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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9404)

[촬영현장] 영화 <효자동 이발사>

'만세만세 성한모', '출세했다 성한모', '한미외교의 주역', '우리들의 호오-프'. 17일 오후 전라북도 완주군에 위치한 영화 <효자동 이발소>(제작 청어람)의 오픈 세트장. 대통령의 이발사 성한모(송강호)의 귀국 환영회가 한창이다.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그 시대 노래 '감격시대'의 아코디언 소리. 화환에 플래카드까지 흔들고 있는 한 무리의 동네 사람 뒤에는 '태양 캬라멜'의 광고 전단이나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는 공익 포스터가 알맞게 낡아 찢겨 있다. <효자동 이발사>는 소박하게 살아가던 이발사가 우연히 대통령의 이발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휴먼 코미디. 영화는 사사오입 개헌, 4.19 혁명, 새마을 운동, 10.26 사태 등 한국 현대사의 격변 속에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웃음과 감동을 버무려 보여준다. 이날 촬영분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직후. 이전까지 청와대를 남몰래 오가던 한모의 모습이 대통령을 쫓던 TV 카메라를 통해 이 마을까지 전파를 타고 이를 처음 알게 된 이웃들은 귀국하는 그를 위해 환영회를 마련한다. 환영회가 열리는 곳은 효자동 3거리. 제작진은 전북 완주에 실제 크기의 60% 정도로 당시의 효자동을 재현했다. 주름 치마에 학도병, 한모의 모습이 안보이는 듯 기웃거리는 동네 아줌마들까지 함성을 지르며 환영하는 사람들 앞에 갈색양복을 빼입고 양손에 여행가방을 든 송강호가 어깨를 흔들며 멋쩍게 걸어온다. 한모가 마을 사람들과 악수를 청하자 한껏 고조되는 분위기. 영화에서 이발사 송강호의 상대역 '면도사' 민자역을 맡은 배우는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의 문소리다. 두 사람은 덜컥 쳐버린 사고로 민자가 임신을 하자 결혼을 한다. 환영회에 나온 문소리는 마을 사람들이 한모에게 이끄는 손을 뿌리치며 쑥스러워 하고 있다. 작은 규모라도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이라 촬영은 한번에 OK 사인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교복이 한 두 명 더 있어야 겠는데…', '기웃거리는 아줌마들 연기가 어색해…', '오른쪽으로 뛰쳐나오는 아줌마가 한 명 더 있어야겠다' 등이 감독을 비롯한 연출부의 지적. 여기에 카메라 플레쉬를 터뜨리는 기자들도 한몫한다. 영화는 <묻지마 패밀리>, <품행제로>, <선택>, <여섯개의 시선> 등을 배급한 영화사 청어람의 첫 제작 작품이며 한국영화아카데미 13기 출신의 임찬상(34) 감독의 데뷔작이다. 감독은 "60~70년대 정치적 변화와 흐름이 평범한 서민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 되짚어보고 싶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서너 번의 리허설과 비슷한 횟수의 촬영 끝에 만족할 만한 그림을 담아낸 뒤 이어지는 다음 장면은 한모의 '신분'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청탁'을 하는 장면.마을 사람들은 아들을 군대에서 빼달라는 부탁에서부터 꿔준 돈 안 갚을 수 없겠느냐는 상담까지 이제 대통령의 '측근'이 된 한모에게 민원을 넣는다. 이날 효자동 이발사의 이발 의자에 앉은 사람은 앞집의 쌀집 최씨. "아주 친한 선배인데 말야, 춘천에서 출마하고 싶다는데 말야. 공천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 좀 어떻게 안될까?" 지난 9월 중순 촬영을 시작한 <효자동…>는 올해 연말까지 순제작비 34억을 들여 촬영을 진행한 뒤 내년 3월께 개봉할 예정이다.(완주=연합뉴스)

