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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당신의 사월' 주현숙 감독 - 위계 없는 공동의 슬픔을 향해

4월 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당신의 사월>을 만든 주현숙 감독은 사회적 참사로 구획 지어진 객관의 역사로부터 혼자 숨죽여 울던 사람들의 가장 개인적인 시선을 발굴해낸다. 사고 당일 쓰러져가던 배를 바라보던 어느 교사, 수험생 시절에 교실에서 소식을 들었던 청년, 해역에서 시신을 수습했던 진도 어민, 유가족 곁을 지킨 인권 활동가, 장시간 시위 중인 유가족들을 대접한 카페 사장 등 세월호 참사에 얽힌 거리와 각도가 제각각인 보통의 초상들이 등장해 비밀스러운 슬픔을 고백한다. <계속된다-미등록 이주 노동자 기록되다>(2004)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가난뱅이의 역습>(2012)에서 소외된 청춘의 희망을 살피는 등 언제나 낮은 자리에 카메라를 위치시켰던 다큐멘터리스트 주현숙 감독. 세월호 7주기를 앞둔 어느 날, 그를 만나 여전한 슬픔의 자리를 더듬어보았다. -<당신의 사월>은 지금은 해체된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의 4주기 옴니버스 프로젝트 중 단편 <이름에게>를 확장한 결과물이다. 작업에 참여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참사 초기에 언론 지형이 좋지 않았기에 유가족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들려줄 만한 집단이 필요했고, 독립다큐멘터리신을 중심으로 영화인들이 모여 집회 영상, 프로젝트 영상 등을 만들었다. 초창기에 나는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바라볼 에너지가 없었다. 너무 큰 슬픔이어서 도저히 작업으로 소화할 수가 없었달까. 4주기 무렵이 되자 내 안에 있는 슬픔의 덩어리를 조금은 끄집어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거리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중일까 궁금해지더라. 그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어서 단편 <이름에게>를 시작했고, 장편까지 확장했다. -진상을 규명하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시선과 달리 세월호 참사에 얽힌 일반 시민들의 트라우마는 그동안 전면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다. 사고 당일에 뉴스 화면에서 가라앉는 배의 모습을 지켜본 우리 모두가 참사에 연루되어 있으나, 각자의 슬픔은 덜 중요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제 공개 이후 관객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보통은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감상 혹은 감독의 생각에 대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인데, <당신의 사월>에 관해선 영화와 별개로 그날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자신이 어떠했는지 개인적인 기억을 들려주는 관객이 많았다. 그날 그 시간에 어떤 상황에서 뉴스를 들었는지, 이를테면 무슨 옷을 입고 있었고 텔레비전은 어디에 있었는지까지 이야기할 정도로 아주 자세히 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날의 기억을 아주 힘들게, 그리고 선명하게 품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나 또한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슬픔의 위계를 느끼며 산다. 당사자와 목격자가 겪는 슬픔의 차이 속에 짓눌려져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이번 작업을 하는 동안만큼은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의 당사자가 될 수 있음을 의식했다. 이야기하지 못할 아픔이란 없다. -5명의 인터뷰이들은 어떻게 선정했고, 어떻게 가까이 다가갔나. =사건을 중심으로 물리적인 거리를 고려하며 인터뷰이들을 만났다. 사람을 범주화하면 안되는데, 제한된 시간 내에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다큐멘터리스트의 작업이란 게 어쩔 수 없이 이런 속성을 품게 된다. 평범한 사람, 자신의 일상에서 그 소식을 들었던 사람들을 만났고 저마다 미안함과 죄의식을 품고 ‘내가 과연 슬픔을 말해도 되는 것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자기는 세월호 참사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하는데, 막상 들여다보면 달랐다. 그날의 영향을 품고서 자기 삶을 성실히 일궈나가는 모습이 내게는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정말 그렇다. 괴롭고 슬픈 마음과 삶을 잘 살아가려는 노력이 공존하고, 그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날의 광경이 일종의 씨앗처럼 자리해 있다가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삶의 어느 시점에 피어나는 것 같다. 고통 앞에서 우리는 완전히 매몰되거나 혹은 외면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기 쉬운데, 진정한 성찰은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면서도 거리를 둘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1년 365일 슬퍼하지 않아도, 식음을 전폐하지 않아도, 울다가 갑자기 웃거나 밥을 먹어도 된다. 유가족들도 그렇다. 인간답게 이런저런 모순을 품고 있지만 그 안에서 같은 기억과 감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느꼈다. -인터뷰이들의 진술에 따라 기록 푸티지들이 이어지는 구성이다. 제작 당시에 이미 자료가 무수한 상황이었을 텐데 사건과의 거리감이나 시각적 일관성 등을 유지하며 솎아내기가 쉽지 않았겠다. =이미지가 감정을 증폭시키지 않았으면 했다. 감정을 조심스레 길어 올려보는 시도였다고 표현하고 싶다. 인터뷰에 이미 감정이 흥건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지는 건조하게 추렸다. 난제는 세월호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우리 안의 트라우마와 관계된 죽음의 현장이지 않나. 배를 보여주는 방식에서 조금의 스펙터클도 끼어들지 않길 바랐다. 3년 만에 배가 인양되어 아주 멀리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으로 영화 속에 세월호를 처음 등장시킨 것도 그래서다. 주변에서 작게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헬기 소리로 감정은 간접적으로만 존재한다. 세월호 전체의 모습이 보이는 건 후반부에 눈내리는 풍경 속에서다. 마치 커다란 고래가 누워 있고 그 위로 눈이 쌓이는, 차갑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 이미지로 나온다. 아무 장치 없이 세월호의 모습을 보는 게 우리에게 가능할까, 아직까지도 너무 힘든 일이 아닐까 고민하던 찰나에 기적처럼 눈이 내렸다. -이민휘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후반부에 처음으로 노랫말이 있는 음악이 등장하는데 그 가사가 무척 슬프고 인상적이다. =우리 안에 있는 참사에 대한 공포, 몸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그런 감각이 이민휘 음악감독의 낮고 느린 멜로디 속에서 전달되었으면 했다. 또 시작과 끝 부분에선 자신의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생기를 경쾌한 톤으로 담으려 했는데 이런 부분까지 무척 세심하게 표현해줬다. 이민휘 음악감독에게 정말 고마운 게, 사운드 믹싱 작업 직전에 갑자기 가사가 있는 노래를 하나 넣자고 제안을 해주었다. 나보고 가사를 쓰라고 하도 닦달해서 처음엔 힘들었다. (웃음) 처음엔 막막해하다가 결국 우리 영화에 마지막 모습이 등장하는 세월호 희생자 고 문지성양을 떠올리며 썼다. 구체적인 생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렸으면 해서 그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보냈을 사소한 일과를 써내려갔고 쓰면서 많이 울었다. -노동과 가난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앞으로 계획 중인 작업이 있나. =내게 보통 사람들의 일상은 매우 중요한 주제다. 인간이 태어나서 매일 눈뜨고 밥먹고 이런저런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는 것, 정말이지 권태롭고 힘든 일 아닌가. 그 반복을 다들 어떻게 견디고 살아가는 건지 자주 궁금하다. 특히 그 일상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크기는 얼마나 큰가. 그 위대함을 계속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세월호의 슬픔을 안고 매일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계속 인터뷰해볼 요량이다. 304명을 채워보면 어떨까, 그렇게 하고 싶다.

