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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쇼보다 색이 다른 공감을,<…ing>의 감독 이언희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여고생의 사랑 이야기를 성장영화와 멜로드라마 그 무엇인가의 풍으로 표현한 영화, <…ing>의 이언희 감독을 만났다. 1976년생, 그러니까 분명 빠른 데뷔작을 완성한 셈이다. 하지만 이언희 감독이 종종 듣는 말은 “너무 안정적”이라는 말이다. 그 말은 비판이기도 하고, 인정이기도 하다. 젊은 감독, 게다가 흔치 않은 여성감독에게서 <…ing>의 의미를 듣는다. <행복한 장의사> 연출부를 했다. 직장을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학생이 아닌 신분으로 사람들과 일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경험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힘들었던 점도 있다. 영화는 사람들끼리 작업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언뜻 자유롭고 창의적인 작업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상업영화는 시간에 쫓기면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심하게 말하면 군대와 비슷한 서열관계가 생기기도 한다. 거기에 적응하는 것이 좀 힘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할 수밖에 없는 것, 그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배운 것 같다. <…ing>를 만들면서는 그 낯선 규율의 가장 상위의 자리에 자리한 셈이다. 어떻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율했는가. 그게 사실은 가장 걱정이었다. 잘하진 못했지만 많이 배웠다. 연출부일 때와 감독이 되었을 때는 너무 많은 것이 달랐다. 그때 내가 가졌던 불만들을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감독님이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를 다시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 결정을 해야 할 때, 그러니까 처음에는 모든 스탭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에 너무 신경쓰다 보니까 더 시간에 쫓기는 면이 생겼다. 그러면서 아, 나중에 이해받아야 할 부분도 있겠구나 하는 걸 느꼈다. 지금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독한 감독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격만 좋아서는 살아남기 힘든 세계인 것 같다. 좋은 사람과 독한 감독 둘 모두가 될 수 있다면 물론 더 좋겠지만. 각색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점이 있다면. 감정적인 면인 것 같다. 스토리의 재미가 분명했고, 대사가 좋은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약간 단선적이라고 느꼈다. 각색하는 데 1년이 걸렸는데, 원래 계획보다는 좀 오래했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하는 시나리오들도 있는데, 이건 조금만 손을 보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서는 완벽하게 내 것이 되었기 때문에 분명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캐릭터들의 관계에 많이 신경을 썼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대화로 설명되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대신 상황을 많이 만들었다. 민아가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하는지 등등. 좀더 이미지로 많이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민아가 엄마하고 같이 있을 때, 혼자 있을 때 뭘 하는가 하는 상황을 많이 만들었다. 처음에는 거의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재 분량이 편집에서 좀 잘리긴 했지만, 처음보다는 거의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에 영재와 민아의 이야기를 많이 집어넣었다. 이미숙 선배님이 연기한 엄마 미숙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 영화를 끌어주는 역이다. 미숙은 딸 앞에서는 맑게 웃지만, 뒷모습은 한없이 슬픈 역이다. 김래원씨의 캐스팅은 영재의 역을 늘린 뒤에 선택한 것이었나. 사실 <…ing>에 캐스팅 된 뒤에 <옥탑방 고양이>에 출연한 것이었다. 실제 그 배우 나이 또래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다면 신선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옥탑방 고양이>가 먼저 나오는 바람에…. <옥탑방 고양이>를 이 영화 촬영 들어갈 때쯤이어서 못 봤는데,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김래원씨는 자신이 <옥탑방 고양이>의 경민이와 달라야 한다는 부담을 많이 갖고 있었다. 연출 스타일이 궁금하다. 예를 들어 원하는 연기가 나올 때까지 테이크를 반복하는 스타일인가. 제대로 하면 그렇겠지만, 시간문제상…. 김래원씨의 연기는 테이크를 반복할수록 연기가 더 재미없어진다. 자기도 더 재미없어하고, 오히려 첫 테이크 때보다 리허설 때가 훨씬 더 좋다. 그런데 임수정은 하면 할수록 더 좋아진다. 그 둘을 담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따로 찍을 때는 상관없지만, 같이 찍을 때는 그 중간선에서 타협해야 할 때가 많았다. 요즘 인터넷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붐이 일고 있다. 대부분 그런 영화들에서 주인공은 여고생이다. <…ing>에도 여고생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세대의 문화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성장영화보다는 멜로드라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민아라는 캐릭터가 딱 지금의 여고생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아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환경으로 살았기 때문에 보편적인 여고생의 캐릭터가 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영재의 경우에는 그런 문화를 설명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영화 속에서 민아는 뭔가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내 경우에는 민아의 성장영화라고도 생각한다. 영재의 사랑은 아주 고전적이고, 또 흔한 이야기의 소재이다. 이 점을 극복할 수 있는 영화적인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깊이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사실 진부한 주인공들이지만,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갖고,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표현을 하는지에 따라 많은 점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 것도 싫어하고, 듣기도 싫어하는 편이다. 뭔가 다르게 보이는 영화를 거칠게 만들기보다는 내가 공감할 수 있고, 감정이 살아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더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슬픈 사랑 이야기이지만 눈물을 경계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단지 슬프기만을 원하지는 않았다. 이 영화의 마지막이 한없이 슬프기만 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재의 입장에서도 민아를 만난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편집에서 잘렸지만, 영재가 민아의 엄마에게 하는 대사 중에 “고맙습니다. 민아를 만나게 해주셔서…”라는 말이 있다. 그런 게 영재의 감정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아픈 추억이어도 행복한 순간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계속 살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슬프지만,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누군가가 신인감독치고 영화가 너무 안정적인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면, 어떻게 반론할 것인가. 그런 얘기 워낙 많이 들어서(웃음)…. 너는 왜 패기가 없냐는 식의…. 하지만, 내가 원하는 영화는 그런 쪽이 아니다. 그건 정말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이 영화를 한 이유이기도 하다. 깜짝 놀랄 일을 해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보다는 뭔가 사람들이 알고 있고, 흔하다고 생각해도, 내가 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을 때는 달라질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는 대단하게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러기를 원하지도 않고. 조금씩 변화를 찾아가는 스타일이랄까? 그런데 안정적이긴 한가? 그렇다면 다행이고.

