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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9404)

주름살? 신경 꺼!

아가씨,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을 보고 ‘행복하게 늙어가기’를 고민하다 90년대 이후 화장품 업계의 대박 상품은 단연 링클케어 제품이다. 10년 전만 해도 주름살 개선 화장품은 엄마들의 전유물이었다. “여자 나이 20살부터 노화는 시작됩니다!” 이 뒷골 당기는 광고 카피에 충격 먹은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아이크림을 벌써부터 발라야 해?” 나의 아둔함을 향해 날아온 메가톤급 어퍼컷, “아직도 아이크림 없단 말야?” 스무살 이전까진 어른되기에 골몰하다가 스무살 이후에는 늙음에 대한 공포로 ‘여생’을 점철해야 하다니. 미래를 향한 투자를 위해 지불되는 건 화폐만이 아니다. ‘퓨처 인베스트먼트’를 위해 희생되는 지금, 이곳. 노화방지 프로그램을 철저히 실천할 성실함이 없는 난, 30대의 행복, 40대의 행복, 50대의 행복을 한컷한컷 만끽하는 쏠쏠함에 곁눈질이 간다.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코믹로맨스보다 눈에 띈 것은 ‘나이 든 여자’의 행복 찾기다. 다이앤 키튼이 한여름에도 터틀넥을 입는 강박증에서 벗어나는 열쇠는 두 가지로 읽힌다. 첫째, ‘몸’의 발견. 이혼 뒤 “루주 칠하고 휘파람 불 때” 외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입술의 감각. “당신 입술, 부드러워”라는 남자의 칭찬으로 그녀의 몸의 발견은 불붙는다. 둘째, ‘우는 법’의 발견. 56년 만의 첫사랑에게 무참히 차이고 나서야, 피도 눈물도 없던 그녀는 맘껏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평생 고수해온 못 말리는 금욕주의와 쿨한 스타일을 구기며 펑펑 울어대는 장면. 이보다 더 쪽팔릴 수 없는 생애 최악의 눈물 퍼레이드를 통해 그녀는 생애 최고의 희곡을 완성한다. 키아누 리브스가 그녀에게 홀딱 빠지는 건 그의 눈이 삐어서가 아니다. 그녀는 꽁꽁 감싸맨 눈물과 몸의 매듭을 풀어줌으로써 진정 젊음과 아름다움을 쟁취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구질구질하게 늙어가지 않기 위해’ 갖춰야 할 소도구들이 너무 많다. 다이앤 키튼은 여전히 럭셔리한 몸짱이다. 아늑한 별장과 최고의 희곡작가라는 레테르까지 소유하고 있다. 잭 니콜슨 역시 잘 나가는 음반회사 경영자이며 예순이 넘도록 20대 여성만 꼬드겨온, 평생 바람 피우다 죽어도 좋을 늘어진 팔자다. 그들의 사랑을 세련되게 채색하기 위해 너무 많은 소유의 목록과 무거운 미장센이 동원된다. 이 영화의 아가씨판 타이틀은 <곱게 늙기 위해 갖춰야 할 너무 많은 것들>이다. 주름살을 돌볼 겨를도 없이 바쁘게 연애하며 신명나게 노동하는 할머니가 되고프다. 10억원짜리 적금통장보다는 나달나달해진 여권이 갖고 싶다. 내게 행복하게 늙기 위한 비결을 전수해준 텍스트는 <죽어도 좋아>였다. 이 영화에선 낭만적 사랑을 위한 모든 피곤한 과정이 생략된다. 그들은 눈치 보며 밀고 당기는 자존심 쟁탈전의 비경제성을 이미 깨달았기에, 첫눈에 필이 꽂히자마자 아쌀하게 동거에 들어간다. <죽어도 좋아>에는 어떤 영화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삶의 미니멀리즘’이 있다. 그들의 사랑을 위해 필요한 건 오직 이불 한채와 작은 방 하나다. 간결하게, 간결하게, 더이상 줄일 수 없게! 그들은 빨간 고무 다라이 하나만으로 쉽게 에로틱 무드로 전환하며 서로의 몸을 만지고 호흡하는 기쁨을 누린다. 그들은 최소한의 질료로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비법을 실천한다. “우린 날마다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 생각밖에 안 혀요.” 이들은 한살이라도 젊어 보이려 버둥대지 않는다. 하루하루 행복에 겨운 나머지 주름살을 고민할 짬조차 없다. <죽어도 좋아> 덕에 처음으로 나이 먹는 일이 좋아졌다. 나를 옭아매는 강박과 히스테리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곧 나이 먹는 일이니까. 부지런히 늘어갈 나의 주름살들이 부디 링클케어에 시달리지 않기를. 내 이마에 팬 주름살들이 벗들의 지친 발걸음을 쉬어가게 할 나른한 주막이 되기를. 정여울/ 미디어 헌터 suburbs@hanmail.net

헛다리 짚은 여인

요즘 탤런트 이승연씨의 곤욕이 크다. 누드 상품을 만들면서 일제 종군위안부 컨셉을 차용하는 바람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 생명은 끝장”이라는 말이 점잖은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으니 사고를 크게 치긴 친 모양이다. 일부 여성 연예인들이 승부수로 구사하는 누드 동영상은 육체를 엿보게 해주고 돈을 버는 오래된 책략이라는 측면과, 젊은 육체의 화사한 매력을 주저없이 내보이며 가볍게 향유하는 새로운 시대의 덕을 이중으로 보는 아이템이다. 거기에 누군가가 이런 머리를 보탰을 것이다. 대박 나는 영화를 보면 민족의 아픔을 이야기하잖아? 벗은 몸과 민족이라. 위안부가 딱이네. 역사의식이 가미된 엔터테인먼트! 그런데 이 대목이 패착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가 전쟁과 분단 후유증, 부도덕한 군사정권 등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들을 건드리며 집단적인 해원을 유도하고 있긴 하나, 매우 영리하게 계산된 눈높이와 감성 코드를 유지하고 있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어떠한 심리적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건드리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상처로 남아 있는데, 누드 기획의 주역들이 그만 어수룩한 솜씨로 접근한 것이다. 한국의 식민지 민족주의 체계에서 민족은 흔히 순결한 젊은 여성으로 표상되며, 일본은 여성=민족을 성적으로 능멸한 야수라는 대립항을 이룬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의 정체성을 일본과의 관계에서 역으로 구성하는 셈이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재활용되는 위안부 문제는, 그러므로 복잡하게 작동하는 상징 체계이자 이중의 트라우마가 된다. 이승연 누드 파동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이 파동의 참된 해법은 이승연씨와 누드 제작자가 위안부 할머니 앞에서 무릎 꿇고 절을 하는 쇼가 아니라, 여성/육체/민족이라는 이 거대하고 탄탄하게 결합되어 있는 관념체계의 실상을 되돌아보는 데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만 종군위안부가 늙어서도 죽어서도 성역 속에 갇혀 꼼짝 못하는 피해자/애국자가 아니라, 진정 자유롭게 살아 숨쉬는 존재가 되지 않겠는가.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극우파와 보수적인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신성화된 해석을 강요함으로써 막대한 돈벌이 수단 겸 중동정책을 끌어가는 이데올로기로 삼는 현실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는 종군위안부의 존재를 수십년간 외면했다가 이제는 거룩한 순교자의 틀 안에 봉쇄해놓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런 세월 속에서 득을 보아온 사람들은 따로 있다. 나는 그 장단에 춤을 추고 싶지는 않다. 또한 이승연씨가 제 꾀에 제가 무너진 사람이라고 생각은 해도, 역적이라며 돌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김형태의 생각도감] 집12 - [홈 네트워크]