웅장한 세트와 정교한 소품,<웰컴 투 더 정글>

■ Story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을 지녔지만, 언젠가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여는 게 꿈인 베테랑 ‘회수 전문가’ 벡(더 록). 단 한번의 실패도 없는 그에게 최고의 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의뢰가 들어온다. 베일에 싸인 보물 ‘가토’를 찾겠다고 정글로 간 트래비스(숀 윌리엄 스콧)를 찾기 위해 벡은 위험천만의 황금도시 ‘헬도라도’로 떠난다. ■ Review <미이라2>와 <스콜피온 킹>을 찍고 난 뒤, 드웨인 더글러스 존슨(더 록)은 ‘현대물에 출연하고 싶다’는 간절한 뜻을 제작자에게 비쳤다.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내기 위해 겨우 아랫도리만 가리도록 제작된 빈약한 의상도 맘에 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근엄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역할도 연이은 두편이면 족했다. “고작 두편의 영화가 내 필모의 전부지만, 케빈(당시 <미이라>의 제작자)에게 졸랐다. 신비스럽지만, 현대물에 등장하고 무엇보다 유머러스한 인물을 맡고 싶다고.” 마침 브라질의 아마존이 배경인 어드벤처소설 의 판권을 사들인 또 다른 제작자 카렌 클래서의 제안에 따라 드웨인은 뭐든지 돌려받는(bring back) ‘회수 전문가’ 벡(Beck)으로 변신한다. 벡은 정글과 다름없는 로스앤젤레스의 뒷골목을 전전하며 의뢰인이 요구한 물건을 회수하는 속칭 심부름꾼. 그의 꿈은 빚을 갚고, 근사한 식당을 차리는 것이다. 그런 그의 바람을 단번에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베일에 싸인 보물을 찾겠다고 아마존 정글로 간 아들을 찾아달라는 의뢰가 그것이다. 원주민을 착취해 모은 금으로 재벌이 된 해쳐(크리스토퍼 워컨)의 소굴이기도 한 정글은, 도처에 민병대와 죽음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어 ‘헬도라도’(지옥이라는 의미의 ‘hell’을 엘도라도에 붙여)라 불릴 정도다. 애물단지 트래비스를 찾아 무사히 귀환하기를 바라는 벡의 염원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맨 인 블랙>과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미술을 맡았던 톰 듀필드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정글 세트가 하와이에 지어졌으며, 극중 등장하는 원숭이들은 인형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교한 움직임을 자랑한다. 아마존 정글을 풀숏으로 담아내는 유려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베이트>의 토비어스 실리에슬러의 솜씨다. 더 록의 연기는 배우라고 불리기에 어색함이 없다.

