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제1법칙,사랑하지 말 것,<강호동의 천생연분> <장미의 전쟁>

<강호동의 천생연분>MBC 토요일 저녁6시 방영 <장미의 전쟁>KBS2TV 토요일 저녁6시 방영 성가 드높던 대표적인 두 짝짓기 프로그램이 사라진다. <강호동의 천생연분>은 10월4일 방영분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끝났다. 이어진 2회분은 하이라이트 방영이다. <장미의 전쟁>은 11월 KBS 개편 때 “확실히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두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이유는 사뭇 다르다. <…천생연분>은 강호동이 타사 sbs의 같은 시간대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서, <장미의 전쟁>은 KBS가 가을 개편에 기치로 내건 ‘공익성 강화’ 차원에서다. 그런데 인기가 없어서는 아니니 짝짓기 프로그램의 몰락을 예견하기에는 이르다. 두 프로그램은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나간 ‘은근과 끈기’를 지녔기도 하다. <…천생연분>은 <목표달성! 토요일>의 한 코너로 출발하여 2002년 10월 프로그램으로 독립하였으며 <장미의 전쟁>은 <자유선언! 토요 대작전>의 단일 코너로 굳어져 사실상 독립 프로그램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초기, 출연자 섭외에 애를 먹었지만 프로그램 출연 뒤 출연자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출연하려는 연예인들이 줄을 섰다는 후문. <…천생연분> 출연 뒤 김흥수, 빈, 비, 유민 등의 인기가 급상승하였으며 <장미의 전쟁>의 경우 연예인 지망생이 얼굴을 알려 CF와 드라마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미의 전쟁>에서 연예인 지망생이 처음에 묶여나온 카테고리는 ‘일반인’이었다. 인지도 상승효과가 인증을 받으면서 출연자들의 무엇이든 못할 게 없다는 집착도 도를 더해갔다. 오프닝 춤을 위해 며칠씩 연습을 하는 건 필수, 출연자들은 한표를 얻기 위해 몸을 바쳐 뛰었다.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몇몇 출연자는 방송분에서 얼굴을 몇번 비치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세명의 출연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전망평도 나왔다. ‘논픽션 시추에이션, 중매 버라이어티’ <…천생연분>은 MC 강호동의 개인기에 기댄다. 그가 옮겨가면서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에서도 그 장악력을 읽을 수 있다. 강호동은 스튜디오 안이 시끄럽게 호령한다. 그의 진행은 혈기방장하여 쇼 프로의 제작자들이 바라는 ‘숨쉴 틈 없는 긴장’을 유지하지만 그것은 독이 되기도 한다. 딱딱 떨어지는 맛없이 두루뭉술함은 <…천생연분>의 가장 큰 적이었다. 특히 <…천생연분>이 정해놓은 ‘킹카-퀸가’ 룰은 자승자박의 꼴이었다. <…천생연분>은 투표를 하여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남녀를 ‘킹카-퀸카’로 뽑고 이들에게 떠나라고 주문한다. 영예가 되어야 할 룰이 안타까움이 되는 이 이상한 룰은 짝짓기 팀 안에 넣은 보조진행자(0표 클럽, 덤 앤 더머)를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처음 출연하여 만난 남녀의 활기를 이어나간다는 복안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킹카-퀸카가 계속 출연할 의사가 있을 경우 ‘떠나라’는 효력이 없다. 그리하여 바쁜 스케줄의 연예인에게 한번 출연으로 킹카-퀸카 퇴출을 영광스럽게 안기는 편의 수단이 될 뿐이다. ‘방송 환경’이 ‘퇴출’의 고려사항일 테니 당연하게 조작 의혹도 제기됐다. 모 가수가 출연한 방송분의 경우 자기가 찍은 상대방이 0표가 나오자 “내가 잘못 눌렀나보다”고 말을 했고, 진행자는 “(파트너를 안 찍고 다른 사람을 찍고는) 끝까지 변명을 한다”는 유들유들한 말솜씨로 넘어갔다. 비판이 수시로 날아들었지만 짝짓기 프로그램의 휴업기간은 짧을 것이다. 짝짓기 프로그램은 자기 충족적 현실을 창조하는 데 손쉬운 해결책이다. 선남선녀만 모아놓아도 화학작용이 발생한다. 아니, 출연자들 스스로 시나리오를 짠다. 스타의 인기는 ‘현실의 가상적 충족’ 여부에 달려 있는데 짝짓기 프로그램은 이런 목적에 적당하다. 스타의 연애관과 연인관을 피력하고 연애 감정을 보여주는 데서 느끼는 시청자들의 대리만족은 크다. 시청자들은 이것이 다 장난이고 쇼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 감정이 동요된다. 짝짓기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이 스캔들이라도 터지면 “여자친구(남자친구)도 있으면서 그런다”고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스타를 선택하지 않은 여자의 ‘퇴출’을 외치기도 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킹카-퀸카 조작에 분노한다. 하지만 킹카-퀸카 조작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프로그램 내내 이루어지는 감정의 조작이다. 이상적 대리만족을 위해서 짝짓기 프로그램은 , 즉 ‘킹카, 퀸카’ 용의 ‘이념적 이상형’을 만들어간다.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친구처럼 편안하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지’, ‘남자로서 느껴지는지’는 출연자들을 안달복달하는 고민이다. 어려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저씨 타입도 질색한다. 그래서 프로그램에는 사랑의 가장 물질적 단계만이 드러난다. 그리고 여기엔 진심이 없다. 이런 출연자들이 바라는 것은 연인이 아니라 인기라는 것은 명백하다. 진짜 좋아하는 것 같은데도 어떤 짝짓기 프로그램에서도 스캔들이 나지 않는다.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가장 웃기는 순간은 출연자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일 것이다. 너무 진지해지는 순간일 것이다. 초점 맞지 않은 카메라에서도 안타까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면 그는 바보다. 시청자들을 향해서 구애를 해야 하는데, 한 사람을 사랑해버리다니. 사랑하지 말라, 그것이 ‘짝짓기’가 목표인 연예 프로그램의 지상명령인데. 구둘래/ 자유기고가 kudle@hanmail.net

