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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그룹 ‘복숭아 프레젠트’의 강기영, 장영규, 방준석, 이병훈 [2]

성기완_지난 가을, 백현진과 함께 달파란을 뺀 나머지 복숭아 멤버들이 모두 어어부 프로젝트의 멤버로 독일에서 공연을 하고 왔다. 물론 영규씨는 피나 바우쉬의 음악감독을 하기 위해서 간 목적도 있지만. 독일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해달라. ▲ 장영규_ 어어부 공연 때, 우리는 독일에서 역시 각자 놀았다. 공연있는 시간에 맞춰 모이고, 나머지 시간은 개인적으로 돌아다니고 그랬다. 개인적으로 피나 바우쉬와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한국에서 작업하다보면, 제작자가 음악가가 가지고 있는 것을 무조건 ‘빼내려고만’ 한다. 그렇게 뽑아내서 제작자의 요구사항과 비슷하면 오케이를 하는 식인데, 그쪽은 좀 다른 것 같다. 무조건 빼내려고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진짜를 기다린다. ● 방준석_그게 한 단계 높은 방식인 것 같다. 오히려 그게 더 빼낼 수 있는 방법이다.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을 뽑아내려면 그 사람의 자유로운 마음속 깊은 것을 빼내야 하지 않나. ▲ 장영규_ 그래서 그동안 한국에서 작업할 때, 저쪽의 요구와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잘라 없애버렸는데, 뭐 하러 그랬나 싶다. 앞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최소한의 정보 속에서 서로 소통하며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의 것을 끄집어내는 작업 방식이 맘에 든다. 그동안 한국에서의 작업에서 한계를 느꼈던 것이, 바로 잘라 없애가며 하는 방식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랬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방준석_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웃음) 성기완_준석씨는 어떤가. 지금의 한국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나. ● 방준석_한국 음악이 내가 음악 하는 ‘터’라고 생각한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여기 돌아가는 방식에 맞춰줘야 하긴 하는데, 처음에는 여기의 방식에 눌려 제대로 일을 못한 면도 있다. 물론 한국에서 음악하며 물질적인 어려움도 없지는 않다. 또한 너무 획일적으로 음악가들을 규정짓는 풍토도 힘들다. 그러나 복숭아 같은 네트워크 속에서 활동하는 지금은 맞추면서도 자유롭게 내 식대로 풀어가는 방식이 점점 생기는 것 같다. ■ 달파란_우리나라의 음악에 대해서는 할말이 별로 없다. 그러나 ‘음악’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차원에서는 문제가 있는 듯하다. 음악적으로는 어느 정도 깊이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안 되는 음악은 밖에서도 안 되고, 여기서 되는 음악은 밖에서도 가능성이 있는 정도의 단계는 된 것 같다. 그러나 음악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과정,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의 태도나 취향, 이런 것들은 뒤죽박죽이고 혼란스럽다. 역시 구조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매체가 바뀌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인데, 그런 시기와 원래의 혼란스러운 구조가 겹쳐지니까 혼란이 가중된다. 이런 혼란이 정리되어야 할 것 같다. 뭔가 자연스러운 구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한국 영화음악계의 현실 성기완_‘모조소년’의 앨범을 ‘히어’(Here)라는 인디 레이블로 만들어 발매했는데…. ■ 달파란_이번에 어어부 프로젝트도 독일 가서 반응이 괜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땅에서 만들어지는 음악도 국제적인 감성에서도 소통 가능한 것으로 본다. 국제적인 교류의 시도가 필요한데 메이저 차원에서의 대규모 상업적인 교류 가지고는 안 된다. 그런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성기완_그렇다면 메이저 차원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나 개성을 지닌 소규모 인디적인 네트워크와 외국과 연결이 되어야 하지 않나. ■ 달파란_한국이 온라인은 잘되어 있는데, 실제적인 소규모 네트워크는 약하다. 밖에서 보면 아직 제3세계적이고 동떨어져 있는 듯이 보인다. 소규모의 연결을 개인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작은 인디 레이블끼리 서로 네트워킹을 하고 서로 유통시켜주고 하는 국제적인 연결관계 속에서 활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음악을 만들기가 예전보다 많이 쉬워졌다. 디지털 기기들과 컴퓨터의 발전 결과다. 뮤지션들도, 음악 만드는 노력을 예전보다 덜 해도 되니까 연결 관계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현실을 좀더 깊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아까 <씨네21> 광고를 보니까 ‘10년 안에 <매트릭스>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있었다. 이제는 그런 식이 아니라 ‘<매트릭스>와 다른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식으로 질문해야 한다. 이제는 따라가는 식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와는 다르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성기완_한국 영화음악계의 현실은 어떤가.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아쉬운 점도 있을 듯싶은데. ▲ 장영규_ 예를 들어 영화음악계에서 음악가에게 돈을 지불하는 방식도 비합리적이다. 음악감독의 작업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음악 관련 버젯 전체가 정해지고 그것을 알아서 음악하는 사람들이 나눠야 한다. 비체계적이다. 이런 불합리하고 비체계적인 방식이 영화음악계 전체의 현실을 규정하고 있다. 전체 예산 속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가 좀 가시화되었으면 좋겠다. ■ 달파란_100억원짜리 영화나 10억원짜리 영화나 음악 예산은 똑같다. 그러니 결국 음악에 관한 제작자들의 생각은 아직도 분화되어 있지 않다. ● 방준석_이제는 우리 영화음악 예산으로 나올 수 있는 음악이 거의 소진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이상의 어떤 분위기를 원한다면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기완_2004년에 할 영화들도 잡혀 있나. 앞으로의 계획은. ◆ 장민승_그동안 장·단편 합쳐 30편 가까운 영화음악을 해왔는데, 2004년에도 몇개의 영화를 하기로 벌써 이야기가 되고 있다. 바쁜 한해가 될 것 같다. ■ 달파란_개인적으로는 음반 활동을 한동안 쉬었는데, 음반 활동에 주력하며 해외의 소규모 레이블, 뮤지션, 인디적인 사람들과 네트워킹도 하고 페스티벌 참여하면서 조금 활발하게 움직여볼 생각이다. ▲ 장영규_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조금 있다. 우선은 그 음악들을 해나가면서 피나 바우쉬와의 프로젝트 등 개인적인 것들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한다. ● 방준석_공연을 더 많이 하고 싶다. 그 속에서 새로운 음악의 줄거리들을 끄집어낼 수도 있고. 성기완_다양성 속의 하나라고 할까, 다양한 하나라고 할까, 인간관계의 측면에서만 봐도 좀더 ‘쿨’한 관계를 추구하는 복숭아의 모습, 음악을 보고 듣는 일이 즐겁다. 내년에도 열심히 음악들 하시기 바란다.

