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 검색결과

기사/뉴스(2003)

김성훈 기자의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취재기 (2019.12~2021.11.11)

2019. 12 “선배 인스타그램 없앴어?” 김완 <한겨레> 기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갑자기 사라져 이상하다 싶어 텔레그램에 들어가 그에게 물었다. 김완은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이 ‘엔터팀’을 운영해 영화계를 사찰했다는 내용의 단독 보도를 함께했던 동료다. 그에게 짧은 답장이 왔다. “ㅇㅇ 신상 털려서 다 비활성.” 그는 “‘청소년 텔레그램 비밀방’에 불법 성착취 영상 활개”(<한겨레> 2019년 11월10일자) 단독 보도를 시작으로 텔레그램에서 벌어지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사건을 연달아 보도하던 때였다. 수면 위로 올라온 텔레그램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는 생각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끔찍했다. <한겨레>가 지난 두달 동안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라는 제하의 연속 기획으로 보도한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한겨레> 기자들이 텔레그램 익명 대화방에 잠입해 그 실태를 지켜본 뒤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범죄자들은 일자리를 주선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을 텔레그램 방으로 유인해 사진, 영상을 찍도록 협박하고, 수천명이 모인 익명의 대화방에 대량 유포했다. 피해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가해자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연속 보도로 추적단 불꽃의 존재도 처음 알게 됐다. 미디어를 전공한 대학생 2명(추적단 불꽃)이 지도 교수의 제안으로 공모전 ‘제1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에 나가기 위해 ‘불법 촬영’과 관련한 자료를 조사하다가 텔레그램 익명방을 접하게 됐고, 그곳에 잠입해 지켜본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의 실태를 최초로 폭로했다. <한겨레>는 이를 ‘n번방 사건’으로 처음 호명하며 연속 보도를 시작했다. 텔레그램이라는 특수한 온라인 환경에서 피해 여성의 신상을 치밀하게 털었고 수천명, 수만명에 이르는 구경꾼들에게 가상화폐를 받아챙긴, 새로운 유형의 범죄임에도 <한겨레>와 추적단 불꽃이 연일 내놓은 보도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더군다나 첫 보도가 나가자마자 텔레그램에서 신원이 명확하지 않은 불특정 다수가 김완 기자의 SNS를 뒤져 그와 그의 가족 사진을 털었다. 여느 아동·청소년 성범죄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김완의 취재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2020. 3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검거. 2020. 5 김완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진성 감독님이 연출하는 넷플릭스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어.” 무슨 영화인지 물어보니 알려주지 않았다. 최진성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다. “넷플릭스 찍는다면서요.” 답장이 왔다. “정리되면 말하려고 했는데 n번방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만들려고요.” n번방? 몇몇 감독과 프로듀서가 n번방 사건을 극영화로 만들려고 시도했다가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라 감당하기 부담스러워 보류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실제 사건을 재가공할 여지가 많은 극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실존 인물이 등장해야 하는데, 사건의 피해자가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무사히 진행될 수 있을까. 2020. 5. 11 n번방 개설자 ‘갓갓’ 문형욱 검거. 2020. 10 서울시 상암동의 한 고깃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최진성 감독, 김완, 오연서 <한겨레> 기자, 최광일 JTBC 탐사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이하 <스포트라이트>) PD, 최은정 조감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최 감독은 이들을 “다큐멘터리 출연자”라고 소개했다. 오연서는 김완 기자와 함께 n번방 사건을 보도한 기자다. 최광일은 ‘박사방’의 운영자인 박사(조주빈)를 취재한 내용을 방송에 공개한 PD로, 기자가 모태펀드 블랙리스트를 취재하기 위해 ‘역삼동 모 주택’에 잠입했다가 경찰에 체포된 사건을 <스포트라이트>에 소개할 뻔한 적 있다. 최광일 PD는 박사방 취재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박사가 가족의 신상을 파겠다고 협박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스포트라이트> 방송으로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겠다는 협박이었다.” ‘박사방’에서 김완의 신상이 털렸고, 더 많은 아동·청소년 여성들을 <한겨레> 보도로 인한 피해자로 만들겠다는 내용과 똑같은 협박이었다. 저마다 n번방 사건을 취재한 후일담이 오갔다. 최 감독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보를 함구한 채 “추적단 불꽃을 포함한 출연진들은 사전 인터뷰를 진행한 뒤 촬영에 돌입할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2020. 10. 14 대법, 조주빈 징역 42년 확정. 2020. 12 오후 8시밖에 안됐는데 가로등이 없고 한겨울인 탓에 사방이 암흑천지다. 얼마나 달렸을까, 파주의 모 세트장에 겨우 도착했다. 며칠 전 최진성 감독이 연락해와 “우리 촬영 시작했는데 놀러올래요? 김완이 출연하는 장면이에요”라며 촬영 현장에 초대해주었다. “국내에선 한번도 진행된 적 없는 스타일의 다큐 현장일 거”라는 예고와 함께. 굳게 닫힌 세트장 문을 낑낑거리며 열자 극영화 현장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세트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트 가이드를 자처한 최진성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등장인물마다 각기 다른 컨셉의 공간 6개(두 공간은 리모델링을 해서 영화 속 인터뷰 공간은 총 8개)를 만든 거라고 한다. 이날 촬영의 주인공인 김완 기자의 공간으로 이동하니 촬영을 준비하는 스탭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카메라 옆을 지키던 박홍열 촬영감독(<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여배우는 오늘도> <밤의 해변에서 혼자> 등 촬영,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연출)이 반갑게 맞는다. 카메라에 연결된 프롬프터 같은 장치가 눈에 들어온다. “인테로트론(에롤 모리스 감독이 1980년대 고안한 장치)이에요.”(최진성) 인터뷰이가 관객의 눈을 보고 직접 대화하는 듯한 효과를 만드는, 일종의 텔레 프롬프터다. 옆에 있던 박홍열 촬영감독은 “인터뷰이의 시선이 관객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보통의 다큐멘터리와 달리 이 장치는 김완 기자가 관객을 정면에서 바라보며 말하는 듯한 효과를 준다”고 설명했다. 최진성 감독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이 이건 당신에게 하는 얘기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주고 싶어서 이 장비를 활용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감독과 촬영감독으로부터 한참 설명을 듣던 중, 김완 기자가 헤어·메이크업을 마치고 세트로 들어왔다. 그는 “서사에서 어떤 역할인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내가 어떻게 n번방 사건 취재에 뛰어들게 됐고, 취재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테로트론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최진성 감독과 김완 기자를 보니 관객도 n번방 사건을 자신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몰입할 수 있을 듯하다. 자정이 가까워져서 세트장을 나오니 하늘에서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2021. 11. 11 텔레그램 n번방 최초 개설자 ‘갓갓’ 문형욱 징역 34년형 확정.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공범 ‘부따’ 강훈 징역 15년형 확정.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에 출연한 전 추적단 불꽃 단, “피해자가 보호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n번방 사건으로 많은 언론과 인터뷰했고, 강연도 했고, 정부 부처 회의에도 참석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대와 지지를 구하기도 했고.