집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진화한다. 비와 바람을 막아주고 먹고 자고 생활하는 ‘장소’에서 시작되어서 점차 다양한 기능을 갖춘 ‘장치’로 발전하고 있다. 단순한 광물과 목재와 철물들로 만들어진 무기질의 건축물에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 집은 혈관이 생기고, 심장을 갖추고, 체온을 지니고 호흡하는 생명력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생활을 보호하는 외부적 기능에서, 인간의 생활을 적극적으로 돕는 신체확장의 의미로까지 진화해왔다. 집은 생활 속에 자리한 가장 거대한 기계장치이다. 전기는 생명이다. 전기가 단순한 기계장치를 작동하는 차원에서 정보를 제어하는 수준으로 발전하면, 굴삭기 같은 단순한 기계가 지능을 가진 지능적 로봇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의 우리의 집은 홈 네트워크(Home Network) 시대의 개막을 부르짖으며 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각 방들과 부엌과 거실 등 분할된 개별적 공간에 분리되어 있는 가족간의 정보를 교환할 수 있으며, 집 밖에서도 각종 원격조종장치를 이용해 집안의 세탁기와 전기밥통과 냉장고와 가스밸브를 통제할 수 있다. 초고속 통신망은 이 작은 집을 전세계와 연결해놓고 있다. 플러그를 꽂을 콘센트가 없는 인간의 신체로는 불가능했을 커넥션을 집이라는 거대한 로봇은 실현하고 있다. 이 훌륭한 거대 로봇은 전통적인 주택의 안락함 이상의 편리함을 제공해준다. 주택자동관리 시스템은 집안의 각종 카메라 인식장치로 침입자를 감시하고, 필요에 따라 스스로 경찰을 부르고, 실내 온도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귀가하는 집주인이 열쇠를 찾느라 허둥댈 필요없이 동공확인 시스템으로 주인을 알아보고 문을 열어주며, 집에 들어서서 외투를 벗으며 “거실 조명 켜고, 이메일 확인하고, 형님 집에 전화연결하고, 커튼 내리고, 내일 아침 7시에 음악 알람 준비하도록 해”라고 말만 하면 된다. 집은 음성인식장치로 말도 알아듣는다. 이른바 인텔리전트 주택이다. 원시적 형태의 집이 보호벽의 단순한 기능이라면, 전기문명 시대의 집은 신체의 물리적 확장을 의미하는 기계적 집이었다. 그 다음 단계는 전기라는 생명력에 정보라는 의식과 인간과 네트워크를 갖춘 유기적 총체로서의 존재가 됨으로써 인간의 몸과 의식이 확장된 새로운 생명체가 된다. 홈 네트워크는 더욱 긴밀하고 광범위하게 진화해서 기어이는 전세계가 하나의 생명체의 신경계처럼 연결되고 인간은 그 사이를 흐르는 피톨처럼 살아갈 것이다. 그때는 집이 죽으면 사람도 죽고, 홈 네트워크를 정복하면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다. 홈 네트워크는 매트릭스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예술가 www.thegim.com

영화사 신문 제32호 (1975∼1976년)

