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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피플] '가필드 더 무비' 배우 이장우, 유머의 달인처럼

주황빛 털에 커다란 입, 뛰어난 먹성과 나른한 성격을 지닌 가필드는 세계에서 유명한 고양이 중 하나다.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을 지닌 능구렁이 같은 가필드가 18년 만에 <가필드 더 무비>로 돌아왔다. 집 밖을 나서기 극도로 싫어하는 고양이 가필드의 모험기에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팜유 라인’으로 인기를 끈 배우 이장우가 한국어 목소리를 녹음했다. 라사냐 하나에도 금세 행복해지는 가필드에게서 삶의 행복을 발견했다는 이장우 배우를 만나 <가필드 더 무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그간 드라마와 뮤지컬을 오가며 연기 활동을 했지만 애니메이션 더빙은 처음이다. = 쉽지 않았다. 증폭된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하는 주말드라마와 비교할때 더빙은 다른 차원의 기술이었다. 평소 상대 방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장면도 더빙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 특히 애니메이션 더빙은 조금이라도 극 중 캐릭터와 감정적인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어색해진 다. 여태 쌓아온 연기의 노하우를 버리고 처음 부터 다시 배워야 한 시간이었다. - 원작에서는 배우 크리스 프랫이 호탕하고 걸쭉한 목소리로 능청스러운 가필드를 연기했다. 본인이 연기한 가필드는 어떤 매력이 있나. = 처음 녹음을 할 때 크리스 프랫의 가필드를 염두에 두고 낮은 저음으로 능청스러움을 연기했다. 첫 녹음본을 듣자마자 충격을 받았다. 목소 리와 영상이 아예 따로 놀더라. 걸쭉하고 낮은 목소리로 가필드를 표현하는 것이 한국어 더빙 에선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원작의 크리스 프랫과 달리 톤을 한층 더 올려서 쾌활한 나만의 가필드를 만들었다. 나의 가필드는 에너지가 넘친다. 악의가 하나도 없는 무해한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 연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최대한 마음속의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내려고 노력했다. - <가필드 더 무비>엔 가필드가 노래 부르는 장면도 등장한다. 뮤지컬 <레베카>에 출연할 정도로 뛰어난 가창력을 발휘할 기회였을 것 같다. = 가필드가 부르는 노래는 우유 농장의 CM송이 다. 왕년에 농장의 마스코트였던 황소 오토 앞에서 주제가를 부르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부끄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쭈뼛쭈뼛 흥얼거리다 자기 흥에 못 이겨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끝이 난다. 나 역시 흥하면 빠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온 가족이 노래를 좋아했다. 노래방에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나 할머니도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 했다. (웃음) 가필드가 노래하는 장면에 함께 빠져들어 신나게 연기했다. - 영화 속 가필드의 능청스러운 모습과 <나 혼자 산다>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닮았다는 반응이 많다. 본인이 느끼기에 어떤 점이 가필드와 유사한가. = 내겐 더 큰 행복을 꿈꾸며 계속 미루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가필드도 항상 순간의 감정에 집중하는 캐릭터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밤에 야식을 먹는 등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산다. 그런 점에서 가필드와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 원작 만화처럼 <가필드 더 무비>도 미국식 유머가 돋보인다. 한국 관객들에게 미국식 유머를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그게 가장 어려웠다. 미국식 유머를 한국어로 번역해 놓았을 때 아예 맥락이 달라져버려 특유의 맛이 안 살더라. PD님이 최대한 미국식 유머를 빼고 한국인들이라면 알 법한 유머 코드를 채워넣는 데 주력했다. 그런 장면들은 녹음 과정에서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도 영화가 개봉하면 바뀐 유머들이 잘 통할지 너무 궁금하다. 몰래 극장에 가서 객석에 앉아 웃어야 할 타이밍에 같이 웃어볼까 고민 중이다. - <가필드 더 무비>는 먹보라는 가필드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한다. 요리 실력으로 정평이 난 배우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음식이 있다면. = 라사냐를 꼽고 싶다. 전에도 몇번 먹어봤지만 크게 인상에 남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필드 더무비>를 보면서 가필드가 라사냐를 맛있게 먹는 모습에 당장 요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 라. 레시피를 찾아보니 종류가 다양했다. 김치 찌개처럼 속 재료를 바꾸면 변형 레시피를 무한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라사냐는 집에 사람들이 놀러 올 때 크게 만들어서 나눠 먹기 좋은 음식이다. 다 같이 모여 좋은 시간을 보낼 때 나만의 레시피를 개발해 만들어볼 생각이다. - 반대로 가필드가 먹었으면 하는 음식도 있을까. = 가필드는 밤마다 냉장고를 들락날락거린다. 우리 집 냉동고에 만두가 정말 많다. 바로 튀겨 먹으면 야식으로 최고다. (웃음) 영화에 등장한다면 크기가 좀 컸으면 한다. 특히 여행 가서 먹은 음식 중에 호쇼르라는 몽골식 튀김만두가 있다. 양고기 베이스에 정말 크기가 크다. 가필 드가 입이 크니 입 안 가득 만두를 먹는다면 정말 귀여울 것 같다. - <가필드 더 무비>를 보면서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 영화 속 가필드와 아버지의 관계를 굉장히 유쾌한 친구처럼 그려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를 보면서 이런 아빠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주변에도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동료들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주변에 추천하고 싶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모험을 떠나고 난관을 이겨내면서 끈끈한 우정을 다지는 관계가 그동안 부정을 다룬 영화들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도 가족에 대한 갈망을 점점 크게 느끼고 있다. 가필드와 존과 오디 그리고 빅 사이의 관계를 보면서 맛난 음식을 먹으며 일상을 보내는 삶이 부러워졌다.

[칸 개막 레포트] 개막작 '더 세컨드 액트' 리뷰, 형식을 깨부순 도발적 실험이 돋보인다

데이비드(루이 카렐)가 친구 윌리(라피엘 퀴나르)와 걸어가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내용인즉 자신의 애인인 플로렌스(레아 세두)에게 도무지 매력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플로렌스는 데이비드에게 자신의 아버지 기욤(뱅상 랭동)과 인사를 나눌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부녀와 딸의 남자 친구, 남자 친구의 친구가 조우하는 상황이 <더 세컨드 액트>에서 펼쳐진다. ‘제2막’이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인물, 배경 설명과 같은 도입부 없이 ‘더 세컨드 액트’라는 레스토랑에 곧장 인물들을 불러모은다. 때문에 이 네 사람이 실은 배우이며 앞서 말한 줄거리가 극 중에서 촬영 중인 영화의 설정이란 사실은 불시의 순간 갑작스레 밝혀진다. 미장아 빔(mise en abyme)이라는 형식 안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는 시도는 이미 익숙하다. 다만 <더 세컨드 액트>에선 배우의 발화를 통해 카메라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인지시키면서도 외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가령 배우들이 계획되지 않은 대사, 행동을 할지라도 ‘컷’을 외치는 목소리가 없다. 배우들은 각자의 개인사를 자유자재로 촬영 현장에 끌어들이고 이과정은 중계되듯 롱테이크로 보여진다. 이들의 폭주에 제재를 거는 것도 배우 자신이다. 이들은 자정작용을 하듯 현재 촬영 중임을 고한 뒤다시 데이비드와 윌리, 플로렌스, 기욤으로 분해 극을 이끈다. 이 기묘한 넘나듦이 독특한 유머를 발생시키는 틈새가 된다. 캉탱 뒤피외 감독은 <믿거나 말거나, 진짜야> <디어 스킨> 등 이전 연출작에서 여러 장르적 특색을 섞는 실험을 시행해온 창작자다. <더 세컨드 액트>에선 영화, 영화 제작 과정, 나아가 연기까지 메타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의도가 두드러진다. 실제 각본은 정교하게 구성됐을지 모르나 결과물만 놓고 보자면 시간과 장소, 갈등과 같은 기본적인 조건만 갖춰놓고 그 안에서 배우들이 주체적으로 극을 꾸려가는 상태를 지켜보는 모양새가 됐다. 당연하게 혹은 신성하게 여겨졌던 영화의 수많은 요소가 이 과정에서 풍자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제4의 벽도 쉽게 허물어진다. 주연배우들이 돌발 행동을 할때 엑스트라들은 “이것도 영화의 일부야?”라며 조심스레 질문한다. 끝과 시작, 의도와 비의 도, 현실과 가상… 모든 게 모호하고 불확실하게 작동하는 세계. 그 와중에도 카메라는 멈추지 않는다. 제77회 칸영화제 개막작이 상영될 때 극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기욤이 “더이상 이 이상한 영화 못 찍겠다”며 탈주하거나 윌리가 개인적인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역설하는 순간마다 관객들의 폭소가 터져나왔다. 하나 윌리의 일부 발언에는 혐오 표현이 담겨 있다. 풍자가 목적이었더라도 소재를 택하고 그것을 전복하는 상황의 묘사는 더 섬세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외평도 다소 갈리는 추세다. 실험적 시도와 아이디어 자체에 찬사를 보내는 한편 영화를 더 세밀하게 다듬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프랑스 매체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프리미어>는 “배우들의 케이오 승리를 인정한다”며 이들의 연기력에 찬사를 보냈고 프랑스 주간지인 <텔레마라>는 “이상적이고 흥미진진한 개막작”이라고 평했다. 굴곡진 지점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목표한 형식적 실험에 충실한 작품임을 증명하면서 <더 세컨드 액트>는 칸영화제의 문을 열었다.

[리뷰]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도파민의 시대에 생의 의욕을 집요하게 고양하는 아드레날린 시네마

