 1930~50년대 서부극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팀 블레이크 넬슨이 연기하는 초연한 총잡이는 샘 페킨파 스타일의 급작스럽고 폭발적인 폭력성을, 제임스 프랭코의 카우보이는 세르지오 레오네로 대표되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주인공을 비튼 결과처럼 보인다. 조 카잔에게 석양과 함께 다가오는 급작스러운 작은 로맨스 또한 서부극의 사랑받는 일부다. 이처럼 <카우보이의 노래>는 서부극이 다양한 장르와 이미지를 포섭해온 미국영화의 거대한 신화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코언 형제는 자신의 레퍼런스들을 대단한 무대배경쯤으로 전락시킨다. 모뉴먼트 밸리의 풍경, 깨끗하게 흰 모자를 쓴 무법자, 먼지 속의 카우보이, 방랑자들, 그리고 역마차까지. 특징적인 웨스턴 장르의 이미지로 쐐기를 박듯 각장을 열고서, 곧바로 삶의 불확실성을 향한 집요하고 치명적인 곡예를 시작하는 식이다. 유일하게 불가피한 것은 내정된 죽음뿐이다. 예측 불가능의 땅인 서부의 황야는, 불확실한 인간의 삶과 도덕, 죽음을 탐구하기 위한 캔버스로서 코언 형제에게 운명적이다. 코언 형제는 무엇을 믿는가 코언 형제는 미리 써둔 단편들로 앤솔러지 필름을 만들기로 결심한 후, 앞선 이야기들을 수렴하고 영화의 문을 닫는 역할로 마지막 6장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좁은 역마차 안, 죽기 전에는 도저히 같은 공간에 모일 일이 없어 보이는 세명의 낯선 승객(사냥꾼, 중산층 부인, 프랑스인)과, 정체가 불분명한 두 남자가 마주보고 있다. 각자의 경험치에 근거한 확신에 찬 대화들로 분쟁을 키워가던 세 사람은 갑자기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아일랜드 남자의 소박한 포크송과 (<시리어스 맨>(2009)과 <더 브레이브>에서 이미 반복한 적 있던) 영국 남자가 들려주는 ‘한밤중에 찾아온 손님’에 대한 오싹한 이야기로 순식간에 잠잠해진다. 세 승객을 유심히 지켜보던 남자는 “다 아는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매번 어린애처럼 정신을 빼앗긴다”고 미소 짓는다. 세명의 승객은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에야 자신들이 어디에 왔는지 서서히 알아차리게 된다. 주위는 점점 더 어둡고 푸른빛에 잠긴다. 1장의 밝은 빛과 6장의 검은 어둠은 모두 초현실적인 세계로 이어진다. 오프닝과 엔딩의 대구, 이쪽과 저쪽의 경계 안에 갇힌 <카우보이의 노래>는 코언 형제의 영화에서 구원이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인간의 성격과 자유의지, 합리적 선택을 향한 도덕적 믿음이 대체로 운명이나 부조리에 의해 무마당하는 광경이 그 사이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카우보이의 노래>는 지금껏 코언 형제의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무자비하게 죽음을 바라보면서, 그 집념을 사후세계로까지 이어간다. 미국 온라인 영화 매체 <콜라이더>는 “영화감독으로서 코언 형제가 누구인가의 대답이기보다는 코언 형제가 무엇을 믿는가의 대답으로서 정확한 영화”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코언 형제는 표면적으로 단호한 일관성보다 풍성한 장르적 실험으로 관객을 유인한다. 우리는 기꺼이 다 아는 이야기에 또 한번 의심하고 동요하게 될 것이다.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걸작은 아닐지 몰라도 <카우보이의 노래>는 뜯어볼수록 여유롭고 신비롭다.

