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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이 스크린으로 간 까닭은 [1]

현대음악이 스크린으로 간 까닭은 <새>부터 <디 아워스>까지, 음향으로서의 음악의 정체성 현대음악의 대표적 장르인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가 필립 글라스가 그의 앙상블을 이끌고 처음으로 내한해 공연을 갖는다. ‘필립 온 필름’이란 이름으로 10월14∼15일 LG아트센터(02-2005-0114)에서 열리는 이 공연은 컬트 다큐멘터리로 꼽히는 고드프리 레지오의 3부작 중 <균형 잃은 삶>과 <변형 속의 삶>이 상영되는 무대 위에서 열린다. 필립 글라스와 고드프리 레지오의 ‘합작품’은 현대사회의 삭막함과 기술에 점령당한 참상을 ‘눈으로 듣는 음악, 귀로 보는 이미지’로 드러내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이 3부작은 글라스가 레지오의 영상에 맞추어 곡을 작곡하고 레지오가 음악에 맞추어 영상들을 다시 쪼개넣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필립 글라스는 이후에도 <디 아워스> <쿤둔> <트루먼 쇼> 등의 영화음악을 통해 영상과 음악의 또 다른 앙상블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필립 글라스의 첫 내한을 맞아 현대음악과 영화의 예사롭지 않은 관계를 짚어본다. - 편집자 전위음악에 대한 어떤 오해 오늘날 슈톡하우젠의 <접촉>을 집에서 감상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식의 전위적 전자음악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나는 그거 모르겠소’ 하고 외면하거나 경원한다. 심지어 음악하는 사람들조차 그런 유의 음악에 대해서는 쓸데없이 잘난 척하는 사이코 음악이나 일종의 불필요한 장난쯤으로 취급하기 일쑤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 예를 들어 아주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영화인 <스크림>이 케이블TV 영화채널에서 방영될 때 이 영화에서 나오는 전위적인 음악에 대해서는 그다지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스크림>뿐 아니라 수많은 호러물, 사이-파이(SF)필름에서 우리는 첨단 전자음악이나 전위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불협화음을 듣는 데 익숙해져 있다. 사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TV의 CF에서도 전위적인 사운드의 음악은 간간이 흘러나온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 음악들은 매일매일 안방에서 감상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사람들이 전위음악을 대할 때의 모순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앉혀놓고 들으라면 전위음악을 절대 못 듣는 사람들에게도 전위음악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친근한 음악이기도 하다. 이것은 선입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음악이란 철저하게 ‘뻔한 어떤 것’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게 된 배경에는 현대 대중매체 시스템의 광범위한 문화적 획일화가 놓여 있다. 대중매체는 장르화된 상업적 ‘팝음악’을 너무나 철저하게 교육시킨 나머지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도록 대중을 길들여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중매체는 은연중에 전위음악의 힘을 이용한다. 앞서 말한 상업적인 호러물에서도 그렇듯, 전위음악은 특별한 상황 속에서 장면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소음성 불협화음들은 대중의 주의력을 매체에 속박시키는 하나의 심리적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전위음악이 이용당하는 것이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전위음악은 나와 절대 상관없는 쓸데없는 음악’이라는 구호가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역설적으로 영화음악과 같은 장르음악이 전위음악의 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오늘날 무용과 같은 공연음악이나 영화음악은 현대적 전위음악이 노는 가장 중요한 터전이 되고 있다. 시각적 기호들은 음악에 상황을 부여한다. 또한 시각적 기호들이 주는 그럴듯함, 안정감이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심리적 확실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영화는 약간은 아이로니컬한 방식으로 전위음악의 이해 가능성을 넓힐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와 전위음악의 관계가 이처럼 소극적이고 우회적인 상호협력 관계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음악이 새롭게 정립한 음악에 대한 개념은 영화가 음악을 취급하는 방식과 근본적으로 비슷하다. 독일의 전위음악 작곡가인 슈톡하우젠은 음열주의의 태두 쇤베르크의 제자인 베베른의 음악에 주목하면서 “음악을 음향으로 이해하는 사고는 음악사의 발전결과”라고 말한다. 현대음악은 전통적인 서양 기보법을 무력화했는데, 그 이유는 더이상 악보에 표기된 음악적 소리를 일상의 소리와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도레미파솔라시도’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음향적 접근법은 현대음악을 멀게 느껴지도록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슈톡하우젠이 언급한 ‘음악을 음향으로 이해하는 사고’는 서양의 현대 전위음악을 이해하는 키포인트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사운드트랙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자기도 모르게 '음악의 음향적 속성'을 영화 속에서 발전시켜왔다. 사운드 트랙을 이루는 대사, 효과음, 그리고 음악은 근본적으로 평등한 요소들이다. 사람에 따라서 음악에, 또는 효과음에, 아니면 대사에 좀더 큰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벌써 그 평등성을 보여준다. 영화는 근본적으로 문이 쾅 닫히는 소리와 주인공의 테마음악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영화는 사운드트랙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자기도 모르게 이러한 원칙을 영화 속에서 발전시켜왔다. ‘사운드트랙’이라는 말이 알려주는 대로 음악은 전체 사운드의 일부이다. 사운드트랙을 이루는 대사, 효과음, 그리고 음악은 근본적으로 평등한 요소들이다. 사람에 따라서 음악에, 또는 효과음에, 아니면 대사에 좀더 큰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벌써 그 평등성을 보여준다. 영화는 근본적으로 문이 쾅 닫히는 소리와 주인공의 테마음악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때로 문소리를 더 들리게 하기 위해 음악을 삭제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쇤베르크가 이미 1930년대에 <영상을 위한 배경음악>을 만든 것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이 음악들을 통해 영화에서 발견되는 심리적, 공간적 상황들 속에서 음악적 ‘음향’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주목하고자 한다. 쇤베르크의 이러한 관심은 1970년대의 브라이언 이노가 발전시킨 ‘앰비언트’라는 발상을 한참 앞서 보여준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구체음악’(concrete music)이라는 장르는 이미 1940년대 후반에 일상의 다양한 소리들을 샘플링하여 음악적 사운드의 재료로 삼는 ‘테이프 루핑’ 음악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음악사의 혁명적 변화에 한 단초를 마련한 이와 같은 시도는 정작 영화 사운드트랙에서는 토키가 발명되기 시작한 직후부터 시도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필립 글라스의 <변형 속의 삶> 전위음반 7選 #1 <접촉>(Kontakte) |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전자음악의 포문을 연 엄청난 앨범. 사운드의 측면에서만 봐도 이 이상 선언적인 미증유의 전위 음악이 다시 없을 정도. 듣기 힘들지만 가만히 듣다 보면 빨려드는 느낌이 나는, 특유의 지속과 단절을 보여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 <라이히 리믹스>(Reich Remixed) | 스티브 라이히 스티브 라이히의 주요 작품들을 최근에 이름을 날리는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리믹스했다. 라이히의 원곡들을 먼저 들어본 후 이 앨범을 듣는 것이 순서겠지만 꼭 그럴 필요도 없다고 봄. 라이히의 작품들을 몽타쥬한 이 리믹스 앨범 자체가 영화적이다. <이레이저헤드 O.S.T>(Eraserhead) | 스티브 라이히 미증유의 사운드 트랙을 지니고 있는 <이레이저헤드>의 사운드트랙 앨범. 환각적인 앰비언트 사운드의 컬트를 낳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느낌이 도출된다. 영화 속에서 들을 때와 따로 들을 때가 또 다르다. <앤쏠로지 오브 노이즈&일렉트로닉 뮤직, Vol. 2>(Anthology of Noise & Electronic Music) | 스티브 라이히 전위적인 전자 사운드와 소음을 다룬 모음집. 다양한 전위 사운드의 향연을 맛볼 수 있는 앨범인데, 특히 <이레이저헤드>의 사운드 디자인을 데이비드 린치와 함께 해낸 전설적인 사운드 디자이너 앨런 스플렛(Alan Splet)의 스페이스 노이즈 메이킹도 들을만 하다. ▶ 현대음악이 스크린으로 간 까닭은 [1] ▶ 현대음악이 스크린으로 간 까닭은 [2]

12명 감독의 야심만만 뉴프로젝트 [4]

