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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몰입과 망각

운명 앞에 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크게는 긍정적인 자세와 부정적인 자세로 나눌 수 있고 만약 그것에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를 구분한다면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운명을 의식하면서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소극적인 방법이고 또 하나는 운명에 반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하루하루의 일상을 매진하는 적극적인 방법이다. 전자가 <회전목마>의 은교(장서희)의 자세라면 후자는 <대장금>의 장금(이영애)의 자세이다. 은교에게는 엄마의 자살과 아빠의 재혼, 힘겨운 고학, 그리고 사랑의 상처까지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은 삶의 멍에들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짠해오고 저렇게까지 고생스럽게 살아가지 않을 수 있는 것을 그녀의 고집스런 기질이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 같아 심지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그녀의 고집과 삶에의 열정이 도대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에 관해서 명시해주는 대목이 없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가혹한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서 좀더 나은 삶에 대한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힘겹게 내디딘다. 그런데 그 내디디는 발자국마다 앞으로 가기는커녕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어머니의 자살 이후 마음을 잡은 아버지가 은교가 입시를 치르는 날 사고를 당하면서 외롭고 고통스러운 고학 시절로 들어가는 것과 그나마 자신의 바람막이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던 우섭(김남진)의 집안이 몰락하면서 우섭마저 의지할 곳이 못 된 것을 보면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를 빙빙 돈다. 운명과 맞서서 은교는 너무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운명의 굴레는 자꾸 그녀를 비켜가지 않고 덮쳐온다. 그에 비하면 장금의 태도는 다른 뜻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다. 부모의 불행한 운명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은 장금에게 궁으로 들어가서는 수라간의 최고 상궁이 되는 것이 목표였고 궁을 쫓겨나서는 어머니와 한 상궁의 한을 풀어드리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표면적으로는 현실적인 야심에 가득 찬 목표들인데도 우리는 그녀가 내디디는 발자국에 매료된다. 아름다운 색감과 맛과 향기를 품어내는 음식을 만드는 그녀의 손끝과 그것에 열중해 있는 모습에서 그녀를 뒤따라다니고 갖가지 약재와 혈맥을 외우는 상기된 그녀의 얼굴에서 우리는 함께 그것에 집중하게 된다. 심지어 의술을 배우면서도 복수심에 불타 있는 그녀를 용서해주어야 할 것만 같은 관대함이 자꾸 스며든다. 왜인가? 혹시 명시화된 목표가 은교와 장금에 대한 정감의 차이를 만드는가? 그러나 은교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그녀의 노력을 분명하게 보고 있는 만큼 그녀에게 목표가 없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운명을 대하는 태도를 만드는 것이 뚜렷한 목표가 있고 없음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쩌면 삶은 그 자체로 순수한 의미에서 목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은교에게나 장금에게나 운명은 가혹했고 둘 다 너무도 열심히 그것에 부딪혀가면서 살아가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은교에겐 없으나 장금에게 있는 단 한 가지는 바로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순간에 드러나는 몰입과 자기 망각의 시간이다. 회전목마처럼 빙빙 돌며 언제나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삶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벗어나려 해도 벗을 수 없는 삶의 굴레를 어찌 은교만이 안고 있겠는가. 발버둥쳐도 돌아오는 그 운명의 사슬 앞에 연약한 여인은 독한 마음을 품고 다시 일어서지만 우리는 그 앞에서 갑갑해진다. 그녀는 너무나 그것에 가까이 있는 것이다. 삶의 굴레란 의식하고 달려들면 달려들수록 더욱더 깊숙이 빠져들어가게 되어 있다. 내딛는 그 한 발자국을 빠져나올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가는 오히려 운명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장금을 통해서 즐겁게 보고 있는 것은 수라간 최고상궁이 되겠다는 그녀의 목표를 응시하는 것이 아니다. 좀더 나은 맛을 향해서 매진하고자 음식을 다듬고 정성스레 칼질을 하고 양념을 섞어넣는 그녀의 노동 속에서 우리는 인생 목적의 무게를 잊는다. 자기망각의 노동이 있어야만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시간만이 운명 자체를 궁극적으로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지점임을 명시해준다. 나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은교가 언제나 바람막이가 되는 그 누군가를 찾아나가는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운명의 사슬을 잊고 진정한 자기 몰입과 망각을 이루어내는 좀더 현명한 방법을 찾아나가기를 기다려본다. 素霞(소하)/ 고전연구가

한국계 뮤직비디오감독 조셉 칸 할리우드 데뷔

한국계 영화감독 조셉 칸(31.한국명 안준희)이 액션영화 <토크>(Torque)로 할리우드에 데뷔한다. 워너 브라더스사(社)가 제작비 5천만달러를 투입해 만들어 16일 개봉되는 <토크>는 캘리포니아 남부 사막인 랭카스터와 팜 스프링스 일대에서 박진감 넘치는 오토바이 폭주 장면을 스크린에 담았다. 손에 땀을 쥐게하는 액션에 웃음을 선사할 이 영화에는 흑인 래퍼 아이스 큐브, <윈드토크스>(Windtalks)의 마틴 핸더슨, 제이미 프레슬리와 함께 007 시리즈 <어나더 데이>에 출연했던 한국계 윌 윤 리(이상원)가 조연으로 출연했다. 칸 감독은 <패스트 앤 퓨리어스>(Fast and Furious)를 능가하는 스피드를 앞세워 주말 북미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내심 꿈꾸고 있다. 지난 해 미국 MTV 비디오뮤직 시상식에서 에미넴의 <위드아웃 미>(Without me)로 비디오 최우수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칸 감독은 이미 뮤직비디오 업계에서는 미국 정상급 감독이다. 아일랜드출신 록밴드 U2, 데스터니스 차일드, 백스트리트 보이스, 시스코, 엘튼 존 등 톱가수와 작업을 했다. 부산 태생으로 3살때 이탈리아를 거쳐 7살때 미국 텍사스에 정착한 그의 성(姓)이 칸으로 둔갑한 데 대해 그는 "미군에 입대한 아버지가 알파벳 순서로 맨 앞줄에 서는데 지친 나머지 원래 라스트 네임에 K를 하나 더 붙이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뉴욕대(NYU)에 진학했으나 "등록금이 비싸 도중하차한 뒤 그 돈으로 비디오를 제작"하면서 영상세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지난 1994년 영화ㆍ연예산업 중심지인 로스앤젤레스로 터전을 옮겼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뮤직비디오만 약 300편. 액션영화 <토크>에서는 "특히 오토바이를 탄 채 기차를 뛰어넘거나 부딪히는 장면 촬영이나 섭씨 40도를 웃도는 사막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 칸 감독은 "스토리보다는 스피드와 액션을 강조하고 특수 효과도 비중을 높였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한국 최초의 산악영화 <빙우> 제작일지 [3]

