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리플매입국내거래소fds뚫는법리플매입국내거래소fds뚫는법' 검색결과

기사/뉴스(2004)

BIFF #8호 [스페셜] 60년의 여정, 끊임없이 새로운 ① - '마르코 벨로키오: 주먹의 영화' 마스터 클래스와 인터뷰

1965년 26세의 피렌체 출신 젊은 감독이 연출한 첫 장편 영화 <호주머니 속의 주먹>은 그해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을 거부당했다. 가족 제도부터 사회 규범까지 모든 것에 반기를 들었던 이 문제작은 공개 직후 이탈리아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50편이 넘는 작품을 만들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마르코 벨로키오는 여전히 역사와 개인의 경계에 선 채 날카로운 시선으로 시대의 폐부를 찌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영화 여정을 ‘지그재그’와 같다고 설명했던 그의 말처럼 이 문제적인 거장의 영화 세계를 한 단어로 일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마르코 벨로키오라는 이름은 관객이 어떤 작품을 보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허공으로의 도약>(1980)부터 <달콤한 꿈>(2016)에 이르기까지 불안이란 칼날 위에 서 있는 인간을 해부했던 빼어난 정신분석가이자, <내 어머니의 미소>(2002)와 <잠자는 미녀>(2012)를 통해 종교나 존엄성의 딜레마를 탐구하고자 했던 사색가이며, <중국은 가깝다>(1967)로부터 <익스테리어, 나잇>(2022)까지 이어지는 이탈리아의 정치와 역사를 관찰한 정치학자기도 할 것이다. 하나 명확한 점은 마르코 벨로키오의 영화 속에서 우리는 시대와 개인,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은 결코 안과 밖의 대립처럼 분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장편 데뷔 60주년을 맞아 마르코 벨로키오의 영화 세계를 유심히 들여다볼 기회를 마련했다. '마르코 벨로키오: 주먹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구성된 특별기획 프로그램에는 그의 장편 데뷔작 <호주머니 속의 주먹>부터 HBO와 함께 제작한 시리즈 <뽀르또벨로>(2025)에 이르기까지 8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씨네21>이 특별전을 위해 부산을 찾은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과 만났다. 인간과 세계가 끊임없이 교차하며 투과되는 그의 영화 철학을 전해 들을 수 있던 귀중한 인터뷰였다. 동시에 9월 21일 14시부터 15시 30분까지 진행되었던 마스터 클래스 ‘마르코 벨로키오: 주먹의 영화'에서 그의 연출론을 살펴볼 수 있는 대담의 일부를 세 가지 키워드로 기록하여 옮겼다. - 부산국제영화제의 인연은 2004년 상영된 <굿모닝, 나잇>까지 2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까지 총 10편에 달하는 감독님의 영화를 소개해 온 부산에서 60년 간의 필모그래피를 톺아본 이번 회고전을 향한 소회가 남다를 것만 같다. 그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 영화들이 자주 상영되었다. 따라서 부산에서 회고전을 갖는 것은 내게도 매우 의미가 크다. 단 며칠 만에 한국 사회를 전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번 회고전을 통해서 새로운 광경을 바라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간 텔레비전과 극장에서 본 한국 영화의 걸작들은 매우 도전적인 작품이었다.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완전히 다르고 새로운 영화의 한 갈래로 다가왔다. - 이번 특별 프로그램의 제목은 ‘마르코 벨로키오: 주먹의 영화’다. 첫 장편인 <호주머니 속의 주먹>에서 비롯된 이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보통 주먹을 들어 올린다는 건 정치적 표현의 한 형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주먹을 주머니에서 꺼낸 상태다. 지금 내 나이가 되면 급진적인 정치적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 곱씹게 된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60년대부터 80년대는 정치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려는 방식의 변화를 모색했던 시기였다. <중국은 가깝다>를 찍었던 6, 70년대 당시 마오이즘 신화가 이탈리아와 유럽 청년들 사이에서 얼마나 유행했는지를 기억한다. 그래서 그때는 모두가 주먹을 쥐었지만, 이제 그 문구는 이전의 시대를 의미한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대변하는 키워드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웃음) - 이탈리아의 근현대 역사와 시대를 꾸준히 소환했던 감독님의 영화에는 개인과 역사 사이의 역학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개인의 미시사가 역사의 거시사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역의 명제도 성립하고 있다. 개인에게 역사란, 역사에게 개인이란 어떤 관계인가. 역사와 개인 그 두 조합이 나를 매료시킨다. 역사의 거시사를 인물을 통해 바라보고 그 안에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개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내려 한다. 단순히 한 개인만 아니라 그 주변의 관계마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익스테리어, 나잇>에서는 앤도 모로(파브리지오 기푸니)가 가족과 함께한 모습과 납치에 얽힌 다른 인물들의 사적인 모습을 통해 이들 모두가 납치와 암살이라는 국가적인 정치 사건 아래에서 어떻게 살아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결합 혹은 관계가 나를 끌어당기는 공식이다. 물론 역사에 충실해야 하지만 내 상상력은 역사에 대해 불충실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다. 그것이 스타일의 일부다. 가능할 수 있다면 인물들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기에 역사책에 묘사되지 않은 공백을 채우고 싶다. - 한편, 시대의 초상 아래에서 감독님의 인물들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 <육체의 악마>의 자살 시도하는 광인, <종교의 시간>의 정신병자 형, <보모>(1999)의 산후우울증에 걸린 아내, <달콤한 꿈>의 마시모(발레리오 마스텐드리아)까지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광인이야말로 진리를 통달한 자라는 낭만적인 관점이 하나의 신화처럼 존재해 왔다. 가령 예술사에서도 반 고흐와 같은 예시가 있다. 그는 천재지만 정신병으로 인해 자살을 택하지 않았나. 그러나 내게 광기란 곧 불행이며, 고통받는 존재이고, 현실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자다. 나는 내 사적인 삶과 가족의 경험 속에서 정신적 고통을 겪은 이들을 마주해왔다. 그래서 <호주머니 속의 주먹>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비유적인 의미로서 ‘간질’을 인물에 부여했다. 그러므로 내가 정신 질환을 표현하는 방식은 바로 그 병을 인식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경향으로 읽을 수 있다. 