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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대륙의 바람이 분다 [5]

홍콩의 차세대 작가와 감독들 1990년대 중반 이후 젊고 새로운 영화인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했지만, 이들은 홍콩 영화계 전체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홍콩 영화산업이 그 역사 전체를 통틀어, 그리고 그 황금기였던 80년대에 특히 노동자-서민계층의 감수성과 기층 정서에 강하게 지배되어왔다는 점일 것이다. 주윤발이나 성룡, 오우삼 감독 등과 같은 당시의 대스타들 대부분이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간 홍콩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상당 부분 중산층화되었음에도 홍콩 영화업계는 관객의 바뀐 취향에 적응하지 못했다. 최근 홍콩에서 한국영화가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한국영화가 현대의 중산층적 생활 양식을 홍콩영화보다 성공적으로 포착해내고 있다는 점이 작용한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홍콩의 영화업계가 적응을 위한 고군분투 끝에 찾아낸 하나의 탈출구가 바로 로맨틱코미디 장르이다. 이 장르의 영화들은 일본 TV드라마의 영향을 일정 부분 받아들이면서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그 전환점은 두기봉-위가휘 팀의 2000년작 <고남과녀>(孤男寡女, Needing You)와 2001년작 <수신남녀>(瘦身男女, Love on Diet)였다고 할 수 있겠다. 두 작품 모두 그 호칭조차도 일본 드라마를 통해 소개된 이른바 ‘OL’(Office Lady) 인구들의 열광적인 지지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두 작품의 성공 이후 홍콩 영화계에서는 여성 취향의 코미디가 돈벌이를 위한 주요 소재가 되었다. 정수문(鄭秀文, Sammi Cheng), 양천화(楊千嬅, Miriam Yeung), 그리고 여성 듀오 ‘트윈즈’ 등이 이 장르의 주요 스타이다. 한때 남성 위주의 액션물과 폭력적인 무술영화에 의해서 완전히 규정되었던 홍콩 영화계는 현재 성(性)의 균형에서만큼은 좀더 균형 잡힌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수년간 홍콩 영화계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작가와 감독들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미래에 홍콩의 영화산업을 어느 정도까지 회복시킬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어려운 영화산업 속에서 적은 예산과 제한된 자원만으로 영화를 만들면서도 이들은 대중의 변덕스러운 취향에 민첩하게 적응하며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비록 이들 중 그 누구도 아직은 서극이나 왕가위, 진가신 등과 같은 예술적 혹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홍콩의 영화산업이 완전한 붕괴 상황을 맞는 것을 바로 이들이 막아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속 극장을 찾도록 홍콩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이들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에서 이들 중 주목할 만한 몇몇 새로운 감독들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기초가 탄탄한 카멜레온 >> 엽위신(葉偉信, Wilson Yip) 1980년대부터 도제식 수련을 받으며 영화계에 입문했지만 이후 시대의 변화에 절묘하게 적응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다재다능한 감독이다. 그는 공포영화 (1995)이나 갱스터영화 <왕각풍운>(旺角風雲, Monkok Story, 1996), 액션호러물 <생화수시>(生化壽屍, Bio Zombie, 1998) 등과 같이 기존 홍콩영화의 관습에 충실한 영화들로부터 감독 경력을 시작했지만, 최근 들어 중산층적 감수성을 의도적으로 선명하게 반영한 액션영화 <신투차세대>(神偸次世代, Skyline Cruisers, 2000)와 (2001), 그리고 젊은 관객층을 겨냥한 코미디물 <건시열화>(乾柴烈火, Dry Wood, Fierce Fire, 2002) 등을 통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근작 <오개혁귀적소년>(五個??鬼的少年, Mummy, Aged 19, 2002)은 예상외로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비평가들로부터도 호의적 평가를 끌어냈다. B급 로맨틱코미디의 대가 >> 마위호(馬偉豪, Joe Ma Wai-ho) 마위호 감독 역시 1980년대부터 영화계에서 활동해왔지만 가히 예외적이라 할 만큼 성공적으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한 중년 감독이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90년대 들어 감독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는데,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당시로서는 주류 장르라 할 수 없었던) 일련의 10대 로맨스물들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의 <백분백암>(百分百岩Feel, 100% Feel, Once More, 1996)이나 <백분백감각>(百分百感覺, Feel 100%, 1996), <초련무한>(初戀無限touch, First Love Unlimited, 1997) 등이 흥행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들이다 보니 대단한 수익률을 기록했고, 이를 계기로 그는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된다. 로맨틱코미디를 선호하는 그의 성향은 현재의 시장상황 속에서 상당한 장점으로 작용했고 그가 최근 수년간 만들어온 중저예산의 작품들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 성룡이 출연한 진목승 감독의 <뉴 폴리스 스토리>(사진 위). 한동안 연출 일선에 떠나 있던 그는 홍콩에서 큰 인기를 얻은 <쌍웅>(사진 아래)으로 연출에 복귀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옥녀첨정>(玉女添丁, Dummy Mommy, Without a Baby, 2001)이나 <신찰사매>(新紮師妹, Love Undercover, 2002) 같은 작품들 통해 양천화(楊千嬅, Miriam Yeung)가 이 장르의 스타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그는 2001년에 4편, 2002년에 2편, 2003년에 3편을 연출하는 등 다작 감독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데 그의 최근작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지하철>(地下鐵, Sound of Colours, 2003)이다. 영리한 작가주의 사업가 >> 진경가(陳慶嘉, Chan Hing-kar) 진경가는 오우삼의 <영웅본색>(1986)이나 성룡의 <썬더볼트>(1995), 진가상(陳嘉上, Gordon Chan)의 <야수형경>(野獸刑警, Beast Cop, 1998), 이연걸의 <히트맨>(1998) 등을 집필한 바 있는 유명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감독이다. 그가 연출을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인데 데뷔작 <절세호>(絶世好Bra, La Brassiere, 2001)와 후속작 <절세호B>(絶世好B, Mighty Baby, 2002) 같은 중저예산 규모의 로맨틱코미디로 성공을 거두었고, 지난해에는 <연상니적상>(戀上??