[영화가] 무단삭제 개봉으로 논란

영화가에 무단삭제 개봉 의혹이 또다시 일고 있어 네티즌들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12일 개봉 예정인 일본 사무라이 영화 <바람의 검 신선조>의 국내 상영시간은 104분. 그러나 일본에서 상영된 오리지널 필름의 길이는 134분(미국 영화전문 웹사이트 IMDB에는 143분)이어서 30분 가량 삭제됐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요시무라 간이치로가 동북지방에 기근이 들어 고향의 번(藩)을 떠나는 대목이 대폭 생략됐다. 영화전문 포털 사이트 엔키노(www.nkino.com)에서도 한 네티즌(salygene)은 "본편은 135분, 상영은 104분. 또 필름에 손댔네"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수입사인 미디어소프트의 김용범 대표는 "현재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의 일본영화는 국제영화제 수상작만 수입할 수 있으므로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기 위해 사람의 목이 잘려나가거나 가부키가 등장하는 등 잔인한 장면과 왜색이 짙은 대목을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 이전에 미리 잘라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일본과 판권계약할 때 한국 실정에 맞도록 편집하는 것을 양해하기로 합의해 저작권상의 문제는 없으며, 내년부터는 일본 극영화가 모두 개방되기 때문에 DVD로 출시할 때는 134분 풀 버전으로 담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수입사가 상영횟수를 늘리기 위해 임의로 필름을 삭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5일 개봉 예정인 영국 영화 <러브 액츄얼리>(사진)도 오리지널 필름에서 일부 줄어든 분량으로 상영된다. UIP코리아가 10월 9일 수입추천을 받을 때의 분량은 미국ㆍ영국판과 마찬가지로 134분이었다가 10월 28일 '15세 이상 관람가'로 등급심의를 받을 때는 129분으로 줄어들었다(홍보용 홈페이지에는 124분). 이에 대해서도 홍보용 홈페이지(la.movist.com)에 "더 많은 관객에게 팔고자 하는 상술"(잘린컷) 등의 항의 편지가 올라오고 있다. UIP코리아의 이은주 부장은 "아시아에서 심의가 엄격하다는 사정을 고려해 감독이 따로 편집한 아시아용 버전을 뒤늦게 보내왔으며, 누드가 등장하는 포르노 대역배우 커플의 에피소드가 잘려나갔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필름뱅크가 수입해 지난달 21일 개봉된 프랑스 영화 <노보>도 보도자료와 IMDB에는 상영시간이 97분으로 적혀 있으나 영상물등급위 자료에는 94분으로 나와 삭제 혐의를 샀다. 필름뱅크 관계자는 "외국에서 넘겨받은 필름에 94분으로 적혀 있어 수입심의 때 그대로 상영시간을 제출했으며, 등급심의 때 97분으로 수정하면 심의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해(10분당 7만원이며 반올림으로 계산) 94분으로 유지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성기 노출 장면 등을 가리기는 했으나 오리지널 상영시간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고 밝혔다. <바람의 검 신선조>의 수입사는 국내 실정에 맞춰 편집할 수 있게 계약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러브 액츄얼리>의 경우 감독이 버전을 다르게 편집한 것이기는 하나 영화 팬들은 오리지널 필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바람의 검 신선조>의 상영시간이 30분이나 줄어든 것에는 관람등급 때문만이 아니라 상영횟수를 늘리기 위한 의도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짙다"고 지적하는 한편 "<러브 액츄얼리>에서도 국내 심의와 흥행을 고려해 버전이 다른 필름을 만들 수는 있지만 관객에게는 미리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운명적 사랑과 필연적 고통,<프리다>

<프리다> 본 건달, 한 사랑의 뒷모습을 응시하다 프리다 칼로의 남편 디에고는 당대 최고의 화가지만 바람둥이로, 결혼에 대한 책임감 따윈 전혀 없다. 또, 자신의 일과 쾌락 이외에 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런 태도는 아내라고 예외가 아니어서, 처제를 성적 노리개로 삼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쯤 되면, 디에고는 누가 봐도 나쁜 놈이다. 그런데 왜 그 명민한 프리다는 디에고의 그런 만행에도 떠나지 않았을까? 그녀가 너무나 헌신적인 성녀이어서? 디에고는 한 가지 걸출한 재능이 있다. 사물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타고난 화가의 눈이다. 그런데, 남들은 다 있는 한 가지 기재가 빠져 있다. 인내심. 그중에서도 특히 심심한 걸 못 참는다. 문제는 그가 그림 그리는 것과 여자 꼬시는 일 이외에는 다 심심해 한다는 거다. 디에고의 경우는 정도가 심하지만, 타고난 재능은 성격에 그늘을 드리우게 마련이다.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눈과 심심함을 못 견디는 성격은 재능의 양면이다. 