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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일씨, 명예훼손 혐의 벗어

지난해 5월 <젖소부인 바람났네>의 주인공 진도희(35)씨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던 에로비디오 제작자 한지일(58)씨가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지방검찰청에게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서울지검 관계자는 "한씨의 인터넷 사이트가 서비스하는 콘텐츠가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를 거친 내용인데다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려워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한지일씨는 30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진씨의 민형사상 소송 제기로 사이트 운영을 중단하고 비디오테이프까지 반품되다보니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털어놓은 뒤 "비록 검찰에서 혐의를 벗겨주기는 했으나 아직도 나를 파렴치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진도희씨는 "검찰로부터 통보를 받지 못해 뭐라고 얘기할 수 없다"면서 "한씨가 주장하는 10년 전속계약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 없고 직간접으로 많은 피해를 본 만큼 민사소송은 계속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지일씨는 1972년 <바람아 구름아>로 영화계에 데뷔한 왕년의 인기배우.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78년 충무로로 컴백한 뒤 <경찰관>, <아제아제 바라아제>, <물도리동>, <길소뜸>, <하얀전쟁> 등에 출연하며 대종상 신인상(78년)과 남우조연상(89년),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79년) 등을 수상했다. 90년 한시네마타운을 설립하며 에로비디오 제작자로 변신한 그는 <젖소부인 바람났네> 시리즈로 한때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IMF 한파'와 에로비디오 시장의 불황 등을 거치면서 파산 위기에 몰렸고 부인과의 이혼과 자신이 스타로 키운 진도희씨와의 갈등까지 겹쳐 어려움에 빠져 있다. (서울=연합뉴스)

다큐멘터리 <송환>, 선댄스영화제 최초 수상

2004 선댄스영화제 현지 보고 올해 한국영화의 토정비결은 일단 운수대통의 기운을 타고났다고 단언할 만큼 연초부터 안팎으로 겹경사가 펼쳐지는 분위기이다. 이미 국내에선 <실미도>가 관객 1천만명 시대의 새로운 역사쓰기를 카운트다운하고 있는 동안 태평양 건너 산골마을에서 날아온 작지만 소중한 기쁜 소식 한 가지 역시 우리를 감격시키기에 충분하다. 지난 1월25일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막을 내린 2004년 영화제 레이스의 출발점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출품된 한국 독립영화계의 대부 김동원 감독의 비전향 장기수 다큐멘터리 <송환>이 다큐멘터리 작품 전체를 통틀어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룬 최고의 작품에 수여되는 표현의 자유상(Freedom of Expression Award)을 수상,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선댄스영화제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유난히 복수 수상이 많았던 많큼 논란이 많았던 여타 부문과 달리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들이 시상평에서 <송환>의 수상만큼은 큰 고민과 논란의 여지없이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듯이 촌스런 쌍팔년도식 표현임을 감수하고라도 쾌거라는 단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상기된 모습으로 무대에 선 김동원 감독의 강도 높은 수상소감이 마이클 무어의 그것 못지않게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이런 상이 있는 줄도 몰랐다. 부시가 등장한 이후 한반도에는 다시 긴장상태가 고조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북한이 괴물들만 사는 나라가 아니라 좋은 사람들도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라고 통역없이 직접 소감을 밝히자 객석에선 환호와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김동원 감독, "북한은 괴물의 나라가 아닙니다" 지난 1월15일 개막한 선댄스 영화제는 다큐멘터리의 종주 영화제임을 새삼 강조하는 듯, 이례적으로 서핑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 스테이시 페랄타의 다큐멘터리 로 문을 열며 열흘간의 레이스를 시작했다. 특유의 악명 높은 혹독한 눈보라 대신 기간 내내 따뜻한 날씨로 몇 시간이고 줄서기에 익숙한 선댄스 마니아들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는데, 예상 외의 날씨만큼이나 수상작들의 면면도 대다수 관객과 평단의 예측을 뒤집은 의외의 결과가 속출했다. 우선 극영화 부문 대상을 거머쥔 지능형 스릴러영화 <프라이머>(Primer)는 영화제 내내 주목을 끌지 못하고 숨어 있던 그야말로 복병이었다. 감독·각본 셰인 카루스가 주연까지 겸하고 슈퍼 16mm로 촬영한 이 영화는 미지의 발명품을 만들다 그 기계가 전지전능의 힘을 발휘한다는 새로운 비밀을 알고 난 뒤 혼란에 빠지게 된 네 젊은이의 이야기를 음모이론을 가미한 스릴러 형식으로 그렸는데, 몇해 전 같은 부문에서 반향을 일으키며 대런 애로노프스키를 스타로 등극시킨 <파이>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 역시 최고의 화제작 <슈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를 제치고, 두 어린 천재 뮤지션들의 우정와 라이벌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7년 동안 쫒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아낸 뮤직다큐멘터리 <딕!>(Dig!)에 돌아갔다.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에 해당하는 특별상을 수상한 <다운 투 더 본>(Down to the Bone)은 제목대로 뼛속까지 마약에 찌들어버린 어느 저소득층 중년주부의 처절한 중독탈출기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시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독특한 감성의 디지털 화면으로 담아냈는데, 98년 선댄스에서 선보인 단편을 토대로 업그레이드시킨 장편이라는 점과 실제상황이라 믿겨질 정도로 극사실적인 연기를 펼친 발견의 여배우 베라 파미가가 심사위원단의 전폭적 지지를 끌어낸 경우다. 