的床, Good Times, Bad Times)과 <호정>(豪情, Naked Ambition) 두편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렇게 감독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2002년작 과 2003년작 등이 그가 쓴 작품이다) 그는 자신이 집필하거나 연출하는 작품의 프로듀서를 스스로 겸하면서 자기 작품에 있어서의 예술적, 사업적 권한을 영리하게 확보하고 관철시켜나가고 있다. 액션 장르에서의 뛰어난 세공력 >> 진목승(陳木勝, Benny Chan) 아마도 진목승 감독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성룡의 C.I.A>(Who Am I?, 1998)일 것인데, 이처럼 그는 액션 장르에서의 뛰어난 세공력으로 널리 인정받아온 감독이다. 그는 거장 두기봉 감독과 함께 작업하며 그에게 사사받았고, 역시 두기봉 감독의 도움 아래 <천약유정>(天若有情, A Moment of Romance, 1990)으로 데뷔했다. 데뷔 이래로 꾸준히 중소 규모의 액션영화들을 찍으며 활동하던 그에게 전환점이 된 작품이 <충봉대─노화가두>(衝鋒隊─怒火街頭, EU Strike Force, 1996)이다. 이 작품을 인상 깊게 본 성룡이 그를 <성룡의 C.I.A>의 공동감독으로 발탁한 것. 이후 그는 <젠 엑스 캅>(1999)과 후속편 <젠 와이 캅>(2000)(젠 엑스 캅2????)으로 큰 흥행 성공을 거두는데, 이 시리즈물의 성공은 뛰고 달리는 기존 액션물의 공식 속에 홍콩 사람들의 변화된 중산층적인 감수성을 성공적으로 녹여냈기 때문이다. 진목승은 한동안 연출 작업을 떠나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에 전념했는데(2002년작 <천정선생>(賤精先生,If You Care)이 그가 프로듀싱한 작품이다) 다시 지난해 <쌍웅>으로 연출 일선에 복귀했다. 올해는 그에게 또 다른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얼마 전 성룡과 함께 <뉴 폴리스 스토리>의 촬영을 마쳤고, 영화는 올해 하반기에 개봉될 예정이다. ▲ <이도공간> (위) ▲ <젠 엑스 캅> (아래) 장가수, 연기, 연출 '팔망미인' >> 지시 구 비(GC Goo Bi) 감독이기 이전에 최고의 인기 라디오 DJ이자 ‘트윈즈’의 멤버인 ‘지시 구 비’는 새롭게 등장한 홍콩 영화인들 가운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명일 것이다. 그녀는 옴니버스영화 <연애기의>(戀愛起義, Heroes in Love, 2001)의 3부작 중에서 <오 지!>(Oh G!)라는 단편을 만들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영화적 직관과 당시로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채탁연(Charlene Choi)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녀는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방송되던 인기 연재드라마 코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메리-고-라운드>(Merry-Go-Round, 2001)의 시나리오를 썼고 (그리고 영화 내용의 대부분을 스스로 연기했다), 2003년에는 다시 의 시나리오를 쓰는 등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바쁜 일정을 쪼개 영화 연출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녀는 홍콩 영화계의 핵심 인사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도공간>으로 입지 다진 기대주 >> 나지량(羅志良, Law Chi Leung) 방송사의 프로덕션 스탭으로서, 그리고 이후에는 영화 조감독으로서 오랜 기간 숱한 제작 경험을 쌓은 나지량은 1995년 <열화전차>(이동승 감독)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오랜 스탭 생활을 접은 뒤, 이듬해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고 ‘노장’ 이동승과 공동감독한 <색정남녀>(1996)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다. 잠깐의 공백기를 거쳐 그는 액션영화 <쟁왕>(Double Tap, 2000)으로 연출 일선에 복귀하는데,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장르적 세공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이후 장국영이 출연한 <이도공간>(2002)을 통해서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홍콩에 대륙의 바람이 분다 [6]

자석 같은 마력을 지닌 젊은 그녀 >> 황진진(Wong Chun-chun) ▲ 성룡이 출연한 진목승 감독의 <뉴 폴리스 스토리>(사진 위). 한동안 연출 일선에 떠나 있던 그는 홍콩에서 큰 인기를 얻은 <쌍웅>(사진 아래)으로 연출에 복귀했다. 홍콩 영화계의 신성이라고 할 수 있는 황진진은 지난해 완성한 저예산영화 <육루후좌>(六樓后座, Truth or Dare: 6th Floor Rear Flat, 2003)를 통해서 홍콩 영화계에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흥청망청 몰려다니며 취한 채 ‘진실 혹은 대담’ 게임에 몰두하는 20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목적없이 방황하는 동세대 젊은이들의 정서를 훌륭하게 포착해내며 뜻밖의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황진진은 직관과 수완을 갖춘 감독으로 독립영화 제작 방식으로 만든 <여인나화아>(女人那話兒, Women’s Private Parts, 2001)를 통해 처음 주목받은 뒤 저예산영화 <주화창>(走火槍, Runaway Pistol, 2002)에서는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녀의 최신작은 얼마 전 개봉한 <견습흑매괴>(Protege de la Rose Noire, 2004)인데, 이 유쾌한 코미디를 통해 그녀는 자신에게 홍콩 젊은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어떤 자성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독특한 스타일리스트 >> 정보서(鄭保瑞, Cheang Pou-Soi) 홍콩의 새로운 영화인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존재 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서 감독은 1999년 DV로 작업한 영화 <제100일>(第100日, Our Last Day)로 데뷔했는데, 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뛰어난 영화 테크닉을 과시했다. 몰락해가는 공동체에 관한 사실주의적 드라마였던 그의 2000년작 <발광석두>(發光石頭, Diamond Hill)는 비록 흥행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지만 관객에게 신선한 자극을 던져주면서 그가 주류 상업영화인 <열혈청년>(熱血靑年, New Blood , 2002)을 연출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열혈청년> 역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사실 그것은 작품보다는 마케팅 부재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이 작품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갖춘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데는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그는 팝듀오 ‘트윈즈’가 캐스팅된 <고댁심황황>(古宅心慌慌 , Death Curse, 2003)의 연출자로 발탁되었고(‘트윈즈’의 출연은 그 자체로 일정 정도의 흥행을 보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호러의 틀 속에 코미디 요소를 훌륭하게 가미해냄으로써 자신이 젊은 감수성에 대해 확실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끊임없이 향상을 거듭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신진 기수라는 점을 확인시켜주었다. 