재능이 깊어 눈에 뵈는 온갖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그거 탐하느라 심심한 거 굳이 참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디에고의 삶은 그림과 여자를 통해 아름다움을 탐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 어떤 일을 해도 그는 그림에 몰입하거나 여자를 유혹할 때처럼 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행위의 지향이 아니라 행위 자체의 밀도다. 이런 캐릭터는 혁명을 해도 로맨티시즘이 없으면 그 상황을 못 견딘다. 각박한 현실주의자 스탈린에 대한 혐오와 이상주의자인 트로츠키에 대한 숭배의 극단적 분리는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는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결혼생활의 일상을 심심해서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가 병들어 더이상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시점에 홀연히 구세주처럼 나타난다. 그는 격정의 서사에 본능적으로 반응해서 행복한 결혼의 일상보다 차라리 죽음 직전의 연인을 위한 헌신적 역할을 더 즐거워한다. 그는 사랑도 혁명처럼 격정적으로, 혁명도 사랑처럼 로맨틱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그는 무언가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일을 끊임없이 만든다. 그리고 거기서 마침내 길을 잃어버린다. 자신의 삶의 방식이 재능 때문인지 탐욕 때문인지 그는 더이상 자신할 수 없다. 디에고의 캐릭터는 난삽하다. 벤야민의 에세이 <파괴적 성격>에 나오는 한 대목이 그의 캐릭터를 잘 요약한다. “파괴적 성격은 단 하나의 구호만을 알고 있는데, 그것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파괴적 성격은 단 하나의 행동만을 알고 있는데, 그것은 공간을 없애는 일이다.” 그럼에도 디에고는 프리다와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공간은 마지막까지 없애지 않았다. 사람들은 디에고와 프리다의 결혼을 코끼리와 비둘기의 만남으로 비유하고, 유효기간 6개월 이내로 내기했다. 하지만 둘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셈이니 그들이 틀렸다. 디에고와 프리다를 묶어준 끈은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나는 둘의 관계를 이렇게 봤다. 프리다에게 디에고는 자신을 고유한 텍스트로 해석해준 유일한 사람이다. 그림을 보고 미처 자신도 알지 못하는 꿈과 열정을 정확하게 읽어서 한 인간으로서의 의미와 서사를 부여해준 인물이다. 무수한 고통을 주었음에도 프리다가 디에고를 포기하지 못한 것은 그녀가 꿈꾸는 삶을 지켜보고 평가해줄 유일한 관중이 디에고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프리다 자신도 소통의 깊이와 관계의 밀도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꿈과 재능을 읽어주는 디에고의 눈을 필요로 했다. 그렇다면 디에고는? 디에고에게 프리다는 자신의 선의를 환기시켜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다른 여자들은 디에고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에 열광하고 그 무책임에 실망하는 부류들이다. 하지만, 프리다는 디에고를 바람둥이로 만드는 그 재능의 최초의 선의를 응시했다. 때문에, 디에고는 프리다를 통해서만 자신의 선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실적인 영화와 쾌락의 늪 속에서 프리다는 디에고가 자신으로 귀환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것이다. 그러니, 두 사람의 사랑은 마음에 비둘기를 키우는 코끼리와 머리에 코끼리를 꿈꾸는 비둘기의 만남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서로 운명적인 사랑 속에서 프리다는 그렇게 고통을 받았을까? 운명적인 사랑의 남성형 인생과 여성형 인생은 어찌 이리 다를까? 프리다는 결핍으로 인해 고통받고, 디에고는 과잉으로 스스로 상처를 주고…. 운명적인 사랑의 불 속에서도 타지 않고 남아 있는 게 권력인가. 남재일/ 고려대 강사

박찬욱이 몰랐던 박찬욱의 모든 것 [1]

A급과 B급영화 사이의 모호한 욕망, 영화평론가 변성찬이 만난 감독 박찬욱 지난해 <씨네21> 영화평론상 공모에 당선된 영화평론가 변성찬씨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나서부터 영화평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연히 극장에서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 할리우드 콤플렉스가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평론이라는 것이 풍부한 텍스트가 있어야 가능한데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로 새로운 한국 감독들에 주목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그가 박찬욱 감독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씨네21>은 변성찬씨에게 박찬욱 영화에 대한 꼼꼼한 질문을 부탁했고 지난 11월25일 박찬욱 감독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마치 정신분석 상담받는 것 같다”는 박찬욱 감독의 표현대로 박찬욱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2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소개한다. 