전력망 붕괴, 폭염과 팬데믹, 화폐 가치의 하락….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인류를 위협하는 대혼란은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된다는 스크린 밖 진리를 강조하며 영화 속으로 뛰어든다. 모든 자원이 품귀한 파멸의 시대, 영화의 작중 배경은 문명 붕괴 후 45년으로부터 출발한다. 대지의 풍요가 가득한 녹색의 땅에 살던 소녀 퓨리오사(애니아 테일러조이/알릴라 브라운)는 바이커 군단에 납치된다. 퓨리오사의 어머니 메리 조 바사(찰리 프레이저)는 맹렬한 집념으로 바이커 군단을 추격하지만 끝내 딸의 눈앞에서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에게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그날 이후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에게 ‘리틀 디멘투스’라 불리며 그와 바이커 군단이 벌이는 흉포한 약탈과 폭력에 내내 노출된다. 바이커 군단은 가스타운을 정복하기 위해 임모탄 조(러치 험)가 압제하는 시타델에 쳐들어가고, 민족간 혈맹을 이유로 퓨리오사를 임모탄 조의 신부로 넘긴다. 퓨리오사는 임모탄 조의 신부들이 처한 유린을 목도한 후 ‘화물꾼 소년’으로 둔갑해 유능한 정비공으로 살아간다. 한편 시타델의 근위대장 잭(톰 버크)은 조수로 일하는 퓨리오사의 전사로서의 자질과 복수심을 간파한다. 잭은 퓨리오사에게 시타델로부터 벗어날 힘을 가르쳐주겠다 약조하고 둘은 황무지의 전사로서 무공을 쌓는다. 세월이 흘러도 황무지의 무법자로 군림하는 디멘투스가 무기농장을 점령하려 하자, 퓨리오사와 잭은 디멘투스와 바이커 군단을 처단하려 나선다. 그리고 퓨리오사의 심중엔, 디멘투스를 향한 원한이 여전히 불타고 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후속작이 9년 만에 세상에 공개됐다. 제목에 쓰인 사가(saga)가 말해주듯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매드맥스> 연작을 영웅소설 혹은 대하소설로 만들려는 조지 밀러 감독의 야심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영화는 의수를 단 사령관 퓨리오사가 어떻게 전사가 되었는지 고전소설 속 영웅의 일대기 구조를 차용해 148분간 장대한 스케일로 펼쳐놓는다. 전사(前事)의 여백을 두고도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입증했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내러티브에 만족했던 관객이라면 프리퀄의 스토리텔링이 다소 생경하거나 불만일 수 있다. 외전의 특성상 설명이 불가피한 서사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조지 밀러 감독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러닝타임 중 애니아 테일러조이의 대사는 30줄 정도에 불과하다”(<텔레그래프>)라고 밝혀 화제를 모은 인터뷰를 떠올리지 않아도, 영화는 대사 대신 프레임으로 언어 이상의 감동을 전하며 전작의 매력을 계승한다. 퓨리오사의 머리카락이 절벽 끝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숏으로 시간의 경과를 표현한다든지 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법한 퓨리오사의 전사를 단 한숏으로 드러내는 순간이 유독 그렇다. 고강한 액션 역시 막강한 활력을 자랑한다. 특히 퓨리오사의 액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은신과 등반 위주의 동작에서 카 체이싱과 격투로 나아가는데, 매 액션 시퀀스마다 퓨리오사만의 액션이 지닌 이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살아 있다. 유토피아가 사라진 시대에 어떤 가치가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지에 관한 조지 밀러의 날카로운 통찰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CLOSE-UP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서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는 ‘눈’이다. 퓨리오사에게 고통을 선사한 숙적인 동시에 퓨리오사의 자질을 발견해낸 멘토인 디멘투스는 퓨리오사가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을 직시하도록 강요하다가도 다른 경우엔 눈을 감아도 좋다고 말한다. 작품 속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망원경과 조준경에 눈을 대고 적들을 응시한다. 와중에 가장 형형한 눈빛은 역시 퓨리오사를 연기한 애니아 테일러조이로부터 나온다. CHECK THIS MOVIE <드레스메이커> 감독 조슬린 무어하우스, 2015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호주 출신 감독 조지 밀러와 호주 출신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가 의기투합해 만든 영화다. 호주 출신 영화인들이 사막에 대해 지닌 은근한 애향심은 말해 입 아프다. <드레스메이커>는 호주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조슬린 무어하우스 감독이 만든 패션영화다. 크리스 헴스워스의 동생으로도 알려져 있는 배우 리암 헴스워스가 호주 사막에서 남성미를 과시하며, 영국에서 장시간 거주한 애니아 테일러조이보다 훨씬 긴 세월 영국에서 자라고 활동한 케이트 윈슬럿이 퓨리오사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저항의 시대는 계속된다, <애콜라이트>를 기다리며, OTT 시리즈가 <스타워즈>의 오리지널리티를 이어받는 방법

“우리의 길이다.”(This is the Way.)<만달로리안>의 만달로어인들이 내뱉는 행동강령 같은 이 대사가 47년 역사를 지닌 <스타워즈> 시리즈의 새로운 국면을 알리는 유행어가 되었다. <만달로리안> 시즌2는 2020년 12월 공개되자마자 미국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스트리밍 시리즈에 올랐다. 일명 아기 요다, 그로구의 매력과 더불어 베스카 갑옷을 두른 현상금 사냥꾼 딘 자린이 루카스필름을 인수한 디즈니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존 패브로 감독이 루카스필름의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데이비드 필로니 등과 함께 만든 <만달로리안> 시리즈는 프랜차이즈 세계관 확장의 훌륭한 성공 사례다. <스타워즈> 세계관을 지배해왔던 스카이워커 가문의 ‘부자 관계’ 트라우마를 정반대 관점에서 재해석한 방향이 흥미롭다. 처세에 능한 베테랑 현상금 사냥꾼이 사랑스러운 베이비 그로구를 목숨 바쳐 보호하는 ‘유사 부자’ 이야기라니. 40여년 동안 존속살해의 비극만 봐왔던 팬들은 이에 열광했다. 텔레비전 보급으로 극장에 위기가 찾아왔던 1960년대 할리우드에 나타난 스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랬던 것처럼, 고전적인 서부극의 주인공을 보는 듯했다. 1편부터 9편까지 극장 개봉 성적이 망한 적 없고 스핀오프 영화들까지 모두 합해 10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안긴 <스타워즈> 시리즈는 위기 아닌 위기를 겪었다. 디즈니가 40억달러에 인수한 루카스필름을 지휘하던 캐슬린 케네디 프로듀서의 혁신적인 변화 기류에 팬들이 반기를 들기도 했다. 시대의 변화, 정치적 올바름 속에서 오리지널리티의 매력이 희석된다는 지적을 <스타워즈>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디즈니 스트리밍 시대를 열어야 했던 산업적 측면의 위치에서도, 흔들리는 팬심을 사로잡아야 했던 세계관 빌딩의 방향 설정에 있어서도, <만달로리안>의 성공은 주목받아 마땅하다. <만달로리안>의 난제 중 하나는 시리즈 인기의 원천인 다스 베이더도, 제다이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세계관의 연대기상으로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에서 5년이 지난, 신공화국 체제가 시작된 이 시기는 혼란스러운 암흑기다. 시놉시스상에서 암흑기라고 적어놓으면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고 몰입하게 되는 게 아니듯, <만달로리안>은 다스 베이더 없는 암흑기를 무슨 수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인류사에 실재했던 수많은 전쟁과 권력 다툼, 전통적인 서부극 장르의 구조와 캐릭터 등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방대한 ‘<스타워즈> 스토리’는 포스라는 힘의 밝고 선한 면과 어두운 면의 대립 속에서 결코 꺼지지 않는 저항의 불씨를 강조해왔다. 무엇으로부터의 저항인가? 포스의 어두운 면을 내세워 제국을 건설하려는 다스 베이더와 그를 조종하는 시스 군주 팰퍼틴 황제로 대변되는 다크사이드로부터의 저항이다. <만달로리안>의 시대는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삶을 이어나가는 시대다. 정권이양기라고 해야 하나. 제국이 몰락하자 신공화국 체제가 들어선다. 다스 베이더와 스카이워커 가문의 빈자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분노와 아픔으로 채워졌다. 주인공 딘 자린은 프리퀄 3부작 시절에 벌어진 클론전쟁 당시 전투 드로이드들의 공격으로 부모를 잃은 전쟁 고아였다. 강력한 유대 관계가 형성된 딘 자린과 그로구를 돕기 시작하는 조력자들도 대부분 제국의 횡포에 희생당해 남겨진 자들이다. <만달로리안>의 만도가 그로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남겨진 자들의 팍팍한 삶과 마주하면서 망해버린 세상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등장하는 우주선의 거대한 크기 대신 인물들의 마음속 상처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방식은 다른 시리즈에서도 이어진다.스파이 액션물을 표방하는 <안도르>도 마찬가지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데스스타’ 설계도 탈취 작전을 함께했던 정보 요원 카시안이 어떻게 저항군 최고의 스파이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도 기존 극장판 시리즈에서는 미처 품지 못했던 인물의 사연을 들여다본다. 이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가슴속에 저항의 불씨를 품고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고통은 제다이라고 해서 겪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소카>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제국의 압제에 저항해야 했던 인물들의 사연을 확장하는 시리즈로 기능한다. 아소카는 강한 권력 집단이 된 제다이들의 조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 정치적 입지가 좀 다른 상처받은 제다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에서 죄책감과 복수심에 짓눌린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팰퍼틴의 계략에 넘어가 제다이를 학살하라는 ‘오더 66’을 발동했던 걸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오비완 케노비>의 빌런 역할을 하며 어린 루크를 위협하는 레바를 복잡한 감정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녀 역시 비극에서 홀로 살아남았다는 삶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캐릭터다. (2022년과 2024년에 각각 디즈니+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단편 시리즈, <제다이 이야기>와 <제국 이야기>에 앞서 언급한 캐릭터들의 과거가 상세하게 소개된다.) 역사는 반복된다 이제 곧 공개될 <애콜라이트>는 기존의 세계관에서 한번도 다뤄진 적 없는 시점의 이야기다. 오비완 케노비가 제다이 마스터 콰이곤 진의 제자였던 시절, (<스타워즈> 세계에서는 시스와 제다이 모두 스승과 제자 관계를 절대적으로 유지한다) 타투인 행성에서 처음으로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만났던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의 이야기로부터도 100년 전 과거를 다룬다. <스타워즈> 세계관의 창조주인 조지 루카스 감독은 오래전부터 반드시 스크린으로 보고 싶어 했던 이미지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수백명의 제다이들이 수백개의 광선검을 휘두르며 싸우는 광경이다. 해외 언론에서는 <애콜라이트>를 두고 <겨울왕국>이 <킬빌>을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동안 팬들은 언제나 시스 대 제다이, 그러니까 거의 일대일 광선검 전투만을 봐왔다. 이번에는 시각적으로 완전히 다른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스타워즈> 시리즈가 보여주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돌이켜보면 이 시리즈는 당대 최고의 첨단 영상기술을 도입해 미지의 우주전쟁을 상상하면서 항상 이런 말로 시작했다. “오래전 저 멀리 은하계 어딘가에선…”(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시리즈 역사상 가장 오랜 과거, 천년 이상 포스의 균형을 유지해왔던 선대의 제다이들을 통해 어떤 이야기와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까.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루크 앞에 나타난 요다의 영혼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그들은 우리보다 뛰어날 걸세. 그것이 바로 모든 제다이 마스터가 짊어진 진짜 짐이지.” 오비완 케노비는 아나킨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루크와 레아를 필사적으로 숨기고 지켜준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오비완이 느낀 고통을 카일로 렌을 통해 겪는다. 어떤 시대건 아나킨이 다스 베이더가 될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고통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그럼에도 저항의 불씨는 결코 꺼지지 않는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영원한 메시지다.

