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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계, 그 미지와의 조우

특집/ 설 비디오 가이드 해마다 최소한 3∼4일씩 놀 수 있는 설 연휴는 작심하고 비디오 가게를 섭렵하기 좋은 시기이다. 올해는 한번 애니메이션으로 설 연휴를 즐기면 어떨까? 애니메이션 비디오라고 하면 흔히 디즈니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는데 살펴보면 그외에도 볼 만한 작품들이 많다. 그래서 이번에는 평소 극장에서 접하기 힘든 단편이나 유럽 애니메이션 비디오들을 골랐다. 모두 국내에 출시된 작품들. 그동안 지면으로만 소개된 단편들이 궁금했던 팬들이나,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번 기회에 한번 아래 작품에 도전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장인의 손길, 작가의 숨결 <위대한 강> (Le Fleuve aux Grandes Euex) (2000년 출시, 24분, 라바필름(02-765-8312)) 현존하는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중 한명인 캐나다 프레데릭 벡의 93년 작품. 캐나다 퀘벡 지방을 흐르는 센트로렌스 강을 중심으로 그곳의 역사와 자연을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그려냈다. 이미 <크랙>(1981)과 <나무를 심는 사람>(1987)으로 명성을 얻은 이 노 작가는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혼자 5년여 동안 수만장의 그림을 한장 한장 손으로 제작하는 정성을 보였다. 반투명 셀에 파스텔이나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그의 작품 스타일은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필치가 매력이다. 하지만 비슷한 화풍의 레이먼드 브릭스가 비교적 온화한 이야기를 하는 데 반해(물론 <바람이 불 때>는 예외), 프레데릭 벡은 담담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환경보호와 반핵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4분의 짧은 시간 속에 수백년 세월을 담아낸 이야기 솜씨도 탁월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강의 모습과 동물, 역사적 사건들은 현장을 수십 차례의 항공촬영과 자료조사를 통해 꼼꼼하게 재현한 것들이다. 깊은 밤 느긋한 마음으로 따스한 차 한잔과 함께 본다면 그동안 각종 대중매체의 현란한 시각적 자극에 찌들었던 심성을 해독할 수 있는 훈풍 같은 작품이다. - 한마디 더: 프레데릭 벡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음악을 맡은 노르만 로제. 퀘벡 지방의 민속음악을 적절히 사용하는 그의 음악은 깊이와 활기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위대한 강>의 영어판 성우는 배우 도널드 서덜런드가 맡았다. <우리 할아버지>(Grandpa) (99년 출시, 25분, 인피니스(02-2263-3233)) 존 버닝햄의 동명 그림책을 소재로 제작된 작품. 레이먼드 브릭스 원작의 <스노우맨> <파더 크리스마스>와 마찬가지로 어린이를 위한 동의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 메마른 도시에 살고 있는 성인을 위한 작품이다. 89년 감독 다이앤 잭슨, 음악 하워드 블레이크 등 <스노우맨>의 제작진이 손을 잡고 유니세프의 지원하에 제작됐다. 종이와 색연필의 질감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영상이나 자유자재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이야기 세계는 <스노우맨>과 닮았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할아버지가 손녀의 방문을 맞아 잔잔하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두 ‘조손’은 환상적인 동화 속 세계를 여행한다. 시공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펼쳐지는 이야기는 특별한 줄거리를 지니고 있지 않지만, 하나하나 시적 정감이 넘친다. 급하지 않은 어조로 잔잔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가다 마지막 인생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결말이 찡하다. 이 작품을 보고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다면 정말 심각하다. - 한마디 더: <스노우맨> <산타 할아버지의 휴가> 등을 감독한 다이앤 잭슨의 매력은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한껏 살린 현란한 카메라 워킹에 있다. 하지만 더 좋은 점은 그러한 테크닉이 단순히 시각적 잔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야기에 훈훈한 습기와 여유를 준다는 점이다. <스노우맨>(Snowman) (99년 출시, 25분, 인피니스(02-2263-3233))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어느 채널이건 꼭 방송 전파를 타는 이 작품도 비디오숍에 가면 만날 수 있다. 굳이 성탄절이 아니더라도 겨울철에 보기 좋은 작품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영국의 동화작가 레이먼드 브릭스의 동명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는데 단편으로는 드물게 200만달러의 제작비가 든 ‘대작’이다. <스노우맨>의 탁월함은 음악과 영상의 절묘한 조화에서 찾을 수 있다. 화려한 원색을 배제하고 은은한 파스텔톤을 살린 그림은 만들어진 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시적 운율마저 느끼게 하는 눈사람의 움직임은 디즈니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스노우맨>만의 매력이다. 그런 리듬감 넘친 움직임은 후반부 북극의 눈사람들이 단체로 춤을 추는 장면에서 돋보인다. 소년과 눈사람이 북극으로 날아가는 장면 역시 애니메이션 사상 손꼽는 명장면 중 하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공중 비행신의 대가라고 하지만, 이 작품의 감독 다이앤 잭슨 역시 하늘을 나는 자유로움을 그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산타 할아버지의 휴가>에서도 느낄 수 있다). - 한마디 더: <스노우맨>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하워드 블레이크가 만든 음악. 최근 국내에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이 출시됐다. 주제곡 <워킹 인 디 에어>는 원작에서는 피터 오리라는 보이 소프라노의 청아한 음색으로 들을 수 있는데 조지 윈스턴의 앨범 <포레스트>에서도 이 곡을 피아노 연주로 들을 수 있다. <산타 할아버지의 휴가>(Father Christmas) (99년 출시, 26분, 인피니스(02-2263-3233)) <스노우맨> <바람이 불 때>와 함께 레이먼드 브릭스의 애니메이션 3부작으로 꼽히는 작품. 동화와 영화 속에서 스트레오타입화된 산타클로스를 새로운 시각에서 그린 유쾌한 소품. ‘산타 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뭐 할까’라는 자연스럽고 천진스런 의문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그림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산타 할아버지의 묘사가 돋보인다. 크리스마스가 끝난 뒤 유럽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고, 때로는 풀장에서 느긋하게 선탠을 하는 산타의 모습은 “귀엽다”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돋보인다. 특히 산타 할아버지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도 즐기고, 여자 무용수들의 화려한 레뷔쇼를 보면서 좋아하는 장면은 화장실도 가지 않는 것처럼 묘사되는 동화 속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인간적인 산타’에 대한 묘사는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배달하면서 방풍용 고글을 쓰는 모습이라든가 굴뚝을 들어갈 때 쩔쩔매는 묘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선물을 나눠주다가 사슴들과 함께 지붕에서 샌드위치와 차를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갖는 장면은 원작자와 감독의 삶에 대한 따스한 묘사 때문에 볼 때마다 가슴이 따스해진다. <피리부는 목동> (2000년 출시, 19분, 라바필름(02-765-8312)) 대학의 애니메이션 영화제나 시네마테크에서 단골 상영작으로 인기가 높았던 작품. 중국 수묵 애니메이션의 걸작으로 불리는 작품으로 상하이 스튜디오의 테웨이 감독이 63년 제작한 19분21초짜리 작품. <피리부는 목동>이 가진 큰 의미는 서구적인 회화 기준에서 벗어나 동양화의 섬세한 ‘농담’과 여백의 미를 애니메이션에 재현했다는 데 있다. 발표 당시 서구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는 시적인 영상과 우아한 캐릭터의 움직임이 많은 평론가로부터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하면 일본이나 미국, 또는 유럽의 작품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아니 그곳에도 애니메이션이 있었나?”라고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만들어진 지 40년이 다 됐지만 지금 봐도 늘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내용은 무척 단순하다. 아니 특별히 줄거리랄 것도 없다. 소치는 목동의 한나절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작품을 추천하는 것은 재미있는 사건과 줄거리를 능가하는 탁월한 ‘볼거리’ 때문이다. 초반부에 소가 강물을 건너는 장면은 테웨이 감독의 연출감각을 엿볼 수 있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기존 서구식 애니메이션 표현과는 확실하게 다른 영상은 서구 애니메이션 작가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어 70년대 중국 애니메이션 붐을 불게 했다. 아이들용? 철없는 어른용! <만화의 세계1, 2> <희망으로 그리는 세계> <우리가 다시 그려요> <배고픈 애벌레> <피브 앤 퍼그> <만화의 세계1, 2> (99년 출시, 1편: 48분 2편: 90분, KJ엔터테인먼트(02-548-6191)) 애니메이션의 넓은 세계를 접하고 싶다고 해도 국내에서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나라의 단편을 구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찾아다니다 보면 이런 비디오도 만나게 된다. <만화의 세계>는 캐나다국립영화제작소(NFBC: National Film Board of Canada)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대표작 모음집이다. 이슈 파텔, 캐롤라인 리프, 코 회드만, 자크 드로앵, 조지 웅가, 게일 토마스 등 NFBC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 NFBC의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꽤 많은 작품이 국내에 소개됐는데, 작가들의 지명도만 따진다면 단연 이 비디오가 최고이다. 현란한 색채의 향연인 이슈 파텔의 <파라다이스>, 페인트 온 그래스로 제작한 캐롤라인 리프의 <거리의 소년>, 컷아웃 기법으로 만든 코 회드만의 <찰스와 프랑수아>, 핀 스크린 기법을 이용한 자크 드로앵의 <밤의 요정> 등 셀애니메이션이 아닌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기법을 접할 수 있다. 1편은 각 작가들의 제작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 2편은 작품을 담고 있다. ‘애니에는 뭔가 색다른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꼭 보는 것이 좋다. - 한마디 더: 어쩌다가 이 단편 걸작집이 제목이 ‘만화의 세계’가 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희망으로 그리는 세계> (99년 출시, 80분, KJ엔터테인먼트(02-548-6191)) 유니세프가 어린이의 권리 선포를 기념해 NFBC와 공동으로 제작한 작품집. 피에르 M. 트뤼도, 미셸 쿠르노이에, 클로드 크롤디에, 유진 페도렌코 등이 참여했다. 전체적으로 10분 내외의 소품들로 구성됐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췄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만화의 세계>보다 부담없이 볼 수 있다. ‘코코의 산수’, ‘사랑의 띠’, ‘TV와 춤을’, ‘후나스와 리사’, ‘어린 예술가’ 등 모두 13편의 단편이 2개의 비디오에 수록돼 있다. 이중 부엌의 각종 기구를 통해 음악적 영감을 얻는 한 소녀를 그린 ‘어린 예술가’가 교육방송 등을 통해 비교적 많이 알려졌다. 이 단편집에서 작가들이 말하는 것은 어린이들은 결코 미성숙된 인격이 아닌 어른과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 어린이들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의 훈계나 교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 가족 등 그들이 당연히 누려야할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 단편집은 ‘철없는’ 어른들을 일깨우는 성인들의 교훈서이다. - 한마디 더: 여기에 수록된 ‘어린이를 위하여’를 제작한 유진 페도렌코는 2000년 <백치들의 마을>을 발표해 안시와 히로시마에서 수상한 스타급 작가이다. <우리가 다시 그려요> (2000년 출시, 108분, 라바필름(02-765-8312)) 단편 애니메이션을 찾을 때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쪽도 한번 눈여겨봐야 한다. 제목만 보면 아이들의 그림 그리기 교재 같은 <우리가 다시 그려요>도 그런 점에서 ‘숨은 보석’과 같은 비디오이다. 원래 이 비디오는 어린이를 위한 교육용으로 제작한 것이다. 2개로 구성된 비디오에 각각 6편씩, 12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수록돼 있다. 이름만 본다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작가 폴 드리센을 비롯해 재닛 펄만, 브제니슬라브 포아르 등의 작품 중에서 어린이들과 삶과 사회의 다양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들로 골랐다. ‘하늘의 제왕’, ‘너만 먹니?’, ‘행복했던 가족’, ‘존 베일리의 불장난’, ‘도둑맞은 꿈’, ‘5분 남으셨습니다’, ‘제발 그만’, ‘맛있게 드세요’, ‘파블로프의 쥐’ 등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토론용으로 선정돼 주제가 선명하다. 삶의 의미를 묻는 작품에서 사회에서 언론이 가진 기능, 인간의 사회성, 생존의 의미, 흡연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 한마디 더: 이 단편집은 다른 비디오와 달리 특이하게도 작품을 보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교재가 첨부돼 있다. 굳이 아이들이 없더라도 비디오와 책을 함께 보면 어른들도 공부가 된다. <배고픈 애벌레>(The Very Hungry Caterpillar) (99년 출시, 31분, 인피니스(02-2263-3233)) 아이들과 함께 보기엔 딱 좋을 깜찍한 작품. 93년 더 일루미네이트 필름(The Illuminated Film)에서 제작한 ‘배고픈 애벌레’와 다른 단편들을 모은 작품이다. <배고픈 애벌레>는 원래 70년 에릭 카일이 발표한 동화책으로 전세계적으로 1천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자연 친화적인 내용과 풍부한 감수성을 지녀 영국에서는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앞서 소개한 단편집과 달리 아이들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캐릭터나 이야기에 멋을 부리지 않은 것이 특징. 화려한 작가적 완성도보다는 아이들의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았다. 그만큼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고 천진스럽다. 기법면에서도 장인적인 현란한 테크닉의 구사를 자제했고, 색채나 배경도 단순화했다. ‘배고픈 애벌레’를 비롯해 ‘아빠 저 달 좀 따주세요’, ‘벙어리 귀뚜라미’, ‘샘많은 카멜레온’, ‘음악으로 세상을 그려요’ 등이 수록돼 있다. <피브 앤 퍼그> (97년 출시, 70분, 새롬엔터테인먼트(02-518-3373)) 아드만 애니메이션은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애니메이션 ‘브랜드’이다. <피브 앤 퍼그>는 아드만의 팬이라면 꼭 챙겨볼 것을 권할 만한 작품이다. 이 비디오는 피터 로드와 닉 파크가 아드만 애니메이션을 세운 뒤 발표한 초기 작품들을 모은 작품집이다. 아드만에 첫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안겨준 ‘동물 인터뷰’(Creature Comforts)를 비롯해 ‘왕자와 거지’, ‘아담’, ‘사랑이란’ 등 9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동물원 우리 속에 사는 고릴라, 사자, 북극곰 들을 통해 인터뷰 형식을 도입한 ‘동물 인터뷰’는 아드만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걸작. 애니메이션의 완성도가 꼭 많은 움직임과 액션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인터뷰를 할 때 동물들의 표정이나 동작들은 감독들의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부분. 안경을 닦거나 옆사람을 흘낏 보는 등 작은 동작이지만 그 타이밍과 추임새가 점토로 만든 인형인지 아니면 TV에서 보는 거리의 시민인지 혼동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과격하지 않고 적당한 풍자와 재치, 평범한 삶에 대한 예찬을 담은 아드만의 작품 세계는 이 작품 외에 ‘사랑이란’과 ‘왕자와 거지’에서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아담’. 아주 작은 소품이지만, 아기자기한 익살이 그만이다. - 한마디 더: 출시된 지 3년밖에 안 됐지만 비디오숍에서 찾기는 그리 쉽지 않을 듯. 애들은 가라. 뭔가 다른 애니메이션의 세계 <톰 섬의 비밀모험> <샌드맨> <이온 플럭스> <톰 섬의 비밀모험>(The Secrect Adventure of Tom Thumb) (2000년 출시, 70분, 새롬엔터테인먼트(02-518-3373)) <톰 섬의 비밀모험>은 클레이 애니메이션과 오브제, 픽실레이션 등 다양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들이 사용된 작품이다.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듯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태어나 ‘톰 섬’이라 이름이 붙은 아이가 세상에 나와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활용해 펼치는 무용담을 그린 영국 동화이다. 그러나 극본, 디자인, 연출, 편집 등 1인4역을 한 데이브 보스윅은 작품의 배경을 시대가 불분명한 어둡고 음침한 마을로 바꾸었다. 주인공 ‘톰 섬’은 민머리에 툭 튀어나온 눈을 가진 그로테스크한 모습이다. 픽실레이션(사진과 같은 정지된 영상을 이용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처리한 ‘톰 섬’의 부모를 비롯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땀이 번들번들한 얼굴에 피곤하고 옹색한 몰골을 하고 있다. 어느 한 구석, 동화적인 안온하고 푸근한 분위기가 없는 이 작품의 매력은 이런 기본 틀 속에서 역설적으로 가족의 사랑과 생명의 존귀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모만 봐서는 자식에 대한 애정과는 담을 쌓은 것 같은 ‘톰 섬’의 부모들이 자식에게 보여주는 무조건적인 애정과 헌신은 ‘위악적인’ 영상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동화의 틀을 빌려 현실과 잘 구별이 안 되는 ‘악몽’을 그리고 있는 보스윅의 작품 세계는 같은 영국의 선배 작가인 퀘이 브러더즈의 세계관과 일맥상통함을 느낄 수 있다. - 한마디 더: 작품에서 픽실레이션으로 등장하는 배우들 중 상당수는 이 애니메이션의 제작 스탭이다. <샌드맨>(Sand Man) (2000년 출시, 새롬엔터테인먼트(02-518-3373)) <톰 섬의 비밀모험>이 동화 속 세계를 현대적인 분위기로 비틀었다면, <샌드맨>은 중세 유럽의 괴담에서 느낄 수 있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펼친 작품이다. 서구 전설에 등장하는 샌드맨은 잠을 재우는 귀신. 우리의 ‘삼신할미’처럼 친근한 대상이다. 그런데 사뭇 낭만적인 존재인 ‘샌드맨’을 감독 폴 베리는 그로테스크하고 공포스런 존재로 바꾸었다. 팀 버튼 영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세트로 작품의 음산하고 몽환적인 세계를 강조하고 있다. 기형적으로 일그러진 문, 딥 포커스로 촬영해 원근감이 왜곡된 집안, 그리고 앙각으로 촬영해 등장인물이 주는 중압감을 강조한 카메라 앵글 등은 <노스페라투> <칼리가리 박사의 정원> 같은 무성영화 시대 작품을 연상케 한다. 섬세한 칼 맛을 느끼게 하는 인형의 모습과 간결하지만 어색함이 거의 없는 동작은 전통을 가진 유럽 인형 애니메이션의 힘을 느끼게 한다. <톰 섬의 비밀모험>과 함께 한 비디오로 출시됐다. - 한마디 더: 많은 애니메이션들이 대개 캐릭터에 관객의 시선을 모으는데, 이 작품은 세트의 양식미를 보는 것도 감상법의 하나이다. <이온 플럭스>(Aeon Flux)(1996년, 미국, 120분) (99년 출시, 120분, CIC) 이온 플럭스라는 미래사회의 여자 테러리스트가 등장하는 독특한 양식의 SF애니메이션. 감독과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피터 정은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애니메이터이다. 월트 디즈니가 세운 ‘캘리포니아 아트스쿨’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그는, 디즈니, 한나 바버라 등의 프로덕션을 거쳤는데 우리에게는 마이클 조던이 등장하는 나이키의 애니메이션 CF로 알려졌다. 이후 <팬텀>(국내에서도 방영)의 원화 디자인을 맡은 뒤 미국 음악전문 케이블 채널 MTV의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인 <리퀴드 텔레비전>에 <이온 플럭스> 시리즈를 발표했다. 여기 소개하는 것은 7편의 단편을 모은 작품집. SF양식을 빌렸지만 <이온 플럭스>는 쉽게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작품이다. 독특한 메커닉 디자인과 마치 오슨 웰스를 연상케 하는 딥포커스의 카메라, 인체를 극단적으로 묘사한 그의 캐릭터는 잘 정제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미소녀류의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이야기의 전후도 모호하고 인과관계도 뚜렷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늘 강박관념과 과도한 섹스어필, 미래의 희망과 꿈도 없고, 그렇다고 절망도 없는 마치 무기질 같은 세계가 백일몽처럼 펼쳐진다. 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다 놓칠 수 있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구도와 역동적인 주인공의 움직임, 기발한 아이디어의 메커닉 디자인을 감상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 한마디 더: 우리말 자막이 있지만 워낙 줄거리의 인과관계가 모호해 이해하는 데 무척 힘들다. 자막내용 고민하느니 차라리 그림만 보는 게 오히려 작품의 진가를 파악하는 데 더 쉽다. 비디오 하나 더! <요괴인간> ‘난데없이 웬 <요괴인간>’ 하겠지만 정확히 국내에 94년에 출시됐다. 요즘 엽기나 공포물이 유행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서 엽기로 따진다면 이 작품이 선조이다. 67년 지금은 없어진 동양방송(TBC)이 일본에 합작으로 세운 애니메이션 제작사 ‘제일동화’에서 만든 TV시리즈이다. 70년대 TBC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면서 정말 ‘한 인기’를 모았던 작품. ‘구하지도 못할 케케묵은 작품을 왜 소개하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의외로 중고 비디오숍에 꽤 있다. 물론 유려하고 화려한 애니메이션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찾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30대 이상 애니메이션 마니아 중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음산한 분위기의 주제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색다른 추억에 잠길 수 있다.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기 위해 연구하던 한 과학자의 손에 의해 태어난 세 요괴. 벰, 베라, 베로. 비록 모습은 흉측하지만 심성만은 바르고 올바른 그들이 권선징악의 길에 나선다. 언젠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그림이나 전개는 엉성하지만 지금 봐도 기가 막힌 것은 60년대에 어떻게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엽기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에피소드마다 독특하다. 특히 유럽의 괴담을 일본적인 상황에 맞게 적당히 각색한 것과 좀비, 해골, 귀신, 유령, 늑대인간 등 괴기물의 각종 주인공들을 아이들 대상의 애니메이션에 등장시킨 점이 놀랍다. 물론 지금 이런 내용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면 영락없이 언론에서 집중 성토를 당하기 쉽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oldfield@donga.com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박흥식·설경구 취중진담

