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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영화감독 최양일 인터뷰

흥미로운 소재와 독특한 스타일로 일본 영화계에서 자리를 굳히고 있는 재일교포 2세 감독 최양일(崔洋一ㆍ55)씨가 7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최 감독은 4일 내한해 신작 <피와 뼈>의 촬영장소 물색을 위해 강원도와 충청도를 둘러봤으며 3일부터 열리고 있는 자신의 회고전에도 참석해 관객과 대화를 나눴다. "모국에서 회고전을 마련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느덧 내가 그런 나이가 됐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노인이 된 것 같아 괴로웠지요. 그래도 젊은 관객과 내 영화를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눈 것은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덕분에 과음했지요." 일본 도쿄조선중고급학교를 졸업하고 영화계에 뛰어든 최양일 감독은 <감각의 제국>의 조감독으로 오시마 나기사 감독에게 연출 수업을 받는 등 10년 이상 현장 경험을 쌓은 뒤 83년 로 감독 데뷔했다. 그 뒤 <달은 어디 떠 있는가>, <개, 달리다>, <막스의 산>, <형무소 안에서>, <꽃의 아스카 조직>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언젠가 누군가 살해된다> 등 TV를 포함해 2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다음달 맹도견의 이야기를 담은 <퀴일>의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가 북한으로 이주하는 줄거리의 <피와 뼈>를 3월 말 크랭크인할 예정이다. <피와 뼈>에는 일본의 인기 배우 겸 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눈길을 끌고 있다. "4일 내한해 강원도와 충청도 등을 둘러봤습니다. 한국에서 몇 장면을 촬영할 예정인데 한국 스태프들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기타노 다케시는 오랜 친구이며 데뷔작인 `10층의 모기'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지요." 그는 조선(북한) 국적을 갖고 있다가 한국(남한)으로 바꿨다. "93년 베를린 영화제에 참가한 뒤 한국을 방문하자 기자들이 국적 문제를 많이 물어보더라구요. 어느 정권을 지지하거나 사상적으로 전향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조선 국적으로는 살아가기가 다소 불편했을 뿐이지요. 평소에는 국적 문제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습니다. 재일교포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3세 이후로는 신경조차 쓰지 않지요. 나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실력 없어요"라고 서툰 말로 털어놓아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는 "재일교포의 역사를 세 시간만 공부하면 중년을 넘긴 내가 한국말을 왜 못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라며 답변을 대신했다. 그는 재일교포라는 정체성 때문인지 아웃 사이더의 시선으로 일본 사회를 바라보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왔다. 변방과 식민의 역사를 오랫동안 간직한 오키나와가 무대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 "한국에는 현재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아랍 출신까지 있지요. 한국이나 일본도 예전에는 이주노동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등장할 겁니다. 아마 내 예감으로는 사랑 이야기부터 시작되지 않을까요? 내가 모르는 젊은 감독들이 나설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마 김기덕 감독이 만든다면 러브 스토리는 안 만들어지겠지요." 흥행영화보다는 작품성 있는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까닭을 묻자 "나도 강제규 감독처럼 영화를 만들어 돈도 많이 벌고 싶다"고 너스레를 떤 뒤 "만들다 보면 항상 그런 영화가 나오는 까닭이 나도 궁금해 계속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아마 죽을 때까지도 해답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대답했다. 1960년대 일본 누벨 바그(새로운 물결이란 뜻의 영화운동)를 이끈 오시마 나기사 감독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영화적으로 영향 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잘라말했다. "76년 <감각의 제국> 한 편을 같이 했지요. 그 뒤로는 3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영화 기술은 일반인도 3개월이면 익힐 수 있어요. 어떻게 찍느냐는 게 문제지요. 오시마로부터 배운 것은 술과 사람 사귀는 법인데 알고 보면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문화학교 서울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주최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고 있는 최양일 회고전은 8일 오후 8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상영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최양일 감독은 8일 오전에 일본으로 돌아간다.(서울=연합뉴스)

2월7일 개막한 제54회 베를린영화제, 개막작은 <콜드 마운틴>

제54회 베를린영화제 Internationale Filmfestspiele Berlin 베를린은 태양을 보기 힘든 도시다. 맞받기 힘든 바람도 묵직한 구름을 흩어놓진 못하고, 잠깐 빛이 드는구나 싶으면 금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창 밖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어깨를 감싸안게 되는, 겨울의 베를린.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환하게 채색된, 베를린영화제의 상징인 앞발 치켜든 곰이 길을 잃은 것처럼 난처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요 상영관이 모여 있는 탓에 원색 깃발이 가득 펄럭이는 포츠담 광장과 그 바로 옆 미래도시의 분위기를 가진 소니센터는 이 회색 도시에 잘못 뛰어든 이방인과도 같았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정작 베를린을 찾아왔어야 할 레드 카펫 위의 이방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카데미 영향으로 할리우드 스타들 대거 불참 2월5일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개막을 선언한 제54회 베를린영화제는 베를린시의 교육예산감축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시위 속에서 다소 어수선하게 시작됐다. “베를린은 영화산업기지로 최고의 도시”라는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의 치하는 “우리의 교육을 위해 천사가 되어달라”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묻혔고, 협찬사 폴크스바겐이 준비한 40대의 판테온 리무진은 승객을 찾느라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5일 아침 불참을 통보해온 주드 로를 필두로 잭 니콜슨과 닉 놀테, 니콜 키드먼, 마이클 윈터보텀 등 개막식 참석이 기대됐던 스타감독과 배우들은 결국 베를린에 오지 않았다. 