마시모 파지올리의 세미나를 통해 나는 정신질환의 파괴성을 극복하려는 작업을 모색했다. 이를 치유하고자 하는 지속적인 움직임을 묘사하는 작업이 내게는 중요하다. - 고통과 광기의 인물만큼이나 그들이 처한 상태에도 눈이 간다. 3번이나 다룬 알도 모로 총리의 납치 사건(기독교민주당과 이탈리아 공산당의 협치를 주도하던 전 총리를 붉은 여단이 납치한 사건 – 편집자)을 비롯해, 감독님의 인물들은 자의 혹은 타의로 감금, 납치, 혼수 상태 등 한정된 공간에 자신을 가둔다. 내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움직임이다. 인물들이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움직임을 발견하고 묘사하고자 한다. 이 인물들은 집 안에 칩거하거나, 감옥에 투옥되거나,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심지어 자기 자신 속에 갇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닫힘 속에서도 나는 언제나 외부를 향한 움직임을 그리고자 한다. <굿모닝, 나잇>에서는 테러리스트의 꿈속에 납치된 알도 모로가 거리로 나서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마치 닫힌 공간을 벗어나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이다. 나에게 있어 이런 운동은 단순한 신체적 행위가 아니라, 억압과 감금 속에서도 자유를 찾아 나가는 내적인 힘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움직임은 내 작업에서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 올해는 HBO와 손을 잡고 시리즈 <뽀르또벨로>를 공개했다. 3년 전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를 통해 제작한 <익스테리어, 나잇>에 이어 세계적인 OTT 플랫폼과 함께 협업에 나서게 됐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영화 산업 환경에 발맞춰 창작을 이어 나간 동력이 궁금하다. 언제나 새로운 것에 마음이 끌린다. 내 정신이 깨어있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다. <뽀르또벨로>는 HBO라는 국제적인 플랫폼에서 먼저 프로젝트에 대해 훌륭한 제작 제안을 건넸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극히 이탈리아적인 이야기다. 이탈리아, 이탈리아 사법 제도, 이탈리아 텔레비전을 다루는 이야기지만, 공동 제작사로 참여한 Rai를 통해 HBO 콘텐츠로 방영될 예정이다. 내게도 신선한 도전이었던 만큼 <뽀르또벨로>는 또 하나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커버] 기담 –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초자연적 현상과 환상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공포, 판타지 단편영화들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전통적인 괴담의 정서부터 현대적 해석이 더해진 심리 공포, 미스터리, 다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적 결을 가진 작품들이 펼쳐진다. 단순한 공포를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감각, 설명되지 않는 불안, 말로 다할 수 없는 정서와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시각적 상상력과 스타일로, 때로는 서늘한 분위기와 서사적 장치로 우리 내면의 그림자를 건드리며 관객을 낯선 감정의 영역으로 이끈다. Q1. 영화를 연출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Q2. 좋아하는 영화 혹은 만들고자 하는 영화는 어떤 결입니까. <체화> Chaehwa 홍승기 HONG Seung Gi | 2024 | Fiction | Color | 21min | 12 10/18(토) 11: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10/19(일) 18:00 CGV용산아이파크몰 5관 GV 수수께끼의 전학생 ‘다빈’이 초등학교에 전학 온다. 여름인데 일광욕을 즐기고, 밥은 물만 마시며, 몸에서는 꽃향기가 난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다빈이 산에서 내려온 이후, 세상의 모든 꽃들이 만개한다. 홍승기 감독 1. 유년 시절, 어머니와 함께 색칠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제가 흰 쌀밥을 하얗게 두지 않고 분홍색으로 색칠한 것을 보고는 “이 분홍색 쌀밥은 어디서 구할 수 있어?”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신난 마음에 제 마음속 정원에서만 자라는 딸기 맛 쌀이라고 답했죠. 어머니는 제가 보는 세상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제 눈높이에 맞춰, 분홍색 쌀이 자라나는 제 마음속 정원을 함께 들여다봤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꽃들이 피어난 이 정원을 스크린으로 옮겨와 관객들과 함께 꽃구경을 하고 싶었습니다. 2.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상식이 승리하는 서사들이 넘쳐나지만 우리의 삶은 엉망이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 그 자체이지 않나요. 서로 다른 장르 사이, 이미지 사이, 세계 사이에서 하나의 언어로 호명될 수 없는 존재들을 위한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나가고자 합니다. <엔터티> Entity 정휘빈 CHUNG Hui Bin | 2024 | Animation | Color | 17min(E) | 12 10/18(토) 11: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10/19(일) 18:00 CGV용산아이파크몰 5관 GV 이웃집 살인마와 눈이 마주친 주인공 김영이 살아남기 위해 사회의 금기를 건드린다. 정휘빈 감독 1.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후 프리랜서로 지내다가 6년 전부터 다시 단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작품 제작 과정 전반과 스토리텔링을 기초부터 다시 배운다는 생각에서 시작해 몇편의 작품을 거치며 뚜렷한 내러티브의 장르물이 제가 감독으로서 추구하는 방향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깨달음에 기반해 처음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봐줄 만한 장르적 구조를 갖춰 완성한 작품이 <엔터티>입니다. 독립애니메이션을 하는 입장에서 관객과의 소통을 염두에 둔 장르물에 도전하는 것이 모험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모험의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저 스스로의 한계나 모순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돕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2. <괴물>(감독 존 카펜터, 1982) <에이리언><사바하>등 오컬트, 호러, 미스터리에 기반한 장르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합니다.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데에는 <모노노케 히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같은 작품의 영향이 컸고요. 