한 남자와 여자의 시냇물 흐르듯 잔잔한 사랑 이야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별다른 사건도, 커다란 감정의 출렁임도 없는 이 영화는 일상의 자그마한 풍경을 짜임새 있게 늘어놓는 최근 멜로영화의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여자가 자신이 품은 사랑의 감정을 남자에게 솜이 물에 젖듯이 자연스레 전달하는 것처럼, 관객의 마음을 구석에서부터 서서히 장악해나가는 이 영화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까지 맡았던 박흥식 감독이 정성스레 파놓은 ‘함정’과 곳곳에 숨겨놓은 ‘덫’ 덕분에 영화는 단순한 멜로영화로 간주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갖게 됐다. 문제는 그 ‘특별한 것’을 이루는 각각의 성분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점. 꽤나 영악한 영화인 듯하면서도 때론 너무나 순진한 구석이 엿보여 허술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작품을 해독하기 위해 <씨네21>은 조력자를 구해야 했다. 사실 이 만만치 않은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밖에 없었다. 바로 영화에서 궁상맞은 노총각 봉수 역할을 능청스러울 정도로 잘 소화했던 설경구 말이다. 영화에서 워낙 봉수라는 캐릭터가 강하다는 점뿐 아니라 현장에서 박 감독과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었던 인물 중 하나였던 그는 이 제안을 쾌히 수락하며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인터뷰가 술을 마시며 진행돼야 한다는 것. 이 ‘취중 인터뷰’는 그가 평소에도 워낙 술을 즐기기로 소문난 애주가였기 때문이었다기보다는, 영화 현장 밖에서는 대인기피증이 있는 듯한 인상까지 주는 과묵한 성격의 박흥식 감독의 성향을 고려한 것이었다. 결국 두 사람의 인터뷰는 대학로의 한 한식집에서 시작, 맥줏집을 거쳐 허름한 소줏집에서 막을 내렸다. 설경구가 박흥식 감독을 날카롭게 몰아붙이지 못할 것을 우려해 동석한 기자(물론 기우에 불과했지만)들의 존재를 의식했던 탓인지 인터뷰의 형식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돼버려 아쉬움이 남았지만, 사실 내용적으로는 두 사람이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말 아쉬웠던 점은 이날의 만남이 꽤 많은 양의 알코올과 더불어 진행된 탓에 인터뷰 내용의 상당 부분이 알코올 성분과 함께 휘발되었다는 것이긴 하지만. 편집자 박흥식(이하 박) | 저희는 대화를…. 설경구(이하 설) | (말을 끊고) 굉장히 많이 했어요. 박 | 한 1분 이상 안 해요. (웃음) 대화를 별로 안 해요. 이거 어떤 거 같으냐, 해서 괜찮다 그러면 그게 오케이에요. 촬영현장에서의 ‘대화’를 이렇게 엇갈리게 기억하던 이들은 술이 한 순배 돌고난 뒤 장장 6시간이나 지속된 취중진담을 시작했다. 한잔은 고백 - 데뷔작 끝낸 감독, 떨리고 또 설레고 박 | 영화 개봉할 때까지는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개봉하는 건 영화가 제 손을 떠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조금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개봉하기 전까지는 내 손아귀 안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개봉하고 나서는 제 손을 떠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관객시사를 할 때는 계속 갔는데 개봉하고 나서는 딱 한번 들어가서 보고는 더 안 봤어요. 볼륨 조정이나 색보정이 이상하다는 것도 더이상 내가 할 얘기가 아니다 싶어서 얘기를 안 했고. 설 | 믹싱 끝나고 색보정 끝나기 전에 전화해서 “이젠 내 손을 진짜 떠나는 것 같아” 하더니 그 다음날 색보정까지 다 끝나고 시사회 전날, 또 전화해서 “내 손을 진짜 떠났어” 그러대요. 그래서 제가 “아니, 뭐 입양 보내?” 했죠. (일동 웃음)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장난이 아니에요. 난 이런 감독 처음 봤어. 박 | 내가 발가벗겨진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그게 좀 창피해요. 처음으로 기자시사회 하는데, 전도연씨하고 경구씨하고 내 옆에 있었는데 전도연씨가 내 팔을 꼭 껴안고 영화를 제대로 못 보더라구요. 막 벌벌 떨면서 봐요. 아무리 톱스타고 대배우라도 영화를 처음 보는 느낌에서는 관객, 기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더라구요. 근데 내가 손을 슬쩍 뺏어요. 나도 떨리니까…. 영화를 제대로 못 보고, 숨이 턱턱 넘어가더라구요, 숨이. 사람들은 웃는데, 난 웃지도 못하고. 기자들 웃는 게 꼭 비웃는 것처럼 들리고. 영화를 많이 했다는 배우도 이 정돈데 싶더라니까요. 영화 끝나고 나서 기자들하고 인터뷰하는데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돼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모르겠더라고요. 설 | 모든 감독이 자기 영화에 애정이 있겠지만, 이 사람처럼 울려고 했던 사람은 처음 봤어요. (사진기자가 건배하는 장면으로 사진촬영을 하자고 하자) 박 | 근데 지금 얼굴이 빨개가지고…. 설 | 색보정 해주신대! 내가 오늘 형을 너무 씹었나? 박 | 아니야. 설 | 뭐 늘 하는 얘기잖아. 우린 솔직해져야 하잖아. 인간적이잖아. (더 가까이 붙어보라고 하자) 설 | 우리 안 친해요. 박 | 이게 제일 이상한 거예요. 설 | 맞아요, 설정하는 거, 설정 너무 싫어. 두잔은 회고 - 주연 캐스팅, 그 감격의 순간 박 | 두 양반 없었으면 영화화하기 힘들었죠. 전도연, 설경구 이 두 양반. 다른 배우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남자배우는 미상이었어요. 그런데 마침 시나리오 건네는 날 설경구씨 매니저가 옆에 있었어요. 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이창동 감독님하고 작업을 많이 했고, <박하사탕>에서 설경구씨 연기하는 걸 보고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죠. 그런데 내가 프로포즈한다고 될지, 무거운 작품, 진지한 작품 하다가 라이트한 걸 하자면 본인이 거절할 것 같더라구요. 설 | 나는 오히려 감독님이 거절할 것 같던데요. 그렇지 않아요? 아니 배우는 오히려 라이트한 걸 하고 싶겠죠. 바꿔보고 싶으니까. 근데 감독은 안 불안하겠어요? 박 | 이 양반 말은 별로 믿을 게 못되구요. 아마 이창동 감독님이 개인 느낌으로 시나리오를 괜찮게 봤던 것 같아요. 그것에 의해서 내 이야기를 좀 들었던 모양이에요. 출연하겠다고 하기에 그럼 좀 기다려달라, 완고가 나올 때까지. 그래서 최종 원고가 나오고 나서 딱 한번을 보였어요, 시나리오는. 그전까진 저하고 얘기만 했죠. 왔다갔다하면서. 시나리오를 보여달라고 했는데 안 보여줬어요. 설 | 진짜 안 보여주더라구요. 이창동 감독님은 딱 한마디 했어요. “은행원 얘기야, 별 얘기는 없어.” 그것뿐이었어요. 한 사나이가 있어서, 이 사나이는 이랬어, 뭐 이런 게 아니구. 박 | 뭐 정확한 얘기네. 은행원이 살아가는 얘기고, 은행원이 어떻게 살다보니까 사랑을 얻는 얘기야. 뭐 그런 얘기지. 근데 그건 아실 거예요. 전도연씨가 처음에 거절했었어요, 남자 중심 영화라고. 근데 나중에 원주쪽을 후반부에 강화하니까 하겠다고 그러더라구요. 일지를 시나리오 쓰면서 시작해서 꼬박 일년을 썼거든요. 거기에 모든 기록이 다 있는데, 전도연씨 캐스팅된 날이 6월18일인가 그래요. 설 | 어떻게 날짜를 기억하냐? 감격적이었구나…. (웃음) 나 캐스팅된 날은 모르지. 박 | 그것도 기록돼 있어. 내 기억으로는 1월 말인가 그랬을 거야. 신인감독이 다 겪는 일이긴 한데, 현실적으로 스타가 캐스팅되지 않으면 영화되기가 힘들어요. 특히 내 영화 같은 경우는 내러티브가 확실한 것도 아니고. 감정을 쫓아가는 거니까 스타가 없이는 영화화하기가 힘들어요. 그걸 알고 있었고, 캐스팅이 안 되면 영화가 무산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작업을 했죠. 세잔은 시비 - 감독은 왕따였다? 설 | 박흥식 감독은 적이 많아요. 나없으면 왕따야. 찍어놓고 영 찝찝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스탭들이 좋아할 리가 있나. 왜 지가 찍어놓고 흔쾌해 하지를 않아. 뭐라도 아는 척을 해야 하는데 화장실 가서 혼자 고민하고…. 박 | 데뷔감독이 영화현장을 즐길 수 있다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실은 잘 모르거든. 그래서 거꾸로 내가 스탭들한테 물어보잖아? 그러면 또 불안해 해. 라스 폰 트리에 감독도 <어둠 속의 댄서> 찍고서는 지옥 같은 영화현장이었다고, 다신 안 한다고 했다지. 그러고도 다시 찍는 게 영화감독이야. 설 | 그렇게 말은 해도 라스 폰 트리에 그 사람은 현장에서는 즐겁게 일했을걸. 박 | 나는 영화현장이 안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 만들어진 상황에서 관객이 영화에 공감하면 그땐 보람을 느끼고 기쁘지만. 안 좋은 반응도 있긴 있어요. 싸이더스 홈페이지에 어떤 사람이 돈이 아깝다고 썼는데, 그 사람한테는 정말 내가 돈을 주고 싶더라구. 설 | 아니, 형은 그러면 안 되는 거야. 화면에서 쪽팔리는 건 나하고 도연인데, 감독이 그러면 배우들이 섭섭하지. 박 | 감독은 왕따예요, 왕따. 설 | 밥 먹으러 가면 상 쫙 차려져 있는데 혼자 먹을 때가 있어요. 왜 스탭들은 감독 옆에 안 오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촬영감독한테나 조명감독한테도 안 오려고 하고 자기들끼리 뭉치려고 해요. 흥식이 형도 불쌍해. 하긴 나한테도 안 오니까. 박 | 거짓말이에요, 거짓말. 얘는 숨소리 빼고는 죄다 구라예요. 설 | 아니, 내가 감독이라면 혼자 안 있고 스탭 있는 데로 내가 가겠어. 저는 가거든요. 그런데 외로운 게 좋은 것 같기도 해, 현장에선. 어떻게 보면 감독이 외로운 직업인 게 맞는 것 같아요. 또 현장에선 외로운 것이 어울려요. 박 | 그게 왜 외롭냐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래요. 정말로 내가 이 영화를 이렇게 찍으면 좋을 것이다라는 확신이 있는 감독은 없을 거예요. 임권택 감독님도 마찬가지이실 거예요. 물론 워낙 영화를 오래하셨으니까 스탭들을 어떻게 힘을 주고 끌고 나가야 하는지는 동물적으로 잘 아시죠. 그렇지만 데뷔감독들은 그것도 잘 몰라요.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난 정말 모르겠고, 내가 찍고자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다 싶으면 혼자 고민할 수밖에 없잖아요. 스탭들에게 물어봐도 스탭들은 관성 때문에 또 영화를 빨리 찍고 싶으니까 좋다, 괜찮다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요. 근본적인 부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결국 감독이에요. 감독은 생각을 해야 하거든요, 어떻게 표현돼야 하는가를. 그런데 그런 걸 주위에서 동조해 주는 사람이 없어. 설 | 그게 아니고 주위에서 말 시켜도 안 들려. 감독이란 사람들은, 말을 시켜도 안 들리는 사람들이 감독이란 사람들이에요. 자기 생각에 너무 빠져 있어서. 설 | 감독 아무나 하는 거 아니에요. 그 미친 짓을. 진짜 외로운 직업인 것 같아요. 박 | 시나리오 쓸 때가 제일 힘들어요. 저는 한국 영화감독들이 영화를 만들어내는 실력은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컷을 나누는 방법, 연기를 연출하는 방법, 기본적인 컨셉 이런 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를 잘 만든다, 테크니션이다 하는 김성수 감독 같은 특별한 분들 빼고는 허진호 감독, 이창동 감독 같은 사람들 보면, 영화 만드는 실력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창동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시나리오가 90%라고, 그게 정곡을 찌르는 말인 게 한국영화에선 시나리오가 정말 중요해요. 할리우드에선 영상매체에 대해선 영화적으로 접근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영화감독들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익숙하거든요. 그렇지만 한국 텔레비전하고 영화하고는 많이 다르죠. 텔레비전은 설명을 하려 든다면 영화는 설명을 안 하려고 하잖아요. 차이가 심한데 텔레비전 피해 때문에 영화감독들의 실력향상이 없어요. 그러니까 시나리오가 중요하다고요. 그런데 시나리오 단계에서 작가들의 도움을 참 못 받아요. 저도 이번에 시나리오 작업하면서 제가 99% 쓰고 나머지 사람들이 계속 시나리오를 써서 주는데 제 코드에 맞을 때만 쓰고 그렇지 않으면 제가 수용을 못 했어요. 영화사에서 각색작가도 붙여줬어요, 드라마가 약하니까 드라마를 한번 강화시켜보라는 거였죠. 그런데 영화 속에 드라마가 들어오니까 영화가 망가지더라구요. 태란이하고 원주하고 나중에 만나서 언니 동생을 하고 그런 식이었죠. (일동 그건 아니라며 웃음) 그걸 제가 보고나서 이렇게 영화가 되면 영화를 안 하는 게 낫겠다 했죠. 도저히 안 되겠다, 나 혼자 쓰겠다 하고 최종적으로 한달을 혼자 작업했어요. 영상원 친구 학생하고 같이. 디테일을 강화한 거죠. 영화사에 시나리오를 건네주면서 “나는 영화를 못해도 좋은데 이게 내 완고이고 더이상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시나리오로 나는 이런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네잔은 공감 - 주인공 봉수는 ‘보통’ 한국남자 설 | 봉수 안에 많이 들어 있죠, 제 모습이. TV 보고 빈둥빈둥거리는 것도 닮았고, 봉수가 영화 속에서 밝지가 않잖아요. 저도 굉장히 무표정하면서 말도 그냥 툭툭 던져요. 그런 게 닮았죠. 근데 잘 보면 진짜 봉수랑 닮은 사람은 박흥식 감독님인 것 같아요. 박 | 그렇지, 뭐. 나도 범생이였고 취직해서 일도 해봤고, 결혼적령기고. 우리 둘이 한 얘기가 있잖아. 경구씨하고 나하고 전화를 하면서 한 얘기가,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좀 퉁명스럽다. 