박찬욱 감독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마음속에 생긴 두 가지 짐. 첫째, <올드보이>는 사전에 ‘말이 많은 것’이 관객에게 죄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영화이다. 그것을 잘 알면서 다시 한번 그 죄를 저질러야 하는 딜레마. 최대한 죄질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는 그의 전작들을 통해서 <올드보이>에 도달하는 우회로를 선택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 두 번째 짐. 감독 박찬욱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중의적이고 모호한 화법을 즐긴다. 그 모호함의 장벽을 뚫고 진짜 그의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장벽을 뚫기 위해서는 때로 긴 질문에 짧을 답변을 ‘강요’하는 무리도 감수해야 한다고 다짐한다(과연 그것이, 마음속의 상상훈련대로 잘될까?) 변 | 개봉 뒤 관객이 보여주고 있는 반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 | 관객과 함께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언론 시사, VIP 시사만 보았는데 다들 너무 조용하고 웃지도 않고 해서 조금 걱정했다. 다행히 일반 관객은 많이 웃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웃기려고 만든 부분에서 안 웃고 그러면, 세상에 그것처럼 비참한 게 어디 있겠나? (웃음) 사실, <복수는 나의 것> 때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아서, 홈페이지도 잘 안 본다. 흥행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출발은 좋다고 전해 들었다. 도덕성 문제가 있기는 한데, 나는 그렇게 크게 문제되지 않을 거라고 봤다. 그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하고 제작자쪽에서 우려했던 것보다는 조금 덜한, 그런 정도인 것 같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고, 한국사회가 그 정도는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문어체 대사를 즐겨쓰는 박찬욱 변 | <올드보이>는 많은 부분, 당신의 전작들을 상기시킨다. 가령 (1997)의 그 다소 어색한 문어체 대사, 프리즈 숏 같은 만화적 표현 등등…. 박 | 같은 것이 보였다는 얘기는 허진호 감독도 하더라. 그래서 내가 만든 영화들의 결산처럼 보였다고. 틀리든 맞든, 아무도 거론하지 않은 영화를 얘기해주니까 고맙더라. 하지만 허 감독은 역시 자기 취향에 맞는 영화는 아니라고 그랬다. (웃음) 변 | 문어체 대사를 즐겨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박 | 촌스러운 문어체 대사, 나는 그걸 참 좋아한다. 우수한 한국영화에서는 늘 그런 면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영화들은 대부분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대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스스로 생활 속에서 그런 문어체 대사를 잘 쓴다. 일상언어에서의 자연스러움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그런 느낌들이 있다. 어쨌든 그런 대사들을 자꾸 쓰게 된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변 | 내게 한마디로 당신의 영화스타일을 요약하라고 하면, 바로 그 ‘어색한 문어체 대사’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상황과 말투의 부조화에서 오는 코믹 효과만을 낳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영화에 대한 당신의 어떤 태도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때로 그것은 웃기는 방식으로 진심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진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취하는 위악적 제스처로 보이기도 한다. 박 | 그렇다. 그런데 왜 그런 거냐고? 그것은 그냥 내가 기질상으로 마냥 심각해지는 것을 못 견뎌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자신이 아주 심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어느 정도를 지나치면 못 견딜 만큼 쑥스러워진다. 말하자면 집회나 시위현장에서 비분강개하고 그런 부분이 있기도 한데, 그것이 계속되면 그런 스스로의 모습이 객관화되면서 그냥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를 볼 때도 <허공에의 질주> 같은 영화를 울면서 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계속 그렇게 가는 것을 좋아할 수는 없다. 영화를 만들 때도 그런 상황이 지속될 때는 왠지 거북해지고 속내를 들키는 것 같고 뭔가 발가벗겨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였어 하는 식으로 넘어가게 된다. 변 | 그런 모습이 당신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완전히 옷벗은 모습을 보여줄 때만이 줄 수 있는 그런 감동이 있는 것 아닌가? 