[인터뷰] <천년호> 주연 정준호

"연기인생의 대표작으로 남기고 싶다" "지금도 `천년호'만 생각하면 고생했던 기억이 앞섭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갑옷을 입고 무거운 칼을 휘두르다보면 금세 녹초가 되지요. 겨울에는 또 왜 그렇게 추웠던지.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해 목숨에 위협을 느낄 때는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얘기가 없어 제작사를 원망하기도 했지요. 관객이 많이 오셔서 그 악몽과 원망이 눈녹 듯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천년호>(千年湖)(제작 한맥영화)의 시사회를 17일 마치고 기자들과 마주한 정준호(34)는 <두사부일체>와 <가문의 영광>으로 관객의 사랑을 한껏 받았던 배우답지 않게 흥행에 대한 걱정과 기대를 앞세운다. 오는 28일 개봉할 <천년호>는 9세기 통일신라의 진성여왕 시대를 배경으로 천년사직의 비밀과 목숨을 건 사랑을 그려낸 무협판타지멜로. 여기서 그는 신라의 간성인 비하랑 장군으로 등장해 산골처녀 자운비(김효진)와 진성여왕(김혜리)의 사랑을 받으며 천년의 한을 풀려는 요괴와 국운을 건 대결을 펼친다. "지난해 <가문의 영광>이 끝난 뒤로는 코미디 제의가 줄을 이었지요. 모두 뿌리치고 제 연기인생에 대표작을 남기겠다는 각오로 이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장군이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은 지켜내지 못했다는 회한 때문에 번민하다가 결국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내 손으로 그를 죽여야 하는 비극적 운명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정준호가 중국에서 영화를 촬영한 것은 <아나키스트>에 이어 두 번째. 이 영화를 위해 정두홍 액션스쿨에서 석 달간 격투기를 익혔고, 한국검예도 관장에게서 검술을 배웠다. 말은 중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승마장에서 속보로 몰아본 것이 고작이었으나 틈나는 대로 연습해 카메라 앞에서는 바람을 가르며 쌩쌩 달릴 정도가 됐다. 그의 운동신경은 충무로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다. 정작 본인은 "액션 배우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겸손하게 말하니 액션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두 명의 여배우와 베드신을 해본 소감을 묻자 동갑내기인 진성여왕 역의 김혜리를 짓궂게 쳐다보며 "아무래도 어린 여자가 더 낫죠"라고 너스레를 떤다. 정준호는 자운비로 캐스팅된 김효진(20ㆍ당시에는 미성년자)이 베드신 때문에 출연을 망설이자 그의 어머니를 찾아가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작품에 꼭 필요한 노출은 어쩔 수 없다"고 설득해 허락을 얻어냈다는 비화도 털어놓았다. 정준호는 1995년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무렵 이란 영화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으나 본격적인 스크린 데뷔작은 2000년 4월 개봉된 <아나키스트>인 셈. 뒤늦은 출발을 만회하려는 듯 숨가쁘게 촬영현장을 누비며 <사이렌>, <두사부일체>, <흑수선>,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하얀 방>, <가문의 영광> 등에 출연해 불과 2년여 만에 필모그래피를 두툼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얼굴값하지 못하는 미남배우'란 콤플렉스에 시달려오다가 `흥행 배우' 반열에 오른 정준호. 그가 이 영화로 연기력까지 인정받는 `행복한 배우'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느 늙은 매춘부의 죽음,<세라진> 촬영현장

“내가 임청하랑 동갑이거든. 근데 그 언니가 하늘을 붕붕 날아다닐 때 난 만날 엄마나 할머니 역 했어…. 그나마 다행이지. 이번엔 공주거든. 양공주.” 배우이자 연극연출가로 이름 높은 이영란(50) 교수(스크린에서 그녀를 본 기억이 없다고? 잠깐 눈을 감고서 장선우 감독의 <꽃잎>에서 흰 소복을 입은 어머니가 누구였는지 떠올려보라). 그녀의 달변에 빠져들면 헤집고 나오기가 쉽지 않다. 양공주 세라진이 되기로 맘먹고 짬이 날 때마다 경기도 평택의 기지촌을 어슬렁거리면서 맥주를 몇병 마시는 것이 이제 일과가 됐는데, 행차만 하면 여기저기서 공짜 안주 대접하겠다며 손을 이끌 정도라니. 김성숙 감독의 <세라진> 촬영장을 엿보기 위해 들렀던 금요일 밤도 그녀의 독무대. 가장 붐비는 요일이라 손님들이 바에서 뒤늦게 나가는 바람에 촬영장 세팅이 새벽 4시까지 이어졌고, 다른 조·단역배우들은 잠에 곯아떨어졌지만 에너지 넘치는 그녀는 스탭들에게 수시로 농 걸고 장난치며 수다를 푼다. <세라진>은 청계천 노동자의 일상에 드리워진 욕망의 실루엣을 들춰보인 단편 <동시에>로 주목받았던 김성숙 감독의 세 번째 단편영화. 1999년 돌연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많은 이들을 궁금케 했던 그의 이번 영화는 컬럼비아대 영화과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올해 이스트만 코닥 제작지원작이기도 하다. “몇년 전 기지촌의 60대 매춘부가 미군 병사에 의해 살해됐다는 신문기사”로부터 출발, 감독 자신이 어린 시절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기지촌에서 보았던 유년 시절의 풍경을 입힌 <세라진>은 “기지촌에서조차 밀려난 어느 늙은 매춘부가 죽음을 결심하고 난 다음 보내는 하루를 뒤따르는 영화”다. 사회적 비극이 잉태한 비극적 소재를 감독은 “욕망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주제”로 풀어보겠다고. 11월15일 예정된 8회 촬영을 모두 마치고, 현재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사진 정진환·글 이영진 ♣ 실제 영업을 하는 술집이라 촬영이 끝난 다음에는 애써 붙여놓은 각종 장식을 떼어내야 한다. 이튿날 촬영 때 다시 붙여야 하고. 이중고를 감내해야 하는 독립영화 스탭들.(왼쪽 사진) ♣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꾀어온 외국인 단역들. 뒤에 보이는 술집 여인 역은 구정아 프로듀서의 친구이기도 하다. “무료한 생활에 활력소가 될까 싶어 자원했다”는 그녀는 담배를 피울 줄 안다는 이유로 카메라 앞으로 곧장 승진.(중앙 사진) ♣ 김성숙(가운데) 감독은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1시간 이상 리허설을 한 다음에도 짬이 날 때마다 배우들을 붙잡고 주파수를 맞춘다. (오른쪽)

