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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전설 속의 전설

지난해 홍콩에 다녀왔다. 여행 첫날, 나는 맹렬한 검색 끝에 장국영이 자주 들렀다는 어떤 카페 하나를 찾아냈다. 솔직히 확신은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다녀온 곳에 정말로 장국영이 있었을까? 다녀갔을까? 자주 왔을까? 그건 단지 일종의 풍문, 소문, 그러니까 일종의 전설에 불과한 건 아닐까. 누군가는 장국영이 아니라 주윤발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배우들의 단골 카페가 아니라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장소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그 카페에 정말 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사진 속 카페의 풍경은 어린 시절, 명절 때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던 홍콩영화들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도시와 어두운 밤, 고독한 식사와 나른한 목소리, 좁은 테이블과 두툼한 머그잔. 선정적인 부분을 잘라내고 한국어 더빙을 입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가 막히게 재밌었던 그 영화들. 좋았다. 그 카페에서 경험한 모든 순간이 정말로 좋았다. 옛 시절을 그대로 보존해놓은 듯한, 그러나 분명 ‘현재’의 일부인 곳. 앉아 있는 내내 낡은 문고판 책의 누렇게 변색된 책장을 넘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진한 밀크티와 프렌치토스트를 먹었고, 일행은 밥과 라면을 주문했다. 그 여행에서 나는 밥과 차, 커피와 라면 같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한 식당에서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이 홍콩의 독특한 문화라는 것을 배웠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그 자체로 정체성을 이룬 사람들의 일상. 여행을 하는 내내 나는 그 일상과 마주쳤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마르고 닳도록 보던 홍콩영화들을 떠올렸다. 코미디와 비극, 액션과 드라마, 로맨스와 공포, 사극의 장르가 기이하게 결합해 있던 이야기들. 어느 장면은 고딕소설의 일부를 떼어다 옮겨놓은 것 같았고, 또 어느 장면은 중국 동화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홍콩영화의 특징이었고, 바로 그 부분에서 나는 늘 속수무책으로 매료되었던 것 같다. 특히 무협극에서 그랬다. <백발마녀전>은 기본적으로 무협영화지만 코미디이기도 하고 로맨스이기도 하다. 그리고 판타지이기도 하다. 인물들은 모두 감정적이며, 사건들 역시 선정적이고 잔혹하다(나는 어른이 되어 이 영화를 다시 본 후 조금 충격을 받았다. 영화가 너무 야하고 잔인했다!). 이 온갖 것들이 콜라주처럼 붙어 있으면서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이 이야기가 ‘전설’(傳說)이라는 형식 안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아주 오랜 옛날, 명이 쇠락하고 청이 흥하던 시절. 강호의 무당파는 명을 도와 외족들을 처단하고, 특히 이단 세력인 마교를 탄압한다. 마교의 지도자이자 샴쌍둥이 남매인 희무쌍은 자신들을 배척한 무당파에 깊은 분노와 원한을 갖고 있다. 그들은 늑대 무리에서 찾아낸 소녀 안예상에게 마법과 무공을 가르쳐 살인마로 길러낸다. 그들은 안예상을 통해 무당파를 몰아내고 중원을 차지하려 한다. 그러나 안예상은 무당파의 일원 탁일항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무당파의 의무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탁일항과 자신의 운명을 지겨워하던 안예상은 함께 속세를 떠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데…. 그들이 남고자 하는 세상은 신흥 세력인 청도 아니고 적통을 잇는 명도 아니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곳은 옛 벽화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좁은 계곡이다. 요녀, 늑대, 주술, 협객, 무공과 마법이 공존하는 전설의 세상. 물론 탁일항과 안예상에게는 필연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그는 무인이고, 그녀는 “요녀”이니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탁일항과 안예상은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격변의 시기에 필수적인 능력이다. 그들은 새로운 세력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 쇠락하는 세력을 지키는 역사가 될 수도 있다. 대체 왜 그들은 무엇도 선택하지 않는가. 왜 그저 거부하기만 하는가. 탁일항의 친구 계숙은 그에게 “네가 할 줄 아는 건 무공”뿐이니 그것을 제대로 쓰라고 은근히 권유하기도 한다. 탁일항은 대답하지 않는다. 얼마 등장하지 않는 계숙이 인상적인 이유는 그가 나타날 때마다 이 전설의 세계가 속해 있는 “현실”이 환기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명분과 이해관계에 따라 적과 아군이 구별된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영리한 것이다. 실제로 계숙은 명을 배신하고 청의 장군이 된다. 그는 전설 속으로 사라지려는 탁일항, 안예상과 달리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이 되려 한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이 남아 있으려 하는 세계가 얼마나 연약한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쇠락한 주술의 세상. 영리하지 못한 감정으로 넘쳐나는 공간. 계곡에는 누구든 들어올 수 있다. 반대로 그들이 속한 세계에서 나가는 건 매우 어렵다. 하지만 탁일항과 안예상은 자신들의 것,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을 양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탁일항을 만나기 전까지 안예상은 그저 “요녀” 혹은 “랑녀”로 불렸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이름을 지어줬고, 그녀는 그가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게 해줬다. 그들은 속세의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에 서로를 온전하게 만든 정체성을 선택한다. 그러니까 사랑. 끝없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그러나 무엇보다 대담하고 용기 있는 신념. 아, 정말이지 무협과 로맨스의 만남이란…. 영화의 파괴적인 결말 역시, 온전히 그들의 세계에서만 일어날 법하다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이며 동시에 전설적이다. 아주아주 오랜 옛날, 한 여인은 정인을 굳게 믿었고, 마음을 저버리지 않았지만 결국 돌아서게 된다. 그가 결코 해서는 안되는 ‘말’을 했던 것이다. 때문에 여인의 머리는 하얗게, 아주 하얗게 세어버리고 만다. 뒤늦게 진실을 깨달은 정인은 그녀에게 용서받기 위해 길고 긴 기다림을 시작한다. 나는 <백발마녀전>의 이 마무리를 꽤 좋아한다. 속편이 등장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미완결의 느낌이 가득한 장면을 말이다. 실제로 <백발마녀전>은 2편이 있고, 그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두 사람은 완전한 결말을 맞이한다. 하지만 나는 1편의 허무한 매듭을 훨씬 아낀다. 자신다운 선택을 해보려 노력했으나 끝내 실패했고, 그래서 용서받고 용서하기 위해 애쓰는 인간의 서툰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밖으로 걸어 나가는 백발마녀의 뒷모습은 언제나 구슬프다.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에는 무엇도 하지 못하는 탁일항, 그러니까 장국영의 눈빛 역시 애처롭다. 이번에도 나는 그 열린 문을 바라보며 상상했다. 탁일항은 그녀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용서받을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리하여, 그토록 원했던 자신들의 세계에 남을 수 있을까. 오로지 그들의 사랑만 존재하는 전설 속의 전설. 오래된 벽화 속으로.