<더 파티> 7명의 게스트, 71분간의 폭로전

<더 파티>는 흑백의 화면, 한정된 공간에서 어느 날의 저녁 식사가 불러온 잔인한 희비의 교차를 그린다. 1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동안 파티는 계속해서 병적으로 비틀어질 뿐이다. 보건부 장관에 임명된 자넷(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은 축하파티 겸 6명의 친구들을 초대한다. 냉소적인 에이프릴(퍼트리샤 클라크슨)과 고트프리드(브루노 간츠), 임신부인 지니(에밀리 모티머)와 파트너 마사(체리 존스), 그리고 훤칠하지만 신경과민인 은행가 톰(킬리언 머피)이 자신의 아내 마리안이 곧 올 거리고 계속해서 기다린다. 지나치게 우울한 자넷의 남편 빌(티모시 스폴)을 포함해 7인의 인물들은 파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자석에 반응하는 나침반처럼 각자의 극점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 모두 어떤 식으로든 세상이 불만스럽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 이념 논쟁, 건강보험 문제 등 <더 파티>가 언급하는 이슈와 신랄한 대화를 엿듣는 것은 분명 즐거운 경험이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 영화를 “새로운 브렉시트 시대의 코미디”라고 평했다. <올란도>(1993), <탱고 레슨>(1997), <예스>(2003) 등을 만든 샐리 포터 감독이 영국의 정치 상황을 주시하면서 만들어낸 <더 파티>는, 다양한 개인에게서 우러나오는 이상과 실천 사이의 모순, 편견과 아집, 그리고 사회적 제스처들로 포장된 중산층의 허약함을 드러냄으로써 익살맞은 정치 풍자극으로 기능한다. 영화의 첫 장면, 화면이 밝아지고 문이 열리면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가 관객을 향해 총을 겨누는 이미지를 다시 곱씹게 되는 작품이다. 샐리 포터 감독과 꾸준히 함께 작업해온 알렉세이 로디오노프 촬영감독의 핸드헬드 카메라가, 한 공간 안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배우들의 동선을 따라 은밀히 떠돈다.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영화다.

<버블 패밀리> 마민지 감독 - 도시, 부동산, 가족… 이야기의 근원

셀카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부터 셀카를 찍으며 우아하게 중산층의 삶을 누렸지만 지금은 부동산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노해숙). 한때는 중소 건설회사의 사장님이었지만 지금은 “무능하고 권위만 남은 전형적인 가부장”이 돼버린 아빠(마풍락). 잠실의 아파트 키드로 자랐지만 지금은 학자금 대출과 월세조차 버거운 딸 마민지. <버블 패밀리>는 부동산으로 흥하고 망한 가족의 역사를 마민지 감독이 직접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버블 패밀리>가 마민지 감독에게 데뷔작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건 “오랫동안 세상에 가졌던 의문들,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뿌리를 다 건드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큰 숙제를 어렵게 마친 느낌”이라는 마민지 감독을 만났다. -<버블 패밀리>를 만들게 된 최초의 동기는 무엇인가. 도시 개발사와 부동산으로 흥망성쇠를 경험한 가족의 이야기 중 어느 것이 우선했나. =최초의 심적 동기는 개인적인 것이었다. 영화 초반 내레이션으로도 나오지만, 아버지와 교류 없이 타인처럼 지내다 우연히 종로 지하철역에서 아버지를 보게 됐다. 그날,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장사를 했던 부모님의 역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시 개발사 이야기가 들어왔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의 도시 개발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부모님도 그러한 영화의 기획의도에 동의해 촬영에 협조해주었다. 