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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미래를 그리는 소녀

초능력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도 기왕이면 다양한 초능력자들이 얽히고 설키며 서로의 능력을 뽐내는 이야기가 좋다. 그냥 초능력만 뽐내도 될 것을, 요즘 영화 속 친구들은 왜들 그렇게 서로에게 유치한 별명을 붙이고 이상한 쫄쫄이를 입어대는지. 나는 슈퍼히어로 장르가 유행하는 세태에 불만이 많은 편이다. 사실 이야기 노동자에게 초능력은 손쉽게 스펙터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치트키 중 하나다. 주인공들에게 뻔하디뻔한 능력 몇개만 쥐여줘도 사람들이 금세 ‘우와’ 하며 빠져들게 마련이니까. 사람들은 대개 초능력을 좋아한다. 이건 지겹도록 오래된 전통이다. 4천년 전 <길가메시 서사시>부터가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의 이야기였고, 그리스신화 속 신들도 초능력을 하나씩 가졌다. 심지어 예수님도 기적을 행하지 않던가. 기원전에 쓰여진 힌두 경전에서조차 신도들이 기나긴 설법을 지루해할까 봐 초인들의 전쟁 이야기를 도입부에 삽입하곤 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초능력 이야기에 끌린다. 누구나 한번쯤 초능력을 갖기를 간절히 소망했었고, 혹시 내게 그런 능력이 숨겨져 있진 않을까 착각해본 경험이 있다. 그런 탓에 제대로 된 초능력 이야기를 만나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흔한 도구인 만큼 능숙하게 다루기 어려우며, 남발된 탓에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다. 게다가 워낙 반복되어온 소재이기에 써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아이디어가 이미 고갈된 상태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참신한 초능력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폴 맥기건 감독의 <푸시> 역시 이런 뻔하디뻔한 초능력 영화 중 하나다. 염력, 예지력, 텔레파시, 사이코메트리, 초능력자를 감시하는 비밀 조직, 새하얀 병동에서 이루어지는 불법 실험, 기억상실, 뭔가 있어 보이는 과묵한 선글라스 악당, 초능력을 강화하는 위험한 약물…. 아이고, 나열된 단어만 읽어도 벌써 극장에서 열번은 보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줄거리도 딱히 특별하진 않다. 지질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남자주인공이 신비로운 소꿉친구(사실 소꿉친구인지 명확지 않다)와 재회해 자신의 혈통과 힘을 깨닫고 거대한 적을 무찌른다는 왕도적 스토리. 영화는 하이틴 판타지 소설과 소년 만화에서 지겹도록 반복된 원형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그만큼 좋지 않은 클리셰를 다 갖춘 작품이기도 한데, 대책 없이 뻔한 실수를 반복하는 주인공이나 그런 주인공에게 순순히 죽어주는 편리한 악역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부터 저 사람들이 대체 왜 저러나 싶어지기도 한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주연배우인 크리스 에반스가 이런 지질이 주인공 역할을 정말 끔찍하게 못한다는 거다. 그가 캡틴 아메리카가 된 이후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물론 <푸시>가 <어벤져스>보다 먼저 촬영된 영화지만 이제 우리는 그를 캡틴과 분리해서 생각할 방도가 없다. 크리스 에반스는 이 영화에서 지질하지도 멋지지도 않은 정말이지 절묘하게 어정쩡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겠다만. 한껏 욕을 늘어놓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작품을 정말 사랑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남들이 뭐라든 내 마음속 최고의 작품이 하나씩은 있지 않던가? 내게는 <푸시>가 그런 작품이다. 몇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석 같은 영화. 언젠가 초능력 소설을 쓰게 된다면 <푸시> 같은 작품을 쓰리라 매번 다짐할 정도다. 비록 깔끔하게 엮어내진 못했지만, 이 영화에는 너무나 흥미롭고 매력적인 재료들이 가득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지점은 이 작품이 초능력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다. 90년대 로큰롤 뮤직비디오처럼 감각적이고 호사스러운, 시각 매체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다양한 시도가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SF 작가로서 이런 자극은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언’과 ‘기억’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활용도 인상적이다. 이 작품에는 미래를 예지하는 초능력자인 ‘와쳐’와 기억을 조작해 타인을 조종하는 초능력자 ‘푸셔’가 서사의 거대한 두축으로 등장한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와쳐의 예언에 의해 미래를 속박당하고, 푸셔의 조작에 의해 자신의 과거를 의심하는 상황에 놓인다. 여기에 더해, 다수의 예언가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미래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미래는 점차 복잡하게 뒤엉켜간다.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주인공과 타인의 미래를 훔쳐보는 악역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 서로의 기억을 편집하고 조작하는 두 진영의 치열한 정보전. 그리고 후반부의 참신한 트릭까지 합쳐지면 꽤나 매력적인 두뇌 싸움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매력적인 결과물이 나왔냐고 묻는다면 글쎄…. 각본이 조금만 더 똑똑했다면 좋았을 텐데. 매력적인 초능력자들 중에서도 특히 다코타 패닝이 연기한 예언가 ‘캐시’는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다.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열세살 소녀에게 주위 사람들은 상영시간 내내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데 그럼에도 캐시는 꿋꿋이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을 그려 미래를 예언하지만 정작 그림 실력이 완전 꽝이라는 설정도 재미있다. 이처럼 과거도 미래도 엉망으로 조작된 이들에게 과연 자유의지는 존재할까? 꽤 심오하고 흥미로운 주제다. 하지만 이런 매력적인 설정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거대한 대의도 개인적인 동기도 상실한 채 누군가가 깔아놓은 계획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 때문에 관객인 우리는 그들의 행동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작정하고 이 주제를 깊게 파고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 영화의 또 한 가지 사랑스러운 요소는 홍콩이라는 독특한 무대다. 로케이션과 세트의 구분이 어렵지만 꽤 그럴싸하게 촬영된 홍콩의 골목골목은 정말 아름답고 유니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많은 초능력자들이 그 좁은 도시 안에 숨어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정말이지 홍콩은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가 아닐까.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방문하기 어려워진 탓에 예전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기껏 홍콩을 무대로 삼았으면서 스크린에서 활약하는 건 온통 서양인이고 그나마 등장하는 홍콩 사람들은 전부 무식한 범죄자뿐이라든지. 그나마 인상 깊게 등장하는 여성 인물마저도 뻔한 눈화장에 뻔한 일자 앞머리를 하고 있다든지. <푸시>는 보석처럼 훌륭한 재료를 한껏 채워넣은 영화다. 하지만 너무 많은 양의 재료를 그러모은 탓에 무엇 하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펑 터져버린 안타까운 작품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최고로 흥미로운 영화겠지만 누군가에겐 최악의 시간 낭비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이 이런 저런 머릿속 의심을 깨끗이 놓아버릴 수만 있다면 이렇게 재미있는 초능력 영화도 드물 것이다.

