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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파리] 엉뚱한 코믹영화 <싱크 오어 스윔> 프랑스 박스오피스 석권

<싱크 오어 스윔>은 코믹 배우 출신인 질 를루슈가 처음으로 야심차게 혼자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 (그는 이전에 장 뒤자르댕과 함께 <플레이어스>(2012)를 공동 연출한 적 있다) 삶에 환멸을 느낀 8명의 중년 남성들이 국제수중발레대회에 참가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다룬 작품이다. 이 어정쩡한 팀은 2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는 가장(마티외 아말릭),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망한 중소기업 사장(브누아 포엘부드), 정신병 앓는 어머니를 둔 신경질적 이혼남(기욤 카네), 50살이 넘도록 로커의 꿈을 꾸는 철없는 아버지(장 위그 앙글라드), 어린 시절 양부에게 학대받은 수영장 관리인(필립 카트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의 훈련을 맡은 이는 왕년에 수중발레 선수로 잘나갔지만 현재는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고 있으며 동네 수영장 코치가 된 독신 여성(버지니아 엘피라)이다. 이들 모두에게 수중발레는 금남의 운동도 아니고, 물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아야 하는 답답한 훈련도 아니다. 이들에게 수중발레는 가장으로서, 남자로서, 아버지로서 당당하게 자리잡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다. 이 프랑스식 ‘필 굿 무비’는 10월 24일 개봉 첫주부터 관객 117만7534명을 모았고, 11월 27일 기준으로 382만2502명의 관객 몰이를 하면서 올해 개봉한 프랑스영화 중 <투치3> <츠티 가족> <택시5> 다음으로 많은 관객을 불러모았다. 이에 영화 주간지 <텔레라마>는 “탄력 있고 감동적인 프랑스식 <풀 몬티>”라고 평했고, 영화 월간지 <스튜디오>는 “완벽한 필 굿 무비”라고 극찬했다.

[넷플릭스 신작 영화③] 코언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 - 황야에서 죽음까지 코언의 시도는 계속된다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코언 형제의 18번째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가 11월 16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배급되는 코언 형제의 첫 작품이자, 35년의 활동 기간 중 처음으로 디지털로 촬영했으며 여태 만든 작품 중 러닝타임이 가장 길다. TV시리즈로 계획했다가 장편영화로 방향을 바꾼 작품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코언 형제는 최초에 쓴 영화 시나리오 그대로 촬영했고 TV시리즈로 의도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루머를 바로잡았다. 넷플릭스와의 기념비적 만남에 관한 <인디와이어>의 집요한 질문에 “애초에 할리우드 영화사에는 시나리오를 보여줄 계획도 없었다. 자금을 대줄 리 없다고 생각했다”는 에단 코언의 대답은 자못 상징적이다. 조엘 코언은 “마블 영화나 대형 프랜차이즈 액션영화처럼 요즘 영화사들의 주요 업무가 아닌 작품”, 즉 수익성이 모호한 <카우보이의 노래>와 같은 작품에도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가능성”을 가장 중요한 경험으로 언급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시네마의 완성을 위한 노력들, 이미지와 사운드의 디테일을 큰 스크린으로 확인하는 것은 텔레비전의 경험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확신한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넷플릭스 스트리밍 영화 중 지극히 소수만이 누리는 극장 병행 상영의 기회를 누렸다. 지금으로서는 북미에서 제한적으로 극장 상영을 실시한 것이 넷플릭스와 코언 형제가 내린 최선의 타협점이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어떤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는 6개의 단편을 엮은 선집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것 같은 영화다. 감독들은 각각의 단편을 지난 25년간 하나로 묶으려는 목적 없이 천천히 그리고 개별적으로 써내려갔다. 서랍에 넣어둔 짧은 이야기들이 19세기 말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공통의 테마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형제가 자각한 것은 10년 전쯤의 일이다(<할리우드 리포터>). 앤솔러지 형식을 계획한 후 본격적으로 단편들을 소급하는 과정에서 우선 고심했던 것은 배치였는데, 코언 형제는 이야기가 쓰인 순서, 그러니까 긴 시간 동안 이야기가 스스로 흘러나오고 정렬된 순서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각 단편의 내러티브를 드라마틱하게 응집하려 애쓰지 않는 태도는 <카우보이의 노래>가 더욱 우아하고 기묘하게 빛나도록 만든다. 프레데릭 레밍턴(서부 개척 시대의 화가, 황야의 풍경과 인디언들을 주로 그렸다) 스타일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각 단편의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를 인서트 삼아 영화가 이어지는데, 이 낡은 책의 면면에서 단편과 앤솔러지, 그리고 서부극에 대한 코언 형제의 공고한 취향이 드러난다. 선집의 목차를 훑어보는 요량으로 영화를 간단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1장. <버스터 스크럭스의 발라드>는 노래와 사격 실력에 있어 최고를 자부하는 총잡이(팀 블레이크 넬슨)의 짧은 활약상을 그린다. ‘인간혐오자’라 불리는 말끔한 백색 슈트의 무법자는 죽음 앞에서 기이할 정도로 유희적인 태도를 보인다. 코미디와 뮤지컬 장르, 그리고 자비 없는 폭력이 뒤섞인다. 2장. <알고도네스 근처에서>는 알고도네스 지역 인근의 은행을 털려는 카우보이(제임스 프랭코)의 수난을 담았다. 어리석은 선택과 반복되는 불운이 담긴, 코언 형제 특유의 테마가 두드러지는 단편이다. 3장. <밥줄>의 사지가 없는 장애인 배우(해리 멜링)와 그를 돈벌이로 이용하는 방랑극단의 단장(리암 니슨)은 점점 줄어드는 수입으로 고전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의 <오지만디아스>, 창세기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템페스트>, 그리고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선언에 이르는 장대한 낭독극이 펼쳐진다. 4장. <금빛 협곡>은 의심과 긴장에 지친 관객에게 때맞춰 사탕을 물리는 에피소드다. 찬란한 미지의 초원, 노동요를 흥얼거리며 밤낮으로 금광을 찾아 땅을 파는 늙은 채굴꾼(톰 웨이츠)이 있다. 노숙하며 황금에만 골몰하는 속물적인 인간이지만, 배고픈 와중에 부엉이 둥지의 알을 딱 한개만 집어오는 의외의 양심도 지녔다. 5장. <곤경에 빠진 아가씨>는 광활한 오리건 트레일을 가로지르는 느린 마차의 행렬 속으로 합류한다. 두명의 길잡이에 의지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젊은 여성(조 카잔)은 자꾸만 시끄럽게 짖어대는 애완견 프랭클린 피어스(미국 14대 대통령의 이름) 때문에 난처해진다. 6장. <시체>는 역마차 안에 모인 5명의 사람들이 벌이는 긴 수다를 엿듣는다. 이들은 어떻게 한자리에 모였나, 그리고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코언에 의한, 코언을 위한 서부극 코언 형제는 이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와 <더 브레이브>(2010)에서 서부를 탐험한 적이 있다. 미국 중북부에 위치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데뷔작 <블러드 심플>(1984)에서부터 텍사스를 영화적 고향으로 택했다. 마침 전작 <헤일, 시저!>(2016)에 카우보이 캐릭터가 등장했던 것까지 더하면, 잊을만하면 서부로 돌아오고야 마는 후천적 습성을 지닌 모양새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단편마다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고전 할리우드 서부극을 직접적으로 인용하고 변주해나간다. 이를테면 1장과 3장에서는 자연색이 극대화된 화면을 통해 테크니컬러가 보급된 1930~50년대 서부극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팀 블레이크 넬슨이 연기하는 초연한 총잡이는 샘 페킨파 스타일의 급작스럽고 폭발적인 폭력성을, 제임스 프랭코의 카우보이는 세르지오 레오네로 대표되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주인공을 비튼 결과처럼 보인다. 조 카잔에게 석양과 함께 다가오는 급작스러운 작은 로맨스 또한 서부극의 사랑받는 일부다. 이처럼 <카우보이의 노래>는 서부극이 다양한 장르와 이미지를 포섭해온 미국영화의 거대한 신화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코언 형제는 자신의 레퍼런스들을 대단한 무대배경쯤으로 전락시킨다. 모뉴먼트 밸리의 풍경, 깨끗하게 흰 모자를 쓴 무법자, 먼지 속의 카우보이, 방랑자들, 그리고 역마차까지. 특징적인 웨스턴 장르의 이미지로 쐐기를 박듯 각장을 열고서, 곧바로 삶의 불확실성을 향한 집요하고 치명적인 곡예를 시작하는 식이다. 유일하게 불가피한 것은 내정된 죽음뿐이다. 예측 불가능의 땅인 서부의 황야는, 불확실한 인간의 삶과 도덕, 죽음을 탐구하기 위한 캔버스로서 코언 형제에게 운명적이다. 코언 형제는 무엇을 믿는가 코언 형제는 미리 써둔 단편들로 앤솔러지 필름을 만들기로 결심한 후, 앞선 이야기들을 수렴하고 영화의 문을 닫는 역할로 마지막 6장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좁은 역마차 안, 죽기 전에는 도저히 같은 공간에 모일 일이 없어 보이는 세명의 낯선 승객(사냥꾼, 중산층 부인, 프랑스인)과, 정체가 불분명한 두 남자가 마주보고 있다. 각자의 경험치에 근거한 확신에 찬 대화들로 분쟁을 키워가던 세 사람은 갑자기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아일랜드 남자의 소박한 포크송과 (<시리어스 맨>(2009)과 <더 브레이브>에서 이미 반복한 적 있던) 영국 남자가 들려주는 ‘한밤중에 찾아온 손님’에 대한 오싹한 이야기로 순식간에 잠잠해진다. 세 승객을 유심히 지켜보던 남자는 “다 아는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매번 어린애처럼 정신을 빼앗긴다”고 미소 짓는다. 세명의 승객은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에야 자신들이 어디에 왔는지 서서히 알아차리게 된다. 주위는 점점 더 어둡고 푸른빛에 잠긴다. 1장의 밝은 빛과 6장의 검은 어둠은 모두 초현실적인 세계로 이어진다. 오프닝과 엔딩의 대구, 이쪽과 저쪽의 경계 안에 갇힌 <카우보이의 노래>는 코언 형제의 영화에서 구원이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인간의 성격과 자유의지, 합리적 선택을 향한 도덕적 믿음이 대체로 운명이나 부조리에 의해 무마당하는 광경이 그 사이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카우보이의 노래>는 지금껏 코언 형제의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무자비하게 죽음을 바라보면서, 그 집념을 사후세계로까지 이어간다. 미국 온라인 영화 매체 <콜라이더>는 “영화감독으로서 코언 형제가 누구인가의 대답이기보다는 코언 형제가 무엇을 믿는가의 대답으로서 정확한 영화”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코언 형제는 표면적으로 단호한 일관성보다 풍성한 장르적 실험으로 관객을 유인한다. 우리는 기꺼이 다 아는 이야기에 또 한번 의심하고 동요하게 될 것이다.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걸작은 아닐지 몰라도 <카우보이의 노래>는 뜯어볼수록 여유롭고 신비롭다.