가령 <지구를 지켜라!>와 같은 영화에서 나는 그런 감동의 순간을 맛보았던 것 같다. 박 | <지구를 지켜라!>는 감독의 진심이 그대로 전달되면서도 재미있는 그런 영화다. 그 영화는 내가 여태까지 보았던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런 영화를 나보고 만들라고 하면 못 만들 것 같다. 그것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세계이다. 나는 취향상 좀더 복잡하거나 미묘한 것이 더 좋다. 개인적 기질에서나, 내가 받은 교육을 통해 지니게 된 예술에 대한 개념에서나, 자꾸 모호하고 명쾌하지 않은 부분에 더 끌리게 되는 것 같다. 한 방향으로 막 몰아가다가도 중간에 한번 우뚝 서게 해서 잠깐 딴 얘기하고 그렇게 된다. <올드보이>에서 그런 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경호실장이 “말로 하세요” 하고 말하는 그 장면이다. 내 기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인 것 같다. 더군다나 그게 말 많은 사람(말 많은 게 죄가 되었던 사람)에게 하는 대사라는 점이 내게는 재미있다… 재미있지 않나? (웃음) <올드보이> 탄생의 비밀을 들키다 변 | 내가 보기에 <올드보이>는 과잉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복수는 나의 것>을 상기시키는 부분이 많은데, 두 작품을 하나로 엮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박 | <복수는 나의 것>을 상기시키는 부분이 많다고들 하는데, 원래는 그렇게 안 하려고 했다. 내 능력의 한계이기도 하고, 같은 사람이 만들다보니까 언뜻언뜻 그런 부분이 있기는 하겠지만,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다. 나중에 편집하면서 오대수가 경호실장 귀를 찌르는 장면이 류가 송곳으로 목을 찌르는 장면과 너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차 싶었다. 그게 참 이해가 안 될 거다. 자기가 만든 영화인데 어떻게 그걸 편집하면서야 알았을 수 있느냐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이다. 그렇게 많이 잊어버린다, 지난 영화들을…. 그런데 또 어떤 점이 그렇게 많이 닮아 보였나? 변 | 지그재그 계단 이미지라든지 특히 인물간의 구도가 매우 상동적이라고 느꼈다. 박 | 계단 이미지는 <복수는 나의 것>에서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기는 하다.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를 좀더 전면적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높은 탑에 사는 우진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아예 로케이션 스카우팅을 할 때 계단이 많은 곳을 찾아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언뜻 드러난 것이 더 전면에 드러난 경우다. 인물 관계에 대해서는 애초에 원작이 두 남자의 대결과 그 한 남자에게 애인이 생기고 그런 설정이 있었던 것이니까…. 그게 이런 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쉽기도 하고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지 않은가? 변 |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삼각관계가 아니라 하필이면 근친적 사랑이라는 점이 문제다. 박 | 그게 사실 <올드보이> 탄생의 비밀인데, 그걸 지난번에 <씨네21> 정한석 기자가 딱 지적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보이는구나, 하고. <올드보이>는 사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누나의 몸을 씻겨주는 장면하고, 딸의 유령이 다리로 아버지의 허리를 감는 장면, 그 두 장면에서 출발한 거다. 그건 나만 알고 있었으면 했었는데…. (웃음) 변 |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올드보이>에서도 A급영화와 B급영화에 대한 감독의 자의식이 드러나는 것 같다. 도대체 당신에게 B급영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박 | <복수는 나의 것>에서 A형 B형 얘기할 때 사실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 촬영을 하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정도다. 내가 직접 나서서 B무비라는 것에 대해서 언급한 적도 없다. 일단 제작자들이 기겁을 한다. (웃음) 데뷔작(<달은 해가 꾸는 꿈>(1992))부터 그것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고 그런 말 절대 안 쓰려고 한다. 내가 즐겨보는 영화 중에 그런 것이 많다는 정도지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것을 의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자꾸 그런 식으로 몰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내가 스스로 무덤을 판 부분도 있다. 베스트 10 뽑아달라고 하면 그런 영화 많이 넣고 했으니까. 한데 내가 그런 영화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볼 때와 만들 때가 정말 다르다. 즐겨보기는 하지만, 만드는 것은 재미가 없다.