[故 송재호 배우를 추모하며①] 사나이, 아버지, 그리고 배우…

쉼 없이 긴 연극 같은 삶이었다. 막간을 둘 새도 없이 배역을 달리하며 무대 위의 성실함으로 삶을 채웠다. 60여년의 배우 인생을 뒤로하고, 지난 11월 7일 배우 송재호가 영면했다. 향년 83살. 1년 가까이 지병으로 투병했지만 마지막은 평온했다고 전해진다. <영자의 전성시대>에서는 베트남전쟁에서 돌아온 당대의 열혈 청년으로,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인자한 아버지로, <살인의 추억>에서는 묵직한 기둥이었던 수사반장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는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간직한 노인으로 출연하며 송재호는 배역을 따라 나이 들었다. 혹여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 둔감했던 관객에게조차, 송재호의 푸근한 미소는 영화와 드라마 곳곳에 스며들어 미더운 약속처럼 기억된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보내온 추모의 메시지와 함께, 1960년대부터 한국영화의 파고를 함께하고 추억 속 브라운관 드라마의 단골이었던 그의 궤적을 되짚어본다. 영화 출연작만 총 88편. 작품 속에서 배우는, 그렇게 계속 살아간다. 이만희, 김호선, 배창호를 거쳐간 한국영화의 증인 당대 배우들의 이력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듯이 송재호의 첫 연기 경력은 녹음실에서 시작됐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후 1959년에 부산 KBS성우로 데뷔한 그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이북 출신인 박종호 감독과의 인연으로 <학사주점>을 통해 영화계에 입문한 송재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본 이는 바로 이만희 감독이었다. <흑맥> <군번없는 용사> <잊을 수 없는 연인> <싸리골의 신화> <원점>까지 이만희 감독 영화속에서 배우 신성일의 옆을 지키고, 전쟁의 역사에 휘말리는 청년으로 분하며 그는 조연 경력을 착실히 쌓았다. 10여년 이상 내공을 다진 끝에, 서울 관객 36만여명을 기록한 김호선 감독의 <영자의 전성시대>로 송재호의 전성기도 시작된다. 가난한 노동자계급의 젊은 연인을 비추는 <영자의 전성시대>를 연기할 당시 송재호의 나이는 38살. 교차편집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 속에서 그는 스무살 청년의 모습도 멀끔히 소화하며 오랫동안 마땅한 스포트라이트를 기다린 청춘 스타의 염원을 드러낸다. 그렇게 김호선 감독의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한 그는 <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에서 광고주로부터 백지수표를 받아낸 ‘효과맨’(폴리기사)종실을 연기해 코미디 감각과 흥행력을 동시에 증명했다. 1980년대의 신축 복도식 아파트를 배경으로, 집을 잘못 찾아 의도치 않게 콜걸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 남자가 체면을 차리느라 온갖 해프닝에 휘말리게 되는 이 영화에서 배우 송재호는 세련된 동시에 허황된 도시 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또 문학의 영화화가 활발하던 시대적 조류와 함께, 김승옥(<영자의 전성시대>), 이어령(<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 박완서(<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의 작품이 품고 있는 역사적 초상들을 나눠 가졌다. 4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특유의 유한 인상이 점점 더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빈민운동에 앞장서는 목사를 연기하면서 이상적이고 듬직한 조력자 캐릭터의 적임자임을 알렸다. 비중에 상관없이 관객이 기억하고 회자하는 배우, 그는 그렇게 선한 카리스마로 작중 인물과 관객을 안심시키는 조연의 대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편지 쓰는 아버지의 따뜻함으로 서울 상경 후인 1968년에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된 송재호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브라운관에 진출했다. 영화계의 열악한 촬영 환경과 조·단역배우에 대한 후진적 인식에 실망한 나머지 1990년대에는 방송국 활동에만 전념했다. 송재호는 곧바로 소시민들의 일상사를 담은 일일극의 단골 배우로 자리 잡아, 100회를 웃돌며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 이상 장기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대중과 호흡하는 보통 사람으로 녹아들었다(드라마 <보통사람들> <사랑이 꽃피는 나무> <내일은 사랑>). 성우 시절부터 단련한 노련한 악센트 연기로 사극에서도 안정적으로 존재감을 빛냈던 그는 <용의 눈물> <상도> <장희빈> 등의 대하 사극에서도 활약했다. 암투와 모략이 난무하는 시대극 장르에서 조차 그는 악역을 맡는법이 드물었다. <용의 눈물>에서는 권력 앞에 초연하고 충언에 능한 태종(최수종)의 장인 민제를, <장희빈>에서는 학문에 매진하는 노론파의 문인을, <상도>에서는 억울하게 죽음을 맞는 거상 임상옥(이재룡)의 아버지를 연기하며 지성 혹은 덕성을 갖춘 어른의 상을 대변했다. 장년층 배우로서 송재호를 향한 대중의 사랑이 완연히 무르익은 또 하나의 작품은 <부모님 전상서>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가 가부장제를 수용하는 방식이 구시대적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송재호가 보여준 아버지 연기만큼은 검열과 냉소를 물리게 했다. ‘양심에 부끄럽지 말자’가 좌우명인 4남매의 아버지로, 승진에 밀려 만년 교감인 그는 감정 표현엔 서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이 최우선인 묵묵한 아버지였다. 밤마다 일기 대신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안교감의 굽은 등은 송재호의 뒷모습에 자기 모습을 덧입히고 싶은 남편들을 주말 저녁마다 주 시청층인 주부들 곁으로,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들였다. 영원한 수사반장, 사투리 연기의 달인 2000년, 송재호는 <무사>로 스크린과의 재회를 결심해 <살인의 추억> <그때 그사람들> <해운대> 같은 굵직한 작품들에 이름을 새겨넣었다. 경기도 시골 형사와 서울 형사 사이에서 걸쭉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살인의 추억> 속 신 반장은 익숙한 구태와 매력적인 카리스마를 모두 갖춘 베테랑 캐릭터로 영화사에 각인됐다. 송재호의 사투리는 자연스러움 그 이상의 구수한 토속적 향취를 풍긴다. 1937년 평양에서 태어나 6·25전쟁 중(1·4후퇴) 아버지를 잃고 부산으로 내려온 그는, 생계를 해결하려 길거리에서 몸을 부딪치며 부산 사투리를 흡수했다. 표준어를 깔끔하게 구사하면서도, 방언을 쓸 기회가 오면 세월이 묻어나는 고전적인 어휘를 적재적소에 내보이는 배우. 그의 재능은 감독들로 하여금 서울말을 사용하는 캐릭터를 경상도 출신으로 바꾸게 만들었다(<살인의 추억> <그대를 사랑합니다>). <고독이 몸부림칠 때> 촬영 당시 이수인 감독은 사투리를 배워서 연기해야 하는 다른 배우들이 기죽지 않도록 “조금만 약하게 해달라”고 사투리 하향평준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유년기를 평양에서 보낸 배우답게 공유 주연의 <용의자>에서는 군더더기 없는 평양 말씨를 사용하며 이북 출신의 재벌 회장 연기를 사실적으로 소화했다. 대중을 위한 배우 일찍이 카메라에 취미를 들인 송재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부산 지역 영화평론 모임에 가입해 꿈을 키웠고, 시나리오를 공부하기 위해 동아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입학했다. 감독 대신 배우가 되었지만 영화 제작의 열망은 여전했고, 30대에 차린 제작사 사업은 그에게 배우 생활에선 없던 고난을 안겨줬다. 큰 빚과 실패를 안은 뒤에도 2000년에 또다시 제작사를 설립해 미국에서 촬영을 계획했다고도 알려진다. 그는 한번 관심을 가진 분야에는 대체로 집요한 애정과 노력을 보였다. 1979년에 사격에 입문해 전국체전 금,은,동메달을 모두 섭렵한 뒤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증을 취득했고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심판으로 활동했다. 사격을 매개로 밀렵 활동에도 문제의식을 느껴, 생전에 “밀렵은 생태환경을 위협하는 만행”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2000년에 밀렵감시단장을 지내며 단속 활동에 꾸준히 참가했고, 2014년엔 야생생물관리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2012년에 방송 배우들이 해묵은 출연료 미지급에 항의하며 파업을 선언했을 때도, 후배들을 위해 앞장섰다. 송창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대외협력국장은 부고 소식을 접한 뒤 “선생님은 조합 행사나 시위 때 늘 함께 자리해주셨다. 유명 배우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인데도 맨 앞줄에서 현수막을 들어주는 그런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홀트아동복지회 홍보대사로 오래 활동하는 등 그는 배우 생활 바깥에서도 성실함과 의협심이 탁월했던 인물로 기억된다.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목욕탕 때밀이를 하며 어렵게 모은 돈을 영자를 위해 아낌없이 탕진하는 남자 창수는, 36년 후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치매에 걸린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는 주차 관리원 할아버지로 나타나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마초, 순애보의 청춘, 철없는 중년, 인자한 아버지를 거쳐 실버 서사의 부활을 논의하게 만든 배우 송재호. 필모그래피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다. 그는 2010년 무렵부터 앤서니 퀸이 주연한 <노인과 바다>(1990)같은 작품에 꼭 출연해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남겼다. 그에게 <노인과 바다>를 연기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지난 60여년의 궤적을 살피면 왜 하필 <노인과 바다>였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스타이기보다 대중을 위한 배우였던 사람. 온화한 열의로 평생 게으를 줄 몰랐던 한 사람이 오랜 항해를 마쳤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이 있는 한, 작별인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스페셜] '에이리언3'에서 '나를 찾아줘'까지, '맹크'에 영향 준 데이비드 핀처의 세계