보수적인 데도 좀 있고, 결국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우리 같은 모습들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당신 모습하고 내 모습하고.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라. 감추지 말고, 그냥 우리 안에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면 되지 않겠느냐” 이런 거였어요. 한 여섯 번째 촬영 때쯤인가, 봉수가 “나 혼자 살아, 독립했어. 아 맛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걸 찍을 땐데, 스탭들한테서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어요. 그때 이후로 어떤 느낌이 왔냐 하면, 저 친구가 지금 화면 안에서 봉수처럼 놀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찍으면서 본인도 웃더라구요. 여유가 생긴 것 같더라구요. 설 | 근데, 저는 <아내가…>뿐이 아니라 스타일이 원래 그래요. 박 | 맞아요. 아무튼 그때 이후로는 저는 이 사람한테 별로 말을 안 했어요. 현장에 와서 느낌대로 가자고 약속했죠. 내가 현장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설경구씨가 판단을 해서 이건 좋다, 이건 아니다, 하는 식으로. 경구씨는 그 판단력이 굉장히 정확해요. 이건 과장이 아니냐, 하는 것도 용기있게 하자고 하기도 하고. 내가 좀 확신이 없는 것도 있지만…. 감독은 별로 확신이 없어요. 설 | 세상에, 빤스만 입고 출근했다가 다시 들어오는 장면 있잖아요. 그걸 놓고 감독님은 끝까지 오버래요. 촬영 쫑나는 날 직전까지. 자르려 그러는 거예요. 죽어도 못 자르게 했어요. 박 | 그래서 두 가지로 찍었잖아. 설 | 그게 불안해 갖고, 면도 크림 묻히고 나오는 거, 그것도 하나 찍어놨어요. 박 | 그때 이창동 감독이 왔었어요. 이창동 감독한테 내가 이거 오버하는 것 같다 그랬더니, “야, 이거 오버 아니야. 네 영화 속에 이런 거 많아야 돼” 하시더라구요. 설 | 난 오히려 흥식이 형이 너무 겁내는 게 불만이었어요. 저는 그런 사람 얘기를 실제로 들었거든요. 다섯잔은 설전 - 배우와 감독의 차이 박 | 저는 사실, 제 영화 속에서 좋아하는 장면이 하나 있거든요. 설 | (입술을 삐죽거리며) 이 사람이 인색해요, 원래. 박 | 그러지 좀 마. (서서히 신경을 곤두세운다) 설 | 인색하잖아요, 형. 진짜 인색해요. 마음은 안 그런데 되게 인색해요. 별명이 독일 병정이에요. 박 | 어린 봉수가 소나기 맞으면서 뛰어와서 엄마라고 하는 건 원래 시나리오 안에 있었던 게 아니고 제가 데뷔작으로 하고 싶었는데 좌절되었던 성장영화에 있던 거였어요. 설 | 이창동 감독님이랑 일반시사 같이 봤는데 그 장면 딱 나올 때 “상업영화 하면서 예술영화로 시작하네” 하시대요. 박 | 크랭크인한 첫날에 어린 봉수 나오는 그 장면하고 친구에게 염색하지 말라고 하는 장면하고 두 장면을 찍었는데 촬영 중간에 경구씨하고 얘길 했거든요, 마지막에 봉수가 정리를 하고 나가야 할 텐데 무슨 얘기를 하는 게 좋겠냐고. 그러다가 “염색하지 마 이 새끼야”가 어떨까 했더니 경구씨가 좋대요. 홍상수 감독님이 영화 찍을 때 실제 술을 먹이고 찍었다고 하기에 나도 해보고 싶어서 해봤는데, 경구씨가 서태화씨하고 술을 먹는 장면에서 둘이 소주를 9병 마셨어요. 서태화씨가 먹은 것만 6병이 돼요. 설 | 저는 먹다가 물로 바꿨거든요, 그런데 태화 형은 제가 물로 바꾼 건지 모르고 계속 술만 먹었죠. 박 | 아직도 아쉬운 것은, 테스트할 땐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 슛을 들어갔더니 그게 안 나오는 거예요. 이 양반이 웃기는 게 에너지가 어느 한순간에 나오면 그 다음엔 없어져요. 그러니까 그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해요. 17테이크를 갔는데 결국은 제가 만족을 못해 설경구가 나중에 나와가지고 자기는 끝까지 아주 징할 정도로 해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새벽은 가까워오지, 날은 다 샜지 더이상 못할 것 같은 거야. 서태화씨가 너무 술에 취해서 안 되겠더라구요. 설 | 그 다음날 전화했더니 어떻게 끝났냐 묻더라구요. 박 | 취해서는 무조건 알았어요 알았어요 하긴 하는데 연기에 대해서 대화가 안 되는 거야. 첫 장면은 내 느낌대로 찍었는데 그 다음 둘이 찍을 때는 완전히 죽상이 되어 있더니 나중에 전화가 왔어요. 어떻게 배우 앞에서 오케이도 하지 않고 냉정하게 갈 수가 있냐구. 설 | 기분 좋게 오케이 해줄 수 있는 거잖아요. 오케이! 하면 배우도 기분 좋게 갈 수 있잖아요. 흥식이형은 제일 극찬하는 게 “괜찮다”예요. 한 테이크에 오케이 됐던 건 만화가게에서 찍은 것 하나예요. 잘렸지만. 확실히 감독은 세밀한 데 신경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럴 때 배우는 짜증나요. 컨셉이 다르거든요, 감독이랑 배우랑. 박 | 이번 영화에서는 모두가 됐다고 했는데 나 혼자 아니라고 했던 게 하나 있었어요. 설경구씨가 신문지 찢는 마술하는 장면이 나는 좀 오버된 것 같더라구요. 첫 번째는 실수를 했고 두 번째 하는데 스탭들도 현장에서 웃느라고 NG날 정도로 다 좋았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나는 오버인 것 같더라구요. 촬영감독도 웃느라고 잘 보면 뷰파인더가 조금 흔들렸어요. 그런데 제가 더 가자고 해서 다섯번을 갔어요. 경구씨가 나한테 화를 냈죠. 설 | 또 명함에서 동전 옮기는 마술할 때도 짜증났어요. 박 | 한번도 짜증을 안 냈는데 마술할 때 짜증을 냈어요. 설 | 뒤에 연결이 어떨지 모른다고 또 찍게 해요. 너무 짜증나더라구. 그러고서 두 번째 걸로 썼잖아요. 내가 막 했어요, “아까 것을 쓸걸” 하면서. (일동 웃음) 배우도 개겨야 돼요. 여섯잔은 사랑타령 - 원주는 뽀뽀하고 싶은 여자 설 | 형, 우리 영화 보면 왜 사랑이 보석 같은 거다, 마술 같은 거다, 싶다가도 또 굉장히 일상적이잖아. 형이 생각하는 사랑, 그것도 궁금하던데. 박 | 사랑은 보석 같은 것이기도 하고, 일상이기도 하지. 사랑하기 전에도, 사랑하고 난 뒤에도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아.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을지 모르고.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질 때 짧지만 빛나는 순간이 있잖아. 그래서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같은 영화, 정말 좋아해. 어릴 때부터 미용사를 사랑해서 미용사의 남편이 되는 남자, 그 남자를 사랑하는 미용사 아내. 그런데 그 여자가 왜 사랑의 절정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에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물에 몸을 던지잖아. 그 사랑의 순간을 지키고 싶었던 거겠지. 난 그 정서에 공감해. <일 포스티노>에서 남자가 여자랑 게임을 하며 구애하는 순간도 그런 느낌이 있어서 좋고. 그 전후가 크게 달라질 것 없더라도, 그런 순간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 <나도 아내가…>에서는 그런 순간보다 일상을 위주로 했는데, 다음에는 좀더 가보고 싶어. 인공적인 드라마가 아니면서도, 일상이 근간이 되면서도, 일상의 삶에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격정적인 순간을 담아보고 싶어. 누가 누구를 만나서 사랑한다는 건 사는 모습의 일부야. 봉수가 정말로 좋아했던 것은 태란이었을 수도 있지, 그렇지만 태란이는 자기 곁을 떠났잖아. 옆에 누가 없는 상태에서,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야. 누가 떠나간 상태에서 그 사람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또다른 사람을 찾게 되지. 거기에 집착해서 평생 그 여자만을 기억하면서 살겠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자기는 정말 사랑했다고 생각해도 떠나가버리면 또다른 사랑을 찾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해. 영화 속에서 봉수가 쉽게 태란이를 접고 원주에게 가는 이유는 그게 살아가는 일부이기 때문이야. 나는 정말로 시나리오 데뷔작으로 첫사랑에 대한 얘기를 담으려고 했어. 그런데 내 모습을 내가 반추해봤더니, 첫사랑을 생각하느라 내가 매일 괴롭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됐어. 그 여자를 잊어버리고 나는 다른 여자를 또 만났다구. 또 그 여자랑 잘 안 되고나서는 또다른 여자를 찾았고. 지금 나는 결혼은 아직 안 했지만, 정말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 그 여자가 나를 좋아해주고 나랑 통할 것 같으면 나랑 살 수 있는 여자가 되는 거지. 경구씨는 원주랑 태란 중에서 누구를 택하겠어? 설 | 설경구가요, 봉수가 아니고? 당연히 원주죠. 현실적으로 태란은 이혼녀잖아요. 밑지는 장사잖아요. 태란이랑 나랑 서서히 나도 모르게 깊게 빠져든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하룻밤 잤다고 남자가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요. 물론 그러고 나서 확 빠져들면 이혼녀고 뭐고 상관없겠지만, 시작인 상태에서는…. 박 | 봉수가 태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도 했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경구씨에게 물어봤어요, 이혼녀인 태란에게 쉽게 결혼까지 할 생각까지 갖겠느냐고. 그랬더니 “그렇지 않죠” 하더라구요. 그럼 왜 좋아하는 거냐 했더니…. 설 | 성적인 거지. 박 | 제 영화의 기본적인 컨셉은 ‘뒤통수 바라보기’였어요. 원주가 봉수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봉수가 태란이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그런데 누구 하나가 뒤통수 바라볼 상대가 없어졌을 경우에는 누구하나가 시선을 돌려주기만 하면 마주볼 수 있게 되는 게 아니겠냐. 근데 제가 인터뷰를 하면서 보니까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리 헤매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나중에 아니다 싶을 때는 자르기도 확실히 잘라요. 미련을 많이 남기고 아쉬움을 많이 남기는 것은 오히려 남자쪽이 강하더라구요. 여자들은 확실해요, 확신이 있어요.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할 거다, 나는 이 사람이 좋다, 혹은 이 사람은 나하고는 아니구나 싶으면 자른다고요. 선이 확실해요. 그런데 나는 원주가 봉수를 좋아해주는 마음에 여자는 남자보다 확신이 있고 강한 모습이 비쳐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바보같이 헤매던 봉수만 나중에 살짝 시선을 한번 돌려줘라, 그러면 이건 성립이 되는 거다라고 생각했어요. 설 | 나는 시나리오 보고 봉수는 진짜 매력없다고 생각했고 원주가 너무 예뻤어. 뽀뽀해주고 싶은 여자다, 이 여자는. 진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자다 싶었어요. 일곱잔은 결심 - 사랑하면, 표현하리라 박 | 다음 작품 할 때도 변할지 안 변할지 모르겠는데, 저는 확신이 없으니까 저를 의심을 해요. 거기서 오는 게 커요. 내가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스탭들을 불안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하는데 저는 표정이 얇아서 금방 드러나나봐요. 설 | 못 속여, 못 속여. “에이 이 씨발놈들아” 할 때는 하고 끝나면 “자 술먹자” 하고 가는 것. 어차피 그날 해결될 일이 아닌데, 주변이 불편한 거야. 눈치보게 만드는 거야. 그냥 화끈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멋이거든요. 하긴 감독이란 사람들이 현장에서 화끈할 수가 없어요. 저 같으면 더 할지도 몰라요. 순간 탁 털어버리고 주위를 여유롭게 만들어준 다음에 혼자 고민하면 되잖아. 박 | 그런데 영화를 떠나서 보통 사람으로서 대인관계상 내가 누구를 좋아하게 되면 그건 그 사람에게 확실히 표현해야 하겠다는 건 이 영화에서 원주를 통해서 내가 배웠어요. 적극적으로. 스스로 내가 배운 것이 그거예요. 모더니티 비슷한 문젠데, 지금은 표현하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누가 사랑을 한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표현해 줘야 하고, 이 배우를 좋아한다 그러면 이 배우에게 표현해 줘야 하고, 이 장면이 좋다면 그 표현을 해야겠다, 앞으로는. 나도 앞으로 결혼도 해야겠고 여러 가지를 해야 할 텐데. 내가 만나는 사람한테는 꼭 표현해야겠다는 걸 배웠어요. 설 | 흥식이 형은 굉장히 디테일한 사람이야. 짜증날 정도로. 배우들은 정말 힘들어. (손가락을 조그맣게 하며) 아, 그 좆만한 디테일 때문에 똑같은 걸 몇번씩 찍으니까. 그러고는 꼭 첫 번째 걸 써요. 다음 영화도 디테일로 할 건가? 박 | (웃으며) 다음 작품 제의가 들어오고 있어. 근데 다음에는 드라마를 하고 싶어. 하지만 디테일은 모든 영화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어. 드라마 구조가 인위적이지 않으면서 “줄거리가 있구나” 하는 영화를 하고 싶어. 난 할리우드영화도 좋아하거든. 어떻게 말하면 난 드라마가 있는 영화를 부러워하기도 해. 일본영화를 보면 디테일이 다 존재하거든. 디테일은 기본이야. 설 | 그 영화, 저도 껴달라고 그랬어요. 박 | 공감하실지 모르겠는데 첫 장면은 제가 생각해놓았어요. 아주 어색한 부모님 생일파티. 다들 아시죠? 부모님 당사자만 좋아하고 주변의 식구들은 아주 어색해하는 느낌이 영화의 첫 장면이에요. 닭살이지만 해야 하는 행사잖아요. 그게 영화의 시작이거든요. 제가 그걸 갖고서 한번…. 한국 사람들이 외국 사람이랑 달리 가족간에 표현하는 사랑이란 게 되게 역설적인 것 같고, 서툴고 그렇지만 거기에는 사랑 이상의 진한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걸 내가 한번 그 묘한 뉘앙스를 가지고 영화 전체를 표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런 영화 만들 수 있어?