절벽에 매달린 카메라, 눈속에 파묻힌 배우 2003. 3. 13 (김)하늘이 캐나다에 와서 첫 촬영에 임한 날, 어찌된 일인지 하늘이 도와주질 않는다. 카메라가 얼어버리는 바람에 촬영을 접어야 했다. 돌려봤자 카메라는 뻑뻑할 뿐이고 애꿎은 필름만 찢어질 뿐이다. (김)하늘이 분량만 치면, 이제 무어 크릭 절벽으로 넘어간다. 그동안 다들 귀 동상이 한번씩은 걸린 듯하다. 슬슬 향수병도 도지기 시작할 것이다. 재미난 사실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기독교 신자가 하나둘 늘어났다는 거다. 독실한 이성재씨의 전도에 따른 것은 아니다. 어찌된 일일까. 알아보니 근교 한국인 목사가 세운 교회에서 스탭들에게 한국 음식을 예배 뒤에 차려준다는 것이다. 오는 일요일은 보지 않아도 교회로 향하는 셔틀버스 정류장에 줄 서 있는 우리 스탭들의 수가 늘어날 것이다. 배고픔과 향수에 성경책을 끼고서 한시적으로나마 주님의 아들, 딸들이 되기로 한 이들을 누가 손가락질할 것인가. 2003. 3. 17 윤홍식 기사님이 드디어 떴다. 그동안 안전요원들이 거긴 위험해서 안 된다, 고 제지한 탓에 몸이 근질근질 했을 것이다. 안전요원들도 좀처럼 물러설 기미가 아니다. 결국, 정승권 선생이 윤 기사님을 뒤에서 부축하기 위한 요원으로 나서기로 했다. 90도에 가까운 절벽에서 5kg에 달하는 카메라를 들고 서 있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낙석 위험 때문에 먼저 안전요원들이 절벽 청소(?)에 나선 다음 두분이 절벽에 오른다. 대략 아래로부터 25m 높이. 카메라 또한 흔들리지 않도록 2중 3중으로 고정해뒀다. 한편, 언덕배기에서 눈썰매를 타는 배우들을 발견한 안전요원들이 말리려고 뛰어간다. 쌀 부대 비슷한 비닐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일이다. 2003. 3. 21 배우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맘에 걸린다. 특히 이성재씨에게 미안하다. 실제 발은 눈 속에 파묻은 상태로 가짜 다리를 내놓고 있는 장면을 찍다가 잠시 컷. 몸을 일으키는 그를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분장이 안 되면 그냥 눈으로 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숨도 들이키지 못하고 얼굴에 가해지는 차가움이라니. 오후 들어서 강풍이 더욱 거세지고 해가 떨어지기 직전이라 마음만 앞서고. 데이 포 나잇으로 찍었던 엔딩장면에서도 이성재씨는 눈고문을 당해야 했다. 테이크가 서너번 가는데도 그냥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얼굴색이 검은 빛이 돌 때까지. OK사인이 난 다음 스탭들은 박수로 그를 격려했지만 그는 다만 보들보들 떠는 손가락을 내보였을 뿐이다. 2003. 3. 27 르웰린 빙하지대에서의 촬영은 모두 합하여 10명 이하로 결정됐다. 헬기 타고 20분을 날아야 하는 그곳은 위험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안전요원들이 일일이 피켈로 찍어서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동선을 따라서만 이동이 가능할 정도란다. 여성은 감독을 제외하곤 모두 빠졌다. 아무런 방패막이 없는 이곳에 안전요원들은 어느새 눈으로 바람막이를 만들어놓았다. 그 안에서 스탭들이 점심을 해치우고 있는 사이 한 스탭이 바로 바깥에서 일(?)을 보다 감독에게 적발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하긴 스탭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안전요원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자신들과 떨어진 곳으로 혼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으니. 고도 2000m에서 떨어진 2000만원짜리 렌즈 2003. 4. 9 캐나다 출국을 하루 앞두고 윤홍식 기사는 촬영부 조수들과 함께 몽타주로 쓸 배경을 찍기 위해 헬기에 올랐다. 줌 렌즈가 너무 길다보니 고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쪽에서 촬영부 퍼스트가 렌즈를 쥐고 있어야 했다. 고도가 2000m에 이르렀을 무렵, 촬영이 시작됐고 포커스를 맞추던 과정에서 그만 렌즈가 뚝 떨어졌다. 시가 2천만원짜리 렌즈가 설원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촬영분량을 찍지 못하겠구나 걱정하는 윤 기사에게 조종사는 렌즈가 뒷프로펠러에 걸렸더라면 목숨이 공중분해됐을 것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행인 것은 헬기가 이동하는 경로가 일정하다는 것. 8명이 일렬로 서서 수색 끝에 그 광대한 설원에서 4시간 만에 파손된 렌즈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와중에 누군가가 무전기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날은 아이스하키 경기가 있는 날이었고, 어떻게든 경기 중계를 놓치지 않으려는 캐나다 스탭들이 총동원된 끝에 무전기도 얼마 되지 않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달 뒤. 캐나다를 다녀온 <빙우> 팀은 수원 방송사 세트에서 추락장면을 담는 암벽 실내장면을 촬영했다. 당시 메이킹을 보면 큰 고비 넘긴 듯한 안도감이 얼굴 가득이다. 김하늘은 오버행(90도 이상의 암벽 등반)을 기어코 해냈고, 며칠 뒤 초반 조난장면을 찍느라 다시 자일을 맨 송승헌과 이성재 또한 촬영이 끝나자마자 웃옷을 벗어젖히고서 한 스탭을 타박하기까지 한다. “산악반이었다면서 어째 영 자일 매는 게 허술한데…”라고. 그리고 또 8개월이 흘렀다. 그들을 포함, 제작진은 뒤늦게(?) 지난 2년여 동안 흘렸던 ‘빙우’를 관객 앞에 내놓고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영화(들)의 관객 연놈들은 멋있었다! [1]

지난 한해 한국영화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풍성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예리한 눈을 가진 당대의 논객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사유하며 곳곳에서 들려오는 풍년가의 틈새에서 무엇을 듣고 있을까. <씨네21>의 김소영, 정성일, 허문영 세 편집위원에게 자유로운 글을 청했고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첫 번째 발언을 보내왔다. 우리가 아는 그 ‘정성일’이 <동갑내기 과외하기> <옥탑방 고양이> <그놈은 멋있었다>를 통해 새로운 관객의 도래를 확인하며 자신과의 거리 혹은 소통 불가능성을 진지하게 사유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세번에 걸쳐 이루어질 이 기획을 통해 우리 눈앞에 어떤 지형도가 펼쳐질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도 잊을 수 없었던 내 사랑의 문제점을 되씹으면서 영화관을 나서는 나는 “이젠 좀 끝났으면!”이 아닌 “난 이해하고 싶어!”란 괴이한 소리를 지른다. _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괄호로 시작하기. (…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가야 할 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연속의 블록 안에 들어가서 만리장성 바깥으로 나오는 길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무한의 길 잃기 살아생전에는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복도들과 난간들. 