영화 초기 투자, 새로운 길은 있는가?

명필름 투자설명회 개최, 향후 제작할 작품 7편 소개 명필름이 ’제3의 길’을 개척하는 중인가? 명필름이 지난 11월19일 ‘영상투자자협의회’(이하 영투협)를 상대로 개최한 투자설명회는 향후 명필름의 행보를 가늠해볼 자리라는 점에서 영화계의 눈길을 끌었다. 명필름은 그간 <와이키키 브라더스> <공동경비구역 JSA > 등 대부분 영화에 대한 투자를 CJ엔터테인먼트로부터 받아왔지만, <바람난 가족>(사진)이 인터넷 펀드로 수익을 올린 뒤에는 좀더 유연한 투자유치에 힘써왔다. 따라서 이번 투자설명회는 메이저 배급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제3의 길’을 만들 수 있는지 시험하는 성격을 가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명필름이 영투협에 제안한 내용은 각 프로젝트의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 대한 ‘개발 투자’에 대한 것이었다. 영화의 프리프로덕션에 해당하는 시나리오 개발부터 주연배우가 확정되기 전까지의 투자를 별도로 받아, 이 투자분에 대해서는 그 이후 시기에 이뤄지는 투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개발 투자’가 이뤄진다면 제작사인 명필름 입장에서는 초기 프로젝트의 개발비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을 얻겠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정도 외에는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투자하는 셈이라 커다란 위험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명필름이 개발 단계의 투자자에게 좀더 높은 수익을 배분해주겠다는 것은 그러한 리스크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좋은 프로젝트를 만난다면, 일찍 투자한 데 대한 부가적인 수익을 얻는 것이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시나리오 단계의 투자유치는 사실 새로운 투자제안 아이템은 아니다. 하지만 조건을 구체화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한다. 투자는 총제작비의 10% 이상으로 하되, 주연배우 확정시까지 투자지분 비율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개발에 대한 투자 이후 진척 사항을 고려해 본 투자단계에도 참가할 수 있다. 물론 같은 투자자라 해도, 주연배우 확정 이전의 투자와 그 이후의 투자는 다른 수익배분율을 적용받게 된다. 이번 설명회에선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명필름이 제작할 7편의 영화가 소개되었다. 이중엔 소아암에 걸린 형과 가족을 철부지 동생의 시선으로 바라본 드라마 <안녕, 형아>, 무림고수가 되고픈 두 청년의 치열한 도전을 그린 아날로그식 무술영화인 임순례 감독의 <무림고수>, 의 김현석 감독이 엮어낼 두 형제를 둘러싼 로맨틱코미디 <광식이 동생 광태>, 님 웨일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삶과 사랑을 그리게 될 정지영 감독의 <아리랑>, 50년 동안 외면받았던 ‘노근리’ 사건을 재현하는 최호 감독의 충격적인 드라마 <노근리 다리>, 10·26 사건에 우연치 않게 끼어들어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던 어리숙한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경호원들의 소동을 임상수 감독 특유의 코미디로 풀어낼 <그때 그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백은하