Z세대 최고의 스타로 등극한 젠데이아의 변천사

본명은 젠데이아 머리 스토머 콜먼(Zendaya Maree Stoermer Coleman). ‘젠데이아’라는 예명으로 스크린과 공연장, 텔레비전을 오간다. 할리우드가 일찍이 “Z세대 최고의 스타!”라고 호들갑을 떤 1996년생 배우 젠데이아는 확실히 미국 10대에게 제1의 워너비로 사랑받는 존재다. 그는 데뷔와 함께 스타 반열에 오른 드문 행운의 소유자다. 13살에 디즈니 채널의 틴에이지 시트콤 <우리는 댄스소녀>(2010)의 주인공으로 주목받았고, 16살에 이미 자기 이름을 딴 TV시리즈 <젠데이아의 스토리>(2013)를 얻어낼 만큼 손꼽히는 영 앤드 리치 스타로 불렸다. 음반 시장도 빠르게 반응해, 2012년부터 할리우드 레코드와 함께 팝스타의 명성도 일궈왔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은, 셀리나 고메즈의 뒤를 잇는 미국 10대의 셀러브리티라는 틀 바깥에서 젠데이아를 상상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디즈니 채널의 스타는 곧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에서 스파이더맨의 여자 친구를, <위대한 쇼맨>(2018)의 서커스 쇼컬을 연기하면서 미국인들의 ‘블록버스터 달링’이 됐다. 2019년 미국 매체 <복스>는 ‘무엇이 젠데이아를 엄청난 셀러브리티로 만드나’라는 기사를 내고, 그 첫머리로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레드카펫에서 벌어진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아직 영화계의 신인이었던 19살의 젠데이아는 드래드록 헤어(머리를 굵게 땋아 길게 늘어뜨린 스타일로 흑인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를 선보였다가, 한 연예 매체 기자로부터 “머리가 젠데이아를 삼키고 있다”, “잡초 같다”는 평을 듣는다. 인종차별적 발언에 분개한 네티즌은 이튿날 젠데이아가 자신의 SNS에 올린 장문의 입장문을 읽고 금세 위로받았다. 그녀는 “드래드록 헤어는 내게 힘과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이라고 우아하지만 분명하게 못박았다. 이후 젠데이아는 가수, 배우, 그리고 책을 낸 작가이면서 인종주의와 페미니즘을 위해 싸우는 액티비스트로 자리 잡으며 만능 아이콘을 원하는 Z세대의 롤모델이 됐다. 젠데이아가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하는 과정은 배우로서 도약하는 시기와도 맞물렸다. 샘 레빈슨 감독의 시리즈 <유포리아>에서 마약중독자 루를 연기한 그는 2020년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역대 최연소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된다. 레빈슨 감독은 <유포리아>의 소녀가 <맬컴과 마리>의 성숙한 여성에도 적역일 것임을 진작 눈치챘다고 밝히면서, 젠데이아가 “언젠가 감독 데뷔도 할 것으로 강력히 예상되는 인재”라고 덧붙인 바 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다재다능한 젠데이아가 적어도 당분간은 연기에만 전념해주었으면 싶다. 비정하고 신랄한 모욕, 눈물의 호소, 코웃음, 아련한 애정, 실망과 광기를 표출하는 <맬컴과 마리>의 마리에게서 우리는 이미 배우 젠데이아의 무한한 미래를 목격해버렸다.

[인터뷰] '정말 먼 곳' 강길우 - 편안함의 내공

낯선 이에게서 문득 편안함을 느낄 때처럼, 배우 강길우는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이상하리만치 미덥고 묵직하다. 박근영 감독의 데뷔작 <한강에게>(2018)로 본격적인 장편영화 활동에 시동을 건 그는, <파도를 걷는 소년>(2019), <마음 울적한 날엔>(2020)을 거쳐 올해 <정말 먼 곳>에서 그동안 집약한 내공을 펼쳐 보인다. 미술학도에서 연기로 전향해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서 연기의 태도를 다진 뒤, <명태> <시체들의 아침>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의 단편영화에서 꾸준히 활약한 강길우는 자신만의 궤적을 흔들림 없이 지켜온 배우다. <정말 먼 곳>에서 그가 연기한 진우는 연인 현민(홍경)과의 사랑을 곁눈질하는 사람들로부터 고통받고, 동생 은영(이상희)에게 오랫 동안 함께한 딸(김시하)을 내주어야 할 처지에 있다. 말 없는 동물처럼 묵묵히 자기 삶의 무게를 진 남자에게서 비극을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지만, 강길우는 그 안에 하루에도 수십번 빛과 그림자를 달리하는 풍경처럼 온갖 감정의 편린을 빼곡히 채워넣었다. 강길우만의 차분한 속도, 그리고 궁금한 깊이를 만났다. -첫 장면에서부터 양털을 깎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강원도 화천에서 목장 운영을 생업으로 하는 남자가 되기 위해 외양부터 완전히 변신했더라. =공간에서 이질감이 없어 보였으면 했다. 머리도 수염도, 기를 수 있는 건 다 길렀다가 촬영 한두달 전에 방향을 바꿔서 완전히 밀어버렸다. 태닝을 했고, 소처럼 우직한 모습이 보였으면 해서 체중도 10kg 증량했다. 배우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기 모습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스갯소리로 주변에 나를 비주얼 배우라고 소개한다. 멋있어서가 아니라, 캐릭터에 필요한 비주얼을 철저히 맞춘다는 의미로. (웃음) -진우는 이미 산속에서의 삶에 충분히 적응한 사람처럼 보인다. 박근영 감독과 촬영 전부터 오래 함께하면서 메소드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안다.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우는 것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게 더 중요했다. 영화를 찍기 5~6개월 전부터 일부러 다른 작품은 하지 않고 <정말 먼 곳>에만 몰두했다. 외양부터 태도, 극중 세계가 주는 고독함까지 다른 작업과는 섞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게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딸을 키우는 역할이라, 한달 정도 농구하러 스포츠센터에 오는 아이들을 태워주는 운전기사로 일해보기도 했다. 덕분에 배우와 달리 늘 규칙적인 노동을 하는 진우의 리듬도 알아갈 수 있었다. -화천에 도착한 현민과 마중나온 진우가 포옹할 때 시간이 잠시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은 순간이 있다. 영화 내내 두 배우가 무척 친밀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홍경 배우와는 숙소에서 같은 방을 썼다. 촬영 기간인 한달 내내 거의 잠만 잘 수 있는 좁은 방에서 함께했는데, 매일 밤마다 장면과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케미스트리가 생기더라. -과거를 설명하지 않는 영화지만 진우가 게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받고 사람이 적은 곳으로 떠나온 인물임은 알 수 있었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실은 매우 좁고 갑갑한 곳에 갇힌 느낌으로 살지 않았을까, 그래서 말문을 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영화에서 잠깐 진우와 현민이 같은 대학에 다녔다는 정보가 나오는데 진우가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자기 정체성을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헤아려보았다. 진우의 과거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숨이 막혔다. -진우는 현민과 은영 외에도 목장 주인 중만(기주봉), 그의 딸 문경(기도영), 그리고 중만의 모(최금순)와 유사 가족으로서 긴밀한 관계를 이룬다. =진우를 가운데 두고 모두가 연결된 구조라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둘이 나오면 50%씩, 셋이 나오면 33%씩 나눠 가진다는 마음으로 상대 배우를 믿고, 듣고, 바라봤더니 그제야 다가오는 게 있더라. 연기의 원론에 충실했달까. (웃음) 중만도 진우처럼 혼자 딸을 키웠고, 역시 홀로 중만을 키운 할머니는 이북을 떠나온 타향민이라는 점에서 진우와 비슷하다. (할머니 캐스팅에 고심하던 박근영 감독에게 강길우가 직접 이홍매 감독의 외할머니이자 연길 출신의 연기 베테랑인 최금순 배우를 소개했다.-편집자) -연기를 하기 전엔 미술을 했고 뮤지컬에서 노래 실력도 증명하지 않았나. 발산할 재능이 무척 많은 배우인데 독립영화에서 오히려 비우고 절제하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하하, 노래는 소싯적에…. 이런 형태로 시작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비워야 또 채울 수 있으니까. 앞으로 보여드릴 것이 더 많다는 생각에 스스로도 기대가 된다. 다만 구태여 많은 작품을 하기보다는 한 작품을 가능한 한 더 잘하고 싶다. 배우는 맡은 작품의 수가 아니라 ‘좋은 작품’으로 기억된다. -출연작 <더스트맨>도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소속사 없이 혼자 활동하고 있는데 고민도 많아질 시기이겠다. =간간이 매체 출연 제의가 있는데 관련해 산업 속에 들어갈 때 배우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지점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체감하고 있다. 신념과 방향성을 어떻게 다듬고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할지, 그걸 믿어줄 회사와는 또 어떻게 만나면 좋을지 차근차근 고민하고 있다.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불새의 못다 한 꿈