<실미도>의 신파성과 상투성이 주는 감동과 설득력 분석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현상 중의 하나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과거의 재현’이다. 한국영화의 21세기는 그 반복 강박으로 시작되었다(<박하사탕>은 2000년 1월1일에 개봉되었다). 그리고 2003년, 한국영화는 <실미도>를 통해 또 한해를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박하사탕>에서부터 소환되는 과거는 줄기차게 80년대였다(아마도 <흑수선> 정도가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80년대는 장르와 세대를 가로지르며, 때로는 개인적인 추억/외상의 형식으로, 때로는 역사적이고 집단적인 외상의 형식으로 끊임없이 귀환했다. 2003년 한국영화에서 역사적이고 집단적인 과거(외상)를 재현(반복)하고 있는 작품으로는, <살인의 추억>과 <실미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살인의 추억>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고 하는 외상적 사건을 통해 우리의 80년대를 ‘총체적 무능력’의 시대로 바라보고 있다면, <실미도>는 ‘실미도난동사건’이라는 외상적 사건을 통해 우리의 70년대를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 ‘국가주의의 전횡’의 시대로 그려내고 있다. 전자가 젊은 세대다운 세련된 영화적 화법으로 ‘우울한 80년대’를 그려내고 있다면, 후자는 기성 세대다운 우직한 화법으로 ‘잔인한 70년대’를 그려내고 있다. 다소 미약하기는 하지만, <바람난 가족>의 모티브 중 하나는 역사적 외상의 흔적이었다. <실미도>의 촌스럽고 우직한 화법은, <바람난 가족>의 그 쿨한 화법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유운성은 <바람난 가족>에 대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진단을 내린 바 있다. <바람난 가족>이 동시대의 모럴리티와 가장 적확하게 맞닿는 부분은 바로 50년 만에 발굴된 양민들의 유골문제를 처리 중인 변호사가 젊은 여성과 멋지게 불륜을 만끽하는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그 과감한 발상일 것이다). 신파성, 거부할 수 없는 진정성 영화 <실미도>에 대한 찬반의 엇갈린 평가에는, 일정하게 세대적 감수성의 차이가 개입하고 있는 듯하다. 낡은 세대에 속하는 나로서는, <실미도>의 신파성이 거부할 수 없는 진정성으로 다가온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되살아오는 70년대의 ‘시대 정신’을 온몸으로 반복 체험할 수 있었다. 사건이 있었던 70년대 초, 나는 꿈속에서 만화영화 주인공 ‘빠삐’가 되어 ‘김일성 도당’과 맞서 싸우곤 하던 어린 소년이었다. 70년대 국가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토대는 ‘반공주의’이며, 그 시대의 ‘시대 정신’은 생리화, 체질화된 반공주의(이른바 레드-콤플렉스)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실미도>가 지니고 있는 영화적 힘은 그 ‘시대의 대기(분위기)’와 정확히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더욱이 단지 감상적인 재현에 머물지 않고, 그 시대에 대한 냉정하고 깊이있는 분석의 시각을 갖추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미도>는 단순한 재현드라마가 아니다. ‘처음과 끝’은 분명히 밝혀져 있지만, 그 전개 과정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사건. <실미도>는 그 사건의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개연성 있는 추리와 진심 어린 애정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내고 있다. ‘실미도난동사건’의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은, 왜 그들이 최후의 순간에 ‘자폭’을 선택했을까 하는 것이다. 영화 <실미도>의 ‘허구적 드라마’는 그러한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그 허구적 드라마는 바로 이 땅에서 ‘반공주의적 주체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그리고 ‘실미도’라는 고립된 지역에서 있었던 그 반공주의적 주체 형성의 드라마는, 그 당시 남한사회 전체의 정확한 축도이기도 하다. <실미도>는 무엇보다 이 땅의 반공주의(레드-콤플렉스) 형성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그려내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이 땅을 사로잡고 있던 레드-컴플렉스는 두 가지 대립되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빨갱이’들에게 피붙이가 희생됐다고 하는 원한과 증오의 감정을 기본축으로 하는 것이지만, ‘빨갱이’로 몰리면 자칫 죽을 수도 있다고 하는 공포와 방어 심리의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실미도>는 빨갱이에게 가족이 희생된 교육대장(안성기)과 월북한 빨갱이 자식인 강인찬(설경구)이라고 하는 두 중심 인물의 대립과 공감의 드라마를 통해 그 심리적 메커니즘을 정확히 그려내고 있다. 연좌제에 묶여 밑바닥을 전전하던, 그리고 훈련 과정에서 자신의 태생적 전력 때문에 의심받고 견제당하는 처지에 놓인 인찬. 그가 자신의 생명(존재 가치)을 방어하는 유일한 길은, 요구받는 것 이상으로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되는 길뿐이다. 그의 과잉된 애국심은 철저한 자기 방어인 것이다. 교육대장이 인찬을 선발하고 신뢰했던 이유는 그 점 때문이었다. 인찬은 교육대장(체제)의 ‘호명’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몸을 맡겨 ‘주체화’되는 길을 선택하며, 그리하여 교육대장과 일종의 유사 부자 관계를 맺는다. 반공주의적 주체화 과정이 전적으로 심리적 자발성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특히 31명 전원이 하나가 되는 ‘집단적 주체화 과정’은, 다양한 물리적 폭력과 심리적 조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실미도로 끌려가는 과정에서 야생적 본능으로 기간병들과 ‘기싸움’을 하던 그들은, 단 한발의 총성으로 일시에 무력해진다. 