촬영하면서 가족의 이야기가 더 중심이 돼 버렸는데, 한 가족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들여다볼수록 도시 개발사 또한 더 잘 보이겠다고 생각했다. -<버블 패밀리>의 가장 큰 매력이자 미덕은 사적 다큐멘터리로서의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가족의 모습이나 집안 형편 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용기가 있다. =내 기준으론, 충분히 솔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촬영한 영상 중에서 부모님이 싫어하는 것,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 내가 보기에 불편한 것들은 많이 걷어냈다. 예를 들어 부동산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어머니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 같은 건 어머니가 공개를 원하지 않아서 뺐다. 나름대로 정제된 작업물이다. 너무 솔직한 건 때로 불편하니까. -어머니가 과거에 찍은 홈비디오 영상이 영화의 중요한 재료로 쓰인다. =10년 넘게 장롱 안에 있던 테이프를 그야말로 유물 발굴하듯 발굴해냈다. (웃음) 8mm 테이프를 디지털로 복원했는데 다행히 영상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 이번에 영화 만들면서 나도 영상을 처음 봤다. 어머니의 취미가 사진 찍기다. 내가 20살이 될 때까지 1년에 영상 테이프 하나, 사진 앨범 하나씩을 만들어 선물하려 했다는 얘기를 밥 먹듯이 하셨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12살이 된 이후로 그 기록이 끊겼다. 그때부터 과거에 찍은 테이프는 장롱에서 잠자고 있었고.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사회생활을 카메라에 담는다. 어머니가 일하면서 겪는 곤란,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순간까지 가까이서 목격하는데, 감독이자 딸로서 그 상황을 기록해야 하는 감정은 복잡했을 것 같다. =영화를 찍기 전에 각오를 많이 했다. 비정규직 여성의 이야기나 가족의 관계에 대한 극영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어서 마음의 준비가 조금은 됐던 것 같다. 가족 문제 때문에 감정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던 건 20대 초반이었다. 이번엔 거리두기가 많이 돼 있어서 촬영할 때 담담했다. 스탭들이 나보고 독하다 그러더라. 독한X이라고. (웃음) -거리두기가 마음먹는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닌데. =만약 카메라 없이 그 상황을 목격했다면 힘들었을 거다. 카메라가 좋은 매개가 됐다고 생각한다. 카메라가 있어서 아버지와 외출도 많이 하고,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어머니가 서울머니쇼에서 쫓겨나는 장면은 어머니가 같이 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찍으러 간 거다. 카메라가 존재하기 때문에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었고, 카메라 앞에서 드러내는 솔직함이 있었다. -아버지의 경우는 어땠나. 영화 촬영을 하면서 발견한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이 있었나. =아버지는 끝까지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비자금을 보여주지 않았나. (웃음) =비자금은 보여주셨는데. (웃음) 이야기를 나누기는 까다로웠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예전에 아버지가 지었던 건물을 구경하러 다니는 일은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나중에는 왜 더 찍으러 가지 않냐고 섭섭해하셨다. 영화 찍기 전과 후 아버지와 나 사이에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통화 시간이 길어진 거다. 예전엔 30초 만에 전화를 끊었는데 지금은 2분이나 통화를 한다. -아버지 캐릭터를 보면서 쉽게 극복하기 힘든 세대차를 목격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결코 사랑할 수도 없지만 이해하고 살아가야 하는 가족이 결국 아버지다. =이 영화가 가족주의로 봉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아빠 힘내세요’의 문화 속에서 아버지들에 대한 동정은 있었지만 고생한 어머니들에 대한 이해는 얼마나 있었던가 싶다. 