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로 한 이유는 그런 활동의 연장선인가. = 아무래도 기사나 유튜브는 사건을 단면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텔레그램이라는 특수한 온라인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가 벌어지는 구조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최진성 감독님으로부터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이용자 수가 많고, 나 또한 구독자인 데다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2020)를 재미있게 봤던 터라 넷플릭스라면 급하게 제작하지 않고 높은 완성도로 이 사건을 다룰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다. 촬영한 지 약 2년이 지난 까닭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웃음) 사전 질문지를 포함해 150~160개 정도의 질문에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 넷플릭스가 글로벌 OTT 플랫폼이라 해외 이용자들에게도 선보일 수 있다는 점도 출연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 그렇다. <오징어 게임> <소년심판>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다룬 넷플릭스 작품들을 흥미롭게 보았다. 넷플릭스에서 영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가 자막으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전세계 이용자도 성범죄와 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리라고 생각했다. 기존 언론은 n번방 사건을 단순 범죄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지 고민하는 관객에게 이 작품이 여성과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추적단 불꽃이 기성 언론과 달랐던 점은 단순히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저널리즘’의 역할을 넘어 피해자와 연대하고, 범죄자를 잡기 위해 추적하는 ‘아웃리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 우리 역할을 처음부터 그렇게 정한 건 아니었다. n번방 사건을 알게 된 계기도 교수님의 제안으로 공모전에 나가기로 했고, 공모전 아이템을 찾다가 불법 촬영과 관련한 자료를 모니터링하게 됐고, 그러다가 와치맨이 운영하는 ‘고담방’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n번방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곳에서 자행됐던 범죄의 실체를 추적하다가 취재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러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다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을 보면서 한국 사회의 관료주의적 문화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우리 또한 기자가 사건에 깊숙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경찰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1인칭과 3인칭을 넘나드는 활동을 했다. - 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에 언급했던 것처럼 ‘채증 사진’을 반복 확인해 피해자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썼듯이 이 작품 또한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되지 않게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 심지어 계약서에 그런 조항이 있었다. 최진성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은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이중, 삼중으로 자료를 확인하고, 재가공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활동하는 단체라 이런 부분들까지 고려해서 촬영이 진행됐고,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실명이 아닌 단과 불로 계약했다. 제작진과의 연락도 여성 조감독님을 통해 진행했다. - 영화가 공개되고 난 뒤인 5월24일 화요일 밤 11시 <씨네21> 트위터 스페이스 ‘다혜리의 작업실’에서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할 예정인데. = n번방 사건이 세상이 알려지고 2, 3년이 지난 뒤에 이 영화가 공개되지 않나. 범인의 일부가 잡혔다고는 하지만 피해자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또 해결되길 원하는 익명의 감시자들이 있다. 다혜리의 작업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디지털 성범죄 사건과 아동·청소년 인권 문제를 알릴 수 있는 방송이 되길 기대한다. - 어떤 관객이 이 다큐멘터리를 보길 원하나. = 넷플릭스의 한국 구독자들뿐만 아니라 <오징어 게임>을 본 분들은 다 봤으면 좋겠다. (웃음) 이 영화는 연출된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디지털 성범죄와 아동·청소년 성착취에 대한 논의가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n번방 사건은 인생을 바꾼 사건이기도 한데. = 이 사건 이전에는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평범한 학생 기자였다. 공모전에 당선된 이후에도 언론고시를 준비했었는데 이 보도로 아무리 상을 많이 받아도 꿈에 그리던 기자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스스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조주빈이 잡히고 난 뒤 추적단 불꽃 활동을 했던 지난 2, 3년 동안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해탈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는 거다. 뭐든지 하면 되는 거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세상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하는 거다. 그게 또 어떤 결실을 거둘지 모르니.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연출한 최진성 감독, "범죄자들은 우리 생각보다 치밀했고, 추적자들은 그보다 더 치열했다"

지난해 <씨네21> 신년호 특집 기사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에서 최진성 감독은 극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주진우 전 <시사IN> 기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을 추적한 <저수지 게임>(2017) 등 다큐멘터리 두편을 연달아 작업했던 그가 전작 <소녀>(2013) 이후 오랜만에 극영화 도전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계획처럼 되는가. 그가 내놓은 신작은 ‘n번방 사건’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 극영화를 준비하다가 다큐멘터리로 방향을 선회한 이유가 무엇인가. =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는 영화에 대한 투자가 멈췄다. 그러던 중 넷플릭스로부터 다큐멘터리 연출을 제안받았다. 보나마나 제작이 1년 이상 걸릴 건데 이 과정을 돌파하는 게 늘 만만치 않아서 또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OTT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정한 자본이 투입된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를 작업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굳이, 또, 다큐멘터리를 연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 n번방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 아이템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범죄 사건과 저울질을 했는데 n번방 사건은 ‘뉴타입 크라임’이었다. 텔레그램이라는 특수한 온라인 공간에서 가상화폐를 대가로 아동·청소년 성착취가 이루어지고, 미국, 영국, 일본 같은 다른 국가도 이 방식을 모방하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데다 여성들의 피해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범인이 잡히기 전이라 현재 진행형인 이 범죄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사회적으로 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 당시 충무로에서도 몇몇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n번방 사건을 영화로 만들려다가 손을 떼거나 보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얘기한 대로 현재 진행형이고, 여성들의 피해가 끔찍한 사건이라 뛰어들기가 쉽지 않은 소재인데. = 연출 계약서 도장을 찍기 직전에 ‘박사’가 잡혔다. 범인이 체포돼야 영화 서사가 완성되는데 박사가 잡히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박사가 잡히지 않더라도 기록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기자, 추적단 불꽃, PD, 경찰 등 주요 등장인물들을 사전 취재했었다. 그 과정에서 짜릿하고 흥미로웠던 건 그들이 각자 취재했던 내용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쭉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를 펼치려고 했다가 인물 각각이 맡은 역할이 전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여러 인물이 릴레이하듯 서사를 끌고 가는 현재의 형식이 되었다. 