1970년부터 2021년까지 윤여정의 어록, 데뷔작 '화녀'를 찍기 전부터 '미나리'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소감을 남기기까지

데뷔작 <화녀>를 찍기 전부터 <미나리>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소감을 남기기까지, 50여년의 윤여정 배우의 말들을 모았다. 솔직하고 거침없지만, 진정 어른으로서의 미덕을 갖추고 적절한 위트도 잊지 않는다. 그의 말들이 오래 기억되는 건 그런 연유일 것이다. “저는 결코 미인이 아니죠, 김기영 선생님도 저를 퍼니페이스(funnyface)라고 하셨는데 저 역시 동감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역은 근본적인 여성의 매력, 순종이나 미적인 감각을 벗어난, 웬만해선 타협이 잘 안되는 그런 성격을 가진 역할입니다.” 1971. 3. 11. <화녀>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 후 <조선일보>와 인터뷰. _________ “누가 저보고 그랬대요. ‘한국의 누벨바그’라고.(웃음) 제가 1966년 대학 1학년 때 탤런트 시험을 봤는데, 수험생 대부분은 잘생겼거나 예쁜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와중에도 제가 뽑힐 수 있었던 건 굉장히 달랐기 때문이었다더군요. 시험장에서 실기를 하는데 제 대사가 무척 빨랐다죠. 연출자들이 앉아서 ‘원래 저렇게 해야 맞는 건데’하는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2004. 1. 29. KBS2 드라마 <진주 목걸이> 출연 중 <신동아>와 인터뷰. _________ “연기자가 가장 연기를 잘할 때가 언제인 줄 아세요? 돈이 궁할 때예요. 배가 고프면 뭐든 매달릴 수밖에 없어요. 예술가도 배고플 때 그린 그림이 최고예요. 그래서 예술은 잔인한 거예요.” 2009. 12. 9. MBC 예능 <황금어장-무릎팍 도사>. _________ “칸국제영화제에선 영화를 콘서트 보듯이 보고 감독을 향해 박수를 쳐주는 거예요. 다 그렇게 오래 친대요. 나는 박수 받으라고 하고 나가려고 했더니 집행위원장이 나를 막으면서 “Enjoy It” 그러더라구. 그래서 다음번에 가면 Enjoy하려구.” 2012. 7. 6. SBS 예능 . _________ “연기의 비결은 누구나 그렇듯 바로 극중의 인물이 된 듯 분위기에 사로잡히는 거죠. 그래서 나는 한번 슈팅에 들어갔다 하면 비교적 쉽게 끝까지 소화할 수가 있어요. 말하자면 작품을 소화하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소화하느냐 하는 게 문제겠죠.” 1970. 8. 16. <화녀>를 찍기 전 <선데이 서울>과 인터뷰. _________ “아직까지 넌 창창하니까(선입견이) 빨리 깨질수록 좋아. 넌 이런 역할 저런 역할 다 할 수 있는 연기자인데, 유리관 속에서 ‘김희애는 저런 여자구나’ 하고 보여주는 건 다 굴레 아냐? 너 편할 대로 하는 게 좋지 않아? TV고 영화고, 이게 마치 장애물 경기 같아. 사람들이 기대하는 김희애가 있지만 그걸 뛰어넘어야 박수를 받지, 그 김희애를 유지하면 매너리즘이라고 사람들이 내팽개쳐. 그래서 우리 직업이 참 무서운 거 같아.” 2013. 12. 20. tvN 예능 <꽃보다 누나>. “연출가 선생님들이 ‘얼굴은 고사하더라도 쟤는 목소리 때문에 배우 안된다,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그러셨는데, 그분들이 다 고인이 되셨어요.” 2015. 3. 26. JTBC <뉴스룸>과 인터뷰. _________ “영화는 할 때는 모르잖아요. 다 절반의 실패인데 우리 모두 그 절반의 성공을 기대하면서 하는 거지. 그 과정에서 즐기면서 할 수 있는것 같아서 그게 참 좋아요. 내가 지금 40대면 이번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다음 단계는 어떻게하지, 여러가지 복잡했겠죠. 그런데 이제 난 그런 걸로 두려워하지 않게 됐어요. 내 나이에, 내가 뭘 하든 간에 나싱 투 루즈예요. 자유로워서 나는 지금이 좋아요. 참 감사할 일이지.” 2016. 5. 2. <계춘할망> 개봉 후 <씨네21>과 인터뷰. _________ “나는 나같이 살다 가면 되잖아. 언젠가부터 롤모델이란 게 생겨서. 그 사람은 그 사람이구, 나는 난데 왜 그사람 흉내를 내. 난 나처럼 살면 되지.(많은 배우들이 윤여정을 롤모델로 삼는다는 말에) 미쳤지, 걔네들이 날 자세히 몰라서 그러지.” 2017. 10. 18. tvN 현장토크쇼 <택시>. _________ “관객이 야유하며 ‘이혼녀는 텔레비전에 나오면 안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굉장히 좋아하죠. 이상하지만 인간은 원래 그렇습니다.” 2021. 4. 4. <뉴욕타임스>와 인터뷰. _________ “모든 상이 의미가 있지만 이번상은 특히나 고상하다고(snobbish) 알려진 영국 분들에게 좋은 배우라고 인정받아서 정말 기쁘고 영광입니다.” 2021. 4. 12.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 _________ “우리 <미나리>팀이 축구 경기에서 이긴 기분입니다. 정이삭 감독이 우리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주장과 다시 한번 시합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 나이에.” 2021. 3. 3. 제78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미나리> 수상 소감 _________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감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유가 없을 땐 원망을 하게 되지요. 제가 많이 여유가 생겼나봅니다. 지나온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네요.” 2021. 3. 16.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소감. _________ “사실 나는 누가 뭘 해보자고 한다고 솔깃해하진 않아. 늙었잖아 내가. 내가 강동원도 아니고 ‘예능에는 안 나가’, 그런 건 없지. 그런데 취향은 있겠지 내가. 나가고 싶은 데가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취향은 죽을 때까지 남아.” 2017. 4. 19. <씨네21> ‘<윤식당> 윤여정, 나영석 PD와의 대화’ _________ “솔직히 말하면 경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배우들간의 경쟁이요. 모두 다른 영화에서 각자 다른 연기를 펼쳤는데 비교할 방법이 없죠. 후보로 지명된 것만으로도 다섯명의 후보 모두 승자입니다.” 2021. 4. 14. <포브스>와 인터뷰. _________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는 잊을 수가 없지. 그 많은 대사를 해야 하는데, 그걸 늘 움직이면서 해야 했거든요. 대사를 마르고 닳도록 외웠는데 현장의 동선이 생각했던 거랑 달라지면 막히더라고. 나중엔 다리미질하면서 말하는 장면은 실제 다리미질을 하면서 외웠고, 식탁에 숟가락 놓으면서 말하는 장면에선 실제로 식탁에 숟가락을 놓으면서 대사를 외웠어요. 그런 노력은 앞으로 다시는 못할 거야.” 2021. 1. 29. <씨네21> ‘<미나리> 윤여정과 봉준호의 만남’ . _________ “그분(메릴 스트립)과 비교된다는 데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저는 한국사람이고 한국 배우예요. 제 이름은 윤여정이고요. 저는 그저 제 자신이고 싶습니다.” 2021. 3. 2. tvN 예능 <온오프>에서 해외 매체와 인터뷰.