아메리칸드림 농담처럼 시작하자면 <맹크>는 <에이리언3>(1992)가 데이비드 핀처에게 안겨준 트라우마 치유의 마지막 과정처럼 보였다. 3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에이리언3>로 데뷔한 그는 20세기 폭스사의 나이 지긋한 중역들에게 후반작업 편집권을 빼앗긴 채 자기 영화를 부정해야 하는 아픔으로 커리어를 열지 않았던가. 21살에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를 거쳐, 25살에 황금기 시절의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등에 업고 <시민 케인>을 만든 오슨 웰스(그리고 ‘로즈버드’를 품은 채 미국의 마천루에 오른 찰스 포스터 케인)를 택한 것은 그래서 어쩐지 애틋할 정도다. 다만 여기에는 핀처 자신만큼 아버지의 페르소나도 뚜렷하다. 오슨 웰스의 그림자처럼 등을 맞댄 인물인 시나리오작가 허먼 J. 맹키위츠의 이야기가 <맹크>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시민 케인>의 시절에 극장에서 유년기를 보낸 잭 핀처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영화감독이 될 것을 강력히 지원받으며 일찍이 맹키위츠의 존재를 자각했던 데이비드 핀처. 성실한 계승자로 자라난 아들은 저널리스트인 아버지가 은퇴할 무렵에 맹키위츠에 관한 시나리오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자신이 받았던 독려를 돌려준다. 1997년부터 영화화를 꿈꿨으나 당대 정치사를 복잡하게 품고 있는 고전적 스토리를 흑백 화면으로 고집한 프로젝트에 투자가 될 리 만무했다. TV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2013), <마인드 헌터>(2017),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러브, 데스, 로봇>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야 그는 마지막 카드로 <맹크>를 내밀 수 있었다. 2003년 타계한 잭 핀처와 데이비드 핀처 부자의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한 건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아니라 넷플릭스였다. 원작 혹은 실화와 줄타는 법 그는 작가(writer)가 아닌 작가(Auteur)다. 오리지널 스토리의 정체성을 담보해야만 창작자로서 무게감을 가지는 듯한 세태에서 비껴서서, 자신만의 개성적 스타일에 집중한 감독이 핀처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 에런 소킨의 도약에 일조했고, 익히 알려진 대로 척 팔라닉(<파이트 클럽>),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조디악>), F. 스콧 피츠제럴드(<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스티그 라르손(<밀레니엄> 시리즈), 길리언 플린(<나를 찾아줘>) 같은 작가들을 스크린으로 초대했다. 그동안의 영화화가 방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잘 압축할 것인가’ 하는 문제, 그러니까 스릴러 장르의 시간 제한 안에서 서사를 얼마나 유려하게 춤추게 할 것인가의 고민이었다면 이번엔 다르다. <시민 케인>이라는 거대한 판본 앞에서 잭 핀처와 데이비드 핀처, 그리고 시나리오작가 에릭 로스(<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어떻게 최대한 원작의 뒤편으로 갈 것인가를 고민했다. <소셜 네트워크>(2010)를 발표한 후 핀처는 특히 실화의 이야기화를 두고 <라쇼몽>(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에 비유한 바 있다. 한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증언을 하는 인물들의 진실 싸움인 <라쇼몽>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건 번민과 모순이 가득한 현실의 상태를 영화 속에 펼쳐놓는 것이다. 정신분열의 네트워킹 핀처의 영화는 심리적 대립을 이루는 두쌍의 마주보기, 이들의 격렬한 대립을 통해 구동된다.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단순한 갈등이라기엔 두 대상이 지닌 속성의 중첩과 대조, 의미 체계가 꽤 정확하게 닫혀 있다. <파이트 클럽>(1999)의 소심한 주인공(에드워드 노턴)과 날라리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이 보여주는 자아분열을 필두로, <세븐>(1995)의 형사(브래드 피트)와 살인마(케빈 스페이시), <패닉룸>(2002)의 이혼한 여자(조디 포스터)와 집에 들이닥치는 (전남편을 포함한) 낯선 남자들, <소셜 네트워크>의 아웃사이더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와 하버드의 인사이더들, 그리고 <나를 찾아줘>(2014)에서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부부는 결국 비밀리에 남아야 마땅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이상한 공생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먼 옛날 할리우드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핀처가 다룬 사회는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였던 터라 인물들의 신경증적 상태는 더욱 자유를 얻는다. <맹크>의 경우 “너무 많은 돈과 지나치게 거대한 자아들의 공동 작업”(대중문화잡지 <벌처>)인 영화 만들기에서 감독과 작가에게 부과된 강제적 협력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고기능성 알코올 의존증 환자인 맹키위츠를 위해 술병에 진정제를 잔뜩 넣어 보내는 웰스와 짐짓 유순하게 응수하지만 얌전한 각색자가 될 마음은 애초에 없었던 맹키위츠는 서로를 해치면서 돕는 관계다. 오스카와 평단의 적절한 보상이 없었더라면 핀처가 2020년에 “웰스와 맹키위츠는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관계”(<벌처>)라고 표현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폭력과 강박의 나날 강도, 살인, 수사, 정치, 알고리즘, 싸우기, 단추나 폭탄 만들기,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들의 노이로제가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에 즐거운 긴장과 피로를 일으킨다. 핀처의 정서적 테마가 강박과 집착에 가깝다면 이를 가시화하는 건 폭력이다. <맹크>에는 <세븐>과 <조디악>(2007)처럼 연쇄살인이 없는 대신 나치가 벌이는 유대인 학살의 소식이 흉흉하게 떠돈다. 부드럽게 처리된 흑백 화면과 맞물려, <맹크>속의 폭력성은 핀처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지극히 간접적인 방식으로 처리되지만 오늘날의 현실과 겹쳐 보인다는 점에서 여전히 강력하다. 폭력과 부조리 속에서 점점 더 광기의 온도를 높여가는 핀처 영화 속 캐릭터를 곧 시대정신과 직업윤리의 결합으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븐>의 형사, <조디악>과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의 기자, <소셜 네트워크>의 프로그램 개발자, <나를 찾아줘>의 텔레비전 스타에 더해 <맹크>의 시나리오작가는 역사의 파고가 큰 시대에서 어렵게 도덕의 꽁무니를 좇는 인물이다. 시대의 엄혹함만큼 뜨겁게 미화될 수도 있었던 인물을 핀처는 적당히 차갑게, 그리고 생각보다 희망차게 마무리하면서 그다움을 보여준다. 보이스 오버와 교차편집의 이중주 분열된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핀처는 스토리 또한 다중으로 나누어서 제시하길 즐긴다. 애용하는 도구는 보이스 오버와 교차편집이다. <나를 찾아줘>의 내레이션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 하는 믿음의 시험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의 보이스 오버는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벤자민과 갓난아이가 된 벤자민의 말년을 기억하는 데이지의 서사가 보완되는 순간을 이끌어낸다. <파이트 클럽> <소셜 네트워크>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처럼, 제각기 떨어져 있는 인물들 각자의 스토리가 교차편집을 통해 별개로 지속되면서 다중 플롯의 묘미를 만들어내는 것도 데이비드 핀처 영화의 대표적인 내러티브 스타일이다. <시민 케인>을 써내려가는 중인 맹키위츠의 현재와 미디어 재벌 곁에서 정치적 격동을 몸소 맞이했던 과거의 교차는 <소셜 네트워크>가 다루는 저커버그의 시간과도 비슷하다. 페이스북으로 막 성공세를 맛보기 시작한 시기와 소송대에 올라 자신의 비인간성을 지목받는 시기가 공존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소셜 네트워크>가 유려한 짜깁기로 플래시백을 사용하지 않은 것과 달리 <맹크>는 맹키위츠가 써내려가는 시나리오의 일부처럼, 장면 전환을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하면서 맹키위츠의 심리적 역동을 ‘플래시백’이라는 서사 기법으로 못 박는다. 테크니션,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동시대 영화계의 테크니션들을 열거한다면 가장 앞줄의 어디쯤에 핀처가 있을 것이다. <패닉룸>에서 땀 흘리며 대치 중인 등장인물들을 벗어나 어느새 혼자 집 안을 날아다니고 있던 카메라가 대표적이다. 하나의 숏이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노력은 오슨 웰스에게 딥 포커스를, 데이비드 핀처에게 CG 트래킹 숏을 불러냈다. 어지러운 복도와 계단, 겹겹의 문과 창문을 거슬러 카메라가 홀로 인물들의 동태를 살피는 <패닉룸>의 트래킹 숏은 분명 화려한 만큼 효과적이었다. 그러니 <맹크>는 “UCLA 아카이브나 마틴 스코시즈의 지하실에서 발굴-복원된”(<인디와이어>) 영화처럼 보이길 바랐다는 감독의 바람을 성취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술만 남겨두고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하는 작업에 가까웠을 테다. <맹크>의 고전적 질감은 최신 기술로 최상의 화질-음질을 뽑아낸 다음,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후반작업 기간을 거쳐 화면에 스크래치와 담배 자국을 내고, 사운드를 저하시키는 작업이었다. 인위적인 손상을 입힘으로써 어떤 이미지, 어떤 사운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것에 가깝다. 이를테면 핀처는 트래킹 숏을 통해 전지적으로 존재하는 카메라를 자각시키는 것만큼이나 프레임 자체의 물질성을 과시하곤 했던 감독이다. <파이트 클럽>과 <세븐>에서 관객을 놀리듯 번쩍이며 삽입된 싱글 프레임 필름 컷은 <맹크>에서 화면 상단 귀퉁이에 반짝거리는 릴 체인지 서클로 이어진다. 릴 체인지의 순간에는 일부러 사운드가 살짝 튀도록 만들었는데, 이 작은 파열음을 두고 핀처는 “너무나 아름답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소리”라며 대책 없는 영화 중독자의 낭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스페셜] <맹크> 깊이 보기 - 할리우드의 황금시대, 어떤 일이 있었나