개막작 <콜드 마운틴>의 앤서니 밍겔라 감독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1967-1976: 아메리카 뉴시네마 회고전’을 위해 뒤늦게 당도한 페이 더너웨이, <굿바이 레닌>의 다니엘 브륄이 몇 안 되는 스타들. 이 와중에, 세 번째 행사를 치르는 디이터 코슬릭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독일 코미디언 앙케 엥헬케와 함께 행사를 진행하면서 만담으로 일관했다. 코슬릭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베를린영화제 상영작들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웃음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위대한 독일 시인 하이네는 ‘진지한 주제를 위트있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코슬릭의 유머는 찬바람 부는 광장에서 예정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어진 행사를 기다리던 많은 이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데 그쳤다. 유력일간지 <디 벨트>는 그에게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할리우드 스타들의 불참으로 상당한 곤란을 겪고 있다”는 멘트를 던졌다. △ 아케이드 안에 설치된 매표소 앞은 표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선 관객으로 문을 열기 전부터 장사진을 이뤘다. △ 개막식에 참석한 클라우디아 쉬퍼. 할리우드 배우들이 없는 행사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2월 말로 앞당겨지면서, 베를린영화제가 올해 유독 한산하리라는 예상은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일간지 <쾨니셰룬트샤우>는 “영화제는 스타가 아니라 영화를 보러 온다”고 썼다. 그런 점에서 스물세편의 경쟁부문 상영작,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아우르는 파노라마, 거장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제시하는 새로운 섹션 베를리날레 스페셜 등 400편에 달하는 영화들은 부족함 없는 선택을 보장하고 있다. 경쟁부문은 노장 에릭 로메르와 테오 앙겔로풀로스, 켄 로치, 파트리스 르콩트, 존 부어맨이 신작을 들고 찾아와 건재한 역량을 과시하고, 9년 만에 만나는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 <비포 선셋>이 옛 친구를 만나는 듯한 기쁨을 준다.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탐구하는 <뷰티풀 컨트리>와 올해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영광스러운 마리아>는 베를린이 발견한 젊은 기운. 할리우드영화 <미싱> <몬스터>를 포함해 라틴아메리카와 스칸디나비아 같은 변방까지 골고루 배려한 경쟁부문이지만, 아시아영화는 홍콩·대만의 여배우이면서 감독인 장애가의과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 두편뿐이다. <사마리아>는 2월10일 첫 번째 시사와 공식 기자회견을 가지는데, 2002년 경쟁부문에 초청된 <나쁜 남자>가 충격에 가까운 반응을 불렀던 터라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파고>의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위원장을 맡아 사미라 마흐말바프, 가브리엘 살바토레 등과 함께 황금곰상 트로피의 행보를 결정하는 심사위원단을 이끈다. 베를린의 관객은 정치적인 것을 기대한다 2004년 베를린영화제는 모토가 없지만, 파노라마 부문을 지휘하는 빌란트 스펙은 “우리는 항상 정치적이었고, 그것이 우리 관객이 기대하는 바다”라고 선택의 기준을 설명했다. 남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치와 역사에 눈을 돌리겠다는 건 코슬릭도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사실. 파노라마와 인터내셔널 포럼은 칸영화제에 뺏긴 월터 살레스의 체 게바라 전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대신하는 다큐멘터리 <체 게바라와의 여행>,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벌어진 아파르트헤이트와의 투쟁을 다룬 <메모리 오브 레인>, 막차를 타고 도착한 샹탈 애커만의 <내일, 우리는 나아간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때문에 고통받는 이스라엘과 독일 젊은이의 이야기 <워크 온 워터> 그리고 한국의 독립영화감독 김곡·김선 형제의 <자본당 선언>과 “한국영화의 떠오르는 스타”라고 소개된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로 프로그램이 인쇄된 벽보를 가득 메우고 있다. ‘1967-1976: 아메리카 뉴시네마 회고전’은 <대부> 시리즈와 <이지 라이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페이퍼문> <와일드 번치>를 포함하고 있는 섹션. 이 영화들을 스크린으로 보지 못했던 젊은이들은 여전히 무관심한 반면 중년으로 접어든 기자와 관객은 거칠었던 젊은 시절을 향수하는 듯 티켓을 요청하고 있다. 피터 그리너웨이와 에르마노 올미는 신설된 베를리날레 스페셜을 통해 반가운 새 영화를 선보인다. 보기만 해도 눈앞에 색색 무늬가 아른거릴 만큼 복잡한 프로그램 앞에서, 부지런한 독일 관객은 커다란 수첩을 들고 보고 싶은 영화와 매진된 영화, 그 대안이 될 만한 영화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마를렌 디트리히 광장 옆 쇼핑몰 아르카덴은 티켓 판매대가 문을 열기도 전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선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책과 음악, 간식을 준비한 열성적인 관객이지만, 가장 먼저 매진된 영화들은 <콜드 마운틴>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미싱> 등 할리우드 메이저영화들. 독일영화의 현재를 제시하는 도이체스 키노와 단편영화가 그 틈바구니에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티켓 판매대 앞에서 만난 한 엔지니어는 “메이저영화는 곧 극장에서 상영하기 때문에 볼 필요가 없다. 나는 십년째 베를린영화제를 찾고 있는데 인터내셔널 포럼 중심으로 예매할 생각이다. 