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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KWVWS편하게죽는방법고통없이죽는방법편하게죽는방법고통없이죽는방법' 검색결과

기사/뉴스(2004)

[기획] 할리우드는 AI 논쟁 중, 예술의 영역에서 AI의 사용은 반칙인가?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예술 활동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창작 활동의 기술적인 소도구로서 AI를 ‘사용’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지만,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다. 현재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영화계에서 일어나는 AI 논쟁은 과연 예술가를 위협하는 경고일까. 매일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고 심지어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퀄리티도 향상되어 영화의 미래가 어디로 튈지 호기심을 버리기도 어렵다. 2025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영화제작 과정에서의 AI 기술 사용에 대한 흐름과 반응 역시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양상이다. 올해 아카데미를 장식할 것으로 기대되는 영화들 역시 AI 기술과 얽힌 논쟁을 피해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마냥 부정적으로 보거나 배척해야 하는 것인 양 침묵하는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AI 기술이 영화에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 현실을 똑바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카데미 주요 후보작을 중심으로 최근 할리우드에서 불고 있는 AI 논쟁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일종의 연기 코치로 활용된 AI 3월에 열릴 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AI를 둘러싼 논쟁의 장이 되고 있다.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브래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와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가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 후보정 과정에서 AI 기술을 사용해 예술성 평가 논란에 직면했다. AI 기술을 제작 과정에 도입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AI의 도움을 받은 배우의 연기를 온전한 예술가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는지, 즉 시상식 후보 자격을 얻을 만큼 가치 평가를 할 수 있는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두편의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소프트웨어 회사 레스피처의 기술이 쓰였다고 한다. <브루탈리스트>의 에이드리언 브로디와 펄리시티 존스의 극 중 헝가리어 발음을 미세하게, 특정 모음 발음의 정확성을 원어민 발음에 가깝게 보정해줬다. 하지만 모든 과정은 수작업으로 이뤄졌으며(소프트웨어의 사용은 엔지니어의 몫이며) 배우들의 연기를 변형하거나 대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제작진의 입장이다. 대안 기술이 있었을 수도 있으나 시간 단축을 위한 효율성 측면에서 AI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에밀리아 페레즈>의 AI 기술 사용 여부는 이미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바 있다. 주연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노래 연기 장면에서 보컬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음성 복제 기술이 쓰였다. 프랑스의 뮤지션이자 영화음악을 공동 작곡한 카미유의 목소리와 혼합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신기술의 가용 범위만 들어서는 예술성에 관한 논의에 쉽게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AI 기술의 사용 여부와 범위를 대중에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아카데미 주연배우 부문을 포함해 8개 후보에 오른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컴플리트 언노운>도 AI 후보정 기술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호주의 VFX 회사 라이징선 픽처스의 머신러닝 캐릭터 툴셋 리바이즈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와 <컴플리트 언노운>의 작업에 쓰였다. 이 툴셋은 2022년작 <엘비스>에서 오스틴 버틀러와 실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합성하기 위해 처음 쓰인 기술로 알려져 있다.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한 VFX 작업은 <듄: 파트2>에서도 극 중 프레맨 캐릭터들의 눈동자를 푸른색으로 바꾸는 과정과 웜 벌레의 라이딩 장면에서 누크 스튜디오의 카피캣이란 툴이 쓰였다. AI로 시간을 되돌린 배우들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를 비롯해 시대상과 세계관에 충실한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AI 기반의 작업은 창작자가 써서는 안될 ‘반칙’의 개념이 결코 아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신작 <히어>에도 AI가 영화 후반작업에 쓰였다. 이 영화는 주연배우 톰 행크스의 청년 시절부터 60대 시절까지의 모습을 한편의 이야기에 모두 담아내는 영화였기에 VFX의 기술적 완성도가 관객의 몰입도를 담보하는 중요한 ‘연출’ 요소 중 일부다. 디지털 메이크업이라고 하는 후반작업 공정을 통해 톰 행크스의 젊은 시절이 스크린에 구현됐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의 해리슨 포드, <아이리시맨>의 로버트 드니로 같은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구현할 때도 유사한 디에이징 기술이 쓰였다. 사실 이는 단순한 ‘보정’의 개념을 넘어선다. 이 영화들에서 AI는 작업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완성도에 초점을 두고 쓰였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흔히 ‘언캐니 밸리’라고 부르는 디지털 기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아직은 AI도 불가능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걸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완벽한 실사라고 보기엔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너무 쉽다. 어색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톰 행크스와 해리슨 포드의 연기를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그들이 캐릭터를 온전히 해석한 감정 연기는 한컷의 이미지에 담겨 있지 않다. 그들의 연기력은 2시간 러닝타임의 맥락 안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 안에서 특정 기술이, 특히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AI 기술이 차지하는 물리적인 분량과 퀄리티에 관한 여러 합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AI가 대체하게 될 영화제작 파트는? AI라는 신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도입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예술매체 중에서도 21세기의 영화는 특히 기술집약적이라 할 수 있는데 왜 유독 AI 사용에 반감을 두고 있는 걸까. 가장 큰 문제는 창작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최근 실베스터 스탤론의 신작 <아머>의 사례를 보자. 프랑스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의 목소리 연기를 50여년간 도맡았던 더빙 배우 알랭 도르발이 지난해 세상을 떠난 후에 영국의 스타트업 일레븐랩스가 AI 기술을 사용해 도르발의 목소리를 복제, <아머>의 프랑스어 더빙에 활용할 계획을 발표했지만 배우 목소리의 복제 사용 허가와 관련하여 반발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했다. 프랑스는 이를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만들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글로벌 더빙 시장 규모가 5조원이 넘는다고 하니 전세계 납품을 목표로 하는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에서 특히 이런 기술 흐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AI의 공격적인 작업 과정에서의 도입과 입지를 영원히 막을 수만은 없다. 이미 AI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서 작가의 시나리오 집필, 배우의 캐스팅, 촬영장에서의 배우의 연기, 후반작업은 물론 홍보 마케팅 분야에 이르기까지 쓰이지 않는 파트가 없을 정도다. 최근에는 챗지피티가 써낸 각본을 토대로 만든 스위스의 피터 루이지 감독의 영화 <더 라스트 스크린라이터>의 사례처럼 AI가 크레딧에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시각특수효과 VFX 분야에 있어서 이미 실시간 렌더링과 버추얼 스튜디오를 제작에 도입해 혁신적인 비주얼 변화를 이뤄온 게임엔진과 AI가 왜 구분되어 논의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불만을 표할 수도 있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영화의 예술성을 평가함에 있어서 AI만의 ‘독자적인 활약’이 가능한 영역이 아직까지는 많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시나리오작가가, 캐스팅 디렉터가 AI와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규제와 합의를 통해 해결점을 찾게 될 것이다.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대중의 몫이 될 것이다. 최근에 <시빌 워: 분열의 시대>가 프로모션용으로 AI가 제작한 포스터를 공개했지만 대중의 반응이 미온적이었던 것, 새로 예고편을 공개한 <판타스틱4: 새로운 출발>의 티저 포스터가 AI 작업이 아니라고 해명해야 했던 사례를 생각해보면 AI의 결과에 대해 대중이 포용력을 발휘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AI는 영화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할까 데이터 기반의 학습을 통한 결과, 알고리즘이 선택한 결과물을 어떤 방향에서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영화계가 시간을 갖고 더욱 깊이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스프링 브레이커스>의 하모니 코린 감독은 AI라는 도구를 일종의 영화예술 해체용 도구로 쓰고 있다. 그는 영화 전체를 적외선카메라로 촬영한 2023년작 <아그로 드리프트>와 AI를 이용해 범죄자의 얼굴을 아기 얼굴로 바꿔 시각적 충격 효과를 주게 한 2024년작 <베이비 인베이전>에서 AI와 게임엔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에게 AI는 “또 다른 붓이고, 또 다른 색이며, 이미지를 소리와 통합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만약 현대미술 영역에서 이미 쓰이고 있는 알고리즘에 의한 ‘패턴’ 편집이 영화에 접목되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과연 영화의 관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 패턴 자체의 예술성을 평가할 수는 없어도 창작자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따라서, 한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지에 따라서 새로운 가치 기준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상영마다 편집 순서가 달라지는 영화는 과연 영화일까. 어차피 AI가 이 글의 마지막 문단을 읽지 못한다는 가정하에 이야기해보자면, 창작자의 관점에서 AI가 소도구에 머물려면 영화, ‘필름’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만’ 자유롭게 쓰이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전세계 AI 산업의 법적 규제는 어떻게 진행 중인가 현재 전세계가 AI 산업을 둘러싼 법안을 두고 고심 중이다. 사람의 특정 데이터를 가지고 공공장소 이용이나 불법적인 아카이빙 구축을 제재하는 금지조항을 담은 AI법을 전세계 최초로 재정해 시행한 유럽연합을 시작으로 한국도 AI 산업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형성 발전 지원에 관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이 2026년 1월 시행 예정이다. 아직은 금지 조항 미흡, 보호 권한 모호, 국제기준 적용 등의 이유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AI 산업에 있어서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관련 법안 제정에 사실상 업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발의된 ‘SB 1047’ 법안은 제인 폰다, 알렉 볼드윈, 페드로 파스칼 등 수많은 할리우드 인사들이 지지를 표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캘리포니아 개빈 뉴섬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해 보류 중이다. 캘리포니아에 세계 5대 생성형 AI 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있는 만큼, 사실상 이 법안이 미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현재로서는 통과되기 어렵다. 비용이 1억달러를 넘어가는 AI 모델에 한해서 개발 업계가 문제 발생 시 책임을 지거나 중지 요청할 수 있는 의무를 담은 ‘SB 1047’ 법안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공공의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보는 입장이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당연히 AI 규제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영화, 텔레비전 및 라디오 예술가 연맹(SAG-AFTRA)은 2023년 파업의 핵심 쟁점이기도 했던 AI 규제에 대해 여전히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AI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복제’(digital replicas)를 규제하는 두개의 법안에 이미 서명했다. 이탈리아는 자국의 더빙배우조합(ANAD) 소속 배우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보호하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킬 것을 의무화하는 AI 보호조항을 계약에 포함시킨 최초의 국가가 됐다.