[HOME CINEMA] LINK - '집을 파는 여자' 外

<집을 파는 여자> 2016 / 일본 / 왓챠, 웨이브, 티빙 남들이 팔지 못하는 집을 팔아치우는 한중일 세 나라 드라마의 여성 부동산업자를 잇는 키워드는 ‘흉가’다. 일본 신주쿠 ‘테이코 부동산’의 주임 산겐야 마치(키타가와 케이코)는 임대료가 싸다는 이유로 일가족이 살해당한 저택에 거주하는 인물. 다양한 형태의 라이프 스타일을 긍정하고 그 필요에 맞는 집을 수배해 반드시 계약을 성사시키는 산겐야 주임은 “제가 팔지 못하는 집은 없습니다”라는 호언장담을 실천한다. <안가: Selling Dream> 2020 / 중국 <북경BTV> / 웨이브 <옹정황제의 여인> <미월전> 등으로 국내에 많은 팬을 가진 배우 손려의 현대극으로, 일본 드라마 <집을 파는 여자의 역습>의 중국 리메이크판이다. 부동산 대기업 ‘안가천하’의 상하이 지점에 공동 지점장으로 부임한 팡쓰진(손려) 역시 살인사건이 발생한 집에 짐을 풀고 자신의 방식대로 집을 중개한다. 53부작으로 중국 대도시의 집 구경을 좀더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 <겨우, 서른> 감독 장영희 / 넷플릭스 상하이에서 매일매일을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며 30대 초입의 일상을 축적해가는 세 여자가 있다. 체계적인 규칙에 따라 하루가 완성되는 만니는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일하고, 모든 가사노동을 완벽하게 하고픈 전업주부 만니에게 집은 곧 전쟁터다. 고양이를 키우는 샤오친은 물고기를 기르는 평범한 남편을 만나 큰 욕심 없이 회사를 다닌다. 노동자이자 기혼 여성으로서 겪는 난관과 갈등, 30대 여성들의 우정과 사랑을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여성이라면 더욱 공감하고 빠져들 만한 드라마. <개미는 오늘도 뚠뚠> 감독 박진경 / 카카오TV, 넷플릭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박진경 PD가 카카오M으로 이적 후 선보이는 주식 예능. 국내 장(코스피, 코스닥), 미국 장(다우, 나스닥)을 아우르며 PER이 무엇인지, 어떤 종목이 우량주인지 등을 차근차근 기초부터 알려준다. 종목 추천은 하지 않고 건강한 투자를 위한 경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지향하는 교육적인 방송. 별 논리 없이 급등주만 골라 단타를 쳐서 멘토를 비롯한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딘딘, 매입하면 주가가 떨어지고 매수하면 귀신같이 상한가를 치는 마이너스의 손 노홍철 등 고정 출연진의 캐릭터들이 살아 있어 재밌다. <산나물 처녀> 감독 김초희 / 왓챠, 웨이브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이 연출한 단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과 정유미, 안재홍과 정다원이 출연한다. 외계에서 온 순심(윤여정)과 나물이나 캐고 있는 달래(정유미)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하늘나라에서 목욕하러 잠시 홍제천에 내려온 찰스와 리처드의 날개옷을 숨긴다. 그 사실을 숨기고 쌍쌍으로 결혼했던 두 커플에게 사랑의 마법이 깨진 후 벌어지는 일을 담은 독특한 코미디영화. 김초희 감독만의 독특한 감성과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해온 윤여정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는 귀여운 단편. <소셜 딜레마> 감독 제프 올로우스키 / 넷플릭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구글, 유튜브, 트위터 등에서 일했던 IT 업계 종사자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기업이 된 인터넷 회사들이 어떻게 인간의 사고방식과 정체성을 바꾸는지 폭로한다. SNS는 개개인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허위 정보가 무분별하게 퍼지는 것을 촉진하며, 민주주의까지 위협할 수 있다. 이는 거대한 흑막 때문도 아니요, 소셜 미디어가 가진 태생적인 특성에서 기인한 딜레마다. SNS 시대, 감시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섬뜩하게 알리는 웰메이드 다큐멘터리. <모던 러브> 감독 존 카니 / 아마존 프라임 독자 투고로 이루어진 동명의 <뉴욕타임스> 칼럼과 팟캐스트 방송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된 로맨틱 코미디 앤솔러지 시리즈. <원스> <비긴 어게인> <싱 스트리트>의 존 카니 감독이 연출, 각본, 제작을 맡았고 시즌1은 30여분 분량의 독립된 에피소드 8개로 구성되어 있다. 보다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미국판 <러브 액츄얼리>로 비유할 만하다. 앤 해서웨이, 캐서린 키너, 소피아 부텔라, 올리비아 쿡, 티나 페이, 존 갤러거 주니어, 앤디 가르시아, 앤드루 스콧 등이 출연한다. <익스팬스> 감독 테리 맥도노프 등 / 아마존 프라임 200년 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드라마. 줄리엣이란 이름의 여성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소행성대 벨트의 형사, 구조신호를 받은 얼음수송 우주선의 선장, 그리고 전쟁을 막으려는 외교관이 만난다. 이들이 의문의 공격을 받으면서 태양계를 둘러싼 음모를 파헤치는 것이 플롯의 주된 골자. <칠드런 오브 맨> <아이언맨>의 각본가 마크 퍼거스와 호크 오스크비가 제작에 참여했다. 원래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으나 시즌4부터 아마존 프라임으로 플랫폼이 바뀌었고, 시즌6를 마지막으로 종영될 예정이다.

[파리] 프랑스 국립영화센터, 개봉 대기작 체증에 파격의 예외 규정 발표

지난해 10월 이후 굳게 닫혀 있는 프랑스의 영화관들. 그사이 개봉을 기다리는 국내외 장편영화는 4월 중순 420편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개봉 일주일 만에 급하게 스크린을 떠나야 했던 작품들의 재개봉까지 고려한다면 재개관 시기에 예상되는 체증은 상당히 심각하다. 일부 관계자들은 5월 중순부터 단계적으로 영업을 개시할 수 있을 거라 조심스레 예상하지만, 사실 이 또한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잠깐 다른 얘기로 넘어가보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판세가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 서비스와 텔레비전으로 기울고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 없는 ‘팩트’일 거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까다로운 프랑스 구독자뿐 아니라 영화계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유혹하고 있다. 2020년 4월에는 프랑스 영화 제작·배급·판매계의 빅3 중 하나인 MK2가 보유하고 있는 트뤼포, 고다르, 샤브롤, 채플린 등의 고전 작품 50여편의 상영 계약을 체결했고, 2021년 1월에는 7시간이 넘는 아벨 강스 감독의 <나폴레옹>(1927)의 전체 복원을, 3월 말에는 올해 안에 20여편의 ‘Made in France’ 프로덕션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디렉터 프레데릭 보노는 “영화계는 이제 넷플릭스가 프랑스 영화산업 생태계의 일부가 되었다는 걸 이해했고, 넷플릭스는 맹금류가 되기보단 파트너가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늑대는 털이 빠지더라도 천성을 잃지 않는다”라며 회의적 입장을 고수하는 이들도 많다. 4월 초, 프랑스 국립영화센터(이하 CNC)는 배급사들이 VOD, OTT 서비스와 TV에,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고 작품을 바로 판매하더라도 작품 제작을 위해 CNC에서 받은 지원금과 세액 공제금을 환수하지 않겠다는 획기적인 예외 규정을 발표했다. 교통 체증을 피하기 위해 고안해낸 정책이라지만, 영화 작품의 배급과 유통 과정을 규제하는 법안인 ‘미디어 크로놀로지’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어 프랑스영화 생태계를 파괴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과연 이 꽉 막힌 상황의 출구는 무엇이며, 최후 승자는 누가 될까?

[2021전주국제영화제 수상작] 해외경쟁 대상 수상작 '파편' 나탈리아 가라샬데 감독

좋은 영화는 확실히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다. 1995년에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의 리오테르세로에서 8mm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60분 가량의 영상은, 한 편의 영화가 되어 2021년 지구 반대편인 한국 전주에서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고 국제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나탈리야 가라샬데 감독은 수상 결과에 대하여 예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영화가 담고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어떤 나라의 관객들의 마음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파편>은 나탈리야 가라샬데 감독이 자신이 12살 때 찍은 비디오를 20년 뒤에 우연히 발견하면서 영화의 방향이 크게 바뀐 영화이다. 당초에 오랜 기간 동안 같은 사건을 시사프로그램 느낌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었던 가라샬데 감독은, 긴 고민 끝에 촬영을 마친 1차 편집본 대신 자신과 가족의 개인적인 모습이 담긴 이 영상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놀라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20년 전 찍었던 비디오테이프를 활용해 만든 영화다. 그런데 그전까지 촬영해왔던 다른 버전의 영화가 있었다고. =10년 동안의 자료 조사 과정을 거쳐 만들었던 고발 다큐멘터리 형식의 1차 편집본이 있었다. 영화에서도 나오는 군수공장의 한 직원의 시선으로 사건의 전말을 파악해나가는 구조였다. 기본적으론 내부 고발자의 이야기이며 나름의 반전도 있었다. 처음부터 개인적인 영상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었다. -영상을 발견하고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의 버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정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건 당시를 리얼 타임으로 찍은 영상이라는 것이 주는 힘을 높이 평가한 것도 있지만, 내가 찍었던 영상 그 자체가 주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대조성이다. 내가 그 당시 특별한 생각 없이 놀이처럼 찍었던 영상들의 장소는 지금 보면 전부 끔찍한 재난이 일어났던 장소인데, 아이의 순수함과 어른들이 빚어놓은 비극이 하나의 화면에서 확인되는 장면이다. 이런 것들을 보며 미시적인 관점에서 거시적인 문제 구조를 드러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영화의 앞뒤로 카메라의 시선과 아이들의 태도의 대비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 또한 내가 지금의 버전을 선택하게 된 이유이다. 카메라가 변모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영화 초반에 카메라는 하나의 장난감처럼 사용된다. 그저 시간을 보내는데 쓰일 뿐만 아니라 가끔은 오직 장난치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서만 사용되니까. 하지만 나중엔 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 게 된다. 영화에 언론이 찾아오지 않는 장소에서 기자 놀이를 하는 장면이 있다. 지금 보면 굉장히 위험한 순간이라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놀이를 하고 있었던 거다. 사태의 비극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변한다. 처음엔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이다가 점차 조용히 어른들의 세계를 관찰하는 태도로 바뀐다. 그러다 이제 비디오 촬영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촬영은 계속된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있지만 그럼에도 촬영을 이어갔다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감동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탈리야가 카메라를 멈추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오직 과거의 나탈리야가 찍은 영상으로만 영화를 구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카메라를 더 이상 들지 않았던 때가 있었고, 그래서 몇 영상은 남동생 니콜라스가 촬영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다시 카메라를 든 것은 언니가 아프게 된 것이 이유였다. 언니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두고 싶었다. 물론 과거 영상 외에 추가로 촬영한 자료들이 매우 많았다. 공장 내부 사람들이나 사고의 피해자들의 증언, 관련 소송 과정 등 모두 소중한 자료들이었다. 그러나 저널리즘의 관점보다는 개인의 작은 시선으로 극을 이끌어가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여기에서 벌어졌던 일은 특수하고 상당히 거대한 사건이지만, 가족이라는 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이지 않나. 그래서 저널리즘적인 요소보다는 조금 더 영화적인 요소에 집중을 하려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감정적으로 가장 극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다. 아빠와 딸이 춤을 추는 행복한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슬픈 감정을 자아낸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그렇게 편치는 않았다. 개인적인 이야기인 만큼 시종일관 감정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 만들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다시 봐도 행복한 감정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세상의 모든 아빠와 딸들이 공감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 자체가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어두운 과거를 조망하고 있기에 엔딩만큼은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모든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끝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엔딩씬 바로 이전 아빠가 휠체어에서 자신이 쓴 글을 읽는 장면이었다. 아빠는 원래 글 쓰는걸 좋아하시는 분이었는데 기력이 쇠하신 모습을 영화에 넣는 것에 대하여 고민이 많았다. 그렇지만 아빠와 대화 끝에 넣기로 결심했다.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 그렇게 나쁜 측면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영화를 본 가족이나 영화에 출연한 당시의 이웃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매우 좋았다. 가족들만 따로 모아 별도의 시사회를 가지기도 했다. 테이프에 담겨 있던 영화에 사용되지 않은 영상들까지 디지털화해서 그것까지 같이 보기도 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아빠와 언니, 그리고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의 추모 영화로 잘 쓰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영화를 보면 카메라를 뒤집어 뒤바뀐 위아래를 표현하거나, 높은 암벽을 오르는 등산가를 찍는 등 어릴 적부터 촬영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한 것인가. =어릴 적부터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남동생과 이를 재현하는 것을 즐겼다. 카메라의 일반적인 구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도로 찍는 TV프로그램이 아르헨티나에 있었는데, 그런 걸 보면서 나름대로 따라했던 것 같다. 정확한 계기는 없었지만 그런 경험들이 자연스레 영화의 길로 나를 인도한 것 같고, 대학교에서 언론 관련 공부를 하면서 사회현실을 다루는 영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위적인 연출이 배제된 현실이 담긴 영상을 다른 맥락에서 재사용하게 된 이번 경험이 참 귀중했고 흥미로웠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궁금하다. 언젠가 전주에 올 날을 기대해도 되는 것인지. =나도 전주에 정말 가고 싶었다. (웃음) 이번에 가지 못해 무척 아쉽지만 다른 방식으로라도 꼭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다. 작업 중인 장편 다큐멘터리 한 편이 더 있다. 이번에도 역시 군수품과 관련된 것으로 1995년 폭발이 있었던 시기에 크로아티아에서 벌어진 한 사건에 대해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파편>과 연결고리가 있는 영화일 수도 있겠다.