[칸영화제 특집] 누구에게나 다양한 교차성이 존재한다,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 파얄 카파디아 감독

올해 심사위원대상은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에 돌아갔다. 샤지 카룬 감독의 <스와함> 이후 30년 만에 경쟁부문에 진출한 인도영화가 거둔 쾌거다. 칸영화제가 그의 가능성을 먼저 발견한 것은 다큐멘터리였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TV 배우이자 우파 정치인을 대학의 새로운 이사장으로 임명한 것에 반대한 학생 파업을 다룬 <무지의 밤>(A Night of Knowing Nothing)은 2021년 칸영화제 다큐멘터리 상영작 가운데 수여하는 골든아이상을 받았다. 그러니 뭄바이에서 쓸쓸하고 위태로운 일상을 치장 없이 포착하는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의 태도를 두고 다큐멘터리적이라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성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메라는 뭄바이의 두 간호사 프라바(카니 쿠스루티)와 아누(디브야 프랩하)를 경유해 도시의 쓸쓸한 불빛을 시적으로 담아내며 현대 인도에서 여성이 삶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비추다 3부의 영적인 신비주의로 스며드는 유려한 연출을 보여준다. 단 두편의 영화로 자신의 넓은 스펙트럼을 증명해내며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차세대 감독의 리스트에 이름을 추가한 파얄 카파디아 감독을 만났다. - 이 영화는 거대한 스카이라이트를 품은 현대적인 도시 뭄바이가 배경이지만 그 안에는 아직 과거에 가까운 이야기가 있다. 왜냐하면 인도에는 아직 카스트제도가 남아 있고 시골은 우리가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곳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다루고자 했던 핵심 중 하나다. 인도는 모순이 많은 나라다. 특히 뭄바이 같은 도시는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세계화되고 있지만 일상의 관계와 가족에 대한 감정은 무척 퇴행적이고 여전히 구식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 이는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나 역시 당사자로서 싸우고 있다. 서구 중심의 페미니즘이 지닌 모순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 서양에서는 재정적으로 독립한 여성은 자율권을 갖고 있다고 간주한다 들었는데 이는 인도를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삶의 선택에 관한 것이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 관한 것이든 가족문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도는 아직 카스트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커플의 종교가 다를 경우 양가 부모의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의 자율성은 어느 국가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아누는 남자 친구가 있고, 프라바는 떨어져 사는 남편이 있으며, 3부에서 두 사람과 여행을 떠나는 파르바티는 남편과 사별했다. 서로 다른 세대, 세 가지 유형의 여성 캐릭터를 통해 여성의 인생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싶었나. =그렇다. 영화 초반에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자꾸 귀신으로 나타나 짜증나게 만드는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이 든 여성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젊은 여성들이 춤을 춘다. 이렇듯 아시안 여성들이 비슷한 점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어떤 문제는 인도에 국한되어 있는, 아주 인도적이다. - 이 영화에는 아누의 노출과 섹스 신이 등장한다. 아시아, 특히 인도는 보수적 문화가 무척 강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또한 인도 여성감독이 여성배우의 노골적인 나체를 보여주는 것은 꽤나 대담하다. 전세계적으로 여성의 몸을 촬영하는 것은 곧 여성의 신체를 빼앗는 것과 같다는 논의가 있다. 촬영 의도를 설명해줄 수 있나. =관능적이기보다 매우 캐주얼한 장면이다. 섹슈얼리티와 전혀 관련 없는 방식으로 앵글을 잡고 싶었다. 이는 프라바와 아누 두 여성의 관계 와도 관련 있다. 반면 실제 섹스 신에서는 노출이 등장하지 않는다. - 이 영화가 인도 최초로 여성의 오르가슴을 보여준 작품이 맞나. =아니다. 인도에는 멋진 여성 필름메이커들이 많다. 내가 최초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 그들을 어떻게 발견했나. 함께 일하는 과정은 어땠나. =다들 예술영화계에서 잘 알려진 배우였기 때문에 이미 그들이 출연한 작품을 알고 있었다. 프라바 역의 카니 쿠스루티는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걸스 윌 비 걸스>에 나왔다. 아누 역의 디브야 프랩하는 최근 다양한 영화를 선보이며 국제영화제에 진출하고 있는 말라얄람 영화 업계에서 활약해왔다. 디브야 프랩하가 나온 <알립니다>는 올해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파르바티 역의 차야 카담은 이번 칸영화제에서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과 감독주간 초청작 <시스터 미드나이트>, 두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난 인도의 모든 언어를 구사하지는 못한다. 지금 영화가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리허설에 훨씬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에 잘 흡수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기에 모든 신을 한달 전부터 모여서 연습했다. 마치 연극무대를 준비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었다. - 피아노가 연주되는 사운드트랙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편집하는 동안 지난해 작고한 에피오피아 뮤지션 에마호이 체구에마리암 구에브로우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었다. 관객에게 기쁨을 주는, 영화와 서로 연결되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곡으로 작업했다. - 모든 주인공들이 해변으로 향하는 영화의 결말은 아핏차퐁 위라세타꾼의 <친애하는 당신>을 연상시켰지만 남성적 시선(male gaze)에서는 벗어나 있다.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은 여성들간의 우정에 관한 영화다. 인도에서는 특히 가부장제가 여성들의 우정을 방해하고 그 때문에 서로를 안타깝게 여긴다. 때문에 영화에서 가부장제가 끝났을 때 두 여성이 강하게 연대하는 모습이 희망적으로 다가오기를 바랐다. - 인도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고려할 때 영화에 정치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 점이 흥미롭다. 의도적이었나. =정치는 권력을 가진 정당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문제들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영화 역시 아주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 이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때문에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 같은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나. =나는 주변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감응하는 사람이다. <무지의 밤>은 내가 영화학교에 다닐 때 겪은 일을 소재로 했다. 예술가로서 내가 할 일은 주변 세계에 반응하는 것이고, 예술은 그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 올해 경쟁부문에 여성감독의 영화는 단 네편이다. 그중 인도영화가 포함되어 있다. 당신은 역사를 만들었다. 그동안 영향을 받은 영화제작자가 있나. =인도의 국립영화학교인 인도 영화 텔레비전 학교(Film and Television Institute of India)를 다니며 리트윅 가탁 감독의 작품들을 공부했다. 그의 영화는 사랑 이야기이면서 정치적이었다. 날카롭게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명확하고 영화적인 언어를 보여준다. 때문에 리트윅 가탁의 엄청난 팬이었다.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 인도영화 하면 발리우드의 뮤지컬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은 인도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준다. 다언어국가인 인도에서 얼마나 다양한 영화가 제작되고 영화인들이 나오고 있는지 듣고 싶다. =발리우드가 인도 영화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타밀, 말라얄람 등 각 언어권·지역별로 독자적인 영화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각자의 담론과 영화언어를 갖고 훌륭한 감독들을 탄생시키며 자립적으로 굴러간다. 지난해 오스카 후보에 오른 <숨 쉬는 모든 것>을 포함해 훌륭한 다큐멘터리영화도 만들어지고 있다. - 인간이 카메라를 사용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화제작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많은 여성감독이 데뷔할 수 있는 이유 역시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리마 다스 감독은 혼자 촬영, 연출, 편집을 해내며 영화를 만든다. 그의 삼촌이 붐 오퍼레이터를 맡는 등 아삼주를 기반으로 한 가족 유닛이 모든 제작 공정을 소화한다. 그리고 환상적인 영화를 완성해 영화제에 초청받는다. 하지만 촬영이나 음향은 다른 부문보다 육체적인 일을 요구한다는 편견 때문에 아직 여성영화인들이 자리 잡기는 힘들다. 그리 좋은 현상이라 할 수 없다. 점차 업계가 바뀌어나가기를 바란다. - 우리는 지금 칸영화제에 있고, 이곳의 영화산업은 무척 유럽 중심적일 수 있다. 유럽인들이 던지는 질문 중 인도 감독으로서 받아들이기에 진부한 것들이 있다면. =인도는 여성이 살기에 너무 힘든 곳이 아니냐는 말을 먼저 그리고 많이 듣는다. 가장 많이 나오는 뉴스이기도 하다. 맞는 말이다. 부정하지 않겠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이 서양에서 인도 사회를 정의하는 단 한 가지 명제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내게 인도에서 살아가는 여성이 영화감독이 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묻는다. 누구에게나 다양한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 존재한다. 나는 어떤 면에서는, 다른 계급이나 종교를 가진 남자들보다 특권층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성별은 자신이 잘못 대표되거나(misrepresented) 과소대표(underrepresented)되는 데 반드시 우선순위를 차지하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인도에 많은 복잡성과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김민하의 타인의 우주] 세상의 모든 선자들에게

‘울 딸 손 하나 건드리기만 해… 가만 안 둬.’ 2023년 6월, 엄마가 보낸 문자메시지다. 촬영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 평상시에는 잘 이야기하지 않던 서러움을 그날따라 구구절절 술회했다. 별일도 아니었는데 유난히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던 날. 잘 준비를 마치고 핸드폰을 열었는데 엄마에게서 온 문자 한통. 그것도 두 시간쯤 지난 후였다. 가만 안 둬. 그 짧은 문자 한통으로 날 울리는 모든 것을 무찔러주는 슈퍼우먼이 우리 엄마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세 자녀 중 막둥이로 태어난 나에게 엄마는 강인하기만 했었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서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엄마에게 뭐든 물어보았고 허락을 맡았다. 엄마는 나에게 백과사전이었다. 좋아하는 오래된 기억 중 하나. 다음날 학예회 준비로 노래 연습을 하던 4~5살의 나. <바둑이 방울>이라는 동요를 텔레비전을 보며 누워 있는 엄마 앞에서 연신 불러댔다. 내가 20번을 부르면 엄마는 20번 박수를 쳐주었다. 게다가 매번 다른 칭찬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엄마, 그때 나 안 귀찮았어?”라고 물어보면 “그게 뭐가 귀찮아? 귀엽잖아”라고 대답한다. 8살 때, 16살이던 큰언니가 유학을 갔다.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엄마는 덤덤했다. 우는 아빠를 위로해주며,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서럽게 우냐며, 멋있게 토닥여주던 엄마였다. 집에 도착해서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집을 천천히 적응하던 찰나, 엄마의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다.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열었고, 엄마는 침대 난간에 앉아, 처연히 울고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한동안 울었다. 옆에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엄마도 우는구나. 엄마도 괜찮지 않구나. 엄마도 무섭구나. 엄마를 처음으로 안아주었다. “엄마는 어떻게 딸 셋을 키웠어?”라고 물어보면 “엄마니까” 하고 웃으며 대답한다. 이보다 더 명확한 대답은 없다. 엄마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파친코>를 촬영하며 다시 한번 느꼈다. 선자는 두 아이의 엄마인데, 아직 딸밖에 해보지 못한 내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되면 어떤 마음일까? 두터운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선자의 아들, 노아를 낳는 장면을 촬영할 때의 일이었다. 진짜로 임신을 한 것도 아니었고, 촬영장에 있던 아기도 나의 아이가 아니었지만 극도로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아무도 이 아이를 해치지 않았으면 했다. 내 품에 이 아이가 안겼을 때, 나의 온기가 부디 아이의 숨결에 전해지길. 실컷 토해내는 울음에 부디 막연한 두려움과 서러움도 함께 훌훌 보내버리길 염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줘야겠다며 스스로 다짐했다. 놀라웠다. 처음 느껴보는 막강한 힘이었다. 이틀 동안 진행된 분만 장면에서, 처음으로 엄마란 이런 것이겠구나 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삭이 체포된 후, 두 아이와 남겨진 선자에게는 슬퍼할 틈이 없었다. 일어나야 했다. 더 큰 목소리로, 부지런히 김치를 팔며 자신과 아이들을 지켜내야 했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강인하게, 간절하게 만들었을까. 사랑이었으면 했다.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 이 혼돈 속에서, 사랑만이 유일한 희망과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노아와 모자수, 경희, 요셉, 이삭 그리고 고향에 있는 양진까지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이유. 예전에,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민하야, 나는 너희를 너무 사랑해. 그게 다야. 엄마가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거 하나야. 사랑해, 내 딸.” 그렇기에 엄마는 나의 슈퍼우먼, 백과사전, 자존감, 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두고두고 기억하기로 결심했다. 꽃이 피면 촉촉해지고 나무가 흐드러지면 같이 물이 드는 엄마. 맑고 투명한 엄마는 엄청난 용기로 우리를 키우는 수세월 동안 풍파를 겪으며 딸로서,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멋진 사람으로서 혹은 어떤 이름으로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가 찾는 만인의 여인이 되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이제는 엄마가 날 찾아주었으면 한다. 한없이 두려워질 때, 괜찮지 않을 때,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 혹은 아무 이유가 없어도 상관없다. 엄마의 이야기는 뭐가 됐던 간에 귀엽고 따뜻할 테니 말이다. 얼마 전부터, ‘하루에 한번 이상 안아주기’를 부모님과 실천 중인데, 여러분에게도 추천한다. 말 한마디 필요 없는 포옹 속, 깊은 대화가 오고 갈 것이다. 지금에서야 보이는 엄마의 연약함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오늘 엄마와의 포옹 속에선 반드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것이다. 꼭 지켜주겠다고, 걱정말라고. 엄마가 그랬듯 나도 엄마의 집이 되어주겠다고.

