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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인터뷰] 디아스포라 이미지-텔링, <트랙_잉> 조한나 감독

조한나 감독이 다른 3명의 감독과 공동 연출한 <트랙_잉>은 새로운 유형의 영화를 만나는 경험을 선사한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갖고 살아온 4명의 연출자가 모여 만든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독특한 방식으로 엮었다. “학교가 맺어준 인연으로 공동 작업을 하게 됐는데 20가지 넘는 기획이 꾸려지다가 자꾸만 엎어지는 과정을” 거친 감독들은 회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쇼츠 영상을 만들어내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아이디어가 인트로에서 머무르면서 작업이 진행되지 않자 서로의 아이디어를 교환했던 텔레그램 메시지, 번역기를 거치며 오갔던 텍스트들, 화상회의 앱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 등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조한나 감독은 두 나라의 서로 다른 기차의 이미지와 화면을 가득 메우면서 등장하는 텍스트 등으로 영화를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데이터 조각들을 나누던 우리의 공간”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트랙_잉>만의 “UI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트랙_잉>은 전통적인 영화의 구성 요소로 이뤄진 작품이 아니어서 장르를 구분하거나 명명하는 것도 어렵다. 평론가들마다 저마다의 언어로 새로운 유형의 영화의 목도를 기록하는 중이다. 이 작품은 영화의 전통적인 프레임을 컴퓨터의 인터페이스처럼 활용한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충돌은 그 자체로 새로운 <트랙_잉>만의 프레임/공간을 형성한다. 영화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텍스트 중에서 86년 동안 달리는 기차를 설명하는 부분은 카자흐스탄이란 낯선 나라에 강제 이주한 사람들의 삶의 궤적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낯선 나라 의 기차를 타고 느낀 것은 “출발지는 있지만 내릴 곳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의 감각, 어쩌면 영원히 기차에서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이 감독에게 하나의 데이터가 되었다. 조한나 감독이 영화를 설명하면서 쓰는 어휘에서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영화는 “키워드를 생성하는 AI”를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AI가 인간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점점 AI를 따라하면서 살게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도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다. 또한 영화의 프레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텍스트는 AI를 거쳐서 만들어졌다. 한편의 영화에 공존하면 어색할 것 같은 요소들이 한데 모이는 것은 조한나 감독이 <퀸의 뜨개질>에서 보여준 표현 전략에 대한 고민과도 맥이 이어진다. 감독 자신의 정체성, 자아에 대한 고민을 매듭짓고 나아가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던 <뱃속이 무거워 꺼내야 했어> <퀸의 뜨개질>은 조한나 감독에게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세상을 다루기 전에 거쳐야 했던 작업”이었다. <트랙_잉>을 통해 공동의 협업까지 경험한 그는 최근에 4번째 작품을 완성했다. 자신의 고향 여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우리 단지>는 여수의 산업단지에서 일해온 근로자들의 삶과 유년 시절의 기억 등을 엮어 만들었다. 4월24일부터 시작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적인 정례 전시인 <젊은 모색 2025>에서 상영할 예정이다.

[인터뷰] 영화도 인생도, 소동의 반복 -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

호나스 트루에바는 텔레노벨라의 토양 위에서 누벨바그의 꿈을 꾸는가. 14년 연애 끝에 헤어지기로 한 커플이 ‘이별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반복되는 상황과 대화의 연속으로 풀어가는 스페인영화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는 에릭 로메르풍 여름을 통과하는 예술가 커플 알레(잇사소 아라나)와 알렉스(비토 산스)의 눅진한 관계를 탐구한다. 영화사의 전통을 혼합하고 능동적 오마주를 구사하는 호나스 트루에바의 영화는 정체된 현대 로맨틱코미디 장르에 균열을 내는 움직임이다. “헤어짐에도 의식이 필요하다”는 독특한 철학이 호나스 트루에바의 만화경을 만났을 때, 영화와 인생은 혼란스럽게 닮아가고 마침내 하나의 소동으로 수렴된다. - 오래된 커플이 이별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구상의 출발점을 소개해달라. 나의 아버지, 페르난도 트루에바는 실제로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부터 “결혼식이 아니라 이별식이 필요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물론 당시에는 영화 아이디어라기보다 인생의 조언으로 들렸다. 그런데 그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영화의 전제로 싹트게 되었다. 할리우드의 고전 코미디들, 특히 1930~40년대 작품들엔 늘 신부의 아버지라는 인물들이 존재하지 않나. 내 아버지는 결국 영화에서도 알레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영화를 향한 사랑과 삶에 대한 태도,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가 시작됐다. - 배우 잇사소 아라나, 비토 산스와 <어거스트 버진> <와서 직접 봐봐> 등 여러 작품에서 협업했고 그들은 대부분 커플을 연기했다. 배우들이 각본에도 참여했는데 세 사람의 오랜 창의적 관계는 어떻게 발전해왔는가. 비토는 전통적인 매력을 가진, 유머 감각이 탁월한 배우이고 잇사소는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배우이다. 두 사람은 스페인에서 각자 극단을 운영하며 직접 글을 쓰고 연출도 한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이들과 일하는 걸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자기 역할을 넘어서 영화 전체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쌓여 내 영화에서 이미 여러 번 커플을 연기했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선 그동안 쌓인 기억을 자연스럽게 가져오는 방식으로 작업한 점이 새로웠다. - 이별식을 공표하는 커플과 이를 접하는 주변인들의 대화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느슨한 패턴을 그린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키르케고르의 <반복>을 빌리자면, 반복은 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앞으로 향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형식미학을 넘어 인생에 관한 철학적 은유로 자리 잡는 반복에 대하여 당신이 탐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 역시 반복은 정체가 아니라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반복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인생 자체가 반복의 연속이니까. 우리는 반복을 통해 익숙해지고, 그렇기에 다시 새로움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는 반복을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예술이다. 샹탈 아케르만의 <잔느 딜망>, 해럴드 래미스의 <사랑의 블랙홀>, 오즈 야스지로와 존 포드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 감독인 알레와 배우인 알렉스가 편집 중인 영화의 장면이 곧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하나로 겹친다.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내러티브를 구체화한 과정을 들려준다면. 영화 속 영화를 집어넣겠다는 발상은 이후 두 배우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여기엔 약간 자조적인 관점이 담겨 있다. 직업전선에 있는 우리 세 사람에게 영화란 늘 멋진 게 아니다. 편집하며 겪는 좌절, 끊임없는 의심도 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속에서 알레가 편집하는 영화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가 겹치기 시작했다. 영화와 인생은 매우 닮아 있다. 이것은 그사이에서 느끼는 혼란을 가능한 한 충실히 담으려는 시도다. - 미학자 스탠리 카벨이 레오 매케리 감독의 <이혼 소동> 등 1930~40년대 할리우드 재혼 희극(remarriage comedies, 스크루볼코미디의 하위 장르)을 탐구한 저서 <행복의 추구>를 인용했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과 배우 리브 울만의 관계, 프랑수아 트뤼포가 묻힌 파리 묘역 등도 주요 소재다. 현실 세계의 각주를 거침없이 활용하는 연출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우선 카벨은 내게 큰 영감을 주는 사상가다. <눈에 비치는 세계> <말들의 도시들>도 자주 읽는다. 그는 때론 철학보다 영화가 더 철학적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단순한 인용이 아닌 오마주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내 영화의 일부이다. 과거의 유산이 실제 내 창작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노출시키면서 관객과 나누고 싶다. 화면 속 배경이든, 등장인물의 대사든, 여러 요소로서 스크린 안에 함께 존재하게 만들려고 한다. - 카메라의 존재와 화면의 표층을 노골화했다. 분할화면, 디지털 줌인, 덜컹이고 삐걱대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식이다. 나는 영화의 어느 시점에 반드시 카메라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다. ‘나 여기 있어!’ 하는 과시적 양태가 아니라 흔들림 혹은 불완전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 불완전성은 진정성과 연결된다. 관객에게 카메라 뒤에 있는 이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서로 더 가까워진다. 이런 연출이 지적인 유희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감각적인 차원에서 전달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 실재하는 장소성, 지역성을 살리고자 한 로케이션이 있다면. 주인공 커플의 집이 대표적이다. 마드리드 중심부, 라바피에스 지역의 오래된 아파트다. 오늘날 이 동네는 관광객을 위한 숙소가 대다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지역의 성격이 그대로 보존된 공간들이 있다. 우리는 아파트 한층에 두집으로 나뉜 공간을 다시 하나로 연결해 촬영했고, 계단과 가벽을 더해 고전 스크루볼코미디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물들이 문을 여닫으면서 소통하는 공간 구조를 만들었다. - 당신의 여름영화들은 느슨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어질 또 다른 연인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나는 늘 이전 영화가 다음 영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전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들지만 결국엔 비슷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게 중요한 건 영화 한편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이어지는 여러 영화들을 통해 삶에 일관된 리듬을 유지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홍상수 감독을 존경한다. 그의 영화가 스페인에서도 꾸준히 개봉되기 때문에 항상 챙겨 보고 있다. 홍상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등불이다.