존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유작이 된 <살로, 소돔의 120일>. 파졸리니는 이 영화 촬영을 끝내고 3주 뒤 , 그의 영화배경으로 여러 차례 등장했던 오스티아 해변에서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했다. 파졸리니, 의문의 죽음 시체에 난 상처 단독범행 의구심 파시스트 테러 가능성 등 '배후설 제기 누가 파졸리니를 죽였는가? 이탈리아 경찰이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살해를 17살 소년 피노 펠로시의 단독 범행으로 잠정 결론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파졸리니의 죽음을 둘러싼 의구심은 점점 커져만 가고있다. 펠로시의 단독 범행으로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펠로시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이른바 배후설이 제기되고 있다. 파졸리니는 1976년 11월2일, 로마 근교의 오스티아 해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시신은 형체를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만큼 처참하게 훼손되어 있었으며 가슴에는 자동차 바퀴가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이에 경찰은 파졸리니가 심하게 얻어맞은 뒤 자동차로 가슴을 치인 것으로 추정했다. 사건 직후 살인 용의자로 검거된 피노 펠로시는 “파졸리니가 죽을 때까지 때렸다”라고 시인했지만 “차로 친 기억은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펠로시는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Sal o le 120 Grinate di Sodoma)에 출연하기도 했던 소년으로 동성애자인 파졸리니는 사건 당일 밤 오스티아 해안 근처의 빈민가에서 그를 ‘픽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경찰은 이번 사건을 ‘성범죄’로 단순 결론지었다. 하지만 곧 의문들이 제기됐다. <에우로페로>는 “펠로시 혼자가 아니다. 범인은 두명의 폭주족이며, 마약세계의 깡패들이 개입되어 있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심지어 <코리에레>는 파졸리니의 죽음을 “충동적인 자살”이라고 추측했다. 이같은 의문들이 제기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17살 소년이 혼자만의 힘으로 성인 남성을 때려죽였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정황상 누군가 파졸리니를 붙잡고 여러 명이 함께 두들겨패지 않고는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힐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파졸리니에게 ‘적’이 많았다는 점도 이러한 배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좌파였던 파졸리니는 소설과 시, 영화를 통해 이탈리아 정부와 지배계급을 정면으로 비판해왔다. 죽기 일주일 전에도 그는 “모든 지배계급을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라는 ‘급진적인’ 글을 발표했다. 이같은 행보가 여당인 기독교민주당과 급부상 중인 네오파시스트 집단의 심기를 건드렸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1971년 군부와 네오파시스트 집단이 쿠데타를 기도한 뒤 지금까지 이탈리아 정국은 혼란 상태이며, 그 와중에서 극우파의 테러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결국 이러한 정치 상황이 파졸리니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이번 배후설의 핵심이다. 하지만 펠로시의 배후에 대한 수사는 아직 이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영화, 이렇게만 파시오 마케팅의 승리로 기록된 <죠스>의 흥행 신기록 27살의 애송이 감독이 만든 영화 한편의 대성공으로 할리우드는 지금, ‘마케팅’에 미쳐 있다. 이 영화가 흥행 신기록을 거둠에 따라 때로는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파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제작자 리처드 D. 자눅이 이 영화 한편으로 그의 아버지이자 전설적인 제작자인 대릴 자눅이 평생 번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가 바로 그 영화다. 유니버설은 <죠스>를 개봉하면서 대대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죠스> 제작비 1200만달러의 1/5 수준인 250만달러를 마케팅 비용으로 쏟아부었으며, 그 대부분을 개봉 1주일 전에 몰아서 썼다. 우선 개봉 전 관객에게 <죠스>를 인식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홍보전을 펼쳤다. 무려 70만달러를 들여 텔레비전 프라임 타임대에 광고를 내보내는가 하면, 스탭들이 개봉 8개월 전부터 토크 쇼에 출연해 <죠스> 홍보에 열올렸으며, 죠스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간명하고도 강렬한 포스터로 거리를 도배하고 존 윌리엄스가 만든 주제음악을 라디오로 내보냈다. 사전에 판권 계약을 한 원작소설은 개봉에 맞추어 출판되었다. 또한 유니버설은 <죠스>를 ‘와이드릴리즈’했다. 지금껏 와이드릴리즈는 별볼일 없는 영화를 개봉하면서 나쁜 입소문이나 리뷰가 나돌기 전에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취하던 전략이었다. 하지만 유니버설은 와이드릴리즈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는 1975년 6월20일 북미 전역, 464개의 개봉관에 <죠스>를 풀었다. 관련 상품들도 흥행에 바람몰이 노릇을 했다. 곧 사운드트랙, 티셔츠, 플라스틱 컵, 비치 타월, 상어 복장, 포스터 등 갖가지 상품들이 영화와 함께 끼워팔기(tie-ins) 품목에 올랐다. 이같은 홍보전에 힘입어 <죠스>는 250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모두 1억295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아듀, 버너드 허먼 영화음악가 버너드 허먼이 1976년 12월2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64살. 13살에 작곡상을 수상하고 20살에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설립했던 허만은 30년대 오슨 웰스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위해 곡을 썼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허만은 웰스의 데뷔작 <시민 케인>의 음악을 맡으면서 영화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이후 <싸이코> <현기증> <새> 등 히치콕 영화 9편에 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유작은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 그는 이 영화의 녹음을 끝낸 지 몇 시간 뒤에 세상을 떴다. 한편, 마틴 스코시즈는 <택시 드라이버>를 허만에게 바치겠다고 밝혔다. 그리말디, <1900년> 후폭풍 불까 '노심초사' 흥행 참패로 신작일정 줄줄이 삐걱… 유럽예술영화계까지 할리우드 투자 위축될까 걱정 이탈리아의 명제작자 알베르토 그리말디가 요즘 고민에 빠졌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신작 <1900년>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그의 이후 일정이 차질을 빚게 된 탓이다. 당장 대시엘 해밋의 <피의 수확>을 영화화하기로 한 베르톨루치의 차기작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그리말디가 제작하고 세르지오 레오네가 연출하기로 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제작이 연기되었다. 하지만 더욱 큰 걱정은 <1900년>의 실패로 유럽예술영화에 대한 할리우드의 투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간에는 광범위한 합작이 시도돼왔다.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감독들 등 수많은 유럽 감독들이 미국의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할리우드의 투자가 가장 활성화된 곳은 이탈리아였다. 예컨대 1968년 이탈리아영화에 투자된 900억리라 가운데 이탈리아 자본은 220억리라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미국의 자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알베르토 그리말디는 1967년 미국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사와 계약을 맺고 미국-유럽 합작영화들을 만들어왔다. 파졸리니의 <켄터베리 이야기> <데카메론> <아라비안 나이트> 등이 그가 제작한 영화들이다. 그리말디의 목표는 위대한 예술영화 감독들을 상업영화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그럼으로써 “영상예술과 스펙터클을 결합하는 것”이었다. 1972년 그리말디는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제작한다. 이 영화는 X등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만 4천만달러의 수익을 거두어들였다. <파리…>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 그리말디와 베르톨루치는 대작인 <1900년>의 제작에 돌입했다. 그리말디는 제작비를 높이기 위해 파라마운트, 폭스,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등 세 회사에 영화를 팔았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본 스튜디오 관계자들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상영시간이 무려 6시간15분이었던 것이다. 계약 당시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3시간20분을 넘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던 터였다. <1900년>의 편집을 둘러싼 논란은 끝내 법정 공방으로까지 비화됐다. 그리고 메이저 영화사들은 상영시간을 4시간8분으로 축소한 버전을 극장가에 풀었다. 하지만 <1900년>은 비평에서도, 흥행에서도 죽을 쑤고 말았다. 그러자 영화사들은 그에 대한 ‘응보’로 그리말디의 신작에 대한 투자를 철회했다. 영화계 '우먼파워' 물결 메자로스 <어돕션>으로 베를린 그랑프리 <인디아송> 등 페미니즘영화 잇따라 발표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라! 최근 들어 여성감독들의 스크린 진출이 괄목상대하고 있는 가운데,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성감독이 영예의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헝가리 여성감독 마르타 메자로스의 <어돕션>이 1975년 7월8일 폐막한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성감독이 그랑프리를 차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마르타 메자로스의 <어돕션>은 유부남 애인의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43살의 독신여성 케이트와 그녀의 삶에 갑자기 뛰어들어온 보호소 소녀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여성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흑백영화다. 메자로스는 남편인 미클로시 얀초, 이스트만 자보와 함께 헝가리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돕션>의 그랑프리 수상은 여성영화의 현주소를 가늠하게 하는 시금석의 의미를 갖는다. 60년대 중반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여성영화는 질과 양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1975년 한해만 살펴보아도 모더니즘영화의 사건으로 평가받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인디아송>, 샹탈 애커만의 <잔느 딜망>, 마가레타 폰 그레타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영예> 등이 발표되어 페미니즘 비평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이론진영에서는 로라 멀비가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라는 논쟁적인 글을 발표했다. 베리만, 무니치에 안착하다 스웨덴의 대표 감독, 조국을 등지고 독일에 정착하게 된 사연 <마술 피리>. 잉마르 베리만이 스웨덴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영화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감독 잉마르 베리만이 마침내 독일 무니치에 정착했다. 스웨덴을 등진 뒤 여러 곳을 떠돌던 베리만은 “스톡홀롬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무니치를 제2의 고향으로 택했다. 베리만이 스웨덴을 떠나게 된 건 느닷없이 벌어진 세금포탈 사건 때문이었다. 외국에 유령 회사를 차려 세금을 포탈했다는 게 그에게 덧씌워진 혐의였다. 1976년 1월30일, 베리만이 4월 프리미어를 앞두고 <죽음의 춤>을 연습하고 있던 극장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용의자’인 베리만이 도주할 것을 우려해 극장 입구를 봉쇄한 경찰은 세금포탈 혐의로 베리만을 연행해갔다. 사단은 이렇다. 베리만은 1967년 스웨덴 은행의 허가 아래 스위스에 ‘페르소나 리미티드’라는 재단법인을 설립한다. 페데리코 펠리니와 함께 신작 <러브 듀엣>을 찍기 위해서였지만 이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이어 추진하던 영화마저 무산되자 그는 법인을 해산했다. 하지만 스웨덴 국세청은 “페르소나 리미티드가 한 일이 없으므로 세금포탈을 위해 설립한 유령 회사로 볼 수밖에 없다”고 단정지었다. 그리고는 쉽게 연락이 닿지 않는 베리만을 붙잡기 위해 극장을 급습했던 것이다. 베리만은 <죽음의 춤> 연습에 몰두하느라 외부와 거의 연락을 끊고 지냈다. 이날 베리만은 경찰에 끌려가 3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이때 그를 따라온 경찰은 그의 아파트를 뒤져 개인문서와 여권 등을 압수해갔다. 하지만 경찰은 그에게서 특별한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일은 베리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날 이후 누군가에게 쫓기는 망상에 시달리던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2달간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퇴원 뒤 3월22일치 <엑스프레센>에 실린 서한을 통해 스웨덴을 떠날 계획임을 밝혔다. 이 서한에서 그는 “창작을 할 수 없으면 존재할 수도 없는데, 이 나라에서는 더이상 창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밝혔다.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도 숨기지 않았다. 스웨덴을 떠난 베리만은 파리로 갔고, 파리를 거쳐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를 둘러본 그는, 하지만 미국에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여러 나라의 수도를 떠돌다 무니치를 망명지로 선택했다. 호금전의 <협녀>, 칸에서 기술 인정 호금전의 <협녀>가 1975년 칸영화제에서 기술대상을 수상했다. 1966년 <대취협>으로 데뷔한 이래 무술영화 장르를 크게 혁신해온 호금전 감독이 대만으로 이주, 무술영화를 위한 스튜디오를 설립해 만든 <협녀>는 제작에 3년이 걸린 대작. 홍콩에서는 이미 1971년에 개봉됐다. 소련 자본 ‘구로사와’표 영화, 미국서 수상 구로사와 아키라가 소련 자본으로 만든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도데스카덴>의 실패 이후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던 구로사와는 소련의 모스필름에서 제작한 <데루스 우잘라>로 1976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데루스 우잘라>는 이미 1975년 모스크바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편집인 이유란

[주말 극장가] 학교간 록커, 허리붙은 쌍둥이 "누가 더 웃길까"