대안적인, 실험적인, 동시대적인, 틈새들을 찾아서: 마이크로시네마의 짧은 역사와 현재

비상업적, 틈새(niche) 취향의 영화를 상영하는 소규모 공간을 뜻하는 마이크로시네마는 학문적으로 명료하게 정립된 개념은 아니다. 인가된 영화관, 전시 공간, 공연 공간뿐 아니라 대학 강의실이나 강당, 클럽, 사무실, 카페, 버려진 건물, 개인용 거주 공간도 포괄하는 마이크로시네마의 상영 실천은 북미와 유럽, 일본 등에서 각자 상이한 영화 문화 및 제도적 조건을 바탕으로 표준적 영화산업과 상업적 영화 공간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개되어왔다. 1990년대 초 본격화된 마이크로시네마 실천 마이크로시네마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전에도 마이크로시네마 실천의 역사적 전거들을 북미와 유럽의 비대중적, 대안적 영화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파리와 런던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결성되었던 시네-클럽들, 아모스 보겔이 비영리적 회원제를 기반으로 1947년부터 1963년까지 운영하며 유럽의 실험영화, 전후 미국의 전위영화, 교육영화를 포함한 다큐멘터리를 포함하는 가치 전복적인 프로그래밍을 선보였던 시네마 16(Cinema 16)은 마이크로시네마의 선구가 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 언더그라운드 영화 문화는 뉴욕의 앤솔러지 필름 아카이브(Anthology Film Archive)와 같은 전통적인 극장 공간뿐 아니라 대학 강의실, 영화감독의 집 등 다양한 비극장 공간들에서 번성했으며 이들의 상영 실천 또한 즉흥적이거나 비공식적인 프로그래밍 방식, 그리고 8mm 및 16mm 영사기, 텔레비전, 아날로그 비디오 등 제도화된 극장에서의 영사기를 넘어서는 장치들을 포함했다. 런던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 런던영화감독협동조합(London Filmmakers Co-op)이 다수의 실험영화 상영 및 영사 퍼포먼스를 시도했고,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에는 무정부주의와 급진적 비디오 액티비즘, 반-예술 프로젝트가 뒤섞인 대항문화 운동의 허브였던 남부 런던의 브릭스턴에서 익스플로딩 시네마(Exploding Cinema), 키노 클럽(Kino Club) 등의 상영 콜렉티브가 활동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주요 도시에서 마이크로시네마 실천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시기는 1990년대 초였다. 도나 드 빌에 따르면 이같은 활성화의 조건은 경제적 불황에 따른 예술영화전용관의 폐쇄와 예술에 대한 공적자금의 축소,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도시 공간 대여 비용, 그리고 비디오의 보급을 통해 증폭된 과거 영화의 접근 가능성 등이었다. 마이크로시네마라는 용어의 확산에 기여한 사례는 199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실험영화 감독 레베카 바텐과 데이비드 셔먼이 아파트 지하에 불법적으로 설립한 토털 모바일 홈 마이크로시네마(Total Mobile Home Microcinema)다. 관객에게 5달러의 기부를 권유하며 4년 동안 운영된 이 자주적 ‘영화의 집’은 120회 이상 상영회를 열었고, 그중 대부분은 감독과 작가들이 100달러의 사례비로 참석했으며(그들 중 일부는 이를 수령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들은 상영 전후 수평적으로 관객과 대화했다. 대규모의 하향적인 영화 프로그래밍에 반발하여 브루스 베일리, 조지 쿠차, 너새니얼 도어스키 등의 실험영화 및 비디오를 소규모로 상영하고 관객의 집중을 촉진한 바텐과 셔먼의 실천은 미국의 대안적 영화 문화사에서 지금까지도 신화적으로 알려져왔다. 이들의 회고에 따르면 식탁에 앉아 떠올린 이 공간의 이름은 각 단어의 의미를 세심하게 염두에 둔 것이었다. ‘토털’은 영화의 가치와 취향에 대한 총체적인 규정의 불가능성을, ‘모바일’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관점’을, ‘홈’은 ‘잠정적인 자율적 지대’를 뜻하는 것이었고, 이들이 정의하는 마이크로시네마는 ‘영화 상영을 위한 작은 공간이자 행동의 범주’였다. 21세기에 설립되어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는 대안적, 비표준적 영화 프로그래밍 성향의 마이크로시네마 중 잘 알려진 두 가지 사례는 뉴욕 브루클린의 라이트 인더스트리(Light Industry)와 스펙터클(Spectacle)이다. 비평가이자 프로그래머인 에드 할터와 토머스 비어드가 시네마 16을 포함한 뉴욕 언더그라운드 영화 문화의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2008년 설립한 라이트 인더스트리는 실험영화와 비디오의 상영 및 퍼포먼스는 물론 뤽 물레, 재키 레이날 등 북미와 유럽의 영화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진 감독을 재조명하는 상영과 대화, 그리고 영화미디어학의 주목할 만한 신간을 주제로 한 강연을 위한 플랫폼으로 정착해왔다. 특히 액트 업(Act Up), 디바TV(Diva TV) 등 1980년대와 1990년대 액티비즘 비디오의 상영을 포함한 퀴어시네마와 무빙 이미지 작품의 프로그래밍은 할터의 말에 따르면 “공유된 경험과 이해를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마이크로시네마 실천의 동기 중 하나인 비주류적인 공동체성에 호응한다. 2010년에 설립되어 공동으로 운영 중인 스펙터클은 틈새 취향의 추구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프로그래밍을 선보여왔다. 맥주를 포함한 음료 구입이 가능한 바를 지나 어두운 통로를 통해 마주칠 수 있는 25석 남짓의 작은 공간에서 영화사의 정전과 예술영화 시네필의 관심에서 벗어난 혼종적 장르영화, 성애영화, 비디오아트, 다큐멘터리 등이 매일 상영되고, 퍼포먼스와 워크숍을 포함한 특별 행사도 열린다. 이곳에서의 체험은 시네필리아의 종교성과 호응하지만 밀교적이거나 배교적이고, 제도적인 예술영화 공간에서 종종 강요되는 엄숙주의보다는 집중, 몽환적 상태, 자유분방함이 모두 허용된다. 새로운 공간들의 출현 라이트 인더스트리와 스펙터클이 언더그라운드 영화 문화의 전통을 갱신하는 반면, 최근 미국에서는 다른 형태와 제도의 마이크로시네마 공간도 생겨나고 있다. 비평가이자 영화 큐레이터인 조던 크론크가 2017년 설립한 아크로폴리스 시네마(Acropolis Cinema)는 LA 지역의 여러 영화관과 예술 공간을 잠정적으로 빌려 고전 예술영화와 실험영화는 물론 북미 내에 배급되지 않은 유럽 및 아시아 동시대 예술영화의 상영 및 감독과의 대화를 마련해왔다. 2021년 쿠엔틴 타란티노가 인수한 비스타 극장(Vista Theater)은 내부 정비를 거쳐 다시 개장하면서, 그가 이전에 인수한 캘리포니아 지역의 비디오 대여점이었던 비디오 아카이브(Video Archives)의 컬렉션을 상영하는 20석 규모의 마이크로시네마를 더했다. 예술영화를 서비스하고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 무비(MUBI)가 배급 작품들의 상영을 위해 제휴를 맺은 LA 지역의 영화관 중에는 비영리 비디오 대여점으로 2023년 다시 문을 연 비디오츠 파운데이션(Vidiots Foundation)도 있는데, 이곳의 35석 규모 영화관에는 무비 마이크로시네마(MUBI Microcinema)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예술영화전용관 및 배급망과도 연결된 이와 같은 새로운 공간들은 실험영화와 비디오의 소개를 지향하는 마이크로시네마, 고전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시네마테크 등 인가된 제도 내의 마이크로시네마 등과 공존하며 동시대 시네필들의 분화된 취향과 가치에 호소하고 있다.