CJ ENM, 콘텐츠 제작에 5년간 5조 투자... 글로벌 토탈 엔터테인먼트 꿈꾼다

CJ ENM이 콘텐츠 제작에 5년간 5조원을 투자해 영화, 드라마, 웹툰, 공연 간 트랜스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완결형의 자체 제작 생태계 구축에 나선다. 강호성 CJ ENM 대표는 31일 마포구 상암동 CJ ENM에서 비전스트림 행사를 열고 ▲콘텐츠 제작 역량 고도화 ▲음악 메가(Mega) IP 확보 ▲디지털 역량강화 ▲ 제작역량 글로벌화에 대한 성장 전략을 제시했다. 올 한해만 8천억 원을 투자해 글로벌 토탈 엔터테인먼트로 도약하겠다고 밝힌 CJ ENM은 최근 영화 <터미네이터> <미션임파서블>로 잘 알려진 미국 제작사 스카이댄스와 협력 계약을 맺어 <호텔 델루나> 등의 자사 IP를 리메이크 중이며, 애플 TV+와 공동 기획·제작 계약을 체결해 글로벌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미국 드라마 <더 빅 도어 프라이즈>를 만든다. 아울러 콘텐츠 제작 역량의 고도화를 위해 경기 파주에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인 6만5천 평 규모의 콘텐츠 스튜디오도 제작 중이다. 초점은 콘텐츠 사업자가 고객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D2C(Direct to Consumer) 플랫폼으로서 CJ ENM의 디지털 역량 강화의 핵심축인 티빙에 모아졌다. 양지을 티빙 공동대표는 지난해 10월 출범 후 누적 유료 가입자 수가 63%, 같은 기간 앱 신규 설치율은 67% 증가했다고 호조세를 알리며 올해 1월 합작법인을 출범한 JTBC 스튜디오, 전략적 협업을 맺고 멤버십 상품을 출시한 네이버와 교류에 힘을 실었다. 양 대표는 3사의 제작 스튜디오-유통 플랫폼 간 시너지를 통해 “디즈니, 넷플릭스 등 해외 사업자들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시기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타 PD 출신으로 티빙에 합류한 이명한 공동대표는 오리지널 투자의 50% 이상을 프랜차이즈 IP에 집중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1월 처음 선보인 오리지널 <여고추리반>처럼 “텔레비전을 통해 이미 사랑받은 IP에 티빙만의 재미를 더하는 ‘부가 콘텐츠’, ‘스핀오프 콘텐츠’로 팬덤 확장”을 꾀하겠다는 취지다. 이같은 방침 아래 티빙은 2023년까지 약 100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 800만명의 유료 가입자를 확보하고 내년에는 글로벌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향후 멀티 스튜디오 구조에서 제작된 CJ ENM의 콘텐츠는 티빙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에도 공급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최근 IPTV 3사와 수신료 인상을 놓고 갈등을 겪은 CJ ENM은 수신료 인상을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수익 구조를 갖추야한다는 입장도 다시 내비쳤다. 강호성 대표는 K-콘텐츠의 질적 성장과 국내 유통·분배 구조의 비대칭을 지적했다. 그는 “제작비의 100~120%를 수신료로 받는 미국 시장에 비해 우리는 3분의1 수준에 그쳐 나머지를 부가수익인 협찬 등에서 찾아야한다. 수신료를 이유로 해외 사업자에 가면 IP를 모두 넘겨 하도급에 불과해진다”고 문제를 설명하면서 유통, 분배 구조의 선진화를 위해 수신료 인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에릭 로메르: 은밀한 개인주의자>, 로메르에 대한 진실의 지표