거짓말 사이에서~ 사랑이 시작되고 <그녀를 믿지 마세요> | 배형준 감독 -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이제는 정말 보기 힘든 시스템으로 감독된 거죠.”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배형준(37) 감독은 늦깎이로 첫 연출작을 맞이한 소감을 그렇게 말한다. 그는 1992년 <우연한 여행>에서 연출부 막내로 시작한 이후, <네온속으로 노을지다> <맨>을 거쳤다. 그리고는 지금은 ‘형, 아우’ 하는 한지승 감독 밑에서 오랫동안 조감독 생활을 했다. 한지승 감독이 공동대표로 있는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제작사 ‘시선’ 창립도 함께 도왔다. 배형준 감독은 원래 데뷔 준비작으로 자신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영진위 2002 하반기 시나리오 당선작 <비둘기 둥지로 날아든 뻐꾸기>를 우연히 보게 됐다. “내 거는 이거만큼 풀려면 시간이 훨씬 더 걸릴 것 같아서” 방향을 선회했다. “원래 코미디와 멜로를 지향”하는 편이라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었다. 무엇보다 “여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범죄물 주인공도 아닌, 로맨틱코미디에서의 귀여운 여자 사기꾼”.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박연선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배형준 감독은 사기꾼 영주가 어떤 가족 구성원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중에는 “재미없을 것 같아 그만뒀지만, 아예 안동 민속 마을 종가로 들어가는 설정”도 있었다. 시골 마을 이장댁 분위기가 나는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전라도, 경상도를 다 뒤졌다”. 하지만, 막상 마음에 쏙 드는 집은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않았던 경기도 파주에서 찾아냈다. 그 집 안의 내부 세트도 편의상 파주의 ‘아트서비스’에서 촬영 중이다. 영화 속 배경 ‘용강마을’로 등장할 충북 음성과 희철네 집 세트가 있는 파주를 분주하게 다니면서 배형준 감독은 지금도 무엇을 더 선택해야 할까 목하 고민 중이다. - 이런 영화 한적한 시골 마을. 동네 어디에서 인사를 해도 모두 가족인 이곳에 가방 찾으러온 사기꾼이 며느릿감 행세를 한다. 너무 예쁘고 착하기 때문에 정작 당하는 건 진실만을 말하는 남자주인공 희철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집안 식구들의 예쁨을 독차지하는 여자 사기꾼과 장가 못 가 가족들의 신임마저 잃은 노총각 약사 사이에 벌어질 옥신각신 소동이 이 영화의 주가 될 것이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그런 상황에 기댄 제목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던 것”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접하고 배형준 감독은 남자주인공 희철의 캐릭터와 그 상황들이 너무 약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희철 친구 재은의 캐릭터에 살을 붙였고, 용강마을에서 열리는 ‘고추총각’ 이벤트에 희철이 나가는 것으로 바꾸었다. 실제로 조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이런 식의 선발대회가 마을의 큰 이벤트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영주와 희철 사이에 애정을 이어주는 계기가 될 고추총각 대회가 고추 아가씨 대회에서 바뀌게 된 것도 이런 이유이다. “심한 욕, 이상하게 조합해서 만들어낸 말장난들이 너무 많이 쓰인다. 상황에 충실하면 평범한 말을 써도 관객이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배형준 감독의 코미디 지론이다. “깊이없는 인간들이 깊이를 추구하는 걸” 가장 추한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배형준 감독은 거짓말쟁이 사기꾼 이야기의 의의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 얘기가 거짓말이라는 건 나도 인정한다. 지금 시골이 이렇지도 않고, 이런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도 잘 안다. 너 이런 거 진짜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 하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기분 좋은 거짓말, 너 예뻐 하는 그런 기분 좋은 거짓말이 바로 이 영화다.” 그 귀여운 사기극은 내년 1월 말에 보여줄 예정이다. - 시놉시스 사기죄로 복역한 뒤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영주(김하늘)는 언니의 결혼식에 가던 중 기차 안에서 희철(강동원)을 만나게 된다. 영주는 소매치기당한 희철의 반지를 찾아주려다 오히려 가방을 잃어버린다. 가방을 찾으러 희철의 마을에 찾아간 영주. 그곳에서 약국을 하고 있는 희철은 대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희철이 없는 사이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게 된 영주는 엉겁결에 희철의 애인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가방을 찾아낼 때까지 며느릿감 행세를 하겠다는 영주와 사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희철 사이에 ‘사랑 전초전’이 벌어진다. 치명적 유혹, 위험한 비밀 <거미숲> | 송일곤 감독 -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송일곤 감독은 “<꽃섬>으로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힘들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덤덤히 흘렸다.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던 바람이 빗나간 지점에서 덩그러니 남은 것은 공허함이었을 것이다.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하고 싶은 영화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진도 많이 빠졌고, 영화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 2년 동안, 송일곤 감독은 여행을 다녔고 시나리오를 몇편 썼다. 그중에서 “나 자신에 대해 전면적으로 물어볼 수 있는, 지금 나이가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작품을 먼저 하기로 선택했다. 그렇게 1년에 걸쳐 손을 본 시나리오가 <거미숲>이다. 제작준비 기간은 짧았던 편이다. 지난 5월 즈음, 친분이 있었던 김대현 PD를 통해 제작사 오크필름을 만났다. 영진위 사전제작 지원작 신청과정도 제작사가 도왔다. 이로써 순제작비 14억원 가운데 4억원을 확보했다. 해외투자도 받을 예정이다. 카날플뤼에서 독립한 배급사 와일드번치가 이 영화의 유럽 배급권을 가져가는 대신 개런티를 지불한다. 맥시멈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4억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이 회사가 송 감독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 혹은 기대는 확실하다. <꽃섬>을 유럽에 배급했던 와일드번치는, 이번 영화 역시 내년 칸영화제 출품을 염두에 두고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배급은 청어람이 맡기로 했다. - 이런 영화 <거미숲>은 미스터리스릴러다. 한 남자가 ‘거미숲’으로 이름지어진 숲에 들어갔다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누명을 쓰면서 겪게 되는, 기억과 진실에 관한 이야기. 감독이 직접 이름을 붙인 ‘거미숲’에는, 역시 감독이 생각해낸 전설이 깃들어 있다. “아무한테도 기억되지 못하는 굉장히 슬픈 영혼들이 거미가 되어 산다는 전설이다. 내가 죽어도 날 기억해줄 사람이 없다는 건 정말 슬픈 일 아닌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색적인 영화라고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감독은 이 영화를 “장르적인 틀 안에서, 정말 재미있게 찍을” 생각이다. <거미숲>은 여러 면에서 <꽃섬>과 대조적이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꽃섬>의 화면이 역동적인 핸드헬드의 움직임을 보여줬다면, 35mm로 촬영하는 <거미숲>은 단편 <간과 감자>나 <소풍>이 그러했듯 구도가 계산된 화면들로 이뤄질 듯 보인다. 콘티없이 찍었던 <꽃섬> 때와 달리 감독은 요즘 스토리보드 작업에 한창이다. <꽃섬>이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포착했던 순간의 이미지들을 흘려보내는 대신 <거미숲>은 오랫동안 지켜봐온 인물의 표정을 따라갈 영화다. “인물이 뒤돌아보는 표정이 중요한 영화다.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귀고리 소녀>처럼.” 화면 구상을 위해 호퍼, 베르메르 등의 화집을 참조하고 있는 감독의 머릿속엔 콘트라스트가 강한 비주얼이 들어 있다. “화면이 좀 투박하고 거칠더라도 강렬하게 가자고 촬영감독하고 얘기했다. 요즘 영화들처럼 세련된 맛은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좀 과감해져보자고 했다.” 숲 촬영은 전남 순천 서남사 경내에 있는 삼나무 숲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자연숲이다. 훼손도 거의 안 됐고 여러 가지 나무들이 많이 섞여 있어서 이상한 느낌을 준다. 음습하고 빽빽하고 원시적이다. 거미들도 정말 많다.” 캐스팅도 만족스럽다. 유약한 외모 속에 내재된 광기를 이끌어내야 할 감우성이나 1인2역을 연기해야 할 서정 모두 연기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많은 배우들. <거미숲>은 오는 10월15일 제작발표회를 갖고 21일 크랭크인한다. - 시놉시스 강민은 불가사의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프로그램 <미스터리 극장>의 PD. 유령이 나온다는 거미숲에 대한 제보를 받고 그곳을 찾아갔다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다. 그는 이제, 미로처럼 복잡한 거미숲의 미스터리와 자신도 영문을 모르는 살인사건의 진실을 동시에 추적하고 나선다.