라이징 스타 6인의 3문3답, 제가 가지고 싶은 초능력은요!

라이징 스타 배우들에게 세 가지 공통 질문을 던졌다. 애착 아이템을 진지하게 추천하거나 롤모델에 대한 애정을 절절히 고백하는 눈빛에 기자들이 웃고 울었다는 후문. 은근히 성격과 취향이 보이는 이들의 답변을 한데 모았다. 1. 갖고 싶은 초능력 2. 나의 촬영장 필수 아이템 3.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 배우 김지안 1.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 시간을 멈출 수도 있고, 과거로 돌릴 수도 있고, 미래로 갈 수도 있는 가장 실용적이고 유용한 초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시험 기간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을 때 벼락치기를 할 수도 있고, 아침에 늦잠을 잤을 때 필요한 시간을 더 만들 수도 있으니까. (웃음) 만약 미래로 가서 어른이 된 내 모습을 본다면 지금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 2. 무선 이어폰을 꼭 챙긴다. 연기를 하기 전에 미리 감정선을 다스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서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둔 우울한 가사의 곡을 듣기도 하고, 필요할 땐 녹음해둔 대사를 계속 들으며 복기하기도 한다. 3. 더 성장해서 훌륭한 연기자, 어른이 된다면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님의 오컬트영화에 꼭 다시 출연하고 싶다! 내가 얼마나 잘 컸는지 감독님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우빈 신재휘 1.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한번 가져봤으면. 좀 부끄러운 실수를 했을 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생각했던 순간으로 잠시 가보고 싶다. 그렇다면 미래에 대해 덜 불안해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2. 아주 매운 구강 스프레이. 에티켓용으로 가지고 다니는데 뿌리면 정신이 확 들어서 리프레시하는 데 도움이 된다. 3. 언젠가 애덤 드라이버와 작업하길 꿈꾼다. 애덤 드라이버는 독립영화, 상업영화, 뮤지컬에서부터 일상물까지 어떤 작품이든 유연하게 어울려 볼 때마다 신기하고 꼭 닮고 싶은 배우다. 박찬욱 감독님 작품에 출연한다면 정말 영광이겠다. <헤어질 결심>까지 보고 나서 이런 극도의 섬세함을 가진 연출자와 작업한다면 얼마나 배울 게 많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이유채 오예주 1. 도라에몽의 ‘어디로든 문’ 능력!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먼 현장도 바로 가고, 어느 힘든 날 요술 문을 통해 곧바로 내 방에 도착한 나를 상상하면 행복하다. 2. 물병. 고등학교 3학년 때 물을 자주 마시는 습관을 들인 뒤로 언제 어디든 가지고 다닌다. 기분이 좀 별로일 때는 캐릭터가 그려진 텀블러, 추운 날엔 따뜻한 물을 담은 보온병 등 찬장에 물병이 가득하다. 3. 김태리 배우님과 꼭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 선배님의 연기를 볼 때마다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데 <정년이> 때 그 에너지가 정말 컸다. 나도 홀로 빛나는 게 아닌 주변을 이끌면서 작품 전체를 살리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유채 장규리 1. 텔레포트 능력!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영화 보다가도 실제 장소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이 능력을 유용하게 써보고 싶다. 최근에 봤던 <노팅힐>과 <비포> 시리즈, <러브레터>에 나온 장소까지 가뿐하게 다녀오고 싶다. 우주도 가볼 수 있을까? (웃음) 2. 향수. 평소 향수를 무척 좋아한다.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착장에 따라 다른 향수를 쓰는 편이다. 작품에서 배역을 맡으면 그 배역의 향을 정해두고 그것만 들고 다니기도 한다. 요즘엔 메종 마르지엘라 바이 더 파이어 플레이스가 최애! 3. 이와이 슌지 감독. 자연과 빛을 잘 다루는 연출자인 만큼 특정 계절을 담은 작품을 함께해보고 싶다. 겨울이 그대로 간직된 <러브레터>처럼. /이자연 진호은 1.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초능력. 단 10초여도 상관없다. 교통사고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경우에도 과거로 돌아가 상황을 예방하고, 촬영 중에 연기 실수를 했을 때에도 바로 직전으로 돌아가 만회하고 싶다. 2. 구강 스프레이와 텀블러. 상쾌한 걸 선호해서 촬영 전에 반드시 뿌리는 편이다. 텀블러에는 아침마다 좋아하는 원두의 커피를 내려 담는다. 3. 류준열 선배님. 좋아한 지가 너무 오래돼서 이젠 이유도 없다. 그냥 좋다. 언젠가 형제 관계로 나란히 스크린에 등장할 수 있기를. 기회가 된다면 10작품쯤 함께하고 싶다! (웃음) /조현나 최민영 1.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바랐다. 한데 연기는 타인의 심연을 파헤치기 때문에 즐거운데 그 재미가 사라지면 배우로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금 가지고 싶은 건 <점퍼> 속 텔레포트 능력이다. 단 시간까지 되돌리며 순리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다. 공간 이동 정도만 적당히 하면 현장 가기 편하겠다. 2. 대본과 목베개. 여전히 종이 대본을 선호하지만 언젠가는 태블릿으로도 대본을 읽어볼 계획이다. 쪽잠을 정말 잘 잔다. 어릴 적부터 차에서 잘 자 버릇해서 졸리지 않아도 차에서 잠드는 데 소질이 있다. 그래서 어딜 가든 나의 애착 목베개를 가지고 다닌다. 3. 두 대니얼.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은퇴를 번복한다면 그가 연기하는 걸 현장에서 두눈으로 목격하고 싶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서 대니얼 래드클리프도 꼭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정재현

