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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살인의 추억> 춘사상 7개 부문 석권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살인의 추억>(제작 싸이더스)이 한국영화감독협회와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가 15일 오후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개최한 제11회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 시상식에서 대상을 비롯한 7개 부문상을 석권했다. 올해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살인의 추억>은 대종상, 영평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주요 부문을 휩쓴 데 이어 이번에도 대상을 비롯해 감독상(봉준호), 남우주연상(송강호), 각본상(봉준호ㆍ심성보), 남우조연상(박노식), 촬영상(김형구), 편집상(김선민) 등 7관왕을 차지했다. 심사위원특별상은 김유진 감독의 <와일드 카드>에 돌아갔으며 <지구를 지켜라>는 신인감독상(장준환)과 신인여우상(황정민), <클래식>은 조명상(박찬원)과 음악상(조영욱),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미술상(오상만)과 기획제작상(이승재) 등 각각 두 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밖에 여우주연상은 문소리(바람난 가족), 여우조연상은 송윤아(광복절 특사), 신인남우상은 박해일(질투는 나의 힘), 기술상(녹음)은 최태영(황산벌)이 수상했다. 한편 공로상 수상자로 이희호 여사와 함께 시상대에 오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올해 한국영화 점유율이 50%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내년에는 80%로 더 높아졌으면 좋겠고, 영화인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우리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알찬 수상 실적을 거두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서울=연합뉴스)

미야자키 1992년작 <붉은 돼지> 한국개봉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세계 애니메이션의 걸작목록을 하나씩 추가시키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1992년작 〈붉은 돼지〉가 국내 개봉한다. 미야자키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은 돼지〉도 오래전부터 불법복사 테이프를 통해 ‘아는 사람’에게는 다 알려진 걸작 중 하나다. 〈붉은 돼지〉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고와 공중비행으로 상징되는 자유의지 같은 미야자키 작품의 공통분모를 담고 있으면서도 몇가지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거리를 둔다. 우선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어린아이나 소녀가 아니라 나이든 돼지다. 1차대전이 끝난 1920년대 말 돼지 포르코 로소는 무인도에서 혼자 지내며 하늘의 해적인 공적을 소탕하고 그 현상금으로 살아간다. 스스로 마법걸어 돼지로 변신 본래 마르코라는 이름의 공군비행사였던 그는 전쟁이 끝난 직후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된다. 그는 왜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게으름과 미련함의 상징인 돼지가 됐을까 국가를 위해 기부를 권하는 은행원에게 “애국은 인간들이나 하시지”라고 툭 던지거나 왜 돼지가 되었냐는 소녀 피오의 질문에 “파시스트보다는 돼지가 나아”라고 내놓는 대답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이처럼 〈붉은 돼지〉는 미야자키의 다른 작품들보다 성인 관객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주제와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이유 중 일부는 어느덧 중년이 돼버린 감독 자신을 위해 만든, 자전적 성격에서 연유하기도 한다. 본래 기내 상영용 단편으로 준비하다가 유고 내전, 소비에트 붕괴 등을 지켜보며 감독은 90분이 넘는 장편 프로젝트로 바꾸었다고 한다. 무인도에 살며 현상금 사냥 그러나 반파시즘과 무정부주의적 성격이 짙게 배어 있다고 해서 〈붉은 돼지〉가 무거운 성인물은 아니다.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답게 화사한 색감으로 가득한 화면과 복고적 느낌을 주는 비행기 그림들이 아기자기한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내용에서도 포르코의 적이지만 여자 앞에서는 주책스럽게 망가지는 미국인 도널드 커티스와 인질로 잡은 유치원생들에게 쩔쩔매는 공적 등 정말 미워할 만한 인물은 하나도 없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세명의 공군비행사 남편을 차례로 전장에서 잃었으나 좌절하지 않는 여성 지나와 17살의 소녀 비행기 정비사 피오 등 이 작품에서도 여성은 삶의 긍정과 에너지를 보여주는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미워할만한 인물 하나도 없다 전작들에서도 비행기와 비행장면에 강한 애착을 보여주는 미야자키의 자전적 작품답게 이 작품에서 클라이맥스는 포르코가 그의 빨간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이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와 그 사이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섬들 사이로 비행기가 자유자재로 활강하는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깊이 터져나오는 짜릿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19일 개봉.