50, 6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나이 지긋한 사람들과 옛날 할리우드영화를 보다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죠. “요새는 저런 영화는 못 만들어.” 이런 한탄조의 회상은 너무나도 진부해서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어렸을 때 ‘추억의 영화’에 대한 한탄조의 멘트를 지독하게 자주 반복하던 모 영화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를 거의 증오하기까지 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사실이기도 합니다. 당연하죠. 2000년대를 사는 사람들이 50년대 사람들처럼 영화를 만든다면 그게 뭔가 이상한 일이 아니겠어요? 빈센트 미넬리의 뮤지컬영화 <지지>도 절대로 2000년대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입니다. 왜? 클래식 할리우드의 그 예스럽고 풍요로운 느낌하고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의 내용이 ‘정치적으로 공정’한 요새 만들어지기엔 문제가 많답니다. <지지>의 내용을 기억하시는지요? 중년의 사교계 신사가 15살짜리 소녀와 놀다가 그만 결혼까지 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지지>는 뮤지컬 버전 <롤리타>는 아닙니다. 요새 나오는 틴에이저의 성을 노리개로 삼는 수많은 영화들에 비하면 얌전하고 로맨틱하며 품위있죠. 문제는 그동안 관객의 태도가 바뀌었고, 그 결과 영화의 그 태평스러운 어조가 아무래도 거슬린다는 것입니다. 모리스 슈발리에가 그 감칠맛나는 불어 악센트로 부르는 첫 번째 노래를 기억하시는지요? “Thank Heaven for Little Girls….” 슈발리에의 캐릭터 오노레 드 라사이유에게 이 노래는 단순히 아름다운 인생 예찬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관객에게 그 노래는 망령이 도를 넘어선 음탕한 페도파일의 주제가로 들리죠. 궁금하시면 아무 검색 엔진에서 ‘Thank Heaven for Little Girls’를 찾아보세요. 어떤 사이트들이 나오나. 그러나 냉소주의는 여기서 그만 멈추기로 하죠. 그렇다고 <지지>가 정말로 그런 식으로만 기억되는 건 아니고, 오노레 영감도 벨 에포크 버전 험버트 험버트는 아니며, 영화 자체도 좋으니까요. 관객은 영화가 시작되면 ‘정치적 공정성’은 살짝 뒤로 밀어놓고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와 빈센트 미넬리가 만들어낸 적당히 천박한 호사스러움을 즐기게 됩니다. <지지>는 한때 번역된 콜레트의 소설들을 모조리 긁어모았던 자칭 콜레트 팬인 저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쩌다보니 전 원작인 중편소설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영화를 보았으니까요. 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죠. 아마 원작을 읽은 지 몇 주일 뒤에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해주었을 거예요. 원작의 뒤바뀐 스토리 라인이 맘에 들지 않았던 기억이 지금도 나는군요. 당시 제가 꽤 순수주의자였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도 그 결말은 맘에 들지 않습니다. 뮤지컬의 화려함에 지나치게 목을 매다보니 극적 구조가 이상해져버린 것이죠. 그러나 레슬리 캐론과 모리스 슈발리에, 이미 패션사의 고전이 된 귀여운 스코틀랜드 격자무늬 스커트, 알란 제이 라너와 프레데릭 로의 달콤한 가사와 음악, 영화 전체에 담뿍 묻어 있는 천진난만하기까지 한 쾌락주의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토록 증오했던 그 영화음악 프로그램 담당자처럼 한숨을 폭폭 내쉬며 이렇게 말하게 되는 거죠. “요샌 이런 영화는 못 만들어.” diuna01@hanmail.net