고상한 한기(寒氣),<…ing>의 임수정

스물네살의 임수정은 지금까지 고등학생 이하의 역할만 맡아왔다. <피아노 치는 대통령>의 골칫거리 대통령 딸이 그랬고 <장화, 홍련>에서 죄의식을 지닌 수미가 그랬다. 동시에 이 역할들은 또래와 구별되는 조숙함을 요구했다. 실제 임수정이 그렇다는 걸 아는 듯. 그에겐 복잡한 생각과 성숙한 깨달음이 줄 수 있는 조심스러움과 일종의 냉기가 있다. 작고 마른 체구는 의지로 버릴 수 없는 예민함의 증거 같다. 특유의 볼멘 뺨은 내 이야기를 안으로 쌓아두는 천성의 흔적일 것이다. 임수정은 혼자 있는 데 익숙하고 혼자 있길 좋아한다. 요즘도 쉬는 날엔 모자를 눌러쓰고 이어폰을 꽂은 채 혼자 시내를 누빈다. 긴 시간을 두고 사람과 친해지듯 캐릭터와 친해지는 임수정은 카메라를 친숙히 대하는 데에도 기간이 필요했다. 세 번째 영화에 와서야 임수정은 카메라에 친숙함을 가졌다. “그전까지는 카메라를 의식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두려웠어요. 그런데 이제 친해진 것 같애요, 나도 모르게. 카메라가 옆에 있으면 왠지 안정감도 들고.” 그가 소리내서 웃는다. “못하면 NG내지. 될 때까지 테이크 가는 거지, 하는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제가 현장에서 원래 말이 없는 편인데, 이번엔 스탭들하고 친해지려고 바보 같은 행동도 많이 하고 우스꽝스러운 짓도 하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것도 나중엔 편해졌어요. ” 현장에서 달라지자 연기가 편안해졌다. 그는 자기 자신이 이렇게 밝을 줄, 이렇게 활짝 웃게 될 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장화, 홍련>의 수미에 가까웠던 성격은 극중 민아가 그런 것처럼 밖을 향한 문을 열어둘 수 있게 됐다. 그 문 틈으로, 바람처럼 여유가 새들어왔다. “나이보다 어린 역할들만 하게 되는 거 서운하죠.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도 내 나이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데. 근데 사람들이 그걸 믿어주지 못하고 내 표현이 부족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속상해요. 근데 이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내 안에서 그런 성숙함이 자연스럽게 풍길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것 같아요.” <장화, 홍련>의 흥행 때문인지 <…ing>의 현장 스탭들이 자신을 다르게 보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는 그는, “나는 그대로인데,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데”라는 말에 힘을 준다. 그래서 다행이다. 임수정은 드라마에서 소모된 적이 없고 CF로 쉽게 이미지를 만들지 않았다. 그의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조몰락거리기 까다롭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바로 이런 점을 교묘히 이용하지 않은 것은 더욱 다행스럽다. 배우의 본래 성격이 만들어낸 캐릭터는 드라마의 인지도와 CF의 강렬한 화면이 제조한 이미지보다 단단하다. 단단한 만큼 꺾이면 부러지지만 성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앳된 얼굴과 성숙함의 공존, 이 매력과 더불어 임수정이 풍기는 고상한 한기(寒氣)에는 힘이 있었다. 홀로 세운 성 안에서 강하게 자란 여인의 카리스마로 언젠가 불리게 될 것 같은.