에릭 로메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도덕과 계절의 연작, 비극보다는 희극, 영화 애호가이자 비평가였던 그를 생각한다. 우리에게 로메르는 도덕과 욕망의 순례자였고, 예술적 호기심의 다양성 자체였다. 그의 작품이 주는 단아하고 가벼운 리듬과 심오하고 낭만적인 문체는 그를 ‘현대적이고 문학적인 연출가’로 완성시켰다. 그러고 보니 그 어떤 정보도 영화의 바깥쪽을 가리키지 않는다. 개인으로서 그가 무슨 에피소드를 지녔는지 우리는 듣지 못했다. 이를테면 마리 리비에르, 아리엘 돔바슬, 로제트, 파스칼 오지에와 같은 여배우들과 그의 필모그래피를 연대기적으로 연결해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마치 <에릭 로메르: 은밀한 개인주의자>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그의 면면은 은밀하게 감춰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전기가 발간된다는 소식은 놀라웠다. 로메르가 자신의 글쓰기 전략을 어떻게 숨겼으며 스스로의 흔적을 지웠는지를 설명하는 진실의 지표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저자인 앙투안 드 베크와 노엘 에르프가 집필에 뛰어든 계기는 ‘아카이빙 자료’의 존재였다. 2010년 1월 로메르가 숨지기 직전에, 그는 자신이 가진 자료와 영상들을 IMEC(동시대 출간 기념회)의 파리 사무소에 위탁하기로 결정했고, 그리하여 그의 사후에 140여개의 박스가 노르망디의 도시 캉에 위치한 IMEC 협회의 본관으로 이전됐다. 12세기 수도원 건축물을 재건축한 그곳의 자료실에서 한동안 이들 수집품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일부 평론가들과 학자들이 1994년에 방영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이들 문서의 내용을 추측했지만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아카이브 자료에 그가 만든 영화의 다양한 시나리오 버전이 속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고, 학창 시절 로메르가 작성한 노트가 다수 존재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빛의 환상에 둘러싸인 듯, 로메르는 숭고한 영화감독의 영역에서 오직 영화만을 통해 언급됐다. 가장 먼저 아카이브 자료에 접근할 권한을 얻은 이는 앙투안 드 베크였다. 이후 그는 노엘 에르프에게 연락했고, 두 사람은 함께 캉의 보관소로 향했다. 그들은 로메르 영화의 제작 과정을 먼저 연도별로 분류했다. 하지만 서류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애초의 집필 계획은 변경되었다. 예를 들어 1969년작인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의 원작 소설이 1944년에 작성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비행사의 아내>(1980)의 원류 격인 단편소설이 1946년에 처음 작성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필모그래피 순서로 기술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로메르의 본명인 ‘모리스 셰레르’가 남긴 자료들에 의해, 그가 감독 ‘에릭 로메르’가 되어가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추적한다. 따라서 비교적 사적인 시간의 흐름에 몰두해서 본문 내용이 진행된다. 이를테면 영화 <클레르의 무릎>(1970)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1970년 즈음에 적힌 ‘네편의 도덕 이야기’ 분량을 찾아서 읽어야 하고, 더불어 1949년 12월 5일에 그가 ‘질베르 코르디에’라는 가명을 사용해서 작성한 단편소설의 집필 과정도 함께 찾아야 한다. 저자들은 최대한 의견을 배제한 채 감독이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2014년에 온전히 예술가 중심의 전기가 탄생했다. 흥미로운 반전이 이 과정에서 몇몇 발견된다. 비록 로메르는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비평가로서 그가 ‘실패했다’고 단언하는 사람은 없었다. 영화비평가로서 그는 앙드레 바쟁과 비교해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업적을 남겼다. 이른바 ‘히치콕 논쟁’을 포함해서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자로서 그는 <포지티프>와 구분되는 잡지의 정체성을 완성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책은 편집장의 자리에서 물러날 당시의 그를 이렇게 적는다. “어느 날 로메르씨는 쫓겨났다”고. 자크 도니올 발크로즈의 이러한 언급은 다소 복합적이지만 독자로서는 충격적이다. 이 과정을 통해 서서히 그에 관한 선입견이 사라진다. 로메르가 남긴 여러 연작들 대신에, 중요한 것은 그가 추구한 ‘교육자’로서의 면모와 상상력 없는 ‘남자’적인 취향임을 깨닫게 된다. 심지어 어머니에게 자신이 감독이란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그가 보호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끊임없이 ‘실패’하고 ‘구체적 변형’을 거쳤던 그가 그럼에도 특유의 ‘독일식 취향’이나 ‘페르스발’에 관한 연극적이고 회화적인 방식을 중요시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영화 <갈루아인 페르스발>(1978)을 떠올린다. 이 책은 로메르가 택한 교육적인 노선이 그의 작품이 지닌 희극적이고 혼동스러운 관습의 발아 지점과 겹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 빚어낸 선하고 빛나는 ‘고립’이 ‘로메르적인 것’의 기원이며, 또한 사적이고 미학적인 고집이 사회가 아닌 스스로에게서 출발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메르는 진정한 ‘개인주의자’일 것이다. 한결같이 우리의 생각은 기존의 로메르로부터 벗어난다. 그의 대표작이 담은 자연과 사실의 요소들, 젊음의 순간적 아름다움, 명쾌함과 지적인 뉘앙스가 전부가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집필됐고, 로메르가 숨긴 전체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 마치 본인이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로메르는 자신의 일부를 드러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의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은 단 하나의 예술 영역이 ‘영화’였다는 점은 흥미롭다. 모두가 알다시피 로메르는 늦깎이 데뷔를 했고, 고전적이지만 현대적으로 보이는 프랑스영화의 견본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어린 모리스가 사촌들과 함께 연극을 했고, 진지하게 대사를 연기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이 저작은 가장 근원적이고 기본적이며, 또한 독창적인 로메르를 발견하게 만든다. 그는 온갖 호기심에 휩싸인 모습으로, 모순을 가진 채 살았다. 그런 탓에 우리는 잊힌 그의 텔레비전 연출작을 찾아보아야 하고 사라져버린 필름을 되살려야만 한다. 두꺼운 표지 때문인지, 음울한 흑백사진 때문인지, 책의 첫인상은 지나치게 고전적이었다. 게다가 모리스 셰레르라는 생소한 이름이 프루스트의 구절인 양 생경하고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소설 속 ‘마들렌’을 대하듯 천천히 ‘클레르’의 안시 호수를 떠올렸고, 비아리츠 바닷가의 ‘녹색 광선’을 상상했다. 개인적으로 캉대학교 재학 시절에 만났던 노엘 에르프의 이름을 되살리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한 학기 내내 그가 열정적으로 소개했던 ‘시적 리얼리즘’의 리듬과 로메르의 클래식한 취향이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들은 비자발적인 기억을 소환해내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구절, “작은 마르셀은 작가가 되었다”를 떠올리며 “작고 성실한 셰레르는 영화감독이 되었다”라고 적는다. 누구나 알고 있는 세상의 영역을 로메르는 순간의 예술로 포착하는 작가였다. 이제 로메르에 관한 “깨지기 쉬운 로즈버드와 비슷한 어떤 것”들은 더이상 혼자만의 비밀이 아니다.

'단편영화가 발굴한 감독들' 될성부른 감독들의 시작

될성부른 감독은 단편에서부터 반짝반짝 빛난다. 20년간의 한국 단편영화 궤적을 총망라한 이번 미쟝센단편영화제에는 감독의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거나 혹은 고유의 인장을 재확인할 수 있는 재기 넘치는 작품들이 상영된다.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은 한때 웃음기 없는 단편을 만들었다. <감상과 이해, 청산별곡>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선생님과 계속 공격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학생의 대화를 담다가 막판에 서늘한 반전을 제시하는 사회 드라마다. <살아남은 아이>의 신동석 감독이 연출했던 단편 역시 장편과 소재가 사뭇 다르다. <가희와 BH>의 BH는 고시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며 최근 헤어진 여자 친구를 찾아서 몇년 전에 줬던 물건을 돌려달라고 다짜고짜 신경질을 내고 집 안 곳곳을 헤집는다. <한공주> <우상>의 이수진 감독은 ‘웃픈’ 블랙코미디를 만든 적이 있다. <적의 사과>는 노동자(간호조무사였음이 밝혀진다)와 전투의경이 대치하다가 허무한 이유로 다리 한쪽을 잘라내야 할지도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다. 김종관 감독은 짧은 단편에서부터 감독의 아이덴티티가 형형히 빛난다. 배우 정유미의 탄생을 목격할 수 있는 <폴라로이드 작동법>, 6시간 후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분투하는 청소년 커플을 카메라가 좇는 <사랑하는 소녀> 두편이 이번 특별전에서 상영된다. <숨바꼭질> <장산범>의 허정 감독 역시 호러 장르에서 보여준 그의 장기가 단편에서도 확인되는 경우다. <저주의 기간>은 2년 전에 잃어버린 개를 매개로 아이들에게 벌어지는 섬뜩한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의 <산나물 처녀>는 감독만의 독특한 감성과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해온 배우 윤여정의 행보를 확인할 수 있는 귀여운 단편이다. 윤성호 감독은 <은하해방전선> 이전에도 그다운 단편을 찍었다. <이렇게는 계속 할 수 없어요>는 원래 찍으려던 영화를 찍지 못한 대신 예술과 연애에 대한 여러 인용들을 자기 기준으로 해석하는 구성을 취했는데, 이후 <은하해방전선>에도 이 단편의 어느 장면이 재인용된다. <침입자>의 손원평 감독이 만든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은 제목 그대로의 남자 캐릭터를 양익준이 연기한다. 순수하게 자신의 노동을 즐기는 그를 줄곧 무시하는 텔레마케터 여성은 살아남으려면 적당히 속물처럼 굴어야 한다고 믿는데, 자본주의사회의 ‘인간성’에 대해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진다. <혜화, 동> <소울메이트>의 민용근 감독의 <도둑소년>은 엄마의 시신과 6개월 동안 함께 살았던 일본 청소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눈에 커다란 점이 있고 햇반, 스팸, 동전 같은 것을 무표정으로 훔치는 소년의 얼굴을 집요하게 클로즈업하며 그와 가까워지기를 갈망한다. <우린 액션배우다> <악녀>의 정병길 감독이 연출한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가지>는 일본의 인디밴드 기타울프의 한국 내한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건방지다는 사실 하나로 베이스가 됐다느니 경력이 10개월이라느니 하는 말을 듣다 보면 페이크 다큐멘터리인가 싶지만, 실존하는 밴드이다. ‘가오’가 중요하다는 로큰롤 정신 그 자체로 만든 에너제틱한 단편이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카트>의 부지영 감독은 단편 <눈물>에서 이유 없이 눈물을 흘려 주변에서 이상하게 바라보는 소녀와 사내를 만나게 한다. 소녀의 눈물과 공간의 침잠을 환상적으로 연계해 연출한 신이 인상적이다.