한국영화 개봉작이 없는 이번 주말은 움츠렸던 외화들이 간만에 '기를 펴는' 타이밍이다. <붙어야 산다>, <베로니카 게린>, <실종>, <스쿨오브락>, <브링 다운 더 하우스>, <타임라인>, <리지 맥과이어>, 까지 8편 모두가 외화다. 코미디부터 멜로, 액션, 드라마, 스릴러까지 장르도 다채롭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여전히 극장가를 주름잡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외화들이 얼마나 선전할지 김은형 기자를 따라 주말 극장가를 미리 가본다. 편집자 주 학교에 간 록커·허리붙은 쌍둥이 “누가 더 웃길까” 이번 주에는 코미디의 두 강적이 극장가에 뜬다. 젊은 코미디 배우 잭 블랙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스쿨 오브 락>과 화장실 유머의 시조로 추앙받는 패럴리 형제 감독의 <붙어야 산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에서 주인공과 감독으로 만났다가 이번에는 경쟁자로 만나게 됐다. <스쿨 오브 락>은 재능은 없지만 열정만은 차고 넘치는 록커가 우연히 사립초등학교에 임시교사로 들어가 어른들의 등쌀에 풀죽은 아이들에게 록음악의 에너지를 불어넣어준다는 이야기다. <붙어야 산다>는 허리가 붙어있는 쌍동이 형제가 할리우드에 오면서 벌이는 좌충우돌을 발랄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두 영화 모두 가족 코미디의 공식에서는 약간 비껴나 있는 영화지만, 가족나들이로, 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모두 모자람없는 만족감을 줄 만한 영화다. 강한 여성상을 연기해왔던 실력있는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한 두 영화도 나란히 개봉한다. 혼자서 거대 마약책과 전쟁을 벌이는 아일랜드 여기자의 실화를 그린 <베로니카 게린>과 어린 딸을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유괴당한 어머니의 분노와 투쟁을 그린 <실종>. <실종>은 <뷰티풀 마인드> <랜섬> 등의 론 하워드가 감독한 작품으로 서부개척시대의 거대한 자연풍광이 볼 만하며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올랐던 작품이다. 지난해 초부터 개봉이 잡혔다 미뤄졌다를 반복했던 프랑소아 오종 감독의 도 드디어 개봉한다. 크리스마스날 교외저택에서 고립된 한 가족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을 뮤지컬 형식으로 그리는 이른바 ‘스릴러 뮤지컬’로 카트린 드뇌브를 비롯해, 이자벨 위페르, 임마누엘 베아르 등 쟁쟁한 프랑스 여배우들이 총출동한다. ‘붙어서 뜬’ 형제 떨어지면? 바인야드라는 시골마을에서 햄버거집 ‘번개 버거’를 운영하는 밥과 월트 형제. 얼굴도 따로 손도, 발도 따로지만 하나의 간을 같이 쓰는 샴쌍둥이인 이들은 이 마을 인기‘짱’이다. 야구면 야구, 축구면 축구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스포츠맨에다가(이 ‘따로 또 같이’ 커플이 골키퍼로 나서면 이미 경기 끝이다) 연례행사인 마을 연극에서 늘 주인공을 맡는 빼어난 배우이며, 식당에서는 손 네개, 발 네개로 순식간에 햄버거 열세트를 뚝딱 만들어내는 이들을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영화는 말하지만 뭔가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사진 한번 공개되면 전국민의 연민의 대상이 되는 희귀장애인들이 인기스타가 되다니. 그러나 정신분열증 환자와 난장이(<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팔없는 볼링선수(<킹핀>), 엄청난 뚱보(<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연민이나 조롱없는 코미디를 만들어온 패럴리 형제의 영화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붙어있을 때 기쁨 두배’가 되는 두 형제가 언제나 함께 일해온 패럴리 형제의 분신처럼 느껴지는 <붙어야 산다>는 붙어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황당한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펼치는 코미디 영화다. 운동신경 탁월하지만 소심한 밥(맷 데이먼)과 예술가적 기질과 바람둥이 기질 다분한 월트(그렉 키니어)는 서로의 취향과 일상을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간다. 밥이 좋아하는 운동을 할 때는 월트가 함께 뛰고 월트가 연기를 할 때는 밥이 관객 눈에 띄지 않도록 검은 스타킹을 입고 무대에서 함께 움직인다. 그러나 월트가 할리우드 진출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그리고 밥이 채팅으로 사귄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공개할 때가 되면서 ‘붙어있음’은 이들에게 장애로 다가온다. <붙어야 산다>는 전작들에서 형제감독의 편집증적인 집착처럼 보였던 ‘비정상’, 또는 비주류에 대한 관심이 실은 진심어린 애정이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월트는 비록 약발 떨어진 늙은 여배우 셰어(그는 실명으로 등장해 자신을 연기한다)의 이용 목적으로 텔레비전 드라마 캐스팅이 되기는 하지만 인기스타가 된다. 밥을 카메라에 등장시키지 않기 위해 벌이는 제작팀의 조야한 트릭은 영화의 가장 웃기는 장면 중 하나. 가슴성형수술을 받은 배우 지망생 에이프릴이 이들의 모습을 보며 “와아, 그건 어디서 수술받은 거야”라고 묻는 장면은 일반인보다 훨씬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할리우드의 편견을 살짝 꼬집는다. 실연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밥을 위해 월트는 분리수술을 결정하고 실행한다. 그러나 30년 이상 붙어살아온 이들에게 분리된 환경은 또 다른 재난으로 다가온다. ‘붙어있음’은 사랑이고, 중요한 건 남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를 ‘내몸같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짓궂은 감독형제는 따뜻한 결론을 내린다. 다만 훈훈해진 만큼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지체없이 ‘막 가는’ 유머의 통쾌함은 다소 완화됐다. 화장실 유머의 시조로서 패럴리 형제를 모셔왔던 관객들에게는 이렇게 착한 결론이 밋밋하거나 느끼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27일 개봉. 막강원작·감독 만나 어수선한 시간 여행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마이클 크라이튼의 베스트셀러 소설 <타임 라인>을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중세 고성의 유적 발굴 작업을 하던 일군의 젊은 고고학자들은 우연히 600년 이상 꽁꽁 숨어있는 지하유적을 발견한다. 그런데 양피지 필사본 등 내부 유물 가운데 이들의 지도교수인 존스턴의 안경알과 직접 쓴 구조요청 편지가 들어있다. 후원사인 ITC에 이 사건을 보고하면서 이들은 ITC가 양자 원격 이동 장치를 발명했고, 존스턴은 며칠 전 이 장치를 타고 중세로 갔다가 실종됐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타임 라인>은 액션 블록버스터 가운데 명작으로 꼽히는 <리썰 웨폰> 시리즈의 리처드 도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막강 원작자와 막강 감독이 만났지만 시너지 효과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듯해 아쉽다. 프랑스-영국 간 백년 전쟁의 한가운데 뚝 떨어진 인물들을 통해 감독은 중세시대의 액션 스펙터클을 끌어내고자 한다. 그런데 특별한 연유도 없이 죽어가는 대원들을 비롯해 영화 전체가 어수선하게 진행되는 바람에 컴퓨터그래픽을 마다하고 실제 크기로 만들었다는 고성의 위용이나 중세의 우아한 스펙터클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10대 겨냥한 <리지 맥과이어> 무모하리만치 깜찍한 디즈니표 <로마의 휴일> 동화 속 그림 같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 꽃미남 소년과의 달콤한 데이트, 눈부신 조명 한가운데 서는 스타 되기. 십대의 한 시절에는 누구나 한번쯤 빠져봤을 몽상이다.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며 예쁜 스티커로 다이어리를 알록달록 꾸미는 십대 소녀들을 겨냥해 만든 <리지 맥과이어>는 이런 판타지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틴에이저 영화다. <평범한 여중생의 일상을 그린 디즈니의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 <리지의 사춘기>를 극장판으로 확장한 이 영화는 <로마의 휴일>의 십대 버전 같다. 다만 <로마의 휴일>에서는 로마라는 비현실적 공간에서 공주가 평민이 되지만, <리지 맥과이어>에서는 평범한 학생이 공주로 변신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로마에 단체 답사여행을 떠나는 리지 맥과이어. 학교에서는 실수 투성이에 공주님들의 구박덩이지만, 일상을 벗어난 이곳에서 뭔가 특별한 일을 기대하는 건 당연지사다. 길거리에서 만난 이탈리아의 아이돌 스타 파올로는 리지를 자신의 연인이자 듀엣 파트너인 이사벨라로 착각한다. 파올로는 <로마의 휴일>의 그레고리 펙처럼 스쿠터를 타고 리지를 로마의 구석구석으로 안내한다. 그리고는 사라진 이사벨라 대신 자신과 함께 뮤직비디오 시상식장의 무대에 올라가자는 제안을 한다. <리지 맥과이어>는 십대소녀의 콩닥거리는 가슴 대신 늙고 심각한 이성으로 보기에는 말 안 되는 구석이 많은 영화다. 또한 디즈니표답게 십대의 우울함이나 고민 대신 밝고 귀여운 부분만 부각한다. 그러나 무모하리만치 깜찍한 판타지 역시 젊기 때문에 꿀 수 있는 꿈 아닌가. 그래서 <리지 맥과이어>는 십대 소녀의 철없는 몽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봐도 싱그럽고 유쾌한 영화로 즐길 만하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이어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은 17살의 힐러리 더프는 리지 역을 통해 영화 속 리지의 꿈을 이룬 10대 스타다. 짐 폴 감독. 27일 개봉.