10대 아이돌, 감독이 되어 돌아오다 >> 풍덕륜(馮德倫, Stephen Fung Tak-lun) 오랜 연기 경험을 갖춘 10대 아이돌 스타 출신의 풍덕륜은 대중문화 속에서 연기자와 대중 가수로 굳어진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 한동안 ‘드라이’라는 밴드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솔로 활동을 통해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스타의 반열에 올랐던 것도 아니고 자신의 연기력을 크게 인정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수려한 외모와 깔끔한 이미지 덕분에 그는 홍콩의 팝컬처 속에서 줄곧 탄탄하게 자신의 위치를 유지해왔다. 그가 영화 만들기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작 옴니버스영화 <연애기의>(戀愛起義, Heroes in Love)를 통해서인데, 여기서 그는 동료 틴 아이돌 스타인 사정봉(謝霆鋒, Nicholas Tse)과 함께 공동으로 라는 에피소드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았다.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었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자신이 영화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고 있음을 입증해 보였고, 다시 자신의 첫 장편 연출작이 될 <엔터 더 피닉스>(4월 개봉예정)를 통해서 진정한 감독으로 평가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 '트윈즈'가 주연했던 정보서의 <고댁심황황> 사랑에 대한 섬세한 시선 >> 엽금홍(葉錦鴻, Riley Yip Kam-Hung) 오랜 기간 영화업계에 종사해왔지만 엽금홍 자신의 작품을 만든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는 1980년대 초반 쇼브러더스의 직원으로 업계에 들어와 이후 주로 프로듀서로서 일해왔는데 관금붕 감독의 <지하정>(1986)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그는 로맨틱 코미디영화 <비일반애정소설>(飛一般愛情小說, Love is not a Game, but a Joke)을 통해 1997년에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이 시기는 홍콩 영화계가 액션 일변도에서 점차 가벼운 소재들로 방향을 전환해가던 시기였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액션 연출보다는 사람들간의 관계 묘사에 좀더 치중하는 그에게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주었고 후속작 <반지연>(半支煙, Matade Fumaca, 1999)을 통해 두 주인공 증지위와 사정봉 사이의 긴밀한 교감을 절묘하게 포착해 각광받았다. 엽금홍 감독은 2000년작 <라벤더>에서도 화려한 미술과 유려한 촬영술을 통해 감상적인 사랑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냈고, 여성 관객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의 최근작인 <일록자>(一碌蔗, Just One Look ,2002)는 1970년대를 관통하는 향수 어린 여정의 드라마인데 이 작품 역시 관객으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이외에도 <파리소녀>(Glass Tears, 2001)와 <연지풍경>(戀之風景, The Floating Landscape, 2003)을 연출한 여묘설(黎妙雪, Carol Lai), 감독이자 소설가와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다방면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팽호상(彭浩翔, Edmond Pang)(그는 <너는 찍고, 나는 쏘고>(You Shoot, I Shoot, 2001)와 <대장부>(大丈夫, Men Suddenly in Black, 2003)를 연출했다), <맥두 이야기> 시리즈를(<맥두고사>(麥兜故事, Life as McDull, 2001)와 곧 개봉될 <맥두무당>(麥兜武當, McDull, Pineapple Bun Prince, 2004)) 만든 시나리오 작가 겸 프로듀서 사립문(謝立文, Brain Tse)과 감독 원건도(袁建滔,Toe Yuen Kin To) 팀, 친숙한 드라마 연출로 주목받고 있는 임애화(林愛華, Aubrey Lam) 감독(<십이야>(Twelve Nights, 2000)와 연출) 등을 홍콩 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신진 세력으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국적을 지닌 샘 호(Sam Ho)는 홍콩, 휴스턴, 텍사스를 오가며 평론가 및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홍콩에서 한국고전영화 특별전을 프로그래밍하기도 했다. 또 그는 홍콩중문대학 영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최근 이란 책을 펴냈다.

시대착오적 남성주체와 영화산업의 영리한 만남, <태극기 휘날리며>

하나의 ‘사건’이 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 <태극기 휘날리며>는 탄생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한편의 영화가 크게 흥행에 성공하면서 ‘사회 현상’이 되는 일을, 우리는 근래의 한국영화 속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해왔다. 그러나 이 영화처럼 개봉과 동시에(어쩌면 그 이전부터) 자신을 하나의 사회문화적 사건으로 당당하게 내세웠던 영화는, 적어도 이제까지의 한국영화에는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개봉과 동시에 감독과 주연배우를 일반 시사주간지에 표지모델로 등장시켰던 한국영화는 없다. 흥행의 결과와 상관없이,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미 하나의 사건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를 단순히 한편의 영화로 마주 대할 수 없다. 이 거대한 현상 앞에서 좁은 의미에서의 ‘영화비평’이란 무력할 뿐이다. 사건이란 언제나 하나의 ‘징후’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좁게는 현 시기 한국영화의, 넓게는 현 시기 한국사회의 징후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탄생은 한국 현대사의 최대 ‘외상’(trauma)인 한국전쟁의 반복적 귀환이면서, 동시에 현 시기 한국영화(자본)의 ‘욕망’을 드러내는 징후적 사건이다. 형제애/부성애 = 전근대적인 ‘가문’의 논리 <태극기 휘날리며>는 불가사의하게도(또는 의미심장하게도) 땅에 묻혀 있던 ‘유골’(遺骨)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50년간 묻혀 있던 유골이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 하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개봉되었던 <바람난 가족>도 50년 묵은 유골의 발굴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똑같은 세월을 땅에 묻혀 있던 그 유골들은 두 영화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바람난 가족>에서의 그것은 이제는 벗어나야 할 과거의 무게이자 짐의 상징이었다. 