윌로씨에게 생긴 일, 웃음과 비애의 카오스

◈ 어느 작가가 자작(自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우리는 어느 정도나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일차적으로 작품의 의도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작가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의도라는 것이 완성된 작품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이를테면 작가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것을 우리가 작품에서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때에도 작가의 의도를 최우선의 것으로 생각해 그것에 따라야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작품 해석의 권한을 여전히 작가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실히 ‘촌스러운’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와 비평적인 해석간에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면 그 또한 심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경우 대개 작가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 어떤 부분이 작품에 스며들게 돼서 생기는데 이러한 ‘과잉의 부분’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우리의 흥미를 자극한다. 낡은 세계관, 혁명적 스타일 자크 타티는 자신이 얼마나 혁신적인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를 정작 자신은 깨닫지 못한 인물이었다. 물론 이것은 그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몰랐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프티부르주아적인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방법론에 충실함으로 인해 전례없는 영화형식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처럼 낡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 그런 영화를 만들어낸 것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거의 기적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1967년 그가 ‘괴작’ <플레이타임>을 발표했을 때 자크 리베트는 “이 영화는 자크 타티에임에도 불구하고 혁명적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타티는 1950년대 프랑스영화계에서 일종의 대안적 흐름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로베르 브레송과 자주 비견되곤 하지만 두 사람의 기질 및 배경의 차이를 감안하면 그의 위치는 더욱 특이한 것으로 비친다. 확실히 그에게는 브레송 같은 문학적 교양도 그렇다고 종교적인 엄격성도 없다. 따라서 영화가 굳이 개인적인 표현이어야 한다는 신념도 강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물론 그에게도 ‘장인적인 완고함’이라 할 만한 것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자크 타티’라는 인물에 귀속돼야 하는 그런 유의 것은 아니다). 자크 타티는 1907년 파리의 교외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원래 러시아 출신으로 할아버지대에 파리로 이주했다고 하며 그래서 그의 본명은 자크 타티셰프이다. 부친의 직업은 액자 제조가로 비교적 유복한 편이었다고 한다. 타티는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에 열광했다고 하는데 특히 럭비와 테니스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관찰력이 뛰어났던 그는 여러 스포츠의 동작을 팬터마임으로 해보여 주위 사람들을 웃겼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직업적인 엔터테이너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30년대 초에 그는 뮤직홀에서 정식으로 공연을 하기 시작해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되는데 몇년 뒤에는 뮤직홀에서 번 돈으로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이때 만든 영화가 르네 클레망이 연출하고 타티가 주연을 맡은 <왼쪽을 주의하라>(1936)였다. 2차대전에 하사관으로 참전했던 그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뒤 직접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주위의 친구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축제의 날>(1949)이다. 아주 적은 예산에다가 몇명을 제외하면 영화 경험이 전무한 스탭들을 모아 만든 이 영화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 타티로 하여금 영화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주었다.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을 무대로 한 이 영화에서 타티는 주인공인 우편배달부 프랑수아 역을 맡았다. 영화는 마을의 축제를 위해 만들어진 임시 영화관에서 미국의 발달된 우편배달 시스템에 관한 영화를 본 프랑수아가 자기 혼자 힘으로 미국식으로 편지를 배달하겠다고 나서지만 결국 죽도록(?) 고생만 한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인들은 스피드와 규칙성을 모토로 해서 오지에는 심지어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우편을 배달하지만 교통수단이라곤 고작해야 자전거 한대밖에 없는 프랑수아로선 아무리 열심히 뛰어봐야 한계가 뻔한데다 오히려 사고만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타티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트가 되는 어설픈 몸동작을 이 영화에서 유감없이 보여주지만, 허술하긴 하지만 플롯이라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타티가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하기는 힘든 작품이었다. 하지만 2차대전 직후의 프랑스인들이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망과 질시의 감정이 잘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역시 흥미로운 작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과묵한 윌로씨 태어나다 1953년 초에 개봉된 <윌로씨의 휴가>는 ‘타티적 우주’가 최초로 제시된 작품일 뿐 아니라 타티 자신이 만들어내 대중적인 캐릭터가 된 윌로씨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본격적으로 타티적인 세계를 보여준다고 말하는 것은 먼저 그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필요하지도 않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노르망디 해안의 어느 휴양지로 일단의 사람들이 휴가를 위해 몰려오고 영화의 끝에서 그들은 다시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굳이 이야기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이 휴가기간 동안 사람들은 타티, 즉 윌로씨 때문에 몇번의 해프닝을 겪게 되지만 하지만 그것도 훗날까지 기억할 만한 중요한 일은 물론 아니다. 영화는 그저 여름철 해변가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들을 별다른 연관성 없이 그저 나열하듯이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물론 이 영화의 비범한 매력 중 하나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느슨함은 정확히 휴가객들의 정신상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장하자면 별다른 생각없이 영화관에 간 관객의 심상이기도 할 것이다. 휴가의 초반에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반복의 시간감각 즉 권태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말의 정확한 의미에서 어떤 목적을 지향하는 휴가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가의 시간은 노동의 시간처럼 기복이 심한 시간이 아니다. 바쟁이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에 지적했듯이 타티가 그리는 휴가 중의 세계는 “스톱워치로 재는 것이 가능한 그런 부조리한 속도로 진행”하는 것이다. ‘타티적 우주’의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그것이 보여지는 어떤 것 즉 풍경(landscape)인 것 이상으로 들려지는 것 즉 음장(soundscape)이라는 점이다.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특별히 중요하지도 않은 대사를 포함한 온갖 소리들이 놀랄 만한 명확성과 함께 전달된다. 기차역의 안내방송, 해변가의 바람소리,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등등. 특히 타티의 놀라운 점은 인물의 대사에 결코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사운드 요소 중 하나로 다룬다는 점이다. 보통의 영화에서라면 대사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듣는 여러 소리 중 하나와 다름없이 다루어진다면 그것은 ‘말’이라기보다는 ‘소리’에 가까운 것이 되고 이것은 확실히 놀라운 체험이라고 할 만하다. 과연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대개 진부하기 그지없는 것이고 더 흥미로운 것은 윌로씨 자신은 영화의 앞에서 호텔에 체크인할 때 “윌로”라고 짤막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부분을 제외하면 전혀 대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윌로씨를 좀더 잘 표현하는 청각적 기호는 오히려 그의 낡은 자동차가 내는 기괴한 마찰음이다. 휴가지에 윌로씨가 도착했음을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이 자동차가 내는 소리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의 물리적 현존을 감지하는 데 청각적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이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현실은 이미지의 덩어리인 것 이상으로 소리의 덩어리인 것이다. 윌로를 넘어, 현실을 닮은 코미디를 꿈꾸다 1958년에 타티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 <나의 아저씨>는 그를 부동의 인기감독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윌로씨의 캐릭터를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존재로 만들어주었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도 그의 영화는 상당한 관객을 끌어들일 정도가 되어서 그는 국제적인 명성도 동시에 획득했다. 이 영화는 파리를 무대로 아직도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남아 있는 윌로씨가 사는 중하류층의 거주지역과 현대적인, 더 정확히는 기계화된 삶의 방식이 지배하는 중상류층의 지역을 대비시키고 있다. 윌로씨는 누나가 사는 부자동네에 갔다가 기계들을 제대로 다룰 줄 몰라 한바탕 곤경을 치르게 된다. 날로 기계화되는 현대적인 삶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타티의 세계관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윌로씨가 몸담고 있는 옛날 방식의 삶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가득 차 있는 이 영화는 타티의 영화 중 가장 센티멘털하고 ‘따뜻한’ 작품으로 그런 만큼 상당한 대중적인 호응을 받았던 것이다(심지어 외국어영화상이지만 아카데미상까지 받았던 것이다!). 60년대 들어 타티는 그동안의 성공을 발판으로 야심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된다. 코미디는 코미디이되 가장 현실에 근접한 그런 코미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타티는 당시 윌로씨라는 캐릭터가 지나치게 성공을 거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다. 감독인 그보다 윌로씨가 훨씬 유명해짐에 따라 관객이 그의 영화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윌로씨를 보기 위해 온다는 것이 명확해진 것이다. 그에 따라 이 신작에서는 윌로씨의 캐릭터가 전의 두 작품에 비해 훨씬 비중이 약해지게 된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파리 시내의 한 구역을 그대로 재현한 세트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의 전작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제작비를 필요로 했다. 게다가 그는 이 영화를 70mm 시네마스코프에 스테레오로 녹음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은 사재를 쏟아붓고도 모자라 빚까지 지면서 겨우 제작비를 마련한 그는 1967년에 <플레이타임>을 완성하게 된다. 영화는 그의 기대와는 달리 참담한 흥행실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아마도 2차대전 이후 프랑스영화계의 최대의 흥행실패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여서 타티는 이때 진 빚으로 죽을 때까지 허덕였다고 한다. 흥행실패에는 타티 자신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개봉 당시 이 영화가 최적의 상황에서 상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70mm 및 스테레오 사운드 설비가 된 극장에서만 개봉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플레이타임>은 왜 흥행에 실패하고 만 것일까. 우선은 윌로씨를 보고싶어하는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윌로씨는 물론 이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특별히 다른 인물에 비해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냥 여러 인물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이 대목은 어찌 보면 관객의 그간의 오해에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전작에서도 결코 윌로씨가 통상적인 의미에서는 주인공이라고 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가 주인공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흥행실패의 또다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타티가 관객의 능동성을 너무 과대하게 평가했다는 점이다. <플레이타임>은 무엇보다도 그 정보량의 과다로 보는 사람들을 질리게 하는 작품이다. 다양한 시각적 정보들이 70mm 와이드 스크린의 프레임을 꽉 채우고 있을 뿐 아니라 화면의 전경과 후경을 나누어 다른 사건이 진행되고 있음을 동시에 보여준다. 거기다가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최신식 아파트를 설계해 일종의 멀티스크린 효과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관객은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윌로씨가 이번에는 어떤 ‘사고’를 쳐서 우리를 웃겨줄 것인가를 기대하던 관객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웃으라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어찌 보면 <플레이타임>은 바쟁류의 ‘의미의 민주주의’의 전범이 될 만한 영화이다. 화면에 비쳐지는 것들간에 일종의 서열구조를 만들고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관객이 지배적인 의미를 추출해내도록 하는 것이 통상적인 영화 의미의 생성과정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어떠한 의미에도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히 혁신적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대다수의 일반 관객에게는 의미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아직은 ‘의미의 카오스’로밖에 비치지 않는 것을. 관객은 자신들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을 끌어안고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플레이 타임>, 너무 일찍 온 미래 60년대 영화 중 <플레이타임>과 비견할 만한 작품으로는 스탠리 큐브릭의 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당대의 첨단 테크놀로지를 과감하게 도입했다는 점, 그리고 당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던 미래적 상상력을 충실하게 투영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확실히 두 작품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에는 있으되 <플레이타임>에는 없는 것은 다름 아니라 당대의 관객이 호흡하고 있는 시대적 공기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큐브릭이 의도했든 아니든간에 에는 확실히 당대의 카운터컬처의 초월론적인 부분과 조응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이 영화의 컬트적인 인기를 가능케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플레이타임>이 보여주는 푸른 색조가 감도는 미래형의 고층건물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인 미학은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서는 너무 난데없는 것처럼 비쳤던 것이다. 마치 외계에서 날아온 이름모를 유성처럼. 영화사적으로 보아 타티가 맥 세네트에서 시작되어 버스터 키튼, 해리 랭든 등으로 이어지는 벌레스크적인 코미디의 전통에 속한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유의 코미디에서 자주 목도하게 되는 몸동작에 대한 과도한 집착 등은 타티에게도 그대로 발견된다. 하지만 타티는 이런 전통을 자기 식으로 수정해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타티가 이들 선배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대목은 그에게 ‘판타지적인 부분’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정적인 대목에는 주저없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던 이들과는 달리 타티는 ‘있을 것 같지 않은’ 부분은 철저히 배제한다. 어느 비평가는 그리하여 타티가 이들에 비해 “훨씬 상상력이 없는 작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력의 결여는 역으로 말하면 타티의 세계가 현실에 대한 엄밀한 관찰하에 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일 게다. 그의 코미디의 핵심은 말하자면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을 그 논리적 극단까지 몰고 간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타티의 세계는 자세히 관찰했을 때 우스꽝스럽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새삼 일깨워준다. 고다르가 말한 대로 그는 “문제가 전혀 없는 곳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는 ‘성공적인 코미디’가 관객에게 주어야 할 안전한 거리감까지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즉 영화 속의 상황에서 어느 정도 관객이 격리돼야 하는 데도 실제로 관객 자신도 코미디의 한 부분이라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것은 결코 보통의 관객에게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윌로씨처럼 사실은 부적응자일 수 있다’는 깨달음은 결코 즐거운 체험은 아닐 것이다. 거기다가 타티가 자신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다’고 호언하면서 장인적인 자부심을 겉으로 내세우면서도 실제 행동에서는 예술가의 그것에 가까운 행태를 보여주었다는 것도 그에 대한 몰이해를 더욱 부채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영화에 시네필들이 열광하는 것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화가 어떤 상황에서 상영되는가에 대해 극히 까다롭게 굴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역설은 그가 낡은 프랑스적인 것에 집착하는 그런 기질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마치 인디펜던트 감독처럼 작업을 해야만 했던 그런 상황의 결과로 빚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역설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영화사상 가장 급진적인 코미디를 만들도록 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울한 말년, 윌로보다 먼저 가다 <플레이타임>으로 빚더미 위에 올라앉았던 타티는 그 이후 <트래픽>(1971), <퍼레이드>(1974) 등 두편의 영화를 더 만들게 된다. 윌로씨를 다시 중요한 인물로 배치하는 등 예전의 인기를 되찾기 위해 나름대로 ‘타협한’ 구석들이 보이는 이 영화들은 하지만 예전의 성공을 반복하지는 못한다. 그는 말년에 텔레비전 스튜디오를 무대로 한 <컨퓨전>이란 작품을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제작비를 모으는 데 실패해 촬영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컨퓨전>에서 그는 윌로씨를 등장시킨 다음 바로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 캐릭터에 대해 갖고 있던 묘한 애증관계를 완전히 청산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를 죽이기 전에 그 자신이 먼저 죽고 만다. 그는 1982년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1970년대 초반 파리에 머물던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타티와 인터뷰한 것을 계기로 그의 조수가 되어 잠시 동안이나마 <컨퓨전>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경험을 감동적으로 술회하고 있다. 매일 그의 사무실에 가서 그가 말하는 영화의 아이디어를 듣고 함께 토론하면서 정리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드디어 이 영화에서 윌로씨를 죽일 결심을 한 타티는 그 상황을 그에게 설명한다. 텔레비전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도중에 방청객으로 가 있던 윌로씨가 방송사에 잠입한 테러리스트가 쏜 총탄에 잘못 맞아 죽는다는 것이다. 생방송 도중이므로 이 사고는 시청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처리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카메라 위치를 이리저리 따져본 타티는 결국에는 고개를 젓는다. “역시 돈이 너무 많이 들겠는데.” 그리고는 로젠봄에게 “오늘은 그만 됐네. 돌아가게”라고 말했다. 창 밖을 멍하니 응시하면서 로젠봄의 표현에 의하면 타티는 ‘슬라브적인 멜랑콜리’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우울에 빠진 타티에게 더이상 말을 거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임재철/ 영화평론가·<필름컬처> 편집주간marienbad@hanmail.net