<더 파티> 7명의 게스트, 71분간의 폭로전

<더 파티>는 흑백의 화면, 한정된 공간에서 어느 날의 저녁 식사가 불러온 잔인한 희비의 교차를 그린다. 1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동안 파티는 계속해서 병적으로 비틀어질 뿐이다. 보건부 장관에 임명된 자넷(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은 축하파티 겸 6명의 친구들을 초대한다. 냉소적인 에이프릴(퍼트리샤 클라크슨)과 고트프리드(브루노 간츠), 임신부인 지니(에밀리 모티머)와 파트너 마사(체리 존스), 그리고 훤칠하지만 신경과민인 은행가 톰(킬리언 머피)이 자신의 아내 마리안이 곧 올 거리고 계속해서 기다린다. 지나치게 우울한 자넷의 남편 빌(티모시 스폴)을 포함해 7인의 인물들은 파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자석에 반응하는 나침반처럼 각자의 극점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 모두 어떤 식으로든 세상이 불만스럽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 이념 논쟁, 건강보험 문제 등 <더 파티>가 언급하는 이슈와 신랄한 대화를 엿듣는 것은 분명 즐거운 경험이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 영화를 “새로운 브렉시트 시대의 코미디”라고 평했다. <올란도>(1993), <탱고 레슨>(1997), <예스>(2003) 등을 만든 샐리 포터 감독이 영국의 정치 상황을 주시하면서 만들어낸 <더 파티>는, 다양한 개인에게서 우러나오는 이상과 실천 사이의 모순, 편견과 아집, 그리고 사회적 제스처들로 포장된 중산층의 허약함을 드러냄으로써 익살맞은 정치 풍자극으로 기능한다. 영화의 첫 장면, 화면이 밝아지고 문이 열리면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가 관객을 향해 총을 겨누는 이미지를 다시 곱씹게 되는 작품이다. 샐리 포터 감독과 꾸준히 함께 작업해온 알렉세이 로디오노프 촬영감독의 핸드헬드 카메라가, 한 공간 안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배우들의 동선을 따라 은밀히 떠돈다.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영화다.

<버블 패밀리> 마민지 감독 - 도시, 부동산, 가족… 이야기의 근원

셀카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부터 셀카를 찍으며 우아하게 중산층의 삶을 누렸지만 지금은 부동산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노해숙). 한때는 중소 건설회사의 사장님이었지만 지금은 “무능하고 권위만 남은 전형적인 가부장”이 돼버린 아빠(마풍락). 잠실의 아파트 키드로 자랐지만 지금은 학자금 대출과 월세조차 버거운 딸 마민지. <버블 패밀리>는 부동산으로 흥하고 망한 가족의 역사를 마민지 감독이 직접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버블 패밀리>가 마민지 감독에게 데뷔작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건 “오랫동안 세상에 가졌던 의문들,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뿌리를 다 건드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큰 숙제를 어렵게 마친 느낌”이라는 마민지 감독을 만났다. -<버블 패밀리>를 만들게 된 최초의 동기는 무엇인가. 도시 개발사와 부동산으로 흥망성쇠를 경험한 가족의 이야기 중 어느 것이 우선했나. =최초의 심적 동기는 개인적인 것이었다. 영화 초반 내레이션으로도 나오지만, 아버지와 교류 없이 타인처럼 지내다 우연히 종로 지하철역에서 아버지를 보게 됐다. 그날,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장사를 했던 부모님의 역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시 개발사 이야기가 들어왔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의 도시 개발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부모님도 그러한 영화의 기획의도에 동의해 촬영에 협조해주었다. 촬영하면서 가족의 이야기가 더 중심이 돼 버렸는데, 한 가족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들여다볼수록 도시 개발사 또한 더 잘 보이겠다고 생각했다. -<버블 패밀리>의 가장 큰 매력이자 미덕은 사적 다큐멘터리로서의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가족의 모습이나 집안 형편 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용기가 있다. =내 기준으론, 충분히 솔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촬영한 영상 중에서 부모님이 싫어하는 것,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 내가 보기에 불편한 것들은 많이 걷어냈다. 예를 들어 부동산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어머니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 같은 건 어머니가 공개를 원하지 않아서 뺐다. 나름대로 정제된 작업물이다. 너무 솔직한 건 때로 불편하니까. -어머니가 과거에 찍은 홈비디오 영상이 영화의 중요한 재료로 쓰인다. =10년 넘게 장롱 안에 있던 테이프를 그야말로 유물 발굴하듯 발굴해냈다. (웃음) 8mm 테이프를 디지털로 복원했는데 다행히 영상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 이번에 영화 만들면서 나도 영상을 처음 봤다. 어머니의 취미가 사진 찍기다. 내가 20살이 될 때까지 1년에 영상 테이프 하나, 사진 앨범 하나씩을 만들어 선물하려 했다는 얘기를 밥 먹듯이 하셨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12살이 된 이후로 그 기록이 끊겼다. 그때부터 과거에 찍은 테이프는 장롱에서 잠자고 있었고.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사회생활을 카메라에 담는다. 어머니가 일하면서 겪는 곤란,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순간까지 가까이서 목격하는데, 감독이자 딸로서 그 상황을 기록해야 하는 감정은 복잡했을 것 같다. =영화를 찍기 전에 각오를 많이 했다. 비정규직 여성의 이야기나 가족의 관계에 대한 극영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어서 마음의 준비가 조금은 됐던 것 같다. 가족 문제 때문에 감정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던 건 20대 초반이었다. 이번엔 거리두기가 많이 돼 있어서 촬영할 때 담담했다. 스탭들이 나보고 독하다 그러더라. 독한X이라고. (웃음) -거리두기가 마음먹는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닌데. =만약 카메라 없이 그 상황을 목격했다면 힘들었을 거다. 카메라가 좋은 매개가 됐다고 생각한다. 카메라가 있어서 아버지와 외출도 많이 하고,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어머니가 서울머니쇼에서 쫓겨나는 장면은 어머니가 같이 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찍으러 간 거다. 카메라가 존재하기 때문에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었고, 카메라 앞에서 드러내는 솔직함이 있었다. -아버지의 경우는 어땠나. 영화 촬영을 하면서 발견한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이 있었나. =아버지는 끝까지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비자금을 보여주지 않았나. (웃음) =비자금은 보여주셨는데. (웃음) 이야기를 나누기는 까다로웠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예전에 아버지가 지었던 건물을 구경하러 다니는 일은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나중에는 왜 더 찍으러 가지 않냐고 섭섭해하셨다. 영화 찍기 전과 후 아버지와 나 사이에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통화 시간이 길어진 거다. 예전엔 30초 만에 전화를 끊었는데 지금은 2분이나 통화를 한다. -아버지 캐릭터를 보면서 쉽게 극복하기 힘든 세대차를 목격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결코 사랑할 수도 없지만 이해하고 살아가야 하는 가족이 결국 아버지다. =이 영화가 가족주의로 봉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아빠 힘내세요’의 문화 속에서 아버지들에 대한 동정은 있었지만 고생한 어머니들에 대한 이해는 얼마나 있었던가 싶다. 정당화하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 이제 화해했어요’라고 쉽게 말할 순 없었다. 한편으론 부모님의 과거사를 듣고 한국의 도시 개발사 속에서 부모님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부모님이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견지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 문제가 아닌 건 아니다. 얼마 전에도 어머니가 땅에 투자하셨다. 영화는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는 걸 느끼고 있다. (웃음) -가족주의로 봉합되는 것을 경계했다고 했는데, 가족사진을 찍고 삼겹살을 먹고 일출을 보러 가는 장면들로 엔딩을 구성했다. 