그것의 발굴은 완치되지 못한 과거 상처의 재발이었다. 영화의 초반부, 남자주인공 영작은 실족하여 유골을 파낸 구덩이에 빠진다. 그는 필사적으로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데, 그 허둥대는 몸짓은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그의 행적이기도 하다. 과거의 외상적 사건의 흔적으로서의 그 유골은, 그냥 땅에 묻혀 있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병든 아버지이기도 했다. ‘한국적’ 가부장제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군사적’ 가부장제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끈질긴 생명력은 무엇보다 한국전쟁이라는 외상적 사건으로부터 수혈을 받아왔다. 그것은 반세기 가깝도록 유지되어온 군사독재(이른바 ‘한국형 민주주의’)를 밑으로부터 뒷받침해온 ‘풀뿌리’이고 토대였다. 이제 병들어 죽어가는 아버지, 그는 아직도 살아 있는 유골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바람난 가족>의 새로운 ‘바람’은 그 아버지의 임박한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가슴 절절한 ‘형제애’(brotherhood, 이것은 6월로 예정되어 있는 이 영화의 일본판 제목이기도 하다)는 그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애절한 형제애에 몇번인가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끝내 그 의미를 이해(납득)할 수가 없어 당혹스러웠었다. 그 형제애는, 동시대 서구인들에게뿐만 아니라 동시대 한국인들에게조차 낯설게 느껴질 만큼 그렇게 지고지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약혼녀 영신(이은주)의 죽음에도 흔들리지 않던 진태(장동건)가, 동생 진석(원빈)의 죽음에는 절망 끝에 태극기를 버리고 인공기를 택하게 된다. 형 진태의 동생 진석에 대한 자기희생적인 애정은 곧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그것이다. 사실, 진태가 보여주는 형제애=부성애는 근대적인 ‘가족’의 논리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그의 동생에 대한 애정이 진정 가족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는 남아 있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자신이라도 살아남는 길을 택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전근대적인 ‘가문’의 논리에 더 가깝다. 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희생하고자 하는 진태의 태도는, 가족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가문의 영광’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당면한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어쩌면 그것을 희생하면서까지), 될성부른 동생을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가문의 부활과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고 한다. 어쩌면 바로 여기에 그 불가사의한 ‘유골 시점’의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 순도 높은 형제애(가문 의식)는 오로지 50년 전 유골의 시점으로 볼 때만 그나마 납득할 만한 것이 된다. 여기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첫 번째 ‘영리함’이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꿈틀대던 한국영화(자본)의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한 욕망은, 그 ‘유골’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세계시장을 넘보기 위해서는 스스로 ‘대물’(大物)이 될 수 있어야 하고, 대물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성적인 ‘거물신화’(巨物神話)가 필요하다. 한국전쟁(또는 그 끈질긴 후유증)은 그 남성적 거물신화의 마르지 않는 수원지인 셈이다(길게는 <쉬리>에서부터, 짧게는 <실미도>에 이르기까지).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 신화의 완성을 위해 철저하게 ‘여성’을 지워버린다. 어머니는 말을 잊어야 한다. 그 어머니는 “둘 다 소중한 내 자식”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조차 없는 모호한 모성적 주체가 된다. 형 진태는 자신의 신화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어머니가 바라는 것은 내가 아닌 너”라고 동생 진석에게 암시한다. 약혼녀는 자신의 ‘정조’를 변명하면서 죽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죽음은 두 형제의 갈등 폭발의 기폭제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이 영화가 비극적 영웅 서사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희생이기도 하다. 방어적 환상으로서의 영웅 서사 현 시기 한국영화(자본)의 욕망의 현시인 <태극기 휘날리며>가 곳곳에서 수많은 할리우드판 전쟁영화를 상기시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여러 가지 점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을 떠오르게 한다. 현재-과거-현재의 액자형 서사구조가 그러하고, 거대한 원경(long shot)을 통한 규모의 스펙터클보다는 전장 속을 누비는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한 클로즈업의 미학에 집착하는 모습이 그러하다(특히 바로 옆에서 귓등을 스치며 지나가는 듯한 총알소리의 현장감은 너무도 닮아 있다). 더욱이 두 영화는 모두 한명의 ‘일병 구하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것들은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영화 자신이 과시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극기 휘날리며>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어설픈 모방품인 것은 아니다. 그 기술적 근접성은 불과 1/10에 불과한 제작비로 성취된 것이기에 감탄스러운 것일 수 있다(영화의 속내가 어찌됐든 수많은 스탭들의 피와 땀과 헝그리 정신의 산물일 그 성취는 평가되고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짜 ‘창조성’은 다른 곳에 있다. 두 영화의 드라마는 모두 ‘일병 구하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의 그것은 단 한명의 생명(단 하나의 가족의 존속)조차 소중히 여기는 체제의 온정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작전에 동원된 병사들은 끊임없이 ‘단 한명을 구하기 위해 8명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자신의 임무에 대해서 회의한다. 하지만 그 회의의 여정은 스필버그식(할리우드식) 휴머니즘을 통해 극복되며, 그 영웅적 희생의 드라마는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휘날리는 성조기(미국식 국가주의)’를 통해 감동적으로 추인된다. 