홍콩이나 일본영화를 좋아하지만 독일에선 자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스타는 없지만, 여전히 관객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유려한 영상, 밋밋한 드라마 개막작 : 앤서니 밍겔라의 고전적 전쟁영화 <콜드 마운틴> <콜드 마운틴>은 전쟁영화이면서 로드무비이고 러브 스토리이기도 한 영화다. 원작 <콜드 마운틴의 사랑>은 참혹한 전쟁에 지쳐 탈영을 선택한 남자의 여정과 생존을 터득해가는 여자의 분투를 담고 있지만, 앤서니 밍겔라는 여기에 전작 <잉글리쉬 페이션트>처럼 눈물어린 사랑을 덧붙였다. 콜드 마운틴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 인만(주드 로)은 연인 아이다(니콜 키드먼)를 고향에 남겨두고 남북전쟁에 참전한다. 피터스버그 전투에서 부상당한 그는 “전투도, 행진도 모두 그만두고, 내게 돌아와 달라”는 아다의 편지를 받고선 고향으로 향한다. 인만과 아이다는 서로 몇 마디 나누어보지도 못한 채 애틋한 연정만 확인하고 이별한 연인. 인만이 죽음과도 같은 고난을 견디면서 콜드 마운틴으로 가는 동안,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은 아이다는 씩씩한 처녀 루비(르네 젤위거)의 도움으로 농장을 꾸려간다. <콜드 마운틴>은 수은처럼 무겁게 찰랑거리는 물결 위로 먼 산맥이 비치는 첫 장면부터 아름다운 영상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떠올리게 하는, 고운 모래를 한겹 뿌린 것처럼 아득한 영상은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촬영감독이기도 했던 존 실의 흔적. 그러나 <콜드 마운틴>은 그 그림에 걸맞은 드라마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밍겔라는 “<콜드 마운틴>은 단순히 남북전쟁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한 남자의 귀향, 전쟁 때문에 변해버린 삶을 말하는 영화다”라고 했지만, “이건 스토리가 아니라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는 로저 에버트의 혹평이 더 적절하게 느껴지는 단조로운 서사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밍겔라는 지난해 12월25일 미국에서 개봉한 <콜드 마운틴>의 흥행 실패와 함께 남북전쟁 영화를 루마니아에서 찍었다는 이유로 언론의 공격에 시달려왔다. 사정은 베를린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루마니아에서 즐거웠느냐”는 비난 섞인 질문까지 나왔다. 세명의 주연 외에도 내털리 포트먼과 지오바니 리비시, 도널드 서덜런드 등이 출연한 <콜드 마운틴>은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과 감독, 조연인 브랜든 글리슨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만이 참석한 가운데 2월5일 조촐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콜드 마운틴> 감독과 제작자 인터뷰 “위대한 사랑, 비범한 우정에 관한 영화다” △ 왼쪽부터 필립 세이무버 호프먼. 감독 앤서니 밍겔라. 브랜든 글리슨. <콜드 마운틴>은 미국에 관한 거대한 서사시 같은 영화다. 하지만 당신은 외국 배우를 여러 명 기용했고, 노스캐롤라이나가 아닌, 루마니아에서 영화를 찍었다. 앤서니 밍겔라 노스캐롤라이나는 더이상 1860년대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루마니아에서 오래된 세월이 느껴지는 산맥을 찾았고, 그곳에 옛 시절처럼 보이는 콜드 마운틴을 만들었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건 영화의 자연스러운 속성 아닌가. 루마니아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대안이었고, 그 덕분에 제작비 2천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 게다가 <콜드 마운틴>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면서 위대한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다. 이 세상 어느 나라에나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하비 와인스타인 문화는 서로 교감하고 변화를 겪어야 한다. 미국영화는 유럽과 아시아 박스오피스를 석권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미국 바깥 세상을 향한 이해가 필요하다. 나는 <콜드 마운틴>이 영국과 루마니아 같은 유럽 인력과 합작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콜드 마운틴>에는 흑인의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백년 전에도 목소리를 가질 수 없었다. 앤서니 밍겔라 노스캐롤라이나 사람들은 노예제도를 수호하기 위해서 참전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예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북부의 위협으로부터 땅을 지키고자 했을 뿐이다. 이 영화에는 노예제도를 담은 장면도 몇 군데 있었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삭제됐다. 나는 진실을 말하는 원작에 충실하기로 했다(한 기자는 원작에서 흑인이었던 루비를 왜 백인으로 바꾸었느냐고 묻기도 했지만, 앤서니 밍겔라가 이미 몇번이나 해명했던 오해로 밝혀졌다. 루비는 원작에서도 백인이었다). 아이다와 루비의 우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당신은 왜 그 두 여인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루었는가. 앤서니 밍겔라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가고, 말없이 서로를 돕고, 변화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다와 루비는 고난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독특하고도 비범한 우정에 계속 마음이 끌렸다. <콜드 마운틴>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스토브로드(루비의 아버지)가 그런 것처럼 이 영화 속의 사람들은 그렇게 상처를 치유한다. 아이다와 루비와 스토브로드는 그 참혹한 폭력 속에서도 살아남아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원작 <콜드 마운틴의 사랑>은 인만의 이야기와 아이다의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어떻게 각색했는가. 앤서니 밍겔라 각색은 신비롭고도 복잡한 과정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엔 원작이 가진 장점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니콜 키드먼과 주드 로, 르네 젤위거는 오늘 나타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비 와인스타인 주드 로와 르네 젤위거는 다른 영화를 찍고 있고, 니콜 키드먼은 집안일 때문에 호주에 갔다. 그들은 모두 <콜드 마운틴> 해외 홍보에 열심이다. 바쁘지만 않았다면 분명히 이곳에 왔을 것이다. 나는 베를린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조지 클루니와 르네 젤위거, 모니카 벨루치, 줄리엣 비노쉬, 리처드 기어가 모두 미라맥스 영화 때문에 베를린영화제에 왔었다. 나에 대한 평판을 믿어라. 내가 그들을 오게 할 수 없었다면, 누구도 할 수 없는 거다. (웃음)