2001 신인감독 10인의 출사표 - 김영

▒감독이 되기까지 김영(34) 감독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무대예술에 대한 동경에서부터 시작했다. 오페라, 연극, 발레 등 무대 위의 퍼포먼스를, 그는 어린 시절부터 폭넓게 감상하며 무대 위에 서기를 바랐다. 그러나 ‘재주’가 모자란다는 생각에 무대 위에 오르는 대신 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로 가 여러 가지 장치며 의상을 만져보는 데 만족하곤 했다. “나는 항상 스탭이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는 스탭의 기질이 있었노라고 말한다. 무대를 사랑하던 소녀는 대학 3학년 때 1년을 휴학하고 떠난 장장 8개월의 유럽 배낭여행에서 영화의 매력을 ‘발견’한다. 케임브리지 ABC 시어터에서 본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와 카우프만의 <프라하의 봄>에 그는 그 어느 것보다 더 깊이 빠져들었던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또 하나의 문화’의 어린이캠프에 교사로 참여해 변영주, 홍효숙 감독과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그들의 소개로 들어간 독립영화집단 ‘바리터’에서 16mm 영화찍기에 대한 ‘수업’을 시작한다. 이때 그가 촬영보조로 참여한 작품이 김소영 연출, 변영주 촬영의 <작은 풀에도 이름있으니>. 사무직 여성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단편이다. 대학졸업 뒤 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해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든 그가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94년이었다. 김홍준 감독 <장미빛 인생>의 연출부로 일하며 기록을 담당했고, 1999년에는 이창동 감독 <박하사탕> 연출부에서 김현진씨와 함께 공동 조감독을 했다. 데뷔작 <쥬크박스>에 대한 구상은 우연히 시작됐다. 2000년 3월 차를 타고 길을 지나다 우연히 음치클리닉 간판을 본 순간 노래강사와 노래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5월, 그곳엘 찾아가서 주인공의 모델이 된 여강사를 만나고, 여름 이 아이템을 자신의 데뷔작감으로 점찍는다. 김영 감독은 현재 <쥬크박스>의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며 영화사 ‘KM컬쳐’와는 지난해 6월 1차 계약을 맺은 상태다. ▒어떤 영화를 만들것인가 “너는 장사영화를 할 거야”, 어느 선배의 말은 김영 감독의 영화스타일을 반은 맞히고 반은 못 맞힌 말이다. 반대로, 김홍준 감독과 이창동 감독의 연출부를 거쳤다는 이유로 그에게서 작가영화적 기질을 점치는 이들도 많다. 정작 그 자신은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얘기하는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영화는 수용자에게 다가갔을 때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와 ‘만남’은 ‘변혁’에 대한 꿈과 맥이 닿아 있다.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변혁의 가능성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조금씩이라도 진보할 수 있다면, 가치관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에서 어떤 식으로 포장이 돼도 상관없다.” 88학번인 그는 대학 시절 “운동을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고민은 늘 하던 회색인”이었다며, 그 고민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첫 영화 <쥬크박스>에 담고 싶은 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가벼운 터치”. ‘성공적으로’ 작품을 계속 만들 수 있게 되다면, 사회성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야기’를 중시한다지만, ‘이미지’에 대한 미학적 욕심 역시 만만치 않다. 그는 “기지발랄하면서도 깊이있는” 라스 폰 트리에와 키에슬로프스키를 좋아하며, “윗세대보다는 덜 뮤직비디오 세대이고 아랫세대보다는 훨씬 더 텔레비전세대”인 자신이 이미지 세대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미지 언어를 얼마나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느냐가 나의 과제 중 하나다. 하지만 이미지만 난무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미지와 이야기가 함께 살아 있는 영화가 내가 목표하는 최고 도달치이다.” <쥬크박스>는 작지만 자신있는 그 첫 번째 실험이다. ▒<쥬크박스>는 어떤 영화 <쥬크박스>는 음치클리닉의 여자강사가 자신의 ‘크리닉’을 찾은 노래 못하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도 성장하고 그들도 ‘치료’한다는 이야기. 노래를 못한다는 것 자체가 이 우화 같은 작품에서 소외의 한 상징이다. 영화는 ‘어른들의 성장’을 이야기하며 ‘소외된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사회는 꼭 무엇인가를 잘해야만 살 수 있는 사회인가, 라는 질문도 영화속에 던져 넣었다.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 남자학생 한명은 끝까지 음치에서 구제하지 않을 생각. 처음에 70년대 ‘이류’ 통기타 가수 출신의 40대 아줌마 강사로 설정했던 주인공은 실제 모델을 만나 본 뒤 결혼을 할까말까 고민하는 20대 후반 여성으로 바꿨다. 스타급 배우 중 피아노 연주와 노래실력을 갖춘 ‘누군가’의 캐스팅을 생각하고 있다. <박하사탕>의 이재진씨가 음악을 맡고, 크리닉 ‘교재’로는 대중적인 가요와 팝을 다양하게 선정할 예정이다. 여주인공의 테마송은 창작곡으로 마련한다. 시나리오 작업 외에 현재 스탭이 일부 구성된 상태인 이 작품을 김영 감독은 가을쯤 크랭크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최수임 기자sooeem@hani.co.kr

아비드는 가라!

주현이란 이름만큼 예쁜 언니를 기대하고 들어선 분당의 자그마한 오피스텔에는 염색도 하지 않은 검은 머리를 어깨에 닿을 만큼 기른 ‘그’가 앉아 있었다. “뭘로 드실래요? 음료수랑 녹차랑 커피 있어요.” 예쁜 언니가 전혀 안 부럽다. 작업실을 둘러보니 금방 정리를 마친 듯하다. 7평 남짓한 룸 안에 빼곡이 들어선 컴퓨터와 비디오 세트, 35인치 텔레비전, 편집기기 등에 둘러싸인 그는 오히려 편안한 눈치다. 가만히 보니 서른을 두해나 넘긴 노총각답지 않게 동안의 얼굴을 지녔다. 취미가 MTV 보기과 음악감상이란다. 학창 시절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음악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가 자신에게도 신기하다. 자신있었던 과목은 과학. 그냥 논리적인 해결과정이 좋았다. 중학교 올라가 자신의 돈으로 마련한 컴퓨터에 빠진 탓도 컸다. 또래들이 오락실과 분식집을 전전하며 놀거리를 찾을 때, 그는 컴퓨터가 가져다주는 신기함을 남 몰래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평소에 즐겨보던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이 컴퓨터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애니메이터 툴과 그래픽 프로그램에도 흥미를 느낀다. 영상에 대한 끊이지 않는 열정은, 그러나 대학의 전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의 방황은 경제학과를 출발해 중문과를 경유하여 영화과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영화과에 들어가자 남들보다 느린 출발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데뷔작격인 <회전>(1997)으로 독립단편영화제의 장려상을 수상하자 영화감독에의 길이 조금씩 보이는 듯했다. 졸업 뒤 그는 오랫동안 염두에 두었던 애니메이션 공부를 시작한다. 영화진흥위가 막 운영하기 시작한 애니메이션 아카데미에 1기생으로 들어가 ‘움직이는 모든 것’을 컴퓨터로 표현해 보았다. 영화작업을 할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를 더욱 꼼꼼히 살피게 되었고, 그만큼 디테일한 부분을 처리하는 데 능숙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작업의 백미는 역시 장편. 임상수 감독과 함께한 장편 작업은 그동안 자신이 좁은 우물 안에 갇혀 있었음을 깨닫게 한 계기였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영화는 대개 아비드 편집기를 거치나 이번 <눈물> 편집의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조립한 편집용 PC로 편집을 마쳤다. 그간 단편작업하면서 쌓은 실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는 감독의 말에 시험삼아 시작한 일이 무서운 결과를 낳았다. IBM 범용 DV(Digital Video) 캡처카드에다 Adobe Premiere 5.1c 등의 편집용 소프트웨어를 장착하는 등 시스템 구축에 든 돈은 2천만원이 채 안 됐다. 아비드 장비를 갖추려면 몇배의 돈이 들어갔을 작업이었다. 테스트 결과를 꼼꼼히 살펴보던 감독의 입에서 ‘OK’ 사인을 받아내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고가의 장비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고 간단한 파일 관리만으로도 손쉽게 편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때 기기 가격과 작업 방식에 회의를 갖던 충무로에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그는 이제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란다. 단편을 몇편 더 찍을 것이다. 감독 데뷔는 하늘에 맡긴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에 뛰어든 이상 천천히 자신을 쌓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이제 시작이다. 심지현/ 객원기자simssisi@dreamx.net 사진 오계옥 기자klara@hani.co.kr 프로필 1970년생 91년 한양대 연영과 입학 99년 영화진흥위 애니메이션 아카데미 1기 수석 입학 <순환>(1996), <회전>(1997), (1998) 등 단편 다수 97년 <회전>으로 23회 한국 독립단편영화제 장려상 입상 <질주>(1999) 옵티컬 디자인 <눈물>(2000) 편집

