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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BIAF #1호 [프리뷰]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 ‘로봇 드림’

<로봇 드림> Robot Dreams 파블로 베르헤르/스페인, 프랑스/2023년/102분/개막작 10월 20일, 18:00, 한국만화박물관 1층 상영관 단 한마디의 대사 없이도 사랑스럽고 심오하고 역동적인 우화인 <로봇 드림>은 동물과 우정에 마음 약한 이들이라면 누구든 울릴 만한 영화다. 1980년대 뉴욕의 작은 아파트, 늦은 밤 모니터 불빛 앞에서 홀로 끼니를 때우는 일에 익숙한 개 한 마리가 산다. 고독한 1인 가구에 뜻밖의 변화가 생긴 건 새벽녘 TV광고를 보다가 홀린 듯 주문한 로봇 덕분이다. 낙관과 모험심 가득한 로봇 동거인이 생긴 후 개의 삶은 활기로 가득 찬다. 하지만 이대로 행복하기만 할 리가. 바다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중 로봇은 고장나고 만다. 사지가 마비된 채 모래사장에 홀로 남은 로봇과 폐장한 해변에 들어갈 수조차 없게 된 개는 영영 분리된다. 조용한 개의 일상으로부터 출발한 영화는 이제 로봇이 꾸는 꿈으로부터 다시 시작된다. <오즈의 마법사> 속 양철나무꾼의 쓸쓸한 도시 버전인 <로봇 드림>의 상상은 여전히 환상적인 한편, 짐작 가능한 대로 무척이나 애처롭다. 미국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간결한 2D 작화가 순도를 높이고, 대사 대신 구도와 프레이밍, 사운드로서 언젠가 변하고 마는 관계의 속성이 몽타주된다. 개와 안드로이드 사이에 형성된 기적 같은 유대로 한껏 날아올랐던 버디물은 관계의 불꽃이 어이없이 꺼져버리는 순간에 대해서도 묵묵히 성찰한다. 요컨대 <로봇 드림>은 영혼의 동반자를 향한 우리의 판타지를 자극하고, 그 불가능성까지도 받아들인다. 사라 바론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스페인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가 만든 첫 애니메이션영화. 2023 칸영화제에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오직 하나뿐인 그대

오늘 아침엔 발목에 검은 별이 그려진 금색 양말을 신었다. 내 양말 서랍에서 가장 무난한 디자인이었다. 반짝이, 땡땡이, 형광, 야광, 레이스…. 서랍 속을 한참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7년 전 어느 날이 떠올랐다. 친구 S는 밥을 먹다 말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가 검정색 옷만 입는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공포일 수도 있어.” K도 옆에서 거들었다. “어떨 땐 너가 사람이 아니라 그림자 같기도 해.” 어떻게 사람에게 그림자라는 그런 심한 말을…. 나는 말문이 막혀서 대꾸할 수 없었다. 가게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그날따라 더 그림자 같았기 때문에…. 친구들의 충고는 일리가 있었다. 하나 그렇다고 검은 옷만 입던 내가 갑자기 무지개색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다면 그들은 그 모습에 더 커다란 공포를 느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검정 옷을 고수하면서도 나의 내면에 자리한 사랑스러움, 귀여움, 순수함을 은은하게 드러낼 방법은 없을까? 액세서리 착용을 가장 먼저 떠올렸지만 촌스럽고 가난한 나는 도금 알레르기가 있었고, 금붙이를 살 만한 재력은 없었다. 속옷은 화려한 것을 입어도 ‘은은하게’ 드러내는 것이 불가능한 수단이었고, 모발 염색은 내 지독한 곱슬머리가 거부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적당히 숨겨져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 사람의 내면을 뒤집어 보이는 궁극의 패션 아이템. 바로 양말이었다. 내 서랍장 속 광기는 바로 그날의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현란한 양말을 모으고, 빨간 끈으로 머리를 묶고, 큐빅을 붙인 네일아트를 하고, 가방에 인형을 달고…. 나는 나의 밝고 귀여운 이면을 누군가 알아봐주길 바라면서 부단히 작은 노력들을 했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영화에 ‘이스터 에그’를 심듯이. 하지만 지독하게 재미없는 영화는 아무도 보지 않을 텐데 그 안에 숨겨진 ‘이스터 에그’ 따위를 누가 찾으려 하겠나? 어찌나 치밀하게 숨겼는지 사람들은 ‘나만 아는 노력’을 정말 나만 알게 두었다. 내가 가방에 어떤 깜찍한 인형을 달았는지, 내가 얼마나 화려한 레이스 양말을 신었는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그저 늘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탁하고 우중충한 사람일 뿐이었다. 스스로의 어둠에 질려서인지 나는 어디에서도 한눈에 알아차릴 만큼 돋보이는 사람들이 좋았다.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한 노출을 하는 사람, 때가 되면 온갖 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오는 사람, 코스프레에 누구보다 진심인 사람까지…. 그래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은 모두 좋았다. 그중에서도 ‘솔로 가수’는 가장 크고 반짝거렸다. 엄정화가 팔을 흐느적대며 ‘오늘 밤 그대를 유혹하겠다’ 속삭일 때, 박지윤이 가쁘게 숨을 쉬며 ‘장미 한 송이를 내게 달라’고 할 때, 비가 온몸의 관절을 흔들며 ‘나는 나쁜 남자’라고 절규할 때, 그리고 이 모든 무대를 프로듀싱한 ‘최고의 솔로 가수 메이커’ 박진영이 비닐 바지를 입은 채 ‘날 떠나지 말라’며 붙잡을 때,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참을 느꼈다. 커다란 무대와 카메라를 독점한 이 단독자들이 내 눈엔 누구보다 특별하고 위대해 보였다. 도대체 누가 한국에 다인원 그룹의 시대를 연 것인가? 기회만 있다면 K팝 자본가들에게 호소하고 싶었다. 제발 그룹 좀 그만 만들고 다시 솔로 가수의 세상을 돌려달라고. 나처럼 솔로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우리에게 옛날 가요 무대는 누군가 이미 수령한 로또 당첨지를 주워서 몇번이고 쓰다듬는 슬프고 황홀한 일이라는 것을…. 1995년 마지막 무대를 보라. 전 출연자가 한데 모여서 그해 최고의 히트곡 <잘못된 만남>을 한 소절씩 부르는, 조회수 170만회의 영상을. 긴장해서 박자를 놓쳤지만 이내 총학생회장의 씩씩한 발성으로 랩을 하는 이선희, 자신들만의 풍부한 성량과 시원한 창법을 유지하며 노래하는 신효범, 인순이, 박미경, 20년이란 시간이 지나 이 영상을 통해서 새삼 가창력을 인정받은 설운도,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기싸움이 제일 중요한 태진아와 송대관, 들으면 귀가 든든한 유열의 목소리, 이제는 한없이 그리워질 박정운의 얼굴, 잔뜩 긴장한 신인 가수 성진우, 나란히 서서 가사지를 나눠 보는 현철과 박진영,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주현미와 김수희의 디너쇼 모먼트까지. 나는 그 모든 순간을 가능한 한 오래 느끼고 싶어 몇번이고 재생을 반복한다. 아이돌 그룹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직전 솔로 가수 전성시대, 그 아름다운 최후를.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왜 나는 선글라스를 낀 채 양손으로 총을 쏘는 미남 가수 심신의 젊은 시절을 함께할 수 없었는가! 이 글에 유튜브 영상을 첨부할 수 없는 것이 한없이 슬프다! 젊은 심신이 선글라스 뒤의 우수에 찬 눈을 드러내며 ‘어디서 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랑은 이렇게 달콤한 것’이라 할 때, 세상의 모든 근심이 설탕처럼 녹는데, 그 경험을 지금 바로 나눌 수 없다니! 세상에서 가장 하얀 원피스를 입은 강수지가 목을 45도로 기울인 채 ‘다시는 또 다른 슬픔이란 없는 것’이라 할 때, 내 안의 잠재된 모든 슬픔이 아름답게 부서지는데 그 환상적인 기분을 공유할 수 없다니! 하늘은 왜 이은하, 민해경, 김완선, 전영록, 양수경, 이상은, 강수지 등등을 낳고, 한참 뒤에 나를 낳았는가! 주변인들의 인식 속에 나는 늘 검은 옷을 입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나를 ‘프란체스카’라고 불렀고, 어떤 사람은 나를 ‘모나리자’라고 불렀으며, 어떤 사람은 나를 ‘검은 사제들’ (나는 한명인데 대체 왜 검은 사제‘들’인지…)이라고 불렀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입은 검은 옷 때문에 나는 오히려 솔로 가수 같은 존재감을 갖게 된 것이다. 오늘도 나는 지나간 솔로 가수들의 무대를 본다. 혜은이부터 시작한 영상은 보아를 거쳐 아이유까지 내려오고 감격 뒤에 어렴풋한 깨달음도 밀려온다. 내가 솔로 가수에 열광한 이유는 모두가 반할 만한 화려한 겉모습 때문이 아니라, 커다란 무대에 홀로 서서 관객에게 호소하듯 보내는 그 외롭고 쓸쓸한 눈빛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획] ‘미래소년 코난’에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걸어온 궤적