국내의 SF 마니아들에게 한국 SF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전설적인 SF 전문 출판사 ‘불새’의 폐업을 꼽으리라. 불새 출판사의 마지막 폐업(1인 출판사인 불새는 그 이름에 걸맞게 폐업하고 부활하기를 반복했다)은 특히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는데, 왜냐하면 당시 불새의 차기 출간 예정작이 <코드웨이너 스미스 걸작선>이었기 때문이다. 코드웨이너 스미스(Cordwainer Smith)가 누구냐고? 그는 1950년대에 활동한 미국의 SF 작가다. 코드웨이너 스미스라는 이름부터가 일단 너무 멋있다. 게다가 이 사람, 살아온 이력을 들여다보면 깊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코드웨이너 스미스의 대부는 신해혁명의 주역 ‘쑨원’으로, 이는 국제 정치 활동가였던 아버지와의 친분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도 스미스는 동아시아 정치 지도자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지내는 유년기를 보냈으리라 추측된다. 때문에 스미스는 어릴 적부터 전세계를 누비며 테러와 납치의 위협을 피해 30번 이상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고, 아시아와 유럽의 다양한 문화적 특성과 차이를 자연스레 몸에 체득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을 거쳐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무려 23살에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6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적 재능과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동아시아 외교와 군사 심리전 전문가로서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첩보원으로 중국에 파견되기도 하고,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군사 자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꾸준히 소설을 썼다. 이언 플레밍이나 존 르 카레가 그러했듯 처음에는 첩보 소설을 몇편 썼는데, 결국 SF로 전향했다고 한다. 코드웨이너 스미스라는 필명 또한 SF를 쓰기 시작하며 지은 이름이다. 외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나에게 코드웨이너 스미스는 그야말로 환상 속 유니콘 같은 존재다. 나는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너무나 간절히 사랑하지만, 40편에 달하는 그의 저작 중 내가 읽어볼 수 있었던 작품은 딱 5편뿐이다. 왜냐하면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이 5편뿐이었으니까. 더 안타까운 사실을 알려드릴까? 아마도 여러분 중 대부분은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 해도 이 중 세편밖에 읽어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다섯편의 번역작 중 <황금의 배가 오! 오! 오!>와 <수즈달 중령의 범죄와 영광>은 현재 구입해 읽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은 2007년 창간되어 2010년까지 명맥을 이어온 장르 전문지 <판타스틱>(FANTASTIQUE)의 2008년 3월호에 수록되었다. 다섯편의 작품 중 <황금의 배가 오! 오! 오!>는 내가 독자로서 가장 사랑하는 해외 SF 단편이자, 작가로서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크게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먼 미래 우주의 인류를 보호하는 집단인 ‘인류대행기관’ 시리즈에 속하는 짧은 단편인데, 그중에서도 심리전과 첩보전의 재미가 탁월한 작품이다. 행성 라움소그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인류대행기관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한척의 배를 파견한다. 황금의 배는 놀랍도록 거대하고 놀랍도록 빠르게 움직여 그 실체를 누구도 직접 확인하지 못한 비밀스러운 배다. 사람들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실은 황금의 배가 지나간 후엔 언제나 그 적들이 초토화된다는 것뿐이다. 살짝만 내용을 스포일러하자면 황금의 배는 가짜다. 황금의 배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빛보다 빠르게 행성을 스쳐 지나가는 동안, 행성의 대기권 내부에서는 반란 세력을 와해시키기 위한 또 다른 비밀 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황금의 배라는 거대하고 우스꽝스러운 상징물과, 그 과장된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극도로 효율적이고 차가운 ‘진짜 전쟁’의 그늘. 작품은 협소한 지역의 사소한 사건을 짧게 다루고 있을 뿐이지만, 이 간결한 묘사만으로도 미래 인류가 어떤 정치적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인류대행기관이 어떤 사상을 지닌 조직인지 거대한 우주 세계를 효과적으로 짐작게 하며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 냉혹한 첩보와 기만적 심리전이 진득하게 배어 있는 스페이스 오페라 본연의 재미도 탁월하다. 1950년대에 이미 이런 세련된 SF를 쓴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같은 잡지에 수록된 <수즈달 중령의 범죄와 영광> 또한 탁월한 아이디어를 지닌 시간 여행 이야기다. 이 작품은 아이디어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스포일러여서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굉장하다. 그리고 정말 귀여운 고양이들이 나온다. 매우 독창적인 방법으로 위기에서 탈출하는 수즈달 중령의 이야기를 꼭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위의 두 작품을 구해보기 힘들다면 에 실린 <스캐너의 허무한 삶>이나 <방황하는 씨’멜의 연가>를 한번 찾아보시길. 이 두 작품 또한 ‘인류대행기관’ 시리즈에 속하는 작품들로, 인류에 대한 코드웨이너 스미스만의 개성적인 고찰과 투쟁을 담고 있다. <스캐너의 허무한 삶>은 몸에 대한 짧은 단편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우주여행에서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신체와 정신을 분리한 존재들인 ‘스캐너’들이 등장한다. 스캐너들은 뇌와 몸을 완전히 분리해 센서와 기계장치를 통해서만 외부를 인식하며, 아무런 감각도 통증도 느끼지 못한다. 불법 시술을 통해 일시적으로 감각을 다시 일깨운 스캐너 마텔은 우연히 감각 차단 없이도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고, 자신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보수적인 스캐너 조직에 맞서 투쟁하기 시작한다. <방황하는 씨’멜의 연가>는 동물의 유전자가 섞여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하층민(언더 피플)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층민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믿는 대행기관 의원 제스토코스트는 고양이의 유전자가 섞인 하층민 여성 씨’멜을 만나 하층민들의 권리 신장을 이루고자 한다. 백인 남성이 손녀뻘 여성과 사랑에 빠져 시혜적으로 권익 향상을 이루어주는 이야기 구성은 아쉽지만, 작품의 발표 시기를 고려하면 다인종 다문화를 존중하고자 하는 이러한 문제의식 자체는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당시 주류 백인의 장르였던 영미 SF계에서 코드웨이너 스미스는 소수자와 약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몇 안되는 작가였고, 때문에 어슐러 K. 르 귄으로부터 진심 어린 찬사를 받기도 했다. 또 스미스는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쥐와 용의 게임>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파트너 고양이의 마성에 흠뻑 홀려버린 텔레파시 우주 비행사들의 이야기니까. 이 작품은 현재 각종 온라인 서점에서 전자책으로 판매되고 있다. 부디 뜻있는 출판 관계자께서 이 칼럼을 읽고서 분연히 일어나 불새 출판사의 못다 한 꿈을 이뤄주시기를. 오늘도 <판타스틱> 전권이 나란히 꽂힌 서고 앞에서 <코드웨이너 스미스 걸작선>의 출간을 간절히 기도해본다. 에후, 쓰고 보니 진짜 꿈같은 소리구먼. <황금의 배가 오! 오! 오!>나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UFO는 실재할까? 국내 최고 UFO 전문가 맹성렬, 지영해 교수의 토론