잊어버린 유리아이를 찾아서

<디즈니랜드>란 제목의 프로그램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디즈니사의 자사 작품 재활용 프로그램쯤 되는 쇼였습니다. 디즈니사에서 만든 장편영화들은 2부작으로 변형되어서, 애니메이션들은 적당히 재편집된 꾸러미 모양으로 이 쇼를 통해 방영되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구하기가 매우 힘들어서 이 쇼를 통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클립만 하나 나와도 굉장히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들 중 몇몇 영화들은 기억해두면 꽤 유익한 작품들이었습니다. <페어런트 트랩>의 오리지널 버전이니, <명탐정 디씨>의 오리지널 버전이니 하는 것들이 다 여기를 통해 방영되었으니까요. 물론 그중에는 원래부터 텔레비전영화로 제작된 오리지널도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오래 전에 비디오로 출시된 특수학교 교사 이야기인 <에이미>와 같은 작품이 기억나는군요.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작품은 다른 영화입니다. 아마 어렸을 때 한번 보고 저처럼 꽤 오랫동안 기억속에 품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한번 기억을 되살려 보세요. 이 영화는 한 소년과 그의 가족이 시골 마을로 이사오면서 시작됩니다. 소년은 어느 날 밤 밖에서 이상한 불빛을 보고 따라가다가 이네스라는 소녀 유령과 그 소녀의 개 유령을 발견합니다. 유령은 자신의 영혼이 안식을 찾으려면 ‘유리 아이’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죠. 소년은 친구가 된 이웃 소녀와 함께 ‘유리 아이’의 미스터리를 풀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가 당시 아이들에게 남긴 인상이 굉장히 강했다는 사실을 제가 알게 된 건 인터넷 시대가 돼서였습니다. 전 귀신들린 집이나 유령이야기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사이트나 리스트에 종종 드나들었는데, 꼭 그럴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혹시 <디즈니랜드>에서 방영했던 어린이영화 기억나세요? 새로 이사온 집에서 주인공 남자애가 소녀 유령을 만나는 이야기였는데?” 대답도 대부분 같았습니다. “아, 저도 기억나요. 하지만 제목이 뭔지는 저도 모르겠군요.” IMDb가 잠시 ‘잃어버린 영화 찾기’를 했을 때 가장 많은 문의가 들어온 영화 역시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이제 어른이 된 사람들이 오래 전에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짜맞추다 이 어린이영화의 정체에 갑자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죠. 그러고보니 하이텔에서도 이 영화에 대한 질문을 서너번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유리 아이>(Child of Glass)였습니다. 78년 작품이었어요(문화적 활동이 활발한 젊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간직하기 딱 좋은 때 나온 영화죠). 어린이 공포소설로 유명한 리처드 펙이라는 작가의 소설 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였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이웃집 소녀 블로섬은 나중에 펙의 고정 캐릭터가 된 모양입니다. 이 영화를 찾아 헤맸던 사람들 중 78년 이후 이 영화를 다시 본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비디오로 출시된 작품은 아니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 자체가 유령이었죠. 존재하는 영화로 남아 있는 대신, 희미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뇌 속에 숨어 있다가 툭 하면 튀어나오는 그런 유령 말입니다. djuna01@hanmail.net

제23회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 2월3일 폐막 대상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다> 프랑스 중부지방에 자리한 작은 도시 클레르몽 페랑에서 1월26일 저녁에 9일간 열리는 제23회 국제단편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밖은 비바람이 심하여 몹씨 을씨년스러웠지만 행사의 주무대인 문화의 집 ‘장 콕토’ 실내는 1천석이 넘는 객석을 꽉 채울 만큼 많은 사람들로 들끓었다. 개막식은 같은 프로그램을 8시30분과 10시30분에 반복하는 것으로 두번에 걸쳐 진행됐는데, 나는 두 번째 개막식에 참석했다. 행사는 겉치레가 전혀 없이 심사위원들에 대한 짧은 소개와 주최자쪽의 영화제 절차에 대한 설명으로 간단히 끝났다. 그 대신 이 영화제 특유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주인공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 감독들이었고 이들은 이 지역의 실업자들을 대신하여 자신들이 처해 있는 비참한 현실에 울분을 터트리면서 독립영화의 사회적 중요성과 시민연대 및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큰 목소리로 강조했다. 클레르몽 페랑, 세계 단편영화의 수도 영화제쪽은 5년 전부터 지역의 젊은이들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자는 뜻에서 개막식 무대를 이들에게 내주고 있다. 하기야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가 젊은이들의 성토로 시작됐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개막행사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현재 영화제의 주역들인 앙투완 로페, 로즈 고낭, 자크 큐틸, 조르즈 불롱 등도 23년 전에 대학 강당을 무대로 당시 정부의 무관심과 차별대우에 잊혀져가던 단편영화를 살려내자는 유명한 선언문을 읽으면서 성토를 했고 그에 자극받은 관객과 정부가 이들의 손을 들어주어 영화제의 토대가 닦였다(이 영화제의 역사에 대해선 1999년 <씨네21> 190호에 자세히 썼기 때문에 여기선 빼겠다). 어디나 국제영화제들이 공동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수준 높은 싱싱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충분한 관객을 동원하고 이름난 전문가들의 관심을 많이 끄는 일이다. 그런데 <르 몽드>의 장 미셸 프로동 기자는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는 이 세 가지에서 다 성공한, 사실상 “세계 단편영화의 수도”라고 긍정적 평가를 했다. 정말이지 클레르몽 페랑에 가면 새로운 흐름을 가늠케 하는 다양한 성향의 수작들이 너무 많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올해만도 50개국에서 뽑아온 400편의 영화가 올해 새로 생긴 2개의 시사실까지 합쳐 10개의 상영장에서 시사됐다.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는 10회까지 국내영화제였다. 그러다 13년 전 국제영화제가 되면서 경쟁부문이 프랑스 국내 및 국제경쟁, 두개로 늘어났다. 국내 경쟁부문에는 올해 600편이 출품신청을 해왔다. 그중 경쟁에 뽑힌 영화는 60편이었다. 올해의 국내 대상은 프레데리크 펠 감독의 네 번째 영화 <부인의 조각들>에 돌아갔다. 한 노인이 부인이 죽자 자신의 과거를 지워버린다는 이야기다. 프랑스 단편영화가 성장한 배경은 시사회장 밖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는 영화제 동안 이 지역 공산당에서 조직한 단편영화 지원정책에 관한 세미나에 유일한 외국인으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프랑스의 국보보존 문제와 탈중앙집정제의 정책을 담당하는 미셸 듀프 정무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단편영화 배급사, 전 칸영화제의 비평가주간 책임자였던 장 로아, 철도 노조와 전기ㆍ가스 노조의 대표들이 발제자로 초대되어 단편영화의 구원책을 진지하게 논의했다. 프랑스 노동자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던 주요 영화들에 대한 신간 책자도 한편에서 팔리고 있었다. 클레르몽 페랑의 지금 시장은 사회당 출신이며, 어느 일간지에 실린 글대로라면 클레르몽 페랑시는 이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제작지원에 앞장 서고 있다. 한국영화 3편 경쟁부문 진출 한편, 국제 경쟁부문에서는 모두 1650편이 참가신청을 해왔다. 결국 77편이 선정됐고, <자화상>(이상열), <지우개 따먹기>(민동현), <엔조이 유어 섬머>(이형곤) 등 한국영화 3편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올해 신설된 온 라인 와나두 부문에 <망막>(김은경)이 올랐다. 이 부문은 이메일 서비스업체 와나두 시청각이 프랑스 텔레콤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밖에 단편애니메이션 <언년이>(유진이)가 비경쟁인 어린이영화부문에 초청됐다. 국제경쟁의 대상은 그리스 출신의 여감독 카타리나 필리오투의 두 번째 영화 <당신에게 할말이 있다>에 돌아갔다. 결혼생활 20년이 지난 어느 날 부인의 순간적인 외도로 생기는 부부간의 애정 문제를 다룬 영화다. 국제부문의 심사위원은 콘스탄틴 브론지트(감독, 러시아), 와시스 이오프(배우·작곡가, 세네갈), 황규덕(감독·교수, 한국), 세드리크 칸(감독·시나리오 작가, 프랑스), 도리스 클로스터(사진작가·기자·교사, 미국)였다.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에는 다른 영화제서 볼 수 없는 대규모 단편영화 시장이 있다. ‘제2의 칸’으로 불리는 이곳의 필름 마켓은 16년 전에 문을 열었고 영화제 기간 5일 동안 900편의 영화가 25개의 국제배급사들을 통해 소개된다. 한국에서는 2년 전부터 미로비전이, 인디스토리가 지난해부터 참가하고 있다. 올해에는 진흥위원회의 지원으로 두 회사가 같이 큼직한 자리를 마련하여 상당한 분량의 단편영화를 소개했다. 아직 그 성과에 대해 말하긴 이르지만 스페인의 카날 플러스와, 아르테 방송사, 미국의 아톰필름 등이 구체적인 관심을 보였고, 단편채널을 갖고 있는 일본의 위성방송 TV Man Union은 올 봄에 한국의 단편영화를 대대적으로 방영할 계획이다. 그리고 한두 영화제에서도 한국단편회고전을 개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 클레르몽 페랑=임안자/ 해외특별기고가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 국제경쟁부문 수상작 대상 <당신에게 할말이 있다>(Ela Na Sou Po) / 카타리나 필리오투 / 그리스 심사위원 특별상 <불려지기를>(To Be Called For) / 안나 멜리키안 / 러시아 관객상 <릴리>(Lilly)/ 마르완 하메드/ 이집트 리서치 상 <누군가 무엇을 죽였다(혹은 최후의 순수성)>(Alguien mato algo(o la ultima inocencia)) / 호르헤 나바스 /콜롬비아 음향창작상 <복사 전문점>(Copy Shop) / 비르질 비드리히 / 오스트리아 아톰필름상(최우수 애니메이션상) <아버지와 딸>(Father And Daughter) / 미카엘 두도크 데 비트 / 네덜란드ㆍ영국 촬영상 <튼 손을 위한 온구엔토>(Ungliento Para Manos Agrietadas) / 세자리 자보르스키 /베네수엘라 청년상 <누군가 무엇을 죽였다(혹은 최후의 순수성)>(Alguien mato algo(o la ultima inocencia)) / 호르헤 나바스 /콜롬비아 카날 플러스상 두려울 것 없다(Nicego Strasnego) / 울리아나 쉬키나 / 러시아 에퀴메니상 서머타임(Summertime) / 안나 루리프 / 스위스 와나두 단편상 필요한 어떤 방법으로도(By Any Means Necessary) / 에밀리 맨텔 / 영국 나쁜 동물들(Bad Animals) / 대비드 버드셀 / 미국 와나두 관객상 최종적 결말(The Showdown) / 마시모 가라티 코스타/영국 기자상 서머타임(Summertime) / 안나 루이프 / 스위스

클레르몽 페랑에서 만난 한국영화

올해의 여러 회고전 가운데 국가별 행사는 스페인(16편)과 한국(22편)전 두 가지였는데, 관심의 초점은 한국이었다. 1992년 유럽에서 최초로 열렸던 페사로영화제의 장편 회고전에 비할 수 있는 단편영화사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로페와 고낭에게 회고전을 열게 된 동기를 물어봤다.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에 소개된 한국 작품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최근 수상까지 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지난해에 한국에 들렀을 때 한국영화의 넘쳐나는 에너지와 자국의 영화를 지키려는 영화인들의 굳은 의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스크린쿼터 문제만 해도 프랑스에선 텔레비전 쿼터에 그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데 두 나라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단편영화가 1년에 400편씩 나온다는 데도 놀랐다.” 이번 회고전이 크게 성사된 데는 진흥위원회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유길촌 진흥위원장은 20여명의 젊은 감독들 그리고 영진위 국제부의 직원 두명을 데리고 현지를 방문하여 영접에서 외교 문제까지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줬고, 그 결과 영화제 참가자들과의 대화가 만족할 만큼 잘 이뤄졌다. 아무튼 감독, 배우, 제작자, 배급자 등 50명에 가까운 단편영화인들이 클레르몽 페랑에 갑자기 한국 바람을 일으켰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한국영화의 토론장에 초대된 발제자의 준비가 미비해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한 점이다. 한편 한국에서 처음으로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황규덕 감독은 “요즘 이곳 술집이나 식당에 들르면 사람들이 한국영화에 대해 말하는 걸 자주 듣게 된다. 한국영화에 대한 열기를 피부로 느낀다. 한국영화는 이제 국제무대에 오를 준비가 돼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부설 영화아카데미 교수이기도 한 황 감독은 “이번 영진위의 도움은 단편영화의 국제진출 차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자평 아닌 자평을 더하기도 했다. 그의 눈에 비친 클레르몽페랑은 어땠을까. “이곳 관객의 열성은 부산영화제와 비슷하다. 그러나 유치원생에서 노인에 이르는 여러 세대가 어울리는 진풍경은 부산에 없다. 그게 너무 부럽다.”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2] - 문화산업