한번에 좀 깨져랏! - <아홉살 인생> 촬영현장

“자 사투리는 편안하게 하면 됩니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윤인호 감독이 급기야 신발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한마디 던진다. “시끄럽다. 이눔아야. 아침부터 재수없게시리….” 백태낀 엄마(정선경)의 눈을 보고 신발가게 주인이 여민(김석) 모자를 내쫓는 장면인데 경상도 사투리 대사가 매끄럽지 않아 자꾸 NG가 난 것이다. 70년대 경상도 마을이 배경이지만 정작 신발가게신 촬영을 하는 곳은 전북 김제의 한 재래식 시장이다. 일요일 오전인데도 구경나온 동네사람들이 쓰는 전라도 사투리와 가게 안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경상도 사투리가 왁자지껄 마구 뒤섞이며 마치 어느 시골 시장통에 서 있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겨우 사투리가 정리되지만 이번에는 정선경이 들고 있는 운동화를 확 나꿔채는 장면에서 신발이 자꾸 떨어지는 바람에 두어번의 NG가 난 끝에 16신이 마무리된다. 이어지는 18신은 여민의 통쾌한 복수장면으로, 신발가게 유리를 와장창 깨뜨려야 하는데 유리가 금만 가거나 엉뚱한 지점에 깨지거나 해서 준비된 석장의 유리로 겨우 촬영을 마쳤다. 윤인호 감독의 우렁찬 오케이 사인과 함께 지난해 10월10일 시작한 <아홉살 인생>의 4개월간의 여정이 드디어 끝나는 순간이다. “영화가 끝나니까 처음부터 다시 찍고 싶다”고, 그러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감독은 아이들에게 너무 못할 짓 많이 해서 미안하단다. 겨울에 여름장면 찍고, 맞는 장면에서 실제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고, 물에 빠지는 장면에서는 10m 깊이의 물을 1m라 속이고 촬영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정작 아역배우들은 촬영이 재미있었고 이제 마치려니 슬퍼진다며 윤인호 감독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100만부 이상 팔린 위기철의 소설 <아홉살 인생>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스크린에 옮겨질지 이제 3월 말이면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황기성사단에서 28억원의 순제작비로 만들어지는 <아홉살 인생>은 윤인호 감독의 세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김제=사진·글 오계옥 △ <마요네즈> 이후 4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윤인호 감독은 이 영화가 <양철북> 같은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이미 인생을 다 알고있는 것처럼. (왼쪽 사진) △ “여민아 이거 어떻노?” “지는 아무거나 좋습니더.” 마치 친모자지간처럼 자연스러운 정선경과 김석.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정선경은 분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역시 사투리가 힘들다고. (오른쪽 사진) △ 실제로도 ‘월신상회’라는 신발가게인 이 촬영장소는 70년대풍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왼쪽 사진) △ 대사가 제일 많은 가게주인(한명한)은 경상도 사투리가 안 돼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윤인호 감독으로부터 특별지도를 받기도. (오른쪽 사진) △ 서울에서 전학와 여민의 가슴에 사랑의 화살을 쏘는 새침도도한 장우림 역의 이세영. <대장금>의 어린 금영이로 우리에게 이미 낯이 익다. (왼쪽 사진) △ 아이구 추워라. 컷 사인이 나기만 하면 정선경과 김석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휴대용 스토브를 끌어안고 몸을 녹인다. 엄동설한에 여름장면 찍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다. (오른쪽 사진)

[인사이드 충무로] “진보정당 진출시키자”

영화인의 정치참여는 새삼스럽지 않지만, 총선을 앞두고 영화계에 새로운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창동, 문성근, 명계남씨 등의 노무현 지지와 별도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집단적이고 공개적인 지지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우선, 열린우리당과 관련해선 정지영 감독이 비례대표 선정위원으로, 명계남 이스트필름 대표가 ‘국민참여 0415’에서 공개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관건은 공개적 지원이 아니라 출마 여부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문성근, 명계남씨 등 이미 알려진 인사들에게 끈질지게 출마를 요구하고 있으나 본인들의 거부 의사가 워낙 완강해서 몇 가지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필름의 이은 감독에게 의사를 타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A씨와 B씨 등 영화계 중견 인사들과의 의견조율이 다음주 중 끝날 것으로 보인다. 문성근씨는 “10년 전부터 선거 때만 되면 내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번에도 확실히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이덕행 전 서울종합촬영소 소장이 남양주시 후보경선에 참여한다는 것만이 확인된 사례다. 민주노동당과 관련해선 오기민(사진) 마술피리 대표와 김광수 청년필름 대표가 주축이 돼 공개적인 지지 선언 준비에 들어갔다. 오기민 대표는 “어느 당을 반대하는 차원에서 움직인다기보다 진보정당을 원내에 진출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이 현실화될 만큼 사회적 성숙이 이뤄진 것 같다”며 “개별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영화인들 이외에 이같은 취지에 동참하는 영화인들을 모아 공개 지지를 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민주노동당에 당원으로 가입한 영화인은 박찬욱, 봉준호, 변영주 감독과 배우 문소리, 오지혜, 정찬씨 등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영화인의 지원이 노사모나 국민참여 0415처럼 모임을 결성해 지속적인 활동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국민참여 0415는 인터넷상의 지지운동은 물론 직접 캠프에서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문성근씨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공화국이 운영되려면 시민들이 정치참여를 해야 하고 이런 관점에서 일부 영화인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의사표명을 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슈] 21세기형 한국 문화기업의 모델을 기대한다