[특집] 변화한 광장의 풍경, 카메라의 여러 갈래 길 - 탄핵 정국 마주한 다큐멘터리스트들의 활동과 실천들 ➁

느슨한 연대, 새로운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진입 이러한 상황에 대한 다큐멘터리 진영의 실천적 답변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느슨한 연 대의 차원이다. SNS와 온라인을 통해 각종 집회, 촬영 정보가 공유되긴 했으나 집회의 규모와 형태가 급속도로 커지고 다양해지면서 다큐멘터리스트들의 개인 작업에도 제한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에 그들의 작업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 지난해 12월 말경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차한비 사무국장과 박소현 감독 등은 현장에 나서는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텔레그램 방을 개설했다. 처음엔 6~7명이 함께했지만 “현장에서 마주치는 감독들이 텔레그램 방의 존재를 공유” (허철녕)했다. 알음알음 모인 30명가량의 감독이 각자의 상황을 공유하며 현장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촘촘하고 조직적이라기보단 다소 느슨하지만 각자의 아카이브를 공유할 수 있는 장”(박소현)이 마련된 것이다. 과거 기성 다큐멘터리스트들이 주축이 됐던 비상행동 미디어팀 역시 차근차근 새로운 형태를 갖춰갔다. 2월경부터 김영욱 팀장을 중심으로 꾸려진 비상행동 시민미디어팀에는 다양한 성질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시민미디어팀을 모집하자 20대 대학생부터, 여러 노조를 통해 활동하던 50~60대 활동가”까지 10여명이 모여 팀을 결성했다. 3월 초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석방되기 이전 정기적으로 열렸던 토요 집회와 다양한 시민 프로그램 현장을 기록했고, 석방 이후 산발적인 집회가 늘어났을 때도 구성원들은 자율적으로 많은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갔다. 1500여 단체가 모여 각종 시민행동과 집회를 주최했던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기조 영상을 만들고 현장의 각종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미디어팀 소속이자 <오류시장> 등을 연출한 최종호 감독은 “카메라의 존재가 많을수록 카메라의 오용 역시 늘어나는 시대이다 보니 시민들 역시 자신이 촬영되는 일에 민감한 경우”가 있었지만 “비상행동 시민미디어팀이라는 소속 덕분에 더 친밀하게 집회 참여자들의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라는 소감을 들려줬다. 비상행동 시민미디어팀의 빈자리를 채우며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한 신진 다큐멘터리스트들 역시 나타났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보지 않았던 영상방송학과 전공자 박채한 감독은 SNS를 통해 비상행동 시민미디어팀에 참가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온라인의 반응을 보면 과거 민주화 운동권 세대와 달리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는 말이 보이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이 정세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대학생들의 결집을 막고 극우 세력의 여론이 대학생들의 활동을 억제하는지”(박채한) 알릴 필요를 느낀 것이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개인적으로 이어오던 최호영 감독은 “2016~17년 촛불 집회 당시엔 모인 사람이 많았으나 그 결과물이나 후속 조치가 아쉬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미디어팀 활동으로 여러 현장을 다니며 세상에 이토록 많은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록에 대한 욕망”을 다시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더 많고 다양한 카메라로 최호영 감독의 말처럼 12·3 계엄 이후 이어진 일련의 사태는 다큐멘터리스트들의 고심인 동시에 그들의 새로운 가능성이자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진영의 두 번째 실천적 답변은 바로 ‘다양한 카메라의 가능성’이었다. 민중의 수많은 카메라 속 다큐멘터리영화에 대한 효용을 묻자 홍다예 감독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카메라가 현장을 기록하면서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카메라는 외려 현장의 증거와 증언을 기록한다는 일종의 책무에서 벗어나 더 새로운 실험과 모험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교육제도란 공적문제에 지극히 사적인 서사를 엮었던 그의 전작 <잠자리 구하기>처럼 “윤석열이 쫓겨난다고 해서 모든 사회적 의제가 해결되지 않는 형국인 만큼 탄핵을 축으로 모인 갖가지 문제에 연출자 각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엮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비상행동 시민미디어팀에 참여했고 12·3 계엄의 현장을 찍기도 했던 박명훈 감독도 군복무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와 성소수자로서의 고민을 엮은 자전적 다큐멘터리 <클린>을 제작하던 중, “사회운동의 현장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트라우마를 다큐멘터리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치유의 힘”을 느꼈다는 소회를 전해왔다. 요컨대 광장에 모인 카메라의 수는 더한 가능성이되 한계로 작동하진 않는다. 허철녕 감독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목표로 했던 촛불 집회 이후 8년이 지났지만 그 당시에 꿈꿨던 부당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등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과제”라며 다큐멘터리영화가 단일한 목적의 수단이 아닌 여러 사안의 지속적인 창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그래서 이번엔 윤석열 퇴진뿐 아니라 성폭력 사안을 공론화했다가 부당 해임된 교사, 거제·통영·고성에 있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권리 등 더 다양하고 세밀한 사회적 의제들이 발현되고 있는 현장을 기록하며 새로운 다큐멘터리적 체험”(허철녕)을 겪었다고도 덧붙였다. 다큐멘터리스트들의 형식적인 시도도 이어졌다. <옵티그래프> <오색의 린> 등 주로 필름영화를 작업한 이원우 감독은 ‘인스타360 ONE RS 1인치’ 카메라를 백팩에 부착하고 광장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세밀한 사건들을 채록했다. “여의도광장에선 지상파방송의 드론 카메라 등 워낙 화려한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촬영되고 송출됐으니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영화를 통해선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도입을 고민” (이원우)한 결과였다. 상술했던 다큐멘터리영화의 위기는 반복돼왔고 언제나 새로운 답을 찾고 있었다. <미국의 바람과 불> <돌들이 말할 때까지> 등으로 오랫동안 다양한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김경만 감독은 “과거에 보도 언론과 주류 언론사가 다루지 않았던 영역을 독립다큐멘터리가 다양한 미학적 시도를 통해 책임졌던 것”처럼 “현장성과 신속성과 같은 부분은 원래 독립다큐멘터리영화의 몫이 아니었던 듯하다”라고 말했다. 박소현 감독도 “미디어, 영화 생태계가 변하긴 했으나 막상 현장에 나선 다큐멘터리스트들의 마음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다”라며 “각자의 일상에서 이어지는 활동과 연구 차원에서 더 다양한 사람의 손으로 더 다양한 형태의 기록이 등장할 수 있게 됐다”라며 지금 다큐멘터리 생태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 “지금도 여전히 사회에서 덜 조명되는 곳, 사회에 덜 알려진 광장의 사람들이 있다. 그것들을 밝히는 일”(최종호)은 다큐멘터리영화의 변치 않은 존재 이유다. 이 수많은 다큐멘터리스트와 카메라의 움직임이 “나는 새로운 상상의 나라를 보고 있다”(<내가 꿈꾸는 나라>)라는 희망의 발로로 곧 관객을 찾길 바란다. <비상123>(가제) - 상행동 시민미디어팀 비상행동 시민미디어팀은 오는 7~8월경 이번 탄핵 정국의 다양한 현장을 채록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비상123>(가제)을 공개할 계획이다. 김영욱 시민미디어팀 팀장을 비롯한 박채한, 이명훈, 이현호, 장병철, 최종호, 최호영, 홍다예, 허철녕 감독이 작품 기획과 연출에 참여한다. “사실상 계엄을 ‘당한’ 비상 상황에서 다큐멘터리스트들이 직접 시민들과 호흡한 결과물”이자 “시의성을 강점으로 두고 있되 금방 휘발되어버리는 SNS, 유튜브 콘텐츠와 달리 지난 5개월을 차근차근 복기하는 차원의 작품” (김영욱)이 될 예정이다. 전통적인 형태의 다큐멘터리이되 이번 탄핵 정국을 통해 새로 독립다큐멘터리 신에 진입한 여러 신진감독의 다양한 시선을 종합하는 영화다. <고양이 돌봐드립니다> - 박소현 감독 박소현 감독이 2022년부터 제작해온 <고양이 돌봐드립니다>는 원래 빈집에 홀로 남게 되어 돌봄이 필요한 고양이들, 그리고 나이도 많고 아픈 자신의 고양이들을 함께 돌봐야 하는 연출자의 일상이 전개되는 영화였다. 그 와중에 박소현 감독은 갑작스러운 탄핵 정국을 맞이하게 되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광장에 나갔을 때 발견한 ‘집에 돌봐야 할 고양이가 있는 사람들의 모임’ 깃발을 우연히 발견한다. 이는 개인이 일상에서 겪던 돌봄에 대한 감각이 광장으로까지 확장되는 감각을 주었으며, 전작인 <야근 대신 뜨개질>과 같이 개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광장의 목소리가 들어가는 경험을 반복하게 해주었다. 박소현 감독은 “다시 한번 일상과 정치는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즉 수많은 사회정치적 의제의 발현이 다큐멘터리스트들의 미시적이고 내밀한 사적 경험으로 환원되는 작금의 현상을 포착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인터뷰] 신숙옥, 촌철살인의 전사, <호루몽> 이일하 감독