이외에도 촬영상을 수상한 (November)은 <프렌즈>와 <스크림> 시리즈의 커트니 콕스가 주연을 맡아 연기파 배우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였는데, 한 편의점 강도사건의 생존자인(?) 여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세 가지 버전으로 사건의 전모를 보여주는데- 따라서 결론도 세 가지- <오픈 유어 아이즈> <메멘토>에 이어 뫼비우스식 환상스릴러의 계보에 올리기에 모자람이 없을 뿐 아니라 올 영화제 경쟁작 중 가장 창의적인 비주얼과 이야기 구조를 선보였다. 그외에도 올해 극영화 경쟁부문에는 <우즈맨>의 케빈 베이컨, <우린 더이상 여기 살지 않는다>(We don’t Live Here anymore)의 나오미 왓츠- 직접 제작까지 맡음- <가든 스테이트>의 내털리 포트먼 등 내로라 하는 주류 실력파 배우들이 등장했는데, 생각있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변치 않는 독립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새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수상권에선 멀어졌지만 객석의 승자는 따로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객상을 수상한 <기품으로 가득 찬 마리아>가 물론 호응을 얻긴 했지만, 기간 내내 거의 센세이션에 가까운 입소문을 탄 영화는 자레드 헤스의 심상찮은 데뷔작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라는 엽기코미디영화. 한국에서도 자취를 감춘 암표 등장사태까지 야기, 무려 100달러까지 치솟더니 심지어는 영화를 본 관객의 주인공 따라하기 유행이 생길 정도였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몇몇 영화들이 있는데, 한마디로 <로얄 테넌바움>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의 맥을 잇는, 아니 재미면에선 훨씬 앞서는 일명 ‘루저(loser)무비’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아이다호 시골마을 고등학교를 무대로 엽기 왕따 삼총사가 벌이는 기상천외한 학생회장 도전기를 뼈대로 마치 한국에서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노 브레인 서바이버>의 주인공들을 모아놓은 듯한 캐릭터들이 펼치는 유일무이한(?) 슬랩스틱과 썰렁하지만 따뜻한 유머의 퍼레이드는 시종일관 객석을 뒤집어놓았다. 이어 치열한 판권전쟁 끝에 폭스 서치라이트가 전세계 배급권을 전격적으로 따내 내친 김에 시장성까지 검증받았다. 반면, 전통적으로 선댄스가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다큐멘터리 부문은 수상작들을 비롯, 올해 작품수준들이 다소 주춤했다는 것이 중평. 그중에서 그나마 시선을 끈 작품들은 와 <이멜다> 정도. 그나마 관객호응도에선 <슈퍼 사이즈 미>가 단연 압도적 인기를 끌었다. 패스트푸드의 폐해를 고발하기 위해 실제로 지극히 정상적인 건강상태의 감독이 한달 동안 꼬박 맥도널드 음식만 먹고나서 모든 신체기능이 극도로 악화됨을 증명해낸, 사실은 섬뜩하기 그지없는 이 다큐멘터리는 개봉시 업계의 극렬한 반발이 예상되며 당분간은 절대 햄버거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들이 터져나올 정도로 객석에 충격파를 던지며, 마이클 무어가 그랬듯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 아이콘을 향한 통렬한, 하지만 조금은 부드러운 유머감각이 돋보였다. 새싹들의 잔치 한켠, 프리미어 부문에선 이미 선댄스를 겨울 별장 드나들 듯해온 대가들의 느긋한 내공대결이 한창이었는데, 그 선두타자는 몇해 전 선댄스에서 발굴돼 전세계를 울린 <중앙역>을 만든 남미영화의 황태자 월터 살레스 감독. 이번에는 체 게바라의 남미 오토바이 종단 여정을 담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 친정에 돌아왔는데, <아모레스 페로스> <이 투 마마>로 급부상한 라틴 신성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호연과 감독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서정적 로드무비의 정수를 보이며 유니버설 계열 포코스피처스에 무려 500만달러에 판매되는 개가를 올렸다. 아시아에 문을 연 선댄스, 아시아의 맹주로 뜬 한국 30년이 흘러도 여전히 외설논쟁의 원조이자 지존임을 새삼 확인시킨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역작 <몽상가들>은 미국 내에서 무삭제로 NC-17등급 개봉이 확정됨과 더불어 이곳에서도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미국 개봉 초읽기에 들어간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 역시 관객을 흥겨운 사무라이 뮤지컬스탭 속으로 동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반가운 모습과 함께 지난 부천영화제에서 발견된 가이 매딘 감독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도 선보였다. 전통적으로 엽기호러의 산실로 불려온 심야상영 부문에선 <무간도>로 할리우드에도 이름을 날린 유위강 감독의 3D호러 <파크>가 눈에 띄었고, 등이 관심을 끌었다. 한국에선 심의파문으로 악명을 떨친 <엑스텐션>이 뒤늦게 선보여 인기를 끌었지만 아쉽게도 왕년의 <블레어윗치> <큐브> 신화를 잇기엔 전체적인 작품수준이 힘에 부치는 편이었던 게 사실이다. 이쯤 되면 최근 미국 독립영화계의 한 흐름을 읽을 수 있는데, 한마디로 지독한 염세주의와 우울함으로 점철된 총체적 불황이 장르를 초월한 거의 모든 작품에 진하게 묻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번 영화제를 특징짓는 가장 커다란 변화는 아시아영화에 대한 파격적인 문호개방이다. 그동안 유럽권의 유수 영화제에 비해 아시아영화에 대한 문턱이 유난히 높았던 선댄스가 올해부터는 작정한 듯 다양한 국적의 아시아권 영화들을 대거 초청한 것이다. 매년 보통 한 작품 정도 진출하기도 바빴던 한국영화들도 올해는 다양한 부문에 걸쳐 가장 많은 작품들이 상영되며 명실공히 아시아영화의 새로운 맹주임을 과시하며 이러한 아시아 영화열풍의 선봉에 자리했다. 기쁜 소식을 안겨준 <송환> 외에도 월드시네마 부문에는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과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이곳에서 미국 진출의 물꼬를 텄다. 또한 프리미어 부문에선 <스카이 블루>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재편집과 영어더빙 공정을 거친 미국판 <원더풀 데이즈>가 상영됐으며, 단편부문에는 노종림 감독의 과 선댄스의 소문난 단골손님인 박진오 감독의 <천천히, 조용히>(Slowly Silently) 등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영화가 초청되고도 미국 독립영화인 집안잔치라는 위세에 주눅들게 마련이었던 아시아 영화인들이 모처럼 기를 편 뿌듯한 한해였다.