관객 천만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1]

한국영화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는 것인가. 마침내 실미도의 원혼들이 1천만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실미도>가 2월19일 전국에서 1003만3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꿈의 기록’으로 여겨지던 1천만 고지를 넘어선 것이다. 투자배급사인 (주)플레너스 시네마서비스에 따르면, 2003년 12월24일 전국 300여개 스크린에서 포문을 연 지 58일째 만이다. 이는 관람 가능한 15살 이상 인구 3750만명 중 약 27%를 차지하는 수치. 하루 평균 17만3천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이 괴력의 영화가 과연 한국 영화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것인지에 관한 궁금증이 피어오르고 있다. <실미도>의 이같은 흥행을 처음부터 점친 이는 많지 않았다. 강우석 감독도 “인구 대비 1천만이란 스코어란 건 바람이지. 주문처럼 한번 외워본 거다”라고 말했을 정도. 그러나 뚜껑을 여는 순간 폭발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개봉한 지 3일 만에 전국에서 71만2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주 앞서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제압한 <실미도>는 1월31일에는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친구>(2001)의 전국관객 818만명이라는 기록마저 무너뜨렸다. 3월까지 전국 스크린 수 200여개를 유지하기로 함에 따라 최종 기록 추산은 당분간 미뤄진 상태다. 멀티플렉스 시대의 힘 편당 관객 1천만 시대의 도래가 가능했던 데는 최근 4∼5년 동안 비약적으로 늘어난 멀티플렉스의 공이 컸다. 이는 역대 흥행작들이 전국관객 100만명을 모으기까지 걸린 시간을 따져보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쉬리>(1999)가 서울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것이 개봉 뒤 21일째. <공동경비구역 JSA>(2001)의 경우 15일로 단축됐다. 멀티플렉스 체인을 주축으로 한 와이드릴리즈 방식의 배급 또한 <실미도>가 각종 기록을 양산하는 데 한몫했다. <실미도>가 등장하기 전까지 흥행 1위를 수성했던 <친구>(2001)는 개봉 당시 전국 스크린 수가 160개. 두배에 가까운 스크린 수를 확보하며 초반 기세를 잡았던 <실미도>의 승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실미도>에 이어 후폭풍으로 지목됐던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세 또한 만만치 않다. 순제작비만 147억8천만원을 쏟아부은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실미도>가 세워놓은 온갖 기록을 경신하며 맹렬하게 뒤쫓고 있다. 2월3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13일 만에 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실미도>가 세운 기록을 무려 6일이나 단축했다. 2월20일 현재 스크린 수만 무려 513개. 전국 스크린 수가 대략 1200여개임을 감안할 때 한편의 영화가 무려 전국 스크린의 5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기록이 바뀐다”는 한 제작자의 말이 과장이 아닌 셈. 투자배급사인 쇼박스에 따르면 관객 수 1200만명 돌파도 너끈할 것이라고 한다. 끊이지 않는 극장가 러시 행렬에 젊은 관객뿐 아닐라 중장년층 관객이 대거 가세했다는 것도 이들 영화의 특징이다. <실미도>는 금기의 소재를 끄집어낸 것이 주효했고, <태극기 휘날리며>는 스펙터클한 전쟁 안에 가족애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아낸 것이 좀처럼 극장을 들르지 않는 관객층에까지 어필했다는 평가. 이들 영화의 게시판에만 무려 1만3천여건, 2만여건의 글이 각각 실려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이와 관련해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2.2회에 불과한 한국영화 시장을 감안할 때 중장년 관객까지 흡수한 영화가 두편 나왔다는 것은 이후 안정적인 시장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된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두편의 영화는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실미도 사건은 매일 저녁 뉴스의 한 꼭지를 구성했고 “실미도 사건을 은폐말라”라는 여론이 빗발치자 2월6일 국방부는 <실미도>가 소재로 삼았던 실미도 부대의 존재를 처음으로 시인했다. 이후 피해자 가족들의 신원확인 요구 또한 줄을 이었다. 열린우리당도 얼마 전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진상조사위원회까지 꾸린 상태다. 최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 자리에서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을 상대로 일부 국회의원들이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용공적인 영화라며 들고 일어선 것 또한 이미 신드롬이 되어버린 이들 영화의 상황을 말해준다. "수익모델과 시스템 구축에 플러스 요인" 그렇다면 한국 영화산업 발전에 있어서 이들 영화들은 어떤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영화계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일궈낸 성과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DJ 정부 출범 이후 영화산업의 중요성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쉬리> 이후 한국영화 콘텐츠에 대한 관객의 신뢰가 쌓여져온 당연한 결과”라며 “이후 한국영화의 수익모델이나 시스템 구축에 있어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비판이 없진 않다. 특정 대작영화에만 자본이 쏠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영화인은 “시장을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기획들이 영화화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상존한다”며 성공 뒤에 따르는 위험요소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을 내놓는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는 한국 영화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낙관이 더 많다. 잃는 것보다 얻을 것이 더 많다는 것. 싸이더스 노종윤 이사는 “예년처럼 단기적으로 시장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해외시장 개척 등을 함께 고려한다면 굳이 우려할 필요까진 없다”고 말한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아 유 레디?> <예스터데이> 등 2002년 영화계의 재앙으로 찍혔던 블록버스터영화들의 연이은 참패에 이어 지난해에도 <튜브> <블루> <천년호> <이중간첩> 등의 대작들의 흥행성적이 좋지 않은 관계로 한동안 투자 자본이 코미디 등에만 몰렸음을 감안한다면 이번 기회가 한국형 블록버스터영화들의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가 따라 붙는다. 부가 판권 및 해외 수출 등 수익 구조를 안정화할 만한 장치들을 최대한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씨네클릭 아시아의 서영주 대표는 “해외에서 한국영화 시장이 굉장히 크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서 “그러나 수출가가 국내 흥행 성적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닌 만큼 배급과 구매가 더욱 용이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문을 잊지 않는다. 좀더 글로벌한 소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거나 해당 문화권의 언어로 더빙하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실미도>는 일본쪽에 미니멈 개런티 300만달러에 배급권을 넘겼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관계자 등을 상대로 대규모 시사를 벌였던 <태극기 휘날리며> 또한 6월 일본 개봉을 앞두고 해외 마케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진짜 축제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실미도> 수익 현황 (2월19일 현재) 개봉 2003년 12월24일 스크린수 220(개봉 300) 관객수 1003만3천명(295만3천명) 총제작비 110억원 순제작비 83억원 극장흥행수입(예상액) 700억2100만원(입장료 7000원으로 계산) 기타부가매출(예상액) 30억원(TV+VIDEO+DVD)+3백만달러(일본판매 3백만달러 포함)+α *<태극기 휘날리며> 수익 현황 (2월19일 현재) 개봉 2004년 2월5일 스크린수 513(개봉 452) 관객수 543만8942(서울 157만6055) 총제작비 190억원 순제작비 147억8천만원 극장흥행수입(예상액) 380억7260만원 기타부가매출(예상액) 40억원(TV+VIDEO+DVD)+α

관객 천만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3]