'소요산' '동두천' 김진아 감독, VR을 통해 여성 재현의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했다

“욕망과 디아스포라”. 2019년 뮌헨에서 열린 김진아 감독의 회고전의 타이틀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정확히 요약한다. 유학 생활 6년 간 거식증을 포함한 자신의 일상을 비디오 카메라로 기록한 후 157분의 비디오 에세이로 편집해 탄생한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 사랑하는 남편과 관계에서 임신이 잘 되지 않자 한국에서 온 불법체류자 지하(하정우)와 비밀리에 잠자리를 갖는 중년 여성 소피(베라 파미가)가 주인공인 <두번째 사랑> 등 김진아 감독의 영화는 늘 여성의 욕망과 이방인의 정서를 담고 있었다. 그가 만든 VR 영화 연작 역시 여성주의와 타자성과 관련이 깊다. 1992년 주한미군 윤금이 씨 살해사건을 다룬 <동두천>, 1970년대 초 성병에 걸렸다고 의심받는 기지촌 여성들을 감금하고 치료했던 ‘몽키 하우스’가 배경인 <소요산>은 김진아 감독의 ‘미군 위안부 3부작’에 해당한다. UCLA 영화과 종신교수로 재직 중인 김진아 감독이 현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포함한 일로 한국에 체류 중이란 소식을 듣고 만남을 청했다. <동두천> <소요산>을 감상할 수 있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XR 섹션 ‘비욘드 리얼리티(Beyond Reality)’는 인천국제공항 제1교통센터에서 7월 18일까지 열린다. -워낙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비디오 아트와 설치 미술, 독립영화와 대기업 스튜디오 영화를 자유롭게 오갔던 터라 VR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처음에 VR 작업을 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 =원래 미술을 전공했다 보니까 이 내용은 판으로 찍었으면 좋겠다, 설치 미술로 해야겠다, 퍼포먼스용이다 하면서 매체를 자유롭게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은 분명 있다. VR은 2016년 처음 붐이 일어났을 땐 다른 극영화를 준비하느라 바빠서 크게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VR에 관한 국제 컨퍼런스 모더레이터를 맡게 된 거다. 잘 모르면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다. 참석자들이 발제하는 글을 미리 읽고 준비하다 보니 VR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다 마치 유레카처럼, 내가 그토록 영화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윤금이 이야기를 VR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파바박! 하고 들었다. -감독님에게 주한미군 윤금이 씨 살해사건이 큰 숙제였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내가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던 1992년에 윤금이 사건으로 학교가 시끌시끌했다. 내겐 너무 큰 사건이었다. 기지촌에서 일하던 한 개인이 처절하게 살해된 사실 자체가 묻혀버릴 뻔했다는 것, 무엇보다 그 이미지를 직접 사용한다는 게 가장 충격적이었다. 한 여성이 죽은 모습을 세상에 보인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폭력이었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모든 언론에 그 이미지가 나갔다. 폭력의 재현은 보는 사람에게도 그 피사체에게도 굉장한 폭력이라는 생각을 그때 직관적으로 했다. 왜 이 이미지가 포스터나 데모할 때 돌리는 전단지에 나와야 하는가에 대해 항의도 많이 했는데, 결국 학생회에서 돌아오는 답은 “위에서 그렇게 결정이 났다”, “이미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참을 수가 없었고 같은 여성으로서 너무 아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이 훼손된 사체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미지를 착취하며 그 반대가 됐으니까. 그 사진을 사용해야 한다고 끝까지 우겼던 사람들의 입장은, 이 정도 충격적이고 선정적인 무언가가 있지 않으면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결국 한미관계 역사상 최초로 주한미군 케네스 마클은 한국 법정에 섰고 실형을 받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승리라고 생각한다. =전단지에 있는 말도 안 되는 영어 문구로 된 이상한 슬로건이 몸에 낙인을 찍는 것처럼 베였다. 이 사건이 창작을 하는 내게 어떤 정체성을 만들어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시아, 그것도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이구나. 언어의 제국주의를 당해내지 못해서 얼렁뚱땅 영어로 된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후기 식민주의 사회의 한 존재라는 게 너무 강렬하게 체화됐고 이후 내가 만든 모든 작품도 결국 그 얘기였던 거 같다. 윤금이 이야기를 극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매번 같은 딜레마에 봉착했다. 이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이미지를 착취하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는데 없었다. 기본적으로 2D 시네마 매체 자체에 우리가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심리학적 기제가 관음이다. 자본주의 사회와 결탁해서 영화로 장사를 하면 결국 폭력과 섹스를 벗어날 수 없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영화 문법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VR을 체험하고 난 후 이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다고 불이 딱 켜지듯 생각이 든 거다. 그렇게 <동두천>을 만들었다. 내가 VR을 하게 된 건 1000%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소요산>은 1970년대 초 설립된 기지촌 여성들을 감금하고 치료했던 ‘몽키 하우스’를 담았다. 이 소재는 어떻게 발견했나. =2015~16년 사이에 촬영 로케이션 스카우팅을 다니며 자료 수집을 하다가 몽키 하우스에 가게 됐다. 아주 어렴풋이 정부가 기지촌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병 검사를 하고 낙검자들을 관리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 건물이 그렇게 멀쩡하게 남아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한국사회가 잘 살게 되면서 한때 낙후됐던 동네를 완전히 싹 밀어내고 고층 빌딩을 올려서 다시 알아볼 수 없는 동네가 되기도 하는데, 그런 와중에 기지촌 여성들의 슬픔과 고통이 맺힌 장소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게 너무 희한했다. 이 건물을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게 너무 초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다음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다. -미군 위안부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 VR 매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나. =영화는 감독의 편집에 의한 거의 강압적인 주체성이 있다. 감독이 보여주는 것만 관객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다큐멘터리를 가르칠 때 중립적인 프레임은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프레임을 잡는 순간 그 밖의 세상은 모두 버리는 거다.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독단적이고 남성적이고 반민주적인 매체다. 그에 반해 VR은 감독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관객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스토리텔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되게 난감해하는 감독들도 많은데 오히려 난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실험연극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궁극적으로 <동두천> <소요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게 여성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떤 시공간에서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고 쓰러져서 없어진 분들이다.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귀신이라 불러도 좋고 유령이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있는, 어쨌든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 안에서 떠도는 존재들이다. 이 분들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맞을까, 보여주지 않는 게 맞다. -당신의 작품에는 늘 유목민으로서의 시선이 녹아있거나, 욕망하는 여성을 다뤘다. 이 테마가 <동두천> <소요산>에는 어떻게 연결이 되고 바뀌었나. =어느 나라건 20대 여성이라면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자리가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뿌리내릴 수 없는 여성의 정체성을 기록한 게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였다. 