미친 듯이 질러버려서 시원해요,<은장도> 송선미

송선미(29)는 엉뚱한 구석이 있다. 이런 식이다. 인터뷰 직전에 황급히 김밥으로 허기를 달랬다고 해서 얼마나 바쁘기에, 하고 말을 뗐더니만 “김밥이 얼마나 맛있는데요… 날씨도 너무 좋고. 소풍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되묻는다. 부족하다면 하나 더. “사람구경이 취미”라고 해서 독특하다고 했더니 “어릴 적부터 남들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습관”인데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칠판 보는데 자신은 선생님 눈만 쳐다보고 있다가 “꼬시려 한다”는 누명을 쓰고 왕따를 당했으며, 등교 길에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지각하기 일쑤였다는 경험까지 들려준다. 그런 일면을 봤다 하더라도, <은장도>의 가련 역을 주저없이 맡은 건 의외다. <은장도>에서 송선미는 하사관 출신으로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기숙사 왕언니로 나온다. 이름은 눈물을 달고 살 것 같지만, 실제론 입 열면 욕이요 분위기 뜨면 망치는 푼수다. 은장도를 품고 다니는 민서(신애) 앞에서 ‘거미줄 타령’(?)을 늘어놓을만큼 앞뒤 안 재는 여자다. “지금까진 예쁘게 보이려고 자를 재놓고 연기했던 것 같아요. 근데 인간이란 게 미친 듯이 소리지르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그동안 너무 갇혀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고. 가슴이 후련해요. 매번 조용하고 지적이고 뭐 그런 역할만 맡았는데….” 망가짐을 택했지만, 실행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엔 “배우들 기죽이는 거 싫어하는” 감독의 원칙 때문에 위아래 할 것 없이 장난치는 현장 분위기에 젖는 것도 어려웠다. 욕설이 반인 대사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일례로 영화 초반부에 기숙사 방졸들과 함께 “생리대 값이 너무 비싸다”며 정부의 세금 제도를 탓하는 장면 촬영 때엔 2분 가까이 혼자 떠들어야 해서 탈진할 정도였다고. “리허설만 수십번 넘게 했는데 나중에 슛 들어갈 때쯤 되니까 허기가 지던데요”전직이 여군이라는 설정 등을 최면 삼고서야 가련의 무식한 악센트를 구사하기 시작했단다. 한때 송선미는 연기를 그만두려 한 적도 있다. 모델 일을 접고 <미술관 옆 동물원>의 다혜 역을 시작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활동했지만, 그는 “배우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자학에 시달렸고 “겁이 나 다음 작품 고르기조차 힘들었다”고 말한다. “뭘 하든 전 목숨 걸거든요. 그때는 자살까지도 염두에 뒀어요” 그때마다 “딱 1년만 더 해보자”는 다짐으로 지금까지 견뎌냈고, 그동안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영화 <두사부일체> <도둑맞곤 못살아> <국화꽃향기> 등과 드라마 <거침없는 사랑> 등이 추가됐다. “우리 나이로 서른이잖아요. 사물이나 세상을 보는 제 관점이 생긴 것 같아 좀 안정이 돼요. 20대에는 좌충우돌 우왕좌왕했는데….” 그녀는 얼마 전 <목포는 항구다> 촬영을 끝냈다. 조재현과 함께 마약 조직에 위장 침입하는 여검사로도 나오는 그녀는 8월 한여름에 <은장도> 촬영장과 번갈아 오가느라 육신이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말미에 배우 안 했으면 뭐 하고 있을 것 같냐고 했더니 송선미는 “소녀 취향 못 버리는 센티멘털하고 철없는 아줌마가 됐을 것”이라며 깔깔대면서 다음엔 스릴러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조심스레 내비친다. “연약한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나쁜 여자”가 되고 싶다는 그녀는 내친 김에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에드워드 노튼과 부드러움과 강함의 경계를 지우는 메릴 스트립을 닮고 싶다”고도 했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나쁜 사람 없는 영화 만들려고,<위대한 유산>의 오상훈 감독

가장 신경쓴 부분이 있다면. 나는 많이 울고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를 하고 싶다. 코미디도 코미디지만, 감정선을 매만지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악당들조차 조금씩 아픔을 갖고 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게 관객이 애정을 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나쁜 사람 없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말이다. 본인의 백수생활 경험이 녹아든 것은 아닌지. 사실, 창식과 형인 창훈의 모습에 내 모습이 들어간 것 같다. 몸에 배어 있는 거라 그런지…. 시나리오를 쓸 때는 안 그런데 현장에 앉아 있으면 나의 백수 시절 기억이 은연중에 많이 들어가게 되더라. 완성작에 대한 느낌. 원하는 것은 다 얻은 것 같다. 큰 아쉬움은 없다. 처음 시작할 때의 느낌 정도는 보여주지 않았나, 하고 느낀다. 사실, 만들면서 감독, 연기자 취향의 영화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귀결점을 사랑으로 선택한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거기에 대해 제작사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 재밌는 장면부터 먼저 찍어야 했다. 배우와는 어땠는지. 임창정은 정말 똑똑하다. 아마 가장 짧은 시간 내에 학습을 할 수 있는 배우일 거다. “너 똥쌌어” 같은 대사도 첫 장면에서 김선아가 용변이 급해 오디션을 망친 이야기에서 착안해 임창정이 즉흥적으로 떠올린 아이디어다. 그리고 음악을 해서 그런지 대사를 칠 때도 리듬감과 기승전결이 있어 아주 좋다. 김선아는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의 느낌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 사실, 나는 이 영화에서 리더나 독재자가 아니라 조율사 역할에만 충실하면 됐다. 배우, 촬영감독, 조명감독, 동시녹음기사 등이 자기 포지션을 충실해줬기 때문이다. 데뷔가 늦었다. 중앙대를 졸업하고 <뒤로 가는 시계> 같은 단편을 만든 뒤, <총잡이>와 <본투킬>의 조감독을 했다. <본투킬>을 끝낸 1996년부터 데뷔 준비를 했다. 그때 준비하던 게 <두 번째 가을>이란 멜로영화인데, 제작사가 작품을 엎었다. 그래서 그 다음해에 또 준비를 했는데, 제작사와 조율이 안 됐다. 멜로 바람이 빠질 때라 투자받기가 어려웠다. 또 이듬해에 다른 시나리오로 하다가 엎어지고, 그런 식이었다. 7년이 그렇게 지나간 거다. <위대한 유산>도 사실 내가 연출하는 게 아니었지만, 어찌하다 보니 맡게 됐다.