#토픽2. 날뛰는 시장 논리의 그늘 이승재 |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조폭코미디가 한국영화 흥행을 주도했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올드보이> 등 웰메이드 영화들이 나왔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00년 이후에는 한국영화의 주된 경향이 1년 단위로 빠르게 바뀌는 것 같다. 김미희 |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성공을 거슬러올라가면 <공동경비구역 JSA>가 있다. 최용배 | 어떤 주기가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면서 프로듀서들이 많이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러다 조폭코미디가 장악하면서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그러다 다시 지난해 용기를 내서 제작됐던 영화들이 걸맞은 성과를 얻었고. 김혜준 | “2003년 영화관람 경험률은 전해에 8% 가까이 늘어난 73%를 기록했다. 분명 잃을 수밖에 없는 관객이 있지만 또 그런 관객을 개발해내는 효과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효과가 돌아오는 측면이 없지 않다. 물론 이 지점에서 동시에 투자자 혹은 배급사의 역할론이 제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시장에서의 역학구조에 의해 원치 않는 희생자가 발생했다면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승재 | 연초에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면서 지난해부터 계속된 웰메이드 상업영화들이 만들어지고 평가받는 분위기가 계속됐으면 했다. 그런데 연초에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태풍이 몰아쳐서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듯하다. 소재를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규모의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순제작비 20억원에서 25억원 들여 만드는 영화들이 한국영화의 허리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최대관객 200만명 정도의 관객을 보고서 만드는 영화들이 주류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은 토대가 좀더 다져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절대 관객이 1억명을 조금 넘는 상황에서 소수의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크기도 하고. 가능성만으로 무모하게 제작비를 투여하는 영화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들고. 김혜준 | 산업적으로 수익성 관리가 과연 잘되고 있느냐 물을 필요가 있다. 편당 1천만명 시대가 개막했지만 전체 한국영화의 손익분기점을 놓고 보면 굉장히 불안하다. 지난해의 경우 2002년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프로젝트 개발비 부담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한 상태다. 큰 영화들의 실패를 메우기는 쉽지 않다. 큰 영화로 왕창 깨먹으면 그걸 메우기가 쉽지 않다. 최용배 | 한국영화의 발전은 저임금 구조에 기반한 것이다. 손익분기점을 맞춰도 본전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게 그래서다. 평균 수익률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야지만 떳떳하게 본전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김미희 | 코미디의 경우 아무리 쌈마이를 갖다대도 투자배급사들이 좋아한다. 적어도 몇 프로의 고정 관객이 있는데다 제작비가 크지 않기 때문에 선호할 수밖에 없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블록버스터에 대한 투자 유치가 전보다 쉬워질 것이다. 웰메이드가 전제된다면 긍정적인 효과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탕주의에 대한 고민은 안 할 수가 없다. 사실 2002년에 큰 영화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나서 지난해 다들 투자 위축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나. 큰 영화는 무조건 쏜다는 식이면 도박과 다를 바 없다. 한국 영화산업은 주류 혹은 트렌드가 형성되면 나머지 영화는 다 죽는 기형적인 구조다. 이 경우에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기 힘들다. 감독의 색깔이 들어간 영화들은 특히 그렇다. 이걸 방치했다가는 언제 홍콩영화처럼 될지 모른다. 한 작품이 흔들리면 전체 영화계가 흔들릴 수 있다. 김혜준 | 그 점은 큰 걱정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지난 2∼3년 동안 한 차례 경험해봤으니까. 제작 일선에 있는 이들도 이제 되는 영화와 안 되는 영화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대충 외형에만 신경 쓰는 무모한 실험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거칠게 분류하면 <나비> <튜브> <청풍명월> <원더풀 데이즈> <내츄럴시티> <천년호> 등이 지난해 시장에서 재앙과에 속하는 영화들이 아닌가 싶은데. 이제 실패 확률을 줄이는 단계까지는 왔다. 관건은 얼마만큼 효과적인 자본을 투여해서 성공적인 영화들이 나오느냐, 그래서 어떻게 신규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 같다. 이승재 | 제작현장에 선 입장에서 다르다. 심리적인 우려가 들 수밖에 없다. 이런 거다. 투자자나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줄 때 작은 영화의 경우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전엔 시나리오 보고 괜찮으면 하자고 했던 배우들도 이제는 좀더 큰 영화 없나, 그래서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주저할지 모른다. 1천만이라는 태풍의 회오리 속에서 빠져나오면 좀 진정이 될 거라고 보지만 나 역시 시나리오를 취사선택하고 우선순위를 정할 경우 그러한 영향을 받을 것 같다. 다들 웰메이드 상업영화에 머물렀던 욕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어하지 않겠나. 또한 새로운 자본이 들어올 경우 이 돈들은 영화현장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지 않다. 규모의 힘으로 간다고 했을 때 기존 자본이라면 여러 가지 크로스체크가 가능한데 이 자본은 우려를 낳는 결과를 빚을 위험이 크다. # 토픽 3. 건전한 산업 시스템을 향하여 김혜준 | 자본구조가 안정화되지 않은 가운데 생기는 여러 역효과들이 있긴 하다. 시장의 속성상 예측불가능하니까. 하지만 그것이 치명상을 입히는 수준은 아닐 거라고 본다. 메인 스트림이 어느 정도 컨트롤한다면 전염되는 건 아닐 것 같다. <태극기 휘날리며> 1차 백서가 나왔는데 그거 보면 개발과정에서 촬영 진행까지 시행착오들이 있다. 내 것이지만 공개하고 남의 것도 받을 수 있다는 공유의 차원인데. 이 기록에서 일정한 수익성 관리의 가능성이 발견된다. 김미희 | 이러한 호재를 악용하는 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은 그래도 남는다. 그러려면 제작사나 투자사, 그리고 배우들까지 서로 상호보조 관계를 지속적으로 취해야 한다. 배우들이 욕할지 모르겠는데 한국영화 시장에 걸맞은 개런티가 필요하다. 가져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여기 시장에 적합한 수준의 개런티를 요구했으면 한다. 누구보다 더 받아야 한다, 는 감정적인 계산법은 자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승재 | 올해 제작되는 블록버스터영화, 그러니까 제작비가 50억원을 넘는 영화를 세어보니까 7∼8편쯤 된다. <역도산> <남극일기> <청연> <태풍> <천군> 등. 이러한 규모있는 영화들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전체 시장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 정도에는 한국영화의 맥시멈이 대략 500만명인지 아니면 700만, 800만명 수준으로 올라간 건지 드러날 것이다. 김미희 | “큰 영화면 무조건 쏜다는 식이면 도박과 다를 바 없다. 이 경우에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기 힘들다. 감독의 색깔이 들어간 영화들 말이다. 한국 영화산업이라는 게 주류가 형성되면 나머지는 다 죽는 기형적인 구조인데 이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점이다. 언제 홍콩영화처럼 될지 모르지 않나. 한 작품이 흔들리면 전체 영화계가 흔들릴 수 있다.” 김미희 | 꿈의 기록이라고 하는 1천만명을 넘어섰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러한 수익을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이승재 | 한국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 프로듀서, 스탭들 개별 능력은 뛰어나다. 경쟁력 있다. 하지만 개인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메이저 제작사, 메이저 제작자라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선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부문별로, 또 층위별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현재는 제작부터 상영까지 수익률을 계산할 수 있는 툴조차 없다. 김혜준 | 현재로선 방송이나 여타 부가 판권들의 시장이 커질 확률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남는 건 해외마켓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것이다. 그래야 안정적인 수익구조가 가능하다. 현재는 해외에서 거둬들인 수익이 전체 수익의 10% 안팎이다. 외국 자본의 유입, 교류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나중에 우리 영화 잘 만들었으니 이거 배급해달라는 사후적인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처음부터 같이 자본을 묻고 가는 거다. 이승재 | 무모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앞으로 전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선구적인 영화가 있겠지만. 300억원 들여서 도전하겠다는 건 문제다. 80% 이상은 국내시장에서 수익을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김미희 | 한국영화 자체로 경쟁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 중 대부분은 배우에 쏠려 있다. 해외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좀더 국내시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흥행하면 해외에서의 주목도와 판권가는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것이라고 본다. 이승재 | 극장 매출에 목숨걸어서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영상산업이라는 개념으로 확대해서 바라봐야 한다. 음반이니 게임이니 하는 다른 분야에까지 콘텐츠가 파생되고 여기서 수익의 1/2은 거둬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문화산업이라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해답이 나와야 할 것 같다. 김미희 | 부가판권이라고 하면 극장, 비디오, TV말고는 다 소소하다. <아라한-장풍대작전>의 경우 기획 단계에서부터 게임쪽에 제의를 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위험부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영화는 영화, 게임은 게임이라는 시각이 문화산업 종사자 전반에 퍼져 있는 듯하다. 호환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최용배 | 국내 영화점유율을 이야기하면서 유의할 게 있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50%가 넘으면 안 된다는 의견들이다. 영화인들 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꽤 있다. 스크린쿼터를 축소하자고 말하는 외부의 시선을 객관적인 것으로 잘못 받아들여서이기 때문인데, 한국영화 점유율에 상한선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 사실 메이저의 수직계열화가 빨리 이뤄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들 업체들의 주력 사업은 극장이다. 생각해보라. 극장이냐 투자제작이냐, 라고 했을 때 당연히 전자를 택할 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하면 지원하겠다는 건 젖 떼지 못한 애에게 엄마 대신 뭘 줄까 하는 것과 비슷하다. 김혜준 | 영화계 이외의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쿼터문제의 경우, 이러한 견해와 이해를 달리하는 이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좀더 많은 대응책들이 필요하다. 이승재 | 예술영화, 저예산영화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필요하다. 이런 영화에 투자하는 것은 모든 예산을 소진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게 문제다. 수익 회수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이지 까먹는 게 아니다. 이건 시장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풀어야 한다. 김혜준 | 예술영화, 작가영화, 작은 영화들을 배급하는 방식으로 3개 주요 방송사 외에 제4채널을 만들겠다는 것이 문화부의 계획이다. 수익나면 다시 영화제작에 투자하는 식이다. 영국의 채널4를 연상하면 된다. 기존 채널에도 끊임없이 요구해야겠지만 방송사의 구조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인력은 10분의 1 수준에 대부분을 외주제작에 맡기는 형태의 대안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방송쪽과의 연계문제 등 영화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4] -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눈물 흘리는 초원>