[기획] 북한 영화를 보다, 폴란드에서 <춘향전> 보고 돌아온 영화연구자 한상언의 기행문

식민과 분단을 중심으로 한국·북한 영화사를 연구해온 한상언 영화연구소 소장(<영화 운동의 최전선> <해방공간의 영화·영화인> <조선영화의 탄생>, 월북 영화인 시리즈 <문예봉 전> <강홍식 전> <김태진 전>)이 고서 수집의 아지트인 천안 노마만리 책방을 떠나 잠시 폴란드로 향했다. 헝가리 출신의 북한 영화연구자 거보르 셰보와 뜻을 맞춰 폴란드의 한 영화촬영소에 보관된 윤용규 감독의 <춘향전>을 보기 위해서다. 그로 하여금 “뻔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북한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크게 바꿔” 놓은, 폴란드에서 만난 세편의 북한영화를 소개한다. 지난 4월 헝가리 출신 북한 영화연구자인 거보르 셰보에게서 1959년 북한에서 제작한 윤용규 감독의 <춘향전>이 폴란드의 한 영화촬영소에 보관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작품은 1959년 제1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하여 사회주의권 국가들 사이에서 널리 상영된 적이 있었기에 해외의 필름 아카이브 어딘가에는 이 필름이 소장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상처럼 이 영화가 폴란드에 소장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귀가 번쩍 뜨였다. 폴란드에 보관되어 있는 <춘향전>은 크라쿠프 대학에 근무하는 종교학자이자 북한 영화연구자인 로만 후사르스키가 확인했다. 동구권 출신의 북한 영화연구자들을 만날 때마다 자국의 필름 아카이브를 뒤져 북한에서 공개하지 않고 있는 희귀한 필름을 찾아보라 귀띔해주었다. 내 말을 귀담아들었던 그가 폴란드 아카이브에 문의하여 받은 북한영화 리스트 안에서 윤용규의 <춘향전>을 발견했다고 한다. 기특한 일이다. 보고 싶은 필름이 소장된 것을 알았으니 그다음은 필름을 확인하는 게 순서였다. 마침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거보르 셰보가 계약기간을 마치고 헝가리로 돌아갈 때 폴란드에 들러 로만 후사르스키와 함께 <춘향전>을 관람하기로 했다고 알려주었다. 나 역시 동참할 의사가 있음을 전했다. 단순히 필름을 확인하러 지구 반대편 폴란드까지 달려간다는 것은 무모한 일임이 틀림없다. 주머니 사정도 생각해야 할 테고 하던 일도 잠시 멈춰야 하며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얼마간 고민을 거듭하다 얻은 결론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윤용규의 <춘향전>을 볼 수 있을 것이며 동유럽 연구자들과 함께 폴란드와 헝가리의 거리를 누벼보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만사 제쳐놓고 폴란드로 떠나기로 했다. 동 시기 어느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소련과 동유럽의 쟁쟁한 영화들을 제치고 제1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을 거머쥔 <춘향전>에는 한국전쟁 이전까지 연극무대와 스크린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황철, 문예봉, 김선영 등 전설적인 배우들이 출연한다. 여기에 절제되고 정갈한 영상으로 상찬받은 <마음의 고향>(1949)의 연출자 윤용규의 완숙한 솜씨도 기대할 만한 부분이었다. 오랫동안 영화연구자들에게 윤용규 연출의 <춘향전>은 지구 어디엔가에서 봉인이 풀리기만 기다리고 있는 환상 속의 영화였다.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바로 춘향 역을 맡은 우인희가 1970년대 후반 불륜을 이유로 공개 총살형을 당했고 이후 북한에서는 그가 등장하는 영상은 물론 제대로 된 사진 한장도 남김없이 없애버려 이제는 그 모습조차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 그렇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호사가적 취미를 지닌 사람들 역시 이 영화에 관심을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일례로 몇년 전 유튜브 <주성하TV>에서 우인희 사진을 최초로 공개한다는 영상을 올려 불과 며칠 만에 100만 조회수를 달성하기도 했다. 후사르스키가 입수한 리스트에는 <춘향전> 이외에도 꽤 많은 수의 영화가 있었다. 이중 1959년에 제작된 <애국자>와 1970년에 제작된 <한 자위단원의 운명>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도 보관되지 않은 희귀 영화다. 우리는 1인당 100달러 정도의 비용을 내고 <춘향전>과 함께 <애국자>와 <한 자위단원의 운명>까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은 2024년 5월29일이었다. 이날 오전 9시 폴란드의 기록영화촬영소(Wytwórnia Filmów Dokumentalnych i Fabularnych, 약칭 WFDiF) 앞에서 만난 우리는 후사르스키의 안내로 촬영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1949년 창립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촬영소로 1944년부터 1994년까지 폴란드의 영화관과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뉴스영화(Polska Kronika Filmowa, 약칭 PKF)를 비롯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제작하던 곳이다. 안제이 바이다를 비롯해 전설적인 폴란드 영화감독들이 거쳐간 창작의 요람으로 현재도 영화촬영소로 운용되고 있다. 여러 동의 건물들이 산재해 있는 이곳은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사회주의 시절에 건축된 낡은 건물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북한을 다녀온 적 있는 후사르스키는 마치 평양의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 온 것 같다고 했다.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곳 역시 사회주의 시절에 만들어진 작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담당자인 실비아씨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작은 편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오래돼 보이는 독일제 필름 편집기가 있었다. 내심 극장 안에서 제대로 감상할 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화면도 침침하고 소리도 불명확한 열악한 편집기를 통해 관람해야 한다는 점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보는 게 어디냐 하는 감지덕지한 생각도 들었다. 실비아씨는 미리 준비한 필름을 카트에 싣고 왔다. 우리가 볼 <춘향전>과 <애국자> <한 자위단원의 운명>이었다. 가장 먼저 확인한 영화는 <애국자>였다. 캔 안에는 이 필름이 상영된 이력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1961년 이후 상영된 적이 없었다. 실비아씨가 필름을 편집기에 걸고 스위치를 누르자 필름은 드르륵 소리를 내며 춤추듯 움직였다.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흘러나오던 스피커에서 우리말 음악이 흘러나왔다. 폴란드어로 더빙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슈퍼임포즈로 폴란드어 자막을 넣은, 오리지널 사운드가 살아 있는 필름이었다. 북한에서는 1959년부터 본격적으로 항일유격투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제작했다. <애국자>는 송영의 오체르크(실화문학설)인 <백두산은 어데서나 보인다>(민주청년사, 1956)에서 소개한 항일유격대의 비밀 정보원 최병훈의 이야기가 원작이다. 이 영화는 일제의 학정으로 고향을 떠나 만주로 온 최병훈(한진섭)이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주변 사람들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지탄받지만 실제로는 항일유격대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해여 일본군에 큰 타격을 입히고 결국 정체가 탄로나면서 죽음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송영과 주동인이 함께 쓴 흥미로운 시나리오에, 전동민이 연출하고 박병수가 촬영한, 마치 서부영화를 보는 것 같은 역동적인 화면과 뛰어난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가 어우러진 수작이었다. 특히 주인공 최병훈 역의 한진섭과 사돈 송용식 역의 남승민, 할머니 역의 김연실 등 해방 전 연극·영화 부문에서 활동한 배우들과 천리마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 <정방공>(1963)에 출연한 배우 최부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의미가 있었다. <애국자> 상영이 끝나자 잠시 쉬면서 <춘향전> 보기를 기다렸다. 다들 영화가 어떻게 시작될지 궁금해했다. 나 역시 윤용규 감독의 <춘향전>에 대한 각종 문헌을 가지고 있음에도 영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애국자>를 볼 때와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필름을 걸고 편집기의 스위치를 올리자 음악과 함께 황철, 김동규, 문예봉의 이름이 화면에 나타났다. 아마도 오래된 필름을 다시 복사해 보관하는 과정에서 앞부분을 잘라 낸 것 같았다. 영화가 시작되자 떨리는 마음으로 한 장면 한 장면을 눈에 담았다. 사계절이 고루 담긴 아름다운 화면은 배우들의 움직임과 어우러져 역동적이기까지 했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촌스럽지도 않은 컬러와 판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이용한 것은 지금은 사라져 아득하지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과거의 어떤 흔적을 발견한 것처럼 감동적이었다. 상영시간 때문이었는지 일부 장면들이 삭제되긴 했지만 지금 상태로라도 동 시기 어느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뛰어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는 이름만으로도 설레게 하는 전설적인 배우들이 등장한다. 첫 번째 릴을 보며 찌릿한 전율을 느꼈는데 그것은 지금의 북한영화보다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영화 속에 전설적인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특히 해방 전 연극무대를 호령했던 북한 최초의 인민배우 황철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은 호기심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전쟁 중 입은 부상으로 오른쪽 팔을 잃었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표독하고 능글거리는 얼굴로 탐관오리 변학도의 모습을 능숙하게 연기했다. 사실 황철은 1930년대 동양극장 청춘좌에서 만든 최독견작 <춘향전>에서 이몽룡 역을 맡았었는데 20여년이 흘러 변학도를 연기하고 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마치 1930~40년대 연극, 영화로 만든 다양한 버전의 <춘향전>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모아 만든 것처럼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월매 역의 김선영 역시 1948년 시공관에서 공연된 극협의 <대춘향전>에서 춘향 역을 연기했다. 1935년 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에서 춘향 역을 맡은 문예봉은 이몽룡의 어머니 역으로, 같은 영화에서 운봉 역을 맡았던 최운봉은 이 영화에서 또다시 운봉 역을 맡았다. 이몽룡 아버지 역을 맡은 김동규는 1940년 고협 창립 1주년 기념작인 유치진 각본의 <춘향전>에 출연한 적이 있고, 왕방울쇠 역의 유원준은 1980년 북에서 다시 만든 <춘향전>에서 변학도를 연기하며 윤용규와 더불어 공동 연출자로 나섰다. 영화가 끝나고 너나 할 것 없이 감동의 박수를 쳤다. 그러고는 윤용규의 <춘향전>이 국내외에 제대로 소개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보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김정일이 영화 부문을 지도하던 시기인 1970년에 제작된 영화로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불리는 중요한 영화다. 하지만 김정일의 부인이기도 한 영화배우 성혜림이 주인공으로 출연했기에 어느 때부터인가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영화는 성혜림과 엄길선 등 1960년대 북한의 청춘스타들을 보는 재미는 있으나 앞선 영화들보다 템포가 느렸다. 여기에 연속으로 세편의 영화를 보다 보니 이미 집중도는 심하게 떨어져 있었다. 눈과 귀는 영화를 향하고 있지만 다들 <춘향전>의 장면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윤용규의 <춘향전>을 한국에서 볼 수 있다면 폴란드에서 본 세편의 영화는 뻔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북한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크게 바꿔놓았다. 김정일이 북한영화를 직접 지도하기 이전 제작된 많은 수의 북한영화는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한 자위단원의 운명>처럼 중요한 영화라고 언급된 영화도 해외 아카이브를 통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영화를 연구하는 것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일종의 보물찾기와 같다. 연구를 향해 가는 과정은 험난하지만 그 성과는 보물을 찾은 것 같은 보람도 있으니 말이다. 짧은 폴란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헝가리를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의 야경과 벌러톤호의 장관을 보았다. 들판 가득 흐드러지게 핀 라벤더 꽃의 향기도 맡았다. 이 모든 것이 폴란드에서 본 <춘향전>처럼 지금은 모두 신기루 같다. 내년에는 한국에서 윤용규의 <춘향전>을 볼 수 있도록 움직여봐야겠다.