ULTRA COOL-SEXY,<킬 빌>의 우마 서먼

인간의 성공과 실패가 유전인자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21세기 가까운 미래,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의 가장 우수한 인력으로 손꼽히던 아이린은 우마 서먼이 지닌 매력의 모듬회 같은 캐릭터였다. 늘씬한 키에 조각 같은 외모, 우주과학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냉철함, 그리고 완벽한 우성인자를 갖춘 금발 미녀. <개와 고양이의 진실>에 등장하는 섹시하지만 멍청한 노엘을 맡을 때까지도 그녀는 극 안에서 이방인처럼 서성이는 조연에 머물렀다. 예쁘지만 물기없는 그녀의 몸과 얼굴 표정은 서정적이고 풍부한 감성을 내비쳐야 하는 20세기 여주인공 역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어딘가에 아무리 빠져 있어도 내 안의 한 부분은 늘 차갑게 식어 있다”고 고백하는 우마의 서늘한(언뜻 보면 차가운) 캐릭터는 21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각광받기 시작한다. 코끝이 약간 휘고 입가가 살짝 말려올라가는 정도의 옅은 미소, 꼿꼿한 등과 살짝 내리깔린 눈동자, 고양이처럼 길고 가는 몸매는 이상하리 만치 멜로물과 부조화를 이뤘다. 그렇다고 그녀가 얌전한 코스튬드라마 <러브 템테이션>이나 <레미제라블>의 팡틴 역에 녹아든 연기를 보여준 것도 아니다. 혹자들이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배트맨 앤 로빈>의 포이즌 아이비 역을 탐낸 건 오히려 그녀쪽이었다. “비현실적인 캐릭터에게 끌렸다. 사람들은 내 몸매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말하지만. 특별한 의상과 특별한 대사가 있고, 감독의 독특한 개성이 살아 숨쉬는 영화라면 욕심이 마구 생겨난다.” 그래서일까. <펄프 픽션>에서 우아한 미아를 연기하는 서먼은 무표정 속에 번뜩이는 광기를 천재적으로 표현한다. 그로부터 10년, 다시 타란티노 감독과 결합한 서먼은 피로 얼룩진 과거를 떠올리며 복수를 다짐하는 브라이드로 거듭난다. 처음 그녀는 타란티노로부터 ‘암살단원의 일원’이라고만 전해들었을 뿐 일본도를 들고 사지절단 액션을 해낼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녀를 비롯한 출연배우들은 세달 동안 꼬박 일주일에 5일씩, 그것도 하루 8시간 동안 원화평의 지도 아래 엄격한 훈련을 거쳐야 했다. 액션 트레이닝 과정을 끝마쳤을 땐 땀과 눈물로(그리고 피로, 온통 피투성이었다) 범벅이 되곤 했다. 감독과 마음이 맞았던 것도 아니다. 특히 첫 번째 리스트에 오른 비비카와 대결신에서 서먼은 “꼭 아이가 보는 앞에서 엄마를 죽여야겠냐”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감독이 원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내가 이 인물을 좋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 있다. 적어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눈을 팔진 않을 만큼의 매력은 있다고 대답했다.” 그녀, 브라이드는 극중에서 아이를 잃지만, 현실에서 서먼은 남편 에단 호크와 이별했다. 타란티노와 서먼의 염문설에 맘이 흔들린 호크가 열살 연하의 모델과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라고 타블로이드 신문은 떠들어댔다.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녀는 수선을 떨지도 않고, 덤덤히 작품에 임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으리라. 자신을 억제하는 가운데서도 솟아나는 깊은 분노의 몸짓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가운데서도 더욱 차갑게 식어버린 눈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