워커홀릭의 애니메이터, 올 라운더 감독이 되다 <미래소년 코난>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예술가에게는 인생을 바꾼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봤던 도에이동화의 <백사전>(1958)이었다(특히 파이냥이라는 여자주인공에게 반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된 그는 1963년 도에이동화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터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A프로, 즈이요영상 등을 거치며 <태양의 왕자> 장면 설계 및 원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장면 및 화면 설정 등을 맡은 미야자키 하야오는 동료들의 5배에 다다르는 작업량을 자랑한 워커홀릭이었다. 그의 괴물 같은 에너지는 닛폰애니메이션으로 이적한 뒤 최초의 30분짜리 애니메이션 시리즈 <미래소년 코난>의 연출을 맡는 발판이 됐다. 여기에 더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작의 각색에 적극 개입해 대략적인 이야기 구성은 물론 세부 줄거리까지도 작가와 논의하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을 증명해냈다.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에 있을 당시 연출한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그의 첫 극장판 장편애니메이션으로, 이 역시 시나리오작가와 줄거리에 대해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며 완성한 결과물이다. 이같은 경험은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작과 각본, 연출, 작화를 모두 해내는 올 라운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인정받는 토대가 됐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메쥬>에 직접 만화로 연재한 이후 영화화 연출 및 각본까지 맡았던 작품이다(1982년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연재를 시작했고,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1984년 개봉했으며, 만화는 1994년 완결됐다). 나우시카는 호메로스의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난파한 오디세우스를 사랑하고 구했던 왕녀의 이름이다. 여기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의 ‘쓰쓰미추나곤’ 이야기에 등장하는 ‘벌레를 사랑하는 공주’의 이미지를 결합했다. “사회의 속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감성대로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풀과 나무, 흘러가는 구름에 마음이 움직이던” 공주는 어느덧 나우시카와 겹쳐지며 미야자키 하야오만의 새로운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소녀 나우시카는 인간과 곤충을 똑같이 여긴다. 또한 곰팡이의 숲인 부해(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만에서 확산됐던 수은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편집자)가 영화 초반에는 인간에게 위협적이었지만 엔딩 부분에서는 충분히 공존 가능한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이후 미야자키의 영화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이어진다. 한편 미야자키가 가정하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경제 성장이나 인간 수명의 정체까지도 내포한다. 장수하는 것에 별 욕심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연에 사이클이 있듯이 인간도 일정한 수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굳이 저염식이나 조깅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어린이에서 여성 그리고 중년 남성까지, 지브리의 접점 확대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마녀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천공의 성 라퓨타>(1986)는 1985년 미야자키 하야오가 스즈키 도시오,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한 이후 공개된 첫 작품이다. 기술만능주의를 비판하며 인간과 자연의 평화로운 공존을 강조한 <천공의 성 라퓨타>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그리스 서사시를 기반으로 한 전작이 애니미즘의 영향을 짙게 깔고 있다면, 벨 에포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소년과 소녀의 모험 활극 <천공의 성 라퓨타>는 보다 장르적인 접근성이 높았다. 텔레비전이 없던 1950년대의 일본으로 돌아간 <이웃집 토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과거 그림책으로 구상했던 아이템 중 하나였다. 어릴 때 왠지 크게 느껴졌던 녹나무, 실제 어린이들이 달리는 모습, 처음 이사 와서 가구 없는 텅 빈 집을 뛰어다니는 자매의 풍경 등 “토토로와 고양이버스, 검댕 외에는 전부 본 적이 있는 것들”(<이웃집 토토로> 로망앨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인터뷰)로 그림을 채워넣어 허구의 리얼리즘을 살렸다. 사실 이따금 작품이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어린이를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해온 창작자다. “지금 일본에 있는 아이들의 소망을 포함해 아이들의 현실을 그리며 아이들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필름을 만들고 싶다.”(<아니메쥬> 도쿠마쇼텐 1991년 5월호) <이웃집 토토로>는 그의 의도와 관객의 실제 반응이 오랫동안 일치한 클래식이다. 제작 전만 해도 독립된 영화로서 흥행성을 인정받지 못해 다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이의 묘>와 동시 상영했지만 특히 TV 방영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미야자키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됐다. 가도노 에이코의 원작을 각색한 <마녀배달부 키키>는 원래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닌 젊은 신인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지만 배급사가 좀더 이름값 있는 감독을 요구하면서 연출이 바뀐 경우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원안을 쓰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마녀배달부 키키>를 기점으로 그의 영화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이 훨씬 현실적이고 주체적인 양상을 띠게 됐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지방에서 상경해서 생활하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 겪을 만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동시에 ‘당신이 그리는 여자아이는 모두 공주다’라는 것에 반하고 싶은 일종의 의지도 있었다.” (<마녀배달부 키키> 로망앨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인터뷰)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온, 완벽한 해피 엔딩보다는 삶에서 필연적으로 주어진 재난 앞에 어떻게든 ‘살아가는’ 덤덤한 자세는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 소년 만화보다는 씩씩한 소녀들의 용기와 더 어울린다. 돼지로 변한 파일럿이 주인공인 <붉은 돼지>는 비행 장면을 사랑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마음껏 자신의 취향을 발산한 영화였다. 직접 작성한 연출 각서에서는 “소년소녀들이나 아줌마들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하지만, 우선 이 작품이 ‘피곤해서 뇌세포가 두부가 된 중년 남자들을 위한 만화영화’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일러뒀다. 군용기나 군함, 전차를 좋아하는 ‘밀리터리 덕후’로 유명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탈것의 발전은 의미 면에서 “새로운 전망, 미지의 세계를 가져오는 과정”이며 영화적으로는 ‘이동하는 시점’을 보여줄 수 있다. 