[장윤미의 인서트 숏] 불탄 벽지

“곧 철거하나 봐요.” 캣맘의 문자에 다음날 바로 현장에 갔다. 성매매 집결지인 이 동네의 일부에 펜스가 생긴 지 한달, 펜스 안 건물들에 대한 철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캣맘은 빈 업소를 은신처 삼던 고양이 순이와 회색이를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공사 관계자와 구청에 요구하여 펜스에 구멍을 뚫어두었다. 예상보다 빨리 철거일이 다가오자 우리는 말 그대로 발을 동동 구르며 공사 관계자에게 철거 전 건물을 꼼꼼히 수색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는 이런 일은 한두번 겪는 게 아니라며 우리를 안심시켰고, 마냥 믿을 수는 없었지만 믿어야 했다. 순이와 회색이가 살던 건물에 포클레인이 내리꽂혔다. 콘크리트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펜스 앞을 지키던 공사 관계자에게 달려가니 구멍으로 알록달록한 고양이가 먼저 나오고 시간이 좀 지나 거무튀튀한 고양이도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정말이라고, 믿으라고 했다. 수색해서 나온 건 아니었구나 싶어서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어쨌든 너무 다행스러워서 눈물이 조금 났다. 그리고 펜스에 구멍을 뚫어두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겪으며 절실히 깨달았다. 나야 캣맘을 조력하는 위치에 있을 뿐이지만 앞으로 계속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다니, 서글펐다. 고양이들은 오죽할까. 하루 만에 집이 사라진 그들을 생각하니 내 힘든 감정은 하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고양이들이 안전하게 탈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는 내 일을 해야 했다. 유서 깊은 이 성매매 집결지의 건물이 무너지는 걸 촬영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펜스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야 했다. 이 동네 대부분의 건물이 2층 높이로 옥상조차 없는 곳이 많아서 올라간다고 해도 촬영을 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도 시도는 해보자 싶어서 평소 봐둔 빈 업소의 깨진 유리문을 통해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보였다. 하지만 거의 삭고 일부만 남아서 한발을 딛고 오르기도 불안했다. 얼마나 오래 방치된 건물인지 계단 옆에는 바닥을 뚫고 자란 나무들이 있었다. 나는 한 나무를 지지대 삼아 카메라 가방과 삼각대를 메고 낑낑대며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천장이 없었다. 잘게 쪼개진 방, 화장실, 한때 홀이었을 공간도 있는데 머리 위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천장이 무너진 건가? 지붕이 날아간 건가? 언젠가 이 건물에서 화재가 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불에 그을린 벽지가 보였다. 기괴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이 풍경 속에 잠시 서 있는데 마치 이국의 유적지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힘들게 2층으로 올라오긴 했는데 철거 현장이 잘 보이는 곳까지 가려면 아직 위로 더 올라가야 했다. 이 동네는 건물들이 거의 맞붙어 있다시피 해서 폴짝 뛰기만 하면 옆 건물의 옥상으로 이동할 수 있다. 아마 경찰의 단속을 피해 이동하기도 쉬웠으리라. 옆 건물로 뛰어넘어가는 찰나 길 건너 지붕에서 쉬던 고양이들이 놀라 도망갔다. 미안…. 이제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더욱 잘 들렸다. 물탱크가 있는 작은 옥상이 보여서 그곳까지 올라가보기로 했다. 주위에 계단이나 사다리는 없었지만 옥상 주위로 쓰레기들이 산처럼 형성돼 있었다. 선풍기, 프린터, 세제 통 등등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많은 쓰레기들. 옥상까지 딛고 올라가기에는 높이가 부족해서 마지막에는 옥상 바닥에 매달린 채로 점프해 올라가야 했다. 장비를 먼저 위로 올리고는 온 힘을 다해 뛰어올랐다. 철거 현장이 잘 보였다. 지금은 죽고 없는 고양이 돼지, 그리고 순이와 회색이가 살던 집은 그사이 반 이상이 무너지고 없었다. 난간이 없는 옥상의 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촬영을 시작했다. 건물 위에 임시로 세운 허약한 재질의 가건물이 포클레인에 쉽게 뜯겨져 나오는 게 보였다.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보다 무너지면서 드러나는 내부, 그러니까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던 업소의 내부, 그리고 포클레인에 끌려 나오는 온갖 잡동사니들에 눈이 갔다. 그게 무엇인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쪽이 아련히 슬펐다. 물탱크가 있는 이곳은 추위와 바람을 피할 수도, 인간의 시선을 피할 수도 없다. 결국 공사 관계자의 눈에 띄었고 그는 멀리서 손으로 엑스 표를 해보였다. 나는 못 알아듣는 척하며 인사하듯 손을 크게 흔들어 보이고는 점심 식사를 하러 노동자들이 다 떠난 뒤에도 조금 더 앉아 있다가 내려왔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 아까는 지나쳤던 옥상에 있는 한 가건물로 들어갔다. 매트리스가 깔린 빈방들이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계속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내가 어디로 들어왔는지 헷갈렸다. 괜찮아, 이 동네는 어느 문이든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몇번의 경험으로 익힌 내 감을 믿고 가고 싶은 곳으로 계속 이동했다. 계단이 보이면 내려가고 문이 보이면 열어보고 문에서 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탐험하듯 계속 통과해나갔다. 어두운 복도에 한 줄기 햇빛과 함께 보이는 뽀얀 먼지들, 바닥에 오래된 브라운관 텔레비전 하나, 방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인테리어, 금고, 신발, 달력 같은 것들, 뜯긴 벽지 뒤로 보이는 또 다른 벽지, 그런 것들. 수많은 사람들과 돈,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갈등, 온기 같은 것들이 한때 넘쳤을 공간. 그러다 좁은 복도의 끝까지 걸어갔는데 잠긴 문틈으로 내가 늘 걸어다니던 익숙한 골목이 보였다. 난 갇힌 걸까 혹은 저 골목과 연결되지 않은 아예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걸까. 열리지 않을 문을 한두번 흔들어보고는 돌아 나왔다. 다시 여러 방을 거쳐 계단을 오르내리길 몇번 반복했을 때 미로의 끝에는 내가 처음 들어왔던 깨진 유리문이 보였다. 깨진 유리문으로 나가려는데 주위에 붙은 스티커들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서에서 붙인 여성피해신고 안내, “화재는 예방이 최선이다. 지하층에서는 잠을 자지 말라”는 소방서장의 안내, 명랑해 보이는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스티커. 사진을 찍고는 다시 익숙한 골목으로 나왔다. 아쉽고, 안심되는 마음이었다. 멀리서 다시 콘크리트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며칠 뒤, 여전히 그날의 감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불탄 그 건물 안으로 다시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