“사람들이 극장에 오게 만드는 방법이 뭘까?”(<맹크>의 루이스 B. 메이어 대사 중)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내러티브 구조와 할리우드식 제작 시스템 그리고 장르 문법은 <맹크>의 시대에 구축됐다. 할리우드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메이저 스튜디오 5개사 MGM, 20세기 폭스, 워너브러더스, 파라마운트, RKO는 배우 및 스탭들과 장기 계약을 맺어 영화를 만들고 소유한 극장을 통해 배급·상영해 이윤을 극대화했다. 돈을 버는 것을 최우선시하는 제작자 입장에서 그 목표를 가장 충실히 달성할 수 있는 수직적인 통합 구조를 만든 것이다. 1920년대 초부터 1950년대까지 할리우드를 이끌었던 이 시스템에 대해 토머스 샤츠는 <할리우드 장르>에서 ‘스튜디오의 천재성’이라 일컬었다. “이 시스템은 관객의 반응에 따라 자신의 작업을 측정 가능케 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스토리와 테크닉의 반복을 촉진시킨다. 스튜디오들은 개별적인 상업적 노력과 함께 영화의 기존 관습에 또 다른 변형을 보여주고, 관객은 그 창조적 변형이 반복적 사용을 통해 관습화될 것인지의 여부를 지시하는 셈이다.” 이른바 할리우드 황금시대는 유성영화의 등장을 기점으로 정의된다. <맹크>에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찰스 댄스)가 '말'을 다루는 시나리오작가 맹크(게리 올드먼)에게 “유성영화가 미래다. 황금시대가 오면 자넨 셰익스피어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맥락이 여기에 있다. 이후 시스템은 더욱 견고해져 1940년대 중반, 5대 메이저 스튜디오가 25개 대도시의 163개 개봉관 중 126개를 통제하는 수준에 이른다. 스튜디오와 관객의 상호작용하에 자리 잡은 내러티브 관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웨스턴과 드라마, 뮤지컬, 갱스터 같은 장르도 만들었다. 극중 윌리엄은 “요즘 영화는 갱스터 아니면 막스 형제가 하는 것 같은 코미디”라며 당시 유행하던 장르에 대해 언급한다. <맹크>에 등장하는 첫 플래시백은 그가 헤드 작가진으로 활동했던 1930년의 파라마운트 촬영소다. 여러 작가들이 한데 모여 이후 <스타탄생>(1937),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등을 만들게 되는 거물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알리스 하워드)의 차기 프로젝트 스토리를 함께 구상한다. 관객에게 친숙하면서도 전과 다른 변형이 있는 내러티브는 개인의 영감보단 집단 창작에 의해 확보됐다. 한 작품 안에서도 특정 내러티브 관습에 특화된 작가가 존재했으며, 많은 작가가 릴레이처럼 작업한 까닭에 정식 크레딧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시퀀스에는 찰리 레더러(<오션스 일레븐>(1960), <그의 연인 프라이데이>(1940)), 조지 S. 코프먼(극작가로서 막스 형제의 <파티 대소동>(1930)등의 원작 연극 각본을 썼다), 벤 헥트(<스펠바운드>(1945), <오명>(1946)), 찰리 맥아더(<그의 연인 프라이데이>, <폭풍의 언덕>(1939), 벤 헥트와 함께 <악당>(1935)으로 오스카를 받았다), S. J. 페럴먼(<몽키 비즈니스>(1931), <풋볼 대소동>(1932), <80일간의 세계일주>(1957)) 등 고전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한데 등장해 시네필의 호기심을 끈다. <맹크>의 초반부, 맹크는 자신의 아내 세라에게 <오즈의 마법사>(1939)가 스튜디오를 말아먹을 것이라 말한다. 당시 영화인이라면 쉽게 짐작했을 만한 이야기다.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1937)의 성공에 자극받아 MGM이 야심차게 착수한 <오즈의 마법사>는 제작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다. 맹크를 포함한 수많은 작가가 스토리를 뜯어고치고 우여곡절 끝에 시나리오가 완성된 후에도 감독이 4번이나 교체됐다. 특히 촬영 당시 18살이었던 주인공 주디 갈런드가 제작진으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화려하게만 비쳐졌던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영화에는 워너브러더스나 메이저 회사에는 속하지 못했던 컬럼비아 픽처스 얘기도 잠시 등장한다. 1940년대의 워너브러더스는 <카사블랑카>(1942), <나우, 보이저>(1942) 같은 멜로는 물론 <성조기의 행진>(1943) 같은 선전영화를 만들어 전쟁 자금을 모았다. 1948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이같은 수직적 통합 체계가 위법이라는 이른바 ‘파라마운트 판결’을 내리면서 할리우드의 황금시대는 ‘종말’을 맞았다. 더이상 제작과 배급, 극장은 통합될 수 없었다. 역설적으로 스튜디오의 쇠퇴는 보수적인 영화계가 텔레비전업계와 손을 잡는 계기가 됐다.

[런던] 60년째 방영 중인 영국 최장수 드라마가 있다고?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영국의 최장수 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의 60주년 기념 주간(12월 7~11일) 행사도 많이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코로네이션 스트리트>는 의 <이스트엔더스>와 함께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오래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라는 수식어로 종종 소개되는 연속극이다. 현재까지 1만여회가 넘는 에피소드가 방영되고 있는 만큼 극중 57명이 출산을 했고 146명이 사망했으며 131회의 결혼식이 진행됐다는 놀라운 기록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10주년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로 오랜 드라마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50주년을 기념하며 실시간으로 방송된 지난 2010년 12월 9일 에피소드에서는 전차가 고가도로에서 추락하는 액션 장면이 담겨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가 지난 3월 말 코로나19로 전국적인 봉쇄령이 내려진 직후 방영 횟수를 주 6회에서 3회로 줄이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드라마 팬들의 관심은 올해 12월로 예정되어 있던 60주년 기념 행사의 진행 유무에 더 집중됐다. 이에 대해 와 드라마 제작진은 “코로나19 확산으로 60주년 기념 행사의 규모가 다소 줄어든 면은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를 충분히 기념하겠다”고 밝히며 팬들을 안심시켰다. <코로네이션 스트리트> 제작진은 60주년 기념 이벤트의 일환으로 지난 5월 말에는 로열 메일과 합작한 기념우표 발행을, 11월 24일에는 뉴캐슬 출신의 화가 레이 람버트가 그림으로 표현한 웨더필드의 연기 나는 굴뚝들과 이 거리를 지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은 작품과 3개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내놓았다. 에서 연속극을 책임지고 있는 존 휘스턴은 “60주년 기념 이벤트의 하이라이트는 그간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데 있다”고 발표했다. 는 최근 공개된 예고편을 통해 수개월 동안 자신을 통제하고 괴롭혔던 남편 제프와 다투다 자기방어의 일환으로 그를 칼로 찔렀던 사실을 자백한 야스미엔의 살인 미수 혐의를 논하는 재판 결과가 그려질 것이라 전했다. 야스미엔을 연기하고 있는 셀리 킹은 60주년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질의응답 이벤트에서 “법정 사건이 종결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야스미엔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작자 이언 맥레드는 “지난해에 60주년 기념 에피소드 아이디어를 고민할 때, 바이러스에 의한 공격과 관련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당시에는 터무니없는 내용이라고 무시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놀랍도록 끔찍한 선견지명이 아니었다 싶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성균관대학교] 뉴미디어 시대를 이끄는 힘

학과소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21세기 첨단 영상 분야를 이끌어갈 영상 전문인을 양성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1998년 신설됐다. 1990년대 초, 당시 국내 영화산업 성장의 주축이 된 삼성영상산업단의 권유로 신설된 이래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영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젊은 인재들을 길러냈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2002년 정보통신부의 우수 IT 학과 지원 사업의 최우수 학과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03년부터 ‘문화콘텐츠 국비장학생 해외파견 교육지원사업 선정학과’로 선정돼 매년 학생들을 해외 교류대학에 파견하고 있다. 콘텐츠 시장이 급속도로 확장되고 혁신적인 영상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미디어 산업의 지형도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이러한 미디어 시장의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에 새로운 기술과 영상 콘텐츠의 트렌드를 신속하게 반영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이 인간의 심리를 심도 있게 탐구하고 개념화할 수 없는 요소도 영상을 통해 표현할 수 있도록 인문학과 영상학의 영역을 결합한 영상미학, 영상스토리텔링, 정신분석과 영상연출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또한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 디자인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디지털 영상 유저들의 행동 패턴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한다. 그 밖에도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뉴미디어콘텐츠워크샵 수업을 통해 하나의 스토리를 여러 플랫폼에 맞게 콘텐츠화하는 법을 배운다. 이처럼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와 같은 전통적인 영상 영역뿐만 아니라 실험영화, 인터랙티브영상, 뉴미디어, 트랜스미디어를 아우르는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학부 시절부터 폭넓은 커리큘럼을 경험한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국내외 유수영화제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엑시트>를 연출한 이상근 감독, <도희야>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구혜선도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동문이다. 