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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기묘한 이야기>, 가장 영화로운 80년대를 복원하라

맷 더퍼에게 영향을 끼친 영화 ● <미지와의 조우>(1977)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오랫동안 만들고 싶어 했던 영화다. 2천만달러의 제작비로 3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감독의 허락 하에 제작된 우주선 장면 등을 추가한 감독판이 존재한다. 어느 낯선 존재의 방문으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흔들린다는 컨셉은, 더퍼 형제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각인되어왔다고. ● <상태 개조>(1980) 켄 러셀 감독의 초기 SF영화로 일종의 ‘지킬 앤드 하이드 박사’ 모티브의 이야기다. 이 영화의 실험실 세트 장면은 더퍼 형제가 호킨스 국립연구소의 인테리어 외관을 꾸미는 데 많은 영향을 줬다. 이 영화에 영향을 준 존 C. 릴리 박사의 감각차단실험은 시즌1에서 일레븐이 데모고르곤과 맞서기 위해 사용한다. ● <이블데드>(1981) 샘 레이미 감독의 걸작 호러영화. 친구들끼리 한적한 산골 마을의 외딴집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히 고대의 악마 같은 존재를 건드리면서 끔찍한 참극이 벌어진다. 더퍼 형제가 10대 시절에 가장 열광했던 영화 중 한편으로 윌의 형인 조나단의 방에 포스터가 걸려 있다. 윌이 사라졌을 때 아버지가 보고는 포스터를 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 (1982)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가장 위대한 업적을 한편 꼽으라면 바로 다. 이 영화는 <기묘한 이야기>의 전체 톤을 잡아갈 때 방향키가 되어준 작품이다. 어린 주인공 삼남매가 부모와 정부 요원의 눈을 피해 미지의 존재를 지켜려 한다는 이야기.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는 이야기다. 로스 더퍼에게 영향을 끼친 영화 ● <괴물>(1982) 존 카펜터 감독의 이 영화 포스터도 드라마 곳곳에서 등장한다. 남극 대륙 탐험대를 두고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 더퍼 형제가 <기묘한 이야기> 시즌3의 에피소드에서 많이 차용해서 썼고, 개가 괴물로 변하는 모습 역시 데모고르곤의 디자인에 영향을 끼쳤다. ● <에이리언>(1979) SF 호러 장르에 있어서 <에이리언>과 리플리(시고니 위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H. R. 기거가 디자인한 제노모프의 외형은 궁극적으로 데모고르곤의 디자인에 영향을 끼쳤다. <에이리언 2>에서 카터 버크를 연기했던 폴 라이저는 공교롭게도 시즌2의 주요 배역으로 등장한다. ● <죠스>(1975) 더퍼 형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여름 블록버스터라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배우 로이 슈나이더가 연기한 경찰서장 마틴의 캐릭터가 트럭과 모자로 대표되는 호퍼 서장을 만드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 <폴터가이스트>(1982)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영화 중 가장 무서운 영화일 것이다. 토브 후퍼 감독이 만들어낸 끔찍한 유령의 집은 디자인 면에서 <기묘한 이야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일레븐이 집중할 때 필요한 텔레비전이나 손을 뻗어 미지의 세계로 빠져드는 상징적인 제스처 등이 드라마에 쓰인다. 시즌1에서 엄마 조이스와 윌이 함께 이 영화를 보는 장면이 있다. <기묘한 이야기> 트리비아 모음 ● 스티븐 킹 스티븐 킹은 다방면에서 더퍼 형제에게 많은 영향을 준 작가다. 우선 시리즈 로고는 원래 1980년대 소설인 <쿠조>와 <크리스틴> 표지에 사용됐던 글꼴과 비슷하다. 그의 소설 중 드라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영화 <초능력 소녀의 분노>(1984)로 알려진 <파이어스타터>다. 정부의 과학 실험 대상이 되었다가 초능력이 생긴 소녀와 그를 보호하려는 아버지의 이야기. 4개의 계절을 소재로 한 소설집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 실린 <스탠 바이 미>는 영화 <스탠 바이 미>(1986)에 영감을 준 이야기. 그리고 <데드존> 역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 풍부한 캐릭터 묘사, 공포에 대해 격렬히 저항하는 정서적 울림 등 더퍼 형제에게 영향을 끼친 소설이다. 그 밖에 <캐리> <샤이닝> <그것> 등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소설로 꼽힌다. ● 스타코트몰 미국의 쇼핑몰 구조는 대부분 중앙홀을 중심으로 개별 상점들이 2층에 걸쳐 자리해 있다. 특정 반응, 즉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멀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앵커링 효과를 노리기 위한 구조라고 알려져 있다. 1956년 미네소타주 에디나에서 처음 오픈한 사우스데일몰은 1980년대에는 미국 전역에 약 3천개가 있었다고 한다. 시즌3의 스타코트몰을 실제 촬영한 그위넷 플레이스 몰은 1984년에 문을 열었던 곳. 시즌3에서는 쇼핑몰에서 정말 많은 일이 벌어질 예정인데 어쩌면 구조 자체가 중요한 복선이 될지 모른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새벽의 저주> 속 쇼핑몰과 숀 펜 주연의 <리치몬드 연애소동>(1982) 속 쇼핑몰의 디자인을 겹쳐놓은 것이 바로 스타코트몰이다. 아이스크림 가게 유니폼을 입고 있는 스티브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의 숀 펜이 보이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 그리고 시즌3 오프닝에서 피비 케이츠 이름이 계속 언급된다. ● 일레븐의 드레스 1980년대 당시 어린 소녀들 사이에서 대유행했던 이 폴리 플린더스(polly flinders) 드레스는 영국 동요 속 가사에서 착안해 이름을 지은 브랜드다. <기묘한 이야기>의 의상디자이너 킴벌리 애덤스는 1970년대부터 유행했던 이 드레스의 스타일을 기반으로 시즌1 당시 일레븐이 정체를 감추기 위해 입었던 드레스를 제작했다. 일반적으로 이 드레스는 가슴과 손목 부위에 탄성이 있도록 디자인됐다. 당시 거의 모든 소녀들이 이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고 하는데 친구들이 일레븐에게 씌우는 가발 역시 드레스와 매치되도록 디자인됐다고 한다. 드레스의 색상은 복숭아색과 분홍색 사이 정도로 구현했고 긴 양말로 포인트를 줬다. 일레븐이 처음 신어본 스니커즈는 컨버스에서 출시한 컨버스 올스타라는 이름의 신발이다. 1923년 미국 야구선수인 찰스 척 테일러가 신어 대중에 소개된 첫 스포츠화라고. 일레븐의 위장술(?)은 의 그것을 오마주한 것이기도 하다. 달려오던 자동차를 뒤엎던 자전거 액션 장면도 역시 의 오마주. ● 던전 앤드 드래곤 & 데모고르곤 게임 <던전 앤드 드래곤>에 등장하는 세계관 중에 어둠의 계곡(The vale of shadow)이 있다. 이 다른 차원의 공간은 현실 세계의 어두운 반향 혹은 메아리라고 알려져 있다. 부패와 죽음의 장소이기도 한 이곳은 엇갈린 차원이자 괴물들의 거처다. 인간의 곁에 있지만 인간이 볼 수 없는 곳이라고. ‘뒤집힌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바로 <던전 앤드 드래곤>이다. 실제로 주인공들이 이 게임을 거의 매일 한다. 거기 등장하는 데모고르곤은 두개의 머리를 가진 악마로, 파워 면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악마다. 더퍼 형제는 인공 보철을 착용한 배우가 거대한 탈을 뒤집어쓰고 연기하도록 했다. 발포 고무 형태의 재질로 제작된 데모고르곤 모형은 더퍼 형제에 따르면, “어릴 때 수업 시간에 낙서하면서 그리던 바로 그 디자인”을 살린 것이라고.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언브레이커블