결국은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처럼 강한 장르적 개성을 바탕으로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갈비뼈> The Rib 임하연 LIM Ha Yeon | 2024 | Fiction | Color | 24min | 15 10/18(토) 11: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10/19(일) 18:00 CGV용산아이파크몰 5관 GV 여러 애인들의 집을 전전하면서 사는 이봄의 갈비뼈에서 인간이 나온다. 갈비뼈는 이봄의 공간들을 부수기 시작하고, 이봄은 갈비뼈를 외면하지만 그럴수록 공허해지고 성욕과 식욕이 강해진다. 임하연 감독 1. 영화를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서 계속 영화를 하고 있습니다. 2. 주인공을 끝까지 책임지는 영화, 희망이 있는 영화, 소소한 기적이 있는 영화,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이 올 거라는 믿음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고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해피 엔딩. 해피 엔딩이야말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마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일리아> Planet Spoilia 이세형 LEE Se Hyung | 2025 | Fiction, Animation | Color | 28min | 12 10/18(토) 11: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10/19(일) 18:00 CGV용산아이파크몰 5관 GV 해답을 찾기 위해 500년간 우주를 떠돌던 김과 박은 이상한 행성 스포일리아에 불시착한다. 실사 인물과 클레이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영화로, 감독의 자취방에서 2년3개월간 제작된 우주적 대작. 이세형 감독 1. 고등학교 1학년 때 선배들에게 무서운 장난을 당한 적 있습니다. 집합시켜 잔뜩 겁을 준 뒤, 마지막에는 “장난이야~” 하고 끝내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기합은 아니지만 기강 잡는 효과를 누리는 엄청난 전술에 ‘당해버렸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모든 것이 가짜였다는 게 밝혀져도, 그동안 영화 속에서 느낀 감정들은 전부 진짜입니다. 그게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장난은 정중히 사양하지만 영화로 하는 장난은 환영입니다. 2. 닫힌 기승전결의 세계와 열린 부조리의 세계, 그 중간 지대를 찾아서 영화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우디 앨런, 테리 길리엄, 코언 형제 영화를 좋아합니다. <미트> meat 정성락 JEONG Sung Rak | 2024 | Experimental | B&W | 10min(N) | 15 10/17(금) 19:30 CGV용산아이파크몰 7관 10/18(토) 13: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GV 강가의 나무 아래, 한 남자가 정체불명의 포대를 무자비하게 두들긴다. 검은 액체, 타오르는 불, 탐욕스러운 식사. 씻기지 않는 흔적과 함께 되살아나는 죄의 기억. 남자는 자신이 만든 지옥을 마주한다. 정성락 감독 1. 중학생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을 보고 나도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호기심이 시작이었다. 당시 3D 맥스, 프리미어, 포토숍 등 컴퓨터프로그램을 가지고 놀던 때라 그런 허무맹랑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영생을 위해 친구들의 심장을 염력으로 꺼내 먹는다는, CG가 들어간 첫 호러영화를 만들었다. 이번 단편영화 <미트>는 광주에 있는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하면서 인간의 폭력과 욕심에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약육강식의 정도가 도를 넘어 균형이 깨진 지구, 권력자들의 횡포, 적당히를 모르는 인간의 자연 파괴와 탐식. 제발 균형을 가지고 살자는 메시지를 인간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2.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과 앤드루 니콜 감독의 <가타카>사이 어는 지점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미스터리한 공상을 통해 현실을 마주하는 영화. 예술과 기술의 접점에서 꽃을 피우는 영화는 장르적일 때 가장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핑크몽키> Pink Monkey 우종빈 WOO Jong Bin | 2024 | Animation | Color+B&W | 12min(KE) | 15 10/17(금) 19:30 CGV용산아이파크몰 7관 10/18(토) 13: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GV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캐릭터 ‘핑크 몽키’. 온 세상이 핑크 몽키로 가득하다. 그리고 핑크 몽키를 만든 아티스트 세바스찬. 어느 날 세바스찬은 핑크 몽키에게 살해당하는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세바스찬은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핑크 몽키를 제거해야 한다. 창조와 파괴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세바스찬의 이야기. 우종빈 감독 1. 영화를 음식으로 비유해보겠습니다. 저에게 있어 영화는 ‘과자’의 느낌이었습니다. 그저 ‘맛있다’, ‘달다’, ‘짜다’가 전부였죠. 모든 음식은 다 과자 같은 줄만 알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된장찌개’를 먹게 된 저는 단순히 ‘맛있다’라는 생각을 넘어 ‘어떻게 이런 맛을 냈을까?’, ‘어떤 재료를 사용한 거지?’, ‘이 된장찌개를 끓인 건 대체 누구야?’라는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떤 재료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게 된 저는 된장찌개의 맛을 더 깊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모두 과자 같은 줄만 알았는데 된장찌개 같은 영화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도 된장찌개를 끓여보고 싶어졌습니다. 깊이 있고, 오래 기억되고, 다시 찾고 싶게 되는 그런 된장찌개를 말입니다. 물론 맛없는 된장찌개보다 과자가 나을 때도 있죠. 저는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여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 <소림축구> <뿌리가 자란다> Roots are growing 김상구 KIM Sang Gu | 2025 | Fiction | Color | 19min | 12 10/17(금) 19:30 CGV용산아이파크몰 7관 10/18(토) 13: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GV 공사가 잠시 중지된 구역을 감시하는 보안업체 직원 정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신입 직원 규민은 그곳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린다고 주장하고, 두 사람은 함께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김상구 감독 1. 