그런 그들에게 자신들의 ‘잘못’으로 대신 두들겨맞는 기간병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견디기 힘든 불안과 심리적 고통을 낳게 되고, 그에 대한 보상 심리로 한층 더 자발적이 되어간다. 게다가 집단의 생명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조편성 과정은 한편으로는 조직간의 경쟁 심리를 또 한편으로는 조직과의 일체감을 강화시켜, 그들의 집단적 주체화 과정을 완성시킨다. 더욱이 교육대장(체제)이 그들에게 던진 미끼는 그들로서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사회의 밑바닥을 전전하며 생존하는 것만이 일상의 목적이었던 그들에게, 이름없이 죽어갈 날만을 기다려야 했던 그들에게, 체제가 약속한 ‘명예’는 목숨보다 소중한 욕망의 대상이 된다. 아예 꿈조차 꾸어보지 않았던 대상이 잘 만하면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그 현기증나는 가능성의 유혹 앞에서 그들은 무력해진다. 그리하여 그들은 교육대장(체제)의 ‘호명’에 온몸을 던져 집단적으로 ‘주체화’된다. 역사의 외상을 재현하는 또다른 방법 영화 <실미도>는 바로 여기에서 그들의 ‘집단 자폭’의 미스터리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그들이 끝이 빤히 보이는 비극적 결말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도약하는 것은, 정확히 그들이 꿈꾸었던 ‘이름 회복=주체화’의 좌절에 대응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생리적 욕구(성욕)의 충족조차 포기할 수 있었던 그들(이것은 실제의 사실과는 다른 영화 <실미도>의 허구적 선택이다)이, 일시에 주저와 불안을 떨치고 반란을 꿈꾸는 것은, 그들 중 누군가 ‘명예’ 회복의 꿈을 환기시킬 때이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청와대를 향하던 그들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은, 자신들이 ‘무장공비’로 불리는 순간이다. 그들이 가장 꿈꾸었던 것, 죽음을 결심하면서까지 이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흔적은, 바로 자신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였다. 어쩌면 그들은 자폭의 마지막 순간,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질을 풀어주고 ‘명예’롭게 죽어가면, 세상이 우리에게 ‘이름’을 되돌려줄지도 모른다. 영화 <실미도>는 한편으로 과잉스러운 신파적 감흥으로, 한편으로는 남성유대공간에서의 집단적 마초 심리에 대한 장르적이고 관습적인 묘사로 그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하여 오로지 육체적 생존만이 유일한 목표였던 그들은 숭고하기까지 한 정신주의적 주체로 확립된다. 하지만 그 신파성과 장르적 관습이야말로, 그들의 ‘자폭’에 대한 유일하고 정당한 해석일 수 있다. <실미도>의 도저한 신파성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실화’를 영화화하는 데 관건이 되는 문제는 ‘사실’과 ‘극적 허구’의 적절한 선택과 조합일 것이다. 영화 <실미도>는, 대체적으로, 사건의 ‘처음과 끝’은 명확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은 허구적이고 주관적인 드라마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실과 허구의 선택과 조합에는 일관된 하나의 논리와 굵고 뚝심있는 역사관이 있다. 이 영화는 신파성과 상투성에 대한 자의식을 뛰어넘는 그 뚝심을 통해, 70년대를 사로잡고 있던 ‘시대 정신’의 한 단면을 그려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자발적 ‘복종’을 선택하는 ‘주체화’ 과정으로서의 반공주의적 주체화 과정과 그 좌절에 대한 온전한 묘사. 그 주체화 과정의 좌절은 근본적으로 그 ‘허약성=허구성’에서 비롯된다. 그 허약한 주체화는, 상황 변화에 따른 체제의 전략 수정 앞에서, 근본적으로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자폭을 결단하는 순간은, 그 허구성에 대한 깨달음의 순간일 수도 있다. ‘실미도집단난동사건’은 한국전쟁 이후 전면적으로 군사화되었던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발생했던 ‘집단 반란’ 사건이다. 그러한 엄청난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한 <실미도>의 해석은 명확하다. 체제 내 권력집단간의 암투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유인’된 측면이 있다는 것. 그 사건을 통해 분명하게 ‘과거 청산’을 했던 새로운 권력집단에, 그 사건의 마무리는 신속 정확해야 하지만 결코 최우선 과제조차 될 수 없었다는 것. 그러한 체제의 선택을 통해 그 주체들의 명예 회복에 대한 간절한 소망은 철저히 무시되고 역사 속에 묻힐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런데, <실미도>가 묘사해내고 있는 이 허구적 주체화의 비극은, 단지 과거 한 시대만의 것일까? 체제가 ‘승공 통일’에서 ‘남북 화해를 통한 평화 통일’로 전략을 수정(?)한 70년대 초 이후에도, 남한사회에서 그 허구적 주체화 드라마는 마치 쉽게 떨칠 수 없는 악몽처럼 우리의 정신을 사로잡아오던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 남북경협이 꾸준히 추진되고 있으면서도, 일부 보수세력의 정략적 ‘사상 논쟁’은 아직도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유효하다. ‘용공’이라는 정치적 공격은 아직도 반사적이고 생리적인 방어적 반사 심리를 작동시킨다. 남한사회에서 그 악몽은 그토록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실미도>는 과거의 외상적 순간에 대한 반성적 반복을 통해서 현재의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그래서 다시 한번, <실미도>의 신파성과 상투성은, 그 어떤 세련되고 쿨한 과거 재현의 영화보다도, 더 크고 강력한 감동과 설득력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흐름을 거스르는 <실미도>의 뚝심은, 한국영화가 반복하고 있는 과거의 재현에 다른 길과 방법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리 보는 갑신년 한국영화 개봉작