[정준희의 클로징] 미디어와 대중(2) - 그들은 정말로 대중적 취향이 뭔지 알고 있을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실로 명언에 가깝다고 늘 생각하는 속담이다. 한길이 평균적인 사람 키에 해당하니 열길이면 15m가 넘는 깊이다. 아무리 맑은 물이라 해도 그 정도 깊이면 그냥 수면 위에서 들여다본다고 알 수는 없다. 물 안으로 들어가보거나 그 물길을 수십년은 노 저어 본 경험이 있어야 알 법하다. 쉽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 속은 더 어렵다. 자연과학이 알아내고자 하는 게 ‘열길 물속’이라면 ‘한길 사람 속’은 심리학의 몫이다. 심리학은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의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문학적 통찰에 의지한다. 사회과학이 그 중간에 위치해 있어서 인지 대체로 심리학은 사회과학에 속하는 걸로 간주된다. 최근 뇌과학이 거두고 있는 엄청난 성과에서 보듯 사회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의 저울추는 인문학적 통찰보다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훨씬 더 기울어 있다. ‘열길 물속’을 알아내는 수단에 의존하여 ‘한길 사람 속’도 알아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일도 한결 수월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넷플릭스가 텔레비전과 극장을 동시에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무렵, 넷플릭스가 확보한 ‘빅데이터’가 사람들의 취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해줄 것이며 결국 제작 방식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했다. 넷플릭스 기술로 사람들의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연결된 전세계 수억명의 이용자들이 토해내는 무시무시한 양의 ‘행동 데이터’가 그들의 마음속을 투명하게 비춰줄 것이다. 그렇게 알게 된 비법이 제작에 투입되면 마침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연금술이 완성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넷플릭스가 극장과 텔레비전을 모두 위기에 빠뜨린 건 맞지만 이들의 연금술이 최적의 제작 비법과 제작물로 이어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소위 빅테크 기업이 부리는 마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다수 대중을 매료시키는 제작자로서 살아보지도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대중의 취향을 콕 짚어낼 수 있는 미디어 연금술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대중을 ‘중2’ 취급하는 게 정답이라던 과거의 텔레비전 제작자도, 취향을 알고리즘화하는 게 비법이라고 주장하는 빅테크 미디어 기업도, 실은 ‘사람 속’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많은 대중을 자기의 앞에 모아놓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앞에 모였던 건 기가 막히게 재밌어서라기보다는 그게 편리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편리해지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그 안에서 재미를 찾는 게 대중이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콘텐츠의 경쟁력보다 더 중요한 건 미디어 창구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특집] <씨네21>이 기록한 한국영화 1995년~1999년

1995년 <씨네21>이란 제호는 독자가 보낸 1만2103통의 제호들 가운데 선택됐다(후보 중엔 <영상21> <필름> <시네컴> <시네마한겨레> 등이 있었다). <씨네21>은 “영화와 영화관을 뜻하는 ‘씨네’와 21세기를 뜻하는 ‘21’을 합성한 것”으로, “영화를 중심으로 텔레비전, CF, 만화 등영상문화 전체를 다루지만 영화가 주된 관심사”라는 매체의 방향성이 반영됐다. “우리는<씨네21>이라는 제호가 장차 영화로부터 뻗어나가고 또 영화로 수렴되는 모든 문화를 축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제호가, 누구든 영화에 관한 정보나 비평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기를 기대한다." <씨네21>은 창간을 기념해 영상산업에 종사하는 100인을 상대로 ‘한국 영상문화를 움직이는 인물들에 대한 의견 조사’를 실시해 ‘전문가 100명이 선정한 영상인 베스트 50인’을 선정했다. 신철 신씨네 대표, 심재명 명기획 대표, 김종학 프로듀서 등 제작자 외에도 강우석·임권택·장선우 감독 등 연출자, 강수연·안성기·채시라 등의 배우, 김수현 작가(<미워도 다시 한번> <배반의 장미>), 송지나 작가(<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다양한 인물들이 ‘베스트 50인’에 이름을 올렸다. 1995년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가 트란 안 훙의 <씨클로> 제작 현장 방문기를 보내왔다. ‘베트남의 3륜 자전거’ 혹은 ‘자전거 운전자’를 의미하는 <씨클로>는 1년간의 로케이션 조율 끝에 베트남 현지에서 촬영됐으며 주인공 소년을 범죄의 세계로 인도하는 시인 역은 양조위가 맡았다. 양조위는 이 작품을 위해 베트남어와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문화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언어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회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사회적 교훈이 될 것”이라 말한 토니 레인즈의 말을 증명하듯 <씨클로>는 제5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페미니스트 22인에게 1994년 3월부터 1995년 3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속 여성과 남성 중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싫어하는 캐릭터를 물었다. 90년대 들어 드라마 속 여성들이 다양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로는 일은 명확하게 해내면서도 “사랑 앞에서만큼은 숙맥이 되어버리는” <종합병원>의 이정화(신은경)가 꼽혔고, 가장 싫어하는 여성 캐릭터로는 사랑보다 복수에만 집착한 <아들의 여자>의 김채원(채시라), 가부장제 속 전형적인 주부 캐릭터인 <이 여자가 사는 법>의 유순애(이효춘)가 꼽혔다. 가장 좋아하는 남자 캐릭터는 사회정의를 실현했던 <모래시계>의 강우석(박상원), 가장 싫어하는 남자 캐릭터는 <이 여자가 사는 법>에서 외도를 합리화한 진이중(유인촌)이 선정됐다. 1996년 “영화판에 막 발을 들여놓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두 신예 감독의 단편영화가 국제영화제에 진출했다. 아우가 만든 <2001 이매진>은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에, 형님이 만든 <지리멸렬>은 샌디에이고국제영화제에 출품됐다. 인터뷰 당시 형님은 박종원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아우는 영상원 기술조교로 일하며 내공을 쌓고 있었다. 여기서 형님은 봉준호, 아우는 장준환 감독이다. <플란다스의 개>와 <지구를 지켜라!>가 세상에 공개되기 전인 20세기 말, <씨네21>은 이들의 진가를 일찌감치 알아봤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했다. <씨네21>은 국내 최초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와 시작을 함께했다. 개막 전 총 7주에 걸쳐 연속 기획 ‘Go! 부산국제영화제’ 섹션을 만들어 영화제의 준비 상황과 상영작 프리뷰 기사를 다루었고, 다수의 국제영화제에서 발간 중이던 일간지 문화를 표방해 ‘씨네21PIFF- CINE21 PIFF SPECIAL’이라는 이름의 데일리를 총 9호 발행했다. 96년 당시 잡지에서 발견한 속단 하나. “국내 최초의, ‘유일한 영화제가 될’ 부산영화제.”(<씨네21> 제63호) 아아, 96년 <씨네21> 편집실의 선배님들 들리십니까? 미래에서 전합니다. 이후에 전주와 부천에서도 국제영화제가 생긴답니다. 1997년 한국 멜로영화의 새 지평을 열어젖힌 작품. 당대 가장 ‘트렌디’한 사랑 이야기. ‘영화’ 배우 전도연의 시작이자 제작사 명필름의 첫 멜로영화. <접속> 촬영 현장을 <씨네21>이 찾았다. “PC통신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80년대에는 정치적 공간에서 집단의 소통이 중요했다면 90년대는 개인의 소통이 화두였다. 컴퓨터는 좋은 소통 매체라고 생각했다.” 이 기사를 스마트폰이나 e북 리더기로 열람하는 독자들에게 장윤현 감독의 말은 어떻게 읽힐까.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를 거친 ‘신인감독’ 허진호의 장편 데뷔작이자, 당대 최고의 스타인 한석규, 심은하의 주연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 한국 멜로 역사에 전설로 기억되는 지금과 달리, 지면을 통해 드러나는 당시의 촬영 현장은 모든 면에서 풋풋하기만 하다. 군산 신창동 공터에 지은 초원사진관 세트가 너무 진짜 같아 동네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오기도 했다고. 1999년 서울 관객 100만명을 신의 경지라고 부르던 1999년, <쉬리>가 개봉 32일째에 서울 143만, 전국 320만 관객을 동원했다. 경이로운 기록에 <씨네21>은 <쉬리>를 하나의 사회현상이라 보고 신드롬 분석 특집기사를 썼다. 단체관람을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치고 영화에 등장한 핸드폰과 음료가 특수효과를 누린다는 취재 내용에서 당시의 들뜬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작품 내부로도 깊숙이 들어갔다. 한국에서 재현한 할리우드의 스펙터클을 강점으로 꼽으면서도 이데올로기적 한계를 지적하는 평자들의 양쪽 의견을 다양하게 전하며 담론의 장을 형성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심은하, <접속>의 전도연, <비트>의 고소영. <씨네21>은 멜로영화의 흥행을 주도하던 세 여성배우에게 ‘20세기 충무로 여배우 트로이카’라 이름 붙이며 그들의 매력을 분석하는 특집을 진행했다. 심은하가 “희로애락의 정형화된 연기를 벗어나 나른함과 쓸쓸함이 스민 일상적 심리의 미세한 결을 포착”할 줄 안다면 전도연은 “시나리오를 본능적으로 해석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의외성의 인재”, 고소영은 “커다랗게 치켜뜬 눈, 좋고 싫음이 그대로 묻어날 것 같은 목소리, 탁월한 패션감각을 갖춘 과감한 스타”였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정성스러운 배우론을 읽다가도 자꾸만 이들의 싱그러운 얼굴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비평] 속도를 높이되 도착하지 말 것: <크래쉬>라는 반복의 무대, <크래쉬: 디렉터스 컷>