전국 1천만 관객 동원 눈앞에 둔 <실미도>의 감독 강우석

<실미도>는 정말 최초로 전국 1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될 것인가? 지금까지 추세로 보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친구>가 갖고 있던 최고 흥행기록(전국 820만명)을 다음 주중 돌파하는 것이 기정사실로 드러난 지금 시점에선 불가능이란 없어 보인다. 과연 강우석이다. <실미도>가 처음 공개된 뒤 있었던 설왕설래를 무색게 하는 이 흥행기록은 지난 8년간 한국 영화계 최고의 실력자로 손꼽혔던 그의 이름에 또 다른 광채를 더하고 있다. 강우석 감독에 대한 영화인들의 질시나 선망이 이제는 “우리, 강우석 앞에선 모두 조용히 있자”는 체념 혹은 외경심으로 바뀌는 상황이다. 한 영화인은 “이건 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뛰어넘는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 정말 세상엔 재운을 타고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일까? <실미도> 흥행에서 놀라운 점 가운데 하나는 이 영화가 시네마서비스의 운명을 다시 한번 상승궤도로 돌려놓았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잇단 흥행실패로 위기에 몰렸던 시네마서비스는 <실미도>로 다시 일어섰고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던 넷마블과 분리한다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런 기막힌 역전극은 이번만이 아니다. 1996년엔 부도위기까지 몰렸던 시네마서비스가 <투캅스2>로 재도약했고 1999년에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추락하던 시네마서비스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하늘이 돕는다, 는 표현을 강우석 감독에겐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 강우석 감독의 이런 재운에 호기심을 갖는다면 그가 집에선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할 것이다. 사진기자 오계옥씨가 집에서 돈관리는 누가 하느냐고 묻자 강우석 감독은 “가정도 경영해야 한다”며 특유의 사업적 감각을 보여준다. 그는 12월 중순에 아내에게 내년 1년 예산안을 받아서 1년치 가계생활비를 한번에 준다고 말한다. 아이들 유치원비×12, 생활비×12, 관리비×12, 예비비 등 각 항목을 짜서 받은 1년 예산안을 검토하고 수정해서 1년 예산을 주는 식이다. 물론 이게 강우석의 성공비결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남다른 구석이 없다면 어찌 하늘의 도움이 있겠는가?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태도도 남들과 같지 않다. <실미도> 개봉 직전 인터뷰에서 오만하다 싶을 만큼 자신감 넘치는 말(몇몇 감독에게 직격탄을 날리는)을 하던 그는 <실미도>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다음인 이번 인터뷰에선 오히려 겸손한 모습이다. 아무튼 다시 강우석 감독의 말을 듣고 싶어진 건 그가 거듭 대형사고를 치는 동안 한국 영화계가 참으로 흥미로웠다는 점 때문이다. 아무래도 <실미도>는 그 절정인 것 같다. -지금까지 몇만명 정도 들었나. =764만명 정도. 설 연휴 동안에도 웬만한 큰 극장들은 죄다 매진이었다. 극장쪽 얘기 들어보니까 아직도 50대, 60대 관객 중에 매표구에다 대고 표 어디서 파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더라. 서울의 3.5배 정도 스코어가 전국 스코어인데, 그 이유가 극장 없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가까운 도시로 영화를 보러 나온다는 거다. 홍천 같은 데서는 버스 대절해서 보러 온다더라.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지방이 많고, 관객층이 굉장히 폭넓고. 아무튼 이런 흥행을 예상했었나. =아니, 난 그런 예상은 안 했다. (웃음) 사실 인구 대비 1천만이란 스코어란 건 바람이지. 주문처럼 한번 외워본 거다. 아무리 좋다고 떠들어줘도 사실 한국에서는 <살인의 추억>이 들었던 560만명, 이게 맥시멈 스코어다. <쉬리> 때도 도시 아닌 데 사는 아저씨들이 나와줘서 620만명 정도의 스코어였다. 그 정도까지 쪼아보자는 건 있었지만 이 스코어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뭔진 모르지만 이상한 바람이 분 것 같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분위기로 가보자. 처음에 저 포스터와 비주얼이 공개되고 예고편이 나왔을 때는 느낌이 너무 칙칙해서 과연 사람들이 보러 올까 싶었다. 굉장히 무거울 것 같고. 100억원이란 돈을 썼는데 그 정도 관객을 모을 수 있을까 우려됐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엄청난 흥행이 되는 걸 보니까 기존에 가졌던 생각이 잘못된 건가 싶더라. =전에 인터뷰할 때도 그런 말을 했는데, 이번에는 제발 좀 영화 같지 않게 해보려고 촬영감독, 조명감독 하는 사람들한테 조명할 시간도 안 주고 거칠게, 너무 세련되게 가지 말고 너무 빤짝빤짝하게 가지 말고 사건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처럼, 다큐멘터리처럼 흔들어주라고 했던 게 관객한테 편하게 다가온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야기는 무조건 쉽게, 쉽게 풀었다. 기승전결 분명하게. 그게 오히려 연기자들한테도 편하게 전달됐고 그래서 편하게 한 연기들이 사람들한테 솔직하다, 쉽다, 감동이 자연스럽다는 식으로 입을 타고 막 전해졌다. -역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분위기로 묻고 싶은 게 있다. 초반 촬영 중에 러시를 보고 제작진이 실망을 많이 했었고, 기대했던 화면이 안 나왔기 때문에 나중에 방향을 전환했다는 얘기가 있다. =내가 역사적 소명의식이 투철한 놈도 아니고 그냥 <반지의 제왕> 같은 블록버스터랑 붙자, 한번 가보자, 했다가 나중에 든 생각이, 내가 사람들을 정말 재밌게 해주려고 영화적으로 풍성하게 트릭 쓰고 했다가는 맞아죽겠다는 거였다. 어쨌든 실화에 바탕을 둔 거니까 장난치치 말자고 생각했다. 콘티 작업하는 사람한테 내가 한 얘기가, 담백하게 끌어내자, 솔직하게. 그런 거였다. 다들 드라마에 꽂혀 있어서 영상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촬영감독은 노래를 불렀다. 촬영상 하나도 못 받겠네요. 그런데 감독상은 받습니다. 왜냐하면 드라마야 드라마. 드라마를 위해 영상을 희생시키겠다고 노래를 불렀다고. 우리가 빨리 찍을 수 있었던 것도, 영상에 집착했으면 절대 빨리 못 찍지. 그런 거다. 한 1/3 찍은 거 보고 야, 이거 화면이 왜 이래? 안 되겠다, 지금부터 촌스럽게 가자, 그건 아니라고. 내가 영화 한두편 찍었나. 일부러 촌스럽게 가자고 한 게 아니라 못 찍어서 그랬는데 인터뷰에서 거짓말을 했다면 정말 나쁜 놈이지. 의심나는 사람 있으면 촬영감독한테 물어보라고. -일반 관객의 반응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게 있나. 의외의 반응이라 놀랐다거나. =솔직하게 얘기하면, 흥행이 적당히 되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또 내가 신인감독이면 티내고 돌아다니겠는데, 내가 흥행 많이 해봤잖나. 흥행 잘됐을 때 겪는 고초가 있다. 그거 겪기 싫어서 거의 숨어 있었다. 