사건에서 취재한 영역도, 맡은 역할도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라는 것. - 텔레그램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1인칭 시점으로 펼쳐낸 오프닝 시퀀스는 짧지만 임팩트가 강하다. = 관객을 구경꾼의 위치에 두고 싶지 않았다. 당신의 휴대폰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범죄라는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 SNS상에서 벌어진 범죄를 그려냈던 할리우드영화 <서치>를 레퍼런스 삼아 텔레그램의 레이아웃을 활용한 그래픽으로 n번방 사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의도도 있었다. - 등장인물 중에서 김완, 오연서 <한겨레> 기자와 추적단 불꽃, 두 집단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시켜야 했던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 개인적으로 스릴러 장르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나에게 스릴러가 뭐냐고 물어보면 한마디로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지옥 같은 상황에 휘말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들었다가 끝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 n번방 사건은 경찰, JTBC <스포트라이트>팀 등 등장인물 누구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꽃’이라는 평범한 대학 졸업반 학생 두명이 공모전에 지원하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다가 ‘사이버 지옥’을 만나는 순간 그 사건에 휩쓸려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는 사연이 무척 흥미로웠다. 결과적으로 그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인생이 다 바뀌었다. 김완 <한겨레> 기자도 마찬가지다. 레거시 미디어 중에서 가장 먼저 이 사건 취재에 뛰어든 김완 기자도 처음에는 n번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가 깊숙이 추적하면서 사건에 빠져든다. 추적단 불꽃과 김완, 오연서 기자가 만나는 지점이 굉장히 영화적인 순간이라고 보았다. - 추적단 불꽃은 단순히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범인을 추적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몸을 사리지 않아 인상적이었다. = 기자들은 수습 과정에서 사건 깊숙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기자니, 취재니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범인을 잡으려고 한다. 대학교 4학년생들이, 20대가, 레거시 미디어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영역까지 뛰어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추적단 불꽃처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못할 것이다. 대학생이 가진 에너지, 20대 청춘의 뜨거운 열정이 이 사건의 중요한 트리거로 작동한 게 아닌가 싶다. - 영화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등장인물에게 받은 범죄 자료 대부분을 모자이크, 블러 처리해 보여준다. 윤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태도를 지키는 일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중요했을 것 같다. = 피해자가 찍힌 사진, 영상 자료는 영화에 단 한컷도 쓰지 않았다. 블러 처리된 이미지조차 실제 자료가 아니라 제작진이 연출해 재현한 거다. 실제 자료를 블러 처리하는 것조차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고, 그게 창작자로서 피해자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보았다. 인터뷰 사이에 애니메이션과 재연 영상을 배치한 것도 피해자가 겪은 범죄 상황을 어떻게 하면 간접적이면서도 묵직하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다. 이 밖에도 남성 연출자가 피해 여성을 만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여성 조감독이 직접 피해자에게 연락해 양해를 구한 뒤 피해 기록을 듣고, 그걸 재가공해 영화에 배치시켰다. 넷플릭스와 제작진 또한 그러한 윤리 원칙을 공감하고,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다. - 이 다큐멘터리는 장르영화처럼 서사 전개가 무척 빠르고, 서스펜스를 공들여 구축하는 데다가 음악이 긴장감이 넘친다. 그렇게 연출한 이유가 무엇인가. =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 다시는 이같은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서사에 몰입하는 게 중요했고, 그러려면 일반 관객에게 익숙한 문법으로 서사를 전개시키는 게 필요했다. 연출자로서 피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고 스스로 질문했을 때마다 항상 무기력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벌어진 사건이고, 그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으니까. 하지만 창작자로서 피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추적극이라는 장르 문법을 통해 나쁜 놈은 반드시 잡힌다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그게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았고, 그거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 - 곧 공개를 앞두고 있는데 어떤가. = 비슷한 범죄가 전세계적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분들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n번방 사건은 뉴스에서 접할 때와 너무나 다른 사건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범인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도, 이렇게 많은 가해자들이 지능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는지도 몰랐다. 범죄자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치밀했고, 추적자들은 그보다 더 치열했다. 그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기대하고 있다. 개봉했으니 그간 빠져 있던 ‘사이버 지옥’에서 이제는 도망가고 싶다. - 차기작은 무엇인가. = 덱스터스튜디오에서 내부고발자가 된 스파이를 그린 <인사이드맨>이라는 제목의 극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중간 결산

어느덧 중반을 넘어선 제75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칸을 찾은 기자들은 경쟁부문에 초청된 감독들의 네임 밸류에 비해 작품이 전반적으로 심심하다는 아쉬움을 털어놨지만, 영화제 공식 소식지 <스크린 데일리>에서 최고 평점(3.2점)을 기록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다시 달아올랐다. 경쟁부문 후보작 21편 중 16편이 공개된 지금, <씨네21>이 향후 영화제의 선택을 점치는 기사를 준비했다. 올해 한국영화 초청작만 4편에 이르는 만큼 칸에서 만난 영화인도 다양했다.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배우 탕웨이·박해일,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서 최초 공개된 <헌트>의 이정재 감독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경쟁부문 화제작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과 의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과의 만남은 올해 경쟁부문 분위기를 점칠 수 있는 요긴한 기사가 될 것이다. “Stop raping us!”(우리를 강간하지 마라) 조지 밀러 감독의 신작 <3천년의 기다림>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앞둔 5월24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국기 문양으로 보디페인팅을 한 여성이 레드 카펫에 섰다. 그는 프랑스 페미니스트 단체 SCUM 소속 활동가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여성에게 가한 성폭력을 규탄하기 위해 페스티벌을 찾았다. 그의 행동은 현장에서 즉각 제지됐지만 페미니스트 활동가의 시위는 칸영화제를 찾은 전세계 기자들에게 큰 화제가 됐다. 23일에는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페미니스트 리포스트>(감독 마리 페레네스, 시몬 드파르동)팀이 여성 혐오 살인의 피해자 이름을 새긴 배너를 들고 레드 카펫을 걷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올해 칸영화제가 정치 이슈를 공론화할 수 있는 무대로 부각되는 것은 어쩌면 개막 이전부터 예고됐는지도 모른다. 칸영화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보여줘야 하는 시기에 개최됐다. 영화제 시작 전 칸영화제측은 러시아 대표단 및 친푸틴 성향의 기자들의 출입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개막식날 화상으로 참석해 영화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깜짝 연설을 전했다. 