다만 활공의 이미지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본질에 충실해야 하며 단순한 스펙터클로 소비돼서는 안된다는 것은 그의 오래된 지론이다. “만화영화 속에서 탈것이 땅을 달리고 물을 가르며 넓은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은 사람을 속박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이다.” (<월간 애니메이션> 1980년 7월호) 역대 최고 흥행과 영화제 수상, 스튜디오 지브리의 전성기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이웃집 토토로>를 만든 후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자연은 지키지 않으면 망가진다는 위기의식에서 자신들 주위에 있는 식물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식이 됐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좀더 숙업이라고 해야 할 만한 인간 존재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를 갖고 있다.”(<시네프런트> 1997년 7월호, 미야자키 하야오 인터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동화적으로 보여준 전작들은 자칫 자연을 보기 좋은 풍광으로만 소비하거나 인간 불신을 조장하는 한계에 빠질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간에게 해로운 생물까지 포함한 자연관으로 인간 중심적 사고를 극복하려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묘사가 많은<모노노케 히메>는 선악 구도를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공존 가능성을 냉철하게 바라보며 현실적으로 인류에 가능한 미래를 묻는다.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비행기나 곤충 등 동물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계를 스크린에 재현함으로써 새로운 자연관을 체험하도록 한 오랜 생태주의자다. “인간이 돋보기로 본 세계가 아니라, 풀이 엄청난 거목이 되고 땅이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며 비나 물방울 등 물의 성질도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월간 에혼 별책 애니메이션> 스바루쇼보 1979년 3월호) 애니메이션은 시점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매체이며, <모노노케 히메>는 신과 동물, 정령의 캐릭터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숙제를 해낸다. 한편 대량생산, 대량판매가 불가능한 2D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면서 TV시리즈가 아닌 극장용 장편으로 살아남는 것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절실한 과제였다.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천착해온 주제의식을 확장하면서 회사의 생존을 위해 마지막 사활을 건 액션 대작이기도 했다. 개봉 초반에는 전작에 비해 어둡고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당시 일본에서 역대 최다 관객(1450만명) 기록을 세우는 데 성공한 <모노노케 히메>는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을 시작으로 서구권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모노노케 히메>를 은퇴작으로 여겼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후 감독보다는 제작자로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검토했다. 하지만 작품의 방향에 대한 입장 차이로 원래 연출을 맡기려던 젊은 신인감독이 하차하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복귀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악을 처단하고 위기에서 빠져나온 소녀의 성장담이 아니다. “현실이 뚜렷하고 옴짝달싹 못하는 관계 속에서 위기에 직면했을 때 본인도 알지 못했던 적응력과 인내력이 솟아나와 과감한 판단력과 행동력을 발휘하는 생명을 스스로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기획서 중) <모노노케 히메>의 흥행 성적을 뛰어넘고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애니메이션상,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영국 소설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판타지 소설을 기반으로 한 스팀펑크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노노케 히메> 다음을 잇는 지브리의 흥행작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담아온 반전이나 자연주의와 같은 메시지가 알기 쉽게 녹아든 가운데 하울과 소피의 캐릭터 작화와 러브 스토리가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삼은 <벼랑 위의 포뇨>는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과 달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제작 단계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히사이시 조 음악감독에게 보낸 메모에 따르면, “바다는 여성원리, 육지는 남성원리, 포뇨는 여성원리의 틀을 나타내는 존재”에 해당한다. 정석적인 플롯을 따르지 않고 생명과 아이, 인류의 미래와 새 시대의 희망을 관념적으로 논한 이 작품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는 ‘넥스트 하야오’를 찾아야 할 기로에 선다. 제작자 미야자키 하야오와 두번의 은퇴 번복 <마루 밑 아리에티> <코쿠리코 언덕에서><바람이 분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쩌면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며 <벼랑 위의 포뇨>를 만들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나이는 67살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가 절실했던 스튜디오 지브리는 <벼랑 위의 포뇨>의 원화를 담당했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잠재성을 주목했고, 그는 <마루 밑 아리에티>로 감독 데뷔를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는 애니메이션 전공도 관련 경력도 없었지만 지브리 미술관을 성공적으로 론칭하면서 스즈키 도시오의 신임을 얻어 <게드 전기>를 연출한다. 어슐러 K. 르 귄의 어스시 연대기 중 <머나먼 바닷가>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지브리 역사상 최악의 작품이라는 혹평도 받았지만, 차기작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전작보다 연출이 개선됐다는 평을 받았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마루 밑 아리에티>와 <코쿠라코 언덕에서>의 제작 및 각본에 참여했다. 특히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1990년대부터 미야자키 하야오가 마음속에 원작을 품었을 만큼 애정을 갖고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로알드 달의 <비행사들의 이야기> <단독비행> 등 비행기물을 사랑하고 해외의 전쟁기록물까지 탐독하는 마니아다. 생태주의자이자 반전주의자이며 정치적으로는 유엔평화유지활동을 반대했던 그가 평생에 걸쳐 밀리터리에 심취했다는 점은 지독한 위선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연출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으로 공식화됐던 <바람이 분다>는 그의 평생에 걸친 자기모순을 아예 전면에 드러낸 영화다. 죽음과 쾌감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는 비행에 매혹된 소년에게서 거의 모든 필모그래피에 활공의 순간을 그려넣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아가 읽힌다. “지금 내가 일본인이 몰락하려 하는 한심한 시대를 보고 있다.” 1996년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일본의 미래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이 쇼와 시대 전쟁을 일으키며 저지른 죄악을 지우기 위해 양적인 성장을 위해 쉴 새 없이 내달렸다고, 버블 붕괴 역시 무리하게 전쟁을 감행한 일본이 무너진 것과 맥락을 함께한다고 주장한다. 초등학생 때 요시노 겐자부로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처음 읽었다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책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동안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다고 정의해볼 법한 예술가다. 은퇴 번복 후 무려 7년의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소년과 소녀, 모험과 활극, 반전, 무정부주의, 생태주의 등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를 구성했던 테마들이 집대성된 작품이다. 태생적인 죄의식을 품은 전쟁 세대의 업보를 긍정하고 혐오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용기’를 후대에게 북돋는 거장의 필치는 직설적이지만 아름답다.