교수진도 화려하다. 학과장을 겸임하고 있는 안상혁 교수는 대기업에서 다양한 콘텐츠 유형을 기획, 제작한 바 있으며 해당 경험을 토대로 영상학과의 편제를 구성했다. 뉴욕에서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전공한 현대진 교수와 이준희 교수는 모션그래픽 디자인과 멀티미디어 프로그래밍을 담당한다. 프랑스에서 미학과 연출을 전공하고 <오감도> <상류사회> 등을 연출한 변혁 교수는 영상미학을 담당하며 영상학과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그 밖에도 소니 FS7, A7s2, 캐논 C100, 70D, 파나소닉 DVX-200, 삼양 폴라 EF lens, 삼양 XEEN Cine lens,Vfm-056, 아토모스 쇼군, LPT 그립 세트, 틸타 팔로 포커스, 틸타 뉴클리어스 나노, 콤보 스탠드 등 영상 촬영과 제작을 위한 장비들도 세심하게 구비되어 있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에서는 인간과 테크놀로지 사이의 균형을 형성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그 일환으로 앞으로 새로운 영상 플랫폼에서 소프트 파워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영상스토리텔링 교육에 주력할 예정이다. 입시전형 2021년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정시 나군에서 총 15명을 모집한다. 수능 점수 100%를 반영하는 일반전형으로 영역별 반영 비율은 국어 40%, 수학(가군 혹은 나군) 40%, 탐구(사회 혹은 과학) 20%이며 영어와 한국사는 별도의 가산점을 부여해 합산한 후 총점 순으로 선발한다. 이때 제2외국어나 한문을 탐구 영역 중 1개 과목으로 대체할 수 있다. 원서 접수는 2021년 1월 8일(금) 오전 10시부터 1월 11일(월) 오후 6시까지다. 최초 합격자 발표는 2월 7일(일) 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 입학처 홈페이지(https://admission.skku.edu/intro.html)에서 확인하자.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교수진 소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의 인재 양성에 힘쓰는 4명의 교수를 소개한다. 먼저 학과장을 겸임하고 있는 안상혁 교수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홍익대학교 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내 콘텐츠 분야를 일군 1세대로서 대기업에서 다양한 콘텐츠 유형을 기획, 제작한 경험을 토대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의 체제를 구성하고 학과 내에서 영상미학 분야를 담당한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현대진 교수는 뉴욕대학교에서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전공하고 디지털 이미지 디자인과 모션그래픽 디자인, 인터페이스·인터랙션 디자인, 복합장르 공연 등을 연구, 교육한다. 이준희 교수는 뉴욕대학교에서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석사 학위를,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영상학과에서는 멀티미디어 프로그래밍, 게임디자인, 미디어 인터랙션 디자인 등을 담당한다. 파리 팡테옹-소르본 대학에서 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프랑스 국립영화학교에서 연출을 전공한 변혁 교수는 <인터뷰> <오감도> <상류사회> 등을 연출했으며 영상미학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복합장르 공연 등을 담당한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풍부한 실무 경험과 다양한 영상 분야를 아우르는 교수진과 함께 영상 분야에서 고른 실무 능력을 겸비한 영상 인력을 양성한다. 홈페이지 ftm.kr 전화번호 02-760-0661 교수진 안상혁, 변혁, 이준희, 현대진 커리큘럼 영상학원론, 촬영기초, 영화사, 음악음향실습, 영상음향실습, 인터랙티브영상, 인터랙티브아트, 애니메이션기초, 시나리오워크샵, 영상미학, 영상스토리텔링,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디자인, 디지털디자인, 디지털비디오와 무빙이미지, 게임디자인, 캐릭터애니메이션, 미디어스터디, 영상편집워크샵, 영상편집기초, 영화사 연구, 게임워크샵, 영상비평론, 영상매체경영론, 영상학현장실습, 모션그래픽워크샵, 정신분석과 영상연출, 실험영상워크샵, 광고연출, CF워크샵, 스튜디오촬영워크샵, 장편시나리오워크샵, 다큐멘터리워크샵, 영화연출워크샵, 애니메이션연출, 뉴미디어시대의 영상미학, 다큐멘터리의 이해,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방송포맷디자인워크샵, 뉴미디어콘텐츠워크샵, 콘텐츠기획과 프리젠테이션, 영상학현장실습, 영화기획제작워크샵, TV드라마워크샵, 캡스톤디자인졸업작품연구

영화 '그녀의 조각들' 눈에 비친 희박한 공기

롱테이크 숏이 인상적인 영화 두편이 올해와 지난해 초 우리 곁을 찾았다. 한편은 위기에 빠진 극장의 구원투수가 될 임무를 안고 달렸고, 다른 한편은 OTT 플랫폼의 품에 무난히 안겼다. 지켜지고, 지속되길 바라는 외침이 가득한 롱테이크 속에서 우리는 각자 무언가를 버틴다. 눈에 비친 희박한 공기 <그녀의 조각들>의 롱테이크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조각들’이라 명시된 제목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의 조각들>은 롱테이크를 주된 형식으로 가져가기보다는 특정 장면에 두드러지게 사용한다. ‘왜 롱테이크로 보여주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가장 중요한 롱테이크 시퀀스는 마사(바네사 커비)의 출산이다. 출산 장면에는 이런 내용이 담긴다. 가정 출산을 결심한 마사가 느끼는 산통, 예정된 조산사 바바라와의 어그러진 약속, 그를 대신한 다른 조산사 에바(몰리 파커)의 등장, 병원에서의 분만을 권하는 남편 숀(샤이아 러버프), 침실에서 진행된 분만과 딸의 출생, 그리고 잠시 뒤 닥쳐온 예기치 않은 불행까지 한 호흡으로 가져간다. 롱테이크로 펼쳐지는 출산 장면은 관객을 당황하게 한다. 단지 출산 장면이 드물게 묘사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출산 장면을 느린 호흡으로 보여준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2018)에서도 주인공 클레오의 출산 장면을 실시간의 감각으로 묘사한 바 있었다. 물론 이 장면은 클레오의 임신과 불안 등 그녀가 누구인지를 충분히 묘사한 뒤에 등장한다. 반면 <그녀의 조각들>에서는 상황에 관한 사전 준비 없이, 부딪히듯 그 장면을 마주해야 한다. 관객은 이들이 누구이고, 출산 방식을 결정하는 데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등의 전후 사정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시퀀스를 감내해야 한다. 특정 인물의 출산이기보다는 불특정 다수를 포괄하는 대표로서 누군가의 출산을 마주하는 것처럼 관객은 장면의 묘사 그 자체, 혹은 출산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의 앙상블을 지켜보게 된다. 롱테이크는 종종 ‘리얼한 체험’의 맥락에서 이야기된다. 영화의 리얼리티는 시대와 매체의 흐름에 따라 갱신되어왔으므로 이것이 리얼한 체험인가를 묻기 전에 오늘날 대부분이 합의하는 리얼함에 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심은진은 롱테이크가 다른 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리얼리티를 구축해왔다고 분석하며 회화, 연극, 텔레비전, 게임 등 네 갈래를 제시한다.(‘영화의 롱테이크와 상호매체성’ ) 이러한 분석을 참고해 덧붙이자면 롱테이크는 크게 고정숏이냐 이동숏이냐, 그리고 배경이 실제 공간이냐 가상이냐에 따라 혹은 그 혼합이냐에 따라 분류된다. 앞서 인용한 네 가지 분류 중 최근작의 롱테이크는 주로 게임의 매체성과 접속하며 가상적인 것을 리얼한 것으로 인식하는 흐름 속에 있다. 반면 <그녀의 조각들>이 보여주는 체험은 실제적 리얼리티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텔레비전, 혹은 연극적인 방식에 가깝다. 무엇보다 롱테이크가 주인공과 동일시한 체험을 위해 마련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출산 장면을 롱테이크로 목도한다고 하여 출산의 간접 체험이 가능할 리 없다. 이때 체험은 시퀀스가 보여주는 내용과 상황에 대한 체험이 아닌, 카메라의 시선을 체험하는 것에 가깝다. 체험과 저항 카메라 시선과의 동일시는 영화가 보여주는 내용으로부터의 거리감을 전제한다. <그녀의 조각들>은 영화화되기 전, 동명의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에서 상연된 바 있다. 연극 역시 영화와 마찬가지로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이 연출하고 각본가이자 감독의 파트너인 카타 웨버가 극을 지었다. 롱테이크 숏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어쩌면 영화가 연극의 특성을 느슨하게 공유한 흔적일 수 있다. 고정된 롱테이크 숏은 초기 영화의 주된 방식이자, 영화가 연극과 종종 비교되는 이유다. 무대극의 형식을 영화 용어로 설명할 때, 각 장은 롱테이크 고정숏에 해당한다. 물론 연극과 영화에서 특정 장면을 동일한 길이로 보여주더라도 관객이 체감하는 길이는 분명 다르다. 연극의 지속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지는 이유는 연극 무대의 미장센이 관객의 시선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이 점한 위치에 따라 볼 수 있는 것이 조금씩 달라지며 어느 정도는 분산된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들이 극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데 별다른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배우의 연기와 그가 전하는 대사는 지금 여기의 관객과 소통하는 실시간성을 지니며 시각적 차이를 상쇄한다. 반면 영화에서 카메라의 시점과 동일시는 절대적인 조건이며, 실시간성을 지닐 수도 없다. 연극과 영화에서 롱테이크는 무대가 움직일 수 없는 장소나 장치의 한계를 드러내는 조건이다. 연극에서는 대부분 무대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 무대를 이동하는 극이 있긴 하다) 배우들이 움직인다면,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이동성이 곧 무대를 움직이게 하는 요소다. 연극에서는 한정된 공간 위에서 배우들의 등 퇴장이 사건을 만들어낸다면,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이동하며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상황을 비춘다. 다시 <그녀의 조각들>로 돌아오면 작품의 롱테이크는 연극적인 방식의 영화적 번역으로서의 롱테이크를 보여준다. 영화는 클로즈업을 연상시킬 정도로 실제 인물, 혹은 인물의 상황과 가깝게 밀착해 있다. 중심인물은 마사와 숀 부부와 뱃속의 아기, 그리고 바바라를 대신해 등장한 에바다.