충무로의 말,말,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인간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한마디 감동적인 말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말’의 힘이다. 그 말의 힘은 한 개인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세상을 바꾼다. 하지만 아름다운 말이 악마의 얼굴로 돌변하면, 세상을 뒤틀고 한 개인을 파멸로 이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듯이 어느 순간 만들어진 풍문과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번져나간다. 항상 세상의 법칙은 천사보다 악마의 힘이 강한 법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말이 내닫는 속도는 전광석화와 같고, 종횡무진 방향을 잡을 수 없어서 바람과 같다. 그리고 말은 대개 족보가 없다. 어느 집 자식인지, 양반인지 쌍놈인지 알 길이 없다. 쌍검을 차고 마구 휘두르며 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무법자다. 그 위력에 한번 휩싸이면, 헤어날 길이 없다. 오로지 죽음뿐이다. 대개 그 죽음은 의롭지 못하다. 온갖 구설수와 불명예를 안고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족보가 없는 자식인지라 누구의 위로도 구설픈 곡(哭)도 없다. 황량한 벌판에 쓸쓸히 묻히고 나면, 그뿐이다. 충무로의 말은 그 어떤 말보다 날렵하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대개는 더럽고 치사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는 전설이 아니라 충무로복음 1장1절에 나오는 진리다. 그래서 어떤 말이 전해지면, 누구든지 쉽게 믿고 잘 따른다. 구설수에 휘말려 한번 당해본 사람이면 충무로복음을 집어던지고 무신론자가 되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충무로 말씀을 열렬하게 신봉하는 독실한 신자들이다. 가라사대 누구누구가 어떻게 됐다더라, 누가누구에게 사기당했다더라, 누가 이상한 일을 했다더라, 누가 당신을 씹더라…. 도마 위에 올려져 칼질을 기다리고 있는 재료는 제작자, 투자자, 감독, 배우, 스탭 할 것 없이 형형색색으로 뒤엉켜 있다. 칼질을 하는 사람이나 칼질을 당하는 사람이나 누가 요리사고 누가 재료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문제는 칼질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소중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씹어서 버려야 할 쓰레기 음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칼을 든 요리사인 당신이 한번 먹어보시라. 그 맛이 어떤지. 친구로서 허물없이 지내는 모 감독과 술자리를 할 때다. 얼큰하게 취할 무렵 느닷없이 눈알을 부릅뜨고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야, 이승재! 너 후배감독이 엄마 병원비 좀 도와달랬는데 안 줬다며?” “걔가 임마! 가난한 집 자식이지만 얼마나 의리있고 능력있는 놈인데, 왜 안 도와줬어?” “어, 무슨 말이야! 누가 그래?” “야! 누가 그랬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임마, 왜 안 도와줬냐구?” 이런 상황에서 그 후배감독과 나 사이에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설명한다는 것은 구차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사연의 전말과 상관없이 엉뚱한 전설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이런 개인적인 사연은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충무로에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어떤 회사가 망해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그리고 어떤 작품이 촬영에 들어갔다 말았다 한다. 캐스팅은 말할 것도 없고, 충무로의 사람들은 전설의 왕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전설은 옛 시대의 야사가 아니라 지금의 정사다. 한편의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그 숱한 전설과 풍문의 회오리를 뚫고 지나가야 한다. 그래서 감히 개성장군의 화려한 입성은 장하고 부러운 것이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내가 비록 전설의 왕국에 살더라도 좀더 멋있고 신나는 전설에 파묻혀 살고 싶은 것이다. 신데렐라의 화려한 꿈은 아닐지라도 소박하고 진실한 사람들의 전설을 전하고 나누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소중한 힘의 원천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꿈꾸어 본다.이승재/ LJ필름 대표

대중적인 오케스트라로다!<스캔들‥>

건달, <스캔들…>의 화법에 대해 숙고하다 자기 얘기를 남 말 하듯 ‘내 친구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에둘러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예컨대 “내 여고 동창 중에서 남편 몰래 애인을 사귀는 친구가 있는데…”로 시작하는 말의 상당수는 나중에 본인의 경험임이 밝혀진다. 이런 식의 화법은 공격당하지 않고 내밀한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바람에서 나온다. 개인의 경험을 존중해서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공격하지 않는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굳이 이런 어정쩡한 화법이 필요없다. 하지만 선의의 고백을 그 동기는 무시하고 파편적인 사실을 꼬투리 삼아 사회 규범의 등 뒤에 숨어서 독화살을 날려대는 문화라면? 송두율 교수의 경우처럼 삶의 전체적인 서사는 생략하고 죽은 이념의 탈을 쓰고 몇몇 맛있는 사실만 하이에나처럼 물고늘어지면서 공격해대는 파시즘이 일상화된 곳이라면? “내 친구는”으로 시작하는 화법은 비열함이 아니라 지혜로움으로 칭찬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화법에서 ‘내 친구’는 더럽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상의 파시즘을 다만 피하기 위한 우회로일 뿐이므로 이 문장의 의의는 ‘그래도 자신이 절실히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좀더 잘나고 용기있는 인간이라면 일상의 파시즘이란 거대한 똥덩어리를 치워버리기 위해 고단한 삽질을 하겠지만, 그게 어디 보통 사람들의 근력으로 가능한 일인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말을 건네는 방식도 ‘내 친구는…’의 화법을 닮았다. 성에 개입하는 강고한 제도적 이데올로기를 ‘징벌의 결말’로 피해가면서, 우아한 복식으로 겹겹이 은폐된 조선시대의 성을 드러내는 것. 나는 이 영화의 전략을 그렇게 봤다. 말하자면 내러티브를 통해 철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미학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조선시대같이 성이 억압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성의 억압은 사실상 개인에 대한 권력의 억압이니 인간들아 옷고름을 풀어헤쳐라”고 직언하기에는 리얼리티 견적이 안 나온다. 영화는 이 대목에서 고민없이 옷고름 푼 인간들의 불행을 보여줌으로써 논란을 피하고, 다른 곳에서 승부를 걸려고 한다. 미술비로 20억원을 들여서 조선시대의 복식을 우아하게 복원한 것은 단지 예쁜 화면 만들려고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첩첩이 호사스런 복식에 둘러싸인 알몸을 들이미는 것은 복식의 위선과 알몸의 진실을 충돌시키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영화의 대부분을 할애한 조원의 숙부인 공략이 결국은 알몸으로 열녀의 복식을 벗기는 과정인 점을 상기해보라.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것은 ‘바람 피우면 다친다’는 제도의 전언이 아니라 인간은 결국 알몸의 개인으로 만나야 한다는 은밀한 선동이 아니었을까. 이런 혐의는 곳곳에서 노출된다. 조원은 관리인 숙부인의 시동생이 휘두른 칼에 죽는다. 얼핏 바람 피웠기 때문에 제도적 응징을 당해서 죽은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자살에 가깝다. 칼에 찔린 채 숙부인을 찾아가면서 그는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쾌락에 빠져 있는지 사랑을 하고 있는지 나를 믿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말을 남긴다. 의원을 찾아갔으면 목숨을 건졌을지도 모르는, 이 진정한 쾌락주의자는 생애 처음으로 숙부인에게 고해하고 사랑을 시작하고픈 절실한 마음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 결국 조원의 죽음은 제도적 징벌이 아니라 개인의 파멸이며, 사회적 규범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뒤이어 이어지는 숙부인의 자살도 죽음을 무릅쓴 조원의 사랑에 대한 화답으로 읽을 수 있다. 시집가는 것처럼 몸단장하고 신부 입장하듯 또박또박 걸어서 얼어붙은 강 속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보라(이 장면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에서 여주인공이, 할복한 남편의 피를 하얀 버선발로 밟고 화장대로 가서 천천히 화장을 한 뒤 자결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얼마나 탐미적인 남성적 판타지인가. 목숨을 건 단 한번의 고해로 열녀의 몸과 마음은 물론 목숨까지 가져가는 이 순도에 대한 집착. 그건 마약이자 예술이다. 나는 이 영화의 가장 깊은 곳에는 오럴섹스를 즐기면서 그림을 그리던 조원의 독백만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제목이 ‘스캔들’인 것은 열녀가 바람나서 스캔들이 아니라 바람둥이가 사랑에 빠져 스캔들인 것처럼 들린다. 극중의 소옥이 “몸은 조원, 마음은 권도령, 시집은 조씨 집안”으로 가서 최후의 승자가 됐듯이, 어쩌면 ‘스캔들’도 ‘몸은 쾌락, 마음은 사랑, 장가는 제도적 이데올로기’에 갔기 때문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흥행과 비평, 남성과 여성 관객 모두에게 딱히 거북하지 않은 대중적인 오케스트라로 말이다. 남재일