또래들과 달리 한글을 떼지 못했던 어린 시절, 우연히 케이블 채널에서 빨간 자동차가 대형 트럭에 쫓기는 영화를 보았다. 완전히 매료되었고, 당장 한번 더 보고 싶었지만 영화의 제목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 영화를 찾기 위해 매일 영화 채널을 돌렸다. 찾는 데 실패하자, 영화의 장면들을 혼자 상상하고 맞춰보려고 노력했다. 10년 넘게 지나서야 인터넷에서 그 영화와 다시 만났다. 제목은 <대결>. 스필버그의 장편 데뷔작이었다. 영화는 여전히 재미있었지만 머릿속에서 맞춰진 영화와는 사뭇 달랐다. 미화된 기억과 실제 영화의 차이를 비교해 감상하면서 더욱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를 찍은 건 나중의 일이지만 이 시절의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다. 2. 미국영화를 특히 좋아한다. 농담 삼아 미국의 국기는 야구가 아니라 영화라고 주장하곤 했다. 넘치는 문화적 배경이 영화의 요소들과 충돌, 상호작용하는 걸 지켜보는 게 즐겁다. 한국을 배경으로도 이러한 재미를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확장기> Time To Dilate 김나영 KIM Na Young | 2024 | Fiction | Color | 21min | 15 10/17(금) 19:30 CGV용산아이파크몰 7관 10/18(토) 13: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GV 두 연인, 명기와 도는 명기가 숨기고 있던 비밀 때문에 이별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되면서, 비밀은 점점 더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는데. 김나영 감독 1. 어릴 때, 감정이 수도꼭지처럼 잠그고 싶을 때 잠글 수 있으면 좋겠다며 울던 친구에게 “감정이 왜 안 잠겨? 난 수도꼭지랑 똑같은 거 같은데?”라고 말하며 상처를 준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 건 제가 감정을 제대로 다룰 능력도, 망친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능력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에게 거짓말을 했던 그 순간 저 자신에게 느낀 답답함을 잊지 못해서 결국 영화를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2. 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와 성장 서사를 좋아하는데, 그런 주제를 공포 장르로 표현한 영화를 특히 좋아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주로 기억과 관계에 관한 것들이고 공포 장르가 이를 담기에 적합하다고 느껴 앞으로도 그 장르로 작업할 것 같습니다. <확장기>를 만든 후에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 미련과 후회의 마음이 남아 새로운 장편영화를 쓰고 있는데, 이번에는 보디 호러 장르 속에서 모녀 관계를 다룬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제 속이 시원해지는 영화인데요, 매번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일종의 살풀이처럼 느껴집니다. <유니폼> Uniform 강다연 KANG Da Yeon | 2025 | Fiction | Color | 26min(E) | 12 10/17(금) 19:30 CGV용산아이파크몰 7관 10/18(토) 13: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GV 과학기술연구소 유니트의 청소노동자 가은. 괴담이 도는 D구역을 담당하던 동료 청소부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퇴사한 뒤, 가은이 D구역을 새롭게 배정받게 된다. 강다연 감독 1. 갱지로 만화책을 만들던 초등학생 때의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팀 버튼 영화들을 보면서 아름다운 세계를 만나는 기쁨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들처럼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했다. 2. <렛미인><스토커><그녀><컨택트><경계선>. 외로운 인물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 발짝 내딛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겟 아웃><유전>처럼 엔터테이닝한 장르영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탈피각> Molted Shell 정길우 JEONG Gil Woo | 2024 | Fiction | Color+B&W | 16min World Premiere | 15 10/18(토) 15:10 CGV용산아이파크몰 5관 GV 10/19(일) 12: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청계천이 복개될 때 도망쳐 나온 연준은 사실은 인간으로 변태한 가재다. 연준은 자신의 딸을 닮은 단골 손님 이주를 만나게 되고 가까워진다. 이주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주를 위해 자신의 영생을 포기할지 고민한다. 정길우 감독 1. 처음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고등학생 때, 몰래 학교에서 그래피티로 낙서를 하고 다니는 학생 이야기였다. 팬데믹 시기에 준비했던 작업들이 중단되고 앞으로의 계획들이 막막할 때 만났던 친구와 지금까지 무모하게 이어오는 작업이 있다. 독립 장편영화 작업인데, ‘우리도 한번 영화 찍어보는 거야’라며 두 사람이 무작정 시작했던 작업 덕분에 지금까지 영화할 힘을 얻었다. 영화를 함께 찍자고 제안해주고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오는 윤승비씨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 좋아하는 영화는 시기마다 달라지는 것 같다. 특히 영화를 만드는 시기에 많이 보게 되는 영화도 있고. <탈피각>을 작업하던 시기에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단편들을 많이 봤는데 <목령>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아 있다. 나무가 된 남자가 나오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기억에 선명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은 장르이되 더 리얼한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들 때, 영화의 판타지성을 유지한 채 과연 현실을 얼마나 리얼하게 담아낼지가 요즘 최대 고민이다. <폐쇄 회로 텔레비전(CCTV)> Closed-circuit Television(CCTV) 이재혁 LEE Jae Hyeok | 2024 | Animation | Color | 6min(N) | 12 10/18(토) 15:10 CGV용산아이파크몰 5관 GV 10/19(일) 12: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코인 노래방 안, 나는 TV 화면 속 어떤 존재와 마주했다. 나는 화면 속 존재를 선망하다 상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 존재는 무엇일까? 이재혁 감독 1. 