그러나 정작 <태극기 휘날리며>에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휘날리는 태극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한 가족의 생존(가문의 존속) 따위는 철저히 무시하는 체제로부터 가문의 희망(동생 진석)을 구하고자 한 가부장적 주체가 벌이고 있는 도전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그의 생존 본능(사명 의식)은 체제와 이념을 넘나든다(그는 태극기뿐만 아니라 인공기도 흔들어댄다). 여기에 이 영화의 두 번째 ‘영리함’이 있다. 그러나 그 체제에 맞서는 한 주체의 영웅적 정서는 오로지 우리가 과거의 시점(유골의 시점)에 설 때에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과거의 시점에 기댄 환상을 긍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그것을 형제애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한국전쟁(같은 핏줄, 형제끼리의 전쟁)에 대한 과잉보상으로서의 방어적 환상으로 이해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때늦은, 시대착오적인 환상일 뿐이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부추기는 가부장적 정서로의 퇴행이 그다지 염려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절절한 형제애=부성애가 현재의 우리를 조금이라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시대착오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현재가 아니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 그 한 순간의 매혹이 현재의 우리의 삶을 위협하거나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다. 정작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느꼈던 모종의 두려움의 기원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가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는 한국영화(자본)의 확대재생산의 욕망이다. 그것은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집어삼킬 수 있는 눈 먼 욕망으로 보이기에 두렵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보편적 휴머니즘(형제애)로 포장할 수 있을 만큼 영리한 것이기에 두렵다. 그것은 한국영화의 장래라는 명목으로 일종의 신종 국가주의를 부추기는 것이기에 두렵다. 반드시 한국영화의 미래가 ‘할리우드’여야만 하는 것일까? 세상에 ‘할리우드’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족한 것이 아닐까?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 아닐까? <태극기 휘날리며>는 현 시기 한국영화(자본)의 그릇된 욕망의 징후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감동적인 형제애보다는 <바람난 가족>의 그 발칙한 부정의 몸짓에 한국영화의 미래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격렬하게 깨줘! 액션! - <가족> 촬영현장을 가다

지난 2월13일 수원의 한 나이트 클럽 앞에서 <가족> 촬영이 한창이다. 갑작스레 스산해진 바람이 매서워선지 두뺨이 발갛게 얼어 있는 수애는 뜨거운 물을 담은 물병을 소매 속에 넣으면서 연신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극중에서 정은(수애)은 막 출소해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전과 4범의 전직 소매치기이다. 옛 동료였으나 지금은 범죄조직의 보스가 된 창원(박희순)이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족을 위협하자 그녀는 그의 위협에 맞서서 가족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한다. 이날 촬영분은 창원을 만나기 위해 나이트 클럽으로 찾아간 정은이 출입문의 창을 부수는 장면이다. 유리를 쇠파이프로 깨부수는 위험한 장면이기 때문에 감독과 스탭들은 사뭇 긴장한 표정이나 정작 수애의 표정은 담담하다. 여러 차례 창문을 깨는 동선을 연습하고 창의 안과 밖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지루한 작업이 지나고 드디어 본촬영이 시작되었다. “강화유리라서 안으로만 튀니까 걱정하지마”라고 수애를 안심시키는 이정철 감독. 스탭들은 유리창의 반대편에서 사진촬영을 기다리는 사진기자들에게 “유리가 튀면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라고 경고한다. 긴장된 순간. 감독의 “액션!”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쇠파이프를 들고 벌겋게 감정몰입한 눈동자를 치켜뜨고 계단을 뛰어올라온 수애는 있는 힘껏 쇠파이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으로 튀는 유리조각들. 몸을 사리지 않고 배역에 몰두했던 수애는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궁금함으로 가득 찬 눈을 하고 모니터로 달려간다. 스탭들이 산산조각난 유리를 새로 갈아끼우는 동안 수애는 첫 번째 촬영 부분을 유심히 돌려보고 돌려보며 진지하게 스탭들과 몇 마디 나눈다. 두 번째 시도. “수애야! 격렬하게 깨줘! 액션!” 감독의 힘있는 외침과 동시에 쇠파이프를 다시 휘두르는 수애. 갈아끼운 창문은 다시 한번 박살이 났다. 첫 번째 테이크보다 더욱 격렬하게 유리를 깨는 수애의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던 스탭들은 놀란 표정이고 감독은 미소를 얼굴에 보인다. 수애는 “무섭지 않았어요, 깨고 나니 속이 많이 시원해졌어요”라고 살짝 웃으며 이야기한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평가받고 싶다”라며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를 수줍게 피하는 이정철 감독이지만 수애의 강단있는 연기에 대한 만족감은 얼굴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새 인생의 출발을 결심하는 전과범 딸 정은과 오랜 병을 앓고 있는, 딸을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좀체 표현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 주석(주현)이 우여곡절 끝에 서로에 대한 가족애를 확인하는 훈훈한 휴먼드라마 <가족>은 올해 4월 말 개봉될 예정이다. 사진 오계옥 · 글 김도훈 △ 촬영이 거듭될수록 자신감을 얻은 수애는 ‘더욱 격렬하게’를 외치는 감독의 요구에 충분히 부응하는 대담한 모습을 보였다. (왼쪽 사진) △ 리허설도 실전처럼 임하던 수애는 두 번째 촬영에서 유리창을 깨다가 문고리까지 부숴 버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오른쪽 사진) △ 수애는 커다랗고 순진해 보이는 눈으로 사람들의 시선에 쑥스러워하다가도 감독의 사인만 떨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바로 ‘정은’ 역에 몰입해, 붉게 상기된 눈으로 카메라를 노려보았다. (왼쪽 사진) △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를 피하는 수줍은 이정철 감독은 마치 스탭들과 배우들의 작은형처럼 현장을 부드럽게 진행해 나갔다. (오른쪽 사진) △ 촬영이 끝날 때마다 달려와서 모니터 속 자신의 연기모습을 체크하는 수애. (왼쪽 사진) △ 얇은 수트 차림으로 쌀쌀한 날씨를 견디며 카메라를 노려보아야 했던 박희순과 엄태웅. (오른쪽 사진)