<영어완전정복> 언론에 공개

장혁, 이나영 주연의 영화 <영어완전정복>의 기자시사가 지난 20일 서울극장에서 있었다. 영화 <영어완전정복>은 <비트> <무사> 등 주로 선 굵은 남성 영화를 만들어왔던 김성수 감독의 첫 코미디 영화로, 김 감독의 새로운 시도를 비롯한 주연 여배우 이나영의 캐릭터 변신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또한 이 날은 영화 속에서 영어학원 선생 캐서린 역을 맡은 호주 여배우 안젤라 캘리도 내한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영어연습은 어떻게 했나? 장혁) 연습 안 했다(웃음). 내 발음을 듣고 ‘그냥 넌 그대로 해도 되겠네’라는 반응이라 초반에 비교적 쉬웠고,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같이 연기를 하는 안젤라 캘리와 호흡을 맞추며 연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늘었던 것 같다. 이나영) 스탭들이 직접 녹음한 테입을 들려주셔서 영어 생초보자처럼 하는 발음 연습을 했고, 그냥 나의 말투에 영어적인 느낌을 가미해서 연기했다. <영어완전정복>의 이나영에 이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의 전지현까지 여 복이 터졌는데, 두 영화에서 맡은 캐릭터를 비교한다면? 장혁) <여친소>는 아직 촬영 초반이라 캐릭터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다 자세하게 말씀드리겠다. <영어완전정복>의 문수는 표면적으로는 바람둥이지만, 사실은 외로운 사람으로 영주를 만나 비로소 마음을 열게된다. 캐릭터 변신이 눈에 띄는데, 변신의 계기가 있나? 이나영) 특별히 변신을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다. 소재가 신선하고 캐릭터가 살아있어서 선택하게 됐다. 일부러 못나 보이기 위해 양 갈래 머리에 안경을 쓴 것은 아니고, 영주(이나영분)에게 어울리기 때문에 설정한 것이다. 영주는 내 속에 있는 여러 가지 모습들 중 하나일 뿐, 나와 다르지 않다. 플래시 애니메이션, 꼴라주, 버추얼게임 등등 기존 코미디에서 볼 수 없었던 비주얼들이 많다.다른 코미디와의 차별화를 위한 것인가? 김성수) 플래시 애니메이션, 꼴라주, 버추얼게임 등의 효과는 영화의 인물이나 시츄에이션이 완전히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상징적인 표현들이 있기 때문에 사용한 것이다. 유쾌하고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관객들을 인도하고 싶어 초반에 많이 삽입하였고, 후반에는 관객들이 영화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도록 자제하였다. 영어완전정복 촬영 후 한국영화에 대한 생각은? 안젤라) 한국은 다양한 장르의 좋은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충분한 제작비를 가지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이 부럽다. 촬영장에서는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촬영을 해야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감독과 제작진들이 배우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엉뚱한 동사무소 9급 공무원 나영주(이나영 분)의 영어정복, 남자정복을 다룬 코미디 영화 <영어완전정복>은 오는 11월 5일 개봉할 예정이다. 인터넷 컨텐츠팀 cine21@news.hani.co.kr

新 사극 전성시대 [2]

다모 전형 | <여명의 눈동자> <비천무> <일출봉> 변형 | 최근 범죄영화의 형사들을 연상시키는 포교들의 말투, 과학적 수사, 대의명분과 물적 근거가 분명한 혁명세력에 대한 묘사, 친남매의 애정관계, 신분을 의식하지 않는 사랑, 주인공이 다 죽은 비극적 엔딩. 캐릭터 | 공적인 자리의 무게 때문에 채옥을 향한 사랑을 숨겨야 하는 황보윤, 대의명분이나 이해관계보다 사람에 대한 도리를 중시하는 혁명가, 사랑하는 이의 성공에 누가 될까 사랑을 숨기는 채옥 등. 명대사 | “길이라는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 사람이 다니고 두 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이 다니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법… 이 썩은 세상에 나 또한 새로운 길을 내고자 달렸을 뿐이오.” “너를 마음에 두고부터 나는 깊은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이제 깊은 잠을 잘 수 있겠구나.” 스캔들 전형 | <위험한 관계> <발몽>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변형/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의상, 건축, 취향을 조선조 사대부 집안의 것으로, 화사한 한복과 동양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정원, 트루벨 부인이 천주교 신자인 정절녀 숙부인으로. 캐릭터 | 사랑이 좌절된 뒤 바람둥이가 된 조원, 욕망은 사랑보다 강한 것이라 믿는 조씨 부인, 처음 경험한 사랑에서 너무 아픈 기억을 갖게 되는 숙부인 등. 명대사 | “세상에 이런 기연이… 이건 필시 내 긴 한숨이 부인을 예까지 끌어들인 게요.” “호오~ 이런 변이 있나… 마음은 권인호에게 있고, 몸은 조원에게 있으면서… 시집은 유 대감에게 온다.” “우리 귀여운 종달새가 울적해졌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까?” 황산벌 전형 |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 변형 | 당나라를 미국으로, 고구려를 북한으로 비유, 신라는 경상도 사투리를, 백제는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 두 나라의 싸움을 월드컵 응원전에 빗댐. 캐릭터/ 장비의 우직함을 닮았지만 존재의 무게감을 알고 있는 계백, 자신이 정치논리의 희생양이 될 것임을 알고 있는 김유신 등. 명대사 | “그러니께 이번 여그 황산벌 전투에서 우리의 전략전술적인 거시기는… 한마디로 뭐시기할 때까정 갑옷을 거시기한다. 바로 이것여. 알것제” “어따 안 되겄다. 쩌그 남쪽 보성, 벌교쪽 애덜로 준비시켜라.” “우덜이 죽으면 약발이 안 먹혀라.” “뭐시 어째고 어쪄! 아가리는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혔어. 호랭이는 가죽 땜세 디지고 사람은 이름 땜세 디지는 거여. 이 인간아!” 대장금 전형 | <허준> <상도> 변형 | 여자들의 이야기, 음식의 전문가에서 의술의 대가로 발전함, 궁궐 안에 존재하는 여학생 기숙사 분위기의 나인양성소, 정통사극에서 외면당하던 내시와 상궁의 이야기. 캐릭터 | 언제나 “왜 아니되옵니까”라고 묻는 호기심 소녀 장금, 가문의 영광을 지켜야 한다는 소명감에 저항하다 무릎 꿇는 금영, 자애로운 어머니의 이상형을 보여주는 한 상궁, 궁궐의 구석에서 숨죽이며 살다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정 상궁 등. 명대사 | “나으리께서는 희망이 없어야 편하실지 몰라도 저는 안 되겠습니다.” “숙명이라니 따르겠습니다… 허나… 그 숙명 반드시 제 대에서 끝낼 것입니다.” “사람이 신분을 가리는 것이지 책이 신분을 가리는 것은 아닙니다.” “넌 너무 급해. 힘들면 쉬었다 가고… 앉아 있다가 가고… 그래야 끝까지 가지.”