그러니 차라리 창을 열고 뛰어내리자. 그것이 윈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귀여니 홈페이지의 자문자답: (귀여니의 질문) 지금 행복한가? (귀여니의 답) 불행하다. (나의 덧글) 나도 불행하다. 그러니까 이 글은 그 불행의 공감을 얻기 위한 나의 애원과도 같은 것이다. 생각해보라. 19살 소녀가 불행한 나라에서 함께 살면서 어떻게 46살 남자가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이 글은 대책없는 덧 글일 수밖에 없다. 수수께끼에로 뛰어들기, 그래서 귀여니의, 이햇님의, 김유리의, 혹은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표현기계가, 영화와 맺는 놀이의 관계, 용법, 감각, 그물코, 질서, 계열, 배열과 배제, 그냥 한마디로 출현과 힘 사이의 영토에로 무작정 뛰어내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뛰어내리기에 앞서 우선 당부의 말씀. 이 글의 상당 부분의 표현이 일부 독자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심호흡을 하신 다음 그냥 단 한번에 쉬지 말고 스크롤로 채팅을 긁어 내려가듯이 소리내어 구어체로 읽으실 것. @#$% 이 글도 그렇게 쓰여졌음. 혹여 매우 신중하고 고상하신 독자들께서는 그냥 이 페이지를 건너뛰시기 바람. 그럼에도 읽고 나서 괴로워하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님. (ㅠ_ㅠ) 이 글은 더 이어질 세편의 글 중의 하나임. 소년소녀들의 불행에 공감하기 위하여 첫 번째 테제. (그냥 웃자고 하는 말) 지금 하나의 유령이 한국영화를 떠돌고 있다. 그건 귀여니라는 사이버 유령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겨레>에서 함께 영화에 관해서 (매주 화요일) 글을 쓰고 있는 세 사람이 모여서 지난 한해 한국영화에 대해 돌아보면서 이야기해보자고 하였다. (복종하지 말고 논하라!) 나는 이걸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허걱. 깡이 이빠이데쓰네!!”) 그냥 무심코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앗싸!) 언제나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걸 정색을 하고 이야기하건(과잉 진술의 사례들), 아니면 차를 마시면서 하건(과소 진술의 일상사), 혹은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술잔을 돌리면서 하건(과장 진술의 파티) 거기 무슨 차이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그건 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영화를 끌어안는 방식이 다른 것만큼이나 그것을 쳐다보는 자리도 다르다는 사실을 그날 알게 되었다(<한겨레> 2003년 12월19일치, “소통 넓어진 호러-사극, 금기와의 대면 기념적, 그런데 ‘현재’는 어딨지?” 인터넷 사이트에는 신문보다 좀더 긴 좌담이 실려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말하여졌으나 실리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김소영의 견해에 대해서 많은 부분 동의하고 있으며(특히 한국영화들의 트라우마의 협상을 놓고 벌이는 유희와 거짓 타협들을 주목하는 견해), 그만큼의 폭만큼 허문영의 생각이 나에게 새로운 문제의식을 준 것은 사실이다(양식미를 끌어안으면서 장르적으로 선회하고 있는 웰 메이드에로의 ‘낭만적’ 도착증). 하지만 거의 마지막 순간 김소영과 허문영이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진행하던 임범과 열심히 타이핑을 하던 김은형이) 불현듯 나를 지금 미친 거 아냐, 라는 표정으로 본 순간을 나는 잘 기억한다(이햇님이라면 ‘당근’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 미친 넘이 겁 대가리를 상실했나!?”). 어쩌면 그럴 각오를 하고 그 말을 꺼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긍정적으로, 창조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할 때였다. 그 순간의 침묵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조용함 속에서 그 무거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나를 ‘귀엽게’ 여기지 않았다. 사실 죽을 각오를 하고 꺼낸 말에 대해서 반격하는 대신 무시할 때 그건 나를 두번 죽이는 순간이었다. 아아, 그건 재수 털리는 순간이었다. (좌담을 정리하면서 사라진 말인데) 솔직히 말하면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나도(!) 환상적으로 지루했다(더 솔직히 말하면 정말 미안한 말인데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감독 이름을 아직도 외우지 못한다). 그건 그 전 해에 본 <엽기적인 그녀>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그 영화를 연출한 곽재용은 그 전부터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런 영화를 보면서 김소영과 허문영이 나를 볼 때의 시선과 똑같은 말을 스스로 중얼거렸(었)다. 이 사람들 미친 거 아냐? 여전히 나의 관심은 허우샤오시엔과 마뇰 드 올리베이라, 임권택의 신작이다. 혹은 왕가위와 구로사와 기요시, 지아장커와 가와세 나오미, 그리고 아핏차풍 위라세타쿤, 또는 홍상수와 김기덕의 새로운 영화가 (귀여니의 말투를 빌려서) ‘빨리 보고 싶어서 돼져버리겠다!!’ 그러나 그건 나의 관심이며, 이 영화들을 보면서 열광했던 이들에게 나의 명단은 알 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함께 우리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들과 우리 사이에 서 있을 서로의 서로에 대한 빗금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단지 세대간의 차이로만 환원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거기 버티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좀더 나의 진술을 허락한다면 그런 거절할 수 없는 인상은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거의 동시에 도착한 <옥탑방 고양이> 때문이었다. 그걸 텔레비전 앞에서 멍청히 바라보면서 정말 거의 모든 신들이 저게 말이 되나, 라는 심정으로 보았다. 그런데도 끝까지 보았다. 그런 다음에 귀여니의 소설을 그해 여름에 읽게 되었다(<그놈은 멋있었다>). 나는 귀여니의 소설을 문학적으로 평가할 만한 자리에 있지 못하다. 하지만 적어도 김윤식 선생께서 귀여니의 소설을 찾아 읽으셨을 것 같지는 않다(그런 다음 이런저런 인터넷 하이틴 소설을 읽었고, 일부는 다운받았다). 일부에서는 국내판 하이틴 로맨스 소설의 인터넷 버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다른 일부에서는 ‘그 아이들만의 리그’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 소설은 애매하지만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소년 소녀들을 심사숙고하게 만드는 매혹이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무시해버리고 싶은 기괴한 불쾌감을 동반하는 그 어떤 잉여의 처리에 대한 난처함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걸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앞에 던져진 것, 하여튼 피할 수 없는 것. 나에게는 거추장스럽지만, 그것에 대해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에 대해서 외면하면 안 된다. 나는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대면하고 있는 그 어떤 상징적 사건에 대해서, 그 사건이 떠안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 무시하면 그것은 즉각적으로 실재의 모습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이미 벌어진 사건은 그것을 못 본 척하려는 사회에게 그것을 욕망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유하-김성수 감독 <말죽거리 잔혹사> 대담 [1]