[인터뷰] ‘길 위의 연인들’ 론 니스워너 작가, 못다 한 이야기

“30년 전, 동성애자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할리우드영화는 없었다. 그러나 조너선 드미(감독)와 나는 눈먼 파리처럼 용감하게 달려들었다.” 에이즈를 이유로 자신을 해고한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선 게이 변호사의 투쟁기인 <필라델피아>(1994)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는 에이즈의 시대였던 1980년대이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성소수자의 삶”이라고 말하는 작가 론 니스워너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30년 후, 작가는 파라마운트+의 8부작 시리즈 <길 위의 연인들>(10월28일 티빙 공개)에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를 가로지르며 <필라델피아>의 시대보다 더욱 엄혹했던 미국 역사의 환란기로 사랑하는 두 남자를 데려간다. 영화 <더 노멀 하트>로 2015년 제72회 골든글로브 TV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맷 보머가 야망 강한 워싱턴의 정치 공작원 호킨스를, <브리저튼>의 조너선 베일리가 종교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이상주의자 팀을 연기한다. 협상이 극적 타결되어 미국작가조합(WGA) 파업이 끝난 직후, <길 위의 연인들>의 작가이자 쇼 러너인 론 니스워너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 2007년에 토머스 맬런이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토대로 시리즈를 기획한 지 10년 이상 된 것으로 안다. 어떤 점에서 영상화를 결심했고, 이토록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 무려 11년이었으니 참 긴 여정이었다. 두 남자 호킨스와 팀이 각자의 정치적 야망이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서로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점에 주목했다. 반대 방향으로 서로 튕겨져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사랑은 매혹적이다. 곧바로 기획에 착수했지만 얼마 뒤 <홈랜드>(2010~20)와 <레 이 도 노 반>(2013~20)- 긴 시간 함께한 훌륭한 두개의 미국 TV시리즈!- 에서 일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일에만 매진해야 했다. 하지만 바쁜 동안에도 언젠가 내가 <길 위의 연인들>로 돌아가야한다는 생각은 변함없었다. 마침내 3~4년 전쯤 부터 그것이 가능해졌고 지금에 이르렀다. - 매카시즘 광풍이 불었던 1950년대 적색 공포의 시대(Red Scare Era)와 에이즈의 위기가 찾아온 1980년대까지 미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통과 한다. = 나는 에이즈의 위기와 차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이야기하는 영화 <필라델피아>를 제작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바꿔 말하자면 이제는 <길 위의 연인들> 덕분에 더 과거로 돌아가 1950년대 라벤더 공포(정부 차원에서 성소수자를 탄압·색출했고 특히 공직에 있는 성소수자의 대규모 해고로 이어졌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 같다. 그 두개의 시간대를 엮으며 60년대와 70년대가 퀴어의 사랑에 반영된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공들인 점은 이러한 긴 시간의 흐름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마치 뒤섞인 기억처럼 제시한 것이다. - <길 위의 연인들>에 담긴 역사적 과오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작가로서 시대극의 현재성을 고려할 때 어떤 것을 중시하나. = <길 위의 연인들>이 여전히 현대적인 이야기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길 위의 연인들>이 자칫 수정주의 역사극이 되어선 안된다는 점에 더 신경 썼다. 작가실의 모든 공동 작업자들과 함께 엄격히 선언했다. 2021~23년(집필 시기)의 마음을 가지고 1950~1980년대 등장인물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 규정하지 말자고. 동시대 관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시대극 속 등장인물의 윤리를 보수하는 것은 자칫 나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950년대 분량을 쓸 때 자주 논의했던 것 중 하나가 여러 캐릭터들이 각자 얼마나 어떻게 게이다운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느냐는 점이었다. 그리고 나는 애초에 ‘그런 건 없다’고 말하고 싶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나 센터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재현조차 제대로 되지 않던 시절이었으므로, 우선 비밀스럽게나마 자신의 사랑과 생존을 지키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시대적 비극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사랑과 기쁨, 성적 쾌락을 찾는 생존자들의 움직임은 끊이질 않았다. - <길 위의 연인들>엔 로맨틱하고 격정적인 섹스 장면이 많다. 성적 묘사, 섹슈얼리티에 접근하는 방식이 어땠는지 듣고 싶다. = 첫 번째 규칙, 같은 성적 묘사를 절대 반복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끝까지 지켰다. 8화를 집필할 즈음 나와 동료 작가들 모두 ‘도대체 그동안 시도하지 않은 게 뭘까’ 하며 머리를 긁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웃음) 두 번째 규칙, 모든 성적인 장면은 스토리를 진전시켜야 한다. 두명이든 세명이든 베드신이 시작될 때와 끝날 때 그들의 관계는 달라져 있다. 세 번째 규칙, 이 쇼의 모든 장면은 사실 권력에 관한 것이다. 위대한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세상의 모든 것은 섹스에 관한 것이고 섹스는 권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 배우들이 신체적으로 긴밀히 접촉하는 동안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 니와 감독, 그리고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함께 모여 협의하면서 장면의 세부 사항들을 설정해 나갔고, 확신이 들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배우들과 대화하러 갔다. 그건 지시나 감독의 과정이라기보다 배우들에게도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다시 찾아나가는 일에 가까웠다. 촬영은 비공개 세트에서 했지만 배우들을 살피는 의상, 분장 등 최소한의 인력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세트 내에 머물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데, 그들조차도 배우들이 한번 자세를 잡고 나면 귀신같이 자리를 비웠다. 한번은 맷 보머의 발이 활용되는 장면에서 조너선 베일리를 위해 테이크가 바뀔 때마다 맷의 발을 깨끗이 씻겨준 뒤 다시 찍기도 했다. 카메라 속의 친밀함을 위해선 온갖 종류의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집] 불순한 영화를 향하여, 콘텐츠의 길이가 전부가 아니다… 영상과 수용자는 무엇을 상실하는가