영화사신문 22호(1954 ~ 1955)

영화사신문 제22호 The Cine History 격주간·발행 씨네21·편집인 이유란 1954 ~ 1955 프랑스 작가주의 꿈틀 프랑수아 트뤼포 “의사(擬似)문학으로 전락” 아버지 세대 영화 비난 새파랗게 젊은 22살의 비평가가 프랑스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1954년 프랑수아 트뤼포는 <카이에 뒤 시네마> 1월호(통권 31호)에 실린 논문 ‘프랑스영화의 어떤 경향’에서 프랑스 영화계의 ‘아버지들’을 정면 공격하고 나섰다. 트뤼포에게 집중포화를 맞은 영화인은 현재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인 장 오랑슈와 피에르 보스트. 트뤼포는 이들이 고전이나 명작소설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영화를 의사(擬似)문학으로 전락시켰다고 비난했다. 곧 “영화를 업신여기는 그들은 마치 범법자에게 직업을 찾아주고 재교육을 시키는 것처럼 시나리오를 대하며 각색의 대상인 원작을 사전 텍스트나 우연 정도로 여겨 불충실하게 각색하는 바람에 원작의 의미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뤼포는 이들의 각색 시나리오를 원작으로 한 ‘심리적 리얼리즘’ 영화를 도마에 올렸다. 그는 ‘양질의 영화’들은 시나리오 작가의 영화에 불과하며 감독은 시나리오에 그림을 덧붙이는 사람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견지에서 그는 프랑스 영화사의 걸작으로 여기던 <전원교향악> <육체의 악마> <금지된 장난> 등을 폄하한다. 반면 트뤼포는 직접 자기 영화의 대사나 이야기를 쓰는 감독들을 ‘작가’라며 높이 평가했다. 장 르누아르, 로베르 브레송, 장 콕토 등이다. 트뤼포는 이 ‘작가의 영화’는 양질의 영화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심리적 리얼리즘의 존재 이유를 “그 반대급부로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 <황금마차> 등이 존재하기 위해서”라고 깎아내렸다. 이렇듯 프랑스 영화계의 대가들을 정면 공격하는 트뤼포의 논문은 <카이에 뒤 시네마> 필진들 내부에서도 심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논문이 발표됐을 때 일어날 파문이 익히 예상되는데다 앙드레 바쟁이나 피에르 카스트는 트뤼포가 공격한 영화와 감독들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편집장인 앙드레 바쟁과 자크 도미올 발크로즈는 이 글을 여섯달 동안이나 책상 서랍 안에 쟁여두었다. 하지만 젊은 비평가인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클로드 샤브롤이 빨리 공개하라며 강한 압력을 넣자 지면에 올린 것이다. 이렇듯 논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불멸의 자이언트로 남다 제임스 딘, 자동차 사고로 24년의 짧은 생 마감 느닷없는 죽음이다. 1955년 9월30일 제임스 딘(James Dean)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스물넷이다. 속도를 즐겼던 딘은 살아생전 한 인터뷰에서 “만일 사람이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을 넘을 수 있다면, 죽은 뒤에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위대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빠른 속도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치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재빨리 이 삶을 끝내버렸다. 제임스 딘은 이날 오후 5시58분쯤 그를 태운 은색 포르셰550 스파이더가 로스앤젤레스 446번 도로를 달리다 교차로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세단과 충돌하는 바람에 변을 당했다. 딘은 살리나스 자동차 경주에 참여하기 위해 포르셰를 몰고가던 중이었다. 이 사고에서 딘은 머리가 뒤로 꺾이고 운전대 기둥의 압력 때문에 가슴이 부서지는 상처를 입었고 구급차로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사망했다. 딘과 동승했던 기술자 롤프 뷔터리히는 심하게 다쳤으나 생명이 위험한 지경은 아니었고, 딘의 차와 충돌한 세단의 운전자 도널드 턴업시드는 몸에 멍이 든 정도였다. 딘은 며칠 전 엘리자베스 테일러, 록 허드슨과 함께 <자이언트>의 촬영을 마쳤다. 그 전에 니콜라스 레이 감독과 함께 찍은 <이유없는 반항>은 10월26일로 개봉일이 잡혔다. 이제 관객은 이 영화들을 보면서 세상에 없는 그를 추억하게 될 것이다. 인디애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딘은 UCLA의 제임스 휘트모어 드라마 클래스에서 연기를 배웠고 1952년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이어 엘리아 카잔에게 발탁, <에덴의 동쪽>에 출연하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페데리코 펠리니, 탕자인가 선구자인가 신작 <길> 둘러싸고 네오리얼리즘 정체성 논란 이탈리아의 젊은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가 동료이자 선배인 영화인들로부터 큰 비난을 사고 있다. 네오리얼리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 그에게 쏟아진 비판의 요지다. 1954년 베니스영화제에 최초 공개돼 은사자상을 수상했고, 해외에 배급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길>(La Strada)은 선배들이 보기엔 네오리얼리즘을 배신한 탕자일 뿐이었다. 그들의 비난은 가혹했다. 자바티니는 펠리니가 <길>에서 “현실로부터 도주하고 있다”라고 공격했다. <치네마 누오보>의 편집자인 구이도 아리스타르코는 “그의 영화에서 현실은 상징적인 도식으로 변질되고 또한 설화가 역사로 탈바꿈하기 위해 역사적인 본질이 지양된다”라고 평가하면서, “축복받은 영화감독임이 틀림없는 펠리니는 ‘암시’라는 기만적인 길에 올랐다”고 비아냥거렸다. 펠리니도 가만히 듣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한때 선배로 모셨던 네오리얼리스트들과 공박을 거듭했다. 무엇보다 그를 화나게 한 것은 루키노 비스콘티의 비난이었다. 곧 비스콘티는 “<길>은 어떠한 관점으로든 네오리얼리즘 경향의 영화가 아니다”라고 밝힌 뒤 펠리니가 신추상주의를 고안해냈다고 말했다. 펠리니는 이 ‘신추상주의’라는 말에 발끈했다. 펠리니는 비스콘티에게 “추상적인 접근방식의 난점을 극복했으며, 또 개인적이고 풍부한 영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사회적이고 미적인 도식성을 무시했다”고 응수했다. 펠리니는 스스로를 네오리얼리스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배들의 비난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무방비 도시>의 제작에 참여한 이후 자신이 쭉 네오리얼리스트였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네오리얼리즘을 좁은 의미에서 해석하는 데 반대했다. 그에게 네오리얼리즘은 “현실을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이었다. 그는 또한 “사실주의는 일차원적인 공간이 아니며, 하나의 풍경은 다양한 층을 포함하고 있다”라며 사실주의의 표층 아래를 부유하는 실존적 진리를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젤소미나와 잠파노를 통해 그가 보여주려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민족적 현실을 다루겠다” 네오리얼리즘 감독들 창작의 자유 요구 수세에 몰린 네오리얼리즘 감독들이 ‘이탈리아 영화 강령’을 선언했다. 루키노 비스콘티, 비토리오 데 시카, 로베르토 로셀리니, 주세페 데 산티스 등은 프랑스 영화잡지 <포지티프> 1955년 11월호에 이같은 선언문을 발표하고 정부에 대해 창작의 자유 보장을 요구했다. 곧 이들은 “우리는 이탈리아 정부가 공공기관이나 언론매체 그리고 은행을 통해 네오리얼리즘영화가 민족적 현실이 요구하는 주제를 다루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비난한다”라고 밝히면서, 표현의 자유를 저지하는 법망의 종말을 요구했다. 이들의 선언문은 그해 여름 총리인 퐁티가 네오리얼리즘에 대해 밝힌 견해를 반박하기 위해 작성됐는데, 퐁티는 “유용하기보다는 파멸적인 이탈리아영화의 역할에 대해서 엄격한 제한을 설정하고 무절제한 라틴적 특성을 억제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영화는 현실 도피이며 휴식이고, 가난을 잊게 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괴수 영화의 신화 1954년 일본에서 대괴수 ‘고지라’가 탄생했다. 본래 쥐라기의 거대 생물이었던 고지라는 수소폭탄 실험이 퍼트린 방사능에 의해 되살아나 인류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대포, 미사일, 고압전류 등 어떠한 근대무기로도 고지라를 이길 수가 없다. 혼다 이시로 감독이 창조한 <고지라>는 9년 전 원자폭탄 투하 때 일본인들이 겪었던 공포를 환기해내며 865만명의 관객을 동원,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로 시대극으로 돌아온 구로사와 아키라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백치> <살다>에서 연이어 현대물을 다룬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4년 에서 다시 시대극으로 돌아갔다. 도적떼에 맞서기 위해 농민들이 7명의 사무라이를 고용하고, 이들이 천신만고 끝에 마을을 지켜낸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흥행과 비평에서 동시에 선전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애초의 착상은 ‘1인의 사무라이’였다는 사실. 그런데 어쩌다 7인이 됐을까? 처음엔 사무라이 한 사람의 하루를 그리는 영화를 기획했다고 하던데. 맞다. 그런데 사무라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활했는지, 그걸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도적떼에 맞서기 위해 농민들이 사무라이를 고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거 재미있겠다 싶었다. 7이라는 숫자는 어디에서 나온 건가. 프로듀서에게 대충 영화 내용을 얘기하니까 제목을 뭘로 할 거냐고 묻더라. 그래서 그 자리에서 ‘7인의 사무라이’라고 말해줬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감으로 대답한 거다. 결국 7은 마을을 지키는 작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숫자였다. 듣자하니 <살다>에서 스탭들이 다시는 구로사와와 일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당신이 ‘이번에는 통쾌한 오락영화니까 간단해’라고 꼬드겼다고 하던데. 그런 기분으로 시작한 건 틀림없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역시 쉽지 않더라. 예를 들어 마을에 쳐들어온 도적떼가 33명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죽여가는데 죽일 때마다 그걸 확실하게 계산해놓아야 했다. 가 농민을 바보로 만들었다는 영화평도 있더라. 나도 ‘구로사와는 귀족 출신이니까 농민들을 바보 취급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이 사람들이 과연 영화를 끝까지 보기나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부분의 대사, “이긴 건 우리가 아니야, 저 농민들이야”가 내가 말하고 싶은 걸 모두 전했다. 이 영화는 잡탕이랄 수 있다. 나는 장어구이 위에다 커틀릿을 얹고 그 위에 카레를 뿌린 듯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 인터뷰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은 천재이다>에 실린 구로사와와의 대담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단 신 들 찰스 로튼, 늦깎이 감독 데뷔 1955년. 55살의 늦깎이 신인감독이 탄생했다. 영국의 대배우 찰스 로튼이 그 주인공으로, 그는 필름누아르 스타일의 범죄영화 <사냥꾼의 밤>으로 감독 데뷔했다. 로버트 미첨이 한손에는 증오, 한손에는 사랑이라는 문신을 새긴 사악한 목사로, 릴리언 기시가 그에게 쫓기는 아이들을 지켜주는 노부인으로 열연한 이 영화는 기괴한 스타일로 평론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으며 흥행에도 실패했다. 블랙 여우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 후보 도로시 댄드리지가 흑인 여배우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55년 2월, <카르멘 존스>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댄드리지는 그레이스 켈리, 오드리 헵번, 주디 갤런드, 제인 와이먼과 함께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동화의 나라 디즈니랜드 오픈 1955년 6월18일, 디즈니랜드가 오픈했다. “미국을 만든 이상, 꿈, 투쟁에 헌정된” 디즈니랜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상상의 세계를 아이들이 걷고 뛸 수 있는 현실의 나라로 옮겨놓은 동화의 나라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고속도로로 반시간가량 떨어진 거리에 있는 디즈니랜드는 규모 면에서 150ha에 이를 만큼 거대하며, 건축비로 1700만달러가 들어갔다.