2022년 여름, 저는 정다희 감독님의 <의자 위의 남자>라는 작품을 비메오(vimeo)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존재론적인 질문들이 저의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고민과 공명하였고,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이미지적인 연출과 전개 방식이 그 작품에서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 시선은 자연스레 다른 작품들로 이어졌고, 각 작품들이 가지는 독창적인 스타일에 맞는 스토리나 전개방식, 그리고 애니메이션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움직임을 다루는 연출들이 나만의 작품을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2. 작품을 기획하기 위해 깊이 빠져들다 보면 언제나 비슷한 곳에 도달합니다. 제가 처음 빠져들었던 존재론적인 질문들이 있는 곳입니다. 좋아하는 작품과 만들고 싶은 작품은 언제나 그곳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곳은 굉장히 혼란스럽고 무질서합니다. 때로는 그런 혼란과 무질서가 제가 이해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을 정리해보려 시도하는 것이 작품을 만드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그 혼란과 무질서를 그대로 작품에 담고 싶습니다. <괴인의 정체> The Masked Monster 박세영 PARK Sye Young | 2024 | Fiction, Experimental | B&W 14min(K, E) | 12 10/18(토) 15:10 CGV용산아이파크몰 5관 GV 10/19(일) 12: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배가 너무 고픈 누나는 쌀 몇톨과 동생을 바꾼다. 쌀로 배를 채우니 이성이 돌아오지만 이미 늦은 걸 어쩌겠는가? 박세영 감독 1,2. 지난 3년 동안 편집실에서 <지느러미>라는 장편영화의 후반작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일주일 찍고 몇주면 편집이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적은 예산과 제가 가진 그릇보다 더 큰 야심을 품고 시작해서 그런지 번아웃이 찾아온 이후에도 후반작업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작업을 끝내지 못함에 대한 답답함과 초조함이 계속 쌓여만 가서 <괴인의 정체>라는 영화를 구상하게 됐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과정에 대한 정답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각본 없이 카메라를 들고 숲속에 들어가서 순서대로 촬영하고 당일에 집에 돌아와서 편집하고 하루 안에 음악을 녹음하고 색보정도 하루 안에 마무리 지었습니다. 긴 작업 과정에 대한 해소를 휴가나 쉼을 통해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식의 즉흥적이고 휘발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그리고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어디서부터고 언제 끝나는 건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듯이 영화를 찍는 방식 또한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소용돌이> Vortex 장재우 JANG Jae Woo | 2024 | Fiction | Color | 19min | 15 10/18(토) 15:10 CGV용산아이파크몰 5관 GV 10/19(일) 12: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바다 일을 하러 떠난 아빠를 대신해 병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윤석. 엄마와 아빠에 대한 최악의 상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괴로워하던 중 바닷가에서 돌을 끄는 소녀를 보게 되고,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장재우 감독 1. 여러 영상 분야 중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좋은 장면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장면이란 회화적인 요소를 잘 활용하여 시각적인 인상을 남길 뿐 아니라 그 안에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좋은 장면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숏과 숏의 연결이나 충돌을 통해 이야기를 확장하고 그 안에서 감정을 만들어내며, 카메라가 비추는 한 인물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것은 영화만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소용돌이> 촬영감독 이상현) 2. 현실의 억압을 깨고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 순간을 담은 영화를 좋아합니다. <8과 1/2>에서 귀로 안셀미가 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고 결국 하나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모습, <버팔로 66>에서 빌리 브라운이 빨간 부츠를 벗는 섬세한 과정처럼 낯설고 실험적인 이미지가 시각적으로 구현되는 장면들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소용돌이>에서는 윤석의 곰팡이집과 수인의 소용돌이집처럼 인물의 내면을 공간으로 이미지화하는 과정에서 감각적 몰입을 경험했습니다. 앞으로도 자유와 해방의 진동이 느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소용돌이> 미술감독 김현아) <엔진의 심폐소생> Reviving The Engine 정혜인 JUNG Hye In | 2025 | Fiction | Color | 25min | 12 1 0/18(토) 15:10 CGV용산아이파크몰 5관 GV 10/19(일) 12:00 CGV용산아이파크몰 6관 중고차 상사 사무직 직원인 28살 진희. 어느 날 진희 주변의 것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심지어 진희의 몸이 녹슬기 시작한다. 진희는 세상이 미친 건지, 자신이 미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정혜인 감독 1. 내 머릿속 이야기들이 밖으로 표출되지 못해 극도로 우울해진 순간이 있었는데, 그 순간 영화를 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2. 기이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끊임없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나가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 끝없이 질주하는 영화, 에너지가 폭발하는 영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