최근 한국 영화산업 대표 주자들의 합종연횡이 줄을 잇고 있다. 시네마서비스(사진)가 플레너스로부터 물적분할하여 독자노선의 길을 모색하고 있고, 명필름과 강제규필름은 기존 상장회사와 주식교환 형식으로 하나의 회사로 결합했다. 싸이더스는 코스닥 등록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였는가 하면, 매니지먼트 회사인 싸이더스HQ는 상장회사 주식을 매입하여 본격적으로 영화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흥미로운 건 ‘메이저 레이블’이라 할 수 있는 싸이더스, 명필름, 강제규필름이 모두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제작사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기업변동의 방향은 다소 기이하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00년 이후 한국 영화산업의 변화는 대부분 수직적 통합화를 향해 움직여왔다. 이는 전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거니와 할리우드에 대항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확립해야 하는 한국 영화산업에서는 일종의 당위로 생각되어져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세 회사는 이러한 흐름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방향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정은 있다. 수직적 통합기업에 있어서 경제적 파워는 극장에 있고, 콘텐츠 파워는 (투자)배급사에 있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1990년대까지 영화산업의 핵심을 차지했던 제작 주체들의 파워는 갈수록 약화돼왔다. 사실 창의력과 제작운용상의 노하우와 숙련된 인력과 같은 무형의 자산만을 갖춘 한국 제작사들의 입장에서는, 그간의 수직적 통합의 추세에서 자본을 대는 주체들에 밀려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크게 느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 좀더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제작사들로 하여금 기존의 영화 메이저의 그늘로부터 벗어나면서도 독자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업결합을 추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영화가 산업으로 확고부동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돈을 들인 만큼 영화의 볼거리가 담보되어야 한다는 생각, 투자자에게 이익을 남겨주어야 한다는 생각, 주식시장에 공개된 영화사는 주주들의 이익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한국 영화산업 주체들에게 이제 거의 강박관념 내지 윤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러한 ‘재정의 윤리학’은 산업적 근대화가 이제 막 자리를 잡은 한국 영화산업에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산업은 그 특성상 문화적 가치를 담보해야 하며, 재정적 이윤을 위해서도 여타의 산업에 비해서는 훨씬 높은 수준의 창의적 개척정신을 필요로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싸이더스와 명필름은 그동안 수직적 통합기업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도 자신들만의 색채를 강하게 가져온 한국영화 제작의 대표주자들이었고, 이러한 개성과 고집으로 인해 최근 재정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기도 했다. 이 두 회사가 과연 자신들의 바람대로 과도한 재정적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영화를 만들면서도 모회사나 주주들의 기대를 채워줄 수 있을지, 그리하여 재정의 윤리와 문화적 가치 모두를 충족시켜주는 21세기형 한국 문화기업의 모델을 보여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격변하는 한국 영화산업에서 굳건하게 버텨온 이들 기업의 저력을 생각한다면 희망쪽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노년의 로맨스, <사랑할 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전작 <왓 위민 원트>와 마찬가지로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도 아주 실용적이고 친절한 제목을 붙였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류의 서점 처세술 코너의 남녀관계 지침서나 <코스모폴리탄>의 기획기사에 자못 어울릴 법한 제목인데, 이러한 작명법은 실제 낸시 마이어스 영화의 속성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말하자면 그의 로맨틱코미디에는 잡지 편집자의 감각이 있다. 이는 고전 스크루볼코미디의 위트와 리듬을 계승한 노라 에프런에 비하면 훨씬 느리고 성긴 대사를 보완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마이어스의 로맨틱코미디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작업 못지않게 오늘날 구애와 짝짓기의 세계에서 실제로 이슈가 되는 상황을 끌어들이는 데에 공을 들이며 타깃 관객층도 그만큼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사랑할 때…>의 헤드라인은 노년에 접어든 전문직 독신 남녀들의 데이트 게임. 서른 미만의 미녀만 상대하며 화려한 싱글로 살아온 바람둥이 음반 제작자 해리 샌본(잭 니콜슨)과 이혼 이후 데이트 대신 글쓰기로 저녁 시간을 보내며 평온한 삶을 누려온 극작가 에리카 배리(다이앤 키튼)가 게임의 맞수다. 딸의 남자친구 자격으로 에리카의 별장을 방문한 해리는 민망하게도 섹스 직전 심장발작을 일으키고, 에리카는 팔자에 없는 간병인 역할을 떠맡는다. 무시와 혐오를 오가는 최초의 단계를 지난 두 사람은 우연한 동거를 통해 볼 것 못 볼 것 보아가며 상대의 매력에 끌린다. 게다가 일이 짜릿해지려니까, 해리의 담당의사인 젊은 줄리안(키아누 리브스)의 눈에도 에리카가 대단히 섹시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에는 주연배우의 매력에 감응하는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이 마치 다른 두편의 영화를 본 듯 평판이 갈리는 영화가 있는데,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도 그 부류다. “우리 참 귀엽지 않아요?” 라는 주인공의 대사에 동의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그래서 결정적이다. 다이앤 키튼과 잭 니콜슨의 연기에 “아직 정정하다”는 뉘앙스의 칭찬은 모욕이다. 에리카와 해리는 꼭 집어 그들의 현재 외모와 연륜을 요구하는 캐릭터이며 시나리오의 걸맞은 지원을 받는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다이앤 키튼 안에 잠들어 있던 원조 ‘귀여운 여인’ 애니 홀을 다시 불러낸다. 