정당화하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 이제 화해했어요’라고 쉽게 말할 순 없었다. 한편으론 부모님의 과거사를 듣고 한국의 도시 개발사 속에서 부모님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부모님이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견지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 문제가 아닌 건 아니다. 얼마 전에도 어머니가 땅에 투자하셨다. 영화는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는 걸 느끼고 있다. (웃음) -가족주의로 봉합되는 것을 경계했다고 했는데, 가족사진을 찍고 삼겹살을 먹고 일출을 보러 가는 장면들로 엔딩을 구성했다. 어떻게 이 영화를 결론내야 할지, 언제 다큐멘터리의 촬영을 끝내야 할지 고민이 깊었을텐데. =새해에 해돋이를 보러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희망찬 다짐을 하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데 날이 흐려 해가 잠깐 비치고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그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고, 이게 영화의 마지막이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희망할 것이고,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엔딩의 내레이션에 담았다. -도시의 역사와 공간에 대한 관심 외에 최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우울증과 여성주의와 도시 개발을 엮어서 무언가 이야기해보고 싶다. 아직은 막연하게 생각만 하는 중이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프랑스에서 기획한 다큐멘터리의 연출자로 고용됐다. 의사가 되는 게 꿈인 몽골 유목민 마을의 한 소녀가 홀로 도시 울란바토르에 와서 적응해가는 이야기다. <피의 연대기>의 오희정 프로듀서가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작품이다. 제목은 <회색 도시로 가는 길>이고, 촬영 때문에 2월에 몽골에 간다. -독립영화의 경우 상영관 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 <버블 패밀리>의 배급 상황은 어떤가. =좋지 않다. 독립영화를 개봉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체감하고 있다. 심지어 <버블 패밀리>는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서 CGV아트하우스 극장개봉지원상(CGV아트하우스 2주 상영 보장)을 받았는데, 언제 상영을 해준다는 건지 모르겠다. (웃음)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은데 상황이 내 마음 같지 않다. 이렇게까지 독립영화 개봉이 어려운 줄 몰랐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모털 엔진

*<카우보이의 노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검거된 소년 자인의 나이를 치아로 추정하는 광경으로 시작한다. 12살로 짐작되는 소년은 또래보다 체구가 작다. 반면 20대처럼 행동하고 40대의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자인은 욕을 들으면 곧장 욕으로 맞받아치고 연명하기 위해 좀도둑질을 망설이지 않는다. 조그만 소년은 크고 힘센 어른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항상 눈을 위로 치뜨고 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가 좀더 거친 영혼을 가졌다면 이런 모습일까? 베이루트 거리에서 캐스팅된 비전문 배우 자인 알 라피아는 나아가 할리우드 청춘스타 같은 카리스마로 관객을 당황스럽게 한다. 게다가 <가버나움>에서 미성년 배우의 놀라운 연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자인이 돌보게 되는, 걸음마도 못 뗀 아기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는 사상 최연소 명배우로 손색이 없다. 01/04 코언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는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와 함께, 미뤘던 넷플릭스 구독을 결정하도록 나를 떠민 지렛대였다. 