탄탄대로를 내달려온 한국 영화계에도 희망의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해 110편(영상물등급위원회 집계)의 장ㆍ단편을 선보였던 우리 영화계는 올해도 관객의 마음을 설레게 할 다양한 작품을 준비중이다. 2004년 영화계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다양성이 전반적 특징으로 계속 부상할 전망이다. <선택>(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실미도>(684부대 공작원) 등으로 시작된 실존 인물의 영화화 붐은 <슈퍼스타 감사용>, <청연>, <역도산> 등으로 이어지며 <태극기 휘날리며>(사진), <기운생동>, <바람의 파이터>등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꾸준히 '대박'의 문을 두드린다. 2002년 혹은 2003년에 데뷔작을 내며 주목받았던 신인 감독군의 두 번째 영화도 줄을 이을 전망이며 임권택, 곽경택, 장윤현, 홍상수 등 중견 감독의 신작들도 관객들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한편, 인터넷 소설의 영향으로 한층 '어려진' 주인공들은 올해 초반 젊은 관객들을 타깃으로 스크린을 강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개봉 예정인 한국 영화를 소개한다. ▲'고딩', 관객에서 주인공으로 = <내 사랑 싸가지>, <그 놈은 멋있었다>, <어린 신부>, <늑대의 유혹>, <말죽거리 잔혹사>, <내 사랑 일진녀>, <여고생 시집가기>, <슈즈>, <돌려차기> 등의 공통점은 고등학생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것. 틴에이저가 주인공으로 나서게 된 것은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 바람과 최근 부쩍 낮아진 관객들의 연령대에 기인한다.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과 '싸가지 없는' 대학생의 러브스토리(내 사랑 싸가지), 양가 할아버지의 정혼으로 결혼하는 대학생과 여고생(어린 신부), 16살이 되면 온달이라는 이름의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여고생 평강의 이야기(여고생 시집가기), '킹카' 남고생과 '어리버리' 여고생'(그놈은 멋있었다), 70년대 후반 고교생들의 이야기(말죽거리 잔혹사) 등은 한결 가까워진 주인공으로 젊은 관객을 집중 공략한다. ▲스크린에서 부활하는 역사 인물들 = 실화처럼 극적인 것이 또 있을까. 올해 화계의 또 다른 흐름은 실존 인물의 영화화 바람이다. 안중근 의사(도마 안중근), 극진 가라대의 고수 최영의(바람의 파이터), 프로레슬러 역도산(역도산), 화가 김홍도(기운생동), 혁명가 김산(아리랑) 등 관객에게 친숙한 인물들부터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씨(청연), 원년 프로야구의 패전처리 전문 투수 감사용(슈퍼스타 감사용) 등 새롭게 발굴된 사람들까지 다양한 인물이 올해 안에 감독의 손을 거쳐 스크린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 ▲줄 잇는 신인 감독들의 두 번째 영화 = 최근 꾸준히 신선함을 불어넣고 있는 신인 감독들은 우리 영화계가 전성기를 누리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올해는 한층 완숙해진 이들 신인 감독군의 두 번째 수확이 기대되는 시기.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은 <혈의 누>(좋은영화)를, <꽃섬>의 송일곤 감독은 <거미숲>을 두 번째 영화로 준비중이며 <로드무비>로 호평받았던 김인식 감독은 김혜수ㆍ김태우 주연의 <얼굴없는 미녀>를 차기작으로 내세우고 있다. 또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박흥식 감독은 3년만의 신작 <인어공주>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중이며,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은 주진모ㆍ공형진 등의 캐스팅을 마치고 신작 <라이어>로 두 번째 '대박'을 노린다. 이밖에 <동승>의 주경중 감독은 <테일러 양복점>을 차기작으로 다듬고 있다. ▲중견 감독들의 기대작 = 신인감독들의 특징이 `고수익 고위험'이라면 중견감독들의 장점은 어느 정도 검증받았다는 안정감이다. <광복절 특사>, <신라의 달밤>의 '흥행 신화' 김상진 감독은 다음달 말께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신작 <귀신이 산다>의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며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의 곽재용 감독은 전지현, 장혁 주연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의 촬영에 한창이다. 또 <접속>, <텔미썸딩>의 장윤현 감독은 5년만의 신작 <썸>(Some)의 메가폰을 잡았고 홍상수 감독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부천에서 촬영하고 있다. 임권택 감독도 <하류인생>으로 관객과의 99번째 만남을 계획하고 있으며 <친구>, <똥개>의 곽경택 감독은 차기작 '태풍'을 준비중이다. ▲꾸준한 거대예산 영화 제작 = <튜브>, <청풍명월>, <천년호> 등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흥행에서 참패한 뒤에도 거대예산 영화의 제작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들 영화가 내세우는 것은 `겉만 번지르한' 블록버스터와의 차별되는 탄탄함이다. 최근 개봉한 <실미도>가 극장가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는 가운데 강제규 감독의 대형 프로젝트 <태극기 휘날리며>가 2월 6일 개봉을 앞두고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으며 제작비 100억 규모의 <기운생동>과 60억 예산의 <역도산>도 촬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밖에 <공동경비구역JSA>와 <바람난 가족>의 제작사 명필림도 대작 <아리랑>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며 제작비 46억을 들인 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봄 개봉을 앞두고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장윤현 감독의 <썸>의 제작비도 50억 규모며 양동근 주연으로 크랭크인을 앞둔 <바람의 파이터>도 60억원을 투입해 제작한다. ▲코미디 영화 = 지난해 초만 해도 '열풍'이라 불리던 코미디 영화의 붐은 한풀 꺾인 상태. 하지만 '저비용 고효율'을 노리는 코미디 영화들은 올해도 꾸준히 관객들의 '배꼽 사냥'에 나선다. 오는 30일 <안녕!유에프오>의 개봉을 시작으로 <어깨동무>, <맹부삼천지교>, <목포는 항구다>, <홍반장>, <효자동 이발사>, <고독이 몸부림칠 때>, <아빠하고 나하고>, <달마야 놀자2> 등 조폭과 휴먼, 액션 등 다양하게 변형된 코미디 영화가 극장에 내걸린다. (서울=연합뉴스)