햄버거집 얼짱을 아시나요? <그녀를 모르면 간첩> 촬영현장

최근 몇년간 한국영화에는 다양한 캐릭터의 간첩이 등장했지만, 이번주 촬영을 마치는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에 등장하는 간첩은 그동안의 영화에서 보여준 냉혹하거나 어리숙했던 이미지와는 다소 먼 신세대 ‘얼짱’ 간첩이다. 얼굴이 예쁘다는 뜻인 ‘얼굴 짱’의 줄임말로 올해 인터넷 최고의 화제어인 ‘얼짱’. 여기에 얼짱이 실제 간첩이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 제작진은 김정화, 공유 그리고 실제 얼짱 출신인 남상미를 앞세워 ‘얼짱커플’ 신드롬을 일으킨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지난 12월7일 부천의 한 패스트푸드점 촬영현장. 스탭, 배우, 보조 출연자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빈 이날 공개한 장면은 남파한 뒤 이곳에서 위장 ‘알바’를 하는 ‘얼짱 간첩’ 림계순과 그녀를 보려고 몰려든 주변 입시 학원생들이 림계순을 보며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펴는 장면. 덕분에 얼짱 간첩 역을 맡은 김정화는 비키니 수영복, 웨딩드레스, 어우동 복장을 차례로 갈아입으며 등장, 학원생들의 상상에 부응했다. 특히 수영복 장면에서는 사진기자의 접근을 막고 진행하는 바람에 약간의 승강이가 일기도. 감독을 맡은 박한준 감독은 오랫동안 단편영화를 만들었던 인물로 단편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전한 장편 데뷔작이다.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을 그리고 싶었다”는 박 감독은 “관객이 보고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2004년 1월30일 개봉확정. 사진·글 정진환 ♣ 촬영 막바지에 모습을 나타낸 실제 ‘얼짱’ 출신 남상미(왼쪽). 극중에서 김정화에게 ‘얼짱’ 자리를 빼앗기는 진아로 나온다.(왼쪽사진) ♣ “나도 얼짱이야.” 조연배우들이 촬영이 잠시 멈춘 사이 공유를 향해 일제히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다.(오른쪽사진) ♣ ‘얼짱’을 보러 몰려든 학원생들. 보조 출연자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별다른 NG없이 촬영을 끝냈다.(왼쪽사진) ♣ “자 이쪽으로 두줄로 서주세요.” 큰소리 한번없이 촬영장을 지휘하는 박한준 감독. “단편영화 때와 달리 기능적인 면에서는 편해졌지만 스탭들과 의사소통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오른쪽사진)

[촬영현장] 영화 <바람의 전설>

15일 밤, 대전시 유성구 충남대학교 병원의 8층 옥상. 한겨울 추위는 콧물까지 얼어붙게 하고 옥상 특유의 찬 바람은 눈에 보일 듯 매서운 이곳. 한쌍의 남녀는 달빛 아래 여유롭게 춤을 추고 있고, 주변에 모인 100여명의 사람들은 추위에 떨고 있다. 감독도, 배우도, 스태프도, 취재온 기자들도 그리고 목발 차림으로 구경나온 환자들과 동네 아줌마들까지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이곳은 영화 <바람의 전설>의 촬영 현장이다. <바람의 전설>은 처음 시도되는 본격 춤영화. 주인공 풍식(이성재)은 생식회사 총판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그는 어느날 우연히 사교댄스의 세계에 빠지게 되고, 급기야 대한민국 1류 댄서가 되기 위해 전국 여행을 떠난다. 한편, 여형사 연화(박솔미)는 춤바람난 경찰서장의 부인이 '제비'에게 수천만원을 갖다 바친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풍식을 주변을 맴돌고 그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환자로 위장해 접근한다. 이날 촬영은 풍식이 병원 옥상에서 연화에게 춤을 가르쳐주는 장면. 교통사고 당했던 부인을 디스크로 입원한 병원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던 감독의 경험이 들어 있는 신이다. "처음에 솔미씨는 베이식 스태프. 자세 잡으면 풍식이 와서 포즈 잡아줘야돼."(감독) "내가 이렇게 카메라 앞에 들어가도 되나?"(이성재) "되지, 금방 빠지면."(감독) 춤추는 장면은 충분한 리허설이 필요한 신. 카메라와 배우의 움직임이 정확히 맞아 떨어져야 하는 까닭이다. 배우와 감독은 카메라와 모니터 앞을 왔다갔다 하며 벌써 30분째 동작을 맞춰보고 있다. 영화의 중심 소재가 스포츠 댄스인 만큼 배우들의 춤솜씨는 필수. 댄스에 문외한이었던 두 사람은 촬영 전 석 달여 동안 연습실에 살다시피 하며 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춤 지도를 맡았던 샤리권씨의 평가대로 하면 여주인공은 춤 감각이 있는 반면 남자주인공은 그와는 정반대였다고. 처음 춤을 배우러 연습실을 찾았을 때 '구제불능의 몸치' 판정을 받았던 이성재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되는 지독한 연습으로 지금은 프로급 댄서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날 촬영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추위. 배우들은 '슛'이 들어가기 직전까지 두꺼운 옷을 껴입고 있고, 감독은 곰 무늬의 담요를 치마로 말았다. 두 주인공에게는 추우면서도 추워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도 큰 도전. 이성재는 중간중간에 차가워진 양말을 계속 새 양말로 갈아신고 있다. "야, 쏠(박솔미)." 연방 귀엣말로 이성재와 연기에 대해 상의하던 감독이 모니터 앞에서 난로를 쬐던 박솔미를 부르고 환자복 차림의 박솔미가 카메라 앞에 섰다. "촬영 들어갑니다" "자, CD 틀고, 슛" 힘들게 촬영을 시작한 장면은 바로 `컷' 사인과 함께 NG 판정을 받았다. 박솔미의 춤 동작이 '처음 배우는 사람치고 너무 부드럽다'는 지적. 컷 사인이 나자 결승점을 통과한 마라톤 선수들에게처럼 파카가 덮여지고 주변에서 난방용 팩을 건네자 손사래를 친다. "이거, 아무 소용 없어. 캐나다에서 <빙우>때 다 해봤거든." 시간을 자정을 넘기고 있는 가운데 옥상에는 달빛 대신 대형 조명이 비추고 있고 옥상에는 모든 사람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뛰고 있다. 현재 70% 가량 촬영을 마치고 다음달 중순께 크랭크업할 <바람의 전설>은 4월 2일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크리스마스 악몽