관객 천만시대, 다양한 영화가 목말라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두편으로 갑자기 찾아온 관객 천만시대. 불현듯 다가온 이 현상에 대해 영화계는 나름의 분석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씨네21에서는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cine21.co.kr)에서 '1천만 관객시대, 당신의 바람은?'이라는 주제로 폴을 열어 일반 영화팬들은 관객천만시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천만시대 한국영화계에 제일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이번 폴은 2월 17일부터 2월 24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총 542명이 참가했다. 가장 호응이 많았던 항목은 52%가 응답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이었다.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관객 천만시대가 가져올 대작영화 붐과 스크린 독점, 그로인한 작은 영화들의 외면을 우려했다. lemonjel님은 '하이퍼텍 나다 같은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고 ivylove7님도 '예술영화를 위한 극장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skokuma님은 '천만시대가 와서 가장 위험한 것은 대작 말고 작은 영화를 보기 어려워진 것'이라고 동의하면서도 '다양한 영화를 열심히 상영해도 결국은 돈 주고 보러 가지 않는 관객의 이중성에도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좋은 감독이나 배우가 많아졌으면'은 22%의 호응으로 두번째를 차지했다. down-x님은 '지금도 좋은 감독, 좋은 배우들이 있지만, 다양한 영화가 나오려면 개성이 남다른 감독과 배우들이 많았으면 한다'고 했고 kiae1120님은 '한해에 겹치기 출현을 하는 연기자들이 많'은 배우 기근 현상을 염려했다. 그 다음으로는 '한국영화의 해외시장 진출이 활발했으면'이 뒤를 이었다. 15%가 호응했고 '조금만 투자를 더해서 해외에 수출하는 일이 더 잦았으면 좋겠다'(stalker11)', 우리 영화도 다른 나라에 보여줄때가 되었다'(namunara99) 등의 의견이 올라왔다. '극장시설이 더 좋아졌으면'은 10%에 그쳐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현재 극장 시설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불만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멀티플렉스들의 공격적인 거점확보와 마케팅이 집근처 관객들을 끌어들였고, 또 멀티플렉스가 최신위락시설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시설 자체에 큰 불만은 없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 영화가 다 점령해버리는데 멀티플렉스에 스크린수가 많으면 무엇하냐'(hyeam), '1편으로 1000만을 모으기 보다는 10편으로 100만 관객을 불러오는게 더 좋다'(only2470) 등의 의견도 많아 멀티플렉스의 한 영화에 대한 스크린 독점을 여전히 경계했다. 관객 천만시대, 네티즌들이 다양한 영화의 볼권리를 강조한 사실에서 볼때 어떤식으로든 '작은' 영화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논리보다는 정책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바람직 할 것이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영화관광 활성화 기회

<쉬리>, <친구>에 이어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흥행작이 속출하면서 도래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영화관광을 활성화하는 호기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됐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5일 `영화관광의 부상과 성공조건'이라는 보고서에서 최근 영화 및 TV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지방자치단체와 여행사 등을 중심으로 세트장, 촬영지 등을 활용해 관광상품화하는데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미도> 촬영세트가 무허가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되는가 하면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정동진의 경우 모텔, 카페 등이 난립하면서 원래 모습이 상당부분 훼손된 사례에서 보듯 영화관광에 대한 인식 부족, 시장 분석 및 전략의 부재로 인한 과잉투자와 환경훼손 등이 영화관광의 활성화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 장소를 관광지로 개발하고 적극 홍보해 외국 관광객을 대거 끌어들인 뉴질랜드를 영화관광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으면서 최근의 한국영화 붐을 관광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영화는 극장 수입과 비디오, TV 방영 외에 관광 수입 창출, 광고 활용 등이 기대되는 고수익 산업이자 상품으로 경제적 파급효과가 막대하지만 즉흥적인 투자는 자칫 예산 낭비와 환경 훼손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세트장 건설, 마케팅 측면에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영화관광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기획을 통해 흥행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유치해 촬영장소를 제공하고 촬영지 홍보, 이벤트 개최 등 체계적인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조언했다. 또 영화장면을 체험할 수 있는 코스를 조성하는 등 촬영지를 테마가 있는 관광지로 개발하고 주변 명소와 연계한 패키지 관광상품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특히 국가 차원에서도 제작과 관광, 소비가 연계된 복합 클러스터를 구축, 동아시아 영화산업의 메카로 육성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서울=연합뉴스)

Good bye 먼로, Hello 마돈나, <…홍반장>의 엄정화

말하자면 그는 마릴린 먼로에게서 좀더 멀리, 마돈나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속도는 느리지만 아주 착실하고 분명하게.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영화에 데뷔하고, 곧이어 1집 앨범 <눈동자>로 가수에 데뷔한 1993년께, 엄정화는 ‘마릴린 먼로’처럼 ‘군인아저씨’들이 특히 열광하는 섹스 심벌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약하고 자기 파괴적이어서 그냥 파멸해버린 먼로가 아니었다. 그뒤 10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와 <싱글즈>의 동미가 되어 성적 욕망의 당당한 주체이자 연대하는 여성성의 화신으로 나타났다. 그 사이 <배반의 장미> <초대> <페스티벌> <포이즌> <몰라>를 거쳐 섹시한 댄스가수의 입지를 단단히 굳히긴 했지만 마돈나처럼 성혁명자이지는 못했고, 더구나 시대를 가르는 독립된 코드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던 그였으니 이건 놀라운 변신처럼 보였다. 그가 시인이기도 한 유하 감독과 10년의 시차를 두고 두편의 영화를 만든 건 의미심장하다(엄정화 스스로 이를 하나의 사건이라고 일컫는다). 전기작가 앤드루 모튼은 마돈나의 창조적 성공이 아방가르드를 일반 대중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는 재능 덕분이었다고 분석한다. 