[비평] 기계는 벌레를 포획할 수 있는가?, <미래의 범죄들>

데이빗 크로넨버그 영화의 중핵은 인간 신체를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훼손하는 변형의 공포가 아니다. 물론 그의 영화는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절단되는 신체와 부서지는 살덩어리, 쏟아지는 분비물과 짓이겨진 얼굴을 스크린에 전시하며 정상적인 인간 규격에 야유를 보내는 혐오스러운 비체(abject)의 영화다. 크로넨버그는 신체의 일관된 질서로부터 추방된 부위들의 조각과 점액을 건조한 기계장치들과 병치시키며 스크린의 매혹으로 교정한다. 그의 영화는 고정된 몸을 변형하는 급진적인 유혹과 역겨운 형태로 변형된 몸이 건네는 두려움의 모순적 체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는 표면의 진실만을 가리키는 진술이다. 그가 묘사하는 과격한 신체의 변형은 한 가지 특수한 절차를 전제하고 있다. 크로넨버그 영화의 유혹은 이 절차에서 비롯되는 긴장에 있다. 가시적 무대와 비가시적 침입 많이 거론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크로넨버그의 영화에서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는 것은 새로운 발명품이나 현상을 발표하고 전시하는 장면들이다. 그의 카메라는 물체를 순간 이동시키는 전송기를 발명한 과학자의 프레젠테이션(<더 플라이>)을 경청하고,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가상현실게임을 테스트하는 리허설 현장(<엑시스텐즈>)에 입회한다. 대형 리무진을 타고 뉴욕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억만장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창밖에 펼쳐진 세계의 실체가 아니라 리무진에 탑승한 각기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세계의 현황이다(<코스모폴리스>). 크로넨버그의 영화에서 인물이 감각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원리를 공개하고 전달하는 장면은 그들의 신체가 파괴되는 장면만큼이나 특별한 비중으로 묘사된다. 그의 영화를 두고 끊임없이 언급되는 ‘미디어’라는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텔레비전이나 게임과 같은 특정한 매개를 일컫는다기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특정한 대상과 대상을 연결하고 접속하는 형식에 관한 진술이 된다. 인물과 세계, 혹은 인간의 몸과 기계장치를 접속하는 과정에서 크로넨버그 영화는 일종의 교육학적인 기능을 제공한다. 위험하고 범죄적인 그의 세계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표현 같지만, 신체를 새로운 규칙에 접합하기 위해선 그 규칙을 인지하고 몸을 교육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교육을 뜻하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educare)에 ‘밖으로 이끌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크로넨버그는 인간 신체에 잠재하는 가능태를 바깥으로 배출한다는 교육의 기능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는 작가일 것이다. <코스모폴리스>에서 리무진이라는 닫힌 장소에 머무는 억만장자이자 정신적 미숙아인 에릭 패커는(그가 목적지로 삼는 곳은 유년기의 기억이 깃든 이발소다) 세계가 돌아가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전달받고 마침내 리무진 밖으로 나선다. <폭력의 역사>에서 중서부의 평화로운 동네에 정착해 살던 톰은 그의 과거를 알고 있는 범죄자들에 의해 집 밖으로 나와 킬러의 정체성을 안고 동부로 향한다. 크로넨버그에게 교육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몸에 담겨 있던 부속물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 익숙한 공간에 머물러 있던 신체를 외측으로 방출하는 것은 크로넨버그가 구축한 교육적 무대의 근간에 있는 원칙에 따르는 현상이다. 한쪽에 공개적이고 가시적인 교육의 무대가 있다면, 다른 한쪽에선 그 무대의 형식으로 포착할 수 없는 비가시적인 신호가 침입한다. 크로넨버그의 영화에 나타나는 비가시적 신호란 대부분 벌레의 외형과 소리다. 기계장치에 끼어든 파리의 움직임을 통제하지 못해 신체가 변형되고 마는 <더 플라이>의 비극은 크로넨버그적 픽션의 긴장을 예시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보이지 않는 파리의 침입에 기계장치는 패배한다. 기계장치를 만들어낸 인간의 몸은 신체의 일관된 질서를 벗어난다. 기계를 작동하던 인간의 손은 점액이 되어 떨어져 나간다. <더 플라이>는 가시적인 기계장치의 작동과 보이지 않는 벌레의 움직임이 일으킨 오류의 압력으로 포화 상태에 도달하는 한 인간 신체의 비극이다. <폭력의 역사>의 한 장면은 크로넨버그의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이상한 신호를 들려주고 있다. 선한 아버지인 것처럼 보이던 톰이 그를 찾아온 갱들과 마당에서 대치하는 장면이다. 톰은 갱들에게 붙잡힌 아들에게 집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이때 마당에서 대치 중인 톰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갑자기 실내로 위치를 옮겨 2층 창문 사이로 마당을 지켜보는 무인의 시점 숏으로 화면을 전환한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실내를 비추는 장면에서 난데없이 들려오는 벌레 소리다. 누구의 시선도 아닌 이 시점 숏은 두 차례 반복해서 나오고 그때마다 화면에는 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화면에 벌레가 포착된 것도 아니다. 크로넨버그는 의식적으로 이 순간에 벌레 소리를 끼워 넣고 있다. 그 의도를 묻지 않고는 넘어가기 힘들다. 왜 바깥이 아닌 실내 공간에서 이토록 선명하게 벌레 소리가 들리는 걸까? 이 장면에는 결핍과 과잉이 미묘하게 뒤섞여 있다. 언급한 대로 이 모호한 시점 숏에는 시선의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집에 들어온 톰의 아내와 아들은 1층에 머물러 있다. 2층 창문 사이로 마당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존재는 이 집에 없다. 시선의 주인이 되는 존재가 결핍된 시점 숏이다. 하지만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미묘한 과잉, 다름 아닌 화면 바깥의 벌레 소리다. 눈에 보이지 않고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는 벌레 소리는 분명히 화면에 개입하고 영화의 결핍에 침입해 있다. 시각 정보 없이 소리로만 들려오는 벌레의 침입은 서사 바깥에서 한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지극히 평화롭고 단조로워 보이던 톰의 집 안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세계가 잠들어 있다. 카메라는 그 세계를 완벽하게 포획할 수 없다. 영화라는 기계장치는 벌레를 보여주지 못했다. 달리 말해, 우리는 <폭력의 역사>가 묘사하는 톰의 집 안에서 가시적인 표면을 지켜봤을 뿐이다. 이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에 선량한 이웃이자 다정한 아버지였던 톰은 잔혹한 킬러인 조이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갱들을 모조리 처단한다. 벌레 소리는 하나의 유혹이다. 영화에 담기지 않은 은폐된 세계가 존재하고, 그것이 언제든 스크린에 침입해 분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섞인 유혹이다. 크로넨버그는 그 유혹을 연주한다. 그는 독창적인 신체 훼손의 이미지와 기계장치의 미장센으로 영상을 건설하는 위대한 건축자이지만, 동시에 영화가 완벽하게 붙잡을 수 없는 ‘소리’를 창조하고 그 부유하는 소리의 근원을 관측하지 못하는 영화의 미완적 조건을 노출하는 폭로자다. 몸은 현실이다, 하지만 몸은 변형된다 2022년에 만들어진 <미래의 범죄들>은 문제적인 영화다. <맵 투 더 스타>를 완성한 뒤 8년 만에 복귀한 크로넨버그의 신작이자 그가 <엑시스텐즈> 이후 20여 년 만에 다시 만든 바디 호러 장르물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독특한 설정이나 신체 훼손의 시각 효과가 아니다. 이 영화를 두고 “인류 진화에 대한 명상”이라고 말한 크로넨버그는 <미래의 범죄들>에서 가시적인 무대와 비가시적인 소리의 불화를 가장 집요하게 포착한다. 이야기나 주제가 요구하는 논리를 넘어 통합할 수 없는 두 요소의 경합을 삽입하고 끝내 해소되지 않는 세부로 남겨두는 이 영화는 크로넨버그적 말년의 양식에 해당하는 사례일 것이다. <미래의 범죄들>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몸에 새로운 장기가 생겨나는 과도기적 진화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사울 텐서와 카프리스는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사울의 몸을 해부하고 그 안에서 자라나는 새로운 장기를 제거해 전시하는 행위로 예술을 실천한다. 두 사람의 행위예술은 크로넨버그적 교육학 무대의 최종적인 판본이다. 한편 플라스틱을 소화하는 인간 브레켄이 어머니에 의해 살해당하고, 아버지인 랭 도트리스는 사울과 카프리스에게 브레켄의 시신을 가지고 공개 해부 공연을 진행해 달라고 요청한다. 랭은 죽은 브레켄의 장기를 세상에 공개해 인류의 진화를 선보이려고 하지만, 정작 해부된 브레켄의 몸에는 오염된 평범한 장기들만이 남아 있다. 이것이 사울에게 접근하던 국립 장기 등록소 직원인 팀린이 손 써둔 일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일은 복잡하고 모호하지만 큰 의미는 없다. 사울과 랭이 합작한 시각적 무대의 기획은 결국 실패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범죄들>에서 시각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실패의 성질을 지닌다. 몸속을 해부하고 새로 자란 장기를 제거하는 사울과 카프리스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에 놓인 두 대의 텔레비전에 ‘Body is Reality’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몸은 현실이다. 그런데 이는 몸이 현실의 선명한 기반이라는 표어가 아니다. <미래의 범죄들>에서 몸은 한 가지 고정된 현실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 신체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중이고 크로넨버그가 설정한 인류는 과도기에 존재한다. 크로넨버그의 영화에선 복수형의 현실이 펼쳐지고, 그 안에 거주하는 서로 다른 몸이 제시되곤 한다. <데드 링거>의 쌍둥이가 공유하는 몸, <엑시스텐즈> 속에서 분리되는 현실의 몸과 게임 속의 몸, <폭력의 역사>에서 ‘톰’의 세계와 그 안에 숨겨진 ‘조이’의 세계로 나뉘는 1인 2역의 몸. 하지만 크로넨버그는 복수형으로 나뉜 현실 감각에 위계를 설정하거나 명료한 구분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건 언제나 경계의 교란이다. 몸은 현실(Reality)이고, 현실은 모든 곳에 미완성적이고 과도기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미래의 범죄들>에서 인류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확신할 만한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심에 사울의 몸이 있다. <미래의 범죄들>에서 그의 몸은 크로넨버그적인 픽션의 긴장이 긴밀하게 충돌하고 매개하는 장소다. <폭력의 역사>의 한 장면이 그랬듯이, 크로넨버그가 묘사하는 사울의 몸에는 가시적인 증상과 비가시적인 신호가 뒤엉켜 있다. 가시적인 축은 그의 몸 안에 새로운 장기가 자라나고 그것을 해부하고 제거하는 예술적 퍼포먼스의 측면이다. 벤야민의 말처럼 <미래의 범죄들>에서 영화의 카메라는 외과의사의 손과 같은 기능을 드러낸다(사울을 만나 예술가가 되기 전 카프리스의 직업은 외과의사였다). 드러나지 않는 신체 내부를 관측하려는 해부학적 욕망은 초기영화의 기원적 충동을 환기한다. “영화는 몸짓의 꿈”(조르주 아감벤)이며 신체를 마비시키는 구속을 해방하는 이미지의 충동이다. 영화가 제시하는 표어처럼 몸이 현실이라면, 사울의 몸을 해부하는 카프리스의 퍼포먼스는 현실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포착하려는 영화의 열망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신호들이 사울의 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검은 옷으로 전신을 둘러싼 그의 의상은 모든 것을 가시적으로 포착하려는 시각적 충동을 차단하는 가림막으로 기능한다. 하나의 신호는 그의 목소리다. 사울을 연기한 비고 모텐슨은 거의 발음이라고 말하기 힘든 방식으로 대사를 내뱉는다. 장기가 자라나고 식도가 막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그의 신체는 영화의 카메라와 가시적인 미장센으로 확신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또 다른 단서는 사울의 주변에 윙윙거리는 크로넨버그 특유의 벌레 소리다. 바깥으로 나온 그의 신체 근처엔 언제나 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미래의 범죄들>에서도 벌레는 화면에 보이지 않는다. 영화 카메라는 인간 진화를 폭로하고 미래의 인류를 가늠하려 들지만, 여전히 사울의 주변에 맴도는 벌레를 관측하지 못한다. 영화라는 기계장치는 벌레 소리의 난입에 다시 패배한다. 이런 맥락에서 <미래의 범죄들>은 결코 공존할 수 없을 것 같던 크로넨버그의 가시적인 축과 비가시적인 축의 충돌을 일으키는 영화이며 그 대결에서 패배하는 시각장치의 운명을 직시하는 영화다. 패배하는 시각장치 수술대를 조종하던 사울은 카프리스의 몸을 메스로 베어버린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사울이 말한다. “기계가 한 거야” 카프리스는 대답한다. “아니, 당신이 한 거야”. 수술이 곧 섹스인 <미래의 범죄들>의 세계에서 카메라는 메스로 타인의 몸을 베는 성적 충동이 사울의 욕망인지 기계장치의 욕망인지 불분명하게 남겨둘 수밖에 없다. 시각적인 현상을 재현하는 영화는 보이지 않는 신체적 욕망을 관측할 수 없다. <미래의 범죄들>은 몸을 포착하지만 몸의 비밀에 다가서지 못한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브레켄의 장기를 바꿔치기한 팀린의 행동처럼, 가시적인 관측은 무기력하다. <미래의 범죄들>에서 카메라와 텔레비전으로 매개되는 모든 현상은 그 비가시성에 무력하다. 그러므로 화면에 벌레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우리는 자각한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잉여에 패배하는 시각장치다. <미래의 범죄들>의 도입부에서 크로넨버그는 브레켄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뒤로 고통스럽게 꿈에서 깨어나는 사울의 모습을 병치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카프리스는 통증을 느끼며 꿈을 꾸고 있는 사울을 깨운다. 몸으로 고통을 느낀 사울은 말한다. “꿈의 일부분이 되는 것 같아” 신체는 통증을 지각하고 꿈의 한 부분으로 변해간다. 어쩌면 이 영화는 죽은 브레켄의 고통을 공유하려는 사울의 악몽 같은 열망일지도 모른다. 잉태와 출산이 삭제된 크로넨버그의 세계에서 인간은 악몽 속에서 태어나고 죽는다. 그러나 꿈은 영화의 무대인 화면 바깥에 있다. 사울은 마침내 유독성 플라스틱 바를 섭취한다. 하지만 <미래의 범죄들>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가 내내 보여주던, 신체를 낱낱이 드러내는 노골적이고 프로노그래픽한 이미지가 아니다. 카메라는 흑백으로 전환된 화면에서 플라스틱을 섭취한 사울이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한 방울의 건조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의 신체는 플라스틱을 소화할 수 있도록 변화했고, 미래의 인류로 거듭난 것 같다. 하지만 미래의 신체는 영화적 미장센에 포획되지 않는다. 카메라는 신체의 겉면을 지켜볼 뿐이고, 변형된 조직은 감춰진다. 우리가 보지 못한 세계가 여전히 남겨져 있다. ‘몸이 현실이다’Body is Reality라는 명제를 되돌아본다면, 이 순간 <미래의 범죄들>은 잠재된 현실의 변형에 마지막으로 패배한다. 말년의 크로넨버그는 이 장면에서 패배하는 영화의 운명에 관한 가장 날카로운 심문을 제기한다.