도쿄 한구석에 박힌 다다미 넉장 반의 단칸방. 이른 아침 텔레비전을 켠 이일하 감독은 한 여자를 마주했다. 혐한 발언에 맞서 눈 하나 깜짝 않고 자기 할 말을 하는 여자는 가난한 유학생의 “움츠러든 삶에 사이다가 터지는 느낌”을 선물했다. ‘헤이트스피치’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투쟁기인 <카운터스>를 만들면서 그와 재회한 이일하 감독은 그제야 확신했다. “당신이 주인공인 영화를 꼭 찍어야겠다!” 다짐을 밝히자 뜨거운 화답이 돌아왔다. “네가 찍는 거라면 내 한몸 불살라볼게!” 재일 한국인 활동가 신숙옥은 그렇게 이일하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다큐멘터리이자 올해의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상영작 <호루몽>에 불을 붙였다. 영화는 신숙옥이 자신을 악의적으로 곡해한 극우 시사 프로그램 제작사와 다툰 기록을 중심에 둔다. 감독은 “소송 결과가 안 나오면 영화도 안 끝난다”는 걸 알았다. 다행히 한달간의 일본 로케이션 촬영 기간에 판결이 나왔고, 신숙옥이 통화로 이를 전해 듣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그와 한 공간에 있던 중 격앙된 소리가 들려와 바로 카메라를 잡고 튀어나갔다. 운이 좋았다.” 명예훼손 소송이라는 주요 에피소드를 지탱하는 건 여성 3대를 골자로 한 가족사와 다수의 방송 출연 화면이 증빙하는 개인사다. “가이 리치 감독을 좋아하고, 뮤직비디오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경쾌한 다큐멘터리스트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클래시컬한” 접근을 시도하고 싶었다는 이일하 감독은 이 정보량 많은 영화를 어떻게 관객과 만나게 해야 할지 골몰하다 “몸짓”을 떠올렸다. “음악을 베이스로 장면을 상상하는 습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이니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무용수들이 3대가 연결되기도 해체되기도 하는 모습을 구현해주기를 원했다.” 바닷가를 누비며 역사의 질곡을 은유하던 카메라가 신숙옥의 얼굴 앞에 멈출 때마다, 인터뷰이로서의 신숙옥은 “듣고 싶은 말을 제때 해주는 촌철살인의 전사로서 감독이 쾌재를 부르게 했다”. 그 호소력은 전주에서도 통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20대 여성들이 신숙옥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더라. 대한민국에서는 어느 분야에서건 어른을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 여성들이 신숙옥을 강하고 믿음직한 동네 언니처럼 느끼길 바랐다.” 이처럼 이일하 감독은 <울보 권투부> <카운터스> <모어> <청년정치백서-쇼미더저스티스>를 거쳐 <호루몽>에 이르기까지 인간적 매력을 지닌 투사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반사회적 인간들, 한마디로 ‘미친놈’에 매료”되어왔기 때문이다. 드럼과 베이스를 치던 청년 시절 최애 밴드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age Against the Machine)이었다고 한다. 지금 그의 카메라는 누구를 향해 있을까. “특정한 신념이나 관심사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다만 일본에서 인생의 반을 지냈기 때문에 자이니치 친구들과 일본의 정치적 상황을 건드리는 영화를 계속 찍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유의 다큐멘터리를 찍은 적도 있다. 홍보를 위한 영상도 찍는다. 고정해서 생각하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작업하고 싶다.”

[조현나의 CANNES 레터 - 2025 경쟁부문] <르누아르> 최초 리뷰

“우리는 사람이 죽을 때 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우리 스스로가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학교에 제출한 에세이에서 후키는 한 소녀의 장례식을 지켜본다. 상주 자리에 선 부모님을 보며 후키는 그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본인의 판타지 에세이에 전술했듯 11살의 후키는 종종 죽음을 상상한다. 나아가 상실을 겪은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수시로 영혼을 불러오는 주술을 행해보고 텔레파시에 심취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암 환자인 후키의 아버지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고 그런 그를 간호하고 생계를 잇느라 어머니는 후키를 돌볼 여유가 없다. 고요한 집에서 아이는 자주 외로움을 곱씹는다. 제7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르누아르>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자신이 천착하는 죽음과 연대라는 주제를 공고히 한다. 데뷔작 <플랜75>을 통해 70대 여성의 시선에서 노년의 생과 사에 주목한 데 이어 <르누아르>에선 11살 소녀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예견된 이별 앞에 데려다놓는다. 후키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무감해 보일 때가 많은데 그렇기에 죽음 전후의 상황을 긴밀히 채집하는 상황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후키의 과거인지 상상인지 불분명한 신들이 아이의 현실 속에 자주 틈입하고 그 대부분이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기억이다. 후키와 부모님의 내면에 관한 내밀한 묘사들은 <르누아르>가 성인이 된 후키의 회상이라는 인상을 안긴다. 11살 소녀가 상상조차 불가한 아버지의 부재에 관해 11살의 소녀가 이해하려는 시도에는 천진함만큼이나 간절함이 녹아들어있다. “10대, 20대 초부터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버라이어티>)고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이야기를 전보다 더 안정적인 리듬의 작품으로 완성해냈다.