맹성렬 우석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와 지영해 옥스퍼드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는 국내 3대 UFO 전문가로 꼽힌다. 맹 교수는 공학자이고 지 교수는 인문학자라, UFO에 대한 입장은 조금씩 다르다. <씨네21>은 이들에게 우선 UFO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부터 시작해 UFO에 대한 여섯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같은 질문을 받고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UFO가 실제로 존재하나. 어떻게 그걸 믿을 수 있나. 맹성렬 UFO는 미군의 군사용어였다. 오늘날 대중적으로 외계인의 우주선쯤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UFO의 원래 의미는, 가능한 모든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확인한 결과 기존 비행체나 자연현상으로 확인되지 않은 비행체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전체의 약 5%를 차지한다. 기존 현상과 구분되는 UFO의 특징은 ‘현재 기술 수준으로 불가능한 초가속’, ‘회전 반경이 거의 없는 급격한 방향 전환’, ‘저공 초음속 비행 중 충격음을 내지 않음’, ‘완벽한 스텔스 기능’ 등이다. 지영해 존재한다. 수없이 많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UFO와 외계인을 전세계에서 수천건에 달할 만큼 목격해온 것이 그 근거다. 사람들이 직접 목격한 것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이유는 그런 경험을 소화하고 해석할 수 있는 세계관적 틀이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말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판단은 메타 패러다임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고, 그것이 없으면 의심을 하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메타 패러다임이 출현하기 직전의 역사적인 순간에 살고 있다. -UFO를 조종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그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맹성렬 확정적으로 답하긴 어렵다. 하지만 우리에게 보여주는 기술로 보아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높은 문명임을 짐작할 수 있다. 본격적인 우주 시대에 접어들면서 칼 세이건 등이 아광속 비행에 의한 은하 식민지 이론을 내놨다. 그에 의하면 역사가 시작된 지난 5천년 동안 외계인이 지구를 2번 정도 방문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학술적 이론에 기반해 에리히 폰 데니켄 등이 주장한 고대 우주인 지구 방문설도 각광받고 있다. 지영해 그들은 지구상에서 인류나 다른 생명체와 같이 진화해왔지만 인간과는 다른 존재다. 보통 생각하듯이 먼 별이나 은하, 다른 차원과 미래 혹은 영적 세계에서 오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의 현재 몸 상태와 문명 상태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우리의 바로 옆 공간을 점유하고 살고 있으며, UFO를 타고 우리 공간으로 들어온다. 바닷속 물고기가 땅 위의 인간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 건너오지 못하는 것과 반대로, 인간은 잠수함을 타고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과 같다. -UFO나 외계인이 출현한다는 건 인간 문명에 어떤 의미인가. 지영해 인간 이외에 다른 존재가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로 이미 큰 의미를 지닌다. 더 큰 의미는 지구 혹은 세계를 둘러싼 수많은 다른 생명 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인간 의식이 확장된다는 뜻이다. 외계인이 반드시 인간보다 도덕적, 정신적으로 우월하지는 않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실수도 한다. 그러나 질병, 전쟁, 환경 파괴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줄 기술과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외계인의 출현은 큰 의미가 있다. 맹성렬 한동안 인류는 지구 밖 세상을 신화적 영역으로 간주해왔다. 천문학이 발달하면서 지구 바깥이 더이상 신화적 세계가 아님을 알게 됐다. 이미 인류는 달에 발을 디뎠으며, 오래지 않아 화성에도 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같은 고등 생명체가 지구 이외의 다른 천체에도 존재할 것이란 생각은 이제 상식처럼 됐다. 지구 바깥의 지적 생명체가 우리를 방문한다면 이는 인류 문명이 지금까지 겪은 그 어떤 혁명적 상황을 훨씬 뛰어넘는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일으킬 것이다. -앞으로 UFO와 외계인 문제는 어떻게 진행될까. 외계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도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지영해 중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는 인류 운명과 미래에 직결되는, 거시적인 문제에 대해 일반 대중이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느냐에 있다. 중진국으로서 한국은 아직 산적한 내부 문제 때문에 외계인 문제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영미권처럼 UFO 전문가 집단이 형성되지 않으면 한국인들의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핵시설에서의 UFO 출현, 해공군의 UFO와의 조우 때문에 4~5년 전부터 국방부와 의회 차원에서 UFO를 공식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서서히 세계적으로 커다란 인식의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맹성렬 앞으로도 UFO 출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세계의 열강들은 지금까지 해왔듯 그 구체적 사실들을 대중에 숨기려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미 몇몇 국가들이 외계인들과 손잡고 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UFO가 보여주는 기술이 지구 문명에 존재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이다. 어떤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UFO 문제는 계속 ‘톱 시크릿’으로 남을 것이다. 한국인의 인식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미국인들과 비슷한 수준으로까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UFO는 이미 ‘국민의 알 권리’의 문제다. 미국 대선 때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이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다. UFO는 그들 역사의 일부다. 우리에겐 그 정도로 UFO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왔던 적이 없다. -존재에 대한 믿음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은 누구나 UFO 출현 기사나 사진과 영상을 기대하고 그에 반응한다. 인류가 UFO와 외계인에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영해 인간에게는 천성적으로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세계를 넘어선 그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UFO와 외계인에 대한 관심은 절대로 막을 수 없다. 앞으로 30~50년 내 이 문제가 인류 보편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맹성렬 UFO나 외계인 문제는 파급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UFO나 외계인은 첨단 우주과학 시대에 기존 우상들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인류 대다수는 타 천체에서 나타나는 신적 능력을 보여주는 외계인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슈퍼맨> 시리즈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감독 스탠리 큐브릭), <프로메테우스>(감독 리들리 스콧)와 같은 할리우드영화가 이런 문제를 다뤘고, 향후 비슷한 내용이 증폭 변조돼 대중문화에 깊숙이 스며들 것이다. -외계인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맹성렬 오락적 요소가 강한 외계인 소재 영화들은 대부분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먼 우주로부터 여행해 우리에게 도달한 외계인들이, 인간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동과 판단을 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난센스다. 문명 수준이 크게 차이난다면 행동 패턴과 생각 패턴도 크게 다를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이런 문제를 상당히 합리적으로 묘사한 영화로, 칼 세이건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콘택트>(감독 로버트 저메키스)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인터스텔라>(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를 꼽고 싶다. 이 영화들은 우리보다 고도 문명권의 존재인 외계인이 매우 신중하게 인간과 접촉하는 모습을 그린다. 어쩌면 우리가 아직 UFO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포착하지 못한 건 외계인이 이런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영해 외계인 관련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빼고도 거의 700편이 넘는 수준이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우선 헵타포드 외계인과 형상 언어로 소통하는 영화 <컨택트>(감독 드니 빌뇌브)는 <인디펜던스 데이>(감독 롤랜드 에머리히)만큼 엉터리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대부분 외계인들이 텔레파시 방식으로 인간과 소통한다. 대신 <미지와의 조우>(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를 추천한다. <미지와의 조우>는 UFO 연구자들과의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영화다. 재미를 떠나 피랍 연구가로서 가장 현실에 가까운 영화는 ‘트래비스 월튼 외계인 피랍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트래비의 실종>(감독 로버트 라이버먼)이다.