1. <아네트>(2021)에서 레오스 카락스는 흥미롭게도 영화와 영화 바깥의 인접 매체를 불순하게 뒤섞는다. 뮤지컬과 스탠드업 코미디, 연극과 무성영화를 기반에 두고 시작한 영화는 텔레비전 뉴스와 소셜미디어, 스마트폰에서 재생되는 유튜브 영상과 스타디움 스크린에 떠오른 중계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무분별하게 개입하는 미디어의 풍경을 무람없이 받아들인다. 12년 만에 복귀한 전작 <홀리 모터스>에서 이미 거대한 필름카메라와 배우가 머무는 영화의 장소를 끊임없이 이동하는 리무진에 빗댄 바 있는 카락스는 영화를 영사기, 스크린, 극장과 불특정 다수의 관객이라는 전통적 결합으로 상상하는 대신 불규칙하게 모습을 변형하는 동사의 형태로 간주한다. 쇠락해가는 ‘시네마’의 전통을 지키려는 이들이 영화를 둘러싼 보편적 조건을 옹호하곤 하지만, 영화는 원칙적으로 그것들이 없더라도 성립할 수 있는 임의적 사건이다. 21세기에 내놓은 두편의 연출작에서 레오스 카락스는 순혈주의적 영화사의 계보 아래 단일한 영화의 본질을 수호하는 영화작가가 아니라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끌어들여 영화의 개념을 다각도로 재규정하는 이미지의 탐색자로 거듭난다. 두발로 걷지 못해 무대 위를 비행하는 아네트 인형의 몸짓처럼 위태롭고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아네트>의 형식은 영화가 다양한 동시대 미디어와 충돌하고 상호작용하는 현황을 제시한다. 카락스가 연극, 뮤지컬, 텔레비전, 소셜미디어, 실황 중계를 혼란스럽게 가져오는 것처럼 영화는 주변에 있는 미디어의 외형을 탐욕스럽게 훔치고 그것들의 조각난 단면을 자기 신체 일부로 삼는 프랑켄슈타인의 발명품이다. 영화의 본질은 카메라와 마이크로 수집한 시청각적 표현에 있다고 말하기 쉽지만, 그것은 언제나 다른 매체의 흔적과 불순하게 뒤얽혀 있다. 앙드레 바쟁이 ‘비순수 영화’라는 개념을 제기한 것처럼 영화의 역사는 영화가 독립적 매체로 존립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부의 오염 요소와 결부된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랫동안 영화 역사상 최고 영화로 평가된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이 탐정소설과 연극, 라디오 드라마와 뉴스 보도의 관습을 뒤섞은 불순한 영화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2.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로 대표되는 숏폼 플랫폼과 콘텐츠(이 끔찍한 자본의 용어들…)는 오늘날 영화적 경험의 순수성을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대표적인 인접 매체다. 비좁은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이 끝없는 스크롤에 나열되며 즉각적 자극을 발사하는 숏폼은 말할 것도 없이 산만하고 분산적이고 무의미한 결과물의 연속이다. 이러한 콘텐츠 수용의 경험은 일정한 시간 동안 거대한 스크린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영화 감상의 경험과 대립적이며 후자의 고유한 가치를 훼손하는 타락한 양식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앞서 <아네트>의 형식을 가리키며 말한 것처럼 영화는 그 산만하고 분산적이고 무의미한 영상과 불가피하게 결탁하고 있다. 영화는 그것이 우아하든 천박하든 근처에 존재하는 대상을 일단 집어삼킨다. 숏폼도 다르지 않다. 틱톡 단편영화 부문을 창설한 칸영화제를 비롯해 적지 않은 영화제와 영화 제작사는 숏폼 플랫폼의 자본과 공식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이같은 맥락으로 세로 비율의 짧은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아바타>(2009)를 둘러싼 헛된 열광으로 한동안 영화의 미래로 주목받기도 했던 3D 효과는 사실 영사 시스템이 구현되기 이전인 19세기 중반부터 상용화된 기술이다. 이처럼 1분 내외 짧은 영상의 연쇄 역시 새로운 문화양식이 아니라 영화사의 오래된 기억 가운데 하나다. 서사에 단단히 묶여 있지 않고 특정한 음악과 몸짓을 결합해 제시하는 짧은 길이의 영상을 한명의 수용자가 감상하는 형식은 토머스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에서부터 구현된 영화 경험의 모델이다. 무작위의 짧은 영상과 관람자가 일대일로 만나는 형식은 한 세기가 넘도록 영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어두운 극장에 앉아 2시간 안팎의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 행위가 영화의 본질에 속한다는 믿음에 필연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프랜차이즈 시리즈물, OTT 관람에 대항해 극장의 가치를 고집하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순진한 믿음은 ‘시네마틱한 것’과 거리가 멀다(러닝타임이 3시간 넘는 장편영화를 연출하면서 틱톡과 레터박스 유저로 활동하는 스코세이지의 혼잡한 활동이야말로 시네마틱한 것의 본질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영화가 숏폼과 스트리밍, 미디어아트와 OTT 시리즈와는 다르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제외하고 남겨진 영화가 다른 영상적 실천과 어떻게 다른지 확신할 수 없다. 영상의 고정점도, 감상의 최종 목적지도 마련하지 않는 무한한 장소로서의 숏 플랫폼은 영화적 경험의 범주를 흩트리도록 부추기는 비천한 자극이다. 영화의 관습을 지키려는 이들이라면 틱톡, 릴스, 쇼츠 같은 숏폼 영상이 현대 관객의 집중력을 앗아가고 주의 산만과 충동성을 불러온다고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관람자의 집중력을 앗아가고 주의 산만과 충동성을 자아내는 것은 영화가 발명되면서 이뤄낸 경험의 충격이기도 했다. 3. 물론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숏 플랫폼에는 영화가 발산한 충격이 소실되어 있다. 이것이 숏폼 컨텐츠의 중핵을 이루는 밈과 챌린지의 속성이다. 2016년에 출시된 틱톡은 이듬해 리믹스 음악과 립싱크 비디오를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 뮤지컬리(Musical.ly)를 인수하면서 세계적 현상으로 확장됐다. 무한히 루프되는 음악을 기반으로 누구나 흉내내기 쉬운 노래와 춤과 놀이는 전세계 이용자들에게 영상에 참여하고 제작할 수 있는 서식을 제공했다. 숏폼은 사용자들에게 경험을 안기기보다 경험의 불확정성이 지워진 경험의 모방을 제공한다. 이는 언젠가 영화를 만드는 권리를 점유하던 이들이 낭만적으로 상상한 영상 제작의 민주주의와 무관하다. 숏폼의 무대에서 세계는 공식과 절차에 따라 배열된다. 숏폼 콘텐츠를 장악한 밈과 챌린지는 개개인의 표현과 자율성을 드러내는 매개라기보다는 알고리즘의 명령어처럼 아카이브 영상과 수용자의 반응을 예측 가능한 함숫값으로 접합하는 장치다. 무엇을 봐야 할지 헷갈리고, 무엇을 경험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밈과 챌린지는 속삭인다. 이것만 보면 된다, 이것만 경험하면 충분하다. 스쳐 지나가듯 웃은 뒤 스크롤을 넘기면 문제될 것이 없다. 이 절차를 통과하며 세계는 행동과 반응이 정해진 템플릿이 되었다. 영상이 아카이브로 축적되고, 경험은 레디메이드로 정립되는 플랫폼에서 영상과 수용자는 감정을 나누는 방식을 잃어버린다. 스탠리 카벨이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의 기능으로 관객의 감정을 교육하는 역할을 강조하고, <미치광이 삐에로>에 출연한 새뮤얼 풀러가 “영화는 감정의 전장”이라 말했던 것과 반대로 숏폼 영상은 관람자와 감정을 나누지 않는다. 거기 담긴 것은 밈의 몸짓이고, 챌린지의 제스처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연쇄적 유희는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웃음거리로 소화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끔찍한 (비)웃음으로 돌아온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 틱톡엔 물과 전기 공급이 끊긴 가자지구의 현황을 조롱하는 이스라엘 크리에이터들의 챌린지 영상들이 업로드되고 적극적으로 퍼져나갔다. 이스라엘 정부는 수많은 팔로워를 확보한 인플루언서들에게 선전용 영상과 포스팅 제작을 요청했으며 가자지구 내부의 참상과 구조 요청 영상을 삭제하는 데 비해 해당 플랫폼은 이를 제재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픽션 소재가 됐고, 팔레스타인은 다큐멘터리의 피사체가 되었다는 고다르의 표현을 변형한다면 이스라엘은 밈과 챌린지의 참여자가 됐고, 팔레스타인은 해시태그의 대상이 되었다. 익숙한 웃음의 형식을 모방하는 숏폼 콘텐츠 전략이 물과 전기가 끊긴 팔레스타인 난민의 생활을 모방하는 이스라엘 틱토커들의 웃음으로 되돌아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의 ‘영향력’은 해맑고 명랑한 웃음의 유희적 프로세스를 타고 소리 없이 번져 학살 현장에 남겨진 생존자들의 비명을 지운다. 20세기의 영화가 수용소와 학살을 외면했다면, 21세기의 영상은 수용소와 학살마저도 비웃는다. 팔레스타인의 표상이 주어지지 않는 지형에서 이미지의 평등과 민주주의는 여전히 우리의 것이 아니다.