사람들 거의 안 만나고 경주 어머니 집에 가 있으면서 술을 마셔도 동네 사람들을 불렀다. 다른 영화인들 앞에 일부러 안 나타나려고 했다. 우린 파티도 하나도 못했다. 500만명 때 모이자고 그랬다가 핑계대고 684만명 때 모이자 그랬는데 그것도 없애버리고 조용히 있었다. 아예 안 만나. 어떻게 보면 이건 일종의 현상인데, 우리가 현상을 너무 즐기면 다른 영화를 준비하고 다르게 찍어왔던 사람들이 굉장히 곤혹스러워진다. 스코어는 우리가 떠들지 않아도 다 공개된다. 반대로 조금 교만을 떨자면 의도한 대로 너무 관객이 많이 봐주는 것 같아서 당혹스럽다. 내가 이렇게 관객을 읽었나? 사실 그 정돈 아닌데(웃음), 이렇게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 하고 수를 던져본 건데 관객이 거기에 확 꽂혀버린 거야. 고맙긴 한데 솔직히 당혹스럽지. -수익으로 따지면 어떻게 될 거 같은가? 제작진에게 보너스는 많이 주나. =150억원 정도가 순수익이다. 해외 빼고. 극장하고 공중파하고 DVD랑 비디오, 이 정도. 하지만 아시다시피 플레너스는 어마어마한 소액주주들이 있는 상장기업이라서 내 마음대로 이만큼 잘라내서 이건 내가 들고간다 이러면 난리난다. 대신 회사가 지금 벌어들인 수익이 150억원 이상 되는 느낌이 들어서 회사한테 이야기할 생각이다. 일정 부분 내놔라. 그리고 나도 내 것도 좀 내놓고 이렇게 해서 스탭들한테 즐겁게 나눠줘야지. -얼마 전 시네마서비스가 플레너스와 분리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구체적인 회사 분리작업은 어떻게 진행될 예정인가. =그건 경영진이 하기 때문에 나는 잘 모른다. 재무진들이 이런이런 케이스로 분리합시다, 그러면 난 선택하면 된다. -결국 분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늘 얘기했던 그대로다. 나는 영화가 몇개 망해도 그렇게 동요하거나 마음속으로 누굴 원망하거나 그러지 않는다. 다음에 또 될 건데 뭐. 올해 안 되면 내년에 가보지, 뭐. 근데 상장사의 논리는 그게 아니다. 올 1/4분기 좋았으면 2/4분기는 더 좋아야 하고, 올해 100억원 벌었으면 내년엔 200억원 벌어야 하고. 난 그거 못 맞춘다. 죽어도 못해. 늘 내가 해왔던 건 내가 보너스 좀 받아가지고 몇억 꼬불쳐놓고 있다가 회사가 좀 어려우면 그거 던져놓고 다시 가고, 그렇게 영화사를 이어온 거였다. 몇번이나 말했지만 내 스타일과는 굉장히 안 맞는 부분이 많다. 내가 지금까지 이 많은 패밀리를 어떻게 끌고 왔는데. 사재를 어떻게 털어서 끌고 왔는데, 이렇게 되면 사람 관리 못한다고. 하다가 한두편 망했다고 다 걷어내면 누가 나와 같이 일하려고 그러겠나. 코스닥에 가고 상장 들어가고 그러면 무슨 펀드, 이래서 떼돈 들어오고 무책임하게 몇백억원씩 돌아다니고 그러니까 애들이 코스닥에만 가면 수백억원씩 까먹어도 되는 줄 안다. 그거 다 주인이 있는 돈이다. -어쨌든 현실적으로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는 사업이 있다. 극장체인인 프리머스시네마가 그렇다. 즉 지금 가지고 있는 영화들이 잘 돌아가더라도 그 투자금액을 벌충하려면 어쩔 수 없이 상장기업의 힘을 빌려야 하는 거 아닌가. =독립적으로 프리머스만 상장하겠다고 하면 그건 충분히 돈으로 밀고 갈 수 있다. 그런데 시네마서비스는 상장회사로 가면 안 된다. 그러려면 작품 수를 줄여야 돼. 현재 우리 라인업 중에 돈 벌 만한 영화들만 찍어내면 충분히 100억원 벌 수 있지만 그렇게 가면 그동안 양아치로 영화 몇개 만들었던 옛날하고 다를 게 없다. 그리고 우리가 편수를 줄이면 전부 다 줄어든다. CJ도 줄이고 전부 다 줄일 거라고. 그건 절대 반대다. 누가 나보고 너 올해 영화 다섯편 해서 100억원 벌래, 열편 해서 20억원 벌래, 그러면 난 열편 해서 20억원 번다. 시네마서비스는 궁극적으로 영화제작에 관해서는 1등이 돼야 한다. 돈벌이 1등말고. 영화계에서 봤을 때 저 회사는 절대 없어지면 안 돼, 이런 자리는 지켜가야 한다. 그래서 편수, 편수 하다가 내가 몸살이 나는 거다. 시장점유율 30% 지키고, 수익 제일 높아야 하고, 이런 건 상장의 논리이고 시네마서비스의 논리는 작품 편수, 그리고 장르의 다양화, 이런 면에서 앞서가겠다는 것이다. -플레너스에서 분리하더라도 자금 운용에 지장없나. =난 없다고 본다. 시네마서비스의 경영권을 간섭하지 않는 양질의 돈들은 충분히 있다. 투자하고 싶다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지난해에 내가 충무로 펀드를 하나 만들었는데, 물론 사재를 털어서 한 거지만 내가 한다고 하니까 다른 영화인들이 모아준 돈이 60억원이다. 그게 지금 돌고 있다. <바람의 파이터> <달마야 서울 가자> <꽃피는 봄이 오면> 등등. 그건 시네마서비스의 배급력과 무관하다. 시네마서비스가 배급을 하든 안 하든 편수를 늘리는 데 도움을 주고 싶은 게 기본이다. 시네마서비스가 돈을 다 주고 나와도 나는 또 투자받을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프리머스나 아트서비스는 시네마서비스와 성격이 좀 달라서 앞으로 CJ든 쇼박스든 시네마서비스가 다시 접촉할 거다, 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이제 (시네마서비스의) 가격을 다 매겼는데 내가 도저히 인수할 가격이 아닌 어마어마한 금액일 때 얘기다. 나도 그동안 우리 회사가 얼마나 커져 있는지 잘 모르니까 정말로 엄청난 가격이면 나도 못한다. 그러나 내가 적당히 부담되더라도 갚을 수 있다면 한번 해봐야지. 이 모든 건 <실미도>가 쫑했을 때의 자금력, 그리고 그때의 가치를 가지고 판단할 문제다. -<공공의 적2>는 언제쯤 들어가나. =8월. 설경구가 <역도산>을 4, 5, 6월 찍고 7월 한달은 살 빼야 한다고 하니까. 시나리오는 거의 다 나왔다. -어떤 이야기인가. =설경구가 주인공인 검사로 나온다. 검사인 설경구가 우리 시대 공공의 적을 파헤쳐 고발하는 거다. 그 공공의 적이 누구냐고? 그건 아직 밝힐 수 없다. 시대가 참 묘해서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선한 사람이 주인공을 하고 선한 것을 그려내면 사람들이 뭔가 비아냥거리는 게 있었는데, 이제는 워낙 사회 자체에 정의가 없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정의라 그러면 그렇게 좋아한다. 영웅 좋아하고, 약자편 좋아하고. 이제는 사회를 더이상 비틀어서 잘난 척하면 안 되고 정공법으로 들이대야 한다. <살인의 추억>도 정공법으로 들이댔기 때문에 관객이 열광하지 않았나 싶다. 모자라지만 인간적인 형사, 부족하지만 좋은 모습. 지금 비리 경찰이 나와서 막 난리 부리면 저거 뭐야, 그럴 거 같다, 시대 분위기가. -아무튼 <실미도>가 이렇게 터지는 걸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 건, 강 감독은 확실히 재운이 있다. (웃음) 사실 지난해에 시네마서비스가 많이 안 좋았다. 그래서 막판에 몰렸다는 느낌이었는데 그 순간에 <실미도>가 터졌다. =난 하늘이 날 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가끔 한다. ‘넌 평생 영화 찍어야 돼. 많이도 찍고, 하여간 영화에 관해서만큼은 최선을 다해라. 그러면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다 도와줄게.’ 이러는 것 같다. 한두번이 아니다.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가 뒤에 터져서 간신히 나오고…. 전에도 <자귀모> 직전에 이번 하나만 더 망가지면 부도난다 그랬을 때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흥행이) 됐다. 그게 부도를 막아주고 회사가 다시 한번 일어났다. 그런 경험이 너무 많아서 이젠 어느 정도 궁지에 몰리면 아, 하나 나올 때 됐구먼, 이런 생각이 든다. (웃음) 영화에 관한 한 하늘로부터 버림받은 적이 없다.