'당신의 사월' 주현숙 감독 - 위계 없는 공동의 슬픔을 향해

4월 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당신의 사월>을 만든 주현숙 감독은 사회적 참사로 구획 지어진 객관의 역사로부터 혼자 숨죽여 울던 사람들의 가장 개인적인 시선을 발굴해낸다. 사고 당일 쓰러져가던 배를 바라보던 어느 교사, 수험생 시절에 교실에서 소식을 들었던 청년, 해역에서 시신을 수습했던 진도 어민, 유가족 곁을 지킨 인권 활동가, 장시간 시위 중인 유가족들을 대접한 카페 사장 등 세월호 참사에 얽힌 거리와 각도가 제각각인 보통의 초상들이 등장해 비밀스러운 슬픔을 고백한다. <계속된다-미등록 이주 노동자 기록되다>(2004)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가난뱅이의 역습>(2012)에서 소외된 청춘의 희망을 살피는 등 언제나 낮은 자리에 카메라를 위치시켰던 다큐멘터리스트 주현숙 감독. 세월호 7주기를 앞둔 어느 날, 그를 만나 여전한 슬픔의 자리를 더듬어보았다. -<당신의 사월>은 지금은 해체된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의 4주기 옴니버스 프로젝트 중 단편 <이름에게>를 확장한 결과물이다. 작업에 참여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참사 초기에 언론 지형이 좋지 않았기에 유가족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들려줄 만한 집단이 필요했고, 독립다큐멘터리신을 중심으로 영화인들이 모여 집회 영상, 프로젝트 영상 등을 만들었다. 초창기에 나는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바라볼 에너지가 없었다. 너무 큰 슬픔이어서 도저히 작업으로 소화할 수가 없었달까. 4주기 무렵이 되자 내 안에 있는 슬픔의 덩어리를 조금은 끄집어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거리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중일까 궁금해지더라. 그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어서 단편 <이름에게>를 시작했고, 장편까지 확장했다. -진상을 규명하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시선과 달리 세월호 참사에 얽힌 일반 시민들의 트라우마는 그동안 전면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다. 사고 당일에 뉴스 화면에서 가라앉는 배의 모습을 지켜본 우리 모두가 참사에 연루되어 있으나, 각자의 슬픔은 덜 중요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제 공개 이후 관객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보통은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감상 혹은 감독의 생각에 대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인데, <당신의 사월>에 관해선 영화와 별개로 그날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자신이 어떠했는지 개인적인 기억을 들려주는 관객이 많았다. 그날 그 시간에 어떤 상황에서 뉴스를 들었는지, 이를테면 무슨 옷을 입고 있었고 텔레비전은 어디에 있었는지까지 이야기할 정도로 아주 자세히 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날의 기억을 아주 힘들게, 그리고 선명하게 품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나 또한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슬픔의 위계를 느끼며 산다. 당사자와 목격자가 겪는 슬픔의 차이 속에 짓눌려져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이번 작업을 하는 동안만큼은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의 당사자가 될 수 있음을 의식했다. 이야기하지 못할 아픔이란 없다. -5명의 인터뷰이들은 어떻게 선정했고, 어떻게 가까이 다가갔나. =사건을 중심으로 물리적인 거리를 고려하며 인터뷰이들을 만났다. 사람을 범주화하면 안되는데, 제한된 시간 내에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다큐멘터리스트의 작업이란 게 어쩔 수 없이 이런 속성을 품게 된다. 평범한 사람, 자신의 일상에서 그 소식을 들었던 사람들을 만났고 저마다 미안함과 죄의식을 품고 ‘내가 과연 슬픔을 말해도 되는 것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자기는 세월호 참사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하는데, 막상 들여다보면 달랐다. 그날의 영향을 품고서 자기 삶을 성실히 일궈나가는 모습이 내게는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정말 그렇다. 괴롭고 슬픈 마음과 삶을 잘 살아가려는 노력이 공존하고, 그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날의 광경이 일종의 씨앗처럼 자리해 있다가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삶의 어느 시점에 피어나는 것 같다. 고통 앞에서 우리는 완전히 매몰되거나 혹은 외면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기 쉬운데, 진정한 성찰은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면서도 거리를 둘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1년 365일 슬퍼하지 않아도, 식음을 전폐하지 않아도, 울다가 갑자기 웃거나 밥을 먹어도 된다. 유가족들도 그렇다. 인간답게 이런저런 모순을 품고 있지만 그 안에서 같은 기억과 감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느꼈다. -인터뷰이들의 진술에 따라 기록 푸티지들이 이어지는 구성이다. 제작 당시에 이미 자료가 무수한 상황이었을 텐데 사건과의 거리감이나 시각적 일관성 등을 유지하며 솎아내기가 쉽지 않았겠다. =이미지가 감정을 증폭시키지 않았으면 했다. 감정을 조심스레 길어 올려보는 시도였다고 표현하고 싶다. 인터뷰에 이미 감정이 흥건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지는 건조하게 추렸다. 난제는 세월호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우리 안의 트라우마와 관계된 죽음의 현장이지 않나. 배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조금의 스펙터클도 끼어들지 않길 바랐다. 3년 만에 배가 인양되어 아주 멀리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으로 영화 속에 세월호를 처음 등장시킨 것도 그래서다. 주변에서 작게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헬기 소리로 감정은 간접적으로만 존재한다. 세월호 전체의 모습이 보이는 건 후반부에 눈내리는 풍경 속에서다. 마치 커다란 고래가 누워 있고 그 위로 눈이 쌓이는, 차갑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 이미지로 나온다. 아무 장치 없이 세월호의 모습을 보는 게 우리에게 가능할까, 아직까지도 너무 힘든 일이 아닐까 고민하던 찰나에 기적처럼 눈이 내렸다. -이민휘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후반부에 처음으로 노랫말이 있는 음악이 등장하는데 그 가사가 무척 슬프고 인상적이다. =우리 안에 있는 참사에 대한 공포, 몸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그런 감각이 이민휘 음악감독의 낮고 느린 멜로디 속에서 전달되었으면 했다. 또 시작과 끝 부분에선 자신의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생기를 경쾌한 톤으로 담으려 했는데 이런 부분까지 무척 세심하게 표현해줬다. 이민휘 음악감독에게 정말 고마운 게, 사운드 믹싱 작업 직전에 갑자기 가사가 있는 노래를 하나 넣자고 제안을 해주었다. 나보고 가사를 쓰라고 하도 닦달해서 처음엔 힘들었다. (웃음) 처음엔 막막해하다가 결국 우리 영화에 마지막 모습이 등장하는 세월호 희생자 고 문지성양을 떠올리며 썼다. 구체적인 생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렸으면 해서 그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보냈을 사소한 일과를 써내려갔고 쓰면서 많이 울었다. -노동과 가난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앞으로 계획 중인 작업이 있나. =내게 보통 사람들의 일상은 매우 중요한 주제다. 인간이 태어나서 매일 눈뜨고 밥먹고 이런저런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는 것, 정말이지 권태롭고 힘든 일 아닌가. 그 반복을 다들 어떻게 견디고 살아가는 건지 자주 궁금하다. 특히 그 일상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크기는 얼마나 큰가. 그 위대함을 계속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세월호의 슬픔을 안고 매일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계속 인터뷰해볼 요량이다. 304명을 채워보면 어떨까, 그렇게 하고 싶다.