12명 감독의 야심만만 뉴프로젝트 [3]

UFO, 어둠 속에 빛을 밝혀라! <안녕! 유에프오> | 김진민 감독 -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김진민 감독은 지금까지 “저예산 조감독”으로 살아왔다. 전수일 감독의 독립장편영화 <내 안에 부는 바람>으로 영화인생을 시작한 그는 <세기말> <눈물> 등을 거치면서 혹독하게 단련됐고, 7년 세월을 칼만 갈았다.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감독이 되려 했지만, 하나도 멋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발을 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영 운이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관상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철수필름 공채에 합격한 첫걸음도 행운이었지만, 뜻이 맞는 친구 이해영과 이해준 작가를 만난 것도 천운이었다. <안녕! 유에프오>는 <품행제로>를 쓴 이 젊은 작가들과 김진민이 함께 방구석을 헤집으며 만들어낸 시나리오다. 이해영·해준 작가가 처음 썼던 <안녕! 유에프오>는 여피족이 등장하는 멜로영화였다. 한 여자가 UFO를 찾아다니던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한다는 이야기에서 뼈대만 발라낸 결실이 현재의 시나리오. 김진민은 <화산고> <로드무비>의 김재원 프로듀서를 찾아가 진행비만 받아쥔 채 2년 동안 종적을 감췄고, 마침내 그 사이 제작사 우리영화 대표가 된 김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시나리오인지 확인하고 싶기도 해서” 가장 먼저 김재원 대표의 전화번호를 누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진민은 그렇게 시나리오의 합격통지서와 감독 데뷔 기회를 한꺼번에 낚아챘다. 물론 부산 시네마테크에 웅크려 있던 시절 고집했던 B급 코미디영화의 감수성은 많이 덜어냈다. 감독은 대중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녕! 유에프오>는 “어리버리하고 정신없고 엉뚱한” 감독의 감성이 군데군데 끼어들면서 자꾸만 코미디영화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 이런 영화 김진민은 <안녕! 유에프오>를 구파발에서 찍고 있다. 그는 “조금도 서울 같지 않은 동네, 아직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 변두리 동네의 정서가 살아 있는” 구파발이 매우 마음에 든다. 중학교 2학년 때 집안이 망하면서 마이너에 발을 디딘 이 감독은 항상 세상의 가장자리를 편하게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하층민들> <브래스드 오프>처럼 삼류인생을 담으면서도 활기를 잃지 않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이런 영화들은 “어디에서나 마주칠 법한 사람들이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참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가난한 이들을 진실한 웃음으로 지켜본다. 그 결과, <안녕! 유에프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희망, 변두리에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 앞에 나타난 UFO를 믿는 따뜻한 영화로 탈바꿈했다. <안녕! 유에프오>는 버스기사 상현과 시각장애인 경우를 중심에 두는 멜로영화이긴 하다. 그러나 상현을 둘러싼 친구와 동네 사람들에게도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이들은 이곳에 UFO가 나타날 거고, 그러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확신하는 경우의 등장과 함께 즐거운 소동에 휘말린다. 김진민은 “비주류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의 영화만은 비주류에도 삼류에도 넉넉한 품을 내어주는 공간을 세워갈 것이다. - 시놉시스 경우(이은주)는 연인에게 버림받고 낯선 동네로 이사한 시각장애인이다. 그녀는 단 한번 보았던 어린 시절의 빛이 UFO였다고 믿고 있으며, UFO를 다시 보고 싶어한다. 노총각 버스기사 상현(이범수)은 앞을 볼 수 없으면서도 독립적이고, 매몰차면서도 다정한 면이 있는 경우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상현은 옛 남자에게 머물러 있는 경우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경우는 그토록 집착하는 UFO를 만날 수 있을까? 상현과 경우가 각자의 소망에 골몰해 있는 동안, 남루한 변두리 동네는 UFO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술렁이기 시작한다. 고딩 친구들 사랑이 어른들보다 낫더라 <늑대의 유혹> | 김태균 감독 -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솔직하게 말하자. 김태균 감독과 귀여니라는 이름은 그리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박봉곤 가출사건> <화산고> 등에서 굵은 선을 드러낸 감독과 가볍고 재기발랄한 필치로 유명한 인터넷 소설계 스타와의 만남이라니. 게다가 김태균 감독은 전설의 주먹 시라소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조선의 주먹>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던가. 과연 그가 고등학생들의 쿨하면서도 조금은 슬픈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니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조선의 주먹>을 준비하면서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고, 사스 때문에 중국 현지 촬영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올해 4월, <조선의 주먹>을 1년 미루기로 결정했다. 곧바로 <늑대의 유혹>에 착수했다.” 사실, 김태균 감독 또한 처음에는 이 작품이 자신과 맞으리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영화사에서 판권 계약을 했다니 그저 한번 살펴보자는 차원에서 소설책을 읽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못 읽겠더라. 이모티콘 하며 정신없는 대사하며…. 그런데 1권 중반 넘어가면서부터 귀여니의 감성에 깜짝 놀라게 됐고 무지하게 재밌게 읽었다.” 내처 2권 끝까지 읽은 그는 이 영화를 꼭 연출하겠다 마음먹었다. 젊은 연기자들과 젊은 감성으로 작업한 <화산고>에서 힘을 소진했던 탓에 ‘당분간 고등학생 얘기는 안 만들리라’고 생각했던 김태균 감독으로 하여금 마음을 고쳐먹게 한 것은 소설의 건강함이었다. “거기서 사랑을 발견했다. 어린 친구들 사랑이 어른들보다 낫더라.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순수한 마음이 내겐 감동적이었다.” - 이런 영화 <늑대의 유혹>은 고등학생들의 사랑 이야기란 점에서는 원작과 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워낙 캐릭터가 다양하고 ‘미니시리즈급의 이야기’이다 보니 내용을 추스르는 데 힘을 기울였다. 원작의 느슨한 이야기를 팽팽히 당겨 농도 깊은 감정을 담으려 애쓸 계획이다. 그는 생생한 고등학생들의 감성을 담기 위해 실제 청소년들과 여러 차례 면담을 했고, 이를 시나리오에 최대한 담으려 노력했다. 반면 원작이 인터넷 소설이라는 점은 큰 고려대상이 아니다. “인터넷 소설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특별한 장치는 없다. 원작은 연재가 되다보니 에피소드 중심이지만, 영화에선 드라마를 끌고 가야 하므로 감정선을 응축시키고 절제할 생각이다.” 그는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뼈아픈 교훈 하나를 얻었다. “젊은이들을 내 곁으로 당겨오는 게 아니라 내가 그들 곁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는 지난 여름 청소년들을 취재할 겸 자신의 인생사도 이야기해줄 겸해서 어느 고등학교의 특강 요청을 수락했다. 나름의 준비도 해갔건만, 막상 연단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눈앞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교훈이랍시고 이야기하는 게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내가 그들 곁으로 내려가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한선과 강동원, 그리고 신인 이청아 같은 젊은 배우와 작업하는 데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김태균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그들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임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하이틴 멜로영화지만, 김태균 감독은 액션에도 나름의 색깔을 부여할 생각이다. 고등학교 ‘짱’ 두명이 등장하는 영화다보니 멋진 액션도 필요하고 오토바이 질주장면도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멋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 주연 세명을 세워만 놓아도 그림이 되는데 ‘허접’을 찍을 필요가 있겠냐.” <늑대의 유혹>은 11월 중순 촬영을 시작해 서울과 대전 등지에서 촬영을 마친 뒤 내년 3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 시놉시스 이혼한 아버지와 함께 소도시에서 살다가 엄마가 사는 큰 도시로 터전을 옮긴 고등학생 정한경. 첫사랑 대한이와 다시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가슴 부풀었으나, 그는 이미 한경의 소꿉친구 제희와 사귀고 있다. 뻥 뚫린 마음을 가누려 애쓰는 한경 앞에 두 남자가 나타난다. 그 둘은 이 도시 고등학교 주먹계의 라이벌 반해원과 정태성. 한경의 사랑을 얻기 위해 두 남자가 벌이는 신경전은 라이벌간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삼각관계 이면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었다. 