잘 빠진 스포츠카, 압도적인 음향, <패스트 & 퓨리어스 2>

2001년에 발표되었던 1편은 젊은 관객으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음으로써 예상치 못했던 대성공을 거두었다. 시내 도로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최신 스포츠카를 개성적인 멋진 디자인과 위험할 정도로 강력한 출력으로 개조한 튜닝카들로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의 초스피드를 겨루는 길거리 레이싱 장면이 안겨주는 쾌감과 스릴 덕분이었다. 2년 만에 선보인 속편은 감독이 바뀌고 빈 디젤이 빠졌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재미나 긴장감도 전편에 비해 많이 떨어져 전편에 매료되었던 팬들에게는 큰 아쉬움을 남겼다. 전편에서 눈길을 끌었던 아슬아슬한 자동차 묘기는 빠졌지만,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니트로와 터보 추진을 동원한 쾌감 넘치는 카레이싱 장면의 박력이나 화려하게 개조된 커스텀 스포츠카들의 멋진 자태, 경쾌하게 울려퍼지는 록 비트의 배경음악 등은 고스란히 반복되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미국보다 7개월가량 늦게 발매된 국내판은 레퍼런스급으로 평가받았던 전편의 DVD에 버금가는 화질과 음질을 자랑한다. 아나모픽 2.35:1 영상은 스포츠카들의 화려한 크롬 도금과 마이애미 해변의 화사한 풍경 등 원색을 강조한 화사한 화면들을 높은 색 농도와 채도로 보여주며, 해상도와 투명도도 최상급이다. 돌비디지털 5.1 채널 사운드는 다이내믹하고 육중한 엔진음과 차체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묵직한 충돌음과 박력있는 배경음악 등 임팩트감과 방향감, 이동감 등에서 시종일관 가슴을 울리는 압도적인 음향을 과시한다. 낱장으로 발매되었지만 감독의 오디오 코멘터리, 1편과 2편을 연결하는 단편, 제작다큐멘터리, 자동차 개조과정 소개, 배우별 인터뷰와 운전교습 장면, 영화 속의 자동차 소개, 삭제장면과 NG 모음, 스턴트 해설 등 서플먼트도 풍부하다. 김태진 2 Fast 2 Furious / 2003년/ 존 싱글턴 / 2.35:1 아나모픽 / DTS & DD 5.1 / 한글, 영어, 일본어 자막 / 유니버설 ▶▶▶ [구매하기]

악의 꽃, <천국의 계단>의 태미라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드러나는 것으로는 바다 속 깊은 곳에 살고 있는 강장동물류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저 오색찬란한 산호를 보라. 그 어둡고 깜깜한 곳에서 어떻게 그런 순색의 조화를 만들어 살고 있는가? 빛을 비추고 카메라를 들이대어서야 그들은 어둠 속에서 제 색을 내뿜는다. 그 가운데에서도 촉수를 세우고 닿는 물건이면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말미잘의 화려한 위용이야말로 섬뜩하게 저려오는 통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천국의 계단>을 보았다. 천국에 가는 서로 다른 방법들을 보여준다던 네명의 연인들은 계속해서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를 하고 잡힐 듯 말 듯한 아슬아슬한 순간들로 애간장을 태운다. 정서(최지우)의 기억 상실은 송주(권상우)의 피를 말리고 태화(신현준)의 잠적은 정서의 연민을 자극한다. 송주가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주지 않는 것에 치를 떠는 유리(김태희)는 어떻게 해서든 정서를 망가뜨려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누군가는 나서서 악의적으로 연인간의 만남을 방해하고 누군가는 지순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걸고라도 함께 있고 싶어한다. 정서가 걸핏하면 우는 바람에 나도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송주와 정서의 세팅에 태화는 희생과 온정의 끈이고 유리는 증오와 탐욕의 끈이다. 서로가 그 끈을 잡아당기며 드라마가 돌고 있었다. 지나치게 잡아당기지도 아주 놓아버리지도 않은 채. 그러나 나는 지순한 사랑의 연인들 앞에서 탄성을 지르기보다는 탐욕과 패악의 화신 앞에서 자지러졌다.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또한 얇기도 하고 두툼하기도 하면서 먹이를 향해 내뻗는 말미잘의 촉수와도 같이 내뿜어대는 태화와 유리의 생모, 태미라(이휘향)의 고혹적인 위용 앞에서였다. 그녀가 내놓는 한마디 한마디는 예술이었다. 사랑이라는 너절하고 시시한 것과 화려한 글로벌 그룹의 회장부인이 되는 것은 결코 맞바꿀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이라는 것을 유리에게 역설할 때, 자식이라도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팽개쳐버리고 심지어 해칠 수 있다고 그녀의 전남편에게 으름장을 놓을 때, 사람 꼴이 되려면 적어도 삼년은 핏덩이 자식을 키워야 하는 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고자 삼년상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신 공자님이 무색하게도 태미라는 그대로 지순한 악의 화신이었다. 그러나 부모라는 이름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그 현장은 이상하게도 너무나 순수해서 정신이 아득해왔다.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딸아이가 유리의 표독스러운 눈빛을 지켜보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더니 갑자기 TV 속으로 달려들어가 따귀를 한대 시원하게 때리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난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절대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가르쳐주어도 부족한 나이에 그 아이를 벌써 악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게 만들다니…. 매체의 힘 앞에 다시 한번 굴복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지순한 사랑은 사악함을 배경으로 해야만 드러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지순한 사랑을 안고 올라갈 수 있는 천국으로의 계단은 없었다. 태미라와 유리의 그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눈빛이 없이는 정서와 송주의 사랑도 제 빛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복수의 망치를 들고 노려보던 머리 위에 얹힌 동충하초파마(!)에다가 백여 마리가 넘는 달마시안의 가죽을 벗기지 못해 머리끝까지 울화로 쭈뼛 세우던 크루엘라처럼 근사한 모피를 걸친 태미라의 고혹적인 모습에서 난 무르익은 인간 욕망의 끝을 본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따로 없었다. 