제임스 그레이와 예지 스콜리모프스키의 선전 반전과 페미니즘의 직접적인 메시지만이 정치 영역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3년 만에 정상화를 꿈꾸는 칸영화제는 다층적인 차원에서 그들의 입장을 표명하고 변화를 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극장 내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고 온라인 티케팅 시스템을 도입한 영화제(초반에는 서버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전세계 프레스의 원성을 사긴 했지만)는 계급화를 조장한다는 고질적인 문제로 비판받았던 복장 규정을 비공식적으로 완화했다. 관객은 물론 사진기자들까지 턱시도와 보타이, 굽 있는 구두와 드레스 등 격식을 갖춘 의상을 요구했던 뤼미에르 극장은 청바지에 가벼운 샌들을 신은 관객에게도 입장을 허락했다. 젊은 신인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던, 콧대 높은 경쟁부문의 문턱도 낮추었다. 프랑스의 문화 주간지 <텔레라마>는 “난니 모레티나 테런스 맬릭 같은 단골 감독들은 더이상 뉴스거리가 안된다. 영화제는 진화해야 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라며 올해 두 번째 장편영화로 경쟁부문에 입성한 루카스 돈트와 레오노르 세라이예에 주목했다. 특히 올해 경쟁부문은 감독의 출신 국가부터 장르, 소재와 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밸런스를 고려한 작품 선정을 보여줬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제의 존폐 위기가 거론되는 지금 영화제의 존재 의미를 증명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올해 경쟁부문 상영작은 총 21편으로, 5월25일(현지 시각 기준)까지 16편의 작품이 공개됐다. 여기엔 이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형제, 크리스티안 문쥬, 루벤 외스틀룬드 그리고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박찬욱, 클레르 드니 등 거장 감독과 세 번째 장편영화를 찍은 이란 출신의 알리 압바시가 포함되어 있다. 러시아 대표단의 참석은 금지됐지만,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혀 수년간 가택 연금됐던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신작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스웨덴계 이집트인 타릭 살레 감독의 <보이 프롬 헤븐>은 정치와 종교가 무관하지 않은 국가에서 지도자(이 영화에서는 이맘, 이슬람교 교단 조직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하나의 직명이다)를 선정하는 비민주적인 절차를 묘사한다. 제임스 그레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아마겟돈 타임>은 지금까지 공개된 작품 중 가장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 중 하나다. 1980년 뉴욕 퀸스, 레이건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고 10살 소년 폴(뱅크스 레페타)은 예술가가 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이나 가족들은 수업 과제와 관련 없고 반짝이는 독창성도 발견할 수 없는 그의 그림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공립학교에서 만나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되는 조니(제일린 웹)만이 그의 사정을 이해해주는데, 둘의 만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폴이 가족 내 학대의 피해자이자 학교에서 무시당하는 부적응자라는 설정은 혜택받은 계급에 있는 자들이 가질 수 있는 편견과 한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폴의 성장통은 중산층이 되기를 꿈꾸는 유대인 이민자 집단에 속한 자신과 계급 상승의 가능성조차 없는 흑인 친구의 계급 차를 인지하면서 시작된다. 대중적인 화법으로 차별의 다층적인 구조를 성찰한 드라마로, 이는 1980년대 미국뿐만 아니라 동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유효한 시각이다. <경계선>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고 세 번째 장편영화로 경쟁부문에 입성한 알리 압바시의 신작 <홀리 스파이더>는 이란 내 여성 혐오를 날카롭게 포착했다는 호평과 더불어 기대 이하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고 있다. 매춘부를 대상으로 한 이란의 실제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진실을 추적하는 여성 저널리스트의 진득한 추적을 그린다. 프랑스 문화 주간지 <텔레라마>는 “문제는 감독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 어떤 충격효과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목이 졸려 죽임을 당하는 여성의 클로즈업으로 그가 느끼는 고통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두번, 세번 반복될수록 감독 자신이 폭력의 스펙터클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은 84살의 최고령 감독 예지 스콜리모프스키가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를 재해석한 영화 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새로운 형태, 화려한 색채, 모험 가득한 장면, 지각을 자극하는 여러 실험”을 언급하며 노장의 과감한 도전에 대해 호평했다. 논쟁적인 수위를 경고하는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의 인터뷰로 화제를 모았던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가 상영될 때, 내심 사람들이 기대했을 구토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관객을 보다 당황시킨 것은 79살의 그가 1980~90년대 집중적으로 탐구해왔던 세계로 돌아가 쉽지 않은 뚝심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비디오드롬> <엑시스텐즈> <더 플라이> <크래쉬> 등 기술의 진보 이후 인간과 기계의 포스트휴먼적인 결합과 새로운 섹슈얼리티를 영화 이미지로 구현해 온 크로넌버그는 이번 작품에서 신체가 새로운 돌연변이를 겪는 선진 사회를 예언한다. 합성 기술의 발달로 신체의 소유와 통제가 가능해진다면 제목 그대로 미래의 범죄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난해한 스토리와 늘어지는 연출로 현지에서 반응은 엇갈리고 있지만, 크로넌버그 영화가 언제나 그래왔듯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가 차지하는 자리는 근미래에 비로소 판가름날 듯하다. 다르덴 형제는 세 번째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을 수 있을까.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의 카메라는 <토리와 로키타>에서 거주 증명서를 얻고 벨기에에 정착하기 위해 분투하는 아프리카 이민자 남매의 등을 따라간다. 프랑스 일간지 <레 제코>는 “절제와 신중함으로 이 끔찍한 이야기를 귀감이 될 만한 비극으로 만들었다. 심사위원단은 이 위대한 영화에 둔감할 수 없을 것이며, 황금종려상을 안겨줄지도 모른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다루는 반복적인 소재와 태도를 문제삼는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 같은 평론가는 “이 작품은 기이하게 형식적인 ‘곤봉’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결말 자체는 비록 취약한 이민자들을 착취하는 무자비함을 암시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방식이 너무 순진하다”고 지적했다. 혼돈의 시대 , 영화제의 존재 의미 26일 오전 기준 칸영화제 공식 데일리지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기록한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다. <헤어질 결심>은 영미권 공식 소식지인 <스크린 데일리>에서 3.2점을 기록하며 지금까지 공개된 16편의 영화 중 유일한 3점대를 기록했다(<헤어질 결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어지는 박찬욱 감독, 배우 탕웨이·박해일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어느 때보다 정치적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영화제가 <헤어질 결심>을 주목하는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점이다. 외신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박찬욱 감독 하면 떠오르는 수위 높은 폭력과 섹스가 없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인터넷 비평 사이트 <시네마 티저>는 “폭력적이고 관능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이상하게도 순결하고 플라토닉적이며 때로는 나른함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평했다. 