1970년부터 2021년까지 윤여정의 어록, 데뷔작 '화녀'를 찍기 전부터 '미나리'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소감을 남기기까지

데뷔작 <화녀>를 찍기 전부터 <미나리>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소감을 남기기까지, 50여년의 윤여정 배우의 말들을 모았다. 솔직하고 거침없지만, 진정 어른으로서의 미덕을 갖추고 적절한 위트도 잊지 않는다. 그의 말들이 오래 기억되는 건 그런 연유일 것이다. “저는 결코 미인이 아니죠, 김기영 선생님도 저를 퍼니페이스(funnyface)라고 하셨는데 저 역시 동감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역은 근본적인 여성의 매력, 순종이나 미적인 감각을 벗어난, 웬만해선 타협이 잘 안되는 그런 성격을 가진 역할입니다.” 1971. 3. 11. <화녀>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 후 <조선일보>와 인터뷰. _________ “누가 저보고 그랬대요. ‘한국의 누벨바그’라고.(웃음) 제가 1966년 대학 1학년 때 탤런트 시험을 봤는데, 수험생 대부분은 잘생겼거나 예쁜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와중에도 제가 뽑힐 수 있었던 건 굉장히 달랐기 때문이었다더군요. 시험장에서 실기를 하는데 제 대사가 무척 빨랐다죠. 연출자들이 앉아서 ‘원래 저렇게 해야 맞는 건데’하는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2004. 1. 29. KBS2 드라마 <진주 목걸이> 출연 중 <신동아>와 인터뷰. _________ “연기자가 가장 연기를 잘할 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돈이 궁할 때예요. 배가 고프면 뭐든 매달릴 수밖에 없어요. 예술가도 배고플 때 그린 그림이 최고예요. 그래서 예술은 잔인한 거예요.” 2009. 12. 9. MBC 예능 <황금어장-무릎팍 도사>. _________ “칸국제영화제에선 영화를 콘서트 보듯이 보고 감독을 향해 박수를 쳐주는 거예요. 다 그렇게 오래 친대요. 나는 박수 받으라고 하고 나가려고 했더니 집행위원장이 나를 막으면서 “Enjoy It” 그러더라구. 그래서 다음번에 가면 Enjoy하려구.” 2012. 7. 6. SBS 예능 . _________ “연기의 비결은 누구나 그렇듯 바로 극중의 인물이 된 듯 분위기에 사로잡히는 거죠. 그래서 나는 한번 슈팅에 들어갔다 하면 비교적 쉽게 끝까지 소화할 수가 있어요. 말하자면 작품을 소화하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소화하느냐 하는 게 문제겠죠.” 1970. 8. 16. <화녀>를 찍기 전 <선데이 서울>과 인터뷰. _________ “아직까지 넌 창창하니까(선입견이) 빨리 깨질수록 좋아. 넌 이런 역할 저런 역할 다 할 수 있는 연기자인데, 유리관 속에서 ‘김희애는 저런 여자구나’ 하고 보여주는 건 다 굴레 아냐? 너 편할 대로 하는 게 좋지 않아? TV고 영화고, 이게 마치 장애물 경기 같아. 사람들이 기대하는 김희애가 있지만 그걸 뛰어넘어야 박수를 받지, 그 김희애를 유지하면 매너리즘이라고 사람들이 내팽개쳐. 그래서 우리 직업이 참 무서운 거 같아.” 2013. 12. 20. tvN 예능 <꽃보다 누나>. “연출가 선생님들이 ‘얼굴은 고사하더라도 쟤는 목소리 때문에 배우 안된다,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그러셨는데, 그분들이 다 고인이 되셨어요.” 2015. 3. 26. JTBC <뉴스룸>과 인터뷰. _________ “영화는 할 때는 모르잖아요. 다 절반의 실패인데 우리 모두 그 절반의 성공을 기대하면서 하는 거지. 그 과정에서 즐기면서 할 수 있는것 같아서 그게 참 좋아요. 내가 지금 40대면 이번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다음 단계는 어떻게하지, 여러가지 복잡했겠죠. 그런데 이제 난 그런 걸로 두려워하지 않게 됐어요. 내 나이에, 내가 뭘 하든 간에 나싱 투 루즈예요. 자유로워서 나는 지금이 좋아요. 참 감사할 일이지.” 2016. 5. 2. <계춘할망> 개봉 후 <씨네21>과 인터뷰. _________ “나는 나같이 살다 가면 되잖아. 언젠가부터 롤모델이란 게 생겨서. 그 사람은 그 사람이구, 나는 난데 왜 그사람 흉내를 내. 난 나처럼 살면 되지.(많은 배우들이 윤여정을 롤모델로 삼는다는 말에) 미쳤지, 걔네들이 날 자세히 몰라서 그러지.” 2017. 10. 18. tvN 현장토크쇼 <택시>. _________ “관객이 야유하며 ‘이혼녀는 텔레비전에 나오면 안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굉장히 좋아하죠. 이상하지만 인간은 원래 그렇습니다.” 2021. 4. 4. <뉴욕타임스>와 인터뷰. _________ “모든 상이 의미가 있지만 이번상은 특히나 고상하다고(snobbish) 알려진 영국 분들에게 좋은 배우라고 인정받아서 정말 기쁘고 영광입니다.” 2021. 4. 12.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 _________ “우리 <미나리>팀이 축구 경기에서 이긴 기분입니다. 정이삭 감독이 우리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주장과 다시 한번 시합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 나이에.” 2021. 3. 3. 제78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미나리> 수상 소감 _________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감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유가 없을 땐 원망을 하게 되지요. 제가 많이 여유가 생겼나봅니다. 지나온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네요.” 2021. 3. 16.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소감. _________ “사실 나는 누가 뭘 해보자고 한다고 솔깃해하진 않아. 늙었잖아 내가. 내가 강동원도 아니고 ‘예능에는 안 나가’, 그런 건 없지. 그런데 취향은 있겠지 내가. 나가고 싶은 데가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취향은 죽을 때까지 남아.” 2017. 4. 19. <씨네21> ‘<윤식당> 윤여정, 나영석 PD와의 대화’ _________ “솔직히 말하면 경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배우들간의 경쟁이요. 모두 다른 영화에서 각자 다른 연기를 펼쳤는데 비교할 방법이 없죠. 후보로 지명된 것만으로도 다섯명의 후보 모두 승자입니다.” 2021. 4. 14. <포브스>와 인터뷰. _________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는 잊을 수가 없지. 그 많은 대사를 해야 하는데, 그걸 늘 움직이면서 해야 했거든요. 대사를 마르고 닳도록 외웠는데 현장의 동선이 생각했던 거랑 달라지면 막히더라고. 나중엔 다리미질하면서 말하는 장면은 실제 다리미질을 하면서 외웠고, 식탁에 숟가락 놓으면서 말하는 장면에선 실제로 식탁에 숟가락을 놓으면서 대사를 외웠어요. 그런 노력은 앞으로 다시는 못할 거야.” 2021. 1. 29. <씨네21> ‘<미나리> 윤여정과 봉준호의 만남’ . _________ “그분(메릴 스트립)과 비교된다는 데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저는 한국사람이고 한국 배우예요. 제 이름은 윤여정이고요. 저는 그저 제 자신이고 싶습니다.” 2021. 3. 2. tvN 예능 <온오프>에서 해외 매체와 인터뷰.