영화사신문 제23호 1956~1957

영화사신문 제23호 The Cine History 격주간·발행 씨네21·편집인 김재희 1956 ~ 1957 할리우드 ‘TV미학’ 바람 TV연출자들 잇따라 감독 데뷔, 클로즈업과 대사 중심의 드라마기법 도입 TV에서 작품 경력을 시작한 신예감독들이 할리우드에 등장하며 전통적 영화문법을 바꿔놓고 있다. 이들은 무성영화나 발성영화에서 출발한 원로감독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과감한 클로즈업 등을 구사하며 ‘TV미학’을 영화에 도입하고 있다. 1956년 <낯선 젊은이들>(The Young Stranger)을 연출한 존 프랑켄하이머, 1957년 의 시드니 루멧, 역시 1957년 <도시의 변두리>를 연출한 마틴 리트. 세명의 신인감독들은 모두 TV드라마를 연출했던 이들이다. 애초 공군 영화부에서 기록영화를 만들었던 프랑켄하이머는 1953년 이후 수많은 TV드라마를 연출해왔다. 루멧의 경우 은 에서 일할 때 만든 자신의 대표작 TV드라마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들 TV 출신 감독들의 영화는 몇 가지 공통적인 미학을 갖고 있다고 영화평론가들은 지적한다. 56∼57년에 나온 이들의 영화들은 우선 전경, 중경, 후경 영상이 모두 뚜렷한 초점으로 나타나는 딥 포커스(deep focus)를 강조하고 있다. 또 클로즈업을 지나칠 정도로 적극 이용하는 방법으로 관객의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평론가들은 “마치 TV드라마처럼 대사 중심의 각본을 사용하는 것도 이들 감독들의 공통된 성향”이라고 지적한다. 이들 세 감독 외에 TV코미디와 쇼 프로로 인기 높은 아서 펜(나중에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통해 대표적 뉴시네마 감독으로 꼽힘- 편집자)이 1958년 개봉을 목표로 <왼손잡이 건맨>을 준비하고 있는 등 TV 출신들의 영화 진출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TV의 등장으로 50년대 들어 위기국면에 들어선 영화산업은 와이드스크린과 자기녹음방식으로 TV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TV 출신 신인감독들을 통해 TV 특유의 미학적 스타일을 영화 안으로 끌어안는 방법으로 젊은 관객을 유혹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 자동차극장 춘추시대 극장 수 6천개 돌파, 전체 박스오피스 수입의 1/4 수준 미국 내 자동차극장(Drive-in theater)이 1957년 들어 6천개를 넘어서며 전성기를 예감하고 있다. 영화 전문가들은 “앞으로 2년 이내에 미국 내 자동차극장 수가 1만개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 내 첫 자동차극장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33년. 그러나 10년이 넘은 지난 1945년, 전체 자동차극장 수는 20개 정도로 자동차극장의 인기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50년대 이후 TV의 등장 등으로 전통적 극장을 통한 박스오피스 수입이 떨어지면서 극장주들에게 새로운 사업 모델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극장은 이미 1950년에 1천개를 넘어서더니 52년 3천개, 54년 4천개를 넘어섰다. 미국 영화계는 이처럼 자동차극장이 늘면서 50년대 초반 이후 자동차극장 수입이 전체 박스오피스 수입의 약 1/4 수준으로까지 올라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50년대 들어 자동차극장들은 그 규모와 함께 서비스를 대폭 확장했다. 많은 극장들이 자동차극장 입구를 영화가 시작되기 3시간 전부터 개방했다. 관람객이 아이들을 영화시작 전 아무 때나 데려올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프라이드치킨, 햄버거, 피자 등 저녁거리를 늘리고 차 안에서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 또 50년대 이후 2천∼3천대의 자동차를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극장이 생겨난 것도 자동차극장의 수요를 늘리는 데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주로 10대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들을 상영해 청소년들이 자동차극장을 ‘열정의 장소’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도 자동차극장의 인기를 높이는 주효한 요인이었다. 소련 영화계 ‘기지개’ 스탈린 비판 이후 10편 미만이던 제작편수도 92편까지 증가 1953년 스탈린이 죽은 지 4년이 지난 1956년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이 국제정치 영역 외에 소련 영화계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흐루시초프는 스탈린 집권 시기 개인 숭배의 주요한 장치로서 영화를 언급하며, 그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또 스탈린의 정치·군사적 입장을 찬양하는 영화들을 공격했다.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 이후, 소비에트의 필름보관소 직원들은 1930년대 고전들에 등장하는 ‘지도자’의 얼굴들을 지워 ‘수정판’을 만드는 작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컨대 스탈린이 나온 숏들을 잘라내고, 그의 이름이 언급된 부분의 음성을 다시 입히는 것이다. ‘스탈린 비판’ 직후 각 지역의 사무실, 공장, 가정 내에서 ‘지도자 초상’이 일제히 제거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비판’ 이후 터져나온 강력한 조치 이전부터, 소련 영화계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미 전기영화, 기록영화와 냉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사라지고 코미디와 뮤지컬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또 스탈린 사후 전쟁영화들은 과거 전쟁영화들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한 예로 그리고리 추크라이의 <마흔한번째>(1956)는 한 여자 군인과 죄수 사이의 성적관계의 발전을 묘사했다. 미하일 칼라토조프 감독의 <학이 날아가고>(1957)의 여주인공 역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시기의 ‘긍정적 여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약혼자가 전선에 나가 있는 동안 약혼자의 형과 정사를 갖고 죄의식으로 고통받는다. 40년대 후반 ‘부르주아적’이라고 비판받았던 심리적 갈등 묘사가 이 영화를 통해 공식적인 인가를 받은 것으로 평론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스탈린 사후의 그 같은 해빙 무드 탓인지 1940년대 말 10여편에 머물다 51년 9편으로 줄어든 소련의 영화 제작편수는 1957년 92편까지 치솟았다는 통계다. 폴란드 ‘젊은 피’ 수혈 젊은 감독 대거 등장, 안제이 바이다의 <카날> 등 개성있는 작품 선보여 2차 세계대전 동안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던 폴란드 영화계가 살아나고 있다. 독일군에 의해 기자재는 파손되고, 감독들은 런던이나 뉴욕으로 망명을 떠나는 등 폴란드 영화계는 암흑천지를 헤매고 있었다. 1945년 종전 이후, 영화산업은 국유화되었고 그나마 만들어진 몇 안 되는 영화들은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독창성이 부족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폴란드 영화계에 심대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젊은 감독들이 대거 등장했는데 이들은 의무제작으로 인해 빛을 잃어온 자신들의 창작물에 개성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 대표주자가 안제이 바이다로, 그는 3년 전에 연출한 <세대>(A Generation)라는 영화에서 전쟁에 대한 반감과 증오를 씁쓸하면서도 냉정하게 묘사했다. 