또다시, 크리스마스다. 노엘이 울려퍼지고, 1년 만에 돌아온 소년은 또다시 북채를 잡는다. 라 팜팜팜팜. 별들은 내려와- 점멸하는 쇼윈도의 장식등이 되거나, 혹은 광장과, 상가와, 교회와, 집과, 백화점의 중앙분수대 근처에 선 크리스마스 트리의 잔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린다. 스모그의 대기를 뚫고서, 별들은 어떻게 이 땅을 찾았을까? 스모그의 대기를 뚫고서, 라, 팜팜팜팜. 힘들었던 한해가 저물어간다. 그래서 고요하고, 거룩한 이 시즌의 밤이 되면- 문득, 모든 걸 용서하고픈 마음이다. 아마도 그래서, 고요하고 거룩한, 밤인 거겠지. 전철역 근처의 가판대에서, 아이에게 줄 장난감을 고르며 나는 생각한다. 라 팜팜팜팜. 1.5볼트의 건전지를 동력으로, 갈색의 곰 인형이 열심히 북을 친다. 흐리게, 그 무대를 비추고 선 꼬마전구의 필라멘트가, 문득 바람에 흔들린다. 1.5볼트만큼의 동력으로, 구경꾼 서넛이 인형을 집어든다. 딱, 만원입니다. 딱, 만원을 내고, 나 역시 인형을 집어든다. 삶에는, 더이상의 전압이 들어오지 않는다. 꼬마전구 속의 필라멘트가, 또 한번 바람에 흔들린다. 인형을 안고 오른 좌석버스 속에는, 저마다- 인형 같은 걸 안고 탄 듯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당신에게도 가족이 있군요. 저에겐 가족이 있습니다. 지금 가족의 곁으로, 저는 가고 있습니다. 캐럴 대신, 정당 대표의 150억 수수설과, 특검을 둘러싼 정당간의 공방이 라디오에선 나오지만- 우리는 대체로, 무덤덤하다. 인형, 같다. 반짝. 필라멘트와 같은 어떤 것이- 잠깐, 가슴속에서 흐린 빛을 발하는 듯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무덤덤, 하다. 마치 무덤, 같다. 버스 속은- 결국 자신의 인(燐)을 소등하는 서너 마리의 반딧불들로, 더욱 어두워진다. 고요하다. 고요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기엔 우리는 너무 지쳐 있다. 서로의 집까지는, 아직도 여러 정거장이 남아 있다. 차례차례, 우리는 버스에서 내린다. 정해진 정거장을 지나치지 않고, 버스는 약속을 지켜주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남극에서 실종된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고, 굴뚝이 없는 집으로, 우리는 돌아온다. 문득, 눈물겹다. 아빠, 아빠가 바로 산타클로스란 걸 알고 있었어요. 저 굴뚝으로 도대체, 어떻게 들어오신 건가요? 얘야, 아빠는 산타가 아니란다. 그런 편견을 버리렴. 아빠는 사실, 통아저씨란다. 나는 곰 인형보다, 바이오니클이 더 좋은데라고 말하는 아이를- 나는 꼭 껴안아준다. 미안하다 얘야. 세상은 길고, 좁고, 어두운 통로였단다. 좀더 유연하고, 소박하고, 초라하지 않았으면, 아빠는 저 굴뚝을 통과하지 못했을 거야. 기다리렴. 그곳엔 먼지가 많았단다. 아빠는 지금 손을 씻어야 해. 먼지를 너무 마시고, 먼지를, 너무 만졌어. 그럭저럭, 아이는 곰 인형을 용서한다. 아니, 아빠를 용서한다. 라, 팜팜팜팜. 마치 북을 두드리듯 샤워기의 물줄기가 내 몸을 두드린다. 나는 좀더, 유연하고, 소박하고, 초라해진다. 거울 속에는- 당장이라도, 어떤 통 속에든 들어갈 수 있을 듯한 아저씨가, 자신의 전신에 비누를 칠하고 있다. 비누는 미끌미끌, 할수록 좋다. 여보, 당신 요즘 여윈 것 같아요. 아내의 물음에, 나는 대꾸를 마다한다. 9시 뉴스가, 다시 150억 수수설과 정치권의 파장을, 집중 보도한다. 세상이 자꾸, 좁아져서 그래. 대꾸를 마다한 내 마음이, 어두운 통 속 같은 마음속에서- 집중 대꾸를, 한다. 집중할수록, 세상은 견딜 수 없다. 아주 잠깐, 1.5볼트 이상의 전압이 온몸을 관통한다. 하마터면, 필라멘트가 탈 뻔했잖아. 조심하기로, 나는 마음먹는다. 아이를 안고, 나는 잠이 든다. 잠결에, 지붕 위를 지나치는 산타의 썰매 소리를, 듣는다. 산타는 결코, 우리의 굴뚝을 드나들지 않는다. 나는 문득, 산타를 잡아죽이고 싶었지만- 아니 그전에, 나는 잠을 좀 자두어야 한다. 무척 힘든 하루였고, 무척 힘든 한해였다. 고요하고 거룩한 이 밤은 악몽(樂夢)인가, 악몽(惡夢)인가? 어둠에 묻힌 밤 속에서, 나는 아이를 끌어안는다. 아이의 몸이 왠지 미끌미끌, 한 느낌이다. 어디선가, 비누냄새가 난다. 박민규/ 무규칙이종소설가

[결산 한국영화 2003] 정성일·김소영·허문영씨 좌담

2003년이 저문다. 한국 영화에는 좋은 소식이 많았던 해다. 시장점유율이 50% 가까이로 올라,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조폭 코미디 등 가벼운 기획영화의 흥행주도 현상이 시들해지면서 보다 완성도 높은 영화들에 관객이 몰렸다. 장르나 소재 모두 다양했던 올해의 화제작들에서 어떤 경향을 짚어낼 수 있을까. 또 이렇다 할 관심을 끌지 못한 영화 가운데 문제작은 없었을까. <한겨레>에 영화비평을 릴레이로 쓰고 있는 정성일, 김소영, 허문영 세 평론가가 지난 12일 한자리에 모여 2003년의 한국 영화를 정리하고 점검하는 좌담을 열었다. 세시간 반에 걸친 좌담에서 많은 말들이 오갔으나 지면 관계상 중요한 이야기들을 추렸다. 양식미, 금기시돼 온 소재, 동시대성의 빈곤 허문영=2003년은 한국영화에 있어 양식미를 대중들이 본격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한 첫해가 아닐까 싶다. 즉 전통적 드라마의 중심요소인 이야기와 캐릭터 뿐 아니라, 이를테면 호러의 미장센이나 조명, 뮤지컬의 노래 등 특정 장르의 양식적 요소가 대중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핍진성의 대중적 시장가치가 저하되는 징후로도 볼 수 있다. 있을 법한 이야기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영화가 젊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양식적 계기를 발견해 나가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같다. 사례로 호러 영화가 수적으로도 늘어났고 대부분이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에스에프나 누아르처럼 호러도 가장 양식적 장르에 속하고 소수의 마니아를 중심으로 소통되는 장르인데 올해는 메이저 장르로 보일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사극도 주목해봐야 하지 않을까. 영화에서는 <스캔들> <황산벌> 정도지만 텔레비전에선 <다모> <대장금> 등 젊은 문화소비층의 사극에 대한 소비가 폭발적이었다. 지금까지의 사극은 대체로 궁중 내 권력투쟁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었는데 이 작품들은 그 밖의 요소들, 액션히어로나 성적욕망, 음식, 미술같은 양식적으로 풍부해질 수 있는 요소들을 끄집어내면서 실제로 그랬을까를 묻지 않고 자기의 시공간을 만들어나간다. 