미학은 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그녀의 자태에 난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나는 바란다. 제발 정서와 송주가 승리하고 태미라와 유리가 망가지는 상투적인 결말로 그 아름다운 악의 모습을 변질시키지 않았으면 하고. 궁극적으로 선이 승리하는 그 끝을 애타는 시청자들이 끝끝내 양보할 수 없다면 적어도 치졸하거나 변형된 비정상의 모습이 아니라 꿋꿋하고 당당한 악의 화신으로 사라져주었으면 하고. 철없는 딸아이에게 순수한 사랑을 가르치지 못하는 엄마의 가슴은 아프지만 태미라의 말대로 세상과 현실은 어쭙잖은 사랑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춥고 가난하기에 악의 지순하고도 본질적인 모습만이라도 끝까지 화려한 위용을 자랑해주기를 나는 너무도 학수고대한다. 어둠 속에서 꼬물대지만 생존을 위해서 촉수를 세우는 말미잘들이 카메라 불빛 아래에서 아름다운 몸체를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보여주는 것을 생명으로 하는 TV는 무엇이든 순색의 것을 보여주는 데에 인색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素霞(소하)/ 고전연구가

옛날옛날, PC 사면 따라오던 바로 그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장르 액션어드벤처 배급 UBI소프트코리아 플랫폼 PS2/GBA(PC/Xbox는 출시 예정) 언어 우리말 음성 / 한글자막 이미 대학 시절에 <카라데카>를 히트시킨 조던 메크너가 1989년에 발표한 <페르시아의 왕자>는 액션, 퍼즐, 스토리가 조화를 이루었다는 찬사 속에 액션어드벤처 장르의 탄생을 알린 위대한 작품이며, 더 넓은 스테이지와 마법 요소가 제공된 2편(1993), 무대를 3D 환경으로 옮긴 <페르시아의 왕자 3D>(1999)를 거쳐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2003)에 이르기까지 그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다.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의 첫 번째 매력은 액션 시스템.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적을 내리치는 왕자의 현란한 공격 기술은, 느리고 단조로운 적의 움직임으로 전투가 지루해지는 것을 막고 있으며. 전작의 실패 원인에 대한 충분하고도 정확한 고민이 있었던 듯, 화면 시점 이동과 직관적 컨트롤의 완성도 또한 뛰어나다. 그리고, 두 번째 매력인 다양한 퍼즐에 의해 이 게임은 걸작의 반열에 오른다. 그 자체로 거대한 퍼즐인 왕궁에서 왕자는 레버를 당기고, 시간이 다해 문이 닫히기 전에 갖가지 함정을 돌파해야 한다. 특히, 점프는 게임의 하이라이트. 발판을 차고 오른 왕자가 ‘역시나 계산대로’ 낭떠러지 건너 난간을 움켜쥐는 순간의 그 짜릿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게이머의 환호성을 이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설령 실수하더라도 걱정없다. 단도를 사용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니!). 또, 반복 플레이의 재미가 부족하다는 장르 자체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게임에 삽입된 이전 버전의 <페르시아의 왕자>, 충실한 한글화 역시 이 게임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 ‘후속편’을 잘 만드는 비결이 궁금하다면, 1989년과 2003년의 <페르시아의 왕자>를 차례로 플레이해보시도록. 그때 그 시절 우리를 사로잡은 원작 2D 게임의 매력을, 최신 하드웨어로 그린 3D 공간에 빈틈없이 부어넣은 UBI몬트리올스튜디오의 솜씨에서 뭔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메크너는 치치 마린, 라이 쿠더가 참여한 다큐멘터리 <차베즈 협곡: 로스 엔젤레스 이야기>(2003)의 감독을 하는 등 그 활동영역이 영화계까지 미치고 있다. 노승환/ 게임마니아 bakerboy@hanafos.com 이주의 모바일/ <배틀케논 라이브> : 나 여기 있지롱! 쏠 테면 쏴봐! 요즘 휴대폰으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모습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사람들의 위치에 따른 부가서비스를 LBS(위치기반서비스: Location based Service)라고 한다. 범죄영화에서 범인을 쫓는 수단으로도 사용되곤 하는 이런 상대방 휴대폰의 위치를 파악하는 기술을 응용하는 서비스들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 게임공간도 예외는 아닌 모양! 게이머들의 위치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네트워크 대전게임 <배틀케논 라이브>가 출시되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미 온라인에서 <포트리스>를 해보았던 사용자라면, 바람의 방향, 상대방의 위치, 아이템 사용 등을 고려해 적을 맞추었을 때의 쾌감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 게임은 실제로 <포트리스>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게이머는 실제 위치가 나타난 휴대폰상의 지도를 보며, 네트워크상에서 게임을 진행하게 되는데, 풍향계와 나침반을 보고 방위각과 파워를 조절, 포탄으로 정확하게 상대방을 맞춰 상대방 파워를 없애면 이기는 게임이다. 자신이 쏜 포탄이 떨어지는 위치는 상대방 게이머 위치지도에서 보여진다. 게임 중에 제공되는, 4가지의 캐릭터 선택, 아기자기한 이모티콘과 채팅 기능, 필승을 위한 아이템 구매 등의 팁들을 활용하면 좀더 즐거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캐릭터마다 강점과 약점이 있으니 신중하게 선택하자! 한판 한판 승수를 쌓아갈수록 강해지는 나만의 캐릭터에 뿌듯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친구찾기 기능>과 <포쏘기 게임> 기능을 혼합한 새로운 장르의 게임!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전국에 있는 친구들도 찾아보고 특별한 대화(?)도 나눠보자! 강승범/ 모바일 Biz. 기획 luvchild@skcorp.com 장르 네트워크 슈팅 방식 네트워크 대전 서비스 SKT 개발사 SK & 소프트엔터 <다운로드 경로> NATE → 게임Zone → 네트웍/TV/캐릭터 → 배틀캐논 <키 조작> - 상하좌우 : 각도 조절 - OK : 파워 선택 - 1,2 : 노멀탄, 강화탄 토글 - 4,5,6 : 아이템 사용 - 0 : Move 모드 토글 - * : 전투시 채팅 사용 - # : 전투시 이모티콘 사용

[새DVD] <특수기동대 스왓> 외