[남다은 평론가의 RECORDER] 혁명은 파도처럼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 중 최대 제작비가 투여된 블록버스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거대 자본과 할리우드 스타 배우들의 독보적인 연기, 무엇보다도 감독의 장르적 세공력이 놀라운 수준에서 결속한다는 찬사는 단지 오락적 성취만을 지시하지 않고, 감독이 그간 천착해온 과거의 문화나 신화 대신, 사회정치의 층위에서 미국의 현재성을 응시한다는 평가로 모인다. 혁명가 집단을 내세운 서사로 동시대 미국, 트럼프 집권하의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는 점, 악화 일로를 걷는 세상에서도 혁명 이후 세대에게 낙관적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 등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반면 혁명을 대하는 이 영화의 서사적 엉성함이나 모호한 시선을 지적하는 평들도 간혹 눈에 띈다. 이러한 견해의 저변에는 앞선 호평의 논리와 반대로 혁명의 화두가 오락을 위해 느슨하게 소재화되었다는 감상이 자리할 것이다. 그 불만의 원인을 짐작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영화 속에서 혁명가 집단, 프렌치 75가 싸우는 대상이 공권력으로 뭉뚱그려 지시된다고 해도 그들이 “혁명 만세”를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쥘 때, 그 싸움의 맥락은 아리송하거나 구체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행동력의 기반이 될 이들의 사회적 토대나 내면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가 이를 보여주는 일에 의도적으로 힘을 들이지 않는다는 설명이 정확할 것이다. 혁명은 액션의 결과로 그려지며 그것이 놓인 인과의 차원은 별반 살펴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도 감독의 지난 작품들에서 분열, 모순, 강박으로 점철된 존재들의 집요하고 기이한 결들과 비교하자면 일견 허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요컨대 시놉시스나 홍보 문구에서 밥 퍼거슨(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은 폭발물 제조가로 활약하다 16년이 지나 무력하고 체념적인 상태로 변한 과거의 ‘혁명가’로 언급되지만, 이는 부풀려진 묘사다. 영화 초반부터 우리 눈에 비친 그는 애초 혁명가로서의 자의식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과거나 현재나 자신이 놓인 상황은 물론, 수행해야 할 일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혁명이라는 용어는 영화 전반에서 반복되지만, 그것의 뿌리와 방향성은 애매하다. 한편 이 영화의 명징한 안타고니스트이자 반혁명론자로 불릴 스티븐 록조(숀 펜)는 백인 우익의 극단적이고 상투적인 면모들의 종합 세트다. 희화화를 위한 설정이라고 해도 창의적으로 생동하는 배우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일차원적으로 느껴졌을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 나는 이 영화에 완전히 사로잡힌 관객 중 하나다. 다만, 도입부에서 이미 고양된 그 감흥의 정체가 영화가 환기하는 급박한 현실이나 혁명의 서사와는 좀 다른 지점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여긴다. 근사한 걸음걸이로 다리 위를 활보하는 여전사의 장면은 그 아래 이민자 수용소로 이어지고, 작전을 세우는 혁명가 무리의 모습은 그들이 한밤 수용소를 급습해서 군인들을 제압하며 이민자들을 구출해내고 마침내 폭탄 빛이 밤하늘을 수놓는 광경에 이른다. 숏의 진행과 교차는 빠르고 그 경로에 불명료한 요소는 없다. 이민자들을 가두던 철창 안이 어느새 군인들이 갇힌 장소로 급변해 눈 깜짝할 새 역전된 상황을 맞이할 때, 이 전환이 일으키는 흥분은 혁명가들이 거둔 승리의 의미에 기인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의미를 돌아볼 의지 없이 돌진해 제도의 이미지를 단숨에 전복해버리며 환희의 빛으로 날려버리는 혁명의 산발적이고도 화려한 이미지, 그 이미지의 추동력으로 수용소를 격파하고 마는 영화의 편집술, 속도, 통제력이 우리를 압도한다. 화면 안으로 우리의 눈을 빨아들여 이미지 바깥을 의식할 틈을 마련하지 않는 그 솜씨가 너무도 매끄럽고 강력해서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속임수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뒤늦게 안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행여 돋아날 그러한 의심의 가능성에 움츠리거나 거리끼지 않는 운동의 기세로 영화 끝까지 쾌속의 길을 개척하는 세계다. 그 기세에 올라탄 자만이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밥이 술과 약에 취해 텔레비전으로 쳐다보던 <알제리 전투>(감독 질로 폰테코르보)는 이 영화와 실은 별 관계가 없다. 그 작품이 밥에게는 사라진 아내를 추억하는 몽롱한 잔상 같은 것일 수는 있겠으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알제리 전투>의 혁명 정신을 계승하지도 동경하지도 않는다. 폴 토머스 앤더슨이 이 영화에 불러들인 ‘혁명’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의 차원에서 작동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혁명은 유동의 욕망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영화 속 백인 엘리트 극우 집단인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은 아무런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는 밀실에 틀어박혀 아무런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길 원하며 아무런 움직임도 직접 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험하지 않는다. 이들이 등장하는 장면만큼 ‘반혁명적’인 이미지도 없을 것이다. 혁명은 단절을 감행하고, 다시 연결을 시도하는 운동, 말하자면 파도의 흐름 같은 것이다. 윌라의 가라테 스승인 세르지오(베니치오 델 토로)가 다급한 상황일수록 평정심을 찾으라며 ‘파도’를 떠올리라고 할 때, 그 말은 움직임을 멈추지 말고 가볍게 만들어 변동성을 지속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황량한 도로 위에서 경찰에 잡힌 그가 몸을 활짝 펴서 뜬금없이 새처럼 춤추는 몸짓은 이 영화에서 가장 침착하면서도 단단한 혁명가인 그가 “수백년째 당하는 신세”를 견디며 오랜 시간 내면화한 ‘파도’의 형식일 것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좇는 혁명의 형식은 상승과 하강의 운동을 시도하고 수용하는 육체성을 응시하며, 그것이 고통보다는 욕망과 쾌감의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혁명의 이미지를 섹스의 이미지와 연루하는 방식은 그러므로 이 영화로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영화 초반, 관공서 폭파 장면과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와 밥의 섹스 장면은 숨 가쁜 긴장감으로 엮여 혁명의 속도를 높인다. 폭탄이 터지기 일보 직전은 이들이 성적으로 가장 흥분하는 순간이다. 앞서 언급한 도입부에서도 우리는 혁명에의 욕망과 성적인 욕망이 괴이한 상태로 접속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퍼피디아는 스티븐과 이민자 수용소에서 처음 마주한 날, 무방비한 스티븐에게 총을 겨누며 ‘일어나’(get up)라고 명령한다. 이 말은 스티븐의 단순한 투항만이 아닌 성적인 복종 또한 강제하는 이중의 용어가 되어 제압된 군인의 이미지를 희극적이고도 거북하게 그야말로 새삼스레 ‘일으킨다’. 의자에 앉은 스티븐은 별다른 저항 없이 자신의 성기를 세운다. 카메라는 성욕의 발현이라고도 성적인 굴복이라고도 판단하기 애매한, 솟은 성기를 자랑하듯 교묘한 표정을 짓는 권력자의 형상과 이를 의기양양한 자세로 짜릿하게 지켜보는 퍼피디아를 담는다. 진압과 항복의 운동으로 직진하던 긴급한 행로에 정치적으로 충돌하는 두 사람 사이의 끈적하고 은밀한 반응의 기류가 형성된다는 인상이 여기 이물감을 더한다. 이어지는 영화 전반부는 혁명 조직과 이를 저지하는 세력의 대립보다는 이 장면에서 성과 혁명의 기운이 얽혀 잉태된 씨앗이 발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퍼피디아와 스티븐은 욕망의 맹목적인 추종자로서 면모를 공유한다. 