키튼은 여전히 매너리스트다. 그녀의 상현달 모양 눈에 수시로 스쳐가는 의례적 미소와 망설임, 사랑스러워 보이려는 본능적 표정은 조금 부담스럽지만 에리카가 해리와 다가감에 따라 서서히 자연스러워지는 컨트롤이 일품이다. 오래간만의 실력 발휘로 골든글로브 주연상까지 받은 키튼과 달리 잭 니콜슨은 <버라이어티>의 표현대로 “본인으로 출연”해 숨쉬듯 연기한다. 연하 여성들과 연애 편력으로 유명한 그로서는 평생을 바쳐(?) 준비한 역할인 셈이니 무리도 아니다. 덤으로, 자다 깬 니콜슨의 헤어스타일은 질리지 않는 개그다. <사랑할 때…>에서 ‘섹스에 따르는 책임’은 피임이 아니라 적정 혈압의 유지다. 같이 신음하고 같이 속울음을 터뜨리는 노년의 베드신은 통쾌하고 심지어 감동적이다. 그보다 조용하지만 마이어스는 침실 밖에서도 두개의 근사한 장면을 연출한다. 밤참으로 팬케이크를 구워먹으며 에리카와 해리가 잡담을 나누는 장면이 그 하나. 젊은 딸이 갑자기 들이닥쳐 대화를 끊어놓는다. 둘의 대화는 사소한 것이었고 딸의 훼방은 전혀 폭력적이지 않지만 관객은 순간 모든 것이 망가진 느낌을 받는다. 마법은 사라지고 두 사람은 갑자기 늙어 보인다. 또 하나는 젊은 의사가 에리카에 대한 동경을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 확신하는 대목. 일 관계로 걸려온 전화에 명랑하게 응대하는 에리카의 억양과 표정을 말없이 관찰하는 줄리안의 반응만으로, 마이어스 감독은 연상녀에 대한 매혹을 거의 납득시킨다. 그러나 <사랑할 때…>는 할리우드가 찬밥 취급하는 노년의 로맨스를 다룬 스스로의 용기에 지나치게 감격하는 눈치다. 영화가 진심으로 노년이 섹시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여기에는 환상적인 해변 별장, 눈 내리는 파리 같은 호사스런 장식과 변명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을 테고, 노안과 비아그라에 관한 농담도 한번으로 족했으리라. 모든 참사랑의 징후에도 불구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 재임기 무렵부터 갈고 닦은 해리의 카사노바 인생철학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 없다. 경험 많은 두 남녀가 행복한 거리를 유지하는 연애를 추구하다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각자의 길을 갔다면 제목에도 더 어울리는 원숙한 드라마가 되고, 상영시간도 대폭 줄었겠으나 만사가 소망대로 되지는 않는 법. 중반까지 로맨틱코미디 고유의 연애 승부에 집착하지 않던 시나리오는 막판에 유럽까지 날아가 기어코 짝짓기의 팡파르를 울린다. 에리카는 어른스런 젊은 남자를 버리고 아이 같은 늙은 남자를 택한다. 이리하여 낸시 마이어스의 영화에서 또 한번 철없는 여피 남성은 성장하고 여성은 귀여운 남자를 위해 행복한 ‘베이비시터’의 직분을 수락한다. :: 감독 낸시 마이어스 인터뷰 늙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 낸시 마이어스는 1976년부터 전남편 찰스 샤이어와 팀을 이루어 <벤자민 일병> <신부의 아버지> <베이비 붐>을 쓰고 제작했다. 샤이어와 결별한 이후 <페어런트 트랩>으로 감독 데뷔했고 <왓 위민 원트>로 역대 여성 영화감독 영화 중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대중화된 버전의 페미니즘에 입각한 로맨틱코미디가 장기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쓰는 본인의 작업을 묘사한다면. 에리카의 서재를 보면 이해하기가 편할 것이다. 내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셈이니까. 나도 에리카처럼 집필할 때만 입는 옷이 있다. 아침 10시부터 집필을 하고 같은 음악을 30∼40번씩 틀어놓는 경향이 있다. 사실 난 로맨틱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캐릭터들의 무드를 표현하자면 음악이 꼭 필요하다. 젊은 여성만 데이트하는 남성들을 풍자하기 위해 주인공 해리를 설정했나. 그렇지 않다. 에리카 역시 젊은 남자와 사귄다. 이 영화는 나이 차이가 많은 커플을 풍자하려는 것이 아니라 중년 남녀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것이었다. 코미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두 성인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로 봐줬으면 한다. 중년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이유가 있나. 나도 50살이 넘었지만 나이를 먹는 데 대한 항의를 하려고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웃음) 사람들이 늙어가는 모습을, 그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특히 할리우드에서는 지난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강한 여성상은 많이 보여주었지만 사실적인 여성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다이앤의 캐릭터가 사실적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제작 과정에서 힘들었던 일은. 중년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점, 이들의 로맨스가 파리에서 이루어지는 마지막 부분의 설정도 문제가 됐다. 현재 미국에서는 아직도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넣은 영화사 세곳 중 두곳은 최종 결정자가 여성이었고, 한곳은 남자였다. 남자 대표는 설정 때문에 프로젝트 추진을 어려워했고, 다른 두곳은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혔다. 다이앤 키튼과 잭 니콜슨의 누드장면이 나오는데. 다이앤과 잭 모두 두말없이 촬영에 임해줬다. “각본에 나오는 누드장면, 전에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전신 누드 촬영이거든?” 이라고 했더니, 다이앤은 “영화에서 내 나이의 여자가 꼭 벗어야 한다면, 내가 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라고 말하더라. (웃음) 촬영 중에는 잭의 엉덩이 누드를 찍던 날이 가장 재미있었다. 잭에게도 역시 누드장면을 찍기 위해 사정사정할 필요가 없었다. 뉴욕=양지현 통신원

[현지보고] 제법 의젓해진 방콕영화제