[이나라의 누구의 예술도 아닌 영화] 인간 예수, 소수자 예수, 올림픽과 교회 그리고 영화

드라마, 그림, 만화, 광고, 영상 작품처럼 여러 영화도 <최후의 만찬>(1495`~98)을 인용한다. 최후의 만찬 도상은 반복적으로 그려진 기독교 도상 중 하나이고,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의 구도는 에펠탑의 실루엣만큼이나 유명하다. <최후의 만찬>은 인터넷 밈처럼 가볍게 사용되는가 하면, 짐짓 심각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비리디아나>(1961),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 감독의 <맘마 로마>(1962) 같은 경우가 그렇다. 매춘 포주를 도상 속 예수의 자리에 배치한 <맘마 로마>는 최근 논란이 된 파리올림픽 개막식 장면 못지않게 불손한 장면일 것이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선 센강 다리 위에서 스트리트댄스를 추던 드랙 퀸, 어린이, 장애인, 초고도 비만인 등이 디오니소스로 분장한 가수 뒤쪽에 서며 활인화(tableau vivant, 살아 있는 모델이 회화, 조각, 문학 속 구성을 현실 공간에 정지상태로 구현하는 것. 지난 연재 참조)를 만들어냈다. 최후의 만찬 도상은 주로 긴 식탁, 예수, 예수를 배반할 유다를 포함한 예수의 열두 제자 등을 재현한다. 올림픽 개막식에선 DJ 역할을 했던 레즈비언 액티비스트 여성이 가운데 있었으니, 이를 <최후의 만찬> 활인화라고 확신한 이들은 그가 예수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고, 퀴어한 존재들이 예수의 제자 자리를 차지해 불순하다고 비난했다. 종교재판의 가혹한 역사를 기억하는 프랑스는 종교에 대한 비판, 풍자, 조롱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편이지만 논란이 불거지자 기독교 신도들에게 상처를 줄 의도로 연출한 장면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출자는 <최후의 만찬> 도상을 참조한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올림포스 향연>(Le Festin des dieux, 1635~40) 도상을 참조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기독교 도상에서 고대적 정념 형태의 ‘잔존’을 발견하는 아비 바르부르크나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같은 미술사학자라면 개막식 활인화가 참조하고 있는 그림이 무엇인지 구별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중세 이래 사진, 텔레비전, 영화, 유튜브가 없던 시대에도 예수의 탄생과 행적, 죽음과 부활은 쉼 없이 묘사되어왔다. 교회는 신도들에게 종교적 ‘신비’를 보여주기 위해 사제들이 나서 종교극을 공연했고 종교화를 주문했다. 신도들은 1천년 전, 1500년 전, 거의 2천년 전에 지상의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태어났다 죽은 인간 예수, 무덤에서 사라진 후 부활한 예수를 두눈으로 보고자 했다. 그래서 종교극은 영화적 시나리오나 미장센이 구성되던 과정이다. 인간과 신성을 구별하는 기독교에서 인간적 모습과 수단으로 신을 가시화하는 일은 신학적 토론과 논란의 대상이었다. 10세기 프랑스 교회의 부활절 아침 미사는 가령 십자가와 수의로 예수의 부활을 보여주려고 했다. 사제가 부활한 신의 아들로 등장하던 12세기 공연은 신성모독의 위험을 무릅쓴 과감한 시도였다. 보여줄 수 없는 존재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어려움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동방박사를 주제로 한 12세기 종교극은 세 사람의 자세를 구체화한다. 첫 번째 동방박사가 무릎을 꿇고 갓 태어난 아기에게 경배하면 두 번째 동방박사는 고개를 돌려 예언을 알리는 별을 가리킨다. 그러니 성경에 쓰이지 않은 것,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관이 있던 장소에 대한 세밀한 묘사, 텅 빈 관을 발견한 여인의 동작, 표정, 동방박사의 몸짓 같은 것은 상상되고 발명되어야 했다. 무덤의 모습을 상상하고, 관의 뚜껑을 열고, 천사가 묘지 건물 앞에 서 있을지, 관에 앉아 있을지 결정해야 했다. 그래서 중세 시대 종교극은 미술, 조각, 연극 등 의 도상의 변화와 발전에 영향을 미쳤고, 활인화 형식은 종교극이나 성탄절 말구유 장식 등에서 계속 사용되었다. 물론 활인화는 19세기 이후에는 대중오락 공연장에서도 폭넓게 사용된다. 관객에게 작품 속 에로틱한 포즈를 흉내내고 있는 살아 있는 조각을 360도 각도로 관찰할 수 있는 포맷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세기의 영화 속 종교극 또는 종교화 인용은 종교, 예술, 오락의 형식으로 경합하는 모방의 기술을 살펴볼 계기를 제공한다. 부뉴엘처럼 교회와 사제의 타락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독교 정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파솔리니의 <맘마 로마>에서 에토레가 숨을 거두는 장면은 르네상스 시기 화가 만테냐의 <죽은 예수>의 낯선 구도와 유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감독 본인은 두 이미지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결국 진절머리를 냈지만 말이다. 만테냐의 <죽은 예수>에 대한 참조는 그자비에 보부아 감독의 영화 <신과 인간>(Des hommes et des dieux, 2010)에서도 등장한다. 이 영화는 파솔리니나 부뉴엘의 영화와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1996년 알제리 내전 당시 이슬람 반군 세력에 납치 살해된 일곱 가톨릭 수도사들의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와 기독교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개봉 후에도 가톨릭 교회와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획득했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사실주의적 구성 대신 생략과 단순함의 영화적 수단을 선택하면서 기독교적 ‘신비’와 ‘은총’의 영화적 현현을 시도했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프란체스코, 신의 어릿광대>(1950)의 전통에 낯 간지러울 정도로 직접적으로 오마주를 바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테냐의 <죽은 예수>, 카라바조의 <기둥에 묶인 예수>, 최후의 만찬 구성 등을 참조하고 있다. 특히 감독은 수도사를 최후의 만찬 속 예수와 사도, 카라바조 회화 속 예수의 자리에 놓는 구성을 통해 수도사들의 죽음이 일종의 순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시각적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파솔리니가 만테냐의 <죽은 예수> 속 예수의 자리에 매춘 여성 맘마 로마의 아들 에토레를 놓았던 것과 유사하게, 보부아는 부상당한 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를 놓는다. 수도원을 지키고 죽음을 택하는 가톨릭 수도원 수도사의 순교를 자신의 신에 대한 배타적 섬김과 복종으로 그리는 대신 자기 헌신을 통한 넓은 사랑의 실천으로 그리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아리아인의 우월한 신체를 내세웠다. 그렇지 않더라도 몸의 문화에 속하는 국가주의 행사인 올림픽은 ‘정상’ 신체들이 신체의 우월함을 뽐내는 행사가 되기 쉽다. <최후의 만찬>이 되었건, <올림포스의 향연>이 되었건, 파리올림픽 개막식은 퀴어의 포즈를 통해 프랑스를 비롯해 서구 근대 사회가 정상성의 표준으로 규정했던 서구, 비장애, 성인, 남성 신체 관념을 문제 삼겠다는 것을 천명했다. 이 일은 사실 중세 교회 사제가 신도들 앞에서 극을 연기했던 것처럼, 가톨릭 정신을 경건하게 다루는 <신과 인간>이 예수의 자리에 테러리스트를 놓았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를 현시하려는 일이고 포용하려는 일이다. 이나라의 누구의 예술도 아닌 영화 “오직 영화만이!”라고 말하는 대신 영화가 모방하는 예술과 경쟁하고, 전염되고, 영향을 주고받는 인터미디어성의 사례에 관하여 그리고 몰래, 보란 듯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오래전부터, 새롭게 뒤섞고 뒤섞이는 영화와 예술, 형식과 매체, 장소의 사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체계적인 영화의 과학을 주장하는 대신 영화의 반과학적 계보학을 그리고자 합니다.