예컨대, 마돈나에게 한 개인으로서, 떠오르는 예술가로서 자각을 갖게 해준 게 뉴욕의 아방가르드 미술가 장 미셸 바스키아와의 만남과 연애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일찍, 연예계에 발을 내딛자마자. 엄정화가 유하 감독을 만난 건 행운이었지만 그보다는 시간의 두터운 켜를 거친 스스로의 자각으로 질적 도약을 이뤘다고 봐야 옳을 것 같다. 5집과 6집 사이, 그러니까 2000년쯤이다. “가수의 전성기였죠. 최고로 바빴던 시기…. 이때를 지나면서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마음이 안정되며 편안해졌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그 좋아하는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우울했지만 이때부터는 술을 마시면 즐거워졌어요. 자신감이 생긴 거죠. 사람을 만나도 나를 뒤로 돌려 한 발짝 물러나 보면서 다른 면을 찾아보는 편인데,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됐어요. 캐릭터가 예뻐 보이지 않아도 매력이 있으면 하고 싶어지는 거죠.” <결혼은,…>에 이어 하필 <싱글즈>를 선택한 이유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3월12일 개봉)에서 보여주는 혜진도 비슷한 맥락의 선택이다. 부잣집 딸에다 의사이긴 해도 그는 얼빵해 보일 만큼 정의롭고 고집불통이며 순수하다. 아버지에게 그동안 받은 돈을 갚기 위해 대학 때 집을 박차고 나간 그가 상류층 의사들의 세계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비록 홍 반장(김주혁)의 지원사격이 없으면 곤란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사고뭉치여서 연희나 동미보다 한발짝 물러난 듯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 그는 동장도, 통장도 아닌 반백수의 반장을 인생의 반려자로 고르는 눈을 가졌다. 차기작으로 선택한 <소년 천국에 가다>(가제)의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굉장히 엉뚱하면서 진실한 여자예요. 상처를 많이 받은 여자이긴 하지만요.” 한 가지 더 주목할 ‘사건’이 있다. 그는 <…홍반장>의 개봉을 앞두고 8집 앨범 발매로 2년4개월 만에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음반 제목이 ‘셀프 컨트롤’이다. 시디를 걸면 그는 당장에 “에브리싱 이즈 체인지드”(Everything is changed)라고 도전적으로, 뇌쇄적으로 되뇐다. 일렉트로니카의 강렬한 비트에 실려오는 ‘모든 게 변했어’란 문구가 과연 우연이었을까? 새 앨범에는 달파란, 롤러코스터의 지누 등이 참여했다. 앨범 전체에서의 비중은 작지만 달파란을 파트너로 끌어들인 건 영화쪽에서 유하와의 만남을 떠올리게 한다. “지누는 예전부터 좀 알았지만 달파란씨는 전혀 몰랐어요. 일렉트로니카를 예전부터 하고 싶었으나 망설이다가 지금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과감히 해야 할 때다 싶어서 여러 음악가에게 곡을 부탁했으나 음악 색깔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달파란씨를 찾아다녔어요. 강남 모처에서 일본 뮤지션하고 함께 있다는 정보를 듣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처음에는 생뚱맞은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렇게 3번 정도 찾아가서 함께 작업할 수 있었어요.” 그가 자신감을 갖고 자기 색깔을 내기 시작한 지 4년이 흘렀을 뿐이다. 그의 넘치는 에너지가 또 뭘 보여줄지 알 수 없으나 배우나 가수로서가 아니더라도 그는 인생의 좋은 역할 모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는 야무진 여성으로서 말이다. 엄정화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이자 그의 인생 모델이 누구냐고? 마돈나였다. 내 인생의 영화 데뷔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유하 감독이 연기는 전혀 몰랐고 음반 준비나 하던 나를 선택했어요. 흥행은 안 됐으나 엄정화 개인에게는 큰 의미가 있어요. 음반과 함께 영화를 시작했고 이후 연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니까요. 양다리 인생의 시작이었다고 할까. 8년이 지난 뒤 유하 감독이 두 번째 시나리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줬을 때의 감격은 엄청난 거였어요. 내가 그려왔던 모습을 실현해줄 계기를 또 한번 줬으니까. (노출 등) 영화가 굉장히 셌지만 작품성이나 유하 감독의 인간성이 믿음을 줬어요. <마누라 죽이기>에도 출연하긴 했으나 뭔가에 떠밀리듯 선택한 것이어서 나 자신이 만족을 못했어요. 실은 그 작품 아직도 못 보고 있어요. 시사회 때 중간에 나와버렸는데 그때 친구에게 “이 담에 시사회에 올 때는 너한테 부끄럽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물론 강우석 감독님은 지금도 잊지 않고 절 좋아해주세요. 다만, 그 역할을 잘하지 못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던 거죠. 내 인생의 음악 음악은 아주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러웠어요. 6살 때 돌아가신 아빠가 음악 선생님을 겸한 교사셨는데 트럼펫 연주를 아주 잘하셨데요. 서라벌예대를 나오셨거든요. 기억이 별로 없는 아빠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 일찌감치 음악을 좋아하게 됐어요. 음악으로 아빠에게 가까이 가는 느낌이랄까. 내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줬어요.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도 강했고. 엄마 통해서 가곡 스타일의 노래를 많이 배웠어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합창반을 했는데 대회에서 지면 잠을 못 잤어요. 슬퍼서. 음악과 연기를 함께하는 게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이고 그걸 가지고 여기까지 온 건 아빠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내 인생의 술 아~,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죠. 사실 굉장히 일찍 마셨어요. 고1 겨울방학 때였어요. 사춘기로 예민하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고뇌가 아주 컸을 때예요. 불행하다는 생각에. 엄마 혼자 4남매를 키우셨는데 어머니가 사회성이 강한 것도 아니고 굉장히 곧은 성격이어서 집안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피아노도 배우고 예고를 가고 싶기도 했으나 시골이어서 못하는 게 많았지요. 앞으로의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문득 괴로웠고 그러다 엄마랑 좀 다퉜어요. 그때 가슴이 아프다는 걸 처음 경험했어요. 명치 끝이 너무나 아팠으니까. 어머니가 하시던 식당에서 소주를 훔쳐다가 반병 정도 마시고 기절했어요. 지금은 술 세요. 내 인생의 친구 여러 명의 친구가 있어도 특히 집착하는 한 친구가 있어요. 오늘도 의상을 봐준 스타일리스트 박유라(마침 이 친구는 먼저 자리를 뜬 뒤였다). 서울에 올라온 20살 때 만났지요.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는데 제가 일방적으로 먼저 연락해서 만나고 싶어지는 친구였어요. 일 시작하고나서 그 친구가 운전도 해주고 스케줄 정리도 해주고 의상까지 해줬어요. 그러다가 의상 관련 학교도 갔고, 그렇게 지내온 게 10년이 훨씬 넘었네요. 이제는 친구라기보다 자매 같은 느낌이에요. 제가 아픈 것, 힘든 걸 눈빛만 봐도 잘 아는 사이가 됐어요.