선물에 관한 명상

이른바 ‘인디언’들이나 남태평양의 ‘미개인’들이 선물의 문화 속에서 산다는 것은 인류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가령 트로브리얀드 제도의 원주민들은 A에게서 선물을 받으면 A에게 답례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웃인 C에게 선물을 하는 방식으로 답례한다. 그걸 받은 C는 다시 D에게 주어야 한다. 선물이 선물을 낳는 선물의 증식이 발생한다. 수많은 섬들을 통과하던 선물의 흐름은 돌고 돌아 다시 A에게 돌아갈 것이다. 선물의 커다란 원환이 그려진 셈이다. 모두가 선물을 했고, 또 모두가 선물을 받은 것이다. 또 하나 유명한 선물게임은 ‘포틀래취’라고 알려진 것이다. 그 게임에선 선물을 받으면 그보다 더 많은 선물로 답례해야 한다. 그렇게 답례하지 못하면 지는 것이다. 최종적인 승자는 남들이 더이상 갚을 수 없을 정도의 선물을 주는 사람이다. 이 승자가 대개는 부족의 추장이 된다. 뒤집어 말하면, 추장이 되려면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다른 이들에게 선물해야 한다. 이들만큼이나 우리도 수많은 선물의 시간을 갖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선물을 사고 그것을 실어나르고 있다. 그런데 쿨라와 달리 우리의 선물은 대개 대칭적이다. 주는 사람에게만 답례한다. 심지어 주고받는 선물의 ‘가치’를 어느새 비교하기도 한다. “아니, 난 10만원짜리를 줬는데, 겨우 1만원짜리를 줘?” 선물마저 대등하게 교환해야 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짜증나는 건 달마다 하나씩 들어서고 있는 선물의 날들이다. 선물의 종류도 정해져 있다. 초콜릿, 사탕에 이어 과자가 등장했다. 상업적 목적에서 기획된 이 선물게임은 자본과 상업이 선물제도에 선물한 최악의 모욕처럼 보인다. “선물이란 어차피 교환의 일종이야!” 이런 코드에 따라 이젠 모든 선물들이 상업과 교환의 그물에 완전히 사로잡힌 듯하다. 선물을 교환의 일종이라고 보는 것보다 선물을 이해하는 나쁜 방법은 없다. 선물에 관한 모스의 유명한 책으로 인해 널리 유포된 이 오해에 따르면, 선물은 받으면 답례해야 하기에 결국 교환의 일종이란 것이다. 그러나 선물을 받고 존경을 주는 것을 교환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이없는 게 또 있을까? 이 점에선 차라리 소설가가 더 나은 것 같다. 아들 몰래 10만원을 책상에 놓고 나온 어머니와 그 어머니 몰래 지갑에 10만원을 넣어둔 아들. 이것을 교환으로 본다면 교환의 이득은 0이고, 이들은 하나마나 한 짓을 한 셈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들이나 그 어머니나 10만원을 주고 10만원을 받았기에 두 사람 모두 20만원의 선물의 이득을 얻은 것이다. 선물과 교환간의 거리의 최대값을 보여주는 경우는, 준다는 생각없이 주는 선물, 혹은 선물이란 생각없이 주어지는 것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말한다. 수면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은 대기의 선물이고, 시원한 그늘은 나무의 선물이며, 해마다 열리는 옥수수는 대지의 선물이라고. 함께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는 친구, 밥을 해주는 할머니, 노래를 불러주는 아이들, 이 모두가 ‘위대한 정령’의 선물이라고. 선물이 의무라면,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스스로 물을 것이다. “나는 과연 나에게 선물인 다른 이들에게, 숲의 나무들과 그 나무 사이로 오가는 동물들에게 과연 무엇을 주고 있는가?” 모든 존재자가 선물이 되는 세계, 그게 어디 인디언들만 꿈꾸던 세계였을까? 나의 삶이 나를 둘러싼 타자들의 선물 속에서 이루어지고 나의 삶이 타자들에 대한 선물이 되는 세계. 그러나 우린 이미 그걸 꿈꾸는 것조차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런데 정말 그건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의 두터운 벽 속에선 불가능한 세계인 것일까?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도시의 도로 위에선 정말 불가능한 세계인 것일까? 정작 문제는 불가능한 생각이란 생각, 꿈을 잃어버린 꿈, 그리고 스스로 감아버린 눈은 아닐까? ‘삶’을 뜻하는 제목의 영화 <이키루>에서 구로사와는 그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가 실은 얼마나 우리 가까이 있는 것인지 보여주려는 것 같다.이진경/ 연구공간 ‘수유 + 너머’ 연구원·서울산업대 교양학부 교수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4]

한류는 없다. 할리우드와 홍콩에 배우라 콜럼비아와 작품 계약을 맺은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는 “할리우드 메이저들의 전략은 그 나라의 영화제작 활성화가 미진할 때 미리 치고들어갔다가 점차 시장을 다 먹는 것”이라고 했다. 콜럼비아의 중국 전략이 딱 그렇다. 콜럼비아는 10년 전 베이징에 지사를 설립하고 홍콩과 양 날개 전술을 펼치며 가장 좋은 입지를 선점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이 2005년 시장을 전면개방하는 날이 디데이다. 장이모의 <집으로 가는 길>이나 리안의 <와호장룡>은 세계가 인정하는 중국 감독을 기용한 경우이지만 ‘중국 내수용’ 감독을 키우는 공격적 움직임도 보인다. 북방식 베이징 유머를 구사하는 펑샤오강 감독을 선택해 도널드 서덜런드를 출연시킨 <대가의 장례식>이나 허핑 감독에게 <천지영웅>을 만들게 한 경우가 그렇다. <영웅>을 만든 미라맥스도 베이징에 지사를 만들었고, 워너브러더스는 상하이에 ‘파라다이스 워너 시네마 시티’라는 멀티플렉스를 시작으로 상하이전영집단공사와 HD영화 10편의 제작 계약을 맺었다. 가장 유리한 건 홍콩이다. 2003년 6월 홍콩은 중국 본토와 ‘긴밀한 경제 파트너십 협정’(CEPA)을 맺고 2004년 1월부터 실행에 들어간다. 이로써 중국과 홍콩의 합작영화는 인력과 제작비의 비율과 상관없이 무조건 중국영화로 대우받게 됐다. 이는 20편으로 묶여 있는 해외영화 배급 쿼터에서 홍콩이 자유로워졌다는 걸 의미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중국 진출은 걸음마 단계에 가깝다. “<클래식>을 중국에 배급하면서 보니까 모니터이든 사후관리든 전혀 안 되더라. 