한경은 이제 자신의 슬픈 사랑을 끌어안아야 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12명 감독의 야심만만 뉴프로젝트 [1]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는 매년 60∼70편의 영화를 생산해왔다. 영화계에 돈이 넘치는 시기든 금융자본이 대거 철수하던 시기이든 제작편수의 변동폭은 크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투자가 많을 때 제작편수가 늘고 투자가 줄 때 제작편수가 주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영화는 자동차 찍어내듯 공장만 늘린다고 양산되는 것이 아닌 탓이다. 투입되는 자본과 생산되는 제품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공정은 시나리오를 만들고 배우를 캐스팅하고 스탭을 구성하는 매우 수공업적인 공정이 끼어 있다. 골방에 틀어박혀 한 장면 한 장면을 써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의기투합하는 과정은 돈이 많아진다고 획기적으로 달라지기 힘든 일이다. 어떤 영화든 일정한 시간이 축적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10월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제작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새 영화들의 면면은 그 같은 시간의 결과물이다. 대부분 내년에 개봉할 예정인 이들 영화는 적게는 1∼2년, 많으면 5∼6년의 기다림 끝에 카메라 앞에 서게 됐다. 이런 사정은 철저한 기획영화든 작가의 영화든 다르지 않다. 어쩌면 영화의 진실은 그들이 한편의 영화를 만들기까지 소요한 시간 속에 들어 있는지 모른다. 여기 소개하는 13편의 신작 또한 수년간 창작자들의 고민과 궁리가 쌓여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들 영화의 면면은 내년 극장가의 모습을 예측할 지표이기도 하다. 엽기적인 그 여자, 클래식 순애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 곽재용 감독 -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곽재용 감독은 지금 행복하다. 영화감독에게 앞 작품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것은 놓칠 수 없는 행복이다. 더욱이 중국 전역에 개봉된 <클래식>까지 반응이 좋아 그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클래식>을 개봉한 뒤 곽재용 감독은 싸이더스 HQ의 정훈탁 대표에게 귀가 솔깃한 소재 하나를 들었다. “워낙 정 대표가 괜히 감동받도록 말을 잘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듣는 순간 곽재용 감독은 “나하고 잘 맞겠다”고 직감했다. 한마디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엽기적인 그녀>나 <클래식>보다 업그레이드”된 영화라고 그는 소개한다(제목은 이렇게 길지만 감독과 스탭들은 이 영화를 짧게 줄여 <여친소>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새로운 여자친구는 말할 것도 없이 전지현이다. 곽재용 감독 역시 전지현의 캐릭터가 “엽기적인 그녀와 다르면서도 또 같은” 이미지를 줄 수 있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여친소>는 <영웅>과 <와호장룡>의 프로듀서 빌 콩이 전액투자한 영화이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개봉을 추진 중이다. 현재 영화는 콘티가 완성된 상태이고, 두 주인공 경진과 명우가 여름여행을 떠나는 몇몇 장면도 이미 찍었다. 사실, 그동안의 촬영기간에는 이런 어려움이 있었다. “이상하게 물차가 처음 비 뿌리고 나더니 안 나오고, 차 와이퍼가 움직여야 되는데 안 돼서 다른 차로 바꿔 왔더니 그건 또 시동이 안 걸리고. 처음에는 뭐든지 잘 안 맞아 들어갔다.” 하지만 이런 행운도 있었다. “비 올 때도 비를 더 뿌리고 찍은” <여친소>는 그 숱한 충무로의 태풍 피해 사례를 비켜갔다. “촬영하는 동안에는 비가 필요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피해보다는 도움 된 게 더 많았던” 것이다. 4개월쯤 지난 내년 3월에 그 고됨과 행운의 결과물이 스크린에 담길 것이다. - 이런 영화 <여친소>는 전지현이 펄펄 뛰는 여순경으로 돌아왔다는 점만으로도 <엽기적인 그녀>를 상기시킨다. 또, 때묻지 않은 총각교사로 캐스팅된 장혁이 그녀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사랑에 대한 <클래식>판 정의를 다시 한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 영화가 무엇을 보여줄지 예상하기 위해서 <클래식> DVD에 삽입된 곽재용 감독의 코멘터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클래식> 코멘터리에서 내가 거기에 나오는 바람들을 잘 관찰해보라고 얘기했었다. 준하의 영혼이 바로 ‘바람’이다. 다음 작품이 <바람개비>인데, 이 영화의 바람하고 연관이 있다고 말했었다. <클래식>에서는 그 바람에 대해서 몰라도 되지만, 여기서는 드라마에 좀더 붙였다. 이 영화 속에서는 바람이 굉장히 중요하다.” 바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람개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목도 그렇게 붙였었다. 곽재용 감독은 책상 위에 놓인 여러 장의 바람개비 스케치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편의적으로 부르던 이름이 제목이 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지금의 제목이 나온 것이다. 멜로와 코미디가 주가 될 <여친소>에는 30층 옥상에서의 고공낙하, 러시아 마피아 밀매조직과의 거대 총격전 등의 액션장면도 곳곳에 등장한다. 하지만 어색할 건 없다. 곽재용 감독이 추구하는 ‘복합장르’에서 기점은 관객과의 호흡이다.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관객이 따라올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곽재용 감독은 <클래식>의 ‘감성’과 <엽기적인 그녀>의 ‘성격’이 만나는 지점에 굉장한 반전을 숨겨놓았다고 한다. 궁금해진다. 도대체 뭘까? - 시놉시스 과잉 열정으로 끓어넘치는 순경 여경진(전지현)은 소매치기를 잡으려던 여고교사 고명우(장혁)를 오히려 범인으로 착각하고 체포한다. 예의를 중시하는 점잖은 선생님 고명우는 미안해하지 않는 경진에게 화가 난다. 얼마 뒤, 유흥가 청소년 단속에 나섰다가 파트너로 다시 마주한 두 사람. 경진의 수갑에 묶인 명우는 그녀가 뛰어다니는 범죄현장에 할 수 없이 끌려다니게 된다. 명우는 점점 경진에게 애정을 느끼고, 과잉 책임감으로 곳곳을 뒤지는 그녀의 안전을 위해 그뒤를 따른다. 천지차이 두 남녀의 애정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불량 경찰? 그래도 우린 정의의 깝스 <마지막 늑대> | 구자홍 감독 -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1996년 그는 3년간 광고회사 다니면서 번 돈을 들고 무작정 파리로 갔다.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도시에서 원없이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시네마테크를 전전하며 하루 3∼4편의 영화를 보는 생활은 2년 넘게 이어졌다. 책에서 이름만 접했던 숱한 작가들의 영화를 직접 대면하면서 감독이 되겠다는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구자홍(37)씨는 다소 독특한 경로로 “레디, 액션”을 부르는 자리에 오게 됐다. 재수생이었을 때, 서강대 커뮤니케이션센터에 드나들던 그는 서강대 사회학과에 다니면서 꾸준히 흔히 볼 수 없는 영화를 찾아다녔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당시 그의 주변에는 어떻게 하면 감독이 되는지 알려줄 사람은 없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일단 광고회사에 취직한 구자홍씨는 CF도 영화카메라로 찍는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현장은 늘 재미있었고 예상보다 오래 회사를 다녔다. 회사를 그만두고 파리에 머물다 돌아왔지만 감독의 길은 여전히 묘연했다. 당장 할 일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대학로의 한 극단을 찾아가 8개월간 연극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감독이 되기 위해 자양분이 될 만한 것은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었던 때였다. 그뒤 일단 시나리오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혼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쓰다 답답한 마음에 시나리오작가교육원을 찾았다. 파리에서 본 수백편의 고전과 자신이 쓰는 시나리오 사이의 괴리감이 문제였다. “눈은 높은데 막상 써보니 그렇게 안 되는 걸 깨닫는 과정”이었던 셈. 그는 작가교육원에서 김대우 작가를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말한다. 김대우 작가는 오랜 실전경험에서 우러나는 가르침을 줬고 구자홍씨는 한동안 김대우 작가의 조수로 일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쓴 시나리오 <마지막 늑대>가 영화사 제네시스픽쳐스(대표 정태성)에 팔렸고 감독까지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 이런 영화 구자홍씨는 1999년 3월에 <마지막 늑대> 시나리오를 썼다(곧 개봉할 스웨덴영화 <깝스>가 비슷한 이야기지만 구상을 한 시기는 <마지막 늑대>가 앞선다). 연출의 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IMF 때 일자리, 일, 실업, 구조조정, 퇴출…. 지겹도록 이런 소리를 방송에서 듣고 또 듣다가 이 이야기의 첫 스토리를 썼다. 아무 일도 안 하겠다는 남자의 얘기. 그러나 그 야무진 꿈에 태클이 걸린 얘기. (중략) 뚜렷이 똑 부러지게 말하고 싶은 슬로건이 있었다기보다는 어떤 기분이 있었다. 그때의 먹구름처럼 무거웠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반대급부로 들었던 ‘이것만은 아니잖아’ 는 기분.” <마지막 늑대>는 일이 싫어 시골 파출소로의 전근을 자청한 강력계 형사의 이야기다. 은근히 일하지 않는 것의 즐거움을 선동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감독의 삐딱한 시선이 느껴지는 영화. 그가 이 작품을 쓴 또 다른 계기로는 집에서 노트북컴퓨터를 도난당한 사건이 있다. 파출소에 신고를 했더니 방문조사를 나온 경찰관이 “그런 건 찾을 길이 없으니 포기해라”라는 분위기로 얘기하는데 그 모습에 화가 났다기보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구자홍씨는 <마지막 늑대>를 유머러스한 드라마라고 말한다. 두 경찰관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그리는 코미디이지만 연출자의 입장에서 드라마의 완결성에 비중을 많이 두겠다는 말로 들린다. - 시놉시스 지난 20년간 단 한건의 사건사고도 일어나지 않은 강원도 산골의 한 파출소. 서울에서 강력계 형사를 하던 최 형사(양동근)가 이곳으로 전근을 온 이유는 일 안 하고 살고 싶어서다. 반면 파출소의 고 순경(황정민)은 최 형사와 달리 서울에서 강력범을 잡는 진짜 경찰이 되고 싶어 안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사고가 없는 파출소를 정리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서울로 돌아가기 싫은 최 형사는 파출소를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스캔들> 제작기 [4] - 이유진 프로듀서의 제작기 ②