난 실제로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유목적인 삶을 살았다. 욕망과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야기는 <그 집 앞>과 <두번째 사랑> 같은 극영화에서 더 강해졌다. 여성들에겐 주어진 한계가 분명하게 있는데, 그런 금기나 사회적인 제약을 깨게 하는 것은 결국 욕망이고 그게 멜로드라마의 본질이다. <두번째 사랑>에서 소피나 지하가 하는 행동은 결국 금기를 건드리는 것이다. 욕망 때문에 선을 넘고 나면 원래 갖고 있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향수가 생기고 분열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디아스포라다. 그런데 여자는 나이가 들면 행복해지는 게 있다. (웃음) 개인의 분노가 사회로, 나보다 더 변방에서 타자로 살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해야겠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많이 했다. 미국에서 종신교수가 되면서 이 생각이 더 강해졌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립대 교수로서 여러 가지 사회 활동을 하면서 내가 누군지, 내가 가진 한계가 무엇인지도 봤다. 그리고 한미 관계에서 사라진 여성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두 언어를 다 쓰는 사람들이 쿨하고 멋있다고들 하는데, 사실 비극적으로 끝나버린 쌍둥이 같은 존재가 미군 위안부와 기지촌 여성들이다. 한미 관계 속에서 철저하게 버려지고 소외당하고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진짜 유목민이다. 기지촌을 평생 떠날 수 없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디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완벽한 유목민들. 어렸을 때는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면, 나이가 들고부터는 내가 아니면 기지촌 여성의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작품 세계도 변한 것 같다. <동두천> <소요산>엔 전작과 다른 에너지가 있다.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는 여성의 몸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찍었다면, <동두천> <소요산>은 여성의 몸을 이야기하기 위해 몸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때는 시각 예술가로서 작업하던 때라 진짜 래디컬한 생각을 많이 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실험하는 작품도 많이 기획했고, 그중 하나가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였다. 서사로 풀어가는 극영화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보여줘서는 안 됐다. 미군 위안부 3부작의 미학적 전략의 키워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몸의 부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여성의 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제나 재현 윤리의 한계에 봉착한다. 몸을 보는 순간 생기는 많은 심리적 기제들은 이미 세상이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내가 멈출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보여주지 않는데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주는 충격은 상당하다. 그리고 아주 불편하다. -자신의 몸으로 다양한 실험을 했던 초기작의 경험이 있어서 몸의 부재로서 몸을 이야기하는 지금의 작업도 가능하지 않을까. =음, 맞는 것 같다. 워낙 내 몸을 재료로 너무 미친 짓을 많이 해봐서. (웃음) 보여준다고 해도 남성적 시선과는 다르게 보여주는 것 같고. <그 집 앞>에서 여성이 혼자 자위를 하다 오르가슴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6분짜리 롱테이크 신이 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충격을 많이 받았다. <두번째 사랑>에서 소피가 먼저 옷을 벗는 신도 남자들이 되게 불쾌해했다. 여성의 몸이 보여지는 관습과 전통이 있는데 그것을 따르지 않아서 불편한 거다. -헨리와 양자경이 나온 한중 합작 영화 <파이널 레시피>는 어떻게 작업하게 됐나. 요리 대회 이야기다. 김진아 감독의 작품 중 유일하게 여성의 신체에 관한 영화가 아니며 CJ E&M과 함께 작업했다. =<두번째 사랑>을 만들고 나서 여러 투자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미 합작 영화 제작에 대한 노하우가 있으니 제작자로 참여를 하거나 개발 단계만이라도 도와달라는 제안도 있었다. <파이널 레시피>는 처음에 크리에이티브 제작자로 시작했던 작품이다. 그러다 이 프로젝트의 끝을 보고 싶다는 오기도 생기고, 언어의 제국주의를 깨보고 싶다는 야심도 있었다. 미국에서 영어 제국주의는 정말 뼈에 와닿는 이야기다. <미나리>는 영어 대사가 거의 대부분인데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지 않았나. 아시안은 영어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미국은 전 세계 어딜 가서도 영어 영화를 찍는다. 중세시대 프랑스가 배경인데 영어를 쓴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는데 할리우드니까 용인한다. 그런데 중국에서 영국 배우들을 데리고 와서 <오만과 편견>에 버금가는 중국의 고전을 중국어로 찍게 하는 건 가능할까? 백인들이 그렇게 하는 건 되고 아시안은 그렇게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걸까. 그래서 밀어붙인 게 <파이널 레시피>였다. 어쩌면 인종문제보다도 더 오래갈 영어 제국주의 문제를 상업영화에서 꼬아서 시도해보고 싶었다. -평소 미국과 한국에 체류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 되나. =작년엔 정확히 반반 있었다. UCLA 종신교수가 된 후에는 한국에 오래 있지는 못했는데, 작년엔 <소요산>의 후반 작업과 집안일 때문에 한국에 있어야 했다. 어차피 팬데믹 상황이라 줌으로 수업을 한다면 한국에 있어도 괜찮지 않냐고 학교에서 이해해줬다. 그런데 말이 쉽지 진짜 죽을 맛이더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강의를 한다는 게…. (웃음) -하버드대학교에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연출, 한국영화 이론을 강의한 걸로 아는데, 지금 UCLA에서 어떤 걸 가르치나. =UCLA의 영화, 텔레비전,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 학과에서 영화를 담당한다. 연출 수업도 하고 내가 좀더 특화되는 영역은 트랜스내셔널 시네마다. 트랜스내셔널 시네마는 트랜스내셔널한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그 사람들의 정체성은 20세기의 모순과 연관되어 있다. 경제적 이유로 했던 이민, 제국주의, 식민주의, 인신매매, 입양, 난민, 전쟁…. 영화적인 매체를 통해 사회 변혁을 이루어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학생에게 가르치는 일도 한다. -해외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은 한국영화나 트랜스내셔널 시네마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갖고 있나. =트랜스내셔널 시네마는 공감하는 학생이 굉장히 많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니까. 하버드에서 한국영화를 가르치던 2005~2006년에는 좀 배운 게 많고 가방끈이 긴 학생들이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웃음) 유럽에선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나 이창동 감독의 예술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2013년에 다시 하버드로 갔을 때는 평범한 미국·영국 백인 학생들이 그냥 제작 수업인데도 한국영화 얘기를 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나도 잘 기억이 안 나는 예술영화까지 찾아보더라. <기생충> 이후에는 한국이 문화 선진국, 영화의 제1세계라는 인식은 너무나 만연해 있다. 외국어 영화라는 단서를 달지 않아도 좋은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여러 자리를 통해 김진아 감독의 작품을 돌아보고 특히 젊은 여성들이 영향을 받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도 한국의 재능 있는 2~30대 여성들을 발굴하고 교육하고 멘토링 하는 것을 좋아한다. UCLA에서 익명의 기부자가 기금을 만들어 매년 아랍계 여성 5명을 뽑아 장학금과 생활비를 대겠다고 했다.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랍 여성들이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찡했다. 지금 한국 사회가 바뀌기 위해서는 2~30대 여성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정당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이 건강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그들의 영화도 계속 나와야 한다. 최근 한국 여성 감독들이 많이 등장한 것은 너무 반가운 일이지만 왜 상업영화는 여전히 남성 위주인지,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하고 바꾸어나갈지 신랄하고 솔직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악순환 구조가 선순환 구조로 바뀔 수 있다.