가족이나 연애에 대해 말할 때 우리의 시야는 물기로 흐려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눈은 통속의 디테일을 그릴 때 누구보다 명철하다. 스페인으로 무대를 옮긴 신작 <누구나 아는 비밀>에서도 감독의 장기는 그대로다. 친척의 결혼식날 일어난 한 소녀의 납치 사건은, 관련된 여러 가족의 내력을 들쑤시고 구성원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파르하디 감독의 치밀한 서사는 범죄물의 그것이지만, 하나의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 둘 이상의 폐허를 남긴다는 점에서 영락없는 멜로드라마다. 07/18 비일상적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보통 사람들의 일터는 극영화보다 텔레비전이 즐겨 찾는 영역이다. TV 엔터테인먼트가 직장을 그릴 때 즐겨 쓰는 장르는 시트콤이다. 다수 인물이 반복적 루틴 속에서 소소한 희로애락을 겪고 관계를 발전시키는 서사를 담는 데에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노동은 딱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반면 영화는 노동 자체를 주제로 삼을 경우 비판적 접근법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다수의 다큐멘터리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에 포함된 비인간화와 소외의 과정을 폭로했고, 극영화들도 경제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은 히피, 실업자, 홈리스 같은 캐릭터를 통해 아웃사이더적 시선으로 노동을 조명해왔다. 그런데 <그녀들을 도와줘>의 앤드루 부잘스키 감독은 제3의 길을 간다. 숙련된 인간 행위의 아름다움, 노동이 주는 성취감을 주시하는 동시에, 아무리 일해도 부와 존중을 얻기 힘든 열악한 조건을 드러낸다. 최근에 비슷한 궤적을 보이는 감독으로는 <스탈렛>(2014), <탠저린>(2015),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의 숀 베이커가 있다. <그녀들을 도와줘>에서 앤드루 부잘스키 감독을 인도하는 길잡이는, 텍사스의 식당 지배인 리사(레지나 홀)다. 카메라는 원인 모를 눈물을 훔치며 주차하는 아침 출근길부터 24시간 남짓 리사의 일과를 뒤따른다. 그의 직장 ‘더블 웨미’(Double Whammy)는 여성 종업원의 섹스어필을 상품성으로 내세우는 일명 ‘브레스토랑’(breastaurant)이다. 몸매를 노출한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성이 서빙을 하며 고객을 상대하는 식당이다. 미국의 실존 프랜차이즈 ‘후터스’와 비슷한 컨셉이되, ‘더블 웨미’는 업장이 하나뿐인 자영업자의 가게다(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후터스의 직원 가이드북에는 “고객에게 미국적인(All American) 치어리더, 서퍼, 옆집 아가씨의 이미지를 제공한다”고 명시돼 있으며, 채용된 여성 직원들은 이 식당이 성적 어필에 기초하고 있으며 농담과 즐거움을 위한 대화가 노동환경의 일부임을 인지한다는 서류에 서명한다고 한다). 요컨대 ‘더블웨미’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기대어 이익을 창출하는 사업장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여성 노동자들은 동료 이상의 결속을 맺는다. 성 상품화를 아예 전제로 한 직장에 다니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궁극적으로 아무도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음을 알기에 오직 서로에게 의지한다. 영화의 제목 역시 리사가 어려운 직원을 돕기 위해 사장 몰래 여는 세차 이벤트의 구호 “아가씨들을 도와주세요”(Support the Girls)에서 나왔다. 중간 관리자인 리사는 ‘더블 웨미’의 진정한 주인이다. 소유주는 백인 남성 사장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스탭과 고객을 속속들이 알고 돌보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이는 리사다. 스스로도 고용주의 변덕으로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처지이면서도 리사는 직원과 손님이 안전하고 행복한지 헌신적으로 살핀다. 리사의 분주한 하루는 신입 종업원 지망생들에게 긍지를 불어넣고 밤새 침입한 도둑을 경찰에 넘기는 업무로 시작한다. 절도와 관련된 내부자를 최대한 관대하게 정리하고 나면,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한 웨이트리스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출근하고, 여성 동료들은 자연스레 다함께 아이를 돌본다. 하필 큰 경기가 있는 날 TV 케이블이 고장나고 음향 시스템을 빌릴 일도 생긴다. 이 와중에 종업원을 모욕하는 손님이 나타나자 리사는 무관용 원칙으로 경찰과 협력해 동료를 보호한다. 앤드루 부잘스키 감독은 홀과 주방, 로커룸을 한달음에 드나들며 상황에 따라 매너를 바꾸는 리사와 동료들의 움직임을, 티나지 않지만 공들인 블로킹으로 따라잡으며 이들의 일상에 내포된 리듬을 표현한다. 리사의 일과는 이를테면 폭설 속에서 계속되는 제설 작업과 비슷하다. 끊임없이 치워야 할 장애물이 쌓인다. 그러나 삶은 참으로 배은망덕하다. 남편은 리사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떠나려 하고, 옹졸한 사장은 리사가 직원들의 개인적 곤경까지 배려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07/19 <그녀들을 도와줘>의 최대 역설은, 유능하고 선량한 리사가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할수록 사장이 돈을 벌고 성 상품화는 지속되는 반면,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빈곤과 성차별은 개선될 가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부잘스키 감독은 이 암담한 팩트를 소리내지 않고 명시한다. 그렇다면 리사의 긍지와 원칙은 무의미할까? 사회학도라면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영화는 다르게 답할 수 있다. 직장이 객관적으로 얼마나 척박한 조건의 노동현장이건, 자기가 관할하는 동료들이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리사는 숭고한 인물이다. 명예와 책임을 매일 지키는 현대의 성인(聖人)이다. 이 작은 체구의 슈퍼히어로가 품은 목표는 세계를 구하는 것 따위가 아니다. 실제 가족으로부터 아무런 ‘서포트’를 기대할 수 없는 동료들에게 리사는 가족 엇비슷한 울타리를 주고자 한다. 막 사회에 진출한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여기는 스트립 클럽이 아니다. 고객이 선을 넘으면 내가 지켜줄 것이다”라고 단단한 말투로 긍지를 불어넣는다. 리사와 동료들은 선봉에 서서 유리천장을 깬 엘리트 슈퍼우먼이 아니다. 시간과 감정 때로는 육체의 이미지를 팔며 생계를 지탱하는,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와 같은 조건에 처한 인물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노동에서 얻는 것이 임금만은 아니다. 일은 그들에게 임금뿐 아니라 웃음과 우정, 인간임을 확인하는 보람이다. 바쁜 일과 중 벽에 부딪힐 때마다 리사는 식당 뒷문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도로의 자동차 소음도 이제 눈을 감으면 파도소리 같아”라는 리사의 말은 일터 밖에서 따로 낙원을 찾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그녀들을 도와줘>는 “노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고, 그 의미를 실현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사회적 조건을 조용히 적시한다. 이쯤해서 떠오르는 <그녀들을 도와줘>의 엉뚱한 남매 영화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매직 마이크>(2012)다. 댄스 뮤지컬의 속성이 강하지만 <매직 마이크>는 남성 스트리퍼들을 통해 남부 미국의 저임금 노동계급의 현실을 드러내는 영화이기도 했다. 퍼포먼스의 성격을 띠는 노동으로 육체적 매력을 파는 불안정한 일자리라는 점도 유사하다. 춤추는 청년들은 <그녀들을 도와줘>의 여성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스트립쇼가 일시적 직업이라고 여기면서도 무대 위에서 자긍심을 느끼고 무대 뒤에서 유사 가족을 이룬다. 사람들은 창의적 일과 단순노동을 쉽게 구분하지만 모든 노동은 유의미하고 의미있어야 한다. 나와 남에게 영향을 주어 변화를 일으키고 세계를 움직여 흔적을 남기는 한. 좋아요 조나 힐 <돈 워리>는 20년 전 로빈 윌리엄스가 카툰 작가 존 캘러핸의 자서전 영화 판권을 사면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초기부터 함께 시나리오를 개발한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윌리엄스가 타계한 후 호아킨 피닉스를 캘러핸 역에 캐스팅해 젊은 시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더불어 캘러핸의 알코올중독 극복 과정에 무게가 실리고 중독 치유 모임의 스폰서였던 도니(조나 힐)의 비중이 커졌다. 도니는 우리가 익히 아는 조나 힐의 철없는 캐릭터들과 사뭇 다르다. 중독과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성숙한 인물이자, 지병으로 인해 내일이 없는 사람만의 쓸쓸한 냉철함도 갖고 있다. 부유하고 우아한 취향을 소유한 캐릭터인 도니는 블론드 장발에 실크와 캐시미어를 걸친다. 조나 힐에게 매우 생경한 의상과 분장이지만 묵직한 연기의 힘으로 웃음이 터지는 일은 없다. 조나 힐은 <돈 워리>의 현장을 경험한 직후 감독 데뷔작 <미드 90>을 연출해 호평받기도 했다.