지난해부터 타이 관광청이 주관하게 된 방콕국제영화제는 올해도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다. 영화제쪽은 해외에서 초청한 기자단들에게 타이 관광일정이 포함된 스케줄을 2주 전에 전달해주는 반면, 자국 감독인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에겐 그의 신작 <오케이 베이통>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당일날 아침 전화로 전달했다. 이 Q&A 프로그램은 당연히 취소됐다. 행사 진행자는 감독이 극장으로 오고 있는 중이지만 차가 너무 막혀서 시간 내에 도착 못할 것이라고 해명하고 관객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후에 만난 감독에게서 들은 대답은 그 부탁엔 처음부터 응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좀더 영화제스러워진 외형 어쨌거나 이 명분있는 국제적 홍보행사를 좀더 다듬어내기 위해 타이 관광청은 올해 새로운 인력을 불러들였다. 팜스프링스영화제 관계자였던 크레이그 프레이터와 제니퍼 스타크를 각각 방콕국제영화제의 이그제큐티브 디렉터와 프로그래밍 디렉터라는 실질적 지휘관 자리로 영입하면서 방콕국제영화제는 그야말로 좀더 ‘영화제스러워’졌다. 상영편수는 지난해보다 30여편 늘어난 180여편으로 경쟁부문만도 크게 세개로 나뉜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피터 웨버의 <진주 귀고리 소녀>, 타이 영화 <시암 르네상스> 등이 속해 있는 ‘인터내셔널 컴피티션’을 비롯,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의 영화를 모은 ‘아세안 컴피티션’, 그리고 ‘아시아 단편 및 다큐멘터리 컴피티션’ 등이 그것이다. 비경쟁섹션은 <도그빌> <안녕, 용문객잔> <런어웨이> <오사마> 등 “세계 최고의 영화들만” 95편을 모은 ‘세계 영화의 창’, 2003년 타이 최고의 흥행작 9편을 소개하는 ‘타이 파노라마’, 타이사회의 현실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와 장편극영화들을 묶은 ‘타이 리얼리티’ 등 역시 세개 부문이다. 회고전도 있다. 올해의 방콕은 50∼60년대에 활동한 타이의 촬영감독이자 감독이며 제작자인 R. D. 페스톤지를 존 슐레진저와 함께 회고했다. 또한 촬영감독 특별상을 신설, 크리스토퍼 도일에게 첫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영화제 시상식인 키나리 시상식 행사장에서 꽤나 들뜬 제스처로 테이블 사이를 누비던 그의 영화는 영화제 기간 중 총 네편(<화양연화> <영웅>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 <쓰리>)이 상영됐다. 지난해 아녜스 바르다가 수상한 공로상은 올해 올리버 스톤에게 주어졌지만, 그의 영화는 상영작에 포함되지 않았다. 방콕의 번화가인 시암스퀘어에 마련된 영화제 쇼케이스 전경과 리도극장. 타이 상업영화 꼼꼼히 소개 구색은 갖췄어도 막상 영화제 운영은 허술했다. 애초 폐막작으로 예정돼 있었던 <킬 빌: vol.2>가 후반작업 지연으로 상영이 취소되고 데이비드 마멧의 <스파르탄>으로 대체된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도 아예 볼 수 없었고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바람난 가족>을 비롯해 22개의 스케줄이 변경되거나 취소됐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흥미로운 수확이라면 ‘타이 파노라마’ 섹션이 선보이는 아홉편의 타이 상업영화와 열네편의 아세안 컴피티션 상영작 중 총 다섯편을 차지하는 또 다른 타이영화들이다. 지난해에도 자국의 최신 영화 20여편을 상영했던 방콕국제영화제는 올해 역시 꼼꼼하게 자국영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칸국제영화제에 소개된 바 있는 펜엑 라타나루앙의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은 두 남녀주인공의 무기력한 일상과 고독을 찬찬히 훑어가는 영화다. 주연을 맡은 일본배우 아사노 다다노부의 섬세한 연기가 인상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듯한 묘사 속에 과감한 판타지를 끌어들이는 장면들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타이의 젊은 신인감독 6명이 함께 만들어서 지난해 타이에서 1억4천만바트(약 42억원)의 흥행수익을 올린 <마이 걸>은 어릴 때부터 친구인 두 초등학교 소년, 소녀의 예쁘고도 안타까운 사랑을 제법 세심한 이야기로 만들어낸 영화다. 타이의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중년 관객층을 특히 많이 끌어모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한 여자의 실제 강간사건을 바탕으로 한 <프롬 피 람의 끔찍한 경우>, 젊은 음악가의 꿈과 도전을 그린 <더 오버추어> 등이 눈길을 끌었다. 최우수 영화상 <야만적 침략>, 최우수 감독상 짐 셰리던 골든 키나리 시상식은 영화제 마지막날보다 이틀 앞당겨 1월 31일에 개최됐다. 가장 비중있는 경쟁부문인 인터내셔널 컴피티션에서 최우수 영화상은 드니 아르캉의 <야만적 침략>이 수상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 이 영화는 칸국제영화제에서 각색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올해 오스카최우수외국어영화상 후보작에 올라 있다. 세계의 역사, 정치, 철학, 섹스 등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주인공들의 입담을 통해 펼쳐지며, 아르캉의 전작 <미제국의 몰락>의 속편 격인 영화다. 최우수 감독상은 짐 셰리던에게 돌아갔다. 그의 영화 <인 아메리카>는 희망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온 아일랜드계 가족이 그곳에서 겪는 적나라한 현실을 감동적으로 다룬 드라마. 셰리던 감독 가족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연배우인 사만다 모튼이 오스카 최우수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랐고 각색상 후보에도 올라 있다. 국제평론가 협회가 아세안 컴피티션에 수여하는 최우수 아세안영화상을 받은 펜엑 라타나루앙의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 가장 비중있는 경쟁부문인 인터내셔널 컴피티션에서 최우수 영화상을 수상한 드니 아츠캉의 <야만적 침략>, 최우수 감독상을 받은 짐 셰리던의 <천사의 아이들>(In American)(왼쪽부터) 국제평론가협회가 아세안 컴피티션에 수여하는 최우수 아세안영화상은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이 차지했다. 이외에 단편과 다큐멘터리 부문에 네개의 트로피를, 최우수 주연 남녀 배우에게 각각의 트로피를 전달한 방콕국제영화제 시상식은 아주 짧게 끝났다. 2월1일의 폐막식 행사까지 끝난 뒤, 영화제 마지막날인 2일에는 추가상영 외에 어떤 상영일정이나 행사도 없다. 주말에도 영화제 상영작은 극장 좌석의 절반 이상이 남아돌았고, 시상식엔 영화인들보다 각국 대사들이 더 많이 자리했던 방콕국제영화제는 결국 마지막날까지도 이렇게 조용했다. 일정을 함께 했던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무엇보다 게스트에만 신경을 쓰고 관객은 전혀 돌보지 않는 영화제”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영화제쪽이 올해부터 야심차게 기획한 3일짜리 필름마켓이 해외 바이어들에게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도 이 점이 아닐까 싶다. 관광도시 방콕을 홍보한다는 잿밥에만 관심을 두는 영화제에는 일반 관객이 흥미를 가질 이벤트가 거의 없었다. 방콕의 번화가인 시암스퀘어에 타이 메이저 제작사들이 홍보 부스를 세워놓고 있었지만 관심을 갖는 방콕 시민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영화제 상영작 티켓 판매 부스보다 인근 쇼핑몰이나 식당에서 북적대고 있었다. 방콕=글·사진 박혜명 morning@hani.co.kr

1천만 관객, 한국영화의 빛과 그늘