“천장에 돈이 둥둥 떠 있지요?” 이재용 감독, 정구호 미술감독, 임재영 기사님…. <정사>를 같이 할 때도 익히 겪었던 그들의 안목과 디테일을 누가 따라가랴. 게다가 김병일 촬영기사님도 ‘원칙’을 중요시하는 철저한 완벽주의자였다. 의상과 소품, 세트. 조명… . 무엇 하나 쉽게 되는 법이 없었다. 주·조연배우들의 의상을 일일이 손염색해서 평생 한복만 만들어오신 분이 손바느질로 하나씩 만들었다. 꽂이와 노리개 등 장신구도 박물관에서 거의 훔쳐오다시피 빌려오니 흠집 하나라도 나면 안 되고, 화각장, 자개장, 자수장을 비롯한 소품가구들은 ‘장인’들이 몇달에 걸쳐 만든 고가의 작품들이었다. 협찬은커녕 분위기는 거의 “너희들이 나의 장인정신과 예술세계를 알기나 해?”였다고나 할까…. 1세트 500여평에 꽉 차도록 조씨 부인의 안채 ‘부용정’을 지었다. 연꽃이 떠 있는 연못에 누다리와 마당까지 있는 양반집을 짓고 나니 그럴듯했지만 그 넓은 규모의 세트를 조명하려니 어마어마한 장비가 필요했다. 루나 벌룬에 20여개의 젬볼이 천장에 주렁주렁 달리고 20m 높이의 아시바 위를 징검다리 뛰듯 뛰어다니는 조명부들을 보면 행여 사고라도 날까봐 조마조마했다. 가끔 세트장을 찾은 손님들이 천장에 매달린 조명기들을 올려다보며 감탄이라도 할 때면 나는 망연자실 이렇게 맞장구치곤 했다. “천장에 돈이 둥둥 떠 있지요?” 게다가 그 공들여 만든 세트와 소품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느라 김병일 촬영기사님과 임재영 조명기사님의 작업도 덩달아 느려졌다. 촬영장에서 밤새는 날은 점점 많아지고 현장에 도착하고 나면 감독님의 컷 수도 콘티보다 늘어만 갔다. 정해진 예산과 일정 속에서 머리에 쥐가 나던 나는 주요인물들을 쪼기로(?) 하지만 다들 농담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감독님, 여기서는 컷 수를 조금 줄이는 건 어때요?” “그럼 영화가 지루해질걸?” “뭐? 비녀 하나에 얼마?(음… 역시 예쁘긴 하군 하지만 미술비가 위험해…) 좀 싼 걸로 하죠, 미술감독님.” “그럼 가짜처럼 보일 텐데?” 아… 웬수들이 따로 없다. “남자들만 남고 여자들 다 나가시오!!!” 세트 안에서 크고 작은 노출(?)이 있는 신들을 6∼7회차에 걸쳐 찍었다. 베드는 없으니 요씬이라고 통상 우리가 지칭한 신들을 찍는 날이면 다른 촬영보다 몇배는 더 힘들었다. 배우들이 긴장하면 스탭들은 더 긴장하고, 나는 그날의 당첨(?) 여배우의 자신감(?)을 북돋워주며 토닥이느라 하루종일 정신이 없었다. 촬영장을 중심으로 검은 천을 두르기 시작하면 대다수의 스탭들은 ‘소외되는 날’임을 안다. 감독과 촬영감독, 소수의 여자 스탭들만 현장의 출입이 허용되었으니까.다행히 여자 스탭들이 꽤 돼 진행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준이 옷을 벗으며 방 안을 둘러보다가 소리친다. “에이, 뭐야, 남자들만 남고 여자들 다 나가!!!” 긴장감이 감돌던 촬영장 안이 갑자기 웃음바다가 된다. “뭐? 코가 무너졌다고?” 노심초사하던 부용정 세트 3주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는 날, 꼬박 밤을 새면서 마치고 나오니 아침 9시. 한숨도 못 잔 터라 비몽사몽간이었지만, 얼른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싶은 마음에 핸들을 잡았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는데 졸음이 사악 몰려오는 듯했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미숙 언니였다. “세트 다 끝났니?” “네… 밤새고 지금 집에 가는 길이에요.” “근데 우리 영화 개봉일이 언제지? 내 촬영분량 아직도 좀 남았지?” 언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왜요?” “유진아, 어떡하니… 코수술한 게 내려앉았다 얘.” “….”(잠시 할말을 잊은 나) “어젯밤에 콧망울이 내려앉았지 뭐니. 이를 어째.” 갑자기 어지럼증이 났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심하게 더듬으며) 저, 정말이요? 어, 어쩌다가… 그런 일이… 근데 언니가 수술한 코였나?… 아니… 그게 아니라… 무슨 사고난 거예요?” 횡설수설하며 정신이 없다. “당분간 촬영 못할 듯하니 감독하고 상의해봐.” “얼마나 걸리는데요?” “꽤 걸리지. 얘, 하도 오래전에 한 터라 일단 의사부터 찾아야지….” “당장 낼 모레 촬영 있잖아요.” “감독하고 의논해서 코를 빼고 카메라에 잡든지….” “아우, 언니, 코를 빼고 어떻게 얼굴을 잡아요!!!!” 졸음은 순식간에 달아나고 내 얼굴은 일그러졌다. 숨이 가빠오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때 들려오는 깔깔깔 웃음소리. “아유, 얘, 너 계속하단 울겠다 울겠어, 오늘 만우절이야.” “….”(또다시 할말을 잊은 나) 밤을 꼴딱 새고 날짜가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모른 채 세트장에서 막 나온 피디를 골탕먹이고 이렇게 즐거워하는 배우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아참, 이미숙씨는 성형수술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밝히고 넘어가야겠다.^^ “이것도 안 되오, 저것도 아니되오!” 이 땅에서 사극을 만든다는 것은 관리아저씨들과의 투쟁이다. 세트를 짓지 않는 다음에는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한옥이 있는 곳은 정해져 있다. 남산 한옥마을, 안동 하회마을, 양동마을… 그리고 용인 민속촌…. 게다가 이재용 감독님은 낡은 느낌의 한옥보다 새것처럼 보이는 한옥을 원했기 때문에 섭외할 수 있는 한옥의 범위는 더욱 줄어들었다. 카메라를 조금만 들어도 전봇대가 걸리고 현대식 건물이 보이는 것도 문제였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촬영지를 관리하시는 분들과의 마찰이었다. 촬영허가를 어렵게 받아내고 사용료까지 꼬박꼬박… 게다가 아저씨들의 수고비까지 얹어주면 무엇하랴. 첫째, 휴관일은 안 된다. 둘째, 주말엔 관람객이 많아서 안 된다. 셋째, 카메라 및 기자재가 방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넷째, 밤 12시가 넘어서 촬영하면 안 된다. 아, 정말 그들은 안 되는 너무 많았다. 민속촌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우선, 주차장부터 촬영지까지 10분 넘게 걸어야 하는 거리를 차도 못 들어가게 한다. 밤에는 심지어 한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해서 귀신나올까 무서울 정도다. 화장실을 찾다가 길을 잃은 적도 있다. 손전등을 비춰가며 어렵게 찾은 화장실, 하필이면 서낭당 도깨비집 옆에 있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스탭들 사이엔 한옥마을 섭외하다가 섭외베테랑인 조능연 제작실장이 거의 폐인되어 간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마치고 나가는 길이면 다시는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도 감독은 역시 독한 인종이라고, 사람 좋은 이재용 감독도 제작부에게 한마디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뒷정리 잘하고 나가자, 또 올지 모르니까.” “아니, 아니, 그렇게 멋있게 말고” 조원이란 인물은 무에도 능한 사람이어서, 소소한 액션신들이 있었다. 배용준은 워낙 운동으로 단련된 유연한 몸에 액션연기도 한 적이 있어서 걱정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 문제랄까. 감독님은 아주 화려한 액션을 바라지 않으셨다. 무술감독과 배우는 이왕이면 화끈하고 역동적인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합을 짰지만 언제나 감독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너무 화려해.” 한번은 발차기로 상대방을 치는 컷을 찍었는데 배용준의 날렵한 발차기는 보는 사람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와… 우리는 입이 벌어졌고, 용준도 어깨를 한번 으쓱하는 순간 이어 나오는 감독님의 말. “아니, 아니, 그렇게 멋있게 말고 그냥 앞발로 슬쩍 밀라니까.” “하루 방문객 만명?” 전라도 담양 소쇄원에서 조원이 술값으로 기녀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신을 찍을 때였다. 우선, 소쇄원은 당대의 문인들이 학문과 사상을 교류하던 우리나라 최고의 별서정원,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어렵게 촬영허가를 받은 것에 감사하며 우리는 아침일찍부터 촬영을 서둘렀다. 기녀 역할의 배우에게 속살이 드러나는 속곳을 입히고, 주안상을 차렸다.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용준은 카메라를 들고 담양의 대나무숲이며 스탭들의 모습을 찍고 전라도의 아름다운 풍광은 스탭들의 기분까지 달뜨게 해주는 날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막 촬영에이 들어가려고 하는데 줄이어 들어서는 소쇄원 방문객들. 그것도 한두명이 아니라 수십명이 넘는 단체관람객들이 끝없이 걸어들어왔다. 