[이나라의 누구의 예술도 아닌 영화] 초상화, 윈도, 스크린 앞에서, 프리츠 랑과 장 르누아르

이나라 경희대학교 프랑스어학과 교수 대학교에서 범죄심리학을 강의하는 중년 남성이 기차역에서 바캉스를 떠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배웅한다. 일거리에 파묻혀 사는 남성은 함께 떠날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곗거리에 불과했던 것 같다. 가족이 떠난 후 남성은 자석에 이끌리듯 갤러리 쇼윈도에 진열된 여성의 초상화에 시선을 빼앗기더니, 저녁 무렵에는 초상화 속 여성을 꼭 빼닮은 여성을 만나 시간을 보낸다. 비교적 덜 알려진 프리츠 랑의 <창가의 여인>(1944)은 이렇게 시작된다. ‘정상’ 가족을 꾸리던 건실한 남성이 범죄의 세계와 연루되고 위험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초상화를 ‘팜므파탈’만큼이나 위력을 가진 요소로 상상한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던 여러 편의 고딕 로맨스물이나 누아르영화, 히치콕의 <레베카>(1940), 오토 프레민저의 <로라>(1944), 윌리엄 디터리의 <제니의 초상>(1944), 약간의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 앨버트 르윈의 <판도라>(1951) 등도 초상화의 위력을 서사적 동기로 활용했다. 이중 영원히 바다를 떠도는 유령선 전설을 소재로 삼은 <판도라>에서 초상화는 영화 속 존재들에게 유령적 힘을 행사하는 유일한 사물이 아니라 유령선, 선장, 판도라적 여성 등 영화 속 여러 유령적 존재 중 하나로 나타난다. 반면 <레베카> <로라> <창가의 여인> 등에서는 초상화 자체가 위력을 떨친다. <레베카>에서 거대하고 어두운 성 복도에 걸린 망자 레베카의 초상화는 이곳에 새로 도착한 여주인공을 압도할 뿐 아니라 공간 자체를 압도한다. <로라>에서 로라의 죽음을 파헤치는 형사는 로라가 사라진 어두운 빈방에서 로라의 초상화에 매료된다. 이 두편의 영화에서 초상화를 바라보는 인물들은 어두운 극장 안에서 거대한 스크린 위의 압도적 크기의 ‘영화적 얼굴’을 바라보는 관객, 지금 여기 이 극장 안에 없는 존재의 유령적 이미지에 매혹당한 관객을 닮았다. 이들 영화에서 초상화의 위력은 육신을 가진 관람자를 오히려 압도하는 ‘이미지’의 위력이자 영화적 이미지의 위력을 드러낸다. 고딕소설의 전통을 이어받은 <레베카>에서 초상화가 걸려 있는 폐쇄적인 실내공간은 초상화의 위력을 더욱 강화한다. 반면 <창가의 여인>에서 주인공이 바라보는 초상화는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에서 주인공의 욕망과 환상을 부추기는 것은 초상화일 뿐 아니라 초상화가 놓인 조건, 곧 진열장과 진열장 창이다. 갤러리의 진열장, 갤러리 진열장의 그림은 앤 프리드버그와 같은 학자가 스크린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를 빌리자면 일종의 “가상 창문”에 가깝다. 프리드버그는 스크린이 17세기 대형 유리창의 확산 이후 건축과 문화의 핵심이 되었던 유리창을 대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창이 실내에서 바깥 경치를 액자처럼 보여주는 틀이었다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값싼 대형 유리가 생산되면서 유리창은 상품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상품 진열장이 시각적 소비문화 시대를 열었다면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 화면의 ‘창’은 가상 공간을 연다. <창가의 여인>에서 주인공은 밤늦게 클럽을 나서며 낮에 보았던 초상화가 놓인 진열창 앞에 멈춰 선다. 그는 진열창 ‘너머로’ 초상화를 본다. 이때 초상화 옆에 한 여인의 상이 초상화보다 더 초상화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맺힌다. 주인공 남성이 유리창을 통해 보는 것은 길에 있는 한 여인의 거울상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진열창을 통해’ 초상화를 처음 만날 뿐 아니라 초상화 속 여인을 닮은 한 여인 역시 ‘진열창에 비친’ 상을 통해 만난다. ‘진열창 덕분에’ 초상화는 진열창에 맺힌 주인공의 상과 여인의 상 ‘사이에’ 놓인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면 <창가의 여인>의 뻔한 도덕적 결말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창가의 여인>은 중년 남성에게 아름다운 여성의 유혹에 빠진 죄과를 묻는 영화처럼 흘러간다. 남성은 의도치 않게 살인에 연루되고 협박을 받으며,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하지만 남성은 순간 잠에서 깨어난다. 이 모든 이야기와 이미지는 진열창 속 그림을 본 남성이 꿈속에서 스스로 꾸며낸 것이다. 그러니 <창가의 여인> 속 창은 한편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산보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19세기적 시각 소비문화의 진열-창이고, 다른 한편 관객을 먼 시간과 장소로 이끄는 스크린-창이며, 관객의 적극적 상상-꿈꾸기 속으로 이어지는 프레임-창이다. 그러니 <창가의 여인>은 초상화 속에서 영화적 얼굴과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이기보다 창의 문화와 스크린 문화가 맺고 있는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일 것이다. 프리츠 랑은 <창가의 여인>을 만든 다음해에 만든 <진홍의 거리>(1945)에서도 그림을 소재로 삼았다. <진홍의 거리>는 장 르누아르의 <암캐>(1931)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오작동하는 무능한 예술가를 극 중 인물로 즐겨 소환하는 르누아르는 <암캐>에서도 자신이 실제로 태어나 자랐던 파리 몽마르트르 지역을 배경으로 삼아 고단한 삶을 사는 평범한 소시민이자 그림에 위안을 얻는 아마추어 화가 모리스 르그랑(미셸 시몽)이 살인에 이르고 노숙자가 되는 과정을 영화로 옮겼다. 그런데 장 르누아르와 프리츠 랑의 영화에서 그림은 어떤 마법적 위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약탈적 사회에서 주인공의 그림은 아내나 정부에게 잡동사니 쓰레기 취급을 받거나 돈벌이 수단으로만 간주된다. 이 세계에서 그림은 자본주의 상품 경제의 무자비한 작동 방식과 주인공의 소외를 증명하는 사물이다. <암캐>의 노숙자 모리스 르그랑은 갤러리 ‘진열장 너머’로 아버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을 무관심하게 바라본다. 르누아르는 여기에서 부르주아와 노숙자,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예술과 노동, 회화와 영화 사이에 위계를 정하는 대신 이를 차별 없이 가로지르는 돈의 문화를 환기한다. 이제 미셸 시몽은 진열장 너머의 그림보다 그것을 구매한 부르주아가 던져준 20프랑짜리 동전에 더 흥분하는 걸인이 되었다. 그는 자유인이지만 돈에 종속된 자유인이다. 감독 장 르누아르는 “인생은 물살에 떠가는 코르크 조각과 같다. 물결에 몸을 맡겨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인용한 적 있다. 그런데 물결은 이제 데이터 또는 데이터가 된 돈의 흐름의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할까? 이 질문은 르누아르의 쇼윈도 시대에도 오늘날 컴퓨터 윈도 시대에도 영화와 예술이 나누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특집] <누벨바그> <에딩턴> <르누아르> <다이, 마이 러브> 최초 리뷰