이 지점에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왜냐면 많은 영화들이 역사적 체험이나 개인적 고통의 기억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그것과 정면대결한다기보다는 양식적인 틀로 도피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할 것같다. 김소영=올해 대중매체들이 웰빙을 강조했는데 이런 문화도 영화에서 웰빙이나 웰메이드, 장르적 조형미를 가진 영화들을 띄우는 데 한 몫 거든 것 같다. 주목되는 건 그런 와중에서 한편으로 익스트림 영화라고 할까, 다시 말해 이제까지 말해지지 못한 것, 타부시돼온 것들을 다룬 영화가 많이 나왔고 상당수가 흥행했다는 점이다. <살인의 추억> <지구를 지켜라> <올드보이> <아카시아> <장화, 홍련> <바람난 가족> <사인용 식탁>까지 개인적 트라우마나 근친적 욕망, 역사에서 해결되지 못한 것 등 말하자면 극한적인 것들을 다룬 영화들이다. 이중에서도 <지구를 지켜라>는 얘기를 파국까지 끌고간다. <올드 보이> <장화, 홍련>은 영화적 양식미를 갖추면서 트라우마들을 영화적으로 해결하는 쪽인데 반해 <지구…>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다. 거짓 화해도 하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완전 폭파시켜버린다. 나는 <바람난 가족>이 그 중간쯤에 있다고 봤다. 이 영화는 <지구…>처럼 파국으로 끝내지도 않고 <올드 보이>처럼 영화적으로 해결하지도 않는다. 영화적 결말과 현실적 결말의 협상 지점을 아주 잘 찾고 있다고 봤다. 이런 스펙트럼에서 보면 대중들은 개인적 트라우마나 역사적 상처와 직접적 대면하는 것보다는 영화적 해결을 훨씬 선호하는 것같다. 정성일=개인적으로 올해 서울에서 본 영화 중 최고가 뭐였을까 생각해봤더니 허우샤오시엔의 <밀레니엄 맘보>와, 텔레비전에서 본 차이밍량의 <지금 거기는 몇시인가>였다. 두 편은 동시대라는 시간, 즉 흔들리는 주체의 자리에 대한 고민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영화가 생각하는 시간은 무엇일까 하는 화두가 떠올랐다. 앞의 영화들에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시간성에 대한 성찰이 있었던 반면, 한국 영화들은 이미지로서의 시간이 아닌 이야기의 시간에만 매달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인의 추억>이 ‘농촌 스릴러’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의 방점은 농촌에 있다. 왜 농촌으로 갔어야 할까. 농촌으로 감으로써 80년대라는 시간에 대한 망각에 매달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만 흥미로운 건, 과거를 다룬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 반면 미래로 나아간 영화들은 끔찍할 정도로 흥행에서 버림받았다는 점이다. <지구…>나 <내츄럴 시티>는 대중들에게 버림받을 만큼 큰 실험을 한 것이 아님에도 실패했다. 미래의 시간에서 우리를 생각하는 것에 대해 대중이 반대하는 게 아닐까. 대중의 욕망이 말하자면 과거에 매달리고 싶어한다는 느낌이다. 공포 영화들 역시 시간의 정지상태, 진공상태를 다루면서 과거에 매달린다는 점에서 한국영화는 다가올 시간에 대해 의도적으로 눈감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공포 영화들은 도래할 시간에 대해 스스로 장님되기를 자처하거나 또는 다가오는 시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올드보이>에서 가장 이상했던 건 마지막 순간에 오대수가 왜 자기의 남근이 아니라 혀를 잘랐냐 하는 것이다. 남근을 자르는 것이 근친상간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일 텐데, 혀를 자른 건 망각에 대해 일정 정도 영화가 동조하는 것 아닐까. 공포영화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 ‘억압의 귀환’인데 귀환한다면 도대체 무슨 억압의 귀환인가. 이 모든 공포 영화들은 공포라는 말만 제외한다면 전혀 다른 계보에 속하기 때문에, 과연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묻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것이 억압의 귀환이 아니라, 김소영씨의 말처럼 유사 트라우마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억압의 귀환이 아니라, 대상의 상실에서 오는 공포가 아니라 결여를 나타내는 데에 실패한 불안의 영화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묻고 싶은 건 왜 불안한가. 한국의 시간은 대통령의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웃음) 노무현 대통령 이전과 이후로 말하고 싶다. 마치 베트남 전 끝나고 어떤 영화가 성공할까 했을 때 <조스>가 터졌고, 스필버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영화가 베트남 이후 미국 대중의 정신상태에 대한 알레고리가 됐다면, 올해 한국 흥행작들은 노무현을 선택한 남한 대중들의 어떤 무의식의 알레고리로 표현된 것일까. 그게 올해 한국영화의 한 담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조스>의 경우는 사후적으로 읽힌 것이고, 아직 1년도 안된 <살인…>과 비교하는 건 좀 다르지 않을까. <살인…>이 사회적 불안의 반영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일종의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있다고 봤다. 너는 그때 거기 있었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느냐에 대한 알리바이를 준다. 영화에서 피해자는 여자들인데 이들은 수렁에 시체로 박혀 있거나 언덕녀처럼 정신 나간 상태에서 산다. 그들이 전혀 발언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농촌 스릴러가 되는 것같다. 이 영화엔 또 애매한 시점 숏이 있다. 관객의 시점인데 그게 모호하고 무기력하다. 그건 역사인식에서 오는 무기력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 이야기가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과거의 알리바이가 필요한 것같다. 피해자들은 수렁 속에 있어야 하고 범인은 찾아지지 않고. 과거의 죄를 완전히 묻는 건 전두환식 망각이니까 반쯤만 묻는식으로 수렁에 박힌 시체나 언덕녀가 나온다. <살인…> 만큼 내게 영화를 만들고 싶은 충동을 준 영화가 없었다. 이 영화의 여자들을 다 깨워서 공포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말 좀 해보라고. 