다만, 스티븐의 욕망이 권력욕과 페티시적 성욕으로 가시화되는 데 비해 퍼피디아의 그것은 불투명하다. 남편과 아기를 두고 혁명을 위해 집을 떠난다며 자율성을 운운할 때, 퍼피디아는 사회변혁과 같은 대의를 목표로 말하지 않는다. 그를 거듭 거리로 끌어내는 욕망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 초반, 이민자 수용소 공격을 앞두고 밥이 수제 폭탄으로 자신이 무얼 하면 되는지 어수룩하게 묻자, 퍼피디아는 시원하게 대답한다. “화려한 볼거리를 보여줘!” 밤하늘에 터뜨린 폭탄, 관공서를 부수는 화염, 한순간 눈부시게 펼쳐졌다 사라지는 빛, 그러니까 거대한 불꽃놀이와 다름없는 스펙터클이 퍼피디아에게는 혁명의 원천이자 양식이다. 영화는 누추하게 망가진 미국 사회의 풍경에 고개를 돌려 혁명의 원인으로 제시하지 않고, 혁명의 스펙터클을 주관하고 창조한 자들의 나르시시즘적인 희열과 거침없는 행보에 동참한다. 퍼피디아에게 흐르는 혁명가의 피는 그러한 스펙터클을 향한 본능이다. 그의 부모가 밥에게 한 말처럼 그 스펙터클을 향해 ‘달려가는’ 딸과 그의 ‘발목을 잡는’ 사위는 애초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인 셈이다. 퍼피디아가 혁명의 스펙터클이 폭발하기 전후로 도로를 가로질러 담대하게 걷고 뛰는 동작은 이 영화가 빚어낸 가장 멋진 리듬 중 하나다. 하나 영원한 스펙터클은 없다. 프렌치 75가 은행을 터는 장면에서 그 사실은 뼈저리게 각인되며 이들 조직이 와해되는 결정적 국면으로 작용한다. 이들은 복면도 쓰지 않고 대낮에 은행에 침투해, 마치 무대 위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뮤지션처럼 직원들의 책상에 올라 “이것이 권력”이라며 스스로 새로운 권력의 스펙터클이 되길 자처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시적 이미지는 화면 바깥에서 갑작스레 들리는 총성에 의해 일순간 정지한다. 거듭된 경고에도 임무를 다하려던 은행 경비원이 퍼피디아가 쏜 총에 죽는다. 방아쇠를 당겨버린 퍼피디아나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동료들의 모습은 마치 이제야 혁명의 민낯을 마주하고 어찌할 바 모르는 자들처럼 얼어붙는다. 혁명가들의 자기도취적인 이미지를 멈추는 총소리, 참혹하게 널브러진 시체는 이전 장면들에서 이들이 열망하던 혁명의 아름다운 환영을 찢어버리는 구체적인 결과로 화면을 흔든다. 은행 장면은 피 흘리는 시신의 이미지를 동반하지 않던 폭탄 테러의 통쾌한 불꽃 광경과 같지 않다. 이 대목은 물론 여전히 장르적이지만, 자신만만하게 쾌감을 뽐내지 못한다. 은행에서 빠져나온 조직원들이 경찰과 벌이는 추격 장면은 프렌치 75에 남은 마지막 힘을 모조리 투여하듯 대단한 화력으로 전개되는데, 가장 인상적인 광경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화력의 소진을 알리는 후반부에 나온다. 차에서 빠져나와 맨몸으로 도로 위를 내달리는 퍼피디아는 경찰차들에 서서히 포위되고 어느새 지상의 움직임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헬리콥터의 시야 속에 놓인다. 퍼피디아는 더이상 스펙터클을 만들고 누리는 혁명가가 아니라, 공권력의 시선 안에 포박된 수동적인 스펙터클의 대상으로서 익명의 초라하고 무력한 좌표점으로 전락한다. 영화 전후반에 걸쳐 이미지와 함께 활발히 흘러넘치던 음악은 헬리콥터 시선과 시야의 위세, 헬리콥터 모터와 경찰차 사이렌 소리의 위력에 눌려 아예 증발해버린다(이 영화는 음악을 그저 과하게 소비하지 않는다!). 공권력의 눈이 혁명(가)을 무력화하며 장악하는 장면으로 이 이상의 방식을 상상하긴 어려울 것이다. 체포된 퍼피디아는 다음 장면에서 휠체어에 앉아 얼굴을 가린 채, 그를 둘러싼 백인 경찰들의 수치스러운 환호를 감내하고 있다. 겁 없이 혁명의 순간을 만끽하며 화면을 꽉 채우던 얼굴의 밀도는 오간 데 없다. 전반부 끝에 사라져버린 퍼피디아는 그 얼굴을 되찾지 못하고 영화 결말, 편지 속 평면적인 음성으로 돌아와 화면을 부유한다. 결국 혁명의 스펙터클이란 기만적이고 허망한 것인가. 16년 뒤, 밥과 윌라(체이스 인피니티)의 작은 오두막에 이른 후반부에서 한결 다층화된 리듬과 활동성으로 무장한 장면들은 한편의 영화로서 이러한 회의 섞인 자문에 굴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제 프렌치 75는 조직의 기동력과 스펙터클 모두 상실한 세계에서 어렴풋한 암호를 둘러싼 소모적인 퀴즈로만 과거의 존재감을 간신히 증명한다. 밥은 과거에서 건너온 암호에 화답해 죽은 혁명의 불씨를 현재에 되살릴 위치에 있지만, 이 수신인은 딸이 실종된 순간에도 시종일관 멍한 정신으로 엉뚱한 데서 무용한 실마리를 붙잡고 갈팡질팡한다. 그가 암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핸드폰 충전기 콘센트를 찾아 헤매고 넘어지고 추락하는 동안, 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지연된다.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밥이 낭비하는 시간은 이 영화의 재기 넘치는 유머와 베니치오 델 토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뛰어난 코미디 감각을 펼쳐내는 데에만 복무하지 않는다. 밥이 허비하는 시간의 동선에는 전반부에는 등장한 적 없는 하층계급 이민자 공동체의 풍경이 뿌리내려 있다. 그 풍경은 밥이 끝내 답하지 못한 프렌치 75의 집요한 질문, “몇시인가요?”에 대한 영화적 응답이다. 어두운 거리로 나선 시위대는 경찰들에 맞서 저항의 파동을 일으키는 중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도로를 횡단하며 시위 행렬에 동참한 히스패닉 청년은 3차대전이 일어난 것 같다며 들뜬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밥에게 비밀 행로를 터주려는 청년들이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부리는 묘기의 실루엣은 활기찬 그림자놀이의 역동성을 닮았다. 이들 각각은 모두 이 밤, 혁명의 스펙터클을 이루는 주인공이다. 한편 공동체의 믿음직한 조력자 세르지오의 집 내부 곳곳에는 바깥의 소란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평온한 자태로 자기 공간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가족들이 있다. 그 집을 피난처 삼은 미등록 이주민들도 별다른 동요 없이 자리를 지킨다. 그 광경들을 쭉 따라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그저 야단스러운 기법이 아니라 이 집이 오래도록 굳건히 지켜낸 삶의 조건을 화면에 새기는 방식일 것이다. 세르지오의 집 안팎을 오가는 장면들은 혁명은 여전히 즐거운 것이라는 기조를 확장하면서, 전반부의 스펙터클이 포착하지 못한 혁명의 일상성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단 한번도 상황을 주도한 적 없는 인물인 밥이 신기하게도 영화의 중심축으로 점차 설득된다면, 그가 소모한 시간과 몸짓에 혁명의 강령이 미치지 못한 이야기들이 어느새 깃들고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밥이 헤매는 시간은 평범한 생활인의 모습으로 곳곳에 숨은 동지들이 혁명의 맥으로 일순간 반짝이며 깨어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호흡을 해야 해.” 10대가 된 윌라의 얼굴로 후반부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에서 가라테를 연마하는 그를 향해 세르지오 “센세”는 말했다. 움직임의 굴곡을 느끼는 일, 그것이야말로 혁명의 호흡이며 영화 후반부를 지탱하는 믿음이다. 세르지오의 가르침이 마침내 극적으로 구현되는 순간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추격 장면에서다. 센세의 호흡을 습득하고 물려받은 윌라가 그 일을 해낸다. 