누벨바그 Nouvelle Vague 리처드 링클레이터 / 프랑스 / 2025년 / 105분 / 경쟁 <카이에 뒤 시네마> 사무실의 서랍을 열어 지폐 몇장을 몰래 훔치는 청년, 장뤼크 고다르(기욤 마르벡)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4:3 흑백 셀룰로이드 화면에 대고 말한다. “영화를 비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링클레이터가 택한 가장 좋은 방법 역시 그렇다. 1959년 촬영한 고다르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 작업기를 경쾌하게 좇는 신작은, 고다르의 걸작보다 <누벨바그>를 먼저 볼 세대를 위해 앞장서 띄우는 한통의 러브레터처럼 다가온다. 오토 프레민저 감독과의 악명 높은 작업을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온 할리우드 배우 진 셰버그(조이 도이치)가 고다르의 즉흥성과 충돌하며, 프로듀서인 조르주 드 보르가르는 대중을 위한 플롯과 메시지를 역설하는 상황. 넷플릭스 코미디 <히트맨>과 1940년대 미국 브로드웨이로 돌아간 소니 영화 <블루 문> 이후 칸에 입성한 링클레이터는 인디영화와 상업영화를 횡단하는 동안에도 작가성을 유지해온 자신의 여정에서 누벨바그라는 출처를 찾는다. <보이후드> <블루 문> 등에서 영화의 시간성을 조각해온 정신 또한 고다르와 일군의 친구들에게서 수혈된 것이다. 다만 그는 영화사에 기록된 혁신적 문법을 자신의 스크린에 외형상 재현하는 고다르의 경구들을 되새기고 당대의 에너지를 옮기는 데 충실하다. 이 점이 곧 <누벨바그>의 매력이자 결여일 것이다. 독창적 각주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누벨바그>의 세련된 경쾌함, 링클레이터다운 온유함이 일면 해석의 부재로 다가올 수도 있다. 온기, 유머, 관용의 거장인 링클레이터의 미덕이 날 선 누벨바그의 기수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임은 분명하며, 올해 칸영화제에서만큼은 경쟁부문의 어떤 영화보다도 애정 어린 호응을 이끌어냈다.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영화들에 깃든 오래된 유산을 향해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하는 리처드 링클레이터에게 뤼미에르 대극장은 길고 신나는 박수로 화답했다. /김소미 에딩턴 Eddington 아리 애스터 / 미국 / 2024년 / 145분 / 경쟁 아리 애스터의 신작 <에딩턴>은 정치적 극단주의를 풍자하는 광란의 사회실험극이자 공동체의 파멸을 선고하는 아리 애스터식 아포칼립스다. 트라우마로 점철된 장르의 세계에서 현대 미국 웨스턴으로 초점을 확장한 아리 애스터의 신작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정면으로 반영한 최초의 할리우드영화이기도 하다. 연대기적 상징성을 떠나 아리 애스터 필모그래피의 시계열을 넓혀 바라볼 때 중요한 분기점임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는 팬데믹, 인종 갈등, 온라인 음모론, 쇼츠와 가짜 뉴스, AI 빅테크 기업의 침투 등 동시대 미국의 지옥도를 대변하는 요소들을 작은 집단에 거침없이 욱여넣은 모양새다. 때는 2020년,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보수 성향의 마을 보안관 조(호아킨 피닉스)는 극우 유튜버를 신봉하는 아내(에마 스톤)와 장모 사이에서 무력한 나날을 보낸다. 진보 성향의 시장 테드(페드로 파스칼)가 펼치는 보건 정책에 반감을 품게 된 그가 직접 차기 시장 선거에 뛰어들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전환점을 맞는데, 소통 대신 폭력을 택한 주인공의 폭주와 함께 후반부는 전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그랬듯 초현실적인 피카레스크를 향해 내달린다. 칸 현지 반응은 극렬히 나뉘었다. 미국 기자들은 자국을 겨냥하는 과격한 촌극에 손을 들어준 한편, 노골적 도상들로 가득 찬 쇼케이스를 과시하는 아리 애스터의 호들갑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급진화된 백인 청년들의 모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그려지는 온건파 흑인 경찰들의 무고한 희생 등 주변부의 묘사가 외려 날카롭게 반짝인다. /김소미 르누아르 Renoir 하야카와 지에 / 일본, 프랑스,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 2025년 / 116분 / 경쟁 “우리는 사람이 죽을 때 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우리 스스로가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학교에 제출한 에세이에서 후키(유키 스즈키)는 한 소녀의 장례식을 지켜본다. 상주 자리에 선 부모를 보며 후키는 그것이 자신의 장례식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본인의 판타지 에세이에 전술했듯 11살의 후키는 종종 죽음을 상상한다. 나아가 상실을 겪은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수시로 영혼을 불러오는 주술을 행하고 텔레파시에 심취한 모습으로 등장하기까지, 이 모든 건 암환자인 아버지의 영향에서 비롯됐다. 시한부인 아버지, 그를 간호하고 생계를 잇는 어머니에겐 딸을 돌볼 여유가 없다. 고요한 집에서 아이는 자주 외로움을 곱씹는다. 데뷔작 <플랜 75>를 통해 노년 여성의 생과 사에 주목한 데 이어 <르누아르>에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11살 소녀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예견된 이별 앞에 데려다놓는다. 버블경제 붕괴 이전, 풍요로웠던 사회의 외형과 반대로 가족간의 유대는 약화된 1980년대 일본의 시대상이 바탕이 됐다. 자전적 작품인 만큼 성인의 관점에서 회상한 과거임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후키의 과거, 상상의 결과물이 현실과 자주 교차되는데 여기엔 아버지의 부재에 관해 필사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소녀의 간절함이 녹아들어 있다. 소마이 신지의 <이사>,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의 자장 아래 놓인 작품임은 분명하나 <플랜 75>보다 한층 과감한 시도, 안정된 만듦새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자신의 영역을 굳건히 다진다. /조현나 다이, 마이 러브 Die, My Love 린 램지 / 캐나다 / 2025년 / 118분 / 경쟁 잡화점 직원이 묻는다. “필요한 건 다 찾으셨나요?” 여자는 받아친다. “뭐, 인생에서?” 직원은 꺾이지 않고 유모차의 아기한테 찬사를 쏟아낸다. “어머 이렇게 예쁜 아이는 처음 봐요.” 점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여자가 일축한다. “댁은 생각은 하면서 말하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쉬지 않고 입을 나불나불하는 건가?” 이 가시 돋친 여자의 역설적인 이름은 그레이스. 배우는 이런 부류의 대사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제니퍼 로런스다. 파트너 잭슨(로버트 패틴슨)과 그레이스는 자력으로 장만할 수 없는 넓은 집을 잭슨의 숙부가 물려주자 뉴욕에서 몬태나의 외진 시골로 이사하고 곧 아기가 태어난다. 왕성하던 섹스는 드물어지고 깊어가는 고립 속에 작가지망생인 그레이스는 책상에 앉지 못한다. 발산할 곳을 찾지 못한 여자의 욕구불만은 관계를 잠식하고 말 그대로 집을 파괴해간다. 벌레의 웅웅거림과 아기의 울부짖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가운데 히스테리가 불꽃놀이를 벌이는 <다이, 마이 러브>는 보기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럼에도 이 불꽃놀이에는 놀라운 아름다움이 있다. <케빈에 대하여> <너는 여기 없었다> 등에서 정신적 만성통증의 탁월한 연구자임을 보여준 린 램지 감독은 관객의 청각, 촉각, 시각을 난사하며 관객을 한 여자의 신경증 속으로 데려간다. <툴리>를 비롯해 산후우울증을 다룬 많은 영화들과 다르게 린 램지는 그레이스를 치유하려 들지 않는다. 건전한 정상성의 세계로 끌어내려 하지 않는다. 벽지를 손톱으로 긁고 타일을 부수며 그 뒤쪽의 무엇을 잡아 쥐려는 그레이스의 폭력적 몸부림을 변명하지 않는다. 한동안 스타덤에 의해 거세됐던 제니퍼 로런스의 야성과 무시무시한 재능이 봉인해제된 이 영화는 <가여운 것들>이 에마 스톤에게 그랬던 것처럼 로런스의 연기 편람으로 내년 오스카의 영광을 점치게 한다. <다이, 마이 러브>의 억압은 나쁜 남편, 못된 시어머니보다 거대한 것으로부터 온다. 잭슨과 그의 어머니 팸(시시 스페이섹)은 결코 악역이 아니다. 외려 남편의 죽음으로 가족에 봉사하는 역할을 완료한 팸과 출산에 의해 그 길목에 접어든 그레이스가 마주 보고 만들어내는 그림은 이 영화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한다. /김혜리