올해의 성취, <바람난 가족> <지구를 지켜라> <선택> 허=어차피 장르영화들은 자기의 시간에 충실하는 일 외에 현실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개입시킬 윤리적 사명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런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는 건 장르 영화들이 실제 역사와 현실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끌어들이면서도 그것과 제대로 대면하지 않고 유사화해로 끝나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인 것같다. 그중에서도 김소영씨는 <바람난 가족>이 남다른 성취를 이뤘다고 했다. 정성일씨는 올해에 진전된 성취를 보인 영화가 없다고 보는가. 정=충무로 주류 영화들 중에선 못봤다. 김=<바람…>이 무인도 갈 때 가져가고 싶은 영화는 아니지만 협상을 잘 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며느리와 아들에게 튀는 건 장준환식 지구 폭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피가 다음세대를 물들이지만 아버지는 죽어야 되는 가부장제의 파국처럼 그려진다. 그 다음세대는 각자의 방식으로 협상하며 산다. 쥐어짠 면이 있지만 그런 점에서 임 감독이 도약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구…>의 파국도 의미가 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재앙으로 볼 수 있지만 협상지점을 너무 못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학교를 졸업한 학생의 작품 같은 느낌이 남는다. 정=<지구…>는 성취라기보다 예외적 출현이고, 장준환 감독의 발견이지 영화의 발견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바람…>은 김소영씨 의견에 공감이 가긴 하지만 동의하기는 힘들다. 영화를 보면서 부도덕의 일상화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통해 부르주아의 삶을 붙잡은 면이 있지만 거꾸로 그것 때문에 삶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게 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아이가 던져질 때 영화가 끝난 것 같았다. 나머지는 결론으로 끼워맞춘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문소리가 아이 죽고 산에 오를 때 영화는 녹색 필터를 사용해 아주 과잉으로 찍었다. 윤리적 파탄상태를 보여주고 여자가 그걸 감당하는 장면인데, 영화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것같다. 그래서 윤리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고 보이진 않는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거기엔 동의한다. 녹색필터를 써서 찍었던 그 장면이 올해 한국영화의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저렇게 대담하게 찍다니, 김우형 촬영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허=현재와의 대면이라는 점에서 <바람…>이 올해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는 건 이론이 없을 것 같다. 98년에 데뷔한, 편의상 ‘98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감독들이 올해 대거 새 영화를 만들었고 흥행을 주도했다. 재밌는 건 모두 과거의 기억을 다루거나 아니면 현재를 다루면서도 현실이 공간으로부터 멀어진 곳, 일종의 판타지 공간에서 자기의 무대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김지운의 <장화, 홍련>의 무대, 박기형의 <아카시아>의 시간은 모두 현재이지만 고립적이고 장식적인 공간 안에 들어가 자기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하고 있다. <여고괴담>이 당대의 여고생의 현실에 대한 긴장을 유지했고 무대도 현실의 교육 공간이었는데, 이재용의 <스캔들>이나 99년에 데뷔하긴 했지만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도 그렇다. 반면 임상수 감독만 현재의 문제를 현실의 무대에서 다룸으로써 데뷔작이 고민을 확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나라의 영화가 어떤 진화과정을 걷는 과정에서 양식적 풍부함은 긍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당대의 문제를 잘 다룬 영화뿐 아니라 한국영화에서 그간의 약점이었던 것 중 하나가 형식에 대한 자의식의 결여라는 점이었다. 쉽게 ‘웰메이드 영화’라고 이야기되지만 적어도 세공술이 뛰어난 장르영화가 많이 나온 건 전체적 수준의 향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동의하면서 한마디만 수정을 부탁드리자면 형식에 대한 배려는 있으나 형식에 대한 자의식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우스개로 올해 새로 등장한 장르가 ‘명품 호러’와 ‘명품 사극’, 또는 ‘청담동 호러’, ‘청담동 사극’이라고들 말한다. 충무로의 이 자조적인 표현이 형식은 그토록 추구하는 데 자의식은 없다는 말이 아닐까. 허=정선생의 지적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지구…>가 탁월한 성취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영화에서 부재한 종류의 장르적 상상력을 한계까지 밀고 갔다는 점에서 그렇다. 백윤식이 외계인 왕자고 지구 파멸의 임무를 띤 인물이었고, 결국 지구가 파멸한다는 점만으로 일종의 해방적 설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올해 나온 다른 장르영화와 달리 지극히 누추하고 촌스런 미장센과 캐릭터로 가득하다. 또한 중간에는 70년대를 연상시키는 멜로적 요소까지 등장한다. 그 모든 요소를 망라하고 나서 그 모든 걸 무화시킨다. 우주를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고 영화적 사유 안으로 끌어들인 이 상상력은 한국 영화의 장르가 진전했다고 말할 때 중요한 징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영화에 대한 두분의 견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주장을 계속 하고 싶다.