잉여들의 미학, <패터슨> <데드 돈 다이> 짐 자무쉬의 대표작 7

인디 영화의 대부 짐 자무쉬가 신작 <데드 돈 다이>를 들고 왔다. 무려 좀비 영화다. 짐 자무쉬와 좀비 영화라는 조합 만으로도 남다른 기대를 걸게 되는 <데드 돈 다이>. <패터슨>의 인기로 자무쉬의 팬들이 소폭 늘긴 했지만, 아직 그의 영화 리듬이 낯선 관객들을 위해 소개한다. 짐 자무쉬의 대표작 일곱 편을 정리했다. 천국보다 낯선, 1984 “이봐 이거 웃기잖아. 우린 여기 처음인데 다 똑같은 거 같아.”-<천국보다 낯선> 중에서 찰리 파커를 숭배하는 젊은 청년이 인생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이야기 <영원한 휴가>로 새로운 인디 영화의 흐름을 개척한 짐 자무쉬. 그는 다음 작품인 <천국보다 낯선>을 통해 느림의 미학, 잉여의 이미지와 같은 특유의 리듬으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영화는 세 가지 단편적인 에피소드인 '신세계', '1년 후', '천국'으로 전개된다. 자무쉬의 페르소나가 된 존 루리를 포함, 에스터 벌린트, 리차드 에드슨 세 청년 세대가 무료한 여행을 떠난다. 새로운 감각을 향해 떠난 이들이지만 여기도 저기도 똑같이 익숙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마는, 작가 짐 자무쉬의 주된 정서이기도 한 덧없음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다운 바이 로, 1986 “슬프고도 아름다운 세상이야.”-<다운 바이 로> 중에서 자무쉬가 사랑한 뮤지션 톰 웨이츠, 페르소나 존 루리, 이탈리아 배우 로베르토 베니니가 모여 독특한 조합을 이룬다. <다운 바이 로>는 각자 희한한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된 세 사람이 점차 감방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하다가 탈옥을 감행하게 되는 내용이다. 극적인 전개에 아주 잘 어울릴만한 '탈옥'이라는 소재를, <다운 바이 로>는 너무나 짐 자무쉬 다운 건조한 톤으로 풀어낸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탈옥 영화라기보다, 방랑 영화에 가깝다. 말 수가 적은 톰 웨이츠와 존 루리 사이에서 홀로 수다쟁이로 활약하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연기가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데드 맨, 1995 “내 시를 알아요?”-<데드 맨> 중에서 짐 자무쉬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 <데드 맨>. 서부극의 장르를 취했지만 전통적인 서부극의 구조를 따라갈 생각은 (당연히) 없는 영화다. 조니 뎁의 연기로 탄생한 인물 윌리엄 블레이크는 서부의 한마을에 회계사로 고용돼 기차에 오른다. 그러나 도착한 뒤엔 자신의 자리가 빼앗겼음을 알게 되고, 갈 곳이 없어진 윌리엄은 마을을 배회한다. 느린 템포로 유유자적하던 이야기는 죽을 뻔했던 윌리엄을 주술로 살려내는 인디언 노바디의 일화와 킬러들의 추격전이 더해지며 잔재미를 더한다. 짐 자무쉬는 웨스턴 장르에서 인디언과 백인이 야만과 문명으로 대비되던 것을 비틀어 문명에 냉소를 보낸다.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는 자무쉬의 철학이 돋보이는 매력적인 서부극이다. 커피와 담배, 2003 “금연의 장점이 뭔지 아나? 이제 끊었으니까 한 대쯤은 괜찮다는 거야.” -<커피와 담배> 중에서 짐 자무쉬의 대표작 가운데서도 <커피와 담배>는 그의 시그니처 같은 작품이다. 거창한 것들에 의미를 두지 않고, 커피나 담배 같은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사물들에 애정을 가지는 자무쉬의 관심사를 제대로 펼쳐 보인다. 영화는 11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무료한 대화를 조명한다. 대단한 이야기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가장 우리의 일반적인 인생들과 맞닿은 영화라 볼 수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잔과 담뱃갑을 내려다 본 프레임 하나하나까지 무심하지만 감각적으로 촬영됐다. 이른바 짐 자무쉬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들이 <커피와 담배>에 대거 등장한다. 빌 머레이, 톰 웨이츠, 스티브 부세미, 로베르토 베니니 등의 배우들을 포함해 케이트 블란쳇과 이기 팝 등 스타 배우의 출연이 눈길을 끈다. 브로큰 플라워, 2005 “과거는 지났고, 미래는 아직 오지도 않았어. 우리한테 남은 건 모두 현재고 내가 말해줄 건 이것 밖에 없어.”-<브로큰 플라워> 중에서 자무쉬 영화의 단골손님 빌 머레이는 <브로큰 플라워>를 통해 단독 주연으로 나선다. 매일 무감각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응시하고 있는 독신남 돈(빌 머레이). 그는 자신에게 19살 난 아들이 있다는 익명의 편지를 받고 과거의 연인들을 찾아 나선다. 결론부터 말할 것 같으면 그는 아들을 만났다고 할 수도 없고, 과거에 만난 많은 여성들 중 누가 편지를 보냈는지를 확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짐 자무쉬의 스타일을 대강 알 만한 사람이라면, 정답이 중요한 영화가 아님을 알 것이다. 과거의 연인을 차례로 만나 벌어지는 소소한 일화들, 빌 머레이의 무감각한 얼굴에 얼핏 비치는 작은 상념들. 그 점이 바로 <브로큰 플라워>를 감상하는 묘미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2013 “서로 우주 반대편에 떨어져 있어도 통한다는 거야. 한쪽에서 변화가 생기면 다른 쪽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는 거지.”-<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중에서 자무쉬가 새로운 장르에 손을 댔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뱀파이어 장르이지만, '자무쉬의 뱀파이어물'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돋운다. 영화엔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짐 자무쉬의 예찬이 곳곳에 숨어있다. 수 세기를 죽지 않고 살아온 뱀파이어 커플 아담과 이브를 주인공으로 수 세기에 걸친 예술과 문화의 변화에 절망적 시선을 더한다. 본능과의 필연적인 싸움을 하는 뱀파이어라는 설정에 자무쉬스러운 유머가 섞여 빚어진 독특한 무드가 일품. 이브를 연기한 틸다 스윈튼, 아담 역의 톰 히들스턴을 비롯해 미아 와시코브스카와 안톤 옐친 등 개성 넘치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호연까지 눈을 즐겁게 한다. 패터슨, 2016 “때론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패터슨> 중에서 아마도 <패터슨>으로 국내 짐 자무쉬의 팬이 꽤 늘지 않았나 싶다. 국내 관객 6만 7천여 명을 동원했는데, 그의 영화 중 최고 기록이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 시인을 꿈꿨던 짐 자무쉬가 만들어 낸 한 편의 시와 같은 영화 <패터슨>. 시의 핵심이라고 칭해지는 운율이 정말로 영화에서 느껴진다.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의 매일 똑같지만 조금 다른 일상을 일주일 패턴으로 보여준다. 영화 곳곳에 산재한 운율과 패턴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 삶의 많은 이야기들은 짐 자무쉬의 <패터슨>처럼 비슷한 나날들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점이 이 영화 속에선 되레 소소한 일상에 대한 예찬이 된다.