남자 고딩 잔혹사 유하와 김성수, 언뜻 보기에 잘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명의 영화감독은 사실 20년도 넘는 세월 동안 우정을 쌓아온 친구 사이다. 세종대 영문과 81학번 동기생인 둘은, 역시 동기생인 <흥부네 박 터졌네> <아줌마> 등의 안판석 PD와 함께 대학 시절 ‘반영화’라는 동인을 만들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유하가 1993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대실패 이후 거의 10년 만에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영화계에 돌아오는 데도 김성수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런 두 감독이 유하 감독의 신작 <말죽거리 잔혹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이야기는 혹여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될 수도 있었지만, 김성수 감독은 친구에 대한 진심어린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유하 감독 또한 그런 비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하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스크린 밖으로 빠져나와 20여년 전 그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로 향했고, 이내 추억의 향기가 자리를 가득 채웠다. 특히 두 감독 모두 고등학생 시절, 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교실보다는 뒷골목을 자주 찾았고, 국민교육헌장보다는 이소룡 영화의 대사를 더 잘 외웠던 탓에 ‘전문용어’들도 수시로 튀어나왔다. 유하 감독과 김성수 감독이 친구이자 동세대로서 나눈 영화 안과 밖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김성수 | 너 영화 잘 만들었더라. 깜찍해. (일동 웃음) <씨네21>에서 나보고 너를 만나달라고 하면서 너무 우호적으로 진행하지 말아달라 그러더라고. 그런데 그건 우리 관계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지. 왜냐하면 친구는 친구를 잘 인정하지 않거든. (웃음) 유하 | 아, 한국의 대표적 액션영화 감독 앞에서 민망하더라고…. 김성수 | 야, 액션 죽이더라. 나는 혹시, 네가 이 영화를 찍으면 액션에 대해서 나한테 뭘 물어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안 물어보더라고. (웃음) 영화를 보고서 아, 이렇게 찍으려고 그랬구나, 했지. 보니까 다큐멘터리를 찍었던데. (웃음) 사실적이더라고. 유하 | 옛날에 싸우던 게 다 생각이 나가지고…. 김성수 | 지금의 젊은 배우들을 데리고 어떻게 그 옛날의 디테일과 말투를 재현해냈는지 모르겠더라. 유하 | 나도 처음엔 막막했지. 애들이 전혀 몰라. 걔들한텐 사극이잖아, 사극. (웃음) 사실 제일 걱정했던 게, 너 같은 친구들이 보고 “아, 그거 옛날에 그거 아니잖아” 그러는 거였어. 그럼 문제잖아. 김성수 | 나 같은 친구들이라니. 나는 교회, 도서관, 학교밖에 몰랐어. (웃음) 근데 디테일이 진짜 대단하던데 왜 그렇게들 안 웃는 거야. 시사회장에서 나만 웃었어. 내가 하도 웃으니까 내 옆에 앉은 사람이 째려보더라고. 나한테는 이 영화가 타임머신이야. 어느 순간 영화 속에 확 들어가버리더라고. 애들이 하는 동작이나 말투나 제스처가 그때를 완벽하게 재현해내니까. 사실 그게 재현이 잘 안 되잖아. 영화들이 70, 80년대로 복귀해도 순도나 함량이 모자란데 이건 거의 퍼펙트하더라고. 78번 버스, 한남동. 야아, 그거는 진짜…. 그런 디테일들은 어떻게 복원시킨 거야? 유하 | 나는 기억력이 특별히 좋잖아. 다 기억으로 한 거지. 요즘 애들이 어떻게 알겠어. 나이트클럽 같은 건 너랑 얘기도 했고. 김성수 | 나이트클럽이라니? 난 아까도 말했지만, 교회,도서관만…. (웃음) 유하 | 허, 솔직하게 좀 드러내. 김성수 | 초반에만 놀았어, 초반에만. 2학년 초까지. 유하 | 사실, 배우들 데리고 리허설을 많이 했어. 거의 보름 정도. 일단 내가 옛날 얘기를 많이 해주고, 말투나 억양도 알려줬지. 자료 테이프도 보여주고. 사실 70년대를 만들기가 참 애매한 게, 자료가 없어. 미술작업 하기도 힘들고. 근데 그 시대에 관해 아는 사람이 현장에 나밖에 없는 거야. 진짜 힘들더라. 학교는 남자 마초를 키우는 곳 김성수 | 이 영화 안에 네 모습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더군. 유하 | 현수란 캐릭터에 내가 어느 정도 투영된 건 사실이야. “선방(선제주먹)을 날려라”라는 우식이 대사 있잖아. 그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 된 친구가 영동중학교 시절 친구였어. 내가 전농중학교에서 전학을 딱 갔는데 반에 앉아 있는 애들이 다 시커먼 어른인 거야. 그중 한명이 우식이의 모델이 된 건데 그 친구가 싸움을 굉장히 잘했어. 한번은 내가 어떤 애한테 맞으니까 그 친구가 와서 그러더라고. “왜 그렇게 덩치 큰 놈이 맞냐, 선방을 날려라. 애들 싸움은 먼저 날리는 놈이 이긴다”라고. 그런데 넌 싸움 잘했잖아. 대학교 1학년 문무대 갔을 때 한양대 체육과 애들이랑 붙어서 1 대 8로도 싸우고. 김성수 | 뒈지게 맞았지. (웃음) 유하 | 우리 때의 중·고등학교 교육이라는 건, ‘남자’, ‘마초’ 이런 걸 키워내는 거야. 난 덩치에 맞지 않게 시도 쓰고, 라디오 방송에 엽서 보내고, 집에서 우표 수집하고, 이러던 여성적인 사람인데 학교가 나를 내버려두지 않더라고. 그래서 나도 선방을 날리기 시작한 거지. 고등학교 들어가서 실제로 문제아가 됐고. 정학도 두번씩이나 맞고. 우리 교육이 여성성을 내버려두지 않아. 그래서 만들게 됐어, 이 영화를. 그러니까 내 친구들이 인물에 다 투영돼 있지. 성수 같은 애들도 그렇고. 네가 나랑 굉장히 다르지. 마초적이고. (웃음) 김성수 | 이 새끼가…. (웃음) 유하 | 아, 그거 있다. 우식이가 <사망유희> 흉내내는 장면(영화 속에서 우식이 반 친구들이 자신을 둘러싸게 하고서는 하나씩 해치우면서 이소룡을 흉내내던 장면). 니가 중학교 때 그랬댔잖아. 지가 이소룡이고 다른 애들은 사무라이야. (웃음) 김성수 | 네가 말한 그 당시 풍경 때문에 남자들은 다 힘으로 순위가 매겨졌지. 사회에 나가서 사람 구실 할 애들, 공부 잘하고 배경 좋은 그런 애들과 그렇지 않은 애들에 대한 구분이 정말 명료했어. 어떻게 아느냐. 선생이 다르게 대하는 게 너무 명확하거든. 공부 못하고 집안 안 좋고, 어리버리한 애들한테는 ‘비인간적으로 대한다’는 말조차 인간적으로 묶일 만큼 그렇게 심하게 애들을 함부로 대했던 거 같아. 그러니까 저항감이 생기지. 근데 문제는 그런 저항감이 똑같이 폭력의 서열로 매겨지고 제압됐었다는 거야. 심지어 공부를 좀 하는 애들도 반 안에서 벌어지는 남자들의 세계에 편입 안 할 수가 없었다고. 수업시간말고는 완전히 동물의 왕국이지 뭐.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2]