어떻게 이 영화를 결론내야 할지, 언제 다큐멘터리의 촬영을 끝내야 할지 고민이 깊었을텐데. =새해에 해돋이를 보러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희망찬 다짐을 하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데 날이 흐려 해가 잠깐 비치고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그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고, 이게 영화의 마지막이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희망할 것이고,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엔딩의 내레이션에 담았다. -도시의 역사와 공간에 대한 관심 외에 최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우울증과 여성주의와 도시 개발을 엮어서 무언가 이야기해보고 싶다. 아직은 막연하게 생각만 하는 중이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프랑스에서 기획한 다큐멘터리의 연출자로 고용됐다. 의사가 되는 게 꿈인 몽골 유목민 마을의 한 소녀가 홀로 도시 울란바토르에 와서 적응해가는 이야기다. <피의 연대기>의 오희정 프로듀서가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작품이다. 제목은 <회색 도시로 가는 길>이고, 촬영 때문에 2월에 몽골에 간다. -독립영화의 경우 상영관 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 <버블 패밀리>의 배급 상황은 어떤가. =좋지 않다. 독립영화를 개봉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체감하고 있다. 심지어 <버블 패밀리>는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서 CGV아트하우스 극장개봉지원상(CGV아트하우스 2주 상영 보장)을 받았는데, 언제 상영을 해준다는 건지 모르겠다. (웃음)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은데 상황이 내 마음 같지 않다. 이렇게까지 독립영화 개봉이 어려운 줄 몰랐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모털 엔진

*<카우보이의 노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검거된 소년 자인의 나이를 치아로 추정하는 광경으로 시작한다. 12살로 짐작되는 소년은 또래보다 체구가 작다. 반면 20대처럼 행동하고 40대의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자인은 욕을 들으면 곧장 욕으로 맞받아치고 연명하기 위해 좀도둑질을 망설이지 않는다. 조그만 소년은 크고 힘센 어른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항상 눈을 위로 치뜨고 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가 좀더 거친 영혼을 가졌다면 이런 모습일까? 베이루트 거리에서 캐스팅된 비전문 배우 자인 알 라피아는 나아가 할리우드 청춘스타 같은 카리스마로 관객을 당황스럽게 한다. 게다가 <가버나움>에서 미성년 배우의 놀라운 연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자인이 돌보게 되는, 걸음마도 못 뗀 아기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는 사상 최연소 명배우로 손색이 없다. 01/04 코언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는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와 함께, 미뤘던 넷플릭스 구독을 결정하도록 나를 떠민 지렛대였다. 아트하우스 스타 감독의 프로젝트이면서 극장 장편영화로서 투자받을 만한 상품성이 애매한 영화를 넷플릭스가 앞으로도 중요한 유인으로 삼을 거라는 징표로 보여서다. 무려 25년 전부터 코언 형제의 서랍 속에 잠들어 있었다는 <카우보이의 노래>는 6편의 독립적- 그러나 주제로 연결된- 이야기의 모음으로, 넷플릭스라는 신규 플랫폼을 만나 마침내 현실화됐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필모그래피의 양과 질 그리고 일관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코언 형제가 반복적으로 회귀한 주제와 형식 패턴을 일별할 수 있는 앤솔러지다. 여섯 챕터는 서부극의 울타리 안에서 코미디, 뮤지컬, 범죄, 멜로드라마, 귀신영화 등의 하위 장르를 끌어들인다. TV 연작은 고려한 적이 없고 단일한 영화의 여섯 챕터로 구상했다는 것이 코언 형제의 변이지만, 결과적으로 <카우보이의 노래>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상에서 보기에 적합하다. 단편소설집의 형식을 취한 이 영화는 섹션의 처음과 끝을 각각 책의 일러스트와 첫 문단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로 열고 닫는데 리모컨이나 마우스로 화면을 멈추면 영화에 다른 뉘앙스를 더하는 문장들을 읽을 수 있다. 여섯 에피소드 사이의 연관을 더듬으려는 팬들에게도 리모컨은 유용하다. 또한 코언 형제 최초로 디지털 촬영을 택한 <카우보이의 노래>는 CG를 비롯한 시각효과가 적극적으로 구사된 작품이기도 하다. 01/05 <카우보이의 노래>가 제목을 따온 첫 번째 에피소드 ‘카우보이의 노래’는 존 포드 서부극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러나 이내 노래하는 총잡이 버스터 스크럭스(팀 블레이크 넬슨)의 기타 안에서 내다보는 특이한 시점숏이 우리가 코언 영화를 보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여섯 단편을 관통하는 주제, 죽음의 불가피성을 제시하는 1화의 톤은 만화적이다. 바에 들어선 버스터가 상의를 털면 피어오른 먼지가 벗은 외투처럼 그의 실루엣을 그리고, 죽은 자는 귀여운 날개를 파닥이며 하프를 안고 승천한다. 노래하는 냉혈한 총잡이 버스터는 말하자면, 웃는 관상의 안톤 쉬거(<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자 만화 <루니 툰>에서의 벅스 버니다. 그러나 메시지는 선명하다. 당신이 제아무리 (심지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화자인) 버스터 스크럭스라고 해도, 내일은 더 손이 빠르고 노래 솜씨도 우월한 총잡이가 지평선 너머에서 찾아와 반드시 당신을 대체할 것이다. 에피소드2 ‘알고도네스 근방’의 어설픈 은행털이(제임스 프랭코)는 본인이 지은 죄에 내려진 형벌은 피하지만 결국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된다. 코언의 전작 중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의 이발사 에드(빌리 밥 손튼)와 비슷한 운명이다. 이 세계에서 죄와 벌의 인과는 뒤죽박죽이다. 각종 냄비로 무장한 늙은 은행원이 강도의 총탄을 튕겨내며 “팬 숏!”이라고 조롱하는 장면이 있는데, 직전에 도둑과 그의 말을 오가는 숏이 마침 짧은 패닝숏이다. ‘알고도네스 근방’의 짤막한 스케치 다음에는 장중하고 암울한 3화 ‘밥줄’이 이어진다. 유랑 흥행사(리암 니슨)와 팔다리 없는 아티스트(해리 멜링)는 철저한 공생 관계다. 흥행사는 아티스트의 재주를 팔아 돈을 버는 대신 그를 먹이고 입히고 용변보는 걸 거든다. 그러나 수입은 줄어만 가고 한 마을에서 재주 피우는 닭을 발견한 흥행사는 어느 쪽이 싸게 먹히는지 계산하고, 결론을 냉정히 실천한다. ‘밥줄’은 <인사이드 르윈>(2013)의 대사, “돈이 될 것 같지는 않구먼”으로 돌아간다. 공교롭게도 코언 형제는 이 에피소드에서 극히 필수적인 숏과 대사만으로 얼마나 경제적인 필름메이커인지 입증한다. 코언이 그리는 웨스턴의 시공, 미국의 초창기의 모든 인간관계는 투명하게 드러나는 거래다. 교환의 양변이 맞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에피소드4 ‘황금빛 협곡’은 늙은 금광 개척자(톰 웨이츠)의 이야기다. 디즈니스러운 CG로 그린 야생동물들이 뛰어노는 처녀지에 들어온 그는 여기저기를 흉하게 파헤치며 금을 찾고 마침내 성공한다. 하지만 이내 불로소득을 원하는 총잡이에게 습격당한다. 금을 발견해도 여생이 얼마일까 의심되는 노인에게, 금은 재산이기보다 삶을 잡아당기는 동력원으로 보인다. 금광은 혈혈단신 개척자의 유일한 대화 상대다. 총잡이를 물리친 노인은 손에 넣은 황금보다 불한당을 이겼다는 자부심으로 기뻐하는 듯하다. 총잡이에 비해 노인은 의롭지만 ‘황금빛 계곡’의 결말은 두 사람 모두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별 차이 없는 얼룩이었다고 말한다. 러닝타임이 가장 긴 에피소드5인 ‘겁먹은 처녀’는 장편으로 확장할 만한 에피소드다. 앨리스(조이 카잔)는 오리건으로 이주하는 도중 오빠를 여의고, 마차 행렬을 감독하는 진중한 카우보이 빌리(빌 헥)에게서 동반자를 발견한다. 솔직하고 공정한 두 남녀는 말하자면 이상적인 인간이다. 물론 결혼에서도 개척 서부에서 인간관계가 거래라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앨리스와 빌리는 기혼 남녀에게 두배로 지급되는 정부보조금을 언급하고, 결혼에 영향받을 동업자와 고용인의 입장을 상의한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라는 부탁을 교환하며 이어지는 구애의 과정은 담백하되 코언 영화에서 본 적 없이 로맨틱하다. 어쨌거나 에피소드5의 선하고 존경스러운 인물들도 죽음의 임의로운 쇠스랑을 면할 수 없다. 방황과 역경을 극복했다고 믿는 순간 회오리바람이 밀어닥친다. <시리어스 맨>(2009)의 결말처럼. 마지막 에피소드 ‘죽을 자만 남으리라’는 주제의 직설적 요약으로, 맺음말이 흔히 그렇듯 주로 야외가 배경인 이전 에피소드들과 달리 창밖으로 CG 하늘만 보이는 마차 내부에서 촬영된 에피소드로 아직 죽음을 인식 못하는 망자들의 여정이다. 세명의 승객은 맞은편의 두 사람이 저승의 안내자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고 어떤 일이 있어도 고삐를 늦추지 않는 얼굴 없는 마부는, 괴테의 시 <마왕>에서 아픈 자식을 안고 폭풍 속을 달리는 아버지와 닮았다. “살았거나 죽었거나”라는 1화의 지명수배 전단 문구가 반복되고 버스터의 노래로 시작한 영화는 저승 가이드의 노래로 끝난다. 