<그녀들을 도와줘>, 앤드루 부잘스키의 무질서한 운동

리사(레지나 홀)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는다. 앤드루 부잘스키의 <그녀들을 도와줘>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것은 리사의 눈과 귀에 들어오는 화면 안팎의 물질성이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걸음을 옮기며 바깥의 변화를 예민하게 수용하는 리사의 신체적 반응을 빌려 프레임 내부로 침입해 들어온다. 영화의 도입부는 이런 성질을 선제적으로 제시한다. 리사는 혼자 눈물을 닦고 있는데, 그 행위는 제대로 완수되지 못한 채 밖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메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의 등장으로 중단되고 만다. 이는 징후적인 신호였다. 금고를 노린 침입자의 소리가 들려오고, 신입 직원들과 온갖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영화는 ‘더블 웨머’라는 이름의 작은 스포츠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지탱하고 있는지, 그러면서 얼마나 다종적인 질료들이 관계를 이루고 모순을 만들어내는지를 폭로하며 그것이 부서지는 과정을 해부학적으로 관측한다. <그녀들을 도와줘>의 모럴은 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로 단일한 논리의 시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역설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이 영화에는 이상할 정도로 시간 흐름이 감지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는 의도적으로 맑게 갠 백주의 풍경만을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저녁과 밤의 광경은 어느 장면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둠이 찾아오면 카메라는 오직 실내 전경을 비출 뿐이다. 기묘하게 밝음을 유지하는 무시간적인 세계에서(여기서 부잘스키의 전작 <컴퓨터 체스>(2013)의 엔딩에서 태양을 비추는 화면을 검은 얼룩으로 뭉개버린 광학적 시도가 이런 기이한 밝음에 대한 저항임을 파악할 수 있다) 리사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의 영상, 직원과 고객 또는 가족과 동료의 관계, 경찰의 협조와 범죄의 행태 사이를 가로지른다. 형태를 이루는 요소를 하나씩 떼어내거나 추가하면서 또 다른 형태로 이탈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처럼 부잘스키는 제한된 시공간 안에 공존 불가능한 배치의 방법들을 산출해내는 것으로 픽션을 작동시키고 있다. 부잘스키는 '더블 웨미'를 세계 안의 또 다른 세계로 형성한다. 이곳은 구성원들의 내재적인 규칙이 기계의 무심한 운동처럼 가혹한 방식으로 적용되는 공간이면서 불법적인 공모가 이루어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수많은 텔레비전 모니터로 가득한 이 공간의 전경은 “영화가 세계의 도시라면, 텔레비전은 폐쇄된 마을을 구성한다”고 지적한 세르주 다네의 견해를 환기시킨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세계. 단지 공통의 영역을 향해 시선을 던지는 것이 전부인 무대. 이곳은 영화의 역량이 부재한 채로 텔레비전의 기능으로만 작동하는 세계다. 대신 부잘스키는 영화 없는 세계의 주변부에서 작동하는 영화의 기능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더듬어본다. 카메라는 식당 내부와 외부를 쉼 없이 가로지르는 리사의 동선을 집요하게 좇으며 매 순간 다른 문제들이 프레임 안으로 침투하고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세계의 외양을 담아낸다. 내러티브의 리듬은 조금씩 변수를 맞이하면서 픽션에 다공적인 구멍을 구축하는 것이다. 질서가 카오스로 이행하는 과정, 경계의 붕괴를 발견하면서 <그녀들을 도와줘>는 영화라는 무질서의 운동을 지속시킨다. 루이스 브뉘엘의 <절멸의 천사>(1962)에서 부르주아 집단은 비가시적인 원리로 인해 바깥으로의 움직임을 차단당하지만, <그녀들을 도와줘>의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식당에 들어오고 나간다. 문제는 현대의 노동계급에 주어진 그 자유의 환영이다. 스포츠바에서 동등한 노동자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그녀들은 집단으로 호명될 수 없다. 그곳을 벗어나자마자 이들의 ‘자매애’를 흔드는 여러 층위의 계급적 긴장이 침입해 오는 건 그래서다. 리사는 바의 사장 커비(제임스 르그로스)와 동행하면서 인종주의와 성차별을 비롯한 각종 폭력과 격차를 체감한다. 결정적인 배반은 모든 공모의 목적이었던 샤이나(제나 크레이머)가 새삼스럽게도 폭력적인 남자친구와의 동행을 선택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이 순간에 리사는 ‘더블 웨미’의 불공정한 구조가 그들을 집단으로 구성하는 유일한 구조라는 아이러니와 대면한다. 리사는 ‘더블 웨머’의 제도 안에 머무는 것을 중단하고 비참과 불확실의 외부로 이동한다. 이 선택을 낭만적인 탈출로 이해할 순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그녀는 다시 생계를 위한 면접에 뛰어들고 있다(마찬가지로 이 선택을 순응의 증거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중단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다른 곳, 바깥으로의 이행을 지속했다는 점이다. 멈추지 않는 걸음, 이탈의 움직임. 픽션에 구멍을 만들어내는 건 이런 지향성이다. 절망한 모습으로 식탁에 앉아 움직임을 멈춘 리사의 상반신이 근사한 자세로 면접장의 테이블에 되돌아오는 것은 영화의 일탈적 궤적이 만들어낸 도약이다. 그러니 연대가 성립되지 않음이 폭로된 자리에서 역설적으로 그들은 연대의 방법론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리사를 대신해 바의 매니저 역할을 맡은 대니얼(샤이나 맥헤일)에게도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성희롱을 일삼는 남성 고객들의 말과 시선, 지저분하게 음식을 먹는 입과 맥주를 쏟고 지나치는 손짓이 그녀의 공감각적 영역 안으로 진입한다. 이렇게 보면 <그녀들을 도와줘>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연대가 실패에 이르는 까닭은 리사가 보고 듣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정확히 인지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니얼은 처음으로 이 공간을 구성하는 너저분한 몸짓들을 시점숏으로 포착하면서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리사가 겪은 감각에 근접한다. 이 불가능한 접속을 지나치고 난 뒤에야 바의 노동자들은 질서를 깨트리는 몸짓으로 텔레비전을 끄고 테이블 위로 올라선다. 면접장에서 놀랍게도 재회한 리사, 메이시, 대니얼은 건물 옥상으로 향한다. 백색으로 칠해진 옥상은 구체적인 시각적 정보나 지표가 완벽히 사라진 기이한 이미지의 공간이다. 어둠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거의 추상적인 사막의 형상으로 다가오는 한낮의 밝음에 그들은 무엇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그들이 지르는 비명은 하층계급의 손상된 목소리와 몸짓을 가시화하지만 그 퍼포먼스는 가혹하게 생략되고 만다. 세 인물이 한데 모였지만, 그들이 향한 곳은 결국 비좁은 섬에 다름아니다. 이곳에서 리사는 무심하게 흘러가는 하늘을 바라본다. 너무 많은 것을 보았던 리사, 그리고 카메라는 픽션에 균열을 일으키지 못하는 시선의 무기력에 마침내 도달한다. <그녀들을 도와줘>가 모든 것이 변모하고 변주되는 영화적 여정이라면, 이 마지막에선 세계를 향한 어떤 변형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비명과 외침은 가능하지만 지속을 상상할 수는 없다. 고속도로 반대편에서 우리가 다시 가족이 될순 없겠냐는 메이시의 제안에 리사가 심드렁하게 반응하는 까닭도 이와 같다. 변화를 일으키는 건 이미지가 아니라 크레딧이 모두 지나고 난 뒤에야 들려오는, 누군가를 깨우는 듯한 남성의 목소리이다. 여전히 잠들어 있는 자는 누구인가? 세 여성이 재회하는 마지막 시퀀스는 어쩐지 지나치게 매끄러운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은 흑인의 몽상이자, 여성 노동자들의 백일몽인가? 영화의 마지막은 불가능한 시공간의 감각을 재생한다. 온 힘을 다해 비명을 지르는데도, 이곳은 어느 공간보다 폐쇄적이고 고요하다.