'제74회 칸국제영화제 중간결산'...현실의 균열 속에서 영화는 탄생한다

7월 13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해변에 화려한 불꽃 쇼가 펼쳐졌다.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를 축하하는 바스티유데이 불꽃놀이를 기점으로 7월 6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칸영화제도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열린 만큼 크고 작은 문제가 없진 않았지만 순조롭게 축제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씨네21>에서는 올해 칸영화제의 전반적인 흐름과 함께 유난히 치열했던 경쟁부문의 추세를 점검했다. 24편의 작품 중 16편이 공개된 가운데 개막작 <아네트>, 폴 버호벤의 <베네데타>,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가 높은 평가를 받으며 두각을 드러내는 중이다. 현지 통신원이 전해온 74회 칸영화제 중간 평가와 함께 <베네데타> <드라이브 마이 카>의 기자회견을 정리해보았다. 올해 칸을 장식한 말들을 통해 영화제의 고민과 나아갈 방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세찬 파도 앞에서도 스크린의 불은 꺼질 줄 모른 채 밝기만 하다. 우리가 알던 일상으로의 복귀와 영화제의 정상화. “지구상에서 영화는 한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던 봉준호 감독의 선언으로 문을 연 2021년 칸영화제는 코로나19 확산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영화제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2019년 황금종려상 수상자를 굳이 모셔와서 연속성을 부여하려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완벽히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로 극장이 문을 닫고 모든 것이 멈췄던 만큼 예전보다 다소 많은 24편의 경쟁작에도 불구하고 영화 한편이 공개될 때마다 꼼꼼한 관심과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레드카펫 행사와 스타들의 연이은 포토콜, 관객과의 만남이나 영화마다 이어지는 기자회견까지 최소한 겉보기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영화제의 일상을 되찾은 것만 같다. 코로나, 스트리밍 서비스, 환경보호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현실은 익숙한 듯 미묘하게 달라졌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코트다쥐르 해안의 풍경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우선 입장할 때마다 확인하는 코로나19 패스는 물론이고 인터넷 티켓 예약이 의무가 되면서 영화를 보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 사라졌다. 바뀐 규칙에 맞춰 유연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크고 작은 마찰과 변화를 따르지 못한 균열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칸의 코로나19 방역이 의외로 촘촘하지 못하다는 <뉴욕타임스>의 지적을 시작으로 프랑스 언론에서도 칸의 상황에 연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칸이 속한 알프마리팀 지역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곳(10만명당 61명)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백신에 대한 불안감도 번졌다. 프랑스 배우 레아 세두가 백신을 맞고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며 영화제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레아 세두는 세편의 경쟁작(<프렌치 디스패치> <더 스토리 오브 마이 와이프> <프랑스>)과 한편의 프리미어 초청작(<디셉션>)에 출연하여 행사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칸 곳곳에선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채 악수와 포옹 등 밀접 접촉을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개막작이 시작되자 주변 관객 중 4분의 3이 마스크를 벗었고, 기립박수가 길어지자 레오스 카락스와 애덤 드라이버는 극장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며 극장 풍경을 전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스타와 관객을 향한 항의가 SNS를 통해 번지자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는 “마스크가 칸영화제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법”이라고 호소했다. 조직위원장 피에르 레스큐어는 아예 상영 시작 전 내보낼 메시지를 녹음하기도 했다. 다행히 영화제의 반환점을 돈 지금까지도 확진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운영위원회측에서도 초반 다소 느슨했던 방역 규칙을 점차 강화해나가는 중이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건 거리의 상황뿐만이 아니다. 칸영화제가 구체적으로 당면한 도전 과제는 어쩌면 코로나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빠르게 성장한 플랫폼 산업과의 관계 재정립, 그리고 기후 재앙에 대비한 환경문제에 대한 화답이 더 두드러졌다. 영화 수입사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마켓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데, 넷플릭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긴장관계는 일정 부분 여전한 가운데 이들과의 공존이 불가피한 만큼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들이 발견된다. 일례로 개막작 <아네트>와 경쟁작 중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 미국 독립영화계의 신성이자 한국계 영화감독 코고나다의 <애프터 양>의 판권을 단독으로 사들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국의 스트리밍 업체 왓챠다. 또 하나의 화두인 환경보호에 관한 인식 변화를 위해 칸은 이른바 ‘슈퍼 그린’을 제창하는 중이다. 특히 이번 칸영화제에서는 과시적인 행사를 축소하는 것은 물론 환경영화를 위한 섹션을 마련하고 필요성을 홍보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프랑스의 한 라디오 매체는 심사위원장인 스파이크 리 감독이 2018년 칸에 들고 왔던 <블랙클랜스맨>이, 환경영화제가 주는 상(그린 실 EMA 어워드)을 수상한 바 있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정치적이고도 예술적인 익숙한 듯 미묘하고 사소한 변화는 24편의 경쟁작을 둘러싼 분위기에서도 감지된다. 16편의 작품이 공개된 7월 14일 현재, 확실한 황금종려상 후보라고 할 만한 화제작이 나오지 않아 누구도 수상작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단독으로 치고 나가는 작품이 없는 대신 몇편을 제외하곤 후보들 사이에 편차가 거의 없다는 점이 올해 도드라지는 특징 중 하나다. 대체적으로 작품마다 각자의 매력을 뽐내며 고르고 무난한 반응을 얻고 있지만 지배적인 예측이 없는 건 아니다. 결국엔 심사위원단이 정치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에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언론의 반응이다. 조망하는 주제, 세계관, 인물과 시대를 다루는 방식 등이 서로 겹치지 않는 가운데서도 거의 모든 작품에서 사회적인 균열을 포착하고자 하는 열망과 에너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프랑스 평론가 장 미셸 프로동은 “직접적이건 그렇지 않건 올해 칸에 소개된 작품들은 사회적 균열을 다룬 작품들이 많다. 여기서 균열이란 사회구성원간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계층의 분리 현상을 말한다”라고 진단했다. 계층 분리에 따른 균열은 올해만 특별한 것이 아니다. 2019년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기생충>이 대표적이다. 그 영향인지도 모르지만 올해는 특히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 편수가 늘어난 상황이다. 비단 경쟁작뿐 아니라 감독주간에 선보인 에마뉘엘 카레르 감독의 <위스트르앙>, 비평가주간 사뮈엘 테이스 감독의 <리틀 네이처> 등 여타 섹션에서도 사회적 균열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경쟁부문에서도 카트린 코르시니 감독의 <분열>이나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6번의 칸>, 어머니의 죽음과 자유의 상실을 고찰하는 나다브 라피드의 <아헤드의 무릎>, 소비에트연합 해체 시기의 비이성과 폭력을 정면에서 응시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페트로프의 플루>, 아시가르 파르하디의 <히어로> 등 적지 않은 작품이 계층 갈등에서 촉발된 개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러시아에서 출국금지당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경우 화상으로 기자회견을 가지기도 했으며 칸측은 극장에 그의 자리를 상징적으로 비워두었다. “가택 연금을 받는 동안 쓰여진 이 영화는 억압을 향한 당당하고 짜릿한 복귀”(<버라이어티>)라 할 만하다. 그중 대표적으로 <분열>은 이별을 앞두고 있던 두 여자가 프랑스의 노란조끼운동 시위로 병원에 갇히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단순하지만 명료한 방식으로 개인과 집단 사이의 충돌을 표현한 이 작품은 “사회운동이 개인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예리하게 포착”(<스크린 인터내셔널>)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평단의 반응은 평범하지만 정치적 메시지가 두드러지는 <분열>이 황금종려상에 오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전반적으로 고른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두각을 드러내는 작품은 개막작 <아네트>와 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데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정도다. <르 필름 프랑세즈>는 “레오스 카락스가 아직 칸에서 한번도 상을 받지 못했다”는 걸 상기시키며 애덤 드라이버의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어떤 상이든 주어질 것이란 예상을 내놓았다. 여우주연상 후보로는 <베네데타>의 비르지니 에피라, <최악의 사람>의 레나트 레인스베, <분열>의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가 거론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승자는 <드라이브 마이 카> 한편 지난해 칸영화제 공식 선정작이자 오랜 기대작이었던 웨스 앤더슨의 <프렌치 디스패치>는 대체로 평이한 반응이다. 68혁명을 배경으로 하되 프랑스의 한 가상도시를 무대로 한 이 영화는 <뉴요커> 스타일의 잡지 뒤에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짧은 챕터들을 여러 개 이어나가는 방식은 마치 영화를 하나의 잡지처럼 보이도록 구성했다.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웨스 앤더슨의 스타일은 여전한 가운데 프랑스 뉴웨이브 실험에 가까워진, 혼란스런 앙상블”(<인디와이어>)이라는 평이다. “에피소드는 물론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콜라주,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여러 영감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론 익숙한”(<텔레라마>) 연출과 주제라는 한계도 지적된다. 화제작 중 하나인 폴 버호벤의 <베네데타>는 아마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일 것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공식 선정작 중 한편이었던 이 작품은 1987년 발간된 논픽션 <수녀원 스캔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을 원작으로 한다. “숭고함에 도달하기 위해 성적 환상과 에로틱한 장면을 뒤섞는 위험을 감수하는”(<포지티프>) 이 영화를 두고 <프리미어>는 “역사적인 동시에 로마네스크적 특성을 지닌 버호벤식의 훌륭한 이야기”라고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반면 프랑스 시사 일간지 <르 피가로>는 “이런 유치함은 놀이터나 광대쇼에서나 허용된다”라며 폴 버호벤의 작가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여러 각도에서 촬영된 에피라의 육체는 지나치게 현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일 만큼 명료하다”는 <텔레라마>의 평을 통해 여러 측면에서 이 영화의 성취와 한계를 짐작할 수 있다. <스크린 데일리>는 물론 <카이에 뒤 시네마> <르 필름 프랑세즈>의 별점 모두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이끌어낸 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다. <포지티프> <텔레라마> <레쟁록> 등 프랑스 언론 중 세곳이 이 영화를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으로 전망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아내를 잃은 연극 감독의 여정을 따라간다. 각본을 쓰던 파트너이기도 했던 아내를 잃은 남자는 작품 연출을 위해 히로시마로 간다. 말이 없는 한 여성이 그의 운전기사로 고용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고요한, 하지만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을 응시하는 이 영화는 “3시간의 러닝타임이 모자랄 정도로 농밀하다”(인디와이어). 산산이 부서진 세계에서 오늘을 버티고 살아가야 하는 시간은 히로시마라는 상징적인 공간과 연극 무대라는 극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찬찬히 흩뿌려진다. “3시간 동안의 완벽한 경험, 꿈처럼 흘러가는 러닝타임, 죽은 시간도 없고 단 한번의 서두름도 없는 마스터의 솜씨”(<프리미어>), “연금술과도 같은 침묵”(<르 몽드>) 등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간을 찍은 뒤 편집이라는 영화적 운동을 통해 리듬을 창조해내는 하마구치의 연출이 정점에 달했다는 평이다. 하마구치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작이라는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황금종려상에 제일 가까운 영화로 거론 중이다.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지만 숀 베이커의 <레드 로켓>, 일디코 에네디의 <내 아내의 이야기>,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메모리아>, 브루노 뒤몽의 <프랑스> 등 쟁쟁한 기대작들이 아직 베일에 싸여 있는 만큼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 올해 칸의 성과가 풍요 속의 빈곤이 될지, 기념비적인 풍년이 될지는 아직 좀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