박스오피스 매출보고서, 개봉 비용 등에 관한 리포트를 중국쪽에서 받기로 했는데 건네주는 시점도 아주 늦고 리포트가 얼마나 정확한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시장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최종윤 시네마서비스 이사) 한국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영호 청어람 중국사업팀장이 보내온 편지가 유용할 듯싶다. “대만대학 공부 당시 주식투자 행위를 2가지로 나눕니다. 투기와 투자. 이른바 개미군단은 투기 위주이고, 전문 주식투자사들은 말 그대로 투자를 합니다.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중국 시장을 바라보고 추진하는 방향을 보면 이것은 투기가 아닌 투자라는 것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콜럼비아의 경우 연간 10편 정도의 아시아영화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중 중국영화가 연간 2편 정도 됩니다. 콜럼비아는 중국영화 <천지영웅> <대가의 장례식> 등에 투자했는데 중국 내부에서만도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하는 영화에 투자를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와호장룡> 한편으로 10년간 아시아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을 벌었다죠. 하나 콜럼비아가 사전에 <와호장룡>이 잘되리라는 예측을 하거나 기획을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흐름을 알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연간 박스오피스 규모는 1억달러(5천만명 수준)입니다. 낙후된 극장설비, 외자 배척, 엄격한 심의 제도 등…. 워너의 경우 10년 전에 이미 상하이에 합자극장을 설립한 적이 있습니다. 돈만 날렸지만, 올해 다시 정식으로 들어왔습니다. WTO 가입 뒤 중국 시장이 상당한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아시아 최대의 시장으로 부상한다는 예측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으나 어떻게 준비하냐는 방법론에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해야죠. 한국 회사들은 투기를 좋아합니다. 중국 땅에 한류라는 바람이 불도록 만든 이들은 모두 보따리장수들입니다. 잘되니까 시장조사도 이해도 전혀 못하는 콘텐츠 소유사들이 보따리장수들을 팽개치고 무분별하게 진출을 하지요. 중국에 한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별동부대들이 시장을 개척해놓았으면 정규군은 그 시장을 잘 다져놓아야 하는데… 항상 아쉽네요. 한국 콘텐츠는 분명 경쟁력이 있습니다. <엽기적인 그녀> <조폭 마누라> 등등. 하나 비교경쟁력이지 절대경쟁력이 아닙니다. HOT가 중국에서 멋지게 랩을 부르던 시절이 2000년이었고 지금은 중국의 젊은 가수들도 남부럽지 않게 잘 부르지요. 몇년 전만 해도 홍콩 드라마가 중국에서 잘 먹혔지요. 편당 2만6천달러 넘게 팔렸으니까요(그때 당시 한국 드라마는 편당 800달러 수준). 지금은 오히려 중국 드라마가 홍콩에 수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SF와 액션이 할리우드의 절대경쟁력이라면 홍콩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각종 스타일의 무협일 것입니다. 그럼 한국의 절대경쟁력은? <천녀유혼> 당시의 홍콩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조그만 홍콩은 해외진출이 필수적이었겠죠. 그리고 성공시대가 분명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홍콩은 2가지 전제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문화코드(화교권 시장-대만, 중국, 싱가포르 등)이고 또 하나는 무협코드입니다. 홍콩의 배우들은 정말 경쟁력이 있습니다. 자국어인 광둥어는 기본이고 영어, 지금은 만다린까지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배우 지망생들의 이력서를 보면 할 수 있는 언어가 평균 3개입니다. 장르, 감독, 배우 등등 모든 것이 골고루 갖춰졌기에 홍콩의 전성시대가 열렸다고 봅니다. 중국의 최대영화사인 전영그룹에서 저에게 이러더군요. <클래식> 홍보차원에서 한국 여자배우가 왔는데 왜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구…. 다시는 초청 안 한다고 하더군요. 양조위와 유덕화의 최근 TV 초청회를 보면 정말 비교가 되더군요.”

[DVD] 2004년 1월 코드 1 주요 발매 일정

극장 상영과 DVD 발매 사이에 존재하는 3∼6개월의 시간적 격차로 인해 1월에는 지난해 9월 전후의 비수기에 개봉되었던 작품들이 주로 발매되는 까닭에 주목할 만한 블록버스터급 대작이나 흥행작은 거의 없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사진)와 <아메리칸 웨딩-무삭제판> <프레디 vs. 제이슨> <언더월드> <스위밍 풀-무삭제판> 정도만이 눈에 띄며,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한달가량 늦게 발매되는 <에어리언 4부작> 감독판 박스 세트가 더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작의 발매가 부진한 대신에 고전 명작들의 출시가 깜짝 놀랄 만큼 화려한 편인데,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으로 발매되는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법칙>과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 폭스스튜디오 클래식 시리즈로 발매되는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를 비롯하여 하워드 혹스의 <술과 장미의 나날들>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굿바이, 미스터 칩스> <안제이 바이다 컬렉션 박스 세트> 등이 발매되며, 절판된 뒤 고가로 거래되던 자크 타티의 <휴로씨의 휴일>과 <내 삼촌>의 크라이테리언 컬렉션도 재발매된다. 그 밖의 작품들로는 구로자와 기요시의 <큐어> <바람과 라이온> <스타트랙6-스페셜 에디션>과 일본 애니메이션인 <빅 오> 2기, <신세기 에반겔리온-부활: 감독판> 등이 관심을 가질 만하며, <프렌즈-시즌6>를 필두로 <로스트 인 스페이스-시즌1> <바빌론5-시즌4> <쉴드-시즌2> <치어스-시즌2> 등의 TV시리즈도 푸짐하게 출시된다.