인물에게 냉혹하고, 죄와 벌, 덕과 보상의 자동적 연관을 누차 부인하는 <카우보이의 노래>는, 코언 형제를 냉랭한 염세주의자로 여기는 관객에게 새로운 물증이 될 법하다. 죽음이 도처에서 기습하고, 공정한 법은 오직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개척기 서부는, 코언 형제의 세계관과 라이트 모티브를 형상화하는 최적의 무대다. <카우보이의 노래>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코언 형제는 희망적인 영화를 만드는 대신 버스터의 대사로 대꾸한다. “내가 인간혐오자라고요? 아닙니다. 인간들은 성가시고 무례하고 속임수를 부리지만 그보다 나은 것을 기대하는 바보들이나 실망하지, 나는 다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해요.”(‘카우보이의 노래’ 중) “불확실성(uncertainty)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 유용한 미덕입니다. 당위는 편하기 위해서 만드는 거예요.”(‘겁먹은 처녀’ 중)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망자들을 데려가는 사자는, 인간은 이야기에 혹하고 그러는 사이에 죽음이 잡아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사자는 삶의 무의미함과 스토리텔링의 무용함을 조롱하는 걸까? 반대로, 불가피한 사멸을 불공평한 이유로 공평하게 맞을 인간은 이야기를 그칠 수 없고 어쩌면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좋아요 더들리 코언 형제의 단골 배우가 포함된 <카우보이의 노래>를 통틀어 제일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는 에피소드3 ‘밥줄’에서 팔다리가 없는 유랑 아티스트를 연기하는 해리 멜링이다. 멜링은 소년 시절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주인공의 밉상 이종사촌 더들리 더즐리로 얼굴을 알렸고 이후 정통 연극배우로 성장했다. 아티스트는 천막무대에서 의자에 비끄러매진 상태로 오직 얼굴과 목소리만으로, 셰익스피어와 퍼시 셸리의 문장, 링컨의 연설을 쩌렁쩌렁 독백한다. 그의 연기는 몇명 안 되는 청중 너머의 광야를 호령한다. 언어의 폭포를 쏟아내는 무대 위와 대조적으로 무대 밖의 그에게 코언 형제는 대사 한마디도 주지 않았다. 지체가 부자유한 그의 목숨줄인 흥행사(리암 니슨)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아티스트는 오로지 눈과 고개의 각도만으로 경계와 힐문, 항의와 체념을 표현한다.

<그대 이름은 장미> 하연수 - 빛나는 처음들

“모든 경험이 처음이었다.” <그대 이름은 장미>에서 젊은 장미 역할을 맡은 하연수는 신인배우라고 부르기에는 데뷔 연차도, 참여한 TV 드라마 작품 수도 많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데뷔작 <연애의 온도> 이후 두 번째로 출연한 작품이다. 2016년에 작업했지만 여러 사정상 개봉이 밀려 3년 만에 관객과 만난 셈이라 홍보 스케줄도 처음이라고. 사실상 신인배우 하연수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인 동시에 배우에게는 뒤늦게 다시 데뷔하는 기분을 안겨줄 듯 하다. 출연 당시에만 하더라도 절실한 마음에 그저 “감사한 기회였다”는 그녀는 어느덧 연기와 연기 사이, 배우를 빼도 인간 유연수(본명)가 오롯이 남도록 일과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30살 배우가 됐다. -<연애의 온도> 이후 두 번째 출연작으로 2016년에 작업했지만 이제야 개봉했다. =얼마 전에 가족 시사회를 열었는데 엄청 떨렸다. (웃음) 다들 나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전해준 에너지가 지금도 느껴진다. 행복하다. -데뷔작 <연애의 온도> 이후 첫 주연을 맡은 tvN 드라마 <몬스타>가 음악 드라마였다. 가수의 꿈을 키워나가던 젊은 시절의 장미를 맡게 된 데는 춤과 노래 실력이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오디션 때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사실 춤도 거의 각목이 부러지는 느낌이 드는 수준이었는데 그나마 노력해서 촬영 때는 흔들흔들하는 정도는 됐다. 어느 날 촬영 중간에 스탭들과 노래방에 가서 BMK의 <꽃피는 봄이 오면>을 불렀는데 감독님이 들어보더니 “이 정도면 됐다”고 하시더라. 감독님은 ‘세또래’라는 1980년대 여성 3인조 그룹의 무대 분위기를 원하셨는데 허스키한 목소리지만 최대한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를 내보려고 했다. -tvN 드라마 <감자별 2013QR3>에서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한 개구리 공주 나진아 역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후 본격적인 첫 영화 주연작이다 보니, 장미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기대하는 바도 있었을 것 같다. =당시 드라마 촬영장만 오가다가 영화 프리 프로덕션 과정은 처음이었다. 스탭들과 술 마시면서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너무 고마웠고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꿈과 현실을 모두 좇는 장미는 배우로서 거쳐야 할 관문 같았다. -장미를 연기하는 건 엄마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했을 것 같다. =아이를 위해서 꿈보다는 현실을 택하는 장미의 모습을 연기하는데 엄마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극중 장미와 딸 현아가 싸우는 장면은 거의 내가 사춘기 시절에 겪었던 모습 그대로다. 돌이켜보면 엄마 말을 매번 잘 듣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장미를 비롯해 등장인물 대부분이 시대 재현을 위해 외형적으로 많은 걸 꾸며야 했다. =두 종류의 가발을 썼다. 최우식, 이원근 배우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더 잘 어울렸다. (웃음) 처음 입어보는 나팔바지 의상도 생각보다 잘 소화할 수 있었다. -장미를 연기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프거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밤에 잃어버린 현아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장면. 출산 연기를 할 때도 그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딸을 잃어버렸을 때의 심정을 대체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나. 힘들었지만 가슴에 많이 남고 지금 하라고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기 활동 외에 사진도 찍고 직접 책도 출간했다. 두 번째 사진집을 구상 중이라고.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필름카메라의 매력에 빠져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집을 출간할 때는 구성부터 디자인, 인쇄소 감리까지 세세하게 직접 해봤다. 내가 없어져도 책과 사진은 계속 남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작업한다. 그리고 촬영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카메라 렌즈 사이즈부터 모든 용어를 알아들으니 카메라 앞에서 뭘 할지 잘 알 수 있다. -최근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출연 경험 등을 바탕으로 뭔가 만들어볼 생각인가. =직접 출연한다기보다 그림이나 사진 작업으로 소통하면 어떨까 한다. 영화 2016 <그대 이름은 장미> 2012 <연애의 온도> TV 2018 <리치맨> 2017 <오! 반지하 여신들이여> 2014 <전설의 마녀> 2013 <감자별 2013QR3> 2013 <몬스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공동 감독 JR을 첫 서울 전시회에서 만나다

갤러리보다 스크린이 친숙한 사람들은, 제이알(JR)을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생애 처음 선택한 공동 감독으로 소개받았다. 사진 이미지를 공공 공간에 설치하는 도시 아티스트이자 거리 아티스트인 JR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동안 파리의 옥상과 외벽, 지하철에 그래피티를 남기는 작업으로 10대 중반에 경력을 시작했다. 2007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를 이루는 긴 벽에 같은 직업을 가진 양국 시민의 초상 사진을 둘씩 짝지어 붙였고, 2008년 시작한 ‘여자들이 영웅이다’(Women are Heroes)프로젝트에서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끌어안고 관대하게 세상을 지탱하는 여성의 얼굴을 브라질 촌락과 대양을 건너는 배에 입혔다. 비일상적 크기로 확대돼 노동과 삶의 공간 전면을 점령한 보통 사람들의 클로즈업 흑백사진은 “여기 인간이 있다”고 웅변했고, 지역사회의 맥락과 만나 풍성한 메시지를 생성했다. 숨은 얼굴을 전면(façade)에 드러냄으로써 이미지의 위계를 뒤엎는 JR의 작업은, 세계 곳곳의 자원자들이 카메라를 든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본인이 찍은 사진에 한정하지 않는 JR의 설치 작업으로는 아카이브 이미지를 역사적 구조물에 얹은 ‘언프레임드’(2009~) 프로젝트도 있다. JR은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 검역을 받고 수용됐던 엘리스섬의 버려진 병원 내벽에 당시 기록사진을 설치해 잊힌 건국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엘리스섬 프로젝트(사진③)는 2015년 로버트 드니로가 출연한 단편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어 2018년에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 2층 건물 세배 높이의 비계(scaffolding)를 세우고 독일 통일 직전 장벽 위에 올라탄 청년들과 경비병을 찍은 사진을 부착했다. 