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비추는 곳이 곧 무대로, 인물들은 숏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하며 등퇴장해 사건을 만든다. 이와 함께 이들이 점한 공간인 집을 통해 스펙터클을 만든다. 거실, 욕실, 침실 순으로 중심 공간이 이동하며 각 장소에서 인물들에게 나타나는 몸과 심리의 반응을 묘사한다. <그녀의 조각들>이 집을 보여주는 방식은 샘 멘데스가 <1917>(2019)에서 장소를 탐험하던 방식에 비하면 소박하게 느껴진다. <1917>은 전체 영화를 하나의 숏처럼 보여주려는 의지를 밀어붙인 영화다. 이를 위해 장소의 변화와 이동을 전제로 한 무대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녀의 조각들>은 벽과 문으로 이뤄진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마치 스펙터클이 가능한 공간인 듯 군다. 편집되지 않고 이어지는 시간은 오직 배우들의 연기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만 기댄다. 스펙터클이 기대되지 않는 자리에서 전환적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것은 문드루초 영화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특징 중 하나다. 감독은 전작 <주피터스 문>(2017)에서도 롱테이크 기법을 사용했다. 총에 맞은 뒤 공중에 몸을 띄우는 기이한 능력을 갖게 된 시리아 난민 아리안(솜버 예거)은 그의 능력을 발굴한 의사 스턴(메랍 니니트제)의 관리 감독 아래 집과 병원 등 좁은 실내에서 몸을 공중에 떠올리는 기술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고, 그들에게 돈을 받는다. 감독은 아리안의 몸이 떠오르는 시퀀스를 나누지 않고 보여주면서 그 장면을 관객 역시 믿도록 권한다. 남자의 움직임은 때로는 그가 회전하는 대신,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일시적으로 회전시키는 능력으로 드러난다. 아리안이 회전함에 따라 공간 전체가 함께 회전하는 시퀀스는 마치 우주를 중심으로 한 SF영화에서 한정적으로 쓰여온 스펙터클을 그와 동떨어진 시공간 위에 펼치려는 것처럼 보인다. 우주 속에 던져진 인간을 보여주는 대신, 한 인간으로 인해 가능해진 우주의 차원을 보여주며 소수에게만 허락되어온 우주를 지구에로 가까이 끌어내린다. 누군가의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형상은 영혼이 몸을 떠나는 모양의 영화적 표현이기도 하기에, 그의 능력은 곧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난민에게 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발 딛고 설 수 없는 불안정한 토대라는 점에서 난민의 땅에 대한 은유로 우주를 발견한 측면도 있다. 감독은 장르적 한계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 기법이 기존에 사용되어온 방식을 전유한다. <그녀의 조각들>의 롱테이크는 그것이 롱테이크로 보여주어야 했던 이유를 숨기면서 과연 롱테이크로 보여줄 만한 장면은 어떤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불러온다. 이 롱테이크에 관해 개인의 내밀한 사정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영화의 윤리성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런데 그러한 지적이 자신의 장면에서 느껴야 할 쾌감을 부정당한 데 대한 반감과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기억의 장대한 씨앗 물론 작품에서 구사한 형식이 기존 용법에 대한 코멘트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영화 전체를 옹호할 수는 없다. <그녀의 조각들>의 롱테이크는 기존 용법을 비트는 동시에 실은 그 안에서 뚜렷한 목적을 지닌다. 그 목적은 시퀀스를 체험하는 동안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시차적으로, 불현듯 인식된다. 롱테이크의 목적은 마치 반전처럼 드러난다. 이때 반전은 서사의 흐름 안에서 숨겨온 비밀을 누설하는 데서 오는 반전이 아니라, 영화의 기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의 반전이다. 마사의 법정 진술 시퀀스는 반전을 가능하게 한 주된 요소다. 조산사의 책임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법정 다툼에서 마사는 주요 증인으로 참석한다. 출산의 순간에 초점이 맞춰진 변호사의 질문과 마사의 대답이 오갈 때 관객은 롱테이크 시퀀스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본 것과 마사의 답변을 대조하게 된다. 조산사측 변호인은 심문 중 마사에게 조산사가 업무를 소홀히 했는지, 가정 분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마사 본인이 선택한 것은 아닌지를 따진 뒤, 아기가 태어난 직후의 상황으로 논의를 이어간다. 그는 아기의 눈이 무슨 색깔이었고, 머리 색깔은 어땠는지, 아기를 안았을 때의 느낌은 어땠는지 등을 묻는다. 그 질문은 딸을 잃은 ‘피해자’의 상처를 후벼파는 과도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사와 관객의 기억을 촉발하는 매개다. 이를 통해 아기의 존재가 시퀀스 내부에서 소외되었음을 자각하게 한다. 아기의 눈 색깔, 아기를 안았을 때의 온도와 냄새 같은 것은 롱테이크 시퀀스 속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던 것들이다. 출산 직후 에바는 아기를 마사의 품에 안겨준다. 남편 숀이 아기를 품에 안은 마사를 촬영하려 할 때, 카메라는 부부에게서 시선을 돌려 에바에게로 향한다. 에바는 이들로부터 등을 돌린 채 거울을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쉰다. 거울 속에서 번쩍하고 숀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그 직후 거울을 통해 아기의 호흡 정지를 알아차린 에바는 아기에게로 긴급하게 다가간다. 시퀀스 어디에도 아기를 온전히 감각하는 일은 새겨져 있지 않다. 그저 짙은 머리카락의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잠깐의 인상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롱테이크 숏을 소환하는 법정 장면은 롱테이크에서 상실된 것이 무엇이었나를 보여준다. 심문 장면에서 카메라는 대답 직전 마사의 목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마사가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 순간, 관객 역시 기억 속 롱테이크 시퀀스를 더듬는다. 관객이 인물과 동일한 방식으로 기억하는 행위를 할 때, 영화적 체험은 비로소 시작된다. 체험은 롱테이크가 진행되는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끝난 뒤 다시 접속하는 순간 속에 존재한다. 롱테이크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매 순간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출산의 순간 혹은 출산 이후 태아의 움직임을 담는 데는 인색하다.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지속하는 마사의 통증처럼 카메라는 지속하고, 클로즈업에 가깝게 인물들에게 밀착한 카메라는 시각적으로 숨 막히는 경험을 직조한다. 카메라가 인물을 잡는 방식과 카메라의 움직임과 인물이 겪는 상황이 어우러져 집은 숨쉬기 곤란한 밀폐된 공간처럼 보인다. 숀이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문을 박차고 나갈 때 열린 문틈으로 비로소 시각적인 숨통이 트인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마치 스스로 공기가 되려는 것 같다. 마치 공기와 같은 영화들이 있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우리의 시간>(2018) 초반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피사체와 밀착한 채 낮은 곳에서 인물 곁을 맴돈다. 인물의 시선보다 낮은 위치에 놓인 카메라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갈 때, 카메라는 흡사 공기처럼 투명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녀의 조각들>에서 카메라는 인물과 가까이 밀착해 있으나 인물은 카메라를 보지 않고, 카메라는 인물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롱테이크가 체험일 수 있다면 그것은 인물의 입장에 처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공기가 되는 것 같은 체험이자, 육신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경험에 가깝다. 정치적 개인에서 개인의 정치로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은 작품을 통해 정치적인 논점을 건드려왔다. <화이트 갓>(2014)은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살던 릴리(조피아 프소타)가 잠시 아버지 다니엘의 집에 맡겨지면서 반려견 하겐과 헤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하겐과의 이별의 원인은 강압적인 부모, 경계하고 고발하는 이웃들, 개의 품종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는 정책 등 다층적이다. <화이트 갓>은 주거지에서 박탈당한 생명체를 그렸다는 점에서 난민이 처한 상황을 SF로 펼쳐낸 <주피터스 문>과 연결된다. <그녀의 조각들>은 이런 흐름에서 벗어난 작품처럼 여겨진다. 이 작품은 문드루초 감독 부부가 실제 겪은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다. 전작이 분명한 정치적 발언을 했다면, 이번 작품은 보다 내밀하다. 변방으로 밀려난 이를 주목해온 감독은 <그녀의 조각들>에서는 다른 차원의 존재론을 펼친다. 딸의 죽음 뒤 마사의 가족은 죽은 딸, 혹은 손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두고 갈등을 빚는다. 마사는 딸의 시신을 의학 교육을 위해 기증하려 하고, 숀은 이에 반대한다. 숀이 딸의 죽음을 개인적인 방식으로 기억하고 추모하려 한다면 마사는 어떻게든 그가 태어나야 했던 이유를 세상에 새기고 싶어 한다. 영화는 상실을 통한 고통과 상처의 치유라는 남겨진 자들에 의한 익숙한 상실의 서사를 펼치는 대신 상실된 것의 관점에서 그를 위한 구체적인 행위 방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이 작품의 정치성은 바로 나의 상처가 지금 부재한 누군가의 상처와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한 자의 구체적인 실천으로부터 나온다. 문드루초 감독은 나름의 비율로 현실과 판타지를 섞어왔다. <화이트 갓>에서 난폭하게 폭주하던 개의 무리가 소녀의 트럼펫 소리에 잠잠해지는 순간이 있고, <주피터스 문>에서는 인간의 몸이 하늘로 떠오르는 기적을 보여준다. <그녀의 조각들>에서 기적은 더 깊고 소박해졌다. 마사는 사과 씨앗에 물을 적셔 냉장고에 보관한다. 얼마 뒤 발아한 씨앗을 본다. 지금 막 발아한 씨앗은 클로징 시퀀스에 무성한 열매를 맺은 사과나무로 점프한다. 마사가 사과에 집착했던 이유는 ‘태어난 직후의 딸에게서 사과 냄새가 났다’는 법정 진술을 통해 확인된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에 주목했던 감독은 이제 사과나무를 통해 인간과 식물의 교감을 쓴다. 그와 함께 사과의 씨앗만큼 작은 배아의 상태를 생명체의 근원으로 기억하려 한다. 동물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비존재로 교감의 범위를 넓히면서 영화는 점점 낮고도 미약한 곳을 파고든다. 미세해서 보이지 않는 상태로까지 자신을 투명하게 소멸시키는 것, 그것이 카메라를 통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스펙터클이라는 듯이.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애정의 향연, 연대의 감각