[인터뷰]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성현아

"연기가 아니라 그냥 영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김상경의 능청스런 대사 'Can you speak English?', 예지원의 흐드러지듯한 살사춤. 홍상수 감독의 전작 <생활의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디테일의 날카로운 발견인 동시에 배우 김상경 그리고 배우 예지원의 발견이었다. 부천에서 막바지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 홍 감독의 신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발견의 대상이 될 배우는 유지태와 김태우, 그리고 다소 의외의 인물인 성현아(28)다. 주로 브라운관을 통해 활동하던 성현아에게 <여자는…>는 <할렐루야>, <보스상륙작전> 이후 세 번째 영화. 4일 오후 영화의 촬영이 진행중인 경기도 부천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성현아를 만났다. ▲세 번의 인터뷰, 한 번의 캐스팅 = 성현아는 <여자는…>까지 세 차례 홍 감독과 배역과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 '오!수정'과 '생활의 발견' 이후 세 번째 시도에서 홍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 "시놉시스를 보기 전에 감독에 대한 믿음만으로 출연을 결심했다"는 그녀는 "무조건 내가 해야 된다"고 감독에게 우겼다고 설명했다. 첫 인터뷰 때의 에피소드. "감독님은 기억 못하신다지만 <오! 수정> 인터뷰 때 (예쁘게 보이려고) 한껏 치장하고 갔거든요. 감독님이 '우리 영화에는 이런 캐릭터는 필요 없다'며 자리에 앉지도 못하게 하더라고요. 그냥 온 김에 차나 한 잔 하고 가라고만 하시더군요." "소소한 얘기면서도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게 좋았다"는 것이 그녀가 팬으로서 홍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배우로서는 '연기다운 연기'를 하게 될 기대가 컸던 것이 영화 출연을 원하게 된 계기다. ▲'선화는 우리 영화의 빛이다' = 극중 성현아가 맡은 역은 두 남자 문호(유지태)와 헌준(김태우)의 기억 속에 다른 두 가지 이미지로 남은 옛 연인. 가난한 미대생이었던 그녀는 의지하던 사랑에 상처를 받고(헌준) 이후 그렇게 마음에 들지도 않은 상대를 사랑하려고 애쓰기도 해보다가(문호) 결국 학교를 떠난다. 유지태의 전언에 따르면 감독이 표현하는 여주인공 선화는 바로 '영화의 빛'. "성현아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선화처럼 신선하고 진짜같은 느낌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감독이 솔직히 전하는 만족감이다. 그렇다면 촬영을 얼마 안 남겨 놓고 그녀 자신이 설명하는 스스로의 연기는? "사실 연기를 한 것 같지 않고 그냥 영화 속에서 살았어요. 그만큼 감독과 영화에 공감을 하면서 지냈다는 말이죠. 제 자신에게는 오래 동안 남아 있을 것 같은 영화예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선아의 대사와 행동이 나와 너무 닮아 있더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제 "'다음 영화는 무슨 재미로 찍지?'라고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촬영이 끝나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 촬영 뒷 얘기 = 촬영중 에피소드 하나. 서울의 한 모텔에서 촬영된 김태우와의 베드신은 영화 속 내용에 맞춰 실제로 소주 두어 병을 나눠 마신 상태로 진행됐다고. "처음에는 긴장됐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는 것이 베드신을 마친 그녀의 소감이다. 결국은 두 사람이 잠깐의 휴식시간에 술기운에 잠이 들어버렸을 정도로 베드신은 편안한 상태에서 진행됐다. ▲성현아는 '칸의 여왕'? = 홍상수 감독은 칸영화제가 끊임없이 주목하고 있는 한국 감독 중 한 명. 성현아의 캐스팅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에서는 그녀에 대해 '칸의 여왕'이 될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해외 영화제 초청에 대한 기대를 할 법도 하다"는 말에 "솔직히 전혀 아니다"라는 대답을 돌려줬다. "솔직히 새해 소망은 그냥 이전과 같이 변함없이 무난한 한 해를 보냈으면 하는 것이에요. 너무 즐겁게 작업했던 것처럼 (영화가)잘 마무리가 됐으면 좋겠고요. 물론, 이번 영화가 연기 생활에 전환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죠."