제57회 뉴욕영화제 지상중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화제

올해에도 어김없이 아카데미를 앞두고 다수의 화제작이 뉴욕영화제(이하 NYFF)를 찾았다. 올해로 제57회를 맞은 NYFF에서는 개막작으로 수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신작 <아이리시맨>이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이 작품은 미국의 유명한 노조단체 대표였던 지미 호파 실종사건에 관여된 것으로 추정되는 실존 갱스터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아이리시맨> 기자 시사회에는 미국 전역의 평론가들이 첫 상영에 참석하기 위해 링컨센터 에이버리 피셔홀 시어터를 가득 채웠다. 상영시간이 3시간 30분가량인 덕분에 조금 이른 오전 9시에 시사회가 열렸으나, 기자들은 상영시간 2시간 전인 오전 7시부터 극장 앞에서 줄을 서며 영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스코시즈 감독의 작품 속 얼굴로 친숙한 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조 페시, 하비 카이텔 등을 비롯해 40여년 동안 함께 작업하기를 꿈꿔왔다는 알 파치노도 캐스팅에 가세했다. 특히 이제는 70, 80대가 된 이 배우들이 ‘디에이징’(De-aging VFX) 테크닉을 통해 40~50대부터 노년까지 연기해 더욱 눈길을 모았다. 이 작품은 11월 1일 뉴욕과 LA에서 한정 개봉한 후, 11월 27일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아이리시맨>의 로튼토마토 지수는 100%의 신선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13일까지 계속된 올해 NYFF에서는 총 29편의 장편 극영화가 메인 슬레이트 섹션으로 소개됐고, 13편의 장편다큐멘터리가 스포트라이트 섹션에서 소개되는 등 17일 동안 153편의 장·단편 작품들이 상영됐다. 영화제 센터피스 부문에는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가 소개됐다. 이 작품에는 스칼렛 요한슨과 애덤 드라이버, 로라 던, 레이 리오타, 앨런 알다 등 호화 배역이 출연한다. 폐막작으로는 에드워드 노튼이 각본과 감독, 주연, 제작을 모두 담당한 <머더리스 브루클린>이 소개됐다. 이 작품에도 역시 노튼을 비롯해 브루스 윌리스, 구구 바샤 로, 윌럼 더포, 알렉 볼드윈, 체리 존스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두 작품 모두 뉴욕을 배경으로 한 것은 물론 과거에 초청됐던 영화인들의 작품이라 NYFF 특유의 ‘뉴욕 사랑’은 올해도 이어졌다. 하지만 올해 NYFF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국내 개봉도 했고 각종 영화제에서 상영을 마쳤으나, <기생충>에 대한 관심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는 것. <기생충>은 NYFF 기간 중 뉴욕 프리미어를 가진 후 영화제가 끝나기 전인 지난 10월11일 뉴욕과 LA 극장 3곳에서 한정 개봉을 시작했다. 배급을 담당한 네온측에서 북미 개봉을 앞두고 토론토국제영화제부터 이어지는 대대적인 홍보 전략을 펼치고 있어, NYFF 기간 중 SNS에서 봉 감독이나 <기생충>에 대한 기사를 다루지 않은 매스컴이 없을 정도였다. <기생충>은 현재 로튼토마토 99%의 신선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개봉 주말 스크린당 수익이 12만 5421달러를 기록해 올해 개봉작 중 최고의 스크린당 수익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6년 개봉한 <라라랜드>의 뒤를 이어 3년 만에 두 번째 큰 수익을 올린 작품으로 꼽히게 됐다. 이 기록은 올타임 스크린당 수익 랭킹 중 18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이같은 <기생충>의 흥행을 보도하는 미국 내 평론가들과 미디어 관계자들은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작품상과 감독상, 촬영상 부문에서 수상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에 이어 <기생충> 역시 외국어작품상 부문뿐만 아니라, 일반 부문 후보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NYFF 기간 중 봉준호 감독은 2회에 걸친 <기생충> 일반 상영회에 출연배우들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것은 물론, 뉴욕 개봉을 앞두고 IFC 센터에서도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영화제 상영회와 IFC 센터 특별 상영회는 짧은 시간 내에 모두 매진됐다. 또 봉 감독은 영화제에서 매년 화제의 감독에게 마련하는 별도의 행사인 ‘디렉터스 다이얼로그스’에도 참석해 작품세계에 대한 심도 깊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외에도 눈길을 끈 작품들로는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다큐멘터리 <업> 시리즈 신작 <63업>, 켈리 리처드 감독의 <퍼스트 카우>, 타냐 시프리아노 감독의 다큐멘터리 <본 투 비> 등이 있다. 내년 초 미국 내 개봉예정인 <퍼스트 카우>는 리처드 감독의 차분하고 섬세한 극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남자들 사이의 우정을 독특한 스토리라인으로 아름답게 풀어가 평론가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본 투 비>는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에서 시작된 성전환 수술 전문의 제스 팅과 그의 환자들을 다뤄 호평을 받았다. 특히 트럼프 정권의 방침으로 LGBTQ 커뮤니티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고, 이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보험혜택도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지고 있어 이같은 문제를 조명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을 얻었다. 이번 NYFF에서는 이미 타 영화제에서 큰 성과를 거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더 휘슬러스>, 마르코 벨로치오 감독의 <더 트레이터>,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와 줄리아누 도르넬리스 감독의 <바쿠라우>, 올해 초 사망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등도 소개돼 뉴욕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한편 올해 NYFF에는 넷플릭스에서 <아이리시맨>과 <결혼 이야기>, 마티 디옵 감독의 <아틀란티크> 등을 출품했고, 배급사 키노에서 <바쿠라우>를 비롯해 나다브 라피드 감독의 <시너님스>,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감독의 <영 아메드>, 칸테미르 발라고프 감독의 <빈폴> 등을 출품했다. 반면 지난해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콜드 워>만을 소개하는 데 그쳤던 아마존의 경우 올해 아무 작품도 출품하지 않았다. ●월드 프리미어 <아이리시맨> 기자회견 - 우리는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늘 다시 모였다 제57회 뉴욕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아이리시맨>이 최초로 공개됐다. 시사회 후 스코시즈 감독을 비롯해 배우 로버트 드니로·알파치노·조 페시 그리고 프로듀서 에마 틸링거 코스코프와 제인 로젠탈 등이 참여한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이번 작품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제인 로젠탈_2007년 다른 작품을 준비하던 중에, 로버트 드니로가 이번 작품의 원작(찰스 브란트의 논픽션 <아이 허드 유 페인트 하우시스>)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촬영 기간도 길었다고 하던데. =마틴 스코시즈_길었지. 106일이었나? =에마 틸링거_코스코프 108일! 마틴 스코시즈_사람들 앞에서 거짓말했네. (웃음) 하지만 따져보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로버트 드니로와는 <카지노>를 찍은 1995년부터 함께할 작품을 계속 찾았다. 늘 서로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확인하곤 했다. 계속 기회가 없다가 드디어 작품을 찾은 거다. 지인이 책(원작)을 주면서 시작된 거지? =로버트 드니로_맞다. 처음엔 캐릭터 리서치로 읽었다. 마틴 스코시즈_책을 읽고 캐릭터에 상당한 애착을 느꼈다. 그다음엔 더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 전화를 여기저기 돌리기 시작했다. 이게 아마도 10년 전 일이지? 그때부터 알 파치노와 조 페시도 함께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알 파치노와 늘 함께 작업하고 싶어 했다고 들었다. 마틴 스코시즈_오랫동안 그랬다. 알과 처음 만난 게 1970년이었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소개해줬다. 수년간 서로 다른 작품을 하다가 <모딜리아니>라는 영화로 함께 작업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그러다 한 6년 전이었나? 이 작품에 대해 얘기하려고 베벌리힐스에서 만났다. 그때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이 영화, 정말 만들 수 있는 거냐”고. =알 파치노_그랬지. 마틴 스코시즈_더 나이 들기 전에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좀 늦춰졌는데, 기술적인 면도 큰 이유였다. -알 파치노는 이번 작품에서 전설적인 인물 호파를 연기했다. 알 파치노_물론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여러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는 자료를 구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 내가 <형사 서피코>를 연기할 땐 그 사람(실존 인물)이 촬영장에 있었는데. (웃음) 지미 호파의 경우 내가 자랄 때 워낙 크게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었다. -다시 리듬을 찾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마지막으로 셋이 함께 작업한 것은 <카지노>였고 벌써 20년이 지났다. 로버트 드니로_마티(마틴 스코시즈)와 나는 몇번 더 작업할 기회가 있었는데 열매를 맺지 못했다. 이번 작품에 대해 마티, 조와 따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해왔다. 마티가 작업하는 방식을 존중해주면서 제작비를 지원할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마틴 스코시즈_그게 가장 중요한 키였다. 오랫동안 제작비를 지원해줄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디에이징 프로세스가 연기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헬멧이나 테니스공을 쓰지 않고도 가능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테스트를 몇년 전에 해봤는데 비용이 무척 많이 들어갔다. 그러다 넷플릭스 관계자들이 ‘한번 해보자’고 결정했다. 창작적인 면에서 자유를 줬다. 물론 가끔 노트를 주기는 했지만 참조할지 안 할지는 우리의 결정이었다. 포인트는 페스티벌에서만 상영하게 되더라도 꼭 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데 모두가 의견을 모았다. 때로는 나이 들면서 사람들이 변하는 경우도 있고 서로 멀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늘 다시 모였다. 알과도 드디어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모두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을 즐거워했다. ●<63업>의 마이클 앱티드 감독 인터뷰 -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 기쁘다 뉴욕영화제 기간 중 다큐멘터리계의 거장 마이클 앱티드 감독과 만났다. 앱티드 감독은 지난 60년대부터 <업> 시리즈를 통해 7년마다 사회계급이 다른 영국인들의 성장과 생활을 지켜보는 인터뷰를 선보인 바 있다. 그와 인터뷰를 잡은 10월 5일은 뉴욕에서 코믹콘이 한창 열리던 날이었다. 코믹콘 행사로 맨해튼 일대는 심한 교통체증을 겪었고, 때문에 인터뷰 일정보다 늦게 나타난 앱티드 감독은 미안해하며 일대일 인터뷰로는 제법 긴 시간을 할애해주었다. -이번 뉴욕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63업>은 아홉 번째 <업> 시리즈 작품이다. 지금까지 시리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시리즈에 참여한 멤버들에게 지난 7년간 일어난 일들을 담았으니 늘 새로운 이야기다. 원래 별도의 연락을 하지 않는 편이다. 어떤이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났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독특한 방식이다. 아마도 자신의 인생 전체를 이런 필름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거다. 내 작업을 카피하려던 사람들은 많았지만 다 도중에 그만뒀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한국에도 당신 작품을 사랑하는 팬들이 많다. 언어와 국가의 장벽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리즈가 의미를 갖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변화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번 <63업>은 죽음에 대해서도 많이 다룬다. 지금까지 함께해왔던 멤버 중 한명이 사망했고, 멤버 닉은 암 투병을, 재키는 거동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다. =다행히 닉은 아직 우리와 함께 있다. 재키는 몸이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강인한 성격이기 때문에 큰 걱정이 되진 않는다. 이번 시리즈 중 호주 촬영분이 있었는데 촬영 중 닉에 대한 연락을 받았다. 암에 걸렸고, 죽어가고 있다고. 그래서 이번 촬영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내용이었다. 닉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호주 촬영분을 끝내기 직전에 닉이 연락해왔다. 미국에 거주 중인데, “제발 와달라. 오래 얘기하긴 힘들지만 잠깐이라도 얘기하고 싶다”고 하더라. 정말 겁나더라.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처음에 닉은 20분 동안 질문 몇 가지 정도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결국 닉과의 인터뷰는 한 시간 반 동안 계속됐다. -일부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촬영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을 고수하고 그들의 생활에 관여하지 않기도 하는데, 본인은 어떤지. =당연히 도울 수 있으면 도움을 준다.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이나 사람들에게 연결시켜주기도 하고. 여러 방법으로 관여하는 편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면 안 된다. -근래 재능 있는 신예 감독들의 다큐멘터리 작품을 극장은 물론이고 스트리밍을 통해 만날 수 있다. 플랫폼의 변화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작품을 챙겨 보는 편이다. 어떤 변화가 있고, 어떤 부분에서 변화가 가장 큰지 등에 대해서도.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 다큐멘터리를 만들 사람들이 궁금하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 기쁘다. -일부 감독들은 스트리밍 서비스나 디지털 촬영 방식을 반대하기도 하는데. =디지털 방식을 통해 실시간으로 무한대 촬영이 가능해지지 않았나. 촬영시간이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많은 스탭이 필요없다. 2, 3대의 카메라로 동시 촬영을 할 때에도 소규모 스탭을 유지한다. -한국에도 신예 다큐멘터리 감독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조언한다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대상을 위한 것이지 나 자신(감독)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많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자신에 대해 작품을 만든다. 지금처럼 이렇게 편리한 테크놀로지가 있으니 이를 잘 활용해서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으면 한다. 일종의 다큐멘터리언으로의 서약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가 작품의 한 파트가 되지 않는다. 포커스는 늘 다른 이의 인생을 담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

<패트와 매트: 우당탕탕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둔 패트와 매트의 소동극

1976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체코의 텔레비전 시리즈 <패트와 매트>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대명사로 무엇이든 뚝딱뚝딱 만들고 고쳐내는 패트와 매트 콤비는 40년 이상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 영화는 <패트와 매트: 우당탕탕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겨울을 배경으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둔 패트와 매트의 소동극을 담는다.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특별한 요리와 함께 이들만의 새해 인사를 전하는 패트와 매트. 모든 과정이 독창적이고 때로는 담대하기까지 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뭐든 만들어내고 해결해내는 엉뚱하지만 귀여운 듀오의 톡톡 튀는 행동 전반을 관망하는 즐거움이 크다. 매트에게 새로운 줄무늬 털모자를 선물하기 위해 포장지를 찾던 패트는 쭈글쭈글해진 포장지를 펴기 위해 다림질을 시작한다. 그때 패트 집의 벨을 울린 매트 때문에 포장지는 타버리고, 이를 발견한 매트는 자신이 패트를 위해 쓰려던 포장지를 기꺼이 반으로 나눠준다. 매트 역시 패트를 위해 새로운 빵모자를 준비한 것. 그럼에도 부족한 포장지에, 액자 속 사진과 그림을 잘라내 선물을 포장하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에피소드는 특히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다. 어린이 관객에게 유쾌함을 선사함과 동시에 어른 관객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며 전 연령층에 걸쳐 호응을 얻어낼 애니메이션이다.