[HOME CINEMA] LINK - '집을 파는 여자' 外

<집을 파는 여자> 2016 / 일본 / 왓챠, 웨이브, 티빙 남들이 팔지 못하는 집을 팔아치우는 한중일 세 나라 드라마의 여성 부동산업자를 잇는 키워드는 ‘흉가’다. 일본 신주쿠 ‘테이코 부동산’의 주임 산겐야 마치(키타가와 케이코)는 임대료가 싸다는 이유로 일가족이 살해당한 저택에 거주하는 인물. 다양한 형태의 라이프 스타일을 긍정하고 그 필요에 맞는 집을 수배해 반드시 계약을 성사시키는 산겐야 주임은 “제가 팔지 못하는 집은 없습니다”라는 호언장담을 실천한다. <안가: Selling Dream> 2020 / 중국 <북경BTV> / 웨이브 <옹정황제의 여인> <미월전> 등으로 국내에 많은 팬을 가진 배우 손려의 현대극으로, 일본 드라마 <집을 파는 여자의 역습>의 중국 리메이크판이다. 부동산 대기업 ‘안가천하’의 상하이 지점에 공동 지점장으로 부임한 팡쓰진(손려) 역시 살인사건이 발생한 집에 짐을 풀고 자신의 방식대로 집을 중개한다. 53부작으로 중국 대도시의 집 구경을 좀더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 <겨우, 서른> 감독 장영희 / 넷플릭스 상하이에서 매일매일을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며 30대 초입의 일상을 축적해가는 세 여자가 있다. 체계적인 규칙에 따라 하루가 완성되는 만니는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일하고, 모든 가사노동을 완벽하게 하고픈 전업주부 만니에게 집은 곧 전쟁터다. 고양이를 키우는 샤오친은 물고기를 기르는 평범한 남편을 만나 큰 욕심 없이 회사를 다닌다. 노동자이자 기혼 여성으로서 겪는 난관과 갈등, 30대 여성들의 우정과 사랑을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여성이라면 더욱 공감하고 빠져들 만한 드라마. <개미는 오늘도 뚠뚠> 감독 박진경 / 카카오TV, 넷플릭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박진경 PD가 카카오M으로 이적 후 선보이는 주식 예능. 국내 장(코스피, 코스닥), 미국 장(다우, 나스닥)을 아우르며 PER이 무엇인지, 어떤 종목이 우량주인지 등을 차근차근 기초부터 알려준다. 종목 추천은 하지 않고 건강한 투자를 위한 경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지향하는 교육적인 방송. 별 논리 없이 급등주만 골라 단타를 쳐서 멘토를 비롯한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딘딘, 매입하면 주가가 떨어지고 매수하면 귀신같이 상한가를 치는 마이너스의 손 노홍철 등 고정 출연진의 캐릭터들이 살아 있어 재밌다. <산나물 처녀> 감독 김초희 / 왓챠, 웨이브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이 연출한 단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과 정유미, 안재홍과 정다원이 출연한다. 외계에서 온 순심(윤여정)과 나물이나 캐고 있는 달래(정유미)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하늘나라에서 목욕하러 잠시 홍제천에 내려온 찰스와 리처드의 날개옷을 숨긴다. 그 사실을 숨기고 쌍쌍으로 결혼했던 두 커플에게 사랑의 마법이 깨진 후 벌어지는 일을 담은 독특한 코미디영화. 김초희 감독만의 독특한 감성과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해온 윤여정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는 귀여운 단편. <소셜 딜레마> 감독 제프 올로우스키 / 넷플릭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구글, 유튜브, 트위터 등에서 일했던 IT 업계 종사자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기업이 된 인터넷 회사들이 어떻게 인간의 사고방식과 정체성을 바꾸는지 폭로한다. SNS는 개개인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허위 정보가 무분별하게 퍼지는 것을 촉진하며, 민주주의까지 위협할 수 있다. 이는 거대한 흑막 때문도 아니요, 소셜 미디어가 가진 태생적인 특성에서 기인한 딜레마다. SNS 시대, 감시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섬뜩하게 알리는 웰메이드 다큐멘터리. <모던 러브> 감독 존 카니 / 아마존 프라임 독자 투고로 이루어진 동명의 <뉴욕타임스> 칼럼과 팟캐스트 방송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된 로맨틱 코미디 앤솔러지 시리즈. <원스>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의 존 카니 감독이 연출, 각본, 제작을 맡았고 시즌1은 30여분 분량의 독립된 에피소드 8개로 구성되어 있다. 보다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미국판 <러브 액츄얼리>로 비유할 만하다. 앤 해서웨이, 캐서린 키너, 소피아 부텔라, 올리비아 쿡, 티나 페이, 존 갤러거 주니어, 앤디 가르시아, 앤드루 스콧 등이 출연한다. <익스팬스> 감독 테리 맥도노프 등 / 아마존 프라임 200년 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드라마. 줄리엣이란 이름의 여성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소행성대 벨트의 형사, 구조신호를 받은 얼음수송 우주선의 선장, 그리고 전쟁을 막으려는 외교관이 만난다. 이들이 의문의 공격을 받으면서 태양계를 둘러싼 음모를 파헤치는 것이 플롯의 주된 골자. <칠드런 오브 맨> <아이언맨>의 각본가 마크 퍼거스와 호크 오스크비가 제작에 참여했다. 원래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으나 시즌4부터 아마존 프라임으로 플랫폼이 바뀌었고, 시즌6를 마지막으로 종영될 예정이다.