[Masters' Talk] 정통 뱀파이어와 오리지널 시나리오 사이의 묘, <씨너스: 죄인들>의 라이언 쿠글러 감독 X <잠>의 유재선 감독

호러영화 연출자들의 마스터스 토크 시네마엔 국경이 없다는데, 게다가 같은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이 만나면 대화가 더 잘 통할까. 이번 마스터스 토크는 이같은 호기심에서 출발해 그 가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사회문화적 맥락이 녹아든 블랙 호러 영화 <씨너스: 죄인들>(이하 <씨너스>)을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지난 5월16일 러브 스토리와 호러를 절묘하게 엮은 <잠>의 유재선 감독과 온라인으로 만나 여러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었다. 전통적인 고딕호러의 소재인 뱀파이어를 1932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로 이식시키는 이야기로 운을 뗀 이날의 대화는 오랫동안 쿠글러 감독을 사로잡았던 공포소설과 초자연적인 존재들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이번 마스터스 토크는 미국의 86년생 젊은 감독과 한국의 89년생 신인감독간 만남으로도 요약할 수 있다. 기존 창작자들과 달리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원작 없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씨너스>로 북미 극장가에서 흔치 않은 흥행 기록을 세웠다. 오리지널 영화가 2억달러를 돌파한 것은 가족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 이후 8년 만의 기록이다. 게다가 그는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와 협상을 벌여 2050년이면 <씨너스>의 저작권을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많은 영화인들이 원작이 될 창작물의 판권을 사거나 리메이크에 몰두하는 사이 자신만의 시나리오로 기존의 관행을 깨는 파격적인 행보는 쿠글러 감독 특유의 젊은 에너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작품 내적인 이야기는 물론 그가 이끄는 제작사 프록시미티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도 마스터스 토크 지면을 통해 공개한다. <씨너스>를 본 관객은 물론 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줄 이날의 대화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유재선 안녕하세요, 감독님!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씨너스> 굉장히 잘 봤고요. 감독님의 열렬한 팬으로서 마스터스 토크에 참여하지만 이제 영화 한편을 연출한 감독으로서 배우는 학생의 느낌으로 <씨너스>를 보고 궁금했던 질문들을 왕창 쏟아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라이언 쿠글러 아닙니다. 유재선 감독이 품은 어떤 질문이든 그를 바탕으로 대화할 수 있어서 행복한걸요. 이렇게 유 감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한국영화를 사랑하며, 부산에서 제 영화 <블랙 팬서>를 촬영하고 그곳에서 큰 시사회를 가진 적 있습니다. 부산이 참 그립네요. 젊은 나이에 첫 장편영화를 완성한 유재선 감독의 멋진 커리어에도 축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제 첫 번째 장편영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마쳤을 때를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에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땐 저 역시 영화를 계속해서 배우는 중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장편영화, 단편영화, 학생영화, 뮤직비디오, 광고 등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도전하는 걸 결국 해냈다는 의미더군요. 지금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실력이 필요했을 겁니다. 저는 유 감독님을 학생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우리가 만난 ‘마스터스 토크’라는 코너도 적합한 제목이라 생각합니다. 유재선 정말 감사합니다. (웃음) 운이 좋은 케이스였습니다. <블랙 팬서>를 한국에서 촬영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봉준호 감독님의 <옥자> 연출팀으로 일하던 당시, 많은 스태프들이 <블랙 팬서> 촬영에 참여했고 그 현장을 너무 즐겁게 추억하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는데요. <블랙 팬서>가 한국을 배경으로 두었기 때문에 한국 관객에게도 특별히 더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씨너스>를 이야기하는 자리지만 <블랙 팬서>도 굉장히 잘 봤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독님의 데뷔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잖아요. 전작인 <크리드>는 원작 영화가 있었고, <블랙 팬서>는 원작 코믹스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씨너스>는 감독님의 오리지널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연출하셨을 때 전작과 다른 접근 방식이나 마음가짐의 차이가 있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라이언 쿠글러 정말 많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전작을 창작하면서 배운 것들을 교훈으로 삼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이 영화가 데뷔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처럼 하룻밤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24시간 영화’가 되리란 걸 알았어요. 다만,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처럼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든, 코믹스를 각색하든, <록키> 세계관을 다른 방식으로 그리든 간에 거기엔 연출자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해요. 예술가에겐 쉽지 않은 일이죠. 이번 작품 <씨너스>는 따라야 할 스토리의 규칙이 없고, 이 영화를 보러 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관객도 감을 잡을 수 없어 오히려 신났어요. 물론 문학과 영화, 텔레비전에서 이미 다룬 ‘뱀파이어’를 소재로 작업했기 때문에 관객이 뱀파이어 서사에 기대하는 지점과 규칙들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화나 원작이 있는 영화를 만들 때와 비슷한 지점도 있으나 더 쉽기도 했고, 때때로 더 어렵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씨너스>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영화를 판매하는 거였어요. 영화를 홍보하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게 무척 어려웠죠. 세상엔 볼거리가 많잖아요. 관객 입장에선 익숙한 세계관의 작품을 선택하는 게 안전하죠.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선택하기엔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케팅의 관점으로 말하자면, 실화를 기반으로 하거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 오리지널 영화를 홍보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유재선 이 영화를 제작했을 때 어려운 점이 영화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마케팅 부분이라고 말씀하셔서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감독님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프로듀서인 아내에게 최초로 피칭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본 적 있습니다. <씨너스>를 처음 어떻게 소개하고 피칭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라이언 쿠글러 네, 피칭했죠. 진지 쿠글러는 제 프로듀서이자 아내이고, 파트너인 세브 오해니언 세 사람이 같이 제작사 ‘프록시미티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어요. 우린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에 작업 전에 아이디어 테스트하는 것에 익숙해요. 아내 앞에서 스토리에 대해 피칭하고 제가 상상한 것들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진지는 정말 좋은 첫 번째 반응자예요. 저에 대해 잘 알고 제 취향에 대해서도 잘 알죠. 제가 얘기하면 진지는 “이건 잘 모르겠어” 아니면 “이거 좀 멋지네”라고 말하곤 해요. 이번엔 집에서 피칭했는데 이야기에 빠져드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진지가 듣고는 “꽤 괜찮네”라고 말했어요. 이야기를 다듬어서 캐릭터들이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이 어떤지에 대해 확고히 해야 했죠. 이 영화는 블루스 곡 를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한 건물에 여러 친구를 불러 파티를 여는 내용의 노래예요. 시끄러운 사람들이 모여 멋진 파티를 열고 그 파티에 초자연적 만남이 벌어지는데 정말 멋지죠. 진지와 저는 이 아이디어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뱀파이어가 돼야 할까? 늑대인간이 돼야 할까?”라면서요. 유재선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늑대인간 소재도 고려했는데 뱀파이어로 최종 확정 지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라이언 쿠글러 뱀파이어는 제 초기 아이디어 중 하나였어요. 다른 신화적 존재들이 뭐가 있을까 살펴봤지만, 계속 뱀파이어로 돌아왔어요. 제가 뱀파이어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스티븐 킹의 뱀파이어 소설 <살렘스 롯> 덕분에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살렘스 롯>은 정말 강렬한 책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무서운 소설이었어요. 저는 항상 이 소설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유령, 늑대인간, 크리처, 그리고 좀비들까지 다 좋아하지만 이번엔 뱀파이어가 제일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초자연적인 존재들보다 뱀파이어가 이 영화에 잘 어울렸습니다. 유재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뱀파이어가 아닌 다른 무엇을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로 뱀파이어 설정이 테마와 맞물려 있어서 이보다 더 완벽한 선택이 있었을까 싶어요. 라이언 쿠글러 네, 확실히요. 음악산업, 자본주의, 편견, 종교 등 모든 것이 뱀파이어란 개념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현대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 모두 그랬죠. 지금 돌이켜보면 뱀파이어 외에 다른 소재였다면 이렇게 영화와 잘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프록시미티 미디어 프록시미티 미디어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그의 아내이자 제작자인 진지 쿠글러, 제작자이자 시나리오작가인 세브 오해니언이 2018년에 설립한 멀티미디어 제작사다. 음악감독 루드비그 예란손도 공동 창업자로 참여했다. 프록시미티 미디어는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 시리즈, 사운드트랙 음반을 제작한다. 설립한 지 약 3년 만에 프록시미티 미디어는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로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에 후보 지명을 받았으며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결과를 냈다. 참고로 라이언 쿠글러는 1986년생, 진지 쿠글러는 1985년생, 세브 오해니언은 1987년생 젊은 영화인들로 알려져 있으며, 라이언 쿠글러와 오해니언, 예란손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동문이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을 사로잡은 <살렘스 롯>이란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이 1975년 출판한 공포소설로, <캐리>에 이어 두 번째 집필한 책이다. 주인공 소설가 벤이 다음 소설을 쓰기 위해 25년 만에 고향 메인주 ‘살렘스 롯’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로, 벤은 마을의 텅 빈 유령의 집이 오스트리아 이민자 커트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긴 여행을 떠났다는 커트는 마을에서 보이지 않고, 어쩐 일인지 마을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밤이 되면 사망했거나 사라진 주민들이 송곳니를 드러낸 채 돌아다닌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살렘스 롯은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으로, 책 <살렘스 롯>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킹은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번 활용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유재선 감독의 마스터스 토크가 계속됩니다.