[내 인생의 영화] 고명성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감독 리들리 스콧 / 출연 해리슨 포드, 숀 영 / 제작연도 1982년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자주 듣는 질문이지만 난감하다. ‘제일’이라는 말엔 한편만이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입장에선 그러하다. 내 인생의 영화는? 이 질문엔 전광석화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영화가 있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82년작 <블레이드 러너>다. 기억이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동시에 꿈틀거린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감정과 상황, 향후 비칠 자신을 위해 그 기억은 왜곡되고 나아가 정당화되며 삭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왜곡되지 않고, 잊히지 않고, 나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이 영화를 보았을 때고 이 영화가 내 인생 영화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명화극장>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 지금처럼 채널 선택권이 많지 않았던 어린 시절, 지상파의 이들 방송은 내가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임과 동시에 이국적인 세계를 브라운관을 통해 접할 수 있는 통로였으며 방송에서 보내는 시그널송은 나를 비현실적 세계로 안내해주는 문지기였다. 밤늦게 거실의 불을 끄면 언제나처럼 이국적 세계로 안내할 <주말의 명화> 시그널송이 시작되었다. 광고가 끝나고 시작된 이 영화는 2019년의 미래를 처음부터 어둡고 칙칙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몽환적인 세계로 이끌었고 묘한 느낌마저 들게 해주었다. 데커드(해리스 포드)가 레이첼(숀 영)을 붙잡고 격정적으로 키스하는 장면에선 모호한 감정에 가슴이 두근거렸으며 동시에 시선은 안방으로 향했다. 자고 있을 엄마가 이 타이밍에 나오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함이었다. 초등학생이 감히 이런 영화를! 죄책감이 들었지만 은밀하고 야릇했다. 그렇게 이 영화와 나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90년대 초반 감독판 <서기 2019 블레이드 러너>라는 타이틀로 재개봉 했을 땐 고등학생이었고, 극장에서 이 영화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어릴 때 느꼈던 모호한 감정은 퇴폐미와 공허함으로 다가왔고,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흥분되었다. 영화 속 반젤리스의 O.S.T는 그 느낌을 충분히 구현해주었고, 레코드점에서 사운드트랙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등하굣길에 언제나 함께했다. 영화는 예민했던 10대 중반의 나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다. 2000년대 중반 일본 유학 시절, 가전 양판점에서 우연히 <블레이드 러너> 한정판 DVD 세트를 발견했다. 모든 버전과 워크프린트, 메이킹필름은 물론 당시 스토리보드와 유니콘, 스피너 비행차량 피겨까지!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고 남아 있는 수량은 하나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던 내겐 큰 부담이었지만, 선택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점원에게 다른 이에게 팔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고 황급히 은행에서 돈을 인출했다. 추억과 함께 내 인생의 영화는 그렇게 재회했고, 그 한정판 박스는 지금도 나와 가까운 곳에 머물러 있다. 좋아서 혹은 배움을 위해 보았던 멋진 영화는 많으며 훌륭한 영화도 많다. 하지만 1989년 어느 날, 불 꺼진 거실의 텔레비전 브라운관에서 흘러나왔던 이 영화가 지금 나에게 이 일을 하게끔 안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30년이 지난 2019년은 이 영화의 배경이며 내가 영화를 개봉한 해이기도 하다. 결과론적 우연이라 할지라도 이 영화는 내 인생 가까운 곳에서 배회하고 있었고, 삽입곡 가 몇년째 휴대폰 착신음인 건 나 역시 이 영화 가까운 곳을 배회하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훗날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내 인생의 영화’로 남아 있을 이 영화에 애정을 담아 감사를 표하고 싶다. ●고명성 영화감독. <사요나라 안녕 짜이 >(2009), <열두 번째 용의자>(2019) 연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옛날 옛적 촬영장에서

지난 10월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내 이름은 돌레마이트>는 오늘날 블랙 무비가 장르로서 발휘할 수 있는 고유한 매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영화의 주인공은 랩과 힙합의 선조로 간주되는 미국의 실존 엔터테이너 루디 레이 무어(에디 머피). 선정적 운문을 비트에 실어 공연하던 코미디언 루디는 어느 날 영화의 파급력에 눈뜨고, 필름의 ‘필’자도 모르는 채 친구와 영화과 학생들을 모아 액션 코미디 <돌레마이트>를 무작정 크랭크인한다. 영화 <내 이름은 돌레마이트>가 흥이 오르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부터. 일찍이 <에드 우드>(1994)를 쓴 각본가 스콧 알렉산더와 래리 카라제브스키는 최악의 테크닉과 최선의 열정이 뚝딱뚝딱 영화 한편을 지어 올리는 광경을 사랑스럽게 그린다. 에디 머피도 최상급 연기를 보여주지만, 웨슬리 스나입스, 다빈 조이 랜돌프, 키건 마이클 키 등 조연진도 틈만 나면 영화를 가로챈다. 10/21 인간은 직접 겪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노스탤지어를 품을 수 있다. 문화의 시차(time lag) 덕분이다. 예를 들어 세기말 즈음 1980년대생 젊은이들은 1960년대생 대중 예술가들의 과거가 당긴 성장담으로 청춘이라는 개념의 한켠을 완성하고 내면화했다. 물론 1960년대생들의 10대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형성됐을 것이다. 평생 10편만 만들겠다고 예고한 1963년생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아홉 번째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이하 <원스 어폰 어 타임>)가 그리워하는 시대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도래로 1960년대 말에 막을 내린 고전기 할리우드다. <펄프 픽션>(1994)으로 현대영화의 게임 규칙을 갈아치우고 40대까지도 악동 소리를 들은 장본인치고는 다소 뜻밖의 그리움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은 ‘황금기’의 막바지인 1969년- <이지 라이더>와 <미드나잇 카우보이>가 이해 개봉했다- 의 할리우드를 두 남자와 한 여자의 궤적을 따라 소요한다. 이중 한명은, 엇나간 일부 히피족을 흡수한 맨슨 일당에게 1969년 8월 잔혹하게 살해된 배우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다. <악마의 씨>(1968)로 주가를 높인 감독 로만 폴란스키와 막 결혼해 배우로서 밝은 미래를 기다리던 샤론 테이트의 생이 광포하게 찢겨나간 비극은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고전기 할리우드의 낙일(落日)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그리움과 애수는 타란티노 영화와 관련해 좀처럼 끌려나오는 단어가 아니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는 영화 전반에 드리워진다. 제목부터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넓은 의미의 동화다. 당대 할리우드의 사실주의적 재현이 아니라 타란티노가 그 시대 텔레비전과 영화에 탐닉하며 상상한 그 너머의 세계다. 영화인들이 차를 몰아가는 할리우드 대로는 오렌지 빛으로 출렁이고, 들릴 듯 말 듯한 당시 라디오의 음향이 영화 초반 30분을 감싼다. 실존 영화인들의 일화를 고증했으나 고증된 일화는 타란티노가 상상한 할리우드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타일로 쓰인다. 누구나 아는 패스티시의 귀재 타란티노는 그맘때 텔레비전 서부극과 범죄 시리즈, 연예 뉴스를 감쪽같이 복제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를 들락거리게 함으로써 이 동화에 완벽한 삽화를 만들어넣는다. 그리고 1960년대 말 10대 배우로서 현장에 있던 커트 러셀에게 내레이터를 맡긴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주인공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전성기를 지나 TV시리즈 조연급으로 밀려나는 중인 배우다. 우리는 브래드 피트가 릭의 스턴트 대역 클리프 부스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영화산업의 변화에 따라 둘의 지위가 뒤바뀌는 <이브의 모든 것>식 드라마를 예상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역은 시대의 무드이기 때문에 그런 전개는 일어나지 않는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은 대놓고 보수적이다. 릭과 클리프는 한배를 타고 업계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릭의 치다꺼리를 도맡는 클리프는 “형제 이상 부부 이하” 친구이자 릭에게 질투도 경쟁도 하지 않는 관계로 그려진다. 뭐니 뭐니 해도 각자의 일을 주어진 자리에서 하는 시대인 것이다. 타란티노는 영화에서 베벌리힐스 언덕에 자리한 릭의 저택과 퇴근 후 클리프가 돌아가는 계곡에 자리한 남루한 트레일러를 뚜렷이 대비시킨다. 그러나 클리프에겐 박탈감의 흔적이 없다. 차도에 붙어 있는 릭의 집 또한 정문과 진입로를 갖춘 이웃 폴란스키 저택에 비하면 초라하다. 그럼에도 릭은 폴란스키 집에 초대받길 희망할 뿐 그에게 반감은 드러내지 않는다. 불평등은 자연스럽게 수용된다.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 타란티노가 애정을 표하는 올드 할리우드는 수직통합된 스튜디오 시스템을 중심으로 스탭들이 확고한 위계 속에서 맡은 바 노동을 하며 영화 공장을 돌리는 세계다. 에이전트(알 파치노)가 배우와 미팅을 갖기 위해 35mm 셀룰로이드 필름 캔을 가져다가 영사기로 돌려보는 우아한 시절이며, 범죄자도 할리우드 배우도 저녁이 되면 똑같은 인기 드라마 를 시청하기 위해 TV 앞에 앉는 통합된 대중문화의 시대다. 10/22 <원스 어폰 어 타임>은 경력이 내리막길에 들어선 릭과 클리프, 반대로 스타덤의 입구에 들어선 샤론 테이트를 소개한 다음, 세 사람이 따로 떨어져 보내는 1969년 2월의 하루를 세 갈래로 뒤밟는다. 뒷날 샤론 테이트와 친구들을 살해한 찰스 맨슨 일당의 모습도 주변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역사상 악명 높은 범죄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는 관객이라면 서스펜스를 느끼기 어렵다. 불길한 전조를 감지하는 정도다. 이후 릭과 클리프는 일의 돌파구를 찾으려 6개월간 이탈리아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을 찍고 LA로 돌아온다. 이탈리아에서 결혼한 릭이 클리프와 고별 술자리를 갖기로 한 밤, 찰스 맨슨 일당이 샤론 테이트가 사는 주소로 찾아온다. 그 집의 전 주인인 음악 프로듀서에게 악감정이 있었던 찰스 맨슨의 눈먼 지시가 어처구니없는 동기다. 릭과 클리프, 샤론이 서로 접점 없이 보내는 하루를 그린 2장에서 영화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숙취를 안고 현장에 간 릭은 대사를 까먹고 자학하다 심기일전해 작은 성취감을 누린다. 남편에게 줄 선물을 산 샤론은 <렉킹 크루>(1969)의 상영관에서 관객과 함께 스크린 속 자신을 바라보며 행복에 잠긴다. 생의 절정에 선 이 젊은 여성을 따르는 카메라의 시선은, 시신을 어루만지듯 멜랑콜리하다. 감독은 “끔찍한 죽음으로만 기억되는 배우에게 삶을 즐기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는 요지로 샤론 테이트의 장면들을 설명했다. 그의 목적은 달성됐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샤론 테이트가 요정 이미지에 가까운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비단 대사가 적어서만은 아니다. 타란티노는 샤론 테이트를 범죄 피해자 명단에서 못다 핀 스타의 자리로 불러내긴 했으나, 눈부신 청춘으로부터 행복한 임신부로 이어지는 관습적 여성미의 총화를 넘어서진 못했다. 2장에서 가장 기묘하고 매혹적인 단락은 클리프의 하루다. 히피 소녀를 차에 태워준 클리프는 예전에 촬영한 농장이 소녀의 거처임을 발견한다. 그리고 거기 모여 사는 맨슨 추종자들이 농장주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결국 한명을 때려눕힌다. 이것은 흡사 하나의 미니 서부극이다. 어두운 과거를 가진 고독한 사나이가 소녀를 만나 마을에 들어왔다 불의를 감지하고 시장을 면담한다. 그리고 으름장을 놓고 돌아가는. 타란티노는 언제나 숨막히는 시퀀스 제조기였다. 그중 대부분은 도살장 앞에 줄 선 가축의 공포와 서스펜스를 자아냈다. 하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의 2장에서 타란티노의 호흡은 시퀀스 단위를 훌쩍 넘어 시공간을 장악한다. 타란티노의 할리우드 동화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를 잇는 역사 고쳐쓰기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기사 클리프의 활약으로 악당을 물리친 운좋은 왕자 릭은 친절한 샤론 여왕님의 초대를 받는다. 좋아요 매기 로저 미첼 감독의 <여배우들의 티타임>은 연기예술에 대한 공헌으로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은 80대 배우 주디 덴치, 매기 스미스, 조앤 플로라이트, 아일린 앳킨슨의 티테이블 앞에 카메라를 세운 다큐멘터리다. 셰익스피어, 자연스런 연기의 정의, 무대공포증, 결혼, 노화 등 다양한 화제가 연기 어벤저스 사이에 오가는 가운데, 펀치라인을 가장 자주 터뜨리는 인물은 매기 스미스. <오셀로> 공연 중 몰입한 로렌스 올리비에로부터 갑자기 맞은 사건을 돌이키며 “국립극장에서 처음 별을 본 날”이라고 꼬집고, 클레오파트라 역을 안 하자니 아쉽고 영국에서 하자니 외모 품평 듣기가 싫어서 절충책으로 캐나다에서 공연했다고 좌중을 웃긴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맥고나걸 교수, <다운튼 애비>의 레이디 바이올렛 등 예의 현명한 노부인 캐릭터만 알고 있는 영국 밖 관객으로서는, 이 배우의 신랄한 유머 감각과 반사신경을 즐길 수 있는 기회다.