당당한 여성이 아름답다

제8회 여성관객영화상, <싱글즈> 최고의 영화 선정 2003년 여성관객이 뽑은 최고·최악의 영화가 발표됐다. 사단법인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주최하는 제8회 여성관객영화상은 올해 최고의 영화와 최악의 영화로 각각 <싱글즈>와 <색즉시공>이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이외에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바람난 가족> <질투는 나의 힘> 등이 최고의 한국영화에, <동갑내기 과외하기> <와일드카드> <조폭마누라2>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등이 최악의 한국영화에 묶였다. 최보은 준비위원장은 “해마다 그랬듯이 여성관객이 상줄 만한 영화는 뻔하지만 최악의 영화를 고르는 데 있어서는 대부분의 한국영화가 ‘최악’의 범주에 속해 있어서 그중에 ‘빼어난 최악’ 다섯편을 고르기가 만만치 않았다”고 이번 심사를 평가하고 있다. 최고의 영화로 꼽힌 <싱글즈>는 여성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하면서 여성의 주체적인 삶과 여성간의 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여성의 욕망을 솔직히 표현함으로써 여성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전통적인 성역할도 초월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르게 후한 점수를 얻었다. 과 <바람난 가족>은 전통적 가족제도에 대해 재고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바람난 가족>에 관해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제거함과 동시에 여성에 대한 이해를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최악의 한국영화로 선정된 <색즉시공>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여성들에게 외모 콤플렉스를 자극하면서 여성캐릭터를 희화화하고 여성에 대한 몰이해를 생산한다는 점 역시 이 영화가 올해 여성관객에게 가장 불편했던 이유다. 여성캐릭터의 희화화는 <동갑내기…>와 <조폭마누라2>에서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와일드카드>는 공적영역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 <첫사랑…>는 비주체적이며 의존적이고 정형화된 여성상을 보여준다는 점이 부각됐다. 한편 올해 최고의 여성·남성캐릭터로는 <바람난 가족>의 호정(문소리)과 <질투는 나의 힘>의 원상(박해일)이, 최악의 캐릭터로는 <첫사랑…>의 일매(손예진)와 태일(차태현)이 각각 선정됐다. 올해 여성관객상 결과는 여성문화예술기획 홈페이지와 <씨네21> 독자엽서를 통한 전국 여성관객 1622명의 설문응답을 바탕으로 선정한 것이다. 전체 응답자를 연령별로 보면 25∼29살의 비율이 37.4%로 가장 많았고 20∼24살은 37.1%, 30대 여성은 17.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살 이하와 40살 이상은 각각 3.9%와 4%를 차지했다. 박혜명

영화사신문 제25호(1960∼1961)

영화사신문 제25호 The Cine History 격주간 · 발행 씨네21 · 편집인 김재희 1960 ~ 1961 <싸이코> 영화미학의 새 장 샤워실 살인장면, `감각의 시대' 문 열어 충격적인 샤워실 살인장면을 선보인 앨프리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가 할리우드 영화미학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을 얻고 있다. 평론가들은 과도할 정도로 쇼킹하고 센세이셔널한 샤워실 살인장면에 주목하며, “<싸이코>는 20세기 말의 주류 영화미학이 될 만한 것의 도래를 상징하는 영화”라고 입을 모았다. 이제 기존의 할리우드영화를 특징지웠던 “정서의 영화”(cinema of sentiment)로부터 독립해 성장하기 시작한 “감각의 영화”(cinema of sensation)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히치콕의 <싸이코>가 관객 내부에 본능적으로 잠재해 있는 “영화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확립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프랑스의 뉴웨이브 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는 “<싸이코>는 영화관객의 새로운 세대를 겨냥한, 본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미학의 영화”라고 극찬했다. 그는 영화의 역사를 두동강낼 만큼 획기적인 영화로 <싸이코>를 지목하고, 바로 그 순간으로 여주인공 마리온 크레인(재닛 리)이 칼에 난자, 살해되는 모텔 샤워장면을 꼽았다. 이 장면은 내러티브에 우선순위를 두는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규칙을 깨는 것으로, 무엇보다 센세이션(감각)을 위해 고안된 장면이라는 것이다. 영화계가 주목한 <싸이코>의 또 다른 특기할 만한 점은 비일상적인 드라마적 장치이다. 영화 중반 이전에 여주인공을 심술궂게 살해해버리는 전복적인 플롯은 샤워실 장면이 창조해낸 강력하고 새로운 시각적 미학보다 더 놀라운 것이다. 