[특집] 상실을 경험한 아이는 더 빨리 성장한다, <르누아르> 하야카와 지에 감독

전작 <플랜 75>에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75살 이상 노인의 죽음을 지원하는 정책을 권장하는 근미래 일본을 배경으로, 노년 여성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말년의 모습을 담담히 제시했다. <르누아르>에선 80년대 일본으로 시선을 돌려 11살 소녀 후키(스즈키 유이)의 일상에 주목한다. 이번 신작에서도 죽음을 주요하게 다루지만 어린아이를 통해 그려지는 죽음은 “단순히 두려움뿐만 아니라 경험해본 적 없는 매혹적인 호기심의 대상”이다. 후키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고, 일찌감치 상실을 경험해본 이들의 심정을 궁금해하며 영적 존재와 소통하는 텔레파시에 몰두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에 끌린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후키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영화의 색감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다.” <르누아르>는 80년대에 실제로 11살이었던 하야카와 지에 감독의 경험이 상당수 반영됐다. “스즈키 유이 배우가 캐스팅된 이후로 배우의 면모가 많이 반영됐지만 시나리오를 쓸 때만 해도 캐릭터의 70~80%가 나와 닮아 있었다. 실제로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셨고 나 역시 10살부터 20살까지 병원을 자주 오가며 죽음을 마주하고, 가족의 고통을 분담하는 이들을 자주 봐왔다. 이후로 죽음이 내게 중요한 주제가 됐다.” 10, 20대 때부터 <르누아르>를 연출하고 싶었으나 어른이 된 현재로선 당시 부모님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한 채로 영화를 완성하게 됐다고 말한다. “10대 때 영화를 연출했으면 아마도 어머니 캐릭터를 더 비판적으로 그렸을 것이다.”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얼마나 보여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프레임 밖의 것들을 관객이 어떻게 인식하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대사에 없는 감정까지 관객이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후키의 감정 연출에 각별히 유의했다. 다만 후키를 연기한 스즈키 유이는 맡은 역에 관한 설명을 자세히 듣길 원치 않았고 감독 역시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한번만 읽고 느끼는 대로 연기하길 요청했다고.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죽음을 다루되 극을 냉담히 마무리 짓진 않는다. <플랜 75>에서 그랬듯 <르누아르>에서도 연대의 순간이 등장하는데 이는 후키와 학원의 영어 선생님 사이에서 일어난다. “둘이 대단히 가까운 관계는 아니다. 다만 영어 선생님은 미국과 일본 혼혈이라는 설정이라 감정 표현에 자유롭다. 일본인들은 신체 접촉을 거의 하지 않는데 그와 달리 자신을 기꺼이 안아주는 선생님을 보며 그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깨닫는다.” “상실을 경험한 아이는 더 빨리 성장한다”고 믿는다는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자신의 분신과 다름없는 후키를 통해 죽음과 연대라는 주제를 더 깊이 탐구해낸다.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 - 우리가 잃어버린 숏