할리우드판 <살인의 추억>? 쌍둥이처럼 닮은 영화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공개 된 <윤희에게>를 향한 호평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해졌다. 더구나 이 영화에 붙은 별명이 ‘한국판 <러브레터>’다. 하얀 설경 위에 선 배우 김희애가 카메라를 든 스틸 사진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을까. 겨울과 눈, 첫사랑과 편지는 <러브레터>를 떠올리게 만드는 <윤희에게>의 중심 테마다. 실제로 몇몇 장면이 <러브레터>의 명장면을 상기시킨다는 관람객의 인상이 오갔고, 이용철 평론가는 “<러브 레터>의 유산”이라는 한 줄 평을 <윤희에게>에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창작 과정에서 특정 작품을 염두에 두지 않았더라도, 소재나 큰 틀의 유사성 만으로 ‘한국판 OOO’, ‘해외판 OOO’라는 별명으로 불린 영화들이 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어떤 영화로부터 다른 영화의 기억을 불러내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비교 감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되지 않을까. 한국 버전의 해외 영화, 해외 버전의 한국 영화로 불렸던 네 가지 사례를 모았다. 봉준호 <기생충> 클로드 샤브롤 <의식> 한국 영화 100주년의 해에 유의미한 선물을 남긴 <기생충>. 영화를 향한 찬사와 질문이 쏟아지고, 봉준호 감독은 레퍼런스로 삼은 몇 편의 영화를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여러 매체가 주목한 작품은 한국의 고전기 감독 김기영의 후기 영화 <하녀> <충녀> <육식동물>이다. 과연 계단의 시네마를 열어젖힌 김기영의 후예답게 <기생충>의 계단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비해 덜 말해지고 있으면서, 본 사람이라면 분명히 떠올리지 않기가 힘든 영화 클로드 샤브롤의 <의식>이 있다는 점. 실제로 봉준호 감독은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에서 앙리 조르주와 클로드 샤브롤이라는 두 프랑스 영화감독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특히 한 상류층 가정에 가정부로 취업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클로드 샤브롤의 <의식>과 봉준호의 <기생충>은 자본주의가 낳은 계급 우화의 뼈대를 공유한 한줄기 영화다. 하물며 계단은 <의식>에도 나온다. 가정부 소피(상드린 보네르)는 계단 위쪽의 작은방에 살고, 방 안엔 조그만 텔레비전 하나가 있다. 친절한 상류층 가족은 앞과 뒤가 다른 위선을 보여주며, 고상한 취미를 향유하지만 그들의 지리멸렬한 진짜 삶은 다를 바가 없다. <기생충>의 전복적인 서사와 통하는 사건 역시 <의식>의 백미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소피가 우체국 직원 잔느(이자벨 위페르)와 벌이는 참극은, 끝내 웃음 아닌 찝찝한 허무의 정서를 남긴 <기생충>과 일맥상통한다. 신동석 <살아남은 아이> 다르덴 형제 <아들>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 상실감을 견딜 수 없던 부부는 아들 은찬이 구했다는 친구 기현(성유빈)에 어쩐지 마음이 기운다.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성철(최무성)은 오갈 데 없는 기현을 데려와 도배 일, 장판 일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첫 출근 지각도 모자라 휴대폰 게임까지, 성실함이라곤 보이지 않던 사춘기 아이 기현은 내키지 않는 듯 천천히 일을 배워 간다. 이쯤 되면 유사한 줄거리를 가진 다르덴 형제의 영화 <아들>이 떠오르기 마련. 사실 성철과 미숙(김여진) 부부에게 기현이라는 존재는 달가울 리 없다. 그는 아들이 죽게 된 이유이자 아들의 부재를 거듭 상기시키는 존재기 때문이다. <아들>에도 비슷하게 난감한 상황이 등장한다. 프랜시스(모간 마린느)에게 목수 일을 가르치는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는 프랜시스가 죽인 아이의 아버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올리비에는 프랜시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고, 기현은 성철 부부를 처음부터 은찬의 가족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살아남은 아이>는 후반부 기현의 폭로로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게 되면서 갈등의 양상이 복잡해진다. 디테일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아들 죽음과 관련된 아이와의 아슬아슬한 동거,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의 스타일 등 두 작품은 꽤나 닮아 있다. 두 영화가 집요하게 좇는 물음이 쉽게 답할 수 없는 윤리와 관련한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빗 핀처 <조디악> 봉준호 <살인의 추억> 할리우드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리는 영화가 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추리극 <조디악>이다. 두 영화는 끝내 범인이 잡히지 않았던 실제 미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물론 최근 <살인의 추억>의 실제 사건인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의 검거로 온 국민이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지만 말이다. <조디악>은 미국의 연쇄살인마 조디악 킬러를 추적하는 경찰들의 수사가 거듭 미끄러지는 순간들을 빚는다. 심지어 끝내 매듭지어지지 못한 채 미궁에 빠진 허무와 공포감을 주시한 결말은 두 영화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인상에 이르게 만든다. <조디악>보다 4년 먼저 만들어진 <살인의 추억>을 데이빗 핀처가 참고했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 대신 <살인의 추억>은 과학 수사가 미흡하게 이뤄지던 당시, 진범 검거보다는 사건의 마무리에 급급했던 경찰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중심이라는 점이 다르다. 상업성과 완성도 면에서 모두 빼어난 <살인의 추억>이 시종 담담한 서술을 하는 핀처의 <조디악>에 비해 많은 유머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도 차이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출한 두 감독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인 <살인의 추억>과 <조디악>. 밀도 있는 연기와 연출에 대한 찬사가 여전하다는 사실에서 두 영화는 한 쌍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콜린 트레보로우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 장준환 <지구를 지켜라!>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은 2014년에 국내 개봉을 했다. 집계된 관객 수는 단 42명.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고 코웃음을 친다면 손해다. 이 영화가 컬트 팬들의 꾸준한 지지 아래 있는 <지구를 지켜라!>를 닮았단 사실을 접한다면 구미가 당길지도 모르겠다. 외계인 음모론자인 괴짜 병구(신하균)가 과도한 집착 증세로 벌이는 일련의 태도들은 꾸준히 관객에게 실소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런데 이 '터무니없음'으로 차곡차곡 쌓아온 영화의 결은 엄청난 전복을 거치곤 위대한 '진정성'을 획득한다. 팬들이 매료된 <지구를 지켜라!>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일 테다. 보잘것없는 것을 한순간에 대단한 무엇으로 만들어 버리는 대담한 상상. 바로 그 매력이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에도 있다. 시작은 이렇다. 시간 여행을 함께 떠날 파트너를 구하는 엉뚱한 신문 광고. 이 광고를 낸 자를 취재하기 위해 떠난 수습기자 다리우스(오브리 플라자)는 광고의 주인공인 괴짜 케니스(마크 듀플라스)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명분을 숨기고 케니스와 친분을 쌓는 다리우스는 진지한 목표를 경청하면서 점차 인간적인 신뢰를 갖게 된다. 게다가 늘 누군가에게 미행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엉뚱한 남자에게서는 어쩐지 병구의 향기가 강하게 풍긴다. <지구를 지켜라!>와 유사하다고 말한 것부터가 강력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으나, 세상의 무수한 괴짜들을 위로하는 영화의 천성만큼은 분명하다.