난민 수용 범위를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한 세대 후 독일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깨운 것이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이 개봉하고 반년 만에 JR이 서울을 찾은 까닭은, 최근 작업의 청사진과 제작 과정을 공개한 ‘Unveiling(베일을 걷다)’(1월17일~3월9일, 갤러리 페로탱 서울)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의 정면을 뒤쪽에 자리한 시계동의 전면 이미지로 덮어 특정 포인트에 서면 피라미드가 사라지는 환영을 연출한 (2016, 사진④), 미국 데스 밸리 황야에서 보이는 산의 일부를 흑백 이미지 빌보드로 대체한 (2017, 사진⑤) 등의 설계와 결과물 10점이 관람객을 만난다. 촬영과 설치는 JR에게 있어 작품의 첫 두 마디 모티브일 뿐이다. 미술관을 보러 왔지만 셀피를 찍기 위해 정작 대상을 등지는 관광객들을 돌려세우고 싶다는 아이디어로 시작된 루브르 프로젝트는 군중의 휴대폰 카메라 속에서 완성됐다. 한편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의 앨범 《Everything Now!》의 커버로 쓰인 데스 밸리 프로젝트는 스피커를 부착해, 음반에 인쇄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온 팬들과 사막까지 찾아온 팬들의 통화로 음향의 차원을 더했다. 영화로 익숙한 페도라와 검은 안경을 착용하고 매치스틱 맨 같은 실루엣으로 등장한 JR은 노래하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작품 설명이었지만, 아녜스 바르다와 절창의 듀엣을 이루었던 톤은 영락없이 “이리로 와서 함께 놀아요!”라고 꾀는 장난꾸러기의 그것이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당신에게 선글라스를 벗으라고 계속 청하고 결국 성공한다. 프로젝트에 모델로 참여한 사람들도, 당신은 그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데 당신과 눈을 맞추지 못한다는 점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아, 나와 작업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색안경을 쓰지 않은 눈을 본다. 현장을 촬영하는 카메라가 있을 때만 색안경을 쓴다. 지금도 안경 옆으로 내 눈이 보일 것이다. 불운하게도 익명이 되기 위해 선글라스는 필요하다. 가령 멕시코-미국 장벽 작업의 경우 내 얼굴이 알려졌다면 국경을 넘을 때 제재와 방해를 받았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모자와 안경은 내 얼굴을 가리지만 이것을 써야만 사람들은 내가 JR임을 알아본다. 잠복할 때는 색안경을 벗는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 공중으로 떠오르는 자세를 자주 취하더라. 이유가 궁금하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 대한 오마주인가? (웃음) =오마주는 아니고 점프할 수 있는 한 뛰어보려고 한다. 언젠가는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때가 올 테니까. 카메라와의 놀이이기도 하고 보는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 그다지 깊은 생각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다. -당신의 대다수 작품은 지역성과 불가분의 관계(site-specific)에 있다. 이번에 서울에서 전시하는 루브르 미술관 피라미드, 데스 밸리 프로젝트의 경우는 심지어 특정 시점에서 보아야만 의도한 효과를 낸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로서 실내 갤러리에서 관람객을 만나고 전시하는 활동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브랜드나 기업의 협찬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10대부터 거리에서 시작한 내 작업의 중심 매체는 사진이었다. 설치된 작품 사진을, 갤러리를 통해 컬렉터들에게 판매한 수익이 활동을 지속하는 제작비의 유일한 출처다. 그러므로 내게 거리의 작업과 갤러리 전시는 밀접하게 결합돼 있다. -도시의 외벽이 당신의 전시장이고 캔버스다. 벽에 관해서라면 세계 최고의 전문가다. 서울에서 고작 이틀을 보냈지만 거리의 벽과 도시 전경에서 받은 인상이 있는지. =건물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먼저다. 한 도시 혹은 구역 전체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와 흐름이 중요하다. 멕시코-미국 국경에 설치한 <키키토>(2017, 사진①)의 모델은 장벽 옆 언덕에 사는 어린아이였다. 만약 아이의 사진이 서울 한복판에 설치됐다면 모델도 사진의 의미도 달랐을 것이다. 서울을 다시 방문한다면 건축물보다 사람들의 흐름부터 주의 깊게 보고 싶다. 내 작품의 깊이감은 조형적 밀도와 층위보다 작품과 사람들이 마주쳐 만드는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생긴다. 예술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죠 -작품의 다수가 거대한 규모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선을 피할 수 없다. 스케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각 프로젝트의 적절한 사이즈는 어떻게 결정하는가. =작품의 크기는 맥락에 따라 완전히 상대적이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는 건물들이 아담해서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사무실의 벽만 한 사진도 지나치게 커 보인다. 반면 서울이나 파리, 뉴욕에 설치한다면 광고 이미지와 경쟁해서 눈에 띄어야 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는 철거를 앞둔 광산촌의 여성 재닌이 집 전면에 붙은 본인의 커다란 사진을 처음 보는 순간 울컥하는 광경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당신과 바르다 감독은, 거대한 초상 이미지를 통해 노동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합당한 위엄과 숭고함을 돌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한 해석은 아니다. 우리의 의도는 공적 공간에 놀라움을 창조하는 것이지만 그 놀라움은 인간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다. 광산촌의 재닌에게는 자신의 이야기와, 강제 이사 명령과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현실의 자신보다 큰 존재가 되려는 그녀의 소망을 지지한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집으로 초대해 가족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작업을 통해 그와 연결되고 보답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정유공장의 설치작품을 본 출근길 직원이 “예술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겠죠. 맞죠?”라고 한 말에 동의하는 셈인가. =매우 훌륭한 예술의 정의였다. 게다가 그는 확신하지도 않았다. “맞죠?”라고 질문했다. -1인 초상 사진의 경우 28mm 렌즈를 고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활동 초기 소유한 유일한 렌즈여서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28mm로 찍은 얼굴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있나. =초기에 내가 가진 유일한 렌즈이기도 했고 나를 피사체에게 무척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들어준다. 나는 정규 미술학교를 다니지 않았기에 작업을 해나가는 동시에 방법론을 만들었다. -그럼 지금은 다양한 렌즈를 목적에 맞게 쓰나. =그렇다. 여전히 인물 사진에서는 주로 단초점렌즈를 쓰지만 벽에 대형 작업을 할 때면 멀리 떨어져서 사람을 찍어야 한다. 근거리에서 찍으면 대상의 왜곡이 생겨서 벽에 설치된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시야를 교란하게 되니까. 그래서 카메라는 멀리 설치하고 리모컨과 모니터용 아이패드를 쓴다. 그렇게 피사체 가까이에서 커뮤니케이션 하면 원하는 포즈를 얻어내면서도 실루엣은 왜곡되지 않는다. -흑백은 현대영화에서 비현실, 추상, 판타지를 의미하곤 한다. 블랙 앤드 화이트를 선택하고 고집하는 미학적 이유가 있나. =초기에는 돈이 없어서 흑백을 택했다. 거리에 붙일 사진을 컬러로 인화하려면 흑백보다 비쌌다. 인화된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종이에 복사한 흑백 이미지도 썼다. 경제적 이유가 먼저였고 나중에는 거리에 범람하는 컬러 광고 이미지와 차별화하는 데 흑백이 유효했다. 미학적 이유가 출발점이 아니었지만 작품이 축적되면서 스타일이 되었다. -초기 스트리트 아트 활동에서는 서명을 남겼다. 지금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작가의 이름을 모른 채 스트리트 아트를 본다. 사람들이 모두 내 인스타그램을 구독하는 건 아니다. 