꿈과 학살이 공존하는 네버랜드 어쩌면 호건은 원작에 충실하자는 가장 단순한 원칙만을 따랐을지도 모른다. 그 원칙을 지킨 사람은 많지 않았다. <피터팬>은 1924년작 무성영화, 1953년과 2002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몇 차례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TV영화, 스티븐 스필버그의 <후크> 등으로 각색됐다. 후일담을 제외한다고 해도 이 많은 <피터팬>은 잃어버린,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을 향한 향수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열두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누구나 행복해지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그러나 네버랜드는 독약과 학살과 질투도 있는 섬이었다. 자라지 않는 소년과 “미안해, 난 어른이 되어야 해”라고 말하는 소녀가 정을 나눈 비극의 섬이 웬디는 엄마 달링 부인이 가진, "오른쪽 끝에 키스가 숨어있는 입술"을 동경한다. 그러나 웬디는 이제 자라야 할 시간이라는 아빠의 말을 듣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기도 했다. 그 충돌과 모순은 언어와 사물의 관계에 집착하는 루이스 캐롤의 <앨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피터팬>을 몇번이라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텍스트로 만들었다. <지금 혹은 네버랜드, 피터팬과 영원한 젊음의 신화>의 저자 앤 요먼은 “피터팬과 웬디 사이엔 로맨스가 있다. 그것은 사춘기 이전의 사랑이라 매혹적이다. <폭풍의 언덕>의 히드클리프와 캐서린처럼. 그들은 어린 시절 멋진 열정과 기쁨과 삶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른의 세계엔 그런 것들이 차지할 자리가 없다”라고 쓰기도 했다. 그리고 판타지 문학의 초엽을 장식하는 소설 <피터와 웬디>는 20세기 말엽, 성인들의 비극적인 로맨스로, 혹은 제2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지나간 런던에서의 황폐한 판타지로,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다. 이처럼 피터팬은 100년 동안, 배리가 받지 못했던 사랑을 차지해왔다. 그러나 피터팬이 스크린에서 목소리를 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화는 연극과 달리 진짜 네버랜드처럼 보이는 공간을 내놓아야 할 텐데, 지금까지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피터팬>의 프로듀서 루시 피셔가 몇 차례 좌절을 겪었던 건 오히려 다행이었을 것이다. 피셔는 1979년 원작의 판권을 사려고 했지만, 당시 몸담고 있던 프랜시스 F. 코폴라의 영화사 조트로프가 파산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고도 프로젝트는 매년 미뤄졌다. 피셔는 “이젠 테크놀로지가 존재한다. 우리는 사람을 정말 날게 할 수도 있고, 20년 전이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네버랜드를 마음껏 상상할 수도 있다. 테크놀로지는 우리가 영화를 만들지 못했던 세월 동안, 매년 기하학적으로 발전해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피터팬>은 쉽지 않았다. 콜럼비아와 유니버설, 레볼루션 스튜디오가 합작을 하고서야 이 1억달러짜리 영화는 요정의 불빛을 싣고 크리스마스를 밝힐 수 있었다. 판타지영화 산업을 발판 삼아 영국 영화잡지 <엠파이어>는 그 동력을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판타지영화를 다시 한번 거대한 산업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두 시리즈는 판타지영화가 제작비에 걸맞은 관객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LA타임스〉 역시 “<반지의 제왕>의 성공은 요정 이야기에 무모한 모험을 덧붙인 배리가 옳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배리는 글을 쓰기 전에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섬세하게 맞추었고, 다양한 연령의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C. S. 루이스의 전설적인 판타지 <나니아 나라 이야기> 시리즈가 첫 번째 영화제작에 들어가는 것, 로알드 달의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다시 한번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할리우드는 지금 십대 초반 관객에게 주목하고 있다. <프린세스 다이어리> <왓 어 걸 원츠> <워크 투 리멤버>는 스크린에서 소외된 열서너살 소녀들을 끌어들여서 성공을 거두었다. 〈LA타임스〉는 “<피터팬>은 로맨스를 들려준다. 피터는 네버랜드 소녀들이 모두 동경하는 대상이다. 웬디와 팅커벨, 그리고 원작에선 인디언 공주 타이거 릴리까지. 그런 로맨스는 십대 소녀들의 영역이다”라고 말하면서 이 영화가 또 다른 관객층을 개척할 수 있다고 암시했다. 막상 선을 보인 <피터팬>은 박스오피스 7위로 데뷔하는 치욕을 겪었다. 그러나 박스오피스 전문가 폴 데가라베디언은 “이즈음 개봉하는 판타지영화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그늘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 <피터팬>은 극장 수입보다는 DVD와 비디오 판매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살아 움직이는, 그것도 매우 아름다운 피터팬을 볼 수 있다는 건 놓치고 싶지 않은 경험일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100년을 살면서도 시들지 않은 소년, 산과 들판을 지배하는 그리스 신화의 신 ‘판’(Pan)의 이름을 가진 소년이므로. 그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해 개봉하는 조니 뎁의는 <피터팬>을 쓰던 무렵 배리에게로 돌아가는 영화다. 배리도, 그가 아낀 존과 마이클과 피터 레웰린도, 모두 조금씩은 피터팬이었으므로, 이 영화 역시 일종의 <피터팬>이 아닐까. 배리는 “네버랜드는 모든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무언가로 채워넣은 나라”라고 말했다. 세상의 아이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네버랜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별을 향해 아침이 올 때까지 날아가면 나오는 어딘가에.

[LA] <아메리칸 스플랜더> 별 다섯?

수상의 시즌을 맞아 각종 단체에서 2003년 최고, 최악의 영화들을 잇따라 발표하는 가운데, ‘LA영화평론가협회’가 지난 1월7일 <아메리칸 스플랜더>(사진)를 최우수 작품으로,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을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했다. 평론가들에게 보내는 아카데미 시상식 심사용 스크리너 분쟁이 지속되는 바람에 지난해 12월에 예정돼 있던 투표가 아예 취소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발표된 결과는 앞서 발표된 다른 협회들의 심사 결과와 흥미롭게 맞물려 아카데미 시상식의 판도를 가늠케 한다.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반지의 제왕> 등의 굵직굵직한 블록버스터가 유난히 많았던 지난해의 상황을 고려할 때, <아메리칸 스플랜더>의 최우수 작품 선정은 의외일 듯하다. 그러나 셰리 스프링어와 로버트 풀치니, 두 다큐멘터리 작가의 이 장편 데뷔작은 이미 지난해 선댄스와 칸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일 뿐 아니라, 전미비평가협회의 2003년 최고의 영화로 뽑히기도 해 탄탄한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확고부동한 작가의 반열에 올린 <미스틱 리버>와 더불어 지난해 평론가들의 절대 지지를 받은 작품. 브로드캐스트영화평론가협회와 뉴욕평론가협회가 월계관을 씌운 <반지의 제왕>은 프로덕션디자인상을 수상하는 데 그쳐 LA에서만큼은 제왕의 자리를 내주었다. 그 밖에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빌 머레이가 최우수 남우주연으로 선정되어 지난해 거의 모든 평론가상을 휩쓰는 노장의 저력을 과시하는가 하면, 최우수 여우주연은 의 나오미 왓츠에게 돌아갔다. 최우수 남우조연에는 각각 <모래와 안개의 집>의 쇼레 아그다쉬루, <러브 액츄얼리>의 빌 나이가 선정되었다. 이외에 독립/실험영화 부문에서, LA의 어제와 오늘을 다룬 톰 앤더슨의 다큐멘터리 <로스앤젤레스 즐기기>와 팻 오닐의 디지털 작품 <디케이 오브 픽션>이 수상한 점이 눈길을 끈다.