1999년은 <매트릭스>의 해였다. TV 속 연예인들은 너도나도 키아누 리브스 흉내를 내며 허리를 뒤로 꺾었고, 캐리 앤 모스처럼 학다리 자세로 허우적댔다. 광고부터 시트콤까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카메라 효과와 총알 따라 물결이 번지는 CG가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밤거리는 검정 가죽옷과 롱코트에 점령당한 상태였고.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해킹 전문가를 뉴스 시간에 불러다놓고는 “프로그래밍 실력이 뛰어나면 가상현실 속에서 벽을 타고 달리는 게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따위의 어처구니없는 문답을 주고받는 모습을 본 것도 같다. 영화 속 명대사처럼, 정말이지 매트릭스는 어디에나 있었다. 상영 시간 내내 폼 잡는 대사와 상징물이 가득한 탓에 아는 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매트릭스와 성경과 데카르트와 장자를 엮어가며 썰을 풀기 바빴다. 빨간 약과 파란 약 중에 무엇을 고르겠냐는 질문도 지겹도록 들어야 했고. 믿기지 않겠지만 매트릭스로 철학을 배우는 책도 나왔다. 어휴, 한해 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나비들이 장자의 꿈을 꿔야 했는지.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런 철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당시 심각한 중2병을 앓고 있던 나는 <매트릭스>의 비디오테이프를 몇번이나 처음부터 돌려보며 워쇼스키 감독들에게 푹 빠져들었다. 수년이 흘러 개봉한 후속작 <매트릭스2: 리로디드>와 <매트릭스3: 레볼루션>은 물론, <브이 포 벤데타> <스피드 레이서>까지 섭렵한 나는 확신했다. 워쇼스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자유’와 ‘전복’이라고. 워쇼스키의 영화들은 자유와 전복을 이야기한다.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세기말 자본주의 세계를 강요하는 컴퓨터들에 맞서 자유를 되찾고, <스피드 레이서>의 주인공 스피드 레이서는 자본가들의 탐욕으로 얼룩진 그랑프리를 실력 하나로 전복시킨다. 처음부터 끝까지 혁명 이야기인 <브이 포 벤데타>는 말할 것도 없고. 워쇼스키의 야심작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주인공들 또한 각자를 억압하는 세계에 맞서 변화를 주도한다. 각각의 사연을 품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그들의 모습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서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워쇼스키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나는 주저 없이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꼽는다. 워쇼스키가 창조한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거대한 야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1849년부터 2321년까지 여섯 시대를 교차하며, 여섯개의 각기 다른 장르 이야기를, 여섯명의 주연배우들이 시대마다 다른 배역을 1인다역으로 소화하는 것. 여섯 주인공이 마주하는 테마도 하나같이 묵직하다. 노예해방, 퀴어, 자본주의, 노인 소외, 휴머노이드 인권, 문명의 쇠락과 멸망까지. 물론 야심이 크다고 꼭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워쇼스키는 자신들의 야심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했다. 일단, 이 이야기는 영화라는 포맷에 맞지 않았다. 상영시간이 제한된 극장용 영화로는 방대한 테마와 복잡한 플롯을 담는 데 한계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숙제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이야기의 주 무대인 네오 서울은 정말이지 엉망진창이었다. 한글 간판과 벚꽃과 다다미가 뒤섞인 촌스러운 오리엔탈리즘도 진부했고, 휴머노이드를 활용하는 방식도 게을렀다. 더구나 동양인으로 분장한 백인 배우들의 인종차별적 메이크업은 끔찍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실패 덕분에 워쇼스키는 일생일대의 역작을 완성할 기회를 얻는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센스8>. <센스8>은 텔레파시로 감정과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세계에 흩어진 8명의 주인공. 복잡하게 교차하는 8개의 사연. 얼핏 보기에도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하는 워쇼스키의 야심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우연한 계기로 서로의 정신과 연결되기 시작한 주인공들은 정체불명의 비밀 조직에 목숨을 위협받는 한편, 각자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안고 있다. 시카고에서 경찰관으로 재직 중인 윌은 어린 시절 겪은 살인 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런던에서 DJ로 활동 중인 라일리는 복잡한 과거사와 마약중독에서 벗어나려 노력 중이며, 어릴 적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볼프강은 베를린의 폭력 조직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나이로비의 버스 운전사인 카페우스는 극심한 빈곤 속에서 엄마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분투한다. 서울에 살고 있는 격투가 선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힌다. 샌프란시스코의 해커 노미는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후로 가족들과 연이 끊긴 상태다. 멕시코시티의 인기 영화배우 리토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지만 상대역인 여배우가 자꾸만 그를 의심한다. 뭄바이의 칼라는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능력 있는 여성으로,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들이 바라는 소망은 단순하다. 자유.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할 권리. 단지 그뿐이다. 지구의 정반대 편에 살며 얼굴 한번 본 적 없던 여덟 주인공들은 갑작스런 접촉에 당황하며 상대를 거부하지만, 텔레파시를 통해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조심스레 각자의 상처를 보듬고 위로하며, 자신이 가진 능력을 공유해 서로를 돕는다. 약자들의 연대. 자유와 전복. 워쇼스키가 평생 동안 반복해 쌓아올린 테마는 이윽고 <센스8>에 이르러 완성된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또한 서서히 그들과 하나가 된다. 마치 9번째 멤버가 되기라도 한 듯 자연스레 그들 사이에 녹아든다. 시즌2 분량의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새 우리는 그들의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고, 이윽고 완전한 한몸이 된다. 이 경험은 정말 각별하다. 전세계를 누비는 엄청난 스케일의 로케이션만으로도 시청할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특히 한국처럼 생긴 한국이 등장하는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네오 서울의 실패를 재현하지 않겠다는 듯, 워쇼스키는 대부분의 분량을 현지에서 촬영했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런던, 뭄바이, 멕시코시티, 베를린, 나이로비, 서울…. 덕분에 우리는 배두나, 윤여정, 차인표 등 반가운 배우를 만날 수 있다. 물론 가끔은 반갑지 않은 배우와 마주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한없이 폭발하는 애정의 향연 때문이리라. 젠더와 섹스에 대해 이보다 진지하게 정면 승부하는 장르 드라마는 찾아보기 어렵다. 세상이 그어놓은 편견의 선들을 모조리 뛰어넘어 보이겠다는 듯, 워쇼스키는 <센스8>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애정 행위를 묘사한다. 헤테로 섹슈얼과 호모 섹슈얼, 트랜스젠더와 폴리아모리(다자간연애), 데이팅 앱을 통한 즉석 만남, 텔레파시를 통한 초월적 접촉까지. 공들여 촬영된 아름다운 성애 장면을 통해 워쇼스키는 인간 육체의 내부에 축적된 생명의 에너지를 한껏 드러내 보인다. 거기엔 어떠한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맞닿은 입술과 손길과 살갗을 통해 땀에 젖은 기쁨이 폭발하는 순간, 그들은 진정한 자유를 만끽한다. 작중에서 선이 말한 대사처럼. “우리가 존재하는 건 섹스 때문이야. 그건 겁낼 일이 아니야. 감사해야 할 일이고, 즐겨야 할 일이지.” <센스8>은 자유와 사랑에 대한 한없는 찬미다. 우리에겐 사랑할 자유가 있다는, 그리고 사랑받을 자유가 있다는. 부디 모두가 자유로이 사랑할 수 있게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크리스토퍼 플러머 추모] 그는 마지막까지 일했다