익히 알려져 있듯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크래쉬>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데이비드 크로넌버그는 인터뷰에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당시 코폴라가 강한 반감을 표했으며 직접 상패를 건네주는 것조차 거부했다고 회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1998년 국내에 검열본이 개봉했을 때 <크래쉬>의 홍보 팸플릿에는 코폴라의 평이 실려 있다. “<크래쉬>에 상을 주는 이유는 첫째, 대담하기 때문이고 둘째, 뻔뻔스럽기 때문이다.”(동숭씨네마텍 팸플릿) 코폴라의 사례가 보여주듯 <크래쉬>를 둘러싼 반응은 모순에 처해 있다. 영화의 인물들은 교통사고와 그로 인해 훼손된 신체를 페티시 삼고, 자동차가 으스러지는 순간에 절정에 달하려는 도착적인 행위를 반복적으로 추구한다. 그리고 <크래쉬>는 이 관능을 너무도 성공적으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욕망과 ‘거의’ 일체화된 것처럼 보인다. 이 관능에 몰입하는 것이 도덕적 거부감을 낳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동차와 충돌하는 순간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는 것처럼 <크래쉬>의 관능은 그것을 체험하는 일에 대한 반작용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크래쉬>는 충격적인 영화일 수 있지만, 동시에 충격을 무대화하는 퍼포먼스의 영화이기도 하다. 이 분열적 경험은 영화 보기라는 활동이 재현의 대상과 ‘결코’ 일치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누설한다. <크래쉬>는 단순히 욕망의 극단을 추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쾌락의 극단을 향해 질주한다’는 식의 설명은 한없이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 자동차는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사물이 아니거니와 영화 또한 도달 가능한 욕망을 향해가는 모험의 여정이 아니다. <크래쉬>를 본다는 것은 대상과 ‘거의’ 일체화되려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음이라는, ‘거의’와 ‘결코’ 사이를 무한히 왕복하면서 지극히 강박적인 반복을 통해 도달 불가능한 관능으로 향하는 일이다. <크래쉬>에서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라기보다 인간의 신체와 더불어 움직이고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변형되는 것이다. 광고 제작자 제임스 발라드(제임스 스페이더)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자동차를 향해 기계 이상의 애착을 갖게 된다. 그는 자신이 충돌한 차량의 동승자였던 헬렌(홀리 헌터)과 가까워지며 본(엘리어스 코티어스)을 알게 되고, 차체가 부서지고 파편이 날아가는 충격과 동시에 성적 에너지를 표출하려는 본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그들은 유명 스타의 자동차 사고를 재현하는 쇼를 벌이거나, 자동차 사고에 대한 경고가 담긴 교육용 비디오를 함께 시청하고, 사고 차량 안에서 섹스를 하며, 도로 위에서 서로를 들이받아 치명상을 입고 때로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여기서 인간(의 의지)과 기계는 서로의 신체를 망가뜨리거나 서로가 망가지는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새롭게 합성된다. “크로넌버그의 영화에서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는 것은 새로운 발명품이나 현상을 발표하고 전시하는 장면들이다.” (김병규, <씨네21> 1468호) 크로넌버그의 영화에 늘 발명품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기계들은 본래의 일상적 용도에서 이탈하여 해부와 재구성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까 ‘발명’을 ‘외과수술의 흔적을 새긴 것’이라고 바꾸어 말해보면 어떨까. 신체를 절제하고 내부를 헤집는 외과수술은 오히려 신체를 훼손하는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상태다. 크로넌버그의 영화는 이러한 수술의 긴장을 화면에 도입하는 장소다. 물론 <크래쉬>에는 <네이키드 런치>의 타자기나 <미래의 범죄들>의 수술대, <엑시스턴스>의 게임 콘솔처럼 낯설거나 기괴한 형태의 기계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아니, 적어도 완성된 형태로 등장하지 않는다. 본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현대 기술에 의한 인간 신체의 재형성”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이 영화에서 기계는 인간의 신체와 자동차가 서로 결합하고 훼손하며 흉터를 새기는 과정에서 발명된다. 이것은 섹스와 거의 유사하다. 물론 자동차와 인간이 직접 성교를 나누는 <티탄>에 비하면 <크래쉬>가 자동차와 섹스를 접붙이는 방식은 생각보다 급진적이지 않다. <크래쉬>에서는 자동차와 인간의 일체화를 위해 섹스가 매개로 동원된다. 자동차와 인간의 신체가 결합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섹스는 아무리 해도 부족한 결핍의 상태로 제시된다. 영화의 오프닝은 세개의 섹스 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임스의 아내 캐서린(데버라 카라 웅거)은 비행기 격납고에서 파일럿과, 제임스는 촬영장에서 카메라걸과 섹스를 나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집 베란다에서 각자의 외도를 묘사하며 섹스를 한다. 캐서린이 제임스에게 묻는다. “그래서 느꼈어?” 제임스가 그러지 못했다고 말하자 캐서린은 답한다. “다음번엔 되겠지. 다음번엔….” 이 말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캐서린과 성교를 하며 제임스가 중얼거리는 대사이기도 하다. <크래쉬>는 “다음번엔 되겠지”라는 말을 끝에서 되갚아주는 구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앙갚음은 외도로 인한 복수심 같은 감정적 인과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에게 섹스는 둘 사이에 다른 이를 끌어들이는 행위일 뿐, 일체화되고자 하는 소망의 미끄러짐 속에서 섹스는 언제나 결코 완수될 수 없는 시행착오로 남는다. 