솔로에게 권하는 “이 시간엔 이 비디오”

황금 연휴를 잘 보낼 수 있는 나만의 비디오 추천 베스트 7을 공개한다. 솔로들에게 권하는 “이 시간엔 이 영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대별로 사랑영화만 본다면 나름대로 애틋하며 연휴가 보람 있을지도 모른다. 연애영화들만 모았다.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사진) 잠에서 깨어 아침밥을 먹은 뒤, 이도 안 닦고 다시 드러누워 감자 칩 물고 볼 수 있는 영화.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에 대한 두 남녀의 끝없는 논쟁이 사랑스럽다. 메그 라이언의 매력과 빌리 크리스털의 특이한 성격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남자친구와의 선 넘기가 인생의 숙제인 솔로들에게 더없이 좋은 가이드다. 친구면 어떻고 애인이면 어때, 그가 남자고 내가 여자라서 만난 인연을 맘껏 누릴 수 있는, 그래서 16년이 지나도 새록새록한 느낌의 영화. 오전에 이 영화를 보며 새삼스럽게 힘을 낸다 오래된 남자친구 몇 있지만 늘 이도 저도 아닌 상태라면 더더욱 마음을 두드린다! 1시에서 3시 사이! 〈브리짓 존스의 일기〉 외출도 안하냐는 가족들의 비아냥을 무시하고 점심을 든든히 챙겨먹은,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편안한 시간이다. 자, 새롭게 전의를 불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고 이 영화에 접속하라. 노처녀가 총각한테 시집가기는 길가다가 총에 맞아 죽는 것보다, 번개에 맞아 죽는 확률보다 적다고 누군가가 말도 안되는 비유를 들며 세상의 노처녀들을 열받게 했단다. 노처녀라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을 때, 무엇보다 남의 몸처럼 두껍게 변해가는 자신이 싫어지기 시작할 때, 나도 그랬고 또다른 ‘그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낄 때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브리짓에게 마음을 열자. ‘이심이 전심’이라고 그냥 이유없이 권하고 싶은 ‘마음 살짝 아픈 코미디’ 영화다. 3시에서 5시 사이! 〈봄날은 간다〉 실연당하는 이야기니까 꼭 밤에 이불 뒤집어쓰고 봐야 한다는 편견을 버린다. 내가 나를 두번 죽이는 그런 주장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이별, 실연의 상처를 모르는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으며 용기도 못 내보고 사랑을 멀리하는 사람과는 커피한잔 마시는 것도 시간 낭비라고 평소 생각해 오던 성격이라면 대낮에 이 영화를 즐겨보자. 그리고 저 유명한 명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를 곱씹어 본다. 변하니까 사랑이라는 것과 그래서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또 다른 사랑이라고 알려주는 지혜로운 영화다. 그리고 실연은 한번쯤 견디고 이겨내면 내성이 생기는 법, 봄날은 곧 온다는 마음으로 그동안 못잊고 헤매게 한 상대를 보내버리기에 딱 좋은 영화다. 5시에서 7시 사이! 〈슈렉〉 저녁 먹기 전 그래도 연휴니까 가족들과 시간을 공유하는 의미에서 눈 질끈 감고 함께 〈슈렉〉 정도는 봐주는 게 예의다. 잘생긴 남자만이 구원은 아니라는, 공주가 원래 예뻤다는 고정관념을 깨준 이 영화는 너무 많은 통쾌함을 주는 영화다. 할리우드의 놀라운 기술력에 침 흘리게 되고 건강하고 진보적인 하나의 사랑영화를 발견하는 기쁨도 얻을 수 있다. 상대의 번듯한 눈코입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에 대한 배려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사랑에 대한 색다른 해석과 시도를 느낀다면 연휴 뒤 사람 고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 8시에서 10시 사이! 〈첨밀밀〉 정규방송을 보는 가족들과 떨어져서 나만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인연을 못 만났을 뿐이라고 주장해오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더 각별하다. 특히 앞으로 만날 누군가는 어디 있을까 너무 멀리만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연인을 생각하며 본다. 만나고 헤어지고 아득하고 느긋하고도 침착하게 연기하는 장만옥과 여명의 연기가 두고두고 가슴을 적셔 줄것이다.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 〈질투는 나의 힘〉 모두의 간섭에서 멀어진 시간이 다가왔다. 가장 보고 싶은 영화를 가장 여유 있게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연상, 연하, 질투, 오뎅, 사랑에 대해 차분하고 조용하게 이야기하는 감독의 성숙된 시각을 만날 수 있다. 질투하고 싶어도 그럴 대상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 다가올 남자들과 복잡한 미래를 즐겁게 조망해 보면 된다. “남자는 어릴수록 좋은가, 나이가 많을수록 좋은가!” 등등의 행복한 고민과 함께 멋진 연애에 대한 끝없는 상상을 펼칠 수 있다. 이런 영화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성인인 나 자신이 멋지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 〈나인 하프 위크〉 누구도 깨어 있지 않은 시간, 무엇이든 볼 수 있는 은밀한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화면의 촌스러움이 극에 달할 때까지 〈나인 하프 위크〉를 주장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아무리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어떤 영화가 에로틱하고 자유로워도 여전히 킴 베이신저, 미키 루크를 추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느낌 때문일 것이다. 비밀스럽고, 남다르게 섹시해지고 싶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퇴폐적인 사랑의 구속이 궁금할 때 이 영화를 만나면 남다른 기분이 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처음 느낌 그대로인 영화!

설특집. 설연휴 볼거리, 읽을거리 [2] - 음반

영화계의 소문난 음악 마니아 9명이 2003년 최고의 음반을 꼽았다. 하지만, 이 리스트는 연말이면 각종 음악매체에서 발표하는 ‘올해의 음반’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들이 뽑은 최고의 음반은 ‘음악성’에 의해 선정된 게 아니라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감흥과 사연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인 각각의 성격 또한 드러나는 2003년 ‘나만의 베스트 앨범’ 9장, 아니 8장(<킬 빌: Volume1> O.S.T는 두명이 지목했으므로)을 소개한다. 황홀한 오리엔탈리즘 〈Wild Serenade〉I DuOuD I 국내 미발매 정성일/ 영화평론가 사실 나는 21세기에 들어서서 중동 음악에 빠져들었다. 그중에서도 (내 맘대로 부르자면) 알제리 테크노와 터키 가요들, 그리고 이집트 뽕짝, 혹은 이라크 포크송, 혹은 북아프리카 하우스에 심취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어느 음반을 사야 할지 도무지 가이드를 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영화제들을 돌아다닐 때마다 산 중동 음악 음반들이 어언 300장이 넘는다. 