(웃음) 그리고 개인적으로 올해 중요한 성취를 꼽을 때 <선택>을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선택>은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나의 베스트 원이다. <선택>을 보면서 내가 최근 충무로의 웰메이드 경향에 대해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고 생각한 게 왜인지를 불현듯 깨닫게 됐다. <선택>은 모든 신, 대부분의 쇼트가 하나의 테마를 위해 달려가고 있다. 이 영화를 본 다음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보니까 쇼트들이 잡다하더라. 없어도 되는 쇼트들을 장식으로 늘어놓고. <선택>은 그걸 다 치우고 모든 신들이 하나의 테마로 달려간다. 영화적으로 보면 빈약하고 황폐할지 모르지만, 그게 거꾸로 영화가 세상과 만나는 진정성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모든 담론이 웰메이드 영화를 추종할 때 <선택>은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우리가 질문했던 원래의 지점으로 돌아가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두번째로 오직 <선택>만이 과거의 시간의 무게를 하여튼 견디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개봉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한다면 나에게 올해의 최고작은, <선택>처럼 장기수 문제를 다룬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타리 <송환>이었다. <선택>과 <송환>은 많은 제작자와 감독과 관객들이 웰메이드 영화에 매달릴 때 명품영화가 아니라 진품이 무엇이냐를 찾아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새로운 경향 <동갑내기 과외하기>, 그리고 장진영 박해일 정다빈 정=그 다음에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은 게 <동갑내기 과외하기>이다. 나는 이 영화가 몹시 당혹스러웠다. 이 영화의 대중적 성공이 굉장히 낯설었다. 새로운 영화가 왔다기 보다는 새로운 관객들이 도착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허=개인적으로 <동갑내기…>는 주목할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만화적 기법인데, <영어완전정복>에도 나오지만 거기선 너무 직접적이라 덜 흥미로웠던 반면 이 영화는 캐릭터 설정, 편집, 그리고 흐름 전반에 만화적 감수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보통의 기준으로 보면 말 안되는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흥미로웠다. 그것이 처음에 말했던 양식적인 것, 즉 비로소 사람들이 양식적인 것에 매혹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돌아가 이야기할 수 있을 것같다. 이제는 이야기가 있을 법한 사건인가가 아니라 영화를 구성하는 갖가지 요소들이 나를 얼마나 매혹하는가 하는 양식들과의 대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동갑내기…> <옥탑방 고양이> ‘귀여니’가 하나로 링크되는 어떤 뉴(new)한, 또는 영(young)한 통속성인 것같다. 스타일의 양식화라는 면에서 새로운 통속성이 도착했다고 느낀 것은 김지운이나 이재용의 명품쪽이 아니라 오히려 이쪽에서 더 강하다. 단지 언어의 새로움만은 아닌 것같고. 우리는 어른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을지 몰라도 한국 대중영화의 새로운 도약은 거기에 준비돼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귀여니 소설을 읽다보니 김지운, 이재용, 봉준호는 너무 올드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암호 같아서 정말 힘들었고 <동갑내기…> 영화 보는 것은 지옥이었다. 내가 보기엔 하나도 안 웃긴데 관객들은 앉았다 일어섰다 난리였다. 영화 감상 태도가 이전엔 인터액티브였다면 이제는 인터미디어블한 것 아닌가. 완성도를 제외하고 새로움 만으로 본다면 올해의 가장 새로운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가 아니라 이 작품일 수있다. 그래서 <동갑내기…>의 성공에 대한 해석은 좀 더 긍정적, 창조적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웰메이드에만 집착하다 보면 영화가 전반적으로 올드해진다. 이러한 유치하고 영한 힘들을 중재하는 것도 대중영화가 지금 해야 할 역할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봤다. 허=<동갑내기…>나 <옥탑방…> 둘다 멜로드라마인데 주인공들은 트라우마에서 자유롭다. 심지어 계급적인 차이조차 사소한 취향의 차이와 다름없이 드러난다. 두 작품 모두 남녀의 계급차이가 크지만 계급적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노력해서가 아니라 주인공들에겐 그런 게 귀찮은 일일 뿐이다. 게다가 인물들이 노는 세상은 현실에 존재하는 무거운 정치사회적 사건의 개입에서 자유로운 자기만의 공간이다. 여기서 부정성과 긍정성 공존한다고 본다. 그런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극 속의 수평적 질서는 새로운 세대들이 보여주는 긍정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중압감의 부재가 주는 자기 성찰은 없다는 부정성이 있다. 그러나 그 캐릭터가 주는 해방성은 어쨌든 이전의 캐릭터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것임에는 틀림없다. 김=생각해보니 과외하기라는 서사구조가 임권택 영화에도 등장했듯이 오래전부터 남녀관계, 계급관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구조이다. 멜로가 발생하고 계급상승도 일어나고. 그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가볍게 환골탈태한 것같다. 지금의 상대적 빈곤감·박탈감은 어느 때보다 심하다고 생각한다. 계급이 아니라 명품, 짝퉁으로 이야기되니까 그렇지, 옛날에는 선생과 제자의 결혼 등으로 정말 과외를 통한 신분상승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계급간의 차이를 넘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이건 그 어느 때부터 더 판타지인 것같다. 신분상승 드라마도 일어날 수 없는 사회의 판타지. 