[인터뷰] 끊임없이 사유하라, 그리고 질문하라 ,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어맨다 킴 감독

TV 앞에 앉은 인자한 표정의 부처. 시종일관 형태를 알 수 없는 브라운관 송출 시그널. 차곡차곡 쌓인 텔레비전들. 백남준 작가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보편적 이미지들이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백남준의 대표 작품을 한 꺼풀 벗겨내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삶과 태도를 들여다본다. 평범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장난스러운 친구로서, 새로운 시도를 고민한 예술가로서 그가 무엇을 좇고 무엇과 싸워왔는지 다양한 시각 자료를 빌려 이야기한다. 안정과 생존이 전세계적 구호였던 60년대, 백남준은 자기 안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혼자만의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그 시간을 현대적인 관점으로 다시 기록한 이가 있다.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백남준의 불안과 기쁨, 고민과 행복을 넓은 시야와 구체적인 일화로 관객에게 고백한 어맨다 킴 감독이다. - 영화 소재로 백남준 작가를 선택한 이유는. = 그의 작품은 오늘날 젊은 작가들이 작업한 것처럼 무척 현대적이다. 심지어 그는 기술 발전에 따라 우리 삶에 미디어가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칠지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백남준 작가가 궁금했다. 새 세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탐색해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몇몇 영상 속의 카메라 앞에 선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집착하듯 관련 영상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 인터뷰, TV프로그램, 뉴스 등 영화 속엔 그와 관련한 다양한 자료가 등장한다. 이 자료를 통해 관객은 작가로서 백남준의 지향점과 삶의 태도를 알 수 있다. 자료 수집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 아카이빙 자료 하나하나가 찾아내기 정말 어려웠던 것들이다. 몇년 동안 리서치에만 매달렸다. 다행히 훌륭한 아카이빙 PD와 조사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백남준은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라 자료가 각기 다른 언어로 기록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백남준 작가의 친구를 알게 되었고 그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얻었다. 그분이 다른 친구를 소개해주면 그분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거나 자료를 얻었고, 또 다른 분을 소개받는 식으로 연결됐다. 마치 탐정이 된 것 같았다. (웃음) 조각난 정보를 수집해 하나의 큰 진실에 다가서는 느낌이었다. 70년대 이전의 자료는 그 이후의 것보다 훨씬 찾기가 어려웠다. 워낙 문서나 사진, 영상 등으로 기록된 수량이 많지 않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비싸거나 접근이 불가능했다. -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박서보 화백, 샌프란시스코 MOMA 전 관장 데이비드 로스, 미술사가 에디트 데커 등 많은 이들이 백남준의 친구이자 동료로 등장한다. 이들은 작가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직접 들려주며 관객의 호기심을 높인다. 섭외 제안에 그들의 반응은 어땠나. = 크게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물어봤을 때 굉장히 열린 자세로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백남준 작가와의 깊고 오래된 우정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친구이자 동료로서 모두가 백남준을 존경하고 있었다. - 영화는 백남준을 다양한 키워드로 나누어 보여준다.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은 평범한 아들, 가난하지만 명랑한 예술가, 장난꾸러기 친구, 자기만의 신념을 가진 용감한 예술가 등. 이중 가장 조명하고 싶었던 키워드는 무엇인가. =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의 기본적인 목표는 백남준을 다양한 층위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다시금 이해할 수 있길 바랐다. 그리고 방금 짚어준 키워드들이 백남준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다. 그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술가로서 백남준이 존재할 수 있고, 그 요소들은 그의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그중에서 나는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집중 조명하고 싶었다. 백남준은 항상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거슬러 모험했다. 삶을 지속시키는 건 오직 변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만 고집하지 않고 자기가 내린 결정에 계속해 질문을 던졌다. 무언가에 매몰되거나 고착되는 것을 무척 경계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범주를 확장시키던 모습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 - 배우 스티븐 연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스티븐 연과 함께한 작업 과정은 어떠했나. = 스티븐 연은 백남준 작가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났다. 백남준이 특정 문화권에 정착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본 모든 곳의 문화를 파고들며 자기 자리를 만들어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스티븐 연이 내레이션을 맡아줄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무엇보다 스티븐 연은 백남준을 어설프게 흉내내지 않았다. 그보다 작가의 본질과 감정을 포착하려 했다. - 영화는 매스미디어에 미친 백남준의 영향력을 설명한다. 어맨다 킴 감독은 어떠한가. 이번 작품을 연출하면서, 백남준의 영향력이 어떻게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나. = 백남준의 정신이 내게 큰 힘을 주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 같은 것. 그는 자신의 신념과 목표에 지치지 않았다. 그가 모험한 다양한 시도와 변화들이 그 정신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꼭 영화 작업을 완주하고 싶었다.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예술가로서 백남준이 내게 남긴 유산 같은 것이다. 고난이 생겨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힘을 키울 수 있었다. - 마지막으로 제목에 관해 묻고 싶다. 백남준의 작품명 <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영화 제목으로 차용한 이유는. =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그게 바로 백남준의 정신이다. 계속해서 사유하게 하는 것, 질문하게 하는 것. 영화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 제목이다.