그중에서 적지 않은 음반들이 꽝(!)이다. 그러다보니 음반 가게에서 표지만을 들여다보면서 정말 고민에 빠진다. 그런데, 지난해 칸에 갔을 때 음반점에 들어가 역시 똑같은 표정으로 중동 음악 코너에서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보던 (아마도) 중동계 청년이 내게 DuOuD의 <와일드 세레나데>를 내밀었다.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니까 싱긋 웃으면서 죽인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무 이의를 달지 않고 이 음반을 샀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집에 와서 이 음반을 틀었다. 두명의 우드 연주자 메흐디 하다브와 스마DJ가 벵상 세갈(일렉트릭 첼로), 시릴 아테프(드럼), 피에르 프뤼샤르(일렉트릭 드럼), 네딤 날방토루(바이올린), 토마 오스트로비에스키(타악기)와 함께 테크노 세션을 벌이는 이 음반은 11곡의 신기한 연주가 담겨 있다. 물론 모두 걸작은 아니다. 솔직히 조르주 모로도가 영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위해 작곡한 <추적>을 하우스 버전으로 편곡한 다섯 번째 트랙은 따분하다. 하지만 5분34초 동안 거의 ‘죽여주는’ <잔지바>와 7분4초 동안 황홀하게 진행되는 <율리시즈의 귀환>은 나에게 올해의 싱글이다. 그걸 들으면서 속으로 낄낄거렸다. 사실 이게 오리엔탈리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글로벌리즘의 시대에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내 삶에서 멀리 떨어진 저 머나먼 중동의 음악을 들으면서 유포리즘의 엑스터시에 빠져든다. 제국의 시대. 무차별하게 중동의 음악을 음반으로 만들고 있는 저 유럽의 제국에서 음반을 사들고, 미국의 자장권 안에서 분개하면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정부의 태도를 경멸하면서, 그러면서 이 음반을 듣고 있는 나의 정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세상은 그렇게 모든 것을 결정하기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아, 21세기에 음악을 듣는다는 그 취미의 행위는 내 안방을 새로운 식민지로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우울함의 바다에 풍덩 〈Moto.Tronic〉 I 류이치 사카모토 I 소니뮤직 발매 박해일/ 영화배우·<질투는 나의 힘> <살인의 추억> 등. 현재 <인어공주> 출연 중 류이치 사카모토의 베스트 앨범 을 추천합니다. 첫곡 는 초반에 피아노의 평온한 멜로디로 시작하여 현악기 선율과 보컬의 조합에 우울한 분위기를 한껏 더 우울하게, 또는 그 우울함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느껴지는 듯합니다. 노래 후반부는 관악기와 현악기의 웅장한 조합에, 서양적인 클래식과 동양적인 정서의 화음이 어울려 깔끔한 마무리로 소화됩니다. 물론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좋습니다. 우연히 그의 음악을 듣게 됐는데 프로필을 보니 영화음악에도 상당한 경력을 과시하고 있더군요. 그의 기사에도 나와 있듯 ‘실험’적인 경향이 돋보이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읽을 때나 어떠한 감상에(?) 젖어 있을 때 그의 음악을 들으며 달래보곤 하죠…. 한번 들어보실래요…. 저는 음악을 특정한 장르로 단정짓고 듣지는 않습니다. 또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 앨범은 그저 어디까지나 제가 개인적으로 듣는 음악 중 하나일 뿐입니다. 뭐 ‘강력추천’은 아닙니다만, 갑신년 새해를 차분하게 시작하는 데는 좋을 듯하네요…. 성모 마리아가 노래를 불렀다면 〈Ninna Nanna〉 I 몽세라 피구에라스 등 I 수입음반 박찬욱/ 영화감독·<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 등 호르디 사발이 기획한 앨범 <닌나 난나>(Ninna Nanna). 무슨 뜻인고 하니 이탈리아어로 ‘자장자장’. 아랍과 유대민족의 민요가 사이좋게 나란히, 16세기의 윌리엄 버드부터, 아르보 페르트가 이 앨범을 위해 새로 작곡한 곡까지, 동서고금의 자장가들만 모았다. 가장 오래된 노래 장르일 게 분명한 자장가는, 아기가 생애 최초로 접하는 음악/이야기의 예술 형태이다. 동시에 엄마들의 그만 나 좀 쉬게 해달라는 애원이고, 그런데 이 남자는 왜 어서 안 오느냐는 푸념이고, 제 어린 시절로의 회귀이다. 때로는 아기보다 먼저 깜빡 잠드는 엄마들의 노동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것은, 요람 흔들흔들 엉덩이 토닥토닥의 리듬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2인 무곡일 것이다. 모든 엄마/할머니들은 안다, 수면을 강요하는 노동의 단계를 지나 평화로운 동반 휴식의 경지에 들지 않고는 결코 아기는 잠들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이는 모든 약자를 위한 모든 약자의 노래다. 사실 이것은 사발보다는 그의 아내 몽세라 피구에라스를 위한 앨범이다. 남편의 반주에 실려 흐르는 그 음성이 어떻게나 따뜻한지, 성모 마리아가 노래를 불렀다면 바로 이랬으리라고 믿을 만하다. 특히, 본래 하피스트인 딸 아리아나 사발과 함께 부르는 노래 <마레타>는 정말이지 울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독자여러분, 음반 구하기 힘들다고 불평 마시라, 내 다음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들려드릴 테니. 사람 많은 극장에서 눈물 좀 흘린다고 부끄러운 일 아닌 것이, 어쨌든 ‘자장가’ 아닌가. 한국말로 울리는 펑솔 〈Sound Renovates A Structure〉I 아소토 유니온 I 서울음반 발매 김지운/ 영화감독·<장화, 홍련> <반칙왕> 등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누군가가 올려놓은 뮤비 한편을 클릭하게 되었다. 슬로한 전주가 흐른다. “꽤 근사한걸” 하는 필이 온다. 그리고 펑키하면서도 솔풀한 보컬이 시작된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부터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화들짝 놀라거나 하던 일을 멈추거나 주위 사람들이 누구야? 하면서 말을 걸어올 거다. 거의 본고장 수준의 펑솔(funky& soul)보이스가 들려오는데 이게 웬걸? 한국말이다. 나는 거의 넋을 잃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들이 안내하는- 쓸쓸한 도시적인 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이 촉촉히 녹아져 내려앉은 듯한- 솔발라드의 세계를 감동스럽게 여행하고 있다. 아… 내 표현력이 구차스러워진다. 아소토 유니온의 첫 번째 앨범. 그리고 〈Think About’chu〉. 이미 그들은 T. 리썅, CB Mass, 블랙아이즈소울드 등 내가 좋아하는 힙합&솔 아티스트들의 주옥같은 곡들을 프로듀싱하거나 세션을 했던 정평이 난 펑솔마스터였고 그 명성은 이미 국내외를 넘나들고 있었다. 구차한 설명 더 필요없이 무조건 음반 한장 구입해서 체험해보시라. 장난 아니니까. 이들의 스트리트 잼 공연을 보신 분들이 부럽다. 