이러한 <싸이코>의 줄거리 구성은 고전적 할리우드영화의 전통적 가치를 전복시킬 만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할리우드의 베테랑 감독인 히치콕은 자신이 만든 첫 공포영화인 <싸이코>의 흥행성적에 몹시 안달해한다고 전해진다. “살아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 뉴아메리칸시네마그룹·시네마베리테 등 反상업화 운동 봇물 영화의 주류를 바꿔보기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6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세계 곳곳에서 상업영화에 반발하는 영화인들의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뉴아메리칸시네마그룹’, ‘시네마베리테운동’ 등의 형태로 할리우드를 대표로 한 기존 영화계에 ‘도발’을 시도하고 있다. 60년 9월 요나스 메카스, 셜리 클라크를 비롯한 뉴욕의 독립영화 감독·제작자들이 ‘뉴아메리칸시네마그룹’을 결성하고 기존의 영화를 “허위가 가득하고 호화로운 영화들”이라고 공격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더이상 장밋빛 영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핏빛 영화를 원한다”라며 “거칠고 못 만들었어도, 살아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토로했다. 앤디 워홀 등 전위적인 예술가들도 이 그룹에 가담했다. 프랑스의 뉴웨이브, 영국의 프리시네마운동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훨씬 대담한 이들은 주제와 테크닉 면에서 상업영화와 차별화되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투아니아 출신인 메카스는 16mm 실험영화를 다수 제작하면서, 1956년엔 <필름 컬처>(Film Culture)라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이어 61년 프랑스에서는 장 루슈가 사회학자 에드거 모랭과 함께 영화 <어느 여름의 연대기>를 내놓으며 ‘시네마베리테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이들은 극적 구성을 피하는 대신, 렌즈의 기록성을 최대한 살려 현실 속에서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했다. 또 인터뷰 형식을 중시하는 특징을 보였다. <어느 여름의 연대기>는 영화 도입부에서 이 영화가 “시네마베리테(cinema verite)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라고 명백히 하고 있다. 영화계의 이같은 사회참여적이고 운동적인 성향은 멀리 일본에서도 ‘새로운 물결’이란 이름으로 함께 나타났다. 오시마 나기사는 60년, ‘미-일 안보조약’(Ampo)에 대한 좌파 학생들의 투쟁을 가차없이 비판한 <일본에서의 밤과 안개>를 만들어 개봉했지만, 즉각 상영 중단됐다. 또 이마무라 쇼헤이는 61년 <돼지와 군함>을 통해 날카로운 정치·사회 비판을 보였다. 주제:할리우드 영토확장 러시 TV명화 제작·기내 상영 등 새로운 수익원 창출 나서 TV 등 새로운 매체에 당하고만 있던 할리우드의 역공이 시작됐다. 60년대 들어 뉴미디어들을 영화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할리우드는 이제 ‘영화=극장에서’란 도식을 무너뜨리며, 안방으로 항공기로 ‘상영관’을 넓히고 있다. 61년 9월 에 <토요일 밤을 명화와 함께>(Saturday Night at the Movies)란 프로그램이 첫선을 보였다. 주요 시간대에 영화시리즈 프로그램이 편성된 첫 케이스로, TV를 통해 할리우드영화를 감상하는 새로운 유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란 분석이다. 첫선을 보인 <토요일 밤을…>을 장식하게 된 영화는 와이드스크린 코미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1953)이다. 앞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텔레비전 쇼를 제작해오고 있다. 대규모 스튜디오의 영화제작이 감소한 탓이다. 이들 스튜디오들은 또 극장 상영과 텔레비전 방송에 둘 다 쓰일 수 있는 독립영화 제작에 필요한 제작시설을 대여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기도 했다. 황금시간대 TV 진출에 앞서 할리우드영화는, 항공기를 새로운 영화상영 매체로 끌어들였다. 61년 7월 TWA 에어라인은 퍼스트 클라스 승객을 대상으로 영화상영을 시작했다. 비행 중(in-flight) 상영이 정규화되기는 TWA가 첫 시도였다. 미국의 영화제작사들은 이 밖에도 음반, 출판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영화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에 이미 착수했다. 진짜 사나이 사라지다 클라크 게이블 심장마비, 유작은 카우보이 역할 “완전한 남성성의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이 세상에 딱 한명뿐이다. 바로 클라크 게이블이다.” 클라크 게이블의 마지막 영화였던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fits, 1960)의 제작자였던 프랭크 테일러는 그를 남성성의 상징으로 치켜세웠다. 이 영화의 각본을 썼던 극작가 아서 밀러도 그가 만났던 배우들에 대해 언급하며 클라크 게이블에게 “유일한 진짜 사나이”란 호칭을 선사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영화로 뭇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클라크 게이블이 1960년 11월16일 세상을 떴다. 향년 60살. 그는 죽기 직전까지 배우의 길을 걸었다.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그가 죽던 해 찍은 영화. 존 휴스턴 감독의 연출로 마릴린 먼로와 함께 출연했던 이 영화에서 그는 나이를 잊고 스턴트 연기를 직접 했다. 나이 든 카우보이 역할이었는데,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는 촬영을 마치고 나흘 뒤 심장마비로 쓰러져 열흘 만에 숨을 거뒀다. 5개월 뒤 그의 늦둥이 아들 존 클라크 게이블이 태어났다. 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사나이 연기’의 전형으로 통한다. 남북전쟁으로 인한 피폐한 환경을 뚝심으로 이겨나가는 그의 모습은 인간의지의 위력을 보여줬다. 앞서 35년 <어느날 밤에 생긴 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부터 그는 이미 할리우드의 왕자였다. 훤칠한 체격에 막힘없는 성격의 그를 보며 여성관객은 주저하지 않고 ‘할리우드 제1의 성적 매력을 가진 남자배우’란 호칭을 주었다. 