정=대중들의 관심은 스타에 있는데 올해의 얼굴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김=장진영.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와 비슷한데 훨씬 가볍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한국적이지도 않고, 아바타같은 캐릭터의 얼굴이다. 텅 비어 있는 얼굴. 이영애씨도 그런 느낌이 있지만 장진영씨는 정말 캐릭터같은 얼굴이라서 징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나 역사나 상처도 없고, 그렇다고 어린 것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워서라기 보다 매우 시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전지현이 그 얼굴과 비교하면 어둠이 있어 보인다. 허=<살인의 추억>의 박해일. 흥미로은 건 이 인물에게서 대학생 이미지가 나온다는 점이다. 대학생인데 뭔가 쫓겨서 운동하러 공장으로 들어온 것같은 느낌을 준다. 80년대 억압을 영화가 말하는데도 억압을 빚어낸 장본인인 살인범이 그 시대에 억압과 맹렬히 싸운 대학생 이미지를 가졌다는 건 흥미로운 아이러니다. 영화가 그 아이러니를 더 밀고 나갔으면 훨씬 더 풍부해졌을 것같다. 박해일의 이미지에는 그런 식의 이상한 아이러니가 있다. 정=나는 영화가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정다빈이다. 남자와 동거해도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얼굴이다. 시뮬레이션 같은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 다른 배우가 나왔으면 안 통했을 것같다. 파워풀하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끄는 힘이 느껴지고 매우 시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새 책] <매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선>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 영화 <매트릭스>는 많은 철학적 영감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관련된 책자만 해도 여러 종이 나왔다. 특히, 이 영화가 그리는 매트릭스라는 ‘가상 현실’의 공간은 불교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어, 많은 불자와 스님들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오윤희씨가 쓴 <매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선>도 불교적 관점에서 영화 <매트릭스>를 살핀 책이다. 지은이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출가해 승려로 살다가 환속해 지금은 미국에서 웹디자이너로 살고 있다. 특이한 이력인데, 그 출가와 환속의 경로에서 얻은 불교 지식과 ‘사이버스페이스’ 관련 지식을 촘촘히 엮어 글을 짜 나간다. 분명한 건 불교의 관점과 <매트릭스>의 관점 사이에 깊은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매트릭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전부 컴퓨터로 조작된 시뮬레이션의 세계라고 설정한다. 똑같이, 대주 혜해 선사는 “수많은 세계에 환상 이외의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설파했다. 매트릭스 안의 사람들이 환영 속에서 살듯, 불교가 보기엔 중생도 환영의 세상을 진짜 세상으로 알고 산다. 영화 속에는 선불교의 선문답을 그대로 따온 듯한 장면이 있다. 선승처럼 머리를 깎고 참선하듯 앉아서 숟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아이를 주인공 네오가 만나는 장면이다. 아이가 말한다. “숟가락을 구부리려고 하지 마세요. 그건 불가능해요. 대신 진실을 깨달으려고만 하세요.” “무슨 진실” “숟가락은 존재하지 않아요.” “숟가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이가 답한다. “그러면, 구부러지는 것은 숟가락이 아니라, 당신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이 문답은 6조 혜능의 이야기를 담은 <육조단경>의 한 대목과 매우 닮았다. “그때 바람이 불어 깃발이 펄럭이니,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하고,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하여 의론이 그치지 않았다. 혜능이 나와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지은이는 영화 속 네오와 아이의 문답이 선문답의 유형을 따르고는 있지만, “그 문답은 서술적일 뿐이라서 선문답이 지닌 극적인 맛”, 다시 말해 선적인 맛(선미)이 없다고 말한다. “선에는 무엇보다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묻는 자와 대답하는 자 사이에 무언가 격렬한 부딪침이 있어야 한다.” <매트릭스>는 그런 점에서 ‘실패한 영화’다. “값비싼 할리우드식 폭력은 있지만, 정작 필요한 긴장감은 결여됐다. …구구절절 말로써 설명하려고만 든다. 이런 것도 선이라면, 말하자면, 입으로만 하는 구두선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은이가 <매트릭스>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매트릭스>는 여전히 불교의 근본적 이치를 담고 있다. 다만 그 불교적 세계는 <매트릭스>에 고유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영화의 바탕을 이루는 사이버스페이스, 다시 말해 컴퓨터들의 네트워크가 인간의 정신에까지 연결돼 형성되는 가상공간에서 발원한 것이다.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가상현실은 부처가 연기법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들인 인다라(인드라)망이라는 비유와 딱 들어맞는다. 수많은 구슬이 그물처럼 연결된 인다라망에서 그 구슬들은 다른 구슬들의 빛을 받아 영롱한 빛을 낸다. 그러나 그 그물에서 떼어낸 구슬은 아무런 빛도 없는 투명한 물체이다. 오직 다른 구슬과의 관계 속에서 그 구슬들의 빛을 받아서만 제 색깔을 내는 것이다. 구슬은 자아이며, 관계는 인과의 연쇄고리, 곧 연기다. 연기에서 벗어나면 자아란 텅 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제법무아다. 사이버스페이스를 이루는 네트워크는 바로 이 진리를 체험케 해줄 가능성이 있는 가상의 공간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윤희 지음, 호미 펴냄·9500원)