문화산업론은 비만, 영화문화는 발육부진 한국영화에 관한 담론을 지배해온 문화산업론은 인터넷 비지니스의 활황과 더불어, 더욱 기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영화문화는 어떤 발전을 이루었는가. 미진한 미학적 성취, 진정한 시네마테크와 필름아카이브의 부재, 대학 영화관련 학과의 과다와 영화학의 부진이 빚는 극심한 불균형 등 한국 영화문화의 왜소화를 초래한 주범은 혹시 문화산업론이 아닌가. 김 | 한국영화계를 과연 문화산업이 지배하고 있는지부터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영화가 자본주의적 사고를 하기 시작한 것도 90년대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 제작시스템은 식민지 반봉건사회 비슷한 것 아니었나 싶다. 때론 국가독점자본주의 성격도 있었지만. 반면 지금의 한국영화 현실은 문화적인 양상에서마저도, 후기 자본주의적 모습이 보인다. 자본주의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 꼭 그 산업이 완숙한 단계에 진입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 한국영화의 문제를 문화산업론으로 파악하는 것은 논지를 흐릴 수도 있다. 강력한 의지나 합의의 도출에 의해서 문화산업적인 방향으로 한국영화가 양성된 게 아니라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요소의 모임에 따라 흘러왔고, 오히려 그런 것은 한국영화를 만들어가고 담론을 형성해가는 개개인의 역할과 일들이 모여서 된 결과다. 산업적 영역에서 보면 한국영화가 보이고 있는 여러 징후들을 생각할 때 너무 단기적인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저버릴 수 없다. 여러 자본이 유입되고 제작이 활성화된다거나, 기획만 좋으면 돈없어 영화 못 찍을 일 없어졌고, 배급과 마케팅망을 확대시켜 수익을 극대화한다든지 하는 것은, 순전히 산업적인 차원에서만 보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한 건 전체적으로는 에너지가 있고 다이내믹하고 기도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하나하나는 허약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영화의 구석구석에 박힌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이건 일종의 미스터리다. 부분은 부정적이고,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게 많은데, 왜 전체는 잘되는 모습으로 느껴질까. 정 | 많은 점에서 홍준이 형이 영진위 위원이기 때문에 모든 변화의 폭풍, 그 핵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본 관점일 거다. 난 다른 견해다. 같은 견해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지. 거칠게 표현하자면, 한국영화산업에도 정교하게 평균이윤율저하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자본이 커진다 해도 이윤이 약속되는 건 아니고 더 많은 노동을 가져간다. 70년대 한국영화는 영화자본가들의 해방구였고 80년대에 기업과 처음 만났다. 기업의 논리가 영화산업에 작용하게 됐고, 영화가 미디어산업이 되고, 텔레비전, 케이블과 비디오 등과 접합되는 순간, 방치됐던 이 시장이 정교한 방식으로 잉여가치를 만들며 움직이는 과정에서 개인이 느끼는 허탈함, 박탈감은 당연한 것이다. 더 커다란 문제는 한국영화산업이 100만, 2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고 해서 새로운 잠재관객을 끌어들였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난 반대다. 그건 영화가 특정관객의 문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럴 때 문화산업은 황혼기를 맞는다고 생각한다. 더이상 젊은이들에게 관심없는 문화가 되면서부터, 에너지가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상적인 풍경은, 90년대 초에는 영화관을 문제삼지 않았지만, 90년대 후반엔 영화가 나빠도 좋은 영화관을 찾는다는 것이다. 영화관의 분위기, 거기서 쓰고 싶은 시간이 중요해지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IMF가 다가오기 전에 사람들이 누렸던 그 레저타임을, 더이상 소비할 수 없어서 후퇴하였으나 전과 같은 방식으로 소비하고픈 욕망의 허영이란 느낌을 받는다. 사실 레저라는 것은 노동시간과 레저시간 사이에 미묘한 접점 사이에서 마련된다. 일반 노동자들이 소비할 수 있는 접점이, 영화보고 밥먹고 데이트하고 주차비내고 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결정된 것이다. 문제는 이 산업을 주도해야 할 젊은이들이 놀거리는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교회를 제외하면 서울 거리를 새벽까지 밝히고 있는 곳은 게임방뿐이다. 90년대 초반엔 비디오방이었다. 빠른 속도로 옮겨온 것이다. 젊은이들이 욕망을 소비하는 그 구조가 구멍가게 수준이 아니라 거대한 산업자본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영화는 거꾸로 허약해지고 있다. 90년대 초반에는 타르코프스키, 키아로스타미,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를 개봉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더이상 볼 수 없다. 연말에 영화베스트 10을 뽑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는 영화 애호가들이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영화제뿐이다. 영화제는 거꾸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해방구가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게토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한국의 영화산업은 너무나 자본주의적이다. 김 | 정확한 지적이다. 내 관점은 산업과 문화를 동시에 진흥한다는 모순된 직무 때문에 개별사업에 적용하는 방법을 찾는 입장이라 그랬던 것 같다. 영화제가 게토가 되고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영화산업과 유착해 예술영화 마케팅의 초석이 되는, 시장에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게 뉴욕영화제나 칸영화제의 기능이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영화제는 산업의 논리에서 소외된 영화들의 해방구다. 흥미로운 변화가 한 가지 있다. 영화제는 대부분 작품 상영료를 안 줘왔다. 판권 소유자도 영화제가 그 영화의 마케팅의 가치를 높여주고 홍보효과도 있으니까, 별도의 비용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부천영화제도 그랬고. 그런데 점점 그럴 수 있는 영화가 줄어든다. 그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영화제가 너무 많다는 거다. 괜찮은 영화는 일년 내내 영화제를 돌아야 하는데, 보도자료와 프린트 발송 등 잔일이 너무 많아서, 영화제 전담기자를 두어야 할 판이란다. 두 번째 이유는, 부가가치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틈새시장이 줄어들었다는 거다. 영화제 관객 이상의 볼륨을 기대할 수 없는 거다. 예컨대 어떤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500명이 봤다면 그게 그 나라에서 볼 만한 사람이 다 봤다는 거다. 영화제 출품이 마케팅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하는 관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건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한국영화가 문화로서 산업으로서 과연 희망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단편 제작이 늘어나고, 영화관련학과도 늘어나고, 해외영화제 출품도 잦아지고, 해외시장에서도 제작비를 도울 만한 회수가 가능해지고, 공공기관이 영화진흥정책도 운영한다. 영화제에서 만난 다른 아시아 영화인들은, 이런 한국영화계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본다. 하지만 영화 문화 차원에선, 낙관할 수 없는 조짐들이 보인다. 영화는 속성상 상업영화의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진다. <시민케인> <집시의 시간> <화양연화> <전함 포템킨>도 어떤 의미에선 상업영화로 만들어졌고, 당대 관객에겐 오락의 수단이고 제작자들에겐 이윤추구의 수단이었을 거다. 상품으로서 생명이 끝난 뒤에 예술로서의 새로운 평가를 하는 것이, 상업영화 시스템 속에서의 속성이다. 그렇다면 한국영화,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의 영화들 중에는 어떤 영화가 당대를 증언하고 반영한 영화, 예술의 진정성에 대한 증거로 후대에 살아남을까.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우리가 그토록 규탄해 마지않았던 낡은 질서가 지배했던 70, 80년대 영화들 가운데 지금 의미있는 작품으로 남은 것들을 생각하면 과연 지금이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EBS에서 <한국영화걸작선>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난 60년대가 한국영화의 전성기였다는 걸 믿지 않았다.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아니라, 한국의 오락산업이 유일하게 영화였다. 산업으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60년대는 한국영화가 행복하게 만들어지고 행복하게 만났더라. 지금 한국영화가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권력 때문인지 시장의 요구 때문인지, 예술적인 영화와 상업적인 영화의 분명한 이분법이 존재한다. 60년대에는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가 있었을 뿐이다. 지금이 한국영화의 중흥기라고 하지만, 그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독립영화의 활성화나 다변화, 또 디지털 키드들에 의해 주도될 새 시대의 영상문화가 이러한 상업영화의 헤게모니를 흔들고, 우리가 생각하는 넓은 의미의 영화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인 역할을 하는 데 힘이 될지는 아직 지켜봐야 될 일이다. 정 | 지금 이 세대들이 헤게모니를 만들어가는 그 중심점으로 들어왔다. 영진위에 들어간 분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홍준이 형, 장산곶매('여기서 방점은 장산곶매에 붙습니다'라고 강조)였던 이은, 이용배씨, 함께 일했던 이연호씨 등등. 이 사람들이 이전 영진공에 비하면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의사결정을 하고, 투명하게 진행하고 있지만, 왜 관객들을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가. 중요한 건 그 영화문화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건 관객이고, 관객이 영화를 올바르게 사랑해줄 때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다양한 문화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지금 의사결정은 당장의 산업부흥에 모든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다. 지적한 문제에 대해선 공감한다. 그런데 한국영화가 허약해져가는 것은, 안정된 구조 속에서 점점 더 독점자본화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걸 정부가 지원한다? ‘영화’를 떼면, 정경유착이다. 다소 심한 표현을 한 것일 수 있지만, 영화를 보고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아무 혜택도 못 받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뇌관을 건드린 건가. 김 | 전적으로 동감한다, 개인적으로. 위원이 위원으로서 일할 때 개인적인 성향이나 관객으로서 누리고 싶은 혜택이 우선시되는 배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공적 자본을 집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영진위가 지금 형태로 개편된 것은 정부의 지원이 따르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는, 선언적으로 영화산업과 문화를 진흥한다는 것이다. 암묵적인 동의의 상당부분이 산업에 방점이 찍혀 있을 것이고, 사회적 합의가 언론과 기관과 개인을 통해 영화계 전체의 의견으로 진흥위원에 도달해 오는데, 그중 산업의 논리와 산업의 목소리가 크다. 개인적으로는 산업의 논리라는 큰목소리에 짓눌려 정말 해야 하는 영화문화를 위한 일들을 할 여력마저도 박탈당하는 것을 막아내는 데 급급했던 것 같다는 반성을 해본다. 여기서 애매한 문제가 발생한다. 위원들끼리 합의해서 만들어내면 되는 것일까. 그럴 수만 없는 것이, 여러 가지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의 어려움 때문이다. 책임 회피일 수도 있지,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것은 정책을 통해서다. 새롭고 다양한 방식의 충분한 지원이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수혜자가 될 사람들이 그 자신이 수혜자라는 걸 알고 받아가 주는 일이다. 수혜의 차원이 아니라 권리의 차원에서 주장하기 위해서는, 면밀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자료를 확보하고 논리를 개발하고 무엇보다 결집된 힘을 갖고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정 | 정견 발표같다. 산업논리 속에서 낭만적인 영화광들의 전투를 보는 것 같아 매우 마음아팠다는 얘기다. 문화산업론을 얘기하면서 한국영화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지난 한해 동안 내가 좋아한 영화들은, 물론 내 안목이 절대적이란 건 아니지만, 공통적으로 흥행에 실패했더라.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담론들이 예전에는 문제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질문을 끌어내고 던졌으나, 최근의 공통적인 특징은 흥행의 경기장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산업의 10종 경기에서 승리한 자만이 모든 것을 얻는다는 거다. 이 힘의 논리가 해외에 한국영화를 알리는 데도 적용된다.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들을 주목하고 또 가져간다. 한국 대중에게 선택받은 영화를 통해 한국을 읽으려는, 알 수 없는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다. 이런 시선이 한국영화산업 속에서 흥행을 부추긴다. 더욱더 위험한 것은, 이 산업이 팽창하는 가운데, 젊은 친구들이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독립영화가 제 수명을 다하고, 어느 날 인디영화가 출현했다. 한국의 독립영화는 단순히 인디영화라고 하기엔 부족한 역사성이 있지 않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역사성이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영화제를 통해 뜨고 주류영화로 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고, 충격적인 소재를 끌고 들어와, 하여튼 눈에 들려 한다. 언론이 호들갑을 떨면 대중이 몰리고, 반응을 얻으면 제작자가 컨택해 오는데, 영화 만드는 이들이 게임의 규칙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영화에 대한 담론들은 대중의 욕망에 관한 담론들, 산업에 대한 담론들이 돼가고 있다. 누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 정책에 적잖은 기대를 했고, 정책결정자들의 이름에 기대했다. 아직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단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80년대의 교훈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노력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 우리나라의 영화에서 정책이란 것, 영진위라는 것은 그만큼의 판도를 결정지을 만큼의 권력을 갖고 있는지. 약하다. 여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것도 있고, 정책 자체가 명백한 철학과 오랫동안 축적돼온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시행착오를 저지르며 배울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시행착오만이 확대돼 보여지고 이야기되는 건 아닐까. 정 | 아버지가 없었는지, 나약한 아버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아버지가 죽지 않고 계속 형들을 호명하고 있다는 거다. 그 형들이 우리가 타협하길 바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방식으로 아버지와 작별할 것인가, 물리쳐버릴 것인가에 대해서 자꾸만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형들이 사소한 것들에 사로잡혀 아버지와 싸우지 않는다. 요즘 한국영화가 보이는 두 가지 공통적인 특징은, 사소한 것에 대한 질문, 그리고 주인공들의 죽음에 대한 나르시시즘이다. 죽는데 주변 사람들이 말리지 않는 모습들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 병장이 불현듯 자살했다. 감독은 이들을 만나게 해주려 했다지만, 살아도 상관없는 사람을 기어이 죽였고, 그것에 대해 대중은 침묵을 지킨다. <비천무>에서 주인공은 하여튼 죽는다. 부모는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고. 아들은 부모의 죽음을 보면서 저항하지 않는다. <리베라 메>에서 주인공은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간다. 또 한명의 소방관도 그저 나르시시즘을 느끼듯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박하사탕>은 더할 나위 없이 죽음으로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단절을 요구하는 대중의 욕망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용기가 없어 보인다. 사소한 고민에 끈질기게 매달려 거꾸로 큰 고민을 잊고 있다. 이것이 지금 한국영화의 시대정신이 아닌가. 영화와 영화인들 사이에 침묵의 합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요즘 유행처럼 이야기지어진 ‘일상성’이, 지금 영화를 하고 있는 우리의 시대정신은 아닌가.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은 죽음을 바라고, 제작자들은 관객이 그걸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들이 한국영화에만 나타나는 특별한 징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