<실미도> 이전에는 1천만명 관객 동원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한 영화를 1천만명이 관람했다는 것은 실제로 극장을 찾을 수 있는 관객 중 두 명에 한 명은 영화를 관람했다는 얘기. 게다가 <튜브>, <청풍명월>, <천년호> 등 거대예산영화들의 참패가 이어지자 1천만 관객 시대가 이렇게 일찍 올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마자 <실미도>는 연일 기록을 경신했고 급기야 1천만 관객은 거뜬히 넘어설 태세다. 게다가 최근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의 초반 흥행세는 <실미도>를 압도하고 있다. 이제 '파이'는 1천만명 만큼이나 커졌다. 거대 예산 영화에 대한 투자는 한결 쉬워질 것이며 관객들의 한국 영화에 대한 호감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한국 영화의 관객 점유율도 한층 높아질 전망. 또한 국내의 '대박'은 해외 수출의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실미도>의 전국 1천만명 돌파를 놓고 환영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작은' 영화들에게 극장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이고 작품 자체보다는 마케팅의 물량공세나 배급 싸움이 흥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알맹이 없이 한탕만 노리는 영화가 넘쳐날 것도 걱정되는 일. 편당 수익률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대작 영화 제작 늘어날 듯 제작비 100억원을 들인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관객은 약 330만명. 지난 해 개봉영화 65편 중 330만명 이상을 동원한 영화는 <살인의 추억>, <동갑내기 과외하기>, <스캔들>, <올드보이>, <장화,홍련> 등 다섯 편밖에 없다. 하지만 1천만 관객의 '맛'을 본 충무로에는 <실미도>의 영광을 노리는 대작영화들의 제작이 이어질 전망이다. 올 한해만 해도 제작비 100억 규모의 <기운생동>과 60억 예산의 <역도산>, 90억 규모의 <태풍>, <바람의 파이터>(60억), <썸>(50억) 등의 제작 계획이 잡혀 있고 대작영화 수익성이 검증돼 투자자들이 늘어나면 이런 거대예산 영화의 제작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해외 시장 확대의 호기 지난해 한국영화의 수출액은 2천5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해 1천 435만 2천 89달러보다 74% 가량 증가한 액수. 국내 영화의 연간 해외 수출고는 2000년과 2001년, 2002년 각각 전년에 비해 18.17%, 59.5%, 27.58% 증가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국내 흥행 성공은 해외 수출 '대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해외 세일즈에서 자국 흥행 성적이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수출액의 증가는 예산의 설정 단계부터 국내 말고도 해외 시장까지 염두에 둘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미 지난 해 220만 달러(약 26억4천만원)를 받고 일본에 수출돼 해외 시장에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환수한 <올드보이>의 전례가 있다. ▲설자리를 잃고 있는 '작은' 영화 최근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 대작들이 스크린을 대거 점령하자 작은 영화들은 스크린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9일 현재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는 각각 452개와 220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둘이 합쳐 전체의 53% 가량을 점하고 있다. 따라서 이나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등의 영화들은 스크린을 잡지 못해 개봉을 연기했으며 다른 영화들도 전주에 비해 스크린 수를 대폭 줄였다. '작은' 영화들과 '대작'들의 경쟁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엄청난 마케팅 비용.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마케팅 비용은 각각 27억원과 45억원 이상이다. 결국 1천만 관객의 대박 뒤에는 엄청난 수의 스크린 확보와 수십억대의 마케팅 비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숨어 있었으며 다른 작은 영화들의 한숨이 섞여 있었던 셈이다.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개성과 작품성을 갖춘 영화가 설 자리를 잃고 극장가가 대작만의 경연장이 된다면 결국 상업영화의 토대마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는 일. 최근 영화계 일각에서 예술영화 쿼터제나 멀티플렉스의 중복ㆍ교차상영 금지의 제도화 등 배급 시장 불균형 개선 목소리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여전히 마이너스인 수익률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개봉한 한국 영화는 평균 4억 3천 100만원씩 손해를 봤다. 평균 손실률은 마이너스 10.7%. 결국 흑자를 본 영화보다 적자를 본 영화가 더 많다는 얘기다. 이중 7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의 손실률은 59.4%에 이르렀다. 결국 '대박'만 노리고 제작비를 키웠다가는 '쪽박'찰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말이다. 때문에 몇몇 '대박'영화의 성공을 보고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얘기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 예상 대작 두편이 연일 신기록을 세우며 관객들을 흡수해 내면서 올 일사분기 한국 영화의 점유율은 사상 최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힘을 얻게 되는 것은 스크린쿼터의 축소 주장. 따라서 한미투자협정(BIT)의 일환으로 스크린 쿼터 축소를 주장하는 미국측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끄러운 관객 집계 일부에서는 관객 수치 집계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배급사의 발표에 의존하는 흥행 성적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관련 배급사 외에는 어느 정도 흥행이 잘되고 있다는 느낌만 있을 뿐 관객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 초부터 통합전산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관객수 집계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상당수 극장들의 참여하고 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한동안은 각 배급사들이 밝힌 수치가 관객 집계의 유일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