이제 그는 1944년의 바르샤바 혁명 영웅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두 번째 작품 <카날>(Kanal, 1957)을 만들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당시 기병부대 장교였던 아버지를 잃은 바이다는 16살의 어린 나이에 폴란드 레지스탕스에 가입한 경험이 있다. 그 탓인지 폐소공포증적이면서 우울한 이 영화의 대부분의 사건들은 게릴라들이 숨곤 했던 도시의 하수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용맹과 비겁함, 신의와 배신이 교차되는 이 지하세계에서 종종 하수구는 그대로 무덤이 되기도 한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Inferno)을 비정하게 상징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주제의식과 이미지로 폴란드 영화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전세계 언론은 평가하고 있다. “아내를 그렇게 벗겨야 했나?”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바댕 감독 도덕성 비난, 논란 아랑곳 부인이자 주연여우 브리지트 바르도 스타덤 1956년 말 프랑스 파리에서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And God Created Woman)가 개봉되면서, 이 영화의 주인공 브리지트 바르도가 일약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다. 그리고 몇 가지 논란을 낳았다. 이전 10여편의 영화에서 조연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던 여주인공 브리지트 바르도. 그녀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과감한 노출과 에로티시즘은 당시로선 분명히 논란의 대상이 될 정도다. 그러나 ‘야한 장면’ 외에 이 영화의 감독 로제 바댕이 브리지트 바르도의 남편이란 사실이 논란을 증폭시켰다. 두 사람은 바댕이 조감독이던 52년 처음 만났다. 논란의 핵심은 “영화라고 하지만 어떻게 아내를 그런 식으로 등장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댕은 아내의 노출과 관련해 “욕심 같아서는 더 많이 가려고 했는데, 검열 때문에 많은 장면을 잘라내야 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바댕은 이어지는 비난에 “브리지트는 워낙 위선을 싫어했고, 누드장면을 사랑했다”고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또 “브리지트는 지극히 이 시대의 전형적 여성이며, 사회가 부과한 온갖 터부로부터 자유로운 여자”라고 받아쳤다. 도덕성에 관한 논란이 가열되자 영화평론가 프랑수아 트뤼포는 ‘B. B(브리지트의 약칭)는 음모의 희생자’란 제목의 글을 통해 이 영화의 작품성을 옹호하고 나서기도 했다. 브리지트 바르도의 요부(妖婦) 이미지와 별도로 영화는 시네마스코프와 컬러영화의 매력을 한껏 드러낸 의미있는 영화라는 주장이었다. 이 영화는 이듬해인 1957년 미국에서도 개봉돼 브리지트 바르도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놓았다.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영면 유명한 감독이자 작가, 배우인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이 1957년 5월12일 파리 근교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1885년 비엔나의 유대계 모자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09년 미국으로 이민 와 1914년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배우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지만, 데뷔작 <눈먼 남편들>(Blind Husbands, 1919)로부터 <여왕 켈리>(Queen Kelly, 1928)까지 그는 단숨에 무성영화계의 손꼽히는 감독으로 부상했다. 유성영화 시기엔 그는 배우로서 더 잘 알려졌는데, <선셋대로>(Sunset Boulevard, 1950)와 같은 영화에서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무성영화계 스타의 전남편이자 감독으로 나와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죽기 두달 전, 프랑스 명예훈장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단 신 들 험프리 보가트, 식도암으로 사망 도회지의 비정하고 음영이 짙은 역을 도맡아 미국생활의 냉혹한 단면을 개성있게 보여준 험프리 보가트가 1957년 1월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 무대 배우에서 출발하여 1930년 영화계로 진출한 그는 히트작 <말타의 매>(1941), <카사블랑카>(1942), <아프리카의 여왕>(1951)을 비롯, 81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51년 <아프리카의 여왕>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사브리나>(1954), <신의 왼쪽 팔>(1955) 등 많은 히트작에 출연한 그는 그러나 평생의 벗인 흡연과 음주로 병을 얻어 1957년 그의 빛나는 경력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유족으로는 여배우인 아내 로렌 바콜과 1남1녀가 있다. 록의 황제 엘비스 배우되다 로큰롤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가 이십세기 폭스의 1956년작 <러브 미 텐더>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서부영화인 이 영화에서 엘비스는 터프 가이로 나와 네빌 브랜드가 쏜 총에 맞아죽지만, 막판에 유령으로 다시 나타나,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로 기타를 튕기며 영화의 타이틀 송을 부른다. 스탠리 큐브릭, 반전 메시지 <영광의 길> 완성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는 스탠리 큐브릭의 신작 <영광의 길>(Paths of Glory)이 운좋게도 한국전 직후에 완성됐다. 이 영화는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6년 프랑스의 한 부대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건의 요지는 군의 공격명령에 불복한 부하들에 분격한 장군이 이들을 처형할 것을 대위에게 명했으나, 대위 역시 이러한 장군의 명령에 불복해 결국 장군이 무작위로 세명의 군인을 추출해 처형했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이 사건이 몰고 올 파장을 우려해 함구령을 내릴 정도였다. 상부의 공격명령에 연쇄적으로 불응하여 결국 무작위 처형됐다는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담은 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씁쓸한 반전영화는 이미 유럽의 몇몇 국가와 미군 내 극장에서 상영금지 처분을 당했다. 인도 “아프리카 이미지 실추” 상영금지 인도 정부는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을 안 좋게 묘사함으로써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미국영화 여섯 작품과 영국영화 두 작품에 대해 상영금지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1955)에 개봉한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작품인 <탄가니카>(Tanganyika)에 대해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이 데모한 이후, 네루 총리는 아프리카를 “백인이 져야 할 짐” 정도로 묘사한 영화들에 대해 검열당국은 상영금지하라고 비공식적인 권고를 했다. <아프리카의 여왕>(The African Queen, 1951)과 <모감보>(Mogambo, 1953)가 상영금지 조치를 받은 바 있다.