[성균관대학교] 인문학적 성취에 첨단영상기술을 더한다

학과소개 성균관대학교는 21세기 첨단 영상 분야를 이끌어갈 영상전문인 양성을 목표로 1998년 국내 최초의 영상학과를 신설했다. 미국의 문화산업을 경험하고 돌아온 삼성의 젊은 임원들을 주축으로 설립된 삼성영상사업단의 권유로 영상학과를 신설했고, 이후 국내외 영상 관련 학과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인문사회적 소양을 기반으로 영상콘텐츠를 탐색할 수 있는 다채로운 커리큘럼은 성균관대학교의 강점이기도 하다. 특히 1999년 게임 분야를 영상학과에 최초로 도입해 게임워크샵 등의 수업을 개설했다. 영상학과의 선두주자로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전통적인 영상 영역과 게임을 주축으로 하는 인터랙티브영상과 복합영상을 다루는 트랜스미디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다. 영상미학과 영상스토리텔링, 정신분석과 영상연출 등의 과목은 인문학적으로 인간심리를 파고들어 개념화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이런 과목들은 영상학과의 차별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촬영기초, 영상편집기초 등과 같은 도구과목 역시 빠짐없이 교육하며, 영화연출워크샵, 애니메이션연출, TV드라마워크샵 등의 실습과목과 조화를 꾀한다. 전통적 과목들을 넘어서 새로운 매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를 연구하는 과목들은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만의 또 다른 장점을 드러낸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안상혁 학과장은 “학생들이 많이 수강해 2분반, 3분반 하는 대표적인 과목이 영상스토리텔링이다. 다른 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정신분석과 영상연출 과목 또한 인기가 많고, 촬영이나 편집 등 기초적인 도구과목 역시 탄탄하게 준비되어 있다”고 덧붙인다. 또한 매체간 융합을 통해 뉴미디어를 개발하는 인터랙티브영상과 인터랙티브아트, 디지털 영상 공간 유저들의 행위를 연구하는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디자인, 하나의 스토리를 다양한 플랫폼에서 콘텐츠화하는 스토리텔링을 배우는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와 뉴미디어콘텐츠워크샵 등의 수업은 다변화하는 미디어와 다채로운 플랫폼을 발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교수진 역시 탄탄하다. 학과장을 겸임하고 있는 안상혁 교수는 국내 콘텐츠 분야를 일군 1세대다. 대기업에서 다양한 초기 형태의 콘텐츠 유형을 기획하거나 제작한 바 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성을 지닌 영상학과의 편제를 구성했다. <인터뷰> <주홍글씨> 등을 연출한 변혁 감독, 뉴욕에서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이준희 교수와 현대진 교수는 게임 인터랙티브 분야와 모션그래픽 분야를 담당하며 영상학과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탄탄하게 뒷받침된 학과 커리큘럼과 풍부한 실무경험을 갖춘 교수진과 함께 인문학적 바탕과 첨단의 조화를 통해 문화콘텐츠 산업이 요구하는 창작력과 이를 구현하는 실무능력을 겸비한 영상인력을 양성한다. 미디어 컨버전스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무엇보다 현대사회의 큰 흐름인 통합과 융합에 발맞추고 있다. 미디어의 한 분야만을 중점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아닌 시대의 흐름에 맞춰 인문분야와 예술, 그리고 기술적인 여러 측면을 교육함으로써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해나가고 있다. 입시전형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의 2020학년도 입학정원은 총 37명으로, 22명은 수시전형으로 선발했다. 정시 나군에서 수능 점수 100%를 반영하는 일반전형으로 15명을 선발한다. 영역별 반영비율은 국어 40%, 수학(가군 혹은 나군) 40%, 탐구(사회 혹은 과학) 20%이며, 영어 및 한국사에는 별도의 가산점을 부여해 합산한 후 총점 순으로 선발한다. 이때 탐구영역 중 1개 과목은 제2외국어나 한문 영역으로 대체할 수 있다. 원서접수는 2019년 12월 27일(금) 오전 10시부터 31일(화)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합격자 발표는 2020년 2월 4일(화) 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다. "영상은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안상혁 학과장 -한국 최초로 영상학과를 설립한 지 어느덧 2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90년대 후반 IMF 경제 위기 이후 산업구조가 개편되며 영상학이라는 학문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다변화된 뉴미디어 시대로 접어들며 영상학과에 대한 관심도가 증폭되었다. 우리 학과 또한 중대형 학과로 커졌고, 영상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까지 포함해 유학도 많이 오고 있다. 국내외로 학과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느낀다. -졸업생들은 주로 어느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주로 대형 콘텐츠 업체에서 기획력을 발휘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학사뿐 아니라 석·박사 과정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이 많다. 중국, 대만 등 아시아권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각국에서 자리를 잡아가면 서로 더 좋은 상호관계가 형성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영상학과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꼭 기억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어버린 영상학이라는 학문의 큰 틀을 잡는다’는, 어떻게 보면 조금 막연한 마음으로 지원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학생 때부터 영상 관련 동아리 경험 등이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성실히 교과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성실하고 이해력 깊은 학생들이 결국 영상학의 핵심인 높은 매체 적응력을 가지며 많은 기회를 잡게 된다. 홈페이지 ftm.kr 전화번호 02-760-0661 교수진 안상혁, 변혁, 이준희, 현대진 커리큘럼 영상학원론, 촬영기초, 영화사, 음악음향실습, 영상음향실습, 인터랙티브영상, 인터랙티브아트, 애니메이션기초, 시나리오워크샵, 영상미학, 영상스토리텔링,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디자인, 디지털디자인, 디지털비디오와 무빙이미지, 게임디자인, 캐릭터애니메이션, 미디어스터디, 영상편집워크샵, 영상편집기초, 영화사연구, 게임워크샵, 영상비평론, 영상매체경영론, 영상학현장실습, 모션그래픽워크샵, 정신분석과 영상연출, 실험영상워크샵, 광고연출, CF워크샵, 스튜디오촬영워크샵, 장편시나리오워크샵, 다큐멘터리워크샵, 영화연출워크샵, 애니메이션연출, 뉴미디어시대의 영상미학, 다큐멘터리의 이해,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방송포맷디자인워크샵, 뉴미디어콘텐츠워크샵, 콘텐츠기획과 프레젠테이션, 영상학현장실습, 영화기획제작워크샵, TV드라마워크샵, 캡스톤디자인졸업작품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