[인터뷰] 이미 우린 SF의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듀나 인터뷰

- 데뷔 30주년 축하드립니다. 데뷔 30주년 기념 포럼 ‘시간을 거슬러 온 듀나’가 열렸는데요, 그에 앞서 몇달간 콜로키엄도 진행되었습니다. 행사들을 어느 정도 팔로업했나요. = 포럼에 온라인으로 참여했고 콜로키엄 자료 PDF를 받아서 봤어요. - 창작자이자 평론가로 긴 시간 활동해오셨는데요. 지난 30년을 돌아보면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 사건들을 떠올린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글쎄요. 전 제 과거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지난 30년 동안 자연인인 저에겐 정말 특별한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듀나에겐 자잘한 마감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거 같고요. 그게 전부입니다. 그동안 엄청난 도약이나 변화를 겪은 거 같지는 않아요. - 90년대의 창작 환경에 대해서 포럼에서 다각도로 다루어졌는데요. 처음 글을 쓰던 때가 기억나는지요. = 하이텔과 같은 통신망 시절의 분위기가 기억이 납니다. 아마 저의 대부분이 그 시절에 만들어졌을 거예요. 단지 언제부터 그 세계에서 멀어졌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 그 시기 과학소설 동호회에서는 해외 걸작들에 대한 소개나 감상이 주를 이루었는데요. = 작은 그룹이었고 작은 그룹의 장단점이 있었습니다. 번역되지 않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가 위계에 큰 영향을 차지했죠. 그래도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소개하려는 시도도 꽤 있었습니다. 코니 윌리스가 그때 꽤 많이 번역됐었어요. 그게 자연스럽게 창작으로 연결되었는데 피드백도 딱 그런 모임에서 나올 법한 것이었어요. 그 결과 제가 있긴 했으니까 저에겐 중요한 시기였죠. 저 자신은 다른 창작물에 대한 피드백이 활발한 편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전 백 단위 이상 조회수가 올라가면 만족했습니다. 피드백도 좋았지만 발동이 걸려서 계속 쓸 수 있었다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 꾸준히 창작하는 원동력이 있다면요. = 폐인이 되지 않겠다는 처절한 욕구요? 일단 글을 쓰면서 저만의 세계를 만들었으니 거기에 대한 책임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세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 처음 SF 소설을 써보고 싶다, 혹은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 아무래도 과학소설 동호회에 가입한 게 결정적인 동기겠지요. 그전에도 안 썼던 것은 아닌데, 그것들을 완성해서 남에게 읽힐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 이전부터 독자이긴 했는데… 모르겠어요, 전 당시 이것저것 쑤셔보는 중이었습니다. 과학소설 동호회에 가입한 것도 어느 정도 우연이었던 것 같아요. - 데뷔 30주년을 맞은 올해 중요한 소설집들이 연달아 출간되었습니다.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 단편집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와 듀나 작가 데뷔 30주년 기념 리뉴얼판 <너네 아빠 어딨니?>(구판 <용의 이>), 신작 단편을 모은 <찢어진 종잇조각의 신>이 그 책들입니다. 초기 단편과 신작 단편을 다시 검토할 때 만족하거나 아쉬운 부분들에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 다들 다양한 이유로 아쉽지요. 거기에 대해 너무 신경은 쓰지 않으려 합니다. 과거의 작품들이 아쉽다면 당시의 저와 지금의 제가 의견이 맞지 않기 때문인데, 당시의 저는 이미 죽었고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가보다 하고 미래에 집중해야죠. - 예전의 글을 다시 읽으면서 가장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 부분은 무엇이었을까요. = 아주 많이 바뀌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초창기 글들을 읽어보면 소위 ‘정상적인 어른’을 그리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 게 보입니다. 기혼자이고 아이도 있고 어른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 말이죠. 그런 사람들을 그리는 게 어른 작가로서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요샌 그런 거 안 합니다. - 성장기에 영화를 접한 방식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OTT를 통해,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영화를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과는 다른 시대였는데요. = 아무래도 텔레비전 영화들이 저에겐 가장 중요했지요.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그리고 AFKN을 통해 자막 없이 본 영화들. 정영일 평론가가 소개했던 레너드 말틴의 별점도요. 전 레너드 말틴의 영화 가이드를 한권 갖고 있었는데, 너무 자주 읽어서 분해되어버렸습니다. 전 이 책에 소개된, 제가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영화들을 사랑했어요. 그것들은 종종 제 꿈의 일부가 됐고 결국 소설 속에 슬며시 녹아들었습니다. 그 뒤에 비디오와 DVD 시대가 왔고 제 갈증은 많이 사라졌지요. 지금은 정말 영화 보기가 쉬운 시대인데, 궁금한 영화에 대한 갈망이 주는 쾌락은 많이 사라진 거 같습니다. 한 영화를 느긋하게 사랑하기엔 보는 작품이 너무 많기도 하고요. - 미국영화, 드라마의 어떤 부분이 작가님을 매혹시켰을까요. = 아무래도 도피처였지요. 저는 20세기 후반 남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가 있다면 일단 찌르고 봤습니다. 서구의 영화와 드라마는 제가 겪어야 할 현실에 대한 비교적 좋은 대안이었습니다. 전 30, 40년대 할리우드영화들을 더 좋아했는데, 제 부모 세대 영화광들의 ‘추억의 영화’ 느낌이 덜 났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제가 ‘추억의 영화‘들을 싫어한 건 아니지만요. 장르물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 만족스러운 장르 경험을 하기는 어려웠으니까요. - 읽고 본 작품이 늘어날수록 새로움을 느끼고 매혹되기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 본 작품들에만 매여 있어도 안된다는 강박 또한 존재하고요. = 이전 작품에만 머물 수는 없죠. 가끔 온라인에선 옛날 SF가 좋았다는 향수 섞인 글이 올라오는데, 아니, 지금 SF가 존재하는 건 그걸 쓴 사람들이 옛날 SF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과거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옛 작가들이 하지 않은 걸 해야죠. 전 과거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과거가 없는 척은 더더욱 못하겠고. - 리뷰, 나아가 평론을 쓰기 시작한 방식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 하이텔에 일기처럼 조금씩 쓰기 시작했고 <씨네21>에서 작은 자리를 마련해주었지요. 그리고 제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전 그냥 떠밀려갔던 거 같아요. 사이트를 만든 건 <씨네21>의 칼럼 연재가 끝난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계속 말하지만, 전 폐인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뭔가 일을 해야 했습니다. - 아끼는 장르들을 처음 접한 시기와 주요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제 세대 사람들은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축약본으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갑자기 동서추리문고가 나타났습니다. 동네 문방구에서 몇 백원씩 주고 사면서 제 라이브러리를 넓혀갔지요. 아무래도 SF의 비중이 낮았기 때문에 더듬더듬 원서를 읽어야 했고요. 그렇게 해서 읽은 책들은 다들 비슷했습니다. 제 리스트엔 페미니스트 작가들 비중이 조금 높았는데 그게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최근 듀나 작가님의 소설 영어판이 잇달아 출간되었습니다. <평형추>의 영어판 (2023)에 이어 이번에는 단편집 (2024)도 출간되었어요. 이번에 소개된 작품은 단편선집인데요. 어떤 작품을 실을지에 대해 작가님과 논의가 있었나요. 한편 <평형추>의 리뷰는 <뉴욕타임스>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 아뇨. 전혀 논의가 없었습니다. 단편들은 모두 역자 선택이에요. 원래는 <아직은 신이 아니야>의 몇몇 챕터도 발췌해 실을 계획이었는데, 그 책은 나중에 따로 전체가 번역될 예정입니다. <와이어드>의 평자가 제 책을 토머스 핀천의 소설과 비교했습니다. 머리 맞고 골방에 갇혀 10년 동안 한국 드라마만 본 핀천이 쓴 소설 같다나요. 많이 웃었는데, 핀천은 정말 옛날 저에게 영향을 많이 준 작가입니다. - SF영화에 대해서는 비평문을 여러 차례 게재했습니다만, 한국 SF 소설에 대해서는 많은 글을 읽을 수 없습니다. = SF에 대한 글을 꽤 썼습니다. 제 책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에서도 SF의 비중은 커요. 단지 동시대 한국 SF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런 글을 쓰기엔 몇몇 작가들은 저와 너무 가까워요. 제가 과연 충분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 동시대에 활동하는 한국 SF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작가님의 의견도 듣고 싶었습니다. = 지난해과 지지난해엔 요새 한국 작가들의 SF를 서구 SF보다 더 많이 읽었습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연말에 계산해 보니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신기했어요. 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영향을 받느냐. 글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 동시대 한국 작가들과 공통된 대기를 공유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각자의 방식으로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겠죠. - <씨네21> 1464호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의 욕망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찮기 그지없다”라고 썼습니다. 알고리즘이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시대, SNS든 OTT든 “우리의 욕망만으로 이루어진” 타임라인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든 시대에, ‘새로고침’이 의미 있게 하기 위한 작가님의 방법이 있을까요. = 전 지난해부터 이전에 읽었던 고전들을 한달에 한권씩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 취향이 완전히 굳어지기 전에 읽었던 책들에 대한 제 생각을 다시 확인하고 그걸 통해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는 가지들이랄까 그런 걸 찾고 있는 중이에요. 세계문학전집의 고전 리스트는 옛날보다 지금이 더 도움이 되는 거 같습니다. 그 무개성과 강압성 때문에 제 취향에서 벗어난 독서가 가능하거든요. - ‘무개성과 강압성’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 모든 고전 리스트는 무개성과 강압성을 추구합니다. 과거의 수많은 책에서 정선된 것이고 그 때문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이죠. 물론 정말 그렇지는 않습니다. 세계문학전집 리스트만 해도 꽤 빨리 변해요. 당연히 고전이라고 생각했던 책들 역시 잊히고요. 지금의 세계문학전집과 이전 것을 보면 리스트가 완전히 다릅니다. 여성과 비서구 작가들이 늘어나고 장르적으로도 더 다양하지요. 하지만 그런 리스트들이 추구하는 무개성과 강압성은 지금처럼 자신의 취향 안에 갇힐 수 있는 상황에서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다른 출구도 있겠죠. - SF 미스터리, 고전적 미스터리에 비해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는 거의 창작하지 않는 편입니다. = 정통 미스터리 단편집을 한권 냈으니 거의 안 쓴 건 아니지요, 개인적으로 전 무대가 되는 세계를 통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SF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지요.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다보면 세계를 고칠 수 없다는 게 종종 갑갑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일단 쓰기 시작했다면 그 세계의 현실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죠. 아무리 벌어지는 사건이 비현실적이라도요. 동시대 배경의 추리소설을 쓰면서 느낀 건데, 전 ‘막연한 현재’를 갖고 추리소설을 못 쓰는 거 같습니다. 시공간의 정확성이 중요하더라고요. - 저는 <민트의 세계>는 성장물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왔는데요. 