[리뷰]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시대를 앞선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에 대한 오마주

일제강점기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백남준은 학창 시절 12음 기법을 처음 만든 아방가르드 작곡가 아널드 쇤베르크에게 매료돼 작곡가가 되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백남준은 미지의 나라에서 온 낯선 이방인이었다. 고독과 외로움에 고통받던 어느 날, 그는 아방가르드 작곡가 존 케이지의 공연을 보고 예술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이후 당대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함께 플럭서스 그룹에서 활동한다. 야심차게 준비한 파르나스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의 실패 후 그는 TV 방송의 본고장 뉴욕으로 이주하고 새로운 기술을 예술에 접목하는 다양한 실험에 도전한다.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한국계 감독 어맨다 킴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예술의 혁명가로서 미디어아트라는 예술 분야를 개척하고 예술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간 백남준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다큐멘터리다. 영화에서 백남준의 글을 낭독하는 내레이션은 <미나리>에 출연한 배우 스티븐 연이 맡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5분의 시간을 할애한 오프닝 시퀀스다. 영화는 애피타이저처럼 백남준이란 예술가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면서 관객의 흥미를 유발한다. 감독은 백남준의 작품 활동에서 창작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 연대기를 중심으로 생전의 인터뷰와 그의 글을 비롯해 동료 예술가, 큐레이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배치한다. 여기에 공연 영상, 방송 화면, 신문 기사, 스틸 사진 등 방대한 자료 화면을 삽입해 빠른 리듬으로 보여준다. 다만, 지나친 정보 과잉으로 인해 혼란스럽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천천히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면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시 <사과 씨앗 같은 것>을 관람한다면 백남준의 무한한 상상력, 기술과 인간의 소통에 대한 탐구 정신을 직접 체험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23년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과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베리테 부문에서 상영됐다.

[특집] 책으로 영화를 헤아리는 계절, 2023년 하반기에 쏟아진 주목할 만한 영화 관련 도서들, 그리고 사람들

영화를 잘 만드는 것과 강연을 잘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지만 구로사와 기요시에겐 비슷하게 능숙해 보인다. 도쿄 릿쿄대학에서 하스미 시게이코를 스승으로 만난 그는 감독이자 현장 비평가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구로사와 기요시, 21세기의 영화를 말한다>에서 숨김없이 펼쳐 보이고, 독자는 말에서 글로 옮겨간 거장의 사유를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겨울 초입에 출간된 이 흥미진진한 책을 필두로 올 하반기를 풍성하게 채운 주목할 만한 영화 서적 10편을 모아 소개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에 이어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태양과의 대화>는 작가가 찍은 이미지와 영상을 기반으로 오픈AI의 GPT-3와 대화한 결과물들이다. 개성 강한 목소리와 실험정신이 녹아든 감독들의 책과 함께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마크 피셔 그리고 유운성 평론가가 쓴 번뜩이는 비평의 시선도 더했다. <민중들의 이미지: 노출된 민중들, 형상화하는 민중들>은 뤼미에르, 파솔리니, 왕빙의 영화 등을 거쳐 ‘민중의 이미지’의 역사는 물론 새로운 가능성을 사유하고, 은 데이비드 크로넌버그의 영화, 리얼리티 TV프로그램을 넘나들며 저항적으로 쓴 블로그 글의 정수를 보여준다. <식물성의 유혹: 사진 들린 영화>는 사진적 경험을 영화가 수용한 사례들에 관해 독창적 시각으로 탐구하는 책이다. 국내 1세대 영화평론가인 김종원 평론가가 60년의 직업적 기록을 담은 <시정신과 영화의 길> <시네마 천국>의 북토크 현장도 담았다. 영화를 매개로 우정을 쌓은 네명의 작가가 <씨네21>을 위해 다시 모인 단란한 풍경도 소개한다. 눈 내리는 겨울 오후, <사랑하는 장면이 내게로 왔다>의 서이제 소설가와 이지수 번역가는 책에서 못다 한 고백을 나눈 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을 보러 떠났고,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로 뭉친 금정연, 정지돈 작가는 한국영화와 영화문화 이야기에서 요나스 메카스의 새 책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까지 너르고 열띤 수다를 나눴다. 긴 겨울밤, 책으로 영화를 헤아리는 희열을 만끽하길 바란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영화, 책 특집이 계속됩니다.