한편 작품에 호기심이 생겼다면 인터넷에 키워드와 주소를 넣어 아티스트를 검색해볼 수 있다. (맞은편 벽의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진의 작가를 나는 모르지만 원하면 물어볼 수 있다. 광고는 반대다. 무엇을 사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낱낱이 분명히 지시하며 어떤 선택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예술은 작품과의 거리를 포함해 우리에게 선택권을 준다. 나 역시 그 점을 존중하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셀카를 찍는다. 어떤 사람들은 셀카 문화를 제일 매끈한 모습만 전시하는 자기도취적 행태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당신이라면 디지털 시대의 자화상 사진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을 법하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찍는 동안 우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법이기도 하고, “내가 이곳에 존재했다”고 보여주며 애정의 화답을 기다리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아녜스는 원래 셀피(스마트폰 등으로 찍은 자신의 사진)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르게 이해하게 됐다. 노 브랜드, 노 로고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 등장하는 대형 프린터가 장착된 포토부스 밴은 언제부터 이용했는지 궁금하다. 원래 있던 기계를 튜닝한 것인지 당신의 발명인지. 포토부스 밴이 당신의 작품에 더해준 바는 무엇인가. =2011년 TED에서 상을 받고 상금으로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세계 각지에서 인물 사진의 옥외 설치로 메시지를 표현한 작업)를 시작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포토부스는 본래 미술관 안에 설치돼 있던 시설인데, 트럭에 장착한 다음 그 힘을 깨달았다. 미술관 포토부스의 이용자들은 사진은 찍지만 남이 보도록 전시하지는 않는다. 트럭을 쓰면 인화된 사진을 건네며 어디에 쓸 건지 묻는다. 그냥 집에 가져간다는 사람들에게 벽에 붙이면 더 재미있지 않겠냐고 제안하며 풀과 붓을 주면 많은 사람들이 동조한다. 아녜스는 이 차에 반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 쓴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나라와 문화에 따라 트럭 옆구리에서 출력되는 본인의 대형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를 것 같은데. =만국 공통으로 “와우!”다. 나는 마법 트럭이라고 부르는데, 그저 얼굴을 크게 보여줌으로써 얼마나 많은 미소를 창조할 수 있는지 모른다. 지금은 브라질에 1대, 미국에 2대, 유럽에 1대, 일본에 1대의 마법 트럭을 갖고 있다. 일본인들도 즐겁게 반응했을 뿐 아니라 외벽에 많이 붙였다. 한 일본 작가는 지진과 쓰나미 재해를 입은 후쿠시마 지역을 돌며 같은 작업을 했다.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는 나 없이도 확장되고 있다. 이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서 보낸다. 우리 스튜디오는 그들이 보낸 파일을 메일로 받아 무료로 인화한 다음 찍은 사람들에게 돌려보낸다. 사진의 규격은 포스터 크기로 통일했다. 그러나 어떤 참여자는 인화 방법을 찾아 원하는 크기로 출력하고 배너에 인화해 천막으로 쓰기도 한다. 그럼에도 스스로 ‘인사이드 아웃’의 일부라고 말한다. 흑백사진이고 특정 브랜드나 단체와 연관되지 않는다는 원칙만 지키면 수용한다. -예전부터 영화에 관심이 깊었나? 당신의 단짝을 제외하고 좋아하는 프랑스 감독이 있다면. =늘 관심은 있었지만 시네마를 잘 알지는 못했다. 처음 나를 시네마와 연결해준 영화는 13살 때 본 마티외 카소비츠의 <증오>다. 나 자신이 영화의 배경인 파리 변두리에서 자란 이유도 있지만 언제나 텔레비전을 통해 보통 컬러영화만 보았던 터라 다른 심도와 영화적 코드를 구사한 흑백 작품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영화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최초로 깨닫게 됐다. <증오>는 오늘날까지도 내 레퍼런스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도시에서만 작업한 당신을 시골로 데려가고 싶었다고 영화에서 말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아시아의 시골에서 작품을 만들지 않았나.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하던 시점이어서, 아녜스는 도시에 설치된 내 작품에만 친숙했을 뿐이다. 우린 그저 함께 여행을 떠날 핑계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시력을 잃어가는 아녜스가 무엇을 보는지 이해하고 싶었고 그는 도움을 주는 한쌍의 눈으로 나를 썼다. -당신이 일종의 포커스 풀러였던 셈인가. =맞다. 영화의 사진들은 네개의 손과 네개의 눈이 만들어낸 결과다. 아녜스가 카메라를 잡고, 내가 물고기를 프레임 안에 들어가도록 움직이고 같이 셔터를 누르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시력 상실은 두렵고 슬픈 일인데 당신들은 자연스럽고 밝게 표현했다. =눈은 아녜스에게 작업을 위한 주된 도구지만 이제 때가 온 것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낙천적이고 긍정적 비전을 유지한다. 존경하는 바다. -아녜스 바르다는 전설적 거장 시네아스트로서는 경이로울 만큼 자기중심적 태도가 없다. 그의 정체성은 살면서 만난 사람과 사물들로 이뤄져 있는 것처럼. 그리고 당신에게도 작품에서 자기를 부각시키지 않는 태도가 있다. =직접 그것을 화제로 대화한 적은 없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의 접근법이 비슷함을 느꼈다. 유사성을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기뻤고 더 일찍 만나지 못해 안타까웠다. 아녜스 역시 광고와 거리를 두고 타인을 존중하며 독립적으로 작업한다. -아녜스 바르다가 카르티에 재단 갤러리에서 가진 회고전을 구경한 적이 있긴 하다. =나와 만나기 전 일이라 자세히는 알 수 없다. 내 경우는 그처럼 브랜드가 갤러리 이름에 포함된 경우도 극히 조심스럽다.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친화력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단시간에 친해지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설득해낸다. 결과는 같아도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다를 듯한데 비교할 수 있나. =우리 둘 다 타인에게 관심이 많지만 사람들도 예술가를 궁금해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다가와서 묻고 싶어 한다. 젊은 남자와 나이 든 여성이 짝지어 다니는 점도 흥미로워했다. “할머니랑 손자 사이예요?” “아뇨. 이 사람은 JR이고 내 작업 파트너예요.” “어머, 미안해요.” 이런 식으로 일이 시작되곤 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찍은 과정이 궁금한 대목이 있다. 루브르 미술관 전시실에서 당신이 아녜스 바르다의 휠체어를 밀고 달리는 시퀀스다. =루브르의 피라미드를 사라지게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 아녜스가 나를 촬영했다. 매주 화요일이 미술관 휴관일인데, 설치 중인 아티스트인 내겐 입장 패스가 있었다. 미술관 직원이 달리지 말라고 했지만 아녜스가 “오, 하지만 내 친구 고다르를 위해 비디오를 꼭 찍고 싶은 걸요? 한번만 뛰게 해줘요”라고 졸랐다. 직원은 어쩔 수 없이 “난 저쪽에 가 있을 테니 찍어요. 그렇지만 조심해요”라며 자리를 떴다. (웃음) -말이 나온 김에, 영화 마지막에 만나지 못한 장 뤽 고다르로부터 그 후로 다른 소식은 없었나. =없었다. 하지만 아녜스가 말하기를 고다르는 늘 시네마를 끝까지 밀어붙이는데 덕분에 우리 영화를 예측 못한 방식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가 우리에게 문을 열어줬더라면 영화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싸운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로서 당신은 작품의 보존을 의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에겐 무엇이 남는가? 작업과정을 항상 사진과 비디오로 남기나. =스케치와 사진이 남는다. 그래서 전시회가 아주 중요하다. 작품을 산 누군가가 이미지를 소유하고 세대를 이어 전해질 테니까. -그렇다면 카피라이트에 관한 입장은 무엇인가. =예컨대 루브르 피라미드 프로젝트가 설치돼 있는 동안 누구든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인화할 수 있다. 내가 파는 것은 직접 서명한 사진뿐이다. 카피라이트는 없는 셈이다. -상업적 영화나 광고의 배경에 당신의 작품이 포함되는 경우는. =소송을 한다. 자동차, 보험회사 등 여러 차례 승소해서 돈도 많이 벌었다. (웃음) 맞다. 우리 변호사는 훌륭하다. 그가 기업에 전화를 걸어 내용증명을 보내겠다고 하면, 그들은 우리에겐 35명의 변호사가 있고 20년은 재판을 끌어갈 돈이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나 우리에겐 광고 기획단계에서 받은 메일과 우리가 보낸 거절 메일이 있다. 그들이 모르는 척 촬영을 진행한 것이다. 때로 나는 법을 넘어 작품을 설치한다. 그러고는 그 이미지의 불법적 이용에 대해 고소하는 셈이니 패러독스다. -영어권 매체는 몰래 도시의 거리에 이미지를 전시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뱅크시와 비교한다. 그러나 지금은 루브르, <타임>이 당신에게 작품을 의뢰하고 가수 퍼렐 윌리엄스 등 여러 셀러브리티와 공동작업을 한다. 제도권 내부로 흡수되고 길들여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나. =그렇지 않다. 내가 23살 때 뱅크시가 런던의 자기 갤러리에 첫 전시를 하도록 초청했다. 같은 해에 나는 테이트 모던에서도 전시회를 열고 미술관 외벽에 작품을 설치했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몰랐던 스폰서 닛산이 있음을 알고 로고를 떼도록 싸워야 했다. 활동 초기부터 그랬지만 기존 제도권 안팎을 막론하고 작품이 전시되는 프레임을 방어하기 위해 나는 싸운다. 멕시코-미국 국경의 작품도 미국 비자를 빼앗기고 미국 내 스튜디오를 닫을 위험을 감수했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공포다. 예술은 회사 경영과 다르다. 더 큰 수익과 고용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창조하고 실패할 준비를 하고 탐색한다. 내 작업이 다치기 쉽다는 위험을 인식하고 미래를 알지 못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위험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예술가에겐 안전이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이 보여주는 의외의 매력들