지난 세기를 건너온 다음 다시 되돌아서 그런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지, 라고 질문하는 대신 무얼 잃어버렸지, 라고 물어보면 비로소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가 해나간 일들이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무엇이었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 숏이 있었다. 거기에 카메라가 있었고, 카메라가 찍으면 그 시간은 영화라는 사건이 되었다. 이걸 구태여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기차가 역으로 들어온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퇴근한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아이가 물장난하는 것을 영화라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홍상수는 바다로 나가는 배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물결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눈싸움하는 거리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또 보았다. 거기에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거기에 무엇이 출현한 것일까. 여기에 개념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 다음 각자 개념의 차이라는 구도 아래 의미를 부여하고, 영역을 나누고, 그 사이에서 서로의 공약 불가능한 자리를 만든 다음 그 차이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멀어질 때 결국은 숏에 대한 믿음의 부재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면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자동적으로 숏이 발생한다는 믿음으로부터 숏이라는 힘이 발생할 때 그것이 비로소 숏이라는 의심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의심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말하자면 첫 번째 힘. 그러면 두 번째 힘은 어디에 있는가. 거기에 있다. 거기? 거기가 어디? 다시 한번 이미 들었던 예를 가져오겠다.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퇴근하는 노동자. 다시 한번 읽어주길 바란다. 나는 주어의 자리를 옮겨놓았다. 동시적으로 움직이는 세상 안에서 연장하는 힘으로서의 그것. 매번 바뀌겠지만 항상 식별 가능한 그것. 그것들은 힘을 보여준다. 힘은 어디에 있는가. 운동이라는 인상. 시간이라는 이미지의 연장. 여기에 증인들이 있다. 첫 번째 증인. 플라톤. 당신들은 헛것을 보게 될 거예요. 벽 앞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죄수이고, 해방은 미루어질 것이다. 그저 우화라고 지나쳐갈 수 있을까. 영화가 우리 앞에 왔을 때 이미 질문이 시작되었다, 오래된 질문. 왜 무(無)가 아니고 존재가 있는가. 1895년에 무언가 잘못되었다. 헛것을 중심을 두고 공허한 벽을 홀린 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우리를 바친다면, 그런 다음, 거기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주장하면 할수록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간다. 그렇게 영화의 역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에 헛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음과 서로 뒤얽히면서 두리번거렸다. 두 번째 증인. 마르크스. 영화가 발명되기 전 1845년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를 예로 들면서 삶의 과정이 위아래가 뒤집혀 보인다면 그건 이데올로기 때문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데올로기라는 말에 질겁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 없는 이데올로기야말로 유령의 예술인 영화의 동어반복이라는 걸 먼저 인정해야 한다. 뻔한 정의. 이데올로기는 상상적인 표상이며, 동시에 물질적인 토대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문장 바꾸기. 이데올로기의 자리에 영화를 가져다놓는다고 해도 문장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반격. 그런 다음 개인들을 호명할 것이다. 당신은 개인으로 화면 앞에 앉아 있다. 그렇지 않은가요. 만일 이것을 부정하면 우리는 영화를 삭제시킬 용기를 내야 한다. 세 번째 증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1857년 <마담 보바리>에서 엠마는 마차를 타고 가면서 트래블링 숏의 시점으로 길거리를 바라본다. 그 문장을 따라가고 있으면 뤼미에르, 르누아르, 로셀리니, 고다르, 키아로스타미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들이 플로베르를 읽기는 했겠지만, 플로베르는 그들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네 번째 증인. 에두아르 마네. 1862년 50mm 표준렌즈로 야외에 나가서 찍은 것만 같은 초점으로 풀밭에서의 점심을 그렸다(<풀밭 위의 점심 식사>). 마치 아마추어 배우들 같은 어색한 시선 처리. 카메라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누드의 여성. 마주쳤다기보다는 바라보는 시선. 카메라를 애써 피하려는 것 같은 신사복의 남성.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라파엘로, 조르조네를 카피하면서 조롱하는 이 거리감에서 어떤 서사도 상징도 없이 풍속의 외설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이 그림 앞에 서면 한참 뒤에 고다르가 이 장면을 극장에 가서 나나에게 요구했을지도 모른다고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비브르 사비>). 사진이 아니라 인상주의 그림들이야말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된다. 이들이 교육한 것은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미래의 감독들이었다. 다섯 번째 증인. 샤를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1869년, 마침내 마차에서 내려서 길거리를 쏘다니면서 파리의 여기저기를 시선으로 건드린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지나가다(promener), 라는 동사를 쓴다. 때로 지나가면서 열린 창문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문장의 주어 산책자(frâneur)는 영화가 정지해서 시작했을 때보다 먼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영화적인 것이 있었다. 이걸 다시 각색한 베냐민의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지 않은 프로젝트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영화를 보는 방법에 관한 가장 위대한 책이다. 그다음에는 탄식이 있었다. 1947년 어느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그리피스, 대부분 <국가의 탄생> 혹은 <인톨러런스>를 말하지만, 나에게는 <부서진 꽃>과 <동쪽으로 가는 길>로 기억되는 그리피스. 그가 사망하기 한해 전에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영화에서 사라진 게 있어요.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아름다움이요.” 나무도 그대로 있다. 바람도 그대로 불고 있다.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숏. 이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할 것이다. 먼저 선을 그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 앙드레 고드로와 톰 거닝이 초기 영화사에서 잡아당긴 시네마 오브 어트랙션(들)(cinema of attraction(s))2)으로 돌아가는 따분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이 아름다운 대답을 나는 일부러 잘못 읽을 것(misreading)이다. 그리피스의 대답은 전쟁 직후에 나온 것이다. 물론 그리피스가 아직은 우리보다도 이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전쟁은 서쪽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 끝났고, 동쪽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끝났다. 영화에서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스펙터클. 우파(UFA)의 실내 세트장, 치네치타의 야외 세트장, 파리의 카페에 모인 초현실주의자들, 모스크바의 쿨레쇼프 공장의 제자들, 로스앤젤레스의 값싼 오렌지 농장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세상을 자신들의 현장에서 다시 만든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 안에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접속부사로 하나의 역사를 둘로 절단시키는, 문자 그대로, 단절이 있었다. 1945년보다 영화와 세상이 더 멀리 벌어진 적은 없었다. 네장의 사진으로 남은 수용소. 빛에 눈에 멀어버린 백색 필름과 남겨진 참상으로 이루어진 두개의 도시. 구태여 사망자의 수를 헤아릴 필요가 있을까. 건설 대신 파괴가 있었고, 발명은 전멸로 이어졌다. 세상에 대해서 영화는 갑자기 몰이해의 상태가 되었다. 로버트 플래허티는 알래스카에 가서 가혹한 추위와 바람 속에서 5분20초 동안 바다표범을 잡는 에스키모 나누크를 ‘연출’했다. 지가 베르토프의 기록. (혁명이 벌어지는) 세상을 영화는 과장하고 있었다. 험프리 제닝스의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 영화는 세상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 매듭이 끊어졌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화는 세상의 현실에서 소외되었다.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은 소외를 다룬 것이 아니라, 영화가 놓인 소외 상태를 다룬 것이다. 안간힘을 쓰고 쫓아가는 안나 마냐니는 차를 놓쳤고(<무방비 도시>), 아버지와 아들은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자전거 도둑>). 잉그리드 버그먼은 가까스로 손을 놓친 남편과 포옹하지만, 군중은 주위에 서서 영화 촬영 현장을 구경한다(이탈리아 여행>).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는 맞은편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며(<달콤한 생활>), 모니카 비티는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화산 에트나를 하염없이 바라본다(<정사>). 그들은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을 보지 못한다. 물론 그들은 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것은 텅 빈 공백의 의미이다. 그들은 결국 자신이 홀로 남겨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편의 영화가 본 것이 없음을 인정한다. 클로드 란즈만은 어떤 자료화면 없이 증인들을 만나고 또 만난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에 관해서 듣고 또 듣는다(<쇼아>). 여자가 말한다. “나는 전부 보았어요.” 남자가 말한다. “아니, 당신은 본 게 아무것도 없어.”(<히로시마 내 사랑>) 이보다 더 간명하게 영화가 처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저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영화는 공백을 바라보면서 기표만을 경유하여 기의를 상상한다. 영화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기의를 상상하는 예술이 되어갔다.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한번 더 할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 할리우드의 위대한 이름들이 일제히 스튜디오로 철수한 것은 사물(das Ding)로서의 세상을 마주 보지 않기 위해서, 왜냐하면 너무 흐릿해서 구별할 수 없는 사물로서의 장소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그래서 세상과 비슷한 장소로서의 사물의 시뮬라크라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스튜디오로 피난하였다. 장소와 사물을 뒤집어서 두번 사용한 자리를 반복해서 읽어주길 바란다. 스튜디오의 정치경제학과 유토피아 사이의 협상. 명단의 목록들. 전쟁이 끝나자 필름누아르가 전염병처럼 음산하게 창궐한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서부극은 얼마나 안전했을까. 멜로드라마는 히스테리와 신경증으로 가득 찬 ‘홈’(home) 안으로 철수하였다. 그들은 문법의 대가들이었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그들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들은 영화를 세상과 더 잘 구분시켜주었다. 그러면서 어떤 객관적인 재현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의 무게로부터 그렇게 자유로웠을까.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이 은유에 몸을 감추었을 때 무언가 거기서 결여의 형상이 되었으며, 환유로 대체됐을 때 물신주의에 사로잡히면서 세상을 피해갔다. 그러면 재난 이후를 겪는 영화에서 무엇을 느껴보아야 할까. 재난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견뎌내지도 못했을지라도 느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아직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이미지 앞에 마주 선다는 것은 무엇일까. 수수께끼 앞에 서서 느껴보는 감정은 더도 덜도 아닌 고독이다. 기댈 곳 없는 그 느낌. 영화의 고독. 고다르는 구태여 영화의 죽음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고다르는 영화가 죽은 다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 일은 그걸 확인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폭력이 펼쳐놓은 형상으로 남겨졌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폭력을 보게 될 것이다. 고다르는 영화의 고독을 마주 본 첫 번째 영화감독이다.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말하겠다. 고다르는 그리피스 이후 두 번째 영화감독이다. 고독한 영화가 질문을 했다. 여전히 가능한가? 무엇이 가능한가? 어떻게 가능한가? 시급한 질문. 눈앞에 있는 세상. 손에 든 카메라. 그 둘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영화와 세상 사이에서 안과 바깥을 질문하는 대신에 이제는 항상 영화가 세상 안에 있음을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긍정하고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계속해서 세상을 향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영화의 새로운 윤리가 되었다. 그렇다.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이 아름답다는 것 을 볼 수 있을 때가 끝났다. 그러면 나무가 재가 되었을 때 바람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의 세계성(Weltlichkeit)은 다시 정의되어야만 했다. 재난 이후의 영화 앞에 서 있는 고다르의 고독은 그런 의미에서 실존적 고독이 되었다. 이때 고다르는 에이젠슈테인과 마찬가지로 몽타주를 사용했지만, 그들은 정반대로 이용했다. 한쪽은 그렇게 해서 낡은 세상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의 원리를 만들어냈지만, 다른 한쪽은 재난을 감추는 세상의 스크린을 찢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도 부숴야만 했다. 재난 이후에 세상이 더이상 즐겁지 않은 것처럼 고다르는 재난 이후에 극장이 더이상 즐거워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두 가지 사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왜 그렇게 고다르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자마자 찬사를 바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왜 허우샤오시엔이 <네 멋대로 해라>를 보고 비로소 <펑꾸이에서 온 소년>을 찍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 따라오면서 틀림없이 내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 영화에서 자본의 문제. 고다르는 애처롭게 돈을 빌려 달라고 옛 친구 트뤼포에게 편지를 썼다. 로셀리니는 텔레비전 방송국에 가서 영화를 찍어야만 했다. 히치콕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주겠다고 했을 때 퉁명스럽게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에게 양보했다. 영화에서 자본의 문제가 없는 것처럼 미학만 논할 때 철이 없어 보이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처음에는 둘로 나눠진 것처럼 보였다. 한쪽에서는 자본의 문제,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의 문제.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다음 이제 단 하나의 문제가 되었다. 자본의 문제. 그때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었다. 영화는 단 한순간도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데이비드 O. 셀즈닉은 앙드레 바쟁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앙드레 바쟁은 셀즈닉이 제작한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 MGM 스튜디오의 누구도 크리스티앙 메츠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티앙 메츠는 못마땅하지만 를 예로 든다. 아메리칸 조이트로프는 장 보드리야르에게 관심이 없다. 장 보드리야르는 <지옥의 묵시록>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로 들었다. 영화의 이론(들)은 한가하게 영화를 개념화하면서 자본의 법칙을 외면하고 고상한 언어를 노래한다. 교실의 학생들은 현장에 나가서야 비로소 영화라는 상품의 하부 토대의 실재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 다음 자신이 하는 일이 예술인지, 사기인지, 아니면 범죄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영화를 선택했을 때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분쇄기 안에 들어갔음을 인정해야 한다. 영화라는 자본주의의 식민지. 일단 영화 안에 들어오면 누구도 방관주의자가 되지 못한다. 로베르 브레송은 돈을 구하기 위해 로마까지 갔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타르콥스키는 독일 제작자들과 긴 협상을 벌이다가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데이비드 린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내내 제작사와 방송국을 번갈아 전전하며 돈을 구하러 돌아다녔다. 예술가들은 진정성을 말한다. 자본가들은 이 시장에서 진정성이 잉여가치를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연대하면서 대항한 긴 역사가 있다. 일시적이지만 세 번째 길을 이야기한 영화들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용기 있는 영화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자본가들은 이 저항을 통해 점점 더 세련된 전선을 만들어낸다. 더이상 아무도 ‘해방’을 믿지 않는다. 실재를 보기 위해서 애쓰지만, 현실이 이 모든 것을 덮어쓰고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이데올로기가 개입한다. 나는 맨 처음 이야기로 돌아오고 있다. “오늘날 영화에서 사라진 게 있어요.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아름다움이요.” 당신이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무슨 영화를 보아야 하나요. 자, 알겠다. 이제 여기서는 그걸 보기는 틀렸다. 하지만 다른 별에서는 그걸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자포자기한 아리아가 어디선가 들린다. <스타워즈>는 서둘러 도착한 다음 세기의 첫 번째 영화이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스페이스오페라라고 불렀다. <니벨룽겐의 반지>가 예고한 것은 나치즘이었다. <스타워즈>를 찍으면서 조지 루커스는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를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미 다음 세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부르는 아리아, 한번 더 부르겠다. 어디에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숏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