태양 같은 그 남자의 ‘로드 투 로맨스’, <콜드 마운틴>의 주드 로

헤이, 주드! 이제야 항복인가? <콜드 마운틴>에서 니콜 키드먼을 열렬히 껴안는 주드 로(32)의 모습이 일으키는 감상은 올 것이 왔다는 안도감에 가깝다. 스크린 앞에서도 가까이 보고 싶은 욕심에 무심코 쌍안경을 찾게 만드는 절대 미모를 갖고도, 주드 로는 로맨스영화의 남자 주역을 끈덕지게도 피해왔다. <콜드 마운틴> 이전까지 주드 로가 연기한 캐릭터는 사랑에 몰입한 적이 없었고 주드 로는 멜로드라마에 포획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주드 로의 외모를 영화가 활용하지 않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약간의 면도와 메이크업만으로 그는 <가타카>의 완벽한 우성인간, 의 지골로 로봇이 될 수 있었다. 그가 다른 남자를 매혹해 끝내 나락에 빠뜨리는 <리플리> <미드나잇 가든> <와일드>도 유혹자가 주드 로였기에 부연 설명을 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콜드 마운틴>에서도 주드 로의 외모는 실용적 기능이 있다. 아무리 구덩이에 파묻고 진흙을 발라도 가려지지 않는 주드 로의 스토아적 아름다움은, 남군 탈영병 인만의 기약없는 막막한 고행을 관객이 인내하는 데에 적잖은 도움을 준다. 꾸준한 관찰자들은 주드 로를 “할리우드 스타(leading man)의 몸에 깃든 성격 배우”라고 평한다. 이것이 미남 스타가 연기도 곧잘 한다는 덕담 이상이라는 사실은 전작 <로드 투 퍼디션>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들쥐처럼 죽음과 시체를 탐하는 청부 살인업자 맥과이어로 분한 주드 로의 동작은 하나도 허투른 것이 없다. 당시 화젯거리였던 도발적 헤어스타일은 가장 사소한 터치에 불과하다. 주드 로의 맥과이어는 설치류처럼 몸을 웅크리고 사방을 둘러보고, ‘사냥감’의 이름을 메모지 괘선에 맞춰 또박또박 받아쓰면서 킬러의 얼굴에 표정을 새긴다. 손의 건들거림, 어깨의 숙인 각도까지 계산과 고민의 흔적은 선명하다. 그와 두편의 영화를 함께한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지적은 조금 더 적확하다. “사람들은 영국 배우는 대사에 강하고 미국 배우는 몸의 연기가 강하다고 믿지만, 주드 로는 그런 선입견을 무너뜨린다.” 주드 로가, 내러티브의 후원이 약하고 캐릭터가 강한 조연에 몰두해온 것은 카리스마보다 디테일이 뛰어난 연기 스타일 탓도 있지만 됨됨이의 영향도 커 보인다. 많은 영국 배우들이 그렇듯 주드 로는 대중보다 동료들의 인정에 더 무게를 두어왔다. 게다가 그는 망설임이 많은 남자다. 늙기 전에 세기의 연인이 되겠다는 조바심보다 영화 한편의 성패를 짊어지고 매스미디어에 그것을 파급하는 스타의 짐을 짊어지기 싫다는 주저가 강했다. 그러나 지난해, 망설임 많은 남자 주드 로는 여러 결단을 내렸다. 그중에는 6년을 함께하며 세 자녀를 둔 배우자이자 이완 맥그리거 등과 함께 세운 영화사 ‘천연 나일론’의 동업자인 배우 새디 프로스트와의 결별도 포함돼 있었다. 이혼과 관련한 타블로이드 공세에 지쳐 런던 생활에 염증을 내기 시작했고, <콜드 마운틴>의 인만이 되기 위해 채식주의를 포기하기도 했다. 경사 급한 비탈길에 접어든 주드 로의 스케줄은 어느 때보다 빡빡하다. 현재 포스트 프로덕션 공정에 있는 4편의 영화 가운데 앞줄을 차지하는 작품은 선배 마이클 케인의 출세작 <알피>(1966)의 리메이크. <리플리>의 디키가 자신이 타인의 심장에 긋는 상처를 모르는 남자였다면, 바람둥이 알피는 자신의 매력을 명백히 인지하고 무기로 휘두르는- 아마도 주드 로로서는 최초인- 캐릭터다. 이럭저럭 주드 로는 메이저 스타덤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보인다. 나쁜 날씨도 찾아오겠지만 그는 버지니아에서 테네시주 콜드 마운틴까지 도보 여행을 막 마친 참이다. 웬만큼 험한 길은 그를 소진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적 감독의 작품, 무삭제로 보는 즐거움, <스위밍 풀>

프랑수아 오종은 작가로서의 야심을 숨기려 하다가 얕은 속을 스스로 드러내는 새침데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현재 프랑스 작가영화의 하부구조 혹은 그것과 대중영화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누군가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을 보는 건 항상 흥미로운 일이다. 당연히 그에게서 선배작가들이 도달했던 영역을 기대하긴 아직 이르다. 전작 <바다를 보라>와 <사랑의 추억>에서 다뤘던 ‘낯선 자의 방문과 실종의 미스터리’를 반복한 작품 <스위밍 풀>은 의미있는 질문보다는 단순한 미스터리의 주변에서 맴돌 뿐이다. <스위밍 풀>과 그보다 1년 먼저 칸영화제에 도착했던 린 램지의 <모번 켈러>를 비교해보면 오종의 빈 공간이 더 드러난다. 전자가 ‘남의 삶을 소재로 글을 쓰는 여자’의 한낮의 꿈을 그렸다면, 후자는 ‘남의 글로 자신의 삶을 사는 여자’의 거친 꿈을 다룬다(두 영화의 배우와 극중 이름이 유사한 게 단순한 우연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모번 켈러>가 지금 세대와 나누는 존재론적 질문과 새로운 모럴 그리고 창작자에게 안겨준 혼란에 비하면 <스위밍 풀>이 선택한 길은 너무 안이하다. 오종은 우리가 개인 수영장에 머무는 동안 누군가는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걸 잊고 있다. <스위밍 풀>은 좀더 솔직하면서도 용감하며 낯선 길을 가는 게 좋았을 것이다. 프랑스 시골 마을은 DVD 속에 시원하게 표현되었으며 강한 햇살이 살아 숨쉰다. 그러나 밤장면에선 영상이 심하게 거칠어지고, 실내장면도 간혹 불안정하다. 사운드는 명료한 대사 표현 외에 스산한 바람 소리가 너무 좋아 몇번을 들었다. 신작치곤 부가영상이 적은 편인데, 삭제장면(12분)과 인터뷰(26분)를 통해 영화의 미스터리를 간접적으로 풀어보는 재미는 좋은 편. 이용철 Swimming Pool / 2003년 / 프랑수아 오종 / 102분 / DD 5.1, DTS 5.1 영어, 프랑스어 / 한글, 영어 / 비트윈 ▶▶▶ [구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