[특집] 이름 없는 존재들, <민중들의 이미지: 노출된 민중들, 형상화하는 민중들>

민중들의 이미지: 노출된 민중들, 형상화하는 민중들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지음 | 여문주 옮김 | 현실문화A 펴냄 수많은 영화에서 단역, 엑스트라는 이름이 없다. 그들은 거리를 지나가는 익명의 시민이거나 사건 뒤편에서 주인공을 지켜보는 행인들이다. 그들은 배경에 머물러 있으며 집단으로 화면에 포착된다. 그러나 영화가 탄생하던 즈음에 연극무대와 구분되는 영화의 특별함은 배경을 포착하는 힘에 있었다. D. W. 그리피스가 영화의 아름다움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에 있다고 말한 것처럼(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능으로부터 멀어졌다고 안타까워하지만) 영화는 사건 뒤편에 있는 것들, 중심에서 이탈한 자들, 너무 하찮고 범상하기에 눈에 드러나지 않던 것들을 형상화하는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민중들이 노출된다”라는 강렬하고 아름다운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민중들의 이미지: 노출된 민중들, 형상화하는 민중들>에서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은 민중의 형상이 결핍/과잉 노출이라는 이중적 사태에 직면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사진과 텔레비전 화면에 분명 노출되고 있지만, 이른바 ‘모자이크 처리’되어 노출된다. (…) 한편에선 가려진 얼굴이, 다른 한편에서는 흐릿해진 얼굴이 있다.”(19쪽) 오늘날의 민중은 너무 많이 드러나지만,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는 불투명한 얼굴을 갖는다. 민중의 이미지를 조직하는 것은 이 모순적인, 그러나 동시대의 이미지 지형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조건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필리프 바쟁의 사진과 고야와 렘브란트의 회화, 그리고 로셀리니와 파솔리니, 에이젠슈테인과 왕빙의 영화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간과 환경에서 나타난 시각적 도상을 시대적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결합하는 이 책은 민중의 표상을 둘러싼 이중구속을 타개하는 저항의 방법을 모색한다. 디디 위베르만은 민중의 형상을 조직하는 방법론의 한 가지 예시로 ‘단역’(figurants)에 주목한다. 단역은 예술적 위계에서 가장 하부에 존재한다. 아무것도 아닌 배우인 단역은 그러나 그 안에 모든 형상(figure)을 포함하고 있는 가능태의 단어이기도 하다. 그는 언제나 복수형으로 주어지는 단역의 형상에서 영화를 공동체의 장소로 수용하는 민중의 힘, 이미지를 두 사람 이상의 결합으로 제시하는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을 찾는다. 그의 문장 안에서 에이젠슈테인의 <파업>에 나오는 인민들의 시신은 동시대적 민중의 형상으로 ‘시대착오적’인 형상화를 이뤄낸다. “카메라는 피사체의 얼굴과 전면을 프레이밍할 수 있는 기회를 오랫동안 놓치게 될지라도 그 피사체를 뒤따라간다. 그것이 무엇이든 예견하거나 명령하길 거부한다. 카메라는 ‘선취하지도’ ‘포획하지도’ 않는다. 그저 ‘뒤따라갈’ 뿐이다.”_ 298쪽 하지만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저술이 민중의 얼굴과 목소리가 나타나는 것을 순진하게 긍정할 뿐인 것은 아니다. 영화의 카메라는 민중의 형상을 노출하고 형상화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의 카메라는 민중의 뒤에서 그를 뒤따라갈 수밖에 없다. 디디 위베르만은 왕빙의 <이름 없는 남자>를 서술하면서 역사와 대면하는 이미지의 힘을 ‘뒤따르는’(Suivre) 카메라에서 찾는다. 강제수용소에서 모든 것을 무릅쓰고 촬영된 사진이 그렇듯, 이미지는 현재를 일으키는 힘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또한 영화는 그 이미지를 선점하거나 포획할 순 없다. 영화는 조금씩 늦게 뒤따라갈 것이다. 그 미세한 격차가 디디 위베르만의 시선에 새겨져 있다.

[특집] 블로그 시대의 비평 기록, 'k-펑크: 마크 피셔 선집 2004~2016 1: 책 영화 텔레비전'

k-펑크: 마크 피셔 선집 2004~2016 1: 책 영화 텔레비전 마크 피셔 지음 | 대런 앰브로즈 엮음 | 박진철, 임경수 옮김 | 리시올 펴냄 k-펑크(punk)는 영국 비평가 마크 피셔가 2003년 개설한 블로그의 이름이다. 록 음악, 포스트펑크에 대한 열렬한 관심을 바탕에 둔 음악 저술가이자 2000년대 초 1인 미디어의 새 장을 연 문화 이론가인 마크 피셔는, 사이버의 그리스어 어근 ‘kyber’의 앞글자를 따 학계와 주류잡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로 강도 높게 토론을 지속할 장소로서 자신의 블로그를 ‘k-punk’라 명명했다. 2017년 그의 사후에 블로그 게시물을 중심으로 매체 기고글, 인터뷰, 미발표 원고를 방대하게 엮은 824쪽 분량의 가 나왔고 국내에서는 리시올 출판사가 이를 4권으로 나눠 출간할 예정이다. 올해 9월에 나온 (이하 )은 문학, 영화, 텔레비전에 관한 글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링크와 댓글을 타고 흩뿌려진 글들 사이로 즉각적인 이동이 가능한 블로그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 책을 반드시 순서대로 완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미권의 케이블 채널 분석, 텔레비전 예능 등 한국 독자들에겐 다소 낯선 레퍼런스들이 등장하거나, 마크 피셔의 언어유희가 번역으로는 생생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 방대한 인용이 종종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동시대의 곤경을 혁신적으로 사고하는 피셔의 논리는 대체로 주의력을 잡아끈다. 특히 윌리엄 S.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에서 데이비드 크로넌버그의 <네이키드 런치>로, <네이키드 런치>와 <스파이더>의 비교로, <폭력의 역사>와 히치콕의 영화의 대조로, <비디오드롬>과 <엑시스텐즈>에서 “디지털 시대의 진부함”으로 이어지는 글들의 전개는 마치 하나의 완성된 서사시를 방불케 한다. 앞선 피셔의 히트작 <자본주의 리얼리즘: 대안은 없는가>에서 그는 <칠드런 오브 맨> <월·Ⓔ>, 리얼리티쇼 <슈퍼 내니> 등을 아울러 동시대의 “지친 체념의 흔적”을 읽어낸다. 역시 밸러드를 필두로, 버로스, 크로넌버그를 통과하며 후기 자본주의가 반자본주의적 문제의식까지 포섭한 서사를 익숙하게 펼쳐 보이는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있다. 현대의 병리학이 반체제적 독기를 잃어가는 과정과 이것의 ‘대안 없음’까지 직시하는 은 그렇기에 (피셔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우울과 비극감을 독자 역시도 피할 수 없는 책이다. “<폭력의 역사>는 21세기 미국이 폭력이 억압된 이면으로 남아 있는 나라가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를 이루고 있는 나라임을 시사한다.”_ 227쪽 크로넌버그의 영화 <폭력의 역사>에서 주인공 톰 스톨에겐 또 다른 자아 조이 쿠색이 있다. 피셔는 이를 두고 “쿠색의 환상으로서의 스톨이 스톨의 환상으로서의 쿠색보다 훨씬 흥미롭다”고 짚고 <폭력의 역사>를 스톨의 환상으로 읽는 비평에 일침을 가한다. “이 설명이 잘못된 까닭은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나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에 대한 이해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것과 같은 ‘몽상적인 현실 탈출’이라는 해석- 두 영화는 긴 꿈 시퀀스로 해석되어왔다- 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독해는 궁극적으로 영화의 존재론적 위협을 잠재우려는 시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영화의 모든 변칙적 특징을 내면의 섬망 탓으로 돌리면서 평면화한다.” 이어지는 <폭력의 역사>에 대한 재정의는 한층 더 날카롭다. 21세기 미국의 폭력은 이면에 억압된 것이 아니며, <폭력의 역사>는 비정하고 직설적으로 이를 노출함으로써 마지막 장면에서 톰 스톨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침내 가정의 모든 풍경이 언캐니하게 보인다는 것이 피셔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