크로넌버그의 초기 영화 <스테레오>에서도 일체화를 소망하는 실험체가 등장한다. 이들은 실험을 통해 말을 할 수 없는 대신 텔레파시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서로의 기억과 감정을 한계 없이 공유할 수 있게 되지만, 결국 자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만다. 흥미롭게도 <스테레오>는 대사가 없는 무성영화다. 이는 언어능력을 제거한 피험자들의 외상이 영화의 형식적 특징으로 전이된 듯한 인상을 준다. <크래쉬>에서도 인물들 사이에서 텔레파시와 유사한 정신적인 교통이 발생한다. 가령 제임스는 사고 후 “요즘 차가 더 막히나? 사고 있기 전보다 세배쯤 심한 것 같아”라고 말하고, 헬렌 또한 자동차가 10배는 많아진 것 같다고 느낀다. 자동차를 향한 소비 페티시즘, 물신화와 같은 산업의 징후를 적극적으로 내면화한 정신은 서로의 의식에 침투하며 경계를 허무는 조건이 된다. 어쩌면 이 영화는 광고산업의 외상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제임스의 직업이 광고감독이라는 점, 그리고 그가 사고를 당한 순간에 광고 자료를 읽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의미심장하다. 화면의 아름다움은 이 영화의 형식적 특징이자 페티시즘을 통해 일체화되고자 하는 강박이 전이된 표면이다. <미래의 범죄들>에서 팀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이 종양을 제거하는 퍼포먼스를 섹스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크래쉬>의 형식은 보는 이로 하여금 거의 모든 장면을 섹슈얼하게 읽어내게끔 자극한다. 신음의 강도나 체위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물리적인 섹스가 아닌 장면도 지극히 섹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가령 가브리엘(로재나 아켓)이 쇼룸에 전시된 세단의 운전석에 탑승하려 시도하는 장면에서, 가브리엘이 다리에 착용한 보철기구에 카시트가 걸려 찢어지고 만다. 이 장면이 섹스처럼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제임스가 조수석에서 이 상황을 관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장면 바로 뒤에 제임스와 가브리엘이 차 안에서 실제 성교를 나누는 장면이 이어지지만, 이 행위는 쇼룸에서 일어난 일과 단절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가브리엘이 검정색 세단에 탑승하려 애쓰던 순간부터 섹스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는 두 사람의 성행위에 자동차를 끌어들이기 위한 영화의 편집술이다. <크래쉬>는 이런 식으로 결코 끝난 적 없는 하나의 섹스를 제시한다. 끝나지 않는 섹스는 노동과 다름없다. 다시 한번 주지하건대, 이 영화는 쾌감으로 질주하는 모험이 아니라 무한히 반복되는 재생산의 형벌에 가깝다. <크래쉬>에는 전율과 환희의 얼굴이 없다. 모든 것에 익숙해진 듯, 제임스는 사고를 당할 때조차 무감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이 텅 빈 얼굴에서 충돌과 쾌락의 교차를 읽기 위해서는 ‘쾌감의 극단이 고통’이라는 익숙한 도식을 넘어, 조금 다른 경로가 필요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화자는 사회와 적대한 채 끝없이 침잠하는 자가 도달한 자기 성찰을 고백한다. 그는 치통 속에도 쾌감이 있다는 비유를 드는데, 그 쾌감은 바로 신음 소리에서 표현된다. “이건 솔직한 신음이 아니라 적의에 찬 신음인데 (…) 이 신음 속에 고통스러워하는 자의 쾌감이 표현되거든.” 치통을 앓는 자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그로부터 쾌감을 느낀다. 고통에 쾌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음을 다른 이에게 들려주는 일에 쾌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쾌락은 통증을 신음으로 변형시켜 ‘쇼’의 현장으로 만드는 데서 온다. <크래쉬>의 쾌감은 죽음과 최대한 근접해지는 순간의 쾌감일 수도 있지만, 현실을 되풀이할 수 있는 ‘쇼’로 변형하는 데서 오는 적대적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제임스는 처음 사고를 당한 뒤 교통사고에 대한 경고를 귀 아프게 듣다가 막상 당하니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말한다. 이후 제임스는 안전벨트가 답답하다는 듯 거칠게 풀며 사고에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는 가상현실의 인물처럼 행동한다. 교통 시스템은 사고를 통제하려 하면서 필연적으로 사고를 재생산하는 현대적 죽음의 메커니즘이다. <크래쉬>의 인물들은 쇼를 통해 예기 불안을 현실화하고, 페티시즘의 함정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시스템의 역설을 내보이는 퍼포먼스를 수행한다. 그들에게 도로는 주행이 내포하는 위험 요소들을 자발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쇼의 장소이며, ‘보여지기’의 욕망을 충족하는 무대다. 문제는 쇼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본은 캐서린과 제임스가 탄 차를 쫓다가 고가도로 아래로 추락해 최후를 맞는다. 이 사고가 그의 프로젝트였는지, 단순한 사고였는지는 알 수 없다. 쇼가 끝난 적 있던가? 본의 죽음은 극적인 계기가 되지 못하며, 쇼의 일부와 다음 사이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다음 장면에서 제임스는 도로 위를 가로지르며 캐서린의 차를 추격하고 있다. 자동차는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충돌을 위한 거리를 벌기 위해 잠시 멀어지는 것뿐이다. 제임스의 자동차와 부딪힌 캐서린은 고가도로 아래로 추락한다. 제임스는 “다음번엔 되겠지”라고 중얼거리고, 캐서린은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지금 당장 이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눈물은 ‘다음번’이 수없이 반복된 미래에서 흘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로넌버그의 영화는 언제나 미래를 다룬다. 그 미래는 첨단이 아니라 현실의 가능한 조합들로 수술된 대안 세계이며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본 적 있는 미래가 다시 한번 상연된다.