또한 “매혹적이고 독선적인 네오 누아르”(<스크린 인터내셔널>)라든지 “유머와 우울함이 가득한 박찬욱 연출력의 정점”(<버라이어티>)이라는 반응은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적 함의보다 장르와 연출에 집중하는데, 이는 정치적 이슈와 함께 출발하며 당초 예상했던 칸영화제의 경향과는 맥을 달리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색깔이 짙은 영화와 영화미학 본연의 가치에 치중한 영화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행태도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정치는 사회문제를 겨냥한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는 작업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다. 장르영화의 입지를 견고히 하거나 영화를 영화이게 만드는 조건에 대해 성찰하는 일이 어떻게 정치와 무관할 수 있을까.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칸영화제 75주년 행사에 참석해 “시네마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과거로 가기를 원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볼 것이다. 우리는 팬데믹이 끝난 후 시네마가 우리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싸워야 한다. 시네마는 여전히 살아 있다.” 칸영화제 규칙 제1조에 명시된 설립 약속이 “우정과 보편적 협력의 정신으로 영화예술의 진화를 위해 양질의 영화를 공개하고 선보이는 것”이었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올해 칸영화제가 어떤 작품에 손을 들어주든, 그것은 혼돈의 시기에 가장 상징적인 영화제가 보여줄 수 있는 자세로 해석될 것이다. 폭력과 차별에 목소리를 내는 형태든, 장르와 상업성에 대한 고민이든, 팬데믹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으로 극장영화가 위기를 맞은 시대에 시네마의 정의를 고집스럽게 내리는 방식이든 어느 쪽이어도 의미가 있다. 영화제 후반에는 알베르 세라의 <퍼시픽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 켈리 라이카트의 <쇼잉 업>, 레오노르 세라이예의 <마더 앤드 선>이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다. 이중 특히 언론의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브로커> <클로즈> <쇼잉 업>이며 <브로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클로즈>의 루카스 돈트 인터뷰는 차주 본지에 실릴 예정이다. 75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수상 결과는 오는 29일 폐막식에서 공개된다.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디즈니+에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든 훌루

<기묘한 이야기> 시즌4와 맞불 작전을 펼쳐야 할 <오비완 케노비>가 늦게 나온다고 너무 노여워하지 말자. 이제 스타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훌루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디즈니+에서 찾아보자. 2019년 론칭 후 무섭게 넷플릭스를 쫓고 있는 디즈니+가 한국에선 유독 힘을 못 쓰고 있다. 2021년 11월 론칭 후 이제 반년을 넘긴 디즈니+의 활성 사용자 수는 앱 분석 서비스인 와이즈 앱의 4월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140만명을 넘겼다고 한다. 넷플릭스는 한국 활성 사용자 수가 1천만명이 넘는다. 디즈니 내부에서도 지금의 성과는 무척이나 답답하지 않을까. <범죄도시2>가 나오기 전까지 올해 최고 스코어를 기록했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기 전 디즈니+에서 <완다비전>을 꼭 봐야 할 정도로 디즈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중요한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너무 많은 마블 작품이 디즈니+의 시리즈로 나오기 시작해 오히려 마블 피로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디즈니+에 들어가면, 첫 화면에 우리를 맞이하는 로고는 6개다.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내셔널 지오그래픽, 스타다. 여기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블, 스타워즈는 꾸준히 오리지널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시청자들은 콘텐츠가 적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자신들의 콘텐츠가 여전히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미국에서는 디즈니+의 콘텐츠가 더 많을까? 그렇지 않다. 미국 내 디즈니+ 사용자는 스타 브랜드 채널의 콘텐츠를 볼 수 없다. 스타에는 디즈니의 대표 방송 채널인 'ABC'의 콘텐츠, 그들이 인수했던 폭스 계열의 FX(를 타깃으로 한 드라마들이 제작된다), 20세기 스튜디오, 텔레비전(예전 20세기 폭스)의 콘텐츠가 있다. 왜 이 콘텐츠들을 미국 내에서 볼 수 없냐면, 미국판 웨이브인 훌루에서 오리지널 혹은 독점으로 제공하고 있는 콘텐츠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4500만명의 가입자를 가지고 있는 훌루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시청할 수 있다. FX의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리즈, 훌루의 오리지널 시리즈인 <라이프 앤 베스> <드롭아웃> <내가 그를 만났을 때> 등 별도의 글로벌 론칭은 어려울 것 같은 훌루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디즈니+의 스타에서만 볼 수 있다. 문제는 잘 찾아봐야 한다는 것.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듯한 추천 엔진이 내가 찾고 싶은 콘텐츠를 찾는 걸 도와주진 못하니까 말이다.

[트위터 스페이스] 다혜리의 작업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감독 및 출연자들과의 대화

※ 스페이스는 트위터의 실시간 음성 대화 기능입니다. ‘다혜리의 작업실’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을 초대해 그들의 작품 세계와 글쓰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는 코너입니다. 스페이스는 실시간 방송이 끝난 뒤에도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 https://youtu.be/lEfjVzUMucY 이다혜 @d_alicante 다혜리의 작업실 여덟 번째 게스트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이하 <사이버 지옥>)를 연출한 최진성 감독, N번방 문제를 최초로 세상에 알린 불꽃의 단, 기성 언론 중 처음으로 이 문제를 알린 <한겨레> 김완, 오연서 기자, 이렇게 네 분입니다. 5월 18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은 N번방 사건을 맞닥뜨린 기자, PD, 경찰 등 24명의 인터뷰를 통해 범죄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추적 다큐멘터리입니다. 작품이 공개되고 일주일 정도 지났습니다. 넷플릭스 뉴스레터를 보니 <사이버 지옥>이 한국 1위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 1위를 했다고 합니다. 최진성 감독 아시아권 관객들이 압도적인 관심을 가진 이유가 뭘까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 사건이 발생하기 더 쉬운, 취약한 환경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사이버 지옥> 작업을 시작하신 때가 언제인지도 궁금합니다. 최진성 감독 2020년 3월, 넷플릭스와 한국의 범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논의했고, 1순위로 떠올린 게 N번방 사건이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알게 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사건이었음에도 넷플릭스를 통해 다뤄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불꽃의 단님은 가장 먼저 N번방 사건을 접했고, 이 사건이 알려지는 과정을 지켜보셨습니다.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단-불꽃 @56flame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에 정치권, 수사기관, 사법기관의 관심이 잘 쏠리지 않더라고요. 텔레그램이나 ‘N번방’, ‘박사방’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알려지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히려 트위터 같은 SNS에서 사건이 알려지면서 익명의 인물들이 목소리를 냈고, 그 덕에 언론도 점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주빈이 잡힌 이후 범행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고, 공론화가 빠르게 진행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완 기자 @funnybone1030 우리는 언제나 살인사건에 충격 받지만, 사실 살인은 매일 일어나거든요. 모든 살인사건에 언론이 관심을 주기는 어렵죠. 성범죄도 비슷합니다. N번방 사건을 다루면서도 우리가 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이버 지옥>에서도 얘기를 했습니다만, 어느 순간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내가 ‘박사’의 악행을 보도하는 것이 그냥 허공을 묘사하는 것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꾸 하는 거죠. 