마이 페어 레이디 S.E 감독 조지 쿠커/출연 오드리 헵번, 렉스 해리슨, 스탠리 할로웨이/화면비율 2.35:1 레터박스/오디오 DD 5.1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뮤지컬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아카데미 9개 부문을 석권한 작품. 90년대 대대적으로 필름을 복원해 선명한 화질로 업그레이드됐다. 두번째 디스크에는 출연배우인 제레미 브랫이 필름복원 과정에 발견된 영화의 숨겨진 제작과정을 소개하고, 제작 당시의 스튜디오 풍경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준다. 워너. S.W.A.T 감독 클라크 존슨/출연 콜린 패럴, 새뮤얼 잭슨, 미셸 로드리게즈/화면비율 2.40:1 아나모픽/오디오 DD 5.1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특수기동대 S.W.A.T의 활약을 그린 전형적인 경찰액션영화. 특수무기를 쓰는 특수요원들의 활동을 담은 영화인 만큼 영화에 등장하는 총기류, 헬기, 방탄복 등 소품에 대한 전문가의 소개가 가장 눈에 띄는 서플먼트다. 그 밖에 영화에서 배우들의 트레이닝과 기술고문을 맡았던 진짜 S.W.A.T 요원의 인터뷰도 흥미롭다. 콜롬비아. 다운 위드 러브 S.E 감독 페이튼 리드/출연 이완 맥그리거, 르네 젤위거, 데이비드 하이드 피어스/화면비율 2.40:1/오디오 DD 5.1&2.0 과장되고 화려한 50년대식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된, 바람둥이 남성과 페미니스트 여성의 사랑이야기. 엔지 장면 모음을 비롯한 4개의 미니 다큐멘터리, 로케이션과 의상, 영화음악을 주제로 한 6개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해설과 함께 보는 5개의 삭제 장면 등이 서플먼트로 담겨 있다. 오래 가는 프리지어 향으로 재킷을 특수제작했다. 감독 해설에 한글자막이 제공되지 않은 건 옥의 티. 20세기폭스.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2]

2000년 <인터뷰> 이후 3년 만에 연출하는 변혁 감독의 신작은 <주홍글씨>다. <주홍글씨> 하면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이 우선 떠오르지만 이 영화는 호손의 소설이 원작인 작품은 아니다. 엉뚱하게도 변혁의 영화 <주홍글씨>의 원작은 김영하의 단편소설들이다. <사진관 살인사건> <바람이 분다> <거울에 대한 명상> 등 단편소설 세 작품에서 이야기와 캐릭터와 설정을 빌려 만들 예정. 이들 세편 소설의 공통점은 뚜렷하다. 모두 불륜을 다루고 있으며 낭만적 상상 뒤에 숨어 있는 시커먼 욕망과 구차한 현실을 냉정히 고발하는 작품이다. <사진관 살인사건>은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살해된 사진관 주인의 아내에게 숨어 있는 비밀을 알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아내의 외도에 상처받았던 형사는 사진관 살인사건에서도 불륜의 드라마를 발견하게 된다. <바람이 분다>는 불법 CD를 판매하는 남자가 직원으로 들어온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그녀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남자의 환상이 깨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거울에 대한 명상>에선 불륜의 남녀가 자동차 트렁크에 갇혀 이야기를 나누다 과거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도 사랑은 질투와 복수의 심리를 숨기는 가면으로 묘사된다. 변혁 감독은 이 세 가지 이야기를 결합해 <주홍글씨>의 시나리오를 썼다. 여기엔 불륜으로 얽힌 두 가지 삼각관계가 등장한다. 형사와 그의 정부, 그리고 아내로 이뤄진 삼각관계가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살해된 사진관 주인과 아내, 그리고 아내의 정부로 이뤄진 삼각관계다. 영화는 두 삼각관계를 겹쳐놓음으로써 불륜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보여줄 예정. 변혁 감독은 “불륜을 비난할 것인가 옹호할 것인가, 그런 고민이 아니라 불륜을 인간의 보편적 본성문제로 접근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누구 편이 중요한 게 아닌, 모든 사람이 그런 욕망을 갖는다는 관점이고 누가 죽였느냐가 아니라 왜 죽였는가가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일단 외양은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틀을 빌려왔지만 <주홍글씨>는 데뷔작 <인터뷰>에서 연결되는 변혁 감독의 관심이 뚜렷이 드러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각자의 입장에서 전혀 다른 드라마가 전개되는, 시점의 차이가 중요한 영화”라고 말한다. <인터뷰>를 만든 다음 프랑스에 가서 ‘영화에서 시점의 차이가 갖는 의미’를 주제로 졸업논문을 썼을 정도로 그에겐 시점의 문제가 영화적 화두이다. 그렇다고 어려운 영화가 될 것 같진 않다. 그는 <인터뷰>의 실패를 “상업적 목표가 분명치 않았던 데 있다”며 “상업적 목표에 철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에로틱 미스터리의 장르적 재미를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변혁 감독은 김영하의 소설과 달리 칙칙한 느낌이 나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삼류인생의 감성이 묻어나는 원작과 달리 화사하고 부유하며 아무 결핍도 없을 듯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치정극을 그리겠다는 것.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요즘 한국영화를 보면 웰메이드는 기본인 것 같다”며 웰메이드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담아보겠다는 영화적 포부를 슬쩍 내비치기도 했다.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3]

‘발레 교습소’는 그림 같은 제목이다. 듣자마자 선명한 심상이 피어난다. 소녀들이 흰 새처럼 스커트를 퍼덕거리는 드가의 스케치도 스쳐간다. 하지만 변영주 감독은 신작 <발레 교습소>가 그런 만만한 상상에 맞아떨어지는 영화가 아닐 뿐만 아니라 나아가 “<빌리 엘리어트>를 예상하면 뒤통수를, <워터보이즈>를 생각하면 앞통수를 얻어맞는 영화”가 될 거라고 유쾌하게 예고한다. 만약 우리에게 ‘내가 어른이 된 날’이라고 동그라미를 칠 수 있는 하루가 있다면 <발레 교습소>는 그 특별한 하루에 관한 영화라고 감독은 말한다. 그 잊을 수 없는 하루는, 세상에서 당한 그릇된 폭력을 처음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날일 수도 있고 담배를 처음 피운 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튿날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미숙하고 우유부단하며 바람의 방향도 공기의 냄새도 그대로다. 그렇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쩐지 알게 된다. 