그가 스티븐에게 고용된 용병들로부터 탈출해 두손에 수갑을 찬 채 운전대를 돌리는 동안,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의 일원으로 방금 스티븐을 제거한 남자의 차가 그 뒤를 쫓는다. 많은 이들이 상찬하는 이 대목의 빼어남은 벌판을 가로지르는, 장애물 하나 없는 도로의 굴곡진 지형에서 자동차 세대와 거울만으로 추격의 속도, 시야, 시점을 조율하는 독창적인 감각에 기인한다. 영화는 서퍼가 보드에 올라타기 위해 적절한 파도의 타이밍을 예리하게 주시하는 것처럼, 이 시퀀스를 설계한다. 기술과 스피드가 아니라 이 도로에 잠재된 운동성을 겸허히 체감하는 레이서가 추격전에 승리할 자격을 가질 것이다. 윌라는 도로의 곡절을 호흡하며 그 기류를 거스르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움직임을 멈출 순간을 터득해 수세적인 방법으로 공세를 취하는 데 성공한다. ‘크리스마스 모험가’는 목표를 향해 그저 속력을 높이는 전형적인 추격전의 자세로 무지하게 임하므로 애초 패배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파도’를 떠올리라는 센세의 조언이 여기서 비로소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다. 부서진 차에서 피투성이로 내린 남자를 향해 윌라는 프렌치 75의 오래된 암호를 외친다. 그는 즉각 답하지 못하고 윌라가 쏜 총에 즉사한다. 아마도 윌라는 끝내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하겠지만, 이 순간, 16년 동안 먼지 속에 잠자던 낡은 혁명의 기표는 건재함과 유효함을 선언하며 감격적으로 부활한다. 윌라는 의식하지 못한 채로 혁명의 경이로운 스펙터클을 본능적으로 창조한 것이며, 그때 봉인이 열리듯 “믿음의 장비”에서도 선율이 흘러나온다. 사태가 해결된 후 여지없이 뒤늦게 헐레벌떡 도착한 밥이 그 선율의 반쪽이 되어 비로소 음악을 완성하는 이 대목에는 이상한 울림이 있다. 투사라고 부르기 어려운 두 사람 사이, 바람 소리만 들리는 사막의 길에서 혁명의 음악이 그 어떤 수사보다 투명하고 잔잔한 결기로 살아남아 흐른다. 그 선율의 단순한 견고함은 윌라와 밥이 맞이하는 결말부에서 소리 없이, 영화의 태도로서 다시 상기된다. 소파에 널브러진 밥은 윌라에게 셀카 찍는 법을 배우고, 윌라는 오클랜드에서 일어난 시위에 동참하겠다며 집을 나선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감상적인 목소리로 귀환한 퍼피디아나 액션영화의 주인공처럼 죽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되살아나 가스실에서 살해되는 스티븐의 최후에는 다분히 극적인 기운이 깃들지만, 윌라와 밥의 이미지는 범상하기만 하다. 영화는 혁명의 장엄한 여운이나 아련한 기억, 혹은 주인공의 특별한 분위기로 결말에 힘을 실을 생각이 없다. 폴 토머스 앤더슨은 윌라가 향할 시위 집결지는 영화가 더는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듯 그가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는 찰나에서 카메라를 끈다. 장대한 여정의 유희와 임무를 거쳐 차분하게 ‘호흡’을 고르는 이 끝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어스름히 비치는 작은 창문을 열어둔 것일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마지막 장면은 앞선 혁명의 스펙터클이 도착한 정박지로서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그 소박한 이미지가 속삭인다. 이곳이야말로 미지의 활동을 다시 꿈꿀 새로운 출발지야.

[인터뷰] 호방한 개척자, 배우 중신링

“안녕하세요. 저는 배우이자 MC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뚱뚱했어요. 제 몸은 수치가 아니라 훌륭한 연기적 도구입니다. 독특한 체격 덕분에 좋은 역할을 많이 맡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 중신링은 자국에서 잘 알려진 멀티플레이어다. 금종상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세번이나 받은 실력자로, 대만 국민 드라마 <나의 귀여운 시어머니>에서 바로 그 시어머니로 분해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베테랑 진행자로도 맹활약 중인 그는 ‘텔레비전의 여왕'으로도 불리고 있다. 중신링은 인터뷰에서도 재치 넘치는 언변과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가 마지막 답변을 끝내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황홀한 쇼를 본 듯 박수를 쳤다. - 펑리수 가게를 배경으로 한 가족 코미디 <나의 귀여운 시어머니>는 시즌2에 이어 극장판까지 나왔다. 많은 동료와 긴 시간 함께 작업한 시절이 어떻게 남아 있나. = 다 함께 먹은 기억밖에 없다. (웃음) 식사 신이 정말 많았는데 이미 절반쯤 먹고 촬영을 시작 하곤 했다. 서로 밥 사기 바빠서 누가 사다둔 아침을 먹고 있으면 스태프가 곧 점심이 도착 한다며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그만큼 가족처럼 지냈고 그때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그립다. - 넷플릭스 시리즈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 중 <고양이 새끼> 편에서는 아들의 어머니 역할을 맡아 평소와 다른 메마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 나 역시 두 아이의 엄마로서 매일 아이들과 부딪히며 산다. 엄마들에게는 아주 어두운 면이 있는데, 이 작품이 그걸 발견해주어서 공감이 갔고 위안이 됐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느끼는 엄마로서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자 했다. - 남들 앞에 서는 직업이 천직 같다. 언제부터 배우를 꿈꿨나. = 어릴 적부터 형제자매와 집에서 연극 놀이하는 게 일상이었고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도 나갔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 추천으로 국립타 베이예술대학교 연극대회에 나갔다가 잘돼서 그 학교 연극학과에 들어갔고. 그때만 해도 연기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잘생기고 예쁜 선후배 들을 제치고 내가 배역을 따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공주 옆에 서는 공룡 역할을 맡았는데 선생님에게 ‘너, 참 잘한다’ 는 칭찬을 들었다. 그 무대에서 ‘나도 연기를 할수 있구나’ 하는 용기를 얻었다 - 금종상에서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 최우수진 행자상을 수상한 이력도 눈에 띈다. TV 진행자 활동은 어떻게 시작했나. = 시작은 대타였다. 원래 담당이던 남자 MC가 진행할 수 없게 되면서 체격이 비슷한 내가 대신 행사를 맡게 됐다. 어릴 때부터 마이크 잡기를 좋아했는데 커서도 여전히 좋더라. 긴장지만 그걸 넘어서는 짜릿함이 있다. - 그동안 다양한 여성들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그리고 싶은 여성상이 있다면. = 주로 엄마 역할을 맡아왔는데 좋다. 고유한 결을 찾아 이전과 겹치지 않는 엄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밌다. 앞으로도 즐겁게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바라는 캐릭터가 있다면 악역이다. 예전에 한번 해봤는데, 악역은 감춰둔 것을 진실하게 드러낼 수 있어서 쾌감이 컸다. 아주 조용한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 평소에 내가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