그런 함정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계속 되묻는 과정이 어려웠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취재하면서 피해자, 가해자 모두 접촉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피해자 중 미성년자도 굉장히 많은데, 당시 취재가 이뤄진 방식에 대해 들어봤으면 합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054 그들을 접촉하기 위해 기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제보 받기 말고는 없거든요. 저희가 마련한 창구를 통해 피해자 분들과 그 지인들이 제보를 해주셨고, 피해자 분들이 저희의 인터뷰 요청을 수락하시도록 열심히 설득했습니다.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인터뷰에 나서주신다면 그걸 막아주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소라넷 사건, 웹하드 카르텔 등의 디지털 성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사의 행태에 실망한 분들이 계셨음에도 피해자분들이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저희에게 협조해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단-불꽃 @56flame N번방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도 디지털 상의 아동청소년 성착취 문제에 대한 언론의 이해도는 마이너스에 수렴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당시 추적단 불꽃에 ‘제일 끔찍한 가해 장면을 보내달라’, ‘판매가 이뤄진 성착취물을 캡쳐해 보내달라’라며 연락한 기자들도 있었어요. 단편적이고 자극적으로, 성착취의 맥락을 읽을 수 없게끔, 그냥 이런 별나고 미친놈들이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말더라고요. 불꽃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쓴 이유도 그런 단편적인 보도에 지쳐서입니다. N번방, 소라넷 이전부터 이어져온 성 산업 구조를 다루고 싶었고, N번방 사건이 그런 맥락에서 튀어나온 한국적 범죄라는 걸 끊임없이 말하고 싶었어요. 최진성 감독 <사이버 지옥>을 만들면서도 피해자들이 조금이라도 드러날 수 있는 자료, 선정적인 영상은 다 배제한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활용한다거나 추상적인 드라마 컷, 인서트 컷으로 피해자 분들의 고통 묘사를 대체하는 방식이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저희 영화가 피해자 분들께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태도이자 감독의 책임 있는 자세라 생각했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최진성 감독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고통은 영속적입니다. 성착취 영상의 삭제 시스템이 잘 개발된다면 고통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단-불꽃 @56flame 피해자가 본인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증언할 수 있도록 도와야합니다. 수사기관 실무자, 여성단체 상담가 등 실제로 피해자를 만나는 분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을 맞아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김완 기자 @funnybone1030 범죄 근절을 위해 사법적으로 제일 중요한 건 확실하게, 엄하게 처벌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디지털 성범죄는 한 번도 그렇게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죠. 수사 인력이 보강돼야 하고, 전담 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054 교육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해왔습니다. 조주빈 세대는 10대부터 디지털 기기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 기기가 범죄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텔레그램, 트위터 등에서 일어나는 성착취가 범죄라고 인식하게 된 지도 얼마 안 됐단 말이죠. 몰래 사진을 찍는 것, 성착취물을 다운받아 소지하는 것 모두 범죄고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학교와 집에서 가르치는 게 시작입니다. 이다혜 @d_alicante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겪은 분들이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질문 드리겠습니다. 단-불꽃 @56flame 아동청소년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경찰 신고, 접수를 할 수 있습니다. 삭제 지원이나 상담을 필요로 할 때도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해요. 그런 상황이 허들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 허들을 같이 넘어줄 어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디지털 성착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시민단체에 자문도 구해보시고, 국가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시길 추천 드립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054 어떤 어려움에 처해있는지 정리해서 기자에게 보내주시면 기자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취재를 시작해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는데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도움을 받고 싶다면, 기자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마지막으로 최진성 감독님, 아직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을 안 보신 분들께 시청을 독려하는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최진성 감독 <사이버 지옥>을 통해 우리의 관심이 모여서 확장되어야 피해자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분들도 그렇게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미 있고 재미있는 영화니 많이들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칸국제영화제 결산⋯ 황금종려상에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 '헤어질 결심' 박찬욱은 감독상, '브로커'의 송강호는 남우주연상에

칸영화제 폐막식 당일로 플래시백. 5월28일 오후 7시. 폐막식이 열리려면 아직 1시간30분이나 남았지만 폐막식 중계를 보려는 기자들이 일찌감치 몰려 기자실의 공기는 뜨거워지고 있었다. 기자실의 명당은 부지런한 한국 기자들의 몫이었다. 한국 기자들은 폐막식 전에 미리 짐을 쌀 수 없었다. 2019년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의 영광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이어받을지도 모른다는 (충분히 기대해봄직한) 예상 때문이었다. 실제로 폐막 당일,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팀 모두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건 수상과 연결된다는 얘기다. 기자들은 분주하게 기사의 리드를 뽑았다. 대체적 예상은 <헤어질 결심>에 황금종려상이나 그에 버금가는 상이 주어질 것이고,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단에 놓일 수준의 작품은 아니었기에 송강호의 남우주연상에 무게가 실리는 쪽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황금종려상은 언제?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여우주연상에 <성스러운 거미>의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가 호명되고, 각본상에 타릭 살레 감독의 <보이 프롬 헤븐>이 불린 다음,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소개될 차례가 되자 익숙한 한글 이름 세 글자가 들려왔다. “<브로커>의 송강호!”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자 한국 기자들은 단체로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 배우 중 칸영화제에 최다 진출(<괴물>(2006), <밀양>(2007),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박쥐>(2009), <기생충>(2019), <비상선언>(2021), <브로커>(2022))한 배우 송강호는 한국 남자배우 최초로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다. 3년 전에는 <기생충>의 주인공으로, 지난해엔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칸을 방문하며 부쩍 칸영화제와 긴밀하게 스킨십을 해온 송강호의 이번 남우주연상 수상은 한국영화에서 차지하는 송강호의 독보적 위치에 대한 존중과 최근 한국영화가 보여준 상징적 위상에 대한 인정이 혼합된 측면이 있다. 