[인터뷰] <실미도>에서 상팔이 열연 정재영

영화 속 인물과 실제 배우를 혼동하는 것만한 바보짓도 없겠지만 배우 정재영(33)을 만나면 우선 약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킬러들의 수다> <피도 눈물도 없이> 등 배우로 뚜렷한 인상을 남긴 영화들에서 선굵고 강한 남성의 역할을 맡으며 쌓아온 ‘센’ 느낌이 여지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와 나란히 등장하는 <실미도> 포스터를 앞에 놓고는 “이거 봐요. 나만 아주 멀찌감치 서서 찍은 거거든요. 근데 얼굴 크기는 비슷해. 누가 보면 바로 뒤에서 찍었는 줄 알아요.” 킥킥 웃는다. 그동안 각진 얼굴과 날카로운 눈빛이 빚어놓은 팽팽한 인상에 바람이 피식 빠지는 느낌이다. <실미도> 어땠냐고 물으니 “제가 나온 장면 빼고는 좋았는데, 어휴, 식구들이 보면 이번엔 한 술 더 뜨는구나 하겠죠.” 안 그래도 늘 ‘정상’과는 거리가 먼 역할을 주로 해 집안 어른들에게 ”그게 인간이 할 짓이냐”고 핀잔을 받는데 이번에도 한소리 들을 것 같다는 말이다. “여기 낀 것만 해도 어딘데”라는 흥분으로 합류하게 된 <실미도>에서 그는 주연은 아니지만 가장 역동적인 인물인 상필역을 맡았다. 극중에서는 생략됐지만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죽이고 십대에 전과자의 길에 들어선 상필은 인찬에게 맹목적인 경쟁심에 불타다가 그를 이해하고 목숨을 건 탈출에 앞장서게 된다. “상필이는 진짜 싸움꾼도 아니에요. 불에 달군 쇠로 지짐을 당할 때도 “저 새끼가 버티니까” 나도 버틴다는 단순하고 ‘생짜’ 같은 인물이죠. 근데 인찬이한테 사진 보여달라고 했다가 걸려서 사진 찢어지는 장면 있잖아요. 아, 정말 미안하더라구. 괜히 보여달라고 해서 말야.” 시나리오에 있는 대로 해놓고도 그날 밤까지 미안해서 설경구씨의 눈치를 봤다는 그에게는 아직 <실미도>에서의 기억이 오래 남아 있는 듯했다. 실제 실미도의 기억은 모든 이에게 악몽이었지만 강우석이라는 대감독, 안성기, 설경구라는 대배우와 함께한 정재영의 실미도 기억은 새로운 경험과 긴장과 배움으로 가득찬 즐거운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실미도>를 마치고 쉴 틈도 없이 그는 지난달부터 장진 감독의 신작 <아는 여자> 촬영에 들어갔다. 또 얼굴 크기 이야기다. “이나영씨랑 택시를 타고 가는 장면이 있어요. 내가 앞에 앉고 나영씨가 뒤에 앉았는데 찍은 다음 모니터로 보니까 완전히 버스 안이야. 내가 맨 앞 자리에 앉아 있고 나영씨가 맨 뒤에 앉아 있는 것처럼 얼굴 크기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거라.” 전작들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어눌한 야구선수로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그는 처음으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된다. 그가 늘 해왔던 연기로 보자면 “아이, 씨, 왜애” 이렇게 말해야 될 것 같은 상황에 “왜 그러시죠” 순하게 말하는 게 어색하고 민망하기만 하다는 정재영. “너무 이상해서 영화 엎어질지도 모른다”고 엄살을 피우는 그의 변신이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돌리고~ 돌리고~,<바람의 전설> 촬영현장

“옷은 이거 하나만 걸쳐요?” 얇은 환자복 위에 베이지색 스웨터만 달랑 걸쳐 입은 박솔미가 슬쩍 떠본다. 박정우 감독은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려 전대성 촬영감독과 카메라 동선을 상의한다. 감독의 싸늘한 응대에 박솔미로선 눈을 흘기는 수밖에 없다. 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건 이성재도 매한가지다. 날렵한 맵시의 양복 안으로 한껏 움츠린 어깨가 덜덜 떨고 있다. <빙우>를 찍으면서 로키 산맥의 한파 맛을 본 그도 짬이 나자 금세 카메라를 피해 모니터 옆 방한기구로 다가가 언 발을 쬔다. 하긴, <바람의 전설>에서 이성재의 발은 꽤나 중요하다. ‘스텝 삼매경’에서 또 다른 인생을 발견한 남자 풍식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촬영괄괄한 성격의 연화 또한 좀처럼 입밖에 꺼내지 않은 고단한 현실이 있다. 그녀가 주저하지 않고 풍식에게서 엑소더스의 키를 건네받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12월15일 충남대학교 부속병원 옥상에 차려진 춤판. 전설적인 스텝의 소유자 풍식은 이혼당하고 집에서 쫒겨난 뒤 병원에 세간살이를 차린 신세다. 반면 여형사 연화(박솔미)는 상관의 부인을 농락한 풍식에게 접근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으려 한다. 그러나 황홀한 춤의 세계는 현실의 유일한 도피처라 할 만큼 안락하다. 풍식에게서 자이브를 배우는 순간, 연화는 그를 먹이가 아니라 파트너로 받아들이게 된다. 문단에서 이야기꾼으로 손꼽히는 성석제의 단편소설 <소설 쓰는 인간>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특사> 등의 시나리오를 쓴 박정우 감독의 데뷔작. “다들 제비라고 부르지만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여기는 풍식”을 통해 박 감독은 “엔도르핀 가득한 세상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풍식이 전국 각지를 돌며 왈츠부터 자이브까지 섭렵하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이성재는 촬영 전 하루에 7시간씩 연습했다고. 안무를 맡은 샤리 권씨는 “몸치였던 이성재씨가 이제는 선수가 다 됐다”고 말할 정도니 그의 리드미컬한 스텝을 기대할 일만 남았다. 개봉은 2004년 4월2일이다. 사진 이혜정·글 이영진 ◆ 촬영장면을 모니터로 검색한 뒤 담소를 나누는 박정우(맨 왼쪽) 감독과 배우들. (왼쪽 사진) ◆ 범행 일체를 자백받고자 탐색전을 펼치지만, 파란만장한 풍식의 인생에 휩쓸린다. (오른쪽 사진) ◆ 범행 일체단짝인 김상진 감독이 자신의 영화와 <바람의 전설> 중 어떤 영화가 더 많은 관객을 불러오을지 내기를 걸어와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박정우 감독.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되어야 할 라스트 댄스 촬영을 위한 후보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해서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