아서 크리스토퍼 옴 플러머 Arthur Christopher Orme Plummer (1929.12.13~2021.2.5) “너 나보다 겨우 두살 많잖아. 우리 왜 이제야 만난 거야?” 2012년 아카데미 역사상 최고령의 남우조연상 수상자가 된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무대에 올라가 우선 오스카 트로피와 오랜 회포부터 풀었다. 위트 있는 첫인사로 과시한 그의 ‘전설적’ 위상은 오랜 기립 박수에 걸맞은 장중한 연설 대신 겸허한 감사 인사로 매듭지어졌다. 82살의 베테랑은 축제의 밤 이튿날 다시 현업에서 활동하는 할리우드 최고령 배우의 일원이 되어 유유히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관객은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기쁨을 9년간 더 누릴 수 있었다. 감미로운 음성으로 를 읊조렸던 트랩 대령, 70년의 연기 인생 중 에미상과 토니상을 각각 두번 수상하고 마침내 오스카 남우조연상까지 거머쥔 불굴의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91년의 일기를 마치고 지난 2월 5일 영원히 잠에 들었다. 미국 코네티컷의 자택에서 53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온 아내, 오랜 친구이자 46년간 현장을 함께한 매니저가 그의 곁을 지켰다. 70년간 빼곡히 채워진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필모그래피는 적시에 당도한 기회를 낚아챈 행운의 사나이의 그것이다. 플러머의 연기 궤적은 미디어 산업의 변천사를 요약한 훌륭한 견본이자 성실하게 일해온 직업인이 꾸려낸 순탄한 보고서다. 192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퀘벡 근방에서 성장한 그는 1940년대에 고국에서 활동하면서 불어로도 유창한 연기를 펼쳤다. 라디오 드라마의 성행과 함께 연극 무대와 방송국을 오가며 커리어를 쌓았고, 1954년 뉴욕으로 건너가 브로드웨이에서 데뷔한 후 곧장 런던 웨스트앤드로 진출하며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삶에 금세 적응했다. 플러머의 강직한 코는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위한 것이었고, 웅장한 체격과 중후한 목소리, 음영이 짙게 드리운 조각상 같은 이목구비는 <오셀로> <맥베스>의 주역을 위해 준비된 축복이었다. 영국 왕실국립극장,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가 보내온 총애는 2004년 <리어왕>까지 계속됐다. 그는 1960년대 초까지 텔레비전 대중화와 컬러화, 케이블 채널의 확장세 속에서 TV드라마에 활발히 이름을 올렸고 평생 동안 80편에 육박하는 TV 경력을 부지런히 완성했다.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은막의 세계에 발을 들인 첫 작품은 시드니 루멧 감독의 <스테이지 스트라이크>(1958)지만 스크린 스타의 반열에 합류한 결정적 계기는 로버트 와일러 감독의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이다. 당시 숀 코너리를 제치고 이십세기폭스사의 야심작에 투입된 플러머는 훗날 영화 팬들이 <사운드 오브 뮤직>에 드리운 나치의 그림자를 잊고 멜로드라마적 낭만으로 기억하도록 만든 주범이 됐다. 이후 플러머는 <태양 제국의 멸망>(1969), <나폴레옹>(1970), <왕이 될 남자>(1975) 등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하며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견될 정도였지만, (젊은 시절에 꽤나 귀족적이고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던 대로) <사운드 오브 뮤직>을 회자하는 세간의 반응에 자주 탐탁찮아 했다. 1976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수년간 소화했던 뛰어난 역할들에도 불구하고 ‘사카린’ 같은 역할로 알려지게 되어 유감이다”라고 직설을 던질 정도로 예술성의 평가에는 냉정했으나, 줄리 앤드루스와는 줄곧 신사다운 우정을 유지했다. 2010년 <사운드 오브 뮤직> 45주년 행사에 참석해 다정하게 추억담을 나누는 플러머의 모습에선 한결 느긋함도 느껴진다. 부모의 이혼 후 “관심을 받기 위해 촌극과 마임에 몰두”했고, 형제도 없이 홀로 보내는 캐나다의 긴 겨울밤을 “큰 소리로 책을 읽으며”(<타임>) 지샜던 캐나다 소년은 그렇게 미국인들의 캡틴, 영국인들의 햄릿이 되어 스타의 삶을 살았다. 1990년대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스타트렉6: 미지의 세계>(1991), <12 몽키즈>(1995)에서 장르영화에 대한 전위적인 안목도 드러낸다. 대기업 비리를 고발한 기자 마이크 월리스를 연기한 마이클 만 감독의 <인사이더>(1999)로 주목받았고, 러셀 크로의 상대역으로 정신과 의사를 연기한 <뷰티풀 마인드>(2001)는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할리우드는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품은 비옥한 세월의 주름을 펼쳐 역사와 판타지의 무대로 삼았다. 그는 <알렉산더>(2004)에서 아리스토텔레스로, <내셔널 트레져>(2004)에서 존 애덤스로, <톨스토이의 마지막 편지>(2009)에서 톨스토이로 변신했고,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2009)에선 테리 길리엄 감독과 재회해 영혼 세계를 빚었다. 대중의 배우가 되는 일에 마음을 고쳐먹은 그는 다수의 아동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 연기에도 부지런히 임했는데, 그중 픽사의 <업>(2009)에서 연기한 탐험가 찰스 F. 먼츠는 빌런 캐릭터가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음을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전성기는 80대에 또 한번 예고 없이 찾아왔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2009)으로 생애 처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듬해 <비기너스>로 다시 한번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결국 트로피를 차지했다. <비기너스>에서 플러머가 연기한 캐릭터 할은 45년간의 결혼 생활 후 시한부 판정을 받고 커밍아웃을 선언한 남자다. 마이크 밀스 감독의 독특한 서정과 조우하고 퀴어영화의 시대에 호흡하는 그의 행보는 동시대 관객에게 크리스토퍼 플러머라는 스펙트럼에서 아직 보지 못한 부분이 훨씬 많을 거라는 이상한 조바심도 안겼다. 이윽고 그는 성추행 사실이 드러나 하차한 케빈 스페이시를 대신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올 더 머니>(2017)에 합류하면서 전설적인 무용담도 만들었다. 개봉 두달 전에 프로덕션에 투입된 플러머가 보여준 것은 엄청난 대사 암기력과 현장 장악력만이 아니라, 대체 캐스팅에 아랑곳하지 않는 대배우의 품격이었다. 트럼프 시대에 반응한 할리우드의 새로운 클래식 <나이브스 아웃>(2019)에서는 살인 미스터리의 중심축이 되어 미국 사회의 축소판을 흔들고 떠났다. 119개의 영화, 71개의 텔레비전 시리즈, 17개의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의 일가를 이룬 배우가 영원한 탐구의 대상으로 남으리라는 점에서, 가문의 수장이자 대문호인 할란 트롬비 캐릭터는 플러머를 대신해 절묘한 고별사를 남긴 셈이 되었다. 2015년 미국 토크쇼 <코난>에 출연한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길고 꾸준한 자신의 이력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난 절대 은퇴하는 법이 없을 거예요. 은퇴를 바라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조금 유감스러워요. 그건 자기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스스로가 자부한 대로 플러머는 지칠 줄 모르는 열성과 자신감, 커리어의 부침을 허락하지 않는 프로페셔널함을 끝까지 지켰다. 그는 90대가 된 타계 직전까지 2021년 개봉예정인 애니메이션 <황금 가면의 영웅들>과 <울트라덕>의 목소리 녹음을 마쳤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그리워하는 세대와 <나이브스 아웃>을 즐겨본 세대가 모두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살아온 시간보다 몇 곱절이나 길게, 배우는 존재한다. 세월은 그의 영화 앞에서 언제까지나 기세를 잠재우고 유순한 관객이 되어줄 것만 같다.

[파리] 프랑스 영화인들 대거 참여한 넷플릭스 시리즈 '뤼팽' 시즌2 제작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미드’나 ‘영드’와 달리 ‘프드’라는 단어는 아직 어색하다. 거센소리에 같은 모음이 중복되어 발음하기 매끄럽지 않다는 일차적인 이유가 아니라 프랑스 드라마가 국외 팬들에게 그만큼 영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일 테다. 실제로 프랑스인들도 자국 드라마나 시리즈물에 그다지 높은 기대를 하지 않고, 감독과 제작사, 배우들도 드라마/텔레비전에 대해서는 장편/극장보다 ‘쉬운 차선책’, 좀더 막말로 하자면 ‘변절’과 연관지어왔다. 단적인 예로 2015년 넷플릭스가 제작한 첫 프랑스 드라마 <마르세유>(출연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찬반이 엇갈린 애매한 시청자들의 반응과 달리 “산업 재난”(<르몽드>), “경이롭기까지 한 놀라운 실패작”(<텔레라마>) 등 평단의 일관적인 비판을 받고 결국 시즌3 방영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2017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당시 이 영화를 극장 개봉하지 않겠다는 넷플릭스의 정책에 프랑스 영화인들이 일제히 반발했고, 이에 영화제측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은 프랑스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따로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딥 프레임을 건드리면 행동은 바뀌는 법. 전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으로 2020년 프랑스영화 극장 관객수는 전년 비교 70% 하락했고, 지난해 10월 30일 이후 극장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그러는 사이 굵직굵직한 영화계 인사들이 OTT 서비스와 TV드라마에 본격 투입됐다. 특히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인물 2위로 뽑힌 <언터처블: 1%의 우정>(2011)의 주연배우 오마 사이는 넷플릭스가 제작한 드라마 <뤼팽>에서 음식 배달원, 청소 노동자, 백만장자를 넘나드는 천의 얼굴을 가진 괴도 신사 뤼팽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 작품의 연출은 <인크레더블 헐크>(2008), <타이탄>(2010),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2013)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다 고국으로 돌아온 루이 르테리에가 맡았고, 총지휘는 고몽사의 책임자 시도니 도마스와 부책임자 크리스토퍼 리안데가 맡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참여진의 이름과 타이틀만으로도 영화 개봉 전부터 관객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월 8일 처음 방영된 <뤼팽>은 4주 만에 세계적으로 7천만 플랫폼 가입자를 유혹했고, 넷플릭스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시청률 1위를 차지한 프랑스 드라마가 되면서(참고로 프랑스 드라마가 국외에서 넷플릭스 톱10 리스트에 오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숨겨뒀던 ‘프드’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제작진은 현재 시즌2의 여름 개봉을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뤼팽>이 한번의 지나가는 파도가 아니라 ‘프드’의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