여름도 한국영화의 계절!

7, 8월 한국영화 관객점유율 44.6%, 대박보다 고른 흥행 특징 올해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계절인 여름에도 한국영화가 대단한 선전을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03년 3/4분기 한국영화 결산’에 따르면, 한국영화는 본격 여름 시즌인 7, 8월 동안 서울에서 400만5921명을 동원해 44.6%의 관객점유율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7, 8월의 32.2%를 크게 넘어서는 것으로, 시즌에 관계없이 한국영화가 관객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7, 8월 여름시즌에 개봉한 한국영화는 6월 말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사진)를 포함, <싱글즈> <똥개>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거울속으로> <바람난 가족> 등으로, 이들 영화는 비슷한 때 개봉한 <헐크> <브루스 올마이티> <신밧드: 7대양의 전설> <터미네이터3> <툼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 <나쁜 녀석들2> <젠틀맨리그> 등 할리우드영화를 압도했다. 7, 8월 8주 동안의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1위에 오른 외화는 <터미네이터3>와 <나쁜 녀석들2>뿐이었으며, 각각 1주씩밖에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이런 여름시장에서의 호조에 힘입어 9월까지 한국영화는 1569만여명을 동원해 47.9%의 관객점유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동안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44%였다. 또 관객 수에서도 한국영화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2%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또 9월까지 한국영화는 편당 관객 수도 19만4074명으로 나타나, 지난해의 15만1153명보다 28% 증가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팀의 김미현 팀장은 “올해 한국영화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히트작보다는 고르게 성공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9월에는 추석개봉작 <오! 브라더스> <조폭마누라2: 돌아온 전설> <불어라 봄바람> 등의 흥행에 힘입어 한국영화는 189만8천명을 기록, 58.9%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9월 말까지 배급사별 점유율에선 686만2천여명을 동원한 시네마서비스가 20.9%를 기록해 1위였다. 18.3%의 CJ엔터테인먼트가 2위, 10.1%의 청어람이 3위를 기록했고, 그뒤는 브에나비스타, 워너브러더스가 이었다. 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