나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영화 <발레 교습소>에서 그 하루는, 하루가 아니라 수능시험 직후 석달 동안의 벌판 같은 시간이다. 변 감독이 “하기 싫은 것은 있으나 하고 싶은 것은 없어서 어른이 되는 일이 부담스러운 아이들의 성장영화”라고 소개하는 <발레 교습소>의 주인공은 인생에 대해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는 평범한 소년 민재(윤계상)와 치밀하게 설계한 미래를 실현시켜나가려는 외롭지만 당돌한 소녀 수진(김민정). 같은 동네에 사는 둘은 수능시험을 마친 겨울, 우여곡절 끝에 구민회관이 운영하는 발레 강좌의 수강생이 된다. 발레 교습이라기보다는 에어로빅 강좌에 가까운 후줄근한 교실에서 그들은 무용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려 안간힘을 쓰는 교사(도지원)와 온갖 사연과 목표를 지닌 아저씨, 아주머니를 만난다. 그리고 함께 춤추며 그 겨울을 통과한다. 때로는 발돋움하고 때로는 무릎을 깨며. <밀애>를 완성한 홀가분함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무렵 찾아든 조용한 자괴감과 씨름하고 있던 변영주 감독을 흔들어 깨운 것은 언제나처럼 영화동지 신혜은 PD였다. “키가 껑충한 여자아이가 찢어진 청바지에 낡은 스웨터를 입고 걸어가다 뒤를 돌아본다. 무심하면서도 단호하게 쏘아보는 그녀의 목에는 토슈즈가 걸려 있다”라고 모티브를 던진 신 PD는 결국 시나리오 작가까지 겸임했다. 왜 하필 발레냐는 질문에 감독은 “발레는 몸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의지대로 컨트롤하는 무용이다. 아무리 배워도 일상에서 쓸모가 없으며 성공과 실패가 인생의 성패와 무관하다”고 답한다. 작은 은유가 숨어 있는 셈이다. 또한 <발레 교습소>는 일종의 정면승부다. 성장영화는 항상 변영주 감독이 유보조건 없이 열광한 장르였고, 청춘은 그에게 아련한 추억이 아니라 현재를 버티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80년대를 떠올려도 한국전쟁을 생각해도 어김없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은 스물 무렵의 젊은이다. 바람 속에서 아프지만 그래도 걸어가겠다고 발을 떼어놓는 청년들이다. 그래서 내겐 80년대 최고 영화가 <만다라>가 아니라 <꼴찌에서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이다.” 캐스팅에 관한 한 변영주 감독은 거리낌없이 행운을 자축한다. <버스, 정류장>의 김민정과 그룹 GOD의 윤계상은 아무 제약없이 책상 앞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던 구상단계부터 모델로 맴돌던 얼굴이었다. 윤계상은 사내아이와 사나이의 얼굴을 동시에 지녔다는 점에 매료됐고, 너무 깜찍하고 예뻐서 작은 일그러짐도 큰 울림을 만들어낼 김민정에게는 그간의 어른스런 연기 대신 열아홉 나이로 직진하는 연기를 주문할 계획이다. “얘들아, 힘내!” 2월 중순부터 배우들 앞에서 고함치기 시작할 변영주 감독은 같은 응원이 세상의 모든 열아홉에게 전해지기를 꿈꾸고 있다.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6]

김경형 감독은 <라이어>를 진정한 데뷔작처럼 만들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지만, 원래 마음속에 품었던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도 팔린 레이 쿠니의 희곡이 원작이고, 국내에서도 연극으로 크게 성공한 <라이어>는, 그가 99년 무렵부터 염두에 두었던 작품이다. 김경형 감독은 아내의 권유로 본 연극 <라이어>가 매우 재미있고 탄탄한데다 여러 각도로 해석될 수 있는 메타포를 숨기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평범한 택시기사의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로 이어지면서 벌어지는 이 코미디는 결국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탓이다. 김경형 감독은 “직접 쓴 시나리오는 내미는 족족 퇴짜맞고, 집에서 놀면 뭐하나”라는 심정으로 각색을 시작했고, 4년이 지난 지금 막연했던 꿈을 실현하게 됐다. 원작을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 조금 고친 <라이어>는 택시기사 만철의 생일 하루 동안에 벌어지는 소동이다. 만철은 젊어서 사고 치고 결혼한 아내와 서울에 와서 만난 부유한 애인을 두고 있다. 두 여자는 모두 자신이 만철과 결혼했다고 믿는다. 두집 살림을 무사히 꾸려가던 만철은 뜻하지 않게 지명수배 범죄자를 체포하는 바람에 곤경에 처한다. 용감한 시민으로 방송을 타면서 사생활이 폭로될 위험에 빠진 것. 만철은 형사와 기자와 친구 상두를 따돌리고 속이면서 본처와 애인이 마련해둔 두개의 생일상 앞에 도달해야만 한다. 김경형 감독은 거짓말과 거짓말이 촘촘하게 맞물리는 희곡 <라이어>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한 군데로 한정되었던 공간이 좀더 늘어나고, 편집을 고려해 사건의 순서를 정돈하고, 내러티브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생일이라는 설정을 덧붙인 정도가 각색의 거의 전부. 오히려 레이 쿠니 자신이 영화를 염두에 두고 각색했다는 시나리오가 더 영화적이라는 것이 김경형 감독의 설명이다. 이처럼 만만치 않은 원작은 <라이어>가 반갑게 맞아야 할 행운이면서 무겁게 짊어질 부담이기도 하다. 김경형 감독은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재능있는 작가를 뛰어넘을 자신은 없어서” 대사를 손보지 않았지만, 상영시간 대부분을 좁은 공간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난제를 두고 “오히려 연출하는 입장에선 매력을 느꼈다”. 그 때문에 김경형 감독은 한 장면을 130여개에 달하는 컷으로 채우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지루하지 않은 실내장면을 고민하고 있다. “그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극장문을 나서면서 욕하지 않을 만큼”이라고 말하면서도, “잘 찍었다, 성숙했다, 는 느낌을 주었으면”이라는 것이 그의 소박한 욕심. 그에게 하나 더 즐거운 일이 있다면 다들 주연이라 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앙상블을 지켜보는 것이다.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줄” 주진모, “다른 영화보다 훨씬 느리겠지만 여전히 재미있을” 공형진, 그리고 손현주와 임현식이라는 든든하고도 중후한 두 기둥 덕분에, 감독인 그는 때로는 관객처럼 마음 편히 좋아하면서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했는데 이번엔 뭘 하면 욕을 먹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택한 영화 <라이어>는 2월 한달을 감독 스스로 “성공의 관건”이라 생각하는 실내 세트에서 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