시적 영상으로 그리는 눈물의 그리스사(史)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20세기를 눈물의 시대라고 기억한다. “초원에 떨어진 이슬은 대지가 흘리는 눈물과도 같다”고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그는 전쟁과 내전, 또 다른 전쟁이 오고가던 20세기 한복판의 그리스를 한 여인의 생 안에 담아넣었다. 그가 두손을 모아 눈물을 받아주는 여인의 이름은 엘레니. 사랑 때문에 쫓겨다녔던 그리스 신화의 헬레나지만, 앙겔로풀로스는 그녀가 피를 나눈 두 오빠가 서로 죽이는 모습을 목격한 안티고네고, 눈앞에서 살해당한 아들을 위해 통곡하는 안드로마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1919년, 러시아 적군(赤軍)이 오데사를 점령하자 그리스인들은 국경지방의 공백으로 남아 있는 호수 근처 빈터로 탈출한다. 그 여정의 도중에서 알렉시스의 가족은 죽은 엄마 곁에서 울고 있던 아기 엘레니를 데려온다. 두 아이는 자라면서 연인이 되고, 가족의 반대를 피해 달아나 쌍둥이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전쟁은 알렉시스와 엘레니, 그들의 두 아들을 네 갈래로 찢어놓고 만다. <눈물 흘리는 초원>(Trilogia: To livadi pou dakrisi)은 아주 오랜 시간을 인내해야 하는 영화다. 그것은 170분이라는 물리적 상영시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카메라는 배우가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멀리서만 머물고, 대사는 극도로 적고, 드라마는 자주 생략된다. 그러나 그 시간을 견디고 나면, 느닷없이, 마흔도 안 됐을 젊은 여인의 얼굴에 새겨진 고통이 다가온다.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긴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는 그 몸과 얼굴 안에 극단의 시대를 품고 있는 것이다. 늙은 시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듯한 <눈물 흘리는 초원>은 한 기자가 ‘시(詩)적 충격’이라고 표현한 아름다운 영상을 가진 영화이기도 하다. 케르키니 호수와 테살로니키에 직접 지은 마을 두 군데는 피난처답게 황량하지만, 먼지와 바람의 느낌이 묻어나는 무채색만으로도, 감히 망각의 죄를 범해선 안 될 것 같은 풍경을 천천히 그려나간다. 이미 칸과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앙겔로풀로스는 놀랍게도 이번에 단 하나의 트로피도 가져가지 못했다. 그러나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은 마치 자신의 영화처럼 느리고도 시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앙겔로풀로스에게 기립박수를 보냄으로써 경의를 표했다. -당신은 이 영화를 3부작으로 기획했다. 무엇이 당신을 이 영화로 이끌었는가. =나는 생애 대부분을 20세기에서 보냈다. 그 때문에 그 시대를 주의깊게 돌아보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이 영화는 눈물 흘리는 여인의 모습에서 끝나는데, 내게 20세기란 바로 그런 눈물로 끝을 맺는 시대였다. 3부작의 두 번째 영화는 스탈린 사망 무렵부터 베트남 전쟁이 끝나던 해까지 일어나는 이야기고, 세 번째 영화는 다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 마지막 영화에서 나는 불가능한 귀향,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인간의 모험을 이야기할 것이다. <오디세이>와 다른 모든 그리스 비극은 그런 귀향과 모험을 들려주면서 운명에 대항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당신은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 세상에 개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 나는 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군이 물러간 뒤에, 내 가족은 산산히 흩어졌다. 다소 좌익 성향이 있었던 아버지는 사촌의 고발로 끌려가 처형당했다. 울부짖는 엘레니의 얼굴은 바로 내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나를 붙잡고 수백구의 시체 밑에서 아버지의 시체를 찾아다녔다. 그 때문에 나는 인간의 비극을 영화로 만드는 걸 멈출 수 없다. -당신은 카메라와 색채, 음악이 모두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걸 아는 감독이다. 좀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할 수도 있을 텐데. =영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감독들은 모두 기본에 집중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들의 영화가 반드시 그러해야만 했던, 꼭 그만큼의 영화를. 나는 현재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흐름이 중요하고, 영화라는 거대한 강을 풍요롭게 만들 거라고 믿지만, 그 강물이 항상 맑은 것만은 아니다. 또한 흐려졌다가도 맑은 기운을 회복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삶과 같다. 혹은 삶은 영화와 같은 것일까? 당신 마음에 드는 답을 선택하기를.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결산 [8] - 북한영화 특별상영