심지어 하루에 만명이 넘게 다녀간다는 주변 음식점 주인들의 설명을 듣고는 허걱, 정신이 아득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저 요염한 포즈의 속옷차림의 여인네를 관람객을 향해 하루종일 서 있게 해야 한다니!!! 공무원연수단, 학생단체학습단 등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의 발길이 끝없이 들어왔다. 부랴부랴 여인네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 이 무에서 저 나무로 검은 천을 둘러대고, 큰길 초입에서부터 제작부가 단체관람단의 발목을 잡았지만 역부족. 제작부들의 재촉에 마지못해 빨리 걸어가다가도 여인네 근처를 지날 땐 발걸음들이 느려지고 있었다. 심지어 몸싸움이 오고 갈 지경까지 이르렀다. 마음은 급한데 맑았던 하늘마저 구름이 오락가락, 슛 들어가려고 하면 구름 나오고, 정말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용준이 찍은 하늘만 목이 부러져라 쳐다보는 스탭들의 사진은 모두 그날 나온 것이었다. “진흙바닥에 뒹구느라 참으로 욕보셨소” 조원의 엔딩신은 재촬영을 했다. 겨울분량부터 찍는 바람에 초반에 준비없이 찍었던데다가 찍다가 해가 지는 바람에 장면들의 톤이 맞지 않았다. 한겨울 차가운 진흙바닥에 처박히는 연기를 몇 시간이나 한 용준에게 재촬영을 하자고 하기가 미안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본인도 더 좋은 그림을 위해 흔쾌히 동의하면서 우리는 장소를 다시 섭외해 재촬영이자 마지막 촬영을 했다. 안개가 한치 앞을 안 보일 정도로 자욱하게 끼어 있던 태안반도의 바닷가는 엔딩신을 찍기에는 적역이었다. 다시 한번 용준이 차가운 바닥에 처박히기를 수십여 차례. 저러다 뺨에 멍이라도 드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배우의 눈(eye)도 깜빡여서는 안 되고, 동시에 눈(snow)도 적절히 날려야 하고, 쉽게 찍힐 리가 만무했다. 배우도 힘든 기색이 역력하고 스탭들도 지쳐갈 무렵 드디어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은 떨어졌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쳤다.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에, 그리고 <스캔들…>의 기나긴 촬영여정이 끝났다는 생각에…. 나도 괜스레 허탈해졌다. 도저히 끝이 안 보일 듯하더니 이제야 끝났구나…. 4개월 프로덕션 예정으로 출발했으나 날씨와 섭외 일정 등으로 조금 늦어지면서 70회차의 촬영은 4개월 2주 만에 드디어, 무사히 끝이 났다.

<스캔들> 제작기 [2] - 배용준의 포토코멘터리 ②

느느니 담배요! 빠지느니 살이구나” 하지만, 역시 세상에 만만한 일은 하나도 없다. ‘하였더이다’, ‘아니겠소’ 등 대사들은 거의 외국어처럼 느껴질 정도이고 그 분량도 만만치 않다. 거기다가 이 조원이란 캐릭터의 느물거림은 상상초월. 달콤한 대사야 수도 없이 해봤고 눈물도 많이 흘려보았지만 입으로는 순정을 고백하며 돌아서서 야비한 미소를 날리는 이자의 경지는 쉽지가 않다. 말수 적은 이재용 감독님도 속으로는 걱정이 많은 눈치다. 아아∼ 끊었던 담배에 자동으로 손이 간다. 따로 다이어트를 안 해도 살이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부러 살빼지 않아도 될 것을 그랬다. 양수리 종합촬영소 세트장에서 부용정 장면을 한참 찍던 두달 중 언제 찍힌 사진인지는 모르지만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부담감과 중압감을 담배 연기에 실어 날려보내고 싶었을까…. “요씬에서 감독님은 참으로 야릇하더이다” 요씬… 사극의 베드신을 부르기에는 참 재치있는 작명이다. 조원이 잠자리를 함께하는 여자는 기생, 사촌누이인 조씨 부인의 남편이 들일 소실이자 옛 여자의 딸(쓰다보니 참 콩가루 집안이란 생각이…)인 소옥 등으로 그 수가 한두명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요씬 촬영도 수차례…. 조원, 정말 여자도 많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연기도 연기지만 큰 화면에 비쳤을 때 어떨지, 거기다 여배우가 긴장하면 그걸 커버해야 하는 것도 남자인 내 몫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 또한 난생처음 찍어보는 장면들이 아니냔 말이다. 베드신이 처음이라 어색해할까봐 감독님이 일일이 몸으로 실연해 보여주시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묘한 신음 소리에 야릇한 동작까지. 엄숙하게 실연해 주시는 감독님은 거의 구세주처럼 보인다. 긴장감이 감도는 촬영장… 감독님과 피디 누나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니터를 보며 누구에게 들릴세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괜스레 큰소리로 외친다. “아∼ 무슨 얘기하는 거예요? 제발 나도 들리게 큰소리로 이야기해줘!!!” 일순간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된다. 하지만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죄어오는 긴장감을 숨길 수는 없었나보다. 촬영장 한 귀퉁이, 고개를 모로 꼬고 인상을 쓰고 있는 요씬 막간의 모습을 보니…. “이미숙 누님, 형이라 불러도 되겠소?” 미숙이 누나랑 촬영이 있는 날이면 유독 마음이 편안하다. 훈련 조교를 자처해준 누나의 한마디한마디가 고맙기만 했던 건 누나의 깊고 넓은 인간성 때문이다. 현장에서 ‘제작부장’이라 불릴 만큼 누나의 시야는 누구보다도 넓다. 풍부한 경험을 아랫사람이나 동료에 대한 배려와 아량으로 풀어낼 줄 아는 누나가 정말 존경스러웠다. ‘선배’란 어떤 존재인지 그 정의를 몸으로 보여준다. 가끔 ‘형’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정도니까…. 촬영 막바지에나 겨우 카메라를 들 수 있는 심리적인 여유가 생겨서 꽃피는 삼월에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영화 초반의 타이틀 시퀀스에서 나와 누나가 처음으로 묘한 시선을 교환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내 장면이 없는 막간에 찍었다. 흰색 대례복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피디 누나와 다음 컷을 의논하는 모습이다. 스틸이든, 동영상이든,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미숙 누나의 존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게 느껴진다. “감독님의 연기재능이 아깝구려” 이재용 감독님이 꼼꼼하다는 건 소문으로 들었으나 상상 이상이다. 그리고 유머러스한 것도 생각 이상이다. 얼마나 촌철살인으로 재치있는 말 한마디를 날리는지, 돌아서서 한두발짝 걸어가다보면 웃음이 나와 다시 한번 감독님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직접 연기를 해보일 때의 모습을 보는 것은 또 하나의 촬영장의 재미였다. 날카롭고 요염한 조씨 부인의 표정, 능청스런 조원의 연기를 할 때는 물론이고, 숙부인의 조신한 걸음걸이를 해보이는 감독님의 모습은 왜 배우를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이다. 나란히 서서 감독님의 손동작을 따라 하고 있는 내 모습. 같이 캐릭터를 연구하면서 이렇게 해볼까, 혹은 저렇게 해볼까를 열심히 이야기하다보니 점점 우리 두 사람의 자세와 표정이 비슷해지는가 보다. 모니터를 내려다보고 있는 감독님과 내 포즈가 키차이만 있을 뿐 거의 똑같은걸? 또 하나 감독님의 특징, 절대로 큰소리를 내는 법이 없다. 내가 찍은 사진 속의 감독님도 배경에 파묻혀 실루엣만 떠올라 있다. 마치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 당신의 모습처럼. “빨리, 어서 키스를 끝내시오!” 정절녀 숙부인 역을 맡은 전도연씨를 대상으로 계속 유혹 작전을 벌이던 도중, 결정타에 해당할 입맞춤 장면을 찍는 현장이다. 긴장감은 요씬 못지않다. 짧은 입맞춤이지만 숙부인에게는 최초로 사랑의 감정을 몸으로 접하는 의미고, 나에게도 여느 여인처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장면. 바람둥이의 웃음보다 더 어려운 게 이런 미묘한 감정의 표현이니 NG도 무척 많이 났다. 게다가 수염을 잔뜩 붙이고 하자니 NG가 날 때마다 조금씩 떨어지는 수염을 다시 붙여야 했다. 날씨도 오락가락, 빗줄기가 흩뿌렸다가 갰다가를 반복하니 스탭들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심각한 표정의 두 배우를 둘러싸고 있는 그보다 더 심각한 촬영팀의 모습, 아마도 속으로는 ‘빨리, 어서 키스를 끝내시오!!! 비가 더 내리기 전에!!!’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참으로 수고들 하시었소” 스탭들의 고생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듯하다. 준비기간도 길었지만 겨울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대장정에 유독 스탭들의 손길이 구석구석 미쳐야만 하는 사극이다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스탭들의 모습은 저절로 사람을 감동시킨다. 카메라에 걸리는 한옥의 구석구석에 콩기름을 먹이고 물을 뿌려 색깔을 더 좋게 하기 위해 여념이 없는 미술팀. 어찌나 열심히들 하는지 가끔 촬영감독님은 앵글을 들여다보시며 이렇게 소리치시고는 했다. “아냐!! 거기는 안 나온단 말이야! 그만해도 돼!!!” 운림산방 뱃놀이 장면에서 카메라를 실을 보트를 잡느라 하루종일 연못에 몸을 담그고 있어야 했던 그립 팀. 때아닌 갈대를 하나하나 심고 있는 조감독. 아무런 예고없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얄미운 해님을 원망스레 노려보고 있는 조명팀. 하지만 본인들은 모를 것이다. 매 순간,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말이다. 찰칵찰칵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들과의 추억을 내 마음속에 담았다. 길게만 느껴졌던 촬영의 시간들… 하지만 돌이켜보니 짧았던 찰나의 순간처럼 짜릿하게 느껴진다. 이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만든 사람들의 손을 떠났고 마지막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지겠지만 나에게는 한장의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기억이 될 것이다.