“정말 좋아합니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육상을 그만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45살의 패밀리 레스토랑 점장에게 돌직구로 고백해버린다. 주변에서 줄줄이 구애하는 또래 소년들은 뒷전이다. 전설적인 달리기 실력만큼이나 거침없는 17살 소녀의 로맨스가 적잖이 걱정스러울 무렵,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순정 멜로를 표방하지만 실은 성장스토리가 목적지임을 영리하게 드러낸다. 일본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동명의 원작 만화를 읽고 보니 그제야 이해가 간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이 여고생을 향한 판타지에 매몰되지 않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몇 가지 미덕을 정리해봤다. 섣불리 꿈을 포기한 청소년이 미래가 없는 어른을 좋아하는 이 난감한 형국을, 영화는 제목처럼 산뜻하고 선명하게 풀어나간다. 난감한 로맨스지만 완급 조절만큼은 확실히 솔직히 인정하자. ‘여고생이 40대 아저씨를 사랑하는 내용’으로 뭉뚱그려 생각하면 뻔하고 후지다는 첫인상을 피하기 힘든 이야기다. 지천에 널린 훈훈한 또래들을 물리치고, 마치 정해진 수순인 양 홀아비를 사랑하는 소녀라니. 그런데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이 로맨스의 난감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고, 오히려 이를 적시함으로써 효과적인 이해의 단서들을 부연해나간다. 아키라(고마쓰 나나)의 소꿉친구는 점장 마사미(오이즈미 요)를 처음 보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완전 아저씨”라고 일축하고, 마사미가 아키라의 친구와 평범하게 대화하는 모습만으로도 누군가는 “무슨 일이에요? 치한이에요?”라고 묻는다. 아키라의 고백을 듣고 걱정스러워진 마사미가 집에서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틀자 대뜸 “45살 식당 종업원이 17살 여고생을 추행했습니다”라는 뉴스가 나와서 기겁하게 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 꽤 능한 인물인 마사미는 아키라와 무해한 관계가 되기 위해 그녀의 마음을 바꿔보려고 애쓴다. 배우 오이즈미 요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구애를 거절하면서도, 자기 감정에 푹 빠진 소녀의 마음을 다치게 않게 하려는 노력을 섬세히 표현했다. 메가폰은 쓰마부키 사토시가 주연한 코미디영화 <져지!>(2014)로 데뷔한 나가이 아키라 감독이 잡았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2015), <데이이치의 나라>(2017) 등을 거치며 코미디와 서정적인 드라마 양쪽 모두에 재능을 보인 감독이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에서는 아키라가 태풍을 뚫고 독감에 걸린 마사미의 집을 찾아간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한밤중에 마사미의 집에서 어색하게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은 멜로의 전형 같지만, 장면의 마무리를 보고 나면 인상이 좀 달라진다. 해열 패치에 마스크로 무장한 마사미는 택시 창문 너머로 아키라에게 차비를 쥐여주다 말고 강풍에 날아가버린다. 영락없는 슬랩스틱 코미디다. 인기 만화가 영화를 만났을 때 남성 독자를 겨냥한 청년 만화인가 했는데 어느새 슬쩍 성장과 치유의 스토리로 귀결된다. 마유즈키 준이 쓴 동명의 만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일본에서 현재까지 누적 판매부수 약 212만부를 기록한 베스트셀러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육상을 쉬게 된 17살 소녀 타치바나 아키라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점장 콘도 마사미에게 구애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그린다. 클래식한 순정만화의 계보를 그대로 이어받은 연약한 그림체, 깨끗한 감성, 시적인 대사 등이 인기의 주요 요인이다. 주간 만화잡지 <빅 코믹 스피리츠>에 연재한 만화는 지난해 완결됐다. 그사이 2018년 1월에 <후지TV>가 12부작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했고,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일본에서 5월 25일에 개봉해 꽤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우선 돋보이는 것은 애니메이션과 영화 모두 원작 캐릭터들의 외양을 충실히 구현했다는 사실이다. 조연들의 머리 모양새까지도 대체로 일치할 정도다. 특히 주인공 타치바나 아키라 특유의 스타일, 까만 긴 생머리에 싹둑 자른 앞머리는 아키라를 연기한 배우 고마쓰 나나의 아이코닉한 스타일과도 비슷해 제작 초기 단계부터 캐스팅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영화화 각본은 <가구야 공주 이야기>(2013), <메리와 마녀의 꽃>(2017) 등을 쓴 사카구치 리코가 맡았다. 애니메이션에서 활약했던 작가답게 순진한 감수성을 자연스레 구현했고, 연재 만화의 긴 이야기에서 주요 에피소드를 깔끔하게 엄선했다. 고마쓰 나나라는 이례적 얼굴 누군가는 이 영화를 ‘포니테일을 하고 패밀리 레스토랑 유니폼을 입은 고마쓰 나나가 망고 파르페를 파는 영화’로 요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작의 타치바나 아키라는 고마쓰 나나라는 라이징 스타가 연기한 덕분에 비로소 완벽해졌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비가 내리는 감성적인 그림 혹은 극도로 쨍하고 화사한 그림을 강조하는데, 고마쓰 나나는 모델 출신 배우답게 풀숏에서 풍경의 일부로 배치되었을 때도 무척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매컷이 화보라는 표현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캐릭터와 배우가 꽤 공통점이 많다는 묘한 우연의 힘도 있다. 아키라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종종 사람을 노려본다는 오해를 받곤 하는 눈빛의 소유자다. 그냥 쳐다보는지 째려보는지 구분하기 힘든 눈빛은 고마쓰 나나가 모델로 성공한 요인이기도 하다. 이국적이고 모호한 눈빛으로 패션지 독자들을 사로잡은 그녀다. 다만 출연 배우가 너무나 포토제닉한 피사체인 나머지 종종 영화가 버리지 못한 장면들도 눈에 띈다. 원작 만화가 태생적으로 피할 수 없었듯, 남성의 판타지를 겨냥한 관음적인 숏들은 분명 비판의 여지가 있다. 반짝반짝한 일본 성장영화의 감수성이란 나가이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만화에 비해 좀더 쾌활하고 시원한 보폭을 갖췄다. 눈이 부신 여름날의 학교운동장에서 시작해 창가 책상에 엎드린 고마쓰 나나의 얼굴로 단숨에 들어가는 도입부의 카메라워크가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의 리듬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남들보다 몇배나 민첩하다고 알려진 소녀의 발걸음을, 트랙을 질주하는 육상부 아이들의 움직임을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따라가는 영화다. 과장된 만화적 제스처 없이도 만화의 활기를 구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할까. 결과적으로 순정물, 청춘물의 컨벤션을 모아두었는데도 산뜻하고 뭉클하다는 게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의 가장 큰 장점이다. 힘차게 내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파열된 아킬레스건처럼, 아키라는 서툰 사랑의 추돌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건 폭우는 아무리 거세다 해도 언젠가 그칠 거라는 것을 전제로 시작된 이야기다. 섣불리 머무르지 말라는, 비가 개면 우산을 접고 다시 갈 길을 가라는 신중한 조언이 오랜 짝사랑에 대한 소고 속에서 전달된다. 잔뜩 흐린 날들 뒤에 찾아온 맑은 날의 반짝임이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에 있다.