당혹스런 첫 대면 2004년 베를린, 북한영화 <푸른 주단 위에서> 특별상영 제54회 베를리날레의 12일간 대장정이 중반으로 접어든 2월9일 저녁, 영화제 인파로 불철주야 북적거리는 포츠담 광장의 다른 극장들과 달리 시네막스 6관은 사뭇 정적이 감돌았다. 100여명 관객도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으니, 역사적(?) 순간의 증인이 될 마음의 채비라도 하는 중이었을까? 자막은 없으니 통역이 읊조리는 대사를 들으려면 헤드폰을 이용하라는 멘트 속에 극장으로 진입한 VIP 열댓명 중 조선영화수출입사의 장원준 부총사장, 국제관계담당 윤미화와 북한 여배우 김련화가 무대인사를 했다. 북한영화가 베를린영화제에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조우한 북한영화가 림창범, 전광일 감독의 2001년작 <푸른 주단 위에서>다. 전형적인 선전영화, 관객은 당황 조선노동당 창당 50주년을 앞두고 집단체조 창작단은 아리랑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동장(어린이 집단체조)을 지도하는 은규는 자신의 상사로 부임해온 어린 시절 짝패 윤희와 재회한다. 은규의 지각으로 공연에 참가하지 못했던 일로 원망이 컸던 윤희는 아이들에 대한 은규의 애정과 투철한 사명감에 점차 호감을 갖게 된다. 은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8명이 함께 두발 모아 집체 허리잡고 앞으로 돌기”를 고집하나 실패가 불 보듯 뻔하다고 생각하는 윤희는 결사반대다. 그러나 은규의 고집이, 비가 쏟아지던 어느 행사장에서 애들이 비 맞아 감기 걸릴라 부러 자리를 떠 체조를 중단시켰다는 김일성 주석에 대한 감동 또 감동에서 비롯됐음을 알게 되자 마음을 바꿔 적극 지원해준다. 심지어 금동이라는 꼬마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맹장염으로 짐작되는 배의 통증까지 불사하며 연습에 열중한다. 규율은 첫째 생명. 모두가 일심단결. 이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모토다. 드디어 아리랑 축제가 열리는 김일성 경기장에서 화려한 아동장을 선보인다. 집체 허리잡고 앞으로 돌기는 대성공, 장군님도 대단히 감동하셨단다. 모두가 해피, 모두가 눈물바람. 이제 윤희와 은규는 인생의 짝패로 더욱 몸바쳐 집단체조를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이 틀 속에 오빠를 장가보내려는 은규 누이의 극성, 그로 인한 윤희와 은규 사이의 오해와 갈등, 화해라는 양념이 간간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런 양념이 제 맛을 발휘하기에는 대규모 카드섹션이 펼치는 “백전백승 조선 노동당”, “위대한 영도자님께 모든 것을 드립니다”, “우리 당의 역사는 수령님의 역사” 등등의 구호들이 너무도 선정적이고, 1만명이 하나로 움직이는 집단체조와 하늘에서 떨어지는 군인들의 쇼가 너무도 섬뜩하게 다가온다. 하여 극장에 불이 켜지고 한참이 지나도 관객이 충격으로 정신을 채 수습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한 독일문화원장 우베 슈멜터 박사가 진행하는 Q&A가 시작되었다. 분노한 한 독일 관객의 첫 질문은 거의 성토에 가까웠으니, “도대체 베를린영화제와 독일문화원이 무슨 상관인가?” 이 성토의 배경은 북한영화를 베를린영화제 프로그램에 끼워넣기 위한 고육지책에 있다. 영화제의 여러 섹션들 중 가장 대비되는 두 부문이 경쟁부문과 포럼으로, 신진감독들과 제3세계 작품 소개에 주력하는 포럼은 그 정치적 성향을 한번도 부인한 적이 없다. 도로테 베너 포럼 집행위원 말에 따르면 북한영화 상영 또한 디이터 코슬릭 위원장과 슈멜터 독일문화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원래는 포럼이 주관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북한이 보내온 후보작품은 총 10편으로, 여기에는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던 영화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사 뒤 위원들간에 의견차가 심했다. “인민 대중을 사상적으로 무장하여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자주적 실현을 위한 투쟁에로 조직 동원하는 계급혁명의 사상적 무기”로 영화를 규정하는 북한을 위해 베를리날레의 붉은 주단을 깔아줄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상영작은 포럼이 선정하되 주관은 주한 독일문화원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베를린영화제의 공식섹션이 아닌 특별상영작으로 붉은 주단 위에 “푸른 주단”이 깔린 것이다. 독일 제1공영방송의 문화프로 진행자인 만프레트 아이헬은 영화 속의 집단체조가 나치시대를 연상시킨다는 발언을 했다가 작품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장 부총사장의 질책을 받았다. 나치는 강제로 학생들을 동원했지만, 북한에서는 모두가 자진해서 집단체조에 참가한다는 설명도 따랐다. 북한은 지식, 도덕, 체력의 함양을 국가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학생들이 방과후 “딴 짓”을 못하도록 체조면 체조, 예술이면 예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하긴 딴 짓도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장 부총사장은 북한영화 수출전망에 대해 “우리는 영화로 돈벌자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통한 교육이 목적”이라면서도, 지금까지 국제합작영화를 7편이나 만들었고 애니메이션의 대국인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많은 주문이 들어온다고 강조했다. 독일과는 고종시대 궁정 고문관을 지낸 독일인 묄렌도르프의 전기영화 공동제작을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영화를 통해 교류의 첫 걸음을 떼다 권력자 찬양과 체제선전으로 도배를 한 영화가 어떻게 베를린영화제에 오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한 관객을 위한 슈멜터 박사의 설명도 있었다. 2001년 평양에서 영화를 통한 문화교류의 터전을 마련하자는 얘기가 처음 오간 뒤, 2002년 평양영화축제에 독일영화 몇편을 상영했는데 무척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뒤 북한의 요청으로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 회고전이 열렸으며, 현재는 한국을 포함하는 ‘한독영화제’를 계획하고 있단다. 중장기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한 남북교류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에 VIP석 손님들과 몇몇 교민들의 열렬한 박수가 터져나왔다. 영화제 Q&A라고 해서 늘 영화얘기만 오가란 법은 없다. 그러나 주독 북한대사를 비롯한 북한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인 만큼 민감한 사항을 건드리는 질문은 극장 관계자까지 나서서 차단하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하필 상영 전날 세계식량계획이 북한의 비참한 식량난을 보고한 참이라 용감한 한 관객이 결국 살얼음을 깨고 말았다. 600만명이 굶고 있는 마당에 큰돈 들여 체제선전용 영화를 만들 일이 아니라 현실성 있는 작품을 제작해보면 어떻겠냐는 충고성 질문이었다. 장 부총사장은 “실제로 굶는 사람들을 당신 눈으로 직접 보았냐”는 대꾸로 이 질문을 일축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영화를 통해 북한이라는 나라가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를 뼈저리게 실감한 자리였다고 하겠다. 우문에 현답인지, 현문에 우답인지가 헷갈리는 상황도 어쩌면 그간의 소통부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게다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그들만의 개념이 다른 이들에게도 통용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북한이 철저한 고립상태에 있음을 재확인시켜준다. 이는 슈멜터 원장도 동감하는 바다. 바로 그런 이유로 북한이 한 걸음이라도 밖으로 떼어놓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개방으로 나가야 함은 분명하다. 자신들도 인정하는 바다. 이전보다는 개방적이 되었다지만, 국제적 안목을 갖기 위해서는 밖을 향해 문을 더 활짝 열어야 한다. 북한의 영화미학은 독특하고 영화적 언어도 사회주의적 현실주의 선상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관객에게는 북한영화가 낯설고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북한 사람들이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정직성 때문에 문화교류를 통한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화해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 포럼 집행위원 도로테 베너 인터뷰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초석이다 -베를린영화제에 북한영화를 초대한 경위는. =주한 독일문화원장인 우베 슈멜터 박사의 노력이 컸다. 분단의 아픔을 공유하는 독일과 한국인만큼 베를린영화제를 통해 남북교류에 기여하고 싶다는 희망을 교분이 두터운 디이터 코슬릭 위원장에게 피력했고, 영화제쪽도 이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사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표현한 것은 충격이었다. 시계를 냉전체제 상황으로 돌려놓겠다는 발언 아닌가. 한 나라를 마녀사냥하듯 몰아대는 것보다는 대화를 통해 접근을 시도해야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고 본다. 베를린영화제는 북한영화 상영으로 이런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자그마한 초석이라도 놓고 싶었다. -관객 반응이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는데. =유럽 관객이 북한영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충분히 예상한 바다. 북한이 영화를 효과적인 선전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양식이나 영화미학도 완전 다르다. 현실을 왜곡하는 프로파간다와 북한체제의 타락성에 분노한 관객도 있을 것이다. 끔찍하다는 느낌도 가질 것이고, 완전히 생소한 영화적 경험이기에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에게 완전 미지의 나라다. 핵분쟁, 식량난 외에는 북한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따라서 관객은 영화를 통해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상영작 선정기준은. =일단 최근작을 선호했다. 관객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스토리여야 했고. 제작된 지 한참 됐거나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뻔한 내용은 가급적 피했다. 다른 영화제나 독일 극장에서 소개된 작품도 제외했다. 그러다 보니 <푸른 주단 위에서>가 남더라. 포럼 내부에서는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상영함으로써 북한체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부작용을 낳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컸다. -지난해 참가작인 한국영화 <경계도시>를 재상영한 이유는. =송두율 교수 구명운동이라기보다는 그가 처한 상황을 알린다는 차원에서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송 교수는 평화적 통일을 위해 문화적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인 통일관을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통일을 위해 정직하게 노력해온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귀국을 위한 준비가 소홀했다는 생각도 들고, 변호사 없이 심문을 받는 등 기술적 실수를 범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그의 시도가 너무 시기상조였는지도 모르겠다. 2번에 앞서 3번의 시도를 해버린 것처럼. 아무튼 하루속히 진실이 규명되어 비극적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