강동원, 이지은, 배두나, 이주영 등 배우들의 앙상블이 중요한 영화인 <브로커>는 송강호의 원맨쇼를 구경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고, 배우상과 작품상의 공동 수상이 불가한 칸영화제의 원칙 때문에 상대적으로 감독과 영화 자체에 스포트라이트를 내줘야 했던 경험이 많았던 상황을 생각하면, 비록 <브로커>의 상현이 송강호 최고의 캐릭터는 아니라 할지라도 꽤 시의적절한 수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말 그대로 역사적 순간은 뒤이어 찾아왔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감독상을 수상하는 순간, 올해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축제의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박찬욱과 송강호. 오랜 기간 한국영화를 떠받쳐온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영화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서로 다른 두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헤어질 결심>은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 두 인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형사와 용의자라는 캐릭터 구도를 빌려 장르적으로 풀어낸 영화다. 히치콕의 영화들을 연상케 하는 작법과 스타일로 클래식한 영화의 멋과 재미를 안기는 이번 영화는 시각적 잔상에 몰두하는 대신 감정적 여운에 집중하며 고유의 기품을 발산한다. 세련된 유머, 다층적 의미의 대사,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한데 어우러져 흥미로운 질서를 구축한다. 히치콕의 자장 안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연습했다는 박한 평도 있지만 박찬욱의 감독상 수상은 모두가 수긍할 만한 결과였다. <프랑스 엥포>는 “박찬욱의 감독상은 충분히 정당하다. 작품의 우아함은 숏마다 드러난다. <올드 보이>의 심사위원대상, <박쥐>의 심사위원상, <헤어질 결심>의 감독상. 박찬욱은 언제쯤 황금종려상을 받게 될까?”라 했고, <파리 마치>는 “작가영화와 대중영화의 완벽한 결합”이라며 작품에 지지를 보냈다. 한국영화의 성취로 뜨거운 칸영화제였지만, 경쟁부문 수상 결과 전체를 놓고 보면 올해 칸영화제는 확실한 노선 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티탄>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처럼 파격적인 결과도 없었고, 지나친 예우는 아쉬움을 남겼다. 프랑스 현지 언론은 대체로 ‘모순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이라 총평했고, <텔레라마>는 21편 중 10편이 수상한 것을 두고 “올해 심사위원들은 너무 자비로워서 문제였을까?”라며 나눠주기식 수상에 이의를 제기했다. 황금종려상…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가 최선이었나 황금종려상은 5년 전 <더 스퀘어>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루벤 외스틀룬드의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에 돌아갔다. 구토와 설사가 난무하는 체면 차리지 않는 블랙코미디를 포복하며 즐긴 것은 맞지만, 이 작품에 황금종려상을 안기는 것이 최선이었나 하는 의문은 남는다. 모델 인플루언서 커플과 세계 최고의 부호들을 모아놓고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공고한 계급을 전복하는 루벤 외스틀룬드의 냉소적 희극은 분명 다른 경쟁작들과 차별화되는 개성을 보여주지만 전작보다 단순해진 풍자와 과도한 1차원적 개그를 재미있는 난동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확실한 건 한없이 일상적인 상황- 이를테면 레스토랑에서 밥값을 누가 계산하느냐 하는 문제– 에 사회적 고정관념과 계급 문제와 젠더 문제를 뒤섞어 골때리는 코미디 시퀀스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는 감독의 솜씨엔 감탄하지 않을 수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정치적 올바름이란 모두가 예외 없이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성역 없음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가 <더 스퀘어>와 비교해 확실한 도약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면 올해 황금종려상은 다른 이에게 돌아갔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르덴 감독의 경쟁자는 그 누구도 아닌 다르덴 감독이듯, 그래서 올해 심사위원단이 다르덴 감독의 영화를 경쟁부문에 초청해놓고 ‘75주년 특별상’을 특별히 만들어 수여한 것처럼, 일정한 수준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게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건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고레에다 히로카즈, 크리스티안 문쥬, 박찬욱 등 여러 거장들에게 공평하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올해 황금종려상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클로즈>에 돌아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클로즈>는 클레르 드니 감독의 <스타스 앳 눈>과 함께 심사위원대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 공동 수상은 우정과 부성애와 성장과 탐험과 자아성찰을 모두 담으려다 길을 잃어버린 <여덟개의 산>과 당나귀의 시점을 취해 아름다운 예술적 실험을 감행한 가 심사위원상을 나눠가진 것보다 더 납득하기 힘든 결과였다. 클레르 드니의 <스타스 앳 눈>은 미국 작가 데니스 존슨이 1986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끈적한 열대기후의 니카라과에 발이 묶인 미국인 기자와 영국인 사업가가 사랑을 하고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다. <스크린 데일리>는 “정치 스릴러인 척하는 에로틱 캐릭터 드라마인 척하는 프랑스 작가영화”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 관능적이고 나른하고 철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마거릿 퀄리(앤디 맥다월의 딸이다)의 매력이 유일하게 러닝타임을 버티게 하는, 산만하고 도취적인 영화다. 그렇기에 <스타스 앳 눈>과 평단의 찬사를 받은 <클로즈>가 심사위원대상을 공동 수상한 것을 두고, 클레르 드니에 대한 심사위원장 뱅상 랭동의 ‘예우’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다시 <클로즈> 얘기로 돌아가서, 벨기에의 젊은 감독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는 올해 칸의 최고 수확이었다. 1991년생 신성은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과 함께 올해 벨기에영화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8년, 발레리나를 꿈꾸는 트랜스젠더 소녀의 이야기 <걸>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아 황금카메라상과 퀴어종려상 등을 수상했던 루카스 돈트는 두 번째 장편 <클로즈>로 올해 경쟁부문에 진출해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했다. <클로즈>는 13살 두 소년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함께 뛰놀다 한 침대에서 잠이 드는 것이 일상인 레오와 레미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 친구들을 사귀면서 ‘관계’를 시험받는다. 관계를 정의할 필요가 없었기에 행복했던 소년들은 자신들을 커플로 바라보는 친구들을 의식하며 사이가 멀어진다. 소년들의 깊은 우정은 사실 사랑에 가깝지만, 사회적 시선을 감당하기에 이들은 아직 어리다. 감각적 연출이 극대화된 초반부, 감정적으로 휘몰아치는 후반부 모두 헤아릴 수 없이 감동적이다. 심사위원대상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루카스 돈트 감독이 눈물을 훔치던 순간은 올해 시상식에서 가장 순수한 감흥을 준 순간이었다. 기억해야 할 영화들 수상은 불발됐지만 기억해야 할 영화들도 있다. 여러 번 칸에 초대받았지만 이번에도 빈손으로 돌아간 제임스 그레이의 <아마겟돈 타임>과 뒤늦게 칸에 입성한 켈리 라이카트의 <쇼잉 업>은 이른바 수상하기 좋은 부류의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팬들을 미소짓게 하기엔 충분한 작품들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유년 시절이 반영된 자전적 영화 <아마겟돈 타임>은 1980년을 배경으로 중산층 유대인 소년 폴이 흑인 친구 조니를 만나 세상의 부조리를 경험하고 갈등하고 성장하는 드라마다. 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외할아버지로 등장하는 앤서니 홉킨스의 명연기, 명대사도 인상적이며 일그러진 욕망과 트라우마 대신 인간의 정직과 용기를 옹호하는 따스한 시선이 제임스 그레이의 근작에선 느끼지 못했던 감흥을 전한다. <퍼스트 카우> <어떤 여자들> <어둠 속에서>의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쇼잉 업>을 통해 귀엽고 위트 있게 일상을 사유한다. 감독과 오래 협업해온 미셸 윌리엄스가 전시를 앞둔 예술가로 출연하며, 영화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관계들로 이루어진 예술가의 진부한 일상과 그 내부의 진동을 가만히 포착하고 특별하지 않은 것의 특별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 올해 경쟁작 21편의 수준이 최고였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지금의 시대와 예술을 사유하는 21편의 세계는 그만큼 다채로웠다. 다채로운 세계와의 만남. 그것이 가능하도록 한 영화제라는 축제의 장. 팬데믹 이전으로 시계를 돌린 듯했던 제75회 칸영화제가 마침표를 찍었다. 칸에서 본 많은 영화들이 국내 관객과도 곧 정식으로 인사 나눌 수 있길 기대하며, 올해 칸영화제에 안녕을 고한다.