많은 이들에게 칭송받는 그의 남성성은 영화계 입문하기 이전 벌목공, 유전의 인부, 농부, 그리고 영업사원 등으로 활동했던 그의 선 굵은 이력을 보면 수긍이 간다. 지방 극단의 단원으로 연기를 시작, 할리우드에서 갱(gang) 연기를 통해 영화계의 제왕으로 떠올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외에 <바운티호의 반란>(1935), <모감보>(1953),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1960)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블랙리스트 무용지물, 대부분 가명으로 활동 1960년대 들어, 1950년대의 악명 높은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많은 감독들이 강제로 해외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배우들은 은퇴를 하거나 연극으로 방향을 돌린 반면,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은 익명이나 가명으로 일을 계속했다. 그래서 “할리우드 10대 작가” 중 한명인 달튼 트롬보는 두개의 신작영화의 작가로 크레딧에 올랐는데, 하나는 유니버설이 제작한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스팔타커스>와 유나이티드 아티스츠가 제작한 오토 프레밍거의 <영광의 탈출>이다. 재미있는 것은 <더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으로 1956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로버트 리치는 트롬보의 필명에 다름 아니며, <콰이강의 다리>로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불이 수상한 것으로 알려진 1957년 아카데미 각본상은 사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영국에 망명 중인 칼 포맨과 마이클 윌슨이 공동 원작자라는 사실이다. 화제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 헨드헬드·점프컷 신기술 등장 장 뤽 고다르의 첫 장편영화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 1960)가 개봉과 동시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할리우드 B급영화의 산실인 모노그램픽처스에 헌정하는 이 영화는 젊은 자동차 도둑(장 폴 벨몽도)이 경찰을 살해하고 미국인 여자친구(장 세베르)와 도주를 한다는 스토리. 플롯은 관습적이지만, 시나리오는 정반대이다. 미국 갱스터영화의 직접성과 경제주의를 영화 속에 다시 구현하고자, 고다르는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촬영기사 라울 쿠타르도 종종 기용하면서 핸드헬드 카메라와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했다. 또 전통적인 구축숏(establishing shots)을 생략하는 과감한 점프컷(jump cuts)도 사용했다. 고다르는 배우에게 큐사인과 동시에 펼쳐지는 즉흥연기를 요구했고, 영화 찍는 내내 연기동선을 익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결과 무정부주의자 벨몽도와 매혹적인 세베르가 보여주는 유례없이 신선한 연기는 영화제목(breathless)처럼 관객을 숨막히게 했다고. 르네 클레망, 뉴웨이브 합류 르네 클레망은 신작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1960)에서 젊은 날의 고뇌가 팽만한 시대정신을 포착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뉴웨이브(New Wave) 시나리오 작가인 폴 제고프가 각색을, 뉴웨이브 스타일에 공을 세운 뛰어난 촬영기사 앙리 드케가 촬영을 맡았다. 1940년대를 풍미했던 할리우드 B급영화의 음울한 정취를 떠오르게 하는, 태양빛에 잘 그을린 필름누아르인 <태양은 가득히>. 이 영화에서 24살난 알랭 들롱은 엄청난 부와 사랑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결국은 파멸하는 주인공 톰 리플리 역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문제적 청년 톰 리플리는 친구 필립(모리스 로네)을 속여 돈을 갈취하고, 그를 죽인 뒤 그의 여자친구 마리 라포레를 자기 여자로 만든 다음, 죽은 친구의 행세를 하는 불안정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하이스미스의 소설 원제는 <자줏빛 정오>(Purple Noon). “명작을 몰라보다니” <피핑 톰> 평단 혹평 영국 합작 공포영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마이클 파웰의 신작 <피핑 톰>(1960)이 평단의 혹평을 받고 있다. 정신병에 걸려 여자들을 살해하는 젊은 영화 촬영기사 역으로 칼 봄이, 그의 타깃이 되는 발레리나 역에 모이라 시어러가 각각 열연했다. 16mm 카메라로 타깃이 되는 여인들을 훔쳐보며 카메라의 삼각대 다리로 희생자들을 찌르는 엽기적 행각을 보여주는 <피핑 톰>은 많은 이들을 곤혹스럽게 할 만큼 추악하면서도 대담하고 놀라운 영화다. 파웰 자신이 봄의 아버지 역을 맡아, 고의로 자기 아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그의 반응을 촬영하는 심리학자로 출연한다. 더 나아가 영화 속 아이는 파웰의 아들 콜롬비아가 직접 연기했다. 한 분노한 평론가는 “한마디로 <피핑 톰>은 수세식 변기로 씻어내려버려야 마땅한 영화”라고 평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블랙유머, 그리고 파웰의 주된 관심사인 인생과 예술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대한 치밀한 탐구는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흔치 않은 미덕으로 그를 논쟁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