로맨스나 성장물에는 관심이 없거나 쓸 생각이 없다고 반복해서 얘기하셨어요. = <민트의 세계>에서 민트는 전혀 성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 캐릭터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고 제법 영리하지만 철저하게 얄팍하지요. 단지 이 애에겐 장점이 하나 있는데, 자기가 그렇다는 걸 잘 알고 자신의 힘을 의미 있게 쓰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민트는 자기보다 고민이 많고 생각이 깊은 사람들에게서 목표를 멋대로 빼앗아옵니다. 전 이게 꽤 재미있는 동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민트는 힘을 쓰는 것 자체가 가장 재미있습니다. 뭘 하고 놀아도 좋은데, 그래도 목표에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본격적인 성장물을 쓰려면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 더 커야 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조금 더 긴 소설들을 써야겠죠. 전 얼마 전에 신일숙의 <1999년생>의 속편인 <2023년생>을 썼습니다. <1999년생>은 모범적인 성장물입니다. 하지만 전 이 소설을 쓸 때 제 캐릭터의 성장보다는 신일숙이 만든 세계를 제 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지요. 전 신일숙이 만든 캐릭터 몇명을 등장시켰습니다. 중년을 넘겨 다들 좀 꼰대가 됐는데, 이것도 성장일까요. 로맨스를 안 쓰지는 않습니다. <첼로> <태평양 횡단특급> <추억충>은 로맨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체질상 로맨스 작가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로맨스를 써야 할 때 전 이야기를 풀 수 있는 최단 거리를 찾습니다. 로맨스에 관심이 있는 작가들은 정반대로 가죠. 전 로맨스를 쓸 때 주로 프랑스 고전 작가들을 모델로 삼습니다. 라파예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부인>이나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의 사랑> 같은 책 말이죠. 제가 좀 덜 민망해하며 작업할 수 있는 스타일을 그 소설들이 제공해주는 거 같아요. -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님은 현시대를 사는 어른들에 냉정하다는(혹은 무관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청소년 주인공들이 많은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읽힐 때가 있고요. = 제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청소년물을 써달라고 의뢰를 받기 때문입니다. (제 최근 단편인 <자코메티>도 청소년 단편 앤솔러지인 <녹아내리기 일보직전>에 실렸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아마 제가 어린 시절 읽었던 청소년이나 어린이 주인공 소설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제가 청소년 주인공을 쓰는 걸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동시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사실주의 소설은 절대로 못 쓸 거 같아요. 쓸 생각도 없고. 전 제가 청소년이었던 시절을 좋아 적도 없습니다. 근데 그와 별도로 전 동시대 한국 어른들의 사고방식이나 문화를 당연하게 여긴 적이 없습니다. 전 한국 어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욕망의 상당 부분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어른 주인공을 내세우더라도 이 사람들이 아주 어른처럼 행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그 때문에 제 주인공들의 청소년 비중이 실제보다 높아 보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 작가님의 작업 루틴에 대해 들려주세요. 소설의 경우 청탁을 받고 시작하는 작업이 많을지, 청탁과 별개로 떠올리는 이야기들이 있을지도 궁금했습니다. = 일단 늘 굴리는 이야기들이 몇개 있긴 합니다. 어떤 것들은 몇십년째 머릿속에서 구르고 있지요. 이번에 쓴 단편 <자코메티>의 아이디어는 20세기에 나온 것입니다. 그 옛 아이디어가 새 환경에 떨어지니까 이야기가 완성이 되더라고요. 보통은 청탁을 받은 뒤 이야기를 짜는 편입니다. 전 대부분 내용을 모른 채 이야기를 시작해요. 중반을 넘어서면 지금까지 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알게 되고 그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끝난 뒤에도 그걸 느낄 수 없다면 큰일 난 거죠. 제가 얼마 전에 끝낸 단편이 바로 그런 꼴이라 전 지금 난처하기 그지없습니다. 고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할 텐데요. - 많은 창작자들이 X와 같은 SNS에 빠져 지내는 시간 때문에 창작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곤 합니다. = 맞습니다. 전 트위터를 이렇게 많이 해서는 안돼요. - <씨네21>에 싣는 글들을 포함해, 예정된 장기 마감에 끼어드는 급한 마감들을 조율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합니다. 지난 몇달 동안 전 계속 소설 마감에 실패하고 있어요. 단행본 마감이어서 그런 것이긴 한데, 조금 미칠 거 같습니다. 그래도 잡지 마감 같은 건 최대한 성실하게 맞추려고 합니다. SNS를 안 하려고 노력한 적은 없어요. 거기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군요. - 글을 쓸 때 돌아다니면서 모바일 기기로 쓴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특별히 잘 써지는 장소나 이동방식이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 Byword라는 앱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백화점 안을 돌아다니며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지금과 같은 날씨에는 쇼핑몰 같은 곳밖엔 선택할 수 있는 곳이 없죠. 날씨가 좋으면 가끔 하천으로 나가긴 하는데요. 하여간 책상에서 글을 쓴 건 거의 10년 전이 마지막입니다. 바람의 화원 방영되었을 무렵에 넷북을 샀는데 그 뒤로 데스크을 거의 안 썼어요. 이게 저에게 좀 나쁜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습니다. 집중력 같은 데에. 하지만 이 상황에서 해나가야죠. - 소설과 평론 모두 마찬가지인가요. = 네, 마찬가지입니다. 전 처음부터 쓰는 편입니다. 앞 문장이 없으면 다음 문장으로 나아가지 못해요. 그래서 글이 막히면 난처해집니다. 그냥 그 자리에 박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 포럼 때 소설가 곽재식 작가님의 발제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처음 듀나 작가님이 데뷔했던 때에는 한국적인 문제의식에 관심이 없는 탈한국적 작가 취급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한국 배경 SF를 정착 작가로 평가받게 되었다고요. 흔히 한국 소설에서는 리얼리즘이 중요시된다고 하고, 그런 사고방식은 장르(소설)에 대한 비평을 협소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 장르소설은 원래 탈국가적인 장르적 비현실성을 공유하는 거 같습니다. 채만식이나 김내성의 추리소설을 보면 30년대 조선의 풍속 묘사도 볼 수 있지만 그걸 넘어서는 장르적 비현실성이 있고 그건 서구 추리소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요. 양쪽을 다 봐야 하는데. 근데 그건 옛날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지금 리얼리즘과 한국적인 면에만 집착하면 비평 자체가 불가능하죠. - ‘다시 읽기’ ‘다시 보기’도 많이 하나요. = 보르헤스, 도일, 웰스, 맨스필드, 콘래드… . 지금은 이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전자책이 발명돼 좋아하는 단편 작가들의 작품을 어디에나 가져갈 수 있게 되었는데 정말 좋아요. 시간이 남을 때 아무 셜록 홈스 소설을 꺼내 읽을 수 있는 사치는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죠. 영화로는 버스터 키턴과 자크 타티의 코미디, 진저와 프레드의 뮤지컬, 히치콕의 스릴러영화들이 떠오릅니다. 전 종종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볼 영화를 고르는데 요새는 <사랑은 비를 타고>와 <유령과 뮤어 부인> 사이를 오갑니다. - 독자가 소설을 어떻게 읽을지에 개입하지 않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곤 하는데요. = 아뇨, 전 개입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건 허망하지요. - 나이를 먹고 관점이 변한 경우 중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경우도 있었을까요. = 발자크의 소설들은 지금이 더 재미있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 소설의 깊이 때문이었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나이 들면서 불완전성과 결함을 더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거 같습니다.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콘래드 장편에는 은근슬쩍 구성이 불완전한 면이 있는데 전 그 영향을 꽤 받는 거 같습니다. 다른 작가라면 공들여 묘사했을 결정적인 사건의 묘사를 회상으로 얼렁뚱땅 넘긴다거나. - 반복해 되돌아가는 작가군이 있다는 것이 작가님의 창작, 정신 활동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하나요. = 긍정적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저가 되게는 하지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저이니 저로서는 그냥 그런가보다 해야죠. - 최근 재미있게 읽은 비문학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전 그 책을 문학으로 읽었던 거 같아요. 문학 맞죠. 과학 문학. - 데뷔 30주년 기념 포럼 때, 듀나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을 여쭤봤었는데요. 편애하지는 않으려 한다고 얘기하셨지만 최근 작 중 <구부전> <추억충> <찢어진 종잇조각의 신>을 언급했습니다. 이유로는 “독자들을 비교적 잘 통제한 것 같아요”라는 짧은 코멘트가 있었고요. 이 코멘트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 지금 저의 소설들을 시작하고 싶다면 거기서 시작하는 게 좋을 거 같긴 해요. 물론 <찢어진 종잇조각의 신>은 제 새 단편집에 실렸으니 그 책을 홍보하는 건 중요합니다. 통제에 대해 말한다면 쓰면서 했던 계산들이 제대로 반영됐고 그게 독자들에게 전달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의도와 전혀 다르게 읽어도 재미있긴 할 텐데. - <찢어진 종잇조각의 신>에 수록된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에서는 작가님 소설에서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스토리텔러의 이야기입니다. 필멸자가 죽음의 불안을 이겨내는 방식으로서의 창작과 독서를 생각하게 만들어요. <찢어진 종잇조각의 신>은 종교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역시 창작에 대한 메타픽션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왜 창작하는가”라는 질문이 작가님에게 특별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요. = 최근 들어 유달리 그래졌습니다. 이미 우린 SF의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조금은 사이버펑크물이기도 하고 조금은 밀리터리 SF이기도 하고 조금은 재난물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SF라는 장르의 글을 쓰는 행위가 무엇인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다음 예정인 작업은 무엇인가요. = 앞에서 말했듯, 신일숙의 고전 <1999년생>의 속편인 <2023년생>을 썼습니다. 팬들이 저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연작 단편집 두개를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퀼라의 그림자>에서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쓰면서 좀 애를 먹었어요. 마지막 단편을 쓰기 시작할 때 제 허구의 세계에서 현실이 개입하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났지요. - 최근 재미있게 읽은 소설 혹은 비소설. = 이지은 작가의 <츠츠츠츠>. - 소설을 쓰되 읽을 순 없음 vs 소설을 읽되 쓸 순 없음 = 쓸 순 없음. (소설 말고 다른 걸 쓰죠.) - 소설을 쓰다가 전개가 막히면 나는 그래도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 vs 딴짓을 시작한다 = 전 책상에서 소설을 안 씁니다. 돌아다니면서 모바일 기기로 써요. 그러니까 전 언제나 딴짓을 하면서 글을 씁니다. - 원고가 풀리지 않을 때 내가 즐겨하는 딴짓은. = 트위터. 아아. - 나에게 셰익스피어란. = 굳이 형식적 완벽함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위대함에 도달했던 거장. - 나의 묘비명을 쓴다면. = 전 묘지가 없었으면 합니다. 시체는 해부용으로 기부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