아트하우스 스타 감독의 프로젝트이면서 극장 장편영화로서 투자받을 만한 상품성이 애매한 영화를 넷플릭스가 앞으로도 중요한 유인으로 삼을 거라는 징표로 보여서다. 무려 25년 전부터 코언 형제의 서랍 속에 잠들어 있었다는 <카우보이의 노래>는 6편의 독립적- 그러나 주제로 연결된- 이야기의 모음으로, 넷플릭스라는 신규 플랫폼을 만나 마침내 현실화됐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필모그래피의 양과 질 그리고 일관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코언 형제가 반복적으로 회귀한 주제와 형식 패턴을 일별할 수 있는 앤솔러지다. 여섯 챕터는 서부극의 울타리 안에서 코미디, 뮤지컬, 범죄, 멜로드라마, 귀신영화 등의 하위 장르를 끌어들인다. TV 연작은 고려한 적이 없고 단일한 영화의 여섯 챕터로 구상했다는 것이 코언 형제의 변이지만, 결과적으로 <카우보이의 노래>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상에서 보기에 적합하다. 단편소설집의 형식을 취한 이 영화는 섹션의 처음과 끝을 각각 책의 일러스트와 첫 문단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로 열고 닫는데 리모컨이나 마우스로 화면을 멈추면 영화에 다른 뉘앙스를 더하는 문장들을 읽을 수 있다. 여섯 에피소드 사이의 연관을 더듬으려는 팬들에게도 리모컨은 유용하다. 또한 코언 형제 최초로 디지털 촬영을 택한 <카우보이의 노래>는 CG를 비롯한 시각효과가 적극적으로 구사된 작품이기도 하다. 01/05 <카우보이의 노래>가 제목을 따온 첫 번째 에피소드 ‘카우보이의 노래’는 존 포드 서부극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러나 이내 노래하는 총잡이 버스터 스크럭스(팀 블레이크 넬슨)의 기타 안에서 내다보는 특이한 시점숏이 우리가 코언 영화를 보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여섯 단편을 관통하는 주제, 죽음의 불가피성을 제시하는 1화의 톤은 만화적이다. 바에 들어선 버스터가 상의를 털면 피어오른 먼지가 벗은 외투처럼 그의 실루엣을 그리고, 죽은 자는 귀여운 날개를 파닥이며 하프를 안고 승천한다. 노래하는 냉혈한 총잡이 버스터는 말하자면, 웃는 관상의 안톤 쉬거(<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자 만화 <루니 툰>에서의 벅스 버니다. 그러나 메시지는 선명하다. 당신이 제아무리 (심지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화자인) 버스터 스크럭스라고 해도, 내일은 더 손이 빠르고 노래 솜씨도 우월한 총잡이가 지평선 너머에서 찾아와 반드시 당신을 대체할 것이다. 에피소드2 ‘알고도네스 근방’의 어설픈 은행털이(제임스 프랭코)는 본인이 지은 죄에 내려진 형벌은 피하지만 결국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된다. 코언의 전작 중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의 이발사 에드(빌리 밥 손튼)와 비슷한 운명이다. 이 세계에서 죄와 벌의 인과는 뒤죽박죽이다. 각종 냄비로 무장한 늙은 은행원이 강도의 총탄을 튕겨내며 “팬 숏!”이라고 조롱하는 장면이 있는데, 직전에 도둑과 그의 말을 오가는 숏이 마침 짧은 패닝숏이다. ‘알고도네스 근방’의 짤막한 스케치 다음에는 장중하고 암울한 3화 ‘밥줄’이 이어진다. 유랑 흥행사(리암 니슨)와 팔다리 없는 아티스트(해리 멜링)는 철저한 공생 관계다. 흥행사는 아티스트의 재주를 팔아 돈을 버는 대신 그를 먹이고 입히고 용변보는 걸 거든다. 그러나 수입은 줄어만 가고 한 마을에서 재주 피우는 닭을 발견한 흥행사는 어느 쪽이 싸게 먹히는지 계산하고, 결론을 냉정히 실천한다. ‘밥줄’은 <인사이드 르윈>(2013)의 대사, “돈이 될 것 같지는 않구먼”으로 돌아간다. 공교롭게도 코언 형제는 이 에피소드에서 극히 필수적인 숏과 대사만으로 얼마나 경제적인 필름메이커인지 입증한다. 코언이 그리는 웨스턴의 시공, 미국의 초창기의 모든 인간관계는 투명하게 드러나는 거래다. 교환의 양변이 맞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에피소드4 ‘황금빛 협곡’은 늙은 금광 개척자(톰 웨이츠)의 이야기다. 디즈니스러운 CG로 그린 야생동물들이 뛰어노는 처녀지에 들어온 그는 여기저기를 흉하게 파헤치며 금을 찾고 마침내 성공한다. 하지만 이내 불로소득을 원하는 총잡이에게 습격당한다. 금을 발견해도 여생이 얼마일까 의심되는 노인에게, 금은 재산이기보다 삶을 잡아당기는 동력원으로 보인다. 금광은 혈혈단신 개척자의 유일한 대화 상대다. 