[유선주의 드라마톡] '우리는 오늘부터'

막장 드라마를 만나면 꼭 공식 홈페이지의 기획 의도를 읽으러 간다. 거창한 목표와 조잡한 결과물간의 괴리가 클수록 얄궂은 재미도 커진다. 그래도 말한 대로 책임지길 바라는 기획 의도를 만날 때도 있다. 의료사고로 임신한 드라마 보조작가 오우리(임수향)가 주인공인 SBS <우리는 오늘부터>는 베네수엘라 텔레노벨라를 리메이크한 미국 의 <제인 더 버진>(넷플릭스)을 다시 한국판으로 옮겨왔다. 원작의 중요한 성취에 한국식 양념을 치는 드라마에 자주 실망했던 터라, 2년 사귄 연인과 냉동 정자의 주인을 오가는 우리의 로맨스는 남편 찾기로, 임신을 유지하는 결정은 생명의 가치 등으로 재포장한다 해도 그리 놀라지 않았을 테다(불은 뿜었겠지만). 해서, ‘사랑 없이! 남자 없이! 여자 혼자! 임신한다면? 이건 여성이 중심인 가족을 만들 기회 아닌가요?’라는 기획 의도가 뜻밖이었다. 임신을 소재로 죄책감을 심는 드라마에 바짝 긴장하는 입장으로 <우리는 오늘부터>를 편하게 즐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가치관이 다른 모녀 삼대를 비롯해 각자의 이해관계로 반목하던 여성들이 연대하며 요란한 사건 사고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원작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한국판에 적용하려는 기획 의도를 붙들고 지켜본다. 16살에 우리를 낳은 엄마 오은란(홍은희)은 딸이 자신을 부끄러워한다고, 우리는 자기가 엄마의 꿈을 꺾은 존재라고 여기다 앙금을 털어낸다. 혈연이니까 화해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원작은 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다른 여성과 갈등을 푸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한국판이 여기까지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망한 드라마라고 비웃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CHECK POINT 29살 오우리는 혼전순결 서약을 지키다 날벼락 같은 임신을 했고 영화 <십개월의 미래>의 또 다른 29살 최미래(최성은) 역시 기억에 없는 임신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닌가 의심한다. 임신의 중단과 유지가 온전히 여성의 선택과 결정이 되려면, 그 선택의 근거가 되는 정보가 투명해야 하는데 실상은 임신 중단의 의료적 과정이 불투명하고, 임신한 여성이 겪는 변화와 일터와 사회에서의 취급도 말해지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임신부를 지우는 세상에서 미래는 자신이 사라져도 모를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재난의 본질을 내다보다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베란다에 새들이 마실 물통이라도 걸어놓아야 하나 고민한다. 인터넷 마트에서 배송 신청을 하려다가 장바구니를 든다. 고체치약을 씹는다. 기온이 높아져 펭귄들이 아사했다는 소식을 본다. 사진이 보일까 무서워 눈으로만 기사를 훑는다. 과일을 사며 20년 후에도 이 과일을 먹을 수 있을지 진심으로 걱정한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연비 나쁜 자가용을 날마다 몰고 다닌다. 사람 두명과 고양이 세 마리가 사는 집에서 에어컨을 방마다 켠다. 많은 서류를 인쇄한다. 세탁기와 건조기와 의류관리기를 쓴다. 택배로 물건을 산다. 물을 틀어놓고 세수하는 습관을 아직도 완전히 고치지 못했다. 사놓고 안 먹은 음식이 냉동실에 가득하다. 가뭄과 기온 변화로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이나 생존을 위협받는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에 울되, 그 이야기를 와이파이가 연결된 커다란 텔레비전으로 본다. 기후 위기 대응에 가장 효과적인 일은 아이를 덜 낳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 한명이 연간 배출하는 탄소배출량이 약 58t인데, 빨래를 1년간 자연건조해서 줄일 수 있는 탄소배출량이 0.2t이라고 하니 실로 효과적이다. 그다음이 자동차 이용하지 않기와 장거리 비행하지 않기다. 나는 차도 타고 비행기도 탄다. 그에 더해 건조기까지 사용한다. 결국 내가 제대로 하는 유의미한 기후 위기 대응은 비출산 하나뿐인 셈이다. 이렇게 방만하게 살면 망해도 싸다. 30년 뒤의 나는 아마 너무 덥고 더럽고 불쾌한 도시 한복판에서 2022년의 서울을 그리워할 것이다. 나는 수많은 SF에서 묘사한 디스토피아나 아포칼립스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시민인 나를 쉽게 상상한다. 그 늙고 병든 나는, 세상이 이 꼴 날 줄 모르고 국제선 비행기 타기(타지 않으면 연간 탄소배출량 1.6t 감소)를 좋아하고, 계절에 안 맞는 과일을 사먹고, 육식주의자라며 고기를 구워 먹던(채식 시 연간 탄소배출량 0.8t 감소) 젊은 시절의 나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 기후 위기에도 그렇게 대충 살았다고 후회하겠지. 그런데 70대인 나라는 등장인물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이 인물이 후회만 하지는 않는다. 미래의 나는 두번 오지 않을 낭비의 시대에 청춘을 보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솔직히 아주 조금, 안도한다. 더운 여름날 에어컨을 튼 차로 이동하고, 음식이 남아 주기적으로 냉장고와 냉동실을 치우고, 갓 건조된 뽀송한 수건을 쓰고, 수천 미터 상공에서 나는 비행기에서 술을 마시고 이부자리를 펴던 그 사치의 기억. 이 노인의 만족감이 문득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기후 위기의 섬뜩함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나는 위기를 초래한 많은 낭비 속에서 이미 평생의 반 정도를 살았다. 시간이 흐르는 한, 우리 세대가 향유한 만큼 비용을 지불해야 할 날은 오지 않는다. 방만하게 살아 망해도 싼 세대가 아니라 그다음, 혹은 그다음 다음 세대가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해지기 쉬운 재난의 본질 앞에서 나는 문득 망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