[파리] <혁명이 나에게 남긴 모든 것들>, 프랑스 시민 의식에 답하다

2018년 10월, 프랑스 정부의 유류세 인상 세제 개혁안 발표로 촉발된 ‘노란 조끼’ 시위. 특정 지도세력 없이 전국적으로 번져나간 이 시위는 젊은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지지도를 곤두박질시켰다. 도대체 프랑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해답은 노란 조끼 운동이 촉발되기 2개월 전, 앙굴렘 프랑스어권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주디스 데이비스 감독의 <혁명이 나에게 남긴 모든 것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68항쟁에 참여했던 활동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앙젤(주디스 데이비스). 그녀가 8살이 되었을 땐 이미 동베를린에 맥도날드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념으로 똘똘 뭉친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어머니는 가족과 이념을 동시에 버리고 깊은 산속 마을로 들어가버렸다. 성인이 되어 도시 계획가가 된 앙젤은 몇몇 지인들과 함께 소규모 토론 모임을 만들고 ‘정의’와 ‘시민 의식’의 회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시작한다. 이렇게만 보자면 한없이 무겁고 지루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지만 연극배우 출신인 데이비스 감독은 “관객을 사로잡는 코미디 형식(문화 주간지 <텔레라마>)”을 차용, “현대사회에 대해 고지식하고 이상적임과 동시에 아주 구체적인 생각을 성공적으로 전달(영화 월간지 <포지티프>)”한다. 이처럼 2월 7일 프랑스 전국에 개봉한 <혁명이 나에게 남긴 모든 것들>은 가지가 많아 바람 잘 날 없는 나무와도 같은 최근의 프랑스를 가장 면밀하게 반영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시나리오작가③] 배세영 작가 - 관객이 누구 하나와는 공감할 수 있도록

배세영 작가는 최근 들어 자신을 찾는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귀띔했다. 수원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인터뷰하러 서울로 나온 김에 미팅도 잡았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 비수기 시장을 견인했던 <완벽한 타인>과 1600만명을 동원해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극한직업>이 연달아 흥행한 덕분에 주가가 가파르게 오른 그다. <극한직업>이 극장에 걸린 동안 <각본인> <빅딜> <깊은 밤을 날아서> 등 세편의 각본을 썼다니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저었다. 충무로에서 그는 죽어가는 캐릭터와 밋밋한 대사를 살려내는 명의로 소문이 자자하다. <극한직업>을 제작한 김성환 어바웃필름 대표가 문충일 작가가 쓴 초고의 각색을 배 작가에게 요청한 것도 그래서다. 고 반장(류승룡)과 영호(이동휘) 두 형사가 사건을 주도적으로 끌어가고, 마 형사(진선규), 장 형사(이하늬) 같은 주변인물이 둘을 방해하거나 불평불만을 터트리는 초고가, 마약반 형사 다섯명이 끈끈한 팀플레이를 선보이며 마약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지금의 영화로 바뀐 건 배 작가의 심폐소생술 덕이다. “이들의 위장 수사를 케이퍼무비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웃음) 악역이든 작은 역할이든 갑자기 나타나서 말 한마디 툭 던지고 사라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작은 캐릭터라도 존재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극한직업>은 지질한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소동을 벌이다가 나중에 그들의 숨겨진 능력이 <어벤져스>처럼 퍼져나갈 때 관객에게 통쾌감을 주고 싶었다”는 게 배 작가의 설명이다. 영화 개봉 전에 이미 유행어가 된 명대사,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경찰서장(김의성)에게 깨지는 상황에서 고 반장이 갑자기 걸려온 배달 전화를 받고 말하는 영업 멘트다. “심각한 상황에서 진지한 대사들이 오갈 때 누군가가 그 분위기를 풀어주지 않으면 오글거려서 못참는 성격이다. 고 반장이 ‘지금 치킨이나 튀길 때야’라고 화를 내다가도 정작 배달전화가 오면 영업 멘트를 꺼내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좋아한다.” 캐릭터를 개성 있게, 대사를 맛깔나게 살리는 그의 글쓰기 재능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찌감치 감지됐다. 그는 담임 교사의 관심을 받고 싶어 ‘엄마가 집을 나갔다’거나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 같은 내용의 거짓말을 지어내 일기장에 썼다. 일기 내용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연기(?)까지 했다. 가령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깔끔한 옷차림을 일부러 흩뜨리거나 자신을 걱정하는 선생님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창밖을 쓸쓸히 쳐다봤다. “맹랑한 아이였다. (웃음)” 소설 같은 일기장을 보고 깜짝 놀란 담임 교사는 그를 혼내기는커녕 “이 정도로 사람을 속일 수 있는 글이면 작가를 해야 한다”라며 4학년 때 그를 문예반에 넣어주었다. 문예반 활동이 작가 배세영의 출발인 셈이다. 문예반에서 처음 썼던 시가 교육부가 그해 발간하는 시집에 실렸고, 이후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인간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가는 글을 썼던 동기들과 달리 그는 대사가 많은 재미있는 소설을 썼다. 학교 사람들로부터 “칠락팔락하고 깊이가 없는 글”이라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벽에 수그리고 앉아 발톱만 깎는 글은 못 쓰겠더라. 오히려 발톱을 깎다가 벽에서 갑자기 요정이 튀어나와 그를 따라 신비로운 세계로 여행 가는 이야기를 썼”다. 당시 그가 재미있는 글을 즐겨 쓴 건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지낸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부모님이 학교 성적이 좋은 나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이모 집으로 보냈다. 이모가 잘 챙겨주었지만 부모님이 그리웠고, 집이 그리울 때마다 글을 썼다. 밝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썼고, 그 글을 친구들에게 보여준 뒤 그들이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고 만족해했다.” 될성부른 시나리오작가는 떡잎부터 남달랐다. 배 작가가 시나리오작가로 발을 들이게 된 건 장진 감독의 영화 <기막힌 사내들>(1998)을 보면서다. “100번 넘게 봤다. 나중에 비디오테이프를 샀다. 대사를 줄줄 외울 만큼 좋아서 미칠 것 같더라. (웃음)” 그는 당시 썼던 시나리오를 들고 장진 감독을 찾아갔다. 장진 감독이 그에게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일해라”라고 제안하면서 그는 장진 감독의 소속 작가로 7년을 함께 일했다. 그때 기획해서 쓴 작품 중 하나가 의 <여의도 텔레토비>다. 텔레토비라는 아동 교육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활용해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한 코너였다. 이 코너는 우연한 계기로 기획됐다. “당시 정당들이 당 대표를 뽑던 시기였다. 남동생이 TV를 보다가 당마다 각기 다른 색을 보고 ‘뭐야, 텔레토비야?’라고 말했는데 즉각작으로 ‘이거다’ 싶었다.” 매일 정치 이슈를 따라잡아야 하고, 텔레토비 캐릭터 4명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했던 <여의도 텔레토비>는 배 작가에게 좋은 훈련이 됐다. “매일 정치 뉴스를 빼놓지 않고 봤고, 방송 직전까지 더 좋은 대사가 없는지 찾았으며, 좋은 대사가 떠오르면 새벽까지 PD와 통화하며 대본에 넣으려고 했다.” 역도부 소녀 6명의 성장기를 그린 <킹콩을 들다>, 바람난 네 남녀의 읽히고설킨 관계를 다룬 <바람 바람 바람>, 40대 중년 부부 세쌍의 민낯과 위선을 그려낸 <완벽한 타인>, 마약반 형사 다섯명의 위장 수사를 다룬 <극한직업> 등 배세영 작가가 쓴 영화는 상당수가 여러 인물들이 한꺼번에 나와 서사를 전개시키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은 사건은 거의 다 나온 것 같다.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사람마다 대처 방식이 다르지 않나. 새로운 이야기는 거기서 나오는 것 같다. 제작자들이 내게 각본을 맡기는 것도 그걸 기대하기 때문 아닌가 싶다”는 게 배 작가의 얘기다. 그는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있는 비결을 꺼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 <완벽한 타인>은 관객은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때 집중하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 관객을 지루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게 관건이었다. 관객을 이야기 내내 집중시키기 위해 모든 캐릭터를 분명하게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됐다.” 육아를 하고 있는 ‘워킹맘’ 배세영 작가는 부지런하다. 천명관 작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감독 곽경택)를 각색하고, JTBC 드라마 대본도 쓴다. <극한직업>의 어마어마한 흥행이 시나리오작가로서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코미디영화가 다시 많은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내 반갑다. <완벽한 타인>과 <극한직업>이 연달아 흥행한 덕에 많은 사람들이 시나리오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것 같다. 고료만 받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작가로서 영화 흥행에 기여한 만큼 보상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 같다.” ● 가장 좋아하는 영화 시나리오_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 어린 마츠코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할 때 노래를 부르는데 이에 무척 공감됐다. 나 또한 부모님과 떨어져 살 때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큰 소리로 동요 <고향땅>을 불렀다. 노래를 부른 뒤 앉아서 시를 썼다. 그때 느꼈던 그리움이 글을 쓰게 한 것 같다. 지금도 마음이 허할 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고 한번 운 뒤 글을 쓴다. 또 시나리오작가로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인생은 아름다워>(1997)다.” ● 시나리오 작업할 때 습관이나 챙기는 물건_ “쓰기 전에 시나리오 첫장부터 읽어서 내려간다. 가령 18신까지 썼으면 19신부터 쓰는 게 아니라 1신부터 다시 읽으며 19신까지 간다. 시나리오 뒷부분을 쓸 때도 첫장부터 읽으면서 고치고 또 고친다. 퇴고를 동시에 하는 셈이다. 그때 대사는 소리 내 읽는데 입에 잘 붙을 때까지 고친다.” ● 필모그래피 2019 <극한직업> 각색 2018 <완벽한 타인> 각본 2018 <원더풀 고스트> 각색 2017 <바람 바람 바람> 각본 2014 <우리는 형제입니다> 각본 2012 <미쓰GO> 각색 2012 <미나문방구> 각본 2011 <적과의 동침> 각본 2010 <된장> 각색 2009 <킹콩을 들다> 각본 2007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각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