[파리] 프랑스 국립영화센터, 개봉 대기작 체증에 파격의 예외 규정 발표

지난해 10월 이후 굳게 닫혀 있는 프랑스의 영화관들. 그사이 개봉을 기다리는 국내외 장편영화는 4월 중순 420편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개봉 일주일 만에 급하게 스크린을 떠나야 했던 작품들의 재개봉까지 고려한다면 재개관 시기에 예상되는 체증은 상당히 심각하다. 일부 관계자들은 5월 중순부터 단계적으로 영업을 개시할 수 있을 거라 조심스레 예상하지만, 사실 이 또한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잠깐 다른 얘기로 넘어가보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판세가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 서비스와 텔레비전으로 기울고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 없는 ‘팩트’일 거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까다로운 프랑스 구독자뿐 아니라 영화계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유혹하고 있다. 2020년 4월에는 프랑스 영화 제작·배급·판매계의 빅3 중 하나인 MK2가 보유하고 있는 트뤼포, 고다르, 샤브롤, 채플린 등의 고전 작품 50여편의 상영 계약을 체결했고, 2021년 1월에는 7시간이 넘는 아벨 강스 감독의 <나폴레옹>(1927)의 전체 복원을, 3월 말에는 올해 안에 20여편의 ‘Made in France’ 프로덕션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디렉터 프레데릭 보노는 “영화계는 이제 넷플릭스가 프랑스 영화산업 생태계의 일부가 되었다는 걸 이해했고, 넷플릭스는 맹금류가 되기보단 파트너가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늑대는 털이 빠지더라도 천성을 잃지 않는다”라며 회의적 입장을 고수하는 이들도 많다. 4월 초, 프랑스 국립영화센터(이하 CNC)는 배급사들이 VOD, OTT 서비스와 TV에,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고 작품을 바로 판매하더라도 작품 제작을 위해 CNC에서 받은 지원금과 세액 공제금을 환수하지 않겠다는 획기적인 예외 규정을 발표했다. 교통 체증을 피하기 위해 고안해낸 정책이라지만, 영화 작품의 배급과 유통 과정을 규제하는 법안인 ‘미디어 크로놀로지’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어 프랑스영화 생태계를 파괴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과연 이 꽉 막힌 상황의 출구는 무엇이며, 최후 승자는 누가 될까?

[2021전주국제영화제 수상작] 해외경쟁 대상 수상작 '파편' 나탈리아 가라샬데 감독

좋은 영화는 확실히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다. 1995년에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의 리오테르세로에서 8mm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60분 가량의 영상은, 한 편의 영화가 되어 2021년 지구 반대편인 한국 전주에서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고 국제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나탈리야 가라샬데 감독은 수상 결과에 대하여 예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영화가 담고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어떤 나라의 관객들의 마음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파편>은 나탈리야 가라샬데 감독이 자신이 12살 때 찍은 비디오를 20년 뒤에 우연히 발견하면서 영화의 방향이 크게 바뀐 영화이다. 당초에 오랜 기간 동안 같은 사건을 시사프로그램 느낌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었던 가라샬데 감독은, 긴 고민 끝에 촬영을 마친 1차 편집본 대신 자신과 가족의 개인적인 모습이 담긴 이 영상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놀라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20년 전 찍었던 비디오테이프를 활용해 만든 영화다. 그런데 그전까지 촬영해왔던 다른 버전의 영화가 있었다고. =10년 동안의 자료 조사 과정을 거쳐 만들었던 고발 다큐멘터리 형식의 1차 편집본이 있었다. 영화에서도 나오는 군수공장의 한 직원의 시선으로 사건의 전말을 파악해나가는 구조였다. 기본적으론 내부 고발자의 이야기이며 나름의 반전도 있었다. 처음부터 개인적인 영상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었다. -영상을 발견하고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의 버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정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건 당시를 리얼 타임으로 찍은 영상이라는 것이 주는 힘을 높이 평가한 것도 있지만, 내가 찍었던 영상 그 자체가 주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대조성이다. 내가 그 당시 특별한 생각 없이 놀이처럼 찍었던 영상들의 장소는 지금 보면 전부 끔찍한 재난이 일어났던 장소인데, 아이의 순수함과 어른들이 빚어놓은 비극이 하나의 화면에서 확인되는 장면이다. 이런 것들을 보며 미시적인 관점에서 거시적인 문제 구조를 드러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영화의 앞뒤로 카메라의 시선과 아이들의 태도의 대비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 또한 내가 지금의 버전을 선택하게 된 이유이다. 카메라가 변모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영화 초반에 카메라는 하나의 장난감처럼 사용된다. 그저 시간을 보내는데 쓰일 뿐만 아니라 가끔은 오직 장난치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서만 사용되니까. 하지만 나중엔 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 게 된다. 영화에 언론이 찾아오지 않는 장소에서 기자 놀이를 하는 장면이 있다. 지금 보면 굉장히 위험한 순간이라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놀이를 하고 있었던 거다. 사태의 비극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변한다. 처음엔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이다가 점차 조용히 어른들의 세계를 관찰하는 태도로 바뀐다. 그러다 이제 비디오 촬영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촬영은 계속된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있지만 그럼에도 촬영을 이어갔다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감동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탈리야가 카메라를 멈추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오직 과거의 나탈리야가 찍은 영상으로만 영화를 구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카메라를 더 이상 들지 않았던 때가 있었고, 그래서 몇 영상은 남동생 니콜라스가 촬영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다시 카메라를 든 것은 언니가 아프게 된 것이 이유였다. 언니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두고 싶었다. 물론 과거 영상 외에 추가로 촬영한 자료들이 매우 많았다. 공장 내부 사람들이나 사고의 피해자들의 증언, 관련 소송 과정 등 모두 소중한 자료들이었다. 그러나 저널리즘의 관점보다는 개인의 작은 시선으로 극을 이끌어가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여기에서 벌어졌던 일은 특수하고 상당히 거대한 사건이지만, 가족이라는 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이지 않나. 그래서 저널리즘적인 요소보다는 조금 더 영화적인 요소에 집중을 하려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감정적으로 가장 극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다. 아빠와 딸이 춤을 추는 행복한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슬픈 감정을 자아낸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그렇게 편치는 않았다. 개인적인 이야기인 만큼 시종일관 감정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 만들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다시 봐도 행복한 감정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세상의 모든 아빠와 딸들이 공감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 자체가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어두운 과거를 조망하고 있기에 엔딩만큼은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모든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끝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엔딩씬 바로 이전 아빠가 휠체어에서 자신이 쓴 글을 읽는 장면이었다. 아빠는 원래 글 쓰는걸 좋아하시는 분이었는데 기력이 쇠하신 모습을 영화에 넣는 것에 대하여 고민이 많았다. 그렇지만 아빠와 대화 끝에 넣기로 결심했다.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 그렇게 나쁜 측면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영화를 본 가족이나 영화에 출연한 당시의 이웃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매우 좋았다. 가족들만 따로 모아 별도의 시사회를 가지기도 했다. 테이프에 담겨 있던 영화에 사용되지 않은 영상들까지 디지털화해서 그것까지 같이 보기도 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아빠와 언니, 그리고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의 추모 영화로 잘 쓰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영화를 보면 카메라를 뒤집어 뒤바뀐 위아래를 표현하거나, 높은 암벽을 오르는 등산가를 찍는 등 어릴 적부터 촬영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한 것인가. =어릴 적부터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남동생과 이를 재현하는 것을 즐겼다. 카메라의 일반적인 구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도로 찍는 TV프로그램이 아르헨티나에 있었는데, 그런 걸 보면서 나름대로 따라했던 것 같다. 정확한 계기는 없었지만 그런 경험들이 자연스레 영화의 길로 나를 인도한 것 같고, 대학교에서 언론 관련 공부를 하면서 사회현실을 다루는 영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위적인 연출이 배제된 현실이 담긴 영상을 다른 맥락에서 재사용하게 된 이번 경험이 참 귀중했고 흥미로웠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궁금하다. 언젠가 전주에 올 날을 기대해도 되는 것인지. =나도 전주에 정말 가고 싶었다. (웃음) 이번에 가지 못해 무척 아쉽지만 다른 방식으로라도 꼭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다. 작업 중인 장편 다큐멘터리 한 편이 더 있다. 이번에도 역시 군수품과 관련된 것으로 1995년 폭발이 있었던 시기에 크로아티아에서 벌어진 한 사건에 대해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파편>과 연결고리가 있는 영화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