록의 원초적 본능 〈Elephant〉I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I 록레코드 발매 류성희/ 미술감독·<살인의 추억> <피도 눈물도 없이> 등 라디오 헤드의 와 블러의 새 앨범 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유는, 물론 2003년 한해에 평단과 록팬들에게 과대하다 싶을 정도로 사랑받은 앨범이기도 하지만, 이 복고적 미학의 음반은 내게 사춘기 시절 매료당했던 순수한 록음악 듣기를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록의 ‘정신’적 측면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묻혀서 점차 변질되어 모두가 너무 예술가연하거나, 기술적 탐구에 치우쳐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속에서 록이 가진 원초적인 감흥, 그 형식적 ‘원형’을 복원한 공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과거의 록에 많이 기댄 이들의 음악이 얼마만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다음 앨범의 행보를 몹시 기대하게 만드는 앨범임은 분명하다. 하드록, 펑크, 블루스, 포크를 마구 섞어내서 다듬어지지 않은 듯 투박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레드 제플린에 대한 노골적 향수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퀸, 밥 딜란, 올드스쿨 블루스에서 받은 영향으로 한껏 점프한다. 레코딩이나 편집을 할 때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데 이것이 이들의 음악을 좀더 날것처럼 생생하게 들리게 하는 듯하다. 더욱이 여동생이자 드러머 멕이 부르는 노래들은 은근히 유머러스함이 배어나와 이들이 사랑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길게 얘기할 필요없이 와 같은 곡을 그저 들어보자. 로큰롤의 ‘로(raw)한’ 즐거움으로 행복해질 것이다. 오랜만에 우리에게 돌려준 록의 원초적 감흥에 고마워할 것이다. 정말로 타란티노 영화의 음악이구나! <킬 빌: Volume1> O.S.T I 워너뮤직 발매 최진성/ 영화감독·<누구를 위하여 총을 울리나> <그들만의 월드컵> 2003년 나를 가장 흥분시켰던 음반은 공교롭게도 모두 영화의 O.S.T이다. 과 <킬 빌>.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베스트 앨범은 <킬 빌> O.S.T(에미넴, 미안해∼). 타이틀 크레딧에 나오는 〈Bang Bang〉부터 시작해서, <사무라이 픽션>의 호테이 도모야스가 만든 로큰롤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 뜬금없는 재즈와 플라멩코 등 그야말로 장르를 넘나드는 명곡으로 가득한 크로스오버짬뽕앨범. 산뱀이 브라이드를 암살하러 갈 때 부르던 소름끼치는 휘파람 소리인 버나드 허먼의 〈Twisted Nerve〉는 지금도 밤길을 혼자 걸을 때면 스멀대며 내 등과 뒤통수를 타고 심장으로 짜릿하게 내려온다. 영화의 중간마다 등장하는 짧은 곡들은 존경해 마지않는 힙합 패밀리 우탱 클랜의 RZA가 만든 곡들. RZA는 짐 자무시의 <고스트 독>에서도 고스트 독이 뉴욕의 밤길을 처연하게 걸을 때마다 깔렸던 죽이는 힙합을 들려줬는데, <킬 빌>에서는 이래저래 ‘깜찍’한 음악으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무엇보다 가장 꽂혔던 음악은 엔카 <살육의 꽃>. 브라이드가 오웬의 머리를 벤 뒤 흘러나왔던 이 곡은 스즈키 세이준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는 가슴 절절한 감동의 노래였다. 오웬이 브라이드에게 칼을 맞고 쓰러진 뒤 던진 마지막 대사 ‘정말로 하토리 한조의 칼이구나’처럼, 내가 이 영화의 음악들을 들으면서 던진 탄성. ‘정말로 타란티노 영화의 음악이구나!’ 장르의 크로스로드 <킬 빌: volume1> O.S.T I 워너뮤직 발매 최호/ 영화감독·<후아유> <바이준> <재키 브라운>이 다이렉트한 선곡에 기초해서 만들어낸 오리지널 흑인 펑키의 향연이었다면, 이번엔 조금씩 뒤틀린 관점의 선곡과 작곡으로 다중 장르 하이브리드의 경쾌한 향연이다. RZA의 갱스터 랩은 야쿠자 여두목 오렌이시에게 송시를 읊고, 후카사쿠 긴지의 72년작 <의리없는 전쟁>은 Hotei에 의해 동명제목의 디스코-테크노로 승화되며, Zamfir의 플루트는 브라스가 가미되면서 세르지오 레오네의 비장한 웨스턴으로 탈바꿈한다. 기발하고 천재적인 타란티노식 퓨전요리라고 표현할 수밖엔…. 자-, 시디를 넣고 귀를 기울이시라-. 1번 트랙…. 왼쪽 스피커에서 음울한 기타가, 오른쪽 스피커에서 낸시 시내트라가 ‘뱅뱅~’ 하며 당신의 머리와 가슴을 마취해올 것이다. 이미 멋진 신세계로의 트립은 시작된 것이다. 나에게 안식을, 영화에 영감을 〈Greatest Hits〉I 푸지스 I 소니뮤직 발매 홍경표/ 촬영감독·<태극기 휘날리며> <지구를 지켜라!> 등 촬영에 들어가기 전, 내게 어떤 음악을 들어볼 것을 권하는 감독들이 있다. <하우등>의 김시언 감독은 <바그다드 카페>의 <콜링 유>를 권하며 그런 느낌을 원했고, <챔피언>의 곽경택 감독은 국악을 들려주면서 바다, 새, 태양 등의 이미지를 그런 리듬으로 찍어달라고 주문했다. <지구를 지켜라!> 때는 갖가지 버전의 <오버 더 레인보우>를 들어야 했다. 록, 발라드, 재즈 등 다양하게 해석된 <오버 더 레인보우>를 들으며, 영화작업에서 촬영감독 또한 그런 해석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떠올랐다. 감독이 작곡가에 보컬이라면 촬영감독은 그 분위기를 맞추는 리드 기타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고. 지난해 푸지스의 음악을 즐겨 듣게 된 데에도 분명 작품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R&B, 힙합, 레게 등의 요소를 내포했지만 그 어느 장르에도 환원되지 않는 이들의 음악은 나를 편안하게 해줬다.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푸지스의 10년 가까운 활동을 정리하는 이 앨범을 듣자니 뭔가 달랐다. 음악이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달라진 것 같았다(하긴 베스트 앨범인데 뭐가 다를 수 있겠나).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장의 분주함에서 벗어나고자 함이었을까. 이유야 어쨌건, 확실한 건 나의 무엇인가가 바뀌었다는 것이고 그들의 편안한 음악 속에서 안식을 얻었다는 점이다. 아,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은 무슨 음악을 권했냐고? 그는 내 생일날 선물로 흘러간 팝송을 모은 CD를 줬다. 그는 내게서 아름다운 멜로디와 풋풋한 감성의 올드 팝송처럼 안정적인 영상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여자, 날 울리네 〈Behind Time〉I 한영애 I 서울음반 발매 심보경/ 프로듀서·<바람난 가족> <후아유> 등 2003년 6월26일 <바람난 가족> 믹싱을 다시 하다. 정말 죽을 맛이다. 사무실에서 인상 쓰고 있는데 신철 PD가 <후아유>와 〈YMCA야구단〉을 같이 작업했던 방준석 음악감독이 전해주랬다며 시뻘건 표지의 CD를 내민다. 한영애? 게다가 트로트라니 칙칙하겠군. 좋은 컨디션에서 들어야지. 2003년 7월16일 드디어 최종 프린트가 나오고 하루 동안의 휴가.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뚫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컨디션 체크하며 고민하다 한영애의 음반을 꽂다. <목포의 눈물> <선창> <외로운 가로등>…. 내 20대를 사로잡았던 한영애의 마른 목소리와 할머니 젊으셨을 그 시절의 노래들과 2003년 영화로 음악으로 만났던 젊은 음악인들, 이렇게 다른 시간들이 감히 ‘시간을 넘어서’ 가슴을 때린다. 쏟아지는 빗속에 차를 세우고 재즈와 블루스에 실린 뽕짝을 들으며 시간여행을 하던 아줌마, 음악이 주는 충만감에 차 안에 웅크려 눈물을 흘리다. 2003년 12월26일 연극 <비언소> 관람 중에 <씨네21> 전화 받다. 올해의 베스트 음반을 뽑아달란다. 순간 뮤즈와 타란티노와 한영애를 떠올리다. 그러다 그 여름의 차 안을 기억해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