[특집] 스타일의 핵심 - ‘영화 같은 시리즈’를 둘러싼 여러 전략들, 에 대한 4가지 FAQ

Q1. 는 어떻게 아성을 쌓았나. 응접실을 영화관으로 만들기. 홈 박스 오피스를 표방한 1972년 신생 케이블 네트워크 는 영화 방영 중 중간광고를 없애는 신의 한수를 택했다. 일리가 있다. 영화관엔 상영 전 광고만 있을 뿐 중간광고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약간의 구독료만 더하면 극장에서 금방 막을 내린 영화를 집에서 광고 없이 바로 볼 수 있는 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기엔 운도 따랐다. 마침 1970년대는 미국 내 케이블TV 수요의 폭발적 증대가 이루어진 시기였기 때문이다. 1974년 5만명에 불과하던 케이블TV 이용자는 1978년 150만명으로 급증했고, 는 1977년부터 흑자를 기록했다. 의 광고 배제 전략은 영화의 2차 배급을 넘어 ‘영화 같은 시리즈’를 만들어낼 때에도 변동 없이 적용됐다. 그래서 는 광고주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고, 광고의 외압을 받지 않은 내실 있는 콘텐츠 제작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었다. 구독 기반의 채널이기 때문에 욕설이나 노출, 폭력 표현에 대한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규제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의 중간광고 배제 전략은 시청자들에게 프리미엄 콘텐츠를 집에서 편안히 즐기고 있다는 자부심과 작품에의 깊은 몰입 모두를 가능케 했다. 단연 TV채널이 접근성과 콘텐츠의 질 모두를 챙긴 사례로 불릴 만하다. 의 차별화 전술은 1990년대 후반 큰 빛을 본다. 전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오즈> <섹스 앤 더 시티> <소프라노스>가 각각 1997년, 1998년, 1999년 내리 공개된 것이다. 는 수위 높은 범죄물과 성에 대한 담론을 스크린이 아닌 브라운관으로 끌고 들어오며 참신함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해냈다. 는 콘텐츠를 공개하는 전략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는 자사의 OTT인 맥스를 유치 중인 지금도 여전히 대부분의 시리즈를 매주 한편씩 공개한다. 구독자의 지속적 ‘본방사수’를 유도하는 이 전략은 빈지워칭이 가져오는 피로를 방지하고 실시간 시청을 촉구하며 시청률 향상까지 도모한다. 구독자 보상 전략 또한 어느 플랫폼보다 가 앞섰다. 는 구독자 전용 전편 시사회 및 관객과의 대화, 제작진 인터뷰 등 고객이 독점으로 누릴 수 있는 이벤트를 일찍이 개최해왔다. 구독자간 자연발생적인 바이럴마케팅 효과와 높은 브랜드 충성도가 뒤이을 수밖에 없다. Q2. 는 어떤 기록을 세웠나. 는 위성방송의 새 역사를 썼다. 1970년대만 해도 중계탑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다. 다수의 케이블 채널이 이용 중인 마이크로파 네트워크는 겨울철에 유지 관리가 어렵다는 명백한 단점도 있었다. 뉴욕을 넘어 미국 전역에 서비스를 확장하고자 했던 는 1975년, ‘우주’에 활로를 뚫었다. 정지 궤도에 통신위성을 두고 미국 전역의 케이블 사업자들에게 직접 신호를 송출하는 방안을 고안한 것이다. 이는 방송 기술의 발전에도 중대한 분기점이 된 기술혁신이다. 그렇게 는 세계 최초로 통신위성을 활용한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되었다. 이외에도 는 다수의 ‘최초’ 타이틀을 보유 중이다. 는 미국 최초의 구독형 네트워크이고, 이들이 1983년 제작한 영화 <더 테리 폭스 스토리>는 케이블TV가 처음으로 제작한 영화다. 당연히 에미상, 골든글로브상, 피보디상에서 최초로 상을 받은 케이블TV 타이틀 또한 가 보유 중이다. 특히 <소프라노스> <왕좌의 게임> 등이 에미상을 싹쓸이한 경력 덕에, 는 아직도 매년 에미상 노미네이션 발표 이후 넷플릭스, 훌루 등의 ‘엄마 친구 아들’이 되어 노미네이션 개수를 비교당하기 일쑤다. Q3. HBO 맥스와 HBO의 차이는? 는 1972년 설립된 케이블방송 채널이다. 그리고 2020년 5월 의 오리지널 콘텐츠와 여타 채널의 콘텐츠까지 스트리밍서비스로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이 바로 HBO 맥스다. 의 모회사이자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사인 워너브러더스가 넷플릭스 주도의 글로벌 OTT 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것이다. 이어 2022년 워너브러더스와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디스커버리>가 합병에 성공하여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라는 미디어 업계의 공룡이 등장했다. 커진 몸집에 맞춰 2023년 5월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는 당사의 대표적인 스트리밍 플랫폼 HBO 맥스와 디스커버리+(<디스커버리>의 스트리밍서비스)를 통합한 스트리밍서비스 맥스를 출범시켰다. 이름에서 HBO를 제외한 이유는 주로 성인 시청자층을 노렸던 HBO 맥스의 색깔을 다큐멘터리, 아동용 콘텐츠 등까지 포괄한 맥스의 전방위적 성격에 녹이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맥스의 출범과 함께 발표된 프로젝트는 바로 2026~27년 공개 예정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제작이었다. 의 성인용 콘텐츠를 넘어 전세계 남녀노소 시청자를 모두 사로잡겠다는 맥스의 포부가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난 예시다. 물론 는 여전히 자사의 특성이 드러난 콘텐츠를 독자적으로 제작하며 균형을 지키려는 중이다. 정통의 레거시미디어 로 시작해 HBO 맥스로 스트리밍 시대에 적응한 뒤, 이 시대를 집어삼키려는 목적으로 나타난 맥스가 과연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Q4. 왜 한국에 HBO 맥스의 상륙이 어려운가. HBO 맥스는 2021년부터 한국 지사의 채용을 진행하는 등 본격적인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2022년 출범을 예고했지만, 2022년 상반기에 한국 진출을 포기했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가 2023년부터 HBO 맥스를 새로운 스트리밍 브랜드인 맥스에 통합하면서 HBO 맥스의 한국 진출이 좌초된 것이다. 대신 맥스는 자사 콘텐츠를 해외 플랫폼과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공급하는 전략을 한동안 지속했다. 다만 이러한 전략은 국가별로 개별적인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진출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2024년 말 맥스는 일본과 뉴질랜드 등 7개 아시아 국가에 진출했고 “2025년에 호주, 한국, 동남아시아 등 시장에 출시”(<할리우드 리포터>)할 계획이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월 호주에서 맥스가 정식 출범한 것과 달리 한국은 3월부터 쿠팡플레이가 콘텐츠 협력 파트너십을 통해 와 맥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왜 한국엔 맥스가 직접 진출하지 않은 것일까. 이는 맥스가 광고 요금제 중심의 전략을 취하려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의 글로벌 스트리밍, 게임 CEO인 장 브리악 페레트는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광고 요금제(AD TIER) 시장의 활용이 가능한 시장을 찾고 있다”라는 전략적 방향성을 남겼다. 한국에선 넷플릭스와 티빙 등이 광고 요금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넷플릭스코리아는 최근 관련한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팀을 신설하며 본격적인 광고 요금제 시장을 확장하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OTT 시청자의 광고 요금제 집중도 등 관련 연구와 정책은 미비한 상황이다. 결국 맥스의 전사적 전략에 따라 맥스가 한국 OTT 시장에 진출할 근거가 아직 미약한 셈이다. 하지만 맥스는 궁극적인 해외 진출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상태다. 맥스는 언제든 한국 시장으로의 진출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다.

[임소연의 클로징] AI블루와 파면블루

지난 3월 말부터 SNS를 가득 채운 풍경이 있었다. 챗지피티가 만들어준 지브리 스타일의 사진들. 처음에는 누군가 올린 이미지를 보고 ‘오, 진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네’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그런데 어느새 타임라인에 지브리풍 이미지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다들 즐거워 보였다. 그들은 지브리풍의 따뜻한 색감 속에서 사랑스러운 인물로 다시 태어난 자신을 대체로 마음에 들어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처럼,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한순간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되는 모습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네달 가깝게 이어진 현실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바라보는 지브리 세상은 유독 더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의문이었다. 도대체 왜? 왜 자기 사진을 AI에게 주고 바꿔 달라고 하고 그것을 SNS에 공유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브리 스타일을 좋아하는 걸까? 그러다가 질문이 바뀌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른 이들의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가 SNS에 도배되는 모습을 보는 것조차 괴로웠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나는 남들이 AI에게 자신의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변환해 달라고 하는 걸 지켜보는 것조차 괴로울까? 나는 왜 새로운 AI 기능이나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감탄하고 놀라워하는 이들을 보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이 불편함은 사실 새롭지 않다. 한창 생성형 AI가 만든 젊은 여성 사진 이미지가 SNS를 뒤덮었을 때에도 그랬으니까. AI의 이미지 생성 기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하겠다는 목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젊은 여성의 얼굴과 몸 이미지를 만들고 온라인 공간에 전시하는 이들을 보는 일은 참 불쾌했다. 그들은 실제 여성을 촬영한 사진처럼 보이는 AI 이미지를 만들어놓고는 ‘불쾌한 계곡(언캐니 밸리)’을 극복했다며 “대유쾌”해했는데 그들이 유쾌해할수록, 그들이 찬사를 보낼수록, 나는 더 불쾌했다. 이후 딥페이크 성범죄가 그렇게 전국적인 규모로 벌어져 이 불쾌함의 실체를 확인하게 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지브리 밈’에 대한 나의 불편함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미 수년 전 AI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을 “삶에 대한 모독”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거나, 오픈AI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학습에 활용하면서 허가를 받거나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그런데 이게 다일 것 같지 않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SNS에 “우리 그래픽처리장치가 녹아내리고 있다”거나 “우리 팀이 자야 하니 이미지 생성을 좀 자제해 달라”라며 호들갑을 떨었다더니 지브리 밈이 퍼졌던 일주일 동안 챗지피티 유료 구독자 수가 450만명 증가했고 생성된 이미지만 7억개가 넘었다는 뉴스가 들린다. 다음은 뭘까, 과연 AI와 관련하여 흐뭇하고 기분 좋은 소식을 언젠가는 들을 수 있을까. 과학기술을 연구한다는 사람이 AI에 이렇게 우울한 소리만 하면 어쩌나 마음에 안 드실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개발자이자 테크-페미 활동가인 조경숙과 AI 연구자 한지윤이 함께 쓴 책 다. 부제는 ‘기술에 휩쓸린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들’. 지난 몇달간 그리고 지금도 내란에 휩쓸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마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025년 4월4일 오전 11시22분, 내란 수괴 대통령의 파면 선고에 기쁨도 잠시,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지 않고 불안한 이 상태를 ‘파면블루’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그 감정을 다스리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귀 기울이고 분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