[비평릴레이] <아타나주아> 정성일 영화평론가

나는 이런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사람들은 재미있는 걸 내버려두고 시시한 것에 매달려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강우석의 <실미도>는 나에게 시시한 영화였다. 냉전 이데올로기적인 ‘남성’ 괴물을 만들어내고, 그 괴물과 함께 모든 남자들이 좀비가 되어 일제히 함께 자폭하겠다고 매달리는 이 기괴한 남성집단의 역사극에 여자들마저 눈물을 흘리는 것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남자들의 우정이라는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끔찍한 마초사회의 증후이다. 혹은 왜 사람들은 진짜를 외면하고 가짜에 홀리는 것일까 너무나도 컴퓨터로 덧칠을 해서 도무지 원본을 알아볼 길이 없는 지경이 된 화면과 시종일관 시끄러운 사운드로 요란을 떠는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 왕의 귀환>은 원작의 상상력을 게임 스크린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그런 시시한 영화들에 비하면 자카리아스 쿠눅의 <아타나주아>는 정말 보는 사람을 움직인다. 무려 2시간 48분이나 되는 비경제적이고 비합리적인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는 체험은 지구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삶의 황홀감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자카리아스 쿠눅은 첫 번째 에스키모 감독이고, 이 영화는 첫 번째 에스키모 영화이다. 매우 슬픈 일이지만 에스키모에 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인류학적 상식들뿐이다. 그리고 영화의 역사는 그들을 로버트 플래허티의 <북극의 나누크>를 통해서만 기억할 뿐이다. 그들은 지구에서 함께 살면서도 우리에게 일종의 미라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자카리아스 쿠눅은 그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 불러온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신화 안으로 들어가서 그 어떤 사회에도 존재해 온 보편적 기억을 끌어내어 그들 자신만의 이미지로 재현해낸다. (레비-스트로스의 말투를 흉내내자면) 자카리아스 쿠눅은 세상만사의 기호적 순환을 조립하면서 그 안에서 세상에 대한 은유를 통해 현대 서구 영화의 환유와 맞선다. 그래서 <아타나주아>는 공동체와 개인, 형제와 아내, 유혹과 질투, 혹은 사랑과 부정, 우정과 증오, 용서와 복수, 그리고 영웅 서사의 귀환이 하나의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회전한다. 그것은 지구의 한쪽 끝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순환이며, 인간이 의미를 갖는 순간에 대한 숭고한 찬사이다. 지구 어디에서나 있어온 오랜 신화의 이야기. 자카리아스 쿠눅은 그것을 필사적으로 찍는다. 그 중에서도 악당 오키와 그의 일당들이 복수하기 위해 천막을 습격하자 지평선이 펼쳐진 빙판을 알몸으로 질주하는 주인공 아타나주아의 저 육체적 황홀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방천지 얼음 빙판 위를 칼날 같은 맞바람을 맨 살로 맞으면서 맨 발로 빙판 위를 달려가는 모습은 오랜 동안 영화가 잊어온 기계복제의 싱싱한 날 것의 사실감으로 살아난다. 거기에는 어떤 트릭도 없다. 맨 발의 살점이 찢겨나가고, 살을 에이는 바람소리가 웅웅거리면서 달려들 때, 자카리아스 쿠눅은 에스키모개들이 이끄는 눈썰매에 16밀리 보렉스 카메라를 싣고 덜컹거리면서 달려가며 그걸 찍는다. 그것은 버스터 키튼의 <일곱번의 기회>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피해 언덕길을 이리저리 달려가는 바로 그 장면, 혹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칠인의 사무라이>에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진흙탕에서 도적떼들과 싸우는 저 집단적인 마지막 장면, 또는 베르너 헤어초크가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 안데스 계곡에 그의 배우들을 몰아넣고 권총을 관자놀이에 들어대고 행진하라고 외쳐대는 바로 그 잔혹한 사실주의의 계보에 서는 것이다. 바로 그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그 장소에서 그 악천후의 기후와 싸우고,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야만 얻을 수 있는 영화만의 저 참혹하리만큼 비인간적인 기계적 사실주의에의 진심 어린 아날로그적 찬사를 우리들의 디지털 시대에 다시 마주할 때 그 장면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감흥을 불러일으키고야 만다. 세상에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런 영화를 보기 위해 내 인생을 걸고 싶다. 그것이 내가 당신에게 해피 뉴 이어(!)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인터뷰] 석좌교수된 신상옥 감독

<겨울이야기>, <꽃제비> 영화도 제작중 "활동이 왕성하다고요? 직업이니까요." 신상옥 (78)감독이 부인 최은희씨와 함께 동아방송대학교의 석좌교수로 강단에 선다. 영화 감독으로 석좌교수가 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신 감독은 올해 봄 학기부터 연극영화계열 학생들에게 영화 연출론을 가르친다. 신 감독은 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영화 학교는 하드웨어는 많은데 소프트웨어가 없다"며 "50여년 영화 인생의 연륜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장과 하나되는 교육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그가 석좌교수직을 수락한 것은 지난해 개원한 신필름예술센터의 운영 취지와 같다. 바로 "교육현장과 제작현장은 가까울수록 좋다"는 것. 후학양성에 대한 신 감독의 노력은 안양영화예술학교를 개교한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 감독은 이같은 취지를 바탕으로 최은희씨와 함께 안양영화예술학교는 설립했다. 이 학교는 78년 납북 때까지 운영됐으며 지금은 안양예술고등학교가 맥을 잇고 있다. "안양(영화예술)학교 만들 때부터 그랬어요. 교육은 배우건 제작자건 감독이건 스태프건 직접 만나서 배우는 게 제일이거든요. 현장에 직접 나가는 교육이 바람직합니다." 신 감독은 지난해 신구ㆍ김지숙 주연의 신작 <겨울이야기>를 촬영했다. 지금은 후반작업까지 마치고 개봉 시기를 잡고 있는 중. 신 감독에게 <겨울이야기>의 개봉 계획을 묻자 <연산군>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 하나를 들려줬다. "나는 한국 영화 기업화의 실험이 된 대작 <연산군>도 만들어봤지만 주인공 세명을 데리고 두 칸 방에서만 찍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도 찍었어요. 아마 지금도 그렇게 적은 돈으로는 못만들걸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흥행이 잘됐거든요. 지금은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겨울이야기>는 젊은 사람들도 좋아할 만한 영화입니다. 조만간에 개봉해야지." 후학 양성과 <겨울…> 개봉 외에도 신 감독은 여든셋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여름 제작 계획을 밝힌 북한 인권영화 <꽃제비>(가제)는 최근 탈고를 끝내고 4월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며 이밖에도 그의 머릿속은 북한에 있을 때부터 25년간 다듬어온 야심작 <징기스칸>의 제작에 대한 구상으로 복잡하다. 나이를 잊은 왕성한 활동의 비결을 묻자 "직업이니까"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기분좋은 웃음이 돌아왔다. "기자도 그렇잖아요? 누가 쓰지 마라고 그래서 안쓰고, 쓰라고 그래서 쓰고 그래요? 직업이니까 열심히 하는 것이지…."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