총잡이를 물리친 노인은 손에 넣은 황금보다 불한당을 이겼다는 자부심으로 기뻐하는 듯하다. 총잡이에 비해 노인은 의롭지만 ‘황금빛 계곡’의 결말은 두 사람 모두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별 차이 없는 얼룩이었다고 말한다. 러닝타임이 가장 긴 에피소드5인 ‘겁먹은 처녀’는 장편으로 확장할 만한 에피소드다. 앨리스(조이 카잔)는 오리건으로 이주하는 도중 오빠를 여의고, 마차 행렬을 감독하는 진중한 카우보이 빌리(빌 헥)에게서 동반자를 발견한다. 솔직하고 공정한 두 남녀는 말하자면 이상적인 인간이다. 물론 결혼에서도 개척 서부에서 인간관계가 거래라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앨리스와 빌리는 기혼 남녀에게 두배로 지급되는 정부보조금을 언급하고, 결혼에 영향받을 동업자와 고용인의 입장을 상의한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라는 부탁을 교환하며 이어지는 구애의 과정은 담백하되 코언 영화에서 본 적 없이 로맨틱하다. 어쨌거나 에피소드5의 선하고 존경스러운 인물들도 죽음의 임의로운 쇠스랑을 면할 수 없다. 방황과 역경을 극복했다고 믿는 순간 회오리바람이 밀어닥친다. <시리어스 맨>(2009)의 결말처럼. 마지막 에피소드 ‘죽을 자만 남으리라’는 주제의 직설적 요약으로, 맺음말이 흔히 그렇듯 주로 야외가 배경인 이전 에피소드들과 달리 창밖으로 CG 하늘만 보이는 마차 내부에서 촬영된 에피소드로 아직 죽음을 인식 못하는 망자들의 여정이다. 세명의 승객은 맞은편의 두 사람이 저승의 안내자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고 어떤 일이 있어도 고삐를 늦추지 않는 얼굴 없는 마부는, 괴테의 시 <마왕>에서 아픈 자식을 안고 폭풍 속을 달리는 아버지와 닮았다. “살았거나 죽었거나”라는 1화의 지명수배 전단 문구가 반복되고 버스터의 노래로 시작한 영화는 저승 가이드의 노래로 끝난다. 인물에게 냉혹하고, 죄와 벌, 덕과 보상의 자동적 연관을 누차 부인하는 <카우보이의 노래>는, 코언 형제를 냉랭한 염세주의자로 여기는 관객에게 새로운 물증이 될 법하다. 죽음이 도처에서 기습하고, 공정한 법은 오직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개척기 서부는, 코언 형제의 세계관과 라이트 모티브를 형상화하는 최적의 무대다. <카우보이의 노래>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코언 형제는 희망적인 영화를 만드는 대신 버스터의 대사로 대꾸한다. “내가 인간혐오자라고요? 아닙니다. 인간들은 성가시고 무례하고 속임수를 부리지만 그보다 나은 것을 기대하는 바보들이나 실망하지, 나는 다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해요.”(‘카우보이의 노래’ 중) “불확실성(uncertainty)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 유용한 미덕입니다. 당위는 편하기 위해서 만드는 거예요.”(‘겁먹은 처녀’ 중)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망자들을 데려가는 사자는, 인간은 이야기에 혹하고 그러는 사이에 죽음이 잡아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사자는 삶의 무의미함과 스토리텔링의 무용함을 조롱하는 걸까? 반대로, 불가피한 사멸을 불공평한 이유로 공평하게 맞을 인간은 이야기를 그칠 수 없고 어쩌면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좋아요 더들리 코언 형제의 단골 배우가 포함된 <카우보이의 노래>를 통틀어 제일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는 에피소드3 ‘밥줄’에서 팔다리가 없는 유랑 아티스트를 연기하는 해리 멜링이다. 멜링은 소년 시절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주인공의 밉상 이종사촌 더들리 더즐리로 얼굴을 알렸고 이후 정통 연극배우로 성장했다. 아티스트는 천막무대에서 의자에 비끄러매진 상태로 오직 얼굴과 목소리만으로, 셰익스피어와 퍼시 셸리의 문장, 링컨의 연설을 쩌렁쩌렁 독백한다. 그의 연기는 몇명 안 되는 청중 너머의 광야를 호령한다. 언어의 폭포를 쏟아내는 무대 위와 대조적으로 무대 밖의 그에게 코언 형제는 대사 한마디도 주지 않았다. 지체가 부자유한 그의 목숨줄인 흥행사(리암 니슨)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아티스트는 오로지 눈과 고개의 각도만으로 경계와 힐문, 항의와 체념을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