<스캔들> 제작기 [1] - 배용준의 포토코멘터리 ①

배용준의 취미가 스포츠에 국한돼 있던 게 아니었다. 누구한테 배우지도 않고 혼자서 사진책에 밑줄 그어가며 자습을 하던 그가 드디어 ‘작품’ 수준의 영상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스캔들-남녀조선상열지사>의 제작현장에 사진책과 더불어 라이카M6, 니콘F5 등을 들고 다니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주로 스탭들을 주인공 삼아 찍었지만 아름다운 풍경도 잊지 않았다. 그 순간들이 자연스레 <스캔들…>의 제작일지가 되었다. 고맙게도 배용준은 <씨네21>을 위해 사진 인화를 직접하고, 베스트라고 생각되는 컷들을 직접 골라(본인이 직접 고르지 않은 사진은 제작사에도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코멘터리를 달아주었다. 여기에 모처럼 새로운 사극을 만들어내기까지 어떤 험난한 여정을 거쳐왔는지 이유진 프로듀서가 따로 제작일지를 만들어주었다. 흑백사진은 모두 배용준의 작품이며, 컬러사진은 스틸기사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배용준의 <스캔들> 포토코멘터리 “앞으로 넉달… 아직 계약서에 도장찍기 전이렷다” 희대의 바람둥이 조원 역을 하게 되기까지, 영화사도 나도 몇겹의 장애물을 통과해야 했다. 내 쪽에서는 매니저를 포함, 모든 사람들이 영화데뷔작으로 ‘사극’을 한다는 것에 결사 반대를 외쳤고, 감독님도 나를 염두에 두신 적이 없었던 거다. 이해는 간다. 드라마 속의 이미지만 생각하면 분명 모험이었으니까. 하지만 주변에서 반대를 하면 할수록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이건 내 역할’이란 신호를 자꾸 보내 온다. 하지만 나 스스로도 상투를 튼 내 얼굴이 상상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영화사와 나 모두. 일단 분장테스트를 해보기로 한다. 안경을 벗고, 수염을 붙이고, 한복을 입고 상투를 틀었다. 생전처음 뒷머리를 모두 틀어올려 상투 속에 감추고 망건을 조이니 일단 숨막힐 정도로 머리가 아파왔다. 당장 벗어던지고 싶은 생각밖에는 안 들었다. 이재용 감독님의 세심함은 상투를 틀 때도 커트머리에 망건만 두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매번 이렇게 힘껏 조여야 한다는 건데… . 모두들 ‘의외로 너무 잘 어울린다’는 고무적인 반응에 아픔을 잊은 것도 잠시…. 촬영 기간이 넉달…. 머리가 어지러워지기까지 한다…. 음… 아직 계약서에 도장찍기 전이렸다…. “꾸욱 눌러보시게! 나도 할 만큼 했으니…” 모든 배우들이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준비들을 하지만 이번에는 ‘걸음걸이’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촬영 전, 삼청각에서 양반의 자세부터, 한복매무시, 다도를 배웠다. 익숙하지 않은 한복을 입고 이 동작 저 동작을 해보니 심지어 걷는 것조차도 어렵게 느껴진다. 게다가 승마에 칼쓰는 법. 그리고 조원이 뭇 여인과의 정사를 춘화로 남기는 통에 붓을 잡고 한국화를 그리는 연습까지 해야 했다. 옛 선인들은 시·서·화에 두루 능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가옥을 직접 설계까지 할 정도로 팔방미인이었다고 하니 문득 20세기에 태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체중감량. 조선시대의 선비에게 근육질 체격은 어울리지 않는 탓이다. 크랭크인까지 2달여 남은 시간. 운동량을 대폭 늘리고 절식에 돌입했다. 슬슬 보는 사람들마다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스탭들은 별 반응이 없다. 안동에서의 촬영날. 프로듀서 유진이 누나와 스틸 태환이에게 자신있게 한번 눌러보라고 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그들의 무반응. “머, 원래 어땠는지 알아야 빠졌는지 말았는지 알지?” 그리고는 간식테이블로 총총히 걸어들가더라…. “무사히 마치도록 해주소서” 2003년 2월6일. 드디어 첫 촬영날. 얇은 한복 사이로 차가운 겨울 바람이 헤집고 들어온다. 영화의 순항을 비는 고사 마당. 미소를 머금고 지폐 다발을 입에 물고 있는 돼지머리 앞에 미숙 누나, 도연씨와 함께 큰 절을 올렸다. 미숙이 누나가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는 저 자세는, 촬영 기간 내내 누나의 머리를 내 상투보다 더 괴롭히게 될 4kg짜리 가체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것이다. 저렇게 깊숙이 머리를 조아리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감독님, 스탭들, 미숙 누나, 도연씨… 모두들 능력있고 믿음직한 사람들… 그들과 무사히 이 긴여정을 마칠 수 있기를… 눈부시게 하얀 도포자락의 조원이 조용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첫 영화, 최선을 다해 나를 믿고 있는 고마운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좋은 추억의 한 자락으로 남겨지기를… 신인배우가 된 배용준이 속삭인다.

[인터뷰] 프랑스감독 자크 드와이옹

<뽀네트>로 잘 알려진 프랑스 감독 자크 드와이옹(59)이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그가 부산 관객에게 선보이는 영화는 모로코의 젊은 여인과 프랑스의 나이 많은 부호의 사랑을 그린 <라자>(Raja)(사진). 지난 8월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해 아마추어 배우 나자 베살렘에게 신인배우상(지난해에는 문소리가 <오아시스>로 수상)을 안겨주었다. 8일 저녁 부산에 도착한 드와이옹 감독은 9일 오후 8시 공식 상영에 이어 관객과의 대화를 갖고 10일 서울로 떠나 이틀간 머문 뒤 뉴욕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8일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2001년 부산에 초대를 받았지만 촬영에 매달리느라 오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다음은 기자와의 일문일답. 처음 한국을 찾았는데 소감이 어떤가. ▲전세계에서 영화제가 너무 많이 열리기 때문에 모든 초대에 응할 수가 없다. 나도 영화제에 가는 걸 좋아하지만 영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못갈 때가 더 많다. 부산에는 제작자가 "재미있고 좋은 영화제니까 꼭 가보라"고 권유해 오게 됐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굉장히 아름답고 뒤편의 밤거리에는 활기가 넘쳐 감명을 받았다. 프랑스나 모로코의 거리에는 해가 지면 식당이나 술집 말고는 한산하고 어두컴컴하다. 한국영화를 접할 기회가 있었나. ▲사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영화에 대한 지식은 빵점이나 다름없다. 젊을 때는 하루에 두세 편씩 영화를 보는 마니아여서 일본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뒤로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영화를 볼 틈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 돈은 적고 시간은 짧아 영화 만들기에도 바쁘다. 한국영화를 비롯한 아시아 영화들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들었는데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한국과 함께 할리우드에 대항해 높은 자국영화 점유율을 유지하는 예외적인 나라로 꼽힌다.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영화의 눈부신 성과에 박수를 보낸다(실제로 크게 손뼉을 쳤다). 스크린쿼터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개똥같은' 자국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쿼터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질적으로 높은 영화가 상영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영화시장이 세계화되면서 할리우드의 영향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문화 다양성을 위해 뾰족한 대책이 없겠는가.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이나 음악, 영화 등에 대해 잘 가르치지 않는다.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갈 수 있는 교육이 뒷받침된다면 젊은 세대들도 할리우드 영화에만 열광하지 않을 것이다. 70년대까지는 거장의 훌륭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다. 지금 그런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은 감독의 역량이 모자라기보다도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또하나 문제로 꼽아야 할 것이 TV 프로그램이다.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고 배울 것도 없는 리얼리티쇼나 토크쇼가 프라임 타임을 채우고 있다.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들지 않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지금의 TV는 미국 대통령의 표현대로 `악의 축'이다. <뽀네트>에서도 4살짜리 배우를 기용했듯이 이번에도 비전문배우들을 많이 출연시켰다. 아마추어를 선호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인간을 전문연기자와 비전문연기자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인간이 인생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며 살아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두가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카메라 앞에서 수줍음만 타지 않는다면 비전문배우들이 훨씬 풍부한 표정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전문배우들은 노하우를 갖고 있어 거짓으로 연기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추어는 그런 테크닉을 모르기 때문에 영화에 몸과 마음을 바친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섞어놓으면 전문배우들도 비전문배우의 연기를 보고 잊어버렸던 순수함을 되찾는 경우가 많다. 대신 비전문배우들을 데리고 촬영하면 같은 장면을 20번 이상 찍어야 자연스런 연기를 뽑아낼 수 있다. 필름이 훨씬 많이 든다. <라자>는 신분과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은 사랑 이야기다. 그 사랑이 어떤 결말을 이루는지 보여주지 않은 채 끝을 맺은 의도는 무엇인가. ▲결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다 한 셈이다. 둘이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마무리지으면 동화 같고 결별하는 것을 보여주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영화 속에서 두세 달이 지난 뒤 두 주인공이 다시 만난다면 서로 피할지 반갑게 맞을지 모르겠다. 관객의 상상에 맡기겠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는가. ▲모로코를 여러 차례 들르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끼리의 사랑을 그려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랩음악의 가사를 몰라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말이 통하지 않아도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더빙하면 죽은 영화가 된다.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배우에게 연기지도를 해본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돈많은 제작자를 내게 소개해준다면 한국말로 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부산=연합뉴스)

정창화. 임권택 감독의 ‘오픈 토크’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초대된 정창화(75)(사진) 감독이 9일 오후 부산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 뒤뜰에서 임권택(69) 감독과 함께 `오픈 토크' 자리에 나섰다.임권택 감독은 1956년부터 61년까지 정창화 감독의 연출부에서 스태프로 참여하며 연출 수업을 받았다. 정창화 감독은 60년대 충무로에서 액션영화로 최고봉으로 군림하다가 홍콩의 쇼브라더스에 스카우트돼 미국과 유럽까지 널리 이름을 알렸다. `한국 액션영화의 전설'로 꼽히는 정창화 감독과 `한국의 국민감독'으로 추앙받는 임권택 감독의 만남은 스승을 향한 존경과 제자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중앙대 영화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사제간 대화를 정리한다. 먼저 소감을 말씀해주시지요. ▲정창화 = 고국에서 제 영화 회고전을 연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처음 듣고는 믿기지 않아 묻고 또 물었지요. 잊혀졌던 영화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임권택 = 제가 유일하게 연출을 배웠던 분이 정창화 감독님이십니다. 그분의 모습과 그분의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어느 누구보다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지요. 정 감독님의 근황은 어떠십니까. ▲정 = 미국 캘리포니아 남단 샌디에이고의 소도시에서 조용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과 홍콩에서 감독생활을 할 때는 사람들에게 벅차게 치인 것 같아 이곳을 택했지요. 너무 조용하게 지내다보니 영화에 대한 향수가 북받쳐오르고 과거의 추억 속에서 살아갑니다. 가끔 바다낚시나 골프를 즐기며 소일하지요. 임 감독님은 정감독님을 인간적으로나 영화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임 = 56년 <장화홍련전>을 할 때 촬영 중간에 제작부 똘마니로 들어갔지요. 당시로서는 제가 감독이 된다는 건 언감생심이었고 사병이 장성 대하듯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지요. 생김새는 부드러워 보여 여자들도 많이 따랐는데 작품은 엄청나게 터프하지요. 촬영 때도 하도 꼼꼼하고 끈질기고, 어찌 보면 잔인하기 짝이 없었어요. 2층 계단에서 구르는 장면을 찍을 때 우리 같으면 일단 슈팅에 들어가서 좋은 장면을 골라쓰곤 하는데 정 감독님은 리허설 때부터 몇번이고 구르게 한 뒤 만족하면 비로소 촬영에 들어갔지요. 세트를 지을 때도 건성건성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제가 만일 다른 감독 밑에서 배웠다면 건성건성하는 버릇이 몸에 배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 감독님 아래서 훈련받은 것이 지금까지 연출 생활를 해가는 데 큰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정 감독님은 임 감독님을 어떻게 보셨나요. 처음부터 대성할 것이라고 짐작하셨나요. ▲정 = 어느날 <장화홍련전>의 제작자인 임 사장이 젊은 청년을 데리고 와서 써줄 것을 부탁했어요. 그때는 이미 스태프가 모두 구성돼 촬영에 들어갔을 때라 하는 수 없이 소품 담당을 시켰지요.(이때 임 감독이 `그거는 두 번째 영화이고 처음에는 제작부 똘마니였다니까요'라고 정정한다) 유달리 다른 스태프보다 부지런해 새벽 4시에 통행금지가 해제될 땐데 5시면 사무실에 나와 준비를 하곤 했어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쓸 만한 청년이라고 생각해 조감독을 맡기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뒤 58년 <비련의 섬>을 찍을 때 자리가 비어 정식 조감독으로 기용했지요. 61년 임 감독의 데뷔영화 <두만강아 잘있거라>를 보니 탁월한 역량이 엿보여 훗날 거목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정 감독님이 홍콩으로 건너간 계기 가운데 한국 영화계에 대한 반발심이 있었나요. ▲정 = 그 무렵에는 한국 영화계가 너무 영세해 모든 것을 감독의 역량과 재치에 의존하던 시대였지요. 지금은 무술감독과 스턴트맨도 쓰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지요. 특수효과 장치도 없어 총격장면에서는 실제 총을 사용했는데 유탄이 제 가슴에 맞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왼쪽 가슴에 꽂은 대본에 박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요. 그런데 홍콩에 가보니 할리우드에 못지않은 규모와 시설을 갖추고 있더군요. 우리나라에는 촬영소 하나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중국어를 하실 줄 알았던 것도 도움이 됐겠군요. ▲정 = 학창시절 외국어를 선택과목으로 들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영어 대신 중국어를 선택했어요. 그게 홍콩 가서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됐지요. 한국과 홍콩의 합작영화 <순간은 영원히>를 찍을 때 오픈세트에서도 촬영하기 힘든 액션장면을 실제 홍콩 거리에서 찍었어요. 쇼브라더스 대표인 란란쇼가 그걸 보고 깜짝 놀란 모양이에요. 직접 전화를 걸어 당장 와달라고 부탁하더군요. 무협영화의 대가인 후진취안(胡金銓) 감독이 정 감독님의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정 = 그분이 저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과찬이지요. 쇼브라더스에는 액션감독은 없고 무협감독만 있었는데 란란쇼가 제 영화 <천면마녀>를 연구해보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후진취안 감독의 영화에는 시가 있고 철학이 있어 제가 좋아하고 친분도 깊었지요. 제가 무협영화를 찍을 때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장군의 아들>을 보니 템포와 리듬 면에서 정 감독님의 영화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임 =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 문하에서 액션과 사극을 배웠는데 제 영화의 뿌리가 닿아 있는 것은 당연하지요. 젊은 감독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정 = 우리가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 때는 참으로 피눈물나게 생활했어요. 지금의 여건에서는 본인의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뻗어갈 수 있습니다. 좁은 한국시장만 바라볼 게 아니라 세계시장을 겨냥한 영화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임 감독님이 정 감독님께 바라는 바를 말씀해주시지요. ▲임 = 거기서 늘 영화를 생각하시며 사신다니까 한번쯤 왕년의 솜씨를 다시 보고 싶군요. 젊었을 때와 나이 들었을 때의 감각과 깊이는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저도 60년대 찍은 영화와 90년대 찍은 영화가 많이 달라요. 정감독님이 지금 연출을 하시면 새로운 면모를 보일 수 있을 겁니다. 정 감독님께서는 어떤 생각이신